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돌봐준다. - 교제
유미코
【빨리 와】
한 통의 LINE을 보내고, 조금 차가운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는다.
뉴스에서 다음주부터 따뜻해진다고 했던건 저번주였다.
빌딩의 외장에 설치된 큰 기온계에는 15℃라고 표시되어 있다.
역앞을 걷는 사람들의 차림은 어딘가 얇아서 추워보인다.
봄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니면 동복에 질려버렸는지 봄의상을 입고 기다리는 모습은 보고 있는 이쪽마저 춥게 만든다.
히키가야
【너무 빨라. 5분 정도 남았어】
역 앞의 로타리에 선 시계바늘은 11: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이르다.
유미코
【지각하면 쳐팬다】
LINE 메세지에는 바로 읽었다는 표시가 떴다.
메시지 답신을 노려보듯 기다리지만, 전혀 답신의 조짐은 없다.
유미코
【읽어놓고 무시하지마!】
이건 제재를 가해야겠다고 생각할때, 나는 뒤에서 머리를 약하게 얻어맞고 돌아봤다.
"너, 너무 이르다고"
"하아? 네가 늦은것 뿐이잖아"
"집합은 12시라고 들었는데"
"나아가 왔을때가 집합시간이거든!"
"터무니없는 너 주의구만.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 날, 히키오와 LINE ID를 교환한 날부터, 나는 빈번하게 히키오와 LINE을 하고 있다.
답신 내용은 어. 나, 그런가. 라며 무뚝뚝하지만 어딘가 기분 좋은 장문을 받는것 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오랜만이잖아. 잘 지냈어?"
"일주일 전에 만났잖아"
"그러니까 오랜만이잖아"
"응, 너하고 나는 살고 있는 시간축이 어긋나있군"
"쫑알쫑알 시끄럽네. 그럼 가자"
"하? ……간다니 뭘. 조금 할 얘기가 있다는거 아니었냐?"
"응. 쇼핑하러 가고 싶다는 얘기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가자"
"……집에 갈래"
"못 보내! 자! 추위 속에 기다리게 했으니까 얼른 가!"
나는 히키오의 굽은 허리를 뻥 찬다.
혼잡에 섞여 나는 히키오의 팔을 잡아당겼다.
추위 속에 식은 손에 온기를 느낀다.
체온이 손을 타고 내 마음도 데워주는 모양이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잡아당기지마. …쇼핑은 즉 짐들기잖아?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별로 도움 안 될거다"
히키오의 팔에서 떨어진 내 손을 쳐다본다.
순식간에 식은 손에는 아무것도 쥐여있지 않는다.
새끼 손가락에 낀 핑크색 반지가 굉장히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이 반지는 고등학교 시절에 산거였지.
'유미코에게 굉장히 잘 어울려'
그 말에 기뻐서 싸지도 않은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버렸다.
하야토의 진의는 모른다.
정말로 어울린다고 생각해주고 있던건가.
아니면, 그 자리의 분위기에 따라 말을 한것 뿐인가.
"……. 저기 히키오"
"아?"
"남자가 여자를 칭찬할때는 어떤 이유야?"
"……. 생각한 적도 없는데"
"그건 음흉한 생각 없이 솔직하게 칭찬한적 밖에 없다고?"
"으. 그렇게 되는걸지도 모르겠군"
"붓! 아하하하-! 뭐야 그거!"
시답잖은 일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히키오가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나는 무심코 웃어버린다.
히키오는 퉁명스럽게 나를 노려봤지만, 내 마음은 묘하게 후련해져있었다.
나는 새끼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봄의 나무사이로 비치는 태양빛에 비추자 연분홍색의 반지 심이 묵직하게 빛난다.
"히키오, 어때 이거. 어울려?"
"괜찮네-"
"진지하게 대답해!"
"……간편해서 귀여운 반지 아냐? 뭐, 미우라에겐 핑크색은 안 어울리지만, 유이가하마한테는 어울릴지도"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똑바로 들으니 괜시리 짜증나지만, 확실히 핑크색은 취향이 아니고, 유이가 어울릴 것이다.
"짱나. 네가 뭘 아는데"
"……네가 물은거잖아"
"뭐, 상관없지만. 그럼 이거 이제 필요없어. 히키오한테 줄게"
"필요없어 없어"
"유이한테 주지 그래?"
"하? 네가 줘라"
둔감한 남자는 짜증난다.
히키오의 둔감함은 기막힐 정도다.
나는 히키오의 배를 치고, 억지로 반지를 건냈다.
"우윽!? ……, 너, 너 말이다"
"준다고 했잖아. 네가 유이한테 건내줘. 그 애도 그러는 편을 기뻐할거야. 분명해"
히키오는 이상하다는듯 반자와 나를 쳐다본다.
한숨을 쉬고 그걸 주머니에 넣었다.
"뭐, 건내주는것 뿐이라면 건내주지. 단, 네가 건내줘도 그 녀석은 기뻐할거라 생각하지만 말야"
"……. 흐, 흥! 그런건 알고 있다고!"
………
"그래서, 쇼핑몰에 온건 좋지만 뭘 살 생각인데?"
"다음부터 강의도 시작되니까, 봄에 입을 옷이 필요해"
"강의 개시하고 봄에 입을 옷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여기 가거부터 전부 돌거야"
"……잘못 들었냐? 지금 전부라고…"
"자, 얼른 따라와!"
대충 200 점포는 있는 쇼핑몰 안에서 나는 마음에 든 옷을 시착하고는 사고, 시착하고는 사기를 반복했다.
히키오는 불평을 늘어뜨리면서도 내가 산 옷을 들고 나한테서 조금 떨어진 뒤를 걷는다.
"너, 꼴사나우니까 그렇게 걷는거 그만해. 허리 굽었잖아. 할배같게"
"……이만큼 짐을 들면 허리도 굽는다고"
"한심하네-. 하는 수 없으니까 저기 찻집에 들어가줄게"
"……고맙구만"
"자, 자리에 짐을 두고 와. 짐을 들어준 답례로 사줄테니까"
"왜 내려다보는 시선인데? ……뭐, 고맙게 받아먹겠지만"
카운터에서 주문과 접수를 마치고 가게 안에서 히키오를 찾는다.
대량의 집을 옆에 둔 테이블 석에 히키오는 고개 떨구고 앉아있었다.
정중하게 재떨이도 놓여져 있다.
"자, 커피. 나아한테 감사하면서 마셔!"
"에, 짐들어주는 답례였던거 아니야?"
"응석부리지마. 그보다, 너 껌시럽 너무 넣는거 아냐!?"
눈 앞의 아이스 커피에는 그런대로 껌시럽을 넣는다.
투명한 액체가 커피 잔속에 천천히 흔들렷다.
"아? 블랙이면 쓰잖아"
"그렇게 집어넣으면 너무 달잖아! 아아-, 정말. 자, 더는 넣지마. 당뇨병 걸리잖아"
"무르구만, 미우라. 거기다 배로 넣는다"
"물러터진건 네 커피거든. 뭐야, 너 커피 못 마셔? 그럼 바꿔올까?"
"너 바보냐. 비공을 간지르는 향과 입안에 퍼지는 쓴맛이 최고로 맛있는 커피를 싫어할리 없잖아"
"그거 먹고 쓴맛을 느낀다면 너 병원가. 집에 가면 제대로 양치질 해"
머리가 이상한 녀석이다.
그저, 그렇게 달달한 커피를 마시는 얼굴은 어딘가 어른스럽다.
솔직하다고 할까, 순수하다고 할까, 이 녀석은 폼을 잡는 짓을 하지 않는다.
보통, 여자 앞에서 이렇게나 껌시럽을 붓는 남자가 있을까.
그렇기 때문일까, 이 녀석과 있으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기분 좋다고 까지는 말하지 않지만, 섣부르게 마음쓰지 않아도 좋다.
"음, 맛있어. 좋은 콩을 쓰고 있네"
"너한테 들어도 기쁘지 않거든. 그보다, 그거 정말로 전부 마실 생각이야?"
"아? 남기면 가게에 실례잖아"
"그렇게나 껌시럽 넣는것도 실례거든"
"나한텐 이 정도의 단맛이 맞아. 가능하면 세상도 나에게 달게 대해주는걸 바라기까지 한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이리 줘봐"
"아, ……"
나는 히키오의 달짝 커피를 한입 마신다.
아니나다르다고 할까, 예상대로라고 할까, 커피는 거의 껌시럽을 마시는 수준으로 달고, 입 속에는 엿을 먹은 후 같은 단맛이 퍼졋다.
"우에. 더럽게 달잖아. 이거 몸에 엄청 나쁠거야"
"……"
"자, 돌려줄게. 반 마셨으니까 포기해"
"뭐, 뭐어, 응. 그렇군, 반 마시고 포기하마"
히키오는 내가 돌려준 커피를 망설이면서 손에 쥐었지만, 거기에 입을 대지 않고 테이블에 도로 올려둔다.
진정되지 않는듯 안절부절 한다고 생각햇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고 아래를 쳐다봤다.
"……너. 동정이지"
"읏!? 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풋! 간접 키스로 그렇게까지 허둥대는 녀석은 되게 드무네!"
"아, 아!? 딱히 신경쓰지 않았거든!?"
"그럼 얼른 마시지 그래?"
"뭐, 뭐어, 그거다. 좀 껌시럽을 많이 넣은것 같으니까. 그거다, ……응?"
무심코 히쭉대고 만다.
설마 간접 키스를 부끄러워할 정도로 초심이었을 줄은 생각 못했다.
"후후. 뭐, 천천히 마셔. 이 후에 어떡할래? 쇼핑은 이제 충분하고"
"……집에 갈까"
"안 돼. 영화도 딱히 보고 싶은것도 아니고, 마시러 가기에는 조금 이르고"
"……집에 갈래?"
"얼마나 집에 가고 싶은건데! ……, 그러고보니, 너 혼자 살아?"
"아? 그렇긴한데……"
"……흐-응. 좋아, 오늘은 이제 지쳤으니까 돌아갈래"
"음? 돌갈거냐? 좋아, 돌아가자. 바로 돌아가자"
"응. 돌아가자. ……후후후"
…………
"헤에, 여기가 히키오의 집인가-. 왜 이렇게 넓어?"
"……"
"제대로 청소하고 있잖아. 좀 더 어질러졌을거라고 생각했어"
"……"
"응? 뭐야 이 상자……. 켁, MAX 커피. 더럽게 맛없는거잖아"
"……야"
"너, 이런것만 마시니까 삐쩍 마른거 아냐?"
"……왜 네가 있는건데"
"아? 왜?"
"아니아니, 왜……"
"집에 가자고 네가 말했잖아"
"응. 집에 가자고 말했는데?"
"그러니까 집에 갔잖아. 히키오의 집에"
"그게 이상해"
2DK 구조에 각방. 보기에도 신축 아파트.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방에, 이것 또한 화려한 가구가 몇 가지 있다.
나는 쇼핑 몰에서 돌아가는 길에 히키오의 뒤를 쫓았다.
인터폰을 누르자 히키오는 정중하게 문을 열어줘서, 나는 사양 않고 실례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집이랑 가깝잖아. 너도 이쪽 대학이었구나"
"……평범하게 대화를 계속하는구만"
"2DK는 사치스럽지 않아?"
"……하아. ……둘이서 살고 있어"
"하?! 너, 동정인 주제에 동거하고 있어!?"
"한마디 쓸데없이 많네. 덧붙여도 동생이랑 둘이서 사는거다"
"뭐야. 먼저 말해. 오늘은 동생 없어?"
"나갔어. ……코마치…"
"흐-응. 아무래도 좋지만"
천장까지 뻗은 키가 큰 책장에는 대학 교과서나 문고본이 꽂혀있었다.
옆에는 장식된것 처럼 판씨 인형과 꽃무늬 티컵이 놓여있었다.
꽤 귀여운 센스다.
히키오답지 않다.
"너무 탐색은 하지 마라? 그리고 집탐색도 금지다"
"흥. 딱히 할 생각은 없구. 그보다 배고픈데"
"저녁먹을 시간이니까. 그야 배고프겠지"
"생선 먹고 싶은 기분이야"
"……응. 집에 가지?"
"너 자취해?"
"전업주부 지망 얕보지마. ……앗, 너 여기서 먹을 생각이야?"
"당연하지"
"허나 거절한다"
"하? 커피 사줬잖아"
"너, 커피 한 잔으로 얼마나 은혜 팔아먹을거야? 겨울에도 땀 흘릴 정도 팔고있다?"
"알았어 알았어. 어울리게 해준 정도라면 내가 만들구"
"그런 의미가 아냐!"
나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켯다.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맞춰 히키오의 목소리도 톤이 내려간다.
히키오는 불만스럽게 냉장고를 뒤졌다.
부엌을 쳐다보니 도마나 식칼이 부엌에 놓이고, 그 외에는 생선이 누워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생선을 처리해가는 모습은 조금 믿음직스러워서 안심마저도 느낀다.
"나아가 등장할 일은 없어보이네. 커피 사준 몫은 제대로 일해"
"너는 커피 한 잔에 좀 더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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