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돌봐준다. - 본심
 
 
 
 
 
녹색으로 물든 잎이 붉게 물든다.
애수가 감도는 계절은 마치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듯이 모습을 감추려고 했다.
 
가을은 갑자기 찾아와,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그런 잠깐의 순간.
 
 
더위에서 서늘함으로 바뀌어가는 10월.
나는 강의 끝날 무렵에 시간이 남았다.
하는 일도 없이 멍하니 아이스 커피를 쳐다보고 있으니, 껌시럽을 세 개나 집어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 오늘은 히키오의 아이스커피 몫을 만들 필요 없구나…….
 
그 달달한 커피를 한입 마셔보지만, 입 안에 충분할 정도의 단맛이 퍼져서 도무지 입에 맞지 않는다.
 
 
"……달아"
 
 
하지만 맛있다.
 
오늘은 좋은 하루다.
아침부터 드물게 일어났으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가방에서 꺼내어, 몇 번이나 LINE 메시지를 쳐다보고는 히쭉거린다.
이걸로 아침부터 몇번째일까.
 
스마트폰에 비추어진 화면에는 행복한 메시지가 쓰여있다.
 
 
 
히키가야
【오늘 만날 수 있어?】
 
 
 
 
…………
 
 
 
애타는 마음을 참을 수 없다.
다리는 자연스레 빠른걸음이 되고, 전차 속에서는 좀 더 속도는 낼 수 없나 하고 운전수를 노려본다.
개찰구에서 전자 마그넷을 황급히 댄 탓에 붉은 램프와 고음 정지음에 나는 무릎을 친다.
다시 전자 마그넷을 갖다대고, 역의 계단을 두 칸씩 뛰어내렸다.
 
 
"하아하아……"
 
 
몇 미터 앞에 발견한 가는 체구의 남자.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그 녀석은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면서 로타리에 설치된 시계를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뒤로 접근해서 그 녀석의 등에 뛰어들었다.
 
 
"이얍-!! 기다렸어!?"
 
"읏……. …일단 등에서 떨어져"
 
"헤헤, 두근거렸지?"
 
"응. 허리가 부러지는게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수줍어 말라고! 그래서? 어디 갈건데!?"
 
"……왠지 텐션 높지 않냐?"
 
"일단 디즈니 랜드 갈래!?"
 
"얘길들어! ……이미 저녁이잖냐. 가는건 술집이야"
 
"평범하네! ……, 히키오가 마시러 가자고 하다니, 왠일이래?"
 
"……그런가? …그럴지도. 뭐, 여기서 서서 얘기하는것도 뭐하니까 얼른 가자"
 
 
해질 무렵 길에 그림자가 길게 뻗었다.
나는 히키오의 그림자를 밟으면서 뒤를 걷는다.
 
최근에는 히키오가 나를 선도하는 일이 늘어난것 같다.
 
조금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몇 개월 전까지는 완전히 다른 길을 다른 페이스로 걷고 있던 우리들이, 지금은 같은 길을 같은 페이스로 걷고 있으니까.
 
이렇게 그림자를 겹치며, 나는 계속 그와 함꼐 있고 싶다고 솔직히 바라고 만다.
 
그런 마음.
 
 
 
…………
 
 
 
조금 혼잡한 술집에서 맞이해준 점원에게 안내받아 개인실로 들어간다.
 
 
"아, 선배-, 늦다구요-? ……어, 헉!? 미우라 선배!?"
 
"……아!? 바보 후배!?"
 
"너무해!!"
 
"왜 네가 있는거야……"
 
"거꾸로 묻고 싶을 정도에요. 왜 미우라 선배가……"
 
 
잇시키 이로하…….
눈에 거슬린다.
없애버리자.
 
라고 생각한것도 잠시, 이 자리를 세팅했을 히키오에게 불평을 하는게 먼저다.
 
나는 히키오의 멱살을 잡아들어 노려봤다.
 
 
"어떻게 된 일이야!"
 
"가, 가까워. 가깝거든……. 어쩌고 자시고, 이 녀석이 마시자고 하니까 너도 부른것 뿐이잖아"
 
"읏――!? 헷갈리잖아!! 바보!!"
 
"잠깐만요 선배! 둘이서 마시자고 했을텐데요!?"
 
"하? 히키오, 어떻게 된 일?"
 
"미우라 선배하고는 관계없어요!"
 
"너……, 각오해"
 
"선배,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이 여왕을 반드시 쓰러뜨리겠어요"
 
"히키오, 잠자코 나아 뒤에 숨어있어"
 
"아, 점원 씨. 생맥주 셋이요"
 
 
잠시 지나, 험악하고 긴장으로 지배된 곳에 잽싸게 나타난 점원이 맥주 셋을 두고 간다.
 
가게 내에 흐르는 소음하고는 대조적으로, 우리들이 앉아있는 개인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어도 맥주 맛은 변함없군"
 
"히키오, 설명해"
 
"저도 설명을 요구해요"
 
"……엥. 뭘?"
 
 
나는 히키오의 다리를 걷어찬다.
훌륭하게 하이힐이 뾰족하게 찔렀다.
 
 
"아팟!?"
 
"나아, 돌아갈래"
 
"하? 자, 잠깐"
 
"선배! 미우라 선배가 돌아간다고 하니까 돌려보내주자구요!!"
 
"……역시 안 돌아가. 그보다, 네가 돌아가"
 
"뿌-! 제가 선약이거든요!"
 
 
깊숙히 의자에 다시 앉고, 나는 히키오에게 일의 경위를 들었다.
 
 
잇시키 이로하와 히키오는 같은 대학이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접점은 있었지만, 히키오가 어슬렁어슬렁 교류를 피하고 있었다던가.
 
 
"겨우 붙잡았는데……. 눈 위에 혹이 붙었어요"
 
"날려버린다"
 
 
짱나는 후배.
건방지고 남자 좋아하고.
 
……동족 혐오.
 
 
나는 이 녀석을 싫어하지만 본질은 닮아있다고 이해했다.
 
하야토도 마찬가지.
 
이 녀석하고는 상위점은 많이 있지만, 닮은점은 거의 닮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을 느낀다.
 
 
지금도 또, 이 녀석은 나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따뜻함에 기분 좋은걸 느끼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선배, 이번에는 미우라 선배를 안은거에요?"
 
"오해를 부를 법한 소리 하지마"
 
"그래. 나아는 딱히 히키오에게 안기지 않았거든"
 
"헤에……. 왠지 보기 드문 조합이네요. 미우라 선배는 훈남 취향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딱히……"
 
"……, 졸업식 때, 설마 미우라 선배가 고백할줄은 생각 못했어요. 좀 더 감정보다 머리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요"
 
"너보다는 앞뒤 생각하고 움직이거든. 하지만 그 때는……"
 
 
나는 히키오의 얼굴을 본다.
별 신경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은건지, 히키오는 맥주를 마셔갔다.
 
정신을 차리니 잇시키 이로하도 히키오를 쳐다보고 있다.
뭔가 생각하고 있는게 있던건지, 잇시키 이로하의 표정은 그녀가 하야토에게 차였던 '그 때'를 떠올리게 한다.
 
 
서로 '그 때'를 가진다.
기이하게도 결과는 같다.
 
 
"……반대로 선배는 지나치게 생각해요. 유이 선배를 찰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가?"
 
"그래요. 그렇게 멋진 사람, 선배 앞에는 두번 다신 나타나지 않을거에요"
 
 
이 녀석, 가끔은 괜찮은 소리를 하잖아.
확실히 유이 만큼 좋은 여자는 좀처럼 없고, 더군다나 히키오가 상대여선……, 전혀 없나.
 
 
"그러니까, 제가 선배의 여친이 되어줄게요!"
 
"어째선데!!"
 
"좀! 미우라 선배는 입다물고 있어주세요!"
 
"네가 입다물어! 히키오, 이런 여자는 나아가 허락 못하거든!"
 
"왜 미우라 선배한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건데요!"
 
"왜, 왜냐고?! 왜인데!?"
 
"……, 아니 몰라. 일단 둘 다 조용히 해. 다른 손님도 있잖아"
 
 
에다마메를 먹으면서 메뉴를 보고 있던 히키오는 평소와 다름없는 톤으로 우리를 주의한다.
 
갑자기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스마트폰이 떨렸다.
히키오는 그걸 확인하고 자리를 일어선다.
 
 
"음. 미안, 전화. 잠깐 자리 비울게"
 
 
"……"
 
"……"
 
 
다시 침묵이 흐른다.
 
 
"……너, 무슨 생각하는거야?"
 
"……, 다음은 뭘 마실까 생각하고 있어요. 미우라 선배야말로 뭘 생각하고 있는거에요?"
 
"너를 어떻게 으깨줄까, 생각하고 있구"
 
"무서워! ……, 실은 선배를 생각해요"
 
"……헤에"
 
 
솔직하게 대답한다고는 생각 못했다.
물론, 지금 말이 본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도저히 농담이나 특이한 소리를 하는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웃긴가요? 제가 선배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면"
 
 
웃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런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면, 나는 고개를 피하고 싶어져버리잖아.
 
 
"더는 물러서지 않아요.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아요. 정말로 진실된 것을 저도 원하니까요…"
 
"정말로……, 진실된 것"
 
"뒤쫓고, 따라가서. 비겁하든 임시변통이든 좋아요. 그 둘에겐 미안하지만, 절대로 지지 않아요"
 
 
정말로 속얼굴을 본 느낌이 든다.
이렇게나 예쁘게 웃을 줄 아는 여자였나?
외모나 장식만 신경쓰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하고는 다르다.
 
 
"왜, 왠지 죄송해요. 이런 얘기는 잊어주세요! 취한걸까나아~, 아하하-"
 
"……. 나아도"
 
"헤?"
 
 
 
"나아도, 히키오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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