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가야 하치만은 강하게 바랬다.
 
 
 
리얼충들이 떠들어대는 와중, 나는 이어폰으로 애니 노래를 들으면서 책상에 엎어져있었다. 이게 외톨이의 올바른 쉬는 시간이다. 오히려 이거 말고 무얼 하면 좋은지 나는 모르지만.
책상에 엎어져 있는건 늘 그런 일이지만, 오늘은 평소 이상으로 고개를 들고 싶지 않다. 뭣하면 수업이 시작해도 엎드려 있고 싶다. 아니, 딱히 자고 싶다는건 아니지만.
아무튼 나는 지금, 굳은 결의를 하고 책상에 엎어져 있다. 외톨이의 신념은 바위보다도 단단하다. 지금 내게 고개를 들게할 수 있는 녀석은 그리 없을 것이다.
 
"안녕, 하치만!"
"안녕, 토츠카!"
 
나는 만면의 미소를 짓고 천사와 인사를 한다. 내 신념 엄청 간단하게 박살났어.
토츠카는 내 얼굴을 보고 심하게 놀라고 있었다.
 
"하치만, 어쩐일이야 그 얼굴!? 반창고 투성이잖아. 무슨 일 있었어!?"
 
그래. 내가 책상에 엎어져 있던 이유. 그건 내 얼굴에 있다. 내 얼굴에는 지금 반창고가 두 장정도 붙여져있다. 오른뺨과 왼뺨에 하나씩이다. 언뜻보아 싸움이나 무언가를 한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토츠카의 목소리가 상당히 컸기 떄문에, 가까이서 떠들고 있던 녀석들도 몇 명은 내 얼굴을 주목했다. 나 여기 몇년 중에 가장 주목받고 있구만.
그러자 하야마네 옆에서 함께 떠들고 있던 유이가하마도 놀란듯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힛키, 어쩐일이야 그거!? 지독한 얼굴이잖아!!"
"어이, 그래선 내 얼굴을 보기 끔찍하다는것 같잖아"
 
내가 냉장하게 딴지를 걸지만 유이가하마는 아직 허둥대는 모양이다.
 
"싸움……을 할 상대는 없구, 으-응…"
 
무례한 녀석이구만, 이 녀석. 아니, 뭐. 맞긴 하지만. 아니, 싸울 상대도 지인으로 한정할 순 없어. 알도보도 못한 사람한테 난데없이 시비 걸린적도 있고. 아니, 그건 공갈협박이던가.
 
"카마쿠라한테 좀 긁힌것 뿐이야. 대단한거 아니니까 신경쓰지마"
"정말? 정말로 괜찮아?"
 
유이가하마와 토츠카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듯 쳐다본다. 둘 다 가까운데요. 토츠카가 이렇게 가까이 온다면 매일 반창고를 붙일까.
 
"아무튼 괜찮아. 자, 이제 종 친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둘을 자리로 보낸다. 걱정해주는건 고맙지만, 별로 이 반창고에 대해선 건드리지 않았으면 싶다.
나를 힐끔 쳐다보면서 자리로 돌아가는 둘을 쳐다보면서 나는 또 책상에 엎어져서, 이 반창고를 붙이게 된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 나는 기상이 최악이었다. 불쾌한 꿈을 꾼 것이다. 그것도 최근 며칠간 몇 번이나 같은 꿈을 꾼다.
유키노시타가, 내 앞에서 사라지는 꿈이다. 그것도 나한테서 떠난 그녀가 있는 곳은 하야마가 있었다.
이런 꿈을 꾸는 이유는 알고 있다. 분명 최근 며칠간 생긴 일이 원인이다. 유키노시타와 하야마가 사귄다고 하는 근거도 없는 소문.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해온 시간이 길다는걸 알게 된 것.
아직 깊게는 모른다. 그 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걸 들은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거무잡잡한게 싹트고 있었다. 굉장히 제멋대로에, 추악하고, 오만한, 너무나도 더러운 감정.
이제 그런 소문을 퍼뜨리는 녀석은 거의 없지만, 찔끔찔끔 들려온다. 완전히 사라진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걸 듣고 잇는것 만으로 나는 가슴이 찢어질것 같은 감정을 안아버린다. 유키노시타가 누군가와 소문이 퍼지든, 내가 뭐라 말할 권리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단순한 소문. 주위가 멋대로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건 알고 있는데. 그런데, 더러운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유키노시타를 하야마가 알고 있다는 것에 불쾌감을 느낀다. 그 둘밖에 모르는 시간이 있다는걸 허용할 수 없게 된다.
이 얼마나 제멋대된 감정일까. 얼마나 더러운 감정일까. 그런데, 내 안에선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저 보다 거무잡잡하게, 더럽고 탁하게 고여갈 뿐이었다.
그러니까, 부실에 가는 도중에 그런 소문을 듣고, 이상해져버렸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유키노시타는 말야, 문화제때 그 사람이랑 소문 퍼지지 않았어?"
 
공교롭게도, 나는 둔하지 않다. 문화제때 그 사람. 그것도 유키노시타와 관련있는 인물은 어느 정도 한정된다. 그리고, 수학여행. 밤에 유키노시타와 만났을때, 그녀는 문화제에서 내가 어떻다니 말했었다. 즉, 그런거다….
나는 그 대화소리를 듣고, 어째선지 부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리고, 도중에 오늘은 유이가하마가 보충수업으로 늦어진다는걸 떠올렸다.
 
위험하다. 나는 지금 확실히 이상해졌다. 이렇게 빠른 걸음으로 부실로 향하다니, 어떻게 할 생각인거냐.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뭐 어쨌다는거야.
그저, 그저 이상한 감정과 더러운 감정이 뒤섞이어, 견딜 수 없게 된다. 위험하다. 지금 유키노시타와 만나면…. 물러나라. 오늘은 그냥 부활동을 쉬어라.
이성은 그렇게 말하고 잇는데, 내 다리는 부실로 향해 멈추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는 유키노시타를 밀쳐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나의 욕망을 퍼부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키노시타는 전혀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기다리고 있는걸로 보였다. 그 때, 나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불쾌감이나 혐오감, 분노 등은 전혀 섞여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짓을 해서 용서받을리 없다. 이런 자기멋대로 행동을 해서 그녀로부터 소중한 것을 빼앗아서 좋을리 없다.
나는 이성을 필사적으로 움직여서 유키노시타를 억누르고 있던 팔을 풀려고 한다. 간신히 힘이 빠져서, 어떻게든 그녀의 위에서 비킬 수 있게 됐다. 그 때였다.
 
"히키가야…"
 
유키노시타가, 그 가느다란 팔을 내 목에 감아왔다. 그리고, 평소의 그녀에게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여자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부탁해…"
 
나는 더 이상 이상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추악하고, 더럽고, 자기멋대로의 욕망을 몽땅, 그녀에게 퍼부었다….
 
 
 
"히키가야?"
 
뒤를 돌아보니 유키노시타가 있었다.
지금은 점심시간. 나는 평소대로 베스트 플레이스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오늘 하루, 줄곧 어제 일을 생각하던 탓에 유키노시타의 얼굴을 보기가 괴롭다.
 
"어, 어쩐 일이야. 늘 부실에서 밥 먹던거 아니야?"
"유이가하마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져버렸어. 그러니까 벌게임중이야"
 
유키노시타는 진심으로 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또 그 벌게임을 한거냐. 부실에 홍차 있으니까 그거 마시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에, 저기, 히키가야…"
 
유키노시타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끝을 흐리며 무언가를 말하려 하고 있다.
화제는 예상이 가지만, 공교롭게도 나도 별로 접하고 싶은 화제는 아니다. 먼저 화제를 꺼내는 세심한 행동은 할 수 없었다.
 
"저기…어제 일 말인데…"
"미안. 갑자기 그런 짓을 해서. 완전히 내 책임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자르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거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너는 그만두려고했어. 그걸 만류하고 보챈건 나야. 그건 내 책임이야…"
 
그녀다운 대답이다. 하지만, 그 이치로 말한다면 내 책임도 확실히 있는 것이다.
 
"샘샘, 이라고는 도저히 할 수 없지만. 뭐, 그런거라면 그런걸로 해둘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이야기를 끊는다.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지만,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다. 무심코 뒷전으로 넘기고 싶어진다. 그런 짓을 해두고서 이렇게나 한심한 나 자신이 싫어진다.
 
"그래서, 저기, 반창고 말인데…"
"어?"
 
내가 이야기를 끊은걸 무시하는듯, 그녀는 내 반창고를 건드렸다.
그래, 그녀는 이 아래에 감추어진 것을 나 말고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저기, 아직 남아있니?"
 
과연. 그녀는 이 반창고 아래가 신경쓰인 모양이다.
그 때는, 서로가 어떻게 됐었다. 그러니까, 내 뺨에 두 곳이나 터무니 없는 행동을 해버린걸테지.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돼. 거의 사라졌으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녀를 달래려고 했다. 실제로, 이미 상당히 옅어졌다. 내일은 반창고를 붙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유이가하마네한테도 잘 얼버무렸으니, 새삼 이 녀석에게 이러쿵 저러쿵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생각해서 유키노시타에게 대답했지만, 그녀의 태도는 내가 상상하고 있던것과는 달랐다.
 
"그래, 벌써 사라져갔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의 표정은, 조금 유감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 표정은 내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듯한, 요염한 표정으로 변한다. 그리고, 언제 들은적이 있는듯한, 남자를 유혹하는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라져버리면 말해줘. 그리고…"
 
그녀는 유혹하는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살며시 다가온다. 그리고….
 
"내 쪽은 이미 사라져버렸어. 그러니까 다음은 좀 더… 알겠지?"
 
그런 말을 듣고 망연히 서 있는 나에게서 몸을 돌리며 그녀는 부실로 돌아간다.
즉, 무슨 일이야? 이건….
 
나는 뺨에 붙은 반창고를 만지면서, 그녀가 찍어낸 입술 감촉을 떠올려버렸다.
그것과 동시에 내가 입술을 찍은 그녀의 피부 감촉도 되살아난다. 그것만으로 내 머리는 터져버릴것 같았다.
결국 나는 그대로 얼굴을 새빨갛게 만든채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즈음에는 이미 점심시간 끝을 알리는 종이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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