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상담경험

2014. 11. 16. 20:16

아아, 지루해.
앞으로 반세기 정도 살 수 있을까.
그 가운데 얼마나 지루함을 보내야 하는건지.
아까 사온 페트병 물을 마신다. 목이 마른것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인간은 어째서 이렇게 불합리한 행동을 하는걸까.
복권도 당첨되는것도 아닌데 사거나, 연예인을 좋아하게 되어도, 이루어지지 않는데.
 
"눈이 죽어있구나."
"지극히 평소대로다."
 
옆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녀, 유키노시타 유키노.
책에 시선을 떨구고 눈은 왠지 모르게 다정한 표정으로…
역시 미인이라고 생각했다.
 
"목 마른거니?"
"아니, 마르지 않아"
"전부터 생각했지만, 너는 이상한 사람이구나"
"아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자각은 있구나"
 
무기질한 공간에 책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만 들려온다.
나는 앞에 보이는 풍경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야, 유키노시타"
"왜?"
"인생 즐겁냐?"
"마치 너는 만끽하지 않는듯한 말투네."
"너는 어떤데"
"미안하지만 지루한 시간을 만들지 않도록 하고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아깝잖니.
 너는 매일 한가할것 같네"
"한가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언가에 열중한게 하나라도 있을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휴대폰 게임이나, 의미없는 텔레비전을 보며 유의미한 짓을 해왔던가.
 
빈깡통같은 인생이다.
 
 
 
"하지만, 히키가야
 나도 고민 정도는 있어"
"호-. 내 입장에서 보면 유키노시타같은 완벽한 인생엔 고민 하나도 없을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완벽하지 않아."
 
평소보다도 살짝 목소리가 낮다.
유키노시타를 바라보니 그녀도 나에게 시선을 주고 있던것에 움찔한다.
나는 그녀가 화내고 있는건지 슬퍼하고 있는건지 모른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은걸"
"아아. 점점 불공평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다운게 아닐까"
"…….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나도 모르는건 있어"
"그것 말고는 뭐든지 알고 있다는 말투군"
"대충은"
"아니, 부정을 해라. 그래서, 지금 유키노시타가 모른다는건 뭔데?"
"말해도 되겠니. 분명 대답하지 못할거라 생각하는데"
"어차피, 모른다는거냐"
"그렇게나 듣고 싶니?"
"딱히."
"그럼 가르쳐줄게"
 
탁.
책을 덮는 소리가 들린다.
몇초 후, 유키노시타의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애는 어떤 느낌일까?"
"어?"
 
질문을 이해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녀에겐 이해할 수 없을것 같지만 나도 적합하지 않다.
유키노시타의 눈이 올곧게. 놓치지 않겠다며 나를 포착하고 있었다. 분명 놓아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질문내용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시간이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신님이 장난을 쳐서 늘리고 있는게 틀림없다.
아아, 굉장히 목이 마르다. 아까 마셨을텐데.
 
대답할 수 없는 내게 살짝 웃으며, 또 이야기를 시작한다.
 
 
 
"모처럼이니까, 인생경험하고 싶지 않니?"
"인생경험?"
"그래. 너도 한 적이 없잖니"
 
하고 싶지 않은게 아냐. 못하는것 뿐이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서로 해보지 못한 사이. 나와 키스해주지 않겠니"
 
놀라움을 숨길 수 없다. 앞으로 1초 후, 10초후를 생각할 여유도 없다.
지금을 필사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싫다면 상관없지만"
"그런건 아니지만. 나도… 하고 싶다."
"그럼 다행이다"
 
자세를 고치는 유키노시타.
이 녀석, 나를 싫어하는거 아니었나?
아니면 단순히 인생경험을 하고 싶었던것 뿐일까
하지만, 누구든 좋다는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이런건 남자애가 리드해주는게 아니니?"
"나를 남자라고 인정해주는거군"
"언제나 얄궂구나."
"너도 그렇잖아…읍"
 
갑작스런 사건, 일촉즉발.
이 녀석!
나와 유키노시타의 거리가 0이 됐다.
굉장히 가까이에 예쁜 얼굴이 눈을 감고 있다.
입술에 굉장히 부드러운게 닿고 있다.
아아, 이젠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이런 느낌은 뭐지.
 
"…응"
 
입술을 혀로 미니 의외로 순순히 열린다.
안으로 나아가니 그녀로부터 목소리가 살짝 새어나와, 몽롱하게 눈은 감은채로
모든걸 맡긴다는 느낌인가.
매달려오는 유키노시타를 자연스럽게 끌어안았다.
방금전까지 목이 마르던게 거짓말같다.
 
 
 
찔꺽…찔꺽.
 
"하…앙 아…앗"
 
얽혀설키는 물소리와 축축한 달콤한 목소리.
그 두 가지가 나를 흥분시켰다.
몇 번이나 겹쳤다.
 
좀 더 하고 싶다.
 
 
 

 
"응. 하아… 히키가야"
 
입가에 끈적끈적하게 묻힌 유키노시타가 툭, 가슴을 밀며 조금 떨어진다.
 
 
"오늘은 여기까지."
"에-"
"지쳤어. 의외로 길게 오고…"
"그런가. 뒷일을 생각 안했다. 미안"
"사과하지 마. 앞으로 배워가면 돼"
"그렇군… 응?"
 
내일도 앞으로도 한다는 듯한 말투다.
무시무시한 유키노시타 유키노. 유도심문이 대단하다.
 
"하지만, 필사적인 느낌이 전해져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어"
 
 
인생은 재미없다고만 생각했지만, 전언철회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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