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돌봐준다. - 연관
 
 
 
 
4월 하순.
 
벚꽃이 지고, 녹엽이 주역이 되는 나무들로 둘로쌓인 밤길을 걷는다.
 
친구와 술자리를 1차에서 퇴장하고, 나는 스톨로 입까지 덮고 겨울의 흔적도 없는 따뜻한 밤하늘 아래를 걷고 있었다.
 
지금쯤, 나를 제외하고는 노래방이라도 갔을 것이다.
 
여자모임의 이름 아래 모인 다섯명의 술자리는 어디의 누군지도 모를 남자들의 합류로 9명으로 늘었다.
적당하게 대화하고, 마시고, 장난치고 웃고……, 그런 평범을 받아들이면 누가 참가하든 상관없다.
남자들은 대화를 들뜨게 하려고 손짓발짓하며 웃기려고 했었다.
 
나는 취기에 맡겨, 더욱 분위기에 맞추어 웃는다.
 
손을 치면서 웃어도.
 
좋아하는 술을 마셔도.
 
나는 무의식 중에 그 자리에서 떠나고 싶다고 생각해버린다.
 
 
……남자와 노는건 이렇게나 재미없었던가.
 
 
 
작게 숨을 내쉬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차가운 철같은게 손가락에 닿아, 그것이 내 집 열쇠라는걸 깨닫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왼팔에 찬 시계는 아직 10시 전을 가리키고 있다.
 
 
"……"
 
 
이유를 찾고 있다.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말할까.
 
막차를 놓쳤다고 말할까.
 
둘 다 신빙성이 빠져있다…….
 
 
"……뭐, 됐나! 가버리면 히키오도 들여보내주겠지!"
 
 
자기 자신을 스스로도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를 찾는다.
만나는데 이유는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도 없이 만나는건 부끄럽고.
 
 
심심하니까.
 
술자리를 도중에 빠져나와서 지루해졌으니까.
 
……그렇다.
 
단순히 시간죽이기로 찾아가자.
 
히키오로 시간을 죽이자.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유미코
【지금 네 집 앞에 있는데. 문 열여줘】
 
히키가야
【바보냐】
 
유미코
【열어】
 
히키가야
【부재중이다】
 
 
나는 히키오가 있을 방의 문을 힐로 찬다.
문에서 퍽! 하고 큰 소리가 울리자 주위에 조용함이 더욱 눈에 띈다.
 
 
"뭐야! 나아가 왔으니까 빨리 열어라고!"
 
 
속이 끓은 나는 히키오에게 전화를 했다.
콜음이 4번 정도 울고, 겨우 전화는 받아졌다.
 
 
『……네』
 
"콜 한번 만에 받아!"
 
『……뭐, 뭔데』
 
"빨리 문 열어!! 있으면서 없는채하잖아!"
 
『없는채하는게 아닌데……』
 
"하아? 너, 이런 시간에 어딜 싸돌아다니는거야?"
 
『너도 말이다. …마시고 있는것 뿐이야』
 
"혼자서 마시면 재밌어?"
 
『자연스럽게 까고있구만』
 
 
통화하고 있는 곳이 소란스러운지, 때때로 잡음이 들려왔다.
 
……, 누구와 마시고 있어?
 
그 히키오가?
 
 
"너……, 누구랑 마시는거야?
'
『아? ……아, 야, 그만해. 전화중이니까…. …미우라, 미안하지만 끊는다』
 
"하!? 좀, 기다려! 히키오!!"
 
 
내 스마트폰에서는 통화 종료음밖에 들리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노려보면서 히키오를 어떻게 때려패줄지 생각해본다.
짜증나서 스마트폰을 움켜쥐는 힘이 세져서 떨린다.
 
 
전원이 떨어진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이상하다.
 
 
분노로 가득찬 얼굴.
눈이 늘어뜰여져 미간이 모이고 있다.
그런 얼굴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내 얼굴은 이렇게나 약하게 고개숙이고 있는걸까.
 
 
 
 
………
 
 
 
30분은 지났을까.
 
서 있는 상태라 다리가 피곤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웅크려 앉아 스마트폰을 노려본다.
평소처럼 LINE을 보내는것도 할 수 없다.
 
왜 못하는걸까.
 
할게 없어진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만져본다.
금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을, 그 녀석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화려한 차림은 싫다고 말했었다.
…….
물든 금발을 쳐다보면서 어째선지 마음이 조여진다.
 
딱히, 그 녀석에게 미움받는다고 해도 어떻게 되는건지.
 
어떻게……, 되는건지.
 
 
"……, 너, 뭐하는거야?"
 
"……시간 죽이기"
 
 
미움 사면……
 
 
"시간은……, 죽였냐?"
 
"…으. 너, 술자리는?"
 
 
조금은…….
 
 
"……재미없어서 돌아왔어. 결국 나는 아싸같다"
 
"…아싸 아니거든. 자, 얼른 문 열어!"
 
 
슬플지도 모른다.
 
 
"뭔데……"
 
 
히키오는 한숨을 쉬면서 가방에서 열쇠를 꺼냈다.
무거운듯이 열쇠를 돌리고 문을 연다.
 
 
"쫗아! 밥이다! 밥을 만들어라!!"
 
"아니아니. 이미 배부르거든. ……너 안 먹었어?"
 
"음-. 먹었어. 그치만 너 기다렸더니 배고파"
 
"애시당초 왜 있는거야……. 간단한거라면 만들 수 있지만, 조금 시간 걸린다"
 
"오케이-. 그럼 나아는 목욕이라도 들어갈게-"
 
"오냐. ……아!? 아니, 야!?!?"
 
"아?"
 
"……, 너, 무슨 생각하는거야?"
 
"입보다 손을 움직여. 나아, 오늘 여기서 잘테니까"
 
"하아?"
 
"……이미 정했어. 아-, 수건도 멋대로 빌릴게-"
 
 
 
나아는 거실을 나와 탈의실 문을 연다.
히키오의 얼굴이 경직되어 있었다.
너 같은건 좀 더 곤란해하면 된다고.
나를 기다리게 만든 벌…….
그리고, 조금 불안하게 만든 벌이니까.
 
 
 
샤워 수도꼭지를 비틀자 조금 시간을 두고 따뜻한 물이 나왔다.
몸이 따뜻해지고, 욕실에는 증기가 들어찼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어딘가 움츠러들어있다.
 
응, 역시 이러는 편이 귀엽네.
 
나는 작지 않은 가슴을 폈다.
 
 
 
샤워를 끝내고 욕실을 나왔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배는 고픈 상태다.
나는 목욕 타올로 몸을 닦고, 탈의실에 벗어둔 내 옷을 쳐다봤다.
눈 앞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
……….
 
 
"……. 씻어버리자"
 
 
삑, 삑. ……스타트.
 
 
"좋아. ……이봐-, 히키오-"
 
 
나는 탈의실에서 히키오를 부르기 위해 부른다.
물론 몸은 목욕 타올로 감고 있지만.
 
 
"……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스웨터 빌려줘-"
 
"하?"
 
"옷 씻어버렸어"
 
"바보야?"
 
"됐으니까 빌려줘. 알몸으로 밥 먹일 생각이냐"
 
"자업자득인데 세게 나오네. ……새 스웨터는 없어. 사올테니까 기다려"
 
"아까워. 히키오가 쓰던거면 돼"
 
"……"
 
"으으. 추워. 감기 걸리겠다아"
 
"바보니까 괜찮아"
 
"날려버린다!"
 
"……조금 더 샤워하고 있어. 탈의실 문 앞에 둘테니까"
 
"빨리 줘!"
 
 
잠시 기다리니 복도를 걷는 소리와, 탈의실 앞에 스웨터가 놓여지는 소리가 났다.
히키오가 거실로 돌아간걸 확인하고 나는 스웨터를 집어 탈의실에서 갈아입는다.
 
 
"기다렸지-. 밥 다 됐어?"
 
"……응"
 
"오! 파스타다!"
 
"……다 먹으면 돌아가"
 
"안 가. 잘 먹겠습니다"
 
"……하아"
 
"그러고보니 말야, 너 오늘 누구랑 마시던거야?"
 
"아?"
 
"여자였으면 날려버릴거야"
 
"어째선데……"
 
"히키오주제에 건방지니까"
 
"어째선데!? ……연구실 녀석들이야. 세미나 술자리였어"
 
"그래서? 거기에 여자는?"
 
"……없어"
 
 
파스타를 빙글빙글 말면서 나는 히키오를 노려본다.
히키오의 눈은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거짓말을 감추는게 허접하다.
 
짜증 나서 포크를 감는 속도에 힘을 주고 있는지, 나는 크게 감긴 파스타를 양껏 베어물었다.
짜증나. 화가나.
 
 
"칫……. 나중에 쓰러뜨릴테다"
 
"…횡포다"
 
"다 먹은 그릇 정도는 씻어둘테니까, 너도 잽싸게 목욕 들어갔다와"
 
"그보다, 정말로 잘 생각이야?"
 
"끈질긴 남자는 미움산다"
 
"……예이예이"
 
 
히키오가 나른하다는듯이 거실에서 나간다.
복도쪽에서 탈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려왔다.
 
 
 
다 먹은 그릇을 다 씻고, 소파에 누워 쿠션을 안으면서 텔레비전을 본다.
 
왠지 텔레비전 내용이 들어오지 않네.
왜 탈의실 쪽이 신경쓰이는걸까.
텔레비전 볼륨이 더 큰데,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샤워실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뿐이다.
 
 
"응――――!!"
 
 
쿠션에 얼굴을 묻어 소리를 차단해본다.
…….
희미하게 풍기는건 무슨 냄새일까.
태양빛에 말린 이불같은 달콤한 냄새.
……
 
 
"……젠장할--!!"
 
 
쿠션도 틀렸다.
내가 쿠션을 던지려고 한것과 동시에, 행거에 걸린 히키오의 외출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스마트폰의 진동음이겠지.
 
일단 확인의 뜻도 담아서 외출복 주머니를 조사하니, 거기에는 아니나다를까 히키오의 스마트폰이 있었다.
 
 
"……"
 
 
잠금 화면에 비친 LINE 메세지가 눈에 들어온다.
안 된다고 자신에게 말을 해도, 시선을 말을 듣지 않는다.
 
 
 
 
에리
【왜 술자리, 먼저 돌아갔어!?】
 
 
메세지 내용을 봐버렸다.
죄악감과 동시에 메세지 상부에 표시된 여성다운 이름에 혐오감이 새어나온다.
 
역시 여자고 있었구나…….
 
……, 먼저 돌아갔어?
 
 
"……?"
 
"그거, 내 스마트폰"
 
"히, 히키오!? 무, 무, 빠르지 않아!?"
 
"그런가?"
 
"까마귀냐!?"
 
"……처음 들었다. 자, 스마트폰 줘"
 
"……, 돌려주길 바라면 대답해"
 
"아?"
 
 
나는 히키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잠금화면에 표시된 LINE 메세지를 읽게하기 위해서다.
 
 
"이거, 여자잖아"
 
"……응. 세미나"
 
"히키오 주제에……"
 
"너 말이다……"
 
"뭐, 그건 나중에 추궁하기로 하고. ……먼저 돌아갔따니, 너 술자리 도중에 돌아온거야?"
 
 
히키오가 LINE 메세지를 다시 읽고, 조금 당혹한듯 눈을 피했다.
젖은 앞머리에서 물이 떨어진다.
 
 
"……음, 뭐. 애시당초 술자리는 아싸인 나하고는 물이 안 맞고"
 
"……헤에. 너, 나아가 전화하고나서 30분 정도만에 돌아왔찌"
 
"……. 그런가?"
 
"……, 응"
 
"……"
 
"……"
 
 
이상하게 심장고동이 빠르다.
조용해지면 심장 소리가 들려버릴 정도로 세게 고동치고 있다.
 
 
"……뭐, 나쁘지 않아. 너랑 있는것도. 섣부르게 신경쓰는 놈들이랑 마실 바에야 말이지"
 
"……. 후후. 너치고는 솔직하잖아"
 
"시끄럽네"
 
 
히키오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컵 두개에 붓는다.
한쪽을 나에게 내밀고, 나한테서 족므 떨어진 곳에서 컵을 기울였다.
 
 
"헤헤. 히키오, 이리로 와"
 
"아?"
 
 
내 앞에 히키오를 부르고 앉힌다.
 
가늘고 늘씬한 키.
 
왠지 모르게 지켜주고 싶어진다.
 
 
나는 뒤에서 꼬옥 껴안았다.
 
 
"으앗!? 뭐, 뭐, 뭐야!?"
 
"날뛰지 마! 그보다, 너 머리 축축하잖아! 말려줄게"
 
"필요없어! 그보다 떨어져! 다, 닿는다고……, 읏!?"
 
"안 된다고. 도망칠테니까 안 놔"
 
"아, 안 도망칠테니까"
 
"……응"
 
 
천천히 양손을 뗀다.
약속대로 히키오는 잠자코 앉아있는 상태다.
 
 
"………"
 
 
"후후. ……꽤 크지?"
 
 
"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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