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노시타 하루노
 
 
"얘, 히키가야. 너에겐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남아있니?"
 
나는 스스로 도달한 결론과 그 경위를 얘기했다.
둘 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걸 각오하고 있었는지 특별히 표정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억측.
계기는 저번주에 만났을때 느낀 위화감이었다. 히키가야에게는 미안하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능가하고 말았다.
유키노나 코마치에게 연락을 해서 그가 한번 입원했다는걸 알았다. 두 사람에게선 그 이상의 정보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어지간히도 잘 감췄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유키노시타의 이름을 사용해 병원에 통화하여 담당한 의사에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생각했지만 『수비의무』라고 하며 완고히 거절했다. 꽤 재미있는 의사여서 원장을 협박……커흠, 이야기를 하는건 그만뒀다. 하지만 담당의사의 전문분야는 쉽게 조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금전의 노래방에서 대화. 사키와 이로하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 『장래 이야기』가 되니 히키가야의 눈이 한층 탁해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리고 시즈카짱도 마찬가지로 표정을 흐렸으니까 둘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 밖에 정보가 없었으니까 최종적으로는 감이지만.
 
이야기를 다 끝내니 잠자코 있던 히키가야가 입을 열었다.
 
"재미있는 이야기네요. 형사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소설가가 되는게 아니에요?
 
"그런건 됐으니까"
 
"……죄송합니다"
 
둘이서 아이컨택트를 한다. 시즈카짱이 고개를 가로로 젓고 히키가야도 "그렇죠" 라고 중얼거리고 이쪽을 돌아본다.
 
"알겠습니다, 전부 이야기할게요. 하루노 씨. 역시 당신에게 숨길 수는 없는 모양이니까요"
 
그리고나서 히키가야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봄 방학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이 앓고 있는 병, 남은 시간, 시즈카짱과 관계, 그리고 자신의 소원.
 
나는 잠자코 들을 수 밖에 없었다.자신의 호기심이나 감, 머리가 좋은게 이렇게나 싫은 적은 없었다. 가능하면 착각이길 바랬다. 그러니까 내 해답이 잘못되기를 증명하고 싶었다.
 
이사나 진학, 취직으로 다른 현으로 가버리는거라면 아직 낫다. 또 만날 수 있으니까. 그하고는 이젠 반년 후에는 두번 다신 만날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겐 있는 미래로 가는 길, 하지만 그에게는 그 길이 도중에 끊겨버린게 확정되버렸다.
 
"하루노 씨, 부탁이 있습니다. 아까도 말한대로, 저에겐 평소대로 대해주길 바랍니다. 강화외골격을 가진 하루노 씨이기에 믿고 부탁합니다"
 
히키가야와 시즈카짱은 나란히 고개를 숙인다.
 
상당히 무례한 소리를 하네. 나도 그런대로 동요하고 있다고?
 
은사와 후배가 고개를 숙여서 부탁하는데 거절할 만큼 나도 독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조건을 붙였다.
『내 소원도 들을것』
 
히키가야는 "제가 가능한거라면요"라고 즉답했다. 의외였다. 그가 내 조건에 아무 난색도 보이지 않고 대답해준것이.
그 정도로까지, 지금의 상태를 지키고 싶다는 걸테니까.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나서 상당히 마셨을텐데 전혀 취할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헌팅해오는 남자들을 오브라이트로 감싸지 않고 격퇴했다. 나답지 않다. 히키가야 때문이다. 남은 반년, 고작 그것뿐인 시간으로, 그 완고한 히키가야와 유키노를 붙일 수 있을까?
 
따끔
 
?
 
어째서지? 술을 지나치게 마신 탓일까,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아프다.
 
모처럼 히키가야가 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약속해줬으니까! 앞으로 어떤 소원을 할까 생각을 해야지. 후후후, 기대하고 있어, 히키가야!
 
나는 그대로 배게에 얼굴을 묻고 잠에 들었다. 눈에서 미미하게 흘러나오는것을 깨닫지 못하고.
 
 
 
코마치의 환영회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일요일.
 
다시 역앞에서 약속을 하고 있었다. 요즘 나 집에서 자주 나가지 않아? 슬슬 틀어박혀도 좋은 기분이 들었다.
 
"음, 기다렸나?"
 
뒤돌아보니 사복 차림의 히라츠카 선생님이 와 있었다. 선생님의 사복 차림도 오랜만이구나. 아직 먹힌다고요.
 
"아니, 괜찮아요. 오늘은 어디로 갈건가요?"
 
"새로 생긴 가게가 있다. 가자"
 
"알겠어요"
 
이런, 남자답잖아. 히라츠카 선생님 진짜 THE BOSS.
 
여기다, 라고 안내받은 곳은 확실히 막오픈했다는 느낌으로 깨끗한 외장이었다.
 
"여기는 맛있나요?"
 
"동료가 말하기엔 맛있었다고 하니까 괜찮겠지"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라면 냄새와 점원의 목소리가 날아든다.
 
"두 사람이다. 비어있나?"
 
점원에게 안내받아 테이블 자리에 앉는다. 아무래도 여기는 간장라면 추천인 모양이다.
 
"저는 간장라면으로 할건데요, 선생님은요?"
 
"나도 같은걸로 하지. 그리고 맥주도"
 
"내일 일할텐데 괜찮슴까?"
 
"무얼, 나도 겉으로 나이먹……아니군! 젊으니까 괜찮아! 응! 실례함다-"
 
 
 
 
 
 
전혀 괜찮지 않아! 그리 짧은 시간에 6잔이나 마셨어, 이 사람! 어떻게든 계산은 했지만, 이 사람 못 걸을만큼 취해버렸어.
 
"선생님. 집까지 보내드릴테니까 안내해주세요"
 
"으-음, 저쪼옥~"
 
"예이예이"
 
선생님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밤길을 걷는다. 방금전까지 위엄은 어디갔는지. 얼굴을 붉히고 표정을 풀고 있다. 이게 갭이라는건가? 아니, 이건 칠칠맞은것 뿐이다. 그리고 내 몸에 눌러지고 있는 한쪽 마슈마론이 커흠커흠.
 
위태로운 길 안내로 도착한 곳은 평범한 맨션이었다. 유키노시타와 비교하면 안 된다. 그건 평범한게 아니니까. 뭐, 사회인이 혼자서 산다면 이런거겠지?
 
"선생님, 맨션에 도착했어요. 아직 걸을 수 없어요?"
 
"방까지~"
 
아아? 칠칠맞지 못하네…어쩔 수 없군
 
"몇 층이에요?"
 
"3 츠응~"
 
"예이예이"
 
선생님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타서 방을 향한다. 도중에 누구하고도 만나지 않은건 다행이다. 내가 여자를 안고 있으면 통보당할테니까.
 
선생님에게 들은대로 방에 도착했기 때문에 열쇠를 빌려 문을 연다. 역시 방까지는 좀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새삼스럽다고 생각해 데리고 들어간다.
 
여자의 방에 들어가는건 유키노시타 이래로 처음이라고 할가, 생활감이 붕 떠있구나아.
유키노시타의 집은 모델 하우스라고할 정도로 깨끗했지만, 이 집은, 음. 빈 깡통과 벗어던진 옷. 몇개 뭉쳐져있는 쓰레기봉투, 깨끗하게 책장에 꽂힌 애니메이션 피규어.
 
왠지 남자친구의 집이라는 느낌이다. 친구는 없지만.
 
일단 선생님을 재우고 돌아가려고 생각했지만, 이 참상을 보고 돌아는건 전업주부(희망)의 이름이 운다. 무엇보다 이 사람에게 신세를 지고 있으니, 정리 정도는 할까.
 
침대에 선생님을 눕히고 다시 방을 본다.
 
일단 바닥에 어질러진 옷이다. 개어서 정리해둘까.
 
그나저나 귀여운 옷도 있구나. 옷도 전신거울 옆에 어질러져 있고, 어쩌면 입을 옷을 고민하다 입고 벗고를 반복했던걸까 생각하니 굉장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돼 안돼. 착각하지마. 그 선생님이다. 평범하게 벗고 그대로 내버려둔걸지도 모른다.
 
옷을 개어 정리하고나서 그릇을 씻거나, 빈깡통을 눌러서 깡통쓰레기통에 넣거나 하는 사이에 1시간 정도 지나버렸다. 옷 뿐만 아니라 속옷도 있었을거 아니냐고? 그런거 없었는데?
 
선생님을 보니 아직 잠들고있는 모양이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현관으로 향했다.
 
"히키가야"
 
신발을 신고 있으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서 놀래버렸으니까 그만하세요.
 
"일어나도 괜찮아요?"
 
"아아, 미안하다. 집까지 배웅해준데다 정리까지 하게 만들어서"///
 
여기에 올때까지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지 얼굴은 빨갛다. 그건 마치 소녀같아서 선생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귀엽다.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하면 칠칠맞지 못하고, 그렇다고 생각하면 소녀같은 얼굴을 한다. 설마했던 이중갭! 틈을 만들지 않겠다는 이단구조인가.
 
"히키가야"
 
한번 더 이름을 부른다. 그 얼굴은 또 변해서 그 때, 차 안에서 나를 껴안아줬던때의 얼굴이었다. 팔을 벌려 내가 오는걸 기다리고 있다.
 
"네"///
 
나는 천천히 다가가서 다정하게 껴안는다. 선생님도 껴안아준다. 긴장된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하고 다정해서 대단히 차분해진다. 자신이 살아있다고 실감한다.
 
"……전에는 앉아있어서 몰랐지만, 키가 자랐나?"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지만, 어떨까요"
 
"어느샌가 나와 같은 키가 됐구나"
 
"그건 기쁘네요"
 
"선생님, 물어봐도될까요?"
 
"뭐지?
 
이건 내가 방을 치우고 있을때도, 아니, 신학기가 시작했을때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확신했다.
 
"담배 끊었어요?"
 
"아아, 네가 이렇게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담배 냄새나는건 싫잖아? 나도 건강해지니 아무 문제는 없다"
 
"……선생님은 진짜 좋은 선생님이네요"
 
"이제 깨달았냐"
 
"아뇨, 훨씬 전부터 알았어요"
 
하하하, 둘이서 웃는다. 정말 왜 이 사람 결혼 못하는거야. 지금까지 선생님을 차버린 남자들 모두 때려주고 싶어진다.
 
"감사합니다. 저를 위해서"
 
"신경쓰지마. 너를 위해서만 한게 아니야. 너도 곧잘 말했잖아? 자기희생이 아니라고. 나도 나를 위해서 하는거다"
 
"그 소리를 들으면 뭐라 말을 못하겠네요"
 
"아아, 이러는걸로 서로가 살아있다는걸 실감할 수 있다"
 
""……""
 
시간으로 치면 2 ~ 3분 정도였을까.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지 않고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상당히 편해졌어요"
 
"쉬운 일이다. 오히려 내겐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어"
 
"충분해요. 마찬가지로 비밀을 알고 있는 하루노 씨에겐 이런건 못하니까요"
 
"하루노라, 그 녀석이니까 언젠가는 알게 되는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상당히 빠른 단계에서 눈치챘구나"
 
"뭐, 그 사람이니까요. 신학기 시작하자마자 바로 한번 만났는데요, 바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꿰뚫어봐서 되게 놀랬습니다. 거기다 하루노 씨라면 괜찮겠지요. 어떤 의미로 신용하고 있으니까요"
 
"그런가……그럼 조심해서 돌아가거라. 그리고, 다음부터는 스스로 부르거나, 직접 집으로 와도 좋다. 답례를 하고 싶다면 방을 정리해다오. 혼자 지내다보니 끝이 없어서 말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쉬세요"
 
"아아, 쉬어라"
 
끼익
 
맨션을 나와 자택으로 걷는다. 내일부터 또 학교인가……나른해라.
MP 회복을 막 마쳤는데 귀찮은건 귀찮구나. 

:
BLOG main image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fpvmsk) by 모래마녀

공지사항

카테고리

모래마녀의 번역관 (1998)
내청춘 (1613)
어떤 과학의 금서목록 (365)
추천 종합본 (2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태그목록

글 보관함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otal :
Today : Yesterday :
04-29 1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