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나의 청춘 에로코메디는 잘못됐다. - 정부
 
 
 
정부(正負)
 
 
 
 
 
가을 하늘.
 
나른해지는 듯한 더위도 사라져 시원한 바람이 분다.
 
 
 
 
그런 기분 좋은 계절.
눈 앞의 동생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에……오빠야 그거 정말……?"
 
얼빠진 소리를 낸다.
 
나는 거기에 이어서 대답했다.
 
 
 
 
 
 
 
 
 
 
 
 
 
 
 
 
 
 
 
 
 
 
 
 
 
 
 
 
 
 
 
 
 
 
 
"나 말야, 유키노시타와 사귀게 됐어"
 
 
 
 
 
 
 
 
 
 
 
 
 
 
 
 
 
 
 
 
 
 
 
 
 
 
 
 
 
 
 
 
 
며칠 전의 일이었다.
 
나의 자살을 제지한 유키노시타는 그때 귀를 의심할만한 소리를 말한 것이다.
 
 
 
"히키가야 씨"
"……뭔데"
"저랑 사귀지 않겠어요?"
"하?"
 
유키노시타에게 올려다 타여진 상태였다.
그런 자세의 제안에 솔직히 이해가 따라가지 못했다.
 
나는 유키노시타로부터 떨어지고, 그 침대에 앉았다.
 
"그레서 뭐라고"
"그러니까, 저랑 사귀지 않겠냐고 하는거에요"
"아니, 영문을 모르겠거든"
 
머리를 긁었다.
 
방금전까지 진짜로 목숨을 쥐락펴락하던 사이다.
이런 얘기가 되는것 자체가 이상하겠지.
 
"왜 또 그런 판단에 이른건데"
"좋아하니까, 라고하면 이해하시겠나요?"
"아니아니, 그러니까 말이지……"
 
말을 이으려고 하다가 그만뒀다.
 
깊은 한숨이 새어나온다.
 
 
전부터 특이한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방금전까지 목을 조르고 있던 녀석에게 호의를 품는다는건 정말 별난 녀석이다.
 
 
"인격이 바뀌기 전의 유키노시타는 나를 좋아했어. 그로 인해 캥긴다는 그런거야?"
"…………"
"정답이냐. 딱히 신경 쓰지마"
"그럴 순 없어요"
 
강간해놓고 뭐하지만 그런 누구에게나 대해줄 수 있는 상냥함은 나에게 있어선 독밖에 되지 않는다.
 
그저 그녀는 그녀이길 바랬다.
그리고 나를 싫어해주길 원했다.
 
 
"저기, 이 마음은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상냥한 사람이라는것 정도는 제대로 알고 있어요"
"미치겠네……"
 
어둠속에서도 알 수 있는 미소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뛴다.
이전보다도 행동가짐이 부드러워진 그녀는 이미 완전한 미소녀다.
 
그런 여자애한테 고백받는다면 누구나 호이호이 따라가겠지.
 
하지만 나는 거기에 낚여서는 안 된다.
 
 
 
"거기다 말이에요, 가까이 있는 편이 왠지 편리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뭔데, 편리하다는거"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그걸 듣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기억이 돌아온다면 그건 원래의 유키노시타가 돌아온다는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어느 종류의 동맹관계같은 교제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분명 이 이야기를 받아들인거겠지.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해"
"네, 잘 부탁드려요"
 
 
 
 
 
 
 
 
 
 
 
 
 
 
 
 
 
 
 
 
 
 
 
 
 
 
 
 
 
 
 
 
 
겁없이 웃는 그녀는 의연하게 유키노시타 그 자체의 미소였다.
 
 
 
 
 
 
 
 
 
 
 
 
 
 
 
 
 
 
 
 
 
 
 
 
 
 
 
 
 
 
 
 
"그렇게 된 셈이다"
"뭐라고 할까……너 장절하네"
 
어떤 패밀리 레스토랑.
카와사키와 유이가하마를 불러서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
 
카와사키는 놀라면서도 뭐 그렇게 됐나 같은 얼굴을 하고 유이가하마는 시종 차분한 분위기로 듣고 있었다.
 
"카와사키 양, 유이가하마 양, 언제까지 계속될진 모르겠지만 잘 부탁해요"
"어, 아아, 잘 부탁해……"
 
카와사키는 당황하면서도 대답을 했다.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입을 다문 상태다.
 
"유이가하마 양?"
"……당신은……"
"네……?"
 
유이가하마는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는 잔뜩 눈물을 머금고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당신은 유키농이 아니야. 그럼 뭐야……?"
"……그건……그게……"
 
유이가하마의 질문에 유키노시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이 세계에 바래져서 생겨난게 아닌 이레귤러인 존재.
생겨난 이유마저 없는 그녀에게 존재를 묻는다는건 심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여기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있잖아, 카와사키, 유이가하마"
 
나는 둘을 돌아봤다.
 
"이름을 생각해주지 않겠어?"
"이름? 이 녀석의?"
"아아, 이 녀석은 유키노시타가 아니야. 이름 정도는 생각해주자"
 
유키노시타가 눈을 크게 뜬다.
 
내 제안에 놀란 모양이다.
눈 앞의 둘도 어리벙벙해하고 있다.
 
"아니, 그치만 언제까지고 유키노시타라고 부르는것도 뭐하다고 생각하니까"
"뭐, 괜찮지 않아?"
"그건……찬성이려나?"
 
결정된건 좋다, 그녀의 이름을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여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예상 이상으로 이 작업은 난해를 낳았다.
 
그녀도 적령기 여자다.
우리 현역 고등학생의 센스로 붙일 수 있는건 고작해야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다.
 
 
 
'백설(白雪)'
 
 
 
"저기 유이가하마. 너 이거 뭐라고 읽는거야?"
"어? 스노우 인데?"
"기각이다. 하필이면 그런 반짝반짝한 름은 인정할 수 없어"
"에- 귀엽잖아! 그치, 스노우-"
"에……아니……음……"
 
엄청 싫은 모양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사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저기, 너는 뭐 있어? 불리고 싶은 이름이라던가"
"……으음……"
"딱히 부끄럽다면 됐지만……"
 
그녀는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끔뻑였다.
 
 
 
"후유노(冬乃)……후유노 같은건 어떤가요?"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걸 깨달은 후유노(임시)는 이전의 유키노시타답지 않은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돌아봤다.
 
 
"저기, 저 이상한 소리 했나요……!?"
"아니, 이거 우리들 필요없었던거 아니야……?"
 
 
 
후유노를 제외하고 이상한 분위기가 되면서 그 자리를 뒤로 했다.
 
 
 
 
 
 
 
 
 
 
 
 
 
 
 
 
 
 
 
 
 
 
 
 
 
 
 
 
 
 
 
 
 
 
하지만 후유노라는 이름을 불렸을때 그녀는 굉장히 기뻐보였으니까 됐다고 치자.
 
 
 
 
 
 
 
 
 
 
 
 
 
 
 
 
 
 
 
 
 
 
 
 
 
 
 
 
 
 
 
 
 
"그럼 저는 돌아갈게요. 감사합니다"
"아니, 됐어. 신경쓰지마"
"아,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
 
 
뺨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진다.
 
부드럽고 젖은 감촉.
 
 
"그럼 학교에서 봐요"
"어, 아아……"
 
 
생긋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골목 모퉁이를 돌아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건 키스였다.
그것도 그때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싹싹한 키스였다.
 
 
정말로 미치겠다.
 
 
완전히 유키노시타하고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집에 가려고 발꿈치를 돌린 순간이었다.
 
 
 
"얏하로-, 히키가야"
"……오랜만입니다"
 
갑자기 나타난건 하루노 씨.
사고 이후로 만나는건 처음이다.
 
그렇기에 캥기는게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하고는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긴장하지마, 나는 딱히 화내러 온게 아니니까"
"그게 사실이라는 증거가 없습니다"
"후후후, 뭐 됐어"
 
하루노 씨는 평소의 거짓스런 미소를 지은채로 나에게 다가왔다.
 
"얘, 히키가야. 이건 진지한 얘기인데 말야"
"뭡니까?"
 
분위기가 달라졌다.
 
평소의 거짓스러운게 아닌, 진지한. 말 그대로의 분위기.
 
 
"저 아이, 이름을 자청했어?"
"아니요"
"다 같이 이름을 생각한거야?"
"네, 뭐. 결국 저 녀석이 꺼낸 대안대로 됐지만요"
 
라고 말한 순간이었다.
 
 
어깨를 덥석 쥐여져, 눈 앞까지 들이닥친다.
 
 
 
 
"이름은!? 뭐라고 했어!?"
"에, 뭡니까 갑자기……"
"대답해!!!"
 
 
나는 그 분위기에 삼켜져서 대답했다.
 
 
 
"후유노……인데요……"
 
 
 
순간.
 
하루노 씨는 본 적이 없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초조함.
 
무슨 일에도 빈틈이 없는 그녀가 보인 일반인과 같은 감정.
 
 
 
나는 거기에 공포를 느낀다.
 
 
 
 
 
 
 
"그게 왜 그러십니까……?"
"후유노를……그 아이를 제지해야해……"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의 중대함은 초조해하는 하루노 씨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거기에 대해서 질문했다.
 
 
 
 
눈 앞에 있는 하루노 씨가 하루노 씨로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로까지 초조감을 보인 그녀.
 
 
"그 아이는……그 아이들은……"
 
 
 
 
 
 
 
 
 
 
 
 
 
 
 
 
 
 
 
 
 
 
 
 
 
 
 
 
 
 
유키노시타 유키노를 '정(正)'이라고 한다면, 유키노시타 후유노는 틀림없는 '부(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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