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농 - 19. 이유가 있어서,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삐쳐있다.
 
 
 
 
"……"
"유, 유키노? 왜 그래? 기분이라도 나빠?"
"……으응"
"그, 그런가"
"으-"
 
아니, 아무리 봐도 뭔가 있잖아.
 
돌아가는 길 도중, 나는 유이가하마와 잇시키와 헤어지고 나서 계속 심통해있는 유키노를 곁눈으로 본다.
 
유키노는 볼을 이래도냐 싶을 정도로 부풀리며 내 손을 잡지 않고, 손가락 끝을 톡, 면목없을 정도로 잡고 있다.
 
내가 몇 번인가 걱정해서 물어봐돠 돌아오는 대답은 "으응" 이나 "몰라" 뿐이다.
 
그리고 대답이 끝난 후, 또 삐친듯이 부- 하며 얼굴을 전력으로 부풀린다.
 
전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왜 화내는거야? 아니, 삐친건가?
 
왜 삐친거야?
 
나는 아까전의 일을 천천히 떠올려본다.
 
잇시키의 의뢰는 날을 바꾸자고 해서 오늘은 해산하게 됐다.
 
역시 잇시키도 저렇게까지 거절당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모양이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잇시키의 뒷모습에 나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오늘은 하루노 씨한테 쇼핑도 부탁받지 않았으니, 유키노를 어디 데려가줄까 생각했던게 이거다.
 
유키농이 삐침농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유키노를 어디에도 데려가지 못하고, 곧장 집을오 돌아오게 됐다.
 
……모처럼 유키노가 기뻐할만한 곳에 데려가려고 생각했는데.
 
라고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뭐, 어쩔 수 없다.
 
유키노의 상태가 안좋다면 무리하게 데려갈건 아니다.
 
날을 바꾸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다 분명……모레는 추천 입학식이라고 하면서 학교가 노는 날일 것이다.
 
그때 또 어디로 데려가면 된다.
 
"앗, 하치만, 유키노"
 
내가 그렇게 마음 먹으니 뒤에서 하루노 씨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돌아보니 하루노 씨는 트렌치 코트 안에 체크 셔츠를 입고 있고, 아래는 청바지다.
 
그리고 팔에는 시장바구니를 늘어뜨리며 우리를 비어있는 손으로 흔들면서 이쪽으로 걸어온다.
 
아무래도 쇼핑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던 모양이다.
 
유키노도 하루노 씨를 보고, 내 손가락을 삭 떼고 불퉁한채로 하루노 씨에게 기세좋게 뛰어간다.
 
하루노 씨는 뛰어든 유키노를 "와왓" 놀라면서도 가볍게 받아내고, 시장 바구니를 어깨에 매고, 유키노의 머리를 착하지 착해 하며 쓰다듬는다.
 
"어라? 유키노 왜 그래? 심통난것 같은데?"
"응-"
 
하루노 씨의 질문에도 유키노는 얼굴을 묻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다.
 
다음으로 하루노 씨는 나에게 고개를 돌리지만 나는 그걸 모른다는 의미를 담아서 붕붕 고개를 젓는다.
 
그보다 알면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어떻게든 한다.
 
하루노 씨는 내가 고개를 흔드는걸 보고 하아, 한숨을 내쉬고 몸을 낮춘다.
 
하루노 씨가 자세를 낮추는걸 보고, 유키노는 하루노 씨한테서 일단 떨어져서 다시 꼬옥, 이번에는 목 뒤로 팔을 감아서 껴안는다.
 
"……유키노? 정말로 왜 그래?"
"으-"
"으-가 아니야. 앗, 그럼 제대로 말해주면 하치만이 키스해줄지도 모르는데?"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하루노 씨의 말에 나는 무심코 딴지를 걸어버린다.
 
아니, 정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사람.
 
그야 키스를 할 수 있지만 나도 기쁘지만. 하지만 모든게 그런걸로 해결할 수 있다면 진작에 그렇게 했지.
 
아니, 내가 하고 싶다는게 아니야, 진짜로.
 
유키노는 하루노 씨의 말에 움찔 순간 굳었지만, 이윽고 "됐어" 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붕붕 젓는다.
 
"얼레, 정말로 이상하네. 유키노가 하치만의 키스를 싫어하다니……"
 
하루노 씨는 정말로 이상한 일이라고 말하는듯 의아해한다.
 
……왠지 수수하게 나만 상처입은것 같은데.
 
그나저나 "됐어"라-. 왠지 평범하게 상처입었네-.
 
어라? 이상한데-. 시야가 뿌예진다. 눈에 먼지라도 들어갔나?
 
"그럼 유키노. 언니한테만 가르쳐주지 않을래? 왜 그렇게 기분이 나쁜거야?"
"……안 말할거야?"
"응, 누구에게도 말 안할게. 자, 언니한테 말해보렴"
 
하루노 씨는 그렇게 말하고 유키노에게 얼굴을 가져가 귀를 댄다.
 
유키노는 고민하듯이 응- 하고 소리를 냈지만, 이윽고 어째선지 얼굴을 붉히며 하루노 씨에게 웅얼웅얼 귓속말을 한다.
 
그걸 나는 아연하게 쳐다본다.
 
……왠지 지금 나. 따돌려진 느낌이 장난이 아니야.
언제나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유키노가 기운이 없는 이유가 무진장 신경쓰인다.
 
그리고 왠지 유키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하루노 씨가 나를 힐끔 쳐다보며 히쭉 웃고 있는게 무척이나 신경쓰인다.
 
유키노가 귀에서 얼굴을 떼자, 이윽고 하루노 씨는 쿡쿡 입가에 손을 대며 웃었다.
 
"언니야!"
 
그 모습에 유키노는 뿡뿡 어깨를 흔들면서 퍽퍽 하루노 씨의 어깨를 때린다.
 
하루노 씨는 "미안미안" 하며 사과하지만 웃고 있어서 전혀 반성의 색은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유키노는 더 기분이 나빠진 모양이다.
 
"언니 바보"
 
마침내 유키노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미안해, 유키노. 유키노가 귀여워서 그만 웃어버렸어"
 
귀여워서 웃었다니 뭐야.
 
유키노의 귀여움은 어떤 화난 사람이라도 미소로 바꿀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다는건가?
 
……스스로 말해놓고 굉장히 납득할 수 있다.
나라면 유키노의 귀여움에 후헷거리며 항상 히쭉거리겠지.
 
하루노 씨는 웃고 있지만 달래듯이 유키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정말로 귀엽네, 유키노. 이전의 유키노라면 이런걸로 삐치거나 화내지 않았는데…… 뭐, 지금은 아이라서 그럴까?"
 
하루노 씨는 자애로운듯이 그렇게 말하지만, 유키노는 아직 고개를 부풀리며 입술을 뾰족이고 있다.
 
하루노 씨는 영차, 하고 유키노를 안아올리고 일어선다.
 
"확실히 이번에는 하치만이 잘못했네. ……좋아! 언니가 유키노의 편이 되어줄게!"
"언니야……"
 
유키노는 눈을 글썽이며 하루노 씨에게 꼬옥 매달린다.
 
그보다 유키노가 기분 나쁜건 나 때문이었어?
솔직히 전혀 짐작이 안 가는데.
 
하루노 씨는 유키노의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으면서 빙그르 나를 돌아본다.
 
"……그런고로 이번에 누나는 유키노의 편을 들기로 했습니다! 미안해, 하치만"
"아니, 그건 딱히 상관없지만요. 그보다, 이번이고 자시고 아군이 되어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요……"
 
정말로 하루노 씨가 내 편을 들어준 적은 한 번도 없다.
언제나 나를 놀리기만 했으니까, 이 사람.
 
"그저, 그게……유키노가 기분 나쁜 이유만이라도 가르쳐줬으면 싶은데요"
"으음, 그건 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어. 여심을 모르는 하치만에겐 말이야"
 
하루노 씨는 그렇게 말하고 쿡, 하며 심술궂은 미소를 짓고 나에게 귀엽게 혀를 메롱하고 내민다.
 
유키노도 그걸 따라해서 나에게 메롱, 하고 귀엽게 혀를 내민다.
 
"그럼 돌아갈까? 유키노"
"응!"
 
아까전의 심통한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유키노는 생글생글 태양처럼 눈부신 미소를 하루노 씨에게만 짓고 있다.
 
하루노 씨는 그런 유키노를 포옹하면서 내 앞을 걸어간다.
 
라고 생각했더니 얼굴만 빙그르 돌려 이쪽을 쳐다본다.
 
"……오늘, 네가 한걸 천천히 떠올려보면, 둔감한 하치만이라도 알거야. 그치, 유키노♪"
"그치♪"
 
그렇게 말을 남기고 둘은 꺅꺄우후후거리면서 이번에야말로 앞을 걷기 시작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즐거운듯이 웃는 모습은 나에게는 사이 좋은 자매로 보이고, 또 모녀로 보였다.
 
……따, 딱히 부러운건 아니거든!
 
 
 
 
 
 
 
 
 
 
 
……이런. 전혀 모르겠다.
 
나는 욕실에서 나와, 자신의 방에서 침대에 뒹굴면서 아까전에 하루노 씨에게 들은대로 오늘 일을 떠올려봤다.
 
하지만 모두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니 그치만, 나 오늘 유키노에게 아무것도 하지……않은건 아니지만.
 
확실히 껴안거나 여러가지로 했지만……그리고, 오늘 아침에 몰래 자는 얼굴을 찍어버리기도 했지만.
 
아니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그건.
 
그런 사랑스러운 얼굴이 눈 앞에 있으면, 모두 찍을거잖아? 아니, 안 찍나.
 
뭐, 그건 무덤까지 갖고 가기로 하고……결론을 말하자면, 오늘 나는 특별히 유키노를 화낼만한 짓을 하지 않았다.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유키노가 나에게 기분을 상해하고 있는건 사실이니까.
 
결국, 그리고나서 유키노는 나하고 거의 입을 열어주지 않았다.
 
거의라고 해야할까, 무시에 가깝다.
 
여름방학에 우연히 만났던 이전 유키노시타에게 완전 무시당한적도 있는 나지만, 정신적 대미지는 이번이 막대하다.
 
하루노 씨도 하루노 씨대로 이번에는 정말로 도와줄 생각이 없는지 거꾸로 나를 몰아내기 위해서인지 저녁식사때 유키노와 평소 이상으로 시시덕거렸던것 같다.
 
도중부터 나는 젓가락맛밖에 안 났던걸 기억한다.
 
유키노가 왜 화내는걸까?
 
내가 정말로 원인이라고 한다면, 솔직히 사과하고 싶다.
 
전혀 짐작이 없지만, 나는 지금 유키노가 뚱해하는 얼굴은 별로 봐도 기쁘지 않다.
 
아니, 귀엽지만. 화내고 있는 유키노도 엄청 귀엽지만!
 
……하지만, 역시 유키노는 계속 웃어줬으면 싶다.
 
순진무구하고 사람 잘따르는 미소를 지어줬으면 좋겠다.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크게 한숨을 쉰다.
 
……내일 일단 뭐든 좋으니까 사과하자.
 
어쩌면, 이유를 모른다고 용서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있는건 싫고, 짧은 시간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유키노를 대하지 못하면, 유키노 성분이 부족해서 위험하다. 토츠카로 채울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부족하다.
 
기분 나쁠지도 모르지만, 이건 나에게 있어선 사활문제다.
 
……정말로 부모가 아니니까 이상하지만, 정말로 나 딸바보같네.
 
결국, 이럴때 아버지와 피가 이어진걸 느낀다.
 
앗, 머리색의 핏줄은 느끼지 않아.
 
응, 내 머리는 아직 건전하니까!
 
라며 아무래도 좋은 일을 생각하고 있으니, 갑자기 문이 달칵 하고 작게 열린다.
 
나는 몸을 일으켜서 문에 시선을 향하니, 거기에서 유키노가 고개를 빼꼼 내밀며 들어왔다.
 
유키노는 목욕하고 나와서인지 폭신폭신 부드러운 판씨 귀가 달린 후드있는 파자마를 입고 있다.
 
상기된듯이 살짝 붉어져 있고, 머리카락도 젖어있다.
 
유키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얼굴을 빼려고 한다.
 
"유키노"
 
내가 불러 세우자, 움찔 몸을 띄우며 살짝 얼굴을 또 내민다.
 
그 표정은 어디에서 어떻게 보아도 언짢은 표정이다.
 
"……왜?"
 
기분탓인지 대답이 평소보다 차갑다. 그게 내 정신 LP를 팍팍 깎아가는걸 느낀다.
 
이거 위험하네. 자칫하면 이전의 유키노시타의 폭언보다도 심할지도 모른다.
 
하, 하치만, 더는……한계일지도 몰라.
 
나는 그걸 어떻게든 드러내지 않고, 어색하지만 미소를 만들며 말을 걸려고 한다.
 
"아, 아직 화난거야?"
"……응"
"……그, 그런가"
"……하치만은 유키노가 왜 화내는지 몰라?"
 
그 말에 나는 순간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서 무심코 얼굴을 찌푸리고 만다.
 
내 반응을 보고 유키노는 시무룩하며 슬프다는듯 눈을 내린다.
 
그만해! 그 표정! 하치만의 LP 몽땅 깎아버려! 게임 오버해버려!
 
"하치만……"
"……미안"
 
유키노가 울려고 하는 시선에 견디지 못하고 나는 마침내 사과해버렸다.
 
더는 틀렸다, 이거. 엎드려 빌면 용서해주려나?
 
"……"
 
내가 엎드려 빌기 자세에 들어가려고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바닥에 대자, 유키노는 말없이 내 가슴에 뛰어들었다.
 
"유, 유키노?"
"쓰다듬어줘"
"어, 어어"
 
유키노가 툭 중얼거린 명령에 당혹해하면서도 나는 유키노의 젖은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매끄러운 젖은 머리카락에선 샴푸 냄새가 난다. 유키농 에너지가 보충되는걸 느낀다.
 
……어, 어, 어라? 이상한데?
 
왠지 유키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쓰다듬을 수록, 유키노한테 언짢은 오러가 솟아나오는것 같은데……?
 
"……이로하"
"어?"
"하치만, 이로하의 머리 쓰담쓰담했어"
"……응?"
 
어? 왜 여기서 잇시키의 이름이 나오는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내 머리 속에서 어질러져있던 퍼즐 조각이 순식간에 조합되어 가는걸 느꼈다.
 
서, 설마……이 녀석, 잇시키한테 질투를 한거야?
 
나는 저도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걸 참을 수 없었다.
 
……이런.
그……뭐라고 할까, 귀엽다는 차원이 아니야 이거.
 
사랑스럽다고 할까, 눈에 넣을 수 있다고할까, 집어넣어도 아프지 않다.
 
나는 무심코 매달려있는 유키노의 작은 몸을 덥석 껴안고, 그대로 있는 힘껏 뺨에 가볍게 키스를 한다.
 
"하, 하치만!?"
"너, 무진장 귀엽잖아"
"우냑!?"
 
앗, 소리내버렸다.
그보다, 그만 키스해버렸다.
 
드물게도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아와아와 허둥대는 유키노의 사랑스런 귀에 나는 속삭이듯이 말을 한다.
 
"미안해, 유키노. 나, 둔감하다고 할까 바보였어. 유키노의 질투를 전혀 깨닫지 못했어"
"하, 하치만, 벼, 벽창호!"
 
귀까지 새빨개지면서도 삐친 표정을 짓는 유키노에게 나는 가볍게 쓴웃음을 짓는다.
 
벽창호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고 쓰는걸까, 이 녀석?
 
"하치만"
"왜?"
 
유키노를 쳐다보니 부르르 떨리고 있는 핑크색 입술, 눈물로 젖어있는 눈동자, 살포시 홍조되어 있는 뺨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거기에 심장고동이 빨라지는걸 느끼고, 이성이 무너지려고 하는걸 어떻게든 참고 평정을 꾸린다.
 
유키노는 나를 올려다보기로 빤히 쳐다보면서 천천히 입을 연다.
 
"……하치만은 유키노랑 이로하 중에 누굴 좋아해?"
"유키노"
 
유키노의 갑작스런 질문에도 나는 즉답했다.
 
유키노는 내 대답에 놀란듯이 눈을 끔뻑거리고 있지만, 금방 생긋 미소를 짓는다.
 
"에헤헤♪ 그럼 유키노랑 사짱은?"
"유키노야"
"케짱"!
"유키노군"
"시즈카 언니야!"
"유키노인게 당연하잖아"
"하야토!"
"절대로 유키노. 그보다 왜 하야마의 이름이 나오는거야"
"……유이는?"
"유, 유키노"
 
왠지 유이가하마때는 약간 버벅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운 만큼, 조금 말하기 힘들다.
 
그보다 유키노가 토츠카를 몰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유키노와 토츠카 중에 누구를 좋아하냐는건 궁극의 선택이다.
 
그런건 나에겐 고, 고를 수 없어어.
 
내 대답에 유키노는 상당히 기분이 풀어진 모양이다.
 
방금전까지 뚱했던 얼굴이 거짓말처럼 방긋 미소짓고 있어서 기뻐해주고 있다.
 
그리고 앗, 하며 무언가를 떠올린듯이 작은 목소리를 낸다.
 
"그럼 유키노랑 언니는?"
"물……"
 
나는 바로 "물론 유키노야"라고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을 나는 무의식중에 삼켜버렸다.
 
스스로도 어째선지 몰랐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누가 더, 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유키노랑 하루노 씨라면……물론 유키노다.
 
하루노 씨는 본인에게는 절대로 말할 수 없지만, 확실히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아한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금의 유키노는 좋아한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 말로 하면 좋을텐데.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입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둘 다 정말 좋아해"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답은 그런 뭐라 말할 수 없는 어중간한 말이었다.
 
어딘가 도망치는 말로도 나에겐 들렸다.
 
유키노는 내 대답에 어찌된 영문인지 특별히 아무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가-" 라며 여전히 기쁘다는듯이 볼을 풀고 있다.
 
그리고 내 목을 꼭 꼉나고 비비적비비적 내 뺨에다 볼을 비벼온다.
 
"유키노도 하치만이랑 언니를 제일 좋아해♪"
 
……이, 이건 기뻐해도 좋은걸까?
 
아니, 유키노의 탄력있고 매끄러운 볼을 비빌 수 있는건 기분 좋고 기쁘……그게 아니라.
 
하루노 씨와 동률로 1위인가……아니, 이건 그……역시 노린다면 하루노 씨를 넘어서, 정상을 노려야지! 정상!
나, 나도 남자애인걸!
 
좋아! 다음은 하루노 씨에게 이기면 내가 정점이다!
 
내가 타도! 하루노 씨! 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문득 시계가 눈에 들어온다.
 
시계 바늘은 벌써 22시를 표시하고 있다.
 
이제 슬슬 자려고 할까, 오늘은 유키노와 잘 수 있을까 등 두근두근쿵쾅쿵쾅 거리고 있으니, 내 소매를 꾹꾹 잡아당긴다.
 
"……하치만"
"왜?"
 
내가 그렇게 말하고 돌아보니 빨개진 얼굴의 유키노가 나에게 천천히 얼굴을 가져온다.
 
그리고 유키노의 입술이 쪽, 하고 내 볼에 닿는다.
 
"……잘 자"
 
천천히 입술을 떼고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서 그렇게 말하자, 유키노는 새빨개진 얼굴을 손으로 가리면서도 파닥파닥 문까지 이동한다.ㅣ
 
그리고 문을 열고 그대로 방에서 나가버렸다.
 
작은 발소리가 멀어져가는게 들려온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질, 현기증이 나듯 몸을 쓰러뜨린다.
 
쿵, 바닥에 머리를 찧지만 신경이 마비됐는지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고 아마 빨개졌을 얼굴을 손으로 덮는다.
 
……귀, 귀귀귀, 귀여워어어어!
 
더, 더는 무리! 창문을 열고 소리지르고 싶을 정도다!
 
잘 자 뽀뽀라는건 반칙이잖아! 레드 카드잖아! 한 방에 퇴장이잖아!
 
너무 수줍어진 더위에 나는 그 자리에서 뒹굴뒹굴 굴러버린다.
 
우가- 거리며 잠시 뒹굴고 있으니, 조금 진정이 됐다.
 
조금만 COOOOOOOL! 해진 머리가 방금전까지 생각하고 있던걸 떠올린다.
 
『둘 다 정말 좋아해』
 
……왜 그런 말을 했던걸까?
 
그 시점에서 또렷한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순간 하루노 씨의 미소가 머리를 스쳤다.
 
정확하게는 유키노와 하루노 씨가 사이 좋게 웃고있는 광경이.
 
왜 그런 광경을 떠올린거지?
 
누우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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