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이 있어 - 역시, 초속 5센티미터인건 잘못됐다.3
 
 
 
 
 
 
그와 전화로 얘기한건 이것이 처음이었고, 밤 9시를 지나고나서 급우의 집에 전화를 거는건 그의 소심한 성격으로 보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히키가야도 남자애야"라고 언니한테 전화기를 건내받았을때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유키노시타" 라고 수화기로 작은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믿고 싶지 않은, 듣고 싶지 않은 그런 내용이었다.
 
함께 중학교는 갈 수 없다, 라고 그는 말했다. 아버지의 일 사정으로 봄방학에 도치기의 작은 마을로 이사가는게 결정되버렸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는 떨리지도, 말이 막히는 일도 없이 똑바로 말한다.
 
"그러니까 이별이야"
 
그 말에 심장 부근이 꾸욱 조여들었다. 머리속은 새하얘지고, 그가 무슨 말을 한건지, 왜 이런 말을 나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건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시간에 무슨 일인가 생각했더니, 그런 농담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건거니"
 
일단 동요를 들키지 않도록 농담을 평소처럼 했다. 그런데, 그는 농담으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도치기의 공립에 수속하게 됐어. 모처럼 수학 가르쳐주고 같이 합격했는데. 미안해"
 
수화기로부터는 차가 오가는 소리가 났다. 그건 그거 전날 사서 나에게 자랑했던 휴대전화로부터, 밖에 나와 전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 판씨 인형을 있는 힘껏 껴안았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그래도 일단 말을 찾았다.
 
"네가……히키가야가 사과할 일은 아니야"
 
"아버지만 단신부임해라고 말했지만, 동생이랑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싫대"
 
딸을 너무 사랑하잖아, 라며 그의 마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그의 체념한 목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고 순간적으로 굳게 생각했다.
 
"웃지마!" 라고 그의 말을 자른 순간, 그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알았어" 라고 굳게 말하고 "이제 됐어" 라며 한번 더 대답했을 때는, 나는 눈물을 참는데 필사적이었다.
 
몇 십초의 뜸을 두고 자동차 배기음에 섞여서 "미안해 유키노시타" 라는 쥐어짜낸듯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꾸욱 갖다댔다. 수화기를 귀에서 떼는것도, 전화를 끊는것도 할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얘기하는걸 손에 쥐듯 알 수 있었다.
 
그는 울고 있었는데, 그걸 깨닫게 하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나에겐, 우리에겐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그와 처음으로 통화를 마친 후에도, 나는 판씨 인형을 있는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나서 며칠 후, 나는 심하게 어두운 마음으로 보냈다. 나는 지망학교를 바꿔, 어머니가 권한 해외유학을 하게 됐다.
 
전화 한통에서 학교에서 그에게 다정한 말을 할 수가 없었던 자신이 심하게 부끄러웠다. 그런 마음을 품은채로 우리는 졸업식을 맞이하고, 어색한 관계로 그와 헤어졌다.
 
"유키노시타, 건강해"
 
졸업식 후, 그가, 평소의 그 답지 않게 무척이나 다정한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해줬을때도, 나는 고개 숙인채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속에선 왜 이렇게 된거야, 어째서 그가 이사가는거야, 그런 생각만 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확실히 앞으로 어른이 되려고 하고 있었지만, 그건 그가 있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이런 이별은 너무하지 않은가.
우리는 이런 이별을 해야할 것이 아닌것이다. 절대로.
 
그런 식으로, 당시의 일기에 썼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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