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돌봐준다.
3년이 지나 만난것은 어딘가 남을 꿰뚫어보듯 건방지고 어두침침한 아싸남.
하지만, 이 녀석의 따뜻함에 기분 좋은것도 느끼는 나아씨.
조금은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이야기.
나는 너를 돌봐준다. - 이야기
우연이나 기적, 나는 그런 종류의 말을 싫어한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옛 여친과 만나서 관계를 되찾았다.
기적적으로, 새로 들어온 알바가 핸섬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까지 우연을 기다려야하는건가.
아니면 기적이 일어나도록 손을 맞잡아두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런건 싫다.
좋아하게 되면 반드시 자기것으로 만들고 싶고, 사랑을 하고 싶다면 미팅에 간다.
만남을 우연에 맡기는건 태만이다.
…….
고등학교 졸업식, 그에게 고백했던 장면을 떠올린다.
마치 반응을 느낄 수 없었던 어필도, 지금은 좋은 추억……, 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와인을 마시면서 푸념삼을 안주거리는 된다.
어째서 고백했더라…….
절대로 돌아보게 만든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았으니까.
표면상으로 두른 다정함에 짜증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는……, 하야마 하야토는 나를 생각해준 적이 있을까.
진솔하게 고백을 받아들일 각오가 있었던걸까.
그 때, 내 고백을 받은 그는 평소와 다를바 없는 곤란할때 짓는 미소를 나에게 지었다.
미안해. 마음은 기쁘지만
유미코하고는 친구로 있고 싶어.
흐르듯이 나온 말이 그의 허상을 비추고 있는것 같아서.
그저 미리 준비해뒀던 문장을 읽고 있는 듯한 거절에, 내 마음은 최악으로 기분 나쁘게 되버렸다.
어째서 고백을 해버린걸까.
다시 생각해봐도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걸린다.
졸업식 분위기에 취했나?
아니면 주위 고백 분위기에 물들었나?
"……"
대학교에 입학한지 3년째가 되려고 하는 봄에, 나는 혼자서 기억을 떠올린다.
미팅에서 돌아갔을때 단골 바에서 BGM에 흐르는 서양 음악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 칫, 생각 안나구"
"응? 왜 그래?"
나의 혀차는 소리를 들은 여성 바텐더는 불안하다는 얼굴로 나를 본다.
"잠깐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했어. 별로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헤에. 유미코는 고등학교 무렵엔 어떤 느낌이었어?"
"아-? 음-, 별로 지금이랑 차이없어. 지금의 나아한테서 술이랑 담배를 없앤 느낌?"
"아하하-. 남친은 있었어?"
"그게 말야-, 나아는 외곬이니까 3년간 같은 상대를 좋아했어-. ……뭐어, 그게, ……응?"
눈치챈듯이 여성 바텐더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담배를 입에 물면서 추억을 되살린다.
떠오르는건 하야토의 쓴웃음과…….
'나 말야, 차여버렸어.
그치만, 진심으로 마주봐줘서
기뻤어.
진심으로 ――를 좋아하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는걸'
……, 유이의 우는 얼굴.
"아, 유미코 담배 피우고 있네. 그럼 미팅은 불발이었어?"
바텐더가 와인 쿨러를 내 앞에 두면서 말을 걸러온다.
이 아이는 배려심이 좋은데다 얘기를 잘 들어준다.
"저런 나르시스트 타입은 왠지 기분 나빠서"
"미팅에 가는 남자는 나르시스트가 많은것 같은데"
"그래! 그거야! 그치만 만남이 없으면 시작되질 않구!"
"만남이라아……"
만남은 갑작스레.
그런건 당연하다.
그렇기에, 만남에 운명을 바라는 녀석에 한해서 드라마나 영화의 만들어진 이야기에 이상을 품는다.
그런건 픽션인데…….
나는 와인 쿨러를 마시고 계산을 마쳤다.
혼자 자취하고 있는 맨션까지는 두 역 정도 있지만 취기를 깰겸 걸어서 귀로에 이른다.
――♩
리드미컬한 음악과 동시에 LINE이 메시지를 표시했다.
『먼저 돌아간것 같은데 괜찮아?』
토크 기록이 없는 화면에 비치는 한 통의 메시지.
아까 미팅에서 ID를 교환한 남자겠지.
"하아, ……. 소름. 누구야, 이 녀석"
답신도 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가방에 집어넣는다.
식은 마음에 채찍질을 하듯, 봄 특유의 강한 바람이 주위를 불었다.
나무에 달라붙어있던 나뭇잎은 하늘을 날고, 어딘가 간판이 쓰러진것 같은 큰 소리를 울린다.
"……, 추워. 집에 가자"
봄이라고는 해도 밤은 춥다.
나는 가방에서 머플러를 꺼내어 목에 감는다.
……감으려고 했다.
"…우에!?"
강한 바람이 불어와서 머플러가 하늘에 날아간다.
몇 미터는 날아간 머플러는 가드레일의 발밑에 걸려서 멈췃다.
가로등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추는 가드레일의 일부분.
작은 인영이 스포트 라이트에 다가갔다.
점처 커지는 그림은 가드레일의 발밑에 걸린 머플러를 든다.
라이트는 그 녀석을 비추듯이.
바람이 부는게 멈춘다.
날고 있던 잎은 지면을 긴다.
얼굴을 잘 보이지 않지만 가느다란 몸을 가진 그 녀석은 조용히,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거, 나아 물건인데"
"아? 알고 있는데…"
"그럼 빨리 돌려줘"
"그럴 생각이야. …그보다 너……"
가로등이 그 녀석을 비춘다.
봄에 부는 바람은 추위를 느끼게 하지만, 오렌지색으로 빛나는 라이트는 어딘가 따뜻하다.
그 녀석의 얼굴을 보고 떠올린건 유이의 우는 얼굴이다.
'진심으로, ――를 좋아하게 되서 다행이야'
조용함에 붙는 친숙함.
추억을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건, 유이의 눈물이 너무나도 빛나면서도 행복해보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떠올린다.
나는 유이의 행복해보이는 눈물을 보고 부추겨진거다.
"……. 너, 히키오?"
그 때, 유이를 찬 남자.
그리고, 유이를 그렇게나 행복하게 울린 남자.
유이를 울린 남자는 누구든간에 날려버리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참함을 조금도 느끼게 하지 않는 유이의 눈물에, 나는 움켜쥐고 있던 손바닥에서 힘이 빠졌다.
어째서 차였는데 웃는 얼굴로 있을 수 있어?
어째서 좋아하게 되서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어?
어째서…….
"……역시 미우라냐. 이거, 네거지"
내밀어진 머플러를 받아든다.
고등학생이었을 무렵, 유이는 이 녀석과 자주 얘기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즐거운듯이, 이 녀석은 버거운듯이 얘기하는 광경을 몇 번이나 봤다.
방과후가 되면 부활동이라고 칭한 봉사부라는데 얼굴을 내밀고, 그 유키노시타 유키노를 포함해 셋이서 모였다.
졸업식때, 유이에게 부탁받아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이 녀석과 유이와 유키노시타.
성격도 닮지 않은 셋은, 나란히 만족스러운 웃는 얼굴로 필름에 찍혔다.
유이는 울어서 부운 눈으로 웃고, 유키노시타는 눈물을 참으면서 웃는다.
그리고 이 녀석은, 눈물을 감추듯이 손으로 눈을 덮으면서 웃었다.
"……헤에. 너, 조금 키가 컸잖아?"
"아? 변함없는데……"
"아, 그려"
"적당하게 말한거냐. 그럼 이만"
적당한건 서로 마찬가지다.
3년만에 만난 급우한테 그 태도는 뭐야?
나는 가만히 나를 두고 가려고 하는 히키오의 목덜미를 잡아당긴다.
"……우엑!? 뭐, 뭐야?"
"모르는게 있는데"
"아아, 나도 모르는일 투성이다.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해. 그럼"
"기다려!"
"우윽!! ……좀, 놔주지 않겠습니까"
움켜쥔 목덜미를 놓고, 나는 히키오의 팔을 움켜잡는다.
"내 얘기를 들어!"
"란카짱같네……"
"지금 한가하지? 잠깐 시간 내"
"이제 잘 시간인데……"
"너 때문에 술기운기 깼어. 다시 마실거니까 어울려"
"거절한다. 이제 노이타민의……"
"제대로 걸어! 트로이남은 미움산다!?"
"너, 내 목소리 듣고 있냐?"
나는 히키오의 팔을 잡아당겼다.
이 녀석에겐 듣고 싶은 일이 많이 있었고, 마침 추억에 잠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알코올이 빠진 머리에는 그날 광경이 되살아난다.
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감추는 이 녀석의 표정.
적어도, 어지간한 빈약하기 짝이 없는 남자들보다는 깨끗하게 우는 녀석이다.
………
"언제까지 퉁명해할거야"
"선천적으로 이런 얼굴인데…"
"날려버린다!?"
"어째선데!"
선술집 개인실로 안내받은 우리는 마주보면서 앉는다.
상의도 벗지 않고 앉은 히키오에게 옷걸이를 건내니,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하아. 내일 수업 일찍 있으니까 조금만이다"
"시꺼. 아침까지 마시는 코스로 했거든"
"……불꽃의 여왕은 건재한가……"
"아? 뭐라고 했어?"
"……아니"
조금 노려본것 만으로 히키오는 입을 다물고 눈을 피한다.
유이는 이런 남자의 어디에 반한걸까.
우유부단하고 나긋나긋하고,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를 행동.
어딘가 달관한것처럼 남을 내려다보는 언동.
남자로서 최악이다.
"흥. 유이도 이 녀석의 어디가 좋은건지…"
"아?"
"너, 유이나 유키노시타하고는 연락하고 있어?"
"……, 안 해"
"거짓말치고 자빠졌네! 유이한테 들었어!"
"……그럼 묻지마"
잠시후 주문한 술이 도착했다.
맥주와 진토닉(gin and tonic - 진토닉; 진에 토닉워터를 탄 칵테일의 한 가지. )이 우리들 앞에 놓여진다.
내가 맥주고 히키오가 진토닉.
"너는 여자냐고. 음, 건배"
"너는 어디서든 남을 까댈 수 있구만. …건배"
맥주잔 반 정도를 한입에 비운 나에 비해, 히키오는 입술을 적실 정도로 마시고 유릿잔을 둔다.
나는 히키오의 여자스러움에 짜증나서, 가방에서 꺼낸 담배에 불을 붙였다.
"……"
"……뭐?"
"아니, 담배 피우나 해서"
"나빠?"
"나쁘긴 뭘. ……, 유이가하마한테서 담배냄새가 난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은 너였군"
"에, 진짜? …유이한테 나쁜짓 했네. ……그보다, 너 유이하고 만나?"
"……가끔. 너야말로 어떤데? 하야마네하고는 만나고 있어?"
"……, 유이한테 안 들었어?"
불쾌한 화제를 꺼내지 말라고 마음속으로 욕을 한다.
기분이 처지는것과 동시에 나는 맥주를 다 비우고 한번 더 맥주를 주문햇다.
히키오의 유릿잔을 보니, 방금전까지 조금밖에 줄지 않았던 진토닉이 텅 비어있다.
"히키오도 생맥주로?"
"아니……, 음, 나도 생맥주로"
"생맥주 둘요. ……저기, 정말로 유이한테 안 들었어?"
"……아무것도 안 들었지만, …뭐, 눈치깠다. 안좋은걸 물었군"
"……딱히. 그저 너하고 하야토는 조금 사이 좋았잖아? 그러니까, 내가 차인것도 어디선가 들었을거라고 생각한것 뿐이야"
교실에서 토베네가 히키오의 험담을 하는걸 곧잘 들었다.
그때, 당연하게 하야토는 곤란한듯 히키오의 험담을 인정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곤란한것 처럼, 하야토는 히키오를 간접적으로 감싸는 말을 고르고 있었다.
"……하야마는, ……. 뭐, 좋든 나쁘든 주위에 다정한 녀석이니까. 너네 그룹이 부서지지 않도록 배려한거겠지"
"다정해라……. 하지만 결국 우리 관계는 부서졌구"
"고등학교에서 만들어진 관계는 그런거겠지. 그게 싫으면 네가 연락을 하면 돼"
"……"
나는 히키오의 말을 반박할 수가 없다.
부서진 관계를 고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차인것이 꼬리를 끌고 있는게 아니라, 그 때 하야토의 말이 완전히 내 안의 무언가를 부숴버렸으니까.
"너네는……. 어째서 아직 이어지고 있는거야?"
"……. 관계를 유지하는건 힘들다고 생각해"
"……무슨 소리야"
"주위에 맞춰서 웃고 울고 화낸다. 과시를 감추고 배려한다. 그렇게 관계를 필사적으로 맺어간다"
"……"
"그게 싫어서 나는 혼자 있는걸 선택했지만. ……유이가하마와 유키노시타와 관계는……, 그 뭐냐, 그렇게 싫은건 아니니까……"
히키오의 맥주잔이 비어진다.
동시에 점원을 불러서 생맥주를 주문했다.
기분탓일까, 얼굴이 붉은건 알코올 탓인지 아니면 둘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기 때문일까.
"풋, 아하하하-. 히키오치고는 정상적인 소리를 하잖아"
"……어라? 왜 나의 진지한 분위기를 비웃는거야?"
"취했어? 히키오, 엄청 말했잖아!"
"……, 말할게 아니었다"
"화내지 마. 그치만 조금은 다시 봤어. 너도 여러모로 생각하고 있구나"
"네가 지나치게 생각 안하는거겠지"
"밀쳐뜨린다!!?"
"감정의 기폭이 너무 심해……"
히키오는 새로 나온 맥주를 한입에 거의 다 마셨다.
얼굴이 빨갛긴 하지만 그리 취하지 않았다.
작은 방에서 나는 히키오의 얼굴에 손을 뻗어, 입가에 묻은 거품을 닦았다.
감촉 좋은 뺨이 움찔, 움직이는걸 느낀다.
"……뭐하는검까?"
"거품 묻었으니까"
"……실수로 반해버리잖냐"
"꼬마냐. ……자, 스마트폰 내밀어"
"아? 여기"
"음-. ……후후, LINE 친구 너무 없어. …자, 여기"
"바보 취급하지마. 이래봬도 9명은 등록하고 있으니까"
"네네. 그럼 나아를 포함해서 10명째네"
"하?"
나는 LINE으로 히키오에게 메시지를 친다.
스마트폰의 진동을 눈치챈 히키오는 LINE을 확인했다.
【나아의 LINE, 무시하면 죽여버린다】
"새로운 협박?"
"진심이거든"
"질이 나쁘다!?"
부드러운 분위기에 삼켜지듯, 나는 히키오의 놀란 얼굴을 보고 무심코 웃어버린다.
기분이 좋다.
이 녀석은 바보에다 어두침침하고 아싸지만, 나에게 진심으로 말해주니까.
얕은 정조에 몸을 감싸는 녀석들하고는 다른 안심감이, 굳게 묶인 체인을 녹이듯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줬다.
"맥주 맛있어! 그보다, 히키오는 실은 술에 세?"
"뭐, 술은 좋아하니까"
"헤에. 그럼 왜 처음에는 진토닉을 마신거야?"
"……"
"……?"
"네가 나를 취하게해서 금전탈취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패버린다"
나는 너를 돌봐준다. - 교제
유미코
【빨리 와】
한 통의 LINE을 보내고, 조금 차가운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는다.
뉴스에서 다음주부터 따뜻해진다고 했던건 저번주였다.
빌딩의 외장에 설치된 큰 기온계에는 15℃라고 표시되어 있다.
역앞을 걷는 사람들의 차림은 어딘가 얇아서 추워보인다.
봄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니면 동복에 질려버렸는지 봄의상을 입고 기다리는 모습은 보고 있는 이쪽마저 춥게 만든다.
히키가야
【너무 빨라. 5분 정도 남았어】
역 앞의 로타리에 선 시계바늘은 11: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이르다.
유미코
【지각하면 쳐팬다】
LINE 메세지에는 바로 읽었다는 표시가 떴다.
메시지 답신을 노려보듯 기다리지만, 전혀 답신의 조짐은 없다.
유미코
【읽어놓고 무시하지마!】
이건 제재를 가해야겠다고 생각할때, 나는 뒤에서 머리를 약하게 얻어맞고 돌아봤다.
"너, 너무 이르다고"
"하아? 네가 늦은것 뿐이잖아"
"집합은 12시라고 들었는데"
"나아가 왔을때가 집합시간이거든!"
"터무니없는 너 주의구만. …그래서, 무슨 일인데"
그 날, 히키오와 LINE ID를 교환한 날부터, 나는 빈번하게 히키오와 LINE을 하고 있다.
답신 내용은 어. 나, 그런가. 라며 무뚝뚝하지만 어딘가 기분 좋은 장문을 받는것 보다는 마음이 편했다.
"오랜만이잖아. 잘 지냈어?"
"일주일 전에 만났잖아"
"그러니까 오랜만이잖아"
"응, 너하고 나는 살고 있는 시간축이 어긋나있군"
"쫑알쫑알 시끄럽네. 그럼 가자"
"하? ……간다니 뭘. 조금 할 얘기가 있다는거 아니었냐?"
"응. 쇼핑하러 가고 싶다는 얘기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가자"
"……집에 갈래"
"못 보내! 자! 추위 속에 기다리게 했으니까 얼른 가!"
나는 히키오의 굽은 허리를 뻥 찬다.
혼잡에 섞여 나는 히키오의 팔을 잡아당겼다.
추위 속에 식은 손에 온기를 느낀다.
체온이 손을 타고 내 마음도 데워주는 모양이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잡아당기지마. …쇼핑은 즉 짐들기잖아?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별로 도움 안 될거다"
히키오의 팔에서 떨어진 내 손을 쳐다본다.
순식간에 식은 손에는 아무것도 쥐여있지 않는다.
새끼 손가락에 낀 핑크색 반지가 굉장히 차갑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이 반지는 고등학교 시절에 산거였지.
'유미코에게 굉장히 잘 어울려'
그 말에 기뻐서 싸지도 않은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버렸다.
하야토의 진의는 모른다.
정말로 어울린다고 생각해주고 있던건가.
아니면, 그 자리의 분위기에 따라 말을 한것 뿐인가.
"……. 저기 히키오"
"아?"
"남자가 여자를 칭찬할때는 어떤 이유야?"
"……. 생각한 적도 없는데"
"그건 음흉한 생각 없이 솔직하게 칭찬한적 밖에 없다고?"
"으. 그렇게 되는걸지도 모르겠군"
"붓! 아하하하-! 뭐야 그거!"
시답잖은 일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히키오가 너무 우스꽝스러워서 나는 무심코 웃어버린다.
히키오는 퉁명스럽게 나를 노려봤지만, 내 마음은 묘하게 후련해져있었다.
나는 새끼손가락에서 반지를 빼서 봄의 나무사이로 비치는 태양빛에 비추자 연분홍색의 반지 심이 묵직하게 빛난다.
"히키오, 어때 이거. 어울려?"
"괜찮네-"
"진지하게 대답해!"
"……간편해서 귀여운 반지 아냐? 뭐, 미우라에겐 핑크색은 안 어울리지만, 유이가하마한테는 어울릴지도"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똑바로 들으니 괜시리 짜증나지만, 확실히 핑크색은 취향이 아니고, 유이가 어울릴 것이다.
"짱나. 네가 뭘 아는데"
"……네가 물은거잖아"
"뭐, 상관없지만. 그럼 이거 이제 필요없어. 히키오한테 줄게"
"필요없어 없어"
"유이한테 주지 그래?"
"하? 네가 줘라"
둔감한 남자는 짜증난다.
히키오의 둔감함은 기막힐 정도다.
나는 히키오의 배를 치고, 억지로 반지를 건냈다.
"우윽!? ……, 너, 너 말이다"
"준다고 했잖아. 네가 유이한테 건내줘. 그 애도 그러는 편을 기뻐할거야. 분명해"
히키오는 이상하다는듯 반자와 나를 쳐다본다.
한숨을 쉬고 그걸 주머니에 넣었다.
"뭐, 건내주는것 뿐이라면 건내주지. 단, 네가 건내줘도 그 녀석은 기뻐할거라 생각하지만 말야"
"……. 흐, 흥! 그런건 알고 있다고!"
………
"그래서, 쇼핑몰에 온건 좋지만 뭘 살 생각인데?"
"다음부터 강의도 시작되니까, 봄에 입을 옷이 필요해"
"강의 개시하고 봄에 입을 옷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건지 모르겠는데"
"일단 여기 가거부터 전부 돌거야"
"……잘못 들었냐? 지금 전부라고…"
"자, 얼른 따라와!"
대충 200 점포는 있는 쇼핑몰 안에서 나는 마음에 든 옷을 시착하고는 사고, 시착하고는 사기를 반복했다.
히키오는 불평을 늘어뜨리면서도 내가 산 옷을 들고 나한테서 조금 떨어진 뒤를 걷는다.
"너, 꼴사나우니까 그렇게 걷는거 그만해. 허리 굽었잖아. 할배같게"
"……이만큼 짐을 들면 허리도 굽는다고"
"한심하네-. 하는 수 없으니까 저기 찻집에 들어가줄게"
"……고맙구만"
"자, 자리에 짐을 두고 와. 짐을 들어준 답례로 사줄테니까"
"왜 내려다보는 시선인데? ……뭐, 고맙게 받아먹겠지만"
카운터에서 주문과 접수를 마치고 가게 안에서 히키오를 찾는다.
대량의 집을 옆에 둔 테이블 석에 히키오는 고개 떨구고 앉아있었다.
정중하게 재떨이도 놓여져 있다.
"자, 커피. 나아한테 감사하면서 마셔!"
"에, 짐들어주는 답례였던거 아니야?"
"응석부리지마. 그보다, 너 껌시럽 너무 넣는거 아냐!?"
눈 앞의 아이스 커피에는 그런대로 껌시럽을 넣는다.
투명한 액체가 커피 잔속에 천천히 흔들렷다.
"아? 블랙이면 쓰잖아"
"그렇게 집어넣으면 너무 달잖아! 아아-, 정말. 자, 더는 넣지마. 당뇨병 걸리잖아"
"무르구만, 미우라. 거기다 배로 넣는다"
"물러터진건 네 커피거든. 뭐야, 너 커피 못 마셔? 그럼 바꿔올까?"
"너 바보냐. 비공을 간지르는 향과 입안에 퍼지는 쓴맛이 최고로 맛있는 커피를 싫어할리 없잖아"
"그거 먹고 쓴맛을 느낀다면 너 병원가. 집에 가면 제대로 양치질 해"
머리가 이상한 녀석이다.
그저, 그렇게 달달한 커피를 마시는 얼굴은 어딘가 어른스럽다.
솔직하다고 할까, 순수하다고 할까, 이 녀석은 폼을 잡는 짓을 하지 않는다.
보통, 여자 앞에서 이렇게나 껌시럽을 붓는 남자가 있을까.
그렇기 때문일까, 이 녀석과 있으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기분 좋다고 까지는 말하지 않지만, 섣부르게 마음쓰지 않아도 좋다.
"음, 맛있어. 좋은 콩을 쓰고 있네"
"너한테 들어도 기쁘지 않거든. 그보다, 그거 정말로 전부 마실 생각이야?"
"아? 남기면 가게에 실례잖아"
"그렇게나 껌시럽 넣는것도 실례거든"
"나한텐 이 정도의 단맛이 맞아. 가능하면 세상도 나에게 달게 대해주는걸 바라기까지 한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이리 줘봐"
"아, ……"
나는 히키오의 달짝 커피를 한입 마신다.
아니나다르다고 할까, 예상대로라고 할까, 커피는 거의 껌시럽을 마시는 수준으로 달고, 입 속에는 엿을 먹은 후 같은 단맛이 퍼졋다.
"우에. 더럽게 달잖아. 이거 몸에 엄청 나쁠거야"
"……"
"자, 돌려줄게. 반 마셨으니까 포기해"
"뭐, 뭐어, 응. 그렇군, 반 마시고 포기하마"
히키오는 내가 돌려준 커피를 망설이면서 손에 쥐었지만, 거기에 입을 대지 않고 테이블에 도로 올려둔다.
진정되지 않는듯 안절부절 한다고 생각햇더니, 나와 눈이 마주치고 아래를 쳐다봤다.
"……너. 동정이지"
"읏!? 가, 갑자기 무슨 소리를……"
"풋! 간접 키스로 그렇게까지 허둥대는 녀석은 되게 드무네!"
"아, 아!? 딱히 신경쓰지 않았거든!?"
"그럼 얼른 마시지 그래?"
"뭐, 뭐어, 그거다. 좀 껌시럽을 많이 넣은것 같으니까. 그거다, ……응?"
무심코 히쭉대고 만다.
설마 간접 키스를 부끄러워할 정도로 초심이었을 줄은 생각 못했다.
"후후. 뭐, 천천히 마셔. 이 후에 어떡할래? 쇼핑은 이제 충분하고"
"……집에 갈까"
"안 돼. 영화도 딱히 보고 싶은것도 아니고, 마시러 가기에는 조금 이르고"
"……집에 갈래?"
"얼마나 집에 가고 싶은건데! ……, 그러고보니, 너 혼자 살아?"
"아? 그렇긴한데……"
"……흐-응. 좋아, 오늘은 이제 지쳤으니까 돌아갈래"
"음? 돌갈거냐? 좋아, 돌아가자. 바로 돌아가자"
"응. 돌아가자. ……후후후"
…………
"헤에, 여기가 히키오의 집인가-. 왜 이렇게 넓어?"
"……"
"제대로 청소하고 있잖아. 좀 더 어질러졌을거라고 생각했어"
"……"
"응? 뭐야 이 상자……. 켁, MAX 커피. 더럽게 맛없는거잖아"
"……야"
"너, 이런것만 마시니까 삐쩍 마른거 아냐?"
"……왜 네가 있는건데"
"아? 왜?"
"아니아니, 왜……"
"집에 가자고 네가 말했잖아"
"응. 집에 가자고 말했는데?"
"그러니까 집에 갔잖아. 히키오의 집에"
"그게 이상해"
2DK 구조에 각방. 보기에도 신축 아파트.
혼자 살기에는 너무 넓은 방에, 이것 또한 화려한 가구가 몇 가지 있다.
나는 쇼핑 몰에서 돌아가는 길에 히키오의 뒤를 쫓았다.
인터폰을 누르자 히키오는 정중하게 문을 열어줘서, 나는 사양 않고 실례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 집이랑 가깝잖아. 너도 이쪽 대학이었구나"
"……평범하게 대화를 계속하는구만"
"2DK는 사치스럽지 않아?"
"……하아. ……둘이서 살고 있어"
"하?! 너, 동정인 주제에 동거하고 있어!?"
"한마디 쓸데없이 많네. 덧붙여도 동생이랑 둘이서 사는거다"
"뭐야. 먼저 말해. 오늘은 동생 없어?"
"나갔어. ……코마치…"
"흐-응. 아무래도 좋지만"
천장까지 뻗은 키가 큰 책장에는 대학 교과서나 문고본이 꽂혀있었다.
옆에는 장식된것 처럼 판씨 인형과 꽃무늬 티컵이 놓여있었다.
꽤 귀여운 센스다.
히키오답지 않다.
"너무 탐색은 하지 마라? 그리고 집탐색도 금지다"
"흥. 딱히 할 생각은 없구. 그보다 배고픈데"
"저녁먹을 시간이니까. 그야 배고프겠지"
"생선 먹고 싶은 기분이야"
"……응. 집에 가지?"
"너 자취해?"
"전업주부 지망 얕보지마. ……앗, 너 여기서 먹을 생각이야?"
"당연하지"
"허나 거절한다"
"하? 커피 사줬잖아"
"너, 커피 한 잔으로 얼마나 은혜 팔아먹을거야? 겨울에도 땀 흘릴 정도 팔고있다?"
"알았어 알았어. 어울리게 해준 정도라면 내가 만들구"
"그런 의미가 아냐!"
나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켯다.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맞춰 히키오의 목소리도 톤이 내려간다.
히키오는 불만스럽게 냉장고를 뒤졌다.
부엌을 쳐다보니 도마나 식칼이 부엌에 놓이고, 그 외에는 생선이 누워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생선을 처리해가는 모습은 조금 믿음직스러워서 안심마저도 느낀다.
"나아가 등장할 일은 없어보이네. 커피 사준 몫은 제대로 일해"
"너는 커피 한 잔에 좀 더 감사해!"
나는 너를 돌봐준다. - 달걀부침
캠퍼스 메인 스트리트에는 노소불문하고 서클 권유에 열심인 학생들이 웅성인다.
기대인지 불안인지, 여러 감정이 뒤섞인 신입생들이 서클 권유 광고지를 몇개나 받으면서 어깨를 움츠리며 우리들 앞을 가로질렀다.
"음. 이거 우리 서클. 한가하면 오리엔테이션 정도는 와"
"아, 네, 넵"
"가, 감사합니다"
남의 얼굴을 보자마자 겁먹은듯이 도망치다니.
만약 우리 서클 들어오면 괴롭혀주마.
4월에 들어간 순간 따뜻해진 기온에 졸림을 느끼면서, 나는 소속하고 있는 서클 권유 광고지를 나눠줬다.
쓸데없이 사람이 많은 우리 서클에 더 이상 인수를 늘려서 어쩌려는건지.
"유, 유미코-.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나눠주면 안 돼!"
"아? 평소 얼굴인데"
"……기분 나빠 보이는데.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스마트폰을 꺼내어 LINE 토크 화면을 보여준다.
어젯밤 대화 이력이다.
유미코
【내일 서클 권유 진짜 귀찮】
히키가야
【응】
유미코
【몸 차가워. 따뜻한 옷 입고 가자】
히키가야
【내일 따뜻해】
유미코
【진짜로? 그보다, 내일 오리엔테이션 술자리 있어】
히키가야
【응】
유미코
【너도 와】
히키가야
【안가. 잘래】
유미코
【잠깐. 자면 날려버린다】
―――읽고 무시
어젯밤 대화 이력을 다시 쳐다보니, 또 열받았다.
"그 자식, 진짜로 날려버린다"
"……. 아니아니, 히, 히키가야 양? 군? 전혀 나쁘지 않지"
"칫! ……은혜를 원수로 갚고 말야"
"그보다, 서클 술자리에 친구를 부르면 안 되잖아"
"아? 한 사람 정도는 안 들키잖아"
"……뭐, 신입생도 있으니까 들키지 않겠지만"
나는 곁을 지나가는 신입생에게 광고지를 전부 넘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오늘은 강의도 없고, 신입생 환영 오리엔테이션 술자리까지 비어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 캠퍼스 내 카페 테라스에 들어가 커피를 마신다.
스마트폰을 아무리 노려봐도 LINE에 답신은 들어오지 않는다.
"여. 유미코"
"……마루오카"
짜증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내가 참가하는 서클에서 올해부터 간사장으로 임명된 4학년 마루오카가 커피 컵을 들면서 내가 앉은 테이블석에 상석했다.
"서클 권유는 어때?"
"아? 그런거 나아한테 묻지 말고 실제로 보고 오지?"
"하하. 유미코도 권유 팀 아니었어?"
"……그보다, 친근하게 유미코라고 부르지 말아줄래?"
"음. 나는 간사장이잖아? 모두와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러니까 유미코라고 부를게"
호감이 안 가는 자식.
서클 내에서 핸섬이라고 떠들어대고는 있지만, 이 녀석의 어디가 멋있다는건지.
언동은 짜증내고, 행동은 나르시스트.
마시면 취한 척을 하고 여성에게 찰딱 달라붙어오는 녀석이다.
"……너, 되게 기어오르……"
―――♩
조금 분위기가 무거워지려고 할때, 내 스마트폰이 LINE 메시지 수신을 알렸다.
타이밍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나는 마루오카를 무시하고 LINE 메세지를 확인한다.
히키가야
【날려지고 싶지 않으니까 일어났다】
"……, 풋! 아하. 뭐야 그 녀석"
바로 LINE 답신을 한다.
마루오카가 눈 앞에서 이상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보고 갑자기 웃는 녀석이 눈 앞에 있으면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유미코
【그럼 와. 지금 당장】
히키가야
【안 가】
유미코
【너네 집 앞에서 강간당했다고 소리 지른다】
히키가야
【잠깐】
유미코
【안 기다려. 10, 9, 8……】
히키가야
【아라따】
아라따…….
히키오의 당황한 얼굴이 떠올라서 나는 또 히죽거리고 만다.
"유미코? 왜 그래?"
"음-, 딱히. 그보다, 사람 기다리고 있으니까 돌아가주지 않을래?"
"서클 애?"
"아니. 너하고는 관계없어"
"……혹시, 남친?"
……남친이라아.
히키오가 남친이라니, 절대로 말도 안 되지.
애시당초 남친이었다고 해도 마루오카하고 무슨 관계가 있다는건지.
"유미코에게 남친이 생겼으면 가르쳐줬으면 좋겠어"
"그야말로 너하고 관계없는데"
"있어. ……유미코, 나는 너를 좋아해. 진심이야"
"……아, 그려. 그럼 유감이지만, 너는 취향 아니거든"
"포기할 수 없어. 좀 더 진지하게 나를 봐줘"
이 녀석을 진지하게 봐서 어쩌라는건지.
바닥 얕은 네 본질을 보면 볼수록 기막힌다.
어차피, 무슨 소리를 해도 표면으로 밖에 남의 평가를 재지 못하는 남자다.
짜증난다.
커피를 블랙으로 마시는것도.
가시 없는 말만 하는것도.
모든게 다 싫다.
"……"
"……"
정말로, 이 녀석은 내 신경을 거스른다.
같은 서클에 참가하고 있다는것도 있어서 대충 봤지만, 슬슬 인내의 한계다.
더 이상 달라붙는다면 밀쳐뜨려서라도 포기하게 해준다.
―――♩
……으?
히키가야
【어디?】
으!
겨우 왔나…….
나는 카페테라스 입구에서 두리번거리고 있는 히키오를 발견했다.
"이봐! 히키오! 이쪽!"
"……용서없네, 미우라"
조금 화난건지, 히키오가 이쪽으로 성큼거리며 다가온다.
드물게 안경차림인 히키오는 옅은 물색 가디건과 치노 팬츠(일본조어 chino+pants)로 봄같은 패션을 하고 있었다.
손에는 교과서를 들고 있는건지 큰 토토 백을 늘어뜨리고 있다.
"늦잖아! 뭐한거야!?"
"……자고 있었어"
"날려버린다"
"어째선데!"
히키오는 나에게 불평을 늘어뜨린 후에 마루오카와 눈을 마주쳤다.
마루오카도 처음에는 어리벙해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여유로운 미소를 다시 칠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남친이 왔으니까 돌아가줄래?"
"남친 아닌데"
"너! 분위기 읽어!"
"그게 가능하면 아싸 아니겠지"
토토 백을 테이블 위에 뒀다고 생각하니, 안에서 MAX커피 캔을 꺼냈다.
"나왔다. 더럽게 맛없는 커피 주스"
"……너, 슬프기 짝이 없는 인간이군"
"시끄러. ……마루오카, 미안하지만 진짜로 돌아가주지 않을래? 우리, 지금부터 어디 좀 나갈거거든"
기분탓인지 딱딱해진 미소를 지은 마루오카의 앞에 놓여진 커피 컵에는, 별로 줄지 않은 블랙커피가 남겨져있었다.
못 마시면 껌시럽을 넣으면 될 것을.
작은 허세를 부리는 남자는 그릇도 작다.
나는 히키오의 팔을 끌고 카페테라스를 뒤로 했다.
………
갈곳도 없지만 햇볕이 있는 이 시간이라면 어디에 있어도 기분이 좋다.
차라리 이 주변 광장에서 햇볕쬐기를 하는것도 좋을지도 모른다.
"히키오, 술자리까지 한가한데. 뭐할래?"
"……몰라. 나는 집에 갈래"
"잠깐잠깐. 또 마루오카가 엉키면 귀찮으니까 같이 있어라고"
"그거야말로 알바 아냐"
"그 토토 백 귀엽네? 뭐 들어있어?"
"……"
히키오의 토토백 안을 들여다보니, 예상대로 교과서와 노트 몇권, 그리고 직사각 통이…….
"응? 뭐야 이거……, 아! 도시락이다!!"
"……낮에 도서관에서 먹으려고 생각해서"
"소풍가자!"
"너무 자유롭지 않냐?"
캠퍼스 근처에 큰 광장이 있다.
평일 낮에는 가족층의 손님도 보이지 않고, 개 산책을 하는 주부나 런닝코스를 달리는 주자가 몇 명 있을 뿐이다.
넓은 초원에 몇몇 자란 나무가 만드는 나무 그늘에 사온 시트를 펼치고 앉는다.
모포에 감싸이듯, 따뜻한 바람이 몸을 지나갔다.
"응-! 기분 좋아……"
"……헤에, 이런 곳이 있었군"
"자! 히키오도 앉아!"
"…음"
나는 토토 백에서 도시락을 꺼내고 사온 차와 함께 올렸다.
이중구조인 도시락을 여니, 1층에는 주먹밥이, 2층에는 반찬이 들어있다.
"옷, 꽤 맛있을것 같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예예. 드시죠-"
"맛있어! 이거 맛있으니까 히키오도 먹어봐!"
"내가 만든거지만 말야"
"우왓! 달걀부침 달아! 단걸 얼마나 좋아하는거야!"
"어? 달걀부침은 달잖아?"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느긋하고 농밀한 시간.
날씨는 좋고, 밥도 맛있다.
머리로 이해하는게 아닌, 마음이 즐겁다고 외치는 듯한.
조금은 사치스런 망상을 해봤다.
옆에 있는게 하야토고 우리는 사귀고 있다.
하야토는 물론 미소가 끊이지 않는다.
도시락은 맛있고, 그늘 틈새로 비치는 햇빛은 기분 좋다.
그런 행복을 망상한다.
그 때, 나는 하야토의 앞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던걸까.
행복으로 얼굴을 풀고 있었나?
하야토의 앞에서 그런 얼굴을 보여줄 수 없다.
맛있어! 라고 먹으면서 웃었나?
하야토의 앞에서 상스러운 모습은 보여줄 수 없다.
마음을 도로먹고 따진다.
하야토의 앞에선…….
그건, 지금처럼 책상다리로 앉아서 솔직하게 감상을 말하면서 웃고 있는것보다 행복해?
"……. 하아, 무슨 생각하는거람. 나아"
"아?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데…"
"날려버린다!? ……, 그보다, 너 왜 안 먹어?"
"하나밖에 없는 젓가락을 네가 쓰고 있으니까"
"아, 그런가. ……음, 입 벌려"
"……아니, 괜찮아. 배 안고프고"
"수줍어 마. 됐으니까 입 벌려. 아무도 안 보니까"
"……음"
여전히 수줍어하면서 히키오는 사양하면서 입을 열었다.
비엔나를 하나 입에 넣어주자, 바로 나한테서 시선을 피한다.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있다.
"……맛있어?"
"음. 역시 내가 만든 도시락이다"
"자, 이것도. 아-앙"
"……"
"뭐. 입 벌려"
"……수줍은거라고. 아-앙, 소리 하지마"
"아하하하! 알았어 알았어. 안할테니까 입 벌려"
볼을 붉게 붉히면 나도 부끄러워지잖아.
다시 입에 비엔나를 넣어주자, 히키오는 또 눈을 피한다.
"……후후. 정말로……. 너무 수줍어하네"
"……흥"
"있잖아, 나아한테도 아-앙해줘"
"아, 안해!"
"불공평해!"
"뭐가……"
나는 억지로 젓가락을 건냈다.
히키오도 처음에는 저항했지만, 체념했는지 젓가락을 받아든다.
"하아. 뭘 하고 싶은거야, 넌"
"됐으니까. 아-앙"
"……음"
"응. ……후후. 맛있잖아. 역시 요리 잘하네, 너"
"……그러심까"
입에 남은 달걀부침의 단맛이 적당하게 맛있다.
기분탓일까, 얼굴이 뜨거운건 단맛 탓일까.
아무래도 매운맛뿐만 아니라, 단맛에도 몸을 달구는 효과가 있는것 같다.
나는 무의식중에 히키오로부터 눈을 피한다.
뭐야, 나도 결국 부끄럼쟁이었나.
나는 너를 돌봐준다. - 연관
4월 하순.
벚꽃이 지고, 녹엽이 주역이 되는 나무들로 둘러쌓인 밤길을 걷는다.
친구와 술자리를 1차에서 퇴장하고, 나는 스톨로 입까지 덮고 겨울의 흔적도 없는 따뜻한 밤하늘 아래를 걷고 있었다.
지금쯤, 나를 제외하고는 노래방이라도 갔을 것이다.
여자모임의 이름 아래 모인 다섯명의 술자리는 어디의 누군지도 모를 남자들의 합류로 9명으로 늘었다.
적당하게 대화하고, 마시고, 장난치고 웃고……, 그런 평범을 받아들이면 누가 참가하든 상관없다.
남자들은 대화를 들뜨게 하려고 손짓발짓하며 웃기려고 했었다.
나는 취기에 맡겨, 더욱 분위기에 맞추어 웃는다.
손을 치면서 웃어도.
좋아하는 술을 마셔도.
나는 무의식 중에 그 자리에서 떠나고 싶다고 생각해버린다.
……남자와 노는건 이렇게나 재미없었던가.
작게 숨을 내쉬면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차가운 철같은게 손가락에 닿아, 그것이 내 집 열쇠라는걸 깨닫는데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왼팔에 찬 시계는 아직 10시 전을 가리키고 있다.
"……"
이유를 찾고 있다.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말할까.
막차를 놓쳤다고 말할까.
둘 다 신빙성이 빠져있다…….
"……뭐, 됐나! 가버리면 히키오도 들여보내주겠지!"
자기 자신을 스스로도 잘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이유를 찾는다.
만나는데 이유는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도 없이 만나는건 부끄럽고.
심심하니까.
술자리를 도중에 빠져나와서 지루해졌으니까.
……그렇다.
단순히 시간죽이기로 찾아가자.
히키오로 시간을 죽이자.
이유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
유미코
【지금 네 집 앞에 있는데. 문 열여줘】
히키가야
【바보냐】
유미코
【열어】
히키가야
【부재중이다】
나는 히키오가 있을 방의 문을 힐로 찬다.
문에서 퍽! 하고 큰 소리가 울리자 주위에 조용함이 더욱 눈에 띈다.
"뭐야! 나아가 왔으니까 빨리 열어라고!"
속이 끓은 나는 히키오에게 전화를 했다.
콜음이 4번 정도 울고, 겨우 전화는 받아졌다.
『……네』
"콜 한번 만에 받아!"
『……뭐, 뭔데』
"빨리 문 열어!! 있으면서 없는채하잖아!"
『없는채하는게 아닌데……』
"하아? 너, 이런 시간에 어딜 싸돌아다니는거야?"
『너도 말이다. …마시고 있는것 뿐이야』
"혼자서 마시면 재밌어?"
『자연스럽게 까고있구만』
통화하고 있는 곳이 소란스러운지, 때때로 잡음이 들려왔다.
……, 누구와 마시고 있어?
그 히키오가?
"너……, 누구랑 마시는거야?
'
『아? ……아, 야, 그만해. 전화중이니까…. …미우라, 미안하지만 끊는다』
"하!? 좀, 기다려! 히키오!!"
내 스마트폰에서는 통화 종료음밖에 들리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노려보면서 히키오를 어떻게 때려패줄지 생각해본다.
짜증나서 스마트폰을 움켜쥐는 힘이 세져서 떨린다.
전원이 떨어진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이상하다.
분노로 가득찬 얼굴.
눈이 늘어뜰여져 미간이 모이고 있다.
그런 얼굴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
내 얼굴은 이렇게나 약하게 고개숙이고 있는걸까.
………
30분은 지났을까.
서 있는 상태라 다리가 피곤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 웅크려 앉아 스마트폰을 노려본다.
평소처럼 LINE을 보내는것도 할 수 없다.
왜 못하는걸까.
할게 없어진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만져본다.
금색으로 물든 머리카락을, 그 녀석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화려한 차림은 싫다고 말했었다.
…….
물든 금발을 쳐다보면서 어째선지 마음이 조여진다.
딱히, 그 녀석에게 미움받는다고 해도 어떻게 되는건지.
어떻게……, 되는건지.
"……, 너, 뭐하는거야?"
"……시간 죽이기"
미움 사면……
"시간은……, 죽였냐?"
"…으. 너, 술자리는?"
조금은…….
"……재미없어서 돌아왔어. 결국 나는 아싸같다"
"…아싸 아니거든. 자, 얼른 문 열어!"
슬플지도 모른다.
"뭔데……"
히키오는 한숨을 쉬면서 가방에서 열쇠를 꺼냈다.
무거운듯이 열쇠를 돌리고 문을 연다.
"쫗아! 밥이다! 밥을 만들어라!!"
"아니아니. 이미 배부르거든. ……너 안 먹었어?"
"음-. 먹었어. 그치만 너 기다렸더니 배고파"
"애시당초 왜 있는거야……. 간단한거라면 만들 수 있지만, 조금 시간 걸린다"
"오케이-. 그럼 나아는 목욕이라도 들어갈게-"
"오냐. ……아!? 아니, 야!?!?"
"아?"
"……, 너, 무슨 생각하는거야?"
"입보다 손을 움직여. 나아, 오늘 여기서 잘테니까"
"하아?"
"……이미 정했어. 아-, 수건도 멋대로 빌릴게-"
나아는 거실을 나와 탈의실 문을 연다.
히키오의 얼굴이 경직되어 있었다.
너 같은건 좀 더 곤란해하면 된다고.
나를 기다리게 만든 벌…….
그리고, 조금 불안하게 만든 벌이니까.
샤워 수도꼭지를 비틀자 조금 시간을 두고 따뜻한 물이 나왔다.
몸이 따뜻해지고, 욕실에는 증기가 들어찼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어딘가 움츠러들어있다.
응, 역시 이러는 편이 귀엽네.
나는 작지 않은 가슴을 폈다.
샤워를 끝내고 욕실을 나왔다.
몸은 따뜻해졌지만 배는 고픈 상태다.
나는 목욕 타올로 몸을 닦고, 탈의실에 벗어둔 내 옷을 쳐다봤다.
눈 앞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
……….
"……. 씻어버리자"
삑, 삑. ……스타트.
"좋아. ……이봐-, 히키오-"
나는 탈의실에서 히키오를 부르기 위해 부른다.
물론 몸은 목욕 타올로 감고 있지만.
"……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스웨터 빌려줘-"
"하?"
"옷 씻어버렸어"
"바보야?"
"됐으니까 빌려줘. 알몸으로 밥 먹일 생각이냐"
"자업자득인데 세게 나오네. ……새 스웨터는 없어. 사올테니까 기다려"
"아까워. 히키오가 쓰던거면 돼"
"……"
"으으. 추워. 감기 걸리겠다아"
"바보니까 괜찮아"
"날려버린다!"
"……조금 더 샤워하고 있어. 탈의실 문 앞에 둘테니까"
"빨리 줘!"
잠시 기다리니 복도를 걷는 소리와, 탈의실 앞에 스웨터가 놓여지는 소리가 났다.
히키오가 거실로 돌아간걸 확인하고 나는 스웨터를 집어 탈의실에서 갈아입는다.
"기다렸지-. 밥 다 됐어?"
"……응"
"오! 파스타다!"
"……다 먹으면 돌아가"
"안 가. 잘 먹겠습니다"
"……하아"
"그러고보니 말야, 너 오늘 누구랑 마시던거야?"
"아?"
"여자였으면 날려버릴거야"
"어째선데……"
"히키오주제에 건방지니까"
"어째선데!? ……연구실 녀석들이야. 세미나 술자리였어"
"그래서? 거기에 여자는?"
"……없어"
파스타를 빙글빙글 말면서 나는 히키오를 노려본다.
히키오의 눈은 왼쪽으로 갔다가 오른쪽으로 갔다가.
거짓말을 감추는게 허접하다.
짜증 나서 포크를 감는 속도에 힘을 주고 있는지, 나는 크게 감긴 파스타를 양껏 베어물었다.
짜증나. 화가나.
"칫……. 나중에 쓰러뜨릴테다"
"…횡포다"
"다 먹은 그릇 정도는 씻어둘테니까, 너도 잽싸게 목욕 들어갔다와"
"그보다, 정말로 잘 생각이야?"
"끈질긴 남자는 미움산다"
"……예이예이"
히키오가 나른하다는듯이 거실에서 나간다.
복도쪽에서 탈의실 문이 닫히는 소리도 들려왔다.
다 먹은 그릇을 다 씻고, 소파에 누워 쿠션을 안으면서 텔레비전을 본다.
왠지 텔레비전 내용이 들어오지 않네.
왜 탈의실 쪽이 신경쓰이는걸까.
텔레비전 볼륨이 더 큰데, 귀에 들어오는 소리는 샤워실에서 떨어지는 물소리 뿐이다.
"응――――!!"
쿠션에 얼굴을 묻어 소리를 차단해본다.
…….
희미하게 풍기는건 무슨 냄새일까.
태양빛에 말린 이불같은 달콤한 냄새.
……
"……젠장할--!!"
쿠션도 틀렸다.
내가 쿠션을 던지려고 한것과 동시에, 행거에 걸린 히키오의 외출복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스마트폰의 진동음이겠지.
일단 확인의 뜻도 담아서 외출복 주머니를 조사하니, 거기에는 아니나다를까 히키오의 스마트폰이 있었다.
"……"
잠금 화면에 비친 LINE 메세지가 눈에 들어온다.
안 된다고 자신에게 말을 해도, 시선을 말을 듣지 않는다.
에리
【왜 술자리, 먼저 돌아갔어!?】
메세지 내용을 봐버렸다.
죄악감과 동시에 메세지 상부에 표시된 여성다운 이름에 혐오감이 새어나온다.
역시 여자도 있었구나…….
……, 먼저 돌아갔어?
"……?"
"그거, 내 스마트폰"
"히, 히키오!? 무, 무, 빠르지 않아!?"
"그런가?"
"까마귀냐!?"
"……처음 들었다. 자, 스마트폰 줘"
"……, 돌려주길 바라면 대답해"
"아?"
나는 히키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준다.
잠금화면에 표시된 LINE 메세지를 읽게하기 위해서다.
"이거, 여자잖아"
"……응. 세미나"
"히키오 주제에……"
"너 말이다……"
"뭐, 그건 나중에 추궁하기로 하고. ……먼저 돌아갔다니, 너 술자리 도중에 돌아온거야?"
히키오가 LINE 메세지를 다시 읽고, 조금 당혹한듯 눈을 피했다.
젖은 앞머리에서 물이 떨어진다.
"……음, 뭐. 애시당초 술자리는 아싸인 나하고는 물이 안 맞고"
"……헤에. 너, 나아가 전화하고나서 30분 정도만에 돌아왔지"
"……. 그런가?"
"……, 응"
"……"
"……"
이상하게 심장고동이 빠르다.
조용해지면 심장 소리가 들려버릴 정도로 세게 고동치고 있다.
"……뭐, 나쁘지 않아. 너랑 있는것도. 섣부르게 신경쓰는 놈들이랑 마실 바에야 말이지"
"……. 후후. 너치고는 솔직하잖아"
"시끄럽네"
히키오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컵 두개에 붓는다.
한쪽을 나에게 내밀고, 나한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컵을 기울였다.
"헤헤. 히키오, 이리로 와"
"아?"
내 앞에 히키오를 부르고 앉힌다.
가늘고 늘씬한 키.
왠지 모르게 지켜주고 싶어진다.
나는 뒤에서 꼬옥 껴안았다.
"으앗!? 뭐, 뭐, 뭐야!?"
"날뛰지 마! 그보다, 너 머리 축축하잖아! 말려줄게"
"필요없어! 그보다 떨어져! 다, 닿는다고……, 읏!?"
"안 된다고. 도망칠테니까 안 놔"
"아, 안 도망칠테니까"
"……응"
천천히 양손을 뗀다.
약속대로 히키오는 잠자코 앉아있는 상태다.
"………"
"후후. ……꽤 크지?"
"시끄러!"
나는 너를 돌봐준다. - 산
재미없고 긴 강의가 질질 이어진다.
교편을 휘두르는 교수는 자기만족을 얻는것 처럼 긴 수식을 칠판에 쓰고 있었다.
노트에는 영문 모를 숫자가 난잡하게 기입되어 가지만, 내가 원하는건 이런 작업적인 수식의 해답이 아니다.
"그럼 출석표 나눠준다-"
이걸 원했다.
배포받은 출석표에 학생번호와 이름을 쓰고 나는 강의도 끝나지 않은 교실에서 도망쳣다.
그 교수, 짜증나게도 출석표를 강의 시간의 반이 지났을때 나눠준다.
그걸 알기 때문인지 나를 제외하고도 출석표를 쓴 사람들은 재빠르게 교실에서 퇴실해갔다.
오가는 학생들로부터 느끼는 고양감.
캠퍼스 내에는 어딘가 들뜬듯한 분위기가 충만하고 있다.
그것도 당연한가, 다음주부터는 근면한 일본인이라면 누구나가 기뻐하는 대형연휴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도서실이나 카페테라스, 학교식당에는 레저 잡지를 보고 잡담을 나누는 학생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여름방학이나 봄방학은 너무 휴가가 길어서 휴일의 기쁨이 옅어지고 만다.
일주일의 연휴가 딱 좋은 행복감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러는 나도 들뜬 사람 중 한 명.
캠퍼스 내에 있는 자동판매기를 쳐다보며 무심코 얼굴이 풀어지고 만다.
오늘은 기분이 좋다.
가끔은 이 달짝지끈한 커피를 사보자.
………
연휴를 앞둔 선술집은 평소의 성황 이상으로 대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미리 예약을 해둔 나는 점원에게 안내받아 가게 안의 개인실로 걸어간다.
"아, 유미코! 얏하로-!"
"그 인사 그만해"
유이를 만나는건 한달 정도 만일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나와 유이는 이렇게 가끔 마시러 간다.
근황보고라고 하는 푸념을 하는것 뿐이라, 결코 색기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건 유이가 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 안에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적어도 둘 사이에서 남친이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겨우 골든 위크지! 유미코는 예정 정했어?"
"음-, 일단 서클 합숙이 있지만, 다른 예정은 적당하단 느낌?"
"그럼 다 같이 어디 가자!! 산이라던가!"
"왜 산……? 아, 그럼 유이도 우리 서클 합숙 갈래?"
나는 서클 그룹 LINE을 열어 유이에게 보여준다.
합숙 개요가 쓰여진 메세지에는 확실히 산 합숙이라고 쓰여있고, 래프팅이나 바베큐 등 스케줄의 상세 내용까지 보내어져 있었다.
"래프팅!? 뭐야 그거!? ……앗, 서클 합숙에 부외자가 참가하면 안 되잖아"
"관계없어. 그보다, 남자들도 유이가 오면 절대로 기뻐할테고"
"따, 딱히 그런건……. 그치만 산 합숙인가아……가고싶네에"
"그럼 결정. 모레 8시에 우리 대학교에서 집합이야"
"에!? 그렇게 멋대로!?"
"아, 히키오도 부르자. 유이도 그 녀석이 있으면 든든할거 아냐"
"우에!?!? 힛키도!?"
"전화할게. 잠깐 기다려"
"전화!? 왜 유미코가 힛키의 번호 아는거야!? 그리구 래프팅은 뭔데!?"
나는 스마트폰 주소록에서 히키오의 전화번호를 불러낸다.
통화음이 울리자 바로 히키오와 연결됐다.
"받는거 늦어!"
『한번만에 받았는데…』
"시꺼. 모레부터 합숙이야. 예정 비워둬"
『하? 무슨 소리 하는거야? 합숙……?』
"모레 마중나갈테니까 준비해둬. 상세한건 집에 가면 전할테니까"
『아니아니, 안 갈거거든.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오는거 그만두지 않을래?』
"끊는다"
『좀, 야……』
통화 종료와 동시에 스마트폰 화면이 어두워졌다.
"괜찮대"
"어, 어떻게 된 일이야…"
유이는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별로 의욕 없었던 서클 합숙도 조금은 즐길 수 있을것 같다.
………
합숙 당일, 집합장소 캠퍼스 정문에는 30명 정도의 참가자와 몇 대의 렌트카가 정차하고 있었다.
나는 합류한 유이와, 집에서 끌고나온 히키오를 데리고 약속 장소를 멀찌감찌서 보고 있다.
"와아-, 다들 서클 사람이야?"
"그런거 아냐? 모르는 녀석들 투성이지만"
"치, 친구 아냐?"
"응. 거의 이름도 모르고"
"아, 아하하-"
서클의 간사가 출발식이니 뭐니 하고 있는 도중에 히키오는 고개를 떨구면서 스마트폰을 만지고 있었다.
"좀, 히키오. 너 되게 짐 없다?"
"……"
"산 얕보지 마"
"……하이힐 신은 너한테 듣고 싶지 않아"
"그보다, 아까부터 스마트폰으로 뭐하는거야? 친구 없는 주제에"
"친구가 없어도 스마트폰은 만질 수 있어. 코마치에게 TV 녹화를 부탁하는거야"
"녹화정도는 스스로 해"
"네가 갑자기 끌고나와서 그런거잖아!"
히키오의 목소리에 서클 참가자 몇 명이 이쪽을 돌아본다.
왜 나를 보는건데. 아?
라고 생각했더니, 그 몇명은 황급히 우리들로부터 눈을 피했다.
"뭐, 뭐어뭐. 힛키도 유미코도 진정해. 힛키도 말야, 이 합숙에서 친구 만들어보지?"
"흥. 도당은 안 짜"
"도, 도당…?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는데…. 거기다, 왠지 이벤트도 많이 있는거 같은데? 어음, 리, 리프팅이었나?"
"……사람 많은데서 혼자서 리프팅을 하라고? 나한테는 리프팅이 어울린다는 거야?"
"힛키, 의미 모르겠어. ……나참"
"왜 네가 기막혀하는건데!"
……응.
역시 이 광경은 그립다.
이래저래 푸념을 하는듯 하면서 히키오의 말도 평소보다 온화한 느낌이 든다.
음색에 따뜻함이 있다고 할까, 유이나 유키노시타와 대화할때 히키오에게 차가운 이미지는 없다.
유이도 즐거운 모양이다.
……, 응. 분명 유이는 아직 히키오를, ….
조금 멍하니 있던 나는 간사 그룹중 한 명이 큰 소리를 질러서 출발식이 끝났다는걸 깨달았다.
아무래도 이동시 차내 조를 발표하는 모양이다.
5인승 패밀리카에 4명씩 타는 모양이다.
"조? 야야, 내가 제일 멀리하는 문화잖아"
"에엥!? 다같이 타는거 아니야!?"
히키오는 발표를 들으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유이는 불만스러운 듯이 볼을 부풀린다.
"아니아니, 너네는 비공인 참가니까 호출 안 받았구. 나아가 타는 차에 같이 타면 되잖아"
착착 조가 발표되어 가고, 호출받은 사람부터 차에 올라탔다.
아직 불리지 않은건…….
"유미코는 나와 같은 조야"
나와 마루오카 뿐이다.
"미안하지만, 간사장의 특권을 썼어. 유미코와 추억을 만들고 싶어서. 인원수 관계상 조는 나와 유미코 둘 뿐이야"
나는 마루오카에게 재촉받은대로 차에 올라탄다.
마루오카는 평소보다도 순종적인 나를 보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운전석에 앉고 오디오 선곡을 서양 음악으로 하여 음량을 올렸다.
"그럼 갈까"
"음, 잠깐만"
"?"
"이봐-, 여기여기-. 얼른 타-"
"하?"
………
고속도로의 요금소를 지나, 조금 지나니 도로 주위에서 높은 빌딩무리가 사라져갔다.
정체도 없이, 이미 순조롭게 목적지로 다가가는 모양이다.
"나아로써는 산보다는 바다지"
"에-? 나는 산 쪽이 좋은데-. 힛키는?"
"……나는 집이 좋아"
"그럼 히키오네 집 갈래"
"거짓말거짓말. 역시, 바다가 좋다"
"그럼 다음엔 바다가자!"
"도망칠곳은 없냐!"
차 안에는 웃음소리가 울린다.
유이가 갖고온 빼빼로를 물면서, 나는 창 밖에 펼쳐지는 산들을 쳐다봤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모르지만, 산이라면 이 주변에도 많이 있을텐데 왜 원거리 장소를 고른걸까…….
"아, 그게, 마루오카 씨였던가요? 죄송해요, 저희까지 편승해서요"
"……아, 아하하. 괜찮아. 유이가하마 씨……, 유이짱이라고 불러도 돼?"
"에헤헤, 왠지 '유이짱' 은 신선할지도. 있잖아 힛키. 유이짱이라고 불러봐"
"……소름"
"힛키한테 듣고 싶지 않아!!"
마루오카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운전에 다시 집중했다.
유이는 자연스럽게 남자를 멀리하는 구석이 있다.
그것도 무의식이다.
어쩌면 오늘은 히키오에게 푹 빠진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조수석에 앉은 나는 뒤에서 장난치는 둘을 웃으면서 보고 있다.
그저, 조금 멀리 느껴져버리는건 자리 문제일까.
둘에게 흐르는 따뜻한 시간이 너무나 눈부셔서 부럽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유이와 자리를 바꾸고 싶다니….
나는 부러진 빼빼로를 입에 넣는다.
유이가 사랑스럽게 먹는 모습에 질투하면서, 나는 새로운 빼빼로를 입에 물었다.
"자, 히키오!"
"아?"
"빼빼로 게임! 나한테 이기면 바다에 데려가줄게!"
"……, 참고로 지면?"
"히키오네 집에 가줄게"
"나한테 메릿트가 없다!?"
나는 너를 돌봐준다. - 속삭임
산속에서 나무에 둘러싸인 로그 하우스.
수도나 전기도 최소한 설비만이 갖추어져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듯, 잎이 물결치면서 소리를 냈다.
각조의 전원이 산기슭에 집합하고 바로, 하이킹이라는 이름의 탐험 이벤트와 자연속에 설치된 조리장에서 카레 만들기가 시작될 예정이다.
"카레 만들기라-! 기대되네!"
"나는 패스. 여럿이서 요리를 만드는 의미를 모르겠다"
"나아도 패스. 다 되면 불러줘"
"……조금은 협조성을 갖자"
유이는 협조성에 지나치게 뛰어난거야.
그 증거로 만난지 몇 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서클 멤버와 사이 좋게 얘기하고 있으니까.
히키오도 어딘가 거북한지 때때로 스마트폰을 만지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여기, 전파 안 터지잖아"
"아아. 아까부터 꿈쩍도 안 해"
"그럼 뭐하는데"
"……사진 정리"
유이를 포함한 서클 멤버는 조리장으로 이동해간다.
무리 속에서 빠져나온 유이가 이쪽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카레 다 되면 부르러 갈게!"
그렇게 말하고 서클 멤버에게 웃는 얼굴로 돌아간다.
걷기 쉬워보이는 운동화가 경쾌하게 소리를 내며, 카레 만들기에 얼마나 즐거움을 바라고 있는건지, 유이는 엄청난 기세로 산길을 올라갔다.
"그럼 나는 인터넷 카페에서 샤워라도 하고 올게"
"그런거 없어. 그보다, 어떻게 시간 죽일건데?"
"뒹굴거리지 그래?"
"장난치지 마"
나는 설치되어 있는 주변 지도가 표시된 간판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우리가 있는 현재지나 유이네가 향한 조리장 등도 표시되어 있다.
"아, 이거. 이 근처에 휴게소 같은게 있어"
"음? 가까우면 못가줄것도 없지"
"왜 내려다보는 시선인데"
나는 현재지와 그 휴게소의 위치 거리를 계산하기 위해, 엄지와 검지를 간판위에 댄다.
……5센치인가.
"5센치 정도네"
"축척을 모르니까 의미 없지"
"5분 정도지"
"……너는 천재네"
어째선지 가는걸 싫어하는 히키오를 끌고 목적지로 이어지는 샛길을 간다.
길은 착실하게 정비되어 있고, 나무 가지나 지면에 뻗은 잡초 등에 다리를 채이는 일도 없이, 5분 정도 걸으니 큰 평지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봐, 5분. 그치?"
"으. ……정확하게는 6분 30초군"
"시꺼. ……그보다, 상상했던 휴게소하고 다르구. 평범하게 찻집이잖아"
"……확실히. 좀 더 낡은 움막을 상상했는데"
강변으로 난 그 찻집은 산속에는 조금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깨끗한 구조를 하고 있다.
입구에 걸려진 간판에는 가게이름이 쓰여있는 걸테지만, 모르는 영단어가 쓰여있었다.
"음? 윌콤멘? ……뭐야 이거"
"빌코멤이겠지. 독일어"
"헤에……. 무슨 의미?"
"환영. ……멋진 이름이네. 산 속에서 환영받는다니. 게다가 독일어로"
입구문을 열자 방울 소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겸양쩍게 울린 방울을 깨달은 여성 점원이 웃는 얼굴로 우리를 자리에 유도해준다.
"왠지 이상한 느낌. 손님도 없고, 점원도 저 사람 뿐인것 같아"
"……. 뭐, 앉을 수 있다면 뭐든 상관없지만"
"음. 뭐 마실래?"
"커피"
"네네. 껌시럽은 2개까지야"
"적어도 그 배는 필요해"
"안 돼. 아, 점원씨-, 주문 부탁해요"
"으-"
………
얼마 지나지않아 나온 커피와 홍차를 마시면서 나는 창 밖에 흐르는 강을 쳐다보면서 고등학생 무렵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무렵에 말야, 치바마을에 간거 기억나?"
"아? ……아-, 아아. 그런적도 있었을지도"
"네 악덕한 계략으로 초딩을 울렸지"
"그 말에는 유감을 주장하고 싶지만…. 뭐, 사실이지"
"그 때 말야-, 왜 그런 짓을 하는거야, 라고 생각했는데 유이랑 하야토랑 유키노시타가 너한테 협력한다고 말했으니까 하는 수 없이 따랐지만 말야. ……, 그건……"
"……옛날 일이지"
"그건 네 성벽?"
"어째선데!?"
강의 흐름이 하류로 향하듯, 나와 히키오가 이렇게 둘이서 있는게 마치 자연의 섭리처럼.
이 녀석의 따뜻함이 커피에 녹아든 껌시럽처럼 내 안에 충만해져간다.
정신을 차리니 우리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점원은 입에 손을 대며 웃고 있었다.
"거봐, 너 때문에 웃었잖아. 너무 큰소리 지르지 마"
"……예이"
"후후. 미안해요. 두 분이 너무나 흐뭇해서"
"흐뭇해? 우리가?"
"그 밖에 손님은 없는걸요. 당신들 처럼 사이 좋은 커플이 와주면 기뻐요"
"커, 커플 아니구!"
점원의 말을 가로막듯 부정하는 말이 입에서 나와버렸다.
뭘 이렇게 당황해서 부정해버린걸까, 조금 부끄러워져서 힐끔 히키오를 쳐다보지만, 이 녀석은 무관심하게도 커피를 마시고 있다.
"거, 건방져!"
"엉? 나 왜 혼나는거야?"
점원은 웃는다.
그렇게나 웃긴걸까, 나는 차분함을 되찾으려고 화제를 바꾼다.
"그보다, 여기 가게는 점원씨 혼자서 꾸리는거야?"
"……. 응, 지금은"
"흐-응? 이런 산 속에는 돈 못 벌잖아?"
"실례스럽기 짝이 없는걸 묻지마"
"후후후, 괜찮아. 사실인걸요. 하지만……, 그 사람이 돌아올때까지……"
""?""
"……, 미안해. 지금 그건 잊어줘. 이런 곳이지만 편하게 있다가"
그런 말을 남기고 점원은 떠나간다.
어딘가 근심있는 옆얼굴이 인상적이었다.
"사정 있는걸까"
"……, 탐색하지마. 그녀에게는 그녀의 삶의 방식이 있어"
"삶의 방식이라……. 히키오 주제에 건방져. 왠지 아까부터 되게 침착하구"
"……다른 사람과 행동하는게 고역이야.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말이지"
"숨쉬기 힘들다는 느낌?"
"그런 느낌. 그러니까 지금은 휴식중"
"……헤에. 나아하고는 숨이 안 막히는구나"
"스트레스는 쌓이지"
"나왔다. 부끄럼 감추기"
"……"
………
그 후, 조금 오래 있어버린 찻집을 뒤로하고 조리장으로 향했다.
완성된 카레를 받아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유이가 만들었을 거무튀튀 검은 카레는 마루오카에게 먹였지만.
점심식사 후, 자유시간을 가지고는 어두워졌다.
산 속에는 해가 지는게 빠르다.
이미 주위는 암흑이 덮여서, 로그 하우스의 전기나 믿을 구석 없는 회등전등으로는 몇 미터 앞을 비추는게 고작이다.
암흑 속에 모인 서클 멤버를 앞두고, 안색이 나쁜 마루오카가 메모장을 한 손에 들고 얘기한다.
"……, 으. …하아. …그게, 지금부터, ……큭, 하아하아. 담력대회를…합니다…"
몸 상태가 나쁘면 무리를 할 일은 없는데. 어째서 저 녀석은 이렇게나 눈에 띄고 싶어하는걸까.
"왠지 마루오카 씨, 안색 나쁘네-"
"……유이가하마 병이군"
"뭐야 그거!?"
"……유이, 굿잡"
"왜-!?"
앞에서 설명을 계속하는 마루오카는, 조금 진정이 됐는지 담력시험의 개요를 설명했다.
"후우, ….… 그럼 지금부터 나눠주는 종이를 봐줘. 여기서 걸어서 조금 가면 평지가 있어. 거기에는 폐움막이 있는데, 거기에 미리 준비해둔 부적을 갖고 오는게 클리어 조건이야"
나는 종이에 기입된 지도를 본다.
거의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길은, 어두운 숲속을 걷는만큼 공포가 늘어날것 같다.
"헤에, 꽤 재미있을것 같잖아. 안 그래, 히키오"
"……아니. 이 폐움막은…"
"아?"
"……"
왠지 빤히 지도를 응시하는 히키오를 뒷전으로 마루오카의 설명은 이어진다.
"폐움막의 부적을 가질러 갈때, 건물 안에 있는 간판을 봐줬으면 싶어. 거기에 쓰여있는 문장은……. 뭐, 가고나서 즐거움이다"
여기저기서 무섭다니 기대된다느니, 각양각색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히키오의 상태는 어딘가 밝지 않다.
"히키오, 괜찮아? ……유이의 카레 먹었어?"
"무슨 소리야!? ……, 그치만, 정말로 힛키 괜찮아? 안색 나빠"
"……. 괜찮아. 몸상태도 나쁘지 않아. 그저……"
히키오가 뭔가를 나에게 말하려고 한 순간, 누군가가 내 어깨를 세게 쳤다.
아마 겁먹게 하려고 한걸테지.
"여, 유미코. 놀랬어?"
"짱나. 만지지마"
"자자. 부적을 가질러 가는건 남녀페어야. 상대방에게는 다정하게 대하지 않으면, 어두운 밤길에 두고갈지도 몰라……"
마루오카는 무서움을 연출하려고 하는건지,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 마루오카 씨. 조금 묻고 싶은게 있는데"
"……아아, 뭐?"
드물게도 히키오가 마루오카에게 말을 걸었다.
마루오카는 누가 봐도 기분 나쁘다는듯이 대답한다.
"이 폐움막은, 정말로 폐움막인가?"
"그런데?"
"당신이 가서 확인한거야?"
"끈질기네. 실제로 아까 가서 부적도 두고 왔어. 문은 잠겨있지 않았고, 유리창도 깨져있었어. 인터넷에서 평판대로 폐움막이었어"
"인터넷? 유명한가?"
"뭐, 지방 사람한테는 그럭저럭. 그보다 유미코, 우리는 가장 먼저 출발이야. 갈까"
보기 드문걸 봤다.
히키오가 이렇게나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건 정말로 보기 드물다.
뭔가 걸리는게 있는것 처럼 얼굴을 찌푸리더니 히키오는 마루오카의 어깨를 잡는다.
"……뭐야?"
"미우라하고는 내가 간다"
"하?"
"히, 히키오!?"
"힛키!?"
평소보다도 조금 듬직한 음색이, 어째선지 다정하게 내 안에 울린다.
정말로 놀란건, 유이의 앞에서 나를 지명한 것이다.
"너 말야, 부외자 주제에 자기중심인 행동은 그만두지 않을래?"
"……. 유이가하마, 네가 만든 카레는 아직 남아있었지"
"후에? 이, 일단 아직 남아있는데"
"다른 사람이 만든 카레는 전부 없었는데. 어째서일까"
"우으, 내가 만든 카레, 맛없었던걸까아"
"마루오카 씨, 유이가하마가 만든 카레는 어땠습니까? 맛있었습니까?"
"헤? 아, 아아, 뭐, 마, 맛있었……을지도"
"유이가하마, 잘 됐네. 마루오카 씨가 네가 만든 카레를 먹고 싶대. 데워와주지 않을래?"
"잠, 나는 그런걸!!"
"저, 정말로? 제가 만든 카레 맛있었어요?"
"으으. ……마, 맛있었어"
"나! 지금 바로 데워올게요!!"
"잠, 기, 기다려"
마루오카의 제지도 듣지 않고 유이는 카레를 데우러 조리장으로 뛰어갔다.
히키오는 뭘 생각하고 있는걸까.
담력시험, 어차피 갈거면 유이랑 둘이서 가면 됐을걸…….
"너, 너어…. 용서 안할거야"
"……반대로 감사해줬으면 싶은데. 맛있고 맛있는 유이가하마의 카레를 먹을 수 있으니까"
마루오카는 벌레씹은 표정으로 히키오를 노려보고, 유이의 뒤를 쫓아갔다.
"……히키오, 너, 너 말야…"
"미우라. 지도를 잘 봐"
"헤? 어, 어째서?"
"그 폐움막의 위치, 기억 못해?"
"하? ……. 에……"
지도에 그려진 폐움막 리스트.
거기로 향하는 길은 기억이 있다.
우리는 한번, 이 길을 걸어갔으니까.
"찻집이 있던……장소"
………
어딘가 빠른걸음인 히키오의 뒤를 쫓아, 어두운 산길을 걷는다.
한번 걸었던 길인데도 불구하고, 시간대가 다른것만으로 어디까지나 이어지는 귀신의 집처럼 변해버린다.
나무속에서 어둠이 잡아먹으러 오는듯한 정적.
나는 하이힐이 나무가지에 걸려 넘어질뻔했다.
"……읏!?"
그러자, 넘어질뻔했던 내 몸은 히키오의 팔로 받쳐진다.
"고, 고마워"
"아니, 미안. 조금 걷는게 빨랐지"
"……. 앞이 안 보이니까. 손, 잡아줘"
"……"
마지못한건지, 희희거리는건지,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히키오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왼손에는 확실하게 따듯함을 느낀다.
"음, 저기군"
"……"
평지에 서있는 한 채의 움막.
껌시럽을 넣은 커피를 마신 히키오, 다정하게 미소짓는 점원, 나에게는 확실하게 기억이 있다.
그러니까 단언할 수 있다.
"그럴리가 없어….…"
"……. 일단 입구로 가자"
유리창은 깨지고, 지붕에는 여기저기 부패한 흔적이 뻗쳐있다.
절대로 다르다.
낮의 찻집이랑 외견은 닮아있지만, 세월이 다르다.
그러니까, 간판에 쓰여진 이 문자도 독일어 따위가 아니다.
"….…저기, 히키오"
"……음"
"여기는 역시…."
"그런것 같다. 꽤나 오래되버렸지만"
무심코 몸에서 힘이 빠져버린다.
그걸 눈치챘는지, 히키오는 내 손을 세게 잡았다.
"어, 어째서 그렇게 차분해하는거야"
"낮에도 말했잖아. 여기서"
"……"
"안도 엉망진창이군. 저게 부적인가….…"
다리가 부러진 테이블에 몇 장의 부적이, 그리고 그 위에는 종이가 잡다하게 붙여져 있다.
인터넷에서 들은 전설이 쓰여져 있는건지, 종이 여기저기에는 핏자욱같은걸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내용은 간단한 것이었다.
부부가 경영하는 가게에서, 어느날 부부싸움을 했을때 아내가 가게를 뛰쳐나가버린다.
산길에서 아내는 발이 미끄러지고…….
남편도 어찌할바 모르다, 뒤를 쫓듯이…….
하지만, 아내는 강한 원념을,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 세상에 계속 남아있다.
그리고, 이 가게에서 기다리면서 찾아오는 사람을 남편과 착각해서 습격하는 모양이다.
"……히키오, 어떻게 생각해?"
"글쎄. 어차피 전설이겠지. 그저, 여기가 정말로 유령저택이고, 그 점원이 사모님이었다면……"
"……였다면…?"
"원념같은게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 그런걸로 남편을 원망할리 없다고……생각해"
히키오가 쳐다보는 시선의 끝에는 우리가 낮에 앉은 테이블 좌석이, 그리고 어째선지 그 좌석만 먼지나 더러움도 없이 남겨져 있다.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있어……"
"……남편을 기다렸던걸지도"
"……"
"뭐, 위험도 없어보이고. 이대로 부적을 갖고 돌아가자"
"응. ……잠깐…"
"아?"
"손, 잡는거 잊고 있구"
"하?"
"빨리 잡아!"
어두운 가게 안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웃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게를 나올때, 소근, 내 귀로 누군가가 속삭인다.
'솔직해야지'
……시끄럽구.
나는 너를 돌봐준다. - 약
"더워……"
7월도 중순을 지나, 이미 지구를 녹일 기세로 햇볕이 콘크리트를 달군다.
태양의 반짝임은 마치 전자렌지 속에 있는것 처럼 내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설마 낮부터 국도를 따라 도보를 걷는 나에겐, 차에서 배출되는 가스가 불쾌지수를 팍팍 올린다.
겨우 도착한 목적지의 입구를 열자 시원한 바람이 몸에 불러왔다.
"더위가 위험해……"
"……그럼 밖에 안 나가면 되지"
"그게 아이스크림 먹고 싶었다 뭐. 자, 히키오한테는 말차를 줄게"
"말차 필요없어. 초콜렛을 받을게"
"초콜렛은 나아거야"
나는 소파에 몸을 던지면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히키오를 두들겨 일으켰다.
여름이 된 순간 히키오는 칠칠맞게 변해간다.
소파에서 손이 닿는 범위에 생활이 필요한걸 전부 두고, 반소매 반바지를 입고 하루종일 쿨러 아래에서 생활하는 매일이다..
"쿨러 설정온도, 또 22℃되어 있구"
"……"
"26℃로 하라고 한거 기억해?"
"……, 실수했다"
"……너, 감기 걸려도 모른다"
"으. 그 말은 여름감긱에 걸리고 나서 들을까"
나는 히키오의 얼굴을 때리며 쿨러 리모콘을 조작한다.
설정온도를 26℃로 변경하고 나도 소파에 앉았다.
"음. 초코, 한입만 줄게"
"……필요없어"
"변함없네. 자, 나아 아직 안 먹었으니까 수줍어마"
"칫……. 넘겨라"
한입만 먹을 생각이 든건지, 히키오가 초콜렛 아이스크림을 받으려고 손을 뻗지만, 나는 그걸 가로막는다.
"자, 입벌려"
"……"
"아-앙"
"……그거 관두래도"
푸념을 하면서도 제대로 입을 벌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최근에는 조금 마음을 터놓고 있는건지, 의외로 순순히 이런걸 받아준다.
"얼마전에 바다 갔구"
"헤에"
"다음에 갈래?"
"안 가"
"그럴거라 생각했어"
"그럼 묻지마"
"불꽃놀이는?"
"아?"
"불꽃놀이는 하는거랑 보는거, 어느걸 좋아해?"
"보는거"
"나아는 하는걸 좋아하는데"
"몰라"
텔레비전 소리를 BGM삼아 기분 좋게 히키오의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거스르는 일 없이 녹아가는 아이스크림을 급하게 먹으면서,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불꽃놀이 일시를 조사해봤다.
"오, 다음주에 불꽃놀이 대회 있네! 갈거지!?"
"어째선데……"
"가끔은 밖에 나와. 제대로 태양 빛을 쐬지 않으면 몸이 약해져"
"무르구만. 내 기준으로 보면 도리어 태양빛은 천적이다"
"어째선데"
……엣취! …"
"……"
"……, 감기 아냐"
완고하게 밖에 나가려고 하지 않는 히키오를 어떻게든 끌고나가고 싶지만, 당사자가 너무 의욕이 없다.
더위에 약한건지, 바깥 열기가 창으로 들어오는것조차도 싫어하니까 밖에 나가는건 상당히 고생할것 같다.
"그럼 또 올게. 제대로 배 따뜻하게 하고 자"
"……엄마냐"
…………
그런 일이 있었던게 3일전이다.
"……"
"그러니까 말했잖아. 쿨러 바람은 몸에 나쁘다고"
"……"
"어차피 소파에서 잤지"
"……"
"……괜찮아?"
"……머리아파"
침실에 누운 히키오한테서 평소의 날카로움은 없 다.
조금 홍조된 얼굴과 거친 숨소리가, 마치 자신은 여름감기입니다, 라고 주장하는것 처럼 보였다.
"……"
"……뭘 보는거야"
"아, 아니, 힘들어보인다- 해서"
"……취미 나쁘네"
"후후, 죽 만들어줄게"
"……식욕없어"
"안 먹으면 안 낫잖아. 약도 갖고 올테니까 조금 기다려"
나는 침실 문을 조용히 닫았다.
부엌으로 갈때, 한 장의 사진이 들어간 액자를 발견한다.
낯익은 사진, 이라고 할까 내가 찍은 사진이다.
봉사부 세 사람이 나란히 웃는, 졸업식때 찍은 사진.
"……헤에, 이렇게 웃는구나. 히키오"
히키오와 만난 몇 개월전부터 지금까지, 여러 일이 있었다.
떠올려보면 즐거웠던 일 투성이라, 어딘가 안심하고 히키오의 옆에 있을 수 있지만….
……히키오도 웃어줬으면 싶다.
그저 그 역할은 내가 아니다.
분명 유이나 유키노시타가…….
"……흥. 일단 죽 만 들자"
부엌 선반에는 충실한 요리도구와 식기가 나열되어 있다.
남자 혼자 사는데 왜 압력밥솥이 있는건지….
조리를 개시하고나서 15분 정도.
식욕을 돋우는 냄새가 났을 무렵, 나는 죽을 그릇에 옮겨서 방으로 가져갔다.
"자. 죽 만들었어"
"….…음. 헤에, 평범하게 만들 수 있군"
"얕보지 마"
히키오에게 그릇을 건내고 나는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
"……안 먹어?"
"아, 아니……. 평소처럼 아-앙해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 할리가 없잖아!"
"……그런가"
"………이리 줘"
"아?"
"내놔! 나아가 먹여줄테니까!!"
히키오의 저항도 적어서 나는 죽을 빼앗아 들었다.
평소처럼,
왜, 평소처럼 못하는거지.
평소의 나, 평소의 나.
……그래, 죽을 후-후- 불엉서 먹여주자.
그러면 히키오는 수줍어하고, 나는 평소처럼 말해주면 된다.
수줍어 마.
엇.
"으. 자, 자아. 히, 히키오. 훗후- 후후- 후-0 하고, ……줄게!!"
"……?"
"자, 자아!! 아-앙!!"
"…음"
"….…"
"응. 맛있어. 다시 봤다. 고마워"
"………어?"
한 마디의 감사.
그게 죽을 만들었다는것에 대한것인지. 아니면 내가 먹여준것에 대한것인지는 모른다.
그저, 그 한 마디의 작은 감사에, 나는 마치 몸을 뒤덮는 얼음이 녹여진것처럼 땀을 흘려버린다.
약간 증기를 뿜은 내 얼굴은 히키오에게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히키오의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열을 띤 입술이 다가왔다.
….…아니, 내가 다가가고 있는건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열이 전해질 정도로.
이제 몇 밀리면…….
"……가까워. 너, 뭐하는거야?"
"누아아아!? 아!? 뭐야!?"
"……. 땀 흘리고 있어"
"헤?"
"감기, 옮기 전에 돌아가"
"……. 흥, 안 옮아. 나아는 바보니까"
"……하하. 그랬지. 하지만 이제 정말로 걱정 필요없어"
"시끄러웟! ……감기 걸렸을때 정도는 조금은……나아에게 응석부려!!"
"하지만…"
"입다물라고……. 그럼 빚으로 해둘게"
"빚?"
"응. 그러니까, 이걸로 샘샘이지?"
히키오는 이상하다는듯 내 얼굴을 쳐다본다.
어째서일까, 나는 죽을 섞는 척을 하고, 그 눈에서 피해버린다.
이래선 누가 수줍어하는건지…….
그 후에 규칙 바른 숨소리가 들릴때까지, 나는 침대 옆에 앉아있었다.
민폐였으려나….
조금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그 자리를 뒤로한다.
나갈때, 이불에서 나온 히키오의 손을 도로 집어넣고, 잘 자고 있는지를 확인.
지금이라면 괜찮아.
슥, 감기로 뜨거워진 히키오의 뺨에 입술을 댄다.
히키오는 일어나지 않는다.
내 얼굴은 히키오보다도 빨개져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이게 한계다.
거기다
자고 있는 남자의 입술을 뺏는건 내 취미가 아니다.
나는 너를 돌봐준다. - 불꽃
히키가야
【도착했어. 어디야】
유미코
【좀만 더】
여름 끝.
8월도 하순에 접어들었을 무렵, 나는 사람이 오가는 역앞의 로타리로 걷고 있었다.
약속시간을 5분 정도 지나, 목적 장소가 눈에 보일곳 까지 도착한다.
주위를 찾아보니 바로 찾던 인물은 발견했다.
"여! 기다렸지!"
"응. 기다리게 됐다"
"뭐야 그거. 그래서? 어떤데?"
나는 내 모습을 강조하듯이 양손을 가볍게 옆으로 펼쳤다.
평소보다도 조금 걷기 힘들고 소매도 서늘해서 바람이 나부낀다.
보라색 생지에 한 마리 나비를 갖춘 간단한 무늬.
"……"
"……어때?"
"어울리지 않냐? 금발에 유카타는 어울린다"
"흐흥! 그치! 나아도 그렇게 생각했어!"
"걷기 힘들지 않냐? 집에 갈까?"
"어째선데! 자, 얼른 가자!"
평소처럼 성큼성큼 걸을 수 없어서 발밑에 주의하면서 걷는다.
히키오의 걷는 페이스도 조금 느릿하다.
나는 앞을 걷는 히키오의 손을 잡는다.
저항도 없이 쥐여진 히키오의 손은 조금 젖어있었다.
긴장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단순히 더운것 뿐인건지. 나는 그 이유도 묻지 않고 그냥 걷고 있다.
"……불꽃놀이, 보는거 좋아하지?"
"싫어하지 않아"
"오늘, 조금은 기대됐어?"
"……뭐, 조금은"
"후후. 간병해줬으니까 그 빋은 제대로 갚아"
"예이예이, 제대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요"
"기쁘다는 식으로 말해!"
"……, 이야아, 불꽃놀이 보는거 기대되네에. 불꽃놀이는 좋아하니까아. 불꽃놀이를 보면서 야키소바 먹는것도, 맥스캔 마시는것도 정말 좋아하지이"
"………"
"……왜"
"나아랑 같이 있어서 기쁘지. 그치?"
"……나아 씨랑 같이 있어서 기쁘네에"
"날려버린다!?"
"……하아. 미우라랑 불꽃놀이 대회에 와서……, 뭐어, 기쁘다"
히키오의 손이 조금 뜨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게 재미있어서 손을 꾸욱꾸욱 쥐어본다.
비스듬히 앞을 걷는 히키오의 얼굴을 볼 수 없는건 유감이지만 지금은 이거면 됐다.
왜냐면 내 얼굴도 지금은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
"사람 많아……. 더워……. 지쳐…"
불꽃놀이까 쏘아올려지는 강가의 언덕에는 그걸 보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포장마차에 줄을 선 사람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몇 미터를 걷는데도 시간이 걸려서 인파 속에 여름의 기온은 점점 상승해간다.
"너 말야, 조금 더 남자답게 행동해. 불꽃놀이 대회니까 이 정도 붐비는건 보통이잖아"
"……, 나는 사람의 밀집도에 비례해서 체력을 빼앗긴다고"
"평소부터 인도어 생활하는 탓이잖아"
"으. ……뭐, 틀리진 않나"
히키오의 주장도 모르는건 아닌건 확실하다.
역시 이 인파에는 나도 끙끙댄다.
거기다 유카타의 걷기 힘든 점도 있어서, 조금 몸이 무거워졌다.
"……."
"……, 미우라. 이쪽"
"하?"
인파에서 벗어나듯 히키오는 내 손을 잡아당겼다.
히키오가 가는 곳은 내객관람석.
거기에는 스폰서나 이 시의 높은 사람 밖에 앉을 수 없는 곳인게…….
"좀, 여기 멋대로 들어가도 돼?"
"응"
"하? 왜?"
"나니까"
"대답 안 되거든!"
입구 쪽에 스태프 같은 사람이 보인다.
히키오는 그 사람에게 뭔가 종이 쪼가리 같은걸 보여주자, 스태프는 웃는 얼굴로 우리를 최전선의 좌석으로 안내해줫다.
"뇌, 뇌물?"
"바보냐. ……지인에게 부탁했어"
"지인? 너 친구도 없는 주제에 지인은 있어?"
"자연스런 매도로구만"
좌석에 앉으니 몸에서 힘이 빠지듯이 피로가 빠져나간다.
히키오의 반바지 주머니에서 아까전의 종이 쪼가리가 힐끔 보였다.
나는 몰래 그걸 집어든다.
'내 남친이야! 가장 앞자리로 안내해줘!!'
'하루노'
"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하? 에, 아……"
"이, 이 하루노라는 사람은 누구야!?"
"유키노시타의 언니"
"어, 언니!? 자매 둘 모두에게 손을 댔다는거야!?"
"잠깐만. 둘 다라니 뭐야?"
"믿을 수 없어!"
"너는 희노애락이 격하네"
"이유가 있으면 말해봐. 상황에 따라선……"
나는 오른손을 꼬옥 잡아 보인다.
히키오는 기막힌듯이 그걸 제지하고 입을 열었다.
"이유고 자시고, 유키노시타네 언니에겐 놀림당하는것 뿐이야"
"……정말로?"
"거기다, 유키노시타는 너도 알겠지만 단순히 부활동이 같았던것 뿐인 관계. ……, 네가 생각하는 듯한 달콤한 관계가 아니야"
"……내 눈을 보고 말해봐"
"……, 나, 나랑 유키노시타는…"
"……"
"……"
말을 하던 도중에 히키오는 눈을 홱 돌린다.
"돌렸겠다!!"
"……도, 돌린거 아냐! 목이 아파진것 뿐이잖아"
"이쪽을 봐!"
나는 히키오의 얼굴을 잡아다 억지로 이쪽으로 돌린다.
눈이 두리번두리번 움직이고 눈썹이 내려갔다.
"……눈, 감지마"
"……"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했잖아"
"……거짓말 아냐?"
"……. 응. 거짓말 아냐"
공허한 눈동자가 조금 젖어있다.
볼의 낙엽이나 경직하며, 히키오는 부끄러움을 감추면서도 똑바로 말을 했다.
"……믿을래"
"아아, 믿어라. 그리고 그 손을 놔라"
"나참. 이상한 착각하게 하지 마!"
"멋대로 착각한거잖아
"말해두겠지만, 나아 바람은 용서못해"
"예이예이, 안 해요……. 헤?"
"……헤?"
"……"
"……"
뭔가 해선 안 될말을 해버린 느낌이 든다.
항상 마음에 있는 불확실한 것을 감추기 위해 단단히 묶어뒀을 체인이 빠져버린건지, 망가진 체인은 철렁철렁 빠져, 감정과 심정이 가는대로 말이 입에서 나와버린다.
"지, 지금 그건……"
히키오는 입을 다문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 나아. 나아는……, 너를…"
좋아, 해?
그 말은 히키오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쏘아올려진 불꽃소리로 지워져, 밝고 큰 빛의 원에 삼키어진다.
짝짝 울리기 시작한 박수는 마치 지금 일을 없었던것처럼 하듯 울려퍼졌다.
"부, 불꽃, 시작됐구"
"……아? 안 들려"
"불꽃!! 시작됐어!!"
"아아, 보면 알지만 말야"
"……예뻐"
"아아"
"좀 더 뭐라 말해봐!"
내 말을 몇 번 지우듯이, 큰 불꽃이 밤하늘에 오른다.
"예쁜걸. 나비가 날고 있는것 같아. 금색의 달이 떠오르는 밤에 보라 불꽃……, 나도, ……좋아해"
작은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온다.
하늘을 올려다본 히키오의 옆얼굴은 불꽃에 비추어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슨 말을 한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서로 마찬가지다.
살짝 히키오의 손을 쥔다.
움켜쥔 손에서 열을 느낀다.
기분탓일까, 아까전에 잡았을때보다도 뜨겁고, 힘이 셌던건 기분 탓일까.
나는 너를 돌봐준다. - 본심
녹색으로 물든 잎이 붉게 물든다.
애수가 감도는 계절은 마치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듯이 모습을 감추려고 했다.
가을은 갑자기 찾아와,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지나가버렸다.
그런 잠깐의 순간.
더위에서 서늘함으로 바뀌어가는 10월.
나는 강의 끝날 무렵에 시간이 남았다.
하는 일도 없이 멍하니 아이스 커피를 쳐다보고 있으니, 껌시럽을 세 개나 집어넣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 오늘은 히키오의 아이스커피 몫을 만들 필요 없구나…….
그 달달한 커피를 한입 마셔보지만, 입 안에 충분할 정도의 단맛이 퍼져서 도무지 입에 맞지 않는다.
"……달아"
하지만 맛있다.
오늘은 좋은 하루다.
아침부터 드물게 일어났으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가방에서 꺼내어, 몇 번이나 LINE 메시지를 쳐다보고는 히쭉거린다.
이걸로 아침부터 몇번째일까.
스마트폰에 비추어진 화면에는 행복한 메시지가 쓰여있다.
히키가야
【오늘 만날 수 있어?】
…………
애타는 마음을 참을 수 없다.
다리는 자연스레 빠른걸음이 되고, 전차 속에서는 좀 더 속도는 낼 수 없나 하고 운전수를 노려본다.
개찰구에서 전자 마그넷을 황급히 댄 탓에 붉은 램프와 고음 정지음에 나는 무릎을 친다.
다시 전자 마그넷을 갖다대고, 역의 계단을 두 칸씩 뛰어내렸다.
"하아하아……"
몇 미터 앞에 발견한 가는 체구의 남자.
무얼 생각하고 있는지, 그 녀석은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면서 로타리에 설치된 시계를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뒤로 접근해서 그 녀석의 등에 뛰어들었다.
"이얍-!! 기다렸어!?"
"읏……. …일단 등에서 떨어져"
"헤헤, 두근거렸지?"
"응. 허리가 부러지는게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수줍어 말라고! 그래서? 어디 갈건데!?"
"……왠지 텐션 높지 않냐?"
"일단 디즈니 랜드 갈래!?"
"얘길들어! ……이미 저녁이잖냐. 가는건 술집이야"
"평범하네! ……, 히키오가 마시러 가자고 하다니, 왠일이래?"
"……그런가? …그럴지도. 뭐, 여기서 서서 얘기하는것도 뭐하니까 얼른 가자"
해질 무렵 길에 그림자가 길게 뻗었다.
나는 히키오의 그림자를 밟으면서 뒤를 걷는다.
최근에는 히키오가 나를 선도하는 일이 늘어난것 같다.
조금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몇 개월 전까지는 완전히 다른 길을 다른 페이스로 걷고 있던 우리들이, 지금은 같은 길을 같은 페이스로 걷고 있으니까.
이렇게 그림자를 겹치며, 나는 계속 그와 함꼐 있고 싶다고 솔직히 바라고 만다.
그런 마음.
…………
조금 혼잡한 술집에서 맞이해준 점원에게 안내받아 개인실로 들어간다.
"아, 선배-, 늦다구요-? ……어, 헉!? 미우라 선배!?"
"……아!? 바보 후배!?"
"너무해!!"
"왜 네가 있는거야……"
"거꾸로 묻고 싶을 정도에요. 왜 미우라 선배가……"
잇시키 이로하…….
눈에 거슬린다.
없애버리자.
라고 생각한것도 잠시, 이 자리를 세팅했을 히키오에게 불평을 하는게 먼저다.
나는 히키오의 멱살을 잡아들어 노려봤다.
"어떻게 된 일이야!"
"가, 가까워. 가깝거든……. 어쩌고 자시고, 이 녀석이 마시자고 하니까 너도 부른것 뿐이잖아"
"읏――!? 헷갈리잖아!! 바보!!"
"잠깐만요 선배! 둘이서 마시자고 했을텐데요!?"
"하? 히키오, 어떻게 된 일?"
"미우라 선배하고는 관계없어요!"
"너……, 각오해"
"선배, 걱정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이 여왕을 반드시 쓰러뜨리겠어요"
"히키오, 잠자코 나아 뒤에 숨어있어"
"아, 점원 씨. 생맥주 셋이요"
잠시 지나, 험악하고 긴장으로 지배된 곳에 잽싸게 나타난 점원이 맥주 셋을 두고 간다.
가게 내에 흐르는 소음하고는 대조적으로, 우리들이 앉아있는 개인실에는 침묵이 흘렀다.
"……계절이 바뀌어도 맥주 맛은 변함없군"
"히키오, 설명해"
"저도 설명을 요구해요"
"……엥. 뭘?"
나는 히키오의 다리를 걷어찬다.
훌륭하게 하이힐이 뾰족하게 찔렀다.
"아팟!?"
"나아, 돌아갈래"
"하? 자, 잠깐"
"선배! 미우라 선배가 돌아간다고 하니까 돌려보내주자구요!!"
"……역시 안 돌아가. 그보다, 네가 돌아가"
"뿌-! 제가 선약이거든요!"
깊숙히 의자에 다시 앉고, 나는 히키오에게 일의 경위를 들었다.
잇시키 이로하와 히키오는 같은 대학이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몇 번인가 접점은 있었지만, 히키오가 어슬렁어슬렁 교류를 피하고 있었다던가.
"겨우 붙잡았는데……. 눈 위에 혹이 붙었어요"
"날려버린다"
짱나는 후배.
건방지고 남자 좋아하고.
……동족 혐오.
나는 이 녀석을 싫어하지만 본질은 닮아있다고 이해했다.
하야토도 마찬가지.
이 녀석하고는 상위점은 많이 있지만, 닮은점은 거의 닮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험을 느낀다.
지금도 또, 이 녀석은 나와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따뜻함에 기분 좋은걸 느끼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선배, 이번에는 미우라 선배를 안은거에요?"
"오해를 부를 법한 소리 하지마"
"그래. 나아는 딱히 히키오에게 안기지 않았거든"
"헤에……. 왠지 보기 드문 조합이네요. 미우라 선배는 훈남 취향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딱히……"
"……, 졸업식 때, 설마 미우라 선배가 고백할줄은 생각 못했어요. 좀 더 감정보다 머리로 움직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요"
"너보다는 앞뒤 생각하고 움직이거든. 하지만 그 때는……"
나는 히키오의 얼굴을 본다.
별 신경쓰지 않겠다고 마음먹은건지, 히키오는 맥주를 마셔갔다.
정신을 차리니 잇시키 이로하도 히키오를 쳐다보고 있다.
뭔가 생각하고 있는게 있던건지, 잇시키 이로하의 표정은 그녀가 하야토에게 차였던 '그 때'를 떠올리게 한다.
서로 '그 때'를 가진다.
기이하게도 결과는 같다.
"……반대로 선배는 지나치게 생각해요. 유이 선배를 찰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가?"
"그래요. 그렇게 멋진 사람, 선배 앞에는 두번 다신 나타나지 않을거에요"
이 녀석, 가끔은 괜찮은 소리를 하잖아.
확실히 유이 만큼 좋은 여자는 좀처럼 없고, 더군다나 히키오가 상대여선……, 전혀 없나.
"그러니까, 제가 선배의 여친이 되어줄게요!"
"어째선데!!"
"좀! 미우라 선배는 입다물고 있어주세요!"
"네가 입다물어! 히키오, 이런 여자는 나아가 허락 못하거든!"
"왜 미우라 선배한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건데요!"
"왜, 왜냐고?! 왜인데!?"
"……, 아니 몰라. 일단 둘 다 조용히 해. 다른 손님도 있잖아"
에다마메를 먹으면서 메뉴를 보고 있던 히키오는 평소와 다름없는 톤으로 우리를 주의한다.
갑자기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스마트폰이 떨렸다.
히키오는 그걸 확인하고 자리를 일어선다.
"음. 미안, 전화. 잠깐 자리 비울게"
"……"
"……"
다시 침묵이 흐른다.
"……너, 무슨 생각하는거야?"
"……, 다음은 뭘 마실까 생각하고 있어요. 미우라 선배야말로 뭘 생각하고 있는거에요?"
"너를 어떻게 으깨줄까, 생각하고 있구"
"무서워! ……, 실은 선배를 생각해요"
"……헤에"
솔직하게 대답한다고는 생각 못했다.
물론, 지금 말이 본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도저히 농담이나 특이한 소리를 하는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웃긴가요? 제가 선배를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면"
웃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런 진지한 눈으로 쳐다보면, 나는 고개를 피하고 싶어져버리잖아.
"더는 물러서지 않아요. 누구에게도 양보하지 않아요. 정말로 진실된 것을 저도 원하니까요…"
"정말로……, 진실된 것"
"뒤쫓고, 따라가서. 비겁하든 임시변통이든 좋아요. 그 둘에겐 미안하지만, 절대로 지지 않아요"
정말로 속얼굴을 본 느낌이 든다.
이렇게나 예쁘게 웃을 줄 아는 여자였나?
외모나 장식만 신경쓰고 있던 고등학생 시절하고는 다르다.
"왜, 왠지 죄송해요. 이런 얘기는 잊어주세요! 취한걸까나아~, 아하하-"
"……. 나아도"
"헤?"
"나아도, 히키오를 좋아해……"
나는 너를 돌봐준다. - 발돋음
솔직해 지려고 하면 할 수록 죄악감이 솟아올은다.
그런 마음과는 반대로,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은 그 녀석을 향해 뻗어갔다.
언제부터일까.
만났을때?
마셨을때?
외출할때?
…….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하나만 아는것이 있다.
유이나 유키노시타가 훨씬 히키오와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분명, 히키오는 나 앞에서는 웃어주지 않는다.
………
이 며칠간, 나는 히키오를 만나지 않았다.
걷히지 않은 마음으로 대학을 가서 강의를 받는다.
이렇게나 하루는 길었던가?
왜 못 만나는거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 대답은 바로 발견한다.
나는 만나선 안 돼.
더는 상처입고 싶지 않아.
잃고 싶지 않아.
지금쯤 뭘 하고 있을까.
제대로 밥은 먹고 있어?
또 커피에 껌시럽을 엄청 넣은거 아냐?
얼굴을 보며 말했던 그 무렵이 그립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
그건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었나.
………
강의가 끝나 돌아가는 길.
조금 쌀쌀해진 바람을 느끼면서 나는 작은 찻집을 발견했다.
시간은 많이 있다.
할일도 없이 시간을 죽이기 위해 그 찻집으로 들어갔다.
좁은 가게안은 금연의 모습은 없어서 나는 카운터석에 앉아 아이스티를 부탁한다.
무턱대고, 요즘은 전혀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였다.
지근지근 담배로부터 나오는 연기가 가게 안에 만연한다.
"조금 거북한데, 너는 남의 민폐를 생각할 수 없는거니?"
"나아가 어디서 담배를 피든 내 맘이지"
"정말이지,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나쁜 의미로"
"아?"
긴 흑발.
예쁜 얼굴.
앉은 모습은 어딘가 아가씨같다.
그녀는 겁없이 미소지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
"오랜만이야. 미우라 유미코"
최악이다.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과 조우해서 나는 진정시킨 가슴의 고동이 굳세게 움직인다.
"하아, 최악"
"어머, 그건 내가 할 소리야"
"……"
"……옛날의 기세 좋은건 어디 갔니?"
"…알바 아니구"
"후후, 상처입은 소녀같구나. 혹시 누구 씨에게 차였니?"
"읏!?……. 누구씨는 누군데. 나아를 차는 남자는……"
"……, 얼마전에 유이가하마하고 놀았어"
"……그게 뭐"
"아니. 그 때, 너와 그가 사이 좋다는걸 듣고 조금 신기했어"
"……잘못했나"
유키노시타와 눈을 마주칠 수 없다.
굉장히 나쁜 소리를 해버릴것 같아서.
부글부글 솟는 배덕감에 나는 거북함을 느낀다.
"……조금 분해"
"……하?"
"실언이야. 잊어줘"
"……"
"그의 일그러진 다정함이, 나에게는 굉장히 눈부시고 부러워서……. 그런 그를 좋아했어"
"하, 하아? 무슨 얘기야……"
"내 얘기야. 너는 아니니? 그와, 히키가야과 계속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 안 하니?"
놓치지 않겠다는듯이 쳐다보는 유키노시타의 눈동자는 어딘가 다정하게 미소짓고 있는것처럼, 내 마음은 그녀의 말로부터 헤어날 수 없다.
생각 않는다.
생각 않을리가 없다.
계속 함께 있고 싶다.
내가, 누구보다도 그 녀석의 옆에 있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 그 녀석이 원하는건 너희잖아. 나아는 딱히, 그 녀석이랑……, 있고 싶다는건……"
그 녀 석을 부정했을때, 눈물이 나와버린다.
멈출 수 없으니까 멈추려고도 하지 않는다.
망가진것처럼 흘러나오는 눈물은 카운터에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며, 나는 소리를 참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자. 너도 그와 마찬가지로 청개구리잖아"
"시, 시끄러워……. 으으. …딱히 나아는!!"
"우리에게 배려할건 없어"
"……읏!"
핵심을 찔린듯이.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게 되버린다.
"너, 다정하네. 히키가야도 보고 배우게 하고 싶어"
"……하, 하? 아까 너, 그 녀석을 다정하다고……"
"어머, 나는 객관적인 의견을 말한것 뿐인데? 이렇게나 미인이고 머리도 좋은 나를 차버리다니, 그는 분명 귀신이나 악마가 다시 태어난거야"
"……너도 차, 차인거야?"
"……글쎄. 옛날 일은 잊었어"
"……"
"고개를 들어. 눈물을 닦아. ……네 진심을 그에게 전해. 그러면 우리와 대등해"
"흐, 흥! 딱히 안 울었거든! 그보다, 너야말로 나아랑 히키오가 결혼하고나서 울어도 늦거든!"
"……겨, 결혼할 생각이야?"
"그 정도로 좋아한다고!!"
나는 눈물을 닦고 일어선다.
딸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였다.
가게 안에 등을 돌리고 걸어나간다.
그 녀석에게 전해야할 말이 있다.
"……돈, 내가 내야하는걸까"
………
낯익은 현관.
손잡이를 만져보니 깨닫는 땀.
긴장하고 있는걸까, 나는 평소보다도 무거운 문을 굳게 열었다.
"여, 여! 오랜만"
"음-? 아아, 여"
"평범하냐!!"
히키오는 거실 소파에 뒹굴거리며 소설을 읽고 있었다.
칠칠맞은 모습에 안도한다.
"또 너는 그런 차림으로…. 감기 걸려도 모르거든"
"으. 전에도 말했지만, 그건 감기를 걸리고나서 듣겠어"
"……아 그려"
졸린듯한 눈꺼풀에 감려진 눈동자가 나를 포착한다.
소설을 탁상에 두고 히키오는 천천히 일어난다.
"……. 무슨 일 있었어?"
"왜, ……. 너는 뭐든 꿰뚫어보는건데"
"뭐든 그런게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리는듯한 작은 목소리도 좋아해.
"손 잡아줘"
"……음"
따뜻한 손도 좋아해.
"머리카락 뻗쳤네"
"뒹굴거렸으니까"
부드러워보이는 머리카락도.
"……"
"……"
기분 좋은 분위기도.
"꼬옥……, 해줘"
"……. 하아, 오늘만이다"
따듯한 다정함도.
전부, 좋아해.
이외로 남자다운 가슴에 감싸이면서 나는 참을 수 없는 눈물과 본심을 중얼거렸다.
"너를 좋아해"
"……"
"다른곳에 가지마"
"……"
"계속, ……. 같이 있어줘"
"……"
길고 긴 침묵.
시계 바늘이 나아가는데, 어째서 나는 멈춰있는걸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히키오의 팔에 떨어지는 눈물이 자욱이 되어, 그리고 마른다.
지금까지대로 돌아간것 처럼.
우리의 관계도, 그때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버린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것 만으로, 나는 참을 수 없는 가슴의 통증을 느낀다.
"……. 나는 칠칠맞고, 제멋대로고, 별로 행동적인 인간이 아냐"
"……알고 있어"
"별로 남이랑 관계 맺는것도 잘하지 않아"
"……"
"……하지만…"
껴안는 힘이 세진다.
히키오의 가슴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와 있는건 싫지 않아. ……그러니까, 같이 있어줘. 내 곁에, 영원히"
달고 단, 녹아버릴듯한 커피.
아주 조금의 쓴맛도 느끼지 않는 단맛.
몸 속에 충만해져, 나는 힘이 빠져 히키오에게 기댔다.
"……좀 더 세게 안아"
"……어, 얼굴 가깝다고"
"정말…, 됐지?"
나는 천천히 얼굴을 가져간다.
입술에 느끼는 따뜻한 부드러움.
눈을 뜨니 새빨개진 히키오의 얼굴이.
그런 모습이 귀여워서, 짖궂게 한번 더 입술을 뻇는다.
"윽!? ……너, 너 말야"
"헤헤, 한번 더 할래? 이번에는 히키오가 해줘"
"에헤!? 잠, …무, 무리…"
"……음"
가볍게 눈을 감고 기다려본다.
몇초 후에, 열을 띤 입술이 천천히 겹쳐졌다.
"에헤헤, 뭐 합격이잖아? 내일부터는 하루에 한번 키스할것!"
"우, 웃기지마! 그런 바보 커플 같은……"
"바보 커플이잖아? 나아, 너를 엄청 좋아하는걸. 너는?"
"으……. 뭐어, 싫지는 않은걸로"
"제대로 말해! 나아를 좋아해?"
"……하아. 좋아해. 엄청이 붙을 정도로"
히키오는 일부러라는듯 고개를 돌려 뺨을 긁적인다.
수줍어하는 증거다.
히키오에 대해서라면 뭐든 안다.
좋아하니까, 사랑하니까.
옆에서 웃으면서 나는 히키오의 손을 잡았다.
믿음직스럽지 못한 가는 몸도, 지금은 이렇게나 사랑스럽다.
내가 지켜줘야지.
그런 생각을 해보기도.
"하아, 열심히 나의 타락생활에 정나미 떨어지지 마"
"말도 안 되구!"
"어떨련지"
"앞으로 계속 나아가 너를 돌봐줄테니까!"
나는 너를 돌봐준다. - after -1-
두 번째 인생이 있다면 그건 사랑해야할 상대를 찾아냈을때.
그 녀석이 곁에 있는것 만으로 시시했던 풍경은 칼라풀하게 칠해지고 차가웠던 바람은 다정하고 따스한 바람이 된다.
가을밤 하늘아래, 나는 어렴풋이 빛나는 별을 올려다보면서 밤길을 걸었다.
떠올려보면 여기는 전에 그 장소가 아닌가.
내 머플러가 바람에 날아가, 그걸 그 녀석이 주워줬다.
그리고 시작된 것이다.
"……여"
"늦어. ……음"
나는 묵묵히 손을 내민다.
그는 눈을 피하면서도 그 손을 잡았다.
"히키오, 마중 나와준거야?"
"아냐. 편의점"
"구라치네"
술자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내 귀가가 늦어지면 반드시 히키오는 마중나와준다.
"돌아가면 뭐할래?"
"잘래"
"같이?"
"……"
히키오는 싫어하지만 히키오의 다리에 내 다리를 감으면 따뜻해서 기분 좋게 잘수 있다.
이불 속에는 달달한 냄새가 감돌고, 그 냄새의 원천을 따라가면 히키오의 파자마에 도착한다.
"바로 수줍어하네. 너 변함없구나"
"……변했어"
"거짓말"
"정말이야"
"어디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걸 좋아하게 됐어"
이 녀석은 갑자기 나를 두근거리게 만든다.
무의식인건지 솔직한 소리를 솔직하게 말할때, 나는 히키오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된다.
"헤, 헤에! 그래!? 나, 나아랑 있어서 그렇게나 기쁘구나!!"
"……너라고는 안 했잖아"
"하아!? 그럼 누군데!?"
"하하, 코마치인게 뻔하지"
"빌어먹을! 시스콘!!"
히키오는 어깨를 들썩이며 앞을 걷는다.
익숙한 뒷모습에 당겨지듯이 나도 이 녀석의 뒤를 쫓는다.
"음, 미안. 걷는게 빨랐나?"
"으-음. 조금 천천히 걷고 싶을 뿐이야"
"……그런가"
이런 시간이 계속 이어지라고 간절히 생각하며, 나는 히키오의 손을 잡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계속 좋아하니까"
―――――
【두 사람의 거리】
히키오와 사귀기 시작한지 1개월이 지났다.
거의 매일같이 히키오의 집에 쳐들어가 의미가 있는듯 하면서도 없는 잡담을 하고는 시간이 지나간다.
강의가 휴강이 된 오후.
나는 생각할것도 없이 히키오가 다니는 대학으로 향했다.
할 일이 있든 없든 히키오는 대학교 연구실이나 도서실에 있는 일이 많은 것이다.
"여. 오늘은 여기에 있었어?"
"음. 조사할게 좀 있어서"
대학에 있는 도서실에는 누구나 입실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도 학생이 좋아서 있는건 아니지만.
뭔가를 조사해도 스마트폰 하나로 끝나버리는 이 세대에 누가 종이 매체로 조사를 할까.
"어디 갈래?"
"못 들었어? 조사할게 있어"
"검색하지?"
"전자정보는 양이 너무 많아"
"할방구냐"
히키오는 뭧 권의 자료를 들고 도서실 내에 설치된 개인실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물론 나도 뒤를 따른다.
"야. 좁으니까 따라오지마"
"나아의 맘이거든"
히키오는 한숨을 쉬고 의자에 앉았다.
가방에서 꺼낸 안경과 노트를 꺼내어 볼펜을 빙그르 돌린다.
"……. 가까운데"
"별 수 없잖아. 좁으니까"
"음. 그러니까 밖에 나가지?"
"저기 있잖아, 오늘 저녁은 뭐야?"
"……. 안 정했어"
"그럼 돌아가는 길에 슈퍼 들르자"
뭔가를 떠올린듯한 몸짓을 하며 히키오는 스마트폰 어플을 열어 무언가를 조사했다.
"여기. 여기 파스타가 맛있대. 별도 5개고"
"안-돼. 외식만 하면 몸에 좋지 않아"
"아니아니. 영양도 높다고 리뷰에서 말하고 있고"
"그런건 신용 못해"
"으으"
"그럼 오늘은 파스타로 할래? 만드는것도 간단하구"
"……그렇군"
히키오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집어넣고 노트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베이컨
달걀
가루 치즈
생크림
…….
"까르보나라가 좋아?"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까르보나라도 상관없어"
"상관없다니……. 뭐, 히키오가 먹고 싶다면 그걸로 좋지만"
"흠. 그럼 까르보나라로 하자"
알기 쉬운 녀석.
라고할가 솔직하지 않다.
저녁 메뉴에 만족했는지 히키오는 생생하게 두꺼운 자료를 뒤지고는 과제인 조사를 노트에 써간다.
좁은 개인실에 들려오는건 노트를 달리는 볼펜 소리와 자료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뿐이다.
안경으로 조금 가려진 옆얼굴을 보면서 나는 히키오의 뺨에 입술을 댄다.
"헤헤. 조금 두근두근 하네"
"……장소를 생각해"
"집이라면 좀 더 뽀뽀해도 돼?"
"……. 조금이라면"
"그럼 빨리 돌아가자!!"
"어째선데!"
――――――
【저녁밥】
"자. 베이컨 썰었어"
"음. 달걀 풀어줘"
"프라이픈, 기름 튀니까 조심해"
"애냐. ……뜨것!"
"애냐!"
………
……
…
.
까르보나라를 같이 만들고, 같은 테이블에서 같이 먹는다.
같이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같이 밥을 먹는다.
전부 같이 한다.
"맛있었어-!"
"아아. 까르보나라는 정답이었군"
"씻을테니까 물에 담궈둬"
"됐어. 내가 씻을게"
"음. 그럼 같이 씻자"
그릇을 거품칠하고 물로 씻어간다.
달칵달칵 소리를 내면서 옆에 선 히키오는 재빠르게 그릇을 씻어갔다.
"제대로 씻어"
"씻고 있어"
"물도 닦아"
"남자는 잠자코 자연건조다"
"아. 그렇지. 뽀뽀하는거 깜빡했어"
"하?"
"음-"
"바보. 그릇 들고 있다고"
"관계없어. …히키오가 해줘"
눈을 감고 고개를 조금 든다.
방금전까지 물을 쓰고 있던 손은 차가워졌을텐데, 내 볼은 열을 띠어서 붉게 물들었을 것이다.
몇초 뒤, 작게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고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과 겹쳤다.
나는 히키오의 가슴팍을 잡으면서 놓지 않도록 끌어당긴다.
"……음. …, 너, 너 말야. 갑자기 혀 집어넣지말라고 전에도 말했지"
"후후. 까르보나라 맛이 났어"
"그야 그렇겠지"
"히키오의 맛도 났어"
"……무슨 맛이야. 자, 얼른 그릇 씻자고"
"응. 추우니까 빨리 씻고 목욕하러 들어갈래. ……같이"
"안 들어갈거다"
나는 너를 돌봐준다. - after -2-
【외출】
"어디 가자"
"다녀오세요"
"너도 가는거야!"
가을이 끝나갈쯤 휴일.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에 은혜받은 오늘, 역시나 일찍 일어난 히키오의 옆에서 아침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쉬고 있었다.
요즘은 히키오에게 영향을 받은건지 하루종일 뒹굴거리는 날이 늘어난것 같다.
"날씨도 좋으니까 어디 놀러 가자!"
"뭐, 기다려. 가령 내가 한가하다고 하자"
"예정 같은거 없잖아"
"아울렛에 간다고 치고"
"오, 괜찮네 아울렛"
"걸으면 지치잖아?"
"그야 여러 가게를 돌아다닐거니까"
"그걸 사람은 노동이라고 부른다"
"……"
나는 조용히 텔레비전을 끄고 외출 준비를 한다.
싫어하는 히키오의 잠옷을 억지로 벗기고 평소부터 자주 애용하는 푸른 가디건과 얇은 코트를 들게 했다.
그래도 외출을 거부하려고 하는 히키오를 배빵 때리고 울상으로 순종하게 된 히키오와 집을 나온다.
조금 쌀쌀하지만 햇살이 비쳐서 따뜻하다.
역시 외출한게 정답이다.
가까운 역에서 대형 아울렛몰을 향해 전차를 타니 조금 혼잡한 차내에서 앉지 못하고 목적지로 향한다.
"조금 붐비지만 두 역이니까 참아"
"하아…, 다리 아프고 조금 춥고 머리 아프고 배 아파"
"운동부족. 자업자득이구"
"……배는 너 때문이잖아"
몇 분후에 도착한 목적지에 나와 히키오는 인파를 따라 전차에서 내렸다.
역시 휴일인것도 있어서 아울렛 몰은 혼잡하다.
"우와아, 엄청 붐벼. 자 히키오, 손 잡아"
"허나 거절한다"
"하?"
"사람이 많이 있잖아. 부끄럽잖아"
"미아가 되도 모르거든"
"미아가 되면 먼저 돌아갈거다"
"……먼저 돌아가면 팔을 분질러버릴거야"
"……. 싸이코냐"
"자, 분질러지고 싶지 않으면 손 잡아!"
"끄으응"
………
인파 속에서 천천히 걸으면서도 여러 가게에 들어가 시착을 반복한다.
모두 다 귀엽고, 그리고 나에게 어울렸다.
"후후, 어때? 어울려?"
"음, 괜찮네"
"이건?"
"좋네"
"이것도?"
"최고"
"죽여버린다!?"
"!? ……하아, 나한테 의견 구하지마. 여성옷의 유행은 몰라"
나는 시착한채로 히키오를 노려보지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모양인 점원은 싱글벙글 웃고 있다.
"……유행 같은건 아무래도 좋거든. 너는 어느게 좋다고 생각해?"
"……음. 그럼 그 옷이 나는 좋다고 생각해"
"에엥-, 이게 절대로 귀엽잖아"
"그럼 묻지마"
"왠지 커플 같지 않아?"
"바보같은 2인조로 밖에 안 보이겠지"
아까부터 싱글벙글 웃고 있던 점원이 다가와서는 시착하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후후. 남친이 추천하는 양복도 어울린다고 생각하는데요?"
"에에-, 그래요?"
"네. 노출도 적으니까, 남친분 입장으로는 안심할 수 있다고"
"헤? …히키오, 너…"
"잠깐. 적당한 소리 하지 말아줄래요. 저쪽 거울에서 니코니코니 연습이라도 하고 있어주세요"
속사포처럼 말한 히키오의 얼굴이 조금 붉어져있다.
여전히 점원은 싱글벙글 나와 히키오를 번갈아보며 웃을 뿐이고, 이 언밸런스한 광경에 나도 조금 웃어버린다.
"헤헤, 그, 그럼 그 옷으로 할까. 히키오도 이거면 안심이 되지?"
"……딱히"
수줍어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히키오는 가게 밖으로 나가버린다.
히키오가 골라준 옷을 점원에게 건낼때 힐끔 보인 반지에 눈이 갔다.
점원의 약지에 끼워진 은반지는 강하게 주장하지 않고 꾸며져있다.
"그 반지 귀엽네요"
"아, 죄송합니다. 일하는 중에는 빼야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해요. 어울리니까요"
"후후, 고마워요. 몰 안에서 반지 판매점도 있으니까 시간이 있으시면 남친이랑 가보시는건 어떤가요?"
"……반지…"
나는 문득 내 손가락을 쳐다본다.
이전에 새끼손가락애 끼워뒀던 핑크색 반지의 모습은 이미 없다.
"시간 있으면 가볼래"
그 후에 점심시간과 휴식을 두고 몰 안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쳐다보니 이미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한 무렵이 되었다.
반지 판매점에는 가지 못한 상태다.
"……. 슬슬 돌아가자. 저기, 히키오. 돌아가는 김에 밥 먹을까"
"……음. 밥먹기 전에 가고 싶은 가게가 있으니까 따라와줘"
"가고 싶은 가게?"
히키오가 앞을 걸어간다.
언제부터 잡고 있던걸지도 기억나지 않는 손에 잡아당겨지면서 나는 히키오의 뒤를 따라갔다.
어디로 가는건지 짐작도 가지 않은채로 나는 걸어간다.
히키오의 손이 조금 뜨거워진걸 깨달은것과 동시에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히키오는 그 가게 앞에 멈춰섰다.
"……장신구 가게…"
"음. 전에 받았으니까… 뭐어, 그 답례로…"
"받아? 나아, 뭔가 줬던가…"
히키오의 시선이 내 새끼손가락으로 이동한다.
그건 사귀기 전이다.
그리고 내가 제멋대로 히키오에게 건낸것.
묵직하게 빛나고 있던 새끼손가락의 반지는 그날 이래로 내 것이 아니게 됐으니까.
"그러니까 답례"
"……히키오는 말야, 그런 구석이 있네"
"이래보여도 성실한 남자야"
"하하. 뭐래, 그거. 답례라는거 됐어. 하지만 저기……"
"……"
"네가 나한테 어울리는 반지를 선물해줄래?"
"……. 센스는 보증 못하거든"
묵직하게 빛나고 있던 반지와 추억.
갑자기 밝게 빛을 뿜으니까, 나는 눈부셔져서 눈을 덮어버리고 싶어진다.
덮은 눈에는 눈물이 넘치는것 같다.
어째설까….
기쁘면 눈물이 나온다는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연보라색 라인이 들어간 은반지.
히키오가 내 손에 그걸 올려준다.
수줍어하면서 그래도 눈을 피하지 않고 히키오는 나를 쳐다봤다.
예쁘게 빛나는 반지에 손가락을 넣어, 강렬하게 남은 추억에 덧씌우듯이 행복이 중첩된다.
어울리는걸까.
왼손 약지에 끼운 반지를 히키오에게 보여준다.
"……헤헤. 귀여워! 어울려?"
"……어, 어울리지만, 그거…"
"고마워! 평생 소중히 할게!"
"……아, 그래. 하지만, 그거"
"?"
"……그거. 핑키 링이야"
얼굴이 뜨거워진다.
그러는건 물론 현기증에 가깝게 시야의 흔들림을 느낀다.
부끄러움을 넘어서면 인간은 아무래도 망가지는 모양이다.
"…하, 아, 아니. 잠, 이, 이건……"
"……. 미우라, 진정해"
히키오가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살짝 웃으면서 그는 살며서 속삭였다.
그건 귀에서 머리로 전해져, 몸속을 돌아다니듯이 행복이 퍼졌다.
언제까지나 함께.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다음에 또 오자"
나는 너를 돌봐준다. - after -3-
【수영장】
겨울의 추위가 가까워진 오늘.
평소처럼 히키오의 집에서 축 늘어진 나였지만 가주인 히키오 본인은 거기에 없다.
최근에는 세미나 논문발표가 가까워져서 연구실에 틀어박히는 때가 있다.
혼자 있기에는 지나치게 큰 방에서 소파에 앉아 나는 히키오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개그맨의 리드지컬한 예능을 흘려들으면서 스마트폰 화면과 노려보기만 하며 시간이 지나간다.
모처럼 휴일인데 그 녀석은 뭘 하는거야….
스마트폰을 노려보길 30번, 현관쪽에서 신발로 복도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느릿한 발소리.
발꿈치부터 지면에 닿는듯한 걸음방식인 히키오의 신발은 모두 발꿈치가 닳아있다.
"……. 음, 왔었냐"
"왔었어! 아침부터!!"
"…아침부터 왔었냐"
히키오는 벗은 아웃웨어를 의자에 걸쳤다.
"재대로 옷걸이에 걸어. 모양 망가지잖아"
"모양 망가진 패션이라는거야"
"닥치"
해가 저물기 시작한 무렵.
밖에선 아이들의 목소리와 5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히키오, 배고파?"
"음. 밥 만들까. 뭐가 좋아?"
"음-. 굴이랑 시금치 치즈 리조트 먹고 싶어"
"………좀 더 간단한걸로 해주지 않을래?"
"그럼 라면이랑 만두"
"네 위장은 종횡무진하구만"
방금전까지 지쳐있던 모습이 거짓말처럼 히키오는 평소 입는 에이프론을 입고 요리를 시작했다.
만두 밑준비를 시작한 히키오의 옆에서 나는 양배추를 식칼로 썬다.
"라면 츠케면 보쿠이케면~"
"낡지 않아?"
"음~. ……자자자자자자잠깐 기다려, 오빠"
"그거 아까 텔레비전으로 봤어!"
"유행하는 모양이야. 세미나에 있던 녀석이 말했어"
"………여자?"
"……아냐. 진짜로"
나는 들고 있던 식칼을 히키오에게 향한다.
"그럼 됐어. 자, 양배추 다 썰었어"
"……어"
―――――――――
"후아~, 배불러"
"응. 맛있었다"
다 먹은 식탁에 버라이어티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퍼진다.
남국 리조트의 로케이션 같다.
텔레비전 속에선푸른 하늘 아래 판소매 알로하셔츠를 입은 연예인이 큰 소리로 현지의 모습을 전하고 있었다.
"……, 다음 연휴에…"
"안 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어차피 하와이 가자고 말할거잖아"
"뿌-. 발리 섬이야"
"독같아"
"우리들 사귀고나서 어디에도 안 갔잖아!"
"갔잖아. 아울렛이나, 슈퍼나, 편의점이나"
"죄다 가깝잖아!!"
나는 텔레비전 전원을 끄고 테이블에 남아있던 식기류를 치웠다.
"긴급회의를 시작합니다"
"……뭐야, 갑자기"
"우선 사귄다는건 어떤걸까요"
"……함께 있는것"
"기, 깊은 소리 하지마. 정답은 행복을 공유하는겁니다!"
"…뭔지 진부하네"
나는 구글에서 조사한 페이지를 히키오에게 보여준다.
히키오의 시선이 몇초 좌우로 이동하고 화면 아래까지 도달하자, 기막힌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나를 쳐다봤다.
"……여기에 가고 싶다는거야?"
"그렇게 되겠네"
"여름에 갈거잖아"
"못 기다리니까 여기에 갈거야"
"……가고 싶지 않아"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너는 거절할 수 없어!!"
"하?"
나는 기세 좋게 일어서서 히키오를 내려본다.
그리고 소리 높여서 선언했다.
그 목소리는 히키오의 귀를 통해 뇌에 꽂힐게 틀림없다.
"이미 수영복을 샀으니까!!"
눈 앞에서 치마와 파카를 벗기 시작한 나를 보고 히키오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랬다.
"……계속 입고 있던거야?"
"응!"
"……"
"흐흥! 주말에는 온수 수영장에 가자-!!"
――――――――――
일주일 후
대형 레저 시설 앞에 있는 티켓 판매장에서 입장권을 구입하고 이상할 정도로 따뜻한 실온이 설정되어 있는 시설 안으로 들어간다.
"헤에~. 상상보다도 넓네"
"……꽤 사람 있네"
"이런건 바다랑 비교하면 적은편이잖아"
집합장소만 정하고 각각 탈의실로 나뉘어 들어간다.
로커에 짐을 넣어두고 빠른걸음으로 탈의실을 나왔다.
"어쿠, 빠르네"
"안에 입고 왔어!"
"또냐"
"그래서? 어때?"
나는 홀터 넥 비키니로 강조된 가슴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저번주에 산 옅은 보라색 비키니는 정숙하게 몸을 감싼다.
풋풋한 히키오의 허둥대는 얼굴을 상상하면서 산 것이다.
"음. 어울리지 않아?
"후? 에?"
"…응?"
"고, 고마워!?"
"뭐야 그거"
"아, 아무것도 아냐!! 자, 가자!!"
왠지 갑자기 부끄러워져서 팔로 가능한 가슴을 감추면서 히키오의 앞을 걷는다.
수줍게 만들려고 했는데 반대로 수줍어지면 본전도 못 찾는다.
실내의 온도 이상으로 뜨거워진 몸이 히키오에게 들키지 않도록 그렇게 빌면서 빠른걸음으로 수영장으로 가는것이 지금 가능한 저항이었다.
………………………………
"후와--!! 지쳤어-!!"
"그야 유수에서 역주행하면 지치겠지"
정석인 유수에서 파도가 나오는 수영장까지, 많은 종류를 요구하는 시설에서 몇 시간을 만끽한 나와 히키오는 점심을 먹기 위해 포장마차가 늘어선 에리어로 가서 테이블에 앉는다.
"야키소바 맛있어?
"음. 맛없지는 않아?"
"내 카레 엄청 맛없어…"
"…, 오늘 저녁은 카레로 할까"
"…응!"
나는 맛없는 카레를 숟가락으로 섞으면서 시설내에 갖추어진 다이빙대를 올려다봤다.
"밥 다 먹으면 저거 가자!"
"저건 안 가"
"어째선데!"
"…평화롭지 않으니까"
히키오는 야키소바를 십으면서 다이빙대로부터 눈을 피했다.
아무래도 슬라이더는 싫은 모양이라 오전중에도 다이빙대 근처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괜찮아 괜찮아. 저런건 애들 눈속임이야"
"어른이라면 속겠지. 저건 위험해"
"하? 어디가?"
"브레이크가 안 통해"
다이빙대에서 뻗어나오는 푸른 호스는 굽이굽이 굽어져 있어서 튜브를 탄 사람들이 다이빙대의 주변에서 미끌어지면 몇 초후에 아래쪽 수영장에 큰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타난다.
"그치?"
"그치? 가 아냐. 자, 다 먹으면 가자"
"잠시 소화중이니까 먼저 가-"
"소화종료. 자, 가자"
"끄응"
다이빙대가 가까워지자 높은 전장이 보인다.
뒤를 걷는 히키오가 말하기에는 "현실은 높다'인 모양이다.
튜브를 갖고 다이빙대 계단을 오르니 얼마 기다리지 않고 순서를 맞이했다.
"히키오는 뒤랑 앞 중에 어느게 좋아?"
"혼자가 좋아"
"어째선데. 그럼 나아가 앞이야"
"잠깐만 기다려, 이 튜브에 같이 자라는거야?"
히키오는 튜브를 집어들며 나에게 보인다.
튜브에 이르러선 평범하게 원형 튜브.
둘이서 타기에는 조금 작을지도 모른다.
"뭐, 달라붙으면 탈 수 있잖아"
"……나, 주목받는데"
"이제와서 생떼부리지마!"
"생떼가 아냐. 논리적인 판단이다"
"하?"
"이거 엄청 작다고"
"…너, 그런데는 변함이 없네"
나는 너무 고집피우는 히키오를 튜브에 억지로 앉히고 뒤에서 껴안듯이 나도 튜브에 앉는다.
"잠깐! 너!?"
"이, 입 다물어!! ……나아도 꽤 부끄럽거든"
튜브가 미끄럼틀을 질주하기 시작하자, 의식하지 않아도 밀착도는 늘어나버린다.
유수에 거스르지 못하고 달리는 튜브 위에서 들릴리가 없는 가슴 고동이 크게 운다.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곳에서 직접 느끼는 열과 숨결.
히키오의 등을 껴안듯이, 좌우로 흔들리는 튜브 위에서 나는 슬슬 다음 스텝으로 내딛어야한다고 결의를 굳힌 것이었다.
――――――――――――
"지쳤어…. 내일은 근육통에 걸리겠군"
"………"
"?"
석양지고 돌아가는 길.
기나긴 그림자가 둘의 뒤를 따라온다.
나보다도 키가 큰 입술에 닿도록, 나는 발돋음을 한다.
닿은 곳에 있는 행복을 느끼면서.
갑작스런 키스에 놀라는 그에게 나는 중얼거린다.
"오늘밤……, 안아줘"
나는 너를 돌봐준다. - after -4-
【변화】
수영장에서 놀았던 피로가 걸을때마다 늘어나는것 같다.
마치 지금도 물속에 있는 것처럼 몸은 무겁다.
별이 떠오른 밤하늘하고는 또 다른, 색기 있는 핑크색 네온이 주위를 비춘다.
오른쪽도 왼쪽도 죄다 호텔투성이다.
나는 팔에 걸리는 히키오의 체중을 끌어당기면서 걸어간다.
"자, 잠깐! 이쪽은 돌아가는 길이 아냐!"
"이쪽이 맞거든!"
"안 맞아! 에, 에로한 건물투성이잖아!"
"에, 에로하지 않거든…. 다, 다, 단순한 호텔이거든!?"
단순한 호텔은 핑크색 네온으로 입구를 비추고 있다.
정중하게도 건물 앞의 간판에는 숙박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거, 그게. 다리도 아프니까 여기서 쉬자!"
"여기선 못 쉬잖아! 여러가지 의미로!!"
"…나, 나아는 딱히!! …그저, 쉬고 싶은것 뿐이구…"
"쉬, 쉴거면 집에 가자고? 엉?"
"……"
지금까지 쥐여지고 있던 손이 떨어진다.
나는 뭘 질투하고 있는걸까, 떨어진 손을 굳게 움켜쥐었다.
어둡고
조용하게
그 자리에는 측면에서 힘이 더해지지 않는한 움직일 수 없을법한 무지근한 분위기가 둘러싸고 있었다.
"……"
"……어이, 미우라?"
왜 이렇게나 불안한걸까.
히키오는 이렇게나 다정하고, 나를 생각해주고 있다.
누구보다도 나를 좋아하고 있어준다.
…….
그런게 당연한데….
"……너는 나아랑…"
"……"
"야한짓 하고 싶다고 생각 안해?"
"……"
어둠에 감싸여서 히키오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히키오는 뭘 생각하고 있는걸까.
나에게 기막혀하나?
"……미안. 못 들은걸로 해줘"
"…사과하지마"
"……, 갖고 싶어"
"…?"
"네가 정말로 나아를 좋아해준다는 확증을 갖고 싶어"
확증 따위 있을리가 없다.
아무리 함께 있어도.
손을 잡아도.
키스를 해도.
갑작스럽게 나는 불안해지는 때가 있다.
"……하아, 너는 가끔 이상해지는구만."
"…아, 아니거든!"
"그런 확증……, 있으면 내가 바랄 정도야"
"…어?"
히키오가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부드럽고 따뜻한 히키오의 표정이 너무나 깨끗해서, 눈꺼풀 속에서 빛나는 눈동자가 반짝인다.
하늘에 떠있는 별 같은것보다도 훨씬 나를 끌어당긴다.
입술과 입술이 닿을 뿐인 키스.
"……나에겐……, 너밖에 없는것 같아.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하고, 만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좋아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등 뒤로 감긴 손으로 끌여당겨져, 나는 히키오의 가슴에 얼굴을 묻는다.
태양 빛을 띤 이불같은 냄새.
내가 정말 좋아하는 냄새다.
"……하아. 부끄러운 소리 하게 하지마"
"…, 좀 더. 좋아한다고 말할래?"
"……안 말해"
"헤헤, 좋아해. 정말 좋아해"
"네가 말하는거냐"
"좀 더 좋아해. 불안한 마음보다도 훨씬 더 훨씬 정말 좋아해"
빛이 천천히 반짝인다.
그렇게나 빛나지도 않은데 그건 확실히 빛나고 있고, 두근두근 얼굴을 엿보이듯이 나를 이끈다.
다시 잡혀진 손에 끌려 나는 그 자리를 뒤로했다.
"왠지 안심했어! 러브 호텔이 아니라도 할 수 있으니까 얼른 가자!!"
"잠깐 너, 입좀 다물어"
―――――――
【주정】
겨울로 들어가는것과 동시에 꺼낸 코타츠는 하루를 보내기에는 너무나 기분 좋고, 가끔 닿는 히키오의 발이 간지러워 웃는듯한 행복함을 느낀다.
저녁을 다 먹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꾸벅거리는 히키오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나는 대학에서 받은 어떤것을 떠올렸다.
"……아, 그러고보니 좋은거 받아왔어"
"음-……. 찌르지마"
"그럼 자지마. 감기 걸려"
"하하, 그런 바보같은 소릴…"
그렇게 말하면서도 눈꺼풀이 떨어지고 있다.
나는 조금 추운걸 참고 코타츠에서 나와, 받아온 종이가방을 들고 코타츠로 다시 들어갔다.
"우으, 추워"
"…zzz"
"자지마!!"
"읏!? 차, 차가웟!?"
나는 식어버린 손으로 히키오의 뺨을 잡는다.
으, 따뜻하네?
히키오는 몸 어디를 만져도 따뜻한걸까?
"이, 이거놔! 감기 걸려!"
"하하. 그런 바보 같은 소릴하네"
"……. 응? 그거 뭐야?"
"대학에서 받아왔어!"
코타츠 위에 종이 가방 안에서 상자를 꺼내자, 그 상자 안에도 완충재가 감겨있다.
"승구특금….…, 누구야, 이런 비싼 일본주를 준건. 제대로 사례는 했어?"
"마루오카가 갖고와서 받아왔어"
"그럼 사례는 필요없군"
"응"
나는 병을 쳐다보면서 어떻게 마실지를 생각한다.
추우니까 역시 데워먹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아까전까지 코타츠 안에서 나가려고도 하지 않았던 히키오가 비슬비슬 움직여서 몇 분도 안 되는 사이에 술병과 두 개의 사기가 준비되었다.
"어디서 스위치를 넣은거야"
"일본주는 좋아하니까"
"헤에. 나아는 그렇게 마신 적 없을지도"
"그럼 얼른 마셔보자"
.
…
……
………
…………
일본주 병이 반쯤 정도 비엇을 무렵, 아무래도 이 집은 조금 기울어있는 모양이라, 내 세계는 비스듬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있다.
멍해서 기분 좋다.
깊은 맛이 몸을 스미듯이, 사기에 부어진 일본주는 점점 사라진다.
"후우아~. 기분 조오아아"
"……좀, 과음한거 아냐?"
"맛있는걸. 얘, 좀 더 줘-"
"……그만둬. 내일 괴로울껄?"
"내일은 내일이잖아!! 지금은!? 지금이잖아!?"
"주정뱅이냐……"
들어올려진 술병을 되찾으려고 나는 히키오를 껴안았다.
안기 좋은 몸이다.
잠옷이 뒤집어져서 드러난 배를 발견하고 핥아본다.
"읏!? 너, 너어!? 뭘 핥고 있냐!!"
"배……, 히키오의 맛이 나!!"
"안 나!!"
"그럼 술 줘!!"
"아, ……"
도로 빼앗은 술병을 껴안고 나는 행복한 기분으로 히키오의 옆에 뒹굴었다.
"히키오-, 별로 안 마시네?"
"아? 벌컥벌컥 마실건 아니잖아"
"……마시게 해줄게"
"하? ……읍!?"
입에 머금은 술은 따뜻하다.
그건 키스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예의가 나쁘다.
나는 히키오의 입에 억지로 술을 흘려넣었다.
입에서 입으로, 내 성분을 머금은 일본주는 히키오의 몸에 빨려들어간다.
"음--. 푸핫! …헤헤, 마시써?"
"읏!! 너, 너말야! 너, 너무 취했어!!"
"안 취했거든-. 자, 아직 많이 남았고……. 음--"
"그만해! 바보!"
아으…. ….…후아~, 졸려졌어"
"하아, 그럼 자라. 이미 늦었으니까"
"응. ……침대까지 안아줘"
"……하아. 자, 오늘만 특별히다"
히키오에게 들어올려져서 그대로 껴안는다.
특별하다고 하면서 요즘은 거의 매일 안아다주고 있다.
행복에 감싸이면서 오늘도 하루가 끝나가는게 조금 아쉽다.
얼른 내일이 왔으면.
혹은 꿈속에서도 히키오와 함께 있게해줘.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히키오의 잠옷에서 손을 떼지 않고 잠에 빠진 것이었다.
나는 너를 돌봐준다. - if -1-
섣달을 맞이하려고 하는 11월 하순.
방의 문양 교체도 겸한 청소 도중에 그건 찾아냈다.
소부 고등학교 졸업 앨범
히키오다, 졸업 앨범은 한번도 보지 않고 친가 창고에라도 봉인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유산은 현대의 자산.
좋아, 조금 봐주자.
그렇게 생각해서 나는 졸업 앨범을 휙휙 넘겼다.
지인을 찾아내고 조금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춰,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버렸다.
롤링 페이퍼인건지,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 한 장.
나의 졸업 앨범에는 친구들에게 롤링페이퍼로 한가득 검은색으로 칠해졌지만 히키오의 졸업 앨범은 다르다.
몇 명의 인물이 썼을 롤링 페이퍼.
그건 너무나도 적은 그의 고등학교 생활을 상징하는 듯했다.
'힛키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진지하게 대답해줘서 고마워! 정말로 좋아해!!'
'고심참담. 너에게 딱 맞는 말을 보낼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유이와 유키노시타가 쓴 것일까…….
흠, 읽어선 안 될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하치만과 친구가 되어서 정말로 기뻤어! 앞으로도 잔뜩 놀자!'
'결국, 내 마음은 닿지 않았네. 히키타니, 실은……, 하야x하치가 아니라 하치x하야가 지고라고 생각해!'
토츠카랑……, 히나!?
……왠지 히나랑 히키오는 이상한 조합이네…….
'축하합니다. 선배가 생각해준 인삿말, 꽤 호평이었어요. 내년에 또 만나요. 꼭 붙어보일ㅇ게요!'
……호오.
그 바보 후배, 이때부터 노리고 있었나….
'대학생이란 어른이 되는 첫 걸음입니다. 당신처럼 달관한 소년이 바뀌기에는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되겠지요. 노세요, 즐기세요, 당신이 생각하는대로 보내세요. 봉사부에서의 활동은ㅇ 당신의 재산입니다. 고난곤란에 직면했을때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당신은 생각할겁니다. 봉사부에 입부시켜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아니, 딱히 답례를 바라는건 아니지만, 그저 대학생이란건 미팅도 가는 모양이죠? 합창 콩쿠르가 아니라구요? 합동 혼인활동 하티라구요? 아, 딱히 저를 불러달라는게 아니라, 당신의 성장을 보고 싶어서 저도 참가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의외로 빽뺵하게 채워진 백지 페이지를 쳐다보면서, 나는 오른쪽 아래 구석에 한 줄 쓰여진 말을 찾아낸다.
'히키가야, 나도 지지 않을거야'
누구의 말일까.
라며 조금 고민하는 척을 해본다
필적으로 눈치채버리는게 가슴 아프다, 이 글자는 틀림없이…….
"어이, 청소하는거 아니었어?"
"후우왓!? 뭐, 뭐야!?"
"아니아니, 그건 내 대사거든. 청소하라고 말한 네가 농땡이 치지마"
등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펄쩍 뛴다.
청소기를 들고 있는 히키오는 바닥에 앉아 졸업 앨범을 보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농땡이 아냐! 휴식!!"
"니트의 전매특허같은 소리 하지마. ……응? 졸업 앨범이야?"
"응. 그립네"
"이사 왔을때 코마치가 갖고 온건가. ……음, 그렇게 보지 말고 얼른 청소하자고"
히키오는 조금 억지로 이야기를 바꿨다.
졸업 앨범을 보고 싶지 않은건지, 아니면 부끄러운건지.
"……나아가 모르는 네가 많네"
"그야 그렇지"
"있잖아, 만약 고등학교 무렵에 만났다면…"
"일단 만났거든? 나, 너랑 같은 반이었거든?"
"그거 말고. 고등학교 무렵부터 너를 제대로 봤다면 하는 얘기"
"아아, 그래. 놀래라. 없는걸로 인식받았다고 생각했다"
"……나아, 한번 더 고등학교 생활을 다시 해보고 싶네에"
――if――
【문화제】
"야! 히키오!!"
"……왜"
"늘어지지마! 모든 교실 다 돌아볼거니까!!"
"다녀와. 나, 부실에서 쉴란다"
"으. …호오호오. 당당하게 바람 피우겠다고 선언하다니, 남자 다 됐다?"
"잠깐. 바람? 무슨 소리야. 부실에는 바보랑 독설밖에 없잖아?"
기분 좋은 소음 속에서 나와 히키오는 다른 반의 상연물을 돌아보고 있었다.
나른하다는듯이 뒤를 따라오는 히키오를 질책하면서 나는 그의 손을 잡는다.
"그보다. 시선이 따가우니까 손 놔"
"안 돼. 너 도망칠거잖아"
"안 도망쳐. 그러니까 놔"
"안 돼! ……신경 너무 쓴다고. 나아의 남친이니까 가슴 쫙 펴"
"오다 선생님한테 부탁해둬라"
사귀기 시작한지 3개월.
교실에서 히키오는 교제 전과 변함이 없고, 쉬는 시간에는 자거나 어디에 가거나 해서, 내가 말을 걸어도 크게 어울려주지 않는다.
이전에 나와 함께 있는 모습을 사가미에게 보인적이 있다.
그때 사가미의 표정을 떠올릴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깔보는 눈을.
"……왠지 빡쳐. 한번 더 사가미년을 날리고 올게"
"그만해. 부탁이니까"
"그럼 제대로 손 잡아. ……그, 그리고 내일 유지 스테이지에는 반드시 보러 와"
"알았어. 몇 번이나 말 안해도 잘 알어"
살짝, 세게 손이 쥐여진다.
히키오의 얼굴은 기막힌다는 듯이, 그래도 다정하다.
복도에 울리는 소음 속에서도 똑바로 들리는 히키오의 목소리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하고, 누구에게도 건내주고 싶지 않은 소중한 보물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봐요-! 선배애-!!"
"켁"
"흐흥. 그 반응은 츤데레네요! 알아요!"
"시끄럽네. 너"
라며, 잠겨있던것도 잠시.
시끄러운 목소리가 귀를 친다.
짱나는 후배의 맞이에 내 기분은 급강하했다.
"얼레? 오늘도 미우라 선배에게 잡혀있는거에요?"
"아? 이 자식,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못하도록 손가락을 꺾어버린다"
"무셔!! 좀, 그 눈 진심이잖아요!!"
"잠깐잠깐. 여기서 소란피워도 민폐야. 딴데서 해줘"
"여기가 아니면 손가락 부러지는거에요!?"
시끄러운 후배다.
싫다, 증말 싫다.
동족혐오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의 히키오를 대하는 방식은 내 역린을 칼로 그어올리는것처럼 화가 난다.
"하아, ……그래서? 무슨 용건인데?"
"얘기가 빨라서 다행이에요! 좀 곤란한 일이 있어서요…"
"곤란한 일?"
"잠깐, 히키오. 너 이 녀석에게 무르지 않아?"
"어? 그, 그런거 아니잖아"
"헤헹! 동생 캐릭터니까요!"
"코마치 말고는 인정 안해"
그런 대화를 잠시 방관하고 겨우 잇시키 이로하는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한다.
아무래도 문화제 끝나고 상담을 한다는걸로 히키오가 타협한 모양이다.
나는 소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뛰어가는 후배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드는 히키오의 옆구리를 친다.
"……"
"……뭡니까"
"전부 네가 사는거야"
"….…좋아, 알았다. MAX커피로 퉁치자"
"안쳐"
그 후에도 교내를 돌아다니니, 뭔가 히키오의 지인이랑 마주쳤다.
누나 화났다니.
루미루미 거리지말라니.
포인트 높다니.
……뭐야, 이 녀석의 교우관계가 치우친거.
게다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전부 여자라니….
그리고 또 만난건 여자.
조금 의외라는듯이 나와 히키오를 쳐다보며, 그래도 납득한것 처럼 히키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간만. 기억해?"
"……, 뭐"
"후후. 고마워"
"왜 감사를 하는거야?"
"어? …음-, 어째설까"
"이유를 모르겠네"
"…변했네…. 다음에 동창회 할테니까 와"
"변함없어. 나는. …그러니까 동창회에도 안 가"
"그런가…. 그럼 또 봐"
"음"
동년배 여성은 조금 유감스럽다는듯이 그 자리에서 떠났다.
어투에서 헤아리건데 아무래도 중학교 동급생인 모양이다.
"저거 누구야?"
"좀, 바람 현장을 발각한 새댁같은 소리 하지마"
"흥. ……의외로 옛날 여친이었다거나?"
"그럴리가 없잖아"
"허둥대잖아"
"……. 중학생때 고백하고 차였어. 그것뿐"
"……아 그래. 그것뿐이라면 됐구"
고백하고 차였다.
왠지 모르게, 히키오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나 생각하니 놀라버렸다.
변함없다.
이 녀석은 변함없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의 이 녀석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분하지만 그 매력을 눈치챈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하아. 나같은 녀석이랑 사귀는건 이후로도 너뿐이라고 생각해"
"후후. 그렇다면 앞으로도 함께 있는거네"
"……그런식으로 보냐. 좀 뀽하잖냐"
그런 잡담을 나누면서 나는 히키오의 손을 세게 잡는다.
탁함없는 진짜 마음.
나는 이 녀석을 너무 좋아해서.
주위의 여자가 전부 적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좋아한다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질리가 없다.
나는 너를 돌봐준다. - if -2-
소부 고등학교 문화제 마지막날은 오늘도 쾌청하다.
학급에서 출점한 찻집 출근날인 히키오는 오전부터 재빠르게 교실 안에 설치된 간이 부엌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검은 에이프런을 입은 히키오는 진짜 마스터처럼 위풍당당하게 행세하고 있었다.
"여. 수고했어"
"응. 그렇게 생각하면 교대해줘"
"싫어. 그보다 그 에이프런 어울리네"
"응. 나는 그런점이 있으니까"
"자기가 말하지마"
히키오와 같은 부엌을 희망했는데도 불구하고 유이와 히나의 강한 요망도 있어서 나는 홀에서 메이드 흉내를 내고 있다.
거추장하게 달린 프릴.
짧은 스커트와 니삭스.
……부끄러.
그보다 추워. 여러가지 의미로.
"……"
"보지마. 나아도 알고 있거든"
"풉. 놀랄만큼 안 어울리네"
"……쥐어짜버린다"
"무셧. ……자, 손님 왔어. 돌아가라 돌아가"
손을 휙휙 나한테 흔드는 히키오를 약하게 발로 걷어차고 나는 홀로 향한다.
……그, 그렇게나 안 어울리나?
"아, 유미코-! 도와줘-!!"
"유이, 너 되게 긴장해"
"그, 그치만 손님이 잔뜩인걸"
"하나하나 상대하니까 그렇잖아. 그런 구경하러 온 손님으누 물이라도 마시게 해둬"
"좀, 너무 무례한 소리를 하면 안 돼"
테이블 자리는 거의 만석.
100엔 커피나 쿠키를 위해 모인 손님……이 아니라 급사하는 고등학생 메이드를 목적으로 온 손님들이 점령하고 있다.
"그보다, 왜 메이드 찻집이야? 누가 발안한건데"
"엥!? 유미코가 찻집이 좋다고 했잖아!!"
"그래! 나빠!?"
"에-……"
몰래 빼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유이는 얼굴을 경직시키면서도 줄어들지 않는 손님의 흐름을 처리하기 위해 홀을 뛰어다닌다.
힘들어보이네, 라고 생각했더니 테이블석에 앉은 어떤 남자 손님이 스마트폰을 나한테 향하고 있었다.
그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스마트폰을 숨기고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어이, 너. 누가 촬영해도 좋다고 했어"
"어, 아, 그게……"
"도촬한거라면 나아도 잠자코 안 있을거야"
"……, 그, 그치만! 저기 저 사람도 찍고 있었다고!!"
그 도촬마가 황급히 손가락을 들자, 가리키는 곳에 서 있던 인물은 아뿔싸, 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넣는다.
멋쩍은듯이 그는 묵묵히 부엌 공간으로 사라졌다.
검은 에이프런이 흔들거리며 휘날린다.
"히키오!!"
"……. 왜 그래?"
"찍었지! 너, 사진 찍었지!!"
"바, 바보냐. 너, 내 인격이랑 인품을 몰라? 도저히 도촬할만한 인간이 아니잖아?"
"의심할여지가 없을정도로 도촬마거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인간. 빈약한 발상이구만"
평소대로 모습을 가장하는 히키오의 얼굴에선 폭포처럼 땀이 맺혀있었다.
"스마트폰 내놔!!"
"……흥. 건내주는건 상관없지만 비밀번호는…"
"8.0.0.0.0. 자, 잠금 해제"
"자, 잠깐만!"
나는 히키오에게 등을 돌리면서 스마트폰을 조작한다.
드물게도 당황하는 히키오가 뒤에서 와-왁- 거리고 있지만 나는 신경쓰고 사진 폴더를 열었다.
…….
"……너, 너 말야"
"……"
오늘 찍었을거라 생각이 드는 몇 장의 사진.
모두 동일인물의 피사체고 모두 메이드복을 나부끼고, 귀찮다는 얼굴로 비치고 있었다.
"호-, 헤-, 흐응-. ….…얘, 히키오. 나아 잘 어울려?"
"….…"
"우와, 이거 눈 게슴츠레하잖아. 삭제"
"……"
"이건 귀여우니까 남겨줄게"
"……"
"……뭐라 말을 해. 저기, 메이드복 입은 나아 귀여워?"
"……하아"
사진폴더를 다 본 나는 스마트폰을 히키오에게 돌려준다.
고집부리는 히키오는 팔짱을 끼면서 나를 돌아본다.
왜 잘난척인데.
"……뭐어, 그거 아니냐? 응. ….…안 그래?"
"후후. ……제대로 말해"
"……귀엽지 않냐?"
"뭐야 그 태도는"
"내 노력의 한계다"
"그럼 용서해줄게. ……그럼"
나는 히키오의 팔을 잡아다 얼굴을 가져간다.
키스를 하려고 하는건 아니다.
이렇게하지 않으면 사진에 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자, 귀엽게 찍었구. 나중에 나아한테도 보내줘"
"……예이"
"아, 그리고 도촬한 벌"
"아?"
나는 히키오의 뺨에 입술을 갖다댔다.
별로 학교에선 하지 않지만, 오늘은 특별.
도촬한 벌과
도촬해준 답례로.
"유미코도 힛키도 전혀 도와주질 않아-!!"
【유지】
"아으~. 긴장 된다아아"
"아-, 유미코-. 하로하로-"
유지 무대 뒤에선 이미 기타랑 키보드를 든 두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케이스에 든 베이스를 등에 짊어진 나도 유이의 긴장이 옮은건지 다리가 저린다.
"음, 다 모인 모양이군. 그럼 에비나는 키보드를 무대에 옮길 준비를 하고 오거라"
히라츠카 선생님의 지시대로 히나는 키보드 건반을 문화제 실행위원에게 부탁하면서 무대 옆으로 걸어갔다.
"그보다, 선생님 정말로 기타 칠 수 있어요?"
"흠. 공백기간이 있으니까 약간 불안하지만, 이 노래 정도라면 문제없겠지"
"후에~, 왠일로 선생님이 믿음직스러…"
"유이가하마, 너에겐 여러모로 가르쳐줘야겠구나"
선생님이 유이가하마의 목덜미를 잡고 사라진다.
무대 뒤는 문화제 실행위원의 우당탕탕 거리는 소음에 감싸여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손끝부터 얼어붙는듯한 차가움과 귀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조용함을 느끼고 만다.
긴장하고 있는건 당연하다.
나는 프로도 뭐도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니.
더군다나…….
"……하아. 힘내라, 나아"
작은 목소리는 자신에게 말을 하듯.
굳어버린 몸을 놀래킨것은 스마트폰의 착신음이었다.
LINE 메세지 수신음에 나는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히키가야
【보러왔어. 힘내라】
내일은 눈이 내리려나?
보기 드문 일도 있구나.
짧은 말에는 마법이 걸려있다.
기분 좋고 조용한 마법은 나를 감싸듯이 자연히 얼굴을 풀어줬다.
유미코
【잠자코 봐둬!】
――――
다아앙, 중저음을 울린다.
튜닝도 완벽하다.
어깨로 맨 베이스는 차갑게 나를 반사시키고 있다.
4줄 밖에 없는 현은 가늘게 떨리다 점차 사그라들며 소리가 사라졌다.
"아-, 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문화제 한정으로 편성한 걸즈 밴드입니다"
마이크를 탄 내 목소리는 체육관 안에 울려퍼진다.
신기하게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 중에서도 그 녀석은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긴장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얘기를 할게요"
체육관에는 적이 웃음소리가 넘쳐난다.
"나아, 이렇게 되먹었구, 까놓고 말해 성격도 완전 그대로고, 잘 질려하구, ……전부 적당하게 해왔어"
솟아오르는 체온은 멈추지 않는다.
화조띤 몸의 원인은 그 녀석 때문이다.
그 녀석은 내가 보내는 시선을 깨닫고 있을까.
"하지만, 정말로 좋아하는걸 찾아냈으니까……. 진심으로 그 녀석의 전부를 원하니까"
나는 그 녀석의 모든걸, 진실된 모든것을 원한다.
그러니까, 들어줘.
내 진심과 진실된 관계.
"……. 많이 연습해왔으니까, 제대로 들어둬"
뷰티풀 스토리
………
……
…
.
.
방금전까지의 소음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문화제가 끝난 체육관은 그저 넓기만 하고 어둡다.
폐회식과 함께 끝난 문화제는 흥분과 추억만을 남기고 모습을 지웠다.
그만큼 해왔던 준비도, 끝나버리면 쓰레기통행이다.
높은 천장과, 붉은 석양을 반사하는 바닥.
부대위에서 쳐다보는 광경운 연주중하고는 완전히 다르게 쓸쓸하다.
하지만 싫지 않다.
아무도 없는 체육관은 마치 세상에서 한 공간을 떼어낸것처럼 조용히 나를……, '우리'를 둘러쌌다.
"……여. 교실 녀석들은 뒷풀이 하러 갔어"
"히키오는 안 가?"
"안 가"
"그럼 나아도 안 가"
20미터는 떨어진 곳에서도 목소리가 들린다.
그 녀석의 목소리는 아무리 작아도 나에게는 들린다.
"……하아. ……갈게. 얼굴만 내밀기로 할게. 그러니까 너도 제대로 가라"
"헤헤, 그럼 그렇게 할게"
"……그보다, 뭐하는거야?"
"추억에 잠겨있었어"
"너답지 않네"
"……어땠어? 나아의 노래"
"……음. 나쁘지 않았어"
"그치. 많이 연습했으니까"
"호오. 그렇게나 밴드를 좋아했나"
무대에서 뛰어내리자, 작은 충격이 다리를 타고 전해진다.
여기는 꽤 높았구나.
"아니거든. 좋아하는건 밴드가 아니라……, 너"
"하아?"
"히키오에게 칭찬받고 싶었으니까 열심히 한거거든!"
아무도 없는 체육관에서 나는 천천히 걸어서 히키오의 옆으로 간다.
히키오는 와주지 않으니까.
하지만 반드시 나를 기다려준다.
"……그런가. 꽤 아름다운 목소리였고, 베이스도 좋았어. …이거면 돼?"
"후후, 수줍어해? 눈, 뒤집혔는데"
"아냐아냐. 석양빛이 내 눈을 말이다. ……이거, …그거하고 있다"
"그거-? 그거는 뭔데?"
"으-. ……거, 거 봐. 뒷풀이 가야하잖아. 얼른 가자"
"풉. 부끄럼감추기네. ……그럼 갈까"
팔을 껴안자 히키오는 한숨을 쉬면서도 저항을 하지 않는다.
문득 히키오가 다리를 멈춘다.
왜 그런걸까, 생각한 순간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에 닿았다.
평소라면 절대로 해주지 않는.
히키오의 키스.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게 될것 같다.
"…후, …으에?"
"……. 그, 그거다. ……석양이 눈부셨으니까……"
-if- END
………
……
…
.
.
"라는 느낌으로 망상해봤어"
"……됐으니까 청소를 도와주겠습니까아"
나는 너를 돌봐준다. - last -1-
되풀이 되는 질문에 곤란해한다.
마치 당신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라는듯한 위압적인 질문의 응보에 나는 한숨을 쉴 뿐이라,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눈 앞에 앉은 안경을 낀 중년은 나를 내려다보듯이 빨간펜을 빙글빙글 돌린다.
"……미우라 씨. 당신이 저희 회사를 선택한 이유는 뭐죠?"
"아, 어, 어음, 귀사의 기업이념과 사회활동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하여 그리는 이상적인 일을 하는데는 귀사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후-. 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뭔가 질문 등은 있나요?"
"……없습, 니다"
.
…
……
………
…………
불쾌한 땀으로 등을 빨아들이는 와이셔츠가 기분 나쁘다.
신는데 익숙치 않은 하이힐 탓에 다리도 아프다.
생각대로 되지 않은 면접에 마음이 침울해진다.
오늘로 몇 번째일까.
2차 면접에도 가지 못하고 탈락되노다.
그런데도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이 이상 뭘 하면 되지?
ES를 몇 번이나 다시 썼다.
머리색도 검게 물들였다.
면접 연습도 몇 번이나 했다.
이 이상 뭐를….
무거운 발걸음으로 나는 히키오가 기다리는 집에 도착한다.
현관을 열려고 손잡이에 손을 대지만 문이 잠겨있었다.
아무래도 히키오는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다.
"……"
뭐든지 제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짜증을 감추지도 않고 난폭하게 열쇠를 꺼내어 연다.
바로 리쿠르트 수트를 벗어버리고 핫 팬츠와 셔츠로 갈아입어 소파로 뛰었다.
"…왜 없는거야! 달래달라고!!"
…….
허무하다.
손발을 성대하게 날뛰어봐도 면접관의 얼굴은 잊혀지지 않고, 히키오도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
오늘은 잔뜩 응석부리자.
있는 힘껏 껴안고, 좋아하는 밥을 같이 먹고, 머리를 말려달라고 하고, 팔배게를 해달라고 하자.
히키오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조금 마음이 풀린 나는 수트를 옷걸이에 건다.
바로 돌아올 히키오를 기다리면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어라, 어느새 잠들어버렸나….
눈을 비비면서 창밖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방금전까지 푸른 하늘이 아닌, 붉은색과 검은색 사이인, ……조금 불안하게 만드는 하늘색으로 변해있었다.
"18:30……. 이런, 3시간 정도 자버렸네…"
아니, 히키오는 아직 안 돌아온건가?
늦어진다는 연락도 안 왔다.
오늘은 연구실에 갔을텐데…….
나는 불안한 마음을 부딪치듯이 스마트폰으로 히키오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유미코
【빨리 돌아와!!】
그 메세지에 기도고은 붙지 않는다.
몇 분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고, 그 메세지는 그저 혼자서 거기에 자리잡는다.
유미코
【몇 시쯤에 돌아와?】
단 둘만의 대화방.
그래도 기독은 붙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양손으로 잡으면서 나는 다시 시계를 확인한다.
19:00
평소라면 저녁을 먹고 있을 시간이다.
…….
그래, 가끔은 만들어주자.
분명 히키오도 지쳐서 돌아올테니까.
…….
넓고 조용한 부엌.
식칼과 도마가 부딪치는 소리와, 냄비에서 들리는 볶는 소리만이 그 자리에 울린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외로움쟁이가 되버린거지.
……한심해.
그리고 그릇으로 갖춰진 테이블에는 여러 종류의 요리를 올린다.
시계 단침은 이미 8을 지나가버렸다.
……먼저 먹어버릴까.
라고 생각하니, 현관쪽에서 낯익은 발소뢰가.
왔나!!
"……다녀왔, …우오!?"
"늦어!!"
거실 문이 열리는것과 동시에 히키오에게 돌격을 먹 인다.
배 부근을 노리고 뛰어들자, 히키오는 조금 허리를 굽히면서도 그걸 참았다.
"늦어늦어늦어! 뭐하던거야!?"
"너, 너 말야……. 연구발표회라고 했짢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뭐어"
뭔가를 포함한 말투다.
히키오를 껴안았을때, 조금 불쾌한 냄새.
담배냄새 속에 니코틴이 포함된다.
"……담배 냄새…"
"음, 술자리에 있었으니까"
"밥, ……먹었어?"
히키오는 테이블 상황을 확인하고 평소처럼 다정하게, 따뜻하게 입을 열었다.
"….…마시기만 했을 뿐이야. 밥은 안 먹었으니까 배고파"
분명, 그런 다정함도 지금의 나에게는 따갑고 괴롭다.
뭐라 형용못할 무언가가 가슴에 꽂혀서, 감정이 입에서 흘러나오듯이 새어나온다.
"……안 먹어도 돼"
"아?"
"실은 밖에서 먹고 왔잖아. 그러니까 무리 안 해도 돼. 나아도 먹을 생각이 없으니까"
불은 켰을텐데, 히키오의 얼굴을 보려고 하면 마치 조명이 사라진것처럼 검고 흐려지고 만다.
이런 소리를 하고 싶었던게 아니다.
"……이제 지쳤으니까 돌아갈래"
"야, 미우라……"
틀렸다.
더는 무슨 말을 하면 안 돼.
부탁이니까 그만해. 나.
"…소름. 손 놔"
"……. 무슨 일 있었어?"
"아무것도 아냐"
"거짓말 하지마"
그만해.
나를 부수지마.
내딛지마.
"…읏!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잖아!!"
슬프다는 듯이, 놀랬다는 듯이, 비통할 정도로, 히키오는 내 손을 살짝 놓았다.
지키고 싶다.
하지만, 상처를 주고 있는건 나다.
그는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강하니까.
내 안엔서 그의 존재는 너무나도 컸으니까.
그런 그를 나는 거절해버렸으니까.
놓아진 손을 허공을 가르고 낙하했다.
나는 히키오에게 등을 돌린다.
아무 소리도 듣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집에서 뛰쳐나오듯이 도망쳤다.
현관에는 작은 금속음이 울려퍼진다.
결별하듯이, 나의 새끼손가락에서 스르릉, 핑크색 반지가 떨어졌다.
나는 너를 돌봐준다. - last -2-
유릿잔 안에서 얼음이 딸랑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액체의 부력이 사라져 자유낙하한 얼음은 유릿잔 안에서 작은 덩어리가 되어 둘로 나뉘어진다.
아무래도 깨닫지 못한 사이에 커피를 다 마셔버렸던 모양이다.
아무리 껌시럽을 넣어도 쓰다.
역시 틀렸군.
내 몸은 MAX커피밖에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언제적 '그 녀석'에게 얻어마신 찻집에서 시간을 죽인다.
그때하고 다른건……
생색 대는 녀석이 눈 앞에 없는것뿐.
그것 뿐이다.
"……"
미우라가 집을 나간지 3주째.
털털해진 내 주위에는 그 녀석과 만나기 전으로 거꾸로 돌아간 공간이 펼쳐졌다.
외톨이 최고.
외톨이야말로 지고.
외톨이…….
라며 조금은 고등학생시절처럼 반발해본다.
나는 지금도 옛날도 변하지 않는다.
변할 수 없다.
……….
찻집에 한 명의 남성이 들어왔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늦어"
"하하하. 갑자기 불러내놓고 그건 아니잖아"
"으……. 마침내 집합시간도 지키지 못하게 된거니? 네 존재가치는 이산화탄소 이하구나"
"유키노시타의 흉내야?"
"장난이잖아?"
"화나네. 그래서, 불러낸 이유는 뭐야?"
그는 커피를 블랙으로 마셨다.
지옥에서나 할 짓이다.
하지만 이 녀석이 껌시럽을 많이 넣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나를 도와라, 하야마"
.
…
……
………
…………
알코올이 몸에 충만해지는 듯한 감각.
중력이 사라지고 두등실 하늘에 떠있는것 같은…….
하지만 그때 일을 떠올리면 혈액을 도는 알코올은 모습을 지우고 나는 현실로 되돌려진다.
나는 전원이 꺼진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만나기로 한 바에서 칵테일을 기울였다.
바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한 명의 여성이 나타난다.
"……늦어"
"어머, 갑자기 불러내놓고 그 소린 아니지 않을까"
"으. ……집합시간도 못 지키다니, 마침내 시계 보는법도 까먹어버린거냐?"
"……누구 흉내를 내는건진 모르겠지만 엄청 열받는다는건 확실하네"
"흥"
"그래서 갑자기 불러낸 이유를 슬슬 들려주지 않겠니"
나는 비어버린 칵테일을 다시 주문하고 그녀도 같은 것을 주문했다.
아름다운 흑발이 귀에 걸리듯이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올린다.
"……봉사부에 의뢰가 있는데…. 유키노시타"
조금 놀란듯이,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나를 쳐다바ㅗㄴ다.
자세바른 그녀의 놀란 표정은 조금 웃어버린다.
그런 점이 세상에 둥 떠있다고 해야할까.
유이가 신경쓰고 싶어지는 이유도 알아버린다.
"……그리운 이름을 꺼내는구나. …그래서, 의뢰 내용은?"
"……. 몰라"
"하?"
"모른다고. ……어쩌면 좋을지"
"….…. 끼리끼리 부른다는건 정말인 모양이구나. 무척이나 닮았어. 유이가하마하랑"
"……"
"감각과 감정으로 움직여. 앞뒤 생각하지 않아. 그런 주제에 후회는 남의 배로 한다니까"
"시끄러워. 그래서? 어떡하면 돼?"
"조, 조금 더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지 않겠니"
"엥, 좀 부끄러우니까 말 못하는데"
"상담할 생각이 있긴 한거니……"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시타는 기막혀하면서도 칵테일을 기울인다.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히키오와 닮아있어서 나는 이 녀석이야말로 끼리끼리 부른다고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버리지만, 왠지 모르게 분하니까 말하진 않는다.
"……히키오의 다정함에 응석부려서 심한짓을 해버렸어"
"……그래"
"…나쁜건 전부 나인데"
"……그럼 사과하면 되잖아"
사과하면 용서해준다.
히키오니까 아무일도 없었다는듯이 대해줄 것이다.
하지만 만일이라도.
아니, 억분에 일이라도.
히키오에게 거절당하면 나는 재기할 수 없게 된다.
모든걸 부정당하는, 그런 상상이 머리를 스쳐지나가버린다.
"……무서워. 그 녀석이랑 떨어져버리는게, ……굉장히 무서워"
"……"
이 몇개월간의 추억이 시커멓게 칠해져 눌려버린다.
나는 그 녀석이랑 함께 기억을 열심히 색을 칠해왔다.
"히키가야는……, 반드시 도와줄거야"
"……"
"나도, 유이가하마도, 잇시키도, 카와사키도, 에비나도, 하야마도, 언니도. ….…다들 그에게 구해졌으니까"
"…"
날카롭게 노려보는듯한 시서너은 어딘가 화나있는 모양이다.
마치 연적을 노려보듯이.
아니,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연적이 되는건가.
"너도 반드시 구해질거야. 그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너라면, 반드시 구해져"
"그, 그런건…"
"그를 신용할 수 없어?"
"아, 아니….…, 지만"
"그럼 내가 받아갈게. ……그를 나에게 줘. 적어도 지금의 너보다는 그를 신용해줄 수 있고, 너에게 지지 않을만큼 그를 사랑해보이겠어"
가게 안에 흐르고 있던 BGM이 갑자기 멎는다.
마치, 조용한 폭풍으로부터 도망치듯이 공기도 소리도 모든것이 얼어붙었다.
"……라는건 농담이야. 미안해, 지금부터 일이 있으니까 실례할게"
"아, 잠……"
"…잊지 말아줘. ……나나 유이가하마가 아직도 그를 좋아한다는걸"
"읏! …"
"………그를 슬프게 만들면…… 네 일족을 전부 말살해줄게"
그런 말을 남기고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가게를 뒤로한다.
나는 뒷모습을 쳐다보는수밖에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신랄해서 도저히 달래는듯한 다정한 말이 아니었다.
나는 상담상대를 잘못 택해버린걸까…….
그녀를 진심으로 만들면 얼마나 무서운지, 오늘 처음으로 깨달은것 같다.
그래도 그녀의 말이 나를 움직이게 한건 사실이다.
지지 않는다.
절대로 질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게 해준것만으로 그녀에게, ……봉사부에 상담한 가치는 있었던걸지도 모른다.
.
…
……
………
…………
바에서 유키노시타 유키뇌와 대화를 하고 몇 시간 후, 나는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천천히 걷는다.
정신을 차리니 숨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겨울이 왔다.
추위하고는 반대로 어딘가 가슴속에서 뜨거워지는 감정이 내 몸을 옭아맨다.
만나고 싶다.
또, 상냥하게 꼬옥 안기고 싶다.
퉁명스러우면서도 옆을 걸어줬으면 싶다.
따뜻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받고 싶다.
"……용서해줄까나…"
"너무 뻔뻔한거 아니야?"
돌아올리 없는 혼잣말이 대화를 시작한다.
무심코 나는 그 목소리의 주인을 노려보지만, 마치 유령을 봤을때처럼 전신에서 힘이 빠져버린다.
피가 식어버리듯이, 나는 그 녀석과 눈을 마주치는 시간에 비례해서 체온이 떨어져간다.
"…읏. …하야토"
"안녕, 오랜만이네"
신님은 잔혹하다.
만나고 싶다고 바라면 만나고 싶지 않은 녀석을 나에게 다가오게 하니까.
"……, 오랜만"
"히키가야랑 사귀었다며. 그에게 들었어"
사귀었다.
그 발언의 진의를 물을 시간도 없이 그는 계속 말한다.
"학생시절부터 너는 표면상으로 밖에 남을 보지 않았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내가 너를 찬 이유야. 유미코"
"읏……"
"히키가야랑 사귄다고 듣고, 조금은 너도 인간의 내면을 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그 무렵이랑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네"
"…네가 뭘 안다는건데"
"그에게 의존하고, 응석부리고, 의지해서…. 그 결과, 그를 상처입혔지"
내가 모르는 하야토다.
이렇게나 감정을 드러내고 얘기하는 녀석이 아니었다.
그리고 하야토의 말이 확신을 찌르고 있다는것도 사실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다정한 그라면 분명 용서해줄거야. 하지만, 그렇게해서 만들어진 관계는 '진실된 것'이야?"
용서해준다.
그 녀석은 다정하니까.
하지만, 그건…….
진실된 거야?
빙글빙글 돌아가는 사고에 생각이 쫓아가지 못한다.
"너는 그의 곁에 있어야할 인간이 아니야"
그리고 하야마 하야토는 내 앞에서 사라진다.
무겁고 무거운 말을 남기고.
한 통의 메세지가 스마트폰에 수신된다.
그건 끝을 고하는 메세지.
마지막 메세지.
히키가야
【미안.】
――――――――
"하아하아하아……!"
숨이 끊어지려고 해도 신경쓰지 않고, 나는 믿을 구석 없이 머리에 떠오르는 곳을 뛰어다닌다.
함께 밥을 먹은 집.
과제에 둘러싸인 도서관.
달달한 커피를 마신 찻집.
푸른 하늘 아래서 피크닉을 했던 고원.
떠오르는 곳으로 가보지만 그의 모습은커녕 인영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젠 날짜가 바뀐다.
LINE 메세지는 돌아오지 않는다.
깨닫고보니 발에선 피가 나오고 있다.
그래도 계속 달리는건,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싶었으니까.
눈물은 멎지 않는데, 나와 히키오의 시간은 멈춰버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전하고 싶다.
고마워.
좋아하게 해줘서.
나도 정말 좋아해.
라고.
겨울 하늘은 용서없이 체력을 빼앗아간다.
더는, 떠오르는 곳은 없다.
……아니, 한 곳이 있다.
아주 작은 가능성에 매달리듯이, 나는 대로로 나와 택시를 세운다.
"죄, 죄송합니다! 치바의 소부 고등학교까지!!"
.
…
……
………
…………
……………
어두컴컴한 교정이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몇년 만일까.
소부 고등학교위 뒷문을 지나, 강사전용 입구의 손잡이를 잡는다.
가볍게 돌려보니 잠겨있지 않다는걸 깨달았다.
복도를 뛰어, 그리워할 틈도 없이 한 교실 앞에 도착한다.
봉사부의 부실은 지금은 봉사부 부원에게 쓰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문을 연다.
예감은 하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문고본을 읽는 그의 존재를.
그렇기에 나는 허둥대는 일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이런데서 뭐하는거야"
"노크 정도는 해"
그는 문고를 책상에 둔다.
달빛에 비쳐지는 부실에는 나와 히키오밖에 없다.
"……"
"그래서? 의뢰는?"
"…하?"
"의뢰가 있으니까 온거 아닌가?"
"……. 의뢰는……"
히키오가 의자에서 일어서자, 달빛에 반사된 먼지가 떠오른다.
아무래도 평소엔 이 부실은 쓰이지 않는 모양이다.
"…좋아하는 녀석에게 사과하고 싶어"
"……"
"잔뜩 잔뜩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어"
"……그런가"
"히키오, 용서해주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미안해. ……너는 착하니까…"
차가운 물방울이 눈에서 흘러떨어진다.
착하니까, 나와 있으면 네가 상처입는다.
진실된 것은 분명 생겨나지 않으니까.
나는 히키오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착하지 않아"
"……"
천천히 그는 나에게 다가온다.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고 내 앞에 내밀었다.
"이거, 떨어뜨렸어"
보석처럼 빛나는 핑크색 반지가 히키오의 손바닥에 올려져있다.
그날에 떨어뜨린 물건이다.
"하지만, 더 이상 필요없지?"
"읏…!!"
그는 그걸 움켜쥐고 힘껏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반지는 포물선을 그리며, 아름다운 유성처럼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어딘가로 떨어져버린 반지는 행방을 잃었다.
끝난 것이다.
이걸로.
"……끝이야"
"……"
허망하게 부서지는 추억이 눈물이 되어 바닥에 떨어진다.
마음은, 이렇게나 간단하게 부서지는구나.
기개없이 울고 있는 나는 바닥에 생기는 눈물 자국을 보는 수밖에 없다.
만남도 갑작스럽다면, 이별도 갑작스럽다.
다정하고, 따뜻하고, 꿈과 같았던 시간은 더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게 무너져버린 것이다.
갑자기, 그는 내 왼손을 자신의 가슴 부근까지 들어올린다.
그리고 어째선지 붉게 물든 그는 나를 쳐다봤다.
차갑게 빛나는 작은 반지가, 정신을 차리니 왼손 약지에 끼워져있다.
간단한 실버링이 차갑고도 따뜻하게, 조용히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
"지금부터 또 다시 시작하자
――결혼해주세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채로 나는 약지의 반지를 응시한다.
"……무서웠어. …, 미우라가 그날, 집을 뛰쳐나갔을때. …더는 돌아오지 않는건가 생각해서…"
"…읏"
"……엄밀하게 말하자면 관계를 잃어버리는게 아닐까 생각했어"
"……어, 어째서…"
"그러니까, 누구든 상관없이 도움을 바랬어. 유키노시타나 유이가하마에게 상담하고, 하야마에게 악역을 연기해달라고 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학교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눈물로 엉망이 된 고개를 드니 히키오는 천천히 내 얼굴을 쓰다듬어준다.
"미움사버린게 아닐까 불안했어. 여기에 와줄지도 몰랐어. ……하지만, 믿고 있었어"
꿈만같은 현실이 마치 손을 뻗으면 거기에 있는것처럼…….
확실히 전해지는 히키오의 따뜻함.
약지에는 끼워진 반지.
맹세의 말.
꿈이라고 착각해도 어쩔 수 없을정도의 일이 점차 솟아일어난다.
"…시, 싫어하게 될리 없잖아!! …계속 있고 싶어, …히키오의 곁에…"
교실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정말 좋아하니까…"
"응, 나도야"
포근히 전해지는 실감이, 추위를 날려버렸다고 생각할 정도로 몸을 뜨겁게 만들었다.
"……얼마전 연구발표회에서 교수에게 대학전속 연구자로 추천을 받았어"
"어!? 히키오가 일해!?"
"응. ……그러니까, 그게, 뭐…"
"……?"
히키오는 볼을 긁적이면서 눈을 피한다.
평소 버릇이다.
"다시 말하겠지만, ……결혼해주세요. 미우라 유미코 양"
"후후. ……응, 부탁합니다. 히키가야 하치만 씨"
안심한건지 그의 어깨에서 힘이 빠진다.
평소의 냉정함은 어디로 갔는지.
하지만 그런 그가 사랑스럽다.
구해준 그가 사랑스럽다.
누구보다도 가까이에 있는 그가 사랑스럽다.
예배당은 아니지만 나는 히키오에게 맹세의 키스를 한다.
"키스할때, 맨날 몸이 움찔거린다구"
"너도 키스한 후에 얼굴 빨개지잖아"
"헤헤, 그럼 서로 똑같네"
"그렇슴까. ……그럼 돌아가자"
"오, 돌아갈가면 나아를 업어줘"
"하?"
"발 아파…"
"하아? ……엉!? 피투성이잖아!? …바보야?"
"좀 더 걱정해!"
"하고 있어. 자, 타라 바보"
"바보 아니라고!!"
"음. ……하아, 나중에 하야마한테 사과해야겠구만"
"엥-, 사과 안 해도 되잖아. 나아, 진심으로 상처입었구"
"너 말야……"
"나아도 빨리 취직처 찾아야지"
"……괜찮지 않냐? 일 안해도"
"그럴리가 없잖아. 거기다, 전에도 말했잖아"
"아?"
"나아가 너를 돌봐준다고!!"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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