일요일.
맑은 하늘, 하얀 구름. 실컷 내려붓는 햇빛이 나의 라이프를 야금야금 깎는다.
의외고 자시고 할것도 아니지만, 유키노가 말했던 사귀어주겠니, 라는 말은 사고 싶은게 있으니 귀한 시간을 내어주겠니라는 의미였다.
그대로 의미할리가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 치고는 말이 부족한거 아닌가?
 
"기다렸지"
 
우산을 손에 들고 유키노가 천천히 걸어온다.
그녀의 투명한 하얀 피부는 이러한 평소 노력으로 유지되는 거겠지.
 
"아니, 지금 막 온참이다"
 
"그래, 그럼 됐어. 자 가볼까"
 
유키노는 살며시 내게 손을 내민다.
자신이 방향치라는 결점을 이해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그 장점은 예스구나.
 
"그럼 가볼까"
 
유키노의 손을 잡고 걷는다.
장마가 걷히어 불러온 맑은 하늘. 오늘도 덥다.
 
 
 
 
전차로 이동하여 미나미후나바시 역에서 걷길 몇 분. 오늘 목적지인 라라포트에 도착했다.
 
"뭘 살건지 정했냐?"
 
안내처에서 팜플랫을 받고 둘이서 들여다보면서 유키노에게 물어본다.
 
"히키가야. 남에게 물어볼때는 우선 자기부터 말하는거야"
 
그건 이름 아냐?
 
"음. 정하지 않았구만.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라. 이상한 곳에서 고집 부리는구만, 너"
 
"그치만, 여러가지로 보긴 했지만 나는 좀 몰라서……. 거기다 친구한테 선물 받은 적도 없고"
 
미약하게 유키노가 중얼거린다.
연애 관련된 이상한 질투로 친구들이 없었댔지. 남자한테 선물은 받은 적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친구에게 선물받았다기보다는 헌물이라는 쪽이 딱 오는 이상한 느낌.
 
"뭐, 나도 친구한테 선물 받은적은 없지만 말이다. 구글 선생님에 따르면 악세서리보다도 사소한 물품이 좋은 모양이다. 학생이라면 필기도구 같은것도 추천하는 모양이다"
 
구글 선생님은 만능. 완전 만능. 물어보면 뭐든지 답해준다. 바로랑 같은 수준으로 만능.
 
"과연……. 그래서 히키가야는 정했니?"
 
"도서카드 3천엔을 줄까 생각했지만, 코마치한테 진심으로 혼났다"
 
"히키가야, 그건 나여도 글러먹었다는걸 알 정도로 글러먹은 선택이야. 어째서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하는걸까. 어서 병원가서 진단 받는 편이……"
 
유키노는 관자놀이에 손을 대며 머리 아프다는 듯한 행동거지를 한다.
어? 그렇게나 글러먹었냐? 나라면 굉장히 기뻤을텐데.
 
"코마치 뿐만 아니라 너한테도 안돼 판정이냐. 일단, 구글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소한 물품을 찾아보자. 이 생활잡화점은 어때?"
 
"옷 같은건 안 되겠니?"
 
"너, 유이의 사이즈 알고 있냐? 당연히 나는 모른다. 따라서 각하다"
 
"그것도 그렇네. 그럼 가자"
 
 
 
 
 
별로 걷지 않고 목적지인 생활잡화점에 도착했다.
 
"그러고보니 그 녀석 요즘 요리에 빠져있다고 하지 않았냐?"
 
봉사부 셋은 사이 좋게 부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지만, 그러고보니 도시락 중에 일품이품을 스스로 만들었다고하며 맛보기 한 기억이 있다.
덧붙여 맛은 보통.
 
"확실히 그런 소리도 했었구나. 일단 그 방향으로 돌아볼까"
 
부엌용품 판매장으로 둘이서 향한다.
솔직히 부엌용품 판매장에서 선물받아 여자가 기뻐할 만한건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유이라도 식칼이나 도마를 선물로 받아서 기뻐할리 없는 것이다. 뭐, 나는 천연 숫돌같은걸 받으면 무진장 기쁘겠지만.
 
"히키가야, 여기"
 
불러서 가보니 거기에 있던건 에이프론 차림의 유키노였다.
에이프론 유키농은 새댁 귀엽다.
……핫, 지금 왠지 이상한 전파를 수신했다.
 
"어떠니?"
 
"매일 아침, 나를 위해 된장국 만들어주지 않겠어?"
 
"엣?"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잠깐 착란했다"
 
뺨을 붉히는 유키노를 보고 제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말을 고친다.
뭐야 지금? 내가 말한거야? 외우주의 사신에게서 전파를 수신하다니 지금건 아니다.
 
"그거다. 굉장히 잘 어울려"
 
또 이상한 전파를 수신해선 곤란하므로 유키노 쪽은 보지 않기로 했다.
 
"나, 나한테 어울리는게 아니라, 유이가하마한테 어떠냐는 소리야"
 
"아, 그쪽이냐. 그럼 처음부터 말해. 뭐,확실히 에이프론이라면 세탁도 필요하니까 몇 벌을 갖고 있어도 곤란하지는 않겠지. 괜찮지 않겠냐"
 
유키노가 에이프론을 벗는걸 확인하고나서 돌아본다.
 
"그렇지.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검은색이라는 이미지가 아니구나. 그럼……"
 
조금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고 벗은 에이프론을 손에 든채로 유키노는 에이프론 고르기로 돌아갔다.
그 후에 유키노는 자택용과 선물용으로 두 벌의 에이프론을 구입하고 가게를 나왔다.
어째설까, 앞으로 저 에이프론을 입은 유키노가 부엌에 선다고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울렁거린다.
 
 
 
 
 
생각외로 좋은 물건을 손에 넣었기 때문일까, 만족스런 유키노와 함께 라라포트 안을 걷는다.
잽싸게 오늘 목적은 완수한것도 있어, 철수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나는 유키노가 사귀어달라는 말 대로 따른것 뿐이며, 유이에게 줄 선물 고르기가 끝날때까지라고 기한을 정해놓은게 아니다. 요컨대 유키노가 해산을 고할때까지는 나는 어울릴 의무가 있다는것이 된다. 합장.
인테리아 샵에서 둘이서 소파에 앉아보거나, 자신의 옷을 고르는 유키노에게 의견을 말하는 등 하며 걷고 있으니, 어떤 장소에서 유키노가 발을 딱 멈춘다.
시선끝은 게임 센터이며, 솔직히 평소의 유키노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왜 그래? 주변 여고생처럼 스티커 사진이라도 찍고 싶어진거냐?"
 
이 녀석, 스티커 사진 찍은적이 있나? 어떤 낙서를 해줄까, 약간 흥미가 솟았다.
 
"스티커 사진은 나중이야. 그보다도 저거……"
 
한 대의 크레인 게임 기게를 가리킨다. 그보다 뭔가 지금 흘려버릴 수 없는 소리를 하지 않았나? 나중에 라는건 찍을 예정이 있는겁니까, 유키노씨.
 
"판씨인가. 갖고 싶어?"
 
"갖고 싶냐 아니냐고 물으면 갖고 싶지만……"
 
유키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판씨를 쳐다본다.
 
"어느걸 갖고 싶어?"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들어 기계에 투입하면서 유키노에게 묻는다.
그나저나 우리집 코마치는 굉장하다. '여자애가 크레인 게임에서 경품을 갖고 싶어하면, 절대로 뽑아줄것!' 라니, 절대로 쓸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대상이 유키노라니, 상상도 못했다. 저 녀석, 예지능력이라도 갖고 있는게 아닐까. 다음에 로또라도 사보자.
 
"에, 저기……그, 그거"
 
조심스레 쭈뼛거리며 판씨 하나를 유키노는 가리킨다.
화염 커맨드는 물론 슈퍼 노자트리니티를 쓰는 날도 멀지 않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내게 있어 이 정도는 낙승이다.
 
"자"
 
조금씩 장소를 틀어서 몇 번째의 도전으로 무사시 기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해방된 판씨를 건낸다.
 
"고, 고마워……가 아니라. 이건 네가 손에 넣은거잖니? 그럼 내가 받을 이유는 없어"
 
하지만 유키노는 나한테 인형을 도로 돌려줬다.
 
"네가 갖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네 손에 있는거야. 이유가 없지 않지? 자, 논파"
 
과정은 둘째치고 원인과 결과에 관해서는 이치가 성립한다.
 
"너한테 말로 지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굴욕이야"
 
"판씨한테 달래달라고 하면 되잖냐"
 
흥, 하며 판씨를 껴안으면서 유키노는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입은 험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그나저나 유키노가 인형을 좋아한다는건 솔직히 의외로군"
 
뭔가 이렇게, 예술적인 걸 좋아하는 이미지가 딱 온다.
 
"……다른 인형에 흥미는 없지만 이 팬더 판씨만큼은 좋아해"
 
유키노는 그 가슴에 안은 인형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옛날부터 인형이나 상품은 모았지만, 이런 상품은 스스로 얻을 수 밖에 없으니까 곤란했어. 옥션을 이용하는것도 생각했지만, 게제되어 있는 사진으로는 표정을 알기 힘들고……"
 
인형에도 표정이 있다.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주 그렇게 말한다. 덧붙여 코마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입을 꿰멘 형태나 눈 위치에 따라서 표정이 전혀 다른 모양이다. 인형을 사러가면 타협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표정을 찾기 때문에 굉장히 시간이 걸린다.
 
"정말로 판씨 좋아하는구나"
 
표정에 집착할 만큼 상급자라는걸 알고, 무심코 미소가 새어나온다. 좋거나 싫다거나, 그런 감정이 희박한 내게 있어 그렇게까지 고수하는 사람은 솔직히 감탄할 수 있다.
 
"……그래. 옛날에 생일에 받았어. 그 때문에 한층 애착이 있는걸지도 몰라"
 
"어쨌든간에 애착이 있다는건 좋은거다. 소중하게 여겨"
 
유키노를 따라 나도 판씨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기, 히키가야. 그게……뽑아줘서"
 
"어라-, 유키노?"
 
무슨 말을 하려고한 유키노의 말을 가로막듯이, 배려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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