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의뢰인
 

 

 

 

 

겨울방학.
히키가야 하치만.

겨울방학이란 쉬기 위해 있는 것이다.
평소 쌓인 피로를 풀고 학교나 사회라는 격무 혹은 번거로운 인간 관계로부터 해방되는 오아시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겨울 '방학' 이라고 할 정도다.
이름은 몸을 나타낸다고 하듯이 겨울방학이라는 말이 모든걸 체현하여 똑바로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말하길, 겨울의 방학이다, 라고.
동물도 겨울은 동면이라는 휴식기를 가진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져도 부자연스럽긴커녕 되게 자연스런 행동이다.
오히려 같은 동물로서 하지 않는 쪽이 부자연, 아니 평화를 흐뜨리는 실례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리얼충이라고 불리는 녀석들은 장기간 휴식기마다 물 만난 물고기마냥 돌아다닌다.
크리스마스니 정월이니 연말연시니 새해니 스키니 뭐니 정체하는 일, 조금이라도 주위와 관계를 끊고 멈춰버리는 짓을 겁쟁이마냥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것이다.
아까전에 물 만난 물고기마냥이라고 했지만 오히려 물 만난 참치라고 하는 편이 올바르다.
조금이라도 멈춰버리면 호흡을 못해서 죽어버린다고 하는듯이 어리석게도 그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벤트라는 이름의 감옥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외톨이는 자유다.

누구에게도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이 바라는대로 잠을 탐하고 코타츠에 들어가 귤을 먹고 잠을 자고 독서랑 게임을 하고 짬짬이 공부, 그리고 잠을 잔다.
말 그대로 휴식이다.
요컨대 겨울 방학이다.
외톨이야말로 겨울 방학을 올바르게 만끽한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리얼충이야말로 겨울방학의 방식에 정면으로 시비를 거는것이며 반역하고 풍기를 흐뜨리는 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역시 리얼충은 박살나라.



"…………히키가야. 이건 대체 뭐냐……?"
"……하아. 뭐냐고 하셔도, 테마를 따라 작문을 만든것 뿐인데요……?"

방과후 교무실.
나는 항례처럼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호출을 받고 있었다.
두통을 느낀듯이 머리를 누르고 있는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내심 한숨을 쉰다.

정말이지, 실례네요.
나는 진지하게 작문을 썼는데 작문을 깜빡한 유이가하마는 교실에서 주의를 받고 끝이라고?
'나중에 내도록' 한 마디로 끝이고.

그런데 왜 진지하게 제출한 나는 호출을 받아야하는건데.
이게 사랑이야?
교육적 지도야?
싫다, 하치만은 사랑받고 있어.
덤으로 사랑의 채찍을 받을 예감마저 느끼는 것이다.

"……히키가야. 작문의 테마를 말해봐라"
"겨울방학에 임하여, 였죠?"

간단한 주제이기에 거기에서 퍼지는 발상은 무한.
무한의 저 너머로 가자! 앗, 낡았나?
미안해.

"……그래서 그 테마에서 어떻게 이런 결론에 도달한거냐? 너를 봉사부에 넣은 성과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만"
"그야 부장인 유키노시타는 저를 상회하게 삐뚤어졌으니까요. 핵산분자 구조도 놀랄 비뚤어진거 아닙니까? 그런 녀석이랑 같은 부실에 있어도 선생님의 목표대로 잘 될리가 없잖아요. 상승효과로 비뚤어질 뿐입니다"
"자각이 있는만큼 구제할 길이 없군……"

후-, 무겁게 한숨을 쉬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미간에 주름을 모은다.

"저기, 히라츠카 선생님……? 미간에 주름을 모으는건 그만두는 편이……나이상으로 못 돌아오게,"
"마알살의이이이이이이이! 라스트 블릿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크헉!!?"




퍼스트와 세컨드를 날려먹고 난데없이 라스트 블릿이냐.
방금전의 예감이 현실로……사랑이 아픕니다.

절대로 사랑은 아니지만.
,요컨대 남는건 채찍뿐.
뭐야 그거, 단순한 폭력이잖아.
어디에 수요가 있는건데?

그나저나 효과 있었다고, 지금 펀치…….
당신 말야, 세계를 노리라고.
오히려 어째서 교사 따위가 되버린거야, 이 사람…….

천직은 절대로 아마조네스일거 아냐.

"히키가야……네가 지금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굳이 묻지 않으며. 이 이상 주먹을 피로 물들이고 싶지는 않으니까"

움찔움찔 관자놀이에 핏줄을 띄우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꽈직, 하는 효과음이 들릴듯한 박력에 무심코 움츠려든다.

엄청 남자다운 이유네…….
하치만, 너무 감동해서 울어버린다.
그러는김에 맞은 곳이 아파서 울어버린다.

"그럼 겨울 방학 작문은 이제 됐다. 히키가야의 썩은 본심은 잘 알았으니까. 그래서 말이다. 지금부터 겨울방학 중의 봉사부 활동에 대해서 전하마"
"잠깐만요 선생님, 그런 횡포…………………………………가 아니네요, 네, 알겠습니다"

생긋 웃는 얼굴로 다시 주먹을 꽈악 움켜쥐는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주르륵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서 붙임성 있는 미소를 지었다.
움켜쥔 주먹을 나에게 보여주듯이 들어올리는 동작이 너무 당당해서 무서워…….
아니 진짜로.

이젠 조건반사의 공포.
너무 무서운 파블로프였다.
아무튼 인간은 폭력에 약한 것이다.
미카즈키 마을의 사람들의 마음을 지금이라면 몸소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다.

 



"……여어"

아무도 없는 복도를 지나 드르륵 봉사부 부실을 연다.

귀에 들어오는건 약간 떠들썩한 운동부의 소음뿐.
뭐, 특별히 부활동에 힘을 넣지 않는 자유로운 교풍인 소부고등학교는 운동부마저도 거의 남들마냥 쉬고 있다.
그렇게되면 필연적으로 문화부는 절멸했을 터였다.

봉사부 말고는.
요컨대 마지막 성벽, 방파제이다.
뭐야 그거, 좀 멋지다.




"어머, 히키가야. 여전히 썩어있구나. 겨울방학에 들어가서 완전히 기온이 떨어졌으니까 조금은 부패도가 멈출거라고 기대했지만 일본의 겨울 정도로는 짐이 무거웠던걸까. 차라리 북극이나 남극이라도 가렴. 좋지는 않아지더라도 현상유지 정도라면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몰라"
"호의인척 하면서 자살을 권하지 마……"

겨울방학에도 평상운전으로 전해오는 독설에 힘이 빠지면서도 평소 앉던 자리로 향하고 책을 꺼낸다.

오늘은 헛소리 시리즈다.
최근엔 이야기 시리즈가 인기가 있지만 주인공의 캐릭터가 초기와 너무 달라져서 상처 이야기 이후로는 따라가지 못하게 됐다.
외톨이 캐릭터였을텐데 지금은 그냥 리얼충에 초가 붙을 변태에 하렘이다.

그 점에서 헛소리는 좋다.

등 줄줄 생각하면서 책을 펼치고 페이지에 눈을 둔다.
하지만 팔랑…………팔랑. 나와 유키노시타의 말없이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만 부실에 울려퍼졌다.

그냥 이거 집에 가서 읽어도 되지 않아?
여기에 오는 의미 있어?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생각하기 시작한 그때, 두다다다 소란스런 소리가 복도에서 울리고,


"얏하로-!"

그런 머리 나빠보이는 인사소리가 들렸다.

"안녕, 유이가하마"
"얏하로-, 유키농, 그리고 힛키두!"
"……어"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하고 독서로 돌아간다.
유이가하마도 만족했는지 평소처럼 나와 유키노시타 사이에 자리를 잡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가끔 유키노시타에게 화제를 돌려서 대화를 하는, 그런 완전히 평상운전인 봉사부의 완성이었다.

……정말로 이거, 굳이 겨울방학에 봉사부를 열 의미가 있는건가?
집에 가고 싶고, 그리고 집에 가고 싶다.
그냥 이거 집에 가도 되지?
자택 최고! 휴일 출근 대반대!

라고 생각하는 시간이 2시간 정도 지나, 나는 타악 책을 덮었다.

"저기, 오늘은 특별히 활동할 일도 없어 보이고, 집에 가도 되냐? 그보다 평소에도 그리 상담하러 오지 않는데 굳이 겨울방학에 학교에 와서까지 상담을 하는걸 좋아할리도 없잖냐……. 애시당초 겨울방학에 봉사부가 활동한다는 발상을 갖고 있는 녀석이 애시당초 있는지도 수상쩍다"
"그 점은 걱정없어. 메일 상담 홈페이지에 활동하는 취지를 써뒀으니까. 그리고 아무도 없는 겨울방학이기에 남에게 들리고 싶지 않은 상담을 갖고 오기 쉽다고도 할 수 있어"
"……하지만 안 오네~~, 의뢰인……"

유이가하마 툭 중얼거린다.

"……그러네. 내일도 있으니까 1시간 정도 더 있어도 아무도 안 오면 접고 돌아갈까. 홈페이지에 우리가 있는 시간을 명확하게 기재해야 했을지도 몰라……"

야, 유키노시타는 여전히 유이가하마에게 너무 무르잖냐……
내가 말했을때는 일축했던 주제에!

아니 뭐, 내 의견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유키노시타도 기분 나쁘지만.
무심코 가짜입니까, 인형입니까? 라고 등 뒤의 지퍼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러저러하는 사이에 1시간이 지나 이제 돌아갈까, 같은 분위기가 되었을때,

"햣하로-! 유키노야, 히키가야, 언니가 의뢰를 갖고 왔어-!"




봉사부에 대마왕이 강림했다.
누구겠냐,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친언니이며 완벽초인 강화외골격을 장비한 유키노시타 하루노 씨다.

야, 교내에 악마 소환의 의식을 한 녀석 누구야…….
터무니 없는게 소환되어 버렸잖아.
책임자 나와!
그리고 가급적 빨리 데려가주세요.

나, 유키노시타, 유이가하마의 얼굴이 복붙마냥 경직됐다.
왠일로 우리 봉사부의 마음이 하나가 된 순간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출구는 그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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