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돌봐준다 - Extra - 1 -
 
 
 
 
 
 
겨울의 아쉬움을 남긴 오늘 이무렵.
 
아직 코트를 놓을 수 없는 추위로 둘러싸인 현관앞에서 나는 신문을 들고 방으로 돌아온다.
 
신문을 펼치니 어려워보이는 정치 얘기나 상처에 고민하는 스포츠 선수로 페이지가 점거하고 있었다.
 
 
"……흠. 글자가 많아서 읽을 수 없고. 코보짱이나 보자"
 
 
시계 바늘은 9시를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자기 침대에서 일어날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정말이지.
취업활동이 끝나자마자 풀어지다니.
 
나는 그 녀석이 잠들어 있는 방의 문을 세게 쳐서 연다.
 
 
"우랴-! 일어나! 태양님이 기막혀하겠다!!"
 
"……으음"
 
 
일어나지 않아…….
 
피곤한걸까….
 
아니, 안돼안돼.
 
너무 무르게 대하면 이 녀석은 기어 오르니까!
 
 
나는 침대 옆까지 다가가서 그가 묻혀있는 이불에 손을 댄다.
 
손을 대지만…….
 
 
"행복해보여……. 조, 조금 더 재워둘까"
 
 
조금 긴 속눈썹과 침이 흐른 입이 정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추운지 자신의 팔을 힘껏 몸에 붙인 그 모습은 어딘가 어린 아이를 방불케해서 귀엽다.
 
 
"헤헤, 입다물고 있으면 귀엽구"
 
 
바보털이 뿅 뻗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니 히키오는 울적하다는 듯이 내 손을 후려쳤다.
 
 
"……으"
 
 
지지 않겠다며 다시 만진다.
 
하지만 또 쳐진다.
 
뭐야 이 녀석.
 
고양이야?
 
 
문득 왼손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반짝 빛났다.
 
 
"……. 결혼…이라. 히키가야 유미코…, 미우라 하치만……. 풋, 미우라 하치만이라면 숫자 투성이잖아"
 
"……너, 무슨 소리 하는거야?"
 
"호으!? 이, 일어났었어!?"
 
"지금 일어났어. 왠지 시끄러웠으니까"
 
 
슥슥 눈을 비비면서 히키오는 졸린 모습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으-.
 
자고 있을때 키스하려고 생각했는데.
 
 
"…안녕, 미우라. ……왜 불만스런 얼굴이야?"
 
"안녕! 히키오가 키스해주지 않으니까 불만이라구!"
 
"일어나자마자 난제를 들이대지마. 벌써 9시 반인가, 너 밥 먹었어?"
 
 
뻗친 머리카락을 살리면서 히키오는 부엌으로 향한다.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은 매일 잠버릇탓에 사방팔방으로 퍼진다.
 
 
"안 먹었구. 하지만 만들었으니까 같이 먹을래?"
 
"음. 고마워"
 
 
나는 샐러드나 밥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한다.
그 사이에 히키오는 정위치에 앉아 신문을 들고 그걸 읽기 위해 안경을 꼈다.
 
 
"오늘 코보짱은 최고였구"
 
"……결말의 의미를 모르겠어"
 
 

 
 
.

……
………
…………
 
 
 
히키오는 달걀부침에 간장을 뿌리면서 재주좋게 노른자 부분만 남기고 먹어간다.
 
좋아하는건 나중에 먹는다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배불러서 못 먹는 것이다.
 
처음부터 먹으면 될텐데.
 
 
"노른자 받아감!"
 
"아! 내 노른자가! 야, 달걀부침의 묘미를 가볍게……"
 
"어차피 안 먹을거잖아"
 
"너 말야……. 노른자인데"
 
"그렇지. 나아 오후부터 외출할거야. 히키오는 어떡할건데?"
 
"……. 아? 어디 가? 쇼핑?"
 
 
히키오는 찔끔찔끔 밥을 입에 넣고 빈 컵에 보라치를 부었다.
 
마시고 싶은 몫만 붓는 파인지라 컵은 반도 채워지지 않았다.
 
 
"미용실 갔다 올거야"
 
"흐응-. 자를거야?"
 
"조금만. 그리고 흑발로 염색"
 
"……. 물들일거야?"
 
"뭐 그렇지. 내년에는 사회인이고. 슬슬 위반도 힘들다 싶어서"
 
"너, 의복계열이니까 금발이라도 괜찮다고 붙었을때 기뻐했잖아"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보는 히키오는 역시 날카로워서 아무래도 모두 꿰뚫어본 모양이다.
 
 
"……우리 부모님이라면 신경쓰지마. 머리색을 신경쓰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 인사때 정도는 제대로된 사람으로 보이고 싶구"
 
 
히키오는 컵을 기울이고 역시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부모님 입장에선 나같은 바보 아들을 돌봐주는것만을오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뻐할 수준이다"
 
"뭐 그래. 너한텐 나아밖에 없구. 하지만 말야, 역시 사회인으로서랄까, 히키오의 체재라고 할까……. 역시 여러가지로 생각해야해서"
 
 
조금이지만, 나도 히키오를 위해서 할 수 있는걸 하자.
 
응석부리기만 하는건 이젠 사양이고.
 
그게 나의 약지에 끼워진 맹세의 결정이니까.
 
 
"……바보녀석"
 
 
작고 따뜻한 목소리가 내 마음을 간지른다.
동시에 어딘가 수줍은듯이 뺨을 빨갛게 붉히는 히키오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나를 생각해주는거라면 그 머리색은 바꾸지 말아줘. ……그게, 말야. 뭐, 어울리니까. 나도, ……그대로인 미우라를 좋아해"
 
 
……그대로인 나를, 좋아해….
 
말은 귀보다도 먼저 마음에 닿는거구나.
 
히키오가 가끔 보여주는 그 미소는 나에게 있어서 심장 고동을 5 옥타브 정도는 뛰게 할 정도로 위험한 미소.
 
너무 나를 두근거리게 만드니까 나는 어찌하지도 못할 정도로 좋아하게 되어버린다.
 
정말, 완급의 차이가 너무 있다고.
 
 
"그, 그런가……. 나아도 히키오를 정말 좋아하구. 네,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바꾸지 않아도 될까나"
 
 
얼굴이 뜨겁다……읏.
 
……지, 진짜-!
 
너무 좋아한다구!
 
어떻게 되어버릴것 같아…….
 
 
"음. ……잘 먹었습니다. 뒷정리는 내가 할게"
 
 
히키오는 다 먹은 자신의 식기랑 내 식기를 한번에 부엌으로 옮긴다.
 
왠지 모르게 나는 그 뒤를 저벅저벅 따라갔다.
 
 
"……? 왜 그래?"
 
"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 아, 아무것도 아니진 않구!?"
 
"응? ……그릇이라면 씻어둘테니까 쉬고 있어"
 
"그, 그게 아니라! ……, 그게……, 조금 키스해줘…"
 
"……하?"
 
"쮸해줘?"
 
"……읏. 가, 갑자기 왜 그래? 키스라면 얼마전에 했잖아?"
 
 
히키오는 수줍어하면서 설거지통으로 눈을 떨군다.
 
키스보다도 부끄러운건 많이 말하는 주제에, 아직 키스할때는 눈을 피하려고 한다니까.
 
 
 
……하지만, 그런 히키오를 좋아하게 됐어.
 
 
 
꼬옥, 히키오의 등을 껴안으니 움찔 놀란 몸이 귀엽게 굳었다.
 
 
"……응"
 
"읏…하, 한번만이다"
 
"알았어. ……응"
 
"……음"
 
 
살짝 달라붙은 입술이 바로 떨어진다.
 
너무 짧은 입맞춤에 조금 아쉬움을 남기면서 나는 떨어진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관능적인 키스를 원했던건 아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히키오의 옆에 다가가고 싶었던것 뿐.
 
 
"……헤헤. 한번 더 해줄래?"
 
"한번만이라고 했잖아…"
 
"나아, 횟수라는 개념에 속박받지 않거든"
 
"그러냐. 유감이지만 나는 느끼니까 안 돼"
 
"그럼 나아가 해ㅏ는건 돼?"
 
"~~읏! ……나, 나중에"
 
"지금! 응---!"
 
"음--!? ……푸하아, 뭐, 뭐야……"
 
"행복해?"
 
"하?"
 
 
행복이란 애매하고 불확실한것에 휘둘리는건 어렸을 무렵까지로 충분하다.
 
지금은 행복을 느낄 수가 있다.
 
느끼는것만이 아니다. 이렇게 만지고 형태를 확인하는것도 가능하다.
 
 
"나아는 초 행복하구! 헤헤, 그러니까 나누는거야"
 
"……그런 아크로바틱한 행복 나누기는 처음이야"
 
"반대로 처음이 아니었다면 쳐날렸을거거든!?"
 
"횡포도 극단적이면 시원스럽구만"
 
 
뺨을 붉힌채로 그릇을 다 씻은 히키오는 손을 수건으로 닦고 거실로 돌아간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뭔가를 생각하듯이 잠시 달력을 쳐다봤다.
 
 
"……나도 오후부터 조금 나갔다올게"
 
"응? 도서관?"
 
"……그런참"
 
"응? ……아! 벌써 예약한 시간이구. 이제 나아는 간다!?"
 
"어. 조심해"
 
 
어딘가 하늘을 헤엄치듯이 눈을 돌린 히키오의 시선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바쁘게 집을 나온다.
 
 
 
이 사소한 위화감이 앞으로 일으킬 트러블의 근간이 될거라고는……
 
 
 
 
지금의 나에겐 알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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