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도 끝나고 2학기가 시작했다. 계절은 가을. 전국적으로 문화제의 계절이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나는 혼자 부실에서 눈을 떴다. 부실에서 유키노랑 유이랑 점심을 먹은 후에 아무래도 잠들어 버린 모양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학교가 쉬게 된다, 혹은 지각해도 문제 없다고 예상해서 철야로 공부했었지만, 예상밖으로 속도를 빠르게 진행한 태풍은 내 생각따위 알바 아니라는 듯이 태평양으로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잠부족인 상태로 등교하게 된 것이다. 진짜 분위기 읽어라. 태풍이니까.
뭐, 어쨌든 5교시는 LHR이었을테고, 문화제 이래저래 준비할 뿐이니 땡땡이 쳐도 문제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실을 나와, 교실로 돌아온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목도하게 됐다.
 
문화제 실행위원 : 히키가야 하치만
 
경악의 사실에 무심코 동요해버린다. 나의 지루한 일상을 소실시킨것은 대체 누구의 음모인건가. 앞으로 찾아올 여러가지 성가신 일에 분개할 마음도 들지 않아, 우울한 한숨을 쉰다. 부추기고 부추겨서 폭주시켜, 반을 분열시켜서라도 지워버려야 할까.
 
"설명이 필요하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히라츠카 선생님의 음모였습니까"
 
"벌써 다음 수업인데도, 아직 누가 실행위원을 할건지 안 정해져서 말이다. 그러니까 히키가야로 해뒀다"
 
완전히 의미불명이다.
 
"……반을 이끌어가는 입장은 저하고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집단심리를 유도하면 된다. 네가 치바마을에서 한것 처럼 말이다"
 
실제 사례를 언급해버리면 해줄 말도 없다. 할 수 있으니까, 해라. 단적으로 말하면 그거다.
 
"……우울하다"
 
내가 어깨를 풀썩 떨구니, 그걸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히라츠카 선생님이 미소를 짓는다.
 
"알았으면 됐다. 자, 뒷일은 방과후에 정해라. 수업을 시작 할 수 없잖냐"
 
 
 
 
 
방과후 교실은 난리였다.
여자 실행위원을 정하면 되겠지만, 전혀 정해질 기색이 없다. 뭐, 그것도 당연하겠지. 어쨌든 상대가 나다. 반에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녹아들지 않고, 애시당초 대화가 성립하는지 조차 수상쩍다. 그런 인간과 조를 짜려고 보통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너 해봐-, 에- 그치만- 같은 대화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것만 아니라, 때떄로 힐끔 이쪽으로 시선을향하는 모습도 보인다. 같은 반의 여자한테 주목받는다고 하는, 일찍이 없는 상황에 상당히 거북하다.
내가 실행위원이니까 정해지지 않는다. 정해지지 않으니까 집에갈 수 없다. 적당히 귀찮아진 나는 어떤 제안을 해보기로 했다.
 
"하야마. 너, 나랑 실행위원 바꿔라. 반에서 인기많은 네가 실행위원을 하면 입후보자도 나올거 아냐. 어차피 히라츠카 선생님이 떠넘긴것 뿐이니까, 나는 책임에서 도망칠 수 있고, 여자 실행위원도 정하기 쉬워지지. 그리고 너는 실행위원 실적으로 내신점이 올라간다. 좋은 일 투성이잖아"
 
"아니, 그건 좀 아니라 생각하는데 히키타니. 한번 정해진걸 번복하는건 좋지 않잖아?"
 
"괜찮아 괜찮아. 뿟뿌쿠푸-"
 
"안 돼, 히키타니!"
 
나와 하야마의 대화에 끼어든것은 에비나였다.
 
"하야토는 반의 상영물에서 중요한 역을 할거야! 아니면, 대신에 히키타"
 
"미안, 하야마. 지금 이야기는 없던걸로 해다오"
 
나의 하야마에게 몽땅 떠넘긴다는 작전은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반의 상영물이란 어린 왕자 연극이다. 그것만 보면 평범한, 극히 일반적인 고등학생 다울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감독이 에비나만 아니라면.
기획서 단계에서 이미 썩은 오러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거. 확실히 배역에서 하야마가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하야마를 필두로 한 인기 캐스트로 완전 무대화! 라고 쓰여 있었지. 그야 무리다.
 
"그럼 유이. 너 실행위원 해줘"
 
같은 반 안에서 나와 회화가 성립하는 여자는 네 명. 유이와 미우라와 에비나, 그리고 사키 뿐이다. 그 중에서 유이가 타당하군. 덧붙여 대화가 성립하는 인수라는건, 동시에 내가 이름을 파악하고 있는 여자의 숫자이기도 하다.
 
"에, 나? 응-, 괜찮긴 한데. 그치만 내가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유이가하마가 해주면 고맙다. 인망 있고, 반 애들을 제대로 모아줄거라 생각하고, 적임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제안을 지금까지 반을 모으려고 사방팔방 고생하던 반장이 보증한다.
 
"안 돼!"
 
이번에는 미우라가 스톱을 걸었다.
 
"유이는 나아랑 같이 호객역이니까 무리!"
 
거부의 말과 함께 반장을 째릿 노려본다. 그런 미우라의 시선에 지금까지 반을 제대로 모으지 못했던 반장이 견딜 수 있을리 없어서,
 
"그, 그렇구나. 호객도 중요하니까"
 
속공으로 패배했다.
 
"그래그래. 호객도 중요. 아니, 나 언제 호객역으로 정해졌어!?"
 
에비나가 감독인 이상, 엄마 미우라가 그 서포트에서 빠질리는 없으니까. 호객역이라면 당일까지 대단한 일은 하지 않을테고, 충분히 서포트로 돌 수있다. 그래서 미우라의 안에서는 유이도 같이 서포트 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엣? 가, 같이 안하는거야? 뭐 잘못됐어? 나아의 지레짐작……?"
 
"아니, 내가 잊은것 뿐이다. 미안하다 미우라"
 
"그, 그치! 히키오, 잊지 마!"
 
예상밖으로 허둥대는 미우라에게 가볍게 말해준다. 뇌근육인 만큼 재기하는것도 빠르다.
 
"그보다 하야마. 이거 어쩌면 좋을거라 생각하냐?"
 
결국 나와 대화 가능한 여자가 실행위원을 할 수 없다는걸 알았을 뿐이다. 덧붙여 사키는 처음부터 수에 넣지 않았다. 타이시가 관계없는데 저 녀석이 수긍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렇게되면 실행위원이 된 여자한테는 하야마와 일일 데이트권을 진증하자고. 그러면 바로 결정될것 같고"
 
"……그러니까 왜 히키타니는 나를 말려들게 하려는걸까. 히키타니와 데이트권을 주면 될거 아냐"
 
그건 말이다, 너가 나하고는 사이 좋아질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지. 내가 하야마하고 어떤 관계를 가지려고 해도, 우리들 사이에 우정같은게 생겨날 일은 없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적당하게 휘감는다. 원망할거면 자신의 발언을 원망해라.
 
"각하다. 너라면 모를까 나랑 데이트해서 기뻐할 녀석이 없잖냐. 그보다 너도 대안내봐, 대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군,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을법한 사람에게 부탁하는건 되겠어?"
 
더 이상 말려드는건 싫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모르지만 하야마는 어떤 인물이 상응한지 반장에게 확인을 구한다.
 
"그럼 사가미가 좋지 않아?"
 
"그렇군. 사가미라면 제대로 해줄것 같고"
 
반 애들 시선이 일제히 사가미 뭐시기에게 향한다. 사가미를 모르는 나는 그런 시선의 이동에 뒤다른다.
 
"나, 나? 내가 할 수 있을까나-. 저얼대로 무리라니까!"
 
시선 끝에는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드는 여자가 있었다. 약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것 같다. 뭐, 같은 반이니 당연한가.
 
"사가미, 그걸 어떻게든 부탁할 수 있을까?"
 
"……뭐, 달리 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 내가 할게-"
 
하야마가 밑져야 본전으로 부탁해서, 사가미 뭐시기가 허락한다.
그냥 처음부터 하야마가 하면 좋았잖아.
 

 
 
 
 
자, 그 날 방과후 봉사부의 일상이다.
 
"에-, 유키농도 실행위원이야-? 나도 실행위원 했으면 좋았을걸-!"
 
우연히도 유키노도 문화제 실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요컨대 봉사부 중에서 유이만 따돌려졌다는 것이다.
잽싸게 오늘 문화제 실행위원회가 집행되었기 때문에, 불쌍하게도 유이는 혼자 부실을 지키게 되버렸다.
 
"뭐, 유이는 에비나의 서포트라는 중요한 역할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잖냐"
 
"그렇기는 하지만-. 그치만, 그래선 부활동이……"
 
오늘 혼자 부실을 지키게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문화제가 끝날떄까지는 봉사부 활동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유키노를 정말 좋아하는 유이로서는 그것이 불만인 것이다.
 
"그거 말인데……. 유이가하마에게 부실을 맡기게 해버리는것도 미안하니까, 문화제가 끝날때까지는 부활동을 쉬려고 생각하는데"
 
"그렇군. 그 편이 좋을지도"
 
"에-! 싫어-!"
 
유키노가 말하기 어렵다는듯 휴식을 고하고, 나는 거기에 찬동한다. 하지만 유이가 거기에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너 말이다, 유키노도 좋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건 아니라고? 얼굴 보면 그 정도는 알거 아냐.
내가 유이에게 충고를 해야할지 망설이던 그 찰나, 부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팔에 매달리는 유이를 유키노가 다정하게 떼어내면서 대답을 한다.
 
"실례합니다-"
 
들어온건 내가 오늘 처음으로 그 존재를 인식한 여학생이었다.
사가미 뭐시기. 오늘 행해지는 문화제 실행위원회에 있어, 위원장으로서 입후보한 의욕이 넘치는여자다. 같은 반에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을텐데, 실제 위원회가 시작하니 위원장으로 입후보했다. 그 자세가 내게는 이해 되지 않아 인상적이었다.
 
"사가밍? 무슨 일이야?"
 
사가밍. 그 별명은 어디선가 들은적이 있는것 같은데…….
 
"사가밍은 그때 불꽃놀이 대회에서 만났던 여자냐?"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유이에게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사가밍 즉 사가미에게는 똑바로 들려버렸던 모양이다.
 
"……히키가야. 나 몰랐구나"
 
"미, 미안. 어지간히도 강한 인상이 없으면 기억 못하거든"
 
국립이라던가, 검은 팬티라던가, 썩었다거나, 뇌근육이라던가.
 
"히키가야 군에게 할 제제는 나중에 우리쪽에서 하겠어. 그래서 사가미. 무슨 일이니"
 
"아……. 갑자기 와서 미안해"
 
제제라는 단어에 움찔했는지 사가미가 어미를 고친다.
 
"나, 실행 위원장을 하게 됐는데……. 이런거 자신이 없다고 할까, 그러니까 도와줬으면 해"
 
"관둬. 그보다 애시당초 봉사부원 세명중 두명이 문화제 실행 위원이다. 일부러 부탁하러 오지 않아도 도와주는게 뻔하잖냐"
 
사가미의 말에 유키노가 물고 늘어지기 전에 구명줄을 보내준다.
확실히 나는 의욕이 빠져 있지만, 적극적으로 관여하려고 할 생각이 없을 뿐이지 주어진 일은 제대로 할 생각이다. 유키노가 어떨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도 노골적이게 땡땡이 치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사가미의 의뢰는 전혀 무의미하게 된다. 뭐, 유이에게도 협력받는다면 이야기는 별개지만.
 
"그렇기는 하지마안, 역시 모두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할까, 실패하고 싶지않은거 아냐?"
 
나의 다정함을 깨닫지 못하고 사가미는 더욱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그걸 놓칠 유키노가 아니다.
 
"요컨대 우리들이 네 보좌를 하면 된다는 소리니?"
 
"응, 그래 그거"

 

유키노의 허락하는 말에 사가미가 밝게 끄덕인다. ……그것이 자신의 사형선고인줄을 모르고.
내가 사가미의 입장이라면 절대로 봉사부에 의뢰를 하지 않는다. 왜냐면 유키노가 이럴때 어떤 대안을 내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토츠카의 의뢰를 생각해보면 알듯이, 유키노의 대안은 한결같이 치열하다. 아마 앞으로도 사가미의 마음 편안할 틈은 없을 것이다. 유키노가 말하는 보좌란, 사가미의 일의 보좌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결코 아니다. 사가미가 일을 해치울 수 있도록, 지옥의 특훈을 시켜주는 보좌인 것이다.
 
"그래……. 그럼 우리들은 전력으로 너를 보좌할게"
 
"정말로!? 고마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언제 사가미가 깨달을지는 모른다. 적어도 그때까지, 짧은 평온을 즐겨다오.
그럼 잘 부탁해-! 라며 가벼운 말로 작별인사를 고하고 사가미가 사라진다. 남겨진건 평소의 봉사부원 셋 뿐이다.
 
"그럼 히키가야, 유이가하마. 이야기는 들었지?"
 
그리고 사가미의 처형방법을 정하는 회의가 시작된다. 덧붙여 유키노는 더 이상 없을 만큼 미소짓고 있다. 어지간히도 부활동을 쉬지 않게 된것이 기쁜거겠지. 사가미에게는 불쌍하지만 유키노가 웃는얼굴로 있을 수 있다면 필요한 희생이라고 하자.
 
"에, 아, 응"
 
"나랑 유키노가 부위원장의 입장이 되는게 수습이 좋겠지. 그러면 유이도……"
 
"그렇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유키노와 함께 유이를 본다.
 
"에, 왜 그래? 내, 내가 왜?"
 
우리들이 보내는 시선의 의도를 읽지 못했는지 유이가 쭈뼛거린다. 간단한 답일텐데, 왜 나오지 않는걸까아, 넌.
 
"나와 사가미가 문화제 실행위원에 매달리게 되면, 반과 연락이 소원해질거야. 하지만 그건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사태다"
 
"그러니까, 유이가하마는 그들과 반의 다리역을 부탁할 수 있을까? 당연히 봉사부의 활동 일환으로서"
 
우리들의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는지 잠시 벙찐 표정을 짓는 유이. 하지만 서서히 소화하기 시작했는지 그 얼굴이 조금씩 미소로 변한다.
 
"응! 맡겨주시라-!" 

:
BLOG main image
네이버 블로그(http://blog.naver.com/fpvmsk) by 모래마녀

공지사항

카테고리

모래마녀의 번역관 (1998)
내청춘 (1613)
어떤 과학의 금서목록 (365)
추천 종합본 (20)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태그목록

글 보관함

달력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
Today : Yesterday :
01-10 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