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치만, 약속이야. 나를 잊지 말아줘』
 
『아아. 절대로 잊지 않아』
 
『그럼……또 봐』
 
『아아』
 
 
이건 지금으로 3년 전, 추위가 심해질 무렵의 슬프게 마음에 새겨진, 잊을 수 없는 기억.
 
 
 
 
나, 히키가야 하치만은 고등학교 생활을 뒤돌아보고라는 레포트로 히라츠카 선생님의 사랑의 채찍(청권제제)를 받고 어떤 장소로 연행되고 있다. 기분은 팔려가는 송아지. 누구도 사주지 않는, 홀로 쓸쓸하게 외톨이가 되어가는 미래가 보인다.
 
 
"히라츠카 선생님.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겁니까"
 
"무얼. 부활동에 넣는것 뿐이다"
 
"함정카드 오픈! 거부권을 발동!"
 
"나한테 함정카드는 통하지 않는다"
 
 
그거 어디의 삼환신?
 
 
"괜찮다. 육체노동을 강요하는 부활동이 아니야"
 
"당연하죠. 그런 부라면 바로 도망칩니다"
 
 
뭐가 좋아서 스스로 육체를 혹사하는 세계에 뛰어들어야 하는건데. 그거다. 운동계 부활동에 들어간 녀석은 M이다.
 
반대로 문학계 부활동에 들어간 녀석은 바깥의 더위나 추위를 차단한, 쾌적한 공간에서 운동부를 비웃으며 쳐다보고 있다. 저건 S다. 틀림없다.
 
 
"여기다"
 
"하아. 뭐 아픈건 싫으니까, 거부는 하지않겠지만. 무슨 부활동입니까?"
 
"그건 본인한테 듣거라"
 
 
선생님은 노크도 하지 않고 문을 연다. 거기에 따라 나도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그림책에 장식하여 보존해두고 싶을만큼 그림이 되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저무는 해가 창문으로 스며들어와, 한 명의 소녀를 비추고 있다. 그건 아름답고도 외로워 보이며, 덧없으면서도 확실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볼때까지, 데쟈뷰를 느끼기엔 충분할 정도의 시간지었다.
 
 
"……하치, 만……?"
 
"여, 여어. 유키노"
 
 
유키노시타 유키노. 중학교 시절에 내가 구해준 소녀이며, 해외로 전학가, 고등학교에서 재회한 여자애.
 
 
"하, 하치만……커, 커흠. 히키가야, 안녕"
 
"아아. 안녕"
 
 
쓰담쓰담
 
 
"자, 잠깐만! 선생님이 있잖……후냐"
 
"여전히 머리 쓰다듬어지는거 좋아하는구만"
 
 
중학교때부터 전혀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서 재회해도 머리 쓰다듬어지는건 좋아했고.
 
 
"두, 둘은……그, 사귀고 있는건가?"
 
"아뇨. 사귀지는 않습니다"
 
"그, 그러냐? 그나저나……거리, 가깝지 않나?"
 
 
그런가? 중학교때나 여름방학에는 늘 이랬으니까. 잘 모르겠다. 거기다 사귄다기보다 유키노가 뒤를 졸래쫄래 따라오는거였고.
 
 
"히키가야"
 
"…………"
 
"……히키가야?"
 
"…………"
 
"……하치만"
 
 
쓰담쓰담
 
 
"정말이지……후후"
 
 
조금 뚱해졌지만 바로 미소로 돌아온다. 뭐야 이 귀여운 생물.
 
하지만 유키노가 여기에 있을줄은 몰랐구만. 뭐, 방과후에는 나 즉시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내, 내 앞에서 히히덕대고……우으……!"
 
 
아, 도망쳤다.
 
 
"……결혼하고 싶어"
 
 
진짜 누가 업어가줘라.
 
 
"하치만. 저기……"
 
"왜? 안아줘?"
 
"그건 점심시간에 했어. 그보다, 왜 여기에?"
 
"아아. 왠지 인격교정을 위해 여기로 끌려왔다"
 
"인격……네 다정함을 어떻게 교정하라는거니?"
 
"뭐, 그걸 알고 있는건 너 정도니까. 평소의 나는 비굴하고 음습하고 최악이거든"
 
"가끔 보여주는 다정함이나 자기희생 정신, 그리고 곤란해하는 사람을 도와줘서 멋진 사람"
 
"……그렇게 생각하는건 너 뿐이야"
 
 
뭐,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혼자서 살아가는데, 그저 주위에 신경을 쓸 뿐이다. 주위가 불쾌하지 않도록, 주위가 우중충한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그렇게 신경을 쓰는것 뿐이다.
 
 
"그 썩은 눈을 깨끗하게 하면 될가"
 
"그만둬. 인체연성은 금기에 저촉한다"
 
"이, 인체……?"
 
 
큭. 이 드립은 통하지 않나. 유키노하고는 가끔 대화가 통하지 않는게 뼈아프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부활동이야? 특별히 기재도 없어 보이는데……"
 
"글쎄? 맞춰보겠니? 맞추면……그, 그게……키슈, 해줘도……"
 
"어? 기습? 덮쳐도 돼?"
 
"바, 바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가슴을 퍽퍽 때려오는 유키노. 틀렸다. 귀엽다. 집에 갖고 가서 한바탕 귀여워해줬더니 어느샌가 도망쳐서 내가 소리내어 울 수준이다. 에, 도망치는거냐.
 
 
"그렇군……문예부지"
 
"뿟뿌-"
 
 
음. 틀렸나.
 
 
"……GJ부?"
 
"왜 나는 『잘 했어』라고 듣는거니?"
 
 
아, 이 드립도 안 통하나.
 
 
"힌트. 너를 흉내내서 만들었어"
 
"나? ……모르겠다. 전혀"
 
"후후. 너처럼 곤란해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해서 만든 부활동이야. 이름은 『봉사부』야"
 
"…………"
 
 
……딱히 나는 곤란해하는 녀석을 도와주고 싶었던게 아니다. 나의 평온한 생활을 보내는데는 괴롭히기 같은건 방해였을 뿐이다. 보고 있으면 신물이 달린다.
 
그 분위기를 헤아렸는지, 유키노는 나의 가슴속에 포근히 안겼다.
 
 
"너는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걸로 구해졌어.
 네 다정함을 접했어.
 네 강함을 접했어.
 네 슬픔을 접했어.
 네 고독을 접했어.
 그리고 너 자신을 접했어"
 
 
………….
 
 
"그러니까 나는 너를……"
 
"……나를?"
 
 
 
 
 
 
 
"따라 갈거야"
 
 
 
 
 
 
…………뭐, 뭐어. 중학교때부터 고양이처럼 따라붙었으니까 새삼스런 느낌은 들지만……그래도 조금 기쁘다.
 
 
"하지만 나도 너도 줄곧 함께 있을 수는 없겠지. 서로, 좋아하는 이성이 생겨서 결혼할지도 모르잖아"
 
 
……어라? 나 결혼 할 수 있어? 러브레터나, 지금까지 여자의 벌게임으로 밖에 받은 적이 없는데.
 
내가 고백을 해도, 뭔가 사양하듯 거절당하고. 그거냐, 다른 여자한테 경계받았었지. 핫핫하. ……그 후로 스도의 눈이 차가웠지이…….
 
 
"……바보"
 
 
바보라니 뭐가 바보냐.
 
 
"하치만, 오늘은 이만 부활동을 끝내자. 오랜만에 카마쿠라랑 놀고 싶어"
 
"음. 그럴가. 그럼 집 가자"
 
 
뭐, 앞으로 한동안 유키노와 함께일테지. 적어도 대학까지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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