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농 - 24. 히키가야 코마치는 언제나 오빠의 행복을 바라고 있다.
 
『가족 놀이는 이제 끝』
 
그렇게 말한 그녀는 지금도 아직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고, 그 미소는 어딘가 허무해서 금방이라도 사라져버릴것 같다. 그녀의 그 표정이 그때의 유키노시타의 표정과 겹쳐진다.
 
그녀의 눈동자는 우리들을 끝난것……앞으로 변화하지 않는걸 보고 있는 모양이다.
 
 
"하루노 씨……?"
"작별이야, 하치만. 으응, 히키가야. 이제 너하고는 두번 다신 안 만나"
 
 
『히키가야』
 
이전의 호칭으로 돌아왔다.
그저 그것뿐인 일인데 가슴에 날카로운 바늘이 찔린것처럼 욱신 아프다.
 
진작에 전부터 그녀에게 이름으로 불리는걸 깨달았더니 나는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거절했었는데 어느샌가 그렇게 불리는게 당연하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성씨로 불렀다. 그건 그녀가 나와의 관계를 정말로 끝낼 생각이라고 나에게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이으려고 해도 제대로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오는건 한심하게 쉰듯한 신음소리.
 
하루노 씨는 그런 나를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고 얘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나에게 몰아붙이기를 하듯이.
 
 
"……그저께 부근에 쇼핑하던 모습을 들켰거든. 그걸로 미행당해서 히키가야랑 유키노를 들켰어. 이야-, 설마 이 내가 미행당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 누나, 방심했어"
 
 
태연하게 털털 웃으면서 설명하는 그녀에게 나는 아직 아무 말도 못 한다.
 
그저께, 아마 우리가 집 앞에서 얘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거겠지.
 
누구한테? ……그건 이미 알고 있다. 유키노, 그러니까 유키노시타와 하루노 씨의 어머니인 그 사람한테다.
 
언젠가는 들킬지도 모른다. 그런건 알고 있었는데. 들키면 유키노시타나 하루노 씨에게 어떠한 피해가 올지도 알고 있었을텐데.
나는 또 놓쳐버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나는 집에 돌아가게 됐어. 아아, 짐은 나중에 가질러 갈테니까 놔둬줘. 코마치랑 히키가야의 부모님에게는 신세를 졌으니까, 사례를 하고 싶네"
"……유, 유키노는?"
 
 
겨우 나온 말은 그런 말이었다. 그 말에는 하루노 씨의 얘기는 묻지 않는다. 그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묻지 않았다.
 
이성이……나 자신이 그녀를 포기해버리고 있다. 더는 만날 수 없다고, 납득해버리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을 추궁하는걸 허락하지 않는걸로 보였다.
 
 
"……유키노라면 괜찮아. 지금 바로 집에 끌려가는 일은 없을거야"
"에?"
"……엄마한테 있어서 유키노는 나중에 어떻게라도 되니까. 그러니까 유키노는 엄마한테 부탁하면 허락해줄거야. 뭐, 일시적이지만"
 
 
그 말에……그녀가 유키노시타를 위해 어머니에게 부탁한 일에 나는 저도 모르게 놀란다.
 
한 번밖에 만난적이 없지만 얘기를 듣는한 나에게는 유키노시타의 어머니가 그렇게 간단하게 부탁을 들어줄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럼, 하루노 씨는…….
 
 
"……히키가야라면 이젠 알겠지?"
 
 
알아버린다.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한건지. 그녀가 뭘 희생해서, 누구를 구하려고 한건지를.
 
 
"……실은 전부터 엄마한테 유학 얘기가 왔었어. 갈지 말지 조금 고민했지만 말야. 이참에 가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어머니에게 거스르지 않고, 타협을 해온 그녀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어머니에게 거스른건가. 모든건 유키노시타를 위해서다.
 
 
"……돌아가는것도 언제가 될지 모르고 더 이상 안 돌아올지도 몰라. 그쪽에도 아버지의 회사 친구도 있으니까, 거기서 취직하는것도 괜찮네"
 
 
그리고 그녀는 우리와 관계를 완전히 끝내려고, 우리들의 앞에서 사라지려고 하고 있다.
 
 
"……이게 분명 최선이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유키노를 위해 하루노 씨와 유키노시타의 관계를 수복하려고 한 나. 유키노를 위해 우리들과의 관계를 버린 하루노 씨. 둘 다 이유를 따지면 유키노……그리고 유키노시타를 위해 한 일이다.
 
그럼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있는걸까?
 
유키노시타의 어머니에게 들키는 것으로 이 관계가 사라지는건 알고 있었다. 환경이 변해서 변해져버리는 관계라는건 진작에 깨닫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의 행동으로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나와 유키노시타의 관계는 지켜졌다.
 
둘 다 사라져서 없어진다. 그거라면 상처는 적은 편이 좋다. 자기만의 관계가 사라지면 그걸로 좋다. 그것이 하루노 씨가 고른 선택이겠지.
 
거기에 나의 감정을 끼워서 좋을리가 없다. 감정을 끼워서 말을 한들 결과는 변하지 않으니까. 나의 행동이 괜히 최악의 케이스를 낳을 경우도 있다.
 
그러면 나는…….
 
하루노 씨는 나에게 다가와서, 살짝 내 뺨을 만진다. 밤바람으로 인해 차가워진 피부에 그녀의 온기가 천천히 퍼져간다.
 
하루노 씨는 내 뺨을 문지르고 생긋 자애로운 미소를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미소. 하지만 이건 분명 내가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닐 것이다.
 
 
"히키가야, 정말로 고마워. 지금까지 너와 있을 수 있어서 즐거웠어. ……네 마음도 기뻤어"
 
 
하지만 그 손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 말을 가로막을 말도 잇지 않는다. 그런 미소를 보여주지 말라고도 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것이 마지막이 될테니까.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 될테니까. 그럼 지금은 그녀의 이 미소를 눈에 새겨두고 싶다. 그것이 분명 단 하나,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 말은 정말로 전해야할 사람에게 전해줘. 그 사람도 반드시 기뻐할거라 생각하니까"
 
 
하루노 씨는 그렇게 말하고 내 뺨에서 천천히 손을 뗀다.
 
 
"……유키노를 잘 부탁해"
 
 
하루노 씨의 손이 떨어지는 것으로 그녀의 온도가 밤의 찬바람으로 인해 빼앗겨간다. 두번 다신 돌아오지 않을 온기가 사라져간다.
 
하루노 씨는 그리고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에게 등을 돌려 걸어간다.
 
눈 앞에서 소중한 사람이…좋아하는 사람이 사라져가는데, 내 다리는 지면에 묶인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말을 만들기 위해 입을 움직이려고 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녀를 불러세울 수도 없다. 시선만 점점 멀어져가는 등을 쳐다보고 있다.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고 아무것도 못 하는 무력한 자신. 그런 자신을 또 싫어하게 될것 같다.
 
하지만 이해해버렸으니까. 유키노를 위해……유키노시타를 위해 분명 이것이 최선이라고……단 하나의 깔끔한 방식이라고 나는 이해해버렸다.
 
 
"……음, 응으"
 
 
그때 어리고 분명치 않은 목소리가 내 귀에 들어온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유키노가 눈을 뜨고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하치만?"
"유키노……"
 
 
내 모습을 보고 유키노는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이어서 멀어져가는 하루노 씨에게 눈을 돌리고는 눈을 크게 뜬다.
 
 
"언니야!"
 
 
유키노의 비명같은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하루노 씨의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어린 그녀는 눈치챈걸지도 모른다. 그녀의 목소리는 초조감을 억누르지 못해 흐트러진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아마 하루노 씨의 귀에도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걸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간다. 아까보다도 조금 걷는 속도가 빨라진걸로 보였다.
 
 
"언니야, 어디 가는거야! 언니야!"
 
 
유키노는 하루노 씨를 쫓으려고 내 등에서 바둥바둥 날뛴다.
 
 
"하치만! 내려줘! 얼른!"
 
 
유키노의 필사적인 호소에 나는 황급히 무릎을 꿇어 그녀를 지면에 내려준다. 지면에 발이 닿으니 유키노는 급하게 하루노 씨의 뒤를 쫓는다.
 
 
"언니야!"
 
 
유키노는 필사적으로 달리지만 보폭이 달라서 그 거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긴커녕 점점 멀어져간다.
 
그때, 유키노는 발이 걸려 기세 좋게 지면에 넘어져버렸다.
 
 
"유키노!"
 
 
겨우 굳어있던 다리가 움직여 나는 바로 유키노에게 뛰어가 그녀의 몸을 안아올린다.. 유키노는 몸을 일으키며 눈동자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 비통한 표정을 보고 욱신, 가슴이 아픈걸 느낀다.
 
유키노의 무릎에 까진 상처가 생겨서 거기에서 피가 주륵 흐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거기에 신경쓰지 않고 하루노 씨를 쫓으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언니야"
 
 
유키노가 눈물로 엉망이된 얼굴을 하루노 씨 쪽으로 향해 미약한 목소리로 그녀를 부른다. 그녀의 모습은 어둠 저편으로 사라져버려, 그 목소리는 그녀에게 닿지 않는다.
 
유키노의 오열만이 남은 목소리가 무정하게도 조용한 밤에 울려간다. 지금의 나에게는 흐느끼는 소녀를 껴안는수밖에 할 수 없었다.
 
 
 
 
 
 
 
 
 
 
 
훌쩍이며 지금도 오열을 흘리며 울고 있는 유키노를 나는 업고 걷는다.
 
울고 있는 유키노에게 나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다. 위로할 자격조차 지금의 나에겐 없다.
 
……나는 뭘 구하고 있었던걸까?
 
유키노의 소원을 위해……하루노 씨에게 마음을 전해, 앞으로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유키노시타의 어머니에게 유키노가 알려진것으로 인해 불의가 됐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녀들의 관계를 어떻게든 한다. 그 결의는 단 하나의 말로 모든것이 끝나버렸다.
 
셋이서 함께 있는다.
 
그런 이상같은 관계는 정말로 현실이 되지 않고, 그저 환상으로서 사라져 없어져버렸다.
 
……나는 하루노 씨에게 차인 것이다.
 
고백을 거절당하고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라고 들었다. 누구를 말하는건지는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그녀의 마음을 보고 못 본척해왔다. 아니, 그녀들의 마음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유키노시타에게만 전해도 의미가 없다. 유키노시타와 하루노 씨 그 둘에게 전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녀들 말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좋아하게 됐던걸까?
 
적어도 밀도가 짙은 시간이 나의 마음을 바꿨다. 이런 가슴 답답함을 느끼는건 처음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질거라면 갖지 않을걸 그랬다. 이걸로 끝난다면 거기까지의 관계였다. 결국 그녀들은 『진실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식으로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면 얼마나 편할까.
 
정신을 차리고보니 눈 앞에 우리 집이 보여왔다. 집에 불이 켜져있는걸 보면 이미 코마치도 돌아온거겠지.
 
부모님은 오늘은 늦어진다고 연락이 있었으니까 아직 돌아오지 않은걸지도 모른다.
 
나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현관 문을 연다. 집으로 들어가고 나는 우선 유키노를 지면에 내려줬다.
 
 
"유키노, 신발……"
"……"
 
 
유키노는 고개를 숙인채로 내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난폭하게 신발을 벗어버리고 어디론가 뛰어가버린다.
 
나는 그걸 쫓지 않았다. 나도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할 시간은 아니다. 납득시킬 시간을……끝나버린 이 환경에 자신을 익숙하게 만들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가 없다는 이 위화감을 없개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나도 신발을 벗어 집으로 들어간다. 그대로 계단을 올라가니 거실에서 교복차림의 코마치가 빼꼼 고개를 내밀어온다.
 
 
"어서와-, 오빠야. 유키노짱은 어디갔어? ……어라? 그보다 하루노 언니야는?"
"……돌아갔어"
"헤에, 돌아갔구나……엣, 에엑!?"
 
 
이번에 관해서는 이전 처럼 아무 일도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유키노의 모습이 평소와 다른것도 하루노 씨가 없는것도 감추지도 얼버무리지도 않는다. 아니, 얼버무릴 의미도 없다.
 
그러니까 나는 놀라는 코마치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유키노를 유키노시타의 어머니에게 들킨 모양이야"
"에엣!? 유, 유키노짱을!? 그건 유키노짱이……그보다, 유키노 언니가 위험한게……"
"하루노 씨가 어떻게든 해줬으니까 그건 괜찮아"
"그, 그렇구나. 다행이다-. 어라? 그럼 하루노 언니는 왜 돌아갔어?"
 
 
나는 거기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코마치의 옆을 지나 거실에 들어간다. 그리고 주변에 짐을 난잡하게 던지고 소파에 뒹굴 눕는다.
 
 
"……오빠야, 하루노 언니는 왜 돌아갔어?"
"하루노 씨는……유키노를 위해 돌아갔어. 아마 이제 두번 다신 못 만날거야"
 
 
어딘가 남일처럼 들리는 내 말이 머리속에서 몇 번이나 울린다.
 
그래. 하루노 씨는 유키노를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단 한번만 어머니에게 거스른 그녀는 앞으로는 내내 어머니를 따르는걸 결정한거겠지. 우리들과 관계를 끊고, 단 하나뿐인 동생을 지키기를 결정한거겠지.
 
우리들과 관계를 끊고 동생을 지킨 그녀를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왜 그렇게 된건지 코마치는 모르겠지만. ……그때, 오빠는 뭐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 그저 바라본것 뿐이야"
"……그걸로 됐어?"
"……무슨 의미야?"
 
 
코마치의 질문에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몸을 일으킨다. 자신의 목소리가 짜증난다는 듯이 들려왔다. 왜 이런 목소리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건지 나에겐 알 수 없었다.
 
 
"하루노 언니야가 돌아가서 됐어? 두번 다신 못 만난다구?"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어.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겠지"
 
 
코마치의 말은 예상하고 있던 말이다. 그럴니까 나는 마치 대본을 읽는것처럼 미리 생각해뒀던 말을 한다. 목소리는 심히 차갑게 떨쳐내는 듯한 말투다.
 
코마치는 내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이쪽을 빤히 쳐다본다. 지금 나의 속을 들여다보는 눈동자에 나는 무심코 눈을 피한다.
 
 
"오빠야, 그거 진심으로 한하는 소리야?"
"아아, 진심이라 쓰고 진짜다. 내가 진심을 내다니 보기 드물다고. 100년에 한번 정도의 레어도니까. ……그러니까 부탁이니까 혼자 있게 해줘"
 
 
이것도 본심이다. 이 이상, 나를 흐트러뜨리지 말아줬으면 싶다. 이제부터 나는 나에게 몇 번이나 들려줄거니까.
 
포기하고 납득해서 또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하루노 씨가 없어져도, 나는 변함없는 일상을 연기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자신의 신념을 굽혀서 그녀의 의지를 존중해야한다고 나는 생각했으니까.
 
 
"오빠야……"
"……왜"
 
나는 그만 날카로운 어조로 그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나 짜증나는걸까.
 
문제를 제기하여 이론을 생각하고 결론을 이끌어냈다. 납득했을텐데 이해햇을텐데. 왜 이렇게 열받는걸까.
 
가슴 속에 질척질척한 검은 진흙같은 것이 쌓여간다. 스스로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 어쩌면 좋을지 머리로 판단할 수 없다.
 
아직 가까이에 서 있던 코마치는 천천히 나에게 다가온다.
 
 
"……잠깐 괜찮아?"
"……하? 붑!"
 
 
내가 고개를 든 순간, 코마치에게 짜악, 양손으로 얼굴을 사이두듯이 있는 힘껏 얻어맞았다.
 
 
"바보!"
 
 
코마치는 목소리를 떨며 꾸짖듯이 그렇게 말했다.
 
눈 앞에 비치는 코마치는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어, 눈꼬리를 험악하게 말아올리고 있다. 눈동자에는 천천히 눈물이 맺혀있었다. 나는 눈 앞의 동생의 표정을 아연하게 쳐다보고 있다.
 
얻어맞은걸로 인해 저리는 뺨에 코마치의 체온이 전해져온다.
 
코마치는 입술을 꼭 깨물고 악무는듯한 눈동자로 쳐다본다.
 
 
"바보! 멍청이! 삐줍대는것도 작작해!"
"……딱히 삐줍대지 않았어"
"그럼 왜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실은 그런 생각하지 않는 주제에! 하루노 언니야를, 엄청 신경쓰고 있는 주제에!"
"……네가 뭘 아는데"
"알아! 코마치는 오빠의 동생인걸! 자신을 억지로 납득시키려고 한다는걸, 코마치에겐 오빠를 보면 바로 아는걸!"
 
 
남매니까 안다. 그야말로 궤변이다. 가족이니까 이해한다는건, 그런건 그저 허위망상이었다.
 
유키노시타와 하루노 씨가 그 좋은 예시다. 자매인데, 서로 단 하나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렇게나 엇갈리고 있다.
 
피가 이어진 자매조차도 알지 못한다면, 정말로 이해하는 존재는 없는걸지도 모른다. 『진실된 것』은 존재하지 않는걸지도 모른다.
 
『네가 말하는 진실된 것은 뭐야?』
 
석양으로 오렌지색으로 비추어진 옥상에서 그녀는 그렇게 나에게 물었다. 왜 유키노시타가 그런 말을 했던건지 지금이라면 알 수 있다.
 
자매조차도 통하지 않는데, 그녀가 그걸 알리가 없었다.
 
 
"아무것도 몰라. 어쩔 수 없다고. 하루노 씨의 행동은 어떻게 되는데? 내가 움직여서 하루노 씨의 행동을 헛되게 만들 정도라면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좋잖아?"
"……정말로 이 오레기는……"
 
 
코마치는 내 뺨에서 양손을 떼어 꾸욱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어깨를 떤다. 하지만 이윽고 코마치는 뭔가를 토해내듯이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까보다도 차분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오빠야, 하루노 언니야를 좋아하는거 아니야"
"……"
"거기다 유키노 언니도 좋아하는거지?"
"……왜 아는거야?"
"보고 있으면 알아. 오빠가 얼마나 두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코마치는 그렇게 말하고 내 옆에 툭 앉고는 내 얼굴을 또 잡아다가 억지로 자기 쪽으로 돌아보게 한다.
 
 
"……한번 더 물을게. 오빠는 정말로 그걸로 돼? 오빠는 삐뚤어졌으니까, 좀처럼 본심을 말하지 않는건 알고 있어. 하지만, 지금만큼은 말해줬으면 싶어"
"……나는 딱히"
"정말로 오빠가 그걸로 괜찮다면 코마치는 아무 말도 안 할거야. 하지만, 오빠의 얼굴을 보면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코마치는 실로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 빤히 이쪽을 조용히 쳐다본다. 아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거겠지. 코마치의 시선에서 나는 눈을 피할 수가 없다. 자신의 본심이 간파당하는것 같다. 내가 필사적으로 감추려고 하는 본심을.
 
……나는 어떡하고 싶은걸까?
 
유키노시타와 하루노 씨의 관계를 지키고 싶었다. 이어질뻔했떤 자매의 인연이 또 끊기는걸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들을 좋아하니까. 그녀들이 상처입는걸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정말로 그것뿐일까?
 
유키노의 소원뿐이었던걸까? 내가 그 관계를 지키고 싶은 이유는 정말로 그것뿐이었던걸까?
 
해답은 나왔다. 이제 이 이상 문답할것도 없다. 그런데 가슴 속을 자리잡은 짜증의 정체는 무엇일까?
 
유키노와 하루노 씨.
 
왜 이렇게나 그 둘과 보낸 시간만을 떠올리는걸까?
 
왜? 어째서? 어째선데?
 
……아니, 실은 알고 있다. 보고 못 본척을 해도, 얼버무릴 수 없는 마음. 유키노를 하루노 씨를 생각하여 자각해버리는 마음. 진짜 대답은 진작에 나와있었다.
 
…그런가. 나는 분명 그녀들과.
 
 
"……좋을리가 없잖아"
 
 
입에서 멋대로 나온 말은 자신의 목소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낮고 무거운 목소리. 그리고 어딘가 축축하게도 들렸다. 내 목소리에 코마치는 에? 하며 작게 소리를 지른다.
 
 
"……이걸로 좋을리가 없잖아. …이런 형태로 끝내고 싶지 않은게 뻔하잖아!"
 
 
나는 집 안에 울릴 정도의 목소리를 지른다. 콧속이 아프고, 눈에선 눈물이 치솟아오를것 같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코마치의 얼굴이 순간 뿌예진다.
 
지금 되어서, 그때의 후회가 나 자신에게 혐오감이 밀려온다. ……가슴에 뻥하니 뚫린 구멍을 자각해버린다.
 
참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내일도 또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기 위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을 가장하며, 그녀가 없다는걸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내가 가장 싫어한 기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인데.
 
그래도 한번 무너진 것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그때, 하루노 씨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이 멈출것 같지 않았다.
 
 
"전부터 원했던것이 겨우 손에 들어올뻔했는데, 떠나가면 분한게 뻔하잖아! 하루노 씨가 가길 원하지 않은게 당연하잖아!"
 
 
코마치는 정신이 팔린듯이 멍하니 입을 어중간하게 벌리고 있다.
 
나도 예상외였다.
 
자신의 안에서 이런 추악한 감정이 흘러나오다니. 자신의 입에서 천박하게 탐욕스런 원망만을 늘어뜨린 말이 나오다니.
 
……역시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거다. 포기할 이유를 자신의 안에서 내내 찾아, 납득시킬 이유를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지나도 찾을 수 없어서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럼, 역시 나는…….
 
 
"확실히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 있다는건 알고 있어. 하지만, 역시 나는……… 하루노 씨를 좋아해. ……그 두 사람을 좋아해"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는 이윽고 사그라들어 마지막에는 꺼져버릴 정도로 작아져갔다. 뺨에 주르륵 눈물이 흘러가는걸 안다.
 
정말로 한심한 오빠다. 동생한테 큰 소리로 화를 내고, 자신의 소망을 소리치다니…….
 
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코마치를 쳐다보니 코마치는 기쁜듯이 방긋 웃고 있었다. 코마치의 예상밖의 반응에 나는 그만 방심상태에 빠지고 만다.
 
 
"……다행이다"
 
 
그렇게 말하고 코마치는 내 얼굴에서 손을 떼어, 꼬옥 내 머리를 감싸듯이 안아온다. 안겨져서 희미하게 따뜻해지는듯한 감각이 내 가슴에 퍼져가는걸 느낀다.
 
 
"코마치……"
"오빠가 본심을 말해줘서 다행이야. 그렇지. 역시, 오빠도 분하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게 당연하지"
"……"
"하지만 말야, 그걸 내내 감추고 있으면 아무도 몰라. 본심은 말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않아"
"하지만, 이런 말을 해도……"
"괜찮아. 분명 하루노 언니는 알아줄거야. 유키노 언니도 그래. 오빠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걸로 오빠를 싫어하거나 절망하지 않아"
"왜 그런걸 아는건데?"
"알아. 코마치에겐"
 
 
그렇게 말하고 코마치는 아이를 달래듯이 내 머리를 퐁퐁 쓰다듬어준다.
 
거기서 겨우 나는 제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코마치한테서 몸을 뗀다. 그리고 조금 뜨거워진 뺨을 얼버무리듯이 긁적인다.
 
 
"……그러허다고해도 뭐든 말해도 좋을리가 없잖아?"
"코마치는 그런 말 안했는데 말야-. 정말로 번거롭네에, 이 삐줍이는"
"……하지만 미안하다, 코마치. 갑자기 화를 내서"
 
 
코마치에게 추한 마음을 보여서 가슴 속에 있던 시커먼 구름이 슥 걷혀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하나의 해답을 발견한것 같았다.
 
내가 솔직하게 고맙다고 말을 하니 코마치는 히죽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솔직하게 사과하는 오빠, 좀 기분 나빠-"
"……너 말야. 삐줍이 외톨이인 내가 솔직하게 사과하는건 엄청 희유하다고"
"말해두겠지만, 코마치에게 있어서 이런건 별거 아니야. 삐줍이 오빠니까. 거기다 코마치는 전부터 오빠의 행복을 바라고 있으니까. 앗, 지금 그거 코마치 기준으로 포인트 높아!"
 
 
끔뻑 윙크를 하며 그렇게 말하는 코마치에게 나는 그만 기막힌듯이 쓴웃음을 흘려버린다.
 
 
"……마지막 한 마디로 완전히 너 엉망이다"
 
 
정말로 엉망이야, 그 마지막 한 마디. 동생의 관용에 두근거렸던 내 소녀심을 돌려줘.
 
그보다 가슴은 그렇게까지 크지 않은데, 이런 모성도 갖고 있다니, 내 동생 너무 완벽하잖아. 어디에 내놓아도 불평이 없을 수준이다. 내놓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역시 너는 최고의 동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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