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돌봐준다. - after -3-
【수영장】
겨울의 추위가 가까워진 오늘.
평소처럼 히키오의 집에서 축 늘어진 나였지만 가주인 히키오 본인은 거기에 없다.
최근에는 세미나 논문발표가 가까워져서 연구실에 틀어박히는 때가 있다.
혼자 있기에는 지나치게 큰 방에서 소파에 앉아 나는 히키오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개그맨의 리드지컬한 예능을 흘려들으면서 스마트폰 화면과 노려보기만 하며 시간이 지나간다.
모처럼 휴일인데 그 녀석은 뭘 하는거야….
스마트폰을 노려보길 30번, 현관쪽에서 신발로 복도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느릿한 발소리.
발꿈치부터 지면에 닿는듯한 걸음방식인 히키오의 신발은 모두 발꿈치가 닳아있다.
"……. 음, 왔었냐"
"왔었어! 아침부터!!"
"…아침부터 왔었냐"
히키오는 벗은 아웃웨어를 의자에 걸쳤다.
"재대로 옷걸이에 걸어. 모양 망가지잖아"
"모양 망가진 패션이라는거야"
"닥치"
해가 저물기 시작한 무렵.
밖에선 아이들의 목소리와 5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히키오, 배고파?"
"음. 밥 만들까. 뭐가 좋아?"
"음-. 굴이랑 시금치 치즈 리조트 먹고 싶어"
"………좀 더 간단한걸로 해주지 않을래?"
"그럼 라면이랑 만두"
"네 위장은 종횡무진하구만"
방금전까지 지쳐있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히키오는 평소 입는 에이프론을 입고 요리를 시작했다.
만두 밑준비를 시작한 히키오의 옆에서 나는 양배추를 식칼로 썬다.
"라면 츠케면 보쿠이케면~"
"낡지 않아?"
"음~. ……자자자자자자잠깐 기다려, 오빠"
"그거 아까 텔레비전으로 봤어!"
"유행하는 모양이야. 세미나에 있던 녀석이 말했어"
"………여자?"
"……아냐. 진짜로"
나는 들고 있던 식칼을 히키오에게 향한다.
"그럼 됐어. 자, 양배추 다 썰었어"
"……어"
―――――――――
"후아~, 배불러"
"응. 맛있었다"
다 먹은 식탁에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퍼진다.
남국 리조트의 로케이션 같다.
텔레비전 속에선푸른 하늘 아래 판소매 알로하셔츠를 입은 연예인이 큰 소리로 현지의 모습을 전하고 있었다.
"……, 다음 연휴에…"
"안 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어차피 하와이 가자고 말할거잖아"
"뿌-. 발리 섬이야"
"독같아"
"우리들 사귀고나서 어디에도 안 갔잖아!"
"갔잖아. 아울렛이나, 슈퍼나, 편의점이나"
"죄다 가깝잖아!!"
나는 텔레비전 전원을 끄고 테이블에 남아있던 식기류를 치웠다.
"긴급회의를 시작합니다"
"……뭐야, 갑자기"
"우선 사귄다는건 어떤걸까요"
"……함께 있는것"
"기, 깊은 소리 하지마. 정답은 행복을 공유하는겁니다!"
"…뭔지 진부하네"
나는 구글에서 조사한 페이지를 히키오에게 보여준다.
히키오의 시선이 몇초 좌우로 이동하고 화면 아래까지 도달하자, 기막힌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나를 쳐다봤다.
"……여기에 가고 싶다는거야?"
"그렇게 되겠네"
"여름에 갈거잖아"
"못 기다리니까 여기에 갈거야"
"……가고 싶지 않아"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너는 거절할 수 없어!!"
"하?"
나는 기세 좋게 일어서서 히키오를 내려본다.
그리고 소리 높여서 선언했다.
그 목소리는 히키오의 귀를 통해 뇌에 꽂힐게 틀림없다.
"이미 수영복을 샀으니까!!"
눈 앞에서 치마와 파카를 벗기 시작한 나를 보고 히키오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랬다.
"……계속 입고 있던거야?"
"응!"
"……"
"흐흥! 주말에는 온수 수영장에 가자-!!"
――――――――――
일주일 후
대형 레저 시설 앞에 있는 티켓 판매장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실온이 설정되어 있는 시설 안으로 들어간다.
"헤에~. 상상보다도 넓네"
"……꽤 사람 있네"
"이런건 바다랑 비교하면 적은편이잖아"
집합장소만 정하고 각각 탈의실로 나뉘어 들어간다.
로커에 짐을 넣어두고 빠른걸음으로 탈의실을 나왔다.
"어쿠, 빠르네"
"안에 입고 왔어!"
"또냐"
"그래서? 어때?"
나는 홀터 넥 비키니로 강조된 가슴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저번주에 산 옅은 보라색 비키니는 정숙하게 몸을 감싼다.
풋풋한 히키오의 허둥대는 얼굴을 상상하면서 산 것이다.
"음. 어울리지 않아?
"후? 에?"
"…응?"
"고, 고마워!?"
"뭐야 그거"
"아, 아무것도 아냐!! 자, 가자!!"
왠지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팔로 가능한 가슴을 감추면서 히키오의 앞을 걷는다.
수줍게 만들려고 했는데 반대로 수줍어지면 본전도 못 찾는다.
실내의 온도 이상으로 뜨거워진 몸이 히키오에게 들키지 않도록 그렇게 빌면서 빠른걸음으로 수영장으로 가는것이 지금 가능한 저항이었다.
………………………………
"후와--!! 지쳤어-!!"
"그야 유수에서 역주행하면 지치겠지"
정석인 유수에서 파도가 나오는 수영장까지, 많은 종류를 요구하는 시설에서 몇 시간을 만끽한 나와 히키오는 점심을 먹기 위해 포장마차가 늘어선 에리어로 가서 테이블에 앉는다.
"야키소바 맛있어?
"음. 맛없지는 않아?"
"내 카레 엄청 맛없어…"
"…, 오늘 저녁은 카레로 할까"
"…응!"
나는 맛없는 카레를 숟가락으로 섞으면서 시설내에 갖추어진 다이빙대를 올려다봤다.
"밥 다 먹으면 저거 가자!"
"저건 안 가"
"어째선데!"
"…평화롭지 않으니까"
히키오는 야키소바를 십으면서 다이빙대로부터 눈을 피했다.
아무래도 슬라이더는 싫은 모양이라 오전중에도 다이빙대 근처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저런건 애들 눈속임이야"
"어른이라면 속겠지. 저건 위험해"
"하? 어디가?"
"브레이크가 안 통해"
다이빙대에서 뻗어나오는 푸른 호스는 굽이굽이 굽어져 있어서 튜브를 탄 사람들이 다이빙대의 주변에서 미끌어지면 몇 초후에 아래쪽 수영장에 큰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타난다.
"그치?"
"그치? 가 아냐. 자, 다 먹으면 가자"
"잠시 소화중이니까 먼저 가-"
"소화종료. 자, 가자"
"끄응"
다이빙대가 가까워지자 높은 전장이 보인다.
뒤를 걷는 히키오가 말하기에는 "현실은 높다'인 모양이다.
튜브를 갖고 다이빙대 계단을 오르니 얼마 기다리지 않고 순서를 맞이했다.
"히키오는 뒤랑 앞 중에 어느게 좋아?"
"혼자가 좋아"
"어째선데. 그럼 나아가 앞이야"
"잠깐만 기다려, 이 튜브에 같이 자라는거야?"
히키오는 튜브를 집어들며 나에게 보인다.
튜브에 이르러선 평범하게 원형 튜브.
둘이서 타기에는 조금 작을지도 모른다.
"뭐, 달라붙으면 탈 수 있잖아"
"……나, 주목받는데"
"이제와서 생떼부리지마!"
"생떼가 아냐. 논리적인 판단이다"
"하?"
"이거 엄청 작다고"
"…너, 그런데는 변함이 없네"
나는 너무 고집피우는 히키오를 튜브에 억지로 앉히고 뒤에서 껴안듯이 나도 튜브에 앉는다.
"잠깐! 너!?"
"이, 입 다물어!! ……나아도 꽤 부끄럽거든"
튜브가 미끄럼틀을 질주하기 시작하자, 의식하지 않아도 밀착도는 늘어나버린다.
유수에 거스르지 못하고 달리는 튜브 위에서 들릴리가 없는 가슴 고동이 크게 운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곳에서 직접 느끼는 열과 숨결.
히키오의 등을 껴안듯이, 좌우로 흔들리는 튜브 위에서 나는 슬슬 다음 스텝으로 내딛어야한다고 결의를 굳힌 것이었다.
――――――――――――
"지쳤어…. 내일은 근육통에 걸리겠군"
"………"
"?"
석양지고 돌아가는 길.
기나긴 그림자가 둘의 뒤를 따라온다.
나보다도 키가 큰 입술에 닿도록, 나는 발돋음을 한다.
닿은 곳에 있는 행복을 느끼면서.
갑작스런 키스에 놀라는 그에게 나는 중얼거린다.
"오늘밤……, 안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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