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가야 하치만"역시 나와 유키노시타는 친구는 될 수 없다"
【스포일러 주의】
이 SS는 원작 라노벨에 기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서는 방송하지 않은 묘사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습니다.
따라서 조금의 스퍼일러도 허락치 않겠다는 분은 열람을 자제해주세요.
그럼, 이어서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학교가 겨울방학에 들어가, 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선 쌓아둔 애니메이션을 전부 봤다. 그런데다 리얼 타임으로 시청도 놓치지 않았다.
12월 말에는 1쿨이 끝나기 때문에, 나는 단번에 1화부터 시청을 하여, 기억이 선명할때 최종화를 볼 수 있었다.
자신의 높은 계획성에 무시무시함을 느낀다.
그리고 쌓여있던 책을 처음부터 읽었다.
정리한 시간이 있으면 독서도 하고, 또 스토리를 잊을리도 없어서 효율이 좋다.
그외에도 수험공부를 하고 있는 코마치를 상대해주거나, 게임을 뾱뾱 거리거나, 점심까지 자는등 겨울방학을 만끽하고 있었다.
요컨대 널부러지고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특별히 건들것 없이 끝나고, 섣달그믐날에는 홍백과 특별방송을 보고 "아~ 이제 올해도 끝나나"를 실감하고
새해 카운트 다운을 코마치와 함께 새해를 맞이한 순간에 누가 먼저 토시코시 소바를 다 먹는가하는 승부를 하여, 나는 승자가 됐다.
새해가 되자마자 이기다니, 올해는 좋은 해가 될것 같다.
그리고 오늘, 1월 1일은 새로운 한 해의 첫째 날이며, 요컨대 스타트이며,
일년의 셈은 설날이라고 할 만큼 중요시되는 특별한 날.
나는 오전 11시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아침을 먹고, 오후 1시에는 가족 다같이 떡국을 먹고,
그 후에는 코마치와 코타츠에 들어가서 TV를 보고 있었다.
이런, 스타트 대쉬가 너무 좋아서 쩐다.
이렇게 스타트가 잘 끊어지면 나중에는 걸어도 골인할 수 있을것 같으니 내일부터 족므 더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자.
하지만 그런건 단순한 소망이며, 망상이며, 공상과학이며, 공허한 상상화다.
그런건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래. 하나의 연락으로.
코타츠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떨린다.
새해시작하자 누구야, 아마존이야? 아니면다른 메일 매거진인가. 어쨌든 새해가 되자마자 상업을 하려고 하다니, 상인혼이 대단하다.
여기서 "누구야" 라던가 생각하지 않는 점에서 내 휴대폰의 존재의의가 보여진다.
착신은 메일이었던 모양이라, 몇 초후에 휴대폰이 그쳤다.
주섬주섬 코타츠에서 나와 휴대폰을 집어 메일을 확인한다.
그러자 메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From ☆★유이★☆
힛키! 새복올잘!
그런거니까 지금부터 다 같이 첫 참배 갈래?』
뭐야, 스팸메일이냐. 메일 매거진보다 무가치하잖아. 그보다 요즘 스팸메일도 정월을 축하하나.
뭐, 그럴리는 없고 메일의 착신인은 유이가하마였다.
역시 리얼충. 나한테도 새해 메일을 보내다니. 빈틈이 없다.
하지만 이 메일은 너무 리얼충스러워서 외톨이스트인 내게는 잘 모르겠다.
우선, "그런거니까" 라고 되어 있는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
거기다 '다 같이' 라니 누구야. 다 같이라는건 복수를 가리키는 단어이며, 나하고는 연이 먼 단어였다.
나는 이 다잉 메시지 급의 정보부족이 심한 메일 추리를 시작한다.
흠……………
그리고 나는 해답을 발견하고, 그걸 메일에 쓴다.
『사양하마』
답신했다.
유이가하마가 뭘 하고 싶어서, 어디서, 누구와 첫참배를 갈건지 단서가 너무 없어서 모르겠다.
하지만 내 대답이 '거절'인 이상, 그런 추리는 불필요한 것이다.
나는 스스로 얻어낸 평화를 탐하기 위해 다시 코타츠 속으로 파고 들……려던 순간에 휴대폰이 울었다.
뭐야, 유이가하마 녀석, 아직도 나한테 칼날을 내미는거냐. 무다, 무리, 무모. 나의 성격을 알거 아냐.
『사이도 올건데?』
"바보녀석! 그걸 먼저 말해!"
나는 코타츠에서 뛰쳐나와, 걸으면서 파자마를 벗기 시작한다.
"좀, 오빠. 레이디가 있는 앞에서 벗지마"
"너야말로 늘 내 앞에서 벗는거 그만해라"
"근데, 왜 갈아입는거야? 잠옷에서 잠옷으로 트랜스폼 하는건 코마치, 의미 없다고 생각해"
"후, 듣고 놀래라. 나는 지금부터 첫참배하러 간다"
"………………………………"
코마치가 입을 쩍 벌리고 말문이 막혀있다.
"오, 오오오오오오오오빠가 새해첫날에 외출?"
"어"
"세, 세계 종말이 왔다아아~~!!"
"안 왔어. 오히려 지금부터 세계를 만들거야"
"머, 머머머머리까지 이상해졌어"
"안 이상하거든. 나는 지금부터 토츠카와 세계, 아니 가정을 만들러 간다"
"토츠카 오빠?"
나는 유이가하마한테 온 메일을 코마치에게 설명한다.
"아, 그럼 코마치도 가고 싶어!"
뭐, 유이가하마도 토츠카도 면식이 있으니 상관없나.
"알았어. 그럼 얼른 준비해"
"라저ーー!!"
그리고 코마치가 눈 앞에서 옷을 벗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내 앞에서 벗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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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치와 둘이서 집을 나와 유이가하마가 지정한 신사로 향한다.
새해 첫날에 동생과 외출이라니, 나는 승리자다.
유이가하마가 지정한건 딱히 유명하지 않은 지원 밀착형 가만가만한 신사다.
하지만 신사에 도착하니 그런대로 사람이 있어서 나는 바로 토츠카라는 함정에 빠진걸 원망하겨 격노했다.
하지만 나는 메로스가 아니니까 뛰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로키가 되어서 토리이에 기댔다.
잠시 기다리니 천사가 강림했다. 이런, 벌써 마중나왔나……짧았구나, 내 인생.
"하치만! 새해 복 많이 받아! 코마치도, 복 많이 받아"
아아, 천사도 달력의 개념이 있구나.
"토츠카 오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 오빠도 제대로 인사해"
코마치에게 목덜미를 꾸욱 잡혀 의식을 되찾는다.
내 눈 앞에 있던건 천사 같은게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토츠카, 새해 복 많이 받아"
"응! 정월에 하치만이랑 만나다니 기쁘네"
바보같은 소리마, 오늘부터는 365일 24시간 내내 함께잖아?
"그보다 토츠카는 기모노가 아니구나"
"어? 응. 기모노 안 갖고 있고, 거기다 별로 안 입잖아?"
나는 차임 토츠카의 후리소데 차림을 상상하고 있어서 충격이었다.
"하지만 코마치는 기모노 입고 있네. 예뻐서 잘 어울려"
"정말인가요? 고마워요"
사랑하는 사람(아내라는 의미로)과 사랑하는 사람(시스콘이라는 의미)의 대화를 볼 수 있다니, 정월 첫날부터 시작이 좋다.
1후지 2매 3가지 같은것 보다도 만배로 의미가 있다.
둘의 대화로 귀를 쉬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나를 함정에 빠뜨리고, 내게 행복을 전달해준 사람이 나타난다.
"미아ー안! 기모노 입는데 시간 걸렸어!"
유이가하마가 또각또각 나막신을 울리면서 이리로 오고 있다.
"아뇨아뇨, 코마치네도 막 온 참이니까요. 그쵸? 토츠카 오빠"
"응, 괜찮아"
"휴우, 다행이다아. 아! 말하는거 깜빡했다.
힛키. 사이, 코마치. 새해 복 많이 받아"
유이가하마의 새해 인사에 각각 인사를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코마치가 엘보를 먹였다.
왜 정확하게 옆구리를 찌르는거야…… 너무 아파서 눈물 나왔다.
"쫌 오빠. 옷옷"
코마치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어? 옷?
나는 내 옷을 검사한다. 흠, 평소대로 초라한 평소대로 무난한 복장이다. 얼룩도 특별히 없다.
"그게 아니라, 유이 언니의 옷"
그리 말을 듣고 유이가하마를 본다.
"흠, 기모노군"
"종류를 묻는게 아냐. 감상"
감상? 감상이라고 해도………
"네가 훨씬 잘 어울려"
"쫌! 대수롭지 않게 코마치의 포인트 벌지 말고! 그게 아니라 칭찬해주라고!"
칭찬해준다. 이미 그거 칭찬이 아니잖아. 단순한 강요잖아.
하지만 동생이 말했으니까 인간 교제상 필요한거겠지.
"유이가하마"
"응? 왜 힛키"
"너, 그 기모노"
"어? 으, 응"
"빨간색이 선명해서 좋네"
"헤!? 곳, 고고고고고…… 고마워"
흠, 이런거면 되겠지. 왠지 일을 끝낸 느낌이다.
나는 유이가하마에게 신경쓰이던걸 물어본다.
"그런데, 이제 누가 오는데?"
"어? 오늘은 기서 분인데?"
"앙? 유키노시타는 안 부른거냐. 역시 여자의 우정은 뒤끝이 있구만"
"그런거 아니야! 유키농은 불렀지만 오늘은 못 온다고 했어!"
"못 온다니, 너 혹시 유키노시타한테……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아ー니ー야! 유키농은 집에 돌아가서 나오지 못하는거야!"
아아, 그런가. 그러고보니 그 녀석은 명가의 아가씨였지.
판씨랑 카마쿠라를 너무 사랑하거니 입이 험해서 잊고 있었다.
"그런가, 그럼 다 모였으면 얼른 할걸 해치우자고"
"응. 그럼 갈까"
4명이 모여서 참배길을 걷는다. 그보다 미소녀 셋을 거느리다니, 나는 어디의 거물이냐.
그림말이나 제비나 가게에 이끌려 휘적휘적 어디 갈듯한 유이가하마에게
그런건 나중에 해라고 8번 정도 설명하고 어떻게든 새전함 앞으로 간다.
저마다 각자 동전을 넣어 신님에게 소원을 빈다.
어라? 첫 참배의 작법은 어떻게 하더라? 두 번 인사하고 두 번 박수하고 한번 인사? 두 번 박수에 한번 인사? 삼삼칠 박자?
뭐, 신님도 순서가 다른 정도로 화내지는 않겠지.
그러니까 나는 적당하게 박수를 치고 적당하게 예의를 차리고 소원을 빌기로 한다.
가족 전원이 무병장수할 수 있도록, 코마치가 합격할 수 있도록, 세상이 내게 다정해질 수 있도록,
남이 내게 무관심하게 있을 수 있도록, 토츠카와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좋아, 이 만큼 소원을 빌어두면 신님도 하기 쉬운거 하나 정도는 이루어주겠지.
선택지를 준 나에게 감사해줬으면 싶다.
그 후에는 다같이 가게를 돌고 제비를 뽑는 등 첫참배를 즐겼다.
내가 고등학교 녀석들과 첫 참배에 가다니, 누가 상상할 수 있었을까.
흠, 좋고 나쁘고 작년은 변화가 풍부한 한 해였지.
그러니까 올해는 변화없이 정체한 한 해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소원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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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도 끝나, 학생인 우리들은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월 기분이 빠지지 않아 떡먹고 살찐 솔져들이 많아, 교실 안은 풀어져 있었다.
교사들도 일단 주의는 주지만, 뭐 어쩔 수 없다고 별로 잔소리를 하지 않고, 결국 겨울방학 끝난 첫날째는 다 같이 풀어진 느낌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는 나도 겨울방학에서 망가진 생활 리듬 탓에 잠부족이라서 일어났더니 방과후가 되어 있었다.
이럴때, 외톨이라면 깨워줄 사람이 없으니까 푹 잘 수 있지!
교실 안에는 사람도 줄어들어, 각자 다음 액션을 일으키는 모양이었다.
흠, 그럼 나도 부실로 가볼까.
터벅터벅 복도를 걸어 특별동에 있는 부실로 향하니, 문 앞에는 유이가하마가 있었다.
"뭐하는거야?"
"아, 힛키 일어났구나"
"어. 그래서?"
"응, 왠지 문이 안 열려서"
"안 열려? 그럼 오늘은 부활동 중지로군"
"포기하는거 너무 빨라!"
"그치만 부실로 못 들어가면 상담을 받을 수 없잖아"
"됐으니까!열어줘!"
스스로 열으라고 생각하면서 문에 손을 댄다. 하지만 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자물쇠 걸려있잖아"
"그러니까 말했잖아"
그러니까 안 말했잖아.
"그럼 열쇠 빌려오는 수 밖에 없잖아"
"그러게"
너는 뭐하고 있던거야.
그런고로 유이가하마와 함께 교무실로.
문을 노크하고 입실한다. 히라츠카 선생님의 자리를 보니 선생님이 앉아있어서 그쪽으로 향한다.
"선생님, 부실 열쇠를 빌려주세요"
"오오, 히키가야구나. 뭐냐? 심부름이냐?"
"하? 아뇨아뇨, 딱히 누구도 심부름 시키지 않는데요"
"그러냐? 평소엔 유키노시타가 가질러 오니까 순전히 복종했나 싶었다"
"저는 기생은 할거지만 복종은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열쇠 주세요"
"아아……자. 그럼 부활동이 끝나면 반납하러 오도록"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교무실을 나온다.
부실로 돌아가는 도중, 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었다.
"유키농, 무슨 일일까"
"학교 쉰거 아냐?"
"병에 걸린걸까"
"글쎄. 신경쓰이면 연락해봐"
"응, 그래볼래"
부실 앞에 도착해 선생님한테 받은 열쇠로 문을 연다.
안에는 역시 아무도 없었다. 당연한가.
평소엔 유키노시타가 먼저 있으니까, 아무도 없는 부실에 입실하는건 신선하다고 할까 위화감을 느꼈다.
부실의 주인이 없는것 만으로 이렇게나 분위기가 변하는건가.
"그보다 부장이 없는데 부활동 해도 되나?"
나는 신경쓰여서 유이가하마에게 물어본다.
"글쎄? 히라츠카 선생님은 특별히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 괜찮지 않아?"
"그렇군"
그럼 평소대로 독서에 힘써볼까.
정위치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뭐하는거야?"
"어? 유키농이 없으니까 내가 대신해서 홍차를 타려…
"좋아, 멈춰, 양손을 들어라. 쓸데없는 저항은 하지마. 내가 할테니까 너는 제발 앉아주세요"
"하? 어째선데"
"나는 홍차에는 일가견을 가진 인간이니까"
"일가견? 뭐야 그거"
"신경쓰이면 휴대폰으로 조사해봐라"
"응, 그렇게 할게"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가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드는 순간을 재고
전기 포트로 물을 끓여서 티포트 안에 홍차잎을 넣는다.
유이가하마가 끓이면 이소진이 되어버릴것 같다.
나는 홍차를 유이가하마의 머그컵과 종이컵에 넣어 책상에 둔다.
"고, 고마워"
"나야말로"
목숨을 건지게 해줘서 고맙다.
"?"
유이가하마가 머리에 ?를 띄우고 있었지만 순순히 자백하면 또 화낼테니까 이야기를 돌린다.
사람은 학습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키노시타는 어디 아픈거야?"
"아, 깜빡했다"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가 바보에 어울리지 않을 속도로 휴대폰을 조작한다.
그럼 답신이 올때까지는 특별히 할건 없군.
나는 평소대로 독서를, 유이가하마는 휴대폰을 삑삑 거리며 각자 시간을 보낸다.
잠시 지나니 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어온다.
"있잖아, 힛키"
"왜?"
유이가하마에게 눈을 돌리니 그녀가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휴대폰을 보라는 소리네요.
나는 그녀에게 휴대폰을 받아들어 화면을 쳐다본다.
그러자 유키노시타로부터 온 메일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에 따르면 유키노시타는 학교자체는 출석한 모양이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당분간 부활동에는 나올 수 없는 모양이다.
메일을 다 읽고 휴대폰을 유이가하마에게 돌려준다.
"저기, 힛키. 괜찮을까나"
"뭐가"
나는 알면서……아니, 알고 있는건 아니군.
하지만 필시 같은 생각을 했을텐데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을 한다.
"유키농………집안 사정이래"
"어"
"그것도 한 동안 나올 수 없대"
"그렇게 쓰여 있었지"
"왠지……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걱정이야"
"…………………………………………"
나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결과 침묵이라는 대답을 해버렸다.
유키노시타의 가정은 문제가 있는걸로 보인다.
실제로 문제가 있는지는 부외자인 우리들로선 알 수 없다.
하지만 유키노시타가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는 것, 하루노 씨라는 괴물같은 언니가 있다는 것,
그 언니에게서 "엄마는 나보다도 무서워" 라고 하게 만드는 어머니의 존재, 그 어머니가 혼자 자취하는데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
그것들 모두를 돌아보면 유키노시타의 가정은 원만하다고는 도저히 추측할 수 없다.
이번 결석도 가정내사정으로 인한것이 아닌가 상상하는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심부름이라도 부탁 받은거 아냐?"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사이가 나빠도 가족이다. 예를 들어 가족중 누군가가 병에 걸려서 간병이 필요했다는것도 있을 수 있다.
"그거라면 도우미 아줌마한테 말하면 되지 않을까"
"가정부가 있어?"
"아니, 모르겠어……"
그렇다. 결국은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유키노시타가 심부름을 부탁 받았는지, 아니면 다른 용건인지,
아니면 집안 사정에 얽혀있는지는 결국 우리들은 알 수 있을리 없는 것이다.
그런건 가족 중 누군가가, 혹은 관계자 밖에 알길이 없다.
이 소부고에서 말하자면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알리도 없다.
그래, 그 녀석이라면 혹시……
그 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부실에 울렸다.
평소라면 부장인 유키노시타의 시원스럽고 늠름한 목소리가 입실을 촉구한다.
하지만 오늘은 없다.
나는 외톨이다.
그렿게되면 남은건 한 명 밖에 없다.
"드, 들어오세요!"
유이가하마가 입실을 촉구한다.
그러자 문을 열고 들어온건 뜻밖의……아니, 어떤 의미로 당연한 인물이었다.
"………너는 정의의 히어로냐"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히키타니"
그렇게 말하며 시원스레, 평소처럼 달콤한 미소를 내게 짓는건 하야마 하야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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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가하마가 티포트에 남아있던 홍차를 종이컵에 담아 하야마의 앞에 내민다.
"고마워, 유이"
"으응. 그보다 하야토, 무슨 일이야? 혹시 상담?"
"아아, 좀 부탁이 있어서"
또냐. 이 녀석은 자이모쿠자 급으로 봉사부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를 만능 해결사라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부탁? 어쩐 일이야?"
유이가하마의 질문에 하야마는 조금 말을 머뭇거리며, 시선을 아래로 향한다.
말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소린가.
"내가 이걸 말해도 좋은지 고민하고 있지만………이건 나 자신의 고민이라는걸로 눈을 감아줬으면 싶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는 지금 단계에선 또렷하지 않다.
"내 상담은 유키노시타에 대해서야"
"유키, 농?"
유이가하마는 하야마의 입에서 유키노시타의 이름이 나오는걸 상정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나는 왠지 모르게 상상을 하고 있었다.
이 완벽주의에 세계평화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이상주의자라면.
"아아, 실은……그녀는 지금 집안 사정으로 조금 문제를 안고 있거든"
"하야토, 이유 알고 있어?"
"아아, 정월 사흐레 날에 만나서.
아니, 그녀 본인도 만났지만 이걸 들은건 하루노 누나한테 들은거야"
"하루노 언니? 무슨 말을 들었는데?"
"……………유키노시타가 맞선을 본다고 해"
맞선?
맞선이라는건 "취미는 무엇인가요?" 라고 하면서 심도깊은 대화를 해서 상대의 지뢰를 밟지 않도록 하는 지뢰찾기랑 닮은 그거?
"헤!? 맞선!? 유키농이!?"
"……아아"
뭐, 별로 보는 일은 없지만 지금도 맞선은 일종의 남녀의 만남이며,
거기에 유키노시타 정도의 하이 소사이어티가 되면 그런것도 이상할 일은 아닐 것이다.
"에? 에? 왜? 왜 맞선?"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혼란해하고 있었다.
왜 맞선인가, 라는건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그래서, 네 상담이라는건?"
그렇다. 이건 하야마의 상담이며, 하야마는 자기자신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관해 하야마는 무슨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 된다.
"내 부탁은 유키노시타의 맞선 중지, 혹은 파탄이야"
이 녀석, 진심이냐. 테러리스트냐고.
그런 짓을 해서 살아 돌아갈 수 있는건 세가르나 람보정도 일테지.
"네 상담이라는건, 이건 네 동기에 토대를 둔다는건데"
"아아, 맞아"
"동기, 목적은?"
"그녀를 구하고 싶어"
"구하고 싶어? 유키노시타가 구해주라고 했냐"
"아니, 그녀한테선 아무 말도"
"그럼 네 독선이냐?"
"독선, 이라. 그렇게 말하면 그런걸지도 몰라. 하지만 하루노 누나의 의뢰이기도 해"
"유키노시타 누나가?"
"그녀가 왜 나한테 맞선을 알려줬을거라고 생각해?"
"알까보냐. 단순히 보고하고 싶어서 한거 아냐?"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해"
"그럼 뭔데"
"시험받는거야"
"시험? 너, 유키노시타 누나한테 제자입문이라도 신청한거냐"
"내가 아냐. 너야, 히키가야"
순간 사고가 멈췄다.
나? 왜 난데?
나 전혀 관계 없잖아.
"쫌! 둘만 얘기하지 말고! 나 전혀 의미 모르겠어"
내가 침묵한 틈을 찔러 유이가하마가 분노의 소리를 지른다.
너, 이 정도의 말장난을 따라오지 못한다니. 빗치인 주제에 얼마나 노는데 어색한거야.
나는 외톨이라서 남과 논 적이 없는데 말장난 같은건 엄청 여유롭다.
뭣하면 혼자서도 즐길 수 있다. 뭐야 그거 슬프다.
"유이. 즉 이건 하루노 누나의 의뢰라는거야"
"하루노 언니한테?"
"아아"
"잠깐, 하야마. 그 점에 관해서는 네 지레짐작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럴까. 나는 너희보다도 하루노 누나와 교제가 길어.
하루노 누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대충 상상이 가"
"그럼 소꿉친구인 네 추리를 가르쳐주라고"
"너희들이, 라기보다는 히키가야. 거기다 유키노시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흥미가 있다, 라고 해야할까"
뭐야 그거. 연구대상을 관찰할 생각인가.
"애시당초 유키노시타 누나의 헛소리일 가능성은"
"그건 아냐. 나도 연줄을 써서 조사해봤더니 확실히 그런 이야기가 있던 모양이야"
일개 고등학생한테 연줄이라니 뭐냐고. google 선생님이나 yahoo 지식인이냐?
"그런 연줄이 있으면 그걸 써서 중지시키면 되잖아"
"그건 불가능해. 나한테도 하야마가의 일원으로서 책임이 있어"
말하는 모습은 멋지겠지만 요컨대 책임 지고 싶지 않으니까 대신에 너희들이 해라는걸로 밖에 말하지 않는다.
뭐야 그거, 눈깔사탕?
"즉, 이 상담은 너 자신이 유키노시타를 구하고 싶은것과, 유키노시타 누나의 생각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진다는 소린가?"
"후자에 관해서는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러냐, 그럼 거절이다"
"뭐!?"
"힛키!?"
내가 상담을 받지 않겠다는 것에 하야마는 놀라고, 유이가하마는 비난의 시선을 향한다.
"잠깐. 나는 봉사부의 단순한 부원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봉사부 전체의 의사는 결정할 수 없어.
그러니까 내가 상담을 받을 수 없다는건 어디까지나 나 개인의 견해다.
유이가하마가 받고 싶다면 받으면 되고, 봉사부 전체가 한다고 하면 거기에는 따르겠다"
"봉사부 전체라니……"
"그건 부장인 그 녀석이 결정할 일이겠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지금은 아무도 앉지 않은 자리를 본다.
"힛키!! 유키농을 걱정도 안 해!?"
걱정? 걱정이라는건 어느 정도 친밀한 사이에 있는 인간에게 생겨나는 감정이지,
부장과 부원 밖에 되지 않는 유키노시타와 나의 사이에는 그런 감정이 발생할리도 없다.
"유키노시타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할 수 없으면 우리들은 어찌할 수도 없다."
"하지만! 유키농 혼자서는 무리라도 다 같이 하면!"
"그걸 유키노시타가 바라고 있나?"
"그건……"
"유이가하마. 이건 어디까지나 부활동이야.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는 재판소가 아니야.
님의 가정에 쉽사리 파고 들어가서 좋은게 아냐"
"……………"
나의 반론에 유이가하마가 입을 다문다.
"히키가야"
하야마가 나를 부른다.
아무래도 좋지만, 너 '히키가야'와 '히키타니'의 구분 그만두지 않겠냐? 그거 비겁하잖아.
"……왜"
"나도 부외자지만, 가까운 사이인 하루노 누나의 상담이기도 해. 제발 부탁해"
그렇게 말하고 하야마가 고개를 숙인다.
하루노 씨 말하길, 이 녀석은 자존심이 높고, 고개를 숙이는 짓은 그다지 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벌써 두 번이나 고개를 숙이고 있다.
고개를 숙이면 뭐든지 해주는 인간형 로봇이라고 생각하고 있나.
"너는 왜 그렇게까지 필사적이야? 혹시…"
말하려던걸 직전에 멈춘다.
위험하다. 이건 남의 영역에 흙발로 내딛는 행위다.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다.
"…그런건 아니야"
하지만 하야마나는 내가 해야할 말을 추측해서 대답을 한다.
"이건…… 참회야"
참회라. 그럼 교회라도 가서 해라고.
애시당초 모두를 구한다는건 신님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해.
그게 불가능하다고 죄악감을 느끼는건 겸손을 넘어서 오만이다.
뭐, 그런걸 이 녀석에게 말해도 의미 없고, 말할 의리도 없다.
"어쨌든 나는 이 일은 수리하지 않아. 설령 이것이 유키노시타 누나의 의뢰라고 생각이라고 해도 말이다.
본인인 유키노시타의 의사를 모르는 이상, 나는 아무짓도 하지 않아"
"히키가야! ……아니, 그런 너이기 때문에 그녀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어이, 나를 지나치게 사지마. 나는 남에게 기대받고 싶지도 않고, 뭣하면 무시해줬으면 싶다.
"히키타니, 갑자기 찾아와서 무리한 소리를 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만약, 유키노시타가 도움을 바랄때는 아무쪼록 그녀의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고 하야마는 일어서서 부실에서 나갔다.
"힛키……"
"왜. 나한테 환멸했어?"
"나는 유키농이 도움을 바라지 않아도 유키농을 위해서 움직일거야"
그건 봉사부가 아니잖아.
그렇다. 유이가하마는 봉사부로서가 아니라 유키노시타의 친구로서 움직인다는 거겠지.
그에 비해, 나는……나는 유키노시타의 친구는 아니다. 두 번이나 친구 제안을 각하당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만약, 유키농이 곤란해하면 힘이 되어줄거지?"
"……그게 봉사부잖아"
"알았어. 그럼 그걸로 됐어. 응"
유이가하마는 뭘 납득했는지 응응 끄덕인다.
하야마가 가버린 뒤에는 특별히 이렇다할 일도 없어 평소 봉사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독서 중간에 입을 댄 홍차는, 식고나서 마셔보니 지독한 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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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동이 끝나 집에 돌아오고나서 나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유키노시타가 맞선이라.
역시 기업의 사장이며 현의회 의원이라는 부모라면, 빠른 시일 딸의 장래 반려를 정하고 싶은걸까.
그것이 단순한 부모의 마음이라면 딱히 나쁘지 않다.
하지만 유키노시타 자매의 이야기로보면 그런게 아니라………
그만그만.
내가 남의 가정 문제에 스스로 뛰어드는건 나답지 않다.
그야 유이가하마네 학생회정 선거에 관해서는 조금 사기를 쳐서 "코마치의 소원" 이라는걸로 내게 동기부여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준이 다르다.
설령 이번에도, 귀엽고 귀여운 코마치가 "오빠, 부탁해❤" 라고 말해도, 나는 움직일 수 없다.
일은 너무나도 섬세하고 중대한 문제다.
일개 학생이며 외톨이인 내가 간섭할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유키노시타 자신이 도움을 바라고 있다면, 나는
"오빠, 저녁 맛없어?"
테이블 반대편에 앉아있는 코마치가 묻는다.
"하? 그런거 아닌데"
"그치만, 젓가락 계속 멈춰있잖아"
"아아, 너무 맛있어서 실신했다"
"그거 반대로 위험해!"
"괜찮아, 이미 면역이 생겼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는 사무적으로 젓가락을 움직여 식사를 재개한다.
"또 걱정이야?"
또라니 뭐야. 내가 걱정하고 이쓴ㄴ건 나 자신의 취직처, 즉 장래의 기생처 정도다.
"딱히 아무것도 아냐"
"긍가"
그렇게 말하고 코마치도 식사를 재개한다.
결혼, 이라.
할지 어떨지도 모르고, 한다고 해도 한참 미래의 일이겠지.
그러니까 내게 있어 결혼이니 맞선이니 하는건 연이 먼 문제다.
코마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응? 왜? 오빠"
"아무것도 아냐"
이 녀석도 언젠간 결혼하겠지.
뭐
그렇게 되면 상대놈을 쳐죽여버릴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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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마가 상담하러 온 다음날, 오늘은 자면서 보내지 않았으니까 방과후가 된 순간에 누구보다도 빨리 교실에서 탈옥한다.
부실로 걷고 있으니 유키노시타가 오늘도 없을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 녀석은 당분간 쉰다고 했으니까 오늘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는 교무시에 가지 않고 직접 부실로 가서 문에 손을 댔다.
하지만 자물쇠가 잠겨 있어서 열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교무실로 향한다. 효율 중시인 내가 이런 두 번이나 수고를 겪게 되다니, 굴욕이다.
교무실로 들어가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열쇠를 받는다.
2일 연속으로 내가 간걸 선생님도 이상하게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나는 관계없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범위에서 유키노시타는 용건이 있어서 당분간 부활동은 나갈 수 없다는걸 전해뒀다.
교무실을 나와 부실 문을 열고 입실한다.
어제도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래도 유이가하마와 함께였다.
지금은 완벽하게 혼자였다.
부실은 어제보다도 넓고, 쌀쌀한 인상이었다.
유키노시타는 내가 입부하기까지 1년간, 여기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나.
반에서도 미움받고 있는건 아니겠지만 특정하게 친한 친구도 없다.
부활동에서도 혼자.
집도 홀로 자취.
그런 고독한 그녀를, 나는 쓸쓸한 녀석이니 슬픈 녀석이니 동정이니 연민이니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고고함이, 자아의 강함을 나는 좋다고 느끼고 있었다.
나와 그녀는 어딘가 닮아있는걸지도 모른다.
아니, 닮은것이 아니라 그녀는 나의 동경의 대상이다.
내가 갖고 싶어하던 것을 갖추고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카리스마 외톨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키노시타는 오늘도 없다.
나는 평소대로 정위치에 앉아 독서를 시작한다.
잠시 시간이 지나니 유이가하마도 찾아왔다.
"힛키, 얏하로"
"교실에는 같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치만 인사 안 했잖아"
"뭐, 그렇군"
유이가하마도 평소대로 내 맞은편 자리에, 유키노시타가 늘 앉아있는 자리 옆에 착석했다.
또 유이가하마가 홍차를 끓인다고 하기 전에 나는 물을 끓일 준비를 시작한다.
"오늘도 유키농 못 온대"
"그런가"
뭐, 나보다 일찍 부실에 오지 않은 시점에서 예상은 했었지만.
"어제, 유키농이랑 메일 했어"
"그러냐"
"그래서 말야……"
거기서 유이가하마가 말을 머뭇거린다.
"……유키농, 자기 문제니까 자기가 알아서 한대"
"………그러냐"
외톨이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한다. 아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주위에 도움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 만으로 세계는 완결하고 있어, 세계에서 생긴 일은 자신의 책임이며, 자신의 문제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할지는 자신에게 달려 있고, 그걸 남의 탓으로 하거나 공유하지는 않는다. 할 수 없다.
유키노시타도 외톨이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고독하고 고고하다.
자신의, 그것도 결혼같은 개인적인 문제로, 가족이 얽혀있게 되면 자기 스스로 어떻게든 하는것이 자연스런 흐름이다.
"유키농, 우리들을 의지해주지 않으려나"
"………그 녀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어렵겠지"
유키노시타의 성격이라니, 나도 대단한 소리를 하게 됐다.
이전에도 멋대로 유키노시타에게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한 실수를 했는데.
하지만 유키노시타하고도 반년 이상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전부를 알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녀를 전혀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정도로는 그녀와 관계를 가졌다.
지금같은 이 관계를 나는 정확하게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역시 부장과 부원이 가장 가까운 느낌이 들지만, 그렇지 않은 느낌도 든다.
"힛키, 우리들이 할 수 있는건 없을까"
"없겠지. 고작 고등학생이 뭘 할 수 있는데. 그것도 참견 말고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
"그렇긴 하지만……이대로 유키농이 싫은데 결혼하는건 싫어"
"유키노시타는 싫다고 말했냐"
"그건………일단 지금 당장 결혼할 생각은 없구,
상대는 스스로 찾겠다고 했으니까 맞선은 싫은게 아닐까"
"그러냐. 하지만 너, 전에 유키노시타가 의지해줄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잖아"
문화제 날에 유이가하마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건……그 일에 관해서야. 거기다 그 밖에도 유키농을 기다려주고 싶지만,
이번에는 기한이라는것도 있으니까 느긋하게 기다릴 수는 없어"
"기한은 언제까진데"
"이번주 주말"
빨라! 벌써 4일 밖에 없잖아.
정월이 밝자마자 맞선이라니, 부자가 생각하는건 잘 모르겠다.
"있잖아, 힛키. 유키농네 집에 가보지 않을래?"
"유키노시타의 집이라는건 어딘데. 혼자 자취하는데 말야"
"으응, 지금은 실가에서 학교로 오고 있대"
"무리, 부자의 집같은덴 긴장하잖아"
"그런 이유로!?"
"어쨌든 가서 뭐할건데. 상담해달라고 설득하러 갈거야?"
"그렇지 않으면 유키농, 분명히 혼자서 문제를 끌어안을거야"
"그만둬, 그 녀석이 그런 말 하나로 쉽사리 자신의 방식을 바꾸겠냐"
"힛키, 차갑지 않아?"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나는 차가운걸테지"
결국 세계는 주관으로 밖에 판단하지 않으니까, 네가 차갑다고 하면 나는 차가운 인간이라는게 되겠지.
"얼마전에는 우리들을 위해서 노력해줬잖아"
학생회 선거를 말하고 있는건가.
"그건 잇시키한테 온 의뢰를 대응한것 뿐이다"
그리고 코마치의 부탁이기도 했고.
나는 더 이상은 평행선이라 느껴서 책을 꺼낸다.
유이가하마도 내 의사를 읽고 그 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았다.
한 명은 독서를 하고, 한 명은 휴대폰을 뾱뾱거린다.
한 명이 부족한것 만으로 뭔가 수습되지 않은 공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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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즉 유키노시타의 맞선 3일 전에도 유키노시타는 부활동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이 그 녀석의 의사라면 그걸 존중하는 수 밖에 없다.
그 녀석이 없는 둘 만의 부활동은 평소대로 독서를 하고 끝났다.
집에 돌아오고나서도 평소처럼 칠칠맞게 보내고, 코마치가 준비해준 저녁을 먹고 목욕하러 들어갔다.
결국, 내 세계에는 아무도 없다.
유이가하마도, 유키노시타도, 하야마도 유키노시타 누나도, 아무도 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고, 간섭할 수 없다.
유키노시타가 부활동에 오든 말든, 맞선을 하든 결혼을 하든 나하고는 관계없다.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되든 평소대로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것이 의식적이더라도.
목욕에 들어가서 특별이 할것도 없이, 내 방에서 풀어져서 쉬고 있으니 휴대폰이 울기 시작했다.
어디서 온거지? 별로 울지 않으니까 의식해서 어딘가에 놓아두지는 않는다.
침대……이불을 뒤집어도 없고, 책상 위에도 없다. 물론 주머니에도.
더는 찾는게 귀찮아졌지만 휴대폰은 착신을 알리고 있다.
그럼 메일이 아니라 전화다.
무시할 수도 없어서 방을 찾아다니니, 문득 생각이 났다.
그러고보니 나, 집에 돌아오고나서 휴대폰을 만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해 교복주머니를 찾으니 휴대폰을 찾을 수 있었다.
화면을 보니 전화번호만 표시되어 있었다. 이름은 없다. 그럼 모르는 녀석한테 온 전화다.
이런 밤에 전화를 걸다니, 상식이 없는 놈이군. 설교 하나라도 해둘까.
"여보세요"
『앗! 늦잖아~!』
휴대폰에서 유키노시타와 어딘가 닮은, 하지만 어딘가 애교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에게 설교라니, 어떻게 하는건데? 나, 아직 죽고 싶지 않은데.
"………유키노시타 씨, 왜 제 휴대폰을 알고 있는 겁니까"
『네 동생한테 들었어~』
내 개인정보를 멋대로 악마한테 넘기다니, 교육이 필요하군.
"그렇습니까.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왜 아무것도 안 하니~?』
"………무슨 일 말이에요"
『유키노 말이야. 하야토한테 이야기는 들었찌?』
"네. 하야마한테 들었습니다"
『그럼 왜 아무것도 안 해?』
"반대로 왜 제가 뭔가를 할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듣고 싶네요"
『그치만, 유키노랑 사귀고 있잖아?』
"안 사귀어요"
『또 그런다~』
"아니, 정말이니까요"
『히키가야는 유키노를 좋아하지 않아?』
나는 유키노시타를 좋아하나-. 그런걸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나는 외톨이고, 내 안에 누군가를 부르는 발상 그 자체가 없었다.
"지금은 그런건 관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니까 나는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을 한다.
『관계 있어. 왜냐면 만약 좋아하게 되어도, 유키노는 맞선해버리고나면 이미 늦어버린다구?』
"늦어버린다니……맞선이라고해도 그대로 결혼하게 되는건…"
『될거야』
"……네?"
『될거야. 보통 맞선이라면 상성이 맞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우리 경우…엄마의 경우엔 되지 않아. 있을 수 없어』
즉, 뭐야. 이번에 유키노시타의 맞선은 단순한 얼굴 익히기이며, 결혼까지 성공 스토리는 정해져있다고 하는건가?
『그러니까, 서두르지 않으면 늦어버리게 될거야』
내 안에 시커먼 감정이 배여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분노다.
하지만 여기서 하루노 씨에게 해본들 의미는 없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나 자신을 진정시킨다.
"유키노시타 씨는………"
『응?』
"유키노시타 씨의 목적은 뭡니까?"
『비미일~~❤ 여자애는 비밀이 많은 편이 매력적이니까』
"유키노시타를 위해서입니까?"
『물론! 유키노는 어쨌든간에 나의 귀여운 동생이니까』
"당신은……실은 남에게 흥미가 없는거 아닙니까?"
『……헤에, 왜 그렇게 생각하니?』
"무슨 일이든 혼자서 가능하니까요"
『풋……아하하하! 정답이야』
맞췄나.
내 경우엔 남에게 흥미가 없는건 아니다. 단순히 남과 관여하는걸 싫으니까 혼자 있는것 뿐이다.
하지만 혼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것과는 또 다르다, 남이라는건 불필요한겐 아닌가하고.
메릿트와 디메릿트, 필요성과 무요성, 그것들로 생각해가면 혼자서 뭐든 할 수 있는 경우, 남은 필요 없게 된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녀석은 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혼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녀석은 남의 조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즉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기에, 세상을 혼자서 돌릴 수 있기에 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잘도 알았네』
"시작은 다르지만 저도 외톨이니까요. 그런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응…… 맞아. 나는 남에게 흥미가 없어』
그래, 남에게 흥미가 없다.
하야마는 하루노 씨를 가리켜 '좋아하는 것을 지나치게 간섭해서 죽이거나, 싫은것을 철저하게 부숴버리는것 밖에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흥미가 없는것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고도.
그리고 남은 자신을 즐겁게 하는 존재, 이른바 장난감 같은것 밖에 되지 않는것이다.
그것이 호의적인 행동이 되는지, 부순다는 적대적 행위가 되는지 차이는 있어도,
그녀의 안에서는 마찬가지로 무가치하며, 마찬가지로 향락적인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 하루노 씨는 철저하게 다른 점이 있다.
가족이다.
나는 자위를 위해서 남의 간섭을 피하고 있는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점에서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이다.
그러니까 나는 가족을 상대로 실수를 하고, 싸움을 하고, 화를 내고, 사랑을 한다.
하지만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다르다.
'가족'마저 그녀에게 있어선 무가치할 것이다.
그럼 왜 그녀가 동생인 유키노시타를 '신경쓰는'가.
"유키노시타 씨는 왜 동생을 그런식으로 신경쓰는겁니까?"
『그것도 추리해봐』
"………결국은 유키노시타 씨 자신이 즐겁기 때문이 아닙니까?"
『즐거워?』
"그래요. 유키노시타가 과민하게 의식하고,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가 남에게 있다는걸 만족하고 있다.
그걸 유키노시타가 성장해서 자신의 대항마가 되어주면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아닌가요?"
『응~ 거의 정답일까』
"거의, 라는건?"
『이유를 지금 내가 말하면, 그걸 믿을 수 있니?』
"……아뇨"
『후후,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의미없어. 뭐, 그것도 추리해봐』
"그렇습니까. 그럼 거기도 생각해두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를 본 궤도로 돌리고 싶네요. 왜 이번 일에 저를 관여시키려고 하는거에요?"
『이미 알고 있잖아?』
"……유키노시타의 반응을 보고 즐기기 위해, 입니까?"
『명다압~, 이야- 역시 히키가야는 재미있네. 너랑 유키노는 신경쓰면 재미있으니까 좋아해❤
이렇게까지 알고 있다면 더는 괜찮겠어. 남은건 히키가야에게 맡길게~』
"……일단 확인할게요. 이딴 수작에서 물러난다는건"
『믓흣흐~~ 할 수 있다면 해도 좋아❤』
"………알겠어요"
『자 그러면~ 그런걸로 힘내~』
그렇게 말하고 하루노 씨가 전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책상에 두고, 침대에 누우니 자신이 무척이나 지쳐있다는걸 잘 알았다.
나는 정말로 나의 자유의사로 말했던걸까.
아니면 유키노시타 하루노에게 놀아난것일까.
그것도, 일부러 내가 도달하도록 지금까지 힌트를 뿌려둔게 아닌가……
이렇게 번거롭게 고민하는것도 그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하는걸 포기하고, 의식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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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노시타의 맞선 2일 전, 즉 오늘은 금요일이며 이번주 학교는 이걸로 마지막이다.
이걸 놓치면 내일부터는 학교에서 만날 수 없고, 그녀의 연락처를 모르는 나는 더 이상 손 쓸 수는 없다는게 된다.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가.
오늘 하루 생각했다.
봉사부의 부장과 부원이며, 반년간 부활동을 함께 보내어, 그녀를 보아왔다.
그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내게 있어 어떠한 존재인가.
남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가깝다.
친구라고 하기에는 멀다.
그런 미묘한 거리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나는,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나치게 상처입어, 상처입는데 익숙해져, 남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된 나는 그녀에게 바라고 있다.
진실된 것을.
이건 하야마나 하루노 씨의 의뢰가 아니다.
코마치의 부탁도 아니다.
나 자신이 생각하고, 나 자신이 바란 것이다.
그렇게 결심하면 우선 그녀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유키노시타는 방과후 바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붙잡으려면 방과후가 된 순간 밖에 없다.
하지만 누구 반의 홈룸이 먼저 끝날지는 모르고,
서둘러 유키노시타의 반으로 가도 먼저 그녀가 나가버렸을 위험도 있다.
나는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짐을 두고 화장실에 틀어박혔다.
짐을 놔둔다는것으로 아직 학교에는 있다,즉 멋대로 집에 간건 아니다는 사실을 어필.
그런데다 화장실에 있다면 딱히 혼날일도 없다.
HR이 시작될 시간이 되어, 그리고나서 5분 정도 뒤에 밖으로 나와봤다.
복도에 소란은 아직 퍼지지 않았다.
나는 가능한 눈에 띄지 않도록, 즉 평소대로 걸어 유키노시타의 J반 쪽으로 향한다.
평소부터 은밀행동이라니, 뭐야 그거 호카게?
J반의 앞에는 계단이 있다. 나는 그 계단의 층계참에 몸을 숨겼다.
잠시 기다리니 J반에서 학생이 나온다. 홈룸이 끝난 모양이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카디건을 입은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나왔다.
그녀의 얼굴을 보는건 언제 이래로일까.
그녀는 평소대로 등을 쫙 피며, 접근하기 어려운 늠름한 분위기를 내며 복도를 걷는다.
얼굴에는 조금 피로가 보였다. 문화제때에도 본 얼굴이다.
피로를 남에게는 일절 들키게 하지 않는. 평소처럼 보이는 유키노시타가 계단을 내려왔다.
"……여"
"…………"
그리고 유키노시타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어? 무시한다니, 너무하지 않아!?
나는 황급히 유키노시타의 뒤를 쫓는다.
"어이, 유키노시타. 무시하다니 너는 초등학생이냐"
이름을 부르니 그녀가 돌아본다.
내 얼굴을 보고 그녀는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여, 오래간만이군"
"……그래, 오래간만이구나. 그래서 무슨 일이니"
"오늘도 부활동은 안 오는거냐?"
"그래, 집안 사정으로 실가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런가, 하지만 미안하게도 지금 당장 너를 보낼 수는 없다"
"그건 어째서니"
"너랑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게 있으니까"
"이야기?"
"이번주 주말에 대해서다"
이런 사람이 오가는 복도에서 '맞선'이니 말하면 단번에 소란이 일어나고 만다.
"………너하고는 관계 없는 일이야"
"아아, 관계없어. 관계없지만, 관계 있는 일이다"
"심하게 자기모순을 하고 있구나"
"괜찮아. 내 안에선 틀린게 없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물러날 생각은 없니?"
"이대로 네가 집에 가면 하루노 씨한테 부탁해서네 집으로 갈거다"
"왜 언니랑……"
"그 쪽에서 연락을 해왔어. 내가 연락한게 아냐"
"……후우, 집에 돌아오고나서도 네 탁한 눈과 언니의 참견을 상대하다니. 그 이상의 고문은 없구나"
이런, 나의 사안이 고문 수준까지 도달해버렸다.
옛날에 얼마나 사왕염살 흑룡파 연습을 해도 나가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면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망이나 증오로.
유키노시타는 휴대폰을 꺼내들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대화를 듣는 악취미적인 짓은 하고 싶지 않지만,
'츠즈키'라고 들리니까 그 운전수에게 연락을 하고 있는걸까.
"기다렸지. 그럼 가보도록 할까"
그렇게 말하고 유키노시타가 걸어간다.
"잠깐잠깐, 너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거야"
"어디냐니, 부실인데"
"부실에 가면 유이가하마가 올거 아냐"
"무슨 문제가?"
"문제밖에 없지. 그 녀석이 오면 이야기가 될거라 생각해?"
그 녀석이다. 울며불며 맞선 그만해, 우리를 의지해라고 소란을 피우겠지.
"………확실히 그렇구나"
유키노시타도 납득해줬다. 그 녀석 얼마나 전화를 해대는거야.
"그럼 어디로 갈가"
"사람이 없고 조용한데다 대화 OK한 장소……옥상 정도인가?"
"옥상? 문이 잠겨 있잖니"
"아니, 한 군대 망가진 곳이 있으니까 거기로 들어갈 수 있어"
"친구가 없는데도 자세하구나"
"외톨이한테도 외톨이 나름대로 정보망이 있다고"
라고할까, 여자들 사이에선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너, 여자 아냐?
"그래. 그럼 옥상으로 갈까"
그렇게 말하고 유키노시타가 먼저 걸어간다.
하지만 저 녀석에게 중앙현관이라고 말해도 통할리가 없다. 확실하게 길 잃는다. 학교에서 조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추월해서 앞지른다.
이렇게 되니까, 유이가하마에게 오늘 부활동을 쉰다고 메일을 넣는다.
중앙계단을 올라 옥상으로 이어지는 문 앞으로.
문에는 이전에 왓을때와 마찬가지로 망가진 자물쇠가 늘어져 있어, 나는 힘을 써서 그걸 잡아당겨서 문을 열었다.
유키노시타와 둘이서 옥상으로 간다.
"그래서, 네 용건은?"
도착하자마자 유키노시타가 말을 꺼냈다.
그런 군살 없는 점이 좋다. 이쪽도 서두를 하지 않아도 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마. 너는 맞선을 하고 싶어?"
"………너하고는 관계 없어"
"미안하지만 봉사부에 의뢰가 왔다"
"…………하야마구나"
"그리고 네 언니한테"
"언니한테? ……왜 또"
지금 여기서 하루노 씨의 생각을 피로할 필요성은 없다.
"글쎄. 하지만 둘에게 의뢰가 온 이상, 일단 부활동은 하지 않으면 안 되지"
이런건 거짓말이다.
나는 유이가하마나 하야마에게 말한듯, 단순한 봉사부 활동으로서라면 이 문제에 고개를 들이댈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걸 뒤집고 있다.
뭐, 그 이유를 말할 필요도 없고,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맞선에 대해선 내 쪽에서 어떻게든 할게"
"어떻게든 하겠다는건 원하지는 않는다는 소리냐?"
"당연하잖니. 고등학교 2학년에 맞선이라니, 바보같은 소리야"
그런가. 유이가하마가 말한듯이 유키노시타는 맞선에 적극적이지 않다고.
그럼 맞선을 방해해도 이 녀석의 의사에는 반하지 않는다.
"그럼 왜 유이가하마나 봉사부에 도움을 안 바라는거야"
"왜냐니, 이런 개인적인 일로 유이가하마네한테 의지할 수는 없잖니"
네라는건 나도 포함 되어 있는건가.
"유이가하마도 말했겠지만, 의지할 수 없다는것도 힘들다"
의지한다는건 신뢰의 표현이다. 즉, 우리들은 유키노시타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는게 된다. 보통이라면.
"그런건 아니야……그녀에게도 그런 말을 했지만"
그렇다. 유키노시타는 의지하지 않는게 아니다. 의지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지금까지 무슨 일이든 혼자서 도전하고, 혼자서 대처해온 그녀는 남을 의지하는 방법을 모른다.
문화제때에는 유이가하마와 나에게 조금 부탁을 했지만, 그 이래로 그녀가 의지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냐. 그럼 나를 사용해라"
그러니까, 나는 그녀에게 도주로를 만들어준다.
"사용해?"
"그래. 도구처럼 쓰면 돼. 의지하는게 아니라"
"그건 말장난이야"
"본질적으로 다르지. 의지한다는건 상대에게 맡기는 행위다. 사용하는거라면 거기에 내 의사는 없다.
어떻게 사용할지는 너에게 달려있지"
"하지만, 유이가하마를 도구처럼"
"그러니까 말했잖아. 나를 사용하라고. 유이가하마나 봉사부는 관계없어. 나 개인 뿐이다"
"어째서……"
유키노시타의 눈이 내 눈동자를 쳐다본다.
나는 그 아름다운 눈에서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왜, 네가 그렇게까지 하는거니?"
"……의뢰가 있었으니까"
"그래……하지만, 쓴다고 해도 이런 쓰레기"
"어이, 남을 쓰레기 취급하다니, 무슨 생각이냐"
"미안해, 실례였구나. 쓰레기에도 이용가치는 있는걸"
쓰레기에한테 실례라니. 나한테는 실례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즉, 재이용 가치도 없는 쓰레기보다도 덜떨어지는 존재, 그것이 나. 히키가야 하치만이다.
그럼 쓰레기 이하의 나는 쓰고 버려도 되겠지.
"그런 나라면 무슨 일을 해도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않겠지"
"………네가 상처입으면서 문제를 해결 혹은 해소한다는건 각하야"
그러고보니 수핵여행에서도,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지만, 네 방식은 싫다고 어린애의 생떼같은 소리를 들었었지.
"그럼 문제 없어. 그런 방법은 이미 포기했으니까"
"………그래. 그럼 이번에는 어떻게 해결해줄거니"
"그건 지금부터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니 유키노시타가 관자놀이에 손을 대고 한숨을 쉬었다.
아니, 그치만 네가 거절하면 생각해본들 칼로리 낭비잖아.
"그래서? 결국 너는 나를 사용할거야? 쓰고 버릴거야?"
"남듣기 거북한 소리 하지 말아주겠니. 하지만 그러훅나. 이번에는 너를 이용하도록 할게"
그렇게 말한 유키노시타는 평소보다 부드러운, 하지만 조금 피로의 색이 보이는 미소를 내게 보여줬다.
다행이다. 늦지는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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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란 비극의 시작이다.
현실에 충실하고 있는 자들은 만남에 희망을 보고, 그리고 그 만남으로 잃은것에서 시선을 돌려, 손에 넣은 것을 과시한다.
마치 자신의 만남이 후세에 퍼져야할 멋진것이라고 고쳐쓴다.
그 모습은 사기로 가득차 있어서 해학스럽기까지 한다.
누군가와 만남은 반드시 무언가를 잃는다.
예를 들면, 자신과 맞지 않는 인간과 만났다고 하자.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은 괴로움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사람과 보내기 위해서 싫어도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헛쓰게 된다. 그리고 아마 스트레스로 머리카락도 잃는다.
예를 들면 자신과 맞는 사람과 만났다고 하자.
그 사람과 보낸 시간은 분명 즐거웠을 것이다.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추억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인생의 종착점이 죽음인 이상, 반드시 이별은 찾아온다.
그것이 죽음에 의한 이별인지, 아니면 다른 별볼일 없는 어긋남으로 인한 이별인지는 모른다.
그래도, 소중한 사람과 이별은 괴롭고 슬픈 것이다. 그러니까 분명 그 충격으로 여러가지로 잃는 것이다.
즉, 만남을 거부하는 외톨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으로부터 동떨어진 존재이며, 동시에 이 세상에서 가장 머리카락에 다정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한 때의 망설임으로부터 남과 인연을 구하지 않으면 안 될때도 있다.
그러니까 뭐……가끔은 남과 만남이라는것도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옥상에서 이야기를 나눈 후, 유키노시타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로서는 조금 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귀가가 늦어지면 여러모로 번거로운 모양이다.
유키노시타는 지금 연금상태인 것이다.
그런고로 집에 돌아오고나서 전화로 얘기하게 됐다.
내 휴대폰 주소록에는『유키노시타 유키노』라는 문자가 새로 추가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욕실로 들어가, 해야할 일이 없어진 상태로 유키노시타에게 메일을 보낸다.
그러자 전화가 걸려왔다.
『여, 여보세요』
"어"
『이제 괜찮은 모양이구나』
"아아, 이쪽은. 그쪽은?"
『그래, 이쪽도 괜찮아』
"그럼 작전회의를 해볼까. 우선 지장되지 않는다면 현재 상황 파악을 하고 싶다"
『그래, 그렇구나. 특별히 묵비사항이 있는건 아니니, 무슨 일이든 물어봐도 상관없어』
"그런가, 그럼 우선……왜 맞선이지?"
『왜…… 그렇구나. 내가 차녀이고, 이제 곧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까 그러려나』
차녀니까. 3학년이 되니까.
하지만 이 두가지 사실이 어떻게 맞선까지 이론비약할 수 있는걸까.
"미안, 나로선 잘 모르겠다. 왜 차녀인데다 3학년이라면 맞선인거지?"
『……우리 집은 딱히 명가도 유서깊은 가계도 아니야. 할아버지의 토건업이 성공해서 신흥융기한 수준의 집이야.
그러니까 딱히 엘리트 사고가 강한것도 아니고, 뭐라고 하면 좋을까………집안 사람들도 생각방식이 낡아빠졌어』
"낡아빠졌다라. 즉 여자는 가정에 넣지 않는다는 소린가?"
『하아………그런거야. 이상하게 학력을 갖고 있는것도, 남성에게 경원당할 이유가 되니까 대학진학은 필요없을거라고 생각하는거야. 그 사람은』
유키노시타의 한숨이 그녀의 깊은 피로를 말하고 있었다.
그 사람……복수형이 아니라는 것은 아버지는 딱히 찬성하고 있지는 않는다는건가.
"하지만 네 언니는 대학에 갔잖아"
『그건………언니는 특별해. 유키노시타 가를 잇게 되니까, 전문적인 지식도 필요해져』
"데릴사위를 받아들이면 끝날것 같은 이야기로군"
『데릴사위는 어디까지나 언니의 보좌야. 회사를 살리는것도, 아버지의 지반을 있는것도 언니가 될거야』
하루노 씨가 그러고보니 그런 말을 했었지.
파티에 출석하는건 기본적으로 자신이며, 유키노시타는 대역으로 출석하는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건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기 위해, 라던가.
그럼 유키노시타의 지나치게 이른 결혼도 그런 의미가 있는걸지도 모른다.
"그런가. 그래서 너는 당연히 부모님과 이야기를 했겠지"
『그래………전혀라고 할 만큼 의미는 없었지만』
"뭐라고 설득했어?"
『평범하게 설득했어. 대학에는 진학하고 싶고, 맞선도 지금 할 생각은 없다고』
"그래서? 부모님은 뭐라고 했는데?"
『………생떼 부리지 말라고』
생떼라.
그야 돈도 없는데 대학에 보내달라고 하는건 생떼라고 할 수 있겠지만, 돈 넘치잖아. 댁의 집.
즉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생떼』라는건가. 쩌는구만, 유키노시타의 엄마.
"일단 확인하겠는데, 상대에 대해선 알고 있어?"
『그래, 몇번 만난적은 있어』
"그러냐. 그럼 네 입장으로 결혼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상대는 아니야?"
『무슨 농담을. 상대는 벌써 30대 중반이야』
어………엄청나게 정략결혼 냄새가 난다.
"아버지는 뭐라고 했는데"
『아버지는 아무 말도. 어머니에겐 의견도 못 내니까』
하루노 씨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보조역이라고 했었지. 그럼 아버지가 어떻게 하는건 어렵나.
뭐랄까 이거………방법은 없나.
아
"있잖아, 즉 네 부모님은 유키노시타가에 있어서 플러스가 되는 좋은 연이면 되는거잖아?"
『뭐, 단적으로 말하면 그렇게 될거야』
"그럼 하야마는 어떤데"
『하야마?』
"그래, 너네 집에 관계가 있으면서 부모님도 변호사와 의사다. 하야마 자신도 문무양도, 용모단련 덤으로 성격도 좋다.
이런 하이 스펙인 자식이 남친이라면 네 부모님도 아무 말도 안 하지 않겠어?
그럼 하야마랑 사귀는 척을 해서……"
『그렇구나. 그는 우리 부모님도 마음에 들어하니까. 하지만 안 돼. 그는 언니와 약혼하니까』
어린시절부터 약혼? 란마 정도 밖에 들은적 없다고.
그보다 그 녀석, 결국엔 하루노 씨랑 결혼하는거냐. 진짜 쩌는구만.
―유키노는 또 선택받지 못하는구나
불꽃놀이 대회 날에 하루노 씨가 그런 말을 했었지.
가슴이 따끔 아프다.
지금은 그런건 관계없다.
『그래서, 무슨 방법은 있는거니』
일단 생각할 수 있는건 상대를 함정에 빠뜨릴 방법이려나. 가쉽이니 뭐니 만들면 된다.
나는 모르는 녀석이고, 이 녀석이 어떻게 될지 알바 아니다. 하지만 현재 고등학교 2학년인 여자에게 손을 대려고 하니까 로리콘이겠지.
그저 이번 맞선을 회피해도 다음 맞선이 설정될 뿐이라 결국 멤돌게 된다.
남은건 좋은 남자와 유키노시타가 사귀는 것이다.
딱히, 그건 정말로 사귀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실재로 없어도 된다.
어머니에게 맞선의 메릿트가 없다고 판단하게 하면 충분하다.
뭣하면 내가 어딘가의 대기업의 상속인이고 유명대학 재학이라던가 그런 허풍도 좋다.
남은건 들키지 않도록 여러모로 보강해서 가면 모레 맞선 정도는 회피할 수 있다.
『히키가야, 방과후에도 말했지만 네가 상처입는 방법은 안 돼.
거기다 나는 그런 문제 해결을 바라는건 아니야.
가능하면 이 문제가 영원히 나오지 않도록 하고 싶고, 거기다 가능하면 가족 관계도 한번에 어떻게든 하고 싶어』
"그런 말을 하면……절연한다거나"
『나는 가족을 거북해하기는 하지만 싫은건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 수단은 하고 싶지 않아』
"그럼 이야기 해보는 정도 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역시 그렇게 되는구나』
"하지만 어머니와 이야기를 해도 어떻게 되지 않았잖아?"
『그래. 결국 그 사람에게 있어 나는 소유물 중 하나인거지』
그야, 어머니는 많은 가정에서 잔소리가 많은 존재니까.
공부해라거나, 옷을 뒤집어서 벗으라거나, 눈이 탁하니까 먼데 보고있으라거나.
하지만 그런건 소유욕의 표현이 아니다. 부모로서의 책무와 애정에서 온 행동이다.
하지만 유키노시타 가는 다른 모양이다. 지배하고, 관리하에 두고, 소유물처럼 다룬다.
이쪽을 길러질 입장이니까 부모가 하는 말을 들으라는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들은 도구도 장난감도 아니다.
한 명의 인격을 가진 인간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멋대로 낳은거니까 독립할때까지 돌봐주는게 부모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성적우수하고 체력이 없지만 운동도 잘 하고, 모든 예술이나 문화에 정통하며, 용모도 수려하다.
그런 유키노시타의 뭉서이 불만인걸까.
"너는………부모님에게 반항한 적이 없는거겠지"
『어? 있어. 실제로 지금도 반항하고 있잖니』
"그건 반항이 아냐. 응전하고 있는것 뿐이다"
『뭐가 다른거니』
"아이의 저항이라는건 불합리하여 의미불명하고 자기멋대로라고.
그러는 점에서 네가 하고 있는건 부모가 준비해준 무대위에 올라서 승부하는것 뿐이잖아"
『……의미를 잘 모르겠어』
이 녀석은 지금까지 어머니에게 소유물처럼 지배되었을 뿐이지 '유키노시타 유키노' 개인으로서 보여진적이 없었던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보다 우수해지려고, 보다 소유물로서 가치가 있다고 힘내온게 아닐까.
그 결과, 언니에게 동경을 품고, 선망하고, 질투하고, 적대해왔다.
보다 소유물로서 의미가 있기 위해.
하지만 하루노 씨는 유키노시타보다 세 살이나 많다.
빨리 태어난것마저 능력차이가 생기는데 셋이나 차이가 나면 승산은 없다.
그런데 이 녀석은 우직하기까지 노력하고, 승부하고, 패배해왔다.
이 녀석이야말로, 지금의 자신을 인정해야하는 것이다.
나의 어리광같은게 아니라.
그건 도망치는게 아니다. 패배도 아니다.
지금 있는 자신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것 뿐이다.
노력한다면 하면 된다.
높은곳을 지향한다면 지향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금의 자신을 없었던 것으로는 할 수 없다. 해서도 안 된다.
"나는………지금의 너여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갑자기 무슨 소리니. 기분 나빠』
"네 목표는 부모님에게 인정받는거야?"
『목표………』
"그래. 너는 뭘 위해서 노력한거지? 뭘 위해서 언니에게 대항한거야?"
『그건………나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야』
"자기탁마냐? 하고 있는건 숭고하더라도 동기는 스위츠나 마찬가지잖아"
『스위츠?』
"머리속이 꽃밭이라는 소리다"
『바보 취급하는거니?』
어이, 그만해. 무서운 소리 내지마. 싸버리잖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면 말이다, 유키노시타. 좀 더 생떼를 부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생떼……』
"너, 부모님께 생떼부린적 없지. 늘 착한 아이로 있으려고 했을거 아냐"
『딱히,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의미도 없는데 부모가 하는 말에 칼날을 들이대거나, 거스르거나, 무시한 적은 있어?"
『어렸을때는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크고나서는……없어』
"그렇겠지. 그러니까 네 부모도 소유물처럼 너를 마음대로 하는거야"
『무슨 소리니』
"우선 말을 듣지 않는 녀석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할 수 없으니까 지배하거나 관리하에 두기 어려워.
거기다, 그렇게 마음대로 행동하는 녀석을 이용할 메릿트가 없어.
예를 들어 파티에서 너를 남과 붙이려고 하는 차에, 네가 뚱딴지 같은 짓을 하면 유키노시타의 엄마 평판이 떨어지겠지.
자신의 평판을 떨어뜨리는걸 지배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을테니까"
『확실히 그렇구나』
"즉,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고 하면……
좀 더 생떼를 부려서 좀 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나는.
부모가 하는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될 때도 있겠지만, 그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겠지.
결혼이라는건 당사자의 자유의사로 정하는거지, 부모가 멋대로 정해서 좋을게 아냐.
거기다"
『거기다?』
"부모는 멋대로 우리를 낳은거니까 어른이 될때까지는 우리를 키울 의무가 있어.
조금 정도의 생떼를 허용치 않는건 부모의 책무를 포기하는것 뿐이다"
『………부모의 책무라는게 있는걸까』
"있어. 우리들 아이도 아이의 책무가 있어. 그럼 부모도 마찬가지로 권리와 의무가 있지"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
그렇겠지. 물건취급 당했으니까 미움받지 않도록, 버려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되는게 보통이다.
네글렉트나 DV가 있어도 아이가 부모를 실어하지 않는 이유는 그거다.
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신이며, 세계이며, 모든것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싫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받을 수 있도록, 버림받지 않도록 필사적이게 된다.
"그래서, 반항을 하면 네 부모는 어떻게 될까. 이걸로 절연된다고 하면 그런 수단은 쓸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으니까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는 안 되지 않을까.
혼자서 자취하는것도 이래저래 인정해줬고, 거기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무르니까』
흠, 그럼 자금적인 원조가 없어진다거나 절연되는 걱정은 없을것 같군.
"어떡할래. 나로서는 반항해서 마음대로는 안 된다는걸 어머니가 인식하게 하는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구나. 지금까지 어머니가 제시하는 조건하에서만 줄곧 결과를 바랬던것 같지만,
이걸 계속해도 결국은 어머니의 지배하에선 도망칠 수 없구나.
반항………해볼까』
"어떻게 할지는 너에게 달려있어"
무책임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만큼은 내가 결정할 수는 없다.
유키노시타와 부모의 관계가 틀어질 위험도 있고, 그렇게 됐을 경우 나는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러니까 유키노시타가 스스로 정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수 밖에 없다.
『결심했어. 나, 가출할래』
"아아, 그러냐. 그것도 좋겠………가출?"
『그래. 나, 한번 해보고 싶었어』
이런, 유키노시타 씨가 뭔가 시원스러워졌다.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가출은 아무리 그래도 지나친거 아니냐"
『그러니. 그치만 이대로 집에 있으면 일요일에는 맞선에 끌려가게 될 뿐이고, 혼자 자취하는 집도 위치가 알려져 있으니까 결국은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일단 맞선을 무시하려면 가출하는 수 밖에 없어』
"가출하는 수 밖에 없다니……너는 이야기해서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거 아니었냐고"
『어머,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내가 어떤 요구를 하든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한번 가출을 해서, 나의 의사가 굳다는것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 가출을 하겠다는걸 보여줄 필요가 있어』
말하고 있는건 틀린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하고 있는건 유치하기 짝이 없다.
"가출한다고 해도 어떡할건데. 호텔을 전전할 생각이냐? 돈은?
숙박 장부는 가명이야? 유키노시타 가가 너를 찾아낼 가능성은? 학교는?"
『돈은……어떻게 할까. 카드를 막힐지도 몰라.
그리고 학교에 가면 집 사람이 분명 맞이하러 오겠지』
"계속 학교를 빼먹을 수도 없잖아"
『그럼 데리고 돌아갈때까지여도 좋아.
일단 이번주 주말을 넘기면 또 맞선 일정을 잡는데 시간이 걸릴테니까, 그 사이에 교섭할 기회를 만들 수 있을거야』
"그럼 일단 이번주 주말을 보낼 장소가 필요하겠군"
『그래, 그렇구나. 그럼 지금부터 네 집으로 갈게』
………………………헤?
"아니아니아니, 무슨 농담을"
『농담 같은게 아니야』
"여자사람 친구의 집으로 가라고"
『없어』
그러고보니 이 녀석도 외톨이었다.
"아, 유이가하마 있잖아"
『그녀에게 폐를 끼칠 수 없어』
"어, 나는? 나한테는 폐를 끼쳐도 돼?"
『이건 네가 말한거니까, 책임을 져야지』
"아니, 나 한 마디도 가출해라고 한적은 없는데…"
『너, 말했잖니. 나를 이용해라고』
"……………하아, 알았어"
실은 무엇 하나 모른다.
그 녀석이 오면 가족이 어떻게 반응을 할지나, 정말로 저 녀석을 재워도 될지나.
하지만 이제 생각하는건 지쳤다.
무턱대고 남의 일에 고개를 내민거다.
이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될대로 되라.
『나는 코마치의 친구라고 말하는 편이 좋을거야. 히키가야, 코마치에게 협력요청을 해줘』
"예이예이……"
뭐냐고, 협력 요청이라니. 왜 분위기를 탄건데.
『그럼 지금부터 준비해서 그리로 갈게』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휴대폰과 자신의 몸을 침대에 던지고 크게 한숨을 쉰다.
겨우 10분 정도 전까지 이런일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일단 코마치에게 부탁하러 갈까.
정말로, 유키노시타 자매에겐 이후 관여하는거 그만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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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고 1시간 후, 캐리어 백을 끌며 유키노시타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현관에서 코마치와 둘이서 유키노시타를 맞이한다.
진짜로 왔습니다, 이 사람.
인사도 적당히 하고 거실을 통과한다.
거기에는 우리 부모님이.
세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았다.
일단 가정 사정으로 며칠간 재워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을 했다. 코마치가.
그러자 코마치 LOVE인 부모님한테선 두 말은 커녕 즉시 좋다는 대답을 받았다.
너무 무르잖아.
그러니까 유키노시타로부터 정중한 인사를 받은 부모님은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면담은 바로 끝났다.
일단 유키노시타는 며칠간 코마치의 방에서 생활하게 됐다.
코마치와 유키노시타가 코마치의 방에 틀어박힌 후, 내 방으로 돌아와 있던 내 방의 문이 노크를 했다.
"들어와"
"실례할게"
들어온건 유키노시타였다.
"너 정말로 왔구나"
"그래………그보다도"
"아아, 미안. 남자의 방이란건 익숙치 않겠지. 거실로"
"카마쿠라는 어디에 있니"
………너, 뭐하러 온거야. 왜 평범하게 남의 집을 엔조이 하고 있는거야.
"카마쿠라는 이 방에는 없어. 있다고 하면 거실이지"
"그래. 그럼 데려와주지 않겠니"
눈이 진심이었다. 예 혹은 yes밖에 들을것 같지 않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거실로 가서, 우냐- 하며 싫어하는 카마쿠라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
"자"
그렇게 말하고 카마쿠라를 유키노시타에게 건낸다.
그녀는 그때까지 무뚝뚝했던 표정에서 단번에 데레노시타로 변했다.
그냥 너, 계속 고양이 안고 일상생활을 보내주라.
"그래서? 너는 카마쿠라를 원했던것 뿐이야? 그럼 이제 코마치의 방으로 돌아가"
"아니, 조금 이야기해야하나 싶어서"
"뭐, 그렇군. 가만히 서있는것도 뭐하니까 어디 적당하게 앉아줘"
유키노시타는 방 안을 두리번두리번 돌아본 후에 침대에 포근 앉았다.
………이, 이상하게 의식하진 않았거든!?
"그래서? 뭐 마실건 필요해?"
"아니, 괜찮아"
"그러냐. 그보다 제대로 메모가 되는건 하고 왔겠지"
"괜찮아. 당분간 집을 나갈테니까 찾지 말라는 메모를 하고 왔어"
"그래도 내일이 되면 전화가 빵빵 울겠지만 말야. 그보다, 잘도 나올 수 있었구만"
"딱히 24시간 내내 감시받고 있는것도 아니고, 수위가 서 있는것도 아니니 나오는건 간단해"
뭐, 그 만큼 유키노시타가 반항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진짜로 어떡할 생각이야?"
"어떡하겠냐니?"
"일요일 맞선은?"
"안 갈거야"
"학교는?"
"여기서 갈게. 교복도 갖고왔는걸"
"……언제까지 이 생활을 계속할 생각이야"
"글쎄? 일요일이 지나면 혼자 자취하는 집에 돌아가도 좋을지도 몰라.
데릴러 온다한들 맞선은 끝났을테니까"
어이, 대화할때는 제대로 상대의 얼굴을 봐.
카마쿠라만 보고 있잖아.
왠지 유키노시타의 분위기가 변한것 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는 누구도 접근하지 않겠다는 늠름한 분위기를 띄우며, 실이 팽팽하게 연결된 느낌이라,
자칫하면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법한 긴장감, 위태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긴장의 실이 풀어져버린듯한 칠칠맞지 못한 모습이다.
이것이 카마쿠라의 마력에 의한것인지, 어머니와 관계에 지친건지는 모른다.
유키노시타는 지금은 침대에 엎드린 카마쿠라와 얘기하는데 바쁜 모양이다.
냐앙 냐앙 거리며 카마쿠라에게 상담하고 있었다. 나, 필요없잖아.
"너, 혼자 있는 편이 좋아?"
"어?"
"잘 생각해보니 코마치의 방도 힘들거 아냐. 너, 외톨이니까"
"외톨이라고 듣는건 조금 저항이 있지만. 그렇구나, 역시 혼자 있는 편이 마음이 편해"
"그러냐. 그럼 내가 코마치의 방에서 잘게"
"그건 안 돼"
"어째선데. 이 방을 너한테 빌려줄테니까, 내가 코마치의 방에 가는 수 밖에 없잖아"
"그렇게되면 코마치의 몸이 위험해"
"위험하지 않아. 부모님이 있는 집에서 동생을 덮치다니, 얼마나 도전정신이 강한거냐. 그보다 없어도 안 덮쳐"
"네 평소보던 시스콘스런 행동을 보면 도저히는 아니지만 신용할 수 없어"
"시스콘이라는건 인정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생이야. 동생은 비호의 대상이어도 그런 대상은 되지 않아"
"……나…도 네 동생이라……았을걸"
"하? 안 들리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그럼 이 방을 빌려도 되겠니"
"그래. 내가 갈아입을 옷이 있으니까 나도 종종 들어오겠지만"
"노크를 해주면 딱히 상관없어"
"그러냐. 그럼 네 캐리어도 이쪽으로 옮겨놓을까"
"그렇구나. 그 편이 좋겠어"
그런고로 캐리어를 가질러 갈까. 유키노시타 씨는 카마쿠라를 안고 양손이 막혀 있으니까.
코마치의 방을 노크하고 입실 허가를 받는다.
"어라? 오빠잖아. 왜 그래?"
"내 방은 지금 유키노시타에게 점거당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나를 여기 재워줘"
"에~? 모처럼 유키노 언니랑 이야기 잔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내일이라도 하면 되잖아. 오늘은 저 녀석도 익숙치 않은 집에 와서 피곤할테니까"
"응~ 그런가~ 그럼 오늘은 오빠랑 오랜만에 잘까"
코마치가 순수하게 자라줘서 오빠는 감동입니다.
하지만 조만간, 같이 자고 싶지 않다거나, 같이 목욕들어가고 싶지 않겠다고 하겠지~
목욕은 지금도 듣고 있지만.
코마치의 허락을 얻었으니까 유키노시타의 캐리어를 갖고 내 방으로 간다.
"자, 갖고 왔어"
"그래, 고마워"
"뭐, 필요한거 있어?"
"아니, 특별하게는 없어"
"그러냐. 화장실은 1층 내려와서 복도 좌측에 있어. 아, 목욕은 어떡할건데"
"이미 하고 왔어"
"그러냐. 일단 말해두겠지만 복도 막다른 벽이 욕실과 세면대야. 뭐, 내일 코마치한테 물어봐줘"
"그래"
"뭐 필요한게 있으면 메일이든 직접 코마치의 방에 와줘"
"그래………고, 고마워"
수줍어 하지마. 나까지 수줍어지잖아.
"그럼 나는 갈게"
"그래. 잘 자렴"
"……잘자"
유키노시타에게 내 집에서 잘 자라는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코마치의 방으로 돌아갔더니 유키노시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모로 들었다.
하지만 특별히 아무것도 없고, 맞선 이야기에 대해선 코마치에겐 설명 끝났다.
얘깃거리가 부족한 귀여운 코마치를 상대해주고 싶은 마음은 산더미 같지만, 어쨌든간에 오늘은 지쳤다.
그러니까 코마치의 이야기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나는 이불에 들어가서 바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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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눈을 뜨고 시계를 보니 낮 12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어제는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조금 지나치게 잔 모양이다.
주섬주섬 이불에서 나와 파자마 차림으로 거실로. 일단 커피를 마시고 싶다……
"어머, 겨우 일어났구나"
거실 문을 여니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서 있었다.
왜 이 녀석이 여기에 있지!?
나는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아아, 그러고보니 이 녀석. 어째선진 모르겠지만 우리집으로 가출해서 잤었지.
"뭘 엉덩방아를 찧는거니?"
"아침 일과다. 내버려둬"
"이상한 일과구나"
일어서서 커피 메이커 쪽으로. 물을 넣어 커피콩을 세팅하고 전원을 넣는다.
그러자 코마치가 파닥파닥 슬리퍼를 울리면서 다가왔다.
"오빠 오빠, 이거 봐봐!"
그렇게 말하고 코마치가 휴대폰을 나한테 척 내밀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맛있어보이는 아침 식사가.
"뭐야 이거?"
"유키노 언니랑 같이 만들었어!"
"헤에~~. 그래서, 내 몫은?"
"맛있어서 다 먹어버렸어☆"
코마치가 혀를 살짝 내민다. 좋아, 귀여우니까 용서한다.
하지만 배가 고픈건 사실. 실제로 배가 꼬르륵 거리고 있고.
"코마치, 이 집의 점심은 어떻게 하는거니"
"시간상으로는 슬슬이네요"
"외식을 하는거니"
"가끔은 그러지만 기본적으로는 집에서 먹어요"
"그래……그럼 점심을 만들어볼까"
"어? 유키노 언니가 도와줄건가요?"
"그래,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전혀요! 그럼 같이 만들어요!"
"그래"
코마치가 유키노시타에게 안겨붙는다.
이렇게 보면 둘은 자매로 안 보이는것도 아닌것 같다.
뭐, 닮은건 머리색 정도지만.
하지만 귀여운 여자가 둘이서 꺅꺅 거리는건 눈에 보양이 된다.
나는 만들어진 커피를 마시면서 둘의 요리하는 모습을 쳐다본다.
"히키가야, 뭐 먹고 싶은거는 있니"
"캐비어"
"이 집에 있는걸로 해줘"
"그럼 맡길게"
나의 불확실한 대답에 유키노시타가 투덜투덜거리면서 코마치가 "늘 그래요" 라면서 대답.
코마치와 유키노시타가 대화를 나누면서 요리를 계속한다.
둘 다, 요리실력은 상당하니까 척척 진행하는걸 보는것만으로도 즐겁다.
이러저러 하는 사이에 요리가 완성된 모양이다.
테이블 위를 보니 여러모로 끼워져 있는 샌드위치랑
바질이 효과 있어서 좋은 냄새가 나는 토마토 소스 파스타.
그리고 옥수수 포타주와 씨 더 샐러드가 올려져있었다.
점심에 양식이라니, 왠지 부자가 된 기분이다.
함께 잘 먹겠습니다고 하고 식사를 개시한다.
"그보다 두 부모님은 안 일어나는거니"
"부모님은 늘 점심 지날때가지 주무시니까"
"어머, 그러니"
유키노시타의 집은 휴일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할것 같다.
보통 가정의 부모는 그런거겠지. 어? 그런거지?
"오빠, 이 파스타는 어때?"
"응? 맛있지 않냐?"
"라고해요, 유키노 언니"
"엉? 이거 유키노시타가 만든거야?"
"그래, 맞아"
"어쩐지 코마치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입에 맞지 않은거니"
"아니,그런 고급스런 미각은 없으니까 먹을 수 있어서 만족해"
"진짜! 좀 더 솔직하게 『맛있었어, 유키노』라고 해주면 좋을텐데"
"그 댄디한 목소리는 어디서 나온거야"
"괜찮아, 코마치. 히키가야에게 남들과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하는건 잔혹한걸"
배려할거면 좀 더 완벽하게 해주지 않겠냐.
아이만으로 구성된 식사도 끝나, 거실에서 느긋하게 쉰다.
유키노시타의 무릎 위에는 카마쿠라가 엎드려 있고, 유키노시타는 무언가에 홀린듯 계속 카마쿠라를 매만지고 있었다.
"그래서 쉬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너는 어떡할거야?"
"어떡한다니?"
"오늘은 뭐 안하냐"
"그렇구나……일단 카군의 사진을 100장 정도"
"아니, 카마쿠라 말고"
그보다, 카군이라니. 되게 사이 좋아졋네. 그리고 100장이나 찍어서 어쩌려고.
"부모님 말이야"
"아아, 그쪽 얘기 말이구나"
"아아, 가 아니잖아. 연락은 안 왔어?"
"왔어. 아침부터 계속"
"그래서?"
"무시하고 있어"
이런. 권장한건 나지만 유키노시타의 유아 퇴행이 장난이 아니다.
"수색 요청은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답신은 했고, 거기다 그 사람이 그런 대단한 짓은 하지 않을거라 생각해"
세간을 신경써서라.
"그럼 오늘은 특별히 아무것도 안 하는거야?"
"밖에 나가면 들킬 위험도 있으니 오늘은 여기서 편히 쉬도록 할게"
"뭐, 딱히 상관없지만"
그러자 코마치가 파닥파닥 슬리퍼를 울리면서 유키노시타 쪽으로 왔다.
"유키노 언니, 유키노 언니!"
"왜? 코마치"
"그럼 같이 놀지 않을래요?"
"놀아? 뭘 할건데?"
"wii에요!"
"wii? 텔레비전 게임을 말하는거니"
텔레비전 게임이라……아줌마냐.
코마치가 메탈 락에 수납되어 있는 Wii를 꺼낸다.
"유키노 언니, 이게 wii에요"
"이건…… 어떻게 하는거니"
유키노시타가 wii 리모콘을 흥미깊게 본다.
"이건 이런식으로 쥐어서 말이죠……뭐, 하다보면 알거라 생각해요"
코마치가 게임을 기동시키고, 유키노시타에게 설명하면서 게임을 진행한다.
둘은 테니스를 하거나 탁구를 하거나 카트 레이스를 하거나 바쁜 모양이었지만,
익숙하지 않은 게임에 악전고투하고 있는 유키노시타는 뒤에서 쳐다보면 상당히 재미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움직이는 유키노시타를 쳐다보면서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독서를 한다.
남이 이 집에 있는건 진정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생각했던 만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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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지나고나서 휴식을 끼워넣으면서도 계속했던 게임 대회는 저녁식사로 인해 중단되었다.
저녁도 유키노시타와 코마치가 같이 만들어줬다.
아버지는 '바보 아들이 아니라 이런 예쁜 딸이었으면 좋았을텐데~' 라고 말하고 있고, 어머니도 '딸 둘인 편이 화사해서 좋은데~' 라고 하고 있고
내 체면이 좁다랄까,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방구석에서 무릎모아 앉아있었다. 여기서 무리하게 도우려고 하다 남의 방해를 하지 않는 겸손함에 호감을 가진다. 나한테는.
식사중에도 서민측인 우리 부모님은 유키노시타에게 넉살좋게 말하려고 해서 내가 부끄러웠다.
왜 부모라는건 이렇게나 부끄러운걸까. 좀 더 아이의 시선에서 생각해주세요.
그런 마음 편하지 않은 식사도 마치고, 다음 이벤트는 목욕이다.
가족이 사용한 후에 유키노시타를 쓰게 하는건 마음이 캥긴다.
역시 여기는 유키노시타가 가장 먼저 씻어야겠지.
"그런고로 유키노시타, 목욕하고 와라"
"그런고로라니, 영문을 모르겠지만. 알았어"
"아, 네네-! 그럼 코마치랑 같이 안 들어갈래요?"
"어? 코마치랑?"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코마치랑 같이 들어갈래요?"
"아니, 미리 말해주면 위치는 알텐데"
"유키노 언니는 코마치랑 같이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며 코마치는 젖은 눈동자로 유키노시타를 올려다본다.
여기에 이길 수 있는 녀석은 마찬가지로 귀여운체하며 동족혐오를 일으키는 놈 정도일테지.
"……알았어. 그럼 오늘은 같이 들어가자"
유키노시타마저 함락됐다. 코마치, 무시무시한 아이!
"아싸~! 그럼그럼~ 목욕하러 가요~"
코마치가 유키노시타에게 매달리면서 목욕하러 간다.
코마치도 언니같은게 생겨서 기쁜걸지도.
유키노시타는……동생이 생겼다고 생각해서 즐기고 있다면 좋겠지만.
잠시 지나니 유키노시타네가 목욕하고 나왔다.
그러고보니 어제는 내가 방에서 나갈때까지 사복이었고, 오늘도 일어났더니 사복이었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 있는 유키노시타는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왠지 동급생의 파자마 차림을 자기 집에서 보니 두근두근거린다.
목욕하고 나와 뺨에 복숭아색으로 물든 유키노시타가 말한다.
"목욕하고 나왔어"
"아, 어어"
머리카락이 젖어서 평소와 분위기가 다른 유키노시타에게 두근거린다.
그럼 다음은 누구지? 부모님인가?
그렇게 생각해서 테이블을 보니 아직 부부 사이 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내가 목욕하러 들어갈지 물으니, 그런건 나중이다. 라고 한다.
그럼 다음은 내 차례인가.
유키노시타에게 양해를 구해 들어가서, 내 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어 욕실로 간다.
탈의실에서 알몸이 되어 욕실로 돌입.
욕조 덮개를 열어 통을 손에 든 차에 문득 움직임을 멈춘다.
어라? 이거, 유키노시타가 잠겼던 물 아냐?
…………………………오늘은 샤워로 끝내자.
목욕도 끝내고 코마치의 방으로.
내일은 마침내 맞선 당일인가.
어떻게 되려나.
뭐, 유키노시타네 사람이 여기를 찾아내는건 어려울테고, 결국은 유키노시타가 씹어서 끝나려나.
그렇게 되면 유키노시타는…어떻게 될까.
부모와 관계가 지금 이상으로 틀어져버리진 않을까.
제대로 관계를 수복할 수 있을까.
관게없는 나마저 불안해지고 있다.
당사자는 좀 더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상태를 보러 갈까.
코마치의 방을 나와 내 방을 노크한다.
그러자 안에선 늘 익숙한 늠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나는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무슨 일이니"
"아아, 아니………그게, 괜찮아?"
"뭐가 말이니"
"아니, 내일은 당일이잖아? 그러니까……네가 불안하게 생각하지 않나 생각해서"
"어머, 히키가야에게도 남을 배려하는 감정이 있었구나. 놀랬어"
"얼버무리지 마"
"그렇구나……불안, 하다기보다도 두근거리고 있어"
"두근거려?"
"그래. 아마 엄마는 엄청 화내겠지만 말이야"
어……하루노 씨가 어머니는 자기보다도 무섭다고 말했는데, 괜찮은가?
"하지만 이걸로 뭔가가 변할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면 어느쪽이냐고 하면 기대된다는게 강하다고 할까"
"그런가. 그… 뭐냐. 말을 꺼낸건 나야. 뭔가를 할 수 있는것도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래, 고마워………얘, 히키가야"
"왜?"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주는거니?"
"……의뢰가 있었으니까"
유키노시타가 아래를 쳐다본다.
"그래…… 의뢰구나. 의뢰가 없었으면……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냐. 그럼 나는 코마치의 방으로 돌아갈게"
"그래, 잘 자렴"
"그래, 잘 자"
문을 조용히 닫고 코마치의 방으로 간다.
코마치는 오늘 하루 유키노시타가 있어서 지나치게 흥분한 탓인지, 잽싸게 꿈나라로 가버렸다.
나도 일찍 자자.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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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었다.
무엇하나, 변화 없는 일요일이 끝났다.
방금전에 다 같이 사자에 씨를 봤고, 저녁도 먹었다.
어? 뭐야 이거. 너무 쉽게 끝났잖아.
뭐랄까 좀 더 이렇게……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찾아와서 유키노시타를 마중나오거나
거기서 내가 '유키노시타는 못 넘겨줘!' 라고 말해서 지금까지 각성하지 못했던 힘으로 쓰러뜨리거나,
어머니가 들이닥쳐서 직접 대결이 있거나 해도 괜찮지 않아?
유키노시타는 거실 소파에서 카마쿠라를 안고 있고, 아버지들도 평소대로 술을 마시고 있고, 코마치는 유키노시타에게 찰딱 달라붙어있다.
어쩌면 유키노시타는 내 동생이나 누나인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버릴 만큼 유키노시타는 우리 집에 익숙해져 있었다.
"유키노 언니! 오늘도 같이 목욕해요!"
"어제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았으니까 혼자서 해도 괜찮은데"
"코마치는 같이 들어가고 싶어요"
"후우……알았어. 그럼 같이 들어가자"
"아싸~!"
코마치는 오늘도 유키노시타랑 목욕인가.
부, 부럽지는 않거든!?
진짜인가. 내가 사회적 말살의 공포에 겁에 질려있던 오늘 하루는 뭐였던거야……
그 후엔 부모님, 내가 목욕하고나서 일요일이 끝나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여서 내 방 문을 두드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유키노시타로부터 입실 허가를 받고 문을 열었다.
"여"
"그래"
"뭔가……끝나버렸구나"
"그래, 그렇구나"
"그래서? 휴대폰에 연락 있었어?"
"그래. 아침에 한번만"
"1번만?"
"그래"
"지장되지 않는다면 가르쳐줘"
"아버지한테, 맞선은 없던걸로 됐다라고"
"……그건, 어떤건데?"
"어떠냐니?"
"그야……부모님은 화난거야?"
"글쎄. 어머니는 화냈을거야. 자신의 체면을 상했으니까. 아버지는……내심 기뻐하시겠지"
"기뻐해?"
"그래. 어머니에게도 너무 이른건 아니냐고 의견을 했으니까. 딸을 시집 보내는게 아쉬운거야"
"그런가. 그럼 아버지는 아군으로 계시는군"
"그래. 형태만으로 설교는 받겠지만. 진심으로 화내지는 않으실거야"
"그럼 남은건……어머니인가"
"그래. 솔직히 어떻게 됐을지 상상도 안 가"
"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야? 하루노 씨가 말하길, 하루노 씨보다 무섭다고 했는데"
"무섭다……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진짜냐. 그런 모빌수트 같은 강고한 장비를 쓰고 있는 하루노 씨보다 무섭다니, 뭐하는 사람이야.
그거, 진짜 쌩얼 그 자체를 정형해서 진정한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 수준이 아닌거 아냐?
"하지만 어머니는 언니하고는 또 다른 사람이야"
"무슨 소린데?"
"……감정적인 사람일까"
"감정적?"
"그래.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히스테릭하게 소리를 질러"
"그건……무서운건가?"
"그래. 마치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상대하고 있는거나 마찬가지야"
아아…………유키노시타도 하루노 씨도 이성적이고 머리 좋으니까.
대화가 통하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무서워지고, 자신하과는 이질적인것과 대치하고 있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언니는 그 만들어진 외면으로 남을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고 하지만, 어머니는 그런건 그다지 하지 않아.
그 대신에, 직접적인 힘을 써서 지배하려고 하니까 성가신건 더 성가셔"
과연. 하루노 씨는 테크닉 타입이고, 어머니는 파워 타입인가.
파워 타입은 달랠 수 있다면 간단하지만, 한번 빠지면 그 순수한 힘으로 압도될테니까.
유키노시타는 어머니라는 천성적으로 직접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강요당했던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후련해졌어"
유키노시타가 미소를 짓는다. 마치 홀린게 빠져나간 모양이다.
"지금까지 그 사람의 말을 어떻게 논박하려고만 생각했지만……그럴 필요 없었구나. 무시할걸 그랬어"
"뭐, 전부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 당연히 대화가 필요한 경우에는 어머니와 대화를 할거야. 하지만 이번일처럼 이야기도 들어주지 않는다면 또 가출을 할거야"
"어이어이"
유키노시타가 쿡쿡 웃는다.
왠지……늘 보던 어른스런, 차분한 유키노시타가 아닌것 같다.
"내 세계는 부모님이 없어도 성립하는거야"
"아아, 그야 부모님의 조력 없으면 아직 아무것도 못하지만 말야"
"그래. 나의 모든게 부모님은 아니었어"
"그야 그렇지"
그런건 나이를 들고나서야 깨닫는다.
학교에서 친구가 생겼을때, 학습을 시작했을때, 중학교로 갔을때……
세상이 넓어져감에 따라 부모의 영향력을 떨어진다.
하지만 유키노시타의 안에선 어머니의 존재가 너무 컸다.
그건 부모의 지배욕이 강했던 탓인지, 혹은 집이 특수했던 탓일지도 모르지만.
"뭐, 아직 끝난건 아니야. 일단 돌아가고나서 어떻게 될지로군"
"그래. 조금 기대하고 있어"
어이어이, 진짜냐. 역시 유키노시타는 거물이구만.
"일단, 내일은 학교 갈거야?"
"그래. 필시 마중을 나오겠지"
"오면 어떡할건데?"
"일단 돌아가도록 할게. 오래 끌어서 좋을 일은 없을테고"
"그런가"
"짐은 아마 집에서 사람이 가질러 올테니까 두고 가도 되겠니"
"아아, 금방 갖고 가지 않으면 곤란한 짐은 없어?"
"그래. 괜찮아"
더는 걱정할 일도 없을 것이다.
유키노시타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잡고 있다.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럼 뒷일은 유키노시타에게 맡기는 수 밖에 없다.
"어머니와 대결, 힘내라"
"그래, 어떻게든 할게"
"그럼 나는 잔다"
"그래, 잘 자렴"
"그래. 잘 자"
유키노시타아게 잘 자라고 하고나서 코마치의 방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방에 놔뒀던 휴대폰이 빛나고 있다.
코마치는……벌써 잠들었나.
나는 방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 앉는다.
부모님은 내일부터 사축생활을 대비하여 일찍 침실로 간것 같다.
휴대폰을 조작해서 확인을 하니 착신이 와 있었다.
번호만 표시하고 이름은 없다. 하지만 그 둘 아래에도 같은 번호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상대는 그 사람인가.
호흡을 하고나서 착신이 있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죄송해요. 아까는 전화를 못 받아서"
『괜찮아 괜찮아-. 그・것・보・다』
"……뭡니까"
『누나한테 보고할 일은 없어?』
"유키노시타 씨에게 보고해야할 일은 특별히 없습니다"
『에~? 그냥 누나라고 불러도 되는데?』
"남을 누나라고 부르는 습관은 없으니까 사양합니다"
『그런가~ 그럼 즐거움은 나중으로 미뤄둘게』
이 사람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걸까. 진짜 바닥을 모르겠다.
『그보다, 유키노가 맞선 씹었다며?』
"이야기가 퍼지는게 빠르네요"
『나한테도 유키노의 수색망이 왔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트릭을 썼어?』
"트릭이니 그런 거창한건 안 했어요"
『그치만 그 유키노가 엄마한테 칼날을 들이대는건 있을리 없어. 분명 히키가야의 짓이지?』
"짓이라니. 저를 주범으로 추켜세우는건 그만두세요. 저는 단순히 유키노시타에게 생각한걸 말한것 뿐입니다"
『뭐라고 말했는데?』
"좀 더 생떼를 부려도 되지 않냐고"
『그래서 유키노, 가출한거야?』
"네"
『…풋, 아하하하하!』
"좀, 갑자기 큰소리 지르지 말아주세요"
『미안미안, 그치만……푸풋, 틀렸어… 웃음이 멈추지 않아』
"뭐가 그렇게 웃긴건진 모르겠지만 일이 없으면 끊어도 될까요"
『아직 안 돼. 그치만 그런가- 그렇게 간단한걸로 유키노를 바꿀 수 있었구나.
역시 히키가야는 대단해』
"아뇨, 저는 딱히. 유키노시타도 생각한게 있었으니까 제 말을 들은거라고 생각하고요"
『뭐, 그야. 자신이 공감할 수 없는 말에 발촉된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나도 엄청 말했단다? 엄마한테 정면으로 승부를 도전해도 의미없다고』
"그야 유키노시타 씨가 말한들 그 녀석은 분명 저항심을 불태울 뿐일테니까요"
『그럴지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말한다한들 똑같았다고 생각해. 히키가야니까 의미가 있던거야』
과연 그럴까.
내 말에 특별한 의미가 있던걸까.
유키노시타는 나를 썩은 눈을 하고 있다거나, 쓰레기 이하라던가 시스콘이라고 실컷 까왔다.
그런 나의 말이 특별하다. 그 녀석에게 울려퍼졌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유키노는 히키가야를 인정하고 있는거야』
"그건……모릅니다"
『뭐, 그러면 그걸로 좋아』
"용건은 끝인가요"
『응, 맞아~. 아, 그리고 하나 더』
"뭔가요?"
『피임은 제대로 안 하면 안 된다구』
나는 전화를 끊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저 사람. 그보다 역시 우리 집에 있는거 알고 있는건가?
일요일 마지막에 쓸데없이 피곤해져서 나는 코마치의 방으로 돌아간다.
내일은 내 방으로 돌아갈 수 있는건가. 그건……그거대로 쓸쓸한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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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니 이미 유키노시타는 교복을 입고 평소대로 늠름한 그녀로 돌아와 있었다.
코마치와 함께 바쁘게 아침 준비를 하고 있으니, 배려해준 유키노시타가 아침을 준비해줬다.
이 녀석, 가사만능이니까 히키가야가로 시집와주지 않으려나.
그치만 채갈 남자가 아무도 없으니까 양자로 받아들이는 편이 좋나.
평소엔 코마치와 둘이서 나가지만 오늘은 유키노시타도 포함해서 집을 나온다.
중간까지는 코마치도 함께였지만 갈람길이 와서 코마치를 중학교로 보낸다.
"그보다 너까지 나한테 맞추지 않아도 되지 않아?"
"……마지막 아침 정도는 코마치를 배웅해주고 싶었어"
"아아, 그러고보니 너는 방향치
"그런게 아냐. 나한테 걸리면 어떤 곳이든지 학교로 도착할 수 있는걸"
뭐야 그거, 귀소본능?
"앗, 이런. 네가 도보로 간 탓에 수업시간에 늦겠다"
"내 탓이라고 하는거니? 나는 여유를 갖고 일어났으니까 네 탓이잖니"
"이제 아무래도 좋아. 일단 자, 타라"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자신의 자전거 짐칸을 탁탁 친다.
"……둘이서 타는건 역시 혼나지 않겠니"
"학교 앞에서 내리면 문제 없겠지. 그보다, 안 탈거면 나는 먼저 간다"
"왜 지각 원인을 만든 네가 늦지 않고, 내가 지각해야 하는거니"
그렇게 말하면서 유키노시타가 짐칸에 옆으로 탄다.
"그럼 간다"
"그래"
유키노시타는 깃털처럼 가벼웠다.
코마치를 태울때와 다를바 없는 무게밖에 없었다.
허리에 더해진 눈처럼 하얀 그녀의 손을 의식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인목이 닿지 않도록 좁은 길을 골라 자전거를 달린다.
무심하게 자전거를 달려, 도보로도 여유롭게 도착할 곳까지 와서 자전거를 세운다.
"자, 슬슬 내리는 편이 좋겠지. 여기부터는 다른 학생이랑 만날지도 모르니까"
"그래, 그렇구나"
그녀는 짐칸에서 가볍게 내린다.
그 때 퍼진 머리카락 냄새는 샴푸 향일까.
하지만 이런 달콤한 꽃향기같은 샴푸는 집에는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 나는 먼저 갈게. 같이 있으면 이래저래 의심받을지도 모르니까"
"그건 분명 그렇구나"
"그럼 간다"
"그래"
그녀를 두고 자전거를 밟는다.
왠지 모르게 뒤를 돌아본다.
그러자 그녀가 가슴 언저리에서 살짝 오른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워져서 왼손을 가볍게 들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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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가 되어 나는 오랜만에 부실로 가봤다. 뭐, 금요일을 빼먹은거 뿐이지만.
오늘은 먼저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간다. 유키노시타는 실가로 강제송환되었을 것이다.
부실 문을 열어 홍차를 끓이고, 책을 꺼낸다.
과연 외톨이스트. 바로 혼자만의 부실에 익숙해졌다.
잠시 지나니 유이가하마가 들이닥쳤다.
"힛키!"
"아니, 너는 일단 얏하로라고 해라. 캐릭터 굳힌게 의미 없어지잖아"
"그런것보다! 어제, 어떻게 됐어!?"
"앙? 너, 유키노시타한테 아무것도 안 들었어?"
"유키농한테 결과는 들었는데?"
"그럼 내가 할 말은 아무것도 없다"
"유키농, 힛키네 집에서 잤지!?"
왜 그걸 아냐.
유키노시타 씨, 딱히 말할필요 없었잖아요.
"아냐, 그 녀석은 코마치네 집에서 잤다"
"같잖아!"
"달라. 코마치의 친구가 자러 온것 뿐이지, 나는 관계없다"
"그치만 힛키도 같이 집에 있었잖아?"
"뭐, 힛키니까"
"최악! 진짜 최악!"
"뭐가"
"그치만…… 우~~ 힛키 바보!"
"왜 까여야 하는건데…"
"아! 그럼 다음에 내가 코마치의 친구로서 자러가도 돼?"
"코마치의 친구 중에 이런 바보는 없습니다, 필요없어요"
"바보 아냐!"
"뭐, 진정해라. 이번에는 여러모로 이레귤러였다고"
일단 나는 유이가하마에게 경위를 가르쳐준다.
이걸 안 들으면 유키노시타가 왜 우리집에 왔는지 모를거 아냐.
"헤에~ 그런 일이 있었구나"
"아아, 있었다고"
"그럼……나도 가출할까…"
"엉? 너도 부모님이랑 사이 나쁘냐"
"아니, 좋은데"
"그럼 가출같은거 하지마. 부모님이 슬퍼한다"
"……우으, 그치만~"
뭘 꿍얼거리는거야, 이 녀석.
그 후에도 유키노시타와 뭘 했냐, 어떻게 됐냐 주구장창 물어오는 유이가하마에게 짜증을 느끼면서 그 날 부활동은 종료했다.
결국 유키노시타는 오지 않았다. 집에 돌아간거겠지.
유키노시타와 어머니의 대화가 온경하게 끝나는걸 기대하면서 나는 그 날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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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수업 시간을 전부 자면서 보낸다는 학교의 존재의의를 근본부터 뒤엎는 위업을 이룩하고 방과후가 됐다.
오늘은 유키노시타는 오는가?
어제 오늘일로 부활동을 하러 올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오늘도 독신에게 간다.
그보다, 부장이 없으니까 안 가도 되지 않아?
그치만 안가면 30대에게 체벌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교무실로 가서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열쇠를 달라고 손을 내민다.
그러자 히라츠카 선생님이 뜻밖이라는 얼굴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라? 아까 유키노시타가 벌써 열쇠를 가질러 왔는데"
엉? 그 녀석, 벌써 부활동 복귀인가?
나는 헛걸음을 하게 된것에 짜증을 느끼면서 빠른 걸음으로 부실로 향한다.
딱히, 빨리 만나고 싶다거나 그런게 아니다.
부실 문에 손을 대고 여니, 문은 저항없이 옆으로 미끄러졌다.
"……여"
"그래"
문을 여니 이 부실의 주인이 늘 앉던 자리에 평소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이 녀석을 전에 여기서 본건 겨울 방학 전이었지. 꽤나 그리운 느낌이 든다.
"빨리 왔군"
"그러니? 평소와 같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아냐. 시간적으로도 조금 더 길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그 일은 유이가하마가 오고나서 얘기하자. 그녀에게도 보고하고 싶으니까"
"그런가"
그런고로 나는 진정되지 않은 기분으로 책을 읽고 있었지만, 전혀라고 할 만큼 내용이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자를 쫓기만 할 뿐인 독서를 하고 있더니, 유이가하마가 들이닥쳤다.
"얏하… 유키농!?"
"아니, 그러니까 캐릭터 붙인거 잊지 말라고"
"안녕, 유이가하마. 오랜만이구나"
"유, 유키노~~옹!!!"
유이가하마가 가방을 내던지고 유키노시타에게 안겼다.
유키노시타도 처음에는 쭈뼛거렸지만 유이가하마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유키노시타에겐 코마치도 그렇고, 유이가하마도 그렇고. 좋은 동생 캐릭터가 많이 있구나.
유이가하마가 진정하고 나서, 유키노시타는 일단 홍차를 끓여줬다.
유키노시타가 나준, 평소처럼 맛있는 홍차를 마셨더니 왠지 나까지 안도해버렸다.
일상이 돌아왔다, 라고 실감을 했다.
모두가 진정된걸 보고나서 유키노시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자신의 사정으로 걱정을 끼친것을 미안하다는 것.
맞선은 일요일에 있던건 중지가 됐고, 그리고 나서 앞으로도 일단은 전혀 미정이라는 것.
아버지한테서는 특별히 혼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하고는 절찬 싸움중이라는 것.
"싸움이라니, 유키농………"
"어머, 이건 좋은 변화라고 나는 생각해. 어쨌든 싸움이라는건 수준이 같지 않으면 할 수 없는거니까"
요컨대 일방적인 지배 관계는 해소됐다는 소린가.
"……그 사람도, 인간이었어"
조용히 유키노시타는 중얼거린다.
그래, 부모는 전지전능한 신님이 아니다.
한 명의, 불완전한 인간이다.
유키노시타도 그걸 깨달았으니까, 단순히 공포나 증오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부모와 마주 볼 수 있게 된 것이겠지.
뭐, 최종적으로 화해를 하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 되겠지만, 그건 미래 이야기다.
유키노시타는 일단 보고는 끝내고, 그리고는 한결같이 유이가하마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유키노시타의 이야기가 끝나도 사죄를 받아도,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의 옆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고, 계속 블레이저의 자락을 잡고 있었다.
니들은 연인이냐.
그 후에는 평소대로 봉사부의 모습이 돌아왔다.
두 명은 독서를 하고, 한 명은 휴대폰을 만질뿐인 무익한……하지만 내게 있어선 마음 편한 시간이 흘렀다.
부활동은 오늘도 상담자가 오지 않은 채로 타임업이 됐다.
다같이 부실을 나와, 유키노시타가 문을 잠근다. 응, 역시 열쇠 관리는 유키노시타가 해야한다.
나 같은게 하면 제대로 잠글지 불안해서 다들 밤에도 잠을 못 자겠지.
"그럼, 유키농! 내일 또 봐"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가 손을 흔든다.
"그래, 안녕"
유키노시타도 쭈뼛거리면서 손을 흔든다.
그럼 나도 부장님에게 귀가 인사를 할까.
"그럼"
"기다리렴"
"………뭡니까"
"너는 나를 따라오렴"
에~……이제 끝났으니까 됐잖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네가 와 있는 동안 쌓였던 애니메이션 같은거 빨리 소화하고 싶은데.
"그럼 힛키, 나는 먼저 갈게"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가 내게 손을 흔들고 복도를 걸어갔다.
나를 버리지 마……
"그럼 가자"
간다고 안 했는데 유키노시타가 걷기 시작한다.
나는 자유롭게 갈곳도 못 정하나.
유키노시타의 뒤를 따라가니, 교무실에 도착했다.
뭐, 같이 들어가도 어쩔 수 없으니까 여기서 기다릴까.
유키노시타가 선생님에게 열쇠를 반납하러 가고, 교무실에서 나왔다.
"그럼 가볼까"
그렇게 말하고 또 나를 무시하고 유키노시타가 걸어간다.
"가볼까라니, 어디를 갈건데"
나는 뒤를 따라가면서 그녀에게 말한다.
"그렇구나……걸어서 돌아갈까"
돌아갈까라니. 나랑 너네 집, 방향이 다른데.
하지만 말을 한다한들 들어줄리가 없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유키노시타의 뒤를 따라, 승강구에서 신발로 갈아신는다.
학교를 나와 주륜장으로 갈라지는 길에서 유키노시타가 빙글 돌아본다.
과연. 자전거를 가지고 오라고……나는 자전거를 갖고 유키노시타에게 돌아온다.
"어떡할래. 또 뒷자리에 타서 돌아갈거야?"
"아니,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니까 어울려주지 않겠니"
"예이예이"
유키노시타가 걸어가고, 나는 뒤를 쫓아 자전거를 끌고 걷는다.
둘 다 말없고 해도 이미 저물어버린 길을 걷는다.
오늘은 춥다고 생각했더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이, 유키노시타. 눈이 내리고 있는데, 어떡할거야?"
"……나는 이대로 걸어서 집에 가고 싶은데. 안 되겠니"
"……아니, 괜찮지 않겠냐"
유키노시타는 "그래" 라고 말하고 다시 앞을 보고 걷는다.
같이 오라고 한거에 비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건 뭐야? 장기간 눈이 내리는 동안, 밖에 서 있게 해서 나를 감기 걸리게 하려는건가?
그런 끝에 폐렴을 걸리게 해서 그걸 원인으로 나를 죽이려고 하는건가? 완전범죄잖아.
유키노시타가 길가에 있는 자판기 쪽으로 향해 갔다.
추우니까 따뜻한 음료라도 사는건가? 나한테는 아쿠에리라던가?
유키노시타는 음료를 두 개 사서, 그걸 양 얼굴 높이까지 들어올린다.
"커피랑 코코아, 어느걸 좋아하니"
"……나는 어느거든 상관없는데"
"그럼 커피를 줄게"
고마워, 하지만 나는 코코아 쪽을 더 좋아합니다.
처음부터 내 의견을 들어줬으면 좋았을텐데.
"이 앞에 작은 공원이 있으니까, 거기에 들르자"
이런 눈이 내리는 와중에, 공원으로 가다니. 제정신이 박혀 있는거냐.
갈거면 스타박스나 카미스드나, 여러군데 있을텐데.
유키노시타가 다시 걷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도 뒤를 쫓는다.
그러자 유키노시타가 말했던 공원이 보였다.
유키노시타는 공원 안으로 들어가, 그네에 앉는다. 치마 더러워진다.
나도 입구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공원으로 들어간다.
나는 젖는걸 싫어해서 정자 속으로 들어갔다.
"………그네에 타는것도 오랜만이야"
그러고보니 나도 몇 년동안 타지 않았다.
뭐, 새삼 앞뒤로 흔든다한들 옛날처럼 즐길 수는 없겠지.
나를 공원으로 데려온걸 그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일까.
나는 치바에는 상세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치바에 있다고 그네 사정까지는 상세하지 않다.
눈이 내리는 와중에 그네에 앉아있는 유키노시타는 마치 한 폭의 그림같았다.
이건 처음으로 그녀를 봤을때도 생각한 것이다.
제목은 그렇군. 세계의 끝에 홀로 그네에 앉아있는 소녀.
조금이라도 길면 라노벨의 타이틀같다고 생각하는건 편집자가 무능한 탓이겠지. 긴 타이틀 이제 그만해.
"너한테……히키가야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으면 안 돼"
본론은 그거냐.
"딱히. 이번에 나는 아무것도 안 했어. 했다고 하면 생떼를 부리면 된다는 무책임한 소리를 한것 뿐이다"
그 후론 유키노시타 자신이 결의하고, 결행하고, 그 후에 어머니와 이야기를 했으니까 정말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구나. 너는 말을 한것 뿐이야. 하지만 내게 있어선 그것만으로 충분했어.
네 말이 아니었으면 변하려고 생각 안 했을거야.
그러니까 역시 히키가야. 나는 너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러냐. 나도 누군가를 위한게 됐다면 다행이다"
"너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위해서 열심히 해왔잖니"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냐. 어디까지나 나를 위해서다"
"그렇구나. 너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었어"
하야마는 분명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누군가를 구하는건, 누군가에게 구해지고 싶다고 바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하지만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 행동을 자기희생이라고 밖에 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뻤다.
"하지만, 너의 행동원리가 어떻든간에 남이 구원받은건 사실이야. 나는 옆에서 그걸 보아왔어.
거기다, 실제로 나도 너에게 구원받았어. 그러니까"
거기서, 유키노시타는 일어서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의 5발짝 앞에서 그녀가 멈춰선다.
이것이 나와 그녀의 거리인가.
"고마워, 히키가야"
그렇게 말하고 미소지은 그녀의 얼굴은, 도저히는 아니지만 얼음의 여왕이라고 형용할 수 없었다.
"……천만에"
"………후후"
갑자기 유키노시타가 웃는다.
"왜 웃는데"
"처음 만났을때는 너는 변하는건 도망치는거라고 말했지.
그에 비해, 나는 지금의 자신을 인정하는것 뿐이지 노력도 변화도 하지 않는걸 도망치는 거라고 했어"
"그러고보니 그런 대화 했던가"
"그래, 했었어. 지금도 잊을수 없어. 그때, 나는 얼마나 타락했길래 자신에게 무른걸까 생각했어"
"그건 부정 안해"
"생각했지만……그렿구나, 변하는것이 반드시 좋다고는 할 수 없구나"
"뭐, 마이너스 방향으로 변화하는것도 있으니까"
"나는……필사적이었어.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언니에게 이기고 싶어서.
그런걸 위해, 나를 바꿔야 한다고. 힘내야 한다고. 라고 생각해버리다니……바보같아"
"뭐,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괜찮지 않냐? 이유가 뭐든간에"
"그렇구나. 지금까지 힘내온거이 전부 헛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앞으로는 어머니에게 인정받기 위해, 언니에게 이기기 위해 힘내려고는 생각 안 해"
그러고보니 문화제때 하루노 씨의 라이브에서 유키노시타는 하루노 씨에게 동경하고 있다고 독백했었지.
나는 거기에 "되지 않아도 되잖아" 라고 했지만, 아마 못들었던걸까.
그럼 한번 더 말하자.
"너는,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지금대로여도 좋아.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되지 않아도 돼.
부모님에게 있어 이용가치가 있는 딸이 되지 않아도 돼.
공부도 스포츠도 잘 하고,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친구 사귀기가 서투르고,
판씨와 고양이를 사랑하고, 방향치에, 함박웃는 미소가 귀엽고, 다정하고, 약한 너여도 좋아"
"……그래. 어째서일까, 네가 말하면 정말인것처럼 느껴져"
눈이 녹으면 물이 되는건 자연의 섭리이다.
그러니까 유키노시타의 눈동자에서 물이 흘러나오는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눈이 녹아서일까,
유키노시타의 마음을 닫고 있던 얼음벽이 녹은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얘, 히키가야"
"…왜?"
"왜 맞선을 방해하려고 생각한거니. 평소 너였다면 그런건 안 했을거야"
내가 반년간 같이 보내며 이 녀석을 알게 된 듯이, 이 녀석도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단순한 변덕이라고 말하고 도망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나는, 진실된것을 원한다.
"내가 유키노시타를 좋아하니까"
"……어?"
난청계 주인공이냐.
그럼 전해질때까지 말해주마.
"너를 좋아해. 그러니까 나랑 사귀어줬으면 좋겠어"
그녀는 나의 동경이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동경하는것 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손에 넣고 싶다. 나만의 것으로 하고 싶다.
그런 조촐하고 어린애같은 독점욕이 어느샌가 나에게 싹트고 있었다.
"대답을 들어도 될까"
"……히키가야"
"어"
"……………미안해"
진짜냐.
아니, 그야 나처럼 눈이 썩고 비뚤어지고 타락한 놈이 유키노시타에게 어울릴리
"연인이라는건 언젠가 변해버릴지도 모르잖니.
거기다 맞선을 파탄시킨 책임을 진다고 했으니까……그렇구나
약혼자, 라는건 어떠니"
그렇게 말하며, 수줍어하면서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
"약혼………왠지 되게 빠르지 않냐?"
"그럴려나. 사귄다고 하는건 결혼을 전제로 하는거잖니?
그러니까 약혼을 해도 부자연스럽진 않고, 오히려 약혼하지 않는 편이 부자연스러워"
아니, 사귀는 녀석들이 전부 다 결혼전제라 사귀는건 아니잖아.
뭐, 하지만 상관없나. 나도 놀이삼아 이 녀석이랑 사귀는건 아니다.
바라옵건데, 이대로 영구취직하고 싶다.
"그럼, 나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줘"
"……응"
그녀가 한 발짝 다가간다.
내가 세 발짝 다가간다.
둘 사이에 빈 거리는 한 발짝 뿐.
그래도 그 공간이 아쉬워져서, 거슬린다고 느꼈다.
나는 팔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
"………의외로 적극적이구나"
"……나는 독점욕이 강하니까. 내건 남이 만지게 하고 싶지 않아"
"……내거라니, 대단히 거창하구나"
"……너는 내거고, 나는 네거야. 틀려?"
"………아니, 틀리지 않아"
유키노시타가 내게 감은 팔에 힘을 넣는다.
"……눈발이 세졌는데"
"……그렇구나"
"……슬슬 돌아갈까"
"……그럼 이거 놓으렴"
"……너도 팔 풀어"
"……네가 먼저 풀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도 없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폐렴에 걸릴지도 모른다.
나는 유키노시타를 감고 있던 팔을 푼다.
그녀도 내 등에 감고 있던 팔을 푼다.
내가 그녀의 오른손을 잡으니, 그녀가 그걸 꼬옥 움켜쥔다.
"돌아갈까"
"……내가 배웅해주는거야?"
"어머. 이런 눈이 내리는 와중에 여자친구를 혼자서 집에 보내다니, 히키가야는 정말로 쓰레기라서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알았어. 보내줄테니까 까지 말아줘"
그녀의 손을 잡고 공원 옆에 세워둔 자전거를 가질러 간다.
자전거 핸들을 잡으려고 그녀의 손을 놓는다.
"아……"
그녀의 입에서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그렇게 쓸쓸하단 얼굴 하지 말아주세요.
핸들을 한 손으로만 잡고, 왼손을 그녀에게 내민다.
그러자 그녀가 손을 잡아왔다.
그녀의 손을 잡고 새로 쌓인 눈 위를 걸어간다.
나와 그녀는 겉치레뿐인 것을 싫어하여, 진실된 것을 서로 바래왔다.
하지만, 이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른다.
성격이나 가치관이 맞지 안을지도 모르고, 싸울지도 모르고, 좀 더 다른 이유로 헤어질 수도 있다.
그 때, 나는 이 관계가 진실된 것이 아니었다고 한탄을 할까.
아니, 그럴 일은 없다.
확실하게 둘의 관계를 잃으면, 나는 그 상실감에서 슬픔으로 저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앞으로의 둘의 시간이, 관계가 전부 거짓된것은 아닐 것이다.
거기다, 앞으로 일은 우리들에게 달려있다. 뭐든지 될 것이다.
내가, 그녀가 둘이서 서로 바라며, 용서해가고, 힘내가면, 분명 이 진실된 관계는 언제까라도 이어지게 되는게 아닐까.
아니, 어떻게든 하자.
유키노시타의 손은 장갑을 껴도 차가워진 모양이었다.
"네 손, 차가운데"
"냉병이야"
"그런가"
그녀의 손을 아까보다도 조금 세게 움켜쥔다.
나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입으로 듣고 싶다고 생각해서 말을 한다.
"있잖아, 유키노시타. 나하고 친"
"미안해. 그건 무리."
그녀가 꼬옥, 내 왼손을 굳세게 움켜쥔다.
"그게, 이미 약혼자인걸"
그렇게 말하고 웃는 그녀의 얼굴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역시, 나와 유키노시타는 친구는 될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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