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Turn Kill

2015. 9. 17. 20:29

One Turn Kill
 
 
방과후.
어두컴컴하게 옅은 빛에 둘러싸인 유도길.
평소대로 부활동을 마치고 귀로에 이른다.
그럴터이지만 오늘은 조금 돌아가는 길.
석양지는 시간대여서 유키노시타를 바래다주기로 한다.
당연히 말이 없는 우리 두 사람.
말하지도 않고.
침묵이야말로 우리들의 대화.
그런 부끄러운 생각을 홀로 한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소암의 요염함을 두르면서 희미하게 웃는다.
 
"얘, 히키가야"
 
"왜?"
 
"달이 아름답네"
 
"에…………"
 
책을 읽는다면 누구나 알고 있는 그 말.
확실히 달은 아름답다.
그보다도 심술궂게 웃는, 그 수려한 옆 얼굴에 눈이 가버린다.
그 시선에 대답하듯 내 눈동자를 곧게 쳐다보는 그녀.
 
"어머? 뭘 착각한거니?"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기울이는 유키노시타.
착각.
그래, 단순한 착각.
그 말을 하는 시점에서 네가 뭘 생각하고 있는건지도 알아버리지만.
이것마저도 착각이다.
그러길 바란다.
마랗지 않는것이 미덕.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 그녀에게, 자신에게 들려준다.
 
"…………아무것도 아냐"
 
걸려든어버린, 당해버렸다는 식으로 꾸미는 나.
왜 얼굴을 등지고 있는걸까.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다.
그조차도 단순한 허위.
등질 이유따위 뻔하다.
떨리는 음색도 부끄러움을 느낀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그래, 약간의 수줍음을 감추지 못했다.
 
"후훗, 그래"
 
 
 
 
 
 
 
 
 
 
"얘, 히키가야"
 
아까전의 얘기를 없었던것처럼 말을 걸어오는 유키노시타.
그 말은 완전히 같아서 뭔가 묘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평정을 꾸리는 그녀에게 나도 평정을 꾸려서 대답한다.
사소한 짖궂은 대화.
아까전에 그걸 상당히 참고 있다는 증거다.
 
"뭔데"
 
"다음에 너희 집에 인사하러 가도 되겠니"
 
"하…………?"
 
인사?
왜?
인사하는 의미를 모르게 되는 나.
그런 와중에도 그녀는 말을 잇는다.
 
"제대로 과자 상자도 지참해서 갈게"
 
그 표정은 진지 그 자체.
마치 결혼전인것처럼.
암시가 너무 직접적이네.
이건 내 착각뿐인걸까.
라는고로 바로 부정을 하는 나.
이 이상은 곤란한 느낌이 들었다.
 
"어, 어어……아니 잠깐만. 언제부터 그런 관계인거냐?"
 
"그러네, 전부터 신경은 쓰였어. 라기보다 만났을때는 이미 마음을 움켜쥐어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야"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
수줍음이 일절 보이지 않는게 시원스럽다.
그에 비해 내 마음은 흔들릴대로 흔들린다.
라기보다 대답은커녕 여러가지 일에 궁해진다.
저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나와버릴 정도로.
 
"……………………어떻게 반응하면 좋은거냐, 이거"
 
"너도 알고 있던 일이잖니?"
 
당연하다는듯이 들으면 마치 자신이 실수하고 있는것처럼 느낀다.
인사.
과자 지참.
떠오르는건 그저 그 일뿐이라.
말도 안 된다.
글도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이젠 기다리다 지쳤어"
 
몰랐습니다.
그 한 마디면 족하다.
 
"아니, 처음 듣는다만…………뭐어, 알았어"
 
흘린 불만도, 대단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정말로 의미 없는 대답이다.
결과로서 자신이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실에 수치를 느낄 뿐이다.
 
"고마워. 기뻐"
 
숨김없는 감사말에 얼굴이 경직된다.
일단 보여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언가를 떠올리듯이, 먼곳을 쳐다보는 그녀.
그 앞에는 내 모습도 비치고 있는걸까.
우와아, 나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런 사고회로에 꺼림찍함을 느껴버린다.
역시 나는 갈팡질팡하게 대답하는수밖에 없었다.
 
"어, 어어"
 
"카마쿠라, 뭘 좋아하는걸까"
 
"…………………………"
 
그쪽이냐.
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올리도 없이.
아연해할 틈도 없이 자신의 착각에 몸부림을 친다.
 
"후훗"
 
그렇게 말하고 즐거운듯이 웃는 유키노시타.
고양이라면 어쩔 수 없다.
집 청소를 해야겠네.
 
 
 
 
 
 
 
 
 
 
"얘, 히키가야"
 
"뭔데"
 
지금 상황에 의문을 감추지 않는 내 대답.
자꾸 걸어오는 같은 말에 언짢음을 느낀다.
꽤나 알기 쉽게 말했다고 생각하는 나.
그보다 유키노시타라면 속공으로 알텐데 이걸 무시당하면 진짜 의도가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뭐, 두 번째도 상당히 그런 늬앙스를 포함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리고 역시라고 해야할까,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얘기를 계속한다.
 
"여동생을 갖고 싶어"
 
곧게 내 눈동자를 쳐다보는 유키노시타.
그런 소리를 들어도, 라며 생각한다.
그리고 대답 선택지를 휙휙 들어올려가지만 어느것도 부적절.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아니, 답은 알고 있지만.
그래, 진의는 깨닫지 못한 척을 하고.
 
"…………나한테 말하지마. 부모님한테 말해라"
 
"싫어. 너무나도 나이가 벌어지잖아"
 
그 말이 나타내는 의미는 알면서 쓰고 있는거겠지.
선택지는 단번에 좁혀진다.
그리고 내 안에 묘한 초조감이 생겨난다.
따라서 이 자리에서 내 대답을 끌어내는데는 충분한 상황이었다.
 
"코마치는 안 줄거다"
 
"누구도 코마치라고 말 안했는데"
 
"………………………"
 
반사적으로 말해버린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보다 당연하다는듯이 부정당한데 대해서는 건드리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유키노시타는 태연하게 후벼파온다.
 
"혹시 히키가야, 나랑"
 
"그 이상은 말하지 말아줘…………"
 
"그러…………네"
 
자기가 말할뻔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건지 고개숙이는 유키노시타.
그럼 말하지마.
어쩔거야, 이 분위기.
 
 
 
 
 
 
 
 
 
 
"얘, 히키가야"
 
"…………뭔데"
 
슬슬 질리기 시작한 이 구도.
그래도 제대로 된 의도가 있을거라며 그녀의 자세는 무너지지 않는다.
의미를 물으려고 해도 물을 수 없는 나는 그 진지한 눈동자에 대해 건성 대답을 해버린다.
그녀는 약간 뚱해졌지만 그래도 얘기를 계속하려고 한다.
 
"너, 18살이 됐지"
 
"뭐, 그렇다만"
 
뭐, 단순한 사실확인이고.
무난하게 대답한 답변에는 크게 감정은 넣을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확인을 구하기 시작한다.
 
"그럼 결혼 할 수 있는 나이가 된거구나"
 
결혼.
결혼이라.
18살에 결혼한다는것도 여러모로 현실미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우왓 이거 나와 아무 관계도 없네.
 
"…………뭐어. 그렇다만. 그게 왜?"
 
"나도 17살이니까 괜찮아"
 
"엑?"
 
뭐라고?
라고 계속하지 않았던 나를 칭찬했으면 싶다.
바로 유키노시타는 같은 짓을 되풀이하려고 했던것 같고.
묫구멍을 파지 않기 위해 침묵을 관철한다.
그런 나를 보고 뭘 생각하는건지 한숨을 쉬는 유키노시타.
그럴리가 없잖니.
라고 암묵적으로 들은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누가 먼저 하게 될지……너도 힘내렴"
 
"…………어"
 
대단히 미묘한 라인을 지나는 유키노시타의 말.
아아, 평소의 승부 얘깁니까, 그렇습니까.
힘내렴, 이라는 한 마디에 안심을 한다.
뭐, 내가 그녀하고는 관계없다는것만큼은 증명됐나.
훗, 경계해서 다행이다.
과연 나.
라고 생각하고 있어도 화제 자체가 상당히 위태롭다는걸 깨닫는다.
 
"후훗………"
 
그녀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 가슴속을 보여주듯이.
 
 
 
 
 
 
 
 
 
 
"……얘, 히키가야"
 
"…………뭔데"
 
"아이는 귀엽지"
 
눈 앞을 지나가는 아이들을 쳐다보면서 말한 그녀.
응, 이번에는 꽤나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내 대화도 긴장이 풀린, 이른바 평범해진다.
얼마나 나 경계하고 잇던거야, 라고 생각한건 여기만의 얘기.
 
"아니, 저 녀석들 진짜로 옹고집이라고"
 
"그건 아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잖니……"
 
"더는 육아 같은건 죽고 싶어질 수준이란 말이지이"
 
감개깊게 중얼거리는 나.
이건 본심이다.
진짜 전업주부로서 장래를 내다보는 나에게는 간단하게 떠오르는 일이다.
조금 상상한것만으로도 자신의 눈이 썩어간다는걸 안다.
그런 나를 보고 뭘 생각한건지 유키노시타는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하지만, 분명 나의 아이는 얌전할것 같아. 너처럼"
 
"하?"
 
나?
그리고 네 아이?
왜 내가 나오는거야?
라고 물을 수 있을리가 없다.
또 아까전의 여동생 가쉽거리 같은 느낌이겠지.
너 관계없거든, 같은거.
그래도 힐끔거리는 무구한 생각.
이젠 그냥 고개를 가로로 젓는것만으로 한계라고요.
 
"아니아니아니………"
 
"후훗"
 
그런 나를 보고 그저 미소를 흘리는 유키노시타.
즐거워보이는구만 이 녀석, 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여러가지로 위험했다.
 
 
 
 
 
 
 
 
 
 
"얘, 히키가야"
 
"…………예이예이"
 
뭡니까, 아가씨?
나를 갖고 노는것도 적당히 해주세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서 그녀의 놀이에 어울려주는 감각인 나.
하지만 나의 가벼운 마음은 분위기에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키노시타는 그저 하늘 위에 떠있는 달을 보면서 말했다.
 
"………………달이 아름답네"
 
툭 흘려진 그 말.
의미에 관해서는 말할것 까지도 업삳.
어제 오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네요.
같은 수를 끌어서 기쁜겁니까, 당신은?
절대로 기쁘겠지.
우왓, 왠지 대답에도 신경을 쓰고 있네.
 
"또냐. 더는 그 수에는 안 걸린다고?"
 
"그러니………걸려주면 기쁠텐데"
 
그렇게 말하며 슬프다는 얼굴을 하는 그녀.
그렇게나 나의 추태를 볼 수 없어서 유감이야?
라고할까 내 평가가 얼마나 낮은거야, 초등학생이라도 안 걸린다.
어깨를 떨군 그녀에게 나는 그저 기막혀한다.
 
"속으라고 하는건 너무나도 알기 쉽잖아"
 
경계심 맥스인 나에게 너무 안이한 낚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만큼 바보는 아닙니다.
그렇게 비웃는 나.
 
"알기 쉽구나……하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야"
 
그런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올곧았다.
 
"하아……?"
 
아니 진짜로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네 그거.
무슨 의미인데?
그걸 묻듯이 유키노시타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녀는 우습다는듯이 웃고 있었다.
 
"후훗………뭐일까, 나"
 
그렇게 말하며 공허하게 달을 쳐다보는 유키노시타.
 
"멀리 돌아가는것도, 가끔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버려……"
 
그 음색은 자기완결한 만족감이 느껴진다.
그래, 나랑 관계없는 곳에서 무언가가 끝났다.
역시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것도 당연한가.
진의라고 하는것은 언제나 집어낼 수 없는 것이며.
알아내려고 해도, 우선 자신을 모른다.
그렇기에 상대의 사정만이라도 알아두고 싶다.
그래도 말이라는것은 섬세해서.
언제나 오해를 낳아버린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다.
유키노시타의 의도로 모른채 나는 그저 그녀의 단정한 얼굴을 본다.
달밤에 비추어진 옆얼굴은 희미하게 붉게 물든것처럼 보였다.
이건 기분탓은 아니다.
그래, 단순한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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