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진 이로하 - 2. 꼬마 이로하의 돌격일기
 
 
 
 
 
 
 

머리가 무겁다. 이건 피로나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오는게 아니다. 내 머리가 무거운 이유, 그건……
 
"목마는 높아서 즐겁네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선배"
 
그래, 이 꼬마 여자애. 뭘 감추랴, 잇시키 이로하 본인이다.
어떤 조직(유키노시타 언니)이 개발한 약으로 인해 이런 모습이 되어버린 소부 고등학교 학생회장. 몸은 유녀, 두뇌는 악녀. 그 이름도 민폐장 이로하!
……이 드립 써도 되나? 뭐, 괜찮겠지. 아마.
 
"그보다, 내려주지 않을래? 좀 피곤한데…"
"응, 안된다구요~? 이건 선배한테 주는 벌이니까요!"
 
쾌활하게 웃는 그녀는, 내 후두부를 안듯이 어깨에 타고 있다. 그리고 잇시키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리를 잡고 있는 나, 진짜 신사.
어디에서 어떻게 보아도 좋은 남매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건 물론, 나의 얼짱 포인트가 흘러넘칠지도 모른다. 하야마 수준.
 
"저거, 혹시……"
"유괴일지도 몰라. 왜냐면 저 고등학생, 눈이 이상한걸. 아무리 생각해봐도 범죄가 눈빛이야, 저거"
 
……아무래도 하야마는 커녕 일반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것 같다. 눈물이 나왔다.
아줌마네는 눈이 썩었다는 이유로 나를 의심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썩으면 슬슬 한 바퀴 돌아서 얼짱으로 안 보이지도 않을텐데.
 
거봐, 고기는 썩기 직전이 제일 맛있다고 하잖아? 즉, 나도 핸섬이라는거다.
……뭐야 이 수수께끼 이론.
 
"이로하스으……"
 
더 이상 의혹의 시선을 받는건 역시 마음에 탁 꽂힌다. 라고할까, 정말로 신고당해버릴것 같다.
 
"하는 수 없네요오……"
 
나의 한심한 목소리에 동정한건지, 잇시키는 한숨을 쉬면서도 내리는걸 승낙해줬다. 꽤 이해력이 좋다.
 
"땡큐, 잇시키"
 
어깨에서 작은 몸을 내리면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
그녀는 나를 잠시 쳐다보고, 조금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걸어갔다. 정말이지, 응석쟁이 후배를 가졌다.
 
"자"
"……뭐에요 이거. 저, 어린애 아니거든요"
 
내밀은 손을 보고 잇시키는 더욱 기분이 나빠져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선다면 나는 이미 인생에서 리타이어 했다.
 
"먼저 가면 위험하잖아?"
 
억지로 잇시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는다. 물론, 내가 찻길쪽이다.
 
"이러는게 더 위험해요. 치사해요, 정말로……"
"앙? 뭐가 위험하다고?"
 
불쑥 읊조린 잇시키에게 되물어보니, 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며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내 손을 세게 잡았다.
석양탓일까. 그녀의 볼은 조금 붉어져있다.
 
"아, 그랬죠. 선배. 시장보러 가요"
"엉?"
"제 옷을 사러 가는거에요. 코마치에게 부탁받았어요"
 
정말이지, 그 동생은……. 배려심도 좋고 귀엽다니, 완벽하잖아. 뭐, 코마치니까 당연한가.
 
"알았어. 그럼 갈까?"
"네!"
 
이쪽을 돌아본 그녀는 만면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가신건 귀찮지만, 이런 미소를 볼 수 있다면, 가끔은 성가신걸 떠맡아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런걸 생각해버릴 정도로 그녀는 즐거워보였다.
 
새가 산으로 날아간다. 그들도 집으로 돌아가는걸테지. 석양을 등지고 나는 새들의 실루엣은 크기가 다 달랐다.
뒤로 뻗은, 작은 그림자와 큰 그림자는 손을 꼭 잡고 있다.
 

 
     ☆ ★ ☆ ★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해는 이미 저물었다. 엷게 퍼진 먹물같은 하늘에, 여기저기 빛나는 별들이 빛나고 있다.
겨울 밤은 추워서 잇시키의 코는 빨개졌다. 빨리 집에 가자.
 
천천히 현관을 열었다. 안에서 비치는 빛은 조금 눈부시고 따뜻한 느낌이 든다. 분명 코마치가 있으니까 그런거지!
 
"다녀왔어-"
"어음, 실례합니다……"
 
잇시키는 어딘가 멋쩍어한다. 어쩌면 긴장하는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인의 남자집에 자는거니까.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우리 동생이 그런걸 신경쓸리도 없다. 코마치는 언제나 나에게 기운을 주는건 물론, 나를 맥빠지게도 만드니까.
 
"엇서와-! 자, 잇시키 언니 들어와요!"
"코마치, 안녕!"
"나중에 같이 목욕 들어갈래요, 잇시키 어닌? 여러모로 할 얘기도 있구요~"
"물론! 많이 들려줘!"
 
히쭉거리는 코마치. 뭘 꾸미고 있는걸까? 아니, 코마치가 뭘 꾸미고 있든, 나는 코마치의 편이다. 설령 세상을 적으로 돌려도!
안 돼 안 돼. 이대로라면 자이모쿠자가 되버린다. Be cool!
 
"아버지랑 엄마는?"
"아마 오늘은 안 돌아올거라 생각하는데-? 돌아온다고 해도, 심야가 되는게 아니띾"
 
우리집 부모님은 말할것도 없이 사축이다. 사축이란, 회사에 길러지는 가축이며, 거스르는건 허락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내가 전업주부를 지향하고 있는건, 지친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에 그런걸지도 모른다.
 
요컨대, 내가 일하고 싶지 않은건 부모님의 탓이며, 내 탓이 아니다.
……뭐, 감사는 하고 있지만.
 
"그런가. 열심히 하는구나, 부모님들"
 
입으로 나온 말이 조금 부끄럽다. 평소엔 이런 말 안하는데…….
그 그림자를 보고 생각난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웃고, 나도 웃었던, 어렸을무렵의 기억을.
 
"그러게"
 
함박웃는 미소는, 아직 앳된 모습을 남기고 있었다. 역시 코마치는 쓸쓸한걸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 만큼은 코마치의 곁에 있어주자. 아버지네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한다면, 나는 코마치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하자. 오빠라는건 그런거니까.
 
"그건 기대되네. 앞으로도 미래영겁 잘 부 탁해"
"그건 안 돼~. 오빠는 아내 후보가 많이 있으니까!"
"……오빠는 슬프다"
 
이것도 모두 카와사키 타이시 탓인가! 이 놈의 카와사키 타이시. 용서 못해……!
 
"과연 선배네요. 가볍게 깨네요"
 
뭐야 이 잇시키 신랄해. 아니, 늘 신랄하지, 이 녀석. 좀 더 다정하게 대해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자, 둘 다 얼른요! 밥이 식어버려요~"
 
재촉하는 코마치를 따라 나와 잇시키는 거실로 간다. 이쪽에 고개를 내민 잇시키는 곤혹스런 표정이다.
미안하다, 잇시키. 이게내 동생----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동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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