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나의 청춘 에로코메디는 잘못됐다. - 백설향소곡
 
 
 
백설향소곡
 
 
 
 
 
나는 변했다.
 
이전보다도 사람 대하는게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거기다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생겼다.
 
 
유이가하마.
 
카와사키.
 
토츠카.
 
메구리 선배.
 
 
 
그리고 유키노시타.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변한 것으로 세상이 다른 견식을 보일 뿐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결과로서 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렸다.
 
 
 
 
 
 
 
 
 
 
 
 
 
 
 
 
 
 
 
 
 
 
 
 
 
 
 
 
 
 
 
 
 
우리들의 세상은 역시 어딘가 잘못됐다.
 
 
 
 
 
 
 
 
 
 
 
 
 
 
 
 
 
 
 
 
 
 
 
 
 
 
 
 
 
 
 
 
 
병원의 복도.
 
거기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못하고, 아무것도 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나도 더는 아이는 아니다.
그러니까 날뛰었다고해도 무언가가 변하는건 아니라고, 진작에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굳이 아무것도 안 한다. 할 수 없다.
 
 
"히키가야"
"히라츠카 선생님……"
 
말을 건건 히라츠카 여사.
평소와 달리 신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히키가야, 딱히 네가 나쁜게 아니다. 이건 사고다. 그러니까 그렇게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
"……알고 있었어요"
"음, 뭘 말이냐?"
"옥상 펜스가 망가졌다는거요"
"……그렇다고해도, 너를 탓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
 
히라츠카 선생님의 손이 머리에 올려진다.
다정하게 쓰다듬는 따뜻함을 나는 기분 나쁜 기분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말아줬으면 싶다.
 
애시당초 일의 발단은 그렇지 않은가?
 
나랑 관여했으니까?
 
"유키노시타의 용태는 안정했다. 문화제에서 텐트가 쳐져 있었으니까. 쿠션이 되어서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생명에 지장은 없다. 금방 눈을 뜰거다"
"그런가요……다행이다……"
"그러니까 너무 생각하지마라"
"네……"
"지금부터 유키노시타의 병실로 간다. 너도 올거냐?"
 
나는 묵묵히 끄덕였다.
 
히라츠카 선생님의 뒤를 천천히 쫓는다.
발걸음이 무겁다.
 
나 따위가 그녀의 걱정을 해도 괜찮은가?
 
그녀를, 유키노시타를 이런 상황에 만든건 나잖아?
 
 
그럼 왜?
 
 
 
 
히라츠카 선생님이 멈춰서고 이쪽을 돌아본다.
고개숙이고 있어서 표정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마치 어머니처럼.
 
 
 
그런 다정함이 또 나를 좀먹어갔다.
 
 
 
 
 
그리고 병실에 도착한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문을 열었다.
 
 
"히키가야, 제대로 해답은 냈잖느냐? 그럼 그거면 된다"
 
등을 툭 민다.
그리고 문은 닫혀졌다.
 
병실에는 나와, 유키노시타만이 남게 되었다.
 
눈 앞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가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가 있다.
 
나를 좋아한다고 말해준 그녀는 더는 없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보지 않아도 알고 있던 단정한 얼굴이다.
 
 
자세히 보니 이마에 상처가 보인다.
평소엔 머리카락으로 가려질 위치다.
 
그걸 손가락으로 긋는다.
 
 
상처 입혔다.
 
상처 입혔다.
 
상처 입혔다.
 
 
 
 
 
 
 
 
 
 
 
 
 
 
 
 
 
 
 
 
 
 
 
 
 
 
 
 
 
 
 
 
 
 
상처 입혔다.
 
 
 
 
 
 
 
 
 
 
 
 
 
 
 
 
 
 
 
 
 
 
 
 
 
 
 
 
 
 
 
 
 
"……히키가야……"
"윽……우욱……우으……"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어깨에 올려지는 손.
감각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게, 이미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유키노시타가 없는 지금, 나는 그저 빈껍데기가 되어버린다.
 
 
 
 
그대로 돌아갔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바래다줘서 집까지 돌아갔다.
 
 
 
 
더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더는, 아무것도……
 
 
 
 
 
 
 
 
 
 
 
 
 
 
 
 
 
 
 
 
 
 
 
 
 
 
 
 
 
 
 
 
 
일요일.
 
문화제가 끝난 휴일.
 
이렇게나 기분이 처지는 일요일이 있을까.
 
 
시간은 오후 2시.
정신을 차리니 벌써 그런 시간이다.
 
또 몸을 뒤척인다.
 
아마 다음으로 시계를 볼때는 분명 오후 10시 정도가 될것 같다.
 
 
 
자면 분명 꿈에 나온다.
몸을 움직이면 분명 유키노시타의 환영을 본다.
 
그러니까 나는 자지 않는다. 그저 눈을 감는다.
 
 
 
 
"오-빠-야! 언제까지 현실 도피할거야!?"
"…………"
"정말, 아무튼 뭐라도 안 먹으면 죽는다구? 안 그래도 썩었으니까……"
 
코마치의 잔소리마저 신경이 안 쓰인다.
 
더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이래선 안 된다는것도 잘 이해하고 있다.
 
반드시 일어설테니까 기다려줬으면 싶어.
분명, 반드시.
 
그때 인터폰이 울었다.
 
 
"아, 코마치가 나갈테니까 오빠, 뭐라도 안 먹으면 안 된다?"
 
파닥파닥 소리를 내면서 현관으로 향하는 그녀.
나는 또 길 밖을 가는 상태같은 감각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것도 바로 방해를 받는다.
 
 
"오빠야! 손님이야!"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무리하게 기울이니 거기에는 낯익은 모습이.
 
 
"얏호, 힛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일어섰다.
이전과 같은 꺼림찍한 분위기는 보이지 않는다.
 
 
 
 
 
 
 
 
 
 
 
 
 
 
 
 
 
 
 
 
 
 
 
 
 
 
 
 
 
 
 
 
 
거실에 가부좌를 하고 앉는 나.
맞은편에 털썩 앉은 유이가하마.
 
코마치는 음료를 내오자마자 "느긋하게~" 라고 말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 참견같은게 지금은 고마웠다.
 
"무슨 용건이야? 나를 괴롭힐거면 나중에 해줘"
"으응, 그런게 아니야……"
"그럼 왜"
"유키농이랑, 나"
 
유이가하마는 불안해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제정신으로 돌아왔나"
"뭐, 응, 그런거야……"
"딱히 그런건 이젠 상관없잖냐. 나나 카와사키나 히라츠카 선생님은 신경쓰지 않아"
"그게 아니라……"
 
올려다본 순간,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떠있었다.
 
그리고 실이 끊긴것처럼 울며 쓰러진다.
나는 그저 보고 있을뿐이었다.
 
"나, 유키농이 사고를 당했다는걸 듣고, 잠깐, 잠깐이지만 기뻐했어……어쩌면 힛키가 내 것이 되는게 아닐까 해서……"
"…………"
"하지만 바로 깨달았어……나, 최악이라고……"
"…………"
 
거기서 그녀는 나를 본다.
큰 눈물을 흘리며 엉망이 된 그 얼굴을, 눈물을 머금은 눈을 나에게 향했다.
 
 
 
"나, 아직 유키농의 친구로 있어도 될까……?"
 
 
유이가하마가 하고 싶은 말은 안다.
용서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생명을 받은 시점에서 누구에게 재판받는건 정해져있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를 용서도 하지 않거니와 내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아니라 유키노시타에게 물어"
 
 
차갑게 말했다.
정론.
 
잘못된 나한테 나오는 정론.
 
그저 그녀는 인간에게 처음부터 갖추어져 있는 시커먼 부분이 나와버린것 뿐이다. 생리현상이다.
 
성악설이라는거지. 크게 추장, 긍정해주자.
 
 
 
그러니까 나에게도 그런 감정은 있다.
 
 
 
 
아직 눈물을 흘리는 유이가하마.
그녀에게 해줄 말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나를 용서할 수 있는것도 유키노시타 뿐이겠지.
 
 
 
 
 
 
 
 
 
 
 
 
 
 
 
 
 
 
 
 
 
 
 
 
 
 
 
 
 
 
 
 
 
하지만 그건 이룰 수 없는 바람이었다.
 
지금도, 앞으로도.
 
 
 
 
 
 
 
 
 
 
 
 
 
 
 
 
 
 
 
 
 
 
 
 
 
 
 
 
 
 
 
 
 
휴대폰이 운다.
 
그걸 든 유이가하마.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유키농, 눈을 떴대……"
 
 
 
 
 
 
 
 
 
 
 
 
 
 
 
 
 
 
 
 
 
 
 
 
 
 
 
 
 
 
 
 
 
 
 
 
병실로 뛰어든 나와 유이가하마.
 
망설임따윈 없었다.
 
 
그저 유키노시타를 만나고 싶다는 한 마음이었다.
 
 
"유키농!"
"유이가하마……?"
 
유이가하마는 일직선으로 유키노시타를 껴안았다.
 
유키노시타는 순간 놀란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대로 손을 감아 유이가하마를 안는다.
아무래도 무사했던 모양이다.
 
나도 거기에 뒤섞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
 
"히키가야"
"아, 히라츠카 선생님"
"네가 봤을때는 어떠느냐, 유키노시타의 상태는"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느낌이네요"
"그러냐"
 
히라츠카 선생님은 복잡해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히키가야……음……"
"뭡니까?"
"아니, 역시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게 최고겠지"
 
그렇게 말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저 그걸 보고 있었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하는 말을 모르겠다.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할테니까 뒷일은 힛키, 잘 부탁해"
 
눈가에 눈물을 지은 유이가하마.
그녀 나름대로 배려해준거겠지.
 
그녀도 병실을 나갔다.
 
 
그리고 어제처럼 단 둘만 남게 된다.
 
 
"……저기, 히키가야 씨……"
 
나는 묵묵히 그녀를 껴안았다.
 
있는 힘껏 껴안았다.
 
모든걸 잊고 싶고, 괴로워서.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어째서……야……"
"저기, 히키가야 씨……?"
 
 
 
 
 
 
 
 
 
 
 
 
 
 
 
 
 
 
 
 
 
 
 
 
 
 
 
 
 
 
 
 
 
 
"너……누구야……"
 
 
 
 
 
 
 
 
 
 
 
 
 
 
 
 
 
 
 
 
 
 
 
 
 
 
 
 
 
 
 
 
 
 
시간이 지나는줄 몰랐다.
체감 3초가 5분으로 느껴진다.
 
눈 앞에 있는 소녀는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아니다.
 
내 본능이 말하고 있다.
 
"음, 무슨 의미인가요? 저는 저라구요……?"
"아냐, 너는 유키노시타가 아니야……"
 
한 발짝 물러선다.
 
아니다.
그녀는 이런 식의 표정을 짓지 않는다.
 
늘 부끄러운듯이, 조금이지만 감정을 보인다.
그저 그것뿐.
 
눈 앞의 유키노시타다운 소녀는 평소 이상으로 표정의 변화가 심하다.
 
거기서 나는 어떤 해답에 도달했다.
 
"……사고 때문이야?"
"네,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처음 말은 미안해. 제대로 얘기를 들을게. 그러니까 제대로 말해줘"
"……네……"
 
 
나는 유키노시타와 대화를 했다.
 
그녀는 유키노시타는 아닌 유키노시타.
 
 
그녀는 지금까지 유키노시타 유키노로서의 기억을 갖고 있는 다른 사람이라는 모양이다.
기억과 인격이 일치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누구도 아니다.
 
"기억장해같은 느낌인가……"
 
그녀는 면목없다는 듯이 고개숙였다.
 
"미안, 나 때문이야"
"아뇨, 그런건 아니에요. 적어도 그녀…는 그런 생각은 안 해요"
"알겠어?"
"네, 기억만큼은 그녀만의 것이니까요"
"그런가"
"그러니까……"
 
 
그녀는 볼을 붉혔다.
 
"그게, 지금까지대로 접해주셔도 괜찮아요, 저는……"
 
부끄러운듯이 시트를 움켜쥐는 그녀.
 
토츠카와 별반 차이없을 정도로 소녀스런 반응.
이게 분명 평범한 반응이겠지.
 
그렇기에 그녀는 더 이상 없다.
 
 
내가 좋아했던 유키노시타는 더는 없다.
 
돌아올 보증은 어디에도 없다.
그건 이미 죽은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나는……
 
 
"아니, 너는 다른 사람이야. 그러니까 그런식으로 무리할 필요도 없겠지"
"……그런가요? 저기, 그래선 당신은……"
"신경 쓰지마, 네가 나쁜게 아니야"
 
 
누가 나쁜것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내가 나쁘다.
 
왜냐면.
 
 
왜냐면 그녀는.
 
 
 
"있잖아, 유키노시타"
"에, 아, 네……"
"너는 나를 좋아해?"
"저기, 그게……"
"그런거 아니지. 좋아했던건 전의 너니까"
 
나는 병실을 나갔다.
 
유이가하마와 히라츠카 선생님이 있었다.
 
 
 
신경쓰지 않고 걸었다.
 
 
 
뭔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몰랐다.
 
 
 
 
정신을 차리니 강따라난 길이었다.
 
어떻게 걸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뭐, 필연적이지.
 
 
 
 
 
다리 한 가운데에 서는 나.
 
내려다보는 강.
 
 
돌아오지 않는 유키노시타에게 조금이지만 화가 난다.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아내는 이런 느낌인걸까.
 
 
 
뭐, 이젠 아무래도 좋나.
 
 
 
 
강을 향해 걷는다.
 
나 따윈 죽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나다를까 강에 떨어졌다.
 
위도 아래도 오른쪽도 왼쪽도 모르게 되었지만 그건 이제 죽는다는거지.
 
 
 
 
 
그럼 됐어.
 
 
 
 
 
 
 
 
 
 
 
 
 
 
 
 
 
 
 
 
 
 
 
 
 
 
 
 
 
 
 
 
 
 
 
나는 지금도 아직 유키노시타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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