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청춘SS『어쨌든 히키가야 하치만은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남친(가짜)에 적합한가』- 10
=== 그리고 히키가야 하치만은 평소 나태한 생활로 돌아온다 ===
다음날 방과후, 나는 평소처럼 특별동에 있는 봉사부 부실로 향했다.
부실 문을 여니, 거기에는 평소처럼 유키노시타가 의자에 앉아, 마치 한 폭의 그림책처럼 책을 읽고 있는 낯익은 광경이었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드는 바람으로, 하얀 레이스 커튼이 미약하게 흔들려 조용히 물결친다.
낯익은 광경이어도 질릴일은 없다. 그리고 그만 넋이 나가버리는것도 또한 평소 일이다.
유키노"뭘 얼빵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거니. …뭐, 네 경우엔 얼굴이 얼빵한건 늘 그렇지만"
내 모습을 눈치챈 유키노시타가 평소처럼 인사한다. 그거 인사냐. 익숙해진건 이 광경만이 아닌 것 같다. 괜찮은거냐, 익숙해져서.
하치만"…냅둬"
나는 어제 일을 떠올리고 약간 어색한 대답을 하고, 평소 정위치에 자리를 차지한다. 유키노시타의 반대측. 가장 떨어진 곳.
유키노시타는 그런 나를 흘낏 보기만 하고, 또 바로 문고본에 눈을 돌리면서,
유키노"…어제는 수고했어"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하치만"아아. 결국 너까지 말려들게 해버려서 미안하다"
유키노"그렇구나. 하지만 그건 어느쪽이냐고 하면, 우리 집 문제에 너를 말려들게 해버렸다…라는 편이 정답일거야"
하치만"아니, 그것도 그렇지만, 그, 뭐냐…"역시 직접적인 표현은 부끄러워서 말을 흐린다. 눈치채라, 그 정도는.
유키노"뭐니? 평소 이상으로 수상쩍어서 솔직히 굉장히 기분 나쁜데? 혹시 눈 뿐만 아니라 머리도 썩기 시작했니?"
하치만"아-…, 뭐 네 경우엔 귀국자녀니까 그 뭐라고 할까, 인사 대신 같은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그 말을 듣고 유키노시타도 내가 말하려던걸 겨우 눈치챈 모양이다. 점점 볼이 붉어지는게 보였다.
유키노"그, 그건…그, 그 자리의 기세라고 할까…"///
하치만"하지만, 역시 그만큼이나 박진감 넘치는 연기를 보여주면 누구든 납득해버리겠지"
유키노"어?"
하치만"너, 진짜로 여배우 목표로 하는게 어때? 오스카 상같은거 노릴만하지 않냐?"
실사판으로 스노우 화이트를 찍으면 절대로 주역이다. 백설공주가 아니라 설녀 쪽이려나?
유키노"연기…라"
하치만"어? 아니냐?"
유키노"…아니. 그거라면 그걸로도 상관없어"어째선지 기막힌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하치만"뭐, 연기니까 서로 이번 일은 노카운트로…"
유키노"노 카운트?"
하치만"그래, 노카운트"맑은 날은 반짝. 데이트는 각자부담. 나는 그런 세세한 짓은 못하지만. 할 상대가 없고.
유키노"…그렇구나. 그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구나. 지금은 아직…"
누구에게 말할것도 없이 살며시 중얼거린다.
유키노"하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는데?"
하치만"엑?"///
유키노"그치만, 타액에는 멸균작용이 있잖니? 그럼 안심이지, 히키가야 균?"
하치만"그러니까 누가 히키가야 균이야"
유키노"어머, 그러고보니 확실히 히키가야 균에는 배리어가 통하지 않았지?"
하치만"그러니까 나의 트라우마를 후벼파지 마라고!"천천히 스며들잖아, 그거.
유키노"그럼 뜨거운물로 증기소독이 필요하겠구나, 너 통채로"
하치만"이시카와 고에몬이냐"
평소의 봉사부, 평소의 유키노시타라서 나는 안심했다. 아니, 매도발언을 듣고 안심해버리다니, 정말로 나 괜찮은거냐.
하치만"있잖냐, 유키노시타"
유키노"…"
유키노시타가 무슨 말을 하고 싶다는 얼굴로 말없이 내게 시선을 돌린다.
하치만"응? 왜 그래?"
유키노"…버, 벌써 이름으로 부르는건 그만둔거니? 나, 나로서는 딱히 아무래도 좋지만…"
하치만"아? 그치만 오늘은 네 언니도 없잖아. 그럼 딱히 평소대로 유키노시타로 부르면 되잖냐?"
유키노"그건 그렇긴 하지만…"
어째선지 불만스러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유키노"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니?"
왜 무서운 얼굴을 하는거야?
하치만"너, 유이가하마하고는 친구지?"
유키노"…그래. 맞아. 그게 왜 그러니?"
하치만"그럼 말야, 내가 유이가하마랑 친구가 되면 필연적으로 나는 너의 친구라는게 되는거지?"
유키노"…왜 그렇게 되는거니? 네가 말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데?"이상하다는 얼굴을 내게 향한다.
하치만"아? 그치만 친구의 친구는 친구잖아?"이거야말로 친구작전.
유키노"…친구의 친구는 새빨간 타인이야"
두통이라도 느낀듯 관자놀이에 손을 대면서 똑부러지게 단언한다.
유키노"이전에도 말했을거라 생각하지만, 너하고 친구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어"
하치만"…그렇겠지"
나는 쉽사리 백기를 든다. 확실히 그 말대로일 것이다.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결코 거짓말은 하지 않으니까. 연기는 할지도 모르겠지만.
다소나마 기대했던 내가 물렀다. 마치 MAX커피처럼 달콤했다. 게다가 연유증랑으로. 이거 더는 음료라고 할 수 없잖아. 액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수상쩍다.
유키노"…그렇구나…하지만"
하치만"응?"
평소엔 거기서 대화가 끝날테지만, 오늘은 왠일로 유키노시타가 말을 이었다.
유키노"…하지만 만약, 만약이야? …친구 이외의 선택지가 있다고 한다면…"우물쭈물
비칠듯한 흰 볼이 붉게 보이는건, 스며드는 석양 빛일까.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에 그려진 미소녀에게, 갑자기 피가 통한것 처럼 위화감을 느낀다.
방금전까지 낯익었을 광경이 갑자기 형태를 바꾸었다.
무의식중에 지금까지 그녀가 내게 대하는 이해할 수 없는 언동이 서로 링크하여, 각각의 단편이 퍼즐 조각처럼 한 장의 그림을 형성한다.
―― 그리고 그 때, 나는 갑자기. 그래, 말 그대로 갑작스럽게 유키노시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를 깨닫고 말았다.
심장이 경종처럼 흉곽을 난타하고 호흡이 흐트러진다.
긴장해서 제대로 생각을 할 수 없다. 오늘 저녁은 뭘로 할까…아니, 새삼 현실도피해서 어쩌자고.
그렇다, 이런건 그거다!
…어라, 뭐였더라.
아니, 뭘 동요하는거야. 일단 억지로 말을 잇는다.
하치만"자, 잠깐만. 그, 그건 요컨대…혹시…?"
유키노"…"///유키노시타가 말없이 형태 좋은 턱을 모은다.
하치만"…진심…인거냐? 평소처럼 놀리는게 아니라?"
유키노"…그렇구나, 그, 그렇게…되는걸…까"유키노시타가 체념한듯이 중얼거린다.
그 유키노시타 답지 않은, 미약한 음색에 나의 추리가 확신으로 변한다.
유키노"그, 그러니까, 요, 요컨대, 만약에, 네, 네가…바란다면…하는 이야기지만…"우물쭈물
그녀가 전부 채 말하기 전에 내가 그 말을 먼저 이었다.
그건 당연히 나의 남자로서 의무이니까 ――
하치만"……………설마 진짜로 네 애완견이 되라고 하는거냐?"
유키노"그래…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애, 애완견으로…………………… 어?"
하치만"어…?"
유키노"…어?"
…아니야?
핫? 혹시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애완고양이가 되라던가? 그러고보니 팬더는 확실히 한자로 쓰면 큰곰고양이였지. 그렇게까지 하면 역시 고양이를 좋아하는거냐?
하지만 예전부터 무시무시한 여자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라니.
어디까지나 대등한게 아닌 주종관계를 원할줄이야. 이 녀석 조만간 『아름다운 내게 부복하렴』라고하지 않을까. 어디의 왕하 칠무해냐.
내가 벙쪄있자, 어째선지 유키노시타는 살짝 울상을 지으며, 어깨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유키노"………이, 이 남자는…"
―― 이하 자주규제 ――
아야야야야야, 심하게 얻어터졌다. 유키노시타 녀석, 히스테릭이냐.
손에 닿는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다니. 가위같은건 진짜 위험하잖아. 커터도 던지기 전에 일부러 날을 빼내다니.
하마터면 고슴도치가 될뻔했다. 히키가야인 만큼 찢어진 고기, 외톨고기가 아니라 다진고기.
나는 몸을 지키기 위해, 부실에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지만, 역시 유키노시타도 지금은 복도까지는 쫓아올 모습은 없다.
만일을 위해 부실 문에 부적이라도 붙여두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황혼 뭐시기 사람이냐.
가방을 방패로 삼아 부실에서 뛰쳐나오니, 뒤늦게 부활동하러 온 유이가하마와 만났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 쉬는시간동안 줄곧 나를 보고 조마거렸던가?
나는 평소처럼 책상에 엎어져 있었으니까 사양해봤지만.
요즘 교실의 바람도 강하구나. 슬슬 태풍 시즌인가. 내 주위만.
유이"어라? 힛키, 부활동 안해?"
하치만"…내가 묻고 싶을 정도다"
유이"아, 그런데 어제는 어땠어?"
하치만"딱히…무사히 역할을 마쳤다"
유이"흐-응, 그렇구나?"
딱봐도 안도한 표정이 된다.
유이"아, 아무 일도 없었어?"
하치만"뭐, 특별히 내세울건"무심코 눈이 요동친다.
유이"…정말로?"그러니까 나를 의심하는 눈으로 보지마. 뭐, 내가 수상쩍은건 언제나 그러니까, 어떻게든 얼버무릴 수 있지만.
하치만"말했잖아?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아"
이렇게 거짓말에 거짓말을 겹쳐서, 나는 조만간 정말로 피치못할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지옥에 떨어지면 염라대왕한테 혀를 뽑힐지도 모른다. 두 개나 있으니까 괜찮지만.
거기다 하루노 씨는 아니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것과, 거짓말을 하는건 다르다. 웅변이 은이라고 한다면, 침묵은 금이다. 내 경우, 침묵 올림픽이 있다면 틀림없이 금메달이다. 대화할 상대가 없으니까.
유이"아, 그러고보니 내 생일 선물때 있던 일, 묻는거 깜빡했는데?"생긋생긋 미소를 짓는데 어째선지 귀기어린게 느껴진다.
하치만"어? 아? 잠깐,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상황이…"
등 뒤에서 문이 드르륵 열린다. 마 왕 강 림 .
유키노"…그렇구나. 그러고보니 나도 아직 못 들었구나. 불꽃놀이 데이트"
하치만"아니, 잠깐, 너희들. 얘기하면 알…거다…"
바야흐로 앞에는 호랑이, 뒤에는 늑대.도망치면 안 된다, 도망치면 안 된다…아니, 도망칠곳이 없잖아, 이거.
"이야아-, 히키가야, 어제는 수고했어-"
유키노"어, 언니?"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평소처럼 완벽한 미소를 지은 언니농의 모습.
하루노"아니-, 실은 말야-, 이번에 벤처 기업의 젊은 사장한테 프로포즈를 받아서-"
하치만&유키노"하아?!"
하루노"그래서 또, 히키가야한테 남친역을 부탁할 수 없을까나- 해서"
하치만"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유키노"어, 언니, 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하루노"괜찮아, 괜찮아~, 거봐, 여차하면 또 쪼옥해서…"
유이"엣?"아니 그러니까, 여길 보지마.
하루노"아・니・면…"
하루노 씨가 스스슥 내게 다가온다.
하루노"…누나랑 좀 더 좋은거 할래?"터무니 없는 소리를 내 귓가에서 속삭였다.
유이"힛키-!"
유키노"언니!"
하치만"뭔데?"
하루노"뭐니?"
유키노&유이"너무 가까워!!"
내가 눈을 요동치면서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복도 너머에서 우당탕탕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뭐야?
"우와앙, 하치에몽-. 들어줘~. 진로지도 선생님이 너무해~"
이미 이번 일로 실컷 보다 질린 얼굴, 자이모쿠자가 울면서 달려왔다. 아니, 너. 나를 너무 좋아하잖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몰려버린 나는 궁지여책으로 열어뒀던 창문으로 급히 뛰어내린다.
하루노"어머, 히키가야?! 아직 이야기는 안 끝났는데?"
유이"힛키? 아직 얘기 도중인데?"
자이모쿠자"하치만?! 본관의 상담을 들어다오!"
유키노"히키가야, 너, 정말로 나한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니?"아니, 무섭다고 진짜로.
…하지만 내 대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하치만"음, 뭐…그…다들 정리해서 조만간에 적당하게"
고인 말하길, 군자가 위험한곳에 접근하지 않으면 삼십육계 줄행랑과 같다라고 하잖아?
일단, 당면한 위기는 회피해다. 문제를 뒤로 물렸을 뿐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남은건 시간이 해결해줄…것이다. 아마 그래줬으면 싶다고 절실히 바란다.
내 이름을 부르는 네 명의 목소리를 뒤로, 주륜장을 향해 뛰어간다. 더는 멈출 수 없다. 멈추면 아마 죽는다. 아니, 나는 참치같은거냐?
내 청춘 러브 코메디, 이걸로 아마 틀리지 않는…거겠지?
내청춘SS『어쨌든 히키가야 하치만은 유키노시타 하루노의 남친(가짜)에 적합한가』 끝
이상입니다. ノシ
오랜시간에 거쳐 함께 어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읽기 어려운데다 오자탈자가 많아서 죄송합니다. 뇌내수정 잘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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