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나의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청춘보다 게임이다! - 제 61화
 
 
 
다음날 같은 장소. 오늘은 회의가 열리는 일은 없어서 개인으로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기로 한 모양이라, 모두가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이미 내 생각은 정해졌다. 유치원아랑 초등학새애이 서로 손을 잡으면서 데이 서비스로 노인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걸로 작은 물품을 선물, 그리고 마지막에 크리스마스 노래를 부른다는걸 생각하고 있지만 아마 그것도 생각하자는 만능약의 아래에 주물러지겠지.
이미 나에게 할 수 있는건 없다. 남은건 행사가 눈 앞에서 와해되어 가는걸 보는 수밖에 없다.
문득 강습실 구석에서 혼자 작업을 하고 있는 루미의 모습이 보여서 기분전환으로 루미에게 가려고 하니 아무래도 작업은 끝났는지 PFP를 주섬거리고 있었다.
"여"
"읏! 하, 하치만……놀래라"
루미의 옆에 파이프 의자를 두고 옆에 앉아 화면을 쳐다보니 몬헌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꽤나 진행했구나"
"응. 하치만의 동영상을 찾아내서 봤더니 가능했어"
그러니까 왜 내 지인은 다들 나를 특정하는거야?
"하치만은 정말로 대단해"
"그런가?"
"응. 멋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듣고 루미를 쳐다보니 마침 시선이 마주쳤다.
"아, 딱히 이상한 의미는 아니야"
"예이예이"
어째서일까……루미의 분위기가 유키노시타로 보인다.
게임을 하고 있는 루미의 허리는 쭉 펴서, 어딘가 말하는걸 꺼리게 하는듯한 차가운 분위기를 두르고 있어서 그 모습은 흡사 유키노시타 그 자체다.
"작업, 끝났나"
"응. 이런 작업은 스테이터스 배분이랑 비교하면 간단해. 왜냐면 그림 형태대로 자르면 끝인걸"
"알아. 스테이터스 배분이랑 비교하면 인생은 편한거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어윽. 동류에게 처음으로 부정당했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없어?"
"그 사람?"
"임간학교에 있던 머리 긴 사람"
아아. 유키노시타 말인가.
"의외로 기억하고 있네"
"……그 날부터 바뀌었는걸"
그야 그런가. 나도 처음 받은 게임의 개시시간과 클리어시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까.
"왠지 지금 하치만은 힘들어보여"
"내가?"
"응"
그렇게 말하고 루미는 PFP의 전원을 끄고 나를 쳐다본다.
"임간학교때 하치만은 왠지 늘어져 있었어. 하지만 지금 하치만은 야무져보여……하지만, 얼굴은 왠지 힘들어보여"
그건 좋은 일이 아닐까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기본이 늘어져있는 내 기준으로 보면 야무져보인다는건 상태이상같은거니까.
힘들어보인다…………유이가하마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들었지. 힘들어보인다고.
"……돌아갈까"
"있잖아, 하치만"
"응?"
"…………게임에서 친구는 중요하지"
"……훗. 어설프네. 내 수준이 되면 친구 따윈 없어도 이겨"
그렇게 말하자 우엑, 같은 얼굴을 하며 루미는 PFP로 시선을 돌린다.
친구라………….
 
 
 
 
 
 
 
 
 
 
 
2시간 후, 이미 초등학생은 돌아가고 남아있는 우리는 서류 정리를 하고 있지만 카이힌 측은 아직도 뜨겁게 디스커션을 하고 있어서 화이트 보드에는 대량의 글자가 쓰여있다.
우리 부회장이 몇 번이나 전자 계산기를 두드리고는 크게 한숨을 쉰다. 카이힌 측에서 제시된 기획의 예산을 확인하고 있겠지만 이도 저도 죄다 예산 오버. 혹은 아슬아슬한것이 많다. 깎으려고 해도 회의로 정하자고 해서 결국 이쪽 측에서 담아두며 한숨을 쉬는 수 밖에 없다.
"더는 할 것도 없으니까 돌아가도 되지 않아?"
그렇게 말하자 잇시키는 시계를 보고 으응, 신음짓는다.
"그렇네요. 슬슬 돌아갈까요"
"그럼 먼저 갈게"
"수고하셨어요-"
한발 먼저 강습실에서 나와 밖으로 나오니 연말도 가깝다고 해서 여기저기에서 크리스마스 음악이 들려오고, 시야에는 커플이 시시덕거리는게 눈에 비친다.
올해 연말은 수수하게 바쁘다. 크리스마스 랭킹이니, 크리스마스 한정 던전이니, 크리스마스 한정 장비니……죄다 크리스마스구만. 응.
스스로 적당하게 납득하면서 주륜장으로 향하려고 하지만 오늘은 아침은 비가 내려서 버스와 전차로 왔었다는걸 떠올리고 한숨을 하아 내쉬고 개찰구로 향한다.
문득 에스컬레이터로 눈이 가서 별뜻없이 그쪽을 쳐다보니 유키노시타의 모습을 포착하고 말았다.
추운듯이 목 주위에 머플러를 고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그쪽도 깨달았는지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나를 쳐다본다.
"…………안녕"
"아아…………"
가는 방향이 같은지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걷는다.
퇴부서를 낸 그날이래로 유키노시타와 만나는건 오랜만이다.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만나고,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만날 수 없는건 게임이든 현실이든 같군.
"……잇시키의 일, 돕고 있구나"
어딘가 평소와 비교해 패기가 없는 유키노시타의 목소리는 어째선지 머리속에서 반향한다.
마치 해선 안 되는 것을 지적받은 것처럼.
"그 녀석을 학생회장으로 추천한건 나니까…………그 책임도 있어"
"…………더는 돌아올 생각은 없구나"
"……퇴부서는 냈고, 봉사부를 공중분해직전까지 몰고간 내가 있을 자격은 없잖아. 거기다 네 자존심을 현저하게 상처입히고 유이가하마를 울렸다……그런 녀석이 있어도 부실 분위기를 더럽힐 뿐이야"
책임 사퇴라는 말은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느쪽이냐고 하면 쓰레기 자식은 꺼져라는 매도폭언을 듣는데 나에게는 맞다. 그저 단순히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다정할 뿐이지 보통이라면 소외 당하고 괴롭힘 당하는게 좋은 꼴이다. 그런 다정함에 응석부려선 안 된다.
"그래……확실히 자존심을 상처입었어. 선거에 나와서 내가 이긴다는걸 알고 있는 짜고치는 레이스인데 노력하는 내가 바보같아질 정도로……내가 입후보하는걸 빨리 말하지 않았던 책임도 있어…………하지만"
그때, 내 손에 문득 따뜻한것이 닿은걸 느끼고 손을 쳐다보니 유키노시타의 가늘고 희고 예쁜 손가락 하나하나가 손가락을 감듯이 만지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깨달아줬어. 그걸 메우려고 너는 노력했어. 그러니까 잇시키 이로하가 학생회장이 됐어……네가 부서버린 봉사부도 수복했어……틀린거 있니"
"…………"
자신의 실수를 수복하는데 남을 의지해선 안 된다. 그런 당연한 것을 나는……나는 실제로 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부수고 그대로 방치해서 퇴부하는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낫기만 할 뿐이지 틀린건 틀린거잖아"
"그래……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언제라도 기다릴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유키노시타는 역의 인파속으로 사라져간다.
유키노시타가 사라지고나서 나는 조금 하늘을 쳐다보면서 멍하니 서 있었지만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 들어서 인파에 섞이면서 보도를 걸어간다.
어쩌면 좋지……어쩌면 크리스마스 행사를 개최할 수 있지. 오히려 이 늦어버린 상황 속에서 어떡하면 늦어진걸 되돌리면서 타마나와에게 회의로 몰고가지 않고 할 수 있나.
"히키가야"
"헤? 어라, 히라츠카 선생님"
갑자기 이름을 불려서 차도를 쳐다보니 프론트가 길다란 인상을 받는 검은 스포츠 타입의 차에서 고개를 내미는 선생님이 보였다.
"뭐하고 있나요?"
"음. 행사까지 일주일 남았으니까 상태를 보러 가려고 했더니 벌써 끝났지 뭐냐. 돌아가려고 했더니 교복이 보이길래 얼굴을 봤더니 너였다는거지"
"하아……"
"바래다주마. 타거라"
아니, 됐는데요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뒤로 차가 오는게 보여서 마지못해 올라타자 미터와 조작부근은 알루미늄과 메탈릭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뭐야 이거. 그보다 원박스카가 아니었나……아무래도 좋아.
선생님에게 나의 집 위치를 말하자 차는 조용히 구동음을 내면서 움직인다.
"조금 들렀다 가도 되겠느냐?"
"하아"
할 일도 없어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게임을 기동시키자 이미 크리스마스 던전은 모두 클리어 마크가 붙어있고, 나와있는 스테이지도 클리어해서 할 일이 없어서 결국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PFP를 기동시켜서 달칵달칵 평소처럼 만진다.
조금 지나자 차가 멈춘걸 느끼고 밖을 쳐다보지만 어두운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선생님이 차에서 나가는걸 따라 나도 나가자 문득 바다내음이 났다.
여기는 됴코만……으로 가는 다리 위인가.
"어떠냐, 상태는"
"……뭐어, 상당히 최악이라고 할까요"
"호오. 어떤 식으로 말이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회의를 하기만 하지 해답이 나오지 않아요. 저쪽은 무슨 일이든 죄다 회의로 모두의 의견을 듣고 정하고 싶어하고, 이쪽은 이쪽대로 기동만 해서 잇시키와 멤버와 거리감도 묘하게 벌어져 있으니까 그게 쓸데없이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할까요…………"
회의를 거듭해 의견을 듣는것으로 나만이 정하는것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손에 넣고 싶은거겠지. 나도 그렇게 한다. 자신의 판단만으로 정하지 않고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그걸로 판단한다. 그것이 가장 실패했을때 회복하기 쉬우니까……타마나와의 경우엔 지나친다고 생각하지만……오히려 그게 올바른걸지도 모른다. 회장이 된지 얼마 안된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납득도 간다.
"과연…………히키가야. 너는 사람을 잘 보고 있구나"
"……그런가요"
"남의 싫어하는 면에 민감해. 너는…………그러니까 너는 토츠카를 돕고, 초등학생을 돕고, 잇시키 이로하를 도왔지……싫어하는 면을 보아온 인간은 동시에 남의 좋은 면도 민감하게 느껴. 특히 너는 현저하게 그래. 그러니까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 둘과 함께 있어도 아무 문제는 없었다. 둘은 너의 좋은 면을 느끼고 있던거야"
"…………"
"하지만 너는 느끼기만 하지 이해를 하지 못해. 그 사람의 분노나 슬픔, 그러한 것을 너는 모두 셧 아웃하고 있어. 그러니까 유키노시타도 유이가하마도 결과적으로 상처입히고 말았다…………히키가야. 튕겨내지 마라. 모든걸 받아들여라. 거기서부터야……모든걸 받아들이고나서 겨우 이해를 할 수 있어"
"논점이 바뀌지 않았어요?"
"바뀌지 않았어. 처음부터 둘에 대해서 묻고 있었어"
잘못된 선택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둘을 상처입히고, 그 책임을 지고 봉사부를 그만뒀다……세상 사람들이 보면 그건 지극히 평범하다고 밖에 보이지 않겠지.
"히키가야. 전에도 말했지만 책임지는 방법은 그만두는것만이 아니야…………계속 옆에 있는것도 나는 하나의 책임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이번 경우는 그렇지만 말이다"
……상처입혔기에 사라지는게 아니라, 상처입혔기에 계속 옆에 있으라는 말인가…… 옆에 있는것 만으로 상처입히는게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서 그만둔다는 결론을 냈다.
"상처입혀버렸지만 그렇기에 계속 곁에 있어서 그 상처를 달랜다……그건 좋은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자신의 실수라는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잖아요"
"그렇군…………하지만 혼자서만 질 수 없는 일도 있다……자신의 실수를 혼자서만 회복할 필요는 없어. 할 수 없다면 의지하면 돼. 어른도 그래. 부하가 실수를 하면 상사가 그걸 꾸짖고, 회복시키지만 부하 혼자서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때, 상사도 함께 사과를 하겠지. 그거랑 비슷하다. 혼자서 수복할 수 없다면 누군가를 의지해서 물어보면 된다. 무엇이 안 되는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그건 가족이고, 친구이기도 해……너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야"
그렇게 말하고 선생님은 차에 기대는걸 그만두고 문을 연다.
"고민하고 고민해라. 모른다면 누군가를 의지하면 돼"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보인다.
방금전까지 꽂히듯이 불고 있던 한풍은 더는 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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