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희생을 동반해 - 가상과 현실의 경계
 
 
 
 
……………
………
……

.
.
.
 
 
 
 
 
암흑에 헤메어 버렸다.
 
이상하, 나라는 사람이…….
 
흠, 아무래도 생각에 몰두해버려서 정규 길에서 벗어나버린 모양이다.
 
익숙치 않은 건물에 끼인 뒷골목은 어두컴컴하게 짜여있다.
 
되돌아가는게 좋은가, 아니면 나아가는게 좋은가…….
 
문득 조금만 고개를 엿보인 모험심이 나의 마음을 간질었다.
 
 
창조했을때부터 나의 것이었던 이 세계.
 
 
너무 알아버리는것도 재미없다.
 
가끔은 모험을 해보자.
 
 
아주 작은 호기심이 움직인 다리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유익하다고 할 수 있는 만남을 낳아주었다.
 
 
이 세계의 관측자로서 나는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을 평등하게 지켜보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템 드롭의 출현율이었거나, 확률변수였거나, 나의 관리하에 있어서 유일한 개인이 우대받는 일은 절대로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요컨대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모든 플레이어가 나에게 있어서
 
 
1/10000이니까.
 
 
"……후후. 재미있는 눈을 하고 있군"
 
 
"……아?"
 
 
인기척이 적은 뒷골목 안쪽에서 달과 자신의 손을 내밀고 있는 소년을 이상하게 생각해서 말을 걸어버린것도 역시 호기심.
 
그런가, 나도 인간인거다.
 
본능이 이성을 상회한다.
 
 
이 플레이어는 재미있을것 같다.
 
 
"아니, 무얼. 이래보여도 나는 공략조거든, 조금 기분전환으로 대화라도 어떤가?"
 
"……거절이다. 공략조라면 잽싸게 이 층을 돌파해주지 않겠어?"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
 
그래도 부족한것은 인간으로서 탐욕인가, 아니면 본질인가.
 
제 1층을 돌파하고나서지만 공략조라고 불리게 된 고레벨자는 착실하게 던전을 돌파해갔다.
 
그래도 가장 먼저 찾아오는 작은 산.
 
제 10층이라고 하는 딱 끊기 좋은 층에서 나는 보스의 강함을 일정 수치 이상으로 올려서 만든 것이다.
 
 
나라는 플레이어의 존재를 인지해도 그는 달에 손을 내밀었다.
 
 
"겨우 제 10층에 도착했으니까, 조금은 긴장을 풀어도 되잖은가?"
 
"'아직' 10층이겠지"
 
"……흠. 그나저나 자네는 아까부터 뭘 하고 있는건가?"
 
"……"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래도 겨우 나에게 눈을 마주쳐주었다.
 
 
"……이 세계는 전부 만든것이다"
 
"만든것…, 인가"
 
"카야바라고 하는 영문 모를 천재가 만든 가상세계"
 
"……"
 
 
영문 모를것도 아니겠지.
 
이래보여도 한시대 사람으로서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선 보지 않은 날이 없다고 들었을 정도다.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나? 몸도 현실과 같이 신경의 신호대로 말을 듣지. 지면이나 하늘, 바람과 냄새, 온도까지……. 무엇 하나 현실에 뒤떨어지지 않아"
 
 
"……아아, 그럴지도"
 
 
어이쿠, 조금 뚱해져버렸나?
 
이 소년의 달관한 말투에 감화되어버린 모양이다.
 
 
"하지만 역시 그래봐야 가상세계다"
 
"음"
 
"이렇게 달에 손을 내밀어봐"
 
"?"
 
 
나는 그가 한 행동을 흉내내듯이 달에 손을 내밀어본다.
 
시야에서 달을 감추듯이…….
 
손등밖에 보이지 않을…… 터다.
 
 
"그치? 어렴풋하게 달이 보이지?"
 
"……이건 두 눈이 얻은 정보로 뇌가 멋대로 합성하고 있는것 뿐이지"
 
"그럼 한쪽 눈을 감아봐"
 
"……"
 
 
두 눈이 좌우로 떨어져있는걸로 인간은 두 눈에서 얻은 정보를 뇌에서 합성하여 영상을 만들어낸다.
 
화장실 휴지 심지를 한쪽 눈으로 들여다보면서 손바닥을 보면, 손바닥에는 동그런 구멍이 뚫린다. 그것과 같은 원리다.
 
 
하지만 지금 내가 손바닥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고 있는 달은 착각도 합성도 아니다.
 
한없이 현실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이 세계에서 발견한 작은 버그.
 
흠, 어딘가에서 프로그램 미스가 있었겠지.
 
하지만 중대하지 않고 위해도 없는 이 버그다.
 
 
"……역시 가짜는 그래봐야 가짜로군"
 
"흠. 가짜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버그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이라면 손바닥은 비치지 않겠지"
 
"방사선을 사용하면 뼈까지 보이지만 말이야"
 
"……당신, 친구 없지"
 
"흠, 그 말 그대로 돌려주지"
 
"하. ……그럼 이만"
 
 
그는 얘기는 끝이라는 듯이 그 자리에서 걸어간다.
 
무수히 많이 지는 별에는 눈도 주지 않고, 희미하게 펼쳐진 뒷골목 그늘을 내려다보면서.
 
 
"……. 자네, 이름은?"
 
"……"
 
"이름이야. 이름 정도는 가르쳐줘도 되잖나?"
 
"……. PoH다"
 
"PoH……. 흠, 나는…"
 
 
 
 
 
.
.

……
………
……………
 
 
 
"단장!"
 
팡!
내가 사용하는 데스크가 쳐진다.
 
정신을 차리니 혈맹 기사단 부단장이 긴 머리카락을 흔들면서 고압적인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미안하네, 조금 생각을 하고 있었어"
 
"생각? ……74층 보스공략에 대해서입니까?"
 
"아니, 옛날 일을 떠올리고 있었지"
 
 
등에 닿는 햇볕에 졸음을 느꼈는지, 나라는 사람이 조금 뇌를 쉬게 해버렸던 모양이다.
 
 
"……. ……보스 공략에 대해서 중요한 얘기가 있다고 했지요?"
 
"후후. 그렇게 화내지 말아주게, 아스나 군. 어디, 한 가지 재미있는걸 가르쳐주지"
 
"재미있는것?"
 
"달에는 말야, 이렇게 손을 뻗으면……"
 
"손바닥이 비쳐보이는거죠?"
 
"아, 알고 있었나"
 
"하아. 그거 아르고의 공략본 마지막 페이지에 쓰여있어요"
 
 
그녀는 기막힌다는 듯이 손을 허리에 대고 아르고의 공략본을 내 앞에 내밀었다.
 
 
"몰랐어요? 히스클리프 단장. 카야바 아키히코의 유일한 오점이라고 듣고 있어요"
 
 
나는 아르고의 공략본을 넘겨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한다.
 
 
 
 
'카야바 아키히코가 만든 가짜 세계는 손바닥이 비치는 모양이다'
 
 
'카야바는 버그 체크를 부탁할 친구조차 없었다ㅋㅋ'
 
 
 
 
 
…….
 
흠, 조금 난이도를 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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