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희생을 동반해 - 비구름
 
 
 
 
하늘에도 뭉개뭉개 퍼지는 구름이 흐리멍텅하게 거리를 내려다본다.
 
비가 내릴것 같으면서 안 내린다.
 
나는 74층 던전을 앞두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게임 속인데도 불구하고 세게 느끼는 습기 냄새에 마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이 흐물흐물 뒤섞여있는것 같다.
 
 
"……비, 내릴것 같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저 그때 생각한 말을 한것 뿐.
 
 
"아스나님. 탑에 들어가면 날씨 따위 관계없습니다"
 
"……하아. 크라딜 씨, 무슨 일이 있어도 따라오는겁니까?"
 
"물론입니다. 아스나님도 제멋대로 하는 행동은 자제하도록 부탁합니다"
 
 
꽈악, 장비한 검에 손을 대면서 어딘가 불건전해보이는 얼굴을 자랑스럽게 든다.
 
 
거북해, 이 사람.
 
 
하아, 어제 긴급회의도 그렇고 요즘 혈맹 기사단은, ……아니, 공략조 전원에게도 할 수 있는 소리지만, 조금 형식에 너무 빠져버린듯한 느낌이 들어.
 
좋고 나쁘고를 말하면 끝이 없지만 이럴 때에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히키가야나 키리토가 부럽다.
 
 
"그럼 아스나님, 오늘도 공략하러 갑시다"
 
"……. 네"
 
 
 
 
.

……
………
…………
 
 
 
고층으로 오면 올 수록 몸에 내려오는 위험과 압력은 강해져서 몬스터의 공격 하나를 받아도 정신을 팔면 목숨에 관여한다.
 
74층의 몬스터라면 충분하게 뒤를 잡히지 않을 레벨인 나마저도 1시간이나 미궁을 헤메면 정신적으로 피로를 느끼고, 더군다나 정신을 쓰는 플레이어 파티는 더 그렇다.
 
 
"……후우. 크라딜 씨, 휴식합시다"
 
"네. ……74층 맵도 대충 전모가 보이는군요"
 
"그렇네요. 여기서 발멈춰 서 있을 수는 없어요. ……다음층은 쿼터 포인트니까요"
 
"……"
 
갑자기 침묵에 싸여, 크라딜 씨는 마지못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마 50층 일을 떠올리고 있는 거겠지.
 
당시의 그는 보스전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고전을 겪은 일만큼은 알고 있을 것이다.
 
 
"75층 일은 74층을 돌파하고나서 생각합시다. 아스나님,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지 않겠습니까?"
 
 
어라?
 
왠일이래.
 
이 사람은 언제나 끈질길 정도로 미궁이니 공략이니 말하는데.
 
 
"그렇네요. 그렇다면 먼저 돌아가주세요. 저는 조금 더…"
 
"안 됩니다!! …읏, 안 됩니다, 아스나님. 공략은 2명 이상의 파티라고 정해져 있잖습니까?"
 
 
노, 놀래라아.
 
갑자기 그렇게 큰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잖아!
 
거기다 그렇게 험악한 얼굴로 들으면 거절할 수 없고…….
 
 
조금 분위기 나쁜채로 나와 크라딜은 그 자리를 뒤로 하기 위해 일어선다.
 
이제 보스룸은 눈 앞인데….
 
뒷머리를 잡히는 생각으로 나는 길드 본부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

……
………
…………
 
 
 
그리고 사건은 일어난다.
 
눈 앞에는 오늘도 여전히 행동을 함께하고 있던 크라딜과 필요 이상으로 주위를 위압하는 두터운 방어구를 낀 군의 멤버.
 
발단은 전이문을 나와 크라딜이 들어가려고 했을때, 군의 멤버와 마주쳐버린 것이다.
 
 
맵을 제공해라.
 
네놈들에게 줄 맵은 없다.
 
우리는 해방을 위해서다.
 
흥, 웃기지 마라. 겁쟁이들이.
 
 
맵은 던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한 증거.
 
미도달한 던전 맵이라면 좋은 값에 팔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무상으로 넘기라고 말한 군의 멤버에게 크라딜은 화가 난거겠지.
 
 
"하아, 크라딜. 맵을 건내주세요"
 
"……아스나님, 안 됩니다. 이제 곧 보스룸이니까요"
 
"딱히 도달하는 순서에 고집은 없어요"
 
"……그런건"
 
"?"
 
 
뭔가 납득이 안 가는 표정으로 크라딜의 목소리는 작아진다.
 
그러자 군은 나의 제안에 의기양양하게 나왔다.
 
더는 이 사람들하고 관여하는것 자체가 큰일이네.
 
 
삭삭삭 규칙적인 발소리를 내면서 가버리는 군을 쳐다보면서 그래도 크라딜은 쓰딘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자, 우리도 가자"
 
"…읏. 아, 아스나님, 오늘 공략은 중지합시다"
 
"어? 뭐, 뭐를…"
 
"……. 군이 갔으니까, 저희까지 갈 의미는 없습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혹시 방금전의 일을 꽁해하는거야!?
 
 
"크라딜 씨, 저희에게는 저희들의 역할이 있어요. 공략이 저희들의 최대이며 최선의 목적이잖아요?"
 
"……읏! …저, 저는, 조금 용건이 생겼습니다. 부디, 아스나님도 오늘은 공략을 자제하시길……"
 
 
당신 사정이잖아!
 
라며 화낼 일도 없이 나는 재빠르게 그 자리에서 떠나가는 크라딜을 시선만으로 쫓다, 그 다리로 전이문을 들어간다.
 
오히려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공략에 힘쓸 수 있을것 같아.
 
 
 
 
 
✳︎
 
 
 
 
 
 
"샤―――!"
 
"흡, 이얍-!!"
 
인간형 도마뱀 몬스터에게 찌르기를 날리지만 몬스터는 비틀거리기만 할뿐 쓰러지지 않는다.
 
정말로 내구도가 올랐네….
 
문득 작게 숨을 내쉬면서 나는 마지막 소드 스킬을 날린다.
 
 
"……후우"
 
 
이펙트 확산을 보지도 않고 나는 조금 피로를 느끼기 시작한 몸에 채찍질을 한다.
 
 
아, 하지만 배고프네.
 
 
"……점심 먹자. 그러자"
 
 
맵을 확인하니 근처에는 세이프티 존이 있다.
나는 그 곳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다리를 옮겼다.
 
 
"후우, 도착……응?"
 
""오?""
 
"키리토. 그리고 클라인 씨도"
 
 
 
세이프티존에는 검고 작은 체구의 소년과 붉은 무정수염 청년이 먼저 자리잡고 있었다.
 
평소엔 솔로로 공략을 하는 키리토지만 오늘은 미궁 도중에서 풍림화산 멤버와 마주친 모양이다.
 
 
"아스나는 혼자야?"
 
"응. 파티 멤버에게 급한 일이 생겼대"
 
"어이어이, 급한 일이라니……"
 
 
키리토는 기막히단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도 혼자서 오고 싶어서 온게 아닌데.
새삼 방금전의 분쟁과 크라딜의 제멋대로 움직이는 행동에 화가 난다.
 
 
"하지만 그거구만-. 이제 74층도 대충 다 돌지 않았어-?"
 
"그렇군. 슬슬 보스룸을 발견해도 좋을것 같아"
 
"응. 어쩌면 벌써 찾아냈을지도 모르지만"
 
"응? 무슨 소리야?"
 
"어제, 상당히 깊은곳까지 갔어. 그 매핑 데이터를 군 사람들에게 줬어"
 
 
내가 '군'의 이름을 꺼낸 순간, 키리토와 클라인의 얼굴이 어딘가 벌레라도 귓가에 날고 있는 듯한 얼굴을 짓는다.
 
 
"또 군 놈들이 나온건가. 저번 공략회의도 그렇고, 거 되게 매너 없지 않아?"
 
"……뭐, 목적은 같으니까. 해가 되지 않는다면 멋대로 하게 해두지 뭐"
 
"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라"
 
 
 
 
 
✳︎
 
 
 
 
 
세이프티 존에 앉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클라인 씨의 호출로 인해 풍림화산 길드 멤버는 각각 일어난다.
 
거기에 호응해 키리토도 일어서서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아스나는 지금부터 어떡할래? 이만큼 파티라면 좀 더 안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응. 그러네. 오늘 중에 보스룸에 도착하고 싶고. 나도 파티에 들어가도 될까?"
 
"거 좋네! 그러면 조금 더 안까지 가볼까!!"
 
 
라며 세이프티 존을 나온 직후.
 
 
고오오오오―――――!!!
 
 
 
몬스터의 호성에 이어서 플레이어들의 비명소리가 미궁층에 울려퍼진다.
 
너무나도 큰 소리가 우리들의 다리를 지면에 이어버릴 정도로.
 
심장 고동이 하나 빨라지는걸 느낀다.
 
피부로 느낄 정도로, 그 목소리는 우리들의 뇌리에 꽂혔다.
 
 
보스……?
 
 
"……보, 보스의 포효소리 아냐!? 지금 그거!!"
 
"아, 아아. 거기다, 플레이어의 목소리도……"
 
"큭! 아마 군 사람들이야!!"
 
 
의기양양하게 매핑 데이터를 손에 쥐고 미궁으로 들어간 그들은 고작해야 20명 정도의 인수였을터.
 
설마 20명이서 보스에 도전했다는거야?
 
……무모하다.
 
처음보고, 거기다 소수로, 그들은 자살하러 갔다고 들어도 어쩔 수 없을만큼 어리석은 행동이다.
 
 
굉음을 따라 미궁을 뛰어간다.
 
엄청나게 큰 문은 보스룸이라고 바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반쯤 열린 문 너머에 비치는, 도망치는 플레이어와 보는 사람의 몸을 떨리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몬스터.
 
 
 
 
더 그림아이즈
 
 
 
"윽……!"
 
 
풍림화산의 6명과 나와 키리토……, 모두가 숙련자라고 해도 8명이서 보스룸에 뛰어드는건 너무나도 절망적이다.
 
 
문득 그의 얼굴이 머리에 떠올라버린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라면 어떻게든 해버릴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안심감이.
 
 
어떠한 때라도 얄궂게 웃는 그의 강함이.
 
 
누구라도 구해내는 그의 상냥함이.
 
 
"……구, 구하러 가자"
 
"아스나……. 대책은 있어?"
 
"제가 보스를 떠맡을게요. 그 사이에 여러분은 군 사람들을 구출, 상태를 보고 저도 이탈할게요"
 
"아, 안 돼! 그런건 너무 위험해!"
 
"……읏! 그것 말고 방법이 없잖아!!"
 
 
혼돈으로 변한 곳에 흔들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내 머리카락을 희미하게 퍼올리고, 살살 뺨을 간질렀다.
 
 
탑 안에 바람……?
 
 
전원이 바람이 출원지로 눈을 향한다.
 
 
두둥실 떠오르듯이 젖혀올려진 망토가 조용히 떨어졌다.
 
몸을 감추는 망토의 뒤로, 누가 있는건지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언제나 거기에 있고.
 
살포시 우리를 절망으로부터 구해내준다.
 
 
 
따뜻하고, 따뜻하게.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산책하고 있었어. 우연이구만, 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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