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돌봐준다. - 산
재미없고 긴 강의가 질질 이어진다.
교편을 휘두르는 교수는 자기만족을 얻는것 처럼 긴 수식을 칠판에 쓰고 있었다.
노트에는 영문 모를 숫자가 난잡하게 기입되어 가지만, 내가 원하는건 이런 작업적인 수식의 해답이 아니다.
"그럼 출석표 나눠준다-"
이걸 원했다.
배포받은 출석표에 학생번호와 이름을 쓰고 나는 강의도 끝나지 않은 교실에서 도망쳣다.
그 교수, 짜증나게도 출석표를 강의 시간의 반이 지났을때 나눠준다.
그걸 알기 때문인지 나를 제외하고도 출석표를 쓴 사람들은 재빠르게 교실에서 퇴실해갔다.
오가는 학생들로부터 느끼는 고양감.
캠퍼스 내에는 어딘가 들뜬듯한 분위기가 충만하고 있다.
그것도 당연한가, 다음주부터는 근면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가 기뻐하는 대형연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실이나 카페테라스, 학교식당에는 레저 잡지를 보고 잡담을 나누는 학생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여름방학이나 봄방학은 너무 휴가가 길어서 휴일의 기쁨이 옅어지고 만다.
일주일의 연휴가 딱 좋은 행복감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러는 나도 들뜬 사람 중 한 명.
캠퍼스 내에 있는 자동판매기를 쳐다보며 무심코 얼굴이 풀어지고 만다.
오늘은 기분이 좋다.
가끔은 이 달짝지끈한 커피를 사보자.
………
연휴를 앞둔 선술집은 평소의 성황 이상으로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해둔 나는 점원에게 안내받아 가게 안의 개인실로 걸어간다.
"아, 유미코! 얏하로-!"
"그 인사 그만해"
유이를 만나는건 한달 정도 만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나와 유이는 이렇게 가끔 마시러 간다.
근황보고라고 하는 푸념을 하는것 뿐이라, 결코 색기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건 유이가 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 안에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적어도 둘 사이에서 남친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겨우 골든 위크지! 유미코는 예정 정했어?"
"음-, 일단 서클 합숙이 있지만, 다른 예정은 적당하단 느낌?"
"그럼 다 같이 어디 가자!! 산이라던가!"
"왜 산……? 아, 그럼 유이도 우리 서클 합숙 갈래?"
나는 서클 그룹 LINE을 열어 유이에게 보여준다.
합숙 개요가 쓰여진 메세지에는 확실히 산 합숙이라고 쓰여있고, 래프팅이나 바베큐 등 스케줄의 상세 내용까지 보내어져 있었다.
"래프팅!? 뭐야 그거!? ……앗, 서클 합숙에 부외자가 참가하면 안 되잖아"
"관계없어. 그보다, 남자들도 유이가 오면 절대로 기뻐할테고"
"따, 딱히 그런건……. 그치만 산 합숙인가아……가고싶네에"
"그럼 결정. 모레 8시에 우리 대학교에서 집합이야"
"에!? 그렇게 멋대로!?"
"아, 히키오도 부르자. 유이도 그 녀석이 있으면 든든할거 아냐"
"우에!?!? 힛키도!?"
"전화할게. 잠깐 기다려"
"전화!? 왜 유미코가 힛키의 번호 아는거야!? 그리구 래프팅은 뭔데!?"
나는 스마트폰 주소록에서 히키오의 전화번호를 불러낸다.
통화음이 울리자 바로 히키오와 연결됐다.
"받는거 늦어!"
『한번만에 받았는데…』
"시꺼. 모레부터 합숙이야. 예정 비워둬"
『하? 무슨 소리 하는거야? 합숙……?』
"모레 마중나갈테니까 준비해둬. 상세한건 집에 가면 전할테니까"
『아니아니, 안 갈거거든.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오는거 그만두지 않을래?』
"끊는다"
『좀, 야……』
통화 종료와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이 어두워졌다.
"괜찮대"
"어, 어떻게 된 일이야…"
유이는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별로 의욕 없었던 서클 합숙도 조금은 즐길 수 있을것 같다.
………
합숙 당일, 집합장소 캠퍼스 정문에는 30명 정도의 참가자와 몇 대의 렌트카가 정차하고 있었다.
나는 합류한 유이와, 집에서 끌고나온 히키오를 데리고 약속 장소를 멀찌감찌서 보고 있다.
"와아-, 다들 서클 사람이야?"
"그런거 아냐? 모르는 녀석들 투성이지만"
"치, 친구 아냐?"
"응. 거의 이름도 모르고"
"아, 아하하-"
서클의 간사가 출발식이니 뭐니 하고 있는 도중에 히키오는 고개를 떨구면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좀, 히키오. 너 되게 짐 없다?"
"……"
"산 얕보지 마"
"……하이힐 신은 너한테 듣고 싶지 않아"
"그보다, 아까부터 스마트폰으로 뭐하는거야? 친구 없는 주제에"
"친구가 없어도 스마트폰은 만질 수 있어. 코마치에게 TV 녹화를 부탁하는거야"
"녹화정도는 스스로 해"
"네가 갑자기 끌고나와서 그런거잖아!"
히키오의 목소리에 서클 참가자 몇 명이 이쪽을 돌아본다.
왜 나를 보는건데. 아?
라고 생각했더니, 그 몇명은 황급히 우리들로부터 눈을 피했다.
"뭐, 뭐어뭐. 힛키도 유미코도 진정해. 힛키도 말야, 이 합숙에서 친구 만들어보지?"
"흥. 도당은 안 짜"
"도, 도당…?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거기다, 왠지 이벤트도 많이 있는거 같은데? 어음, 리, 리프팅이었나?"
"……사람 많은데서 혼자서 리프팅을 하라고? 나한테는 리프팅이 어울린다는 거야?"
"힛키, 의미 모르겠어. ……나참"
"왜 네가 기막혀하는건데!"
……응.
역시 이 광경은 그립다.
이래저래 푸념을 하는듯 하면서 히키오의 말도 평소보다 온화한 느낌이 든다.
음색에 따뜻함이 있다고 할까, 유이나 유키노시타와 대화할때 히키오에게 차가운 이미지는 없다.
유이도 즐거운 모양이다.
……, 응. 분명 유이는 아직 히키오를, ….
조금 멍하니 있던 나는 간사 그룹중 한 명이 큰 소리를 질러서 출발식이 끝났다는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동시 차내 조를 발표하는 모양이다.
5인승 패밀리카에 4명씩 타는 모양이다.
"조? 야야, 내가 제일 멀리하는 문화잖아"
"에엥!? 다같이 타는거 아니야!?"
히키오는 발표를 들으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유이는 불만스러운 듯이 볼을 부풀린다.
"아니아니, 너네는 비공인 참가니까 호출 안 받았구. 나아가 타는 차에 같이 타면 되잖아"
착착 조가 발표되어 가고, 호출받은 사람부터 차에 올라탔다.
아직 불리지 않은건…….
"유미코는 나와 같은 조야"
나와 마루오카 뿐이다.
"미안하지만, 간사장의 특권을 썼어. 유미코와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인원수 관계상 조는 나와 유미코 둘 뿐이야"
나는 마루오카에게 재촉받은대로 차에 올라탄다.
마루오카는 평소보다도 순종적인 나를 보고 기분이 좋아졋는지, 운전석에 앉고 오디오 선곡을 서양 음악으로 하여 음량을 올렷따.
"그럼 갈까"
"음, 잠깐만"
"?"
"이봐-, 여기여기-. 얼른 타-"
"하?"
………
고속도로의 요금소를 지나, 조금 지나니 도로 주위에서 높은 빌딩무리가 사라져갔다.
정체도 없이, 이미 순조롭게 목적지로 다가가는 모양이다.
"나아로써는 산보다는 바다지"
"에-? 나는 산 쪽이 좋은데-. 힛키는?"
"……나는 집이 좋아"
"그럼 히키오네 집 갈래"
"거짓말거짓말. 역시, 바다가 좋다"
"그럼 다음엔 바다가자!"
"도망칠곳은 없냐!"
차 안에는 웃음소리가 울린다.
유이가 갖고온 빼빼로를 물면서, 나는 창 밖에 펼쳐지는 산들을 쳐다봤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산이라면 이 주변에도 많이 있을텐데 왜 원거리 장소를 고른걸까…….
"아, 그게, 마루오카 씨였던가요? 죄송해요, 저희까지 편승해서요"
"……아, 아하하. 괜찮아. 유이가하마 씨……, 유이짱이라고 불러도 돼?"
"에헤헤, 왠지 '유이짱' 은 신선할지도. 있잖아 힛키. 유이짱이라고 불러봐"
"……소름"
"힛키한테 듣고 싶지 않아!!"
마루오카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운전에 다시 집중했다.
유이는 자연스럽게 남자를 멀리하는 구석이 있다.
그것도 무의식이다.
어쩌면 오늘은 히키오에게 푹 빠진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조수석에 앉은 나는 뒤에서 장난치는 둘을 웃으면서 보고 있다.
그저, 조금 멀리 느껴져버리는건 자리 문제일까.
둘에게 흐르는 따뜻한 시간이 너무나 눈부셔서 부럽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유이와 자리를 바꾸고 싶다니….
나는 부러진 빼빼로를 입에 넣는다.
유이가 사랑스럽게 먹는 모습에 질투하면서, 나는 새로운 빼빼로를 입에 물었다.
"자, 히키오!"
"아?"
"빼빼로 게임! 나한테 이기면 바다에 데려가줄게!"
"……, 참고로 지면?"
"히키오네 집에 가줄게"
"나한테 메릿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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