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삭빠른 후배 제 3화"귀가길"
 
 






이로하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는 길, 히라츠카 선생님의 술기운의 압력에 밀려 집까지 바래다지는걸 약속당했다. 젠장, 이로하와 데이트 귀갓길에 주정뱅이 아라사를 데리고 돌아가면 웃음거리가 되잖아.

"그보다, 역시 마셨잖아요"

벤치형 좌석은 거의 만석이었기 때문에 히라츠카 선생님과 거리가 되게 가깝다. 하지만 어른 여성 특유의 분위기를 만끽하기 이전에 술냄새로 토할것 같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히키가야. 언제부터 안 마셨다고 착각했냐?
"마시기 전에 차였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마신거잖느냐……훌쩍"
"애도합니다"
"거기는 내가 받아줄게요라던가아……히끅"
"제가 체념하게 만들어드릴까요?
"용서 없구만!?"

시선이 교차하지 않는 대화라는건 자신의 템포를 유지할 수 있어서 좋다. 상대의 감정을 감지할 필요도 없고, 자신의 감정이 들키지 않고 끝난다. 뭣하면 법률로 대화는 같은 방향을 보면서 해야하도록 지정해야하는게 아닐가. 아, 하지만 동생이랑 대화는 별개로.
잠시 히라츠카 선생님이 어떻게 결혼할 수 있을까 하는 성과없는 대화를 하게 됐다. 성과 없는 대화였으니까 둥실둥실 메구링 파워 전개인데, 이 아라사는…….
라며 메구리 선배로부터 학생회, 학생회로부터 발렌타인 데이로 사고가 연쇄된다.

"그러고보니 그 때"
"응?

선생님을 신경 쓰인다고 그 녀석 말했지. 무슨 말을 기대하는지 "응?" 이 바로 날아들었다. ……이 사람 상당히 말기로군"

"그 발렌타인 데이 며칠 전에 제가 챠리티를 몰랐으면 화냈을거 아니에요?
"화따위 안 내"

즉답이었다.
그 의미는 아마 '진의를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까 건들지마' 일것이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그 때 혀를 찬게 신경쓰였다.
끈질기게 물어보니 히라츠카 선생님은 "하아…" 라며 작게 한숨을 쉬고,

"저기말이다, 히키가야. 소녀의 마음을 억지로 흔드는건 최악이다"
"엑?"

소녀의 마음?
누구의, 무엇의, 뭐에 대해서?

"그 때는 말이다……음, 그렇군. 간단하게 말하자면 분했던거다"
"분해요?
"아아, 교사라는 존재가 무척이나 무력하고 도움 안 된다는걸 재인식해서 말이지"
"그건 교사가 아니라 히라"죽인다?"

도쿄 갈래? 같은 분위기로 SALHEA선언을 하는 히라츠카 선생님. 허벅다리를 꼬집지 말아주세요, 아파요.

"결국은 고등학교 교사라는건 책에 쓰여있는걸 분해해서 알기 쉽게 조립하는게 기껏이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만들어낼 수 없고, 자신이 갖고 있던걸 보여줄 수도 없어

애매한 표현이라서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알것 같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선생님은 자신의 방식을 학생에게 전한다. 생각방식이나 윤리, 남을 대하는 태도, 책의 지식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히라츠카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이끄는듯한…….
고등학교 교사는 다르다. 자신의 의사를 억누르고 그저 오로지 '수험에 필요한 지식'을 가르친다. 거기에 감정은 존재하지 않고, 지도는 개입하지 않는다. 기계처럼 정보를 전달할 뿐이다.

"하아, 이런게 아니었는데에-"

취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말로 고심하고 있는걸까, 히라츠카 선생님은 머리를 감싸고 끙얼거리고 있다. 옆에 앉아 있는 회사원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교사가 밖에서 민폐끼쳐서 어쩌잔거야.

"야, 히키가야. 어째서 세상은 이렇게나……"

그녀는 말을 하려다 그만뒀다.
교사로서의 향수인지 아니면 연상으로서 자존심인지.
히라츠카 시즈카라는 인간성을 고려하면 자연스레 대답은 보이니까 말을 흐린다한들 소용없지만. ……문제는 이 화제를 발전시키는지 종식시키는지 스위치를 내가 쥐고 있는 것이었다.

『세상은 이렇게나 어려운걸까』

혹은 "세상은 이렇게나 사람에게 다정하지 않은걸까", 인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응답할 수 있는 인간도 없다.
세상이 간단했던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히라츠카 선생님은……"

남은건 어떻게 타협을 짓는가.
어려운 일에서 눈을 피해, 혹은 눈을 감고, 귀를 덮어서 입을 이어 작은 상자에 집어넣는다.
거기에 마음에 드는것만 넣어두면 다정한 세계의 완성이다.
누구도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자유롭고 즐거운 방해가 없는 세상.

"히라츠카 선생님은……대단해요"

말로 하고 갑자기 몸이 열을 띠었다.
엥, 지금 뭐야? 엄청 근질거리지 않나?

"……히키가야… 너……"

우와, 그만해. 그렇게 반짝반짝 성적인 눈으로 나를 쳐다보지마!
악령퇴산 악령퇴산 도만세만! ……아니, 이건 담당이 다르잖아.

"조금만, 고민을 들려드려도 될까요?"
"아니, 그런것보다도 뭐가 대단한건지 가르쳐줘"

핏발친 눈으로 내 어깨를 움켜쥐는 여자가 한 명. ……어라, 이거 사안 아냐?
하마터면 "이 사람 치한이에요"라고 지를뻔했지만 타이밍 좋게 역에 도착해서 나는 도망치듯이 전차에서 내렸다. ……물론 요괴 늦깍지 노처녀는 음침한 미소를 지으며 뒤를 따라온다만. 후에에 무셔워어어어.






□□□





"과연"

집까지 몇분 거리, 걸으면서 고민을 털어놓고 있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은 팔짱을 끼고 끙얼거렸다.

"상이나 기록을 원하는게 아니에요. 그저, 그……뭐라고 할까"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해봐라"
"……달성감이라고 할까, 장래 고등학교 생활을 뒤돌아보고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을만한 추억을……원해요

엄청 부끄럽다.
마치 진지하게 십대 신문고에서 말할법한 소리를 잘도 자신이 말한다고는 상상조차 한 적이 없었으므로, 등 뒤에서 뿜어나오는 땀에 감기를 걸릴뻔했다.

"누군가……라"
"……그렇다구요, 잇시키에요"

체념하듯 끄덕인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뭘 넋이 나간거야"라고 내 머리를 움켜쥐고 머리카락을 벅벅 긁었다.

"그런가-, 그 히키가야가 그런가-"

응응 하며 끄덕이는 히라츠카 선생님을 보고 있으니 왠지 부끄러워진다.
친척 아저씨한테 "남자가 됐구나아" 라고 칭찬받는 듯한, 근지러움이 마음을 간지른다.

"저 나름대로 여러모로 시험해봤어요. 스포츠나 장기, 노래, 인터넷……하지만 전부다 탁 오지 않아서요"
"너는 인간관찰이 취미라는 녀석이니까"
"……할 말도 없네요"

농담이야, 그렇게 말하고 웃는 히라츠카 선생님의 눈동자는 어딘가 상냥함을 내포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히키가야 가를 앞두고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 뭐냐. 나도 후회만 해온 측의 인간이니까 잘난 소리는 못한다. 그래도, ……그렇군. 교사로사가 아니라 '히라츠카 시즈카'로서 어드바이스를 하자면……"




"너는 이 반년간 추억을, 장래에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느냐?"





이 반년간을……?

"저기, 그건――"

진의를 들으려고 말을 걸지만 히라츠카 선생님은 이미 멀리 걷고 있어서,

그 거리가 왠지 인생의 걸은 차이처럼 느낌이 들어서 나는 쫓아가지도 못한채 망연히 서 있었다.


이 반년간 추억을……없었던 일로.

그날, 이로하로부터 "즐거웠지요" 라는 메세지를 무시한 나는 다음날 심하게 혼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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