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희생을 동반해 - 환희의 소용돌이는 끝을 알린다 - last2 -
 
환희의 소용돌이는 끝을 알린다
 
 
――75층 보스전 4시간 전――
 
 
공간을 가르고 천정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쳐다보면서 그늘에 몸을 감추듯이 움츠리는 나는 어떤 기억을 일으킨다.
 
 
햇볕이 드는 부실에서 세 명이 각각 생각대로 행동을 하는 따뜻하고 그리운 시간.
 
소설에 눈을 떨구면서 어딘가 유이가하마의 바보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유키노시타의 시원한 얼굴이 바로 상상할 수 있을법한 매도작렬.
 
 
사랑스럽고도 멀어져가는 기억에 답지도 않가 감성적이게 되는 나는 자신의 손바닥을 굳게 움켜쥔다.
 
 
"다 됐어-. 죄다 신품이나 마찬가지로 정비했으니까 감사해"
 
 
리즈의 활발한 목소리로군, 의식을 놓고 멍하니 있던 머리가 클리어 되었다.
 
리즈벳 무구점에 울려퍼지는 목소리에 돌아보지 않고 나는 그대로 창밖을 쳐다본다.
 
 
"……바가지 씌워놓고 감사를 바라지마"
 
"어머, 실례네. 좀 많이 받은것 뿐이잖아"
 
"3배 가까운 가격이거든"
 
 
상인근성이 왕성한 점주에게 기막혀하면서 나는 리즈에게 받은 두 자루의 애검을 스트레이지에 넣었다.
 
 
"……확인 안 해?"
 
"필요해?"
 
"……. 후후, 안심해. 완벽하게 처리했으니까"
 
 
낄낄 웃으면서 리즈는 만족스럽게 내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자 점내에 내객을 알리는 소리가 울린것과 동시에 이 또한 기운차고 활발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안녕-!"
 
"왔어-, 리즈"
 
"어라? 시리카랑 아스나잖아. 왠일이래. 둘이서 오다니"
 
"마침 가게 밖에서 시리카짱이랑 만났어. ……어, 어라? 히키……, PoH!?"
 
 
시끄러운 바람은 내 귀를 노리고 울리듯이 불어온다.
 
따뜻하고 행복한 바람.
 
어이어이, 정말이지 신이라는 녀석은 어디까지 엉터리인거야.
 
 
"……기적같은거지. 마침 보고 싶었어"
 
"어! 어!? 가, 갑자기 왜 그래!?"
 
"너를 위해서 열심히 했으니까, 계속 지키고 싶었거든"
 
"그, 그게……. 그렇게 쳐다보면…"
 
"옆에서 계속 웃어줄래?"
 
"으~, 저, 저기, 나도……, 너를…"
 
"좋아해! 시리카!! 계속 내 동생으로 있어줘!!"
 
"나도, 조, 조, ……. 응? 시리카?"
 
"좀, 아스나 방해거든. 자 시리카, 오빠라고 불러보련"
 
 
얼라?
 
동생이 겁먹고 있네.
 
여기는 나의 오빠력으로 달래주자.
 
 
"오빠야, 돈이라면 많이 갖고 있어. 뭐 갖고 싶은건 없나아?"
 
"기, 기분 나빠요! 기분 나쁘다구요!! 이런 오빠야, 저에겐 없어요!!"
 
"기, 기분 나쁘다는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오빠야를 부정당하면 마음에 울리는데……"
 
 
갑자기 옆에서 떨면서 서 있던 유우키와 눈이 마주쳤다.
 
어라?
그렇게 흐리멍텅한 눈동자였나?
 
시리카는 내 시선에서 도망가듯이 리즈의 뒤로 숨어버린다.
 
리즈, 너도 설마 언니의 입장을 확립하려고…….
 
 
"……하아. 우스꽝스럽네. 친동생한테 겁먹어지다니"
 
"가짜 친동생이잖아. 시리카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내가 지금 당장 이 사람을 날려버려줄테니까"
 
"가짜…. 좀, 너, 가짜 친동생이라니……"
 
 
불온하게 레이피어를 뽑으려고 하는 유우키로부터 떨어지면서 나는 가게 안에 놓여 있는 둥근 의자에 앉는다.
 
의자에 앉은 순간의 탈력감은 현실이든 게임이든 변함없군.
 
 
"그러고보니 오늘은 공략전이잖아? 이런데서 태평하게 있어도 괜찮아?"
 
"응. 조금 숨돌리기 해야지. 뭐, 거기에 있는 그 남자는 언제나 얼빠져 있는 모양이지만"
 
"오히려 숨을 빼기는커녕 쉬지 않기까지 한다고"
 
"""……"""
 
 
얼라라.
 
이 농담은 통하지 않았나.
 
 
"……. 하, 하지만, 괜찮나요? 75층은 적이 강하지요?"
 
"그래그래. 쿼터 포인트지?"
 
 
햇빛이 비추는 가게 안이 어두워진다.
 
시야상의 의미가 아니라, 느낌상의 의미로.
 
이 두 사람이 불안해하듯이 이번 보스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는 안 될 것이다.
 
고난을 겪게 되는건 틀림없다.
 
 
"……보스전이 목숨을 거는건 언제나 같은거야. 하, 하지만 걱정하지마! 우리도 생각없이 도전하는건 아니니까!"
 
"……"
 
"……"
 
 
유우키의 헛기운이 아플정도로 가게 안에 충만한다.
 
리즈와 시리카는 유우키의 안부를 걱정하는것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 강하다고 해도 어차피 시스템 범주잖아. 정말로 위험해지면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읏! 너, 너, 또 무모한 짓을 하는거지!!"
 
"이번은 조금 정도는 무모한 짓을 해야지"
 
"히, 히키가야아!! ……유키노시타네랑 약속은 기억하고 있지?"
 
 
……. 응.
 
기억하기는 물론 어제일처럼 떠오른다고.
 
그렇기에…….
 
그렇기에, 내가 죽을때는 게임이 종료할때다.
 
 
"…이름을 까발리지마. 진정해라고"
 
"읏! ……. 미, 미안해"
 
 
정말이지.
이래선 숨돌리기가 안 될텐데.
 
여기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토크 스킬은 유감스럽게도 갖고 있지 않다.
 
입다문채로 나와 유우키는 그저 서로 쳐다볼 뿐이다.
 
 
"하아. 정말이지, 너네는 닮았다고 할까. 아스나도 PoH도 말야……, 제대로 돌아오라구"
 
"…리, 리즈. ……응"
 
"……."
 
"PoH, 너도라고?"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대답할 수 없다.
 
 
이 이상, 이룰 수 없는 약속은 하고 싶지 않으니까.
 
 
"……너는 우리 가게의 수입원이니까"
 
"……흥. 정말이지, 얼마나 바가지를 먹었는지 모른다고"
 
"어머. 정당한 대가를 받은것 뿐인데?"
 
"…그러냐. 하하"
 
 
둥근 의자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감촉에 얼어붙듯이 나의 뱃속에 있는 각오는 단단히 굳어간다.
 
지킬것이 너무 많으면 무거운 짐이 된다고.
 
함께 있는것뿐인데, 즐겁고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으니까.
 
각오가 둔해질것 같다.
 
 
더욱 불안하게 나와 유우키를 쳐다보는 시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는 가게를 뒤로했다.
 
 
 
 
.

……
………
………………
 
 
――75층 보스전 1시간 전――
 
 

어둠이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을 무렵, 리즈벳 무구점을 조용히 나간 히키가야를 찾길 2시간.
 
겨우 발견한 그의 위치는 22층의 숲속이었다.
 
숲속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불길할 정도로 조용하고, 어딘가 각오를 굳힌것처럼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있다.
 
 
"……히키가야"
 
"어"
 
 
역시라고 할까, 색적 스킬로 들켰을 내 존재에 놀라지는 않는다.
 
 
"그, 그게. 아까는 미안"
 
"……왜 사과하는거야?"
 
"어?"
 
"걱정해줬잖아"
 
"……. 응"
 
 
둥실 뺨을 쓰다듬는 바람이 기분 좋게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순간 보인 그의 눈동자는 무언가를 그리워한다.
 
먼 과거를 떠올리고 있는 듯한.
 
 
문득, 나는 유키노시타에게 부탁받았던걸 떠올린다.
 
 
"얼굴, 안 비출거야?"
 
"……아아"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저기, 그때일 기억해?"
 
"그때일? ……아-, 그거군, 응 기억해-"
 
"……히키가야?"
 
"……. 미안. 그때는 언젠데? 이래저래 너하고도 오랜 교제니까"
 
"아핫. 벌써 2년인걸, 그때부터"
 
"……아아, 그때인가"
 
 
시작의 마을에서 불안에 짓눌릴뻔했던 나를 도와준 그는 지금도 이렇게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내밀어준 손의 온기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게임 속이라고는 생각못할, 상냥한 사람의 피가 통하는 손을, 나는 무엇보다도 믿고 있었다.
 
 
"서로 잘도 살아남았군"
 
"후후, 덕분에. 누구씨가 계속 지켜줬으니까"
 
"……. 하느님이야?"
 
"이 세상에 하느님은 없어. 있는건 너뿐이야. 누구보다도 사람 좋고 다정하고 강한……, 너 뿐이야"
 
 
SAO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람.
 
래핑 코핀의 리더.
 
잔학비도.
 
 
그를 표현하는 이명은 한 손으로는 셀 수 없다.
 
그래도, 계속, 계속.
 
그는 세계를 구해왔다.
 
끝없이 끝에 절망하는 일도 없이, 그는 우리들의 앞을 달려갔다.
 
 
"너 덕분에, 나는 이렇게 웃을 수 있다고?"
 
"……"
 
 
…….
 
 
한발짝, 또 한 발짝 그에게 다가간다.
 
 
유키노시타에게 부탁받은것, 조금은 치사하지만, 이용하도록 할게.
 
 
"저기, 공략전에……, 주문을 할까?"
 
"……아? 주문?"
 
"맞아. ……조금만 눈을 감아줄 수 있으려나"
 
"……?"
 
"그래서 손을 가슴 앞까지 들고……"
 
 
이상해하면서 거기에 따르는 그는 역시 평범한 남자애다.
 
달에 비추어진 나무들의 그늘은 환상적으로 우리를 감싼다.
 
 
삐-
 
【허가 되었습니다】
 
 
 
맷시 좋은 전자음 후에 나오는 문자.
 
 
 
"……후후. 좋아, 히키가야. 눈을 떠"
 
"……키, 키스라도 받는다고 생각했잖아"
 
"헤헤. 그것보다도 훨씬 굉장한걸 했어"
 
 
 
 
 
【허가합니다】
 
 
 
 
"……읏!? 무, 무, 무, 뭇!?"
 
 
 
 
 
"잘 부탁해. 히키가야!"
 
 
 
 
【PoH 씨와 결혼이 허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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