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20
②시로메구리 메구리는 믿을 수 없는 제안을 한다.
태풍의 영향으로 학교 쉰다고 생각했더니,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어젯밤에 지나가버렸어, 그 녀석. 그래선 자이모쿠자가 태풍 속에서 빛날 수 없잖아.
아침에는 평소대로라고 할까. 태풍이 비구름을 몰고간 탓에 굴므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됐다. 저 바다- 어디까지라도-, 안 돼 안 돼. 아침부터 소리내어 울어버린다.
어제 일을 질질 끌던 탓에 크게 잠들지도 못해서 대신에, 라며 독서에 빠져서 그만 밤샘을 해버렸다. 있는대로 수면 부족이다. 이상야릇 ED냐.
하품을 하면서 황급히 집을 나온것도 있어선지, 어떻게든 학교에 늦지는 않았지만 수마가 끊임없이 나를 덮쳤다. 평소 쉬는 시간에는 자기 자리에서 엎드려 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졸렸다.
수업중에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수마와 싸우고 있던 것이다. 수마 따위에겐 절대로 지지 않아! 이렇게 말하면 멋있게 들리지만, 베스트한 포지션을 모색하는 부분에서 완전패배라고 해도 좋았다. 역시 수마에는 이길 수 없었어…….
라고는 해도 이런 얕은 수면으로는 졸음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몸의 나른함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역시 누워서 자지 않으면 안 된다, 잔 느낌이 안 들어.
그렇게 되면 갈 곳은 정해져있다. 일어서서 휘청거리면서 교실 뒷문을 열고 나간다. 하지만 문을 연 순간 남과 부딪쳐버렸다.
"꺅!"
"읏, 미안"
가슴팍에 충격을 받고, 반사적으로 껴안았다. 이런이런, 수면부족으로 판단능력도 크게 감퇴한 모양이다. 지금이라면 수상쩍은 서류에 도장을 찍어버릴지도 모른다. 보따리 판매당한다거나. 그거 아버지야.
시선을 아래로 향해 부딪친 사람을 확인하니 나를 올려보고 있던건 카와사키였다.
"아, 히키가야……"
"미안, 멍때리고 있었어"
나는 카와사키를 풀어주고, 카와사키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따, 딱히 나도 잘 보지 않았니까 됐어. 라고할까, 벌써 다음 시간인데?"
"좀 갈데가 있어"
내 말에 카와사키가 수상쩍은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아, 그러고보니 이 녀석도 외톨이니까 행동패턴은 읽히는건가. 수업을 빼먹고 보건실에서 잔다, 라고 바로 생각이 들겠지.
"……다음 시간, 문화제 역할분담을 정하는 모양인데"
"그러고보니 그랬나"
전날 LHR에선 제재까지 밖에 정하지 못했던가. 부녀자- 인 에비나의 단독무대로 변했지만. 부녀자- 는 뭘 푸샥- 하는걸까. 에비나는 코피 푸샥- 했지. ……깊게 생각하는건 치우자.
"……뭐,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뭘 해도 변함 없을테니까.
"알았어"
카와사키는 내 한마디로 무슨 의도인지 눈치챈 모양이다. 과연 외톨이 동료. 요즘 나 외톨이를 자청하는게 수상쩍은데.
잘 부탁해, 라며 손을 흔들고 나는 교실을 나갔다.
× × ×
뭐……라고…….
쉬는시간 끝. 교실로 돌아오니, 문화제 실행위원이 되어 있었다. 칠판에는 '히키가야'라는 글자가. 어, 어째서…….
화, 확실히 나는 뭐든 좋다고 했다고? 딱히 뭘시키든 변함없이 담담히 작업을 해낼거라고?
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다고 밀어붙이다니이, 아무리 그래도 예상외였어. 그치만 나, 그런거 밀어붙이는 역할인 미우라조차 언급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고.
주위를 돌아보자 카와사키와 눈이 마주쳤다. 잘도 속였겠다아아아아!! 속였겠다아아아아아아!! 라는 뜻을 담아서 쳐다보니, 카와사키는 어색하다는듯 고개를 홱 돌리면서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카와사키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거기에는 낯이 익은 아라사가.
"설명이……필요하냐?"
내가 대답을 할것까지도 없이, 히라츠카 선생님이 멋대로 설명해줬다.
"벌써 다음 수업을 해야하는데, 아직 위원을 누가 할지 꾸물거리고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히키가야로 해뒀다"
"제 의사는 어디 갔습니까……"
내 말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아니, 확인할까 생각했거든? 뭐든지 좋다고 한건 너잖아?"
끄으윽, 하며 한숨을 쉬고 카와사키에게 시선을 주니 눈이 마주친 순간 피해버렸다. 뭐, 말한건 나니까 자업자득이지만! 젠장, 다음에 옥상에서 만났을때 치마 속을 쳐다봐주마! 절대로, 절대로다!!
"됐으니까 자리 앉아라. 수업을 시작 못하잖느냐"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이마를 맞으면서 나는 마지못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 ×
방과후, 나는 실행위원회에 참가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했다.
가던 도중에 아까전 교실에서 하고 있던 홈룸을 생각한다. 여자 실행위원만 정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결국 옥신각신 끝에 사가미 미나미라는 여학생이 실행위원을 하게 됐다.
나의 인간관측에 따르면 그녀는 교실 내의 카스트에서는 넘버2 그룹에 속하고 있다. 라고할가 리더인 모양이다. 나와 접점은 물론 전혀 없다. 그저 여름방학때 유이가하마과 불꽃놀이 대회에 갔을때, 우리는 그녀와 마주쳤다. 별로 좋은 인상은 없는데 말이야. 평가 당했고.
회의실에 들어가보니 아직 반 정도밖에 모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가미도 그 중에 있어서, 셋 정도 뭉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라고할까, 윳코도 위원이라서다행이야-. 나, 왠지 위원으로 뽑혀버려서 어떻게 할까 생각했어-"
"나도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걸렸어-"
"나도야-. 아, 사가미, 미나미라고 불러도 돼?"
"괜찮아 괜찮아-. 나는 뭐라고 부르면 돼?"
"하루카면 돼-"
……커뮤력 쩌는데. 순식간에 커뮤니티가 완성됐어.
뭐, 아무래도 좋나. 라고 생각해 자리에 앉으니 점점 사람이 늘어간다. 다들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문으로 시선을 주고, 아니라는걸 알고 일제히 시선을 돌린다. 그런 공방이 잠시 이어졌다.
하지만 다음으로 들어온 인간에 대해선 전혀 반응이 달랐다. 문을 연 순간, 소란스러운 잡담도 순간 멎었다.
정적 속에서 그 소녀――유키짱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걷는다. 그녀는 내 모습을 보고 순간 발을 멈췄지만, 바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가까운 공석에 앉는다.
……뭐어, 어제 오늘이니까. 나도 어색하던 차라 마침 잘 됐다. 시계를 보니 곧 개시시각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회의실 문이 또 열리고, 프린터물을 안은 연대감이 있는 몇 명의 학생들과 체육교사 아츠키 선생님, 히라츠카 선생님이 들어왔다.
음, 히라츠카 선생님……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은 나를 향해 생긋 미소를 지었다. 과연, 나는 함정에 빠진건가…….
"그럼 문화제 실행 위원회를 시작합니다-"
귀여운 목소리가 울린다. 쳐다보니 앞머리를 머리핀으로 고정하고, 교칙대로 차려입고 있지만, 딱딱한 인상을 주지 않는 여학생이었다. 뭐라고 할가, 흔들폭신계열이라는 느낌인가?
"학생회장인 시로메구리에요. 여러분의 협력으로 올해도 무사히 문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게 기쁩니다. ……그러니까. 다, 다같이 힘냅시다! 오-!"
메구리 선배가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 학생회 멤버가 바로 박수를 치고, 그에 잇따르듯 회의실 내에서 박수가 일어났다. 그걸 보고 메구리 선배가 응응 하며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실행위원장 선출을 해볼까요"
그 말에 주위가 웅성거렸다. 나도 조금 놀랬다. 순전히 학생회장이 실행위원장을 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년 문화제 실행위원장은 2학년이 하게 됐어. 나는 이제 3학년이니까"
과연. 듣고보니 3학년 가을초니까 이런걸 하고 있을 순 없지. 수험도 대비해야하니까.
"그럼 누구 입후보 할래요?"
그 말에 전혀 손이 오르지 않는다. 뭐, 무리도 아니지만.
그 후에 잠시 거수가 없는 상태가 이어져서,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츠키가 입을 열었다.
"뭐냐 너희. 좀더 의욕을 내라. 패기가 부족하잖아, 패기가. 알겠느냐, 문화제는 너희들 자신의 이벤트다"
쓸데없이 답답한 소리를 하면서 아츠키가 주위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 배려하나 없는 시선이 유키짱에서 멈췄다.
"오. 너 유키노시타의 동생인가. 그 때처럼 문화제를 기대할 수 있겠네"
의외로 위원장을 추장하는것처럼 들리는 말에, 메구리 선배도 『아, 하루 선배의 동생이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짱이라아. 역시 교사나 선배들에게 선명한 인상을 준것 같다. 역시 강화외골격, 이쪽에도 응격 준비 있음인가.
"……실행위원으로서 선처하겠습니다"
유키짱도 의례적인 대답을 하지만, 살짝 눈썹이 움직이는 점을 보건데 기분나쁘다는건 보였다. 그 반응에 아츠키도 적당하게 대답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메구리 선배도 여기서 곤란해져버렸지만, 역시 유키짱이 해줬으면 싶은 모양이다. 빤히, 그 더러움이 없는 눈동자를 유키짱에게 향하고 있다.
유키짱은 거북한지 몸을 뒤척이고 이다. 아니, 그 귀여운 눈동자로 쳐다보면 힘들겠지. 나였으면 2초만에 함락될 자신이――.
"읏!"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유키짱이 째릿 노려봤다. 아니, 그러니까 왜 아는거야?
"너는……?"
유키짱의 시선을 깨달았는지 메구리 선배가 나에게 묻는다. 하는 수 없이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2학년 F반, 히키가야 하치만입니다"
"하치, 만…………………앗, 이 애는 하루 선배의……"
뭐야, 메구리 선배의 안에서 무언가가 이어진것 같은데? 왠지 엄청 불길한 흐름을 느낀다.
메구리 선배가 손을 탁 치면서 미소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히키가야. 안 될까나아……?"
"――――윽!"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귀엽게 묻는 모습에, 나는 거절할 방법을 몰랐다――――――.
× × ×
"지, 지쳤다……"
나는 부실에서 지쳐서 책상에 엎어졌다. 싫다-, 진짜 무리. 죽을것 같아.
"…………"
나의 중얼거림에 유키짱은 빤히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진짜 가땅치 않은 이야기지만. 나는 실행위원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개를 돌리며 어깨를 떨면서 웃는 히라츠카 선생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유키짱조차 아연해하고 있었다.
정해진건 백보양보해서 좋다고 치자. 하지만, 원래 별로 남들 앞에서 서지 않는 나라서, 회의 진행을 바톤 터치 됐을때는 죽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진짜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는 대충 떠오르지만, 말이 나오지 않아, 보다 못한 메구리 선배가 구명줄을 보내줄때까지 지장처럼 되어 있었다. 후반은 겨우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게 됐지만, 미래가 걱정된다.
"그치만, 힛키가 실행위원장이라니, 아무도 예상 못했을거야. 우리반 애들도 다들 놀랄거야"
유이가하마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그런건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어.
문제는 산더미다. 유키짱도 있고……일단, 사무적으로 대하면 괜찮을거라고 생각하지만.
"할 수 있는건 해봐야지"
"……그러니"
내 말에 유키짱이 짧게 대답한다.
그 광경을 유이가하마가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청춘 >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 적이 있다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 적이 있다면 (0) | 2014.12.31 |
---|---|
23.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 (0) | 2014.12.31 |
21.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 (0) | 2014.12.31 |
20.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 (0) | 2014.12.31 |
19.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 (0) | 2014.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