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19
 
 
 
 
①히키가야 하치만은 혼자, 비에 젖는다.
 
 
 
 
 
 
 
눈 앞에 묘령의 여성이 서 있다. 『나』는 그 여인을 그저 올려다보고 있다.
 
 
 
『―――네가――라도――――그――는――갈――수 있어――――』
 
 
여성이 나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의미를 몰랐다.
 
 
『―――너는――그 아이에게는―――필요――없어――――』
 
 
여인이 거듭 말했다. 거기서 나는 깨닫는다. 깨닫고 말았다.
 
나 자신이 그녀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것을.
 
그렇게나, 확인했었는데.
 
단 한 명의 친구조차 믿을 수 없는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이런 나 자신따윈, 어떻게든 되버리면 좋을텐데.
 
 
 
 
 
 
 
 

"윽!"
 
뛰쳐일어나듯 일어났다. 전신에서 땀이 분출한다. 이마에서 흘러떨어지는 땀방울을 손으로 닦는다.
 
 
"………………생각났다"
 
 
……………왜, 지금까지 떠올리지 못했던건지도, 전부.
 
 
 
 
 
오늘부터 또 학교가 시작된다.
 
임간학교가 끝나고 여름방학은 느긋하게 흘러갔지만. 쫄래쫄래 사소한 사건이 생긴 것이다.
 
……유이가하마하고 불꽃놀이 대회를 보러 갔다거나. 그랬더니 하루짱이랑 마주쳐서 큰일이 일어났다거나. 아, 생각해보니 위가 아파졌다……가스터10, 사용상 주의를 잘 읽고 용법용량을 지켜서 올바르게 복용해야지. 그 CM 엄청 인상적이지.
 
뭐, 됐다. 그런고로 오랜만에 자전거로 달리는 통학길은 여름방학전과 다를바 없이 복잡하고, 학교가 가까워질때마다 떠들썩한 소음이 늘어간다. 여름방학 개학에서 쌓인 이야기가 있는건지, 모두 다 느릿한 발걸음이었다.
 
나는 역시 1년 이상이나 이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아는 얼굴도 하나 둘은 아니다. 하지만 그쪽에서 나를 알고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뭐야 그 짝사랑같은 느낌. 여기부터는 일방통행이다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자전거를 밟고 있으니 카와사키를 발견한다. 카와사키는 여름방학에 뭘 하고 있었을가. 검은 레이스 말고 바리에이션이 늘었을까. 붉은 레이스였으면 하치만 어떻게 되버릴거다.
 
카와사키에게 어울리는 팬티를 진지하게 고찰하면서 복도를 걷는다. 고등학교 생활의 반을 낭비해서 마침내 익숙해진 광경.
 
하지만 조만간 이런 광경도 잊고말 것이다. 그런 그을린 시야 속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모습을 발견했다
 
유리창이 달린 계단에 태양빛이 비쳐드는 열기가 오르는 가운데 늠름한 분위기를 뿜는 여자애.
 
――유키짱이었다.
 
계단을 오르고 있으니 내 기척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돌아본다.
 
"……오랜만"
 
"어"
 
내가 쫓아갈때까지 유키짱이 조금 멈춰서서 기다린다.
 
둘이서 나란히 계단을 오른다. 옆을 돌아보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언니랑 만난 모양이네. …………………………………………유이가하마랑 데이트 하고 있을때"
 
엄청난 미소로 질문을 받았지만 전혀 밝은 분위기가 아니다. 식은땀이 흐른다.
 
"아아, 우연히 말야"
 
"……유이가하마하고도?"
 
"……………………아아, 우연히 말야"
 
삐친듯한 말투의 질문에 나는 반복 대답을 한다. 그치만 정말로 우연히 만난거였는걸!
 
정신을 차리니 계단은 끝나고, 2학년 교실로 이어지는 복도로 나왔다.
 
"……그런걸로 해줄게"
 
아직 삐친 얼굴로 유키짱이 말한다. 아니, 정말로 우연히 알알이하게 만났니까? 오히려 리프 돌을 써서 낫시로 진화시키기 까지 한다.
 
"부활동, 오늘부터 시작할거야?"
 
내 질문에 마지못한 느낌으로 유키짱이 대답한다.
 
"그, 그래. 그럴 생각인데……"
 
"알았어, 나중에 봐, 유키짱"
 
――나는 이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던걸까.
 
유키짱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던게 인상적이었다.
 
 
 
 × × ×
 
 
방과후, 부활동 시간이 됐다. 평소 멤버랑 대화를 하고 있던 유이가하마를 두고 교실을 나오자, 달리는듯한 발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좀! 왜 먼저 가는거야!"
 
머리 나빠보이는 목소리와 함꼐 유이가하마가 내 옆에 선다.
 
"그치만 너, 그 녀석들이랑 대화하고 있었잖아. 기다릴까보냐"
 
내 말에 유이가하마가 윽,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하지만"
 
유이가하마가 조금 슬프다는듯 입을 연다. 나는 한숨을 쉬고 조금 빨리 걸으면서 말한다.
 
"뭐, 내키면 기다려주마"
 
"자, 잘났다는듯 말하지 말기!"
 
뿡뿡 화내면서 유이가하마가 나를 따라간다. 그나저나 그 머리 나빠보이는 어미는 어떻게 안 되는거냐. 말기니 없기니 기를 붙이고 있는데 말야.
 
부실에 도착해서 문을 여니, 거기에는 이미 유키짱이 독서를 시작하고 있었다.
 
"여어"
 
"얏하로-!"
 
유키짱은 우리에게 눈을 돌리고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래, 안녕"
 
우리는 평소 앉던 자리에 가서 평소대로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그러자 시야 구석에 흔들리는것을 깨닫는다.
 
쳐다보니 커튼이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약간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들어오는 모양이다.
 
책을 꺼내어 독서를 하고 있으니, 역시 흔들거리는 커튼이 시야에 들어온다. 별로 신경쓰지 않아서 독서로 돌아갔다.
 
차분한 시간이 흘러간다. 문득 유키짱을 쳐다보니, 커튼 따위를 신경쓰지도 않고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창을 등지고 있어서 신경 안 쓰인걸지도 모른다.
 
어지간히도 쳐다보고 있었는지, 유키짱이 거북하다는듯 안절부절거리기 시작한다.
 
"……뭐니?"
 
"아, 아니. 딱히……"
 
라고는 해도, 오늘 아침에 꾼 꿈탓에 이상하게도 유키짱을 신경쓰고 마는건 사실이었다.
 
"………………"
 
……어떤 표정을 짓고 나는 이 애를 만나고 있는걸까. 어두컴컴한 감정이 마음을 물들이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갑자기 유키짱이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내려다보면서 유키짱이 기분나쁘다는 얼굴로 입을 연다.
 
"――그 눈동자 뭐니. 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거 아니야?"
 
"……딱히, 그런건"
 
"히키가야!"
 
고개를 돌리면서 대답하니,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키짱에게 양 볼을 잡혔다.
 
"정말로 왜 그래? ……전에 말했던거 벌써 잊었어?"
 
유키짱이 슬프게 말을 잇는다. 나는 임간학교때 들은 말을 떠올렸다.
 
 
『너는 늘 우리를 지켜줘. 우리도, 하치군의 힘이 되고 싶단다?』
 
『그러니까. 정말로 힘들때. 혼자선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을때. 우리를 의지해줬으면 좋겠어. 부탁이야, 하치군……』
 
 
하지만, 이건……얘기할 수 없잖아. 유키짱을 믿을 수 없었다, 라고. 본인에게 말을 할 수 있을리 없잖아.
 
나는 유키짱의 손을 쥐고 대답한다.
 
"……괜찮아. 미안해, 걱정 끼쳐서"
 
"…………………………하치군"
 
또 유키짱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걸까. 나 자신은 모른다.
 
부실 안이 조용해졌다. 어느샌가 유리창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고보니 뉴스에서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던가.
 
유이가하마를 보니 시선을 밖으로 주면서 대화의 물꼬리를 찾고 있는 모양이다.
 
"태, 태풍 다가오고 있다고 하구. 본격적으로 위험해지겠네. 케이요센 멈추면 유키농 못 돌아가지?"
 
유이가하마의 질문에 허를 찔린 유키짱은 무언가를 뿌리치듯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유이가하마를 돌아봤다.
 
"읏! 그, 그렇구나……하지만 괜찮아. 그 때는 걸어서 돌아갈테니까"
 
"그, 그런가. 못 걸을 거리는 아닌걸"
 
학교에서 유키짱이 사는 가장 가까운 역까지는 두 역. 못 걸을 거리가 아닌건 확실하다.
 
유이가하마가 나한테 말을 걸려고 했을 때, 갑자기 부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너네 아직 있었느냐"
 
또 노크도 하지 않고 고문인 히라츠카 선생님이 들어왔다.
 
"벌써 다른 부활동도 마쳤다. 심해지기 전에 돌아가거라"
 
그 말을 시작으로 유키짱이 자리로 돌아가 준비를 시작한다.
 
"――오늘은 이만 끝내자"
 
비구름도 다가오는 탓에 부실 안은 어둡다. 유키짱의 표정에도 그림자가 드리운것 처럼 보였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순간 유키짱을 봤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갔다. 우리도 돌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준비를 마치고 다 같이 부실을 나왔지만, 앞에 있던 유키짱이 뒤돌아서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열쇠를 반납하고 갈게"
 
인기척이 없는 복도를 그저 조용히 걸어간다. 나와 유이가하마는 배웅하지 않고 승강구로 향해갔다.
 
가던 도중에 유이가하마가 나에게 물어온다.
 
"힛키, 무슨 일 있었어?"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준비한건 아니다.
 
"……나는 자전거니까 먼저 갈게"
 
"아, 힛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유이가하마를 두고 그 자리를 떠난다. 유이가하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바람이 습기를 머금어서 기분 나쁘다. 걷히면 좋을텐데, 라고 나는 생각했다.
 
 
 × × ×
 
 
"다녀왔어-……"
 
"어서와, 오빠……앗, 흠뻑 젖었잖아!"
 
집의 현관문을 열고 맞이해준건 동생 코마치였다. 하지만 코마치는 내 상태에 놀라면서 일단 거실로 들어가 나에게 수건을 던져줬다.
 
"자, 얼른 닦아!"
 
"……땡큐"
 
그렇게 말하고 나는 머리를 닦기 시작한다. 라고는해도 이미 물에 빠진 생쥐꼴인 나는 수건도 별로 의미가 없다.
 
자전거로 귀가한 나였지만, 중간부터 비가 내리고, 게다가 강풍으로 꺼냈던 우산도 순살, 이라는 상태가 되어서 아무튼 급하게 돌아왔다.
 
초가을에 접어든 탓도 있어서 아무튼 추웠다.
 
"목욕을 받아뒀어?"
 
"응, 먼저 들어가"
 
내 물음에 빠르게 대답한 코마치의 얼굴을 쓰다듬고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정성껏 발을 닦고나서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
 
옷을 난잡하게 벗고 욕실로 들어가서 뜨거운 샤워물을 전신에 끼얹는다. 차가운 몸이 서서히 열을 띤다.
 
부실에서 본 유키짱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또 슬프게 만들었나.
 
그럼 어떻게 하면 좋았던걸까.
 
 
 
"………………교복, 말릴까"
 
내 중얼거림은 샤워소리로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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