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는 아닙니다, 엘리트입니다. - 눈동자에 비치는 사람
 
히키가야 하치만이 봉사부에 입부한 다음날. 그 부실에서――
 
 
"……승부?"
 
"그래. 네가 상심한 히라츠카 선생님을 두고 간 후, 나와 당신이 승부한다는 얘기가 됐어.
 참고로 거부권도 기권도 인정하지 않는 모양이야. 그리고 이긴 쪽의 메릿트로서 승자가 패자에게 뭐든지 명령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그런 쓰레기같은 상품으로 엘리트가 낚일거라고 생각한겁니까. 하다뫗해 서약서 하나라도 쓰지 않으면 그런 상품, 구두약속이 됩니다"
 
"어머, 그렇게나 큰 소리 쳐놓고 나에게 이길 자신이 없는거니?"
 
"저는 당신과 달리 벌로 들어왓으니까요, 승부나 상품같은 그런 들뜬 마음으로 임할리가 없지요"
 
"…그, 그러네…"
 
 
가벼운 도발을 생각외로 진지하게 들은 유키노는 기세를 잃고 책으로 눈을 떨군다.
 
 
"어제도 그렇게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만, 부활동을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의뢰인이 올때까지는 활동을 할 수 없어. 어제 설명으로 이해하지 못했던거니?"
 
'아뇨, 그저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서…아아,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시간이 있는 평범한 사람인 유키노시타 씨는 얼마나 낭비하든 신경쓰지 않나요"
 
"……의뢰가 없는건 학생이 건전하게 보내고 있다는 증거야. 이 부활동의 활동이념으로서는 기쁜 일이야"
 
"그에 비해선 기뻐보이진 않군요"
 
"그러네, 근성이 썩은 남자가 들어왔으니까 이 부실의 공기가 오염된걸가"
 
"어라, 이 학교에 깨끗하고 맑은 공기 따위가 존재했습니까"
 
"……당신, 잘도 그런 태도로 지금까지 생활할 수 있었네"
 
"당신과 달리 엘리트니까요. 그러는 당신은 어떻습니까?"
 
 
유키노는 조용히 책을 덮고 뭔가를 떠올리듯이 눈을 감았다.
 
 
"……남에게 사랑받을것 같지 않은 당신에게 있어서 불쾌한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불쾌한 얘기는 익숙하니까 배려해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래……나는 옛날부터 귀여웠으니까, 다가오는 남자는 대개 나한테 호의를 기대왔어. 나 자신이 사랑받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오히려 자신의 의사로 주위 남자를 처음부터 처리했다면 그러는 편이 문제겠지요"
 
"그래, 그 말대로야. …하지만 그런건 관계없어"
 
"그렇겠지요. 당신을 제외한 여자에게 있어선"
 
"눈치가 좋네. 초등학교 시절, 60번 이상 실내화가 감추어진 일이 있었는데 그 중 50번은 여자에게 당했어. 덕분에 나는 매일 실내화와 리코더를 갖고 돌아가게 됐어"
 
"아무래도 좋은걸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군요. 참고로 저는 초, 중, 고등학교에서 당신과 비슷한 일을 겪었습니다. 애시당초 바로 처분했습니다만"
 
"……그건 실내화? 아니면 범인?"
 
"글쎄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무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처분이라고 말한 하치만을 보고 한기를 느끼면서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당신도 힘들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힘들었어. 나, 귀여우니까"
 
 
유키논느 어딘가 지친듯이 훗, 하고 희미하게 웃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사람은 다들 완벽하지 않으니까. 약하고 마음이 추하고, 금방 질투해서 밀어내려고 해. 신기하게도 우수한 인간일수록 살기 힘든거야, 이 세상은. 그런건 이상하잖아.
 
 ――그러니까 바꿀거야.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하치만은 썩은 눈동자로 그렇게 단언한 유키노를 쳐다본다. 유키노는 다시 책을 펴고 페이지를 넘겼다.
 
 
"그런 모래알갱이같은 작은 반골심으로는 세상은커녕 유치원조차도 바꿀 수 없습니다"
 
 
멈칫, 페이지를 넘기는 손이 멈춘다.
 
 
"당신은 확실히 우수합니다. 우수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혼자서 아무리 소란을 피워본들 혁명따윈 일어나지 않습니다. 세상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겠지요"
 
 
유키노의 눈동자가 분노로 물든다. 하치만은 그걸 썩은 눈동자로 쳐다봤다.
 
 
"……무슨 말을…하고 싶은거야…!"
 
"모른다면 그 정도라는 소리입니다. 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럼, 당신은 어떤데!?"
 
"바꿀 수 있습니다. 거기에 충분한 이유를 찾아낸다면요"
 
 
잠시간 침묵 후, 유키노의 제안으로 봉사부는 오늘은 해산하게 됐다. 열쇠를 교무실에 돌려주러 간 유키노를 바래다보면서 하치만은 판매 자판기에서 MAX커피를 사서 한입 마셨다.
 
 
"뭐냐, 아직 있던거냐?"
 
"안녕하세요. 이 커피, 근처에선 못 보게 되었거든요"
 
 
담배를 물면서 걸어온 시즈카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하치만의 옆에 앉는다.
 
 
"유키노시타가 스스로 부활동을 끝내다니, 보기 드문 일도 있군. …무슨 일이 있었느냐?"
 
"네, 있었습니다"
 
"그런가…뭐, 세세한건 묻지 말기로 할까. 너도 들려주고 싶진 않겠지"
 
"딱히 말해도 상관없지만요"
 
"그, 그런가…. 그런데 네가 보기에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어떻게 보이지?"
 
"……힘 센 돼지, 일까요"
 
 
하치만의 뜻밖의 대답에 시즈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돼지라…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지?"
 
"그녀는 기가막힐 정도로 올곧습니다. 보고 있으면 질려버릴 정도로 말이죠. 그녀의 눈 앞에 가로막는 사람은 모두 그 돌진으로 파괴당하겠지요. 나무 벽을 쉽게 돌파하고, 돌 벽을 그 힘으로 때려부순다"
 
 
거기서 하치만은 구분을 짓고, 아직 내용물이 남아있는 캔커피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철 벽에 격돌하여, 가루가 되어 박살나 죽는다"
 
 
시즈카의 입에서 불이 꺼진 담배가 떨어졌다.
 
 
"멈추는것도 굽히는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미래는 파멸이 기다릴 뿐입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런가. 유키노시타는 우수한 학생이지만 가진 자는 가진자의 고뇌가 있는거지. 실은 굉장히 착한 아이다. 착하고 때때로 올바르지. 그저 세상이 다정하지 않고 올바르지 않으니까. 자못 살기 힘들겠지…"
 
"제가 말하자면 다정하지 않고 올바르지 않은게 아니라, 무르지 않을 뿐입니다. 모두를 지키는 경찰이니까 좋은 사람. 모두의 위에 서는 정치가니까 좋은 사람.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하치만은 캔에 남은 커피를 비우고 빈캔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너는 정말로 삐뚤어졌구나"
 
"평범한 사람이 보려고도 하지 않는걸 제대로 보고 있는것 뿐입니다. 덕분에 이렇게나 썩어버렸지만요"
 
 
하치만이 자신의 눈을 가리키자 시즈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그 외알 안경은 그 눈을 조금이라도 나아보이게 하기 위해 낀거냐?"
 
"썩은건 두번 다신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제 눈이 빛을 되찾는 날은 오지 않겠지요. ……그럼 내일 봅시다"
 
 
그렇게 말하고 하치만은 발꿈치를 돌려 이 자리를 떠났다. 시즈카는 시야에서 하침나이 사라지자, 두 개피째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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