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교시 끝을 알리는 종이 운다. 시각은 12시 점심시간.
평소라면 수제작 도시락을 들고서 혼자서 조용히 도시락을 먹는 베스트 스팟을 향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앞으로는 그러지 못한다. 오늘부터는 유키노들과 같이 부실에서 도시락을 먹게 됐기 때문이다.
뭐……날씨 기온 온난에 좌우받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된건 좋지만, 라며 억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린다.
이 폴리안나나 나냐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 싫지 않다.
 
자, 나의 휴식 시간을 뺏은 원흉인 유이가하마로 말하자면, 느긋하게 교실 뒷편에서 친구들과 잡담중이다.
불러놓고 잡담중이냐니 뭐야? 라던가, 나 배고픈데? 라고 하고 싶은 말은 엄청 있지만, 얼마전 이야기를 듣건데 그녀를 둘러싼 인간관계라는건 꽤나 복잡기괴한 모양이라서 꾹 삼켜둔다. 가능하면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 저 녀석, 같은 반이라고 했던거 사실이었군.
 
유이가하마는 내버려두고 약속 장소로 먼저 가도 상관없지만, 거기서 유이가하마 올때까지 유키노와 단 둘이 있게되는건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그치만, 그 녀석 나 보면 반드시 폭언을 내뱉으니까.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나이기에, 유키노의 폭언은 산들바람 정도 밖에 생각하지 않지만, 뭐, 피해서 나쁠 일은 없을 것이다.
덧붙여 내가 신경쓰는건 사랑하는 코마치의 평가 뿐이다.
 
그런 멈추지 않는 생각을 하면서 잡담중인 유이가하마에게 시선을 주니,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있잖아……, 나 점심에 가야할 곳이 있어서 좀……"
 
나의, 이쪽은 배고프다고! 40초내로 정리하고 나와! 라는 뜻을 섞은 시선을 눈치챘는지, 겨우 빠져나오려고 하는 의사를 보인다.
 
"아, 그래? 그럼 돌아올때 그거 사와. 레몬티. 나아 오늘 음료수 사오는거 깜빡했거든. 빵이라서 음료수 없으면 힘들잖아"
 
"그, 그게……말야, 나 돌아오는거 5교시 되기 전이라고 할까, 점심시간 통째로 빼먹을거니까 그건 좀 어떨까 싶은데"
 
"어? 진짜? 근데 유이 요즘 그러면서 방과후에 혼자 빠지지 않아? 요즘 우리랑 안 어울리는거 아냐?"
 
"아니, 그게 말야. 하지않으면 안될 사정이 있다고 할까…….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따로 있고 싶다고 할까……"
 
갑자기 이상한 일본어를 쓰면서 유이가하마가 변명한다.
유이가하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금발의 친구가 노골적이게 기분 나쁘다는 듯이 손톱으로 책상을 두드린다.
그런 식으로 금발의 여자가 짜증을 보이고 있으니, 어째선지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게임을 하고 있던 녀석들은 음량을 낮추고, 담소 떠들고 있던 녀석들은 입을 다문다. 방금전까지 유이가하마들과 담소하고 있던 그룹의 녀석들마저 어색하다는 듯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상태다.
뭐야? 저 금발이 반의 히에라르키(Hierarchie, 지배계층) 톱이야? 여왕이야? 금사자공주라고 부르자. 마음속으로.
 
"그런걸 몰라. 그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말해줄래? 우리들 친구잖아? 그런 비밀같은거 좋지 않지?"
 
과연 금사자공주. 역시 뇌까지 근육이군요. 그런 잡스런 감성, 싫지 않아.
 
"미안……"
 
"그러니까 미안이 아니라. 뭐 하고 싶은 말이 있을거 아냐?"
 
아니, 지금 너를 보고 대화가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녀석 없거든. 우선 그 기분 나쁩니다! 라는 오러를 집어넣어라, 야.
 
금사자공주의 분노를 받고 겁에 질려 움츠러든 유이가하마.
유이가하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저건 그녀들의 문제이며, 그녀들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다. 오늘 처음으로 존재를 알게 된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완전하게 무관계하다고 하면, 귀찮기는 하지만 꼭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무척이나 불본의 스럽지만.
 
천천히 나는 책상아 뽀개져라! 라는 듯이 손을 치고 일어서서, 유이가하마와 금사자공주 사이에 끼어들어간다.
 
"나 때문에 싸우지 마!"
 
""하?""
 
"거기 금발! 너한테 한 마디 하겠다! ……배가 고픕니다"
 
"하? 갑자기 뭐? 의미 모르겠는데? 너하고는 관계없거든. 그보다 기분 나쁜데"
 
"그러냐……. 그럼 계속해라"
 
그것만 말하고 자리로 돌아와 가방을 들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뭐, 내가 한건 대단한건 아니다. 단순히 기행으로 금사자공주의 분노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돌린것 뿐이다.
그렇게 머리에 오른 피를 내려주면, 유이가하마라도 뇌근육이랑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것이다.
배고프니까 얼른 끝마쳐라.
 
 
 
 
 
교실을 나가니 소매를 척 잡힌다. 뭔가 싶어 눈을 주니 귀여운 꾸러미를 들고 교실 측 벽에 기대있는 유키노가 있었다.
약속장소에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우리들을 마중나온걸테지.
 
"너……. 지금 그거 뭐니? 정말로 기분 나쁘네. 달리 방법은 없었던걸까"
 
아, 결과만 보면 유이가하마를 감쌌다는건 이해하고 있구만. 칭찬해도 좋은 장면이라고. 기분 나쁘다고 하지 말고.
 
"딱히 상관없잖냐. 그보다, 너까지 기분 나쁘다고 하지마"
 
"실제로 기분 나쁘니까 어쩔 수 없잖니? 그치만 괜찮겠어? 히키가야는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거 아니니? 저런 짓을 하면 반에 있을 곳이 없어지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쿡쿡 웃는다.
 
"없어지고 자시고. 처음부터 내 자리는 없어. 없는걸 잃을 걱정따윈 무의미하지"
 
눈에 띈다거나 그런것 보다도, 얼른 밥을 먹고 싶다는 쪽이 우선 순위였다는것뿐이고.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의 옆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러네, 네가 있을 곳은 내 옆 뿐인걸. 알고 있니? 있을 곳이 있는것 만으로도 별이 되어 불타버릴만큼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게 되는 모양이야"
 
"『쏙독새의 별』이냐. 엄청 매니악하잖아. 그보다, 내가 있을 곳을 멋대로 설정하지마"
 
"어머, 너처럼 기분 나쁜 사람한테 있을 곳이 달리 있니?"
 
"딱히. 있을 곳이라는건 다른 누군가의 옆이 아니면 안 된다는게 아니잖아. 오히려 남과 관계로 밖에 자신을 확정할 수 없다는 쪽이 위화감을 느끼지. 알겠냐, 점은 하나만으로도 좌표가 있고, 존재를 나타낼 수 있어. 그걸 생각하면 혼자여도 충분하잖아"
 
자신이 있을 곳이 자신이 있을 곳. 내가 건담이다! 건담이 아닌 내가 있을 곳이다! 가 뭐가 나빠.
 
"그치만 히키가야. 점은 두 개가 있지 않으면 선이 되지 않아. 혼자로선 할 수 없는것도 이 세상에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혼자서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수업에서 2인조를 짜라는것 정도겠지"
 
"그런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닌데……"
 
드물게 말을 머뭇거리는 유키노.
미안하지만 나는 어렸을때부터 대개 일은 혼자서 해왔어. 그러니까 남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태는 상상도 할 수 없지. 뭐, 그러니까 나는 혼자지만.
유키노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니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이 열린다.
 
"에, 왜 힛키랑 유키농이 여기 있어?"
 
"늦잖아. 왜냐니, 너를 기다리는게 뻔하잖냐"
 
"맞아, 유이가하마. 스스로 불러놓고 약속장소에 늦는다는건 인간으로서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덕분에 그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어버렸잖니"
 
"으, 미안……. 그보다, 아까 그거……들었어?"
 
"아까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교실을 나간 이래는 듣지 않았다. 그보다, 굳이 교실 밖에서 훔쳐듣거나 하진 않아"
 
"그런가……안 들었구나. 다행이다. 저기, 아까전에 그건 나를 감싸준거지. 고마워, 힛키. 그치만 그건 좀 아니야. 무지 기분 나쁘고, 솔직히 깨더라"
 
"도와줄 생각 없으니까 딱히 상관없다만. 그보다 감사해놓고 기분 나쁘다니, 너는 뭐냐? 그런 녀석한테는 자가수제 건과실류 특제 파운드 케이크 안줄거다. 어제 만들었지만 내가 생각대로 개량에 성공했지만 유감이다. 모처럼 코마치가 둘에게 먹여주라고 해서 갖고 왔는데"
 
귀를 세우지 않아도 단순한 유이가하마는 얼굴을 보면 안다. 교실을 나왔을때 그녀의 어딘가 시원스레한 표정. 분명 그녀들과 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향했을 것이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히키가야, 유이가하마의 몫은 내가 받아갈게. 기다리게 했으니까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아아, 좋다. 그 대신에 홍차는 유키노가 타라. 왠지 홍차만큼은 유키노만큼 맛있게는 못 타니까"
 
"에- 너무해 힛키. 유키농도"
 
나한테 제대로 미안합니다라고 하면 내 몫을 주마.
금발과 네 관계가, 조금 좋아진 축하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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