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삭빠른 후배 시리즈【완결】
1. 약삭빠른 후배는 좋아하나요?
가을도 마침내 끝이 다가오고 이제 곧 머플러 여자가 거리에 흘러넘치는 계절이 다가온다. 머플러 여자의 이점은 턱의 라인이 감추어져서, 오동통함이랑 살집이 있는 여자도 그런대로 귀엽게 보인다는것. 그저 보고 있는건 진짜 얼굴은 관계없지. 화장도 팍팍 하자고, 얘들아!
"우와, 혹시 지금 웃은거에요? 좀 소름돋아요"
봉사부로 가는 복도에서 눈썹을 꾹 찡그리면서 말을 걸어온건 잇시키 이로하였다. 황갈색 머리카락을 흔들면서 둥그런 눈동자로 올려다보며 말을 걸어오면, 설령 그것이 매도여도 뀽 해지고 만다. 남자의 슬픈 천성이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녀를 받아들였다고 해도, 이성은 그렇지도 않다. 이 천연 포근포근 처녀(미확인) 빗치 상대로 방심해버리면, 뼈속까지 깨물려버릴것 같다……깨물려?
"……후힛"
"우와, 이건 학생회장 권한으로 퇴학시켜야……"
아니 그거 어디의 감옥 학원이야? 그런 음란한 차림으로 감시해주는거야?
잇시키는 스페이스 인베이더같은 고의적인 게 걸음으로, 나와 일정 거리를 둔채우회했다. 그 약삭빠름이 학생회장이 된 원인이겠지, 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고, 그녀가 간걸 확인하기 전에 한 발짝 내딛는다.
"아, 그렇지"
잇시키는 "아, 교토 가요" 라는 기세로 꼬옥 교복 소매를 잡아온다. 아니, 게 걸음으로 온 의미는 있는거냐. 귀여운 애 어필하고 싶었던것 뿐이냐, 귀여웠지만.
"……이거 놔, 옷 늘어나잖아"
"본심은요?"
"귀찮은 일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
"선배는 인기 없잖아요……"
"보면 알잖아. 이게 발렌타인 데이에 초콜렛을 받을만한 남자로 보여?"
"받아도 안에 돌로 채워졌을것 같네요"
이 연상게임을 계속하고 있으면 나는 죽는 편이 좋다는 결론이 나올것 같아서 그대로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역시 나도 여자애한테는 진다.
"고맙다, 그럼"
일단 평소보다 천천히 한 발짝을 내딛는다. 만약 나 때문에 넘어졌으니까 위자료 내라고 하면 앞날 인생이 시커머니까. 빚이 있는 전업주부 지망 남자는 아무도 받아주지 않을거 아냐.
하지만 나는 그녀의 천연 수준으로 생성되는 약삭빠름을 완벽하게는 이해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에, 좀, 그렇게 갑자기 잡아당기면……무갹"
저기 부인님, 들었어요? 이 애, '무갹' 이라고 했어요 '무갹' 이라고. 그런거 노리지 않으면 못 한다고요. 아뇨, 그게 말이죠 부인님.
――저 애, 천연이에요.
등에 소녀의 무게가 눌려진다. 어째선지 내 복부를 껴안은 잇시키는 그대로 정지해버렸다.
"후-우, 위험했어요. 세이프 세이프"
세이프가 아냐. 이대로 누군가에게 들키면 나의 학교 입장이……아, 그런건 처음부터 없었다. 테헷☆
"……치한가야, 너 여기를 어디라고 생각하는거니?"
"우와아"
무심코 소리를 질러버렸다.
청춘 러브코메디에서 관례처럼 낡아빠지게 쓰인 시츄에이션, 전방에는 귀신, 후방에는 악마. 전혀 러브 코메디가 아니잖아…….
"왠지 선배의 등은 기분 좋네요오"
라며 어째선지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잇시키를 보고 유키노시타의 표정이 험악해져간다. 결과론이라고는 해도 자신을 밀어내고 학생회장이 된 여자가 복도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를 안고 있으니까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한가.
하지만 그 뭐냐, 온갖 모든 각도에서 코마치에게 안긴 적이 있지만 남에게 안기면 또 다른 감정이 떠오르네. 심장이 엄청 쿵쾅거리고 있고.
"기분 좋아도 해서 될 일과 안 될 일이 있잖아. 그런건 사귀는 상대한테 해라"
등에 얼굴을 찰싹 들이대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잇시키는 평소의 표표한 말투로,
"음-, 그럼 선배랑 사귀어버릴까나아"
라고 말했다.
내 입가가 풀어진것과 대비해서 유키노시타의 표정이 괴물을 만난것 같은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의 얼굴로 변한다. 아니, 내가 여자애한테 고백받는게 그렇게나 믿을 수 없어? 응, 나도 믿을 수 없어(웃음)
"뭐, 물론 무리지만요"
잇시키는 거리를 팟 두며 생긋웃는다. 상당히 세게 누르고 있었는지 이마가 빨개져있었다. 내 몸까지 빨개진 사실은 조금만……두근거린다.
"무리인거냐"
"에, 선배. 누군가랑 사귈 수 있다고 생각한거에요? 자기 처지 모르네요"
약삭빠른 여고생이 하는 패션 랭킹 톱 5에 들어가는 손의 반 정도까지 감춰지는 스웨터 소매를 입가에 대며 거절하는 몸짓을 보인다.
"잠깐, 잇시키"
에, 혹시 유키노시타 씨. 내 변호를 해주는거야?
"히키가야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아. 자신의 왜소함을 이해해서 남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게 그의 스타일이니까"
변호가 아니야. 오히려 기절한 사람을 둔기로 때릴 정도로 엽기적인 발언이다.
그녀치고는 드물게도 웅변을 한다.
"애시당초 잇시키, 너 히키가야에게 너무 의존하는게 아니니. 매일 방과후가 되면 학생회실 가기 전에 여기에 들르고 있고, 점심시간도 2학년 복도를 몇 번이나 왕복하고 있고"
……어, 정말로?
너무나도 놀란 사실에 잇시키의 얼굴을 보니,
"………읏"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며 떨고 있었다.
하지만 유키노시타의 추격은 멈추지 않는다.
"어제도 과자를 선물 받았다고 하면서 수제 과자를 갖고 왔는데, 나랑 유이가하마도 히키가야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먹는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정도것 해줬으면 싶은걸?"
…………………………엑?
"우으……이제 시집 못가요"
잇시키의 얼굴이 이름대로 붉은색 일색으로 물든 순간,
"이제 이렇게 되면 히키가야 이로하가 될래요오오오오오오오오!"
꼬옥 안아왔다. 그러자, 유키노시타도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을 내던지고,
"그렇게는 안 돼. 그는 봉사부 부원이니까"
라며 나에게 붙은 잇시키의 팔을 필사적으로 벗겨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잇시키가 부드러운것과 유키노시타의 필사적인 얼굴이 귀여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후힛"
그 얼굴은 역시 기분 나쁠 것이다.
계속.
2. 친숙하게 따르는 후배는 좋아하나요?
농담이에요, 뭘 진심으로 받아들이는거에요, 그런 음탕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좋아하게……안녕히, 라고 들은 나는 유키노시타에게 전형적인 도끼눈으로 노려보아지는걸 몇초간 깨닫지 못했다.
"음탕가야, 혹시 기뻐하고 있던거니?"
찌른다. 딱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그녀의 시선 속에는 질투가 포함되어 있는걸까. 연애감정하고는 다른, 일찍이 동생과 부모님의 애정을 느꼈을때 품은 희미한 기대가 가슴을 부풀린다.
"아, 아니, 어차피 평소하던 헛소리잖아. 하, 하지만 유키노으읍"
부드러운 감촉이 입술에 닿는다.
"먼저 설명해줄래? 착각가야"
왼손 손가락 끝으로 내 입가를 막으며 오른손으로 왼손을 잡는다. 뒤쪽에는 오른발을 내리고 왼발을 조금 꺾고 있었다. ……뭐야 그 글러온 바위를 혼자서 버티며 "나는 됐으니까 너는 먼저 가라"같은 포즈.
내가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자 유키노시타는 살짝 손을 놓았다. 그리고 희번뜩 나를 노려봤다.
――짜아아아악!!
경량의 그녀에게선 믿을 수 없는 체중을 실은 싸다귀가 오른뺨에 작열했다.
"――――으으읏!?!?!?"
마치 세계 최강의 부자싸움에 나온것 같은 소리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피, 피부가 뒤집힌거 아냐!?
"……후우, 너무 동요해서 한번 자신에게 계기를 주려고 생각했어"
"아니, 설명보다도 먼저 사죄해야할거 아냐"
"왜? 네가 원인이 되서 이렇게 된거니까, 네가 책임을 져야하는거 아니니?"
유키노시타의 표정은 기분탓인지 붉고, 마음의 회의장에선 9할이 "화내는 것이다"라고 주장했지만, 남은 1할이 그걸 강력하게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단 상태를 보기 위해서도 이 타들어가는 뺨의 통증도 참고 그녀의 주장을 듣기로 한다. 언제였을까, 토베가 "여자는 조금이라도 의심하면 화내지만, 남자는 조금이라도 믿고 싶었으니까 참는거잖아"라고 해서 여자에게 빈축을 당했지만 꼭 틀린건 아닐지도 모른다. 속마음에 한정되지만.
"그래서, 진정이 되면 빨리 설명해"
재촉을 하니 유키노시타는 "재촉하지 말아줘"라며 뒤로 던전 가방을 줍는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갈때 작은 목소리로,
"도중까지 바래다주겠니"
라고 말했다. 봉사부는 오늘은 어쨌든 끝낼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순순히 뒤따르며, 둘이서 교무실에 열쇠를 반납하러 가자 히라츠카 선생님이 "오, 마침내 배틀 로열도 화간으로 끝난건가?" 라는 의미 모를 소리를 해서 도망치듯 퇴실했다.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붉은건 늬앙스에서인지, 아니면 의미를 알아서 그런건지.
끼익 문을 닫은 순간, 유키노시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괜찮아?"
"괜찮을리 없잖아. 너랑 화간이라니 굴욕이야. 하다못해 강간이나 사간이라고 들어야지"
아아, 그런거군요. 너는 머리 좋으니가 알았지.
그보다 강간으로 됐으면 그건 화간이잖아. 입이 찢어져도 말 못하지만.
"조금 용건이 있으니까 현관에서 기다려주지 않겠니"
"알았어"
너무 기다리게 하면 두고 간다, 라고 전하자 평소라면 반박을 할 그녀가 "서두를게"하면서 뛰어가서 그 뒤를 쳐다보니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 ……미안한 짓을 했구만.
(일단, 신발 만이라도 갈아신어둘까)
그나저나 화장실에 가는걸 준비라고 하는건 소녀 포인트 높다고 생각한다. 요즘 여자는 남녀평등 정신에 따르는지 모르지만 바로 "소변 보러 갈게-" 나 "오줌마려"라고 남자의 앞에서 태연하게 말하니까. 정말 여고생은 최고라니까!
"……후히"
"……혹시, 저를 생각했어요?"
등에 갑자기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 말의 주인이 현 학생회장이며, 약삭빠름과 귀여움으로 말하자면 소부 넘버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만한 여자 '잇시키 이로하'라는건 쉽게 알 수 있었다.
"방금만이네"
"그거야 뭐, 선배를 찾기 위해 교내를 돌아다녔으니까요"
네네, 알고있다마다. 어차피 "진심으로 생각한거에요? 소름끼치네요"라고 할거 아냐.
"……왜 반응해주지 않는거에요?"
조금 젖은 눈동자로 빤히 나를 쳐다본다.
……에, 진짜, 진짜야?
(아니, 잠깐. 알고 있잖아. 네가 빛을 보는 일은 없다고, 히키가야 하치만!)
흘러넘치는 기대를 억누르며 극히 냉정하게 대응한다.
"어차피 농담이잖아. 알고 있다고"
"……그럼 내일부터는 선배 찾는거 그만둘까요?"
조금 뾰로통해진 태도로 양팔을 끼는 잇시키. 부드러워보이는 뱜을 뿌우 부풀리고 있어서 지금 바로 찌르고 싶어진다. 상대가 코마치였으면 당장이라도 할텐데…….
"……노, 농담……이지?"
"………"
대답이 없다. 평소라면 바보같은 말투로 비웃는 주제에, 모르겠다. 이 녀석의 의도를 읽을 수 없다.
"잇시"냐아! 선배 에로 동정 로리콘 바보오-!"
냐, 냐아? 그보다, 지금 흘려들을 수 없는 단어가 몇개 나열됐는데(거의 정답이긴 하다).
잇시키는 황갈색 머리카락을 양손으로 슥 뒤로 흘리고 어색하게 파이팅 포즈로 나의 배에 잽을 3연발 먹이고 사라졌다.
"……어, 그게……"
감정이 도망칠 길을 잃은 나는 누구에게 보여지지 않았는데도 머리카락을 정리하려고 만진다. 어쩌면 핸섬이 항상 머리카락을 만지는것도 이런 기분인가…….
하지만 새삼 생각해봐도 "냐아!" 는 이상하다. 약삭빠름을 넘어서 초 약삭빠름이 되었잖아, 그거. 이대로 가면 어미가 "~냥?" 인 약삭빠른 잇시키 이로하스리가 되어버릴것 같다. 이로하스리. 되게 어감은 좋다.
"……후힛"
"어머, 아무래도 또 범죄자로 가는 길을 한 발짝 내딛은 모양이네"
또 뒤에서 말이 들려오지만, 이번에는 차갑고 날카롭다.
"……얼른 가자"
나는 빨리 돌아가서 건담 빌드 파이터즈 트라이를 봐야한다고. 부장이 너무 귀엽다고, 부장하스하스. 아니, 이로하스가 아니야. ……누구한테 태클거는거람, 나는…….
"어머, 너 누구에게 말을 하고 있는거니. 너는 내 남편도 아니고, 설령 결혼했다고 해도 절대로 정주관백의 가정은 되지 않아. 그래, 아이는 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고양이는 기르는게 좋다고 생각해. 만치칸은 어떠니. 그 납작한 고양이 귀는 분명 마음에 들……"
"아니, 마지막까지 들어"
약간이지만 확실하게 빨개지는 뺨. 오늘만으로 너 이미지 계속 무너졌어. 동경을 느끼던 내 마음을 돌려줘.
"귀축가야는 나의 목욕하고 나오면 하는 사소한 망상을 듣는게 목적이었니?"
"귀축가야라니, 그건 그냥 빨리말하기잖아……"
더 이상 파고들면 여러모로 내딛어선 안 될 영역에 도달할것 같아서 그만둔다.
잠시 말없이 걷고 있으니 유키노시타가 갑자기 멈춰섰다.
"……왜 그래?
"치사해……치사해, 히키가야"
아무래도 정말로 뭔가가 일어난것 같다. 평소라면 나를 바보 취급할때는 이름에 무언가를 더할터이지만, 이번에는 그대로다. 이건 뭔가 터무니 없는 일이 일어나는 예감이 든다.
"내 보폭에 맞춰서 걷는 속도를 늦추는 배려는, 사귀고나서 하지 않으면, 앗, 이 사람 여자애랑 걷는데 익숙해져 있구나 라고 실망해버리는데!?"
"코마치랑 걸으니까 익숙한건데?"
"……자, 뭘 멍때리는거니 히키가야. 얼른 가자"
아니, 반대로 거기서 원래 표정으로 돌아가다니, 너 대단하구만 어이. 이중인격이라고 해도 의심 않겠다, 이거.
"슬슬 가르쳐줘도 되잖아"
"그렇구나, 너무 뜸을 들이면 가치가 떨어지는걸"
"………"
솔직히 말해서 이런 형태로 봉사부의 균형이 무너지는건 바라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주의주장을 나누는 일이 없는 물과 기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같은 액체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전혀 다르다. 그런 순수하고 정연한 관계…인데.
(여기까지 오면 더는……되물릴 수 없구만)
유키노시타에게 고백받고 싶지 않냐고 들으면 솔직히 받고 싶다. 누구든 귀여운 여자애가 좋아해주는건 기쁘고, 그것이 다정함이나 동정이 아니라면 신님에게 감사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을, 학교에서의 나를, 봉사부에서의 나를 보고 좋아하게 된다는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고 싶다고 해온 일이 아니다. 항상 잇는 그대로, 소부 고등학교의 학생으로써, 봉사부의 부원으로써, 한 사람의 히키가야 하치만으로써 살아온것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네가 농담이라고 비웃어줬으면 싶다. 너를 좋아하게 되는건 달이 뒤집혀도 말도 안 돼, 라고. 그거야말로 유키노시타 유키노이며, 내가 동경한――,
"히키가야, 나는 무척이나 독점욕이 강한것 같아"
……………하?
"그건……좋아한다는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읏! ……너 혹시 지금까지 계속 내가 히키가야를 좋아해서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한거니?"
"아, 아니, 그런게"
"기분 나빠, 나르가야'
우와아, 훌륭하게까지 엄청난 전개임다(눈물)
"나는 싫어하는것이든 좋아하는것이든, 내가 내 손으로 움켜쥔건 누구에게도 넘기고 싶지 않아"
그런건가.
"선거가 끝난 시점부터 왠지 학생회를 엄하게 대하려고 생각한건 그 탓인가"
"……잇시키는 봉사부로써 너에게 의지해놓고, 끝나고나서도 마음의 의지처로 삼으려고 하다니, 치사해"
"……아니, 거 그거잖아. 선배에게 동경하는 나이라고 할까"
"당연하잖아. 그 밖에 뭐가 있다고 생각한거니. 혹시 자신에게 매력이 있다고라도 생각한거니, 자기 신분도 모르네"
"……이미 그거 내 이름도 아니잖아"
유키노시타는 조금 산뜻해진 표정으로 한 발짝 앞으로 나온다. 그리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나는 그렇다고 말할거야. 똑바로, 네 눈을 보고 말이야"
비치는듯한 미소.
"어, 어어……알았어"
너무나도 순수하고 예쁜 눈동자에 눈을 피하고 싶어졌지만, 피해서는 안 될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은 봉사부 부원을 잇시키에게 도둑맞는게……굉장히 싫어"
이렇게나 누군가에게 적의를 드러낸건 처음이 아닐까.
그것이 설령 연애감정이 아니었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요구되는건 무척이나 기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내 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안하지만, 나는 잇시키를 앞으로도 신경쓸 생각이야"
똑바로 유키노시타를 본다.
"………그래"
"……엑"
에상과 반대로 그녀는 만족스럽게 웃는다.
"그러니까 말했잖니. 내가 싫은거라고"
그 이상은 말하지 않을거야. 유키노시타는 그렇게 말하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좌우로 흔들리는 허리까지 닿는 흑발을 나는 언제까지고,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에필로그◆
점심시간, 식당에 찾아가니 잇시키가 아라레처럼 양손을 뒤로 뻗은채 다가왔다. 손바닥은 쭉 펴고 만면의 미소를 짓고 있다. ……역시 약삭빨라.
"우와아, 뭘 기뻐하는거에요, 기분 나빠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욕을 하는 잇시키를 무시하고 나는 빵을 사러 매점으로 향한다.
"에에? 빵은 안 되요. 제대로 영양 있는걸 먹어야죠"
"에너지 절약이니까 괜찮다고"
"안 되요. 이로하의 빵셔……도와줘야하니까요"
지금 빵셔틀이라고 하려고 했지, 얌마. 빵셔틀은 게임센터에 잇는 오빠한테만 시켜라.
"저기요 선배, 선배가 같이 먹어주면, 저는 혼자 먹지 않아도 되는데요오"
……큭, 또 올려다보기……절대로 있을거 아냐, 같이 먹어주는 녀석….
"………알았어.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
"에에!? 식권 산적 없어요오!?"
너 정말로 인간입니까, 같은 어조로 놀라지마. 주위 사람이 "우와아, 친구 없으니까 식당 이용할 수 없는 사람이다" 같은 동정의 눈으로 보고 있잖아. 한 사람도 남김없이 기억했으니까 내일부터 같이 밥 먹자.
"그럼그럼! 제가 골라줄게요! 실은 귀찮기 짝이없지만 어쩔 수 없어요!"
뭐야 그 하이텐션 츤데레. 엄청 약삭빠른 잇시키 이로하 포냐. 머리카락의 긴 눈썹이 사라진다.
"카레면 되죠, 카레"
식당 카레는 흥미 있었으니까.
"안 된다니까요, 제가 카레니까요"
"딱히 같은걸로 해도 문제 없잖아. 거, 일심동체라는거?"
"선배, 쓰는 구석이 다르고, 선배랑 일심동체라는건 죽어도 싫어요"
"……시끄럽네"
잇시큰 "증말, 모르네요" 라며 내 배에 잽을 한번 날리고,
"나눠 먹기 못하잖아요?"
라며 아이같은 미소를 보였다.
참아라, 참아라 나…………………,
"후힛"
"선배……기분 나빠요"
아무래도 내 미소에 잇시키는 익숙해질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식권 판매기의 그늘에서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보고 못본적을 해두자.
계속…
보너스 트랙 그 1
휴식중, 어째선지 집요하게 엉켜오는 하야마 하야토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교실을 뛰쳐나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건 우쭐댄 얼굴로 두 다리 벌려 서 있는 잇시키 이로하였다.
"선배, 안 됐지만 여기는 지나갈 수 없어요"
억지로 지나갈 생각으로 한 발짝 내딛은 순간, 잇시키는 양손을 팟 벌렸다.
그리고――놓는다.
"후바하거는 후바하로――"
"바이바-하!!"
마치 에네르기파 쓰는 기세로 양손을 앞으로 내미는 잇시키…….
"그건 보조마법이야. 추워질 뿐이야"
나는 그녀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고 그대로 사라진다. 진짜 농담이 아니다.
"누가 리얼충하고 노래방 따위를 가겠냐"
이건, 아무일도 아닌 하루의, 아무일도 아닌 사건.
잇시카와 나의, 임일도 아닌 하루.
보너스 트랙"기분 나쁜 선배지만 놀아줄게요"
오늘 하야마 그룹은 이상하다. 특히 미우라랑 하야마의 기합이 격이 다르다.
아침부터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길래 짜증나네 생각하면서도 옛날 파자마를 입고 등교했을때를 떠올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봤지만 틀림없는 교복이엇다. 초조해하고 있으니 미우라가 내 앞에 와서,
"히키오, 너 오늘 방과후에 시간 있지? 한가하지? 한가하다고 말해"
라고 다그쳐서 무심코 울상짓고,
"어, 엄마가 위독해서……"
라고 시선을 내리 까니 미우라가 내 어깨를 툭 두드린다. 그리고,
"지금 바로 문안하러 가. 수업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줄테니까"
……이건 위험한 전개가 될 예감이 들어서 바로 거짓말입니다, 라고 전하니 주먹이 날아왔다.
쉬는시간이 될때마다 토베가 애니송을 열창하고. "잔혹한 천사가 되라!" 라니, 가사 얼추 기억한거니까 그거 아니잖아. 갑자기 에바가 인도 댄스 PV처럼 춤추면 시청율은 영원히 1위다.
점점 수상하네에 생각하면서도 건드리면 절대로 제대로 된 일이 일어나지 않을거라며 가만히 있으니, 점심시간에 하야마 하야토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히키타니. 노래방 갈까?"
라고 직구를 던져와서 나는 화려하게 답변한다.
"혼자 노래방 밖에 간 적이 없으니까 규칙을 모르므로 각하"
"그, 그걸 어떻게든. 사람은 무슨 일이든 경험이 필요하잖아?"
"그럼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한 번도 친구랑 노래방 간적이 없다고 하는 일본에서도 손가락을 곱을 정도로 밖에 없을 경험자가 될래. 뭣하면 친구 제로로 졸업까지 하련다"
"애니송 좋아하잖아? 자주 듣고 있고"
"누가 인도 에바 같은걸 보겠냐. 인도는 시바라고"
이러쿵저러쿵 되풀이해보지만 전혀 물러날 생각이 없었으므로,
"아-, 화장실좀 갈게-. 이거 싸겠어-"
라며 교실을 뛰쳐나왔을때 잇시키의 바이바-하를 보게 됐다.
일단 학교 뒤로 피난하려고 중앙계단으로 내려가려고 했지만, 눈 앞에는
"핫하! 히키타니 넌 내꺼야!"
나는 포켓몬이냐 멍청아.
물론 축구부의 풋 워크에 이길리도 없어서 쉽게 잡히지만, 나는 절대로 노래방에는 안 간다는 의사를 보인다고 결의했다.
……했는데.
"선배, 어째서 노래방에 가고 싶지 않은거에요? 이렇게나 귀여운 후배가 같이라구요?"
잇시키가 약삭빠르게 올려다보며 비정하다고 호소한다. 귀여운 후배라는 점은 물론 얼굴이 귀엽다거나 동작이 귀엽다는 의미가 아닌, 후배로써 귀엽다는 의미이겠지만, 아무래도 초 잇시키 약삭빠른 포까지 본 나에게는 그걸 믿을 수 없게 됐다.
"아니, 왜냐면 나 음치니까"
그보다, 잘하는지 허접한지도 모른다. 나홀로 노레방이라면 그런대로 갔으니까 특기지만, 남에게 들려줄 노래는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는 수 없네요오"
라며 잇시키가 손가락을 퉁기자 안쪽에서 미우라가 유이가하마를 데려온다.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라 "엣,엣?"하며 허둥거리고 있었다.
"오케이 안 하면 유이가하마 선배의 첫키스를 히키가야 선배에게 빼앗길거에요"
……에, 무슨 소리야?
"자, 유이~, 좀 힘내볼까-"
꾸욱꾸욱 밀리는 유이가하마. 점점 거리가 가까워져가서 서로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조, 좀 힛키?! 이거 뭐야 기분 나빠!"
아니아니, 고개를 저어도 미우라의 힘은 강한 모양이라 확실하게 거리는 좁혀져간다. 나는 나대로 토베의 홀드로 전혀 움직일 수 없다. 여자애한테 받고 싶었다, 부등켜 ㅇ나기 홀드.
점점 몸이 밀착해버린다. 동복이라고는 해도 유이가하마의 풍만한 가슴 감촉은 동정에게는 자극이 너무 세기 때문에. 나는 고간의 하치만이 반응하는걸 멈출 수 없다.
"엣, 이, 이거 뭐야!? 힛키!?"
이런, 무리하게 뽀뽀당하는것 보다, 이쪽이 사회적으로 위험하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놔줘!!"
이것이 집단의 힘인가……굴복해버렸――
뭉클.
"아, 잡았다"라며 유이가하마의 손은 내 하반신을 움켜쥐고 있어서, 그걸 본 미우라가 나를 오른 스트레이트로 날려버린건 말할것까지도 없다.
◆◆◆◆◆
"자아, 마셔줘어! 나의 외로움!"
에, 잠깐만. 왜 나랑 잇시키 둘 뿐이야?
잇시키가 지켜줘 사호월천의 주제가를 열창하는 사이에 나는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권유하러 온건 하야마 그룹, 오케이.
인질로 쓰인건 유이가하마, 오케이.
뽑힌건 녹차였습니다. 나는 보리차파.
(그건 됐다치고, 바이바하는 좀 세대가 낡지 않나?)
나도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세하지만, 확실하게 말해서 동세대에서 그 무렵의 강강을 아는건 이상하다고.
"훗, 역시 강강 애니메이션 노래는 최고네요!"
"너, 그 무렵의 강강을 알고 있는거야?"
"뭘 대뜸 여자애의 과거를 물으려는거에요, 기분 나빠요"
……여전히 거리감을 모를 녀석이다.
"부모님이 세대거든요-. 저는 황금기보다도 조금 후인 하레구우 전성기를 좋아했는데요"
격진이 달렸다.
"호, 혹시 스파이럴이나…"
"히요리 최고에요"
"사토미 팔견전"
"소스케 귀여워요"
"키요무라랑 스기코우지?"
"랑"
지……진짠가.
"우왓, 이런, 쩌, 쩔어, 나, 나는, 지금까지 누구하고도――"
"조조좀, 좀 기다려주세요 선배 기분 나빠요!"
"아, 아아 미안"
텐션이 너무 올라서 키스해버릴뻔했다. 위험해라.
"강강 얘기는 불본의하긴 하지만 나중에 천천히 해줄게요. 그치만 지금은 노래방에 왔으니까요, 네?"
나는 몇 번이나 끄덕인다. 알아준다면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넣는다!
"…………쉽네"
우선 하레와 구우 노래부터다아, 메들리로 간다!
・・・・・
・・・・
・・・
・・
・
"이야-, 선배 기분 나쁜 노래도 익숙하네요오"
"꽤 소리 높은게 많으니까"
돌아가는 길, 잇시키랑 나란히 돌아가는 나는 최대한 강강 화제는 피했다. 하지만 그것이 도리어 부자연스러웟던 모양이라 잇시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왜 강강 얘기를 안 하는거에요? 듣고 있어요?"
라고 물어왔다.
물론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 된다. 도쿄 언더그라운드에 대해서라면 2시간은 얘기할 자신이 있고, PON과 키마이라라면 하룻밤을 지새우기 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얘기를 할때 말하는건 자기밖에 보지 않아. 그건 선배가 할 일이 아니니까"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하는건 자기만족의 강요다. 정말로 소중한 상대라면, 제대로 상황을 보고 구별을 지으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공유해야지.
"그러니까, 잇시키, 그게……말이지"
"……빨리 말해주세요…긴장하잖아요"
"손을 잡고 돌아가지 않을래?"
살짝 왼손을 내민다. 그리고 잇시키는 함박 미소를 지으면서 그 손을 꼬옥 쥐었다.
이미 해는 저물고, 밤의 장막이 거리를 지배한다.
우리는 굳게 잡힌 손을 놓지 않은채로 동시에 소리를 냈다.
""……후힛""
그런 아무것도 아닌 하루.
에필로그
소부고등학교 학생의 어떤 LINE
하야마 : 다들 수고했어!
토베 : 진짜진짜 손을 잡았어!
미우라 : 꽤 하잖아, 히키오!
유이 : 우으……나, 이용당한것 뿐이야?
미우라 : 뭐어뭐어, 다음에 사줄테니까?
하야마 : 하지만 고백한건 아닌것 같으니까, 놀리는건 금지다?
토베 : 오케-☆
유이 : 아직 기회는…
미우라 : 어?
유이 : 아, 아무것도 아냐!
토베 : 이걸로 유미코의 라이벌도 없어졌지!
미우라 : 좀,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거야!?
하야마 : 응?
토베 : 아, 아- 아무것도 아냐 아무것도 아냐!
미우라 : 내일 각오해둬^^
토베 : 내일 학교 쉽니다.
소부고등학교 학생의 어떤 LINE2
잇시키 : 선배-
잇시키 : 선배선배선배-
잇시키 : 이봐-이봐-이봐-이봐-
잇시키 : 진짜 스마트폰 방치하네……
잇시키 : ……지금이라면 내 셀카 보일텐데에
<잇시키 이로하가 사진을 첨부했습니다>기독
잇시키 : 헤아!?
다음날, 엄청 얻어맞았다……후힛!
3. 질투하는 후배는 좋아하나요?
전교생의 동생.
어느샌가 잇시키는 그런 별명을 갖고 있었다. 그건 결코 바보취급하는게 아니고, 오히려 '동생처럼 헌신적인'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고 있었다. 독선적으로 보이기 쉬운 학생회장치고는 엄청 고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건 뭐, 열심히 햇으니까요-"
하교 중에 요즘 저는 어떤가요, 라고 물어서 솔지갛게 대답하니, 잇시키는 약삭빠르게 팔을 뻗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여전히 약삭빠른 움직임이다.
"어라-, 칭찬해주지 않을건가요오?"
콕콕 말하면서 팔꿈치로 옆구리를 찔러온다. 특별히 속셈이 있는건 아니겠지만, 그렇기에 남심을 너무 모른다.
(상당히 기대해버리니까……)
노래방 사건이 있고나서 조금 거리가 줄어든것 처럼 생각한다. 나도 이전처럼 '봉사부에서 알게 된 상대'에서 '귀여운 후배'정도의 대응을 하게 됐다. 상대방은 여전히 표표해서 종잡을 곳이 없지만, 때때로 보여주는 미소는 이전처럼 양산된 표정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싶다.
"짤 했어"
머리를 두번 펑펑 두드려준다. 그러자 잇시키는 그 손을 양손으로 잡고,
"선배가 이렇게 칭찬해주니까 그런거에요-"
라며 내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놀았다. 네네, 농담이겠지, 라며 딴죽을 넣으려던 순간,
"에, 진심으로 믿은건가요, 기분 나빠요"
팟 손을 놓으며 거수자를 보는 눈초리로 나한테서 조금 거리를 둔다.
침묵이 몇 초간 흐르고, 그리고 동시에――,
""……후힛""
"저, 정말, 이상한 웃음 기억나게 하지 말아주세요오. 저에게는 학생회장으로써의 이미지를 유지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뺨을 붉히며 고개를 홱 돌린다. ……젠장, 이 녀석 남심을 사로잡는 약삭빠른 행동백서라던가 갖고 있는거 아냐?
딱히 네가 따라해줬으면 싶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하려고 했더니 뒤에서,
"얼라-, 히키가야잖아! 또오 다른 여자애 데리고 있네!"
……지금, 일본에서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와 만나버렷다. 덧붙여 2번째는 국적을 바꾼 마라토너. 그 녀석은 진말 인터넷으로 조사하니까 너무 슬퍼서 제대로 얼굴도 못 보니까..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이성을 상대로 아무 거리낌도 부끄러움도 없는 움직임으로 어깨동무를 해왔다. 잇시키의 얼굴이 순간 뚱해졌지만, 역시 여자는 본능적으로 이 강화외골격을 적이라고 인식한거겠지.
"유키노시타 씨, 놔주지 않을래요?"
"어머, 평소처럼 하루짱이라고 불러도 되는데?"
귓가에 입을 댄 주제에 명백하게 잇시키를 향해 말을 했다. 효과는 발군이었던 모양이라, 잇시키는 볼을 뿌우 부풀리면서,
"잠깐만요 히키가야 선배, 이름으로 부른다는건 이로하한테만 하는거 아니었어요?"
라며, 아카데미 여자 배우 급의 연기력으로 구라를 당당하게 쳤던 것이다. 한번도 부른적 없거든, 둘 다.
"흐응, 그렇다는건 그 불꽃놀이를 같이 봤을때의 마음은 거짓말이었다는거니?"
유키노시타 누나는 일부러 입을 뾰족이며 나에게 항의를 했다.
이런건 정말로 존경할 수준이라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뭐가 대단하냐면, 불꽃놀이를 본것도 내가 자신의 마음을 토로한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뭐, 이야기 흐름에서 말하면 그 카드는 트럼프 중의 UNO 같은거라서, 너무 당당하게 꺼내서 상대는 그게 허세여도 그걸 간파하지 못한다.
역시 잇시키도 이건 무리인가, 그렇게 생각했더니――,
"선배의 그런 다정한 점, 좋아한다구요?"
그 표정에 일그러짐은 없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건지, 아니면 1미리도 생각지 않는건지……모르겠다.
아마 잇시키는 유키노시타 누나의 말의 함정을 간파한건 아닐 것이다. 도둑집기 속에 나온 UNO 카드에 대해서 장기말로 반격하는 듯한, 그런 반격이다. 이래선 연상인 유키노시타 누나가 무슨 말으 해도 연하인 그녀가 '나를 위해 한 발짝 물러섰다' 라는 조숙한 여성의 연출을 도와줘버리는것이었다.
물론, 그런건 유키노시타 누나쪽이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라서,
"흐응, 네가 마음에 드는 상대인만큼하네"
라며 내 뺨에 다정하게 키스를 했다. 잇시키는 "냐아아아아아!" 라고 소리를 지르며 내 팔을 잡고 잡아당겼다.
트럼프에서 시작한 항쟁은 마침내 권총전으로 발전해서 인질……아니, 상품인가? 나는 그저 과정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역앞의 패스트푸드 가게는 귀가도중의 학생이나 회사원으로 가득차서, 우리는 유키노시타 누나를 따라 조금 고급스러운 선술집에 와 있었다. 선술집이라고 해도 바에 가까워서 서양풍의 가게 안은 어두컴컴해서 분위기가 나왔다. 나와 잇시키가 처음으로 도시에 찾아온 시골뜨기처럼 가게 안을 돌아보고 있으니 유키노시타 누나는 부끄러우니까 여기에 앉으라고, 개인실로 안내했다.
4인 탁자의 개인실로 나부터 들어가니 잇시키가 그 옆에 바로 앉았다. 유키노시타 누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맞은편에 앉는다.
잠시 식사로 시간을 보낸다. 뭐야 이거 진짜 맛있어. 통에 담아서 코마치에게 갖고 가도 될까. ……나 얼마나 시스콘인거야.
디저트로 나온 이름 모를 과일을 먹으면서 유키노시타 누나에게 나와 잇시키의 만남과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한다.
"헤에, 그런 일이……라아"
유키노시타 누나는 뺨을 괴면서 나를 쳐다본다. 그 눈은 "네네, 어차피 또 평소처럼 그거한거지" 라고 하는듯, 그걸 이해해버리는 나는 뭘 감추어도 소용없다는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한다.
"그렇다구요. 그 말대로입니다. 이번에도 평소처럼 움직여서 무언가를 희생해서 목적을 달성할겁니다"
섣부르게 감추면 쓸데없이 이야기를 피하게 될 것이다. 잇시키를 이용한 사실은 틀림없는 일이고, 거기에 특별한 검정은 없었으니까, 그걸 감추는건 불성실하다.
유키노시타 누나는 거기까지 간파했던 모양이라,
"……그래서 '뭐'를――"
유키노시타 누나가 말을 끝내기 전에,
――타앙!!
라며 잇시키가 양손으로 탁상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스스로도 지나치게 놀란다고 생각할 정도로 어깨를 떨었지만, 유키노시타 누나는 여유를 일절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얼굴로 잇시키를 봤다.
"연상의 대화를 방해하고. 그러고도 학생회장이야?"
비아냥처럼 그녀 말하자 생생함 마저 느껴진다. 부추긴건 유키노시타 누나 자신이고 일부러 잇시키한테서 시선을 떼어서 대화를 하던 주제에, 전혀 주눅든 모습이 없기 때문일까. ……음, 왜 그런걸 간파하는거야?
(……그런가. 나는 아까부터 계속……)
잇시키가 험악한 표정으로 반론하려고 해서, 나는 일어서서 그걸 막는다.
"그만해, 잇시키"
아마, 라기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만이었을 것이다. 잇시키는 내 소매를 꼬옥 쥐고,
"어째서요!? 선배는 이 사람의 편이에요!?"
라며 큰소리를 질렀다. 점원에게선 큰소리를 지르는건 곤란합니다, 라고 들을까 싶어 돌아봤지만, 아무래도 그 정도로 동요할만한 손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누구 한 사람도 이쪽을 보지 않았고, 다가온 점원은 빈 그릇을 회수해서 가버렸다.
"아니야, 히키가야.
'이로하의 편이니까, 제지한거지'"
역시, 유키노시타 누나에게는 이길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잇시키에게 나는 가볍게 설명한다.
"잇시키, 이 사람은 처음부터 '너하고 승부할 생각'은 없어"
잇시키는 '엣'하며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유키노시타 누나는 '이 사람이라고 부르는건 좀 쇼크네에'라며 전혀 신경쓰지도 않고 디저트 과일을 집었다. 나는 설명을 계속한다.
"잇시키는 바보취급당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사람에겐 그럴 생각은 없어. 오히려 네가 학생회장으로 하고 잇는 일을 평가하고 있다고 보여"
그래, 유키노시타 누나는 쓸데없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잇시키가 학생회장이 될때까지 과정 스토리가 그녀에게 있어서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라면, 진작에 이야기는 그만뒀을 것이다.
"그래. 문화제때 단발머리 애보다는 훨씬 좋앗어. 응, 언니 포인트 높아!"
단발머리애를 실컷 칭찬한 주제에 그 말투. 역시 유키노시타 누나의 말에 뒤가 없을리가 없다.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 잇시키. 상대를 진지하게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이런 대응'을 해버려. 천성이 '아마노자쿠'야"
적의를 드러낸다한들 상대에게 싸울 마음이 없다면, 잇시키가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피곤해질 뿐이다.
"그러기는 커녕, 분명 너는 이 사람에게 '동경해버릴거야.' 딱히 아무 이상한건 없어. '이 사람은 그런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쓸데없는 일로 상처받는건 그만해.
말을 끝내자 유키노시타 누나는 짝짝 손을 치면서,
"과연 히키가야네에, 여전히 삐딱한 시선으로 핥듯이 남을 관찰하는게 특기야"
하지만――, 유키노시타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나서 내 손을 집어 입가로 가져갔다.
"네가 언제까지도 '자기가 없는 세계'에서 세상일을 얘기하는 이상, 내 본심은 앞으로도 모를거고, 항상 누군가를 상처입히게 될거야. 히키가야"
입술의 부드러운 감촉이 손등에 닿고, 쪽, 소리가 났다.
"둘 다 먼저 돌아가도 돼. 누나는 좀 마시고나서 돌아갈테니까"
그 얼굴은 언젠가 봤었던 '양산된 미소'이며 나는 자신이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의 윤곽을 확실하게 보지 못한채로, 그 자리를 떠나게 됐다.
"……정말이지, 둔감한 척을 하는게 치사해"
마지막 말은 분명 가게 안의 BGM탓이며 잘못 들은것일테지.
□□□
가게를 나오니 주위도 완전히 어두워졌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순식간에 역 앞에 도착한다.
"………"
잇시키는 내 쪽을 돌아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배웅해줄게, 잇시키"
이런 시간에 혼자 돌아가다 습격이라도 당하면, 내일부터는 정말로 학교에 갈 수 없게 되니까.
하지만 의외로 잇시키는 그걸 거부했다.
"……안 돼요"
그 말에 힘은 없고, 고개숙이고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아니, 네가 싫어도 내가 곤란해"
"안 돼요"
점차, 그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린다, 그리고――,
"선배의, 그 사람을 보는 눈은 왠지 싫어요!"
라며, 뚝뚝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잇시키.
"하아?! 딱히 평소대로 눈이잖아!
이 녀석은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거야!? 주위 시선이 엄청 따가운데!
"둘이서 어른스런 대화하고, 저를 따돌리기 해서 기분 나빠요! 엄청 기분 나빠요!"
잇시키는 내 옷을 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그리고 얼굴을 가슴팍에 숨기며 작은 목소리로,
"……저런 언니가 타입이에요?"
라며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물었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된 잇시키의 얼굴은 지금까지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다.
"………부정은 못해"
"그럴거라고 생각했어요. 기분 나쁜 선배는 정말 싫어요오"
기분 나쁜데다 정말 싫다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어째선지 마음이 고양되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잇시키를 껴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뭐, 역시 남들 앞에선 할 수 없지만.
――그러니까, 솔직하게 대답한다.
"잇시키,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사람이 나타난 순간부터,
'너를 지키는것 밖에 생각하지 않았어'"
그 라스트보스로부터 어떻게 잇시키를 지킬까. 그저 그것만을 생각했다.
"그 마음이 어떤건지는 나도 잘 몰라. 동생을 지키는 오빠의 마음인건지, 후배를 지키는 선배의 마음인건지"
아니면――, 아니, 그걸 말하는건 그만두자.
"그러니까, 그게……그거다"
나는 양손으로 살짝 잇시키의 얼굴을 잡고, 엄지로 그 눈물을 닦았다.
"……집까지 바래다줘도 돼?"
부드러운 얼굴, 그녀의 온기가 전해져온다.
잇시키는 내 양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고, 그리고 눈가에 눈물을 머금으면서 최고의 미소를 지었다.
"……후힛"
지키고 싶었던 얼굴이 거기에는 있었다.
4. 글러먹은 후배는 좋아하나요?
잇시키 이로하가 도시락 테러를 일으킨다고 선언하고나서 5일이 지났다.
"오늘은 이거에요. 자요"
점심시간이 되어 옥상으로 불리어 '진짜?'를 위해라며 반친을 맛보기 한다. 첫날은 달걀부침(단맛과 통말이를 동시에 먹는건 힘들다), 둘째날은 미트볼, 셋째날은 문어 비엔나, 넷째날은 오이를 햄으로 둘둘 말은것, 그리고 오늘은 주먹밥이었다. 도시락통에는 하얀 주먹밥을 직사각의 김으로 둘둘 말은것과, 혼합 주먹밥 두 종류가 들어있다.
"아니, 나 아까 미술시간이라서 손 더러워졌는데"
실제로 손가락 부분은 물감도구가 덕지덕지 부착되어 있어서 이 손으로 주먹밥을 집으면 다른 음식이 될것 같았다. 만약 잇시키가 그것도 계산하고 있다면 귀신아내로서 재능은 십이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 귀신아내하고는 결혼할 생각은 없다. 아니, 잇시키랑 결혼하다고는 누구에게도 말 안했거든? ……누구한테 변명하는거람, 나는….
"……하아, 선배는 정말로 기분 나쁘네요"
요즘들어 똑바로 잇시키의 기분 나쁘다는데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구별할 수 있게 된 나는 이번의 기분 나쁘다는 순순히 받아들이는게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잇시키의 볼은 희미하게 붉게 물들어 있고, 입술은 긴장해서인지 살짝 튀어나와 있다. 어깨는 부들부들 눈은 끔뻑끔뻑, 너 어느틈에 가짜연애에 출현 정해진거야? 라는 느낌의 수줍어하는 방식이다.
"빨리 먹어주세요. 아, 혹시 제 손가락에 입이 닿으면 회장 권한으로 정원 나무 아래에 묻어버릴거에요"
"……킬미냐"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 형태나 외모가 닮은……건 아닌가.
나로서는 백주먹밥 쪽이 신경쓰여서 그것부터 먹고 싶었지만, 잇시키는 혼합 주먹밥을 입에 던져왔다. 한입 사이즈여서 모두 입에는 들어가지만, 역시 불가항력으로 그녀의 손가락은 내 입술에 닿았다……라고할까 물어버렸다.
"히얏"
여기까지 가면, 이미 약삭빠르다기보다는 모에의 영역이었다.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손을 빼놓고, 그녀는――,
"정말, 놀랬잖아요오"
라며 그 손가락에 묻은 밥풀을 먹기 위해 자신의 입 안으로 넣었다.
(이, 일부러가 아냐! 절대로 지적하면 안 돼!)
만약 그녀가 자신의 행동을 눈치채면, 일주일은 매도를 들을게 틀림없다. 여기는 온경하게 자신의 좋은 추억으로 삼아 무덤까지 가져가는 수 밖에 없다.
"자, 그럼 다음 갈게요"
잇시키는 방금전과 같은 손으로 손가락으로 주먹밥을 집어든다. 그리고 내 마음의 패닉을 알리도 없이 담담하게 입가로 주먹밥을 가져갔다.
"……헤에, 뱅어포인가"
입 안에 후두두 풀어지는 뱅어포의 무리, 밥에 소금기가 없는 만큼 뱅어포의 소금기와 풍미를 이끌어내서 솔직히 상당히 맛있다.
"선배는 기분 나쁠 정도로 치바현 좋아하잖아요오. 그러니까 치바의 바다에서 낚을 수 있는 뱅어포를 일부러 사온거라구요?"
감사해주세요. 잇시키는 웃는다.
뭐, 확실히 나는 치바현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고, 고등학생 치바현 횡단 퀴즈같은게 있으면 우승해버리는 자신도 있으니까. 그 마음가짐 치바 포인트 높아!
"……후힛"
"아-, 또 그렇게 웃네. 얼마전에 학생회 회의중에 생각나서 웃음이 그렇게 나와서 이상한 눈으로 주목 받았다니까요오……"
그런 진지한 곳에서 후힛거린거냐. ……통같은거니까 동…좀 아니군.
"그래서, 뭘 생각해서 웃은건데?"
"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얼어붙는 잇시키.
"아니, 그런 중요한 곳에서 웃어버릴 정도로 재미있는 일을 생각한거잖아? 상사의 미키티라도 생각한거야?"
그거라면 웃어버리는것도 이해한다. 그 초현실 뚱딴지는 진지한 자리에서 생각하는 편이 효과가 높으니까.
"그럴리가 없잖아요……. 그 때는 좀……"
표표한 잇시키치고는 드물게, 더듬거리며 똑바로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고 싶지 않으면 딱히 상관없는데"
"그, 그런건 아니지만요오……"
"딱히 네가 상사의 탈의개그로 웃어도 나는 바보취급 안하는데?"
"왜 거기 한정이에요!?
그 때 선배가 역에서 꼬옥 안아준걸 떠올린것 뿐이라구요……바보"
고개를 홱 돌리는 잇시키에게 나는 무슨 반응을 하면 좋을지 망설였다.
솔직히 그 날밤은 스스로도 끙끙 앓을 만큼 부끄러운 짓을 했다고 자각을 하고 있었고, 동시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새긴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설마 잇시키도 마찬가지였을줄은…….
"이, 잇시키――"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타개하려고 말을 걸지만, 잇시키는 고개를 돌린채로,
"언제까지 그 이름으로 부를거에요? 귀여운 후배에게 조금 더 거리를 좁혀줘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라고 말했다. ……에, 그건 즉….
(이로하라고 부르라는 소린가……?)
아, 아니아니, 무리잖아, 무리!
나는 중학교 시절에 만화의 훈남 주인공은 마땅히 여자를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는걸 알고 그걸 실천했다.
『카오리- 안녕』
『히토미, 다음 수업은 뭔데?』
『미사토, 교과서 보여줘』
다음날부터 '이름 강간마'라며 남자애들한테 바보취급 당하고, 여자애들한테는 기분 나쁘니까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주세요 라고 정중하게 부탁받은 나는 그날 밤 방에서 통곡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솔직히……부를 용기가 없다.
"……헷, 그렇게 불러주길 바라면 후배답게 행동해라고"
나는 도망치듯 일어서서 잇시키의 머리를 톡 두드렸다. 그녀는 불만스러운듯 '메롱' 하면서 혀를 내밀었지만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천천히라도 좋다. 우리들의 관계는 무너지는 일은 없으니까.
――그 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다음날, 이로하 도시락 경매가 열린다고 토베가 하야마에게 희희낙락하게 말하던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하야마는 조금 난처한듯 미소로 대답한다.
"어, 무슨 말을 하는건지 잘 모르겠는데?"
확실히 모르겠다. 이로하 도시락도 경매도 독립하면 알겠지만 두 개가 붙는건 우선 없을 것이다.
"악-, 하야토 엄청 둔탱이! 오늘 아침에 잇시키의 가방에 도시락이 들어있던건 알간!?"
훔쳐본거야. 최악이군, 토베. 일본이을 제외한 법률이었으면 무기징역이다……아닌가.
"아아, 너무 만들었다고 했던가"
"그래그래! 그러니까 나는 말해봤지!
그 도시락, 경매하자고!"
――벌떡!
"……아"
"히키타니, 갑자기 일어서고 왜 그래?"
토베의 딴죽에 나는 "화, 화장실" 이라고 얼버무린다. 그리고 잽싸게 교실을 뛰쳐나갔다.
(어쩔 생각이었던거야, 나는……)
잇시키는 나에게 만들어온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으로 솔직하게 그걸 말할 수 있을리는 없고, 입장상 별로 좋지 않다고 판단한거겠지. 나는 그걸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이름을 대서 자신의 입장을 위태롭게 한 편이 화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토베, 너는 그걸 해선 안 돼.
너무 많이 만든 도시락을 갖고 오는건 말도 안 되잖아. 설령 그렇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먹여준다고 정하는건 잇시키 자신이지 다른 누구도 정할 수 있는 권리는 없어.
(더군다나, 경매라고!?)
토베 자신이 갖고 싶어서 빼앗는거라면 납득은 할 수 있다. 토베의 갖고 싶다는 마음과 잇시키의 빼앗겼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은 절충해서 끝낼 수 있다. 하지만 경매는 불특정 인간에게 도시락을 건낼 가능성이 있다. 그 때 만약 잇시키가 모르는 인간에게 넘겨졌을 때, 그녀는 뭐에, 뭐라고 절충을 하면 될까.
그 때, 나는 감정이 격해졌다고 생각한다.
평소라면 잇시키의 감정보다도 입장을 우선했을 것이다. 학생회장으로, 자신의 도시락이 원하지도 않는다고 해도 경매에 붙여진다. 그런게 들키면 최악엔 정학까지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다.
하지만 그걸 깨달았을때는 이미 경매는 시작했고,
봉사부의 교실이 있는 복도 끝, 평소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비상계단 구석에서 남자들의 추악한 다툼은 막을 펼치고 있었다.
"500엔!"
"550엔!"
"570엔!"
총 20명 정도일까, 토베를 중심으로 잇시키의 도시락을 둘러싸고 경매를 하고 있다.
(지금부터 막아도, 잇시키가 경매 개최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남아……)
그건 그녀에게 20명 이상의 인간이 약점을 쥔다는 소리다. 그런 상태로 그녀가 학생회장을 계속할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럼 어떡하면…….
"600엔!"
"600엔 나왔다-! 좋네좋아! 점점 가보자고!"
토베에게 악의가 없다는건 안다. 저 녀석은 바보다. 그저 그걸 하는게 즐겁다고 생각할 뿐인 바보놈들이랑 같은 생각이다. 2차 재해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태풍이 오는날에 밖에 나가는 초등학생같은 그런 수준이다.
그러니까 토베를 때려서 도시락을 빼앗아도, 저 녀석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안 할 것이다. 나에게 얻어맞았다는 사실과 잇시키의 도시락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주절주절 말해서, 깨달았을때에는 자신의 후배를 위험에 몰고가는 미래가 보인다.
그럼 하야마에게 협력을……그보다, 하야마는 어디지?
"야, 야 토베"
"어라아!? 히키타니도 참가!? 역시 인기없는 남은 괴롭네!"
누가 인기없어! 사실이긴 하지만!
"하, 하야마 하야토는 없어?"
"아-, 그게 옥션을 그만두라고 하니까 비밀로 했어!"
테헤페로하고 웃는 토베.
……하야마, 너는 늘 그래. 할 수 있는건 한다. 최대한 노력은 다 한다.
그건 즉, '할 수 없는건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는건 안 한다'라는 소리다. 딱히 책임을 짊어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거나, 남일이라고 생각한다나 그런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 그 녀석은 누구보다도 올곧고, 누구보다도――서툰 녀석이다.
(그런거라면 나도……마찬가지인가)
나도 그거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언제나 아웃로드 선택을 하고, 언제나 누군가를 상처입힌다. 때로는 자신이며, 타인이다. 그 이외의 바업을 모른다는것도 있고, 나에게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없다는것도 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또한 할 수 있는건 적었다.
"1000엔!"
웅성거림이 더 커졌다.
구석에서 잠자코 있던 키작은 뚱보가 수치를 단번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런……이대로라면 결착이 나고 만다…)
세세한 싸울때는 자잘하게 늘어가므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단번에 뛰어올랐을때는 그건 단번에 가속한다.
"1200엔!"
"엑"
"1500엔!"
"지, 진짜냐!?"
토베는 여기에 와서 겨우 사태의 중대함을 깨달은 모양이다.
학생회장의, 그것도 귀여운 여자애의 수제 도시락은 일본에서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레어도는 돈으로 살 수 있는건 아니므로, 반대로 말하자면 '얼마든지 낼 수 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잇시키에게 있엉선 시판 도시락비 정도라면 재료비로 용서될 이야기였을지도 모르지만, 2000엔을 넘긴 지금은 '해선 안 되는 일'로 발전해버렸다. 아무리 변명을 해봐도 돈을 목적으로 학생회장의 이름을 이용한 사실을 뒤덮는건 불가능할 것이다.
"저, 저기……말야, 그건 좀――"
"3000엔!"
토베는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하고 싶어서 변명을 생각하지만, 경매는 이미 독주를 해버려서, 놀이 반이었던 그는 어떻게도 할 수 없었다.
(……어떡한다…)
방법은 몇 가지 있다. 하지만 '잇시키를 상처입히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는 하나도 없다.
어떠한 방법을 써도 그녀는 상처를 입는다. 그건 지위이거나, 명예이거나――마음이기도 하다.
우선순위를 생각하면 역시 '지위와 명예'는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건 잇시키만의 문제가 아닌, 이 소부고등학교의 품격을 지키기 위함이며, 최종적으로는 그녀자신을 지키는것이 되니까.
(하지만, 이걸하면 저 녀석은……)
아니, 지나친 생각인가. 이 방법이 잘 가면, 상처입는건 많아도 둘. 어쩌면 한 사람만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럼 할 뿐인가"
딱히, 잇시키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 도시락은 본래 나한테 올 물건이었다. 즉, 나도 관계자라는 소리다. 하야마하고는 달리, 직접적으로 연관된 나는 아무리 서툴러도 그걸 해낼 책임이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내서 전화를 건다. 그러자 잇시키는 바로 받았다.
『……선배』
그 목소리에는 패기가 없다. 그야 그럴 것이다. 내심 후회와 괴로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가볍게 해줄 때가 아니다. 나는 평소보다도 큰 목소리로,
"아니, 말하는게 늦어졌지만, 네 이름을 써주겠어"
『선배……설마!?』
……젠장, 여전히 감이 좋은 녀석.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토베에게 말을 건다. 시간은 없다.
"야, 토베. 내 제안이니까 내가 떠벌려도 되지?"
"어?"
갑작스런 끼어들기에 자리가 단번에 조용해졌다. 토베는 무슨 일인지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나는 말이다, 처음에는 돈이 필요해서 너한테 협력했지만, 역시 얘기가 너무 커졌다"
토베의 옆까지 걸어가서, 몇 개의 시선에 분노가 섞여있는걸 보고, 나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잘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역시 상식적으로 위험하지"
입술이 마른다. 20명 이상의 분노를 한몸에 받는건 솔직히 괴롭다. 지금까지와 달리, 또렷한 분노다. 하지만 그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까, 말한다.
"다들 미안. 이건 내가 만든 도시락이야"
그 순간 동정들의 분노가 덩어리가 되어 나에게 쏟아졌다.
……하지만 그것이 노려보는 시선으로만 끝난건, 그들도 또한 자신이 하고 있는 짓이 가슴을 펼 수 있는 행위가 아니라는걸 알고 있던거겠지. 토베가 떨리는 목소리로,
"하, 하하, 그, 그렇군. 히키타니의 말대로잔스……"
토베의 괴로움이 보일듯이 알았다. 이 녀석은 남을 속이면서 무언가를 바라는 그런 녀석이 아니다. 남을 속이는 결과가 된 것, 잇시키를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나온것, 그리고 나를 말려들게 해버린 일의 책임에 괴로워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일이 된 책임 정도는 져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내가 하려고 하는 짓은 '멈추지 못했던 잇시키'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녀에게도 책임은 있다. 학생회장으로서 토베를 제대로 막지 않으면 안 됐고, 막지 못했을 경우엔 선생님에게 보고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녀는 그러지 못했고, 그게 가능할 정도로 강한 인간은 그리 없다.
그러니까 내가 죄를 뒤집어 쓴다.
잇시키에겐 누군가가 죄를 뒤집어쓴 괴로움을 받는걸로 그 죄를 청산하게 하자.
(……라고 말했지만, 분명 나는…)
아니, 그걸 지금 인정하면 '이제부터 해선 안 될 짓'에 망설이고 만다. 그러니까 지금은……안 된다.
실제로 사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방향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토베랑 이 녀석의 접점은 없는데, 이런 짓을 하냐?"
"도시락 자체는 잇시키가 갖고 있었꼬 말이야"
동정들의 망상이 높아져서 『내가 속이려고 했다』에서 『내가 잇시키의 도시락을 가로채려하고 있다』 로 변화하려고 하고 있었다. 사람은 자기 형편에 좋은 방향으로 일을 전환하려 하므로, 사귀지도 않는 여자애의 도시락을 경매하려고 하는 남자는 더 그랬다.
"토베, 도시락을 넘겨"
나는 반쯤 억지로 빼앗듯 도시락을 움켜쥔다. 학생들의 시선을 한몸에 모았다.
"문어 비엔나"
웅성, 소란이 일어났다.
"달걀부침, 오이를 햄으로 말은거, 미트볼, 그리고……백미 주먹밥"
그리고 도시락은 연다.
――말한대로의 요리가 거기에는 있었다.
"젠장! 진짜냐!!"
"속았다!!"
"최악이구만, 너도 토베도!"
남자들의 비난이 집중한다. 토베는 미안하다고 사죄했지만, 나는 그걸 무시한다.
점차 계속 사과하는 토베로부터 나에게로 표적은 집중해간다. 평소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남자한테 속아서, 사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들은 견딜 수 없는 거겠지.
……그거면 된다.
이대로 가면, 분명 나는 희대의 악역으로 소무고등학교의 도시전설이 될 것이다. 토베는 아무래도 좋지만, 잇시키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피해자로써 동정마저 받을지도 모른다.
――이 한 마디가 없으면.
"어라, 그치만 이 녀석, 얼마전에 잇시키한테 뭐 얻어먹었다고"
후두둑,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그건……"
임시변통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작전이었던 만큼, 아무 변명도 생각나지 않는다.
"너, 역시 독점하려고 한거 아냐?"
남자들도, 자기보다 밑인 인간에게 속았다는 사실보다는 진짜라며 일제히 일어선다.
"인정해라!"
"좋아하는거냐고!"
"그보다 사귀는거 아냐!?"
"그렇다는건 잇시키도 한패야!?"
이런, 위험하다위험하다.
이럴때 바로 반응할 수 있다면, 나는 진작에 반의 인기남이다. 뭣하면 하야마와 둘이서 아이돌까지 했을지도 모른다.
괴롭다. 어쩌면…….
(……앗…)
――있다. 하나만, 이 자체를 수습할 방법이.
천천히 시선을 도시락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잇시키의 노력과, 나에게 대한 마음이 넘치고 있었다.
눈물이 흐를것 같았다.
(아직이다, 아직, 참지 않으면 안 돼……)
"――!"
"――!"
"――!"
이제 한명한명의 말을 들을 정도로, 누구도 냉정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행동으로 보인다.
"……엣?"
내가 전방으로 도시락을 내민것에 다시 자리에 정적이 찾아온다. 흔해빠진 표현이지만, 모세가 바다를 가른듯이, 거친 분노로 길 하나가 뚫린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걸……뒤집었다.
――철퍽.
모든게 끝난, 그런 소리였다.
◆에필로그◆
소부 고등학교의 학구내가 아닌 공원에서 나와 하야마는 벤치에 앉아있었다. 솔직히 하야마만 너무 그림이 되서 무섭다. 나 혼자였으면 신고당했을텐데. 이 녀석만 있으면 역헌팅도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미안해"
하야마가 사죄했다. 하지만 나에겐 이미, 그 말이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닌 단순한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이래. 이번에도――"
"야 하야마. 너는 나한테 위로받고 싶어서 부른거야?"
스스로도 감정이 없는 목소리였다고 생각한다. 하야마는 멋쩍은 얼굴을 하고 일어선다.
"정말이군. 미안해. 아니, 본심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불러낸건 다른 이유야"
조금 기다려줘, 라며 하야마는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아니, 그게 누구인지는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았다.
그리고 바로 '그녀'는 다가왔다.
"……선배…"
눈물젖은 눈. 약삭빠름이 없는 슬픔으로 가득찬 표정.
내가 모르는 잇시키가 거기에 있었다.
"나는 언제나 한발 늦게 너한테 폐를 끼쳤어. ……그러니까 그녀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았다. 잇시키도 하야마도, 뒤쫓아오지는 않았다.
돌아가는 길, 온갖 모든 감정이 소용돌이쳐서 걷는것 마저도 힘들었지만 어째선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더는 잇시키하고는 만날 수 없다. 그녀를 속인 형태가 됐다는것도 있고,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을 짓밟은'건 틀림없는 나다. 결과론이라고 위로받아도, 지면에 떨어진 식재는 그녀가 건내고 싶었던 도시락 정도가 아니다.
석양이 굉장히 다정해서, 나는 한 번만,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울자고 생각했다.
(미안, 잇시키. 나는 너를……분명…)
말로는 할 수 없다. 해버리면 나는 평생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운 다음에는 웃는다. 자신은 결과로서 그녀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그거면 되지 않는가.
그 때, 아주 몇 분이지만 나는 확실히, 그녀를 전신전령으로 지켰으니까.
"……후, 후힛…"
억지로 만든 미소는, 거울너머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일그러져있었다.
5. 약해진 후배는 좋아하나요?
잇시키 이로하의 연락을 거부하게되고나서 벌써 몇주가 지났다.
학교에선 가능한 교실을 나가지 않고 보냈다. 자의식과잉이라고 들으면 거기까지지만, 그녀와 별로 얼굴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동정남자들은 그날 이래로 큰 소문은 돌지 않고, 하야마가 "토베랑 내가 어떻게든 했으니까"라고 했으므로 그런걸테지.
잇시키하고는 못 만나고 있었지만, 나에게 있어선 모든게 나쁜 방향으로 가고 있던건 아니었다.
"야야 히키가야! 이거 어떤 식으로 가면 좋냠!?"
스마트폰 게임 화면을 보게 되는것도 【진행한다】이외의 버튼을 찾을 수 없다.
"아니, 그건 자신을 믿으면 된다고 생각해"
라고 대답하니 토베는 "그런가-" 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사건이 있고나서 토베는 나한테 엉키게 됐다. 처음에는 죄악감이 훤히 보였지만, 대화해보니 역시라고 할까 평범하게 좋은 녀석이었다. 나하고 거리감을 항상 생각해주고 있고, 결코 자신의 주의주장을 밀어붙이지는 않는다. 아무래도 단순한 말많은 녀석이 아닌 모야이다.
"저, 저기 하치만! 요즘 나보다도 토베하고 사이 좋지 않아!?"
갑자기 나타난 메인 히로인(임시)이 나에게 멈칫한다. 아니, 왜 거유 캐릭터가 가슴을 어필하는듯한 포즈를 취하는거야, 사이카.
"마, 마침내 왔다……사이하치에서 카케루! 붓샤아아아!"
에비나가 쓰러지는걸 미우라가 받쳐주면서 작은 목소리로 "자중……이제 됐어" 라고 중얼거렸다. 평소라면 '바깥 세계'였던 이 교실이 '자신의 세계'인것 처럼 생각하게 된건, 분명 그 때 내딛은 덕분이겠지.
"저기 힛키, 점심 시간에 잠깐 시간 돼?"
타이밍을 재고 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어온다. 하지만 아까부터 힐끔힐끔 나를 너무 쳐다보고 있거든. 만약 내가 코난이었으면 코지로 아저씨한테 마취총 못 쏜다고? 사건해결을 못하잖아?
"뭔데, 점심시간은 혼자 어디서 요리 쇼할거야. 오늘 메인은 카레빵과 야키소바빵이니까 엄청 집중하고 싶은데"
"뭐야 그거 기분 나빠……"
기분 나빠.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웅성거린다.
『선배, 기분 나빠요』
『우와아, 선배 기분 나쁘네요』
『조금 기분 나쁘니까 다가오지 말아줄래요?』
설령 가시있는 말투여도, 그 가시는 확실하게 나에게 향하고 있고, 누구보다도 많이 나를 생각해준 여자애.
"………"
"……또 이로하 생각해?"
"뭣……그, 그런거 아냐. 나는 천연수 파다"
뺨이 뜨꺼워진다.
뭐야 이거, 스스로도 알 수 있을 만큼 기분 나빠!
"힛키……자전거 주차하는곳에 반드시 와"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는 수 없으니까 MAX커피를 사는 김에 들러보기로 한다.
◆◆◆
점심시간, 소부 고등학교에 불어오는 겨울 바람은 상당히 춥고도 심하다.
"여, 역시 안으로 들어가자 힛키"
유이가하마는 양손으로 치마를 누르면서 학교로 들어가자고 제안한다. 나는 빨려들어가는 시선을 필사적으로 피하면서 몇 번이나 끄떡였다.
"히야-, 추웠어어"
그치, 라며 동의를 구해도 유이가하마처럼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애의 마음을 모르니까 나는 "그럴지도"라고 적당하게 대답한다.
자전거 주차장에서 들어가는 학교 입구는 굉장히 어둡고, 귀가하는 학생 정도 밖에 이용자가 없어서 비밀얘기를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즉, 유이가하마가 나를 불러낸건 그런 일이겠지.
"요즘 힛키는 봉사부 의뢰를 열심히 하지"
유이가하마는 미리 사뒀던 오후 홍차를 마시면서 나의 봉사부 공헌을 평가했다.
뭐, 실제로 최근 몇주간 나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정통파 주인공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유키노시타마저 "마침내 이 세상도 끝나는구나"라며 농담을 했을 정도니까 상당한거겠지. ……농담이지?
"……눈치채고 있었어"
"눈치채?"
유이가하마는 흥미깊게 나를 쳐다봤다. 그 동글동글한 큰 눈동자는 순도가 높고, 나를 신뢰하고 있는 색을 띄고 있었다. 나는 절전을 위해 하나 빼둔 형광등을 쳐다보면서 말을 한다.
"나는 지금까지 계속 내 방식이 올바르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 하지만, 결코 틀렸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설령 틀렸다고해도 나 만큼은 그걸 인정해주자고 다짐해왔어"
유이가하마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대체 왜 그녀가 불러놓고 내가 이런 부끄러운 얘기를 하게 된거지.
"하지만, 실은 달랐어. 나에게는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상상으로 평가를 낼 수 밖에 없었어. 좋은점도 나쁜점도, 모두 내 인생에서 보아온것을 느낀것을 중심으로 채점해왔어"
어째선지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는 유이가하마에게 뭘 바라고 있는걸까. 무슨 말을 해줬으면 싶은걸까. ……모른다.
"그러니까……그게…"
말이 막힌다. 그 이상은 필사적으로 감춰왔으니까. 말로 하지 않고 얼버무린채로 도망쳐왔으니까. 새삼 형태를 만들 수 없었다.
――유이가하마는 그걸 무척이나 쉽게 형태로 만들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구나"
포근한것이 내 머리를 감쌌다. 그것이 유이가하마의 손이며, 뺨이며, 어깨라는걸 깨달았을때는, 나는 더 이상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나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나는 막을 방법을 모른다.
넘쳐내리는 눈물을 나는 닦을 방법을 모른다.
누군가가 다정하게 대해주었을때,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모른다.
"힛키, 괜찮아. 괜찮아"
맞닿는 뺨의 틈새에 눈물이 흐른다.
"……유이가하마? 너까지 왜…"
어느샌가 유이가하마도 울고 있었다.
"응…… 나 먈야,
힛키를 좋아해"
――정말로, 좋아해. 힛키.
그녀의 말이 마음에 슥 녹았다――.
◆◆◆
방과후, 봉사부로 향한다. 유이가하마는 '너무 울어서 얼굴이 엉망이야'라며 조퇴했다. 미우라는 어째선지 다정한 눈매로 나에게 미소짓고 있었지만, 그럴때 어떤 얼굴을 하면 좋을지 몰라서 무시해뒀다. 잠시 힐끔 쳐다보니, 캐피바라같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무섭다.
"……어머, 오늘은 일찍 왔구나"
봉사부 교실로 들어가니 유키노시타가 평소처럼 의자에 앉아있었다.
"아아, 들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유이가하마는 오늘은 휴식이다"
나는 평소처럼 벽측 의자에 앉는다. 평소대로다.
"그래, 물론이야. 내가 유이가하마를 더 좋아하니까, 정보도 빠른게 당연하지, 두번째가야"
질투인걸까. 유키노시타의 말에는 가시가 있었다.
"알고 있어. 나는 두 번째야, 유키노시타"
실제로 유이가하마도 유키노시타가 남자였으면 나보다도 좋아했을테지.
하지만 그건 가정상의 이야기이며, 유키노시타가 남자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내가 유이가하마의 마음에 대답할 수 없듯이.
(아니, 그거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인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유이가하마의 마음을 정말로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쉽게 나의 마음을 말할 수가 있었다.
"너 같은거에게 차인 유이가하마가 가여워"
정말로 별 수 없는 사람이야, 라며 유키노시타는 문고본에 시선을 떨군채로 나를 비난했다.
"아아, 그렇군. 하지만……기만으로 사귈 만큼 나는 유이가하마하고도 너하고도 옅게 교제를 해갈 생각은 없어"
그렇게 말한 순간, 유키노시타는 살짝 문고본을 책상위에 두었다. 그리고,
"알겠니, 히키가야. 나는 전에도 말했다시피 너를 좋아하지는 않고, 더군다나 교제하고 싶다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어. 그저 조금 아이의 장래설계를 세우고, 노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본것 뿐이지, 거기에는 무엇 하나 타의는 없어"
유키노시타는 술술 흐르듯이 잘 모를 소리를 했다. 내가 반응에 곤란해하고 있으니,
"그러니까, 히키가야.
이미 너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으니까, 제대로 대답해주렴"
그 눈동자는 유이가하마와 마찬가지로, 순도 높고 나 만을 생각한……그런 시선이다.
유키노시타는 "아아, 한명 더 있었지만, 그 사람은 내버려둬도 돼"라고 말했다. 가엾은 유키노시타 누나. 아마도지만.
나는 유키노시타의 말을 듣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그 부분도 간파했던걸테지. 유키노시타도 또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묻지 않았다.
침묵만이 흘러, 히라츠카 선생님이 맞이하러 와서 오늘 부활동은 끝을 고했다.
◆◆◆
돌아가는 길, 히라츠카 선생님이 밥을 사줄테니까 따라오라며, 회사에서는 파워희롱으로 신고할 수 있을법한 위압을 보여서 하는 수 없이 따라간다. 이런 미인과 밥을 같이 먹어서 기쁘지, 라며 아라사가 즐거운듯 말해서 나는 그렇네요, 라고 적당하게 대답을 한다. 왠지 사회인으로써 대응을 단번에 배울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급료전날이니까. 물론 라면이다"
뭐가 물론인진 모르겠지만, 딱히 어드딘 좋다. 오히려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어른의 시간이 되어버려서 여러모로 뒤돌릴 수 없을것 같으므로 라면이면 대환영이다.
"주인, 생라면 둘"
아니아니, 당신 얼마나 돈 없는거야. 그러면 딱히 불러주지 않아도 괜찮았는데.
잠시 라면이 나오는걸 기다리고 있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은 다정한 목소리로 "요즘도 열심히 하고 있구나" 라며 칭찬했다. 평소라면 요즘'은' 이라고 하겠지만, 그 부분은 제대로 구별해주는 이 사람은 솔직하게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 일은 토베한테 들었다. 솔직히 네가 거기에 개입했다고 들었을때는 놀랬어"
"뭐, 그렇네요"
제 3자의 눈으로 보면 정말로 놀라는것 말고는 없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하지만" 하며 얘기를 계속했다.
"나는 너에게 그 능력이 없다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은 없어"
다정한 눈매.
어머니가 아이의 자랑을 들어주는듯한, 그런 시선이다.
머리띠를 머리에 감은 험상궂은 주인이 "여기"라며 라면을 건냈다. 물론 수프에 엄지는 들어가있다. 꽤나 엄지맛이 맛있는 라면의 비결인게 아닐까 생각을 한다.
"너는 마치 이 라면 같구나"
교사 특유의 뭐든지 예를 드는 얘기가 시작했다.
"싸보인다는 소립니까?"
라고 말하니 점주가 희번뜩 나를 노려봤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황급히 "그게 아니라"라며 변명을 한다. 우와아, 점주 진짜 무서워…….
"너는 아무 꾸밈이 없어. 다른 사람이 차슈를, 파를, 면을, 각자 원하는 것을 올려서 살아가는 가운데, 너만큼은 항상 자기 스스로 있으려고 하지"
과대평과다.
"……그것밖에 모르는것 뿐입니다"
나는 라면 수프를 한입 들이킨다. 다정한 맛이 났다.
"몰라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다정하진 않아"
히라츠카 선생님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후루루룩거리는 품격 낮은 소리만 가게에 울리며, 나는 "아아, 이 사람이 결혼할 수 있는건 좀 멀었구나" 라며 확신한다.
돌아갈때 결국 뭘 하고 싶었던겁니까, 라고 물으니 "혼자서 라면 먹는게 외로웠다"라고 대답한 히라츠카 선생님은 역시 교사로서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
다음날, 휴일에 너무나도 한가해서 잇시키의 연락을 받아보려고 해봤다.
아니, 딱히 뭔가를 기대하고 있다던가, 내가 어쩌고 싶은건 아니지만, 역시 사람으로서――
prrrrrrrrrrrrrrrrrrrr!!!
"히이!?"
스마트폰 화면에 비치는 '잇시키 이로하 착신' 의 문자. 에에, 착신거부해제 통지는 안 했는데. 좀 무서운데.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안달내며 통화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래, 의도적이다. ……아니, 누구한테 적나라하게 고백하는거야, 나.
"선배에……콜록"
그 목소리는 약하고도 괴로워보여서, 나는 그만 큰소리를 질러버린다.
"잇시키!? 너, 괜찮아!?"
"괜찮지 않아요오……콜록콜록"
그녀의 목소리는 가래가 섞여있어서 괴로워보였다.
"가족은!?"
"짧은 여행을 가서 2, 3일은 없어요……"
진짜냐.
"친……"
무슨 말을 하려는거야, 나는.
(잇시키는……'나를 의지해주고 있어')
그런데 누구에게 맡겨도 되는건가?
또, 변명을 들이대며 방관자로 있을 생각인가?
"……선배?"
"……줘"
"줘?"
"빨리 주소를 가르쳐줘, 이로하!"
자택을 뛰쳐나갈때 코마치한테 "청춘이네에" 라며 놀림을 받았지만 나는 그걸 순순히 응원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늦어졌지만, 인정하자. 이 기분, 이 마음, ……이 감정.
나는 잇시키 이로하를……그녀를 좋아한다.
◆◆◆
이로하의 집에 도착하니 의외로 거기는 검소한 한 채건물이었다. 결코 작은건 아니지만, 좀 더 이리 화려한 집이라고 생각했떤 나는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아니, 장래에 부모에게 인사할때를 생각한건 아니거든.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나는…
스마트폰에는 메시지가 들어와있었다.
『문은 열어뒀으니까 그대로 들어와주세요. 2층 가장 안쪽이에요』
(……너무 신용하잖아)
조금 그녀의 위기관리능력이 불안해졌지만, 동시에 그만큼이나 신뢰해주고 있으니까 순순히 기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가니 양식 현관이 있고, 신발이 하나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매일 신발장에 넣는다면 별개지만, 차고에 차도 없었으니 정말로 부모님은 부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실례합니다-"
일단 한 마디를 한다. 물론 반응이 없다. 문은 한번 두드려봤지만 이런거 신고당하면 도망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가 되는걸까. 조금 불안해졌다.
계단을 올라 방의 안쪽으로 향한다. 문에는 표찰이 걸려있고 '이로하의 방'이라고 귀엽게 쓰여 있었다.
"……나다"
3번 정도 노크를 하고 말을 한다. 그러자 작은 목소리로,
『사, 산……』
라며 닌자의 구호같은 말을 하려고 해서 나는 문답무용으로 문을 열었다.
"그럴 때가――"
"헷……"
방의 중앙에서 지금 파자마 바지를 입으려고 하는 소녀의 모습이 거기에는 있었다.
핑크색 파자마는 허벅다리 부근까지 올라가있고, 조금만 더 기다리면 그 보라색의 헐렁헐렁한 속옷을 감출 수 있었을 것이다. ……기뻐해야할까, 반성해야할까.
뭐 어쨌든 잇시키한테서 기분 나쁘다니 설교를 받을테니까 반성은 그리고나서 하자. 그렇게 생각했더니.
"……정말로 선배는 야하네요"
라며 힘없이 웃었다. 그리고 파자마를 다 입고 나에게 두 손을 내밀었다.
"서언배애, 저, 이제 괴로워서 죽을것 같아요오"
꼬옥 해주지 않으면, 왠지 위험해요오. 라며 방울방울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는 필사적으로 나를 바랬다.
나는 사온 식재료랑 짐을 내리고,
그녀를 세게 껴안았다.
"히야아……괴로워요"
껴안아주는 잇시키의 팔은 정말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라, 몇 번이나 추욱 내리고는 다시 올린다.
"일단 누워. 서 있는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쓰니까"
그래도 잇시키는 움직이려고 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같이 침대로 가기로 햇다.
(그, 그보다 이 녀석, 브래지어 안 차고 있냐!?)
걸을때마다 부드러운것이 팔꿈치나 가슴에 닿는다. 그 때마다 나는 소수를 세는 전형적인 저항을 보이지만 아들은 개의치않고 기운이 넘쳤다.
하지만 잇시키는 그걸 깨달을 여유는 없었던 모양이라, 침대에 앉히자 그대로 쓰러지듯 이불로 기어들었다.
"……하아하아…"
엄청난 전개에 냉정함을 잃고있었지만, 잇시키의 볼을 만지니 엄청 뜨겁다.
"병, 원은 갔는데요……인플루는 아닌것 같아…요"
잇시키는 평소의 느린 어조를 더욱 느리게 하며, 어떻게든 말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 병원에 갔다면 그리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열이 올랐을때는 병균과 싸우고 있을때라고 하고, 지금이 고비니까 앞으로는 편해질 것이다.
"더는 말 안해도 돼, 고개를 흔들어서 대답해. 식욕은 있어?"
잇시키는 고개를 가로로 젓는다.
"목은?"
"……조금"
사온 포카리를 물에 연하게 풀기 위해 부엌을 빌리려고 한다. 환자에게는 꽤 짙다고 들은적이 있으니까.
떠나려고 하니 잇시키는 내 손을 꼬옥 잡ㅈ고 고개를 가로로 저었지만, 나는 금방 돌아올게, 라고하며 그 손을 이불 속에 넣었다.
"후우……맛있네요 이거…"
잇시키의 등에 내 무릎을 감아 목덜미를 팔로 받쳐주는걸로 편한 자세로 포카리를 마시게 한다. 코마치가 감기를 걸렸을때, 실컷 터무니 없는 주문을 들어온 결과를 이런데서 발휘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해봣다.
"선배…저기…"
수분을 보급해서 다소 차분해졌는지, 잇시키는 힐끔힐끔 쳐다보고 뭔가를 말하려고 서성이고 있다.
"걱정마. 응석받아주는건 동생 덕에 익숙해"
거기다 마라핮면 이미 여기에 데려온 시점에서 사양은 의미없을 것이다.
그렇게 설득을 하니 잇시키는 납득했는지 끄덕이며,
"정말로 선배는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고, 우연히 여기에 있는것만인데 굉장히 불본의하기는 하지만――"
언어의 나이프를 몇 번이나 찌르면서, 잇시키는――,
"안겨줘도, 뭐어……된다구요?"
라며, 안겨온 것이었다.
◆◆◆
그 후, 가족의 짧은 여행이라는 거짓말은 어머니의 귀가로 바로 들키고, 나는 엎드려 빌기에 가까운 사죄를 보이는 꼴이 됐다. 잇시키의 어머니는 좋은 사람이라서, 거수자에 가까운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식재랑 포카리 값을 내주었다. 감기가 옮으면 안 되니까 답례는 다음에 저녁먹을때 부르는걸로 어떠냐고 제안을 받고, 나는 수줍어하면서 그걸 승낙한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때,
"뽀뽀도 했으니까,. 제대로 양치질 하지 않으면 안 된단다? 입안에는 균이 많이 있으니까"
라며 쿡쿡 웃는 잇시키의 어마.
역시 이 사람은 잇시키의 엄마구나, 라고 확신한 순간이었다.
돌아가는길, 왠지 되게 피곤했지만 잇시키의 마음도 또렷해졌고, 거리도 가까워졌고, 럭키 스케베도 있었고, 그녀의 귀여운 구석도 잔뜩 보아서 머리속이 끓어오를것 같았다.
그러니까, 역시 나는,
"……후힛"
잇시키 이로하를 좋아하는거겠지.
◆에필로그◆
다음날, 훌륭하게 감기가 옮은 나는 안녕 마이데이 해버린다. 코마치가 걱정스러운듯 나를 쳐다봤지만 그리 괴롭지도 않아서 학교로 보냈다. 정말로 귀여운 동생을 가져서 치바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그나저나 괴롭다. 뭐야 이거.
단순한 감기치고는 너무 괴롭다. 잇시키는 이렇게나 괴로워했었나.
확실히 누군가를 바라는 마음도 모르지는 않는다. 괴로울때는 외로워지고, 외로울때는 온기를 원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잇시키에게는 연락하지 않았다. 몇 번인가 전화가 걸려왔지만 그것도 무시했다. 라인 메세지로 괜찮으니까, 라고 보냈떠니 걱정이나 나 때문이네요, 라며 몇 건이나 메시지가 왔던것도 무시하기로 했다.
우리는 선배후배 관계다. 후배에게 의지받는 일은 있어도, 선배는 가볍게 의지할 수는 없다. 잇시키도 학생회장으로써, 2학년으로써 누군가에게 의지받을 때가 올 것이다. 반대로 의지하고 싶다고 생각할때도 올지도 모른다.
그럴때, 나의, 선배의 듬직함을 알아두는건 분명 플러스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연락은 절대로……절대로……
"만나고 싶어라……이로하아"
말을 해보니 조금 편해진다. ……그러니까 말해본것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더니, 문 너머에서,
『……후힛』
선배의 노력이 쉽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선배! 지금 그건 역시 기분 나빴지만, 부탁받으면 거절할 수 없으므로 와줬다구요!"
그 손에 들려있던건 이로하스.
――역시, 잇시키는 약삭빠르다.
"정말로 어쩔 수 없이 온거라니깐요!"
하지만 역시……귀엽다.
보너스 트랙 그 2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방
하루노"아- 다행이야아"
아이"아빠-"다다다닷
이로하"헤?"
하치만"어, 어어?"
하루노"자, 아빠한테 인사는?"
아이"안녕, 아빠! 언니!"
이로하""
하치만"………"
□□□
이로하"뭐, 뭐야-, 유키노시타 선배의 사촌동생인가요오-"아하하
하루노"믿어버릴 정도로 누나랑 히키가야는 닮았다는거구나"훗
하치만"놀리지 말아주세요. 잇시키는 질투 깊으니까요"
이로하"서-언-배-애-?"꼬옥
하치만"아얏!"
하루노(흐-응, 그런대로 진전한것 같네)
아이"아빠-"꼬옥
하치만"여자애……지? 치마는 입고 있고……"
하치만(사이카의 예도 있으니까 몰라……)
아이"볼래?"팔랑
하치만"뭣!?"움찔///
이로하"………"
하루노"아하하-, 안 돼 료, 그런 상스런 짓 하며언"빙글빙글
료"네-에"
하치만(료라고 하는건가아……)
이로하"그래서, 저희를 부른건 무슨 이유인가요오-?"
하루노"너를 부를 생각은 없지만 말야아"
이로하"므-……"
하치만"여, 여자애랑 둘이서 오라고……"
하루노"아니-, 순전히 유이나 유키노랑 올거라고 생각했어-"아하하
료"아하하-"
이로하"므으……"홱
하치만"……그 이상 나의 후배를 놀릴거면 돌아갈겁니다"빤히
이로하"선배……"
하루노"에이참, 그럴 생각이 아니라고 했잖아. 누나의 농담이야-"찰딱찰딱
하치만"하아……"
이로하"선배도 참, 나의 후배라니 기분 나빠요. 저는 선배의 소유도 아니구요"
하치만"말이 그렇다는거잖아……"
료"언냐는 아빠랑 사귀는거야-?"
이로하"헷///"화아악
하치만"뭣……///"화아악
하루노"어머어머"
료"응-, 언냐는 가슴이 좀 부족할지도-"주물주물
이로하"냐앗!?"움찔///
하치만"어, 어어……"
하루노"앗하하, 그럼 나는 일이 있으니까 뒷일은 부탁해"
두 사람""헤?""
하루노"아, 그래그래.,
안쪽 방에 아기도 있으니까 깨우면 기저귀 교체랑 우유 줘야한다?"
두 사람""
하루노(뒷일은 부탁할게, 료)생긋
료(응)생긋
안쪽 방
아기"………"새근새근
이로하"귀여워……"콕콕
하치만(의외네……엄청 엄마의 얼굴을 짓고 있어)
이로하"………"머엉///
하치만"………"빤히///
료(므으, 언냐, 생각 이상으로 이 사람들 러브러브한데……)
□□□
앞쪽 방
하치만(아기는 잇시키에게 맡기고 나는 료하고 노는건가……)
료"저기저기 아빠. 뭐하고 놀래?"
하치만"그렇군, 그러니까"
하치만(남이랑 노는 방법을 몰라……)데엥-
료"뭘 충격받고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그럼 연애 얘기하자!"
하치만"헷!?"
하치만(이 애, 유치원정도지……)
료"그럼 료는 아직 아이니까-, 하루노 언냐가 좋아하는 사람을 말할게!"
하치만"부훗!?"콜록
료"왜 그래?"
하치만"그, 그 사람한테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거냐……그보다 있어도 말하면 안 되잖아"
료"으응! 괜찮아! 왜냐면 언냐한테 직접 들은게 아니구!"
하치만"그런가. 즉, 료의 예상이라는거야?"
료"어려운 말은 모르겠지만, 언냐가 좋아하는 사람이야!"생긋
하치만"어, 어어……"
료"언냐가 좋아하는 사람은 말야……"빤히
하치만(그런 괴물같은 사람에게도 좋아하는게 있는건가……)꿀꺽
료"응-, 역시 그만둘래"
하치만"………"미끌
료"어라어라? 혹시 기대했어?"니시시
하치만(그 미소는 유키노시타 씨랑 판박이다……)추욱
<응갸 응갸-
료"아, 히토미 울어-!"
하치만(히토미라고 하는건가……)
료"히토미-! 일어났니-"달칵
이로하"……헤?"가슴 훌렁
료"아……"
하치만""
히토미<갸- 갸
이로하"냐……냐아아아아아아아아!!"화아악///
하치만"………"빠아아아아아안히///
료"아빠 바보오오오오옷!"찰딱
하치만"으헉!!"꽈당
□□□
하치만"………"
이로하"………"
두 사람((지쳤다……))하아…
히토미"………"꽈악꽈악
이로하"손 쪼끄매……"머엉///
하치만(……뭐, 결과 올라잇…인가?)
료"……히토미만 치사해!"꼬옥
이로하"헷!?"
료"료도 이로하 언냐랑 꼬옥 할래!"꼬옥///
이로하"……료야"쓰담쓰담
료"이로하 언냐 정말 좋아!"비비적비비적
하치만"왠지 인기 많구나, 잇시키"하하
이로하"응……조금 아이 갖고 싶어졌을지도"빤히///
하치만"헷?"
이로하"………"빤히///
하치만"………"
료"프로포즈 하는거야?"
하치만"헷!?"화아악///
이로하"………"빤히///
하치만"……그, 그게……"
료・이로하""………""빤히빤히//
하치만"나는……"
료・이로하""………""빤히///
하치만"………"꿀꺽
하치만"잇시키를 행"다녀왔어--!"달칵
하루노"이야- 빨리 끝났어-!"에헤헤
료"………"하아
이로하"………"하아
하루노"헤?(왜 료랑 잇시키가 사이 좋아진거야?)"
하치만"………"휴우
하루노"……헤?"
료"언냐는 말야……
혼기 놓쳐버릴것 같아"헷
하루노""
□□□
료"언냐 또 놀아줄래?"울먹울먹
이로하"응. 물론이야"쓰담쓰담
하루노"왠지 잘 모르겠지만, 둘 다 고마워"
하치만"네"
하루노(다음에는 개인적으로 놀러와)웅얼웅얼
료"네네, 언냐는 이쪽으로-"꾸우욱
하루노"료야아아아"히야앙-
하치만"……자, 돌아갈까, 잇시……"
이로하"………"
하치만"……이로하"긁적긁적
이로하"불본의하지만, 하는 수 없네요!"꼬옥
하치만(………이로하랑 결혼인가…)머엉
이로하(선배랑 아이……)머엉
두 사람""…………후힛""
6. 망상하는 후배는 좋아하나요?
병에 걸린 사건은 우리의 관계를 명백하게 바꿨다.
"선배-, 오늘도 절찬 기분 나쁘네요-"
"절찬인데 기분 나쁜거냐……"
최근 어린것들은 이렇다니까. 확실히 뭐라고는 생각하지만, 아마 이거라고 정해져있다거나 확실한건지 애매한건지 똑바로 해라고 나는 100퍼센트 생각하기도 한다.
"이 녀석이 히키타니 선배!?"
"우와-, 정말로 눈이 썩었어-"
"이런 녀석이 있구나-"
이로하의 등 뒤로 숨듯 나에게 언어의 폭격을 해오는건 본 적도 없는 여자애들이었다. 내가 말하는것도 뭐하지만, 촌티나는 애들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히키가야거든"
당연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눈 앞에 있는 악의 덩어리들은,
"꺄악, 말했어-!"
"히키가야거든이래!"
"재미있어-!"
마치 코지마 요시오의 개그를 보는 듯한 반응에 나는 분노로 골격이 변해버리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로하의 한 마디로 상황은 일변한다.
"히키가야 선배의 장점을 모른다니-, 다들 애들이구나-"
느긋한 태도로 발해진 날카로운 칼날은 사춘기 자아를 형성중인 그녀들에게는 충분한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라,
"그, 그런거 아니야-, 농담이잖아, 잇시키"
"응, 아웃트로한 점이 좋네"
"알아알아-. 평범해선 재미없는걸"
라며 애매하게 애매함을 겹친 애매한 밀피유 같은 상태를 만들었다. ……누가 아웃트로고 누가 평범이 아닌건데.
그러자 잇시키는 나에게만 보이도록 각도를 조정하면서,
"…………후힛"
하고 웃었다. 그 표정은 평소의 소악마같은 표정이며,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길한 예감밖에 들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그대로,
"히키가야 선배는 후배에게 다정해서-, 휴일에 놀자고 데릴러 와준다고-"
딱 봐도 국어책읽기. 완전한 거짓말.
하지만 그녀들 안에서 트렌드가 된 '히키가야 선배'라는 우상의 앞에선 그런건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다.
"에-, 잇시키만 치사해-!"
"나도 선배랑 놀고 싶어-!"
"연락처 가르쳐주세요, 선배!"
……귀찮네!
"아, 아니, 나는 스마트폰 갖고 있지――"
"아, 선배. 저 가봐야해요. 나중에 라인으로 연락할게요-"
잇시키 이로하아아아아아아아아!
"라인 하고 있어요!?"
"그럼 부들부들 해요!"
"선배는 자세히보니 핸섬이네요!"
점심시간 내내 질문을 받은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후 수업에 지각한다는 실태를 저질렀던 것이다.
◆◆◆
라인
하치만:야이 짜샤
잇시키:에? 잠깐, 왜 ID 아는거에요. 기분 나빠요.
하치만:그 후에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잇시키:야-, 뭐 괜찮잖아요. 여자애한테 둘러싸이는건 쳇 체험이죠?
하치만:바보냐. 나는 옛날부터 여자한테는 둘러싸이는 체질이야.
잇시키:엣!?
하치만:여자 의자에 잘못 앉았을때나, 팔꿈치가 닿았거나, 웃었을때나, 여러가지 타이밍으로 여자애한테 둘러싸여서 매도를 뒤집어썼다고.
잇시키:……선배는 역시 기분 나쁘네요.
하치만:고백했을때는 살해당하는줄 알았다. 정신적으로.
잇시키:하?
하치만:어?
그 후, 대답은 오지 않았다.
◆◆◆
방과후, 봉사부로 향하던 도중에 점심시간에 무리짓던 여자와 마주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징그러운걸 보는듯한 눈으로 나에게 살의를 보내와서 나는 가능한 자극하지 않도록 복도 구석을 걷기로 했다.
그러자, 그녀들을 불러세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늠름한 목소리다.
"거기 너희들. 1학년인 주제에 꽤나 건방진 태도를 하는구나"
그렇게 말하는 유키노시타는 다리 벌려 팔짱을 끼며 명백하게 겸허한 태도가 아니다.
"……유키노시타 선배"
한 사람이 중얼거린다. 아무래도 1학년 사이에서도 그녀는 유명한 모양이다.
"따, 딱히 선배하고는 관계없잖아요"
"교내에 있는한 후배 지도는 선배의 역할인데?"
"애시당초, 언제 저희가 건방진 태도를 했다는거에요?"
"선배의 충고에 반론하는 시점에서 건방지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는데?"
"저 녀석이 나쁜거에요!"
"설령 그랬다고 해도, 너희가 교내에서 건방진 태도를 해도 좋은 이유는 되지 않아"
후배들은 즉각 논파당해서 입을 다물고 만다. 유키노시타는 분노를 사그라뜨리지 않은표정으로 더욱 몰아붙인다.
"애시당초, 점심시간도 선배에게 대한 배려라는게 전혀 없었어. 설령 히키가야가 고독사가 결정되어 있을 정도로 친구가 없다고 쳐도, 점심을 먹거나 다음 수업 예습을 하거나 쉬는 시간을 유의미하게 쓸 예정은 얼마든지 있었을거야. 그걸 너희들은 자기들의 자기현시욕을 위해 그를 이용하려고 활개 치다니, 조금은 부끄러운줄 알렴"
폭격 후에는 사체를 소각하는듯한 철저함을 보인 유키노시타는 조금 만족스럽게 나를 봤다. 그리고 바로 후배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방금전까지 냉혹한 태도는 어디로 갔는지 다정한 언니의 미소로 그녀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은 아직 어려. 실수도 하는 일도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때 원망해야할건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 해두렴. 미숙함을 알면 알 수록, 내일의 자기 자신은 크고 강해지는거야"
왠지 등 뒤로 새하얀 날개가 자라나 후광이 비치는 모양이었다. 후배들은 황홀한 표정으로 유키노시타를 보고 있다.
"그런데, 왜 히키가야에게 산업폐기물을 보는 눈으로 위협하고 있던거니"
어라, 뭔가 과장되지 않았냐. 그렇게까지 차가운 시선이 아니었던것 같은데…….
"……그건, 잇시키가…"
잠깐만. 왜 그 타이밍에서 잇시키의 이름이 나오는건데.
"잇시키가…… '선배는 여자 홀린다'라고 하니까…"
"저희도 속아서……"
벌려진 입이 닫히지 않았다.
평소 인기없으니까 기분 나쁘다고 말을 하던 그 녀석이, 그런 말을 하다니.
"……그래, 알았어. 이 남자는 남들 보다 좀 기분 나쁘고 망상하고 폭주하지만, 남을 속이는짓도……가끔은 하지만,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거나……생각하기도 하지만, 겁쟁이에다 유치하니까 그걸 실행할 수는 없어"
무엇 하나 도움되지 않는 도움이 복도를 차지했다.
◆◆◆
"조금만 더 있었으면 히키가야의 나쁜 소문이 흐를뻔했어"
다행이구나, 후훗, 이라니, 무엇 하나 개선되지 않았거든. 상처를 잘라내서 상처가 사라졌다고 하는거랑 똑같거든.
"잇시키 녀석, 무슨 생각을 하고……"
"어머, 너는 잇시키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니"
이 녀석……왜 이로하랑 둘이 있을때 애칭까지 아는거야.
"아니, 그치만 부끄럽잖아"
"너처럼 앞으로도 평생들여도 맞선에서 거절당하는게 상식인 사람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모처럼의 기회를 날려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맞선에 나가서 거절당하는거냐. 그냥 평생 독신이면 됐어.
"그럴때는 네가 길러줘"
부자니까. 메이드든 애완견이든 뭐든 하마.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결혼이라는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상대를 행보갛게 해주고 싶다고 바란 결과야. 나는 평소부터 네 행복을 몇 십분이나 생각하고 있고, 둘의 장래 설계도 몇십 패턴도 생각하고, 그 중에서 가장 행복해지는 방법이 히키가야의 아이를 둘 낫았을때의 기쁨을 상상하는건데, 너에게 그렇게까지 각오가 있니? 나는 있어. 너하고 생긴 아이라면 언제든지 지켜봐줄 수 있고, 설령――"
주문같은 말의 나열이 귀에 침입하고, 파열한다고 예감한 그 때――,
――드르륵!!
"……히키가야 선배"
잇시키 이로하가 힘차게 문을 열었다.
"이로하……"
평소였으면 "선배- 바보에요-" 라면서 어미를 늘리며 다가오는 주제에, 왠지 뭉실뭉실하다.
이로하는 유키노시타를 힐끔 쳐다봤다. 혹시 용건이 있는건 그족?
"……알았어. 조금 뿐이야"
유키노시타는 일어서서 짐을 둔채로 교실을 나간다. 아무래도, 잇시키의 시선은 그녀에게 퇴실해줬으면 싶다는 아이컨택트였던 모양이다. 그건 즉――,
(나하고 단 둘이……)
자각하고나서 이로하를 보니, 과연, 조금 볼이 빨개진 느낌이 든다. 시선도 힐끔힐끔 요동치고 있고, 명백히 나를 의식하고 있다.
"……저기 말야, 이로하"
"이,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주세요. 기분 나빠요"
그 표정은 명백하게 웃는걸 참고 있었다.
"……잇시키"
"갑자기 호칭을 바꾸는거 기분 나빠요. 지금까지대로 불러주세요"
그녀의 눈동자가 눈물을 머금어간다.
"어, 음, 그게――"
"선배는!!"
말을 겹치는 이로하의 목소리에는,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참고 있다……아니, '참고있는' 기색이 보였다.
"선배는! 정말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적이 있어요!?"
표표하면서 약삭빠르다.
그런 이로하가 보인, 표출하는 감정.
"……이로하"
"나만……나만 좋아하는거 아니었어요?"
"――읏!?"
이로하의 눈매에서는 보슬보슬 눈물이 흘러나온다. 부드러운 뺨을 타고, 턱선에서 지면으로 떨어지는그건 석양을 반사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기 말이다, 이로하. 나는……"
변명을 하려다 깨닫는다.
(아니야……)
거짓이엇으니까, 과거 일이니까, 젊은 기세였으니까,
(결국 좋아한다고 해버렸잖아!!)
이로하의 눈이 곧게 나를 쳐다본다.
"저는 선배를 좋아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나 좋아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선배도, 진정한 마음을.
그녀의 진지한 말에, 나는 올곧은 마음으로.
◆에필로그◆
――아으, 너무 부끄러워서 죽어요.
봉사부 교탁 그늘에 숨어서 이로하는 감정을 토로했다.
"아니,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게……미안"
설마, 나의 과거얘기를 요즘 얘기랑 오해해서 폭주하다니, 너무 귀엽잖아.
"선배가 기분 나쁜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일줄이야"
"멋대로 오해한 주제에"
"아- 말했지요! 말했네요! 그럼 선배가 감기 걸렸을때 저를 부른거 모두에게 일러바칠거에요!"
"미안합니다 용서해주세요"
사과할때는 신속하고 올바르게.
고개숙인 머리를 살짝 들어올리니 어느샌가 이로하가 앞에 서 있고,
"죽을만큼 기분 나빴지만, ……그게, 굉장히……기뻤을…지도"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우물쭈물 중얼거리는 이로하.
뭐라고 할까, 그게……응.
"키스해도……돼?"
"……확인을 구한다니 기분 나빠요. 그럴때는 잠자으읍!?"
후배와 키스.
그건 굉장히 달달하고……무엇보다도 사랑스러워서, 무심코――,
""……후힛""
문 틈새로 엿보고 있던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에게 혼날때까지, 그리 시간은 남아있지 않았다.
최종장, 잇시키 이로하를 좋아하나요?
의외로, 나와 이로하의 관계는 주위에 쉽게 받아들여졌다.
"아-, 아마 그거겠네에. 이로하는 하야토를 노리고 있는것처럼 보엿으니까, 하야토의 팬 입장으로는 기뻤던게 아닐까나"
특히 유미코라던가. 유이가하마는 말을 덧붙인다.
봉사부 교실에서 누가 시작했는지 연애 얘기 대회는 결국 나의 현재 상황에 대한 고찰을 하는 대회가 됐다. 뭐, 유이가하마도 유키노시타도 남친 없으니까.
"반대로 남자한테서도 기뻐할 일이 아닐까"
라며 문고본에 시선을 떨군채로 유키노시타는 중얼거렷다. 나에게는 그 이유를 바로는 몰랐지만, 유이가하마는 "아-" 하며 납득했다.
"주위 남자 입장에서 보면 이로하나 유미코처럼 귀여운 여자애한테 대쉬받는 하야토에게 먹히는것 보다, 힛키같은 애한테 가는 편이 구제가 있을지도-"
유이가하마는 고백 사건 이래로 어쩐지 나……라기보다 남에게 대해 가시를 보이게 됐다. 그걸 성장으로 봐야할지 자포자기로 봐야할지는 별개로 치고, 내 기준으로 보면 이전보다 매력이 늘어난걸로 보인다.
"먹힌다는건 여자가 쓸 표현이 아니잖아"
"소녀 만화는 좀 더 외설스런 표현 투성인데?"
진짜냐. 유이가하마도 문자 읽을 수 있었나…….
"힛키, 뭐 실례스런 생각하지 않았어?"
"반대다. 칭찬한거야. 너도 문자를 읽을 수 있었군 하고"
"에이차암, 여친 말고 칭찬하면 안 돼, 증말"
라며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며 손을 붕붕 흔드는 유이가하마. 유키노시타는 기막힌 표정으로,
"전례 없을 만큼 바보 취급 당한거야, 유이가하마……"
이마에 손가락을 대며 고개를 흔든다. 유이가하마는 어리벙한 표정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뭐, 어쨌든간에, '내가 축복 받았다'라는건 아니잖아"
그들에게 있어 관계와, 그리고 상황에 이득이 있으니까 기뻐한것 뿐. 받아들여졌다고 해도 내가 인정받은건 아니다.
(그런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로하를 생각하면……)
이로하는 학생회장이다. 그 일 내용은 가슴을 펴는데 충분하다고 객관적으로는 생각하지만, 외모 탓에 일부 여자에게 질투받거나, 남자에게 얕보여지는 상황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지만, 이후로 어떤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야마라면 학생회장의 남친으로 충――"
――짜악!!
"윽!?"
욱신욱신, 통증이 퍼진다.
"유키농!?"
유이가하마의 비통한 소리 끝에는 유키노시타가 나를 곧게 쳐다보고 있다.
"……미안, 유키노시타"
"그래"
이 순간, 왠지 유키노시타에게 용서받은 느낌이 들었다. 뭐냐고 들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존재를, 관계를, 혹은 모든 것을…….
그러니까――,
"야, 유키노시타. 나랑 친구가――"
"미안해. 그건 무리"
왠지 모르게 알고 있던 대답에, 나는 그만 쓴웃음을 지어버린다. 유이가하마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이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왜냐면, 너는 나의 소중한 부원이고, 장래설계의 망상상대니까"
하치만은 마음에 깊게 새겨졌다…….
◆◆◆
라인
하치만 : 이제 끝났어?
이로하 : 좋아해요
하치만 : 아니, 학생회는 끝났어?
이로하 : 좋아해요
하치만 : ……나도 좋아해
이로하 : 하? 갑자기 무슨 소리 하는거에요? 기분 나쁘게
하치만 : 집에 갈란다……
【착신 잇시키 이로하】
『와앗, 거짓말이에요, 거짓말!』
"진짜냐, 좋아하지 않았던거냐"
『그게 아니구요』
"그래서 언제 끝나는데"
『이미 끝났는데요? 다 같이 과자먹었어요』
"그럼 간다"
『와와왓, 기다려주세요! 바로 갈테니까요!』
"학생회 모임도 필요하잖아"
『아- 괜찮아요. 모두 저의 쫄따……노예니까요♪』
"말을 고친 의미 없잖아"
『그럼 여러분 수고하셨어요-』
"안 듣고 있고"
◆◆◆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짧은 치마를 펄럭이면서 전속력……이라고는 하기 힘든 속도로 달려오는 여자애가 한 명.
"하아하아, 이야, 지쳤네요. 책임져줄거죠?"
라며 이로하는 내 옷자락을 잡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변함없는 약삭빠름이라고 할까, 남친에게 약삭빠르게 할 의미 있냐?
"책임이라니, 결혼이라도 하면 되냐?"
짐작이 빠르다. 오리엔탈 라디어 데뷔정도로 빠르다. 그들의 데뷔가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별개로 치고.
"으-응, 히키가야 이로하라-. 으-응"
"고민하는 점이 잘못됐잖아"
보통이라면 상대가 결혼하는데 충분한 인물인가. 외모, 속, 연봉, 무엇보다 자신을 달게 한결같이 편하게 해주는가 아닌가, 이건 나의 소망이었다.
"에, 달리 어디를 망설이는데요-?"
"아니, 내가 상대면 괜찮나……라던가?"
"그거 망설일 점인가요?"
"어, 어어……"
질문받으니 대답에 곤란한데. 그보다, 부끄럽다.
"저는 이래 보여도 꽤 멍하다고 할까, 선배처럼 착실한 사람이 아니면 무리라고 생각해요-"
"………"
"……왜 그래요?"
"아니, 아무것도 아냐"
위험해라--! 히쭉댈뻔했어-!
뭐야 그거, 엄청 기쁜데.
착실하다는 평가는 물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게 남친 포인트가 높다!
"……읏! 서, 선배……혹시 진심으로 받아들이는거에요?"
뭔가를 깨달았는지 말도 안 될정도로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다. 그리고 양팔로 얼굴을 가리면서 이쪽을 쳐다봤다. 곧잘 니코생방송에서 마스크를 쓰는 녀석이 있지만, 얼굴 반을 가리면 왜 귀엽게 보이는걸까. ……아니, 물론 이 녀석은 평범하게 엄청 수준ㅇ ㅣ높지만.
"그러는게 뻔하잖아. 친구 없는 역사를 얕보지마"
"……거기 친구로 삼는 점에서 슬프네요"
"슬프다고 할거면 그 히죽거리는 얼굴은 그만해……"
"……후힛"
우와아, 오래 같이 산 부부는 얼굴까지 닮는다고 하지만, 이 녀석의 지금 표정은 나랑 좀 닮았짢아. 미소녀가 지어도 좋을 얼굴이 아니야.
"야, 이로하"
"뭐에요, 갑자기 진지한 표정 짓고. 좀 여러모로 무서운데요"
"……아니, 너는 귀엽네"
"!? 하, 하아!? 조좀, 갑자기 소름돋아요!!"
후다다다닥, 뒷걸음질치며 신발장에 몸을 기댄다. 양눈을 감고 손을 붕붕 흔드는 모습은 약삭빠른 이로하치고는 드물게도 '귀여운 이로하'다.
"아니, 정말로 너를 좋아해."
라고 동시에 도망쳐본다. 이로하는 아직 신발로 갈아신지 않았으므로 쫓아오지 못할 것이다.
"아, 잠까아아아아아아안!"
"아니, 너! 신발!!"
"……캬악!"
여자애답지 않은 기성을 지르며 현관으로 돌아간다. 나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의 행동을 본다.
"선배! 그대로 기다려주세요!"
한 발짝 뒷걸음쳐본다.
"좀, 부탁이니까요!!"
더 한 발짝.
"………"
더 한 발짝.
"……히끅"
우에!?
"후에에엥! 선배 바보오오오오오!"
진짜 울어버리냐…….
"거, 거짓말이래도! 농담이야!"
급히 그녀의 곁으로 달려가니 울면서 나를 안았다.
"……우으…"
가슴에 얼굴을 비벼온다. 따뜻하다.
"미안하대도"
"훌쩍, 용서 못해요"
와구와구 팔을 깨물거나, 배를 때리는 등, 왠지 어린애 같아서 귀엽다.
"정말로 귀엽네"
"……정말이에요?"
"아아, 최고야"
"거짓말 같아요"
"들켰나……"
"바보!"
이런, 너무 좋아해서 여러 감정이 솟아올랐다.
"야, 이로하"
"?"
……좋아, 말하자.
"……손 잡고 돌아갈까"
말했다! 말해버렸다!
아마, 대답은 "누가 보면 어떡할거에요, 기분 나빠요" 일테지만, 그래도 말해본것 만으로도 만족이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제대로 연인 깍지끼기에요, 선배!"
꼬옥, 손가락을 감으며 세게 움켜쥔다.
"……어, 어어"
이런, 뭐야 이거. 엄청 기뻐!
"선배, 저기……하나 부탁해도 되요?"
"음, 왜?"
이 녀석이니까 상당히 약삭빠른 소리를 하겠지. 스티커 사진 찍고 싶나? 케이크 뷔페에 가고 싶나?
"……이로하가 아니라, 잇짱이라고 불러주세요…"
뭐……라고.
"어, 어째서?"
"그게, 옛날부터 사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도 저를 이로하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았으니까, 특별한 느낌이 없어서요"
아-, 확실히. 동생같은 존재니까 거리감을 좁히기 쉬운 만큼, 누구에게도 가까운 취급을 받았겠지. 아마.
"……잇짱"
"왠지 기분 나빠요"
"야……"
"그럼, 저도 선배를 핫짱이라고 부를게요"
"참아주라"
어디의 드래곤볼이냐. 그 녀석도 외톨이였지만.
"그럼, 하치군?"
"……뭐, 그거라면 괜찮지만"
"하치군"
"잇짱"
잠시 침묵, 서로를 쳐다보고, 그리고――,
""……후힛""
이 순간, 뭐라고 할까, 나는 어떤 종류의 예감을 느꼈다.
분명 우리들은 결혼한다. 그런 예감을.
발렌타인편
요즘엔 방과후 데이트라는듯이 공원에 들르는게 나와 잇시키 이로하의 일과가 됐다. 깊게 쌓이는 눈이 주택가의 간소한 공원에 쌓여서 하얀 융단을 연출하고 있다. 우산 하나로 걷고 있으니 둘만의 세계가 완성된 기분이다.
"……후힛"
갑자기 이로하가 웃음을 흘린다.
"뭘 웃는거야. 그거냐, 젓가락이 떨어져도 웃는 나이냐"
"젓가락이 떨어진 정도로 웃을리가 없잖아요, 하치군은 바보에요? 바보군요"
관용구를 말할 생각이었지만, 하타 유쿠처럼 내 개성을 일도양단 당했다. 유감!
"행복을 만끽한거라구요……"
연하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는 이로하. 방금전의 말이 나에게 향한것이며,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쳤다는걸까.
"이로하……"
"엥, 왜 그렇게 신혼 이틀째 저녁이 맛있었다같은 얼굴을 하는거에요. 저는 요즘 친구랑 잘 되서 행복하네에 라고 말한거라구요. 미안해요 기분 나빠요"
이 대화에도 꽤나 익숙해졌다(나날로 이로하의 단어집이 늘어나는건 별개로 하고). 하지만 익숙해졌다고 해도 상처받지 않는거너 아니라서 나는 무거워진 어깨를 추욱 떨군다.
어깨를 떨구자 동시에 우산이 내려가서 시야가 가로막혔다.
그 순간――,
"……음"
이로하의 입술이 살포시 내 입술에 닿는다. 추위로 딱딱해져 있고, 서로의 숨결이 그걸 조금 풀었다.
"이로하, 조금 추우니까 껴안아도 돼?"
"………본의아니지만 학생회장으로서 내버려둘 수 없네요"
라며 이로하는 내 상의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얼굴을 가슴에 대고,
"하아-, 역시 얇은 옷이 더 따뜻하네요-"
행복하듯 한숨을 쉬는 이로하에 비해 내 얼굴은 차갑다. 상의 단추를 푼 탓에 틈새 바람이 차갑다. ……왠지 치사해.
"저기 하치군.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좋아해"
"하윽"
아무래도 희망하는 대답이라는 달랐던 모양이라 깨무는 행동을 했다. ……약삭귀엽다.
"그럼 뭐야. 말해봐"
"……하치군은 발렌타인 초콜렛을 받을 가능성은 1%정도는 있어요?"
아무래도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닌것 같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전에 사건이 일어날때, 정신적으로 곤란해졌을때와 같았다. 하지만 이 경우는 어떤걸 대답하면 정답인지 잘 모른다. 일반론으로 말하자면 여친 말고 초콜렛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하는게 정답으로 생각이 들지만…….
"미안, 나는 매년 러브러브 초콜렛을 받고 있어"
"코마치 몫은 빼주세요"
……이건 진짜 뭔가 있다. 평소라면 "동생이 주는 몫을 계산하다니 기분 나빠요"라는 내용을 백배 정도는 날카롭게 말했을텐데.
한번 더 생각을 정리하도록 힘쓴다. 갑자기 떠오른 발렌타인 화제, 기운이 없는 이로하. 농담이 통하지 않는 상황. 이것들로부터 도출되는 대답은…………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면 봉사부의 녀석들이라면 만들어줄지도 모르고, 반대로 우리에게 신경을 써서 만들지 않을지도 몰라. 그 이외는……뭐어 하루노 씨라면 가능성은 있을지도"
실수로도 받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하려다 그만둔다. 어디에 도청기가 달려있을지 모르니까.
"……반드시 받아주세요"
"엑……"
이로하는 내 가슴에 한번 더 얼굴을 묻고, 그리고――,
"올해는 초콜렛, 건낼수 없을것 같으니까요"
라고 말했다.
정신을 차리니 눈은 멎었고 완전히 밤이 되어 있었다.
◆◆◆
다음날, 내 이변을 가장 먼저 깨달은건 의외로 토베 카케루였다.
"얼레, 타니 왠지 기운 없지 않지 않아?"
없지 않지 않아라니 왠지 울것 같은 나를 달래는것 같아서 울것 같다. 없지 않지 않아 울지 울고 울어 우네. 자, 나는 없다를 몇 번 말했을까요. 그보다 타니는 뭐야? 혹시 다니의 진화형? 새로운 괴롭히기?
"아니, 딱히……"
"아니아니아니, 절대로 기운 없대도!"
주절충 특유의 스스로 꺼낸 소재를 마지막까지 하고 싶은 정신이 토베에게 끈질김을 낳게 했다. 솔직히 짜증난다. 하지만 이 녀석의 경우에는 다정함에서 오니까 막대할 수도 없다,
"요즘 잇시키에게 변한 구석 없어?"
라고 일단 물어본다. 물론 포즈로 토베는 이로하가 뭔가를 상담할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타니는 못 들었나……"
지인의 짜증나게 돌려말하기 랭킹 3위 정도는 들어갈 "너는 몰랐나" 라는 소리를 하는 토베에게 때릴뻔하면서도 어떻게든 짜증을 참는다.
"못 들었냐니 뭘?"
"아니, 이로하스 녀석 말야, 얼마전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함께 있었던 타교의 학생회장이 들붙어서 말하는것 같았어. 되게 고민했다구?"
청천벽력, 이라고 하기에는 좀 작지만, 나에게는 번개에 맞은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거의 매일 함께 돌아가고 있는 여친에게 어떻게 다가붙을 틈이 있었다는건가.
"뭐, 이로하스는 타니 외곬이니까 신경쓸 필요없지만"
하하하, 라며 크게 웃는 토베. 그 경쾌함이 지금은 조금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떙큐 토베.
◆◆◆
점심시간.
마음속이 평온하지 않는 나하고는 대조적으로 봉사부의 분위기는 차분해져 있었다. 아니 다른 의미로 소란스러웠다.
"히키가야, 야채도 안 먹으면 안 클거야"
라며 유키노시타가 책상 위에 펼친 도시락에서 아스바라 베이컨을 젓가락으로 집에 내 입에 넣으려고 한다.
"자, 잠깐만 유키농! 힛키는 이로하의 남친이야!!"
나이스 유이가하마. 너에게도 남들 수준의 정조관념이 있었구나. 순전히 입으로 옮기기 달인이라고 생각했어.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유이가하마"
아, 이거 알고 있어. 유키농이 가하마 씨를 회유하는 패턴이다.
"확실히 그하고 잇시키는 사귀고 있어. 서로 사랑하는 러브러브쪽쪽이야. 매일 방과후 데이트하고는 키스를 하고 있고, 주로 가는 공원에선 리얼충을 사양하는 간판이 걸려있는데도 그걸 깨닫지 못할 정도로 맹목 이야"
엑, 왜 아는거야. 그보다 그런거 걸려있었어!?
"거기다 말하자면 장래를 맹세하고는 '우리는 아직 학생인데 바보같네'라던가 수줍은듯이 말하는 귀여운 커플이기도 해"
"유키농……안정된 스토커구나"
"하지만. 둘은 어디까지나 연인. 즉 타인이야. 피가 이어진것도 아니거니와 법적으로 관계가 있는 두 사람도 아니야. 사랑을 말하기만 할 뿐인 아무 관계 없는 두 사람이야"
"화, 확실히!!"
라고 세게 끄덕이는 유이가하마. 바보는 귀엽다는건 이런걸 말하는걸까.
"그에비해 우리는 봉사부라는 서류상 연결이 있어. 즉 우리가 더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거야, 유이가하마"
사르륵 우아하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리는 몸짓은 샴푸CM에 나올정도로 예뻤지만, 말하는 내용은 자이언 수준으로 엉터리다. 이 녀석, 의외로 신흥종교의 교주같은거 할 수 있는거 아냐?
"………"
충격적인 사실에 유이가하마는 놀란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했지만 입가에 손등을 대고 뭔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행동을 할 때는 대개 시답잖은 상상을 할 때였다.
"그렇다는건 내가 유키농보다 훨씬 힛키랑 관계가 깊네!?"
그 순간, 유키노시타의 등에 번개가 내리친듯한(것처럼 보일 정도로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그걸 깨닫다니, 성장했구나 유이가하마"
에헤헤, 라며 웃는 유이가하마와 숙적의 성장을 기뻐하는 유키노시타.
(아니, 평범하게 너네야말로 단순한 남이거든)
라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린다. 소리로 내지 않았떤건 내 안에서도 유키노시타도 유이가하마도 '남으로 삼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던 것이다. 대신 한숨을 내쉬면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걸 전하기로 한다.
"둘 다 고마워"
"……엣?"
"……머리라도 맞았니?"
수상쩍은 시선을 보내는 둘. 나는 눈물을 참으면서,
"아니, 음……너희도 알고 있잖아? 잇시키가 저쪽 학생회장이 들러붙는거"
두 사람은 놀라움과 슬픔, 그리고 분노가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유이가하마가 입을 연다.
"응, 미안해 입다물고 있어서. 이로하한테 조용히 있으라고 들었거든"
"아아, 알어"
그러자 유키노시타가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잇시키는 솔직히 우리도 대처하기 곤란한 사안이야"
유키노시타가 그렇게까지 말하는건 상당히 드물다. 평소라면 허세라도 똑바로 할 수 있나 없나를 말할텐데…….
"왜냐면 저쪽 학생회장,
――얘기가 통하지 않잖아?"
일찍이, 이렇게까지 한 마디로 상황을 설명해온 사안이 있던걸까.
우리는 잠시 얼굴을 마주본채로 침묵이 흐르고, 그리고 동시에,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
드래퀘1을 할때 늘 생각했다.
――왜 저렇게 보이는 위치에 성이 있는데, 서로 공격하지 않는걸까.
그건 많은 아이들의 공통인식이었떤 모양이라,
"안녕, 음……네 이름은……그게…"
"히키가야다"
"그래! 히키가야! 오래간만이네, 히키가야. 크리스마스때는 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해"
타마나와는 입을 열자마자 나를 평가했다. 하지만 너무나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나는 너 같은것의 이름 기억 못하는 타교의 학생까지 제대로 평가하고 있어" 발언은 솔직히 짜증만 인다. 물론 자신의 여친에게 참견을 해대는 짜증남이라는 색안경이 있다는것도 가미하고 있다.
하지만 타교의 학생회장이 단 혼자서, 그것도 연애사건으로 방문한것은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나였다면 아마 무리일것이다. 학교에 체제를 생각해 또 이로하의 입장을 생각하면 도저히 할 수 없다. 그런 의미로는 이 남자는 진심인걸지도 모른다. ……나보다도.
"그래서 무슨 일이야. 일부러 교문까지 나를 불러내서"
점심시간, 굳게 닫혀진 문을 사이두고 우리는 대화를 하고 있었다. 타마나와는 여유로운 얼굴을 들고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말했다.
"내가 너를 불러내? 하핫, 너는 의외로 자신만만했구나!"
그의 말에 나는 순식간에 사태를 파악한다. 동시에 타마나와고 깨달았는지 조금 기분나쁜 얼굴로,
"아니면 메세지 전언을 부탁한 그가, 쓸데없는 쓸데없는 짓을 해준건가?"
라고 말했다. 메시지 전언은 같이가 아니었나? 라는 오랜만에 정신적인 대미지를 입으면서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은 대충 같았다. 그리고 그건 맞았다. 토베가, 나에게 배려해서 이로하보다도 먼저 전했던 것이다. 라인 메시지에,
토베:가세는 언제든지 할게!
라고 했었다. 쓸데없는 참견이란 이걸 말하는게 아닐까.
타마나와는 짐즛 크게 한숨을 쉬고 나를 향해 담담하게 말한다.
"뭐 됐어. 조만간 넌하고도 얘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어"
"하아, 나는 그런 일 없는데"
"그렇겠지. 너는 잇시키랑 사귀는 기적을 완고하고 옹고집으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될테니깍, 그녀의 의사를 무시하고 새장에 박히고 싶다고 생각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야"
웅변이었다.
크리스마스때도 주절주절 의미모를 단어를 말했다. 하지만 그건 전부 의견을 손바닥 위에 두고 억지로 연호했기 때문이며, 본래의 타마나와는 무의미하게 카타카나 영어를 말하지도 않는다, 좀 더 솔직한 놈일 것이다.
"미안하지만, 네 망상에 어울릴 겨를은 없어. 나는 점심시간이 끝나버리니까"
라기보다, 너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 얼굴도 보고 싶지 않아. 악령퇴산 도만세만 구후후후후……아니 왜 에비나의 생령이 빙의됐어!?
"흐-응, 도망치는구나"
"……뭐든 말해. 나는 이기지 못하는 싸움은 하지만, 뻔하게 이기는 싸움은 안 해"
"그 증거는?"
"피곤할 뿐이잖아"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말투가,
단어 선택이,
표정이,
움직임이,
타마나와에게 분노를 갖고 있었다는걸.
"오늘은 이걸로 돌아갈게, 히키가야"
타마나와는 여유를 듬뿍 담은 미소를 보이고, 그리고,
"잇시키에게 전해주지 않겠어? '발렌타인 데이 기대하고 있을게'라고"
높게 올려진 선전포고는 히키가야의 마음에 크게 꽂혔던 것이었다.
◆◆◆
그리고, 타마나와의 전략은 뜻밖인 부분까지 미쳐있었다는걸 안다.
"미안하다, 귀중한 쉬는시간에 불러서 말이다"
점심시간 잔여 시간, 빈 교실로 끌려온 나는 히라츠카 시즈카와 단 둘이라는 묘하게 흥분되는 시츄에이션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이, 이로하, 나는 너 외곬수다(거둥수상).
"아뇨, 잘못한건 저니까요"
실제로 토베에게 들었다고 외부 인간과 접촉하는건 잘못됐다. 설령 그것이 아는 인간이든, 학교에는 학생을 보호할 의무가 있고 학생은 규칙을 준수할 책무가 있다. 그걸 깬건 다름아닌 나다.
"그렇군. 하지만 네가 규칙이나 교칙운운을 한다면 그건 아니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담배를 빨고 잠시 망설인다. 그야 빈 교실이라고는 해도 교실이다. 여러모로 안 되겠지.
"내가 너를 불러낸건 오히려 그 전의 이야기다"
"전……?"
떠오르는건 수업 시간에 졸았다는 정도지만, 그런걸로 불러낼리가 없다. 그렇다는건,
"잇시키와 사귀고 있다는것……말입니까?"
꿈틀, 눈썹을 움직인다. 아무래도 정답인 모양이다.
"아니, 먼저 말해두겠지만 부러워서 물렀다는건 아니다, 음"
당황하는 히라츠카 선생님을 보고 당황하는 나. 마이너스의 연쇄다.
"……네가 그녀와 사귀기 시작한건 그녀가 학생회장이 되고나서라는 모양이군"
아아, 그런건가.
"네, 정말 최근이에요"
"그렇다면――"
"나는 히라츠카 선생님의 말을 끊듯이 큰 목소리로,
"알고 있어요. ……알고 있다구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가……"
히라츠카 선생님은 납득한건지 작게 끄덕였다.
"뭐, 교사로서 체재를 빼면 유감이었구나"
뭣하면 내가 초콜렛 만들어줄까? 히라츠카 선생님이 그런 위험한 농담을 해서 나는 문득 의문이 떠오른다.
"엥, 무슨 의미인가요?"
"아, 아니, 아니다! 이건 프로포즈라는 의미가 아냐! 단연코 아니다! 더군다나 나를 초콜렛 코팅해서 먹.어.줘(하트)라고 생각 안 했거든!"
상상했더니 의외로 잘 먹힐 발언을 하는 히라츠카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아라사의 망언에 어울릴 겨를은 없다.
"그 전에, 뭐가 유감이었다는건가요……?"
확실히 이로하가 나에게 초콜렛은 만들 수 없다고는 말했다. 하지만 그걸 히라츠카 선생님이 알고 있는건 의미를 모르겠다. 일부러 그런 말을 하긴가?
"아아, 그 쪽인가. 그치만 그렇잖아?
그 날은, 크리스마스 파티와 함께 카이힌의 학생회랑 자원봉사로 자선 행사를 하니까"
추욱.
납득이 갔다. 아니, 바닥에 떨어졌다.
이로하의 말, 타마나와의 말, 그 두 점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순간.
그녀가 감춘 분노나 슬픔, 타마나와와 함께 보내는데 대한 질투, 무엇보다 자신이 그런걸로 충격을 받을 만큼 '그녀에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단번에 마음에서 흘러나와 사고가 정체해버린다.
"몰랐나……"
마지막 말에 혀를 찼다. 히라츠카 선생님치고는 드물게 분노의 체현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확인할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본래라면 그 이유를 공유하고 있는걸로 히라츠카 선생님의 신뢰에 대답할 수 있지만, 지금은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잠시 침묵이 이어져, 5분전 예비종이 울어서 히라츠카 선생님은 교실을 뒤로했다. 나는 오후 수업을 전부 결석하고, 계속 더러운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저, 계속. 의미도 없이.
◆◆◆
"왠 일이래! 하치만이 불러주고!!"
방과후, 도저히 이로하하고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나는 토츠카 사이카를 놀자고 불렀다. 마침 테니스 코트를 눈이 와서 쓸 수 없었다며 근육 트레이닝만 하고 빨리 끝낼 예정이었다는 모양이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괜찮다고 했다.
"그럼 나는 도서실에라도 가 있을게"
도서실, 그 선택지는 스스로도 도망이라는걸 알고 있다.
"그것도 드물네. 하치만은 이전만큼 도서실 이용하지 않게 됐는데"
이유는 하나.
잇시키 이로하가 책을 읽지 않으니까.
도서실을 찾아가니, 귀가 전차가 눈 때문에 운행정지가 되어 있는 귀가부나 사이카랑 마찬가지로 운동장을 쓸 수 없는 운동부나, 그저 단순히 도서실을 이용하는 학생들로 넘쳐나 있었다. 추우므로 창문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정체된 공기가 천천히 더러워져, 지금은 어엿한 바이러스 발생지역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되어선 평화로운 도서실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퇴실하려던 순간,
"어라, 히키타니잖아"
라며 말을 걸어온 안경, 에비나 히나였다.
"어, 어어……"
수학여행 일건이 있어서 그 후로는 이로하와 사귄 관계상, 가장 거북한 상대는 이 부녀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에비나도 그게 포즈라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처를 입지 않는건 아니다. 우리들의 관계는 이전보다도 일그러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혹시 도서실 뒤에서 토벳치랑!?"
요즘 뭔가를 구실로 토베랑 나를 엮으려고 하는 에비나였지만 그 이유에 색파로 대하는 질투는 담겨있지 않는걸까. 라는건 조금 자의식 과잉인가.
"아니, 사이카 기다"
"와와와, 왔――"
세계 육상 오다 유지처럼 소리를 지르려는 에비나의 입을 막는다. 손에 습기와 진동이 움찔움찔 전해져서 조금 흥분해버리는 내가 있었다. 이 녀석 정말로 쌈바 디투 나이트(의미불명).
"도서실에서는 조용히. 오케이?"
삼류 호러 영화니 액션 영화에선 친숙한, 소리를 지르면 위험하다는 일련의 흐름이 생긴것에 약간 감동을 포함하면서 나는 천천히 손을 뗀다. 에비나는 조금 볼을 붉히고 나를 올려다본다. 그야 입을 막히면 얼굴도 빨개지나.
"아, 잠깐만 복도로 와줘 히키타니. 좋은거 가르쳐줄게"
라며 내 팔을 잡아당기는 에비나. 그 옆얼굴은 같은 미디엄 헤어인 잇시키와 겹쳐서 조금이지만 동요해버렸다.
"우와-, 역시 복도는 춥네-"
내 팔을 놓은 에비나는 양손으로 자신의 팔을 문지르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 얼굴은 심술궂은 아이가 장난을 친 후에 보여주는 '달성감' 같은 표정이라서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하지만 생각외로 그녀의 말은 나를――구해주게 된다.
"있잖아, 요즘 책 빌려봐?"
"아니, 거의 안 빌려"
"그렇지-. 그런거지-"
"뭐? 내가 단순히 문학소년인척하는 중2병이라고 하고 싶은거야?"
"으응, 아니야. 만약 최근에도 여기를 이용했으면 그런 상태는 안 됐으려나 해서"
"그런 상태……?"
"잠깐만 기다려"
라며 도서실로 돌아가는 에비나. 그리고 바로 책을 들고 돌아온다.
"자, 문제야. 이건 네가 빌린적이 있는 책이야. 이전과 다른 점을 말해보세요"
건내받은 책은 흙색의 문고본. 내용조차 기억 못하는 흔해빠진 제목이다.
"……더럽다거나?"
"그런거 문제로 내서 재미있다고 생각해?"
지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에비나. 나는 한번 더 표지에 눈을 떨군다.
겉보기에 이상한 점은 아무것도 업삳. 추측한다면 그녀가 희희낙락거리며 문제로 삼았다는 점이며, 동시에 책에 변화를 가져오는 무언가다.
페이지가 빠져있다는것 같은 누구나 아는 정보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낙서인가? 사랑의 고백인가? 하지만 어느 페이지에도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는걸 자각할 정도로 책을 쳐다보니 에비나가 손가락을 세우며 입을 연다.
"힌트, 귀를 기울여봐!"
아니, 그거 답 아니잖아.
지브리를 각별하게 사랑하는 지블러를 얕보지마. 지금은 아시타카가 타타라장의 문을 닫는 장면으로 울 수 있을 정도거든?
그리고 책을 뒷표지부터 연다.
거기에는 대출 카드가 있고, 그리고――,
12월 17일 잇시키 이로하
・
・
・
5월 12일 히키가야 하치만
이라고 스여있었다.
"얘얘! 어떤 기분? 지금 어떤 기분?"
부추겨오는 에비나. 아니, 그건 이럴때 쓰는 말이 아니거든.
하지만 지금 어떤 기분이냐고 물으면, 그렇군……
"……후힛"
"우와아, 기분 나빠"
식겁하는 에비나를 곁눈으로 내 안에서 망상은 점점 부풀어간다.
"혹시 내가 읽은 책 전부?"
"응, 그런것 같아"
에비나는 끄덕인다. ……진짜냐.
확실히 요즘 단어량이 느는건 눈을 휘둥그레 만들 정도였다. 사귀기 시작했던 롤러가 오케이라는 수준의 보케는 지금은 거의 없다. 그런건 물론 내가 이 녀석 대단한데, 라고 생각할 법한 표현을 팍팍 했었다.
(내 기호에 맞추고 있었나……)
그리고 깨닫는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지?
사건이 있을때마다 그녀의 힘이 되어왔다. 그녀를 도와줬다. 그녀를 존중해왔다.
하지만 그건 '안 하면 안 되니까'한것 뿐인게 아닌가?
나 자신의 의사로 잇시키 이로하에게 무언가를 한 적이 있던가?
이로하가 나를 알기 위해 내가 읽은 책을 뒤쫓듯이, 내가 그녀를 알기 위해 무언가를 한 적이 있었나?
그 질문은 더 이상 생각할것 까지도 없이 명백했다.
"에비나……고마워"
"응, 괜찮아"
조금 패기없는 목소리가 신경쓰였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이로하에 관해서 머리가 가득했다.
일단 사이카에게 방과후 데이트를 거절하려고 한발짝 내딛은 순간,
"……눈치채지 못했나…"
라며 에비나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나는 그걸 알아채지는 못했다.
히키가야 하치만은 그 정도로 서툰 남자였던 것이다.
(……거짓말, 실은 눈치챈 주제에)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순간 나는 멈춰선다. 그리고 발꿈치를 돌려 에비나의 앞에 선다.
"……어랄라, 들려버렸나"
"그래, 들렸어"
내가 끄덕이자 에비나는 "정말 수줍네에" 라며 조금 슬프게 말했다.
"저기 말야, 착각으로도 스토커라고 생각하지만. 반쯤은 재미있어서 한것 뿐이니까"
나는 살짝 끄덕인다. 실제로 '내가 비린 책을 이로하가 빌렸는지 아닌지'는 스토커라면 분노로 멋대로 단정지을테니까. 그저 내가 조금 신경 쓰였던건,
"그럼 남은 반은?"
"……연심"
듣는게 아니었다. 조금 뀽해버렸다.
"응, 그래 히키타니. 하지만 그 이상은 묻지 말아줄래"
에비나는 말했다.
그러니까 나도 대답한다.
"아아, 안 물을게. 하지만, 나는 더 이상은 누구의 마음으로부터 도망치는 짓은 안 할거야.
잇시키 이로하가 좋아하는 나는 누구에게서도, 무엇으로부터도 도망치지는――"
그 순간, 도서실 창문이 드르륵 열린다.
거기에는 얼굴을 새빨갛게 만든 잇시키 이로하가 숨을 거칠게 내쉬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전부 다 들리거든요! 무진장 부끄러워서 창문으로 뛰어내릴것 같거든요!"
라고 말했다. 안에 있는 학생들이 쿡쿡 웃고 있었다.
"아, 으……"
에비나가 드물게도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고 허둥대고 있었다.
이로하는 반대로 차분함을 되찾았는지 에비나를 향해,
"에비나 선배, 이런 글러먹고 외톨이지만 마음을 짓밟는 짓은 안 하니까, 제대로 전하는 편이 좋다구요?"
라고 말했다. 그 표정은 다정한 미소를 지 시고 있어서, 나는 나를 디스 당한것조차도 순간 깨닫지 못했다.
"응, 하지만 괜찮아. 몰래 전하는 작전으로 갈거니까"
에비나는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이로하에게 대답한다.
"라이벌 선언이라는건가요?"
"으음, 어느쪽이냐고 하면 하극상 선언?"
"그건 무섭네요"
"조금도 생각하지 않지?"
"……하치군은 기분 나쁘지만 저를 좋아하니까요"
"어떠려나?"
"………"
본인을 눈 앞에 두고 할 얘기가 아니잖아. 위장에 구멍 뚫린다고. 상처 입었나?
"그럼 갈게, 잇시키, 히키타니"
에비나는 만족스런 얼굴로 손을 흔들고 마지막으로
"아, 그래 맞아. 라이벌은 나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거든?"
라며 폭탄을 투하하고 가버린 것이었다.
"……라는 모양인데요, 에로가야 선배?"
"……난데없이 선배라고 부르지 말아줘, 리얼충 스러워서 토하겠다"
왠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로하를 너무 좋아하고, 그녀는 내가 읽은 책을 뒤쫓을 정도로 홀딱 반한 모양이다.
………………후힛.
◆◆◆
귀가길, 이로하는 평소 끼던 장갑을 벗고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이른바 연인깎지라고 하는고로, 나는 심장이 쿵쾅거려서 대화할 참이 아니다.
"잠깐, 하치군. 손 잡은것 정도로 그래선 장래에는 좀 더 대단한것도 못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좀 더 대단한것……역시 그건….
"우와, 지금 야한 상상했죠. 기분 나빠요 죄송해요. 신고해도 되요?"
"아직 미수잖아"
쿡쿡 웃으면서 이로하는 내 손을 붕붕 흔든다.
"정말이지 하치군은 저를 좋아하지요"
"안 그러면 안 사귈거 아냐"
"그런거 아니에요-. 세상에는 스테이터스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그 말로 떠오르는 인물은,
"타마나와냐……"
"정말이지, 싫다구요. 그 사람은 이로하가 학생회장이니까 노리는거라구요. 정확하게는 학생회장이라서 쉬울것 같다는게 이유겠지만요"
"자각 있는건가……"
내 딴죽에 이로하는 "아니에요!" 라고 분개했다.
"어떤 의미로 말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내가 연하에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그리 도움이 안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그러니까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거야?"
이로하는 끄덕인다.
허나 과연 그럴까.
타마나와라는 남자가 주위 분위기에 흘러가는 남자고, 타인과 우열을 가리는 타입이라는건 안다. 실제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하지만.
"하지만 그런 남자가 굳이 소부까지 와서 너를 만나려고 할까"
"……뭐, 역시 그건 놀랬어요"
그보다 알고 있었냐.
"당연하잖아요. 한발짝 잘못 내딛으면 제 책임이라구요. 조심해주세요"
학생의 풍기를 보호하는것도 학생회의 일이다. 그러니까 그 때 타교의 학생과 말썽이 있으면 그건 학생회의 책임이며, 학생회장의 책임이 된다는 건가.
"아아, 미안"
"뭐, 조금은 기뻤지만요"
중얼거리며 고개를 홱 돌리는 이로하. 솔직히 껴안고 싶다.
"하지만 발렌타인은 지킬 수 없을것 같군"
"좀, 지킨다니 부끄러워요. 그만두세요"
"어, 어어. 그럼 바꿔 말할게"
"역시 안 돼요. 이로하를 지킨다고 말해주세요"
"……이번 발렌타인은 이로하를 지킬 수 없을지도"
"………후힛"
으음, 이런 전개(웃음).
"괜찮아요. 저는 의외로 가드가 단단하구요"
"아니, 네가 아무리 가드가 높아도 그 녀석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면 어떡할건데"
예를 들면 학생회장 끼리 손을 잡고 사이 좋게 지내자는 분위기를 만들었을때, 학생회장으로서 상대의 말에 영합할 수 있을지 아닌지. 좀 더 직접적으로, 다수의 앞에서 "얼마전에 사귀기로 했다"라고 했을때는 부정하는 것으로 이로하가 거짓말을 해버리게 되면 문제가 되버릴지도 모른다. 그 녀석은 그걸 캥겨하지도 않고, 아니 악의없이 할 수 있는 남자다.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묘한 구석에서 머리가 돌아간다.
"으음, 조금 어쩌지 못하겠네요"
남일처럼 말하지만 그 얼굴은 경직되어 있어서 실제로 손을든 상태다.
"……다행히 아직 일주일 이상 남았어. 좋은 대안이 떠오를거야"
"뭐, 그러면 좋겠지만요"
◆◆◆
이 시기가 되면 마침내 수험생의 안색이 위험해진다. 뭐가 위험하냐고 하면 가족마저도 적으로 인식할 정도로 위험하다. 위험해 위험해 코마치가 위험해.
하지만 어딘가에서 힘내고 있는 자신을 칭찬해줬으면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부모님이 없는 거실에서 슥슥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코마치의 머리를 툭 치고 귀가를 알렸다.
"다녀왔어"
"아, 오빠, 어서왔긔"
잠깐, 코마치. 그 인사는 그만두자(공포).
라는건 (이유를 물으면 곤란하므로) 말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시도해본다.
"그러고보니 요즘 또 리듬 소재가 유행하고 있군"
"응, 맞아-. 학교에서 다들 따라하고 있어"
야야, 수험 시즌에 리듬 소재 피로하는건 위기감 없냐.
"라고해도 편차치 낮은 곳에 가는 여유조지만"
"아아, 그런건가"
대화의 캐치볼은 있지만 코마치의 시선은 항상 노트를 향하고 있었다.
라고할까, 그거구만. 수험생의 대화는 한때 유행한 질문에 대답하는것 만으로 떠오르는 인물을 맞추는 어플이랑 닮았군. 다른 점은 어플은 떠오른 인물에게 가고 싶어하지만, 수험생은 뭐든 수험 얘기로 바꾸는 점……아니, 전혀 다르잖아.
오히려 그건가, 위키피디아의 링크를 5번이나 7번으로 떠오르는 페이지로 날아간다고 하는 소재에 가깝나. 어떤 단어든 최종적으로는 수험에 도달한다……응, 이거로군. 하치만 소재 노트에 또 하나 늘었다.
"……후힛"
"그러고보니 오빠는 발렌타인 초콜렛 받을것 같아?"
갑자기 떠올른 데자뷰에 당혹해하면서도 표정으로는 보이지 않고 대답한다.
"오오, 뭐 초콜렛을 못받을 역사 나이는 탈출했잖아"
자랑은 아니지만 불행의 편지라면 나이의 10배 정도는 받았다. ……진짜로 자랑 아냐.
"아아-, 올해는 누구에게도 못 줄것 같네에……"
"엥, 잠깐만. 뭐야 그거 오빠 처음 들어"
올해'는' 이라는건 지금까지는 준 적이 있어? 그 사라마의 이름이랑 주소 가르쳐줄래? 지금 당장――
"우정 초콜렛이야. 우정 초콜렛. 오빠의 사랑이 너무 무거워서 코마치 가출할것 같아"
후- 하마터면 범죄자가 될뻔했다. 하지만 치니구에게 건내는 초콜렛은 여자애지, 코마치?
"아, 그러고보니 발렌타인에 특별 방송이 있어서 레포터 사람이 치바현에 살고 있는 러브러브 커플에게 돌격한대. 게다가 사전에 모집하고 있으니까 오빠도 나가보지?"
"헤-, 남에게 사랑을 보여주다니 자의식 과이……잉"
순간, 모든 점이 이어져 하나의 큰 도형을 그린다. 방송 스태프의 입장으로 보면 이런 먹음직스런 화제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고등학생 주체로 행해진다고 하면 텔레비전에 비치는 남녀가 몰려있다고 생각할터.
"코마치, 사랑한다"
"으음, 사랑보다 합격이 필요한데에"
과연 내 동생, 위트가 넘쳐난다니까!
◆◆◆
발렌타인 데이 당일. 나는 학생회 자선 행사에 참가하고 있었다. 히키가야는 싫지만 봉사부의 멤버는 내버릴 수 없다는 수수께끼 이론의 유키노시타 씨랑 힛키를 위해서라면 설령 땅끝까지라도 간다고 하는 믿음직스런 유이가하마도 함께다.
"안녕 어……, 너까지 온건 의외인데"
타마나와는 고의적으로 말했다. 뜻밖에도 사복 센스는 좋아서 겉보기는 좋았다.
"아아, 역시 여친이랑 보내고 싶으니까"
견제구를 던지자 그는 무엇 하나 동요하지 않고,
"흐응, 뭐 자선 행사에 그런 불순한 마음으로 참가하는 시점에서 결과는 보이지만"
라며 꽤 정상적인 대답을 들어서 내 마음은 바로 부러질뻔했다. 뭐야 이 녀석, 좀 더 이상한 녀석이었잖아.
"………둘 다 오늘은 잘 부탁해"
뭐야 지금 간격은. 특히 유키노시타를 보니 눈이 보통이 아니었다. 뭐, 크리스마스 모임에서 실컷 들었으니까 다소 원망은 있겠지만.
유키노시타도 그걸 느꼈는지 불평을 하려고 한 발짝 나선다. 그 순간, 타마나와의 옆에서 빼꼼 고개를 내미는 단정한 얼굴의 여성이 한 명……유키노시타 하루노다.
"얏하로-, 유키노♪ 가하마♪ 그리고 달링♪"
하루노 씨는 발렌타인 데이라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빨강색을 기초로 한 옷으로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도 존재감이 있었다. 솔직히 에로하다. 지나치게 에로해.
그리고 동시에 나는 모든걸 깨달았다.
"……당신이 흑막이었나…"
"흑막? 무슨 소릴까냥-?"
마왕을 상대해도 구슬려질뿐이라서 나는 타마나와에게 시선을 돌린다.
"이 사람이 나온다는건, 이 자리를 준비했다는것만이 대책이 아닐것 같군"
"대책? 뭘 착각하는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유키노시타 씨에게 단련받은것 뿐이야.
누구에게든 가슴을 펼 수 있는 남자가 되도록 말이야"
그 안광은 날카로워서 이전같은 위태로움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힘이 흘러넘쳐서 스스로 말하는것도 뭐하지만 남자다움을 갈고 닦은 걸테지.
"유키노랑 가하마는 언니랑 이쪽이야~♪"
라며 억지로 둘의 팔을 잡는 하루노 씨.
"그래, 언니. 바라던바야"
"후에에!? 히, 힛키 힘내!"
유키노시타는 뭘 바라고 있었는지 짐작도 안 가지만, 믿음직스런 아군을 둘을 잃은 나는 조금이지만 불안해졌다. 마왕이 준비한 무대에서 마왕에게 단련받은 남자와 단 하나의 대책으로 싸우는건 지나치게 무모하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유키노시타 씨"
"에-, 나는 아무것도 안 했대도-"
대단한 대화로 웃고 떠드는 타마나와와 하루노 씨를 보고 있으니, 뭔가 밋밋한 위화감이 있었다. 타마나와의 저 신뢰하는 눈동자 속에는 이전에 흘러넘치던 수상쩍음이 전혀 없다. 정말로 이 녀석, 크리스마스 모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던 남자와 동일인물인가?
"자, 어음, 히키가야였나? 너에게도 일이 있는데, 할래?"
어차피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겠지, 타마나와의 눈은 말보다도 웅변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니, 하는게 당연하지. 소부고등학교의 학생회에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봉사부의 참가……라기보다 나의 참가는 이로하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실수를 일으키면 필연적으로 여파는 학생회에 간다.
"……아아, 그랬지"
별로 흥미없다는듯이 타마나와는 말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뜻밖에도 이로하와 함께 초콜렛을 나누는 일이었다.
◆◆◆
"왠지 의외네요-"
"아아"
상자 가득 담긴 초콜렛을 남녀노소에게 나누며 걷는다. 일부러 발렌타인 자선파티를 해서 개최된 곳에 온 사람이니까 싫은 얼굴을 하는 녀석은 없다. 하지만 이로하와 내가 동시에 나눠주게 되면 한 쪽의 사람이 유감스러운 얼굴을 한다. ……물론 나에게 건내받은 사람이다.
"아, 내가 나눠줄테니까 하치군은 초콜렛을 나한테 건내줘요"
그렇게 말하고 상자를 건내온다. 얼뤠에, 이건 내가 짐꾼이 된것 뿐이잖아…….
"드세요-♪ 맛있어요-♪"
……뭐, 확실히 이로하가 나눠주는 편이 컨셉에 맞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럼 나는 이로하가 나눠주기 쉽게 힘쓸 뿐이다.
순식간에 초콜렛을 다 나누고 나와 이로하는 스태프 휴게실로 찾아간다.
"아-, 지쳤어요. 하치군이 제대로 일해주지 않으니까아……"
불평 하나 할 수 없다. 실제로 미소지은채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초콜렛을 나눠준다는건 성가시니까. 도리어 대량으로 초콜렛을 받은 사람도 성가시겠지만……아토베님이나 아토베님이나 아토베님이나.
"저기말야, 이거 다음에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어요-. 적당하게 떠들고 해산이에요"
저번 크리스마스 모임과 달리, 주체가 자치체이기 때문에 소부도 카이힌도 보조 이외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럼 왜 초콜렛을 줄 수 없다고 한거야?"
"아-, 으-, ……이제 됐잖아요"
라며 고개를 홱 돌리는 이로하. 뭔가 대답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요리를 못해? ……아니, 정기적으로 도시락을 만들어주는 이로하가 초콜렛을 못 만든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역시, 오늘 자체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종교적 이유를 거론하는 가정환경도 아니고, 돈이 없다는것도 아니다. 가족에게도 지금은 공인을 받았고, 역시 원인은 타마나와 정도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혹은……,
"나한테 주고 싶지……않아?"
"왜 그렇게 되는거에요!!"
휴게실에 노성이 울려퍼졌다. 카이힌 학생이 힐끔 이쪽을 쳐다본다.
"아, 아니……저기…미안"
아무 반론도 할 수 없다. 그 정도로 지금 말은 해서는 안 됐다.
반대 입장이라면 상처입는다, 굉장히, 무척이나 깊게.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신뢰의 문제다.
"……아뇨, 저도 하치군의 다정함에 응석부렸어요. 죄송해요"
이로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봤다. 그 눈동자에는 명확한 의사가 있었다. 무언가와 싸운다는 강한 의사가.
그리고, 그 무언가는 '잇시키 이로하 자신'이라는걸 알았다.
"……실은 있다구요. ……초콜렛"
그렇게 말하고 이로하는 가방에서 핑크색 포장지로 귀엽게 포장된 상자를 꺼냈다. 한 손에 올릴 정도의 정사각형 상자다.
"어으……어?"
"……여기서부터는 자선 파티가 끝나고나서 해도 돼?"
갑자기 날아드는 반말. 올려다보기로 빤히 쳐다보면,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폭발할것 같다.
"어, 어어……"
나는 어색하게 끄덕이면서도 시선은 초콜렛이 들어있을 상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남자는 정말로 단순(울상.
◆◆◆
휴식이 끝날때 맥스 커피라도 마시려고 자동 판매기로 향한다. 회장 시민회관의 자동판매기는 입구에만 있기 때문에 안쪽 스태프 휴게소에서는 조금 걸어야만 한다.
하지만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얼마간 사고의 늪에 몸을 담글 수가 있다. 그 는ㅍ이 바닥이 업서는 늪이 아니기를 빌자. 웅성웅성.
이로하가 초콜렛을 건낼 수 없다고 말한 이유.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흑막인 이유.
타마나와의 위화감.
그것들의 점은 한 편으로는 굉장히 엉망진창이면서 무엇 하나 공통점을 보여주지 않듯이 보인다. ……하지만 어딘가 법칙성같은 규칙성같은 무언가를 느끼는데….
또렷한건 아니지만 누구에게라도 나타나는 무언가. 그로 인해 극적으로 변화를 보이는건 아니지만 있는것과 없는건 전혀 다른 것이 되는 무언가.
"……대체 뭐지?"
갖고 있지 않은 녀석에게는 보여줄 수 업서는 것일까. 아니, 그런건 아닐 것이다.
"이런데서 뭐하는거야"
갑자기 눈 앞에서 꽂히는 날카로운 말투. 퍼뜩 이름은 떠오르지 않지만 확실히 알고 있는 목소리. 어음, 누구였더라…….
"……사키 씨"
그래. 사키 씨다, 사키 씨. 왠지 뒤쪽에 가명이라고 붙이고 싶다. 사키 씨(가명_의 엽서입니다. 츠가루 해협의 겨울 풍경, 보세요. 아니, 보세요가 아니잖아.
"하, 하아!? 어어어, 어째서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는거야!?"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소리지르는 사키 씨. 아니, 왜냐니 사키 씨 말고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는게 뻔하잖아.
"뭐 괜찮잖아. 그보다 너도 자선 파티에 참가하는거야?"
"차선 파티? 나는 케짱을 마중나온것 뿐인데?"
즉, 자선 파티에 참가하는건 동생이라는건가. 왜 동생인 케짱은 바로 떠오르는데 카와사키는 떠오르지 않는거야…….
"잠깐만 기다려……어음"
상의 주머니를 뒤지니, ……있었다.
"자"
"……어, 뭐야 이거"
라며 건낸 초콜렛을 쳐다보며 당혹해하는 카와사키. 아니, 뭐냐니 자선 파티용 초콜렛인데…….
"별로 신경쓰지마. 우리는 여기서 초콜렛을 나눠주고 있어"
그럴 경우 무슨 초콜렛이 되는걸까. 의리로 주는건 아니고, 친구로서 건내는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의무 초콜렛? 왠지 볼륨이 있어 보이는군.
"받을 수 없어"
라며 카와사키는 받아든 초콜렛을 돌려줬다.
"아니, 그러니까 깊은 의미는 없다고"
"그건 네가 정하는게 아니야"
……무슨 의미야?
내가 납득하지 않는 얼굴을 하는걸 보고 카와사키는 적의와 같은, 하지만 조금은 다른 감정도 섞인 분위기를 띠며 노려본다.
"너, 자신을 마스코트 인형이나 그런걸로 생각하는거야?"
"……?"
"네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네 행동에 의미를 보는 사람이 있고, 기대하는 사람도 있고, 낙담하는 사람이 있어. 히키가야 하치만은 마스코트도 아니거니와 공기도 아니야. 그런데서 착각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아?"
――――투욱.
요즘, 몇 번이고 떨어지는 간담이 또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그래, 그런거다.
히키가야 하치만이라는 인간은, 이로하나 봉사부와 만날때까지는 거의 같은 감정을 받아왔다. 그래, '마이너스 감정'이다. 그건 적의든 조소든 여러 형태로 바꿔왔지만, 그 색은 언제나 검은색. 알기 쉽기 짝이없다.
그러니까 나는 착각을 했다. ――다른 사람은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아무 생각하지 않는다고.
잇시키 이로하는 저렇게 보여도 심지가 강한, 마음 든든한 여자애다.
그렇게 결론짓는건 그녀가 아니다. ……나다.
타마나와가 변했다고 결론지은것도 나. 하루노 씨가 놀이로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느낀것도 나. 모두 나의 멋대로 된 망상이다.
……하지만 그녀들도 또한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
마음 약해지는 일도 있거니와 허세도 부린다. 멋도 부리고, 응석도 부리고, 일부러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런가, 그런건가"
"알았으면 다행――"
"또 도움 받았구만! 사랑한다고, 카와사키!!"
"읏!!? 너는 또 그렇게!!"
카와사키가 분개해서 뭔가를 소리지르고 있었지만, 나는 이미 그럴 참이 아니었다.
◆◆◆
회장으로 돌아오니 장내가 웅성대고 있었다. 그 이유는 하나, '텔레비전 카메라'다.
"네, 여기는 시민회관의 사토입니다"
하루노 씨 정도는 아니지만 예쁜 얼굴의 아나운서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촬영 스태프도 몇 명있고, 그걸 둘러싸듯이 자선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그녀들을 보고 있었다.
"그럼 응모해주신 분은 어느 분이십니까?"
라며 조금 과장스런 움직임으로 사람을 찾는 아나운서를 향해 유이가하마가 손을 든다.
"아, 네, 저에요"
오-, 마침내 유이가하마의 바보 귀여운 모습이 치바현에 알려지는건가. 왠지 감개 깊은데. 아무쪼록 바보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무리인가.
"놀랍게도 응모해주신 분은 이렇게나 귀여운 여고생입니다!"
"아, 아하하, 얏하로-"
당혹해하면서도 수수께끼의 인사를 시청자에게 퍼뜨리는 유이가하마. 이거 혹시 올해 유행어 대상 타는거 아냐? 그러면 내가 발안자로서 입후보를 하자.
"그래서, 치바현 제일의 러브 커플은……"
이 또한 과장스럽게 두리번두리번 찾는 아나운서, 타마나와가 힐끔 하루노 씨에게 눈짓을 하고 천천히 손을 든다.
"오오! 이거 또 학생인가요!?"
라며 종종걸음으로 타마나와를 향해 가는 아나운서.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다. 유이가하마가 작전과 다르다고, 이쪽에 필사적으로 눈짓했지만 나는 굳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초의 작전은 텔레비전 너머로 이로하와 러브러브함을 어필해서 관계를 반석으로 삼을 예정이었다. 타마나와의 입장상, 공인 커플에게 손을 댈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깨달아버렸다.
이로하의, 타마나와의, 그리고 하루노 씨의 마음을.
(그럼 할 수 있는건 하나 밖에 없잖아……)
가볍게 손을 쥐락펴락한다. 응, 괜찮아. 할 수 있어.
"그럼 당신이 초콜렛을 건낼 러브러브 커플 씨는-?"
아마 연출상 드럼롤이라도 흐르고 있을 것이다. 아나운서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돌아보며, 스태프 중 한 사람이 스케치북을 아나운서와 타마나와에게 보여주고 있다.
만약 타마나와가 하루노 씨를 지명하며녀 나는 그대로 눈을 감을거다. 하지만 만약 이로하를 선택한다고 하면, 그 때는…….
"네, 하세요!!"
아나운서의 호령과 함께 타마나와는 팔을 든다. 그리고――,
"호에? 나?"
라며 지명된 이로하는 어리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호호오, 여자친구는 당신인가요!? 귀엽네――"
"어, 어이, 그만해!"
갑자기 카메라 스태프의 목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의 주목이 아나운서로부터 그쪽으로 이동한다. 뭐, 내가 카메라의 전원을 꺼버렸으니까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지만.
"힛키!?"
라며 소리를 지르는 유이가하마.
"흐응-"
하며 요염하게 웃는 하루노 씨.
"………"
나는 카메라 스태프로부터 떨어져 타마나와의 앞에 선다.
"여어, 거짓말쟁이"
라고 말을 거니, 방금전까지의 허세는 어디갔는지 눈을 두리번두리번 요동치는 타마나와.
"무, 무슨 소리야?"
"위화감이 있었거든"
"위화감?"
"아아, 처음 위화감은 크리스마스 파티때는 모두의 의견을 수용하는것처럼 말하고 책임을 엷게 퍼뜨리는 남자가, 학생회장이라는 직책을 짊어진채 점심시간에 소부에 오는건 말도 안 된다. 그렇게 생각했어"
"그건 내가 잇시키를……"
"그럼 어째서 그렇게까지 허둥대지? 뭐가 너를 망설이게 만드는거지?"
솔직히 이 녀석의 마음은 아플만큼 안다. 자신을 이끌어준 사람의 기대를 배신하고 싶지 않다.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그런 아이같은 감정.
"타마나와……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누구를 위해 행동을 하든 나하고는 관계없고, 흥미도 없어. 하지만!!"
멱살을 움켜쥐고 몸을 끌어당긴다. 허둥대는 타마나와의 몸은 생각한것 이상으로 가볍다.
"자기 사정 때문에 내 여자에게 손을 대지마"
팔을 떨리고 목소리는 쉬고, 말은 잘 나오지 않는다.
익숙치 않은 행동에 몸이 따라가지 못했지만, 그래도 마음을 전하는건 할 수 있다. 남은건 내 문제가 아니다. 타마나와의 문제다.
"……나는…"
그대로 타마나와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샌가 텔레비전 스태프는 물러나있었다. 역시 발렌타인 기획으로 여자를 둘러싸는 구도는 방송할 수 없다는 결론인 것이다.
자선 행사 자체도 대부분은 끝나서 그대로 스르륵 해산하게 됐다. 학생 참가자들은 마지막까지 정리를 돕고, 그대로 구분없이 뿔뿔이 흩어져 돌아갔다.
◆◆◆
그리고 나는――.
"어음, 이건 저 필요합니까?"
시민회관의 뒤, 타마나와랑 하루노 씨의 옆에 나는 서 있었다. 타마나와는 자신감 없다는듯이 고개숙이고 있고 하루노 씨는 재미없다는듯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그야 네가 '깨달아버렸'으니까 마지막까지 신경써줄 책임이 있잖니?"
라며 하루노 씨가 가시 있는 말투로 말을 하니, 타마나와는 움찔하며 몸을 떤다. 그리고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자신이 없었어. 학생회장이 되고나서도 나에게 대역을 맡을 수 있을지, 누가 나를 바보취급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것만 계속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
타마나와의 말을 하루노 씨는 묵묵히 들었다. 그건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다. 평소라면 일도양단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럴때, 당신은 나타났어요. 크리스마스 모임 이래로, 계쏙 저를 단련시켜줬죠. 이끌어줬어요. 그러니까 저는……"
"좋아하게 됐어?"
하루노 씨의 똑바른 말에 타마나와는 울것같은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천천히 끄덕인다.
"네……에. 하지만 지금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천천히 인정받으면 된다고……그렇게 생각해서…"
깨닫고 보니 타마나와는 울고 있었다.
하루노 씨에게 기대받는것, 그 중압은 잴 수 없는 거서이다. 거기다 그녀에게 연심마저 품은 날에는 국민으로부터 기대받는 용사같은 감정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건 일방적인 마음이며, 그녀에 대한 과대평가이며 과대망상이다.
"타마나와"
이름을 불려서 타마나와는 기대와 공포가 뒤섞인 복잡한 표저어으로 하루노 씨를 봤다. 나는 어느샌가 그에게 감정이입해버려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어느 정도 예상이 가서 마음이 찢어질듯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대개 들어맞아서,
"하나만 가르쳐줄게"
"여자애는 귀여움받는걸 좋아해"
타마나와는 천천히 시선을 떠룩고,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렸다.
뒷길로 사라지는 그를 쳐다보고 하루노 씨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정말로 쓸데없는 짓을 해줬구나 히키가야"
노골적이게 노려보는 그녀에게 나는 더는 겁먹지는 않는다.
"하루노 씨의 마음에는 대답할 수 없으니까요"
"뭐야 그거, 자의식과잉 아니야?"
쿡쿡 웃는 하루노 씨. 하지만 그 눈은 웃고 있지 않다.
"……분명 당신을 귀여워해줄 사람은 있을거에요"
일방적으로 유키노시타 하루노를 즐기는게 아닌, 유키노시타 하루노'와' 인생을 즐기는 그런 상대가.
"……나는 너한테 그걸 기대했는데…"
그 목소리는 자신감으로 가득 넘치는 유키노시타 하루노가 아닌, '한 명의 여자애'의 목소리였다.
"저에게는 짐이 너무 크다구요"
"실은 아깝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그렇게 말해주길 원해요?"
라고 물으니,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며 눈을 피하는 하루노 씨.
"……이 에로가야"
어딘가에서 들은 호칭이지만 하루노 씨의 입으로 들으니 전혀 다른 단어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것보다도 무엇보다,
멀리서 이로하가 힐끔힐끔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게,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던 나는 역시 하루노 씨의 기대에는 대답할 수 없는거겠지.
◆◆◆
귀가길, 이로하는 평소가던 공원에 들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눈가루가 녹은 흙색 공원에 도착하자마자 이로하는 꼬옥 나를 껴안아온다.
"……우-, 좋아해요-"
아마 하루노 씨와 무어너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던 것이다. 겁에 질린 그녀는 무척이나 귀엽고, 또 빨리 구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에 사로잡힌다.
"괜찮아, 그 사람하고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잠깐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거에요, 저 아무 생각도 안 했다구요……, 하치군은 저 말고 누구도 못 다루구요……"
점점 기세가 줄어들어간다. 그리고 껴안은채로 올려다보면서,
"다루지 않을……거죠?"
라고 말했다. 너무 귀여워서 먹어버릴것 같았다. 우와 나 엄청 기분 나빠.
"뭐, 반대로 이렇게 약삭빠른 여자애, 나 말고는 못 다룬다고"
"우와, 뭐에요 그 도량 넓다는 선언. 좀 기분 나쁜데요"
으-음, 이 뜨거운 손바닥뒤집기(웃음)
"하지만 깨달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툭, 머리를 얹으니 이로하는 기쁜듯이 "우냐" 라고 울었다.
"초콜렛을 건낼 수 없다고 한건 SOS 신호였구나"
이로하는 잠시 뜸을 둔 후에 작은 목소리로 "응" 하고 말했다.
그래, 그건 나에게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신호였다.
하지만 노골적이게 "타마나와가 대쉬하니까 도와줘요"라고 말해버리면 자의식과잉이라고 오해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넌지시 마음을 끌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런 잇시키 이로하의 '약한점'이 만들어낸 오해. 그리고 나 자신이 그녀를 단순한 여자애라고 알면서도 어딘가에서 만화에 나올법한 헌신적이고 기운차고 강한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떠한 일이든 나를 우선해줄거라고 자기 멋대로 만들어낸 생각이 생겨나버렸다.
"다읍부터는 똑바로 말해주라고?"
"응……"
"나는 이로하 외곬이니까 말야?"
"응……"
"나도 좋아하니까"
"응, 좋아해"
그리고 천천히 몸을 뗀 이로하는 가방에서 휴게소에서 보여준 상자를 꺼낸다.
"니히-(하트) 실은 있었습니다-♪"
"아니, 알고 있는데"
"재미없는 사람이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히쭉거리는 얼굴로 이로하는 내용물을 꺼낸다. 아니, 내가 열게 해주지 않는거냐.
거기에는 하트모양의 초콜렛이 있었다. 하얀 초콜렛 펜으로 '하치군'이라고 쓰여있다. 이 녀석, 여자력 높아…….
"……저도 오늘 피곤하니까 반 먹어도 되나요?"
볼을 붉히면서 부탁하는 이로하. 물론 못 받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거절할 이유는 없지만.
"그럼, ……음"
하고 하트의 한쪽을 입에 무는 이로하. 설마……?
"음"
눈을 감고, 입으로 받친 초콜렛을 나에게 향한다. 빼빼로 게임의 초콜렛 버전을 하라는건가…….
주위에 유키노시타 말고 사람이 없는걸 확인하고, 천천히 반대측 초콜렛을 입에 넣는다. 서로의 이마가 부딪치고 코끝이 스쳤다. ……왠지 엄청 흥분된다.
잠시 서로 쳐다보고, 그리고……,
""후힛""
웃은 순간에 초콜렛이 깨져 대부분이 떨어져버렸다.
나는 씻어서 먹는다고 말했지만, 이로하는 또 만들거라면서 각하한다.
그리고, 초콜렛으로 더러워진 입술을 겹쳐서 다시 사랑의 달콤함을 알게된 것이었다.
에필로그, 료짱에게 보고!
료"흐-응, 그럼 사귀는구나"
이로하"으, 응……"
하치만"왜 잘나하는데"퍽
료"아-앗, 여자애 때렸어어! 책임 져줘야해1"꼬옥
하치만"네네"쓰담쓰담
이로하"………"
료"진심으로 안 믿는거지-! 크면 반드시 아빠랑 결혼할거야!"뿌우///
하치만"그 때는 순백의 웨딩드레스 준비해주렉"쓰담쓰담
료"우에헤헤///"つ레코더
하치만"우와, 녹음한거냐 너. 그 사람 같구만……"
이로하"………"
료"그게-, 아빠는 포용력 있는 언니를 좋아하잖아"꼬옥
하치만"뭐, 부정은 안 하겠지만……"꼬옥
이로하"………"부들부들
료"료도 분명, 크면 가슴 커지고, 엉덩이도 뿌딩해질테니까 기대해"뺨에 쪽
하치만"오, 오오///"
료"에헤헤///"
하치만"후힛"
이로하"짜샤-----! 하치군은 내거야-----!"우갸아
료"아, 있었나요"
하치만"있었군요"
이로하"왜 경어!? 너무해!!"데뎅-
료"거짓말이야, 언니야"꼬옥
이로하"엣?"
료"료, 이로하 언니도 하치만 아빠도 좋아해!!"생긋
이로하"읏///"즈큐웅
료"그럼 두 사람이 쪽 하는거 보여줘"생긋
하치만"핫!?"
이로하"하으!?"
료"안 그러면 아빠를……진심으로 생각해버릴지도…"힐끔///
이로하"좋아-, 하죠 선배! 이런 어린애의 장래를 끝내면 안 되요!"번뜩번뜩
하치만"너……눈이 핏발치고 있어…"무서워…
료"………"つ카메라
이로하"하치군……"슥///
하치만"………///"게엑
―― .
◆◆◆
하루노"뭐, 뭐야 이거……"부들부들
료"뭐냐니, 하치만의 근황"つ용돈 겟!
하루노"그, 그런거……"부들부들
하루노"허락 못해애애애애애애애애애"우와아앙!!
이로하・하치만""후힛!""
끄・읏・후・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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