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네 파편 - 그리고나서.
 
 
 
햇빛의 반사가 격해서 태울듯한 더위를 느끼는 날.
나는 코마치의 성묘하러 와 있었다.
꽤나 멀리 돌아서 괜한 시간을 걸려버렸지만, 마침내 여기에 올 수가 있었다.
 
묘석을 보는것만으로 이미 감개 깊게 울것 같은 남자가 있었다. 라기보다 나였다.
 
오랜만에 코마치를 접한 느낌이 든다.
실제로 만지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의 기억의 파편을 접한것 같았다.
 
 
 
여기에 온건 좋다.
하지만 이제부터 대체 뭘 하면 좋지?
기본적으로 성묘라던가 온 적이 없는 나로부터 보면 진짜 수수께끼다.
 
"어이, 코마치. 나는 어쩌면 좋냐?"
 
"그걸 코마치한테 물어서 어떡할건데요…"
 
잇시키는 관자놀이에 손을 대면서 기막힌듯한 소리를 낸다. 그 동작이 뭐시기노시타랑 판박이거든?
너무 닮지 말아줘.
 
"아니, 나 이런거 처음이니까 모르겠다고"
 
"청소하거나 꽃을 바꿔주는게 보통인거 아니에요? 그리고 선향을 바치거나!"
 
"뭐야 너 성묘 프로야?"
 
"선배, 불성실하네요"
 
생글거린 웃는 얼굴로 차가운 시선을 보내오는 잇시키.
행동이 유키노시타 씨의 영향을 너무 받은게 아닐까아, 이 애.
별로 좋은 경향이 아니라고, 그거.
 
"너 유키노시타랑 닮았구만. 그 녀석같은건 한 명으로 충분하거든? 전혀 안 닮아도 되거든?"
 
"유키노시타 선배의 몸동작은 꽤 귀엽거든요. 가끔은 흉내내기 해봤더니 자연스럽게 나오게 됐다구요"
 
테헷 말하며 혀를 내밀어 자신의 머리를 툭 때린다. 뭐야 그거 귀여워.
약았어! 이로하스 약았어! 약은이로하스!
 
"그만둬. 나를 까는건 유키노시타만으로 충분해. 오히려 그 녀석 한 명만으로도 손에 남거든"
 
그렇게 말하자 잇시키의 얼굴이 순간 뚱해진 표정으로 변했다.
 
"뭐에요 그거. 유키노시타 선배는 특별하다고 하는거에요? 그건 좀 치사하니까 용서 못해요"
 
뭐야 이 귀여운 생물. 이거 정말로 이로하스야?
고개숙여진 얼굴에선 엿볼수 없지만 분명 잇시키는 지금 삐친듯한 얼굴을 하고 있겠지. 왠지 모르게 알겠다. 코마치가 삐쳤을때도 대개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이럴경우 상대가 바라고 있는 말을 해주지 않으면 꽤나 오래 끌어버린다.
일찍이 나도 코마치와 같은 시츄에이션이 됐을때, 배드 커뮤니케이션을 취해버린 덕분에 3일 정도 입을 열지 않은 적이 있었다.
여자란 성가시네….
 
"딱히 그 녀석만 특별한게 아냐…"
 
"…………."
 
유감스럽게도 배드 커뮤니케이션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잇시키가 바라는 대답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문제 난이도 높지 않나?
그보다 무반응은 뭐야? 옛날의 나였다면 거북해서 죽어버렸을거다.
 
다같이 대화할때 자기가 발언하는걸로 분위기가 얼어붙는거 있지…. 나도 서클에서 몇 번이나 경험했다. 덕분에 기본적으로 듣는 전문이 되었다.
요즘 휴대폰마저도 대답을 해주는데 나랑 대화를 하면 맞장구조차 안 쳐주니까 굉장해!
 
 
아무튼 지금은 이 상태를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옛날 코마치와 대화를 기억 속에서 끌어낸다.
…상당히 부끄럽지만, 이 녀석이 언제까지고 이 태도라면 이쪽이 갑갑하니까.
결심하고 잇시키의 머리에 손을 뻗는다.
 
"…그 녀석뿐만 아니라 아마 그밖에도 소중한 특별한 사람은 있어. ……너도 그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해"
 
잇시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선배, 약았네요"
 
귀까지 새빨개진 잇시키가 나를 쳐다보고 함박 웃는다.
참고로 아마 내 얼굴이 훨씬 새빨개져있을터. 해, 햇볕이 더운것 뿐이거든!
 
"뭐, 그걸로 용서해줄게요!"
 
"잘나보이는구만-, 이 사람"
 
둘이서 얼굴을 마주보이며 있는대로 웃는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있는대로 시허연 눈으로 쏘아보여졌다.
 
…죄송합니다. 여기 묘였지요.
불성실해서 죄송합니다.
 
 
×  ×  ×
 
 
그리고나서 청소를 하고 꽃을 바꾸고 생각 나는대로 최선을 다했다. 남은건 선향을 바치는것 뿐이다.
 
참고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정기적으로 와준 모양이라, 청소를 할 곳이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정말로 고맙다.
 
잇시키는 선향을 바치고 바로 일어섰다.
 
"선배, 먼저 갈게요. 선배도 코마치랑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테니까요"
 
"아아, 미안"
 
"거기는 고마워라구요! 선배!"
 
"시끄러워 얼른 가! 여기서부터는 나와 코마치 단 둘만의 시간이다! 누구에게도 방해 못 시켜"
 
"여전한 시스콘…. 솔직히 소름 돋아요. ……하지만 그러는 편이 선배 답네요"
 
잇시키는 깔깔 웃으면서 즐거운듯이 그 자리를 뒤로했다.
저 녀석의 이런 점은 대적할 수가 없다.
분위기를 읽는걸 잘한다고 할까, 배려를 한다고 할까.
잘 한다고 할까.
말로는 하지 않지만 정말로 감사하고 있다.
 
 
남겨진 나도 라이터로 불을 붙여 선향을 바친다.
 
웅크려 앉아 묘 앞에서 양손을 모은다.
이럴때, 말로는 하지 않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말로 하지 않으면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다는걸 나는 알고 있다.
이 상황에도 그게 적용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코마치에게 말을 한다.
 
 
 
오랜만이야, 코마치. 대충 1년정도 만일까? 꽤나 기다리게 해버렸어.
실은 좀 더 빨리 와주고 싶었지만, 뭐 여러가지로 있었어. 미안해.
막상 말하게 되니 특별히 할 말도 없으니깍 난처하네.
나는 그럭저럭 즐겁게 보내고 있어. 그쪽은 어때?
얼마전까지 나도 네가 있는 곳에 빨리 가자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만뒀어.
그거구만, 코마치에게 오빠를 떠나보내게 해야하니까.
참고로 나는 언제까지라도 동생을 떠날 수 없는 모양이다. 오오, 지금 하치만 기준으로 포인트 높아.
…그 뭐랄까. 나도 열심히 할게. 여러가지로.
 
할 얘기는 많이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잊어버렸어.
 
그럼 슬슬 갈게. 그 녀석도 기다리고 있으니까.
 
오오, 그렇지. 중요한걸 깜빡했다.
 
 
 
고마워, 코마치.
네가 내 동생이라서 정말로 다행이야.
 
 
 
 
조만간 또 적당하게 올게.
 
 
그때까지 건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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