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희생을 동반해 - 환희의 소용돌이는 끝을 알린다 - last1 - 
 
 
――75층 보스전 0시간 전――
 
 
우뚝선 보스룸의 문은 흉흉하고도 신비스럽다.
 
몇 명이나 되는 플레이어가 이 게임에 사로잡혀 다투고 잃었다.
 
높히 뻗은 탑을 올려다볼 뿐이었던 우리는 어느샌가 탑에서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올라간다.
 
아래에는 구름밖에 보이지 않지만.
 
위에는 하늘을 뚫는듯한 날카로운 정상.
 
 
문득 잃기만 하던 이 세상에서 손에 넣은 유일한 구원이 눈에 들어온다.
 
반짝 빛나는 약지의 반지는 나의 마음을 감싸는듯한 부드럽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히키가야를, 지켜줘'
 
 
몇 시간전에 받은 유키농의, 유이한테 받은 의뢰를 떠올리면서 나는 공략조에 숨어든 히키가야의 모습을 찾는다.
 
……어, 없어?
 
 
"……야, 뭘 두리번거리는거야"
 
"읏?! 조, 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지마!"
 
"목소리가 커……"
 
"미, 미안……"
 
 
여전히 로브로 몸을 감싼 그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그래도 내가 바랄때 나타난다.
 
 
"……아까전의 일 말인데…"
 
"진심이야. ……이미 기성사실도 있으니까"
 
 
보여주듯이 그의 눈 앞에 왼손을 내민다.
 
 
"……. 뭐어, 게임상에서 결혼이니 이혼이니 하나하나 허둥대지는 않으니까"
 
"후후. 그러게, 게임속에서 생긴 일인걸"
 
"……뭘 히죽대는거야"
 
"지금은…, SAO 안에선. 당당하게 네 아내라고 자처해도 된단 소리잖아?"
 
"……흥"
 
"지킬게. 히키가야를. 22층에서 기다려주고 있는 두 사람을 위해서도, 너를 위해서도"
 
 
아무 대답도 없이 그는 나에게 등을 돌렸다.
 
말을 끊듯이 나부끼는 로브는 가벼워 보이는 그의 몸을 열심히 감추고 있다.
 
 
"……그런가. 그럼 제대로 지켜줘. 그 녀석들도, 나도. ……그 대신에, 내가……"
 
 
 
너의 가장 가까이에서, 계속 지켜줄게
 
 
보스룸을 앞둔 공략조의 노호에 섞여 들려온 작은 목소리는 몇 가닥의 꽃을 장식한 꽃병을 묶는 리본처럼, 내 가슴을 동여맸다.
 
 
동경이나 존경이 아니다.
 
 
어느샌가 싹튼 좋아한다는 마음을 묶어내듯이, 나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자아, 싸울 준비는 됐나?"
 
 
히스클리프 단장의 목소리에 흥을 일으키듯이 보스공략 파티는 각각 큰 소리를 단장에게, 아니, 단장 뒤에 있는 보스룸으로 질렀다.
 
 
"모두의 용기에 기대하고 있어. ……간다!!"
 
 
모래연기를 일으키면서 열은 무거운 문.
 
펼쳐지는 공간은 하나, 또 하나 램프가 점등하고 평면에 아무것도 없는 형태를 만들었다.
 
 
보스는……, 없다.
 
 
 
"……읏, 이, 이봐. 없잖…아?"
 
"어떻게 된 일이야……"
 
 
너무나도 조용한 공간에 파티는 저마다 얼굴을 마주보면서 무기에 넣은 힘을 뺀다.
 
 
키이이이잉!!
 
 
"읏!?"
 
 
그때 철과 철이 맞닿는듯한 충격음에 우리는 그 출처인 천장을 올려다봤다.
 
 
거기에는 무수히 많은 다리를 가진 지네같은 해골.
 
예리한 양 낫을 가진 그건 10m 정도의 거체를 중력에 맡겨서 낙하하려고 하고 있었다.
 
 
【더 스컬 리퍼】
 
 
위험해, 낫을 들어올린 해골은 바로 아래에 있는 우리를 베어내려는듯이, 그리고 갑작스럽기 때문에 대처하지 못하고 경악한 우리들은 낫을 받을 자세도 취하지 못한채 최악이고 최강의 보스전을 시작했다.
 
 
"위, 위야!!!"
 
 
라며 너무 늦은 우리들의 반응을 조소한다.
 
해골이 웃는게 아니다.
 
……. 왜냐면, 우리를 비웃은건 해골이 아니라….
 
 
"……흡!!"
 
 
자유낙하하고 있던 해골은 옆에서 분 강렬한 바람에 날아갔다.
 
검붉은 한 줄기의 검격은 해골의 두 낫에도 지지 않을 정도다.
 
로브에서 늘씬하게 뻗은 가느다란 팔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이 날린 공격의 풍압으로 걷혀진 후드는, 누구를 감추지도 않고 그 인물의 목덜미에 나부낀다.
 
 
"……자고있나? …위협은 바로 거기에 있어. 방심하지마"
 
 
멍하니 서 있는 우리에게 꺼림찍한 미소를 지으면서 히키가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보스의 헤이트를 받아주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것과 동시에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고 착각할 정도의 재빠른 속도로 해골의 하복부로 향해간다.
 
 
"읏! ……저, 전원! 네 방향으로 총공격!! 스위치 타이밍은 각 팀에게 맞춰!!"
 
 
하복부에서 발해진 목소리에 겨우 제정신을 차린 공략조가 전투태세를 취했다.
 
밉살스런 보스와 밉살스런 플레이어가 다투는 점을 중심으로 공략조는 무기를 든다.
 
 
히키가야에 대해서 언급하는 사람은 없다.
 
 
사는것과 살아남는데 필사적이라서 일까, 아니면 혼자서 보스와 맞서는 그의 모습에 말을 잃고 있는걸까.
 
 
…….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1초라도 빨리, 히키가야의 분투에 답하고 싶다.
 
 
허리에서 빼어든 레이피어를 곧장 들고 나는 있는 힘을 전부 해골에게 내쳤다.
 
 
 
 
.

……
………
……………
 
 
 
어느 정도 지났을까.
 
30분은 넘은 전투는 아주 작은 희망에 매달려, 두꺼운 피부에 검을 치는걸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하아하아, 큭!"
 
 
바로 옆으로 휘둘러진 양낫의 풍압으로 인해 지면에서 발이 떠오를뻔한다.
 
 
단순한 풍압으로 말이다.
 
 
한쪽 무릎을 꿇고 레이피어로 몸을 지탱한다.
 
문득 그런 절망을 눈 앞에 두면서 나의 시야에는 절망에 맞서는 그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평소처럼 가련한 대거를 휘두른다.
 
 
흔들리는 바보털이 긴장을 풀어주듯.
 
 
평소와 다를바 없는 시원스런 표정.
 
 
문득 스컬 리퍼의 발밑을 돌고 있던 그가, 공간의 벽을 타고 천장 부근까지 뛰어올랐다.
 
 
하늘에서 날린 유성같은 연격에 스컬 리퍼는 등부터 박살나듯이 지면을 긴다.
 
 
공략조마저도 넋이 나가는 일련의 스킬 동작에 나는 보스전 중인것도 잊고 그저 가만히 서있고 말았다.
 
 
"…예, 예뻐"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감상을 중얼거려버릴 정도로 히키가야의 소드 스킬은 아름답다.
 
 
"후후, 소드 아트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움직임이군"
 
"다, 단장!"
 
"지금의 연격으로 겨우 상대측도 레드존이다. 자, 한발짝 더 내딛어볼까"
 
"네!"
 
 
보스의 양 낫이 부서지고 있다.
 
무수히 많던 다리도 지금은 떠는 새끼사슴처럼 약하다.
 
격전 속에서도 셀 수 있었던 생존자의 숫자에 변화는 없었다.
 
 
그리고 단장과 키리토의 소드 스킬이 해골을 부순 순간, 보스의 HP는 0이 된다.
 
 
끝났다…….
 
 
 
비산하는 사각 이펙트를 올려다보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지면에 주저 앉는다.
 
 
"끄, 끝났어……"
 
 
【Congratulations】
 
 
그리고 일제히 일으키는 환희의 소용돌이가 보스룸을 지배했다.
 
 
퐁, 내 머리에 놓이는 태양같은 따뜻함과 안심을 가진 그의 손.
 
 
그건 무척이나 기분 좋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환희하고는 정반대로 비통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히, 히키가야?"
 
"……유우키."
 
 
아쉬움을 남기면서 그의 손은 내 머리에서 떨어진다.
 
그리고 환희의 소용돌이가 끝을 고하듯이.
 
 
그는 나에게만 들리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고마워"
 
 
내 몸에 충만해가는 히키가야의 목소리는, 마치 신경을 굳어버리게 하는 모양이다.
 
아니, 실제로 굳어버리고 있다.
 
HP 위에 표시된 그건 스턴 상태를 표시하는 것이었으니까.
 
 
저항도 하지 못한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질뻔하는 나를 히키가야가 천천히 받쳐준다.
 
마치 잠에 빠지는 공주님을 조용히 눕히듯이.
 
 
"히, 히키가……야…?"
 
 
흔들 일어서는 그는 한 명의 인물을 노려보면서 대거에 손을 댔다.
 
 
"있잖아, 유우키…….
 
 만약…, 만약이지만, 내가 죽어도 이 망할 게임을 끝낼 수가 없었다면…….
 
 그 녀석들을…….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를…….
 
 지켜줄 수 있어?"
 
 
 
움직이지 않는 몸에서 힘이 빠져간다.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만해, 그만해……
 
 
"뭐, 뭐를……"
 
 
히키가야는 뭔가를 인벤토리에서 꺼내어 망설임없이 그걸 공중에 집어던진다.
 
 
"……이제 시간이 없어. 2년이나 잠든 인간이 정상적으로 사회 복귀가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 그러니까, 뭐를……!?"
 
 
공중을 포물선상으로 날아간 아이템을 천천히 낙하해서 지면에 부딪쳤다.
 
 
파앙-!!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깨진것과 동시에 보스룸에서 환희를 지르는 공략조가 점점 쓰러져간다.
 
 
"광범위 마비약. 기뻐하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잠시 잠들어줘"
 
 
그는 쓰러지는 플레이어들에게 눈을 주지 않고 그 가운데를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한건지 흔들거리며 발을 멈추고 대거를 뽑아 눈을 가늘게 뜬다.
 
 
"……현실따윈 빌어먹기 나름이지. 이런 가짜 세상보다도 훨씬 더 망할 게임이고 무리 게임. 여친은커녕 친구조차 안 생기니까"
 
 
둑을 튼것처럼 말하는 말에 나는 그의 진의를 엿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진실된 것이 있고, 빌어먹을 현실을 피하려고 할때도 있지만, 진실된것 만큼은 지키고 싶어……라고, 조금이지만 생각했어"
 
 
 
넓은 공간에서 '어떤 플레이어'와 마주보는 그의 등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작별의 인사같다.
 
 
앞으로도 함께 있어준다고 약속했잖아.
 
 
그런 기만으로 가득찬 거짓말을 남기고, 너는 죽어가는거야?
 
 
평소처럼 얄궂은 미소를 이쪽으로 지어줘.
 
 
농담을 하면서 나를 안심시켜줘.
 
 
 
"……저기 말야, 너를 죽이면. 저쪽의 빌어먹을 현실로 돌아갈 수 있는건가?
 
 
 
 
 히스클리프"
 
 
 
 
보스룸의 웅성거림이 강해진다.
 
정신나간 레드 플레이어가, 마침내 SAO의 톱 플레이어를 죽이려 한다고.
 
숨을 삼키면서 증오만이 증가한다.
 
 
"……호오? 그건 즉, '눈치챘다'라고 봐도 될까?"
 
 
그 플레이어는 천천히 일어선다.
 
 
"……. 외톨이끼리 어딘가 통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후후. 그만두게. 나에겐 밖에 우수한 부하가 있거든. 유감이지만 외톨이가 아니야"
 
 
스턴 상태에 빠져있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진짜냐. 어이어이, 외톨이계의 슈퍼 스타가……. 광기의 사태구만"
 
"그런 명예가 조금도 없는 이명은 처음이다"
 
"그런가……. 천재적 게임 디자이너 겸 양자물리학자, 여러가지로 있지. 어느게 마음에 드는데?"
 
 
"흠……. 매드 사이언티스트 '카야바 아키히코'가, 나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고 있지"
 
 
히스클리프 단장의 말은 침묵을 강요하듯이, 우리에게서 말을 빼앗아간다.
 
무슨 소리를 하는걸까,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려버린건 나만이 아니겠지.
 
그건, 즉…….
 
 
"……네가 모든 흑막이다, 히스클리프. 아니, 카야바 아키히코"
 
 
"……"
 
 
 
 
머리속을 콰직 굽혀진듯한 절망.
 
맛본적이 없는 상실감이 눈을 어지른다.
 
그건 나만이 아니라 혈맹기사단의 전원이, 공략조의 전원이, SAO 플레이어 전원이 느끼고 있는 일이다.
 
 
그 정도로까지, 신성검 히스클리프 단장은 이 게임의 지주적인 존재였으니까.
 
 
"흠, 조금 예상외였지만……. 그래도 아직 상정 범위내다"
 
"꽤나 느슨한 상정을 하고 있군"
 
"그렇지도 않아. 자네와 달을 쳐다본 밤에, 어쩌면 자네에겐 들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어디서 눈치챘던거지?"
 
"……조금 쳐다보면 알지. 처음부터 카야바가 SAO 안에 있을 가능성은 생각했다"
 
"……그래서 감시를 나에게 붙였다고"
 
"너만이 아니야. 거기에 뒹굴고 있는 톱 플레이어에겐 빠짐없이 감시나 스파이를 보냈지"
 
"뭐라……. 후후, 마치 악역이군"
 
"아아. 악역이지. 게임이라는건 대립하는 대적자가 있어야 처음으로 재미있어지니까"
 
"대적자에게 구해지는 세상이라……. 나쁘지 않군. ……그럼, 자네는 나를 죽인다고 했지…"
 
"……"
 
 
단장의……, 카야바 아키히코의 물음에 히키가야는 몇 초만 눈을 마주치고, 천천히 반전해서 이쪽으로 걸어온다.
 
 
그 모습은, 시작의 마을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 무렵과 변함이 없다.
 
 
22층의 그 집에서, 모두와 다 함께 홍차를 마셨던 그.
 
 
표표하게 우리들을 몇 번이나 구해준다.
 
 
저기…….
 
 
히키가야.
 
 
또, 나한테 손을 내밀어줄거지?
 
 
"너하고는, 현실에서도 만나보고 싶었……, 을지도"
 
 
처음으로 보는, 그의 웃는 얼굴은, 역시 나이에 상응하는 남자애.
 
 
 
 
조용히 발동한 그의 소드 스킬이 검을 빛으로 감싸간다.
 
작게 휘둘러진 오른손이 매끄럽게, 그리고 곧게……,
 
 
"……미안. 약속, 지킬 수 없을것 같아"
 
 
그 자신의 몸을 검이 꿰뚫었다.
 
 
점점 그의 HP는 줄어들어간다.
 
 
"그만해……"
 
"……. 이 스킬의 대상자는 너다. 히스클리프"
 
"……호오, 암흑검인가. ……그 유니크 스킬을 발현시키는 플레이어가 있었을 줄이야"
 
"그만해, 그만해……. 부탁이니까, 자기만 희생하지마…"
 
"……히스클리프, 네 HP는 내 HP랑 싱크로했다. 이걸로……, 게임 오버다"
 
 
암흑검따위 들은 적이 없다.
 
그래도, 그가 무슨 짓을 하는지.
 
그런건 바로 알았다.
 
 
 
"……부탁해…, 나, 열심히 할테니까! 네가 여기서 죽을 일은 없어!"
 
"……있잖아, 유우키. ……, 기뻤어. …나 같은걸 좋아해줘서. 언제나 의지해줘서. 미소를 지어줘서……"
 
"……답례따위 필요없어…, 부탁이니까, ……살아줘"
 
"……지키고 싶다고 생각했어. 너희들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만해…"
 
 
줄어들기 시작하는 HP는 마침내 레드 존으로 돌입했다.
 
모래시계가 떨어지듯이, 그의 HP바가 공백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유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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