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야 일어나-!"
 
기온 높은 날을 자며 보내고 기온이 떨어져 비교적 보내기 쉬운 밤에 공부한다. 그런 로하스한 신념에 따라 아침까지 공부하고 있던 나는 코마치에게 일으켜졌다.
 
"어, 안녕. 왜,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아니야! 이제 사키 언니가 올 시간이라구-. 얼른 일어나지 않으면 코마치가 공부할 수 없잖아"
 
아아, 그러고보니 오늘은 사키가 오는 날인가.
분명 사키가 공부를 가르치는데는 카마쿠라가 접근하지 않는 내 방을 쓰는 수 밖에 없어서, 거기서 내가 자고 있으면 공부하기 힘들테지.
처음에는 부록도 같이 오니까 신경 썼었지만 타이시가 영원히 친구라는걸 알게 되고 나서는 아무래도 좋게 됐다.
코마치의 교우관계까지 뭐라할 생각은 없으니까.
 
"미안하게 됐네"
 
뿡뿡 볼을 부풀리는 코마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고보니 제대로 공부하고 있었지. 사키한테 들었다. 장하다 코마치"
 
"아-, 그러면서 또 얼버무리려 하는거지. 오빠야 포인트 낮아!"
 
베에, 혀를 내밀며 방에서 나가는 코마치를 멍하니 쳐다본다.
얼버무릴 생각은 없었지만 어째선지 코마치는 그렇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사랑하는 동생이 스스로 정한 목표로 향해 나날히 공부에 힘쓴다. 그런 동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오빠의 마음은 전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앞으로 2년도 안 남았지만"
 
그렇게 혼자 중얼거린다.
코마치를 이렇게 신경쓰며 칭찬할 수 있는것도 졸업하여 이 집을 떠날때까지 짧은 시간 뿐이다. 그리고 그 날은 점차 다가오고 있다.
나의 꿈인 자택경비라는건 남들과 관계를 배제한 생활을 보낸다는 것이며, 당연히 코마치도 거기에 포함된다.
사랑하는 동생이라 행복해졌으면 싶다고 생각하지만 거기는 양보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남겨진 시간, 얼마든지 어리광부리게 해주자고 생각하고,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못할 코마치의 가르침에 얌전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너무 착한 오빠라서 눈물 나온다.
 
"쇼핑이라도 가서, 돌아오는 길에 선물이라도 사올까"
 
어차피 코마치가 방을 쓸테니까 집에도 못 들어올테고. 기분 전환하기에는 딱이겠지.
 
 
 
 
 
집을 나와 나는 몇발짝 못 걸어서 외출한것을 후회했다.
매미는 시끄럽고, 무엇보다 덥다. 바보의 가르침 하나처럼 핵융합만 하지말라고, 태양. 오히려 여름방학이니까 너도 쉬어라. 그렇군,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집에 돌아갈때까지 쉬어도 좋다. 오히려 쉬어라.
태양에 살의를 품으면서 겨우 역 앞까지 도착한다.
안그래도 덥고 짜증나는데 인파가 넘치는걸 보니 더욱 짜증난다.
하지만 그런 인파를 보고 짜증을 내면서도 어째선지 동시에 안심하기도 한다.
아무리 덥든 사람 일이라는건 변함없이 거기에 있다.
히키가야 하치만이 관여하지 않더라도 오늘도 세계는 정상적으로 돌고 있다.
내가 남에게 흥미가 없듯, 세계는 나에게 흥미가 없다.
남과 관여하기를 꺼려하고 남들과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나를, 누구도 긍정해주지는 않았던 나를, 이 광경만큼은 긍정해준다.
내가 없어도 세계는 돌아간다. 코마치도, 유키노도, 유이도, 설령 지금 이 순간 내가 없어졌다고 해도 그 녀석들의 세계는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내가 혼자 있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그 녀석들의 세계가 돌아가는데 내가 필요한 이유는 없으니까.
 
무언가에 굶주리고 있던걸까, 더위 가운데 역 앞의 광장 벤치에 앉아 그런 안심할 수 있는 광경을 멍하니 쳐다본다.
 
"아, 힛키"
 
안심할 수 있는거랑 관계없이, 우와 나 이거 단순한 열사병 아니냐, 라며 급격히 자신의 몸이 걱정스러워졌을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
 
"오랜만. 그보다 이런데서 뭐하는거야? 누구 만나기라도 했어?"
 
"만날 상대가 나한테 있을리 없잖냐. 아무것도 하지 않는걸 하는것 뿐이다"
 
"뭐야 그거, 의미 모르겠네. 힛키, 머리 괜찮아?"
 
비교적 철학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뭐, 유이는 모르나.
 
"괜찮냐 안 괜찮냐 물으면 아마 안 괜찮다. 오히려 열사병일지도 모른다"
 
지금 눈치챘지만 이렇게 더운데 나 땀흘리고 있지 않잖아. 완전히 탈수증상이구만, 이거.
 
"에, 진짜루?"
 
"히키오, 너 바보 아냐? 이거 줄 테니까 머리 식혀"
 
같이 놀고 있던걸까, 유이의 뒤에서 미우라가 고개를 내민다. 손에 든 가방에서 핸드 타올과 아이싱 스프레이, 미네랄 워터를 꺼내들고 재빠르게 그걸로 차가운 물수건같은걸 만들어 내게 건낸다.
 
"고맙다, 미우라. 솔직히 살았다"
 
받아든 그걸 머리에 대니 기분 좋은 청량함이 퍼진다.
 
"미우라는 에비나한테만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모든 방향으로 엄마구나"
 
내 상태를 보고나서 대처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짧다. 종종걸음으로 승룡 여유였다는 수준이 아니잖아.
 
"하야토의 시합 응원 가는것도 있어서 일단 준비해둔것 뿐이고. 설마 히키오에게 쓰게 될 줄은 생각 못했지만"
 
"유미코 굉장해"
 
미우라가 쓴웃음 짓고 친구의 엄마 속성 수준이 높은것에 감탄한건지 유이가 그런 미우라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조금 편해졌으니까 어디 시원한데 들어가서 마실거라도 먹을게. 그나저나 고맙다. 이거 학교 시작하면 씻어서 돌려주마"
 
"그거면 됐구. 그럼 우리들도 갈테니까. 안녕 히키오. 열사병 얕보지 마"
 
"그럼 갈게 힛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
 
가볍게 손을 흔들고 가는 둘을 배웅한다.
아니- 진짜로 엄마 속성 미우라의 마음가짐에는 도움받았다. 다음에 유이한테 미우라가 좋아할만한걸 듣고 수건을 돌려줄때 답례로 과자라도 같이 주자.
 
 
 
 
근처 적당한 카페에서 조금 쉬며, 어느정도 괜찮아져서 행동을 재개한다.
오늘 목적은 빨간책 구입이다.
내 꿈인 자택경비원이 되기 위해, 일류대학에 들어간다는건 전에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먼 지방의 일류대학에 입학해서 고등학교까지 있던 인간관계를 끊는다. 졸업후 이사해서 대학에서 생긴 인간관계를 끊는다. 뒷일은 페이퍼 컴패니를 기업하여 서류상 사장이라는 세간에 좋은 직책을 손에 넣어 가족과 관계를 끊는다.
이것이 내가 혼자가 되기 위해 생각한 완벽한 계획이다.
모든 관계를 끊은 뒤에는 어디선가 몰래 그리고 느긋하게 사는것 뿐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방해 끼치지 않고 그저 혼자 산다. 생각하는것 만으로도 가슴의 고동이 친다.
그저 일류대학을 졸업할때 학부가 이법이라니 무슨 관련성도 없는 곳이냐며 거기에 위화감이 생겨난다. 완벽한 계획을 보다 완벽하게 하기 위해선 경제학부에 진학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거기서 내가 눈을 둔 곳이 쿄다이 경제학부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졸업후 바로 기업한다는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세간 신분을 위해서 만드는거니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한고로 교다이 빨간 책을 사기 위해 서접으로 향한다.
 
"어머, 우연이네"
 
빨간책을 찾아 서점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유키노와 만났다. 오늘은 낯익은 얼굴을 자주 보는 날이다. 이것도 머피의 법칙인가?
 
"여. 너도 책 사러 온거냐?"
 
"그래. 참고서를 사려고. 그러는 히키가야는?"
 
참고서라고는 하면서 유키노의 손에 있는건 고양이 사진집 뿐. 너 말야, 매일 카마쿠라 사진 보내고 있잖냐. 그러고도 부족하냐. 그냥 고양이 길러라.
 
"나도 참고서를 사려고. 참고서라고 할까 빨간책이지만"
 
"그러니……. 얘, 히키가야. 우리들 친구지?"
 
"뭐, 아마 그렇겠지"
 
내가 봉사부에 있는 동안은, 이라는게 머리에 붙지만.
그보다 나는 언제까지 봉사부에 있어야 하는걸까. 애시당초 이 부활동에 은퇴가 있는거냐? 모르겠네.
 
"거기는 단정해서 말해야지, 히키가야. 뭐, 그건 나중에 벌을 주기로 하고. 세간 일반적으로 친구끼리는 같은 진학처를 지향하는것도 있다는 모양인데, 히키가야는 알고 있었니?"
 
"바보취급하고 있냐?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게 어쨌는데?"
 
어딘가의 경음악부가 같은 여대에 입학하기도 했다던가.
 
"그럼 우리들도 같은 대학을 지향해야겠네. 왜냐면 친구인걸"
 
"그건 아니지. 애시당초 내 진로와 네 진로가 합치한다고는 한정할 수 없잖냐"
 
"덧붙여 히키가야는 어디 대학을 지망할 생각이니?"
 
"교다이 경제학부로군. 설마 유키노를 위해 바꾸라고 하진 않겠지?"
 
"그래. 급이 낮은데라면 그렇게 시켰을지도 모르겠지만, 교다이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아. 하지만, 나도 교다이를 지망하기로 할게. 역시 학부까지는 아직 정할 수 없겠지만"
 
그만둬라는게 솔직한 감상이지만, 내가 그걸 유키노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그녀의 가치관으로 그렇게 정한거라면, 내가 그걸 부정할 이유는 없다.
가치관의 격돌은 균열을 일으키고, 그리고 그건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설사 같은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도, 유키노와 보내는 시간이 4년 늘어나는것 뿐이지 졸업후 예정이 바뀌는건 아니다.
남은 남. 나는 나. 좋을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뭐, 네가 좋다면 상관없지"
 
"그렇게 하도록 할게"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생긋 미소짓는다.
 
"그리고 묻고 싶은게 있는데. 히키가야, 이 다음의 예정은 있니?"
 
"특별히 없는데"
 
"그건 좋은 소식이구나. 사고 싶은 책이 아직 있는데, 무거워져서 곤란하던 참이야. 당연히 코마치의 가르침을 받은 히키가야는 그런 여성을 내버리지는 않겠지?"
 
유키노는 방금전과는 다른 종류의 미소를 짓는다.
즐거워보여서 정말로 다행이군요.
 
"……너 말이다, 얼마전에도 생각했지만 어째서 그렇게나 코마치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거야?"
 
"코마치가 메일을 보내줬거든. 보여줄까?"
 
휴대폰을 꺼내들어 메일 화면을 열고 그걸 내게 보여줬다.
 
"진짜냐……"
 
화면에는 코마치의 가르침이라는 타이틀 메일이 표시되어 있었다. 안에는 내가 거스를 수 없는, 절대법칙인 코마치의 가르침.
오빠야는 슬픕니다.
 
"쇼핑이 끝나면 잠깐 차라도 마시고나서 집에 가자. 답례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 정도는 사줄게"
 
유키노는 들떠하면서 책장에서 고양이 사진집을 꺼내고 그걸 내게 건낸다.
 
"……살려주라고"
 
차 마시는걸로는 부족하잖냐,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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