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농 - 10. 이렇게해서 그와 그녀는 하나의 약속을 한다.
 
 
 
 
 
 
 
현재, 우리는 쇼핑을 마치고 푸드 코너로 가고 있었다.
이미 시간도 딱 좋을 무렵이라, 배도 고파졌을 것이다. 그 증거로 쇼핑 도중에 우리들의 귀에 꼬르륵, 거리는 유키노의 사랑스런 뱃소리가 들렸다. 뱃소리까지 사랑스럽다는건 이젠 어디에도 사각이 없는데……. 뭐야, 이 애 완벽 천사?
그런고로 우리는 유키노의 리퀘스트로 사이젤리아로 가기로 했다. 혀짧은 말로 '샤이제리아!' 라고 하는 유키노 진짜로 귀여웟습니다.
그보다 정말로 치바 고등학생은 사이젤리아 좋아하는구나. 아니 뭐, 지금 유키노는 고등학생이 아니지만.
나는 걸으면서 그렇게 생각한다. 쇼핑의 짐은 코인 로커에 맡겨뒀다.
지금 유키노는 한 손에 나의(히데요의) 피의 결정인 판씨 인형을 한 쪽 팔에 안고, 다른 한 손은 나와 잡고 있다.
하루노 씨는 내 옆에서 나의 빈 손을 잡고 있다. 요컨대 내가 사이에 끼인 상태다. 어쩌다보니 이런 형태가 되버렸다.
평소의 나라면 하루노 씨와 손을 잡는데 심장이 두근두근 머리속이 왁자지껄 울렸을 것이다. 마지막은 아닌가.
하지만, 지금 내 의식은 하루노 씨보다 유키노에게 향해있다. 계기는 아까전의 유키노가 한 뺨 키스다.
그건 위험했다. 정말로 위험했다. 너무 위험해서 위험사와 씨 처럼 스페셜 위험함! 이라고 소리지르고 싶어질 정도다.
아니 뭐, 어제 아침에 유키노에게 키스를 받았지만, 방금전의 그게 나에게 있어선 효과 발군이었던 모양이다.
뺨에 닿은 부드러운 감촉, 귀에 속삭여지는 유키노의 달달한 목소리, 그리고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하루노 씨의 뒤에 숨어 나를 엿보는 모습.
지금 생각해도 너무 사랑스러워서 얼굴에서 불이 나올 정도다.
그 덕분에 유키노를 보면 동공이 격해지고, 유키노의 엔젤 스마일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되버렸다. 지금 보면 유키노를 껴안아버릴지도 모른다.
뭐야? 이거? 혹시……사랑?
아니, 지금 유키노에게 사랑은 아니겠지.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하지만 나의 썩은 눈 필터로는 유키노의 주위만 반짝반짝 빛나보인다. 이런건 토츠카 말고 처음이다. 아니, 광채는 토츠카 이상일지도 모른다.
설마 내 인생에서 토츠카 이상으로 귀여운게 존재할 줄이야…….
그러자 유키노가 내 시선을 깨달았는지 부끄러운듯이 함박 미소를 지어왔다.
아아, 진짜로 너무 귀여워! 진짜 아우 증말!
 
"하치만, 무슨 소리 하는거야?"
 
하루노 씨가 의아한 얼굴을 하며 나한테 말을 걸어온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붕붕 젓는다.
 
"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아무 말도!"
"아까부터 여러 말을 했는데? 유키노가 귀엽다니 뭐니"
 
목소리로 나왔습니다-. 그야 유키노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겠지. 아아, 구멍이 있으면 들어가서 그대로 묻어서 석화가 되고 싶다.
 
"하치만, 조금 부끄러워"
 
유키노는 그렇게 말하고, 나한테서 손을 떼어 판씨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운듯이 몸을 틀었다. 판씨로 가려지지 않은 귀까지 새빨겠다.
그러자, 유키노는 빼꼼, 빨갛게 물든 얼굴을 내밀며 생긋 미소짓는다.
 
"그치만 기뻐. 고마워 하치만"
 
유키노는 중얼거리고 또 사삭, 하며 판씨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그 몸짓을 보고, 내 가슴이 뀽, 하고 조여든다.
동시에 뿌직, 하고 머리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아, 더는 무리입니다. 나는 오늘부터 로리가야 로리만이 되겠습니다.
나는 가볍게 웅크려 앉아, 위로 뒤덮듯이 유키노를 덥석 껴안았다.
유키노는 눈을 끔뻑거리며 놀랬지만, 에헤헤 기쁜듯이 웃는다. 그리고 내목에 팔을 감고, 고양이처럼 스륵스륵 뺨을 문질러온다.
……싫어할거라고 생각했지만, 설마 기뻐할 줄이야.
……그보다, 나는 뭐하고 있는거야.
나는 유키노를 내 몸에서 떼어낸다. 유키노는 뿌우-, 하며 불만스러운듯이 입술을 뾰족인다.
하지만 그럴 참이 아니었다.
 
"……하치만. 유키노가 귀여운건 알겠지만, 조금은 냉정해지자"
 
하루노 씨가 타이르듯이 나에게 말한다. 나는 주위를 돌아본다. 방금전의 내 행동은 상당히 주목을 모았던 모양이다. 우리들 옆에 어느샌가 구경꾼이 웅성웅성 모여있었다. 하루노 씨가 이거야 원, 하는 느낌으로 숨을 내쉬고 입을 연다.
 
"하치만, 지금 유키노와 사귀는건 부탁이니까 그만해. 원래대로 돌아가고나서 해"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저는 딱히……"
"지금 하치만의 발언에 아무 설득력도 없어"
 
확실히 그렇다.
지금 나는 그저께의 코마치랑 유이가하마를 뭐라 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유키노가 너무 귀여워서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다.
 
 
 
 
 
 
우리는 사이젤리아 안으로 들어가 점원에게 안내받고 자리에 앉는다. 순전히 유키노는 하루노 씨의 옆에 앉고, 나는 그 앞에 앉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하루노 씨가 앉아도 유키노는 으-응, 하며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를 결심한듯이 응, 하고 크게 끄덕이고 아장아장 걸어와 영차하고 내 옆에 톡 앉았다.
그걸 보고 나는 무심코 뺨이 히쭉 풀어져버렷다. 그걸 황급히 손으로 감추듯이 얼굴을 덮는다.
……뭘까, 이 우월감은. 유키노가 옆에 앉아준것 만으로도 엄청 기쁘다.
아마 유키노는 누구 옆에 앉을지 고민하고 있던 걸테지. 그리고 고민한 결과, 나를 선택해준 것이다. 그것뿐인 일이 지금의 나에게는 무척이나 기뻤다.
하루노 씨는 조금 놀란듯이 눈을 끔뻑거리면서 유키노를 보고 있다.
 
"유키노, 거기 앉을거야? 언니 옆은?"
"으응, 하치만의 옆이 좋아"
 
유키노는 하루노 씨의 말에 고개를 붕붕 저으면서 대답했다. 하루노 씨는 살짝 충격을 받은듯이 굳어있었지만, 바로 아무것도 아닌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째선지 하루노 씨는 히쭉 웃고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럼 하치만. 유키노에게 아-앙, 역할 부탁할게?"
"어?"
"유키노는 아-앙 해주는 편이 잘 먹어. 그러니까, 이번에는 하치만에게 부탁할게"
 
나는 하루노 씨에게 그리 말을 듣고 지금까지를 떠올려본다.
……확실히 하루노 씨가 먹여줬던것 같다. 뭐, 이 정도의 아이는 지금 응석부리고 싶은 시기일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하고 순순히 하루노 씨의 말에 끄덕였다.
 
"알겠어요. 먹여주면 되는거죠?"
"응, 그래그래. 어라? 의외로 바로 받아들이네. 부끄럽지 않아?"
"딱히 부끄럽지 않아요. 옛날에 코마치한테도 했고요"
 
하루노 씨는 흐-응, 중얼거리면서 납득한듯이 끄덕이고 있다.
나는 이렇게 말했지만 반은 사실 반은 거짓말을 했다. 우선, 코마치에게 그런 짓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옛날, 코마치가 아직 어렸을 무렵에 한번 코마치가 조른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하려고 해도 아버지가 살의를 담은 눈으로 노려봐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특전이 붙어서 기블 정도다. 그냥 지금 유키노에게 아-앙 하는건 평범하게 기쁘다.
우리는 각각 점심을 주문하고, 요리가 오는걸 기다린다.
참고로 하루노 씨는 파스타고 유키노와 나는 밀라노풍 드리아다. 나에 관해서는 하루노 씨가 사주는거라 너무 비싼건 주문하지 않았다.
주문한게 오니, 유키노는 바로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고 입을 아앙- 크게 벌렸다.
어? 너무 빠르지 않아? 이제 막 왔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작은 입을 크게 벌리고 기다리고 있는 유키노를 보고 있으면 그만 웃음이 새어나온다.
정말로 이런 점이 솔직해서 귀엽다.
나는 통에서 숟가락을 꺼내어 드라아를 조금 펀다. 그리고 식히기 위해 후-, 몇번 숨을 분다.
 
"유키노, 아-앙"
 
왠지 다시 말하지만, 역시 부끄럽다. 유키노의 입 안에 숟가락을 넣고 뺀다. 유키노는 우물우물 씹고 꿀꺽 삼키고 행복하게 웃었다.
 
"에헤헤, 맛있어♪ 하치만, 좀 더 줘"
 
유키노는 또 입을 열고, 나에게 졸라온다.
그 말은 여러모로 생각해버리니까 그만해줘, 유키노짱.
……하지만, 이건 왠지 버릇이 될것 같다.
그게, 고작 밀라노풍 드리아를 먹이는것 만으로도 이런 미소를 볼 수 있는건 뭐야? 맥도날드의 스마일은 0엔이지만, 유키노의 스마일이 0엔이라니……. 나, 엄청 행복할지도.
 
"하치만, 유키노에게 먹여주는 참에 미안하지만, 슬슬 먹지 않으면 식을텐데?"
 
몇 번인가 유키노에게 그렇게 해주니, 하루노 씨가 그렇게 말했다.
하루노 씨의 말을 듣고, 나는 자신의 식사가 전혀 되지 않은걸 깨달았다.
 
"혹시 뭐하면 내가 먹여줄까?"
"아뇨, 그건 됐습니다"
"에-, 재미없어라. 그럼 나한테도 아-앙 해줄래?"
"좀 더 싫습니다!"
 
뭐야 그거? 괜시리 부끄러워지잖아.
유키노에게 먹여주는건 별로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하루노 씨에게 하는건 평범하게 엄청 부끄럽다. 이런 남들 앞에서 그런건 절대로 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나는 유키노에게 숟가락을 건내고, 통에서 자기용 숟가락을 꺼내어 드리아를 먹으려고 한다.
하지만 도중에 하루노 씨에게 손을 잡혀, 그대로 꼬옥 움켜잡힌다.
 
"하루노도 하치만이 아-앙 해줬으면 좋겠는데에"
 
하루노 씨는 어젯밤에 들은 아이처럼 응석부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나는 멍하니 하루노 씨에게 시선을 돌리니 하루노 씨는 눈에 눈물을 띄우면서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문득 어젯밤이 떠오른다. 화아악, 얼굴이 뜨거워지는걸 느낀다.
하지만 더는 지고 있을 수는 없다. 외톨이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외톨이로써 적응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에겐 두번이나 같은 수는 통하지 않는다. 어젯밤은 하루노 씨에게 여러모로 굴해버렷지만, 역시 하루노 씨도 공공장소 앞에서 저런짓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하루노 씨의 손을 뿌려치고 입을 열었다.
 
"하루노 씨, 그런 말을 해도 절대로 안 할거에요"
"후엣……하치만, 어제는 나를 정말 좋아한다고 해줬는데……너무해!"
 
하루노 씨는 눈에 눈물을 머금으면서 큰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그대로 훌쩍훌쩍 얼굴을 볼 수 없도록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는다.
……이번에는 그런 수로 나왓나.
가게 안에 있는 주위 사람들도 무슨 일인가 우리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울고 있는 하루노 씨를 보고 눈에 분노를 담아 나를 희번뜩 노려본다. 뭐, 이 상황을 보면 아무리 봐도 내가 하루노 씨를 울린걸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원래 주목은 받고 있던 것이다. 하루노 씨와 유키노와 있으면 싫어도 시선이 모이니까.
하지만 하루노 씨의 목적은 어긋났다. 이 정도의 적의는 나는 진작에 익숙해졌다. 나는 주위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얼른 자기 식사를 진행한다.
하루노 씨는 힐끔, 손가락 틈새로 나를 들여다본다. 크게 뜨여진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하루노 씨는 칫, 하며 작게 혀를 찼다.
자, 여러분. 지금 혀를 찼어요, 이 사람. 속으면 안 돼!
하지만, 나는 많은 시선 중에 어떤 시선을 느끼고 무심코 손을 멈췄다.
그 시선의 정체는 방금전까지는 기분 좋았던 유키노의 시선이었다.
유키노는 화난듯이 볼을 뿌우 부풀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치만, 언니를 울렸어……"
"유, 유키노? 하루노 씨는 우는거 아니거든? 아무리 봐도 가짜 눈물이잖아"
 
나는 유키노의 말에 저도 모르게 허둥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유키노는 내 말을 전혀 들어주지 않는다.
 
"하치만, 언니를 울렸어! 언니를 울린 하치만은 정말 싫어!"
 
그 말을 들은 순간, 콰르릉! 전격이 내 몸을 지나갔다. 부들부들 몸이 경련하기 시작하고, 그대로 나는 풀썩, 의자에서 무너져버렸다.
………조, 좋아. 지금 그건 효과 있었다. 옛날에 코마치한테 "오빠야 싫어"라고 들었을때 정도의 효과야. ……하, 하하하, 하지만, 이, 이 정도는 괜찮아. 하치만, 이미 이런거 익숙한걸. 그러니까, 전혀 괜찮다니까.
……어라? 하지만 왠지 시야가 이상하네에.
뭐지? 라고 생각해 눈을 비비니 내 눈물이었다.
……아아, 이젠 싫어. 그냥 이대로 잠들고 싶습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대로 기절할것 같다. 그 어깨에 방금전과 마찬가지로 살짝 손이 올려진다.
돌아보니 하루노 씨였다.
하루노 씨는 이미 거짓 눈물은 그만뒀는지 방금전하고는 달리 조금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해, 하치만. 좀 지나쳤어. 설마 그렇게까지 침울해할줄은 몰라서……"
"따, 따따, 딱히 침울해하지 않았어요"
 
나는 하루노 씨의 말에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고 대답하지만, 그 목소리도 어딘가 떨렸다. 하루노 씨는 불쌍한걸 보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더는 아무 말도 안해도 된다는걸로 보인다. 그 다정함에 무심코 반해버릴것 같다. 입장이 반대인것 같지만.
그리고 하루노 씨는 힐끔 유키노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키노, 말이 지나쳤어. 이거 봐, 하치만도 이렇게 침울해하잖아?"
 
아니, 이유로 따지면 당신이잖아.
라고 하고 싶었지만 말로 하진 않았다. 대신에 나는 얼굴을 유키노에게 돌린다.
유키노도 시무룩 침울해하고 있어서,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치만, 정말 싫다고 해서 미안해. ……유키노, 하치만 정말 좋아해"
"유, 유키노……"
 
그 말에 무심코 통곡해버릴것 같다. 유키노는 아장아장 나에게 다가와서 꼬옥 안아준다. 그리고 착하지 착해, 라며 작은 손으로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었다. 그 행위에 또 눈물이 나올것 같지만, 어떻게든 참는다.
그렇게 나도 유키노의 등에 팔을 감아서 유키노를 꼬옥 안아준다.
마음이 따끈따끈하게 따뜻해지는걸 느낀다. 계쏙 이러고 싶다는 기분 좋은 따뜻함이다. ………유키노의 따뜻함이다.
그러자,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던 구경꾼들이 짝짝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뭘까? 이 홈 드라마같은건?
나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뭐, 그런건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조금만 더……조금만 더 이 따뜻함을 느끼고 싶다.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에. 뭐, 여러모로 좋은것도 봤으니까 좋은걸로 칠까"
 
라며 박수 소리 속에 하루노 씨가 그렇게 말했던것 같지만, 내 머리속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창 밖의 석양은 이미 저물고 있다. 오늘은 이래저래 늦어질때까지 놀아버린 모양이다.
……이렇게나 놀 생각은 없었는데.
전차에 흔들리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키노와 함께 있으면 시간이 짧게 느껴진다. 집에 없는데도 이렇게까지 충실한 날도 좀처럼 없을 것이다. 뭐, 조금 침울해한 일은 있었지만…….
나는 유키노에게 눈을 힐끔 준다.
유키노는 나와 하루노 씨 사이에 앉아 새근새근 기분 좋게 잠들어 있다. 양손에는 나와 하루노 씨의 손이 꼬옥 쥐여져있다. 그 자는 얼굴을 나는 머리속으로 새기고 있으니, 하루노 씨가 히죽거리면서 말을 걸어왔다.
 
"이야-, 그나저나 하치만의 그런 얼굴은 처음 봤어어"
"……아직도 그 소리하는건가요…"
 
나는 하루노 씨의 말에 무심코 한숨을 쉬어버린다. 점심을 다 먹은 후, 하루노 씨는 재미있어하면서 몇 번이나 나를 이런식으로 놀렸다. 스스로도 왜 그런 모습을, 하필이면 하루노 씨에게 보여준걸까. 유키노에게 싫다고 들은것만으로 나 너무 침울했잖아. 아니, 지금도 조금 떠올리면 울어버릴것 같지만…….
 
"하루노 씨, 이제 부탁이니까 그 소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에에-, 딱히 괜찮잖아. 그런 하치만도 귀여웠어"
"……"
 
생글생글 웃는얼굴로 그런 말을 들으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잖아. 그보다, 귀엽다니………. 부모님에게도 들은적 없어.
 
"정말로 하치만은 지금 유키노를 정말 좋아하는구나"
"……나쁜가요"
 
이제 나는 하루노 씨의 말을 쉽게 인정했다. 나는 지금의 유키노를 정말로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 딱히 사랑이 아니다. 아마, 이건 친애라고 생각한다. 하루노 씨도 알고서 그렇게 말하고 있는걸테지. 그보다, 유녀에게 사랑을 하는건 평범하게 범죄입니다.
 
"정말로 하치만이 유키노의 아빠였으면 좋았을텐데……"
"하?"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사람?
하루노 씨는 평소의 강화외골격 미소를 두른채 그런 말을 한다. 그 탓에, 지금 한 말이 농담인지 진심인건지 전혀 모르겠다.
 
"그래서 말야. 내가 유키노의 엄마고. 나와 하치만은 부부야. 셋이서 하치만의 집 정도의 집에서 사는거야. ……어때?"
"어떠냐니……"
 
그건 무슨 의도로 한 질문인걸까? 하루노 씨의 표정에선 전혀 읽어낼 수 없다.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은거지?
그건 지금의 유키노가 돌아오지 않는 전제로 하루노 씨와 나와 유키노가 셋이서 살자는 소리인걸까?
그런건 아니다. 하루노 씨는 그런 말을 한게 아니다.
하지만, 어느쪽이든 내가 해야할 말은 하나 뿐이었다.
 
"하루노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유키노는 원래대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왜? 지금의 유키노, 정말로 행복해보이는데?"
"……그래서에요. 확실히 지금의 유키노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는 편이 행복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괴로운 일을 잊은채 살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뭘 하려고 해도 과거는 없어지지 않는다. 리셋하려고 해도 기억을 지우려고 해도 과거는 반드시 쫓아온다. 아무리 괴로운 과거였든, 그 과거를 원래 유키노시타는 마주보지 않으면 안 된다. 마주보아 극복해서……그리고 웃어줬으면 싶다.
………모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유키노를 좋아하는데, 예전의 유키노시타로 돌아와줬으면 좋겠다니…….
………자기멋대로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유키노의 우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예전의 유키노시타에게는 괴로운 일을 쳐다봤으면 좋겠다니…….
왜 이런걸 생각한건진 모른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다.
 
"흐-응, 그런가-. 그럼 원래대로 돌아가면 유키노는 힘내야겠네"
 
하루노 씨의 말에 나는 끄덕엿다. 뭘 힘내는건진 나는 모른다. 하지만, 힘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을 것이다.
하루노 씨는 두른 미소를 그치고 진지한 표정을 지어 입을 열었다.
 
"얘, 하치만. 만약 그 때가 오면, 유키노를 구해줘야한다?"
"……뭐, 할 수 있는 범위라면 할게요"
"좋아, 그럼 누나랑 약속하자"
 
하루노 씨는 나에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순순히 그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감는다.
 
"……약속이다?"
"네. 약속이에요. 언젠가 유키노를……아니, 하루노 씨도 도움을 바라면 도울게요"
"어……?"
 
하루노 씨는 내 말에 무심코 눈을 끔뻑거리면서 놀라고 있다. 나도 왜 자신이 그런 말을 했던건지 모른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하루노 씨는 얼굴을 화아악 붉히며 휙, 하고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 그런걸 이런 타이밍에 말하다니……치사해"
"엥?"
 
하루노 씨는 나한테서 고개를 돌리면서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엉? 설마 부끄러워하는거야? 그 하루노 씨가?
내가 저도 모르게 놀라 하루노 씨를 응시한다. 그러자, 하루노 씨는 내 시선을 깨닫고 붕붕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루노 씨는 생긋 미소를 나에게 짓는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울어버릴것 처럼 보였다. 그 때의 하루노 씨의 표정은, 어째선지 디스티니 랜드때의 유키노시타와 겹쳐보였다. 그 표정을 보고 쿵쾅, 심장이 맥박을 친다.
그리고, 하루노 씨는 새끼손가락을 놓고 내 손을 감싸듯이 꼬옥 쥐었다.
 
"………고마워, 하치만. 그럼 약속. ……언젠가, 나와 유키노를………구해줘"
 
이렇게해서 나와 하루노 씨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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