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돌봐준다. - if -1-
 
 
 
 
섣달을 맞이하려고 하는 11월 하순.
 
방의 문양 교체도 겸한 청소 도중에 그건 찾아냈다.
 
 
소부 고등학교 졸업 앨범
 
 
히키오다, 졸업 앨범은 한번도 보지 않고 친가 창고에라도 봉인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유산은 현대의 자산.
 
좋아, 조금 봐주자.
 
그렇게 생각해서 나는 졸업 앨범을 휙휙 넘겼다.
 
지인을 찾아내고 조금 페이지를 넘기는 손을 멈춰, 몇 분도 지나지 않은 사이에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버렸다.
 
롤링 페이퍼인건지, 마지막 페이지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 한 장.
 
나의 졸업 앨범에는 친구들에게 롤링페이퍼로 한가득 검은색으로 칠해졌지만 히키오의 졸업 앨범은 다르다.
 
 
몇 명의 인물이 썼을 롤링 페이퍼.
 
 
그건 너무나도 적은 그의 고등학교 생활을 상징하는 듯했다.
 
 
 
'힛키 고마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진지하게 대답해줘서 고마워! 정말로 좋아해!!'
 
 
'고심참담. 너에게 딱 맞는 말을 보낼게. 앞으로도 잘 부탁해'
 
유이와 유키노시타가 쓴 것일까…….
흠, 읽어선 안 될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하치만과 친구가 되어서 정말로 기뻤어! 앞으로도 잔뜩 놀자!'
 
'결국, 내 마음은 닿지 않았네. 히키타니, 실은……, 하야x하치가 아니라 하치x하야가 지고라고 생각해!'
 
 
토츠카랑……, 히나!?
……왠지 히나랑 히키오는 이상한 조합이네…….
 
 
'축하합니다. 선배가 생각해준 인삿말, 꽤 호평이었어요. 내년에 또 만나요. 꼭 붙어보일ㅇ게요!'
 
 
……호오.
그 바보 후배, 이때부터 노리고 있었나….
 
 
'대학생이란 어른이 되는 첫 걸음입니다. 당신처럼 달관한 소년이 바뀌기에는 좋은 터닝 포인트가 되겠지요. 노세요, 즐기세요, 당신이 생각하는대로 보내세요. 봉사부에서의 활동은ㅇ 당신의 재산입니다. 고난곤란에 직면했을때 반드시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당신은 생각할겁니다. 봉사부에 입부시켜줘서 고맙습니다. 라고. 아니, 딱히 답례를 바라는건 아니지만, 그저 대학생이란건 미팅도 가는 모양이죠? 합창 콩쿠르가 아니라구요? 합동 혼인활동 하티라구요? 아, 딱히 저를 불러달라는게 아니라, 당신의 성장을 보고 싶어서 저도 참가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의외로 빽뺵하게 채워진 백지 페이지를 쳐다보면서, 나는 오른쪽 아래 구석에 한 줄 쓰여진 말을 찾아낸다.
 
 
'히키가야, 나도 지지 않을거야'
 
 
 
누구의 말일까.
 
라며 조금 고민하는 척을 해본다
 
필적으로 눈치채버리는게 가슴 아프다, 이 글자는 틀림없이…….
 
 
"어이, 청소하는거 아니었어?"
 
"후우왓!? 뭐, 뭐야!?"
 
"아니아니, 그건 내 대사거든. 청소하라고 말한 네가 농땡이 치지마"
 
 
등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에 심장이 펄쩍 뛴다.
청소기를 들고 있는 히키오는 바닥에 앉아 졸업 앨범을 보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농땡이 아냐! 휴식!!"
 
"니트의 전매특허같은 소리 하지마. ……응? 졸업 앨범이야?"
 
"응. 그립네"
 
"이사 왔을때 코마치가 갖고 온건가. ……음, 그렇게 보지 말고 얼른 청소하자고"
 
 
히키오는 조금 억지로 이야기를 바꿨다.
졸업 앨범을 보고 싶지 않은건지, 아니면 부끄러운건지.
 
 
"……나아가 모르는 네가 많네"
 
"그야 그렇지"
 
"있잖아, 만약 고등학교 무렵에 만났다면…"
 
"일단 만났거든? 나, 너랑 같은 반이었거든?"
 
"그거 말고. 고등학교 무렵부터 너를 제대로 봤다면 하는 얘기"
 
"아아, 그래. 놀래라. 없는걸로 인식받았다고 생각했다"
 
 
"……나아, 한번 더 고등학교 생활을 다시 해보고 싶네에"
 
 
 
 
 
 
 
 
――if――
 
 
 
 
 
【문화제】
 
 
"야! 히키오!!"
 
"……왜"
 
"늘어지지마! 모든 교실 다 돌아볼거니까!!"
 
"다녀와. 나, 부실에서 쉴란다"
 
"으. …호오호오. 당당하게 바람 피우겠다고 선언하다니, 남자 다 됐다?"
 
"잠깐. 바람? 무슨 소리야. 부실에는 바보랑 독설밖에 없잖아?"
 
 
기분 좋은 소음 속에서 나와 히키오는 다른 반의 상연물을 돌아보고 있었다.
 
나른하다는듯이 뒤를 따라오는 히키오를 질책하면서 나는 그의 손을 잡는다.
 
 
"그보다. 시선이 따가우니까 손 놔"
 
"안 돼. 너 도망칠거잖아"
 
"안 도망쳐. 그러니까 놔"
 
"안 돼! ……신경 너무 쓴다고. 나아의 남친이니까 가슴 쫙 펴"
 
"오다 선생님한테 부탁해둬라"
 
 
사귀기 시작한지 3개월.
 
교실에서 히키오는 교제 전과 변함이 없고, 쉬는 시간에는 자거나 어디에 가거나 해서, 내가 말을 걸어도 크게 어울려주지 않는다.
 
 
이전에 나와 함께 있는 모습을 사가미에게 보인적이 있다.
 
 
그때 사가미의 표정을 떠올릴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깔보는 눈을.
 
 
"……왠지 빡쳐. 한번 더 사가미년을 날리고 올게"
 
"그만해. 부탁이니까"
 
"그럼 제대로 손 잡아. ……그, 그리고 내일 유지 스테이지에는 반드시 보러 와"
 
"알았어. 몇 번이나 말 안해도 잘 알어"
 
 
살짝, 세게 손이 쥐여진다.
 
히키오의 얼굴은 기막힌다는 듯이, 그래도 다정하다.
 
복도에 울리는 소음 속에서도 똑바로 들리는 히키오의 목소리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하고, 누구에게도 건내주고 싶지 않은 소중한 보물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봐요-! 선배애-!!"
 
"켁"
 
"흐흥. 그 반응은 츤데레네요! 알아요!"
 
"시끄럽네. 너"
 
 
라며, 잠겨있던것도 잠시.
 
시끄러운 목소리가 귀를 친다.
 
짱나는 후배의 맞이에 내 기분은 급강하했다.
 
 
 
"얼레? 오늘도 미우라 선배에게 잡혀있는거에요?"
 
"아? 이 자식,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못하도록 손가락을 꺾어버린다"
 
"무셔!! 좀, 그 눈 진심이잖아요!!"
 
"잠깐잠깐. 여기서 소란피워도 민폐야. 딴데서 해줘"
 
"여기가 아니면 손가락 부러지는거에요!?"
 
 
시끄러운 후배다.
 
싫다, 증말 싫다.
 
동족혐오인건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녀석의 히키오를 대하는 방식은 내 역린을 칼로 그어올리는것처럼 화가 난다.
 
 
"하아, ……그래서? 무슨 용건인데?"
 
"얘기가 빨라서 다행이에요! 좀 곤란한 일이 있어서요…"
 
"곤란한 일?"
 
"잠깐, 히키오. 너 이 녀석에게 무르지 않아?"
 
"어? 그, 그런거 아니잖아"
 
"헤헹! 동생 캐릭터니까요!"
 
"코마치 말고는 인정 안해"
 
 
 
 
그런 대화를 잠시 방관하고 겨우 잇시키 이로하는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한다.
 
아무래도 문화제 끝나고 상담을 한다는걸로 히키오가 타협한 모양이다.
 
나는 소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뛰어가는 후배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드는 히키오의 옆구리를 친다.
 
 
"……"
 
"……뭡니까"
 
"전부 네가 사는거야"
 
"….…좋아, 알았다. MAX커피로 퉁치자"
 
"안쳐"
 
 
그 후에도 교내를 돌아다니니, 뭔가 히키오의 지인이랑 마주쳤다.
 
 
누나 화났다니.
 
루미루미 거리지말라니.
 
포인트 높다니.
 
 
 
……뭐야, 이 녀석의 교우관계가 치우친거.
게다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전부 여자라니….
 
 
그리고 또 만난건 여자.
 
조금 의외라는듯이 나와 히키오를 쳐다보며, 그래도 납득한것 처럼 히키오에게 말을 걸어왔다.
 
 
"간만. 기억해?"
 
"……, 뭐"
 
"후후. 고마워"
 
"왜 감사를 하는거야?"
 
"어? …음-, 어째설까"
 
"이유를 모르겠네"
 
"…변했네…. 다음에 동창회 할테니까 와"
 
"변함없어. 나는. …그러니까 동창회에도 안 가"
 
"그런가…. 그럼 또 봐"
 
"음"
 
 
동년배 여성은 조금 유감스럽다는듯이 그 자리에서 떠났다.
어투에서 헤아리건데 아무래도 중학교 동급생인 모양이다.
 
 
"저거 누구야?"
 
"좀, 바람 현장을 발각한 새댁같은 소리 하지마"
 
"흥. ……의외로 옛날 여친이었다거나?"
 
"그럴리가 없잖아"
 
"허둥대잖아"
 
"……. 중학생때 고백하고 차였어. 그것뿐"
 
"……아 그래. 그것뿐이라면 됐구"
 
 
고백하고 차였다.
 
왠지 모르게, 히키오에게도 그런 과거가 있었나 생각하니 놀라버렸다.
 
변함없다.
 
이 녀석은 변함없다고 스스로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의 이 녀석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분하지만 그 매력을 눈치챈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
 
 
"……하아. 나같은 녀석이랑 사귀는건 이후로도 너뿐이라고 생각해"
 
"후후. 그렇다면 앞으로도 함께 있는거네"
 
"……그런식으로 보냐. 좀 뀽하잖냐"
 
 
그런 잡담을 나누면서 나는 히키오의 손을 세게 잡는다.
 
 
탁함없는 진짜 마음.
 
 
나는 이 녀석을 너무 좋아해서.
 
 
주위의 여자가 전부 적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좋아한다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질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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