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그거는 무슨 맛?
"여어"
"어머, 늦었잖아. 히키가야 뿐이니? 유이가하마는?
"저번주에 했던 건강진단에 걸려서 말야. 재검사하러 보건실에 납치당했어"
현내유수한 진학교인 우리 소부고등학교. 본래라면 3학년 봄에 건강진단을 하지만, 모의고사랑 커리큘럼의 사정으로 2학년인 이 시기에 해버리는 관례다. 뭐, 정월 지나서 체중이 늘어나는 여자애들에게는 몹시 사정이 나쁘지만.
"이상한걸, 굉장히 건강해보이는 유이가하마가 재검사고 히키가야가 멀쩡하다니"
"뭐, 그 녀석이니까 우리가 모르는데서 불규칙적인걸 하고 있는거 아냐?"
"그렇다고 해도 이상해, 유이가하마는 건강해보인느데"
"…, 왠지 독이 있구만, 그 마"
"왜냐면 히키가야는 겉보기에도 불건전한걸"
"불건전한데 건강에 신경써서 미안하구만"
왠지 세기의 발견을 했을때 과학자처럼 반짝반작한 눈으로 쳐다보곤. 감기로 학교를 쉬어도 노트를 보여줄 친구가 없으니까 필연적으로 건강한걸 강요받고 있는것 뿐이지만.
"그런고로, 유이가하마는 언제 올지 모른다는거지"
"그래, 어쩔 수 없구나…, 그럼 차를 마실까"
후우, 크게 한숨을 쉬고 읽던 문고본에 책갈피를 끼우며 차 준비. 종이접시에 수제 쿠키를 올리고 홍차캔 뚜껑을 따서 안을 들여다본다. 어이쿠, 중요한걸 깜빡했다.
"아, 미안하지만 유키노시타. 나 오늘은 이거 있으니까"
"어, 그건 뭐니?"
듣고나서 상의 주머니에서 붉은 캔을 꺼내어서 상품명이 보이도록 눈 높이로 들어올린다. 집어먹을듯이 쳐다보고, 단어을 기억한 아이처럼 또박또박 읽어낸느 유키노시타.
"가…, 감・주?"
"오는 도중에 매점 앞 자판기에서 사왔는데"
"히키가야…, 너 평소 마시던 MAX 뭐시기는? 개종이라도 한거니?"
"안 했고, 애시당초 MAX 커피를 마시는건 종교 아니거든"
"그럼 무슨 소리니? 히키가야가 MAX뭐시기 말고 다른걸 마시다니"
실례구만! 나도 사정에 따라선 MAX커피 말고도 마시는건 있다고. MAX커피로 절임은 못 만들잖아?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화성인을 보는 눈은 그만해.
뭐, 이번에는 조금 얼빠진 사정이 있지만 말야. 그리고 MAX커피를 외울 생각 없지.
"버튼을…, 잘몰 눌렀어"
"『경솔』하다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는구나. 제대로 보고 누르지 않으니까 그런거야"
"『동정』같은건 없어? 그리고 그런 착각을 해버리는 남자한테 『뀽』하는건?"
"없어"
조금 차갑지 않냐, 유키노시타. 이미 흥미가 없는듯, 홍차포트에 차잎을 세팅하고 담담하게 차를 준비한다. 자신의 컵에 물을 붓고 데운다. 힐끔 이쪽을 돌아보고 감주캔에 날카로운 시선. 너 감주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어?
"애시당초 학교내에서 감주 판매라니, 조금 문제야"
"뭐, 괜찮지 않냐. 감주 정도라면"
"좋지 않아. 그치만 단 술이잖니?"
"…"
"…"
어라, 어딘가 부분적으로 얘기가 맞물리지 않는데.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유키노시타는.
"야, 너 혹시 감주 마셔본적 없어?"
"없는데"
"진짜냐. 너네 집은 자매잖아. 삼짓날에 안마셨어?"
"삼짓날은 『백주』야. 술이니까 안 마셨어"
"엑, 히나마츠리에서 마시는 하얀 술은 『감주』가 아니었어?"
"아니야. 노래에도 있잖니, 『백주』라고"
"…, 듣고보니 확실히"
"알겠니. 덧붙여서 백주를 마시는건 우대신, 너무 마셔서 안색이 나쁜거야"
뭐야 그 잡지식. 우리집도 코마치가 있으니까 히나마츠리를 빼먹은적이 없지만, 아무 의문도 없이 감주를 마셔버렸는데. 도리어 진짜 백주를 어디를 가야 손에 넣는건데? 애시당초 백주에 그렇게 자세한 주제에, 감주의 지식은 전혀 없다는게 말이 되냐?
"뭐, 감주라는건 술이라고 해도 알코올이 안 들어있으니까"
"하지만 명확하게 『술』이라고 쓰여있잖아"
"발효전의 누룩이니까 알코올 성분은 없다고"
"그거…, 기재내용에 문제가 있어"
"애시당초 진짜 술이라면 고등학교 자판기에서 팔면 큰일이잖아"
흠흠, 여행처에서 사건을 조우한 코난처럼 턱에 손을 대고 책상 위에 놓여진 감주캔을 응시. 그 이상 노려보면 캔이 내용물이 스트레스로 변질할것 같으니까 그만두지 않을래?
"조금…, 흥미가 있네"
"어, 『감주』말야?"
"그래, 무슨 일이든 지식을 습득하는데 망설임이 있어선 안 돼. 분명 후세 사람들은 그걸 『신중』이 아니라 『우려』라고 해석할거야"
"왜 『마시고 싶어』라는 한 마디를 못하는거야, 너"
조금 볼을 붉히며 자신의 종이컵을 내미는 유키노시타. 뭐, 이 녀석의 경우네느 초가 붙을 정도로 좋은 집안의 아가씨니까, 자택에서 감주를 홀짝이는 모습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럼 반 줄게"
방글빙글 2, 3번 섞고나서 마개를 따고 내용물을 컵에 붓는다. 하얀 김에 맞추어 주위에 퍼지는 달달한 누룩의 향. 감주를 좋아하는 녀석은 이 냄새만으로도 퍽 가버리니까.
"좋은 냄새라서 차분해지네.거기다 달고 굉장히 맛있어"
"아아, 이 메이커는 잘 만드니까"
"어머, 메어커에 따라서 맛이 다르니?"
"엄청 달기만 한 곳도 있으니까, 관서랑 관동에 다른 메이커도 있을 정도야"
확실히 이건 잘 만들었다. 향과 맛도 왠지 숙성된 느낌을 받고. 뒷맛도 산뜻하다. 좀처럼 없는 일이지만 제조처 등을 자세하게 보고 싶어진다.
"앗! …, 유키노시타, 좀 위험할지도!"
"음, 왜 그러니,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고?"
홀짝~, 컵의 바닥 너머로 감주를 마시는 유키노시타의 끔뻑거리는 커다란 눈.
"이 감주…, 유통기한이 1년 이상 지났어…"
"뭣! …, 콜록! 콜록!!!"
성대하게 뿜은 감주가 컵 바닥에서 튀고, 조금 하얀 스플래터 상태로. 옷깃이나 머리카락이랑 바닥에 튀었잖아. 왠지 초절 미소녀에게 초절 분노를 듣기 전에 박스 휴지를 꺼내서 신속하게 청소 준비.
"히키가야…, 너, 뭘 마시게 하는거야!!"
"저, 저기, 히키가야랑 유키노…, 미안해, 언니가 봐버렸어////"
또르르르 귀여운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니, 어느샌가 유키노시타의 언니, 하루노 씨가 경악의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본채 굳어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얼굴은 삶은 문어처럼 새빨갛다. 입가도 묘한 미소를 지은채 뻐끔꺼리고 그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언니…, 봤다니, 언제부터 보고 있던거야?"
"유키노가 『뭘 마시게 하는거야』에서 히키가야가 휴지를 뽑는 부분일까////"
왠지 하루노 씨, 평소랑 비교해서 쭈뼛거려서 차분함이 보이지 않는다. 뒤돌아서 복도 상황을 확인하고 문을 살짝 닫아 문을 잠근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나는 바쁜데"
"그, 그렇지, 바쁘지, 라고 할까 한창인걸"
"영문 모를 소리를 하지말고, 빨리 돌아가주세요"
"자자, 조금 얘기하고나서 돌아갈게"
그렇게 말하고나서 유키노시타와 이야기를 약간 험악한 얼굴을 나에게 짓는다. 평소처럼 장난친 구석이 조금도 없는 진지한 눈빛. 이런 하루노 씨를 보는건 처음인데.
"히키가야, 너, 유키노에게 뭘 마시게 한거야!"
"에, 그게, 위험했나요?"
"당연하잖아. 여긴 학교라고? 누구에게 보이기라도 하면 어떡할거야?"
에, 학교에서 감주 마시는 행위는 규탄받을 짓이었어? 확실히 알코올이 들어있지 않다고는 해도 '술'이라고 간판에 쓰여있으니까. 역시 취학중인 처지로는 위험한가.
"히키가야는 잘못 없어. 내가 마시고 싶다고 한거야"
"그, 그럴 수가…, 설마 유키노의 입에서 『마시고 싶다』라니"
"그치만 나, 그게, 경험이 없어서…, 흥미가 있었는걸"
"흥미본위로 마시면 안 돼, 유키노. 좀 더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지!"
이젠 동생의 어깨를 잡고 부들부들 흔드는 하루노 씨. 서민인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지만, 유키노시타가는 그렇게나 감주를 금지사항에 설정하고 있는건가? 하루노 씨도 반쯤 울상으로 지금이라도 쓰러질것 같은 기세인데.
"애시당초, 어째서 학교 같은데서 마시게 된거야?"
"아, 그건 조금 착각이 일어나서 말이죠"
"확실히 착각으로 시작하는 일은 많지만, 너는 그런 타입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는데"
"아니, 깜빡하고"
"『깜빡』이 아니잖아. 이성의 괴물은 어떡한거야!"
이젠 고개를 붕붕 흔들며 부정하고 계신데, 그렇게나 마시는게 안 된다면, '마시게 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써서 목에 달아두세요.
"뭐, 평소는 유키노시타한테 음료를 받고 있으니까, 가끔은 괜찮다고"
"헷!? 히키가야…, 너, 유키노의 그걸 마신거니!////"
"처음에는 익숙치 않아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매일 맛있게 마시고 있어요"
"그렇게나 마시고 괜찮아!? 몸 망가질텐데!?"
"네, 조금 쓰긴 하지만 괜찮은데요?"
"설마라고 생각하지만, 너 직접 마시는거니?"
"설마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요. 찻잔으로 마시는데요"
"차, 찻잔으로!?"
오들오들 손톱을 깨물며 나와 유키노시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방금전까지 새빨갰던 얼굴도 점차 창백해져가고. 홍차를 너무 마시면 무슨 악영향이라도 있나? 있으면 영국인은 좀 위험하게 될지도.
"아무튼 학교는 위험하니까, 마실거면 집에서 마셔. 알겠지 유키노!"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잇는데. 언니는 마신적 있어?"
"뭣, 히키가야의 앞에서 무슨 소리를…, 언니는 마신적 없어! 경험도 없으니까!"
"어머, 그럼 이 일에 관해서는 내가 우위구나"
얼마나 지기 싫어하는거야, 이 녀석. 고작 감주 마신적이 있냐 없냐로 "흐흥" 하며 잘난체하다니, 게다가 유통기한이 지난 과발효 감주로 말이야.
"그게 어쨌다는거야, 그런건…, 자랑도 안 되잖니?////"
"언니…, 어떤 맛인지 알고 싶지 않아?"
"좀, 무, 무슨 말을 하는거야 유키노, 알고 싶을리…, 없잖아"
이마에 초조하게 땀을 흘리지만서도 어딘가 흥미진진해하는 하루노 씨. 고양된 유키노시타에게 어깨 끝으로 제스쳐를 보내며 계속 얘기하라는듯 재촉한다.
"그렇구나…, 달았어"
"에, 거짓말!?"
"거짓말일리가, 나도 의외였는데, 굉장히 달고 좋은 냄새가 났어"
"왠지, 언니가 들은 이야기하고는 다른데에"
"게다가 관서랑 관동은 맛도 다른 모양이야"
"에에에엑! 그건 지역차도 있어!?"
"아마도. 내 상상으로는 관동이 더 짙을거야"
뭔가 중대한 비밀회의처럼 얼굴을 모아 비밀 이야기. 좁아서 조용한 부실이니까 얘기하는 내용도 여기까지 다 들리는데. 뭐, 감주의 맛 의제니까 상관없지만.
"게다가, 조금 오돌토돌한게 들어있어"
"에, 오돌토돌하다니, 엣!?"
"그게 조금 강조가 되어서 맛있어"
"아, 그거 내가 제대로 안 흔들어서 그런거야, 미안"
"엣, 달다니!? 엣, 흔들어!? 엣, 그래서 오돌토돌하다니!?////"
이젠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쭈뼛거리며 차분해하지 않는다. 이런 하루노 씨도 보고 있으면 질리지 않지만, 고작 감주 정도로 이정도로 귀여운 반응을 하다니, 나는 지금까지 이 사람을 오해하고 있던걸지도. 속이 시커멓거나 강화외골격을 두르고 있다고 해서 잘못했어요.
"후후…, 어때 언니. 조금은 공부가 됐어?"
× × ×
며칠후, LHR이 끝날때 교실 담임에게서 건강진단의 재검사 지시. 몰래 건내받은 진단표의 여백에는 교내 의사의 특기사항으로.
『본 학생에겐 체액중에 과도의 설탕이 포함되어 있다는 밀고가 있음!!!』
…, 왜?
(끝나지, …조금 어른의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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