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네 파편 - 답.
 
 
나는 무서웠다. 소중한것을, 소중한 사람을 잃는것이.
그렇게나 혼자 있는것을 바라고, 남과 거리를 두고 있던 자신이, 유키노시타를, 유이가하마를, 두 사람을 잃어버리는것을 무서워했다.
되게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일까.
거기에는 고고함을 신경쓰고 있던 남자의 꼴사나운 모습이었다.
 
 
 
 
 
모든걸 다 얘기하고 고개를 든다.
그러자 두 사람은 기막힌듯한, 그러면서 어딘가 놀라고 있는 듯한, 여러가지 감정을 뒤섞은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입을 닫으니 필연적으로 그 자리에는 침묵이 남는다.
이 이상 내가 얘기할 건 더는 없다.
기막혀하든, 실망 당하든, 거기서 이제 끝이겠지.
분명 모든게 다.
 
 
다시 그녀들에게 눈을 향하니, 지금이라도 뿜어버릴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답구나"
 
"힛키는 여전히 힛키네에…"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한후, 얼굴을 마주보고 웃었다.
이 상황에서 왜, 웃는걸까. 나에겐 전혀 이해를 할 수 없다.
보통이라면 화내도 좋을 것이다. 아니, 화내든 기막혀하든 그것이 보통 반응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상하다.
 
하지만 그녀들은 즐거운듯이 웃는다.
자못 기쁜 일이 있었던것 처럼.
 
한차례 웃은 후, 유이가하마가 이쪽으로 몸을 돌리고 내 눈동자를 한 점으로 쳐다본다.
 
"힛키는 너무 어렵게 생각해. 그야 코마치가 사라진건 슬프지만…. 그래도 사라졌다고 해도, 의미가 없었던게 되는건 아니잖아?"
 
유이가하마는 구름 한점 없는 곧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면서 다정하게 말을 걸어온다.
 
"나는 바보니까 어려운건 잘 모르겠지만 말야, 결국 마지막에는 모두 잃어버린다면, 지금은 그 만큼 즐거워하고 싶다고 생각해. ……소중한 사람이랑 함께"
 
"그래. 유이가하마의 말대로야. 언젠간 잃어버리기에, 지금 함께 있을 수 있는것에 의미가 있는게 아니니? …그러니까 나는…가능하면…함께 있고 싶은데. ……유이가하마하고도. …너하고도"
 
조금 수줍어하면서 둘은 말한다.
분명 그녀들이 하는 말은 올바르다.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해야했다고 생각해버릴 정도로 정답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무섭다.
지금을 즐겨버린만큼, 잃었을때의 괴로움은 늘어갈 것이다. 분명 그 관계성은 한없이 비례하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솔직하게 그녀들이 하는 말을 긍정할 수가 없다. 얼마나 올바른 해답에 이끌어도, 나의 약해진 마음이 그걸 거절한다.
 
 
 
 
"우리는, 사라지진 않아"
 
그런 나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했다.
그건 나에게 있어서 한때의 위로의 말일지도 모른다.
격려나 위로, 그러한 부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키노시타 유키노라는 인간은.
 
 
 
 
 
"나, 거짓말은 하지 않는걸"
 
 
 
안도해버렸다. 안심해버렸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뢰해도 괜찮겠지. 그녀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정말로 사라지지 않는 거겠지.
 
그렇다면 손놓을 이유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러냐"
 
치밀어오는 웃음을 눌러죽이면서 노력해서 무뚝뚝하게, 평소처럼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었다.
 
 
 
× × ×
 
 
 
 
"나는 이 교실 열쇠를 반납하러 갔다올게"
 
너희는? 하며 유키노시타의 시선이 물어온다.
 
"그럼 나도 같이 갈래-!"
 
기세 좋게 유키노시타의 팔을 안겨붙는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도 이젠 익숙해져버렸는지 특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너네 정말로 사이 좋네요….
 
"힛키는 어떡할래?"
 
껴안으면서 고개를 유키노시타쪽으로 기울이는 유이가하마.
가까워! 이 두 사람 가까워! 혹시 일선을 넘어버린거 아니야?
 
"아아…미안, 나 지금부터 갈 곳이 있어"
 
딱히 이 둘의 유루유리 알콩달콩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한건 아니다. 결코 거짓말을 한게 아니다. 중요하므로 두 번 말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이 둘에게도 물론 감사의 뜻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될 녀석이 있다.
그 녀석은 분명 그 장소에 있겠지.
 
"그럼…다음에 또 보자"
 
"그래. 또 봐"
 
"또 봐!! 힛키!!"
 
 
우리들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리놀리움 바닥을 걸으면서 복도를 돌아보니 여기저기 변화가 보이지만 그 무렵과 변하지는 않았다.
 
그리운 광경을 눈에 새기면서 목적지로 발을 옮긴다.
 
몇분 거러은 후, 마침내 그 교실 앞까지 도착했다.
 
학생회실.
 
내가 교실과 봉사부 다음으로 다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여기선 기본적으로 일을 돕게된 기억밖에 없지만, 그래도 의외로 있기에 나쁘진 않았다.
 
왠지 모르게. 왠지 모르게지만, 잇시키는 여기에 있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잇시키가 학교 소개처럼 나를 데려다닐때, 이곳만큼은 데려오지 않았다.
거기에 의미가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분명 잇시키는 여기에 있다.
 
3번 노크를 한 후에 대답을 기다린다.
안에서 늘어진, "들어오세요-" 라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문을 연다.
 
거기에는 학생회장 자리에서 축 늘어져있는 잇시키 이로하의 모습이 있었다.
 
"…늦다구요오, 선배-"
 
"아니, 딱히 기다리라고 안 했는데"
 
"그런데 여기에 온건가요"
 
"뭐 그래. 여기서 누구씨에게 엄청 부려먹혔으니까. 오랜만에 보러 온것 뿐이야"
 
"보러 온것 뿐인데 의자에 앉는거에요?"
 
뭐야 이 녀석. 내 변명을 너무 잘 파악하잖아. 정확하게 내 말에서 오류를 발견해온다.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니, 무서워.
몇번 정도 헛기침을 하고 잇시키를 본다.
 
"…그 뭐냐. 일단 고맙다고 말하려고. 너에겐 신세를 졌으니까"
 
그 말에 만족스런 모습인 잇시키.
엄청 히쭉대고 있다. 길거리에서 만났다면 신고할 수준으로 히죽히쭉.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요"
 
"…싯꺼"
 
"선배는 정말로 삐줍이라니깐요"
 
"이상한 조어 만들어내지마. 아니, 만든건 코마치였나… 그 자식"
 
진짜로 코마치 용서 못해. 그 녀석이 만든 조어는 어째선진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쓰여지고 있다. 아무래도 좋은데, 어째서 그렇게 퍼져있는거야?
 
 
잇시키는 책상에 펼쳐둔 짐을 정리하고 나에게 말한다.
 
"그럼 저는 슬슬 돌아갈게요?"
 
"엥, 같이 안 갈거야?"
 
"어라? 선배야말로, 유키노시타 선배네랑 돌아가는거 아니에요?"
 
"아니, 그 녀석들 둘이서 돌아갔어. 우리도 얼른 돌아가자고"
 
"뭐에요 그거. 꼬시는거에요? 조금 좋은 분위기가 됐다고 해서 그런 말을 하면 제가 호이호이 따라갈거라고 생각한거에요? 저는 그렇게 가벼운 여자가 아니니까 세번 정도 더 꼬셔주세요"
 
"아니, 의미 모르겠거든. 자, 가자"
 
"기다려주세요- 선배-!"
 
 
 
 
 
끝이 있는것에 의미따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아무 가치도 없다고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그런건 아니다.
언젠간 잃어버려도, 잃어버리기에 거기에 의미가, 가치가 있는거겠지.
 
그렇다면 잃어버리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기로 하자.
손 놓아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이 손을 잡고 가자. 붙들어매어가자.
 
 
두번 다신 떨어지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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