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뭐지?』
 
 
발밑은 하얀 구름으로 덮여있고, 그것이 지평선 저너머까지 이어져있다. 너무 하얘서 머리가 이상해질것 같다.
 
그 운해를 쳐다보고 있으니, 그 안에서 검은 연기같은게 나타났다. 뭐야 이거. 마왕 대부활?
 
그 연기가 형태를 만드니, 한 명의 익숙한 여자로 변했다.
 
 
『……유키노……?』
 
 
중학교 시절부터 아는 사이로, 뒤로 쫄래쫄래 따라게 됐던 여자애. 유키노시타 유키노. 하지만 지금까지 포근한 분위기가 아닌, 어딘가 무거운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유, 유키노……지?』
 
『가볍게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주겠니. 신물이 나. 아니, 신물은 물론 염산을 끼얹어진 기분이야』
 
『……어?』
 
 
뭐, 무야? 무슨 일이야, 유키노?
 
 
『그 저열한 눈으로 보는거 그만두지 않겠니. 왠지 균이 옮을것 같아서 무서워. ……설마, 시간? 그럼 질이 나쁘구나. 경찰에 신고할거야』
 
『자, 잠깐만!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평소엔 그런 소리를 하지 않는데, 왜……』
 
『마침내 눈 뿐만 아니라 뇌까지 썩어버렸구나. 원래 유감스러운 머리가 더욱 유감스러워진걸까. 귀, 들리고 있니?』
 
『…………』
 
 
뭐야 이거. 유키노한테 이렇게까지 듣게 되면 진심으로 울고 싶어진다. 지금이라면 1리터 정도 눈물은 여유롭다.
 
 
『히, 히키가야 우, 울지 마』
 
『유키노……』
 
 
아아. 그렇지. 어쨌든간에 유키노는 다정――
 
 
『네 눈물로 환경오염이 진행되면 어떡할거니? 죽어서 책임질거니? ……오히려 죽으면 그건 그거대로 환경파괴구나. 살아도 죽어도 세상에 피해를 주다니, 과연 히키가야구나』
 
 
그만! 하치만의 라이프는 벌써 제로야!
 
나, 유키노한테 이런식으로 대해졌구나. ……큰일이다. 우울하다. 죽자.
 
일단 뭉개뭉개한 구름에 얼굴을 묻어 질식사를 시도해본다. 응. 부드럽다. 부드럽지만……뭔가 조금 뼈같은 울퉁불퉁한게 있는데.
 
아, 의식……이 멀어져간다……잘 자, 세계. 수고했어, 나.
 
 
 
 
"……은……치……만……하……은……하치……은……하치만……하치만!"
 
"읏!?"
 
 
우오. 갑작스레 귓가에서 소리를 질러서 쫄았다. 귀아파라.
 
 
"하치만 괜찮아? 가위에 눌렸는데?"
 
"유, 유키……노? 진짜야……?"
 
"왜 그래? 몸 상태 안 좋아?"
 
 
정말로 걱정스러워보이는 유키노. 그 볼을 잡아당기며,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만진다.
 
 
"하, 하치만? 간지러워……"
 
 
음. 이 기뻐보이는 얼굴. 진자 유키노다.
 
그럼 그건……
 
 
"꿈인가아……"
 
 
다행이다. 진짜로 다행이다. 그게 현실이었으면 배드 스트라이크가 아닌 하치만 스트라이크 할 참이었다. 나, 혼자서 죽는건 무섭다. 그러니까 모두를 말려들게 하자.
 
 
"꿈? 무슨 꿈을 꿨어?"
 
"……네가――"
 
 
꿈에서 있었던 일을 대충 설명하니, 그게 새삼 꿈이었다는걸 재인식한다. 설마, 내가 그런 꿈을 꿀 줄이야…….
 
 
"……하치만. 나는 너를 그런식으로 생각한 적도 없고, 그런식으로 말할 생각도 없어. 절대로 하지 않아. 약속할게"
 
"유키노……그렇구나. 유키노가 그런 말을 할리가 없지……미안"
 
"사과할거면 내가 만든 밥을 칭찬해줘. 아래에서 기다릴테니까"
 
"아아"
 
 
유키노의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깨어난 머리에 한 가지 의문이 솟았다. 그건 용수처럼 서서히.
 
오늘, 부모님은 아침 일찍 집을 나갔다. 코마치는 친구 집에 자러 갔다. 어제 여자아이 친구가 왔으니까 남자가 아닌건 확실하다. 뭐, 나를 봤더니 겁에 질렸지만.
 
요컨대. 이 집에 들어올 수단은 없다. 문단속도 제대로 했고, 문도 잠궈뒀다. 집에 침입할 수단은 없다.
 
……어떻게 들어온거야?
 
 
"유, 유키노. 어떻게 집에 들어온거야?"
 
"부모님께 열쇠를 받았어. 현관열쇠는 무론 화장실, 거실, 네 방에서 코마치의 방, 자전거 열쇠까지"
 
"뭐하는거야 그 바보 부모"
 
"얘. 부모님을 바보라고 하면 안 돼. 떽"
 
"으윽……미안"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유키노를 너무 신용한다. 뭐, 나도 엄청 신용하지만. 너무 신용해서 숭배해버릴 수준이다.
 
 
"그리고, 오늘은 하치만에게 선물이 있어. 이거야"
 
"……이건?"
 
"맨션 열쇠와 내 방 열쇠야. 언제든지 와줄래?"
 
"아니, 남자가 여자 집에 멋대로 들어가도 되겠냐. 너, 나를 너무 신용해"
 
"당연하잖아. 하치만인걸"
 
"그건 영광이다"
 
"우와-. 국어책 읽기"
 
 
그런건 아니다. 그거다. 부끄럼 감추기. 딱히, 남자로서 보여지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한건 아니니까.
 
 
"가능하면 밤에 와줬으면 싶어"
 
"그야, 낮에는 학교에 있으니까"
 
"따,딱히, 하치만이 원한다면 학교에서도……"
 
"아니아니. 언제나 안아주거나 머리 쓰다듬어주잖아"
 
 
오히려 유키노가 바라는거니까.
 

"……바보"
 
 
요즘 유키노한테 바보라고 듣는것 같다. 슬슬 마음이 꺾인다.
 
 
"자, 얼른 옷 갈아입고 밥을 먹자. 지각할거야"
 
"아아"
 
 
잽싸게 교복을 입고 얼굴을 씻는다. 좋아. 오늘도 평소처럼 눈이 썩었다. 스스로 말해놓고, 뭐가 좋은건진 모르겠지만.
 
아, 유키노의 요리는 평소처럼 맛있었슴다.
 
아, 그러고보니 자전거 두고 왔었지. 이런, 서둘러야겠다.
 
 
"하치만. 차 불러뒀으니까 급하지 않아도 돼"
 
"어라? 나 소리냈어?"
 
"하치만이 생각하는것 정도는 알아"
 
 
뭐야 이 오래 같이 살아온 부부같은 구도. 너무 행복하잖아.
 
집을 나오니 거기에는 검은 고급차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것과 동시에 그 때의 사고가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그 때, 유키노의 우는 얼굴……귀여웠지……. 그걸 볼 수 있다면 뼈 하나 둘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 역시 거짓말. 아픈건 싫다.
 
 
"……미안해"
 
"야. 그때로부터 1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는거냐. 신경쓰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만 하치만을 잃어버릴것 같았고……"
 
"나는 물건이 아냐. 그렇게 간단하게 없어지겠냐"
 
 
생물이라는건 생각보다 끈질기다. 특히 바퀴라던가. 그 끈질김은 어떤 의미로 기네스다
 
유키노와 나란히 서서 차에 탄다. 여전히 승차감이 좋은 차다. 내가 쓰는 침대보다도 푹신푹신하다. 이게 격차 사회인가.
 
 
"잘 부탁합니다"
 
"네. 그럼 출발합니다"
 
 
이 차 안에서는 유키노는 상당히 얌전하다. 가족의 시선이 있으면 아가씨가 되는것 같다. 뭐, 엄청 손을 움켜쥐고 있지만. 뭔가를 전하고 싶은것 처럼 손가락에 힘을 넣고 있고.
 
나도 거기에 맞춰 힘을 넣으니 기쁜듯이 웃었다. 의미는 전혀 모르겠지만.
 
학교에 도착하니 나와 유키노에게 시선이 모였다. 그야 학교 제일의 미녀와 알 사람이 없는 내가 같이 고급차에서 내리면 이렇게 되겠지.
 
 
"어라? 유키노시타?"
 
"……하야마……"
 
 
유키노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왠지 모르게 그쪽을 본다. 거기에는 아침부터 산뜻한 분위기를 띠는 나랑 같은반인 톱 카스트. 하야마 하야토가 있었다.
 
 
"무슨 일이니?"
 
"아니, 그냥 있어서 말을 걸어본것 뿐인데……안 되려나?"
 
 
나왔다. 산뜻한 얼굴로 '안되려나?' 공격. 보통 여자애는 여기서 볼을 붉히며 '아, 하야토가 나를……' 같은 착각을 하겠지만, 가땅치않게도 유키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 안 돼. 나랑 하치만의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방해하지 마"
 
"하치만……어라? 너는……히키, 히키타니?"
 
 
누구야, 히키타니는. 여기에 그런 이름인 녀석은 없어.
 
 
"용건은 끝났니? 그럼 우리는 갈게. 하치만, 가자"
 
"아, 아아"
 
 
유키노는 손을 잡을 뿐만 아니라팔 자체를 얽어왔다. 뭐, 늘 있는 일이니까 신경쓰지는 않지만……하야마의 눈이 아프다. 지금까지 신경쓰지않았지만, 저 녀석의 쏘아죽일듯한 시선에는 뭔가 담겨있는 느낌이 든다.
 
 
"괜찮아, 하치만. 저 사람은 너를 어떻게 할 배짱은 없으니까"
 
"또 얼굴에 나왔어?"
 
"맞아"
 
 
여기까지 오면 에스퍼구만. 뭐야, 포켓몬? 아니면 파쿠노다?
 
 
"그럼 점심시간에 봐"
 
"아아. 오늘은 부실에서 먹을까?"
 
"네가 그걸로 좋다면"
 
"음. 그럼 부실에서 보자"
 
"그래. 그럼"
 
 
허나 아쉬운듯이 손을 놓아주지 않는다.
 
 
"……자"
 
 
쓰담쓰담
 
 
"응. 후후. 만족이야"
 
 
볼을 붉히며 J반으로 향하는 유키노. 나도 자신의 반으로 갈까.
 
유키노와 단 둘이 있을때는 주위의 시선이 굉장하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다. 역시 나 한 명에게는 흥미없나. 하하. 울고싶네.
 
F반에 들어가고나서 스텔스 힛키를 구사해서 아무도 말걸지 않고, 말 걸어오지 않고, 민폐 끼치지 않고, 민폐 끼쳐지지 않고, 무시하고, 무시 당하는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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