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노시타 유키노는 바라고 있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나는 눈 앞에 있는 히키가야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봉사부의 부실. 오늘은 유이가하마가 보충수업이 있다고 하면서 오는게 상당히 늦어진다고 연락이 있었다. 그러니까 잠시간은 나와 히키가야 둘 뿐.
그렇다고 한건 아니지만, 나는 히키가야를 조금 신경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것도 깨달았다. 왠지 차분해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심하게 동요하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에 겁에 질린것 처럼으로 보였다. 뭐가 그를 몰아붙이고 있는걸까. 무엇에 괴로워하고 있는걸까. 나는, 그걸 알고 싶었다.
그리고 홍차를 탄 차를 갖고가서 건내려고 했다. 그리고, 그의 손과 내 손이 맞닿은 순간이었다.
그의 찻잔이 소리를 내며 책상 위에 떨어졌다. 당연히 홍차도 엎어버렸다. 다행히도, 찻잔은 깨지지 않았다. 이거라면 흐른 홍차를 닦기면 하면 되니까 편할테지.
나는, 나를 덮고 있는 히키가야의 얼굴을 보면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나는 지금, 히키가야에게 밀쳐 쓰러져 있다.
 
 
 
아무래도 나는 히키가야에게 덮쳐지고 있는 모양이다.
모양이다라니, 마치 남일이구나. 하지만, 그런 생각이 가능할만큼 나에겐 '덮쳐지고 있다'라는 실감이 없다.
공포감은 없다. 히키가야를 무섭다고는 느끼지 않는다. 그건 결코,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다거나, 무서워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는 아니다.
냉정하진 않다. 심장 고동은 무섭게 빠르다. 그리고, 내 가슴을 도려내듯, 크게 맥박치고 있다.
 
내 손목을 움켜쥐는 그의 팔에는 힘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떨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깔고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심하게 겁에 질린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의 눈은,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어둠고 가라앉아, 탁해져 있는 눈. 하지만 그 속에 무언가가 있는것 같았다.
평소는 어둡고, 괴로운 트라우마로 칠해져버린 그의 눈동자.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확실하게 그의 안에 있는 무언가. 누구도 깨닫지 못하고, 그 자신도 뚜껑을 덮어, 없는걸로 취급한것. 하지만 버리지도 못해 줄곧 그을리고 있는 무언가. 마치 그 무언가에 불이 붙은것 처럼, 그의 눈동자 속에서 지글지글 불타는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바랬던 '진실된 것'인걸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일까…. 어느것이든 결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분명 잔혹하고, 오만하고, 추악한 그런 어두컴컴한 것일테지.
 
그저, 나는 그래도 좋다. 지금, 히키가야를 들쑤셔서 나를 바라게 하고 있는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금의 나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그에게 밀쳐 쓰러졌을때도, 덮쳐지려하는 지금도, 내가 품고 있는 감정은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더러워도 좋다. 얼마나 어두워도 좋다. 그저 히키가야에게, 나를 원해줬으면 싶었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나에게 보여줬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로 인해 그의 괴로움을 풀어줄 수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게 나라고, 그가 생각해주고 있다면….
내가 덮쳐지는 실감이 없었던건, 그에게 덮쳐지려 하고 있는것을, 요구되고 있다는것을, 나의 마음도 몸도, 기뻐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그의 표정에 의식을 되찾는다. 그러자 어느샌가, 그의 눈동자에서 방금전까지는 확실히 있었던 무언가가 사라져갔다. 대신에 그의 표정에, 그리고 눈동자에 슬픔의 색이 더해지고 있었다.
분명 그는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해, 나를 상처입혀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를 배신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야, 히키가야. 나는, 겁에 질린게 아니야. 나도 너를 원해. 그러니까, 그런 얼굴은 하지마. 너의 그런 얼굴을 나는 보고 싶지 않아.
나를 억누르던 그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떨어져간다.
안 돼. 여기서 그가 떠나가버리면, 분명 두번 다신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기는 커녕, 그는 나에게서 거리를 두려고 한다. 두번 다시 다가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나는 자유로워진 팔을, 떠나가는 그의 목에 감았다. 그를 놓치지 않도록. 분명 나의 이른 감정도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를 바라고, 떼어놓고 싶지 않아서. 히키가야를. 내 것으로 하고 싶다. 그리고, 나를 그의 것으로 하고 싶다. 그러니까, 내 곁에 있을 수 있도록 묶어두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
 
"…히키가야"
 
자신의 목소리에 나는 놀랬다. 그 목소리는, 스스로가 발한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요염하게,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이었다.
 
"…부탁해…"
 
나는, 히키가야의 목에 감은 팔에 힘을 넣는다.
부탁해, 히키가야. 나는 너를 원해. 너를 갖고 싶어. 그러니까, 이대로….
 
"유키노시타…"
 
내 이름을 부르는 히키가야의 눈에도 또한 무언가가 미약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불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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