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네 파편 - 집.
 
 
 
현재 오후 1시.
오늘 하루 특별히 일이 없고 할 일도 없으므로 점심 지날때까지 수면을 탐하여 충분히 몸의 피로를 치유한다.
 
치유할 정도로 몸에 피로는 쌓여있지 않지만. 인도어 대학생은 그런거라고? 운동할 기회는 진짜로 전혀 없으니까.
덕분에 조금 뛰거나 계단을 기세 좋게 오르거나 하면 약간 숨이 헐떡인다.
이거 젊은이라고는 생각 못하겠구만…. 아니 뭐, 말할만큼 젊지도 않나.
 
혼자서 나이 먹은걸 느끼면서 침대에서 슬렁슬렁 일어난다.
늘 혼자잖아! 라는 딴지는 필요없거든. 이제 너무 많이 해서 질렸거든!
 
 
막상 일어나본건 좋지만 정말로 할 일이 없다.
 
방 청소…는 할 필요없을 정도로 평소부터 깨끗하게 하고 있고.
과제…는 이미 끝냈고.
독서…를 할 기분도 아니지.
 
엥, 진짜로 할거 없잖아….
그보다 내가 할 일이 너무 적은거겠지, 아마.
 
 
일단 공복을 채우기 위해 요리를 합시다. 어차피 한가하면 엄청 공들인 요리라도 만들까. 나의 전업주부 스킬을 피로해주겠어…!!
 
 
뭘 만들까 생각하면서 냉장고를 여니 안에는 마시다만 차와 조미료가 몇 종류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흡사 SESANG I KUCNATA같은 절망을 느끼면서도 마지못해 장보러 가는 결의와 준비를 했다.
 
 
 
× × ×
 
 
 
내가 사는 아파트는 상당히 좋은 조건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세가 싸다.
우선 특필해야할 점은 근처에 슈퍼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보통 자취를 하는 나에게 있어선 상당히 포인트가 높다.
 
그리고 이 슈퍼, 물품 갖춰진게 좋아서 타임 세일에서 상품이 싸지기도 한다.
거기에 지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는것도 있다.
 
어쩌면 이 슈퍼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게 아닐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최고.
한 문자로 말하자면 신.
 
내가 사는 성의 굉장함이 전해졌겠지.
 
마음속에서 드높히 웃으면서 가게로 들어간다.
시장 바구니를 옆에 매고서 상품을 돌아본다.
 
 
아무래도 오늘은 파스타 면이 싼 모양이다.
이건 나의 점심 메뉴는 까르보나라로 하라는 하늘의 인도일지도 모른다.
 
뭐, 신은 믿지 않지만.
애시당초 신이 있다면 좀 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라고.
특히 나라던가. 나라던가. 그리고 나라던가.
…진짜로 나의 소원을 이루어주지 않으려나아…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무르지 않다는걸 알고 잇으므로 하다못해 커피 정도는 달았으면 싶다.
선반에 진열된 상품에서 한층 눈에 띄는 황색과 검은색의 콘트란스트 캔을 시장바구니 속에 몇개 넣는다.
 
따, 딱히 맥스 커피의 스테마가 아니거든//!!
 
 
 
대강 필요한건 갖춰졌으므로 계산대로 발을 돌린다.
 
그러자 잇시키가 계산대에 서 있는걸 발견해버렸다.
 
 
불행중의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그쪽은 이쪽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여기는 들키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하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스킬 스텔스 힛키를 발동했다.
아니, 이 스킬은 나의 의사하고는 관계없이 자동으로 항상 발동하고 있지만.
나의 선조는 닌자나 뭐였던거 아니야?
나에게 닌자의 적성이 너무 있는건 그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잇시키가 선 계산대의 두 번째 옆에 있는 계싼대에 나도 줄을 서서 기다린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되어, 2분 정도만에 계산을 끝내버렸다.
 
이래선 자칫하면 잇시키와 나갈 타이밍이 같아져버린다.
그렇게 생각해서 주위를 돌아보니, 마침 잇시키가 가게를 나가던 참이었다.
 
역시 나의 스텔스 기능은 역시라고 해야할까….
이걸로 미션 컴플리트로군.
 
이상한 긴장감으로부터 햅아되어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가게 밖으로 나간다.
 
 
"선배 늦다구요-! 정말이지, 여자애를 얼마나 기다리게 할 생각이에요!"
 
거기에는 허리에 손을 대며 뺨을 부풀리면서 자칫하면 뿡뿡이라는 효과음이 들릴법한 차림으로 서있는 잇시키의 모습이 잇었다.
 
"하, 아니, 엥. 뭐야 너 알고 있었어?"
 
물론이에요, 라며 가슴을 펴고 어깨넓이로 서있는 잇시키. 약았다. 너무 약았어….
 
"그보다 선배 주위를 너무 두리번거린다구요. 엄청 수상쩍어요. 순전히 소매치기라도 한줄 알았다구요"
 
"아니, 그런짓 안 하거든. 멋대로한 상상으로 나를 범죄자로 만들지마"
 
"뭐, 그런건 아무래도 좋아요"
 
에에…그쪽이 말을 꺼낸 주제에 아무래도 좋다니 너무하잖아.
확실히 실제로 아무래도 좋지만. 아니, 좋지 않잖아.
 
"선배도 점심 지금부터 먹을거죠? 같이 어때요?"
 
"아직이지만, 집에 돌아가서 스스로 만들거야. 거기다 나 밥 먹은 후에 그거니까"
 
"…그런가요"
 
잇시키는 조금 낙담의 색을 보이면서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그럼 어쩔 수 없네요. 소매치기범으로 만들어서 가게에 찌르는수밖에…"
 
"어이 잠깐. 왜 그렇게 되는데. 내가 사회적으로 죽어버리잖아"
 
"그럼 같이 먹어도 문제 없지요?"
 
"…알았어"
 
마지못해. 정말로 마지못해 승낙했다. 해버렸다.
왜 나의 스텔스 기능은 중요한 구석에서 도움이 안 되는걸까아….
 
"그래서, 어디 갈건데? 패밀리 레스토랑?"
 
"아뇨, 선배의 집이면 되요"
 
아무런 망설임도 주저도 헤메임도 없이 잇시키는 노 타임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덩달아 나도 즉답을 해버릴뻔했다.
뭐야 지금 그거. 무시무시한 기술이구만, 어이. 하마터면 귀찮은 전개가 될뻔했다.
 
"아니, 그건 곤란하지. 거 봐, 여러모로"
 
"뭘 상상하는거에요 선배. …그런건 서서히 계단을 밟아가야한다고 생각하니까 아직 좀 무리에요"
 
고개를 숙이면서 뺨을 붉히며 빠른 말로 속사포처럼 말한다.
마지막 쪽은 웅얼웅얼거려서 잘 몰랐고.
 
"말이 너무 빨라서 뭐라하는지 모르겠거든. 그래서 어떡할건데?"
 
"아니, 그러니까 선배 집이라도 상관없다구요?"
 
"그러니까 그래선 여러모로 곤란하다고"
 
"아뇨, 저는 선배의 집이라도 상관없는데요?"
 
뭐야 이거. 버그야? 아니면 '네'를 선택하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는 RPG의 튜토리얼이야?
 
아무래도 잇시키는 굽힐 생각은 없는 모양인지 내가 예스 대답을 할때까지 같은 소리를 계속하겠지.
그건 그거대로 꽤 재미있겠는데….
 
하지만 나의 공복도 꽤나 위험한 수준에 달하고 있었으므로 하는 수 없이 집에 가는걸 승낙했다.
 
"과연 선배! 그럼 빨리 렛츠고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이쪽을 보고 미소짓는 잇시키.
 
……그러니까 약아빠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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