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emory for 42days - 추운 하늘 아래 따뜻해지는 둘.
점심을 지난 무렵, 내가 카운터에서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을때 음료 재고확인을 하러 간 선배가 안면을 창백하게 만들며 돌아왔다.
"어, 어쩐 일이에요!?"
"……재고가 다 떨어졌다"
"에!?"
선배는 부엌 안을 돌아보고 메모장같은걸 꺼내고는 볼펜으로 술술 문자를 써간다.
난잡하게 그걸 찢고 지갑과 메모용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부탁한다, 잇시키. 심부름 하고 와줘"
"아, 알겠어요! 빨리 사올게요!"
"아아, 시급하게 잘 부탁한다"
찻집같은 음식점에서 재고가 떨어지는건 사활문제다.
신속한 대응과 편안함을 제공하는게 이 찻집의 기능이니까!
나는 바로 두터운 코트를 입고 가게를 뛰쳐나갔다.
선배의 힘에 미력하게나마 될 수 있어.
이런걸로 은혜를 보답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선배를 위해서라면 뭐든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는 종종 걸음을 멈추지 않고 메모지에 눈을 준다.
【MAX커피 3박스】
……. 꾸깃
"……"
……, 일단 사러가자.
……
…
.
많은 상품이 진열된 디스 카운트 샵.
평일 점심 시간대이기 때문일가, 가게 안은 비교적 비어있다.
음료코너 종합 판매장을 산책해서 보지만, 도무지 MAX 커피 상자가 보이지 않는다.
인기 없는건가아.
"어라? 잇시키 씨? 잇시키 씨잖아!"
"에? ……읏, 아, 타, 타나카 씨"
늘씬하게 키가 크고 단정한 얼굴.
수트를 입은 그는 누가 봐도 핸섬이라고 말하는 분위기를 내고 있다.
왼팔에 찬 고압적인 금시계가 불편하게 내 마음을 강하게 옭아간다.
솟은 리가르 슈즈가 내 눈에 타들어간다.
매끄럽고 다정한 말투가 내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걱정 했다고? 술자리 후에 상사랑 둘이서 어디 갔지? 게다가 다음날부터 회사에도 안 오고"
"……저, 저기이"
"상사에게 물어도 아무 말도 안 하고. 다들 걱정하고 있거든?"
그의 눈이 싫다.
음탕하게 품정하는 듯한 시선이.
그의 입이 싫다.
나오는 말에 본심이 전혀 없는 언동.
그의 모든것이 싫다.
자신의 마음대로 모든걸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태도.
타나카 씨와 재회해서, 열리고 있던 마음의 문이 굳게 닫혀가듯.
시야가 삐그덕 굽어지듯.
짧은 시간을 함께한 선배가 사라져가듯, 눈 앞이 흐려져간다.
"왜 그래? 몸 상태라도 나빠? 저기서 쉴까"
그의 손이 내 어깨를 감으려고 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여성에게 스킨십을 한다.
그는 그런 인종의 인간이다.
그가 만지면, 분명 나의 세계는 시커멓게 물든다.
소리도 낼 수 없다.
다리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때.
"어이, 잇시키. 수량 실수했다. 3박스가 아니라 5박스다. 역시 휴대폰이 없으면 불편하네"
"……서, 선배"
찻집 제복을 입은 나의 선배.
어디에 있어도, 뭘 하고 있어도, 선배는 반드시 내 앞에 나타난다.
어두운 바닥에 도달해버려도, 선배는 맞이하러 와준다.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을 녹여주듯 가게내의 소동이 들려왔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 손자국을 남긴 손바닥을 보고 냉정해진다.
이렇게나 긴장하고 있었구나.
"역시 그래도 5박스는 혼자서 못들고 가잖아?"
"하하, 아하하! 3박스도 무리에요! 거기다, MAX커피 박스 안 팔잖아요!"
"……아, 저기. 잇시키 씨? 그는……"
그 자리에서 방치되었던 타나카 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타나카 씨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아래에서 위까지 바라본다.
다리는 자세히 보니 그렇게 길지 않다.
조금 굽은 등일지도.
얼굴도 70점 정도다.
"아-아, 왜 나는 이렇게 겁먹었던거지"
"?"
"타나카 씨, 저 이미 회사 그만뒀으니까요. 앞으로 길에서 만나도 말걸지 말아주세요"
나는 타나카 씨에게 등을 돌리고 선배의 옆으로 걸어간다.
여기가 나의 정위치니까.
이후에 만날리 없다고 생각하니 시원해졌다.
더는 입장 같은건 없다.
이 사람은 무섭지도 않다.
선배도 곁에 있어준다.
오히려 앙갚아주고 싶을 정도다.
"……정말로 박스로 안 팔다니. 경엉파탄해도 모른다. 어쩔 수 없네, 다른 가게로 가자, 잇시키"
"에에-,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되잖아요-. 그런것보다, 지금부터 어디 가요!"
"그런것보다라고? ……안 가. 가게 안 닫았으니까"
추운 하늘 아래, 나는 선배의 곁을 걸었다.
얇은 옷차림의 선배에게 이번에는 내가 머플러를 감아준다.
선배가 조금 부끄러워 하면서 말한 말에, 나는 코트도 필요 없을 정도로 따뜻해지고 말았다.
고마워
9/24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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