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이 있어 - 역시, 초속 5센티미터인건 잘못됐다6
 
 
 
 
 
 
나는 휴대폰 대기화면에 흐르고 있는 테플롯을 보고 절망하고 있었다.
 
『료케선 전선 연휴』
 
그 문자가 삐롱삐롱 거리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흘러갔다.
 
대기화면에 있는 동생의 코마치의 미소라도 내 절망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코마치한테 "오빠, 연휴야! 테헤페로" 라고 듣는 느낌이다. 어라, 그래선 귀여울 뿐인데.
 
하다못한 구제는, 내가 료케선에서 토부선으로 갈아탄 후에 연휴가 결정된것 정도다. 하지만, 그래도 절망밖에 없다. 요컨대 돌아갈 전차가 없다는 소리니까.
 
 
"어쩌냐, 이거"
 
그만 입으로 흘러나온다.
 
3만이 있으면 택시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지갑 속에는 유키치 님이 한 분. 코마치에게 빼앗기지 않았으면 유키치 님이 세 분은 있었겠지만, 코드기어스R2 BDOBX를 갖고 싶다고 올려다보면서 간청받아서는 어찌할 수도 없다.
그걸 사줬을때 그 미소를 봤던만큼 오만의 가치는 있다.
그렇다고 오빠는 생각하고 싶다. 생각하고 싶지만.
 
"이놈의 슈나이젤"
내 동생을 사용해서 군자금을 착취하는 비겁한 짓을 하다니.
하지만 브리타니아 황자를 원망한들 일본의 히키가야 하치만의 지갑 사정은 아무 변함이 없다.
 
부모에게 마중을 부탁한들 치바까지 와줄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고, 오히려 '무리' 라는 한 마디로 끝날 가능성조차 있다. 갈 수 있는곳까지 전차로 가고 택시를 이용하는것도 좋지만, 돌아갈때는 더 연휴가 되는 전차도 늘어날테니까, 아마 돈이 부족하다. 가능하면 다음달 라노벨 신간도 사고 싶으니까 돈은 가능한 쓰고 싶지 않고.
 
어쩌지. 이럴때 나에게 친구가 있으면 재워달라고 할텐데. 젠장. 얘들아, 나에게 친구를 나눠줘. 뭐, 그렇게 말할 얘들아 조차 나에게는 없지만.
 
그런 시시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 타고 있던 토부 잇코선 킨시쵸에 도착했다. 남은건 소부선으로 갈아타서 그 녀석이 기다리는 역으로 갈 뿐이다.
 
돌아가는건 나중에 생각하자.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안 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은 일단 나중에 생각하자. 이다.
 
환승한 JR 킨시쵸 역은 내가 살고 있는 역하고는 비교도 안 될만큼 혼잡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퇴근하는 회사원이라서 다들 얌전히 정렬해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주위와 마찬가지로 회사원 뒤에 줄을 서서 전차를 기다린다.
앞에 있는 회사원의 등 뒤로 풍기는 애수에 가볍게 눈물을 흘릴뻔했지만, 전광 게시판의 『소부선 급속 치바행』문자를 보고, 바로 머리 속이 그 녀석 투성이가 된다.
 
조금이다. 이제 조금이다.
 
이제 조금 뒤면 그 녀석을.
 
 
 
 
 
 
☆☆☆☆☆☆☆
 
 
 
 
 
개찰구를 나오니, 거기에는 얼음속성의 보스가 있었다.
팔짱을 끼고 인왕립. 아, 인왕님이다. 라고해선 안 된다. 하늘에서 흩날리는 눈이 환상적으로 보이지만 착각해선 안 된다.
 
저건 다이아몬드 더스트다.
 
하얀 더블 코트에 연분홍 머플러. 하얀 니트 모자에서 나온 검은 흑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은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없다.
하지만 나를 곧게 노려보는 눈을 보면, 아마 얼티마 웨폰이나 티아매트 급의 히든보스라고 생각된다. 싸우지 않아도 스토리에 영향이 없는 타입의 보스. 아니, 오히려 그 보스라면 공략본을 한 손에 들고 이기겠지만, 공교롭게도 이 보스에겐 무리였다. 왜냐면 고얅법이 없어.
 
일단, 멈춰서있어도 시작하질 않으므로, 나는 보스에게 찾아가기 위해 다가갔다.
 
"오랜만이네. …어, 음. 지각가야, 였나?"
 
전혀 웃고 있지 않는 눈으로 시바…아니, 시바노시타는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보고 있었다. 무서워. 눈이 엄청 커. 끔뻑여라고. 그리고 무서워.
 
"아니, 히키가야거든. 그리고 너, 편지에선 실수하지 않았잖아"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마음속으로 프로테스와 셸을 반복해서 외운다.
 
이런. 예상했던것 이상으로 화내고 있다.
 
"어머, 그랬니. 이 눈속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리고 있어서 머리가 제대로 돌지 않은것 같아"
그렇게 말하며 시바노시타는 헤이스트를 외쳤다.
 
"덧붙여 나는 8시에 여기서 사람과 만나기로 했는데, 너는 9시에 뭐랑 만나기로 한거니?"
 
"나도 사람이랑 만날 약속을"
 
"어머, 너처럼 지각을 해도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과 만날 약속을 해주는 마음씨 고운 사람이 있니. 아니면, 그 사람은 네 상상속에만 있는 사람인거 아니야?"
 
속사포로 몰아붙이는 유키노시타. 이건 위험하다고 생각한 나는 자신을 마음씨 고운 사람이라고 하지마, 라고 하려던 태클을 집어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 눈때문에 늦었어"
내 말에 유키노시타는 이거야 원, 하는 느낌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유키노』라고 한건 아닙니다. 『눈 탓』이라고 한겁니다. 죄송합니다. 아프니까 발을 밟지 말아주세요. *눈 탓에(유키노세이데). 동음 이의어로 '유키노 탓에' 라고도 읽을 수 있다.
 
"뭐, 그런걸로 해줄게"
몇 번인가 내 발을 짓밟은 후, 유키노시타는 그렇게 말하며 뒤로 돌아 걸어갔다.
 
나는 바로 뒤를 따라간다.
문득 앞을 걷는 유키노시타의 등을 쳐다보니, 그 무렵보다 조금 키가 컸다.
 
"키, 컸구나"
 
"그래, 너도 많이 컸구나"
뒤돌아보지도 않고 유키노시타는 말했다. 나는 뭐어, 그래. 라고 대답한다. 잠시 걷고 있으니, 신호등 앞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보였다. 분명 거기로 가는걸테지.
그리고 빨간 신호에서 멈춰서고 유키노시타는 머플러를 나부끼면서 빙글, 뒤돌아보며 말했다.
 
"하지만, 그 썩은 눈은 변하지 않았구나"
 
여전히, 그 무렵같은 농담. 그래도 돌아본 미소는 그 무렵보다도 훨씬 어른스러워서, 내 심장을 고동치게 만들었다.
 
"네 독설도 변하지 않았군"
 
나는 쑥스러움을 감추듯 농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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