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
①그들은 이미 만났었다.
가끔 꾸는 꿈이 있다. 눈 앞에 소녀가 있다. 빠질듯한 푸른 하늘 아래, 나를 향해 뭐라고 말을 한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리지 않는다. 마치 두터운 유리에 막혀있는듯,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입만 움직인다.
이윽고, 소녀가 한 줄기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미소를 짓는다. 그 모습이 덧없어서, 무심코 손을 뻗지만――.
――거기서 언제나 꿈이 끝난다.
암전.
× × ×
간결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면, 지금 나――히키가야 하치만은 학생지도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목덜미를 잡혀서 납치당하고 있다.
고등학교 생활을 뒤돌아보고, 라는 작문 내용에 꾸짖음을 받던 중, 조금 부주의하게 선생님에게 과부하인 『삽십길 늦깍이(어라운드 서티)』를 발동시켜버려서 봉사활동을 명령받았다. 그리고 어째선지 연행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현재진행형으로 납치당하고 있지만, 만약 내가 미소녀 엘프엿다면, 추악한 얼굴의 아저씨에게 팔려가서 그 욕정을 끼얹는――다고 생각하면 엄청나게 좋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라, 그거 최고 아냐?
그런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가운데, 정신을 차리고보니 부실동까지 왔다. 잠시 걷고 있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이 딱 멈춰 섰다. 눈 앞에는 부실 문.
"여기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입을 연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다.
"그 봉사활동이라는거 말인가요?"
"뭐, 금방 알거다. ――들어간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노크도 하지 않고 부실 문을 연다. 그러자 거기에는 의자에 앚아 조용히 독서를 하고 있는 소녀가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들어오는 바람으로 커튼이 흔들리는 교실 속에서 혼자서 책을 읽는 광경은, 자못 그림같았다.
『―――――――――――』
"윽!?"
순간, 무슨 광경과 겹쳐진 느낌이, 들었다. 뭐지, 이거……?
곤혹해하고 있으니 소녀가 미간을 좁히며 이쪽을 돌아본다.
"――히라츠카 선생님, 들어올때는 노크를 해주세요. 라고 부탁했는데요"
"미안하다. 이후로 조심하마"
"그 말, 몇 번이나 들었지만 지켜진 적이 없네요……그리고, 용건은 뭔가요?"
소녀의 질문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내 등을 치며 앞으로 떠민다.
"아팟"
"――새로운 부원을 소개하마. 2학년 F반 히키가야 하치만이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를 하니, 소녀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며 움직이지 않는다. 싫다, 나는 스탠드에 눈을 뜬건가? 뭐, 이미 『투명해져서 아무도 얘기걸지 않는다』라는 스탠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오히려 스탠드에 의지하지 않아도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기까지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니, 갑자기 소녀의 입이 열렸다.
"―――――――기야"
……기야? 어, 이 사람 물고기야? 하지만 본체에 있는 머리의 그게 없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갑자기 소녀는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온다.
"윽!"
그리고 내 멱살을 양손으로 잡고 뒤흔든다.
"――사기야! 겨우 만났다고 생각했더니, 이렇게 눈이 썩다니! 내 아름다운 추억을 되돌려줘! 돌려줘어!"
당하는대로 쉐이크 당한다. 머리가 벙벙해지기 시작할 무렵, 히라츠카 선생님이 우리들을 떼어주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감싼다. 아파라…….
"그만하거라! 뭐야, 유키노시타치고는 상당히 착란을 하고. 이 남자하고 무슨 일이 있었나?"
히라츠카 선생님의 질문에 유키노시타라고 불린 소녀는 눈을 감으면서 입을 연다.
"……딱히 이런 눈이 썩은 남자는 몰라요"
심한 소리를 들었다. 확실히 나는 눈은 좀 그렇지만 얼굴은 그렇지 않다고. 출처는 사랑하는 동생. 코마치의 발언.
히라츠카 선생님이 유키노시타의 말을 듣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모른다는 반응으로는 안 보였는데……그런걸로 해두지. 히키가야, 그녀가 여기의 부활동 부장을 맡고 있는 2학년 J반 유키노시타 유키노다"
아직 무릎을 꿇은 나에게 그대로 설명한다. J반이라고 하면, 분명 국제교양과의 우등생 집단이었을터.
――그보다, 생각났다. 이 여자는 늘 학년성적 1위인 사람이다. 왜 그런 치트성능인 여자가 이런 수상쩍은 부활동에 혼자 있는거야……?
나는 겨우 회복해서 일어서서 히라츠카 선생님을 돌아본다.
"즉……봉사활동이라는건 여기서……?"
"그 말대로. 그리고 하나 더. 이건 네 고독체질 개선도 시야에 넣고 있다. 유키노시타, 그의 비뚤어진 고독체질 갱생을 의뢰한다."
"안 늦었어요. 거기다 개선한다고 하면 선생님의 독신체질을 먼저――"
말을 채 끝내기 전에 안면에 한 줄기 바람이 춤쳤다. 그리고 확대되는 주먹.
"――못 들은걸로 해줄까?"
"부탁합니다"
……월간소년지에 자주 있는 만화같은 반응 속도였지. 혹은 초대 프리큐어. 이 사람 교사하는것 보다 여자 프로 복서가 되는 편이 여러모로 좋지 않았을까. 갤럭티카 뭐시기 정도는 습득한걸지도 모른다. 거, 뭐냐, 갤럭티커 서티 라던가.
아무튼간에 고독체질 개선이라니, 정말로 안 늦었거든. 나, 외톨이인편이 좋은데.
우리들의 대화를 보고 유키노시타가 미간을 모으며 한숨을 쉰다.
"――그거라면 지금처럼 선생님이 때리든 차든 교정을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나도 그러고 싶은건 마찬가지지만, 요즘은 하도 말이 많다. 육체적 폭력은 가능한 피하고 싶다"
둘 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거기다 유키노시타가 추가타를 가한다.
"거절합니다. 그의 속마음으로 칠해진 비열한 눈을 보고 있으면 몸의 위험을 느껴요"
"……그리고, 더 이상 추억을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요"
응? 마지막에 뭐라고 한거야? 거의 속삭이는 목소리라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거에 대해서는 보증하지. 그는 리스크 리턴 감정이 제대로된 소악당이다. 자신이 불리해지는 일은 하지 않아"
"아니, 소악당이라니"
나의 태클을 무시하면서 유키노시타가 대답을 한다.
"……선생님의 의뢰를 헛되게 할 수는 없으니까 받아들일게요"
"그럼, 뒤는 맡긴다"
유키노시타의 대답에 만족했는지 손을 흔들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부실을 뒤로 한다.
"……"
남겨진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주위를 쳐다보고 있으니 유키노시타와 눈이 마주쳤다.
"……뭔데?"
"거기서 허수아비처럼 서 있지 말고, 앉지 그러니?"
왜 그렇게 하나하나 말에 가시가 선건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는 수 없이 의자에 앉았다.
"……"
"……"
뭐야 이 침묵 분위기. 딱히 침묵만 하는거라면 전혀 문제 없지만, 유키노시타가 나를 빤히쳐다보는게 괴롭다. MUGO. 음… 색기? 딱히 눈과 눈으로 통하는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뭔데. 빤히 쳐다보고"
견디다못해 질문을 하니, 유키노시타가 조심조심 입을 연다.
"너…… 정말로 히키가야 하치만이지……?"
에, 뭐야 그 질문. 마치 라노벨의 처음 같은 질문이다. 이 경우 대답한 순간 살해당하거나, 미소녀에게 안기거나 하는 선택이군. 후자가 된다면 단번에 사랑에 빠지고, 그 후에 내버려질게 뻔하다. 어라, 뭘 골라도 배드 엔딩.
하지만 뭐, 절대로 노우! 라고 대답할 필요도 없어서 평범하게 대답한다.
"……공교롭게도 내 이름이 겹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어"
"그렇, 구나……"
내 말에 유키노시타가 어깨를 떨군다. 딱히 내가 나쁜건 아니지만, 미소녀가 어깨를 떨구는 광경을 보면 무조건으로 『죄송합니다앗!』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화제를 바꾸기 위해 문득 생각난 의문을 말해본다.
"그러고보니, 여기는 무슨 부야?"
허를 찔린 유키노시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여운게 약간 화가 난다.
"어? ……그렇구나. 그럼 게임을 하자. 자, 여기는 무슨 부일까?
유키노시타의 질문에 턱에 손을 대고 생각했다. 애시당초, 여기 부활동 부원은 몇 명이야?
"다른 부원은?"
"없어"
시작하기 전부터 끝날듯한 것에 대해서. 부원이 유키노시타 한 명인가…… 괜시리 모르겠다.
하지만 프로 외톨이인 나는 지금 있는 재료에서 사태를 판단하는데 능숙하다.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고로, 지금 있는 재료에서 조합하여 대답을 이끌어낸다.
"문예부"
"그 짐작은?"
"핵심은 사람 수가 부족해도 폐부가 되지 않는 거잖아. 그럼 부비가 필요로 하지 않아. 그리고 네가 들고 있는 책. ……어때?"
자신있는 대답이었지만 유키노시타는 바보취급하는 미소를 짓고 이렇게 말했다.
"꽝이야"
"그럼 무슨 부야?"
내 말에 유키노시타는 입술에 손가락을 댄다. 뭐야 그 동작 귀여워.
"그렇구나. 히키가야, 여자랑 대화한건 몇 년만이니?"
유키노시타의 말에 나는 과거를 돌아본다. 내 명석한 두뇌가 이끌어낸건, 1년 반 전.
어떤 여자에게 이별의 말을 들었다, 는게 마지막인가?
"제대로 대화한건 1년 반만"
내 말에 유키노시타는 의외라는 얼굴을 한다.
"어머, 반 친구랑 인사는 대화에 안 들어간단다?"
"아아, 당시의 여자친구랑 헤어질때 한 얘기가 마지막이다"
유키노시타의 눈이 완전히 점이 됐다.
"…………………………………………………………하?"
"에, 왜 그래?"
"……너, 여성과 사귄적이 있어?"
"2개월 뿐이었지만. 게다가 달리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차였고"
그러고보니 그대로 페이드 아웃했으니까 그 녀석들 제대로 됐는지 몰라. 뭐, 괜찮겠지.
"……………………………………그러니"
어째선지 유키노시타가 무척이나 시무룩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 에, 나 무슨 나쁜 소리 했나?
"왜, 왠지 미안"
내가 사과를 하니, 유키노시타가 눈꼬리를 닦으며 째릿, 나를 노려본다.
"어째서 네가 사과하는거니? ……아무튼, 가진 자가 못 가진자에게 자비의 마음을 갖고 이걸 준다. 사람은 그걸 발룬티어라고 불러"
네놈에게 알려줄 이름은 없다! 라고 할것 같은 말이지만, 다른 말이 이어졌다.
"――곤란해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다. 그게 이 부의 활동이야"
"……"
"어서와, 봉사부에. 환영할게"
나는 구원의 손이 필요했던건가……!! 아니, 바보냐.
"일단, 오늘은 용건이 있으니까 돌아간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부실을 나갔다.
"앗"
나가려던 순간, 힐끔 유키노시타가 슬퍼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던게, 조금 신경쓰였다.
"……하치군"
②히키가야 하치만은 떠올리지 못한다.
『―――――――――――――――――』
눈 앞에 있는 소녀가 소리내어 울고 있다.
어째서 울고 있는거야? 그렇게 묻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소녀는 더 운다. 그건 마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것 같았다.
이윽고, 『나』는 소녀에게 무언가를 쥐어줬다.
손에 든 물건을 본 소녀는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크헉!?"
갑자기 복부에 충격을 느껴서 나는 눈을 떴다.
"안녕, 오빠. 아침 다 됐는데?"
눈 앞에는 마이 스위트엔젤 코마치의 얼굴이. 아침부터 천사가 마중 나와준다니……어라, 나 그래선 죽은거 아냐?
"안녕, 코마치"
나는 코마치의 머리를 쓰다듬고 일언나다. 매달리는 형태로 코마치도 일어나서 내 양 다리 사이에 정좌한다. 왠지 자시키와라시 같아서 귀엽다.
"그럼 코마치는 거실에서 기다릴테니까, 얼른 준비하고 와. 같이 아침 먹자구? 이거 코마치 입장으로 포인트 높앗"
그렇게 말을 남기면서 우리 사랑스런 동생은 방을 나갔다. 동생의 수수께끼 포인트 제도는 아직 계속되는건가. 나도 포인트 제도 시행할까. 외톨이 포인트, 술여서 WP. ……뭐야 그거 쌓이면 기술 머신 교환할 수 있을것 같아.
뭐, 둘째치고.
혼자가 된 자기 방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또 그 꿈을 꿨군"
× × ×
정신을 차리고보니 방과후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고고의 존재인 나는 기대하지 않아도 생겨버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재빨리 소화하기 위해 잠들고, 명상을 체득하고 있는거다. 결과만이 남는다, 그건 바야흐로 킹크림존! 실제로는 결과조차 남지 않지만.
가볍게 죽고 싶어져서 나는 교실을 나와 부활동하러 갔다. 딱히 무시하면 되는데 성실하게 가는건, 결코 현대국어 수업에서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살의로 가득찬 시선으로 노려보아졌기 때문은 아니다.
――어제 부실에서 나올때 유키노시타의 표정이 조금 신경쓰였기 때문인걸지도 모른다.
이러저러해서 봉사부 부실 문까지 와버렸다. 마음을 먹고 안으로 들어간다.
"여어"
적당한 인사를 하면서 들어가니 이미 유키노시타가 독서를 하고 있었다.
"……"
책에서 눈을 떼며 나를 본다. 자연히 눈이 마주쳤다.
투명한 눈동자가 나를 쏘아본다. 엄청난 미인인 탓에 묘한 박력이 있어서 무심코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그 예쁜 입술이 열리며 말을 한다.
"――너, 그 안경은 어쩐거니?"
질문을 받고 무심코 안경테를 만진다. 그래, 오늘은 기분상 겉멋 안경을 끼고 있었다.
……예전 여친한테 『그거 안 끼면 데이트 안 할거야!』라고 듣고, 데이트 중에 장착을 강제받아서 끼게 된거지만.
"아? 아아, 옛날에 산거야"
한 마디만 말을 하고, 나는 가방을 책상 위에 두고 유키노시타의 앞쪽에 앉았다.
그러자 유키노시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흠…… 안경을 끼면 눈이 조금 나아지는구나. 그 안경,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라도 있는거니?
이 안경은 방부제냐.
유키노시타가 계속한다.
"솔직히 더 이상 안 올거라고 생각했어. 무슨 바람이 분거야?
아까전에 자문자답했던 내용을 그대로 듣고 말았다. 나는 생각해둔 말을 한다.
"현대국어 수업에서 말이지……"
계속 말을 하려고 해더니, 납득한건지 끼어들어왔다.
"――아아, 히라츠카 선생님이구나. 권력에 굴하다니, 정말로 그릇 작네"
권력에는 절대로 지지 않아! 라며 의지를 넣어두고 역시 권력에는 못 이겼다……가 되면, 틀림없이 내 별명이 여기사가 될테니까. 유키노시타는 공주기사같군. 당신은 최악의 쓰레기야! 라고. 뭐, 됐어.
"연상의 유권자에게는 반항하지 않는 주의야. 그래, 술병 손잡이처럼 말이야. 그리고 가능하다면 길러지고 싶다"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내가 말한걸 듣고 있지 않아다. 뭔가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
"……눈은 안경으로 어떻게 되는것 같고……속은 이제부터 갱생시켜가면 아직 늦지 않을까……?"
귀를 기울여들으니 불온한 단어가 들려오지만, 못 들은척 하기로 했다.
"들어간다"
갑자기 부실 문이 열린다. 들어온건 히라츠카 선생님이었다.
"어떠느냐. 히키가야의 갱생은 진행되고 있느냐?"
히라츠카 선생님의 말에 한숨쉬면서 유키노시타가 대답한다.
"……어제는 용건이 있다고 돌아가버려서, 지금 진전은"
"――뭐라고?
유키노시타의 말을 듣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나를 째릿 노려본다. 무서워.
"동생이랑 쇼핑 약속이 있었거든요"
덧붙여 이건 사실이다. 덕분에 지금 내 지갑은 깃털보다도 가볍다. 이대로라면 코마치에게 헌상하기 위해 대출을 할 수준이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내 말에 머리를 벅벅 긁고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이번에는 넘어가지만 다음부터는 없다?"
"알고 있습니다……"
내 말에 미소를 짓고, 유키노시타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어떠냐, 유키노시타. 히키가야의 활동의욕을 높이기 위해서도 여기선 승부를 하는건 어떠느냐?"
"승부?"
유키노시타가 되물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이 굳게 끄덕인다.
"그래. 오늘부터 너희들이 졸업할때까지, 누가 부에 공헌했는지를 다툰다. 진 쪽은 이긴쪽이 하는 말을 뭐든지 듣는다, 라는건 어떠느냐?"
터무니없는 제안이구만. 애시당초 나, 졸업할때가지 이 부활동 하러 가야하는거야? 무엇보다, 딱히 유키노시타를 어떻게 하고 싶은건 아닌데…….
――생각하면서 유키노시타를 봤더니.
"…………뭐, 뭐든지?"
유키노시타가 입가를 양손으로 누르며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고 있었다. ……뭐야 그 반응?
"유, 유키노시타?"
곤혹한 태도로 히라츠카 선생님이 물어보니, 놀란 표정을 지은 유키노시타가 고개를 붕붕 흔들고 평정을 꾸린다.
"시, 실로 유감스럽지만 그 승부, 받아들일게요. 어차피 제가 이길테니까요"
아직 볼이 붉은 유키노시타가 빠른 어조로 말한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한숨을 쉬고 나를 돌아봤다.
"라고 한다. 히키가야도 그거면 되겠나?"
싫어――라고 하려고 했지만, 『싫』입모양을 만들때 유키노시타가 엄청나게 노려봤다. 눈에서 살기가 배어나왔다.
"네"
――선생님, 눈 앞에서 힘의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선생님은 아무것도 안 해주는겁니까……?
× × ×
히라츠카 선생님이 간 후, 우리들은 아직 부실에 있었다.
"……승부의 첫걸음으로 너를 갱생시키려고 생각해"
유키노시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지금대로여도 나는 전혀 곤란하지 않은데 말이다……"
유키노시타가 미간을 모으며 꿰뚫을것 같은 눈으로 나를 본다.
"……그래선 내가 곤란해"
"아니, 왜?"
이유를 몰라서 되물어보니 유키노시타가 미간을 모은채로 볼을 부풀렸다.
"……………………………………알아줘, 바보"
…….
……핫! 아,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딱히 넋이 나간거 아니거든! 나는 속지 않아!
나는 뺨을 잡아당기고, 유키노시타를 돌아본다.
"그렇게 귀여운 몸짓을 해도――"
――갑자기 무언가가 플래쉬백했다.
『―――――――――――군 바보! 이젠 몰라!』
소녀가 울상을 짓고 화내고 있다. 누구에게? ……이 소녀는 누구?
"……히키가야?"
"윽!"
이상하다는듯 유키노시타의 물음에 나는 현실로 돌아왔다.
……뭐였던거야, 지금 그건.
"――아무튼, 그런 귀여운 몸짓을 해도 안 속거든. 나는 갱생할 필요는 없어!"
"……고집 세네"
선언을 하자 불만스러워하는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방금전의 플래쉬백과 겹쳐졌다, 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반신반의로 나는 솟아오르는 의문을 말했다.
"야, 유키노시타. 우리 전에――"
"아니야"
즉답받았다.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지만, 나는 유키노시타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러냐. 그럼 나는 슬슬"
"그래. 내일 봐"
유키노시타의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부실을 뒤로 했다.
"……스스로 생각해낼때까지, 안 가르쳐줄거야. 하치군 바보"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가슴팍에서 색이 바랜 펜던트를 꺼내고 사랑스러운듯 쓰다듬었다.
③하지만 유이가하마 유이는 깨닫고 있다.
"히키가야……"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른다. 그렇게 화내면 잔주름이 는다구☆
번뜩 안광을 쏜것 같다. 뭐야, 그 거 사나운 눈동자. 화냈을때의 나르가구르카냐.
"뭐, 됐다. 왜 조리실습을 빼먹었는지 이유를 들어볼까"
히라츠카 선생님이 손가락을 척 내밀면서 나에게 물었다. 수트를 차려입고 있으니까 그 손가락 포즈가 무척이나 어울린다.
"보세요, 세간 주부는 다들 혼자서 요리를 하잖습니까"
"뭐, 그렇군"
"네"
"네가 아니다"
따지듯 히라츠카 선생님이 내가 쓴 레포트를 손바닥으로 친다.
"레포트도 다시 제출이다. 조금 더 진지하게 써라. 뭘 키○레츠 엔딩 주제가를 쓴거냐. 아니, 확실히 훌륭한 고로케 만드는 법이긴 하지만"
재료로 양배추를 잊는 부분까지 재현한 기억이 있다. 수면 부족으로 소재가 없었어…….
그리고나서 나는 장래의 꿈인 전업주부에 대해 주절주절 애기할때, 『기둥서방만큼은 안 된다』라고 일축 당했다. 히라츠카 선생님, 과거에 무슨 일 있었나……?
그리고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봉사부에서 근로의 대단함을 배워라』라며 등을 걷어 차이면서 봉사부 부실로 가게 됐다.
× × ×
부실에 도착하자 평소대로 유키노시타가 독서를 하고 있었다. 나도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몇권 꺼냈다.
……역시 문예부잖아!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들은 승부라는건 결국은 아무것도 안 하고.
봉사란 무엇인가, 약간 철학적인 의문에 도달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대답은 다가왔다. 문이 노크된 것이다.
"들어오세요"
유키노시타는 책을 책상 위에 두고 문 너머로 말을 했다. 그러자 조금 긴장된 목소리가 돌아왔다.
"시, 실례합니다……"
문을 조금 열고, 미끌어지듯 들어온건 어깨까지 갈색머리에 웨이브를 하고, 경단머리로 묶은 여자애였다. 왠지 어디서 본 느낌이 든다, 라는 헌팅의 상용구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그랬더니 힉!? 하며 소리를 질렀다.
――에, 진짜로? 나, 여자가 비명을 지를만큼의 용모야?
절망하고 있으니 여자애가 초조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어, 어째서 힛키가 여기 있는거야!?"
"아니, 나 여기 부원이고……"
힛키라니, 뭐야. 나 히키코모리야? ……이런! 사실이다!
라고할까, 상대는 나를 알고 있는 풍이군. 잘 보니 가슴팍의 리본으로 학년이 같아는걸 깨닫는다. 그러는 김에 훌륭한것을 갖고 있다는걸 깨닫는다. 궤씸하다.
라고 하는 나는 이런 요즘 세대 여고생틱한 여자애하고는 전혀 접점이 없다.
"뭐, 일단 앉아"
"고, 고마워……"
의자를 끌어서 재촉하니 쭈뼛쭈뼛 의자에 앉았다.
유키노시타와 대면하게 되니 유키노시타는 입을 열었다.
"유이가하마 유이지"
"나를 알고 있구나……"
알고 있는게 기쁜건지, 여자애――유이가하마 유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을 낸다.
"굉장하네, 잘도 기억하고 있어"
내가 감탄하고 있으니, 어째선지 유키노시타가 미간을 좁힌다.
"오히려 왜 네가 모르는지 이상해. 같은 반이면서"
"에"
진짜로? F반이었어? 아아, 그래서 어디서 본적이 있는 느낌이 들었구나.
"……힛키, 나 몰랐어?"
슬프다는 표정으로 유이가하마가 나를 쳐다본다. 역시 죄악감이 솟아서 필사적으로 말을 찾는다.
"기, 기억하고 있었습니다……요?"
내 말에 유이가하마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본다.
"알고 있어, 어차피 거짓말이지? 말 더듬었는걸, 힛키 기분 나빠"
너무해- 마음이 패인다-. 마으미 패여. 라는 농담은 둘째치고. 딱히 특별히 대미지도 없으므로 평범하게 대답한다.
"미안, 내일부터 기억할게"
"오늘은!?"
우리들의 대화에 유키노시타는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니?"
유키노시타의 말에 핫, 하며 유이가하마는 다시 유키노시타를 돌아본다.
"여기는 학생의 소원을 들어주는데지?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들었는데"
마치 소원을 이루어주는 대신에 마법소녀로 만들어주는 듯한 부활동으로 생각했다. 코마치가 여기 오면 얼티미트 코마치가 되는건가.
유키노시타는 유이가하마의 말에 고개를 젓는다.
"조금 달라. 어디까지나 봉사부는 도움을 줄 뿐이야. 소원이 이루어지는지 아닌지는 너에게 달려있어"
그걸 듣고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음-……뭐가 달라?"
유이가하마의 의문에 내가 보충 설명한다.
"요컨대 전부 한다는게 아니라, 준비는 도와줄테니까 중요한 부분은 스스로 해라, 라는거지"
내 말에 유키노시타가 수긍한다.
"그래. ――단적으로 말하자면 자립을 촉구한다, 라고 하면 될까"
"왜, 왠지 굉장해!"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의 말에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너무 쉽잖아. 역시 가슴이 궤씸한 애는 머리도 궤씸한건가.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가슴은 유감스럽지만 머리는 유감스럽지 않지. 아아, 하지만 각도에 따라서는 유감――.
"――뭔가 좋지 않은 생각하고 있지 않니?"
"아니, 아무것도"
위험해라-. 왜 아는거야. 에스퍼냐고…….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에, 본론을 떠올렸는지 유이가하마가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기 말야. 나, 쿠키를……"
말하려던 차에 시선이 나에게 온다. 에, 나 쿠키 아닌데. 힛키 쿠키 좋은 날씨, 라던가 그런것도 아니고. 힛키맨. 뭐야 그거 글러먹은 느낌.
"――히키가야"
유키노시타가 시선으로 복도를 가리켰다. 자리를 비켜라, 라는 걸테지.
"……예이예이"
나는 일단 교실을 나갔다. MAX 커피라도 사올까.
MAX커피를 마시고 한숨 돌리고나서 부실로 돌아오니 조금 기분 나빠하는 유키노시타가 나를 본다.
"늦어"
"이야기가 어느정도 되는지 몰랐어. 자"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유키노시타에게 우유 팩을 건낸다.
"――왜 우유니?"
"부족해 보이니까"
"뭣!?"
유키노시타의 질문에 나는 짧게 대답하고 유이가하마에게 향한다.
"자, 너는 이쪽"
유이가하마의 손에 카페오레를 둔다. 그러자 유이가하마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엣, 돈 줄게"
유이가하마가 지갑을 꺼내려고 하는걸 손으로 제지한다.
"됐어. 멋대로 사온것 뿐이고"
손을 후기휙 흔들고 나는 자리에 돌아간다. 그러자 작은 목소리로 『고마워』라고 들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요.
"이야기는 끝났어?
"그래, 덕분에"
내 물음에 유키노시타가 아연한 얼굴로 대답한다. 유우팩을 구길듯한 기세로 힘을 넣으며 마시고 있다. 거봐, 역시 부족하잖아. 칼슘.
"그래서, 뭐 할건데?"
"가정과실로 갈거야. 이번에는 너도 같이"
가정과실? 그렇다는건……요리?
여러 생각을 하고 있으니 유이가하마가 입을 열었다.
"쿠키 구울거야"
"……호오?"
얘기가 안 보여!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보다못한 유키노시타가 설명해주었다.
아무래도 유이가하마는 수제 쿠키를 어떤 사람에게 먹여주고 싶지만 자신이 없으니까 도와줬으면 좋겠다, 라는게 주취인 모양이다.
왜 친구한테 부탁 안 하는건가――그런 생각을 했지만, 뭔가 사정이 있는걸지도 모르니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알았다. 뭐, 나는 거의 보고 있기만 할것 같지만"
"고……고마워"
유이가하마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찮아, 히키가야. 원래 맛보기 역할을 시킬 생각이었으니까"
"그거 좋네. 그럼 가자"
유키노시타의 말에 이거 편하겠네 생각하면서 가정과실로 향하기로 했다.
× × ×
――어이, 누구야. 이거 편하겠네 라고 생각한놈. 나다.
"………………이거, 먹을 수 있는거지?"
"그렇구나"
"아, 아하하하하……"
유키노시타가 냉담하게 말한다. 눈 앞의 그릇에는 조이풀 혼다에서 파는 목탄같은 무언가가 놓여있었다. 작성자인 유이가하마는 마른 웃음을 띄우고 있었다.
뭐, 조리공정을 보고 있으면 이 결과는 뻔했지만. 그게 유이가하마 씨는 유키노시타가 가르친걸 전부 엉뚱하게 해서 실패하는걸. 오히려 이 겨로가로 끝난게 요행이라고 해야하나?
손을 뻗는데 망설이고 있으니 유키노시타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나도 먹을거니까 괜찮아"
"진짜로? 그렇게까지 해주다니, 뭐야 너. 나 좋아하냐?"
내 발언에 어째선지 유키노시타가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며 화냈다.
"여, 역시 너 혼자 먹어!"
"나, 나도 먹을테니까아!"
……결국 셋이서 동시에 먹게 됐다.
목탄 쿠키를 다 같이 어떻게든 다 먹고, 홍차로 입가심을 하고 있으니, 이 쿠키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대책회의가 시작됐다.
"응, 유이가하마가 두번다시 요리를 안 하면 되는거 아닐까"
"완전 부정!?"
"히키가야, 그건 최종수단이야"
"유키노시타까지!?"
몇 초만에 결론이 나와버렸다. 그 결과에 유이가하마가 풀썩 어깨를 떨어뜨렸다.
"역시 나 요리 안 어울리나아…… 재능없구"
그 말을 듣고 유키노시타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재능이 없다고? 그 인식은 고치렴"
엄한 목소리로 말하는 유키노시타에게 유이가하마가 숨을 삼킨다.
"최저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에게, 재능이 있는 사람을 부러워할 자격은 없어. 성공을 못하는 사람은 성공을 한 사람이 쌓아올린 노력을 상상 못하니까 성공 못하는거야"
유키노시타가 신랄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어디까지나 올발랐다.
"그, 그치만, 이런건 요즘 다들 안한다고 하구――"
유이가하마의 말을 유키노시타가 가로막는다.
"――그 주위에 맞추려고 하는 태도, 그만두겠어? 심히 불쾌해. 자신의 서투름, 부족함, 어리석음의 원인을 남에게 찾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혐오감을 드러내면서 유키노시타는 세게 말한다. 유이가하마는 압도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치마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높기에 남을 맞춰주는건 잘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내딛지 않는 유이가하마와, 자기 길을 가며 남을 아랑곳 않는 유키노시타. 완전히 타입이 다르다.
유이가하마를 보고 있으니 눈동자가 젖어 있었다. 역시 심했나?
"머……멋있어……"
『하?』
기이하게도 나랑 유키노시타의 목소리가 겹친다. 무심코 유키노시타와 얼굴을 마주본다.
"겉치레 같은 말은 전혀 안 하네. 그런거 멋있어……"
유이가하마가 뜨거운 표정으로 유키노시타를 쳐다본다. 유키노시타는 무심코 뒷걸음질 쳤다.
"나, 다른 사람을 맞춰주기만 했으니까, 이렇게 진심으로 말해주는거 처음이라서……. 미안, 다음은 제대로 할게"
유이가하마의 말에 이번에는 유키노시타가 동요한다. 안절부절 차분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가르쳐주는게 어때? 올바르게 만드는 방법을 말야. 유이가하마도 유키노시타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어"
"하…히키가야"
뭐야 그 하……라는거. 비웃은거야?
하지만 내 말에 둘은 수긍했다.
――이렇게해서 유키노시타의 쿠키 교실이 재개했다.
"유이가하마, 그게 아니라 반죽을 섞을 때는――"
유키노시타가 유이가하마치게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나로 말하자면, 유키노시타가 사전에 견본으로 만든 쿠키를 그저 먹고 있었다. 그치만 여자애의 수제요리는 엄마랑 코마치 말고는 오랜만인걸!
하지만 먹고 있는 모습을 유키노시타가 힐끔힐끔 쳐다보는게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우와-, 이 녀석, 진짜로 먹고있어』라고 생각하는걸까.
이러저러하는 사이에 마침내 유이가하마의 쿠키 제 2탄이 완성됐다. 겉보기는 아까전하고 비교도 안 되고, 제대로 쿠키로서 색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역시 유키노시타가 숨을 헐떡일만큼 필사적으로 지도한 만큼은 됐다.
하지만, 역시 유키노시타의 쿠키랑 비교하면 맛은 떨어졌다. 그 결과에 유이가하가 시무룩하게 어깨를 떨군다.
"왜 맛있게 안 되는걸까아……"
유이가하마로써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인 모양이다. 뭐, 아까전에 유키노시타의 쿠키를 먹고나서 도전한거니까, 완성형으로서 완전히 임펙트 되버린 걸테지.
확실하게 말해서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밑바탕이 너무 무르다. 오히려 유키노시타가 여기까지 밀어올린데 경탄을 감출 수 없다.
"저기 말야, 이번 의뢰는 맛있는 쿠키를 만드는거야?"
"하아?"
내 말에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왠지 아니꼬운 태도구만…….
"……확실히 선물로 줄 쿠키가 맛있으면 좋겠지만 말야? 하지만, 여자애가 자기를 위해서 열심히 만들었다, 라는 전제가 있으면 대개 남자는 기뻐하면서 먹을거라고 생각해"
뭐, 그 경우. 여자의 용모는 그런대로 요구되겠지만. 다행히도 유이가하마는 명백하게 평균을 넘는 용모니까 전혀 그럴 걱정은 없을 것이다.
"……타산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말야, 이렇게 만드는 공정을 보지 않은 상태로 갑자기 건냈을 경우, 아마 유키노시타의 솜씨라면 기성품이라고 착각한다고 생각해. 완성도가 너무 좋아서 말이야"
예전 여친한테 수제 쿠키야, 라고 듣고 기뻐해서 먹었더니 다음날 코마치가 똑같은 쿠키를 사와서 먹었다, 라는 경험을 한 슬픈 남자의 에피소드도 있다. 이런, 코마치가 붙어있으니까 나라는거 다 들키잖아.
내 말에 유이가하마가 아-, 라며 말을 한다. 유키노시타는 턱에 손을 대며 수긍한다.
"……과연, 어느 정도 서툰 편이 수제라는 느낌이 늘어난다 라는거지? 역시 히키가야, 임시변통이구나"
전혀 칭찬이 아냐, 유키노시타.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그 설명으로 납득해준 모양이었다.
"그럼 힛키도 여자애가 열심히 만들어온 쿠키 받으면 기뻐?"
유이가하마의 말에 나는 즉답한다.
"기쁜게 당연하지. 오히려 그 후에 그 여자애를 좋아하게 되버려서 바로 차일껄"
"차이는거 전제구나……"
유키노시타가 불쌍한걸 보는 듯이 나를 본다. 시끄러워.
"그, 그런가. 그럼 이번에는 내 방식으로 해볼게! 고마워, 둘 다!"
그렇게 말하면서 유이가하마는 가정과실을 뒤로 했다.
유이가하마를 쳐다보고 있으니, 유키노시타가 나를 힐끔 쳐다보고 있다.
"……왜?"
내가 물어보니 유키노시타는 희미하게 볼을 붉히며 나에게 묻는다.
"히, 히키가야는 저기……기성품 같은 완성도가 높은 쿠키라도, 받으면 기쁘니?"
……글쎄, 무슨 의도려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생각한걸 말하기로 했다.
"수제 쿠키 말야? 그야 엄청 기쁘지. 실제로 유키노시타의 쿠키 엄청 맛있었으니까"
"――하치군, 정말!?"
그렇게 묻는 유키노시타의 얼굴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기뻐보이고, 무척이나 귀여웠다.
"하, 하치군?"
하치만인데요……그걸 물으려고 했더니, 유키노시타가 핫, 하며 제정신을 차렸다.
"도, 돌아갈게. 뒷정리를 부탁해"
유키노시타는 고개를 숙이면서 재빠르게 가정과실을 나갔다.
"………뭐어, 먹기만 했으니까 어쩔 수 없나"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나는 혼자서 외롭게 뒷정리를 했다.
후일, 답례라는 이유로 유이가하마에게 그 후에 집에서 만들었다고 추정하는 쿠키를 받았다.
고맙게 먹었더니, 유키노시타의 지도의 성과가 마치 거짓말처럼 무산됐다. 유이가하마, 무서운 녀석.
④듣지 않는 사람도 있거니와, 듣는 사람도 있다.
유이가하마 쿠키 사변(멋대로 내가 명명)에서 약 일주일. 어느샌가 유이가하마는 봉사부 부실에 녹아들게 됐다.
『유키노-옹!』
유이가하마는 유키노시타를 그렇게 부르게 됐다. 마치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달라붙는 유이가하마에게 유키노시타는 곤혹해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속셈이나 타산을 느끼지 않는 유이가하마의 태도는 지금까지 없었던 타입인 모양이었다.
덧붙여 나는 여전히 힛키였다. 왜 힛키야, 라고 유이가하마에게 물었더니 『그치만 힛키구』라고 들었다. 힛키 쿠키 여심은 복잡기괴-.
――뭐어, 둘째치고. 지금은 점심시간.
오늘은 비가 내려서 나의 베스트 플레이스를 쓸 수 없었다. 따라서 지금 어쩔 수 없이 교실에서 빵을 먹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자갈 모자를 쓰고 있는(그리고 벗을 수 없는) 나는 교실 상태를 내려다본다. 그러자 교실 안에도 여러 인종이 있다는걸 눈치챈다.
거, 앞쪽에 있는 녀석들은 몬○하고 있고. 카리카리피를 쓰라고 너네. 뒤쪽에선 여자즈가 걸즈 토크로 여죠여죠하고 있고. 줄여서 죠죠.
그리고 창측에는 교실 안――이라기보다 학년 상위 카스트가 형성되어 있다. 특히 화려함을 보이는건 두 명.
한 명은 하야마 하야토. 축구부 부장이고 학년 성적 2위, 거기다 산뜻한 계열 얼짱이라는 치트 존재다. 마치 마루스케 소지한 가브가 용춤을 쓰는듯한 풍체마저 떠돈다. 아니, 떠돌지 마.
그리고 다른 한 명이 미우라 유미코. 금발을 세로롤로 만들어, 기생처럼 어깨를 드러내고 보일듯 하면서 보이지 않을 위치까지 치마를 들어, 그 허벅다리가 눈부시……뭐, 그건 내버려두고. 미우라는 자신의 매력을 연구한것처럼 빛을 뿜고 있다. 하지만 너무 화려해서 나는 거북했다.
그 둘이 대화하는것 만으로 그건 이미 화려함이 붕 뜨게 된다.
"얘- 하야토-. 나아 오늘 서티원에서 초코랑 쇼콜라 더블 먹고 싶어-"
"그거 둘 다 초코잖아(웃음)"
"에- 전혀 다르구. 라고할까, 엄청 배고프구"
이 무슨 리얼충. ……이 무슨 리얼충(2번째). 그나저나 서티원이라고 들으면 얼마 후 미래의 히라츠카 선생님의 나이가 생각나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니 어느샌가, 미우라는 하야마에게 권유를 거절받고있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유이가하마에게 화제를 돌린다.
"나아 아무리 먹어도 살 안찌구. 아- 오늘은 역시 먹을 수 밖에 없네. 그치, 유이?"
"정말로 유미코는 스타일 좋지-. 그치만 오늘은 좀 예정이 있으니까……"
"그치? 이젠 먹으러 가는 수 밖에 없지-"
미우라의 발언에 점점 웃음이 일어나지만, 되게 터무니 없네, 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유이가하마의 말이 통하지 않는다. 들을 귀가 없다, 라는게 말이 딱 맞는다.
터무니 없는 얘기는 계속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유이가하마가 미우라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그리고나서 불온한 분위기가 떠다닌다. 여왕님이냐.
분위기를 감지한 하야마가 재빨리 개입해서 일을 제제해줬지만, 그 뒤에서 유이가하마가 안도로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
그러자 유이가하마랑 눈이 마주쳐버렸다. 가만히 쳐다본 후, 무언가를 결의한듯 심호흡을 했다.
"저기……나, 점심에 좀 갈데가 있으니까……"
유이가하마의 말에 미우라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아, 그래? 그럼 돌아올때 그거 사와, 레몬티. 나아 오늘 마실거 갖고 오는거 깜빡했어――"
이래저래 이유를 말하는 미우라에게 유이가하마가 황급히 대답한다.
"에, 에, 그게 나 돌아오는거 5교시가 된다고 할까, 점심시간 내내 없을거니까 좀……"
유이가하마의 말에 미우라의 얼굴이 경직했다. 마치 기르던 개한테 손을 물린듯한 그런 표정이다.
그리고나서 미우라의 불만이 쌓여갔다. 유이가하마가 주절주절 변명할때마다 짜증이 늘어간다.
"그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말해"
미우라가 짜증스럽게 말을 했다. 그걸 보고 유이가하마가 작아진다.
『――――――――』
그 광경이, 유이가하마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진것 같았다.
"――윽!"
먹고있던 빵이 갑자기 맛이 없어졌다.
"……용건이 있던거 아니었냐?"
나는 어째선지 일어서서 말을 걸었다. 내 말에 미우라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하아? 부외자는 빠져있어"
"힛키……"
유이가하마가 불안하다는 눈으로 나를 본다. 에, 나 그렇게 의지 못해? 의지 못하겠지!
"뭐, 확실히 부외자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짜증나게 만들면 이 빵이 맛없어진다고. 안 그래도 맛이 없는데"
이 빵, 그냥 단맛일 뿐이었다. 좀 더 MAX 커피처럼 심오한 강렬한 단맛이……아니,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럼 교실에서 나가면 되잖아!?"
미우라가 확실하게 분노를 보이며 위협한다. 까놓고 말해 엄청 무섭지만, 어째선지 물러설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다.
"어째선데. 이 교실은 네 소유물이 아니야. 그리고――유이가하마도 네 소유물이 아냐"
"윽!"
유이가하마가 놀라서 눈을 크게 뜬다. 미우라도 허를 찔린듯 입을 다문다.
"뭐, 차분하게 들으면 유이가하마도 설명해줄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그것 뿐이다"
손을 휙휙 흔들고 그 자리를 떠나려고 발꿈치를 돌리니, 마침 유키노시타가 교실로 들어오려던 참이었다.
"……뭐하는거냐, 너"
"아무것도 아니야"
무심코 나온 의문이 바로 부정당한다. 아무것도 아니긴 무슨, 이라고 하지 않을 순 없다.
――그게, 유키노시타. 양 볼을 손으로 마사지 하고 있는걸. 얼굴을 엄청 새빨갛게 만들면서. 아무리 나라도 걱정이 될 수준이다.
"……어이, 정말로 괜찮아?"
"……………………아우"
성큼성큼 말없이 내 옆을 지나간다.
"엣, 자, 잠깐 유키농!?"
유키노시타는 유이가하마의 손을 잡고 억지로 교실에서 나갔다.
"……뭐였던거야, 저건"
내 중얼거림에 어째선지 미우라가 끄덕였다.
그날 방과후, 부실로 가려고 했더니 유이가하마가 불러세웠다.
"고마워, 덕분에 그 후에 유미코랑 화해할 수 있었어. 유미코도 고맙다고 전해달래"
"……그러냐, 잘 됐지 않아?"
유이가하마는 내 말에 볼을 부풀리면서 뿌- 뿌- 거렸다.
"그렇게 비뚤어지게 말하는거 진짜 귀엽지 않아!"
바보자식, 우리 집안에서 귀여운건 코마치 뿐이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는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니, 유이가하마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뭐야?"
"그치만 멋있었어, 힛키"
"안과 가라"
나의 즉답에 유이가하마가 분노의 표정을 짓는다.
"――남이 모처럼 칭찬했는데, 뭐야 그거!? 힛키 바보바보!"
시끄러, 그런거 부끄러운게 당연하잖아 말하게 하지마 부끄러워.
나는 아우성치는 유이가하마를 뒤로 빠른 걸음으로 부실로 향했다.
――그 무렵, 부실에서는.
"……………………………오늘 하치군, 멋있었어"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볼에 손을 대며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⑤즉, 자이모쿠자 요시테루는 생략된다.
그, 뭐냐. 같은 외톨이로서 동정을 하자면, 이 한마디로 집약된다.
……나의 봉사부 부원으로써 활동으로 첫 담당단골이 생겼다.
하지만 그……딱히 나쁘지 않구만.
⑥결론으로, 토츠카 사이카는 완전 귀엽다.
"오빠, 준비 다 됐어!"
아침, 준비를 마친 코마치가 기운차게 부른다. 기운의 G는 시작의 G인가. 장난치는거냐아!
"아니, 오빠가 커피 다 마실때까지는 기다려"
약간 뇌내 소재에 질질 끌리면서 말을 한다. ……그나저나 설탕 상당히 넣었을텐데, 아직 MAX커피보다는 못한다. 역시 MAX커피의 G(격하게 단맛)는 레콩기스타여…….
커피의 단맛에 불만을 품으면서 다 마신 나는 사랑스런 동생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럼 가볼까"
"응!"
가방을 들고 집을 나오니 뒤에서 코마치가 문을 잠궜다. 나는 그 사이에 현관에 놓인 자전거 준비를 한다.
――그래, 동생의 소원이란, 친오빠를 이동수단으로 부려먹는 일이었다. 유행하지 안는 말로 하면 앗시-. 요즘 힛키니 앗시니 『중간에 ㅅ 들어가는』어감으로 불리는게 많구만. 하핫. 이런, 이건 틀려먹었어.
내가 준비를 마치고 자전거에 탈 무렵에는 코마치도 뒤에 올라탔다. 제대로 내 허리에 손을 감고 껴안아온다.
"오빠, 렛츠고-!"
"예이예이"
체념한 대답을 하면서 자전거를 움직인다. 너희들, 자전거 2인승은 도로교통법에서 딱 금지되어 있으니까, 흉내내면 안 된다! 코마치는 천사니까 한 사람으로 세지 않으니까 괜찮아!
달려가고 있을때 코마치가 말을 건다.
"이번에는 사고 일으키지마, 지금 코마치도 타고 있으니까"
"나 혼자일때는 상관없는거냐……"
"증말, 삐치지마,오빠. 가끔 썩은 물고기같은 눈으로 멍때리는 일이 있으니까 걱정이야. 오빠는 코마치한테 사랑받는다구우"
그렇게 말하면서 내 등에 얼굴을 빙글빙글 비벼댄다. 약삭빠른게 느껴지지만 귀여우니까 용서한다. 줄여서 귀욤.
"아- 예이예이 나도 사랑해요-. 뭐, 조심할게"
"특히, 코마치가 타고 있을때는 조심해. 꽤 진지하게"
"옹야……"
기술과 단차있게 달릴까 생각했지만, 전에 했을때는 내 뒤에서 엉덩이가 아프다니 상처입는다니 큰소리로 아웅거려서 절대로 하지않는다. 덕분에 나는 주위로부터 백안시 받는 꼴이 됐고…….
뭐, 안전운전을 마음가지자.
――나는 고등학교 입학 처날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입학식에 새로운 생활에 지나치게 두근거려서 1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가버린게 실수였다.
7시 쯤이었나, 고등학교 근처에서 개 산책을 하고 있던 여자애의 손에서 줄이 벗겨져, 거기에 운이 나쁘게도 돈 많아 보이는 리무진이 다가왔다. ……정신을 차렸을때는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결과, 구급차로 수송받아 입원했다. 이게 나중의 외톨이 생활의 방아쇠가 된다――아니, 사고가 없어도 나는 외톨이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사고로 인해 삐까뻔쩍 새차였던 자전거는 대파. 내 왼다리는 균열골절을 해버렸다. 상처는 사고에 비해선 그리 심하지 않았다는게 다행이지만, 입원한 동안 가족 말고 아무도 내 병문안을 오지 않았던건 구제할 길이 없었다.
아침부터 어두컴컴한 기분에 잠겨있으니 코마치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말야, 그 사고 난 다음에 그 강아지 주인이 집에 답례하러 왔어"
"에, 뭐야 그거 나 몰라"
"오빠 자고 있었는걸. 그래서, 사온 과자는 코마치가 책임지고 먹었습니다"
"……"
과자를 코마치의 위장에 슈우우우우웃!! 초! 익사이팅!! 하지만 나는 안 먹었어!!
내 상태따위 신경쓰지 않고 코마치는 계속 말한다.
"그치만 말야, 같은 학교니까 만난거 아냐? 학교에서 고맙다는 말한다고 했는데?"
……앙?
무심코 브레이크를 걸었다. 아읏! 비명을 지르며 코마치가 내 등에 머리를 박는다.
"갑자기 뭐야-?"
"그런건 먼저 말해. 이름 같은거 안 들었어?"
"음-……미안, 잊어먹었어. ――아, 이제 학교 도착이야. 코마치 갈게"
그렇게 말하고 코마치는 자전거에서 뛰어내려서 교문으로 달려갔다.
"도망쳤겠다……"
푸념을 토하면서 발굼치를 돌리니, 등 너머로 코마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고마워-!"
손을 휙휙 흔들며 나도 학교로 가기로 했다.
……그 강아지 주인이 있는 학교로.
× × ×
점심 시간이 됐다. 오전 중에 체육이 있던 탓인지 배가 고파졌던 나는 평소보다 빠른 걸음으로 매점으로 갔다.
특별동 1층에 있는 매점에서 점심을 산 나는 대각선상에 있는 늘 점심 먹는 스폿으로 향한다.
테니스 코트에선 여자 테니스하는 애가 자주연습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보고 있으니 늘 벽을 마주보며 치고는 돌아오는 공을 바지런하게 쫓아, 또 친다. 그걸 쳐다보면서 점심 시간이 시작된다.
"……후우"
점심을 다 먹고 한숨을 쉬고 팩 레몬티를 마신다. 거기서 바람이 불었다.
……바람 방향이 변했나. 그리고 그 바람을 타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힛키잖아"
불어오는 바람에 치마자락을 누르며 나타난건 유이가하마였다. 라고할까 내 별명 부르는걸로 바로 알지만.
"왜 이런데 있어?
"평소 여기서 밥 먹어"
"헤- 그렇구나. 왜? 교실에서 먹으면 되잖아?"
"……"
진심으로 이상하다는듯 말하고 있어…… 그게 되면 여기서 안 먹어. 좀 알아주라고 진짜……! 이건 화제를 바꿔야 한다.
"그보다, 너는 왜 여기에 있는건데?"
"실은 말야! 유키농이랑 게임으로 가위바위보 져서, 벌게임?"
내 질문에 유이가하마가 즐거운듯 말한다. 하지만, 내 표정은 어두워진다.
"……나랑 얘기하는겁니까…………"
심해라, 꿈도 희망도 없어……죽을까.
"아니야아! 진 사람이 주스 사오는것 뿐이야아!"
유이가하마가 황급히 붕붕 손을 흔들며 부정한다. 위험해라, 하마터면 죽을뻔했어…….
안심하고 있으니 유이가하마가 내 옆에 앉았다.
"유키농, 처음에는 떨떠름해했는데, 자신 없구나? 라고 했더니 승부해줬어"
쿡쿡 웃으면서 유이가하마가 말한다. 뭐, 유키노시타는 승부가 관련되는 순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발동하니까.
"그치만, 유키농이 이겼을때 말없이 작게 이겼다는 포즈 잡는거 무지 귀여워"
무지 귀엽다라. 뭐, 학년 1위 미녀라던가 알기 쉬운 이명이 붙을 만큼 정말로 미인이니까 뭘 해도 귀엽겠지만, 가끔 나라도 숨을 삼킬정도로 귀여울때가 있지, 그 녀석.
『…………………………………알아줘, 바보』
『――하치군, 정말!?』
『…………………아우』
여기 최근에 특히 귀여웠던 유키노시타의 언동을 떠올리고 있으니, 왠지 무척이나 부끄러워졌다.
"――힛키, 왜 그래?"
유이가하마가 쳐다본다. 핫, 이런 평정을 꾸려야지.
"아, 아니. 내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때 받은 과자를 동생이 전부 먹었다는걸 오늘 아침에 듣고 슬퍼졌거든"
내 말에 어째선지 유이가하마가 말없이 나에게 시선을 보낸다.
"……저기, 힛키. 그 교통사고는 언제 이야기?"
"입학식때야. 자전거를 타고 있더니 여자애가 개 목줄을 놓쳐서. 그래서 그 개가 차에 치일뻔할때 몸을 던져서 구했어"
내 말에 유이가하마가 조심조심 묻는다.
"힛키는 그 애를 기억하지는 않아?
"아니, 아파서 그럴짬이 없었고. 그냥 잠옷 입고 있던건 기억해"
"왜 그것만 기억해!? 확실히 그 때는 맨얼굴이었구…… 머리도 염색하지 않았고…… 인상 옅었던걸까……"
유이가하마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중얼거리고 있다. 전혀 안 들리는데.
"왜 그래?
"아무것도 아냐……. 아, 어-이! 사이야-!"
유이가하마가 테니스코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을 건다. 그에 따라 돌아보니, 방금전까지 자주 연습을 하고 있던 여자 테니스 치던 애가 땀을 닦으면서 이쪽으로 다가왔다.
"사이야, 연습?"
"응. 우리 부, 굉장히 약하니까 점심도 연습해야지……. 점심시간도 쓰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해서 최근에 겨우 OK를 받았어. 유이가하마랑 히키가야는 여기서 뭐해?"
"아니, 딱히 아무것도-?"
그렇게 말하며 유이가하마는 동의를 구하며 나를 돌아본다. 아니, 너 심부름 도중이었잖아. 싫다-. 나도 밥 먹었고. 세 걸음도 걷지 않앗는데 잊어버리다니 심하구만.
하지만 사이야 라고 불린 여자애는 『그렇구나』라고 말하고 쿡쿡 웃었다.
"사이야, 수업에도 테니스를 하는데 점심연습도 하는구나. 힘들겠다"
"으응, 좋아서 하는거니까. 아, 그러고보니 히키가야, 테니스 잘 하지"
"에"
뜻밖의 화제에 나는 얼빠진 목소리 밖에 나오지 않는다. 에, 그거 처음 듣는 정보인데요. 나, 무아의 경지에 든거야? 아니면 매혹 포인트는 우는 점이였던거야?
……라고할까, 왜 이 여자애는 내 이름을 아는거야?
여러 의문이 솟을때, 유이가하마가 감탄했다는듯 숨을 내쉬었다.
"헤에, 그래?"
"응, 폼이 되게 깨끗해"
"가, 감사. ……그래서, 누구야?"
마지막은 작은 목소리로 유이가하마에게만 들리도록 말했다. 그랬더니 가하마 씨는 내 배려를 깨부수고 큰 소리를 질렀다.
"하아아!? 같은 반이잖아! 그보다, 체육 같이 했잖아!? 왜 이름 모르는거야!?"
"너조차도 최근에 알게된 내가 같은 반의 여자를 기억할리 없잖아.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제니퍼 씨는 기억하지만 말야"
아, 이런. 착한 애 같은데 기분 상하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해서 사이야를 보니, 눈동자를 적시고 있었다. 이, 이런. 너무 귀여워…….
"아, 아하하…… 역시 내 이름 기억 못하는구나……. 같은 반인 토츠카 사이카야"
"미안, 나,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으니까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없었어. 이 녀석의 이름도 기억 못하고"
"이유가 슬퍼!? 아니, 그보다 적당히 좀 외워!!"
가하마 씨에게 머리를 맞았다. 하지만, 이런 대화도 부럽다는 얼굴로 토츠카는 쳐다본다.
"유이가하마하고는 사이가 좋구나……"
"에, 에에!? 전혀 사이 좋지 않아아!"
토츠카의 말에 유이가하마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면서 부정했다. 뭐, 상관없지만.
유이가하마의 태도에 토츠카는 쿡쿡 웃고 나를 돌아본다.
"히키가야. 나는 남자인데……. 그렇게 약해보여?"
"뭐……라고……?"
내 움직임과 사고가 정지한다. 끼끼끽, 하고 녹슨 수레바퀴처럼 천천히 유이가하마를 바라보니 한숨을 쉬면서 수긍하고 있었다.
진짜로? 거짓말이지. 아니아니아니아니.
의심스런 내 표정을 눈치챘는지 토츠카가 뺨을 붉히면서 손을 반바지로 뻗는다. 그 움직임이 묘하게 요염하다.
"……증거, 보여줘도 되는데?"
……………………………………………………………………………………………………………………………. 좋아, 나는 토츠카를 믿자.
"미안. 몰랐닥는 해도 불쾌하게 만들어서"
"으응, 딱히 괜찮아"
토츠카는 미소로 나에게 말한다. 젠장, 귀엽잖아.
"그럼 슬슬 돌아갈까"
내 말에 유이가하마는 시계를 보고 경악한다.
"아, 아아아아!? 나, 나 좀 돌아갈게!"
그렇게 말하고 굉장한 속도로 달려갔다. 아아, 그러고보니 심부름 왔었지. 유키노시타가 부실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걸 상상하면 조금 가엾게 생각했다.
"그럼 우리만 교실로 갈까?"
"그렇군"
후일, 체육 시간에 토츠카와 함께 테니스 수업을 한 나는 행복한 기분이――그게 아니라, 토츠카에게 상담을 받게 된다.
× × ×
"무리야"
유키노시타는 입을 열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아니, 무리라니. 너 말야-"
"무리인건 무리야. ………………………………………하치군 바보"
마지막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볼을 부풀리며 또 귀여운 유키노시타 모드가 되어 있었다.
토츠카에게 테니스부로 권유 받은걸 유키노시타에게 말한게 일의 발단이다.
나로써는 이야기를 잘 몰고 가서, 봉사부를 퇴부하고, 거기다 테니스부에 입부하는걸 보여주고 조금씩 페이드 아웃할 생각이었는데, 썩둑 거절당했다.
"하지만 말이다, 내가 있을 필요성은 그렇다치고, 강심제로서 새로운 부원을 들인다는 토츠카의 생각 자체는 잘못된게 아니지"
내 말에 유키노시타가 턱에 손을 댄다.
"흠, 확실히 토츠카의 생각 자체는 잘못되지 않아. 그저 집단행동을 못하는 히키가야를 권유한게 잘못이야"
"으윽"
내 반응에 유키노시타는 쿡 웃으면서 말한다.
"뭐, 너라는 공통의 적을 만들어서 일치단결한다는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구나"
먼눈을 하면서 더욱 말한다.
"하지만 배제하기 위한 노력을 할 뿐이지, 그것이 자신의 향상으로 가지는 않아. 그러니까, 어쨌든 해결은 되지 않아. 출처는 나"
"과연……출처라고?"
"그래. 나, 중학생때 해외에서 이리로 돌아왔어. 전입했을대, 학교내 여자는 나를 배제하려고 활개를 쳤어. 그리고, 누구 하나 나에게 지지 않도록 자신을 드높이는 노력을 하지 않았어……추악해"
왠지 유키노시타의 지뢰를 밟은걸지도 모른다. 시커먼 감정이 등뒤에서 배어나오는듯한 착각을 한다.
"뭐, 너는 귀여우니까. 그렇게 되는건 어쩔 수 없는거 아냐?"
"귀엽!? …………몰라"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며 고개를 홱 돌렸다. 또 귀여운 유키노시타 모드다. 그냥 계속 그대로 있으면 좋을텐데.
토츠카도 뒤지지 않게 귀엽지이……여자애였으면 구혼했을텐데.
"토츠카를 위해서도 어떻게든 테니스부가 강해지지 않을까나. 너라면 어떡할래?"
내 말에 눈을 끔뻑거리며 조금 미소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모두 죽을때까지 뛰고나서 죽을때까지 휘두르고, 죽을때가지 연습, 일까"
"무서워"
반쯤 진심으로 식겁하고 있으니 부실 문이 열렸다.
"얏하로-!"
홀가분해 보이면서 머리 나쁜 인사가 들려온다. 목소리 주인은 물론 유이가하마. 얼빠진 미소를 지으며, 고민따위 전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뒤에는 힘없이 심각해보이는 표정을 지은 사람이 있었다.
자신 없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건 토츠카였다.
"아…… 히키가야!"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파앗, 꽃이 피는듯한 미소를 나에게 보여줬다. 귀여워.
토츠카는 나에게 다가와서 내 소매를 잡았다. 이런, 엄청 귀여워. 진짜 갖고 집에 가고 싶어.
"히키가야, 여기서 뭐해?"
"아니, 나는 부활동인데……너야말로 왜?"
"오늘은 의뢰인을 데려와줬어, 흐흥"
유이가하마가 가슴을 젖히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 다음에 유키노시타에게 부원이 아니라는 소리를 듣고 지금까지 자신만만한 행동이 한순간에 와해되었지만, 뭐 그건 둘째치고.
――토츠카의 의뢰인 『테니스부를 강하게 만드는것』은 이래저래 해서 봉사부의 의뢰로서 받아들이게 됐다.
× × ×
다음날 점심시간. 나는 토츠카와, 어째선지 따라온 자이모쿠자와 함께 테니스 코트로 향하니, 이미 유키노시타와 유이가하마가 대기하고 있었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지, 도시락통을 빨리 치우고 우리들을 돌아본다.
"그럼 시작할까"
"자, 잘 부탁해요"
"우선, 토츠카에게 치명적으로 부족한 근력을 올리자. 일단 팔굽혀펴기를 죽기 일보직전까지 힘내서해봐"
시작부터 절호조군요, 유키노시타 씨.
"뭐, 금방 근육이 붙을리는 없지만, 기초대사를 올리기 위해서도 필요한거야"
"기초대사?"
유이가하마가 명백하게 뇌내로 한자변환을 못하는 태도로 중얼거린다. 여자는 다이어트에 여념이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기초대사를 모른다는건 의외다.
"요컨대 운동하기 위해서 몸을 바꿔간다는 거야. 기초대사가 오르면 칼로리를 소비하기 쉬워져. 간단하게 말하자면 장비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쓴 적이 없었던 전지가 쓰이게 되어서 파워업, 이라는 이야기지"
무심코 내가 말을 한다. 그러자 유키노시타가 설명하고 싶었는지 조금 유감스러워하고 있었다.
"칼로리를 소모하기 쉬워져……즉, 살빠진다는거야?"
유이가하마의 눈이 번뜩 빛난것 같다. 무심코 주춤한다.
"아아, 뭐, 그렇군"
"그럼 해볼게"
"나도 할래!"
어째선지 토츠카 이상으로 기합을 넣기 시작한 유이가하마는 토츠카와 함께 팔굽혀펴기를 시작한다.
"응……큿, 후으, 하앗"
"우으, 큭……응앗, 으으응"
소리죽여 참는 숨결이 새어나온다. 얼굴을 찌푸리면서 땀을 흘리고, 뺨은 상기되는 모습은……무척이나 그거합니다. 궤씸합니다.
특히 유이가하마는 팔을 굽힐때 체육복 옷깃에서 풀어져서. 그게, 무척이나 궤씸합니다. 읏차, 빤히 쳐다보면 위험하지.
그러자, 지금까지 가만히 정관을 하고 있던(대화에 섞이지 않았다는게 올바를 것이다) 자이모쿠자가 불쑥 중얼거린다.
"하치만……어째서일까. 본관은 지금 무척이나 평온한 기분이다……"
"우연이군, 나도 같은 기분이다"
이따끔 몰래 쳐다보고 있으니, 등에 냉수를 끼얹은 듯한 지독하게 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네도 운동해서 그 번뇌를 쫓지 그러니?"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경멸하는 눈동자를 하는 유키노시타가. 왠지 무척이나 무섭습니다.
"흐, 흠. 훈련을 빼먹지 않는게 전사의 마음가짐이지. 본관도 하기로 할까!"
"뭐, 뭐어 운동부족은 무서우니까!"
유키노시타에게 겁을 먹은 자이모쿠자가 팔굽혀펴기를 시작한다. 나도 따르듯이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유키노시타가 굳이 내 정면으로 향해, 미묘하게 치마 속을 가드하면서 웅크려 앉았다. 허벅다리가 굉장히 눈부십니다.
"……"
왜, 왠지 엄청 보여지고 있어. 그 표정은 방금전처럼 경멸하는 눈이 아닌, 어딘가 삐친듯한 인상을 받았다.
"유, 유키노시타……씨?"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내가 물으니, 유키노시타가 불쑥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렇게나 큰게 좋아?"
"하?"
"큰게 좋아?"
무슨 이야기야……아니, 방금전의 흐름으로 보면 딱봐도 가슴 이야기구만, 이거.
"아, 아니, 그건……"
"됐어. ……하치군 색골"
아니, 그러니까 나는 하치만이지 하치군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더니, 또 삐친 얼굴로 노려본다.
"거유 좋아하는 히키가야, 계속 봐줄테니까 점심시간이 끝날때까지 팔굽혀펴기를 하렴"
"엑"
결국, 가까이서 감시당하면서 점심시간이 끝날때까지 계속 팔굽혀펴기를 했던 나는 심야에 근육통으로 몸부림치게 됐다.
⑦가끔 러브코메디 신은 좋은 일을 한다.
이러저러해서 하루가 지나간다. 우리들의 테니스는 다음 페이스로 돌입하고 있었다.
뭐, 요컨대 기초훈련을 끝내고 마침내 공과 라켓을 사용한 연습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습을 하는건 토츠카 뿐이다. 토츠카만이 귀신교관……그러니까 유키노시타의 지도 하에 한결같이 벽치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테니스부 상대로 연습을 할 수 있을리 없어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키노시타는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으면서 때때로 생각났다는듯 토츠카의 상태를 보고는 격구를 날리고, 유이가하마는 그 유키노시타의 옆에서 자고 있었다. 놀다 지친 애냐. 그리고 자이모쿠자는 안정된 필살마구 연구.
나는 코트 구석에서 멍하니 개미 관찰을 하고 있다. 꽤 즐겁다. 너무 글러먹었다.
개미에서 눈을 떼니, 어느샌가 일어났던 유이가하마가 유키노시타의 지시로 공이 든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그걸 계속 휙휙 던지고는 토츠카가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유이가하마, 조금 더 이쪽이나 저쪽처럼 힘든 코스로 던지렴. 안 그러면 연습이 되지 않아"
유키노시타가 지시한 힘든 방향으로 던져진 공을 토츠카가 거친 숨을 내쉬면서 쫓아간다.
그나저나 유이가하마가 던지는 공이 지나치게 적당하다. 던치면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날아가니까, 토츠카가 포착하려고 달리고――엇, 20개째 부근에서 토츠카가 넘어진다.
"우와, 사이야 괜찮아!?"
유이가하마가 손을 멈추고 네트로 달려간다. 토츠카는 까진 다리를 문지르면서 미소를 띄우고 괜찮다고 말했다. 기운차서 귀엽다.
"괜찮으니까 계속해줘"
토츠카의 말에 유키노시타는 『그래』라고만 짧게 대답하고 유이가하마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학교 쪽으로 사라졌다.
유키노시타의 반응에 토츠카가 불안하듯 나에게 물어온다.
"호, 혹시 질려버린걸까……"
"괜찮아, 토츠카. 유이가하마의 요리에 어울려주는 인내심이 강한 유키노시타아. 아직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토츠카는 내버리지 않아"
"무슨 의미야!?"
"커헉"
유이가하마가 나에게 테니스 공을 던진다. 반응이 늦어서 직격했다. 왜 이럴때만 컨트롤이 좋은겁니까아…….
공을 유이가하마에게 건내고 나는 토츠카를 돌아본다.
"조만간 돌아올거야. 계속해도 된다고 생각해"
"……응!"
기운차게 대답한 토츠카는 다시 연습에 돌아갔다. 약한소리 하나 하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었지만, 먼저 유이가하마가 손을 들었기 때문에 중간부터 내가 교대하려고 했을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테니스하고 있잖아, 테니스!"
꺄아꺄아 떠드는 목소리가 들려서 돌아보니 하야마와 미우라를 중심으로 한 일대세력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게 보였다. 상대편도 나와 유이가하마의 존재를 깨달은 모양이다.
미우라는 나와 유이가하마를 힐끔 본 후에 가볍게 무시하고 토츠카에게 말을 걸었다. 덧붙여 자이모쿠자는 안중에 없는 듯하다.
"얘, 토츠카-. 나아도 여기서 놀아도 돼?"
"미우라, 나는 딱히 놀고 있는게 아니라……"
"어? 뭐? 안 들리는데"
미우라의 말에 토츠카가 밀리고 만다. 왜 이 사람은 말투가 험한거야. 나도 입을 다물 자신이 있어.
하지만 토츠카는 없는 용기를 쥐어짜서 다시 말을 한다.
"여, 연습이니까……"
하지만 미우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흐-응, 하지만 말야. 부외자 섞여있잖아. 그렇다는건 딱히 남자 테니스만 코트를 쓰는건 아니잖아?"
"그, 그건 그렇지만……"
"그럼 딱히 우리가 써도 되지 않아? ――얘, 어때?"
미우라의 말에 토츠카가 난처하다는듯 나를 본다. 나는 내심 쫄면서도 결단을 내리고 미우라에게 말한다.
"……미안하지만 이 코트는 토츠카가 부탁해서 쓰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은 무리야"
"하? 그래서? 너 부외자인데 쓰고 있잖아"
"우리는 토츠카의 연습에 어울리는거야. 그러니까 토츠카가 연습하게 해줘, 부탁한다"
어디까지나 연습이라는걸 강조하니, 미우라는 조금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음-……그래도 우리도 테니스 하고 싶고……"
미우라의 말에 하야마가 끼어드는 형식으로 말을 잇는다.
"자, 다 같이 하는 편이 즐겁잖아. 그런걸로 하면 괜찮지 않을까?"
――하야마의 말에 무언가가 겹쳐진다. 잊고 있는, 무언가가.
『―――――――――』
단번에 혈류가 역류하는 감각이 들었다. 하야마의 말을 허용할 수 없다. 허용할 수는 절대 없다.
"……확실히, 다 같이 하는 편이 즐겁겠지. 하지만, 지금 토츠카는 부활동 연습을 하고 있어. 너도 부활동은 진지하게 하고 있잖아? 토츠카도 마찬가지야"
나 답지 않다. 전혀 나 답지 않은 말이 나온다. 이렇게 정면으로 부딪치는 타입이냐, 나는.
"그건……"
하야마가 말을 머뭇거린다. 역시 자신의 부활동을 연관시키면 사정이 나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거기다, 하야마는 일을 망칠 생각은 없을테지. 아까전에 모두를 타이르는 태도에서 판단한거지만, 어째선지 나에게는 확신같은 자신이 있었다.
이걸로 먹히나,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나른한 목소리가 끼어들어온다.
"얘-, 좀 하야토-. 뭘 웅얼거리는거야? 나아 테니스하고 싶은데"
미우라가 하야마를 재촉한다. 남의 얘기를 들어, 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지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테니스를 하고 싶은 기분이겠지. 모르겠다만.
하지만, 이 약간의 시간이 하야마에게 생각할 틈을 주고 말았다.
"음-, 그럼 이렇게 하자. 부외자끼리 승부. 이긴 쪽이 이후 점심시간에 테니스 코트를 쓰는걸로"
"윽!"
물론 토츠카의 연습에도 어울릴게, 라고 덧붙인다. ……일부의 틈도 없는 로직에 이번에는 내가 당황했다.
"테니스 승부? ……뭐야 그거 엄청 재미있어보여"
미우라가 호전적인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동시에 구경꾼 녀석들도 들뜬다.
승부라는 열기가 열광과 혼돈을 불러, 제 3페이즈로 이행되고 말았다.
아, 폼잡고 말했지만 테니스 코트를 걸고 승부한다, 는것 뿐이잖아.
× × ×
아까전에는 다소 각색해서 열광과 혼돈이라고 표현했지만, 지금은 과장없는 상태로 변해 있었다.
테니스 코트에는 이미사람이 가득차 있었다. 야노츠카이에 일을 시키면 아마 이백을 넘는 수치를 낼 것이다. 하야마 그룹은 물론 어디에서 이야기를 들은건진 모르겠지만 다른 녀석들도 만이 몰려왔다.
아마, 태반이 하야마의 친구, 그리고 팬일 것이다. 2학년이 주를 이루지만 그 중에는 1학년이나 3학년도 섞여있다. 인망 너무 좋아!
그 혼란 속에서 하야마 하아토는 당당하게 코트 중앙으로 걸었다. 이 정도의 구경꾼이 둘러싸도 조금도 주춤한 모습이 없다. 이 녀석, 익숙해져있어.
그러는 한 편 우리들은 완전히 분위기에 먹혀이었다. 까놓고 말해 사람에 취해있다. 아아, 기분 나빠 더워 죽겠어…….
하야마는 이미 라켓을 쥐고 코트에 서서 이쪽에서 누가 나올지 흥미깊게 쳐다보고 있었다.
"있잖아, 힛키. 어떡할거야?"
"음? 아아……"
불안한 표정의 유이가하마에게 질문받고 나는 토츠카를 힐끔 본다. 그런 토츠카는 자기 의지랑 상관없게 끌려간 토끼처럼 되어 있었다.
내 옆으로 걸어오는데도 흠칫거리며 안짱다리로 걷고 있다. 아아, 정말 엄청 귀여워. 갖고 가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건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비호욕을 돋우는 모습에 『왕자님!』이나 『사이야』라는 여자의 드샌 성원이 날아든다. 토츠카는 그 성원을 들을때마다 움찔움찔 어깨를 떤다. 역시 엄청 귀엽다.
"토츠카는 나올 수 없어……"
하야마는 부외자끼리 승부라고 했다. 즉, 토츠카와 테니스코트를 건 승부라는 셈이다.
"자이모쿠자……는 논외로 치고"
"하치만!?"
자이모쿠자가 갑갑한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시끄러워, 필살마구가 완성했다면 투입시켜주마.
여러 생각을 하고 있으니, 짜증으로 가득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빨리 시작 안해?"
시끄러워, 누구야. 라고 생각해 고개를 드니 거기에는 라켓을 쥔 미우라의 모습이.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하야마가 말을 건다.
"어라, 유미코 할거야?"
"하아? 당연하지. 나아가 테니스 하고 싶다고 한건데"
거기에서 하야마가 남자로 나오니까, 라는 이유로 미우라를 달래지만 미우라가 남녀혼합 더블로 하면 되잖아, 라며 생떼를 부려왔다. 이건 본격적으로 곤란하다.
"하치만. 이건 곤란하다. 너에겐 여자사람 친구는 전무. 모르는 여학생에게 부탁해본들 외톨이에 수수남인 너를 도와줄 사람은 없을테지. 어떡할거야?"
친절한 해설 고맙다, 자이모쿠자 군. 나중에 날려버릴테니까 각오해라. 하지만 사실이니까 반박을 못해!
내가 무심코 한숨을 쉬고 있으니, 연쇄 작용을 한건지 유이가하마랑 토츠카도 마찬가지로 한숨을 쉬었다.
"히키가야. 미안해, 내가 여자애였으면 좋았을텐데……"
그거다. 왜 토츠카는 여자가 아닐까……D메일을 보내면 여자애가 될지도 몰라.
"뭐, 시녕쓰지마"
나는 토츠카의 머리를 툭 건드리고 유이가하마를 돌아본다.
"그리고, 너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거든? 자기가 있을 곳이 있다면, 그걸 지켜야해"
유이가하마는 흠칫 어깨를 떨고, 면목없다는듯 입술을 문다.
――유이가하마는 나랑 달리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는 녀석이다. 미우라네와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은 적지 않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토츠카의 마음도 지키고 싶었다. 의뢰도 있고. 아니, 나 불량 부원이라서 의뢰같은건 아무래도 좋지만. 하지만 토츠카고.
정말, 어떡하지……생각을 하고 있을때.
"……………………………………………………………………………래"
군중에 지워질만큼 작은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아?"
"할거라고 했어!"
유이가하마가 새빨개진 얼굴로 으- 거리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관둬"
"왜!?"
"네가 할거야? 왜? 혹시 나 좋아하냐?"
"하, 하아!?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바보! 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보!!"
유이가하마가 엄청 험악하게 바보를 연호하고, 나에게 라켓을 빼앗아 붕붕 흔들기 시작했다.
"우오, 위험해!?"
진정이 됐는지 라켓을 내리고, 유이가하마가 중얼거린다.
"……나도 봉사부 들어갔고, 보통은 하잖아. 있을 곳이구"
하지만 저만큼 큰 소리로 떠들면 싫어도 상대의 귀에 들어간다. 미우라가 이쪽에 적의를 깃든 눈동자로 노려본다.
"유이-, 너 말야, 그쪽에 붙는다는건 우리랑 해보겠다는 소린데, 그런거면 돼?
미우라의 목소리에 구경꾼들이 웅성웅성 거리기 시작한다. 이런건 공개처형이나 다를바 없잖아.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고개를 들었다. 제대로 앞을 쳐다보고 있다.
"……꼭 그런것도 아니지만. 하지만 나, 부활동도 중요하니까!"
"……헤에, 그래. 부끄럽지 않도록 해"
새침하게 대답하지만 그 얼굴에는 미소가 띄워져 있다. 왜 이 녀석은 이렇게나 호전적인거야.
"옷갈아 입어.여자 테니스복을 빌린다면 너도 오지 그래?"
그렇게 말하고 미우라는 코트 옆에 있는 테니스부 부실을 턱으로 가리켰다. 긴장된 표정으로 유이가하마가 따라간다.
"저기 말야-, 히키타니"
"왜?"
말을 걸어온 하야마에게 되물으니 쓴웃음 지으면서 입을 연다.
"나, 테니스 규칙은 잘 모르거든. 더블이라는건 꽤 어렵고. 그러니까 적당하게해도 돼?"
"……뭐, 아마추어 테니스니까. 단순히 맞치기 점수 따기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아, 그거 알기 쉬워서 좋네"
하야마가 산뜻하게웃는다. 그에 비해 나는 수상쩍은 얼굴이 되어 있던걸지도 모른다. 체육 시간때 그렇게나 활약하는 녀석이 테니스 규칙을 모른다고는 생각이 안 가…….
잠시 기다리니 두 사람이 돌아왔다.
유이가하마는 얼굴을 붉히며 열심히 자락을 고치면서 걸어온다. 폴로 셔츠같은 유니폼과 스커트차림이다.
"왠지……테니스 차림 부끄럽네……치마 짧지 않아?"
"늘 그정도 잖아"
"뭣!? 늘 보는거야!? 밥맛밥맛밥맛!"
"아니, 딱히 네 치마에 흥미 없거든. 이 만큼도"
오히려 그 위의 두 봉우리 쪽이 훨씬 신경쓰입니다.
"그것도 그거대로 짜증나……"
납득이 가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유이가하마는 들어올리고 있던 라켓을 내렸다.
상대쪽을 보니 미우라의 폼이 무척이나 잘 잡혀 있었다. 혹시 경험자인가?
"유이가하마, 혹시 미우라는 테니스 했어?"
"응. 중학교때. 현 선발도 뽑혔을거야"
유이가하마의 말에 우헤에, 가 된다. 진짜냐. 구멍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더니 사각이 없는 팀이다.
하지만 뭐……하는 수 밖에 없나.
――그리고 서로의 준비가 다 됐을때, 마침내 시합개시가 성사됐다.
× × ×
시합은 불꽃튀게 일진일퇴의 공방을 보이며, 긴 랠리로 극도의 긴장상태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 균형을 미우라가 날린 서브가 무너뜨렸다.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공이 탄호나처럼 코트에 꽂힌다. ……뭐야 지금 그거?
미우라는 현 선발도 수긍하게하는 하이 레벨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이런, 이거 막혔잖아.
"으으……강하군"
무심코 중얼거리니 유이가하마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반대로 너는 전혀 공을 만지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아니, 테니스는 별로 한 적이 업어서, 아하하……
웃으며 넘기려는 유이가하마를 가만히 쳐다본다.
"……흐-응"
"뭐야 그거 기분 나빠"
굉장히 좋은 녀석이구나, 유이가하마. 해본적도 없는 경기라도 토츠카를 위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합을 할수 있다니. 이걸로 테니스도 잘 했으면 최강인데!
하지만 상대 페어는 그런건 신경쓰지 않았다. 유이가하마를 집중적으로 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습니까, 나 같은건 아웃오브 안중입니까, 그렇습니까, 평소대로지만!
"유이가하마, 너는 전위로. 내가 뒤에서 쫓을테니까"
"응, 알았어"
우리는 소정한 위치로 이동했다.
하아먀의 빠르고 무거운 서브를 내가 어떻게든 치지만, 돌려 친 곳에 미우라가 자세 잡고 있었다. 반대 사이드로 쳐온다.
"큭!"
나는 전력으로 달렸다. 아직 다리는 지시를 따라준다. 타구의 나하점에서 튀어오르는 공을 포착해서 코트 끝을 노려 쳐냈다.
하지만 읽혔다. 하야마는 타구를 정면에서 대기해, 스핀을 걸듯 나와 유이가하마의 사이에 드롭 샷을 날린다.
자세를 잡지 못한 나로선 늦는다. 유이가하마에게 시선을 향하니, 낙하지점으로달려가서 쳐냈다. 하지만 타구는 붕 떠올라서 미우라의 눈 앞으로 떨어진다.
미우라는 사나운 미소를 지으면서 전력으로 쳐냈다. 타구는 유이가하마의 뺨을 스쳐 뒤로 사라진다.
공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튀긴다.
"괜찮아?"
"……엄청 무서웠어"
울상을 지은 유이가하마의 중얼거림을 듣고 미우라가 순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 미우라에게 하야마가 장난치면서 달래고 있었다.
"……힛키, 꼭 이기자"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가 일어서려고 했을 때 『아얏』하는 비명을 질렀다.
"어이, 유이가하마?"
"미안, 조금 접지른걸지도"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점점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간다.
"만약 지면 사이가 곤란하지……. 사과하면 미안하지……"
"뭐, 어떻게든 할게. 너는 코트 안에 있기만 하면 돼. 뭐,최악의 경우엔 진심을 낸다"
"……진심?"
"내 진심은 대단하다고. 엎드려 빌기도 신발 핥기도 가능해"
"엉뚱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진심이야!"
유이가하마는 한숨을 쉬고, 쿡쿡 웃는다.
"증말-, 힛키 머리 너무 나빠. 성격도 나쁘고. 포기하는 모습까지 나쁘다니 정말 최악이야. 그 때도 전혀 포깋자ㅣ 않았고. 바보처럼 엄청 전력을 내고, 기분 나쁠 정도로 소리지르고 필사적이라니까……. 나, 기억하고 있어"
"아? 무슨 말을――"
유이가하마는 내 말을 끊었다.
"나로서는 어울리지 못하려나아……"
유이가하마는 그렇게 말하고 발꿈치를 돌려 걸어가버렸다. 당혹해하는 구경꾼을 밀어헤치면서.
"저녀석…… 대체 무슨 이야기를……"
사라진 유이가하마의 등을 시선으로 쫓고 있으니,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울려퍼진다.
"왜 그래? 친구랑 싸웠어? 버려진거야?"
"바보같은 소리 하네. 지금까지 싸울만큼 깊게 알고 지낸 녀석은 없어"
"에……"
하야마와 미우라가 진심으로 깨고 있었다. 어라-? 나의 혼신의 드립이. 자학 드립은 혹시, 어느 정도 친밀도가 없으면 진짜로 깨는거야?
뭐,실제로 자이모쿠자만 참는듯 웃음을 억누르고 있으니까, 그런걸테지. ……아니, 저녀석이랑 딱히 친밀한건 아니고.
――자아, 슬슬 엎드려 빌기인가? 나의 진심을 해방할 때가 온 모양이다. 자아, 괄목해라.
엎드려 빌기 모드로 트랜스 포메이션을 하려고 하니, 갑자기 구경꾼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히 인파가 갈라진다.
"이 소동은 뭐니?"
나타난건 무척이나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은, 체육복과 치마 차림의 유키노시타. 한 손에는 구급상자를 안고 있다.
"너 어디 갔던거야? 그보다, 그 차림은 뭐야?"
"글세? 나도 잘 모르겠지만 유이가하마가 아무튼 입어주라고 부탁하니까"
유키노시타가 그렇게 말하고 돌아보니 옆에서 유이가하마가나온다. 아무래도 옷을 교환한 모양이라, 유키노시타의교복을 입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갈아입은거야……궤씸하네.
"이대로 지는건 싫으니까, 유키농보구 나가달라 했어"
"왜 내가……"
"그치만, 이런거 부탁할 수 있는 친구는 유키농뿐인걸"
유이가하마의 말에 유키노시타가 흠칫 반응한다.
"친구?
"응, 친구"
주눅드는 일 없이 유이가하마가 즉답한다. 유키노시타는 당혹해하고 있었지만, 이윽고 한숨을 쉬고 어깨에 걸린 머리카락을 쓸었다.
"……어쩔 수 없구나. 딱히 상관없지만, 거기서 좀 기다려주겠니"
그렇게 말하면서 유키노시타는 토츠카에게 향한다.
"상처 소독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지?"
"어, 아, 응……"
일부러 토츠카를 위해서 가질러 갔던건가. 솔직하지 않은 녀석.
"……뭐가?"
"아니, 아무것도"
그러니까 왜 아는건데. 에스퍼냐.
"뭐, 친구라고 생각하는것도 딱히, 상관없지만"
유키노시타가 볼을 붉히면서, 라켓으로 얼굴 반을 가리면서 유이가하마에게 말한다. 오오, 유키노시타가 데레했다.
그런 데레에 완전히 걸려버린 유이가하마가 견디지 못해 껴안고 있었다. 강아지냐.
"유키노-옹!"
"좀, 답답해……"
안겨붙는 유이가하마를 어떻게든 떼어내고 유키노시타는 확인한다.
"히키가야랑 짜는건 무척이나 본의 아니지만, 하지만 그렇게하는 수 밖에 없지? 네 의뢰, 받아줄게. 이 시합에 이기면 되니?
"응! 나로선 힛키를 이기게 해줄 수 없으니까"
"귀찮게 해서 미안하다"
내가 고개를 숙이니, 유키노시타는 조금 볼을 붉히고 대답한다.
"……착각 하지마. 딱히 하……히키가야를 위한게 아니니까. ……아니야"
"너 그냥 계속 그대로 있어라"
왜 그 귀여움을 유지해주지 않는거야? 츤데레야?
"……무슨 소리?"
유키노시타가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는 동안, 건너편에서 짐승소리가 들려온다. 실수했다, 여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키노시타였나? 미안하지만 나아, 힘조절 못하거든. 아가씨지? 다치고 싶지 않으면 그만 두는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미우라가 겁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쪽에 도발한다. 하지만――진짜로 원하지 않았다. 옆을 보니 유키노시타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힘조절 해줄테니까 안심해도 돼. 그 싸구려 프라이드를 산산조각 내줄게"
뭐, 아군이라면 마음 든든할지도. 하지만 적으로 돌린 인간은 불쌍하기 짝이없다.
"꽤나 내 친……"
거기까지 말하고나서 유키노시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든다. 조용히 고개를 젓고나서 말을 고쳤다.
"……우리 부원을 괴롭혀준것 같은데, 각오는 되어 있어? 만일을 위해 말해두지만, 나 이래 보여도 꽤 한을 품는 타입이란다?"
그건 보는 그대로라고 생각하는데.
× × ×
이래저래해서 테니스 대결도 배우가 갖추어져서 최종 페이즈로 이동한 셈이다.
시합의 선공은 하야마 미우라 페어가 잡았다. 세로롤, 미우라의 서브다.
"저기 말야, 유키노시타가 알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아, 테니스 엄청 잘하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농구 드리블 하듯 공을 지면에 바운드 시킨다.
"얼굴에 상처가 생기면 미안해"
자아, 살벌하게 나왔습니다. 왜 무서운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거야!
그렇게 생각했을때는 이미 날카로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공을 튀기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타구는 유키노시타의 좌측에 고속으로 날아든다. 오른손잡이인 유키노시타는 리치 밖, 왼쪽 라인에 아슬아슬하게 서브가 날아든다.
"어설퍼"
속삭이는듯한 목소리가 들렸을때, 이미 유키노시타가 자리잡고 있었다. 왼발을 탁 내딛고, 몸을 젖혀 오른손 라켓의 반대면으로 쳐냈다.
발밑에 튕겨진 타구에 미우라가 살짝 비명을 지른다. ――초고속의 리턴 에이스가 정해졌다.
"네가 알고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나도 테니스를 잘해"
라켓을 내밀며 유키노시타는 선언한다. 미우라는 한 발짝 물러서서 노려본다. 저 여왕님을 겁먹게 하다니, 무시무시하네.
"……너, 지금 그거 잘도 쳐냈구만"
"그치만 그녀는 나를 괴롭힐때 동급생이랑 같은 얼굴을 하고있었는걸. 저런 인간의 생각 정도는 훤히 보여"
득의양양하게 말하고 유키노시타는 공격을 개시한다.
공격은 최대의 방어라고 하지만, 상대의 서브도 카운터도 상대의 코트에 잠겨서 방어조차 필요없는 완전한 어태커였다.
그 아름다운 기술에 관객은 심취한다. 관객은 이미 유키노시타에게 기울어있었다. 라고할까 남자는 유키노시타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눈이 하트가 된것 같다.
벌러졌던 점수차는 점점 줄어들어간다.
관중의 기대에 응하듯 다시 유키노시타에게 서브가 돌아온다.
공을 꼬옥 움켜쥐고 높게 하늘로 던진다. 푸른 하늘에 빨려들어가듯 공은 코트 중앙을 향해 날아간다. 유키노시타가 있는 위치에서는 멀다.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날고 있었다.
화려하게 하늘을 날아, 관중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 광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정신을 차리니 공은 상대 코트에 구르고 있었다.
"……저, 점핑 서브"
벌려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녀석, 혼자서 뒤쫓았어. 지금은 점수차는 이쪽이 2점 리드. 이제 1포인트만 더 따면 우리들의 승리가 결정된다.
"너, 정말로 대단하네. 그 상태로 끝내버려"
내 말에 유키노시타가 어째선지 얼굴을 찌푸린다.
"가능하면그러고 싶지만, 무리야"
하야마가 서브 자세에 드어간다. 유키노시타가 끝낸다고 생각해서 나는 힘을 풀고 있었다.
전의가 옅어져 있던건지, 하야마도 지극히 평범한 서브를 꽂아온다. 그것이, 나와 유키노시타의 사이로 날아온다.
"나……"
유키노시타가 입을 연다. 공이 다가온다.
"――체력만큼은 자신이 없어"
유키노시타의 옆에 공이 튀었다. 진짜냐…….
그리고나서 순식간에 동점으로 몰아붙여져, 듀스로 몰려갔다. 상황은 최악이다. 듀스 이행은 2점차가 날때까지 승부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의지하던 유키노시타는 체력이 방전되서 침묵. 게다가 상대에게 들켜있다. 내 서브도 저 녀석들에게 통용하지 않는건 증명끝. 친다고 한들 가볍게 되쳐져서 종료. 위험한데, 진짜로.
"왠지 질질 끌고 있는데- 이제 끝을 내지?"
미우라의 도발적인 말에도 해줄 말이 없다. 라고할까, 유키노시타는 상당히 지쳐있는지 꾸벅꾸벅 거리고 있었다. 귀엽지만 지금은 그만해.
옆에서 하야마가 참견한다.
"뭐, 서로 열심히 했다는걸로 하고. 너무 진지하게 그러지 말고. 재미있었다는걸로 하고 무승부 하지 않을래?"
"좀, 하야토, 무슨 말을 하는거야? 시합이니까 진짜로 승부내지 않으면 곤란하잖아"
이 여자는 철저하게 때려부수지 않으면 성이 안 차는 모양이다. 알고 있지만.
내가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으니, 옆에서 혀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조용히 해주겠니"
유키노시타가 엄청 기분 나쁜 목소리로 말했다. 잇따르듯 말을 이었다.
"이 남자가 시합을 끝낼테니까 얌전히 패배하렴"
"――아?"
모두 다 귀를 의심한다. 내가 제일 놀라고 있다. 뭐라는거야, 이 사람?
일제히 주목이 집중된다. 자이모쿠자는 엄지를 세우고 있고, 토츠카는 기대하고 있는 듯한 눈이고, 유이가하마는 소리 크게 응원하고 있었다.
유키노시타는 시선을 피하면서 공을 이쪽으로 던져준다.
"알고 있어? 나, 폭언도 실언도 하지만, 허언 만큼은 한 적이 없어"
유키노시타는 나를 돌아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기대하고 있을게, 하치군"
"유키, 노시타……"
『―――하고――게, ――군―――』
또, 무언가랑 겹쳐졌다.
"……어쩔 수 없구만"
나는 공을 움켜쥔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 끝난다.
바람이 불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1년간, 나만이 들었던 그 소리가.
그 순간, 서브를 날린다. 흔들리며 힘이 없는, 둥 떠오르는 듯한 타구.
미우라는 희희낙락 거리며 달려간다. 하야마가 재빠르게 지원하러 들어간다. 관객이 낙담하는 표정을 짓는다. 토츠카가 눈을 내리까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이모쿠자가 주먹을 꾹 움켜쥐는건, 이 자식, 나중에 화장실로 와라, 기도하는듯한 몸짓의 유이가하마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내 눈동자가 유키노시타의 만면의 미소를 비추었다.
타구는 여지없이 미약한 궤도로 흔들린다.
"으쌰!"
뱀같은 기합을 지르며 미우라가 낙하지점에 들어간다.
그 때, 한 차례의 바람이 불었다.
미우라, 너는 모른다. 점심시간 소부고등학교 부근에만, 발생하는 특수한 바람을.
그 바람에 흔들려, 크게 요동쳤다. 미우라가 있단 장소에서 틀어져, 코트 끝을 쳤다. 하지만, 거기에는 하야마가 뛰어들고 있었다.
하야마, 너는 모른다. 이 바람이 부는건 한번만이 아니라는걸.
1년간, 저기서 혼자서, 누구와 얘기하지도 않고 조용히 보내고 있던 나만 알고 있다. 나의 고독하고 조용한 시간을, 저 바람만이 알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이 칠 수 있는 나의 마구.
다시 분 바람이 바운드한 공 마저도 바꿔간다. 그대로 공은 코트 구석에 떨어져 굴러간다.
"말도 안 돼……"
"당했다…… 말 그대로 『마구』로군"
미우라가 망연하게 중얼거리고, 하야마가 나에게 생긋거리며 미소를 짓는다.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서 답하고, 다시 서브를 치는 자세로 들어갔다. 이걸로 끝을 내주마.
그런 마음을 담아, 나는 공을 높게 던졌다.
× × ×
"시합에는 이겨도 승부에는 졌다, 라는걸까"
유키노시타가 재미없게 말하는걸 듣고 나는 무심코 웃는다.
"처음부터 승부가 안 됐어"
청춘을 구가하는 놈은 언제나 주역이다.
"뭐, 그러게. 힛키가 아니면 저렇게는 안 되는걸. 이겼는데 공기 취급이라니, 진짜로 불쌍해"
"시끄러"
악담을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전혀 주눅든 모습이 없다.
내가 마지막으로 날린 특대 어퍼 스윙은 훌륭하게 하야마 미우라 페어를 이겼다. 하지만, 공에 정신이 팔린 미우라가 울타리를 깨닫지 못하고 후퇴하다, 부딪칠뻔할때 하야마가 구해줬다. 그래서 시합보다도 하야마의 행동이 찬미된 것이었다.
"켁, 하야마가 뭐라고. 나도 집안이랑 교육이 달랐으면 저렇게 됐을거라고"
"그건 다른 사람이야"
유키노시타가 차가운 눈으로 보지만, 유이가하마는 수줍은듯 쭈뼛거리고 있었다.
"그, 그치만 말야. 저기, 힛키니까 좋았다고 할까, 그게……"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난청계 주인공처럼 팔든? 하고 되물을 수준이다.
하지만 유키노시타에게는 들렸던 모양이라서 희미하게 미소짓고 수긍했다.
"뭐, 너의 비뚤어진 방식으로 구해지는 사람도 있으니까, 유감스럽게도"
유키노시타가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까진 다리를 신경쓰면서 걸어오는 토츠카와 그 뒤를 따르는 자이모쿠자가 있었다.
"하치만, 잘 했다. 과연 본관의 파트너여――"
먼눈을 하며 말하는 자이모쿠자를 무시하고 토츠카에게 말한다.
"상처, 괜찮아?
"응……"
정신을 차리고보니 내 주위에는 남자밖에 없었다. 유키노시타랑 유이가하마는 어느샌가 사라졌고.
"히키가야. ……저기, 고마워"
토츠카가 내 정면에 서서 바로 쳐다본다. 말이 끝난 후, 수줍은듯 눈을 피해버렸다. 엄청 귀여워. 껴안고 키스하고 싶어. 그치만 남자야아…….
"나는 딱히 아무것도 안 했더. 감사라면 그 녀석들에게……"
라고 그 녀석들의 모습을 찾으니,테니스부 부실 옆에 낯익기 시작한 흑발이 보였다.
저런데 있었나. 감사 한마디라도 하려고 생각해, 나는 부실 쪽으로 돌았다.
"유키노시――앗"
절찬 옷갈아입는 중이었다. 블라우스의 앞은 알몸, 옅은 라임 그린의 속옷이 힐끔 보였다. 아래는 아직 치마를 입은 상태였지만, 그게 반대로 균형이 잡힌 몸을 돋우어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치군!?"
그러니까 하치만이라고,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유키노시타 옆에도 굳어 있는 인물이 있었다.
"무무무무"
유이가하마였다. 그리고 절찬 옷갈아입는 중이었다. 블라우스를 아래부터 풀고 있는 탓인지 가슴팍이 크게 벌어져, 핑크색 속옷과 계곡이 보인다. 한손에 들려진 치마는 유키노시타에게 내밀어서, 즉, 입고 있지 않다.
위쪽과 한 세트로 핑크색 팬티에서 뻗는 허벅다리가 늘씬하게 뻗어 다리 쪽은 감색의 스타킹으로 감싸여 있었다.
………………………………………흠.
"바보오!"
"그냥 진짜 죽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내 안면에 라켓이 더블로 풀스윙 됐다.
이 뭔……끈적한……청춘 러브코메디야…….
꽤 하잖아, 러브코메디 신님. 커헉.
⑧갑자기 히키가야 하치만은 떠올린다.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과제받았던 다시 제출용 작문을 쓰기 위해 나는 봉사부 부실까지 발을 옮기고 있었다.
부실 문을 여니 유키노시타는 평소와 같은 자리에서, 평소와 다를바 없는 자세로 책을 읽고 있었다.
나를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어머, 오늘은 이제 안 올거라고 생각했어"
문고본에 책갈피를 끼우면서 유키노시타는 말한다.
"아니, 나도 쉬려고 생각했지만. 좀 해야할 일도 있었으니까"
유키노시타의 대각선 앞, 긴 책상에 의자를 끌고 앉는다. 우리들의 정위치다. 가방에서 원고용 종이를 펼치고 필기용구를 꺼낸다. 그 모습을 보고 유키노시타가 한숨을 쉰다.
"……일단 부활동 중인데"
"부장이 독서하고 있으니까 문제 없습니다-"
원고용지를 노려보면서 대답을 하니, 조금 끙얼거리는 유키노시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유이가하마는?"
"오늘은 미우라네랑 놀러가는 모양이야"
"그런가"
테니스 이래로 옆에서 봐도 알만큼 미우라의 태도가 부드러워졌고, 전혀 문제 없는 느낌이 든다. 유이가하마 자신도 속마음을 말할 수 있게 된게 큰걸지도 모른다.
"……"
"……"
침묵이 이어지지만 딱히 싫지 않았다. 딱히 수습하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키노시타에게 좀 말하고 싶었던게 있었다.
"……꿈을 꿨어. 같은 꿈을"
"……그래"
"여자애가 말야, 울면서 웃고 있어. 무슨 말을 하는지 안 들려서. 아쉽기는 하지만"
"……"
"왠지, 무척이나 그리워져"
"……읏"
"나, 그 녀석을……"
"……그 녀석을, 뭐니?"
유키노시타의 질문에, 나는 일어선다.
"다 썼다"
"헤?"
"그럼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제출하고 올게. 먼저 간다"
"에, 에, 잠깐……? 하치군……"
곤혹해하는 유키노시타를 두고 나는 부실을 나갔다.
저렇게 속모습을 보이는건 변함이 없을지도.
"그치? 유키짱……"
0. 프롤로그
옥상 바닥에서 석양을 쳐다본다. 엄청 폼잡고 있지만……따, 딱히 교실에도 부실에도 있을 곳이 없는건 아니거든! 착각하지마!
라는건 둘째치고. 여기에 온건 여러모로 생각할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억은 잊고 있는 기억이라도 링크가 끊겨있을 뿐이지, 실제로는 뇌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즉, 물리삭제가 아닌 논리삭제인 것이다. 누구하고도 연결이 없으면 그건 이미 삭제한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어라? 그거 나잖아? 나는 논리삭제 되어있구나.
뭐 됐다. 즉 이거다.
수많은 연결고리를 되찾는것으로 논리삭제는 해방되었다. 나는 잊고 있던 기억 중 하나를 떠올린 것이다.
"………………………………………………………어떡하지"
무심코 웅크려 앉아버린다. 앞으로 마주치는게 무척이나 고민된다. 그 녀석이랑 어떻게 대하면 될까. 이런, 더는 부실 못가겠다.
조금 죽고 싶어져서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직장견학 희망 조사표에 쉭쉭 기입해간다. 장래 희망과 그 이유도 기재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장래설계도 흔들림없는 나는 망설임없이 펜을 굴리――지만, 도중에 손이 멈처ㅜㅆ다.
"지망……이라"
이미 다 쓴 곳을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앗"
바람에 나부껴 직장견학 희망 조사표가 날아간다. 내 직장견학 흼아 조사표가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 ……뭐, 다시 쓰려고 생각했으니 또 받으러 갈까.
그런 생각을 하며 발꿈치를 돌리니, 갑자기 어디에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네거야?"
주위를 돌아보지만 사람은 아무도 없다. 늘 내 주위에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건 아니고. ……에, 뭐야, 진짜 어디서 들려오는거야?
"어딜 보는거야"
목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위를 쳐다보니 급수탑에 기댄 형태로 여학생이 서 있었다. 푸른색이 감긴 흑발을 헤어 슈슈로 모아서 포니테일로 만들고 있고, 가슴팍은 리본을 하지 않고 크게 터놓고 있다. 치마는 접어서 짧고, 늘씬한 다리가 뻗어, 그 끝부분이 보일락말락했다.
나른해 보이는 표정과, 눈가의 눈물점이 인상적이었다. 여학생은 내 직장견학 흼아 조사표를 들면서 다시 나에게 말을 건다.
"이거, 네거야?
학년을 판단할 수 없어서, 일단 말없이 끄덕였다. 그게 선배였으면 뭐하잖아. 무슨 변명을 해도 화장실로 끌려갈것 같고.
"……잠깐만 기다려"
한숨섞으며 그렇게 말하고 여학생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려고 한다.
――거기서 다시 바람이 불었다. 치마가, 부웅 들춰진다. 아까전부터 신경쓰였던 치마속이 보였다.
"검은 레이스!!"
"뭣!? 꺅!"
동요한 여학생이 발이 미끄러져서 떨어진다. 나는 황급히 달려가서 여학생의 아래로 파고들어가 받아낸다.
"큭"
낙하 충격과 강한 통증이 느껴지지만, 상관않고 안아낸다. 어떻게든 늦지 않았다. 냉정해지니 안고 있던 탓에 비공을 간지러운 냄새가 나고, 잡고 있는 부분이 여러모로 부드러워서 위험해질뻔 했지만 고개를 흔들어서 평정을 유지한다.
"미안, 괜찮아?"
여학생은 고개를 홱 돌리면서 말한다.
"……이유로 따지면 네가 잘못했으니까 인사는 안 할거야"
"아아, 정말로 미안해"
"……자, 이거"
그렇게 말하고 무뚝뚝하게 종이를 나에게 건내고 일어서서 학교 안으로 가려고 했다.
"이름!"
내 목소리에 여학생이 귀찮다는듯 돌아본다.
"이대로라면 검은 레이스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데"
"……바, 바보 아냐?"
약간 볼을 붉히면서 여학생이 한 마디 뱉어내고, 발굼치를 돌리고 다시 학교로 향한다.
"――카와사키 사키"
여학생――카와사키는 중얼거린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이름을 말하고, 이번에야말로 가버렸다.
"검은 레이스라……"
선명한 광경이었다. 한 동안은 꿈에 나올것 같았다. 라고할까, 여고생이 검은 레이스는 좀 위험하잖아. 어떡하지.
한숨과 함께 복숭아색 숨결이라고도 못할 숨을 내쉬고, 나도 학교로 돌아가기로 했다.
……………….
……………………어라, 그 녀석 이름 뭐였더라?
검은 레이스가 이름을 뒤덮었다. 틀려먹었잖아.
1. 히키가야 하치만은 다른걸 떠올린다.
교무실에는 응접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검은 가죽 소파에, 요리 테이블이 놓여있고, 주변에는 칸막이로 둘러쌓여있다. 창 밖으로는 도서실을 돌아볼 수 있다.
바람에 날려 테이블 위에 있던 종이가 탁 떨어지고, 지면에 떨어지려던 순간, 콰직! 하고 하이힐이 종이를 고정했다.
타이트한 판츠 수트를 입은, 가늘면서도 탄력있는 육감을 가진 매력적인 다리에서 시선을 따라 올라가니, 잘록한 허리 곡선을 따라, 훌륭하게 솟은 쌍봉우리에 도달한다.
마치 예술같은 바디라인 끝에, 매혹적인 미녀의 얼굴은 악귀나찰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너무 무섭다.
국어교사 히라츠카 선생님은 담배 필터를 질근질근 깨물면서 분노를 참고있습니다, 라는듯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히키가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지?"
"……선생님, 마음은 기쁘지만 저는 10살이상 차이나는 여성하고는 아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굉장한 속도로 내 이마를 움켜잡고 그대로 아이언클로를 걸어왔다. 이 무슨 악력이야……고릴라급인거 아냐……!?
"화낸다?
"이미 화내고 있잖아요……!"
내 즉답에 선생님은 한숨을 쉬고 손을 놓아줬다.
"나참, 애송이가 건방진 소리 하지마라. 조금 더 남자가 되고나서 와라"
만약 내가 남자를 갈고닦고 돌아와도, 그 무렵에는 선생님은 할망구가――.
"앙!?"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탁이니까 머릿속을 읽지 말아주세요.
……자,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가.
"죄송합니다. 일단 내기는 했지만, 저도 생각하는게 있으니까 다시 쓰게 해주세요"
내 말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눈을 점으로 만들고 나를 쳐다본다.
"왜 그러느냐, 열이라도 있나?"
"없슴다. 너무하셔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설명한다.
"가능하다면 전업주부가 되고 싶은건 변함없지만요"
"어이"
"뭐, 들어주세요. 그 전에 여러모로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까 생각한거에요"
――하나 더, 나는 기억해 냈다. 그걸 표현하기 위해서는 넓은 시야가 필요해진다.
"그러니까 다시 쓰게 해주세요"
내 설명을 다 듣고, 입가에 미소를 띄운 히라츠카 선생님은 다정한 눈으로 나에게 말한다.
"너는 정말로 비뚤어졌구나"
"자주 들어요"
"그럼 직장견학희망 조사표는 다시 제출하고, 내 마음을 상처입힌 페널티로서 조사표 개표를 도와라"
"……네"
마지막은 정말로 필요없었다.
결국, 눈 앞에 묵직하게 쌓인 종이다발을 히라츠카 선생님과 둘이서 나누는 작업을 하게 됐다.
잠시동안 둘이서 작업을 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나에게 이런걸 물었다.
"히키가야, 여름방학 끝나고 3학년 코스 선택이 있는건 들었지?"
"그런거 있었던가요"
"HR에 말했을텐데……"
"둥실두둥실해서 했던걸지도 모르겠네요"
내 말에 선생님이 한숨을 쉰다.
"……평범하게 잤다고 해라. 아무튼간에. 그저 단순히 막연하게 시험을 치는게 아니라, 장래에 대한 의식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여름방학 전 중간고사 직후에 직장견학을 하는거다"
뭐, 그 유효성은 의심스럽지만, 라고 덧붙이면서 도넛모양 연기를 뿜어낸다.
장래 의식이라…….
『――나, 장래에는―――――가 될거야――――』
"――히키가야, 듣고 있는거냐?"
정신을 차리니 선생님이 어꺠를 흔들고 있었다. 좀 지나치게 생각에 잠겨있던것 같다.
"죄송합니다, 조금 생각을"
"……그런가. 그런데 너는 문과, 이과 중 어디로 할거지?"
히라츠카 선생님이 눈썹을 팔자로 만들면서 나에게 묻는다.
"저말인가요? 저는――"
"아-! 이런데 있었구나아!"
내가 입을 열었을때, 시끄러운 소리가 가로막았다.
익숙한 경단머리가 기분나쁘게 흔들리고 있다. 아무리 봐도 유이가하마였다. 그보다, 왜 같은 반인데 최근들어서 익숙해지다니, 얼마나 몰랐던거야, 나. 얼마나-(낡았다).
"어라, 유이가하마. 미안하지만 히키가야를 빌리고 있다"
"따, 딱히 제건 아니에요! 저, 전혀 상관없어요!"
대답을 하면서 유이가하마 붕붕 전력으로 손을 흔들며 부정했다. 그렇게 전력으로 부정당하면 조금 상처입는데…….
"무슨 일이야?"
내 질문에 대답한건 그 뒤에서 빼꼼 나탄나 유키노시타였다. 앞으로 나오는 움직임에 맞춰 흑발이 흔들렸다.
"네가 아무리 지나도 부실에 오지 않으니까 찾으러 왔어"
유키노시타의 말을 듣고 유이가하마가 불만스럽게 두 다리를 벌리며 선다.
"일부러 물어보면서 왔거든. 그랬더니 다들 『히키가야? 누구?』라고 하구. 엄청 힘들었어"
"그 추가 정보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엄청 힘들었거든"
두번이나 말하지마. 내 존재가 학교에 인지받지 않아서 미안합니다요.
"뭐, 미안하다"
나는 아무 잘못 없지만 일단 사과한다. 남에게 알려지지 않아서 미안, 이라니. 엄청 비참한 사죄다.
"딱히 괘, 괜찮긴 하지만……. 그, 그게……그러니까. 휴대폰 가르쳐줄래?"
일부러 찾으로 돌아다니는것도 이상하구, 부끄럽구, 라고 하면서 유이가하마가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딱히 상관없어"
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유이가하마한테 던진다. 유이가하마는 황급히 내 휴대폰을 캐치한다.
"우와앗!? 위험하잖아!"
"귀찮으니까 해줘"
유이가하마는 싫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 휴대폰을 꺼냈다. 왠지 휴대폰이 미러볼처럼화려하다. 스낵이냐.
"케밧. 뭐였더라 그거. 스와……스와……무슨 러시아인 이름같은 그거"
내가 고민하고 있으니 유키노시타가 옆에서 끼어든다.
"스왈로프스키라고 하고 싶은거니?"
"그래, 그거다"
내가 수긍하니 유이가하마가 볼을 부풀리며 화낸다.
"그렇긴 하지마안-, 케바라고 하지 마"
뿡뿡 화내면서도 엄청난 속도로 타이핑을 한다. 손가락만 스타 플래티나 같은 속도다.
"치는거 빨라……"
"응-? 딱히 보통이잖아? 그보다, 힛키의 경우 메일하는 상대가 없으니까 손가락이 퇴화한거 아냐?"
"무례한 녀석이네. 나도 중학생 시절 정도에는 여자애랑 메일을 했어"
내 말에 유이가하마가 휴대폰을 툭 떨어뜨렸다. 어이, 그거 내껀데?
"거짓말……"
"……"
아연해하는 유이가하마와 어째선지 도끼눈으로 노려보는 유키노시타. 그 옆을 보니 히라츠카 선생님이 히쭉히쭉 웃고 있었다.
"너무하네-, 정말로 너무해-"
"아-, 아니, 힛키가 여자애랑 메일 했다는게 상상이 안 되서……"
얼버무리듯 웃으면서 유이가하마는 떨어뜨린 휴대폰을 주웠다.
"……뭐, 당시에는 여자친구도 있었으니까"
내 한 마디에 유이가하마는 한번 더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어이, 망가지잖아.
"하아!? 히, 힛키, 사귄적 있어!?"
……뭐어, 예상했다고는 해도 실제로 들으니 대미지가 있구만. 히라츠카 선생님도 눈이 점이 되어 있고. 유키노시타만 이어서 삐친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2달만에 차였지만"
"더, 덧붙여서 어떤 애였어……?"
유이가하마가 조심조심 물어온다. 유키노시타랑 히라츠카 선생님이 얼굴을 가져와 귀를 쫑긋 세운다.
"……얼굴은 귀여웠던게 아닐까. 그런대로"
"그런대로……"
유키노시타가 되말한다. 내 진의를 아는지 모르는지 수수께끼같은 승리 포즈를 작게 취하고 있었다. ……정답이다. 그보다, 너보다 귀여운 녀석은 그리 없거든.
"흐, 흐-응. 그래서? 성격은 어땠어?"
"좋다고는 못하지 않겠냐? 메일도 적당했었고 말야. 솔직히 한번 더 사귈 수 있냐고 물으면 노우라고 즉답할 수 있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전형적인 스위트(웃음)라서, 당시에도 괜시리 싫었던 인종이었지만.
나는 유키노시타를 힐끔 본다.
"――정말로, 왜 사귀었던걸까"
"힛키……"
"………………………………하치군"
유키노시타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른다.
축축해진 분위기를 풀기 위해 나는 유이가하마에게 묻는다.
"……슬슬 다 친거 아냐?"
"앗, 그, 그러게!"
내 말에 정신을 차린 유이가하마는 황급히 내 휴대폰을 돌려줬다. 등록명을 쳐다본다.
☆★유이★☆
……뭐야 이 스팸메일 같은거. 다음날 보면 끔뻑 지워버릴것 같다.
갑자기 내 휴대폰을 누군가에게 빼앗긴다. 내 휴대폰을 들고 있던건 히라츠카 선생님이었다.
"어디, 그럼 나하고도 교환할까. 나는 제대로 메일을 답변하마. 적당한 답신은 하지 않아"
그렇게 말하면서 선생님이 자신의 메일 주소를 치기 시작했다. 엄청 동정받고 있고. 아까전의 대화에 동정이라도 느낀걸까.
"선생님이랑 메일이라"
엄마가 발렌타인 초콜렛을 주는거랑 별 차이없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유키노시타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걸 눈치챘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흐-응……"
…………………………나중에 유키노시타하고도 주소 교환을 하자.
유이가하마보다 훨씬 타자가 늦은 아라사 히라츠카 선생님을 기다리는동안 잡무를 잽싸게 진행한다. 남은건 몇 장 정도라서 짧은 시간만에 끝났다.
"다 쳤다. 그리고 수고했다. 고맙다, 가거라"
내 휴대폰을 돌려준 히라츠카 선생님이 새로운 담배를 물면서 풀어줘서 나는 일어선다.
"네, 그럼 부활동 하러 갈게요"
바닥에 놓아뒀던 가방을 들어올려 오른어깨에 맨다.
그럼 부활동하러 갈가.
가기 직전에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직장견학이 3인1조로 짠다는걸 듣고 절망적인 기분이 됐다.
2. 히키가야 코마치는 의외로 브라콘이고, 히키가야 하치만은 현저하게 시스콘이다.
중간고사도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슬슬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량한 남고생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공부하는거다. 그것도 교육연구소의 날은 학교도 빨리 끝나서, 부활동도 없으니까 최고다.
계속 영단어를 쓰고 베끼기만 할 뿐인 간단한 작업. 쓰기만 하는 기계로 변하는거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 다닷다-! 외톨이니까 고독하니까, 다닷다-! 나는 외톨이 프로다!!
범위 만큼 다 쓰고 코코아라도 마시면서 빨간 시트로 가리고 체크할까, 라고 생각했을때.
"유키농, 사이제가 아니라서 미안. 밀라노풍 드리아는 다음에 사줄게. 아, 그리고 디아볼라풍 햄버그가 추천이었는데……"
"나는 딱히 어디라도 상관없어. 하는건 똑같은걸. 그나저나 햄버그는 이탈리아 요리였니……?"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앗"
"……어머"
"어라"
셋 다 얼굴을 마주치고 굳어버렸다. 입구로 들어온건 교복차림의 유키노시타랑 유이가하마. 전날, 나를 빼고 둘이서 공부모임을 한다고 했으니까, 혹시 그거인가?
왜 그런걸 알고 있냐고 하면, 유이가하마가 이거 보라는 듯이 내 앞에서 그렇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만약 권유받아도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여기는 나 애시당초 권유받지도 않았다.
"힛키, 여기서 뭐해?"
"공부"
"오오, 우연이네, 이야-, 나랑 유키농도 공부하러 좀 여기까지……그, 그럼, 같이 공부모임 할래?"
유이가하마는 나랑 유키노시타의 얼굴을 교대로 보면서 말했다.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하는건 똑같고"
"……그렇구나. 하는건 변함없고"
뭐, 유키노시타 씨는 유이가하마의 사각에서 진정되지 못한듯 조마거리고 있지만. 나를 힐끔 쳐다보고 있고.
음? 내가 생각하고 있으니, 중요한 일을 잊어먹은걸 눈치챘다.
나, 아직 유키노시타랑 주소교환 안 했잖아. 완전히 깜빡했다☆
유키노시타가 조마거리는건 그게 원인인가……? 아니, 그래도 만약 아니라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정신을 차리고보면 유이가하마가 내 자리까지 와서 추가 드링크바를 주문하고 있었다.
유키노시타도 뒤따르지만 어째선지 가만히 드링크바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컵, 왼손에는 동전을 들고. 아, 아니이, 설마사카.
"……얘, 히키가야. 돈은 어디에 넣는거니?"
"그, 그렇게 나왔나"
무심코 목소리가 갈라져버렸다. 그 설마사카였다. 드링크바를 몰랐구나, 유키노시타. 뭐어…… 그 집은 말이지.
"아까 드링크바 비를 냈으니까 마음껏 마시면 돼. 뷔페 스타일? 의 음료수 판"
"……일본은 풍족한 나라구나"
어째선지 그늘진 표정으로 유키노시타가 중얼거린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유키노시타에게 보여주듯 드링크바를 조작했다. 내가 버튼을 누르자 컵에 콜라가 부어지는 모습을 유키노시타는 반짝반짝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보다 가까워. 그냥 컵에 키스해버릴것 같은 기세.
"유키짱, 가까워――"
핫, 하며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깜빡하고 옛날 별명으로 불러버렸다.
"………………하치군?"
유키노시타가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뺨에는 희미하게 주홍색이 들고 있었다.
"읏. ……겸사다. 내가 할게. 뭐 마실래?"
나는 얼버무리듯 유키노시타의 컵을 빼앗고 뭘 마실건지 물었다.
"……. 히키가야에게……맡길게"
차분해진 유키노시타를 보고,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컵에 부어진 콜라에서 기포가 떠오르지만 빠진 탄산은……돌아오지 않는다.
× × ×
셋 모두 자리에 앉고, 나를 제외한 둘은 공부도구를 꺼냈다. 공부모임의 시작이다.
"그럼 시작할까"
유이가하마의 신호와 함께 유키노시타는 헤드폰을 꺼내서 장착했다. 나도 이어폰을 끼운다.
그걸 보고 유이가하마가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하아!? 왜 음악 듣는거야!?"
보통 공부할때는 음악 듣지 않아? 잡음이 신경쓰이니까"
"그렇구나. 그 음악이 들리지 않게 되면 집중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되서 모티베이션이 높아지고"
"그게 아니야! 공부모임은 이런게 아냐!"
팡팡, 테이블을 치며 유이가하마가 항의한다.그러자 유키노시타는 턱에 손을 대며 생각하는 몸짓을 한다.
"……그럼 어떤게 공부모임이니?"
"그게, 출제범위를 확인하거나,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거나, ……뭐어, 휴식도 끼우고, 남은건 상담하거나, 그리고나서 정보교환하거나. 가끔은……잡담도 할까나?"
"거의 말하는것 뿐이잖아……"
공부모임이 아니라 잡담모임으로 변했다. 방해밖에 안 되잖아, 그런거.
"애시당초 공부라는것 자체가 혼자서 하도록 되어 있는데"
유키노시타의 의견에 수긍한다. 솔로플레이로 하는 편이 더 순조로운게 공부의 철칙이다.
처음에는 납득이 안가는 표정의 유이가하마였지만, 나와 유키노시타가 그저 말없이 공부하고 있는걸 보고 체념했는지 한숨을 쉬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기를 5분, 10분의 시간이 경과해간다.
문득 둘의 모습을 보니, 유이가하마는 어려운 표정인채로 완전히 손이 멈춰있었다. 한편 유키노시타는 묵묵히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집중하고 있는 유키노시타에게 말을 거는걸 망설였는지 유이가하마는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저, 저기 말야……이 문제 말인데……"
엄청 부끄러운듯이 물어왔다. 나에게 묻는건 그렇게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나.
"도플러 효과라아. 나 물리는 버렸으니까 몰라. 그거다, F1 레이스 같은데서 차가 지나갈때 『으으으우우우우우우우으응』하는 소리. 그거다"
"그런 소리로 말해도 모른다니까아!"
뭣하면 그래플러 바키였다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데. 틀렸나.
유이가하마는 체념했는지, 교과서랑 노트를 덮고 빨대로 아이스티를 마시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비어버린 유리잔을 들고 일어서려고 했을때, 아, 하며 무언가를 깨달은 소리를 냈다.
이끌려서 나도 그쪽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가 있었다.
"동생이다……"
내 동생인 코마치가, 즐거운듯 웃으면서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옆에는 교복을 입은 남자가.
……남자가.
……………………남자가!!
"미안, 잠깐"
그렇게 말하고 나는 둘의 뒤를 쫓아가지만, 가게를 나가 잠시뒤, 완전히 놓쳐버렸다.
마지못해 가게로 돌아오니 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었다.
"에, 저기, 지금 그거……동생?"
"아아. 어째선지 그 녀석이 남자랑 패밀리 레스토랑에……"
사건이다. 대사건이다. 너무 충격적이라서 더는 공부할때가 아니게 됐다. 내 동생이 모르는 남자랑 패밀리 레스토랑에 있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데이트 중이었을지도"
"그럴 수가……말도 안 돼……"
"그런가-. 코마치는 귀엽고, 남친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싫어-! 동생한테 남친이 생기는건 죽어도 싫어어-!!"
"기분 나쁜 소리를 큰소리로 말하지마. 헤드폰을 껴도 들려, 지금 목소리"
유키노시타가 헤드폰을 벗으며 민폐라는듯 나를 본다.
"아, 아니, 아니야. 내 동생이 지금, 정체불명의 남자랑……"
내가 설명하고 있으니 유키노시타가 불쑥 『코마짱이……?』라고 중얼거렸다. 아아, 그러고보니 코마치를 바다표범같은 별명으로 불렀지.
유이가하마가 한숨쉰 후에 말했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중학생이잖아. 코마치가 걱정되는건 알겠지만, 너무 파고들면 미움살껄? 요즘, 우리 아빠도 『남친 있는거냐』라고 물어서 짜증나는걸"
"우리 집도 동생에게 남친이 없다고 믿고 있으니까 묻지도 않았다.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나저나, 왜 네가 내 동생 이름을 아는거야?"
나, 코마치의 이름을 말한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코마치는 여자업계에선 유명한 이름인가? 나는 상시 무명이지만!
"엣!? 아-, 아, 아니, 그게……휴대폰? 에 쓰여있던것 같은데……"
유이가하마가 어째선지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한번 이 녀석에게 휴대폰을 준적이 있었지. 메일 속에 있던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럼 됐어. 무의식중에 동생의 이름을 말하는 시스콘이 된줄 알았잖아"
"충분히 시스콘이라고 생각하는데……"
유이가하마가 깨면서 입을 연다.
"어쩔 수 없잖아. 다정하게 대해주는게 동생밖에 없으니까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다고"
"힛키……"
"히키가야……"
두 사람이 불쌍한걸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덧붙여서 말야, 코마치는 힛키한테 어떻게 다정하게 굴어줘?"
"그렇구만……"
나는 턱에 손을대고 코마치의 행동을 떠올린다.
"우선, 매일 아침 깨워줘"
"응"
"우리 부모님은 아침 일찍 출근하니까. 그러니까 코마치가 아침을 둘 먹을 몫을 만들어줘"
"흠흠"
"그리고 저녁 만들어주잖아. 목욕하고 나오면 마사지 해주고, 잘때 무릎배게――"
"스톱스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옵!!"
갑자기 유이가하마 황급히 제지를 걸었다. 왜, 여기부터가 좋은 장면인데.
"저녁밥까지는 알겠지만, 목욕하고 나오면 마사지 해준다니, 뭐야? 무릎배게도 해줘!?"
"아-, 뭐어 그래. ……어째선지 여친하고 헤어지고나서 갑자기 이런 느낌이 됐어"
"……"
내 말에 유키노시타가 눈을 가늘게 뜬다. 유이가하마는 팔짱을 끼고 신음소리를 낸다.
"우으……뜻밖의 장소에 강적이……유키농도 있는데……"
미약한 목소리여서 유이가하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말로 못 들었다.
"…………………………코마짱 좋겠다아……"
이쪽은 확실하게 들렸다. ……왠지 내가 부끄러워졌는데. 나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긁고 둘에게 선언했다.
"아무튼. 나는 그 남자를 남자친구로 인정 못해. 결과는 어떻든간에"
"우와아……"
"시집보내는걸 인정못하는 아버지같은 소리를 큰 소리로 선언하지 말아줘……"
두 사람은 식겁하면서, 나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듯 공부로 돌아갔다. 나도 자리에 앉아 공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전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컵을 들고 드링크 바로 향한다.
× × ×
"……"
나는 방금전에 여기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유키짱을 상처입힌걸까.
콜라 버튼을 누르려고 했을때, 뒤에서 말을 건다.
"――히키가야"
투명한것 처럼 맑은 목소리의 주인은 유키노시타였다.
"유키짜……유키노시타……"
"뭐니? 히, 키, 가, 야"
음색이 바귀어서 뒤돌아보니, 이마에 혈관이 튀어나와 있었다. 엄청 화내고 있잖아.
"……읏"
엄청 목이 마르다. 무심코 막 부은 콜라를 다 들이켰다. 급하게 삼킨 탓에 목에서 식도를 타고 탄산이 타고 오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유키노시타를 돌아본다.
"……"
유키노시타가 혈관을 세우며 팔짱을 기고 있다. 눈은 맹금류처럼 날카롭게 나를 노려보고, 지금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어버릴 기세다. ……나는 각오를 굳히고 입을 열었다.
"……아까전엔 미안. 딱히 감출 생각은 없었어"
"……"
"점점 기억이 떠올라. 그러니까, 전부 떠올릴때까지는……그게……"
"――잊고 있는 척을 하려고 했다고? 바보취급하지마"
유키노시타는 나에게 다가와서, 팔을 들어올렸다.
"윽!"
무심코 눈을 감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뺨에 통증은 오지 않는다.
"……바보"
대신에, 천천히 뺨에 따뜻한 감촉이. 눈을 떠보니 유키노시타가 내 뺨에 살며시 손을 대고 있었다.
"하치군"
유키노시타는 다정하게 미소를 짓고, 말을 잇는다.
"……조금만이라도, 나를 기억해준다면 기뻐. 또 만날 수 있다고는 생각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그 무렵처럼. 나를 불러줄래? 부탁해……하치군……"
"………유키, 짱"
"읏!"
유키짱이 숨을 삼킨다.
나는 한번 더, 유키장의 이름을 부른다.
"유키짱"
"――――――응"
유키짱이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으면서도 미소지으며 끄덕였다.
× × ×
공부모임 후, 유키짱하고 주소 교환을 하니, 그 날 밤에 바로 유키짱한테 메일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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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유키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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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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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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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하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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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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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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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유키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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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R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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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수리과목 성적은 괜찮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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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하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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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R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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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아. 수리과목은 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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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유키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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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R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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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아, 라니, 문과과목도 수상쩍은데…….
공부, 가르쳐주는 편이 좋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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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하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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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Re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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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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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유키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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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R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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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후배로 갖고 싶진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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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하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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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 R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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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수한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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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메일을 보낸 후, 전화착신이 울었다. 화면을 보니 상대는 유키짱.
통화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이번에는 같이 졸업하고 싶어. ……모르겠어? 하치군 바보바보』
"아……"
그런가, 유키짱, 도중에 해외유학이 결정되서――――――헤어지게 되버렸지.
왜 이렇게나 중요한걸 잊고 있던걸까.
"……그렇군. 미안, 그럼 공부 가르쳐줄래?"
『스파르타로 갈테니까 각오해둬. 그럼 잘자. 하치군』
"잘 자, 유키짱"
통화를 마치고, 다시 한번 메일 대화를 보고나서, 나는 잠에 들었다.
3. 여러모로 있어서 카와사키 사키는 삐쳐있다.
중간고사가 눈앞까지 닥쳐왔다. 하지만, 어제사건 이래 유키짱이 나랑 유이가하마에게 공부를 가르치게 됐다. 학년 1위는 겉멋이 아니라서 버릴터였던 수리과목 학력이 눈에 띄게 향상해갔다. 문제를 읽어도 제대로 알아! 도플러 효과가 그래플러 바키로 보이지 않아! 아니, 그 드립은 이제 됐어.
봉사부가 끝난 후,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도서관에 집합해서 유키짱의 사정이 아슬아슬하게 허락될때까지 공부모임을 한다. 유키짱이 돌아갈 타이밍에 유이가하마도 돌아가고, 나는 그대로 남아서 가게 직원에게 폐점시간이로 쫓겨날 밤 10시 정도까지 공부한다. 밤 11시를 지나면 보도될지도 몰라서 이건 엄수한다.
그리고나서 자택으로 돌아와, 또 심야까지 공부, 라는 생활. 오늘밤도 또 시계바늘이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대로- 2시간 정도는 힘낼 수 있을것 같다.
"으응, 차. 커피라도 마실까"
기지개를 하고 나는 거실로 향한다. 역시 졸음 쫓기에는 커피지. 그리고 공부는 두뇌활동이니까. 즉, 당분 보급이 중요하다. 따라서 죽을만큼 달달한 MAX커피의 단독 무대다.
MAX커피로 향한 마음을 품으면서 거실로 들어가니 동생 코마치가 소파에서 폭면하고 있었다.
……어라, 이 녀석도 이제 곧 중간고사 아니었나. 담이 두꺼운 여자다…….
사재기한 MAX커피를 찾았지만 얼마전에 빈상자가 된걸 떠올리고, 하는 수 없이 물을 끓이기로 했다.
물끓이기 포트에 물을 넣고, 스위치를 ON. 물이 끓을때까지 코마치가 자고 있는 소파 끝에 앉는다.
코마짱, 속이 다 보여. 라고할까, 잠옷으로 입고있는 그거, 내 T셔츠잖아. 바지를 입어. 감기걸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가까이 있는 목욕 타올을 걸쳐준다. 코마치는 거기에 반응해서 음냐음냐 잠꼬대도 안 되는 소리를 냈다.
그러고 있으니 포트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하고 물이 끓었다. 머그컵을 준비하고 인스턴트 커피를 타서 물을 붓는다. 커피 향이 났다.
짙게 우린 커피에 우유와 설탕을 가득 타고 티스푼으로 휘젓는다. 우유의 달달한 향과 커피 향이 섞여서무척이나 감미로운 아로마를 자아낸다.
그 냄새에 이끌렸는지 코마치가 일어났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지금 몇시?"
"12시 지난 참인데"
내 다대답을 듣고 코마치가 이마에 손바닥을 찰딱 치며, 아차- 라는듯 제스쳐를 취했다.
"너무 잤어……1시간만 잘 생각이었는데……5시간이나……"
"아니, 그건 너무 잔거잖아. 마음은 잘 알겠지만"
"오-빠-야-, 왜 안깨워준거야아…… 코마치 입장으로 포인트 낮아아……"
코마치가 고개를 푹 숙인걸 보고 무심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대도. 그보다 그 T셔츠.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게 됐다고 생각했더니 네가 입고 있었냐"
"응, 잘때 입기에 딱 좋다고 생각해서. ……무엇보다 오빠 옷이구"
"그런 말을 해서 나를 미혹하지마"
볼을 붉히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끔뻑하고 동생 루트로 들어가면 어떡할거야. 역시 치바 남매는 그렇게 될 운명인건가……?
커피를 마시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코마치도 부엌으로 가서 머그컵에 탄 우유를 전자렌지로 데우기 시작했다.
"오빠는 이런 시간까지 어쩐 일이야? 혼자서 게임이라도 하고 있었어?"
왜 혼자서, 라는걸 덧붙이는걸까나아…….
"바보 같은 소리하네, 공부다"
"오빠야, 일하고 싶지 않다고 하는 주제에 근면하네. 그러면 츤데레가 되어도 어쩔 수 없다고 코마치는 생각해요"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실은 하고 싶지 않지만 외톨이니까 스스로 하는 수 밖에 없어서 하는거라고! 생각하고 슬퍼졌다!
"잘도 말하네. 그럼 나는 공부하러 돌아간다"
"코마치도 공부할래-"
그렇게 말하고 코마치가 생글거리면서 내 뒤를 따라온다. 드래곤 ○스트냐.
나는 머리를 벅벅 긁고 코마치에게 말한다.
"……그럼 같이 공부할까?"
"응"
이렇게해서 코마치와 밤의 공부가 시작했다. 따, 딱히 야한 의미는 아니거든!
× × ×
내 방에 둘이서 공부하는건 좀 비좁아서 결국 거실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공부도구를 테이블에 펼친다.
코마치는 영어를 공부하는 모양이다. 참고로 나는 일본사를 중점적으로 할 생각이었다.
서로 말없이 공부에 힘쓴다. 문제를 풀고 답을 맞추고, 틀린걸 문제, 답, 해설을 꼼꼼히 노트에 복사. 그걸 몇 번이나 반복해간다.
시험범위를 한 차례 다 볼 무렵, 코마치가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는걸 눈치챘다.
"……왜 그래?"
"역시 오빠는 근면하네"
나, 문중이었나……아니, 그건 금편이다. 하지만 그 보구를 쓸 수 있는 느낌이 안 들어…….
"그래서, 새삼 오빠의 대단함을 깨달은 너는 어쩌고 싶어?"
코마치가 도끼눈으로 『그렇게까지 안 말했어……』라고 중얼거리면서, 관자놀이를 긁적긁적한다.
"……세간에는 여러 타입의 오빠랑 언니가 있구나-, 라고 생각했어. 코마치가 다나는 학원 친구가, 누나가 불량으로 변했대. 밤에도 전혀 집에 안 돌아오는 모양이야"
"흐응"
어느샌가 코마치는 영어 교과서를 덮고 있었다. 공부할 생각이 없어진 모양이다. 나는 코마치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면서 일본사 공부를 계속한다.
"그치만 말야, 누나는 소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엄청 성실한 사람이었대. 무슨 일이 있던걸까-"
"글쎄다"
짜라짜라짯짯짜짜라-. 코마치의 말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사라져간다. 유행시킨 장본인도 사라져간다. 저 뻔한 단판 승부에 감정이입 해버리겠어.
이런, 진짜로 졸립다. 카페인은 중요할때 효과를 주지 않는 인상이다. 이전에 1리터 약간 달달한 커피를 단번에 마셨을때는, 잠을 잘 수 없어서 30권 가까이 완결끝난 만화를 1권부터 독파하게 됐는데.
"뭐, 그 애의 집안사정이니까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요즘 사이 좋아져서 상담받았거든-. 아, 그 애 카와사키 타이시라고 해. 4월부터 학원에 다니게 됐는데"
"코마치"
나는 샤프펜을 조용히 내려둔다. 졸음이 단번에 날아갔다.
"그 타이시 뭐시기하고는 무슨 관계냐. 사이 좋다는건 어떤 사이가 좋다는거야"
"……오빠, 눈이 진심이야-"
내 험악한 분위기에 코마치가 가볍게 깨고 있었다. 코마치는 이상한데서 뛰어나니까. 이상한 남자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오빠는 그런거 용서 못해.
"뭐,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얘기해. 전에 말했잖아. 봉사부라는 의미 모를 부활동을 하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코마치가 니시시, 웃는다.
"역시, 오빠는 근면해"
× × ×
아침이다. 참새가 짹짹 거리고 있었다. 한 마리가 짹, 두 마리가 짹짹, 세 마리면――아니, 그건 됐어.
핫, 하며 눈을 뜨니 거기에는 평소 광경은 없었다. 이능 배틀계 라노벨같은 시작을 했지만, 단순히 거실이다.
아무래도 공부하면서 잤던 모양이다. 기억하고 있는건 코마치의 교우관계에 대해 물었던 부분까지.
"어이 코마치……어, 어라?"
주위를 돌아보니 코마치가 없었다. 창밖을 보니 태양이 높은 위치에 있었다.
……조심조심 시계를 보니 9시 반. 가만히 쳐다보지만 9시 반.
잠시 쳐다보아도 충격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엄청 지각이잖아……"
테이블을 보니 아침식사 토스트랑 햄 에그, 그리고 메모가 있었다.
『오빠한테. 몇번을 흔들어도 안 일어나서 먼저 갈게. 열심히 공부하는것도 정도껏 해!
추.우.시.인 아침은 제대로 먹고 가!』
코마치의 자화상같은 여자애 일러스트가 『떽!』거리고 있었다.
"뭐, 어쩔 수 없나"
일단 밥을 먹고 준비하자. 우물우물 아침을 다 먹고, 나는 그릇을 싱크대에 두고 교복으로 갈아입었다.
문단속을 확인하고나서 집을 나온다. 자전거로 도중까지는 경쾌하게 달렸지만, 학교에 가까워져가면서 점점 우울해졌다.
교문을 지나 주륜장으로 향하려고 자전거를 세워 승강구로 향한다. 학교로 들어가자 단번에 발이 무거워진다. 이를 악물고 게단을 올라 인기척이 없는 복도를 걸어, 마침내 2층 교실에 왔다.
나는 문 앞에서심호흡을 하고 문에 손을 댔다.
그러자 교실 안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쳐다본다. 교실 안에 정적이 찾아온다. 선생님의 강의 소리도 사라졌다.
이 분위기, 엄청 거북해. 그게 다들 『저녀석 누구더라, 교실 잘못 안거 아냐?』같은 분위기가 됐는걸.
나는 잽싸게 자기 자리에 앉고 큰 한숨을 내쉬었다.
"히키가야, 수업이 끝나면 나에게 오도록"
교탁을 주먹으로 쿵쿵 치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
"네……"
이런, 이거 완전히 막혔다. 왜 히라츠카 선생님 수업 시간에 온거야. 1시간만 더 늦을껄 그랬다!
그리고 수업종료까지 남은 5분밖에 없다. 변명을 전력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그럴때에 한해서 시간이 흐르는건 빠르다. 종이 울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히키가야는 여기로 오거라"
그렇게 말하고 선생님은 까딱까딱 나를 손짓한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든 참고, 나는 앞으로 향한다.
히라츠카 선생님의 정면에 서자 선생님은 나를 흘낏 노려본다.
"자아, 때리기전에 일단 내 수업에 늦은 이유를 들어주지"
맞는건 결정사항이군요, 선생님.
"선생님을 생각했더니 밤에도 잘 수 없어서……"
"정말이지? 진심이지? 괜찮지? 괜찮은거지? ――괜찮은거겠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이에요, 진짜로 무리입니다"
"무, 무리……!?"
히라츠카 선생님이 아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즉시 반야같은 얼굴이 됐다. 눈동자가 번뜩 빛난다.
"――소녀의 순정을 갖고 논 벌이다"
"잠깐, 기다려주세요 선생님, 소녀라니 여기서 농담은 그만두――"
하려던 말이 내 명치에 틀어박힌 주먹으로 지워진다. 나는 그대로 쓰러지고 콜록거렸다.
내가 통증에 끙끙거리고 있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은 기막힌 태도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이지, 이 교실은 문제아가 참 많군. ……그러는 사이에 한명 더"
입가에 미소를 띄우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쳐다보는곳에, 가방을 안은 여학생이 지금 막 등교하며 들어왔다.
나는 아래로부터 여학생을 본다. 길게 푸른빛갈이 감긴 흑발, 눈가에 점이 있고 의욕없어 보이는 눈동자. 크게 벌어진 가슴팍. 늘씬한 다리.
그리고 검은 레이스. ……뭔가를 떠올릴것 같은데.
"검은 레이스……검은 레이스……? ――――――――――――――――앗, 카와사키 사키!"
"――――――――――――――너는 어딜 보고 떠올리는거야!!!"
얼굴을 새빨갛게 만든 카와사키에게 어깨죽지를 콱콱 몇번이나 세게 밟힌다. 아파, 엄청 아파.
"……바보 아냐?"
몇번이나 짓밟고 만족했는지, 그렇게 중얼거리고 크게 한숨을 내쉰 후,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인사하고 자기 자리로 향해 간다.
나는 일어서서 카와사키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왠지 차갑다라기보다 식어있다는게 올바른것 같다.
"……파란 레이스도 괜찮겠네"
"히키가야, 치마속을 엿본 여학생에게 어울리는 속옷을 진지하게 고찰하는건 그만둬라"
히라츠카 선생님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 일에 대해서 조금 얘기를 하자. 방과후에 교무실로 오도록"
× × ×
약 1시간 정도 히라츠카 선생님의 설교와 체벌을 받고 나는 귀가겸 복합 상업 시설 마린피아의 서점에 들러서 책을 한권 구입했다.
그 후에 공부라도 하려고 생각해서 카페로 들어가니 유이가하마랑 유키짱이 있었다. 그리고 토토토토토토토토토츠카가 있었다. 케이크를 고르고 있는 토츠카 엄청 귀여워 진짜 귀여워.
그대로 돌아가도 괜찮았지만, 아니, 거. 토츠카가 있어서 용기를 내서 말을 걸려고 했다.
――그랬더니.
"아, 오빠"
어째선지 코마치가 있었다. 옆에는 전에 봤던 남자.
남자는 코마치의 목소리에 내가 오빠라는걸 깨달았는지 가볍게 인사를 했다. 생각했던것보다 평범한 소년인 모양이다. 그럼 어떤 남자라고 상상한거야, 라고 물으니 무지막지한 바이러스에 걸린 필터로 뒤덮였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코마치가 나에게 소개하듯 설명해줬다.
"이 사람, 카와사키 타이시. 어제 말했지. 누나가 불량하게 변했다는 사람"
"그러고보니 그런 얘기를 했지"
거의 흘려들었으니까 지금 듣고 겨우 떠올렸다. 그나저나 카와사키라아. 검은 레이스가 머리를 스쳤지만, 설마사카…….
"그래서 어떡하면 누나를 예전처럼 돌릴 수 있을까 상담받던 참이야. 아, 그치. 오빠도 얘기를 들어줘. 곤란한 일이 있으면 말해라고 했잖아"
말했다. 말했지만. 이 일은 어떠려나.
"……우선, 가족끼리 얘기했어?"
내 질문에 타이시 뭐시기는 흐린 표정을 짓는다.
"그건……. 하지만 요즘 계속 귀가가 늦고, 누나는 부모님이 하는 말을 전혀 듣지 않슴다. 제가 뭐라고 해도 너하고는 관계없다고 되려 화내고……"
타이시는 고개를 떨구었다.과연, 부모가 하는 말을 듣지 않는다면 틀렸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는건가. 그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는것 같군.
"……이젠 형님에게 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너에게 형님이라고 들을 생각은 없다!!"
"뭘 완고한 아버지같은 소리를 지르고 있는거니?"
뒤에서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유키짱, 유이가하마, 토츠카가 수상쩍게 나를 보고 있었다.
나와 같은 교복인걸 보고 지인이라고 판단한건지 코마치가 재빠르게 영업 미소를 지었다.
"이야-, 안녕하세요-. 히키가야 코마치에요. 오빠가 늘 신세지고 있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꾸벅꾸벅 인사를 시작한다. 여전히 외면이 좋은 녀석이다. 한편 타이시는 가볍게 인사하고, 스스로 이름을 대는 정도로 그쳤다.
"하치만의 동생? 처음 뵙겠어요, 같은반 친구인 토츠카 사이카야"
덧붙여 요즘 토츠카는 나를 이름으로 부르게 됐다. 괜찮지, 부럽지.
"아, 이거 정중한 인사 감사해요-. ……그보다, 귀엽네요. 그치, 오빠"
"허나 남자다"
"또 또 그런다아.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이 바보 오빠는"
"아, 응. 나는 남자야"
토츠카의 말에 코마치가 입을 벌리고 아연해했다. 뭐, 그렇겠지. 누구나 지나는 길이라고 생각해.
얼어붙은 코마치의 얼굴 방향을 억지로 바꾸어, 유키짱과 유이가하마를 보게 한다.
"그리고, 이쪽의 바보같이 생긴게 유이가하마고, 저쪽에 얼음마법이 특기인것 같은게 유키노시타다"
"바보라고 하지마!!"
"……"
유이가하마는 분개해하고 유키짱은 정말로 얼음마법을 쓸것같은 날카로운 눈을 나에게 향했다. 에, 에이차암- 농담인게 당연하잖습니까.
어느쪽이냐고 하면 코마치랑 가까웠던 유이가하마가 코마치에게 말을 건다.
"처, 처음뵙겠어요. 힛키의 반친구 유이가하마 유이야"
"아, 안녕하세요-, 처음 뵙……응? 음-……"
코마치의 움직임이 다시 멈추고, 빤히 유이가하마를 쳐다본다. 그에 비해 가하마 씨는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 눈을 피할 뿐이었다. 뭐야 이 대화.
잠시 대치하고 있을때, 유키짱이 말을 건다.
"이제 되겠니?"
"아, 죄송……해, 요"
유키짱의 목소리에 코마치가 돌아보니, 또 코마치의 움직임이 멈췄다. 유키짱을 가만히 쳐다보고, 생각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앗! 혹시 유키 언냐!?"
코마치의 말에 유키짱이 늠름한 표정을 풀었다.
"오랜만이야, 코마짱"
"유키 언냐!"
두 사람이 껴안는다. 그 모습을 유이가하마가 복잡해보이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저기, 힛키. 왠지 모르게 그럴거라고 생각했지만, 힛키랑 유키농은……"
"……아아. 같은 초등학교 급우, 였다고 할까………………………친구였어"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나는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그저 그 모습을 쳐다보는 수 밖에 없었다.
× × ×
모두 자기소개도 끝난 참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타이시가 입을 열었다.
"누나는 소부고등학교 2학년이고 카와사키 사키라고 합니다"
타이시의 말에 내가 놀란다.
"에, 카와사키 사키라면……그 검은 레이스?
"아마, 맞을검다. 누나는 꽤 신경 안쓰고 세탁물을 말려서……저기"
뭐, 남매라면 그럴테지. 라고할까 집에서 그 검은 레이스를 말리는거냐……장관이겠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니, 갑자기 양볼을 꼬집혔다. 양 옆에 있던 유키짱이랑 유이가하마다.
"………………………………힛키?"
"………………………………하치군……"
굉장히 예쁜 미소지만, 왠지 시커먼 감정이 배어나오는 느낌이 든다. 엄청 무서워. 타이시의 옆에 앉은 코마치가 히쭉히쭉 거리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꼬집히고 있었지만, 끝이 안 난다고 판단했는지 유키짱이 손을 내렸다. 그에 따라 유이가하마도 손을 내린다.
"뭐, 히키가야가 왜 카와사키의 속옷을 알고 있는지는 나중에 따지기로 하고"
싫다, 그거 도망치고 싶어. 유키짱은 나를 무시하고 계속한다.
"누나가 불량으로 변하기 시작한건 언제부터니?"
"아, 네. 그게, 누나는 중학교때는 엄청 성실하고 다정했어요. 소부고등학교에 갈 만큼요. 고등학교 1학년때도, 그랬을텐데, 변한건 최근이라……"
"고2가 되고나서 부터인가"
내가 턱에 손을 대고 생각하고 있으니, 유키짱도 같은 포즈를 잡고 있었다. 유키짱은 볼을 붉히며 커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귀가가 늦다, 라는건 구체적으로 몇시니?"
"그러게, 나도 꽤 늦는 편이구, 고등학생이라면 이상하지 않잖아?"
유키짱이랑 유이가하마의 질문에 타이시가 갈팡질팡 시선을 피한다. ……뭐, 마음은 안다. 내가 중학생때였다면 이 둘을 제대로 못 보는걸. 하지만 네 누나가 어떤 의미로 대단해. 여고생인데 검은 레이스니까!
"돌아오는 시간이, 아침 5시를 넘어서라구요……"
"아침에 귀가잖아……"
이런, 위험하잖아 진짜. 여고생이 속옷이 검은 레이스인데다 매일 아침에 귀가라니, 상상이 그쪽밖에 안 되는데.
생각이 들켰는지, 또 둘에게 뺨을 꼬집히고 있으니, 토츠카가 타이시에게 물었다.
"그런시간에 돌아와서, 부모님은 아무 말도 안 해?"
"저희 집은 부모님이 맞벌이라서, 아래에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어서 별로 누나에게는 시끄럽게 말을 못함다. 거기다 시간이 시간이라서 얼굴을 맞댈수도 없고……가끔 마주쳐도 싸우기만 하고, 제가 말해도 『너하고는 관계없어』라고만 하고……"
타이시가 어깨를 떨구니, 내 옆에 있는 유키짱이 한숨을 쉬었다.
"가정 사정……어느 집에도 있는거구나"
"유키, 짱……"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 ……그 집을 생각하면. 그리고, 유키짱의 지금 우울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우리들의 상태를 눈치 채지 못하고, 타이시는 그대로 얘기를 계속했다.
"거기다 그 뿐만 아니라. ……왠지 이상한 곳에서 누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와요"
타이시의 말에 유이가하마가 묻는다.
"이상한 곳?"
"네. 엔젤이라고 하는, 아마 가게일텐데요……점장이라는 사람한테서"
"……"
아니, 이거 불가항력이잖아. 지금까지 정보로는 이미 에로한 느낌은 났지만, 이제 여기까지 오면 단정지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거다, 에로하다. 진짜 에로하다. 후에에…… 카와사키랑 마주치면 어떤 얼굴을 하면 돼에…….
"……하치군 색골"
"힛키, 야한 얼굴하고 있어……"
둘에게 도끼눈으로 보여지지만, 이건 어쩔 수 없어. 그치만 에로한걸.
"하아. 아무튼,어디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 우선 그곳을 특정하는게 필요해. 에로가야가 말하는것처럼 위험한 가게가 아니라고 해도, 아침까지 일하고 있는건 위험해"
"그만두게 만들어도, 다음에는 다른 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할지도?"
유이가하마의 말에 코마치가 끄덕였다.
"독사랑 망구스네요"
"챗바퀴겠지"
그리고 나의 이미지네이션의 고속회전도 챗바퀴를 돈다. 이젠 뭘 들어도 에로하게 들린다. 다른 가게라.
"그런데, 어떡할래 유키노시타. 부활동 정지 기간인데, 응?"
내 질문에 유키짱이 어깨에 걸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면서 또렷하게 말했다.
"카와사키 타이시는 본교의 학생, 카와사키 사키의 동생이고, 더군다나 상담내용은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의 일, 충분히 봉사부의 일의 범주야"
유키짱의 말에 유이가하마가 끄덕끄덕 수긍했다. 아니, 너 절대 모르지.
"……알았어. 할까"
"그래. 대처 치료법과 근본치료를 평병행해서 하자"
타이시는 그걸 듣고 희색만면해졌다.
"아, 네! 죄송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이렇게해서 카와사키 타이시의 의뢰는 수리되고, 시험전이지만 봉사부의 활동이 시작하게 된 것이다.
4. 자이모쿠자 요시테루는 예측을 틀린다.
다음날부터 카와사키 사키 갱생 프로그램은 스타트했다.
방과후, 내가 부실로 발을 옮기니 유키짱이 어려워보이는 책을 들고 있었다.
"그럼 시작하자"
그 말에 나랑 유이가하마는 끄덕인다. 옆에는 어째선지 토츠카의 모습도.
"토츠카, 무리하게 안 어울려도 되는데?"
유키짱의 무리한 행동에 어울리게 하는건 정말로 괴롭다. 하지만 토츠카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으응, 나도 얘기를 들었으니까. 거기다, 하치만네가 어떤걸 하는지 흥미 있고, 방해가 아니라면 같이 하고 싶어"
"그런가. 그럼――교제해줄래?"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얼굴을 경직하며 말해버렸다. 바지자락을 꼬옥 잡고, 올려다보며 사귀고 싶다고 들으면 어떤 남자라도 고백할거 아냐!!
하지만 남자야! 진짜로 D메일로 세계선을 바꾸고 싶어! 오히려 타임리프로 유소년시절 토츠카를 만나러 가고 싶어! 날아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나의 이성)!!
나의 모습을 유키짱과 유이가하마가 차가운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유키짱이 헛기침을 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조금 생각해봤는데, 가장 좋은건 카와사키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거라고 생각해"
"그야 그렇겠지. 구체적으로 어떡할건데?"
"애니멀 세라피라고 알고 있어?"
"아. 나 알고 있어"
유이가하마가 말을 한다. 유이가하마가 읽을법한 잡지에도 쓰여있을것 같은 일이니까. 일에 지친 여자가 치유를 받는다고한다나.
뭐, 카와사키가 자신의 동생말대로, 마음 상냥한 여성이라면 동물과 접촉하는걸로 무슨 효과는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동물은 어디서 조달할거야?"
"그거 말인데……누가 고양이를 기르고 있지 않니?"
유키짱의 질문에 토츠카가 고개를 붕붕 저으며 부정했다. 귀엽다아. 그냥 토츠카면 되잖아. 토츠카 세라피. 효과는 나 가지고 실증 끝났고.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나, 개라면 기르고 있는데 안 돼?"
"고양이가 좋아"
유키짱이 즉답한다. 그 망설임없는 대답에 의문이 하나 떠오른다.
"왜 고양이가 아니면 안 되는거야……학술적으로 근거라도 있어?"
"특별히는 없지만……아무튼 개는 안 돼"
그렇게 말하고 유키짱은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왠지 걸리는데……뭔가 생각날것 같다.
――앗.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개는 거북했었지"
내 말에 유키짱이 멋쩍은듯 삐친듯한 표정을 짓는다. 유이가하마가 놀란 모습으로 소리를 지른다.
"거짓말, 유키농 개 싫어해? 어째서!? 그렇게나 귀여운데!"
유이가하마의 말에 생각난걸 토대로 내가 대변한다.
"그게 말이다, 예전에 우리집에서 원인 중 하나가 문제야……"
"원인 중 하나가 아니라 만악의 근원이야. 하치군 바보"
뚱해져서 유키짱이 말한다. 그 모습을 보고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어떻게 된 일이야?"
"그건 말이지――"
나는 유이가하마에게 설명을 시작한다.
――예전에 히키가야 가는 개를 길렀었다. 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있어서, 내가 중학교로 갈때쯤에 천수를 다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는 아직 건재해서, 마당에서 태연하게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날, 유키짱이 집으로 놀러왔다. 개를 기르고 있다는걸 모르는 유키짱은,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로 현관으로 향했다.
하지만, 뭐가 놈의 금선을 밟은건진 모르겠지만, 난데없이 유키짱에게 우리집 애견이 달려든것이다.
『히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유, 유키짜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대형견인 우리집 개에게, 당시 아직 초등학생인 유키짱은 어찌하지도 못하고 유린당했다. 나도 아직 초등학생이라서 우리집 개를 떼어낼정도의 힘도 없고…….
결국, 한 차례 달라붙고 만족한 개가 떨어지니, 거기에는 침투성이가 되어 아연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유키짱이 있었던 것이다. 그 이래로 유키짱은 개를 거북해하게 됐다.
지금 되어 생각해보면 왜 『매달리기』인데 위력이 90이나 되는건지 납득할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유키짱, 얼음타입 같은데 효과 발군이었어…….
"――뭐어, 그런 느낌"
"아하하……그건……어쩔 수가 없네-"
유이가하마가 쓴웃음을 짓는다. 역시 달래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처음으로 하치군의 집에 놀러갔는데, 집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게 세탁기와 욕실을 빌리는거였어"
약간 울상지으면서 유키짱이 말한다. 일단 우리집 개를 옹호하자면, 애시당초 정원에 풀어놓고 기르고 있는 우리 집이 잘못했고, 그 후에 무서워하는 유키짱을 보고 진심으로 반성했는지, 우리집 개가 유키짱에게 매달리는건 그때 뿐이었다. 그보람이 있어선지, 유키짱은 우리집 개에게 그렇게까지 경계심을 품지 않게 됐다.
하지만 개라는 생물은 갑자기 뛰어든다. 라고 뇌리에 새겨진 듯해서 지나가는 개를 보면 경계하게 됐다. 내가 있을때는 등 뒤에 숨고.
"뭐어, 유키노시타의 약점은 그렇다치고, 지금 우리집에 고양이를 기르고 있으니까, 우리집 고양이면 돼?"
"그래"
유키짱의 눈이 사냥감을 노리는 맹금류처럼 된것 같지만, 신경쓰지 않고 나는 코마치에게 전화를 건다.
『네넹-. 코마치야』
"지금 너, 집에 있어?"
『응, 있어-. 그게 왜?』
"우리집 고양이, 소부 고등학교까지 데려와주지 않을래?"
『에-…… 카군 무거우니까 싫어어……』
우리집 고양이는 카마쿠라라고 하는데, 부르기 길다면서 카군으로 약칭으로 부르고 있다.
"유키짱이 데려와달라고 하는데"
『엥, 유키 언냐가!? 당장 갈게!』
전화가 끊긴다. 나보다도 유키짱이 우선도가 높은 모양이다. 친오빠인데!
"바로 온대. 밖에서 기다려도 돼?"
유키짱에게 말하고 교문에서 기다리길 20분. 코마치는 캐리어 케이스를 한 손에 들고 시원스럽게 나타났다.
"미안, 코마짱. 굳이 오게 만들어서"
"유키 언냐를 위해서인걸!"
만면의 미소로 대답하면서 코마치는 캐리어 백의 상부를 열어보였다.
거기에는 카마쿠라가 자리잡고 있었다.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나한테는 이렇게 귀염성이 업을까. 토츠카를 보고 배워라.
"와-! 귀엽네!"
그런 토츠카는 카마쿠라를 보고 말했다. 네가 훨씬 귀여워.
나는 토츠카에게서 카마쿠라를 받아들고 어깨 위에 올렸다.
"그래서, 이 녀석은 어떡해?"
"박스에 넣어서 카와사키의앞에 둘거야. 카와사키의 마음이 움직이면 분명 주울거야"
"우리 집에 안 오나, 아니 그보다 고양이 주워가는거냐……"
내 머리속에서 카와사키가 종지부 쪽으로 갈것 같았다. 아아, 그러니까 밤늦게까지 원나이트 카니발을……. 그나저나 카와사키는 여깡패 차림이 어울릴것 같다. 가위라던가 들고 인의일체할것 같아.
"그럼 박스 갖고 올게"
나는 곁에 있던 유이가하마에게 고양이를 맡기려고 했지만, 유이가하마의 얼굴이 경직된걸 놓치지 않았다.
"뭐야 너, 고양이 싫어? 고양이한테 쫓겼어?"
"어디의 쥴리야!"
제리겠지, 바보야. 그래선 사와다 겐지잖아.
"코마치, 부탁해"
나는 코마치에게 카마쿠라를 넘기자 기분 좋다는듯 고롱고롱 거렸다. 짜식이……고양이이면서.
"그럼 다녀올게"
아마 박스를 받을 수 있을 사무실로 향해 걸어가고 있으니, 유이가하마가 쫓아왔다.
"제리 주제에 쫓아올 줄이야"
"언제까지 그 드립 쓸거야, 증말! ……저기 말야, 딱히 고양이를 싫어하는건 아니야"
"딱히 고양이를 싫다고 너를 싫어하지는 않아. 기껏해봐야 신경써주는것 정도다"
내 말에 유이가하마가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며 화낸다.
"따따따따따따딱히 싫어하길 원하고 싶지 않아서 말한건 아니거든!"
"예이예이, 그럼 여기까지 왔으니까 도와줘"
"아, 알고 있어"
도우라고는 했지만 박스는 가볍다. 결국 박스를 든 내 뒤를 유이가하마는 그냥 따라오는 형태가 됐다.
역시, 이 녀석 강아지 같아.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애니멀 세라피는 중지가 됐다. 왜냐면 카와사키가 고양이 알레르기였다는게 발각됐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정말 좋아하는 고양이를 만긱하고 있던 유키짱만 득을 봤다.
『냐-냐냥냐-?』
『―――윽!!!』
『오, 오빠가 무너졌다아아아아아아아아!!』
유키짱이 말한 이 소리가 올해 유행어 대상(내 안에서)이 될것 같다.
다음, 히라츠카 선생님의 의한 설득도 시험해봤다. ……허나 그것도 실패.
『선생님, 제 장래 걱정보다 자기 장래 걱정하는게 어때요? 결혼이라던가』
『커헉!?』
일격필살! 히라츠카 선생님은 눈 앞이 어두워졌다! 진짜 누가 받아가줘!
석양을 등진 히라츠카 선생님을 배웅하고나서 1시간 후, 현재 시각은 오후 7시 반. 코마치는 카마쿠라도 있고 해서 먼저 돌아갔다.
이 시간이 되면 밤의 가게가 활기를 채운다.
"치바 시내에서 『엔젤』이라고 이름 붙는 음식점에서 아침까지 영업하는 가게는 두 점포밖에 없는 모양이야"
"그 중에 하나가 여기라는 소리?"
유키짱은 네온과 전자간판이 반짝반짝 빛나, 『메이드 카페 엔젤하고 있다』라고 쓰여진 간판을 수상쩍게 봤다. 그 옆에는 '어서오시라냥 멍♪'라며 짐승귀 여자애가 손짓하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입간판까지 있다.
"치바에 메이드카페가 있다니……"
유이가하마가 희귀하다는듯 헤-, 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나, 별로 자세하진 않은데……저기, 메이드 카페는 무슨 가게야?"
토츠카는 간판 글자를 몇 번이나 읽고 있었지만 이해 못했던 모양이다. 뭐어, 『모에모에 메이드 타임을 함께 보내지 않겠습니까?』 라고 쓰여있어도 의미를 모를 것이다. 메이드 타임을 보낸다니, 이쪽이 메이드하는거야?
"아니, 나도 실제로 가본 적은 없어. 그러니까, 그 방면에 유식한 사람을 불러왔다"
"본관을 불렀나, 하치만 히키가야"
커다란 검으로 체스토오오오오 하는 두목같은 말투로 나타난건 자이모쿠자. 초여름인데 코트를 나부끼며 땀을 흘리고 있다. 코트 옷깃에는 소금 결정이. 아무리 그래도 그거, 세탁하라고…….
"……"
유이가하마가 경직된 미소를 짓고 있다. 어이, 그 반응이 제일 본인에게 상처되니까 그만해. 그러는 나도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표정을 짓고 있을 내가 더 심하겠지만!
"……스스로 불러놓고 어째서 그런 표정인거냐"
"미안하대도. 믿고 있기는 하지만 좀 상대하는게 귀찮구나 생각해서"
"이거야 원. 나참. 실력이 길항하는 그대를 상대하는거니 본관도 조절하기 어려우니 말이지. 본관의 상대를 꺼려하는 마음은 잘 알겠다"
"그런 점이 귀찮다는거다……"
하지만, 메일을 보내서 일을 설명하니, 치바시내에서 『엔젤』이 붙는 가게 검색을 해준건 다름 아닌 자이모쿠자였다. 대충 취급 하고 있지만, 그건 단순히 짜증나기 때문일 뿐이지, 실은 평범하게 감사하고 있다.
덧붙여서 카와사키가 돌아오는 시간, 성격 등의 정보에서 카와사키가 일하고 있는 확률이 높다고 자이모쿠자가 판단한 것은 이 『엔젤하고 있다』이다.
"시내에 있는 후보는 둘. 그리고 카와사키 사키라면 틀림없이 이곳을 선택한다고 본관의 고스트가 속삭이고 있다"
"왜 아는건데?"
내 말에 자이모쿠자는 훗, 웃고는 안경 속에 꽤나 둥근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뭐, 잠자코 본인을 따라와라……. 메이드 씨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다……"
신입사원을 캬바라로 데려가는 선배 사원같은 말투로 자이모쿠자는 코트를 펄럭였다.
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따라갈까. 만약 카와사키가 있다고 하면 메이드복 아래는 검은 레이스, 라는 정체모를 선정적인 시츄에이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잖아. 텐션 올랐다!
고동치는 심장소리를 참아내지 못하고, 첫 발을 내딛으려던 순간, 양 팔을 콱, 붙잡혔다.
"……………………"
"……………………"
뒤돌아보니 뾰로통해진 얼굴의 유키짱과 유이가하마가.
"…………왜?"
"딱히, 아무것도 아니야"
"맞아맞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힛키도 그런 가게에 가는구나아, 해서. 그것 뿐이야"
아니아니아니아니 아무것도 아니긴. 말하고나서 내 팔을 잡는 힘이 세졌잖아.
둘 다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걸 타파하기에는 뭔가 혁신적인게 필요하다. 어쩌면 좋을까…… 주위를 돌아보니 가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쓰여진 문장이 나의 정수리를 파고 달려갔다.
"저, 저거! 간판을 봐줘!"
"어?"
"뭐니……아"
두 사람이 동시에 간판에 시선을 주고, 유키짱이 어떤것을 눈치챘다. 간판에 쓰여있던 문장, 그건.
『여성도 환영! 메이드 체험가능!』
어째선지 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 × ×
일단 남녀 5명이서 『엔젤하고 있어요』에 들어가니, 약속된 대사와 함께 테이블로 안내받았다.
유이가하마와 유키짱은 그 메이드 체험을 하러, 자리로 안내받은건 나와 토츠카와 자이모쿠자뿐이다.
"주인님. 정해지면 주문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고양이귀 카츄샤를 쓴 붉은 플레임의 안경을 쓴 누님이 메뉴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머리가 나빠보이는 둥근 문자로 질질 글씨가 쓰여있고, 어째선지 옵션이 가위바위보나 사진촬영 같은거였다. 에, 평범한 칫집 옵션은 컵의 크기나 토핑이 아냐……? 나의 상식이 허약하게 무너지려고 한다.
이런건 자이모쿠자가 하겠지, 라고 생각했더니 당사자는 몸이 움츠러들어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가게에 들어오고나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왜 그래?"
"무……리, 본관은 이런 가게 자체는 좋아하지만 들어가면 긴장해버려서 말이지……메이드 씨하고는 제대로 대화를 못하는거다"
"아, 그러냐……"
자이모쿠자를 내버려두고 나는 토츠카에게 시선을 맞추니 주위를 돌아보면서 안절부절해하고 있었다.
"후와아……이런 가게구나. 다들 귀여워"
아니, 절대로 토츠카가 훨씬 귀여워. 오히려 토츠카가 메이드복을 입으면 천하재패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테이블에 놓여진 벨을 누르니,바로 메이드 씨가 와주었다.
"기다리셨나요, 주인님"
"카푸치노를. 토츠카는?"
"저도 같은걸로요"
그럼 카푸치노 둘로, 주문을 하니 고양이를 카푸치노에 그릴지 말지를 물었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메이드가 가버린 뒤 조금 기다리니, 트레이를 들고 안절부절 못하는 발걸음으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메이드 씨가――――아니, 유이가하마잖아.
"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 주인님"
말하는게 부끄러웠는지, 새빨개진 얼굴로 컵을 둔다.
쳐다보니 입고 있는건 꽤 볼만한 느낌의 메이드복. 흑색과 백색을 기초로 하고,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달려있다. 하지만 치마가 무지 짧은데다 가슴팍까지 강조되어 있다.
"………………"
"어, 어울려?"
유이가하마가 트레이를 테이블에 두고 조심스레 빙글 돈다. 장식 리본이랑 프릴이 나부낀다.
"와아, 유이가하마 귀엽네. 그치, 하치만?"
"응? 아, 아아. 그렇군"
토츠카가 질문하고 무심코 대충 대답을 해버린다.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칭찬받았다고 이해한듯 해서 기쁜듯 웃는다.
"그, 그런가. ……에헤헤"
뭐, 기본이 좋은건 원래 알고 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인상이 바뀐줄은 생각도 못했다. 이게 메이드 파워인가……!
"아니-, 그치만-. 메이드복은 치마가 짧고, 스타킹도 빡빡하구, 옛날 사람은 이걸입고 일했다니, 힘들었겠네-"
얘 무슨 소리 하는거야. 설마 전통 있는 메이드 정장이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옷이라고 생각하는거야?
"너, 말 안하면 귀여울텐데……"
"뭣! 무슨 의미야! 라고할까 귀엽다니……"
입을 여는것과 동시에 뻗어온 트레이가 내 머리에 직격해서 유이가하마가 마지막에 뭐라고 말했는지 못 들었다.
"뭘 놀고 있니……"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와서돌아보니, 거기에는 대영제국 시대의 메이드 씨가. 유키짱이었다.
"우왓, 유키농 대단해! 엄청 잘 어울려. 엄청 예뻐……"
아까전의 분노는 어디갔는지. 하아- 라며 유이가하마가 감탄의 한숨을 쉬었다.
"하치군. ……어떠니?"
유키짱이 나에게 감상을 요구한다. 아, 아니 어떠냐고 해도 말이지…….
"예, 예쁘다고, 생각해……"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한다. 어째선지 직시할 수 없었다. 힐끔 곁눈으로 유키짱을 보니, 입가에 손을 대며 기뻐하고 있었다.
"입은 보람이 있었구나. 후후"
완수했다는 듯이 유키짱은 웃는다. 메이드복을 입은 탓일까, 원래 단아한 행동이 더욱 강조되어서 정말로 메이드 같았다.
내 반응에 만족했는지 부활동 모드로 들어가기 위해 유키짱이 표정을 경직했다.
"――그리고 아까 시간 배정표를 보고 확인한건데, 이 가게에 카와사키는 없는것 같아. 자택에 전화를 걸었다는 점에서 생각해봐도 가명으로 일하는건 아닐테고"
게다가 유키짱, 제대로 잠입조사를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대로 즐기고 있었어요.
"과연. ……………빗나간 모양이다, 자이모쿠자"
나는 옆에 앉은 자이모쿠자에게 말을 거니, 자이모쿠자는 고개를 틀며 신음소리를 냈다.
"이상해……그럴리 없을터인데……"
"앙?"
"르흥. ……츤츤 거리는 여자애가 메이드 카페에서 몰래 일하며, 『냥냥♪어서오세요, 주인님……아니 왜 네가 여기 있는거야!?』가 되는건 이미 숙명이거느을!!"
"알까보냐"
……라고 말로는 했지만, 그랬으면 기쁠텐데, 라고는 생각한다, 자이모쿠자.
왜냐면, 그런 말을 하면 옆의 메이드 둘이 엄청 무서운걸.
5. 그래도 카와사키 타이시는 기다리고 있다.
메이드 카페에 간 다음날, 부실에는 사상최대의 인원수가.
대상 치료가 제대로 안 됐을때는 시점을 바꿔서 근본치료를 해야한다며 유키짱의 말로 모두 모였다.
나와 유키짱, 유이가하마는 뭐 부원이니까 안다. 토츠카와 자이모쿠자도 도움을 받고 있으니까 이해한다.
다른 한 명, 이 자리에 있는건 부자연스러운데, 위화감 없이 여기에 녹아있는 인물이 있었다.
"……왜 하야마가 있는거야?"
창가에 하야마가 책을 읽고 있다. 웃기지마, 산뜻한 스포츠맨인데 독서라니, 치트잖아. 어째서야! 치터야! 내가 말을 하니 하야마가 책을 덮고 안녕, 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 나도 유이에게 호출받은건데"
"유이가하마한테?"
내가 돌아보니 유이가하마가 어째선지 득의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아니, 내가 생각한건데 말야, 카와사키가 변한건 무슨 원인이 있는거아냐? 그치만 원인을 알아내려고 해도, 남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렵잖아?"
"그렇군"
"그치? 그러니까 역발상으로 바뀌어서 나쁘게 됐으니까, 한번 더 바꾸면 이번에는 좋아질거잖아"
동전의 앞뒤도 아니고, 그렇게 간단하게 될까,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유키짱이 유이가하마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서, 왜 하야마를 부를 필요가 있던거니?"
유키짱의 하야마에 대한 말투에는 약간 가시가 있었다.
……뭔가가 걸린다. 아직 떠올리지 못한게 있는걸까……?
『――――――는―――를―――지 않아――――』
"에이참- 유키농, 여자애가 변하는 이유는――"
"여자애가 변하는 이유――"
"――읏"
핫 하며 제정신을 차리니 유키짱이랑 유이가하마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
그리고 방금전까지 내 상태를 하야마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도로 차리고 유이가하마에게 시선을 향하니, 어째선지 부끄러운듯 입을 열었다.
"여자애가 변하는 이유는……사, 사랑이라던가"
……엄청 부끄러운 소리를 했다!! 이건 부끄럽다.
"아, 아무튼! 신경쓰이는 사람이 생기면 여러모로 변하는거야! 그러니까, 그게, 계기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나…… 그래서 하야토를 부른거야"
"아, 아니, 거기서 왜 내가……"
하야마가 쓴웃음을 지으며 유이가하마에게 말한다. 이 자식, 정말로 모른다면 아무리 나라도 화낸다? 라고,생각해서 크악, 하며 노려봤더니 거의 동시에 자이모쿠자도 하야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밖에도 여자에게 사랑받을법한 녀석, 많이 있잖아. 이 중에도……"
그렇게 말하며 하야마가 토츠카를 쳐다보니, 순간 나를 쳐다본것 같은데, 괴롭히기냐, 이 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절대로 용서 못해! 라고 생각해서 크악, 하고 노려봤더니 거의 동시에 자이모쿠자도 하야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 나? 그, 그런건 잘 모르니까……"
하야마의 의도를 눈치챈 토츠카가 얼굴을 붉히며 숙인다. 엄청 귀엽다.
그 모습을 보고 유이가하마는 팔짱을 끼고 생각하는 몸짓을 했다.
"응-. 사이도 인기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카와사키의 타입하고 안 맞는다고 생각해. 그 밖에는 중2는 중2구. 그러면 하야토밖에 없잖아"
"뭘 태연하게 나를 빼는거야. 딱히 따돌려지는건 평소대로긴 하다만"
"히, 힛키는 문제외야!"
"그래. 문제외야"
유이가하마의 말에 유키짱이 삐친 얼굴로 찬동한다. 나 울거 같은데. 진짜냐…… 나는 자이모쿠자보다도 사정권외였나……. 확실히 이래저래 자이모쿠자하고 잘 어울렸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뭐어, 외톨이에겐 아무도 흥미를 가질리 없나"
혼자 납득하고 있으니 조금 면목없다는듯 유이가하마가 입을 열었다.
"앗, 아니, 그렇게까지는 안 말했는데, 오히려 그렇게 나쁘지 않지만, 사정에 따라선 운다고 할까……. 그러니까 하야토에게 부탁하고 싶은데"
유이가하마는 『부탁할 수 없을까?』라고 양손을 모아 하야마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부탁에 하야마는 조금 어깨를 움츠리며 대답한다.
"알았어. 그런 이유가 있다면 어쩔 수 없으려나. 그렇게 내키지는 않지만 해볼만큼은 해볼게. ……유이도 힘내"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의 머리를 살짝 두드렸다. 굉장하구만 이 녀석, 아무 부자연스러운 점도 없이 여자에게 스킨십을 할 수 있다니.
"고, 고마워……
유이가하마는 맞은 머리를 문지르면서 힐끔 나를 봤다. 나 보지마.
이렇게해서 유이가하마 발안에 따른, 지골로 하야마의 가슴 뀽 작전은 막을 연 셈이다.
개요는 간단, 하야마가 그 얼짱력을 최대한까지 발휘해서 카와사키의 하트를 하트 캐치하는것 뿐이다. 덧붙여서 얼짱력은 도미노 작품 잘 부탁해 얼짱력(힘)이라 읽는다. 내 안에서.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주륜장으로 이동한 우리들은 카와사키가 오는걸 기다린다. 물론, 우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와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 때가 온다.
카와사키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패기 없이 질질 끄는듯한 발걸음으로 걷는다. 하품을 죽이듯 자전거 자물쇠를 따던 차에 타이밍 좋게 하야마가 나타났다.
"수고했어, 졸려보이네"
가볍게 말을 건다. 연기일텐데 무척이나 자연스럽다.
"알바하는거야? 너무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은데?"
하야마의 대수롭지 않은 배려에 카와사키는 하아, 라며 귀찮다는듯 한숨을 쉬었다.
"배려 고맙네. 그럼 나 갈거니까"
무뚝뚝하게 말하고 자전거를 밀고 가려고 한다. 하지만 그 등에 다정하게, 마음을 녹이는듯한 따듯한 말이 던져졌다.
"저기 말야……"
역시 카와사키가 다리를 멈추고 하야마를 돌아본다.
시원스런 초여름의 바람이 둘의 사이를 통과했다. 뭐야 이거, 하야마의 고유결계나 뭐 그런건가……? 갑자기 전개된 러브코메디 공간에 유이가하마가 흥미깊게 몸을 앞으로 내민다. 한편, 자이모쿠자는 질투와 증오로 몸을 태우고 있었다. 왠지 안심한다.
압도적인 얼짱력(힘)이 해방되어, 하야마가 반짝반짝 빛나보인다. 이, 이것이 하이퍼 화인가……! 아무래도 좋지만 하이퍼 하야마 하야토는 이니설이 트리플 H네.
"그렇게 강한체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
"……아, 그런거 필요없거든"
자전거 타이어가 돌아간다. 하지만 하야마 하야토의 시간은 멈춘 상태다. 잠시 그 자리에 남겨진 하야마는 조금 수줍어하면서 그늘에서 지켜보고 있던 우리들에게 돌아온다.
"왠지 나 차여버린것 같아"
……………….
"아,아니, 수고했어……읏"
위로의 말을 하려고 했더니 웃음이 새어나올것 같아서 말이 막힌다. 아- 이런, 진짜 엄청웃을것 같다. 하지만, 내 옆에 있던 녀석은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타아아아아아아아아앗핫핫핫핫핫핫핫하! 차, 차였어! 차였다고! 저렇게 폼잡아놓고, 차였어! 핫핫핫핫핫핫핫하히이익힉힉"
"그, 그만둬 자이모쿠……큿"
"두, 둘다 웃으면 안 돼!"
토츠카에게 충고받고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자이모쿠자의 웃음소리에 따라 도무지 참을 수 없다.
"뭐, 뭐어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돼, 토츠카"
하야마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이 녀석은 정말로 좋은 녀석이군. 우리에게 협력해주는데다 이런 아무래도 좋은데서 상처까지 입고.
아무리 나라도 웃음을 집어삼키고, 진정하기 위해 헛기침을 했다.
"후우. ……웃어서 미안하다, 하야마. 하지만 결과로선 이것도 실패로 끝났군"
나는 유키짱을 돌아보니, 한숨을 쉰 유키짱이 말한다.
"어쩔 수 없구나. 오늘밤도 남은 가게 한 곳으로 가보자"
봉사부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중에 가장 통쾌했습니다. 진짜로.
× × ×
손목시계 바늘이 오후 9시를 가리키고 있다.
나는 지금 호텔 로열 오클라의 앞에 서 있다.
라는것도, 치바시내에 존재하는 『엔젤』이름이 붙는 가게이고, 남아있는 곳이 여기 최상층에 위치하는 『엔젤러더 천사의 층』뿐이기 때문이다. 뭐어, 처음부터 선택지가 둘 뿐이었지만.
자이모쿠자가 가리킨 가게의 정보를 들으면, 유키짱이 이 가게에 드래스코드가 존재할 가능성이 극히 높다는걸 가르쳐줬다. 그리고, 드래스코드에 맞춘 복장을 준비할 수 있는건 아버지의 옷을 빌릴 수 있는 나와 유키짱, 그리고 유키짱의 옷을 빌린 유이가하마 셋만이 되버렸다.
유감스럽지만 참가할 수 없게된 토츠카와 자이모쿠자에게 사죄와 감사를 말하고 우리들은 옷을 갈아입은 후, 호텔 로열 오클라의 앞에서 집합하는 형태가 된 것이다.
그나저나, 이 자켓은 익숙치 않다. 나의 지금 모습은 얇은 자켓에 검은 옷깃의 컬러 셔츠. 아래는 바지에 롱노즈 가죽구두. 예전 여자친구와 데이트할때도 이런 차림을 한 적은 없었다.
옷 코디네이트를 해준건 코마치지만, 너무 맡겨버리는건 미안해서 머리 세팅은 스스로 했다. 그것도 그, 눈의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평판의 안경을 장착. 뭐, 일단 이걸로 드레스코드는 돌파할 수 있겠지.
잠시 멍하니 기다리니 휴대폰이 울었다.
『지금 도착했는데, 왔어-??』
유이가하마한테서 왔지만, 주위를 돌아봐도 그 바보같은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기, 기다렸지……앗, 히, 힛키?"
왠지 좋은 냄새가 나는 미인 누님이 말을 걸었다……라고 생각했더니 유이가하마였다.
목 주위가 크게 파여진 심홍색의 드레스를 입고, 흐르는듯한 여성스러운 폼을 만들어낸다. 틀어올려진 머리카락, 엿보이는 목덜미에 무심코 숨을 들이켰다.
"히, 힛키 왠지 분위기가 완전 다르구……안경 끼고 있어……"
내 모습을 유이가하마가 멍하니 본다. 에, 나 뭔가 이상한 차림이야?
"그 쪽이야말로. 평소 별명으로 부르지 않았으면 유이가하마라고 몰랐을거야"
"흐-응, 그러니까 무슨 소리?"
히쭉거리면서 유이가하마가 묻는다. 큭, 알면서 말하고 있구만, 이 자식.
"……입다물고 있으면 엄청 이쁘지 않냐?"
고개를 홱 돌리면서 대답하니, 유이가하마가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입다물고 있으면, 은 필요없잖아"
"모처럼 차려입은거니까 단정하게 있으렴, 유이가하마"
니시시, 유이가하마가 웃고 있으니 옆에 칠흑의 드레스를 입은 미인이 서 있었다.
매끄러운 광택을 내는 생지가 처녀설처럼 하얀 피부의 아름다움을 돋우어내고, 무릎길이보다도 위의 플레어 스커트는 다리 길이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드레스로 인해 더욱 요염한 극상의 실크같은 흑발은 하나로 묶어져 가슴팍까지 늘어져있다.
"유키짱……"
무심코 이름을 중얼거리면서 응시하고 있으니, 조금 차분하지 못한 듯 이쪽을 힐끔쳐다본다.
"히, 히키가야도 그게, 뭐어 복장에 대해선 문제 없구나"
"솔직하게 멋있다고 말하면 좋은데"
"유, 유이가하마"
유이가하마가 중얼거린 말에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쓴웃음을 짓고 아까전에 유키짱이 말한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모처럼 차려입었으니까, 단정하게 있으렴, 유키노시타 씨"
"~~~~~~~~~~~~~읏!?"
"쓸데없이 닮았구……"
"그럼 가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 유키짱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예쁘다고 생각해"
"…………………………바보"
지워없애듯 엘리베이터 부저가 울고 문이 소리도 없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 최상층 버튼을 누르니, 유리로된 밖으로 위로 올라감에 따라 도쿄만을 돌아보게 되어간다. 마쿠하리의 야경에 눈을 빼앗기고 있으니, 순식간에 최상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곳은 우아하고 평온한 빛이 비추어진 바 라운지가 펼쳐져 있다.
"어이……진짜냐……"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다. 이 자리의 분위기가, 내가 침입하는걸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스포트라이트로 비추어진 스테이지 위에선 백인 여성이 피아노로 재즈를 연주하고 있다. 화려한 느낌이 장난이 아니다.
한번 유이가하마를 쳐다보니 그녀도 그녀대로 허둥대고 있었다.이럴때 같은 서민감각의 인간이 있으면 되게 차분해진다. 나는 짧게 숨을 내쉬고 별로 곁눈질을 주지 않도록 노력했다.
"――등을 곧게 펴고 가슴을 펴. 턱을 당길것"
유키짱이 나에게 귓속말을 하지만 의도를 몰라서 들은대로 했다. 그러자 유키짱이 내 오른팔꿈치를 살며시 잡았다.
"……나는 헐리우드 배우냐"
"조용히. 유이가하마, 똑같이 해"
"으, 응?"
영문을 모른채 들은대로 유이가하마가 내 왼팔꿈치에 손을 더한다.
"그럼 가자"
들은대로 나는 유키짱과 유이가하마의 보조를 맞춰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열려있는 무거워보이는 목제 문을 지나가니, 바로 집사 남성이 다가와서 고개를 숙인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남성이 먼저 가는걸 따라간다. 그러자, 일면 유리로 된 창 앞에, 그 중에서도 끝쪽에 있는 바 카운터로 우리들을 안내한다.
거기에는 말없이 유릿잔을 닦는 여성 바텐더가 있었다. 늘씬하게 키가 크고, 얼굴은 단정하다.
본 적이 있는 눈물점이군, 라고 생각했더니 카와사키였다. 긴 머리카락을 묶고, 집사 차림을 하고 있는 탓에 학교에서 받는 인상하고는 또 달랐다.
컵 받침과 땅콩을 조용히 내밀때, 카와사키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녀는 순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윽, 히키가야……?"
"……이름, 기억해줬구나. 놀랬다"
내 교실에 있는 녀석이 내 이름을 외우고 있는 녀석은 거의 없는데.
"………………………"
"………………………"
어째선지 유키짱과 유이가하마가 노려보면서, 둘은 내 옆에 양옆에 앉았다.
"찾고 있었어. 카와사키 사키"
마음을 도로 먹은 유키짱이 이야기를 꺼내니 카와사키의 안색이 변한다.
"유키노시타……"
그 표정에는 확실한 적의가 담겨 있었다. 접점이 없을텐데. 하지만, 교내에서는 유명인인 유키짱은 용모나 성격도 있어서 고깝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 테지.
"안녕"
카와사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키짱은 서늘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둘 사이에 시선이 교차한다. 왜 이렇게 호전적인거야.
"아, 안녕-……"
겁먹은 유이가하마의 인사에 카와사키가 긴장을 풀고 한숨을 쉰다.
"유이가하마냐…… 순간 몰랐다. 히키가야도, 꾸미면 되잖아"
"그거 고맙네"
나의 대답 후에 카와사키는 어딘가 포기한듯 웃었다.
"그런가, 들켰나"
아무래도 좋아졌지만 벽에 기대어 팔짱을 긴대. 학교에서 보여주는, 나른한 분위기를 낸다.
"……뭐 마실래?"
"나는 페리에를"
유키짱이 주문한다. ……페리에? 아아, 탄산 미네랄 워터인가. 익숙치 않아서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나, 나도 같은걸"
말하려고 했더니 유이가하마가 먼저 앞질렀다. 으윽, 나는 뭘 주문하면 돼.
"히키가야, 너는?"
카와사키의 질문에 반쯤 혼란에 빠진 나는 자포자기로 말한다.
"나는 MAX커"
"그에겐 단맛 진저엘을"
말하기도 전에 유키짱이 가로막았다. 카와사키는 쓴웃음을 지으며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샴페인 유릿잔에 각각 익숙한 손놀림으로 붓고, 살며서 컵 받침 위에 올렸다.
말없이 유릿잔을 대고 입을 대니, 기막힌 태도로 유키짱이 말했다.
"MAX커피, 여기에 있을리 없잖아"
"다행이다. 아무리 나라도 이 유릿잔에 MAX커피를 부으면 어떡하지 생각했어"
하지만 치바현인데 MAX커피가 없다니, 나는 인정 못한다.
"……뭐어, 있긴 하지만. 유릿잔은 역시 바꾸겠지만"
중얼거린 카와사키의 말에 내가 돌아본다. 정말? 이라는 얼굴로 묻고 있던 모양이라, 훗 웃으며 카와사키가 수긍한다.
그 모습을 유키짱이 도끼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옆을 보니 유이가하마도 그런 느낌이었다. 왜, 뭔데.
"그래서, 뭐하러 왔어?"
"요즘 귀가시간이 늦다고 네 동생이 걱정했어"
내 말에 카와사키는 쓴웃음을 짓는다.
"너, 그 말하려고 일부러 온거야? 수고했어. 하지만, 너한테 그런 말을 듣는 정도로 그만둘거라 생각했어?"
"뭐, 그 말대로지. ……저기, 왜 나이를 속여서까지 여기서 일하는거야, 라고 물어봐도 돼?"
마지막은 카와사키를 배려해서 음량을 낮췄다. 그러자, 카와사키는 『이미 묻고 있잖아』라며 눈을 감으면서 중얼거리고, 나를 돌아본다.
"딱히, 돈이 필요한것 뿐이야. 팬티 엿보기범"
"니것 밖에 안 봤어. 아니, 아니아니 여기선 조용히 넘어가자고? 아니, 진짜로"
양 옆의 둘의 눈초리가 순식간에 날카로워져서 입을 다문다. 그러고보니 두 사람의 팬티도 본 적이 있지. 검은 레이스가 너무 충격적이라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런 장난스런 진로를 쓰는 녀석에게, 이래저래 듣고 싶지 않은데?"
카와사키가 미간을 모으며 말했다. 언제였더라, 나랑 카와사키는 옥상에서 만났다. 그 때, 내가 쓴 직장견학 흼아 조사표를 봤던 것이다. 아아, 그러니까 이름을 기억해준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건 바꿀 생각이야"
진짜, 진짜로 가능하면 하고 싶지만,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카와사키는 내 대답에 『……그래』라고 한 마디만 말하고, 술병을 닦고 있던 클로스를 휙 하고 카운터에 던지고, 다시 벽에 기댄다.
"하지만, 너희 셋은 몰라. 딱히 노는 돈이 필요해서 일하는게 아니야. 노는 바보들이랑 같은 취급하지마"
나를 노려보는 카와사키의 눈에는 방해 하지마, 라는 굳세게 호소하는 힘이 있었다. 그 반면, 눈동자에는 눈물을 띄우고 있다.
그런 광경을 옛날에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그건―――――――――.
"……히키가야?"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유키짱이 되묻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유릿잔을 입에 댄다.
"――너는 '누나'지"
"……하? 무슨 말하는거야"
카와사키가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지만, 나는 그걸 가로막는다.
"대접 고맙다. 이제 졸리니까 이거 마시면 돌아갈까. 유키노시타네는 먼저 돌아가도 돼"
전표를 보고 모든 대금을 지불――으악, 비싸!? 뭐, 뭐어 어쩔 수 없나……. 지폐를 꺼내서 전표 위에 둔다.
"히, 힛키가 사주는거야……?"
유이가하마가 경악의 표정으로 말한다. 시끄러, 네 몫만 청구한다, 짜샤.
"……제대로 교육 받았구나"
유키짱이 깨달았는지, 삐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그녀의 말대로, 이건 예전 여친의 세뇌――아니, 교육 덕분이다.
데이트 때는 남자가 돈을 내라.
두 사람이 갈때, 둘이 말을 건다.
"나중에 메일 보낼게"
"알았어"
"응, 기다릴게"
둘을 배웅하고나서, 나는 유릿잔을 기울여 카와사키를 돌아본다.
"카와사키. 내일 아침에 시간을 줘. 5시 반에 길목에 있는 맥. 시간 돼?"
"왜?"
"조금, 타이시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라고 하면?"
"……뭐?"
카와사키의 눈색이 변한다. ――물었다, 그렇게 느낀 나는 단번에 남은 진저에일을 마시고 일어섰다.
"그건 내일 말할게. 그럼"
"잠깐"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나는 이 가게를 나갔다.
× × ×
다음날 아침. 아침 5시 지나서 맥에서 꾸벅거리면서 2번째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엄청 졸려, 잠 안잤는걸.
그리고나서 그 가게를 나온 후에 우리는 각각 집으로 돌아갔다. 귀가하고나서 코마치에게 몇 가지 부탁을 하고, 나는 다시 외출해서 여기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집에 있으면 5시에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깨어있던 이유는, 하나 뿐.
"왔군……"
소리를 내며 자동 문이 열리자, 나른하게 가방을 늘어뜨린 카와사키가 나타났다.
"할 얘기는 뭐야?"
피곤한 탓일까, 평소보다 한층 기분 나쁘게 카와사키가 묻는다. 어지간한 불량보다도 무서운 느낌이 든다. 라고할까 무서워.
"……다들 이제 곧 모일테니까 조금 더 기다려줘"
"다들?"
카와사키가 수상쩍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다시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유키짱과 유이가하마가 왔다.
둘과 헤어진 직후, 나는 둘에게 메일을 보냈다. 유이가하마는 유키짱의 집에서 자는것과, 그 뜻을 부모님에게 연락할것. 그리고 아침 5시에 둘이서 길목에 있는 맥으로 올것. 이것들을 간결하게 쓴 업무연락을.
"또 너네야?
질린다는 표정으로 카와사키는 한숨을 쉰다. 그러자, 기분 나쁜건 카와사키만이 아니었다.
"………"
어째선지 유이가하마도 기분 나빠보였다. 뚱해져있다. 뭐야, 잠 부족이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한숨을 쉰 유키노시타가 입을 열었다.
"그런 사무적인 메일을 한통만 보내면 이렇게 돼"
"에, 그치만 유키노시타는 괜찮아보이잖아"
내 말에 유키짱이 도끼 눈으로 노려본다.
"………………………………………………이 벽창호"
그렇게 말하고 유키짱은 고개를 홱 돌렸다. ……에, 나 무슨 나쁜짓 했어?
"과연 오빠. 중요한데서 눈치 못 채네"
그러고 나와 유키짱 사이에 끼어들어온건 코마치였다.
"코마치, 갑자기 나타나서 오빠를 까는건 그만해"
"오빠, 보통은 업무연락을 핑계삼아서 메일을 하는거야. 업무연락만 하면 메일 하고 싶지 않은것 같잖아"
"코마짱도 불렀어?"
유키짱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묻는다.
"부탁할게 있었으니까. 코마치, 데려왔어?"
"응"
그렇게 말하고 코마치가 가리킨 방향에는 카와사키 타이시가 있다. 그래, 코마치에게 부탁해서 그를 불러온 것이다.
"타이시……. 너 이런 시간에뭐하는거야"
카와사키가 분노로도 당혹으로도 알 수 없는 얼굴로 타이시를 노려보지만 그도 양보하지 않는다.
"이런 시간이라니, 그거야말로 내가할 소리야 누나. 이런 시간까지 뭐하던거야"
"너하고는 관계없잖아"
카와사키가 대화를 끊으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는 안 된다. 가족인 타이시에게는 그런 말투는 통하지 않고, 이미 주위에 우리가 있는 이 상황에선 도망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관계없지 않아. 가족이잖아"
"……너는 모르는 편이 좋다고 하는거야"
타이시가 물고 늘어지자 카와사키는 미약하게 대답한다. 하지만 그래도 절대로 이유를 설명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건 타이시에게만 하고 싶지 않은 사정인건가? 라는건 역시…….
"카와사키, 왜 네가 일하고 있는지. 돈이 필요했는지 맞춰주마"
내 말에 카와사키는 나를 노려본다. 가게에서 말한 내 한마디로, 내가 뭔가 눈치챘다는걸 알았을 것이다.
유키짱과 유이가하마가 흥미진진한 눈빛을 나에게 한다.
카와사키 사키가 불량하게 변한건 고등학교 2학년이 되고나서. 그건 타이시의 시점에서 본 이야기고, 카와사키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는 않다.
카와사키가 알바를 시작한건 타이시가 중학교 3학년이 된 시점에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카와사키 타이시의 시간축에 있다는 것이다.
"타이시, 네가 중학교 3학년이 되고나서 뭔가 바뀐 일은?"
"에, 그게. 학원에 다니기 시작한것 정도인가요?"
타이시는 그 밖에도 생각해내려고 하고 있지만, 이걸 들으면 충분하다. 카와사키는 분하다는듯 입술을 깨물고 있다.
"과연, 동생의 학비를 위해서……"
유이가하마가 납득했다는듯 말한 말을, 나는 가로막는다.
"아니. 지금 학비를 마련하고 있어선, 현재진행형으로 타이시가 학원에 다니는건 이상하잖아. 이미 타이시의 학비 자체는 문제가 아니야. ――그럼, 돈이 필요한건 누구인가, 라는게 되지"
"앗"
유이가하마가 소리를 지른다. 그걸 곁눈으로 유키짱이 입을 연다.
"……학비가 필요한건 동생만이 아니라는 거구나"
유키짱이 카와사키에게 동정의 시선을 향했다.
그래, 소부 고등학교는 진학교. 학생의 반이 대학 진학을 희망하고, 실제로 진학한다. 따라서, 고등학교 2학년인 이 시기부터 수험을 의식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하기강습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녀석도 있다.
"너 자신이 말했잖아. 누나는 옛날부터 성실하고 다정했다고. 즉, 그런 소리다"
내가 결론을 말하자 카와사키는 어깨를 떨구었다.
"누나……내가 학원을 다니니까……"
"……그러니까, 너는 몰라도 된다고 했잖아"
카와사키는 달래듯이 타이시의 머리를 툭 두드린다.
언뜻보아 잘됐네 잘 됐어로 보이지만, 중요한 점이 해결하지 않았다.
"하지만 타이시. 이것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그치, 카와사키?"
내 말에 카와사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나, 대학 가고 싶어. 하지만 그걸로 부모님에게도 타이시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흔들림없는 카와사키의 말에 타이시가 다시 조용해졌다.
"저기-, 잠깐 괜찮나요-?"
침묵을 타파한건 코마치의 태평한 목소리. 카와사키는 코마치에게 고개를 돌린다.
"뭐?"
시비조로도 보이는 카와사키의 물음에 코마치는 미소 지으며 받아흘린다.
"저희도 옛날부터 부모님이 맞벌이에요. 어렸을때 코마치가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어요. 다녀왔습니다- 라고 해도 아무도 대답을 안해줬어요"
"…………"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집에 돌아가는게 싫어져서. 코마치 5일 정도 가출했어요. 그랬더니 부모님이 아니라 오빠가 마중나왔어요. 그래서, 그 이후로 오빠는 코마치보다도 빨리 집에오게 됐어요. 그래서 오빠에겐 감사하고 있네요"
누구야 그 얼짱오빠, 라고 생각했더니 나였다. 이야아, 부끄럽네 수줍어라.
라는건 농담이고, 뭐, 그런 적도 있었던것 같다. 라는 정도의 기억밖에 없지만. 그래도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유키짱은 핫,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카와사키는 어딘가 나에게 친밀감과 같은 눈빛을 보낸다. 유이가하마에 이르러선 어째선지 울먹거리고 있었다. 토츠미츠 씨냐.
"아니-, 당시부터 오빠한테 친구가 없다는건 알고 있지만요-, 이렇게 말하는 편이 포인트 높구요-"
"어이"
다 엉망이잖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유이가하마가 힘빠진 표정으로 말한다.
"……역시 남매구나"
"무슨 의미냐……"
"그래서, 결국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카와사키가 짜증내며 묻는다. 코마치는 동요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채 정면으로 카와사키와 마주본다.
"이런 느낌으로 글러먹기는 했지만, 오빠는 코마치에게 걱정 끼치는 일은 절대로 안해요. 그것만으로도 동생으로써 고맙고, 기뻐하고 있어요"
무심코 나에게서 숨이 새어나오지만, 그게 한숨이었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뭐어, 요컨대 사키 언니가 가족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거랑 마찬가지로 타이시도 사키 언니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을거라구요? 그걸 알아주면, 동생 입장으로는 기쁘려나요"
"…………"
카와사키가 침묵한다. 그것과 동시에 나도 침묵하고 있었다. 나랑 카와사키가 같은 마음인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뭔가 생각하는 점은 있는 모양이었다.
"……뭐어, 나도 그런 느낌"
타이시가 덧붙이듯 중얼거린다.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홱 돌리면서.
카와사키는 일어서서 살며서 타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늘 나른한 표정이 아닌, 아주 희미하게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자아, 남은건 하나. 금전 문제인데, 이건 미나미 제왕처럼 지폐다발을 척 꺼낼 만큼 변통성은 없다. 고등학생이고.
그러니까, 나는 갖고 있는 수패에서 유일하게 카와사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카드를 꺼냈다.
나의 연금술을 보여주마.
"카와사키. 너, 스칼라십이라고 알고 있어?"
× × ×
아침 5시의 공기는 쌀쌀하다. 하품을 눌러죽이면서, 나는 멀어지는 두 그림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둘의 거리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다. 한 쪽이 멀어지면 또 맞추듯 보폭을 풀며, 때때로 웃음 소리가 울리는듯 어깨를 흔든다.
그 모습을 유키짱이 뭐라 말 못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어제 가게에서 있던 일로 내가 하나 더 떠올린 일을 생각한다.
"유키짱"
내가 이름을 부르자, 그녀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가족의 수만큼, 형제자매의 형태는 있다고 생각해. 그게,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할지 망설이고 있으니, 뺨에 손바닥의 감촉이. 쳐다보니 유키짱이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는 소리 하지마. 어차피 하치군은 벽창호니까"
"미, 미안……"
부끄러워져서 눈을 피했더니, 그 앞에는 히쭉히쭉 미소를 띄운 코마치랑 뺨을 부풀린 유이가하마가 있었다.
"코마치네는 신경쓰지 말고, 계속 하세요"
"므으으으……………………힛키 바보"
둘의 모습에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긁고 유키짱이 웃었다.
"자, 우리도 한번 돌아갈까. 이제 3시간만 있으면 등교 시간이니까"
"그, 그러게……"
유키짱의 말에 마음을 도로 먹은 유이가하마가 어깨에 맨 가방을 다시 짊어진다. 나도 자전거 자물쇠를 풀었다.
"코마치, 돌아가자"
"응"
내가 자전거를 타자, 코마치가 자전거 뒤에 앉았다.
페달을 밟고 나는 둘에게 말한다.
"그럼 돌아간다. 수고했어"
"응, 학교에서 봐"
유이가하마가 가슴 앞에서 작게 손을 흔든다. 유키짱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입가에 미소를 띄우고 손을 흔들었다.
둘의 반응을 확인하고 나는 페달을 밟았다. 국도 14호와 교차하는 직선을 느린 속도로 달려간다. 늘 등교시에는 방해를 하는 맞바람도, 지금은 밀어주고 있었다.
두 번째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때, 길을 하나 사이둔 베이커리에서 향긋한 냄새가 풍겨왔다.
동시에 등 뒤에서 뱃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들렀다 갈까"
나의 중얼거림에 니헤헤, 라며 코마치가 상스러운 웃음소리로 대답한다.
"오빠 사랑해, 포인트 엄청 높아"
"예이예이"
조금 의욕이 사라지면서도 페달을 밟으니, 코마치가 말을 이었다.
"그치만 말야-, 잘 됐네. 제대로 만나서"
"……무슨 소리야?"
"과자 준 사람. 만났으면 만났다고 말해주면 좋을걸. 이야- 오빠, 하렘이네. 유키 언냐랑 만나지, 뼈 부러진 덕분에 유이 언니도 만나고"
"……………………………그럴지도"
후반주 말은 제대로 듣지 않고 나는 대답을 했다.
과연, 합점이 갔다. 지금까지 유이가하마가 가끔 말을 머뭇거리고 있던 정체.
내가 교통사고를 겪었을때 구해준 개 주인은 유이가하마였나.
"제대로 잡고 있어"
나는 코마치에게 그렇게 말하고 페달을 밟는 힘을 더 실었다.
6. 히키가야 하치만은 원래 왔던 길을, 돌아보지 않는다.
시험기간 1주일의 모든 일정이 종료하고 휴식이 끝난 월요일. 시험결과가 모두 통보되는 날이다.
수업은 답안공개와 문제해설 뿐이라 되게 편했다.
하나 교과목이 끝날때마다, 유이가하마가 굳이 보고하러 온다.
"힛키! 일본사 점수 올랐어! 역시 그 공부 모임 대단해"
"다행이구만"
"응! 이것도 유키농의 덕분이야! 그러는 김에 힛키도!"
"그러는 김은 뭐야"
쓴웃음 지으면서 대답하지만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 확실히 유키짱 선생님의 수업은 굉장히 알기 쉬웠지만, 유이가하마 자신의 노력이 성과를 이루어냈다고 새악했다.
나로 말하자면 여전히 국어 3위를 사수하면서, 수학을 비롯한 이와계 성적은 향상했다. 뭐어, 원래 한자리 수라던가 우스꽝스런 점수니까 오르는건 얼마든지 오르겠지만.
그리고 오늘은 시험결과 통지 뿐만 아니라 직장견학 하는 날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점심시간을 맞이하고 자신이 희망한 직장으로 견학하러 간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카이힌 마쿠하리 역. 이 부근은 상당한 오피스 거리이며, 뜻밖이게도 회사 본사가 있기도 하다.
하야마 주변에는 집단이 만들어져 있고, 토츠카의 주변에도 여자가 무리짓고 있다. 나? 말하게 하지마, 부끄러워. ……외톨이다!!
뭐, 편해서 좋네 라고 생각하면서 집단 뒤에 배후령처럼 따라간다.
하야마가 선택한건 전자기기 메이커. 거기는 단순히 회사건물과 연구시설만 있는게 아니라서, 인근에 개방된 박물관도 병설하고 있다. 그 박물관에는 전면이 빙글 둘러싼 형태의 스크린 시어터가 있는 등, 놀이성도 겸해서 갖추어져 있다.
마치 많은 사람이 모이는걸 꿰뚫어본듯한 선택에 나는 경탄의 뜻을 감출 수 없다.
거기다, 이러한 기계 계열 전시는 외톨이인 내가 혼자서 보고 있어도 되게 즐겁다.
트럼펫을 갖고 싶어하는 소년처럼, 유리창에 달라붙으면서 기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두근두근 거리는 것이다.
나는 집단에서 적당하게 거리를 두면서 기계 무리를 돌아봤다.
앞에는 꺄악꺄악 잡담을 즐기는 그들과 그녀들.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다.
하지만 조용한 곳에, 또각또각 딱딱한 하이힐 소리가 울렸다.
"히키가야, 여기에 왔었느냐"
히라츠카 선생님은 백의를 벗고 있었다. 여기서 백의를 입고 있으면 종업원과 구별이 가지 않기 때문일테지. 그건가, 광기의 메드 사이언티스트, 후오웅오우인 쿄우마(CV : 미야노 마모루)로 착각당하기 때문일테지.
"선생님은 감독인가요?"
"뭐, 그런 참이다"
라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대답하지만, 시선은 학생이 아니라 기계 쪽을 보고 있다.
"일본의 기술력은 대단한데에…… 내가 살아있는 동안 건담 만들 수 있을까나아"
사고회로가 역시 소년이었다. 황홀하게 사랑하는 소녀처럼 강철 몸체를 매만지고 있다. 사랑합시다, 달라붙어봐요.
두고 갈까, 라며 생각하고 혼자 걸어가니, 히라츠카 선생님이 옆을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너는 변했구나"
"에, 그런가요?"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는거다. 너희는 아직 발전도상중이야. 어떻게라도 변하는건 당연한거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뭐, 네 경우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가 올바를지도 모르겠지만』하며 덧붙였다.
"그럼 갱생종료라는걸로 보고 부활동을――"
"그건 안 된다. 아직 너는 '변화'한것 뿐이지, '갱생'은 하지 않았어"
내가 말하기 전에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
"……나는 너희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어"
히라츠카 선생님이 미소지으면서 나에게 말한다. 그건 아이의성장을 지켜보는 부모처럼 보였다.
"흠, 아무래도 메카메카로이드는 여기서 끝인 모양이군"
메카메카로이드는 뭐야…… 메가존23이라면 알지만…….
"그럼 돌아가는 길은 조심해라"
선생님, 그 말투라면 밤길에 당신에게 습격당할것 같습니다.
그리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원래 왔던 메카메카로이드로 돌아간다.
나는 그걸 지켜보고나서 출구로 향하니, 이미 하야마네는 사라져 있었다. 서쪽 하늘이 물들기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홀 주위를 돌아보니, 낯익은 경단머리를 발견했다.
보도블럭 위에 앉고서 무릎을 안고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는 여자애. 말을 걸까 망설이고 있으니 고개를 든 여자애랑 눈이 마주쳤다.
"아, 힛키 늦어! 벌써 모두 갔다구?"
"미안, 소년하트가 빛나고 있었거든. 그래서, 그 모두는 어디 갔는데?"
"사이제"
치바 고등학생은 사이제 너무 좋아하잖아! 싸고 맛있으니까 어쩔 수 없나.
"……너는 안 가?"
"므으-! 힛키 기다리고 있던거야! 두고 가면 가여우니까!"
뽀로통한 얼굴로 유이가하마가 뿡뿡 화낸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는 다정하구나"
"그런 말투는 뭐야……"
석양이 비쳐진 탓일까 얼굴이 새빨개진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홱 돌리며 중얼거린다.
"하지만 바보지"
"짱나-! 모처럼 남이 기다려줬는데! 두고 간다!?"
미간을 모으고 화낸다. 머리 위로 증기가 나올것같은 기세다.
"그런 바보니까, 아마 사고를 겪든 안 겪든 나에겐 이런 느낌으로 대해줄것 같아"
"힛키……? 혹시"
유이가하마의 눈이 크게 뜨인다. 신경쓰지 않고 나는 계속 말한다.
"눈치채고 있었지. 동정인가, 생각했지만, 역시 아니라고 고쳐 생각했어. 너, 바보니까. 그러니까 그, 뭐라고 할까……"
머리를 벅벅 긁는다.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모르게 됐다. 말도 안 돼, 국어학년 3위인 이 내가.
"――앞으로도 바보이면서 다정한……유이가하마로 있어줬으면 좋겠다고할까"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떤 유이가하마였지만, 갑자기 발꿈치를 돌렸다.
"바보바보 너무 그래! 여자애한테 말야. 힛키 믿을 수 없어"
"미안……"
내가 사과를 하니 유이가하마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정말로, 어떻게 해줄거야"
유이가하마의 중얼거림은 초여름 바람에 지워진다.
"유이가하마……?"
"자, 힛키. 사이제 가자. 기다리게 한 보상으로 뭐라도 사줘!"
"하, 하아!? 진짜냐……"
유이가하마는 나의 몇걸음 앞을 마치 스킵하듯 경쾌하게 걷는다.
다정한 여자애는 싫다. 그건 한동안 변함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보 같은 애는 옛날부터 좋아한다.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로 하기에는 충분하겠지.
1. 역시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이런……뭐야 이 졸작……"
봉사부의 담당 단골인 자이모쿠자 요시테루의 신작을 다 읽고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졸작. ZOL.ZAK 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뭐야 이 설정. 주인공이 황폐한 세계에서 고독하고 싸워온 전사인건 평가하지만, 그 이외에는 덧붙이기 밖에 되지 않는 설정의 온퍼레이드. 히로인이 중2병 마법사고 세상에 몇 명밖에 없는 속성 『허무』의 사용자다아? 다른 한 명의 히로인은 다른 세계에서 갑자기 이쪽 세계로 넘어온 아이돌이고, 그 노랫소리는 이쪽 세상을 위협하는 마물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아아? 표절 ㅅㄱ, 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허술해서 일종의 이차창작인가 의심해버릴 정도다.
보기 심한게 그 표절한 설정을 어떻게 살리지 못한다는 점이지. 아이돌 히로인, 모처럼 마물을 진정시키는 노래소리를 살리지 못하고 주인공이 무쌍하고 있고. 단순한 연애요소 밖에 되지 않았다. 게다가 원래 세계로 못 돌아가고. 중2병 히로인은 증상이 너무 심각해서 대화조차 되지 않고.
나는 소파 등에 기대 몸을 맡기면서 크게 기지개를 폈다. 아아, 어쩌지. 지적 사항을 쓰는거 귀찮은데에. 직접 말하고 놈 자신이 메모하는게 제일 빠르지만, 만나는게 귀찮다. 좋은 녀석인건 알고 있지만 아무튼 귀찮다.
무심코 한숨을 쉬고 있으니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오빠 피곤해하네에. 한숨 쉬면 행복이 도망간다구. 뭐, 코마치는 오빠랑 있는것 만으로도 행복하지만. 이거 코마치 입장으로 포인트 높아"
"예이예이, 나도 너랑 있는것 만으로도 행복해-"
코마치는 『와아, 성의없는 대답』이라고 하면서 몸을 뒤척인다. ……내 무릎 위에서.
그래, 지금 나는 친동생에게 무릎배게를 해주고 있다. 코마치가 갑자기 『늘 무릎배게 해주고 있으니까, 가끔은 오빠가 해줘-!』라고 생떼를 부려서 하는 수 없이 해주게 된 것이다.
딱히 싫은건 아니지만. 동생이라고 할까, 고양이 같고. 머리카락을 빗어주면 간지러운듯 고롱고롱하고.
다시 뒤척이는 코마치와 눈이 마주치자,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의 눈, 탁해지지 않게 됐어"
"아?"
무심코 눈가를 만지지만 스스로는 알 수 없다. 원래 주위 사람들한테 듣기만 할 뿐이지, 나 스스로는 옛날부터 이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무렵…… 유키 언냐가 사라지기 전의 무렵이야"
코마치의 말에 나는 당시 일을 떠올린다.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이 떠올랐지만, 아직 몇 군데는 떠올리지 못한다는 확신에 찬 생각이 있었다.
특히, 유키짱이 내 앞에서 사라지기 전에 생긴 일이, 단편적으로 밖에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떠오르는건 눈물을 흘리는 유키짱의 웃는 얼굴.
'나'는 그 때, 뭐라고 말했던걸까.
"……있잖아, 너는 유키짱을 기억하고 있었어?
"응. 잊은적이 한번도 없었어"
코마치의 말에 나는 의문스럽게 느낀걸 그대로 말했다.
"그럼 왜 지금까지 말해주지 않았던거야?"
내 질문에 코마치는 표정을 흐렸다. 불안하다는듯 내 손을 잡는다.
"……아직 말하고 싶지 않아. 오빠가, 유키 언냐를 전부 떠올리면, 코마치 얘기할게"
내 손을 쥐는 힘이 세진다. 안심시키도록, 나는 코마치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다.
"……알았어. 그 때는 잘 부탁해"
"응"
내 말을 듣고 코마치에게 미소가 돌아와다. 그 타이밍에 나는 아까전에 신문에서 빼둔 광고지를 꺼낸다.
"――그러고보니 코마치, 올해도 하는것 같다. 도쿄왕냥 쇼. 오늘부터 하는거 같은데"
"정말루!?"
내 말에 코마치가 벌떡 일어난다. 내려다보고 있어서 하마터면 하치만 씨랑 코마치 씨가 박치기할뻔했다.
"아아. 그리고 아까 엄마한테 군자금도 조달했어. 준비하고 와, 코마치"
스즈키 시로 씨가 특기인 게임처럼 침실에서 기어나온 엄마랑 교섭해서 『뭐, 오후에 시끄러운게 사라진다면……』하는 한 마디와 함께 얻어낸 군자금이다. 어머니, 아들은 방해꾼 취급받아서 눈물이 나올것 같아요.
"응, 오빠야 사랑해!"
침실에서 쿠당탕, 소음이 들려왔지만 아마 아버지일테지. 헷, 코마치에게 사랑받는건 오빠인 이 나다아! 꼬시다!!
용돈이 줄어드는걸 우려해서 마음속으로만 승리선언을 하고, 나는 준비를 마친 코마치랑 함께 집을 나왔다.
× × ×
집에서 『도쿄 왕냥 쇼』회장인 마쿠하리 멧세까지는 버스로 15분 정도. 회장에는 그럭저럭 사람이 들어차 있고 안에는 애완동물을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다.
그런대로 성황이라서 떨어지지 않도록 손을 잡는다. 옛날부터 둘이서 외출하는 일이 많았던 탓에 평소 광경으로 변했다.
그런 동생님은 콧노래를 부르며 내 손을 붕붕 흔들고, 회장에 들어가서 바로 떠들어대면서 손가락을 가리켰다.
"오빠! 펭귄, 펭귄이야! 귀여워-!"
"펭귄은 기르고 싶지만 유지비가 장난이 아니지……"
전에 문득 흥미를 품고 인터넷으로 조사해봤지만 터무니 없었다. 펭귄님, 본인도 그렇게 비싸니까.
"그치만 여기서 볼 수 있으니까 괜찮잖아. 귀엽고로귀엽고로"
이상한 말투로 코마치가 펭귄을 귀여워했지만 일단 만족했는지 내 손을 잡아당긴다.
"펭귄도 귀엽지만 다른것도 돌아보자!"
"그래"
조금 걸어다니니 이 주변에는 조류를 모아둔 공간이었던 모양이라, 앵무새랑 잉꼬 같은 알록달록한 녀석들이 줄지어 있었다. 엄청 화려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띈게 흑발의 소녀. 팜플렛을 한 손에 들고 두리번두리번 거리고 있는――유키짱이었다.
"아, 유키 언냐다"
코마치도 눈치챈 모양이다. 라기보다 상당한 주목을 모으고 있었다. 주로 용모 탓에.
네 자락 카디건과 원피스를 입고, 부드러운 흑발은 둘로 나누어 묶어서, 요컨대 트윈테일로 되어 있다. 평범하게눈을 끄는 미소녀다.
본인은 주위 시선을 신경쓰지도 않고, 차가운 표정으로 팜플렛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유키짱은 말도 안될 만큼 방향치였지.
나는 하는 수 없이 유키짱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유키짱"
내가 말을 거니 어깨를 움찔 떨며 놀랬다.
"읏! 하, 하치군……"
유키짱은 나라는걸 알고 방금전까지 차가운 표정은 어디로 갔는지 단번에 얼굴이 풀어졌다. 역시 길을 잃었던건가……?
"유키 언냐!"
"코, 코마짱도 여기에?"
코마치가 유키짱에게 안겨붙는다. 마치 자매같다. 나도 안으면 괜찮을까.
껴안을때 유키짱이 떨어뜨린 팜플렛을 주으니 고양이 코너에 크게 동그라이가 쳐져 있었다. 고양이가 일직선이 아니라 유키짱이 일직선이었어…….
"그럼 갈까. 유키짱"
"어?"
유키짱이 이상하다는듯 고개를 갸웃거리니 코마치가 나에게 찬동했다.
"앗, 그거 좋아! 유키 언냐, 모처럼이니까 셋이서 같이 돌아요!"
"괜찮, 겠니……?"
유키짱이 어벙한 얼굴로 물어오지만, 나는 조금 심술궂게 되묻는다.
"……싫어?"
내 의도를 눈치챘는지 미간을 모으면서도 희미하게 볼을 붉히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런거…… 비겁해. 하치군 심술쟁이"
"그럼 결정이다"
"앗"
나는 유키짱의 손을 잡고 고양이 코너로 향한다. 코마치는 내 손을 놓고 그 모습을 히쭉거리면서 지켜본다.
"뜨겁네요오, 두 분다"
"~~~~~~~~~~~~~읏!?"
"아파, 아파 유키짱"
얼굴을 새빨갛게 만든 유키짱이 내 손을 전력으로 움켜쥔다. 이 가느다란 팔에서 엄청난 악력이다.
하지만 내 손을 놓을 기색은 없었다. 잘 모르겠다.
걸어가니 앞에 작은 동물 코너가 보였다. 햄스터나 페렛을 만지는 코너가 있어서 모처럼이니까 들르기로 했다.
"꺄-, 밟을것 같아서 귀여워-♪"
이유가 전혀 귀엽지 않아, 코마치.
그런 나는 페렛을 안아봤다. 끅끅끅 하며 낯선 우는 소리를 내면서, 내 어깨를 타고 오르려고 하고 있다. 이 녀석, 배가 폭신폭신한데.
"이건 이거대로 귀엽네……"
족제비……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유키짱은 점차 작은 동물을 안고, 그 감촉을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납득이 가는 감촉은 아니었던 모양이라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한차례 만끽하고나서 다음 장소로 향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개, 개가……"
유키짱이 내 뒤로 숨으며너 중얼거린다.
개 코너는 역시 성황이었다. 육종가가 육성한 여러 개종류가 줄줄이 서서, 많은 관객이 그걸 보고 있다. 그 밖에도 강아지를 만지는 코너나, 트레밍 코너가 있었다. 트레밍?
"트레밍은 털이라도 깎는건가?"
내 의문에 지금까지 계속 말이 없었던 유키짱이 입을 열었다.
"그래. 털갈이를 하는 곳이야. 요컨대 개의 미용원이야"
"과연……엇, 코마치?"
주위를 돌아보며 코마치를 찾으니, 어느샌가 들고 있던 디지털 카메라로 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더 안에는 꺄꺄 거리면서 히라츠카 선생님도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혼자……인가?
"하아. 코마치를 주워갈테니까 유키짱은 먼저 가 있어. 여기까지 오면 괜찮지?"
유키짱은 내 말투에 뭔가 왔는지, 볼을 부풀리며 대답한다.
"괘, 괜찮아! 애 취급하지마"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떨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괜찮지? 이 거리라면 도착하겠지?
조금 불안해져서 발밑을 보니, 한 마리의 미니튜어 닥스훈트가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
"………………"
말없이 응시한다. 엄청 초현실적인 광경이다. 일단, 이 인파에 밟히지 않도록 개를 안기로 했다. 특별히 날뛰지도 않고, 쉽사리 안을 수 있었다.
"……아니, 어이"
안자마자 개는 내 턱 부근을 할짝할짝 핥기 시작했다. 끄으, 개의 악취가 나를 습격한다!
"사브레! 어디야-!?"
어딘가에서 낯익은 바보스런 목소리를 들었는지, 개가 흠칫 반응했다. ……혹시, 이 녀석의 주인인가?
부르는게 부끄러워서 이 녀석을 안아올리면서 위로 들어본다. 그러자 목소리가 돌아왔다.
"앗, 사브레!"
아무래도 빙고엿던 모양이라, 개 주인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나타난건 낯익은 인물이었다.
"죄, 죄송해요, 저희 사브레가 민폐를……앗, 힛키!?"
나는 『여어』라고 손을 들고 유이가하마네 개를 건내줬다. 유이가하마는 놀란 표정으로 받아든다.
"너도 왔었구나"
"응, 부모님이랑 같이. 힛키는 혼자?"
늘 혼자야, 라고 하고 싶은걸 참고 나는 평범하게 대답한다.
"오늘은 코마치랑. 봐, 저기서 사진찍고 있어"
"아, 정말이다"
손가락을 가리킨곳, 사진을 찍고있는 코마치를 보고 유이가하마가 쿡 웃었다. 그나저나 코마치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 찍는거 아니야? 뒤에 있는 히라츠카 선생님도.
"그리고 유키노시타도 왔어. 혼자서 고양이 코너를 보러 온것 같아"
"에, 정말로?"
"그래. 방금전까지 셋이서 있었는데, 코마치가 저래서 먼저 가라고 했어. 어떡할래, 같이 갈래?"
내 제안에 유이가하마는 음음 하며 고민한다. 잠시 생각한 후,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팔자로 만들었다.
"미안, 오늘은 부모님이랑 왔으니까…… 유키농에게도 잘 전해줘"
나는 수긍하고, 신경쓰였던걸 말했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이 그때……?"
나는 유이가하마의 가슴팍에 안겨있는 개의 손을 잡으면서 묻는다. 그러자 유이가하마는 표정을 풀며 말을 이었다.
"응. 힛키의 덕분이야. 그치, 사브레?"
개가 유이가하마의 말에 대답하듯 컹, 하고 울었다.
"뭐,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럼 학교에서 보자"
"응, 또 도와줘서 고마워 힛키"
그렇게 말하고 발꿈치를 돌려 유이가하마가 뛰어간다. 그 뒷모습을 쳐다보면서 조금 생각한다.
도와줬다고 해도, 이번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한게 없다. 우연히 그 자리에 내가 있었던것 뿐이다. 아무 의도도 없는, 단순한 우연.
그렇다면 그 때 만약, 아직 유키짱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다.
× × ×
사진을 막찍고 있던 코마치를 회수하고 우리는 고양이 코너로 향했다. 그러자 거기에는 평소엔 생각할 수도 없는 유키짱의 모습이 있었다.
"냐-냐냥냐-"
"냐-"
"하아아아아아……………………읏"
유키짱이 고양이에게 둘러쌓여, 양볼에 손을 대며 황홀해하고 있었다. 고양이 너무 좋아하잖아……."
"유키짱"
"냥? 앗, 하, 하치군!?"
고양이어가 채 빠지지 않았던 유키짱이 허둥대지만 이미 늦었다. 확실히 뇌내에 보존해뒀다.
나는 심술궂은 미소를 짓고 말한다.
"즐거운 모양이네에"
"그, 그건……. 정말, 심술궂은 하치군은 싫어"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지만, 전혀 효과는 없다. 늘 이러면 좋을텐데.
"아까 강아지 코너에서 유이가하마랑 만났어. 유키짱한테 잘 전해주래"
"유이가하마가……"
유키짱은 생각하는 몸짓을 하고,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입을 연다.
"히키가야, 6월 18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유키짱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니……유키짱의 생일은 1월 3일이잖아?"
"하, 하치군……기억하고 있었구나………………………커, 커흠. 6월 18일은 유이가하마의 생일이야. ……아마"
"아마? 꽤 애매한 표현이네"
"메일 주소에 0618이라고 들어있으니까"
직접 확인을 해…….
"그러니까, 생일 축하를 해주고 싶어. ……지금까지 감사는 제대로 전하고 싶으니까"
유키짱은 시선을 내리며 부끄러운듯 말한다.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치군……?"
올려다보기로 유키짱이 물어온다. 뭐, 이런 서툰 성격인데다 기본 스펙이 높은 유키짱은 항상 질투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그러니까 유이가하마는 오랜만에 생긴 친구다. 감사의 마음에 거짓은 없을 것이다.
"알았어. ――코마치"
"옛써"
내가 부르자 척, 경례 포즈를 취하며 코마치가 대답을 한다. 너는 무슨 캐릭터냐.
"밀정을 부탁한다. 만일을 위해 생일이 맞는지 확인. 그리고 유키짱은――"
"아, 응"
이름을 듣고 등을 쭉 핀 유키짱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랑 사귀어줘"
"에,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엣!?"
유키장의 목소리에 고양이들이 거미새끼 흩어지듯 도망쳤다.
2. 갑작스럽게,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나타난다.
일요일, 오전 10시를 조금 지난 무렵. 장마 끝날 시기라고 불러야할 푸른 하늘 아래.
"……………………………………"
비구름처럼 어둡고 기분나빠하는 유키짱이 약속 장소로 왔다.
연분홍 노슬리브 셔츠에 꽃무늬 하이 톱 플레어 스커트를 입어서 잘록한 허리를 돋우고, 키가 높은 샌달을 신어서 다리 길이를 보여주고 있다.
부드러운 흑발이 나부끼며, 옅게 바른 루즈가 입술을 빛낸다. 그 모습은 주위 시선을 못박게 하고 있었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저, 저기………유키짱……?
"……뭐니, 히키가야?"
차가운 눈을 가늘게 뜨며 째릿 노려본다. 무심코 힉, 목소리가 나올뻔했다. 너무나도 험악해서 주위 사람들도 몸을 사리고 있었다.
이런, 진짜로 위험해. 완전히 적대자를 대할때 태도를 취하고 있어……말 그대로 얼음의 영왕이다.
이렇게나 유키짱이 화내는건 실은 어제부터다.
『――나랑 사귀어줘』
『에,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엣!?』
유키짱이 어째선지 얼빵한 소리를 질렀다.
『에, 엣? 하, 하치군!? 저기, 그게……읏』
혼란해하는 유키짱을 보고 불안해진 나는 조심조심 물었다.
『……에, 그렇게나 싫었어? 내일, 유이가하마의 선물 같이 고르는거』
『…………………에?』
갑자기 유키짱의 눈이 점이되고, 그 옆에서 코마치가 아차-. 하며 얼굴에 손을 대고 한숨쉬었다.
『에…… 그거 말고 뭐가 있어?』
내 말에 유키짱의 표정에 금이 쩌적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보고 있으니 유키짱의 주위에 무언가가 배어나오는 감각에 빠진다.
『………………이런 사람이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저런 말투라면 기대하지 않는 편이 이상하잖아………………이 벽창호는…………』
『미안, 유키 언냐. 우리 오레기가…………』
어째선지 코마치가 유키짱에게 사과한다. 그보다 오레기는 뭐야. 맞긴 하지만.
『됐어, 코마짱은 나쁘지 않으니까. ……………………히키가야?』
지옥에 울릴법한 오싹한 음색으로 유키짱이 내 이름을 부른다. 무심코 위축된다.
『아, 네에엡!』
『내일, 10시 경에 역앞에서 집합하자. ……1초라도 늦으면, 알고 있지?』
『서, 서 옛설!』
지옥에 있는 염마님도 죽여버릴 만큼, 원한을 가득찬 마지막 말에, 순식간에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나였다.
――이상 회상 종료. 하루 지나면 분노가 사그라들까 낙관시하고 있었더니,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울것 같아.
"자, 자 그럼 가자"
내가 손을 내미니 유키짱은 내 손을 가만히 쳐다보고, 이윽고 마지못한 느낌으로 내 손을 잡았다.
"……데이트에 익숙해진 모습도 싫어"
"………………그러냐"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몰라하고 있으니, 유키짱이 미미하게 움켜쥐는 힘을 다시 넣었다.
곁눈으로 상태를 보니, 유키짱이 고개를 홱 돌리고 있다. ……귀까지 새빨개진건 말하지 않기로 할까.
개찰구를 빠져나와 우리들은 전차에 올랐다.
전차로 이동하는 도중, 나는 음성을 낮춰서 유키짱에게 말을 한다.
"그러고보니 유이가하마의 생일, 6월 18일이 맞대"
"코마짱한테 메일이 왔어"
아까보다는 상당히 표정이 풀어진 유키짱이 대답한다. 밀정 코마치, 상당히 유능하다.
"……히키가야는 선물 정해둔거 있어?"
"막연하게는. 뭐, 실제로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는 사이에 노선 변경할지도 모르지만"
갑자기 질문을 받고, 나는 안경을 들면서 대답했다. 실제로 조잡스런 이미지 밖에 없어서 가게에 가보지 않으면 모른다.
하지만, 유키짱은 내 대답을 듣고 불안하다는듯 눈썹을 모은다.
"가족 말고는 하치군이랑 코마짱에게 밖에 선물을 한 적이 없으니까, 뭘 고르면 좋을지……"
아아, 과연……. 라고 해도, 나도 비슷한거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꿰뚫어본건지 유키짱이 눈을 가늘게 뜬다.
"……예전 여친에게 선물정도는 한적 있지?"
"응? 뭐어. 그래. 하지만 사귀었던건 2개월이고, 선물한건 분명 머리핀 뿐이었다고?"
푼돈이지만 없는것보다는 낫나, 처럼 산적마냥 빼앗긴 기억밖에 없지만 말야. 그거 버렸으려나.
유키짱은 『……그래』라며 한 마디만 중얼거리고, 차창으로 바깥 경색을 쳐다본다. 드러난 어깨가 되게 가늘게 보였다.
그런 가느다란 어깨로, 얼마나 악의를 받아온걸까. 그걸, 단 혼자서 뛰어넘어온 고고한 여자애.
하지만, 바깥 경색을 쳐다보는 그 눈동자는 어째선지 쓸쓸해보였다.
"……응?"
그녀를 쳐다보고 있으니, 갑자기 목에 늘어뜨리고 있는 체인이 낯익다는걸 깨달았다.
"유키짱, 혹시 그거……"
내가 물으니 유키짱은 시선을 바꾸지 않은채로 뺨을 미미하게 붉혔다.
"……………………늦어. 나는 언제나 차고 있었는데. 바보"
그렇게 말하고 유키짱이 체인을 가슴팍에서 꺼낸다.
"아……"
유키짱이 목에 늘어뜨리고 있는건, 내가 선물한 펜던트였다.
……생각났다. 분명히 돈이 완전히 부족해서 가게 아저씨에게 몇 번이나 엎드려 빌면서 싸게 산거다. 가게에서 봤을때 마음에 들어서, 어떻게서든 유키짱이 껴 줬으면 싶었던거다.
"제대로, 사용해줬구나"
유키짱은 미간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볼을 붉은 상태다.
"받았으니까 쓰지 않으면 아, 아깝잖니. 이대로 감가상가될때까지 써줄테니까 감사하렴"
화난것처럼 말해주지만, 부끄럼 감추기라는건 훤히 보인다. 무엇보다, 벌써 6년 가까이 써주고 있으니까, 이미 감가상가되어 있다.
그 펜던트는, 줄곧 유키짱과 함께 해온건가. 유키짱을 줄곧 지켜봤구나…… 나 대신에.
"……유이가하마의 선물도 제대로 골라야겠다"
"………………응"
꼬옥, 유키짱이 내 손을 잡았다.
× × ×
이번 목적지인 도쿄DAY 라라포트에 도착했다. 코마치 말하길, 여기는 치바의 고등학생 커플이 자주 사용하는 데이트 스팟인 모양이다. 그럼 크리스마스에 습격한다면 여기로군.
그건 둘째치고, 여러 가게가 줄을 선 이곳이라면 유이가하마가 기뻐해줄만한 물건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가슴에 부풀며 나와 유키짱은 쇼핑몰 입구로 갔다.
"이, 이렇게나 넓었구나……"
유키짱이 전율한다. 인근에서 최대 쇼핑몰인 만큼 어느 정도 돌아볼 가게를 좁히지 않으면 하루가 끝나버린다.
"여기에 코마치의 메모가 있어"
그렇게 말하고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유키짱에 보여준다. 거기에는 유이가하마가 좋아할법한 계통의 물품이 놓여있는 가게가 나열된 공간이 기입되어 있었다. 밀정 코마치, 역시 유능하다.
"1층 안쪽이라……"
유키짱이 중얼거리고, 목적지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해서 손을 잡았다.
"어딜 가는거야. 반대야"
"아, 알고 있어"
정말이냐,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유키짱의 손을 잡으면서 목적장소를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주위분위기가 명백하게 변한다. 파스텔과 비빗이 뒤섞인 색채공간에 플로랄이나 샤본의 냄새가 떠돈다.
……여자같아!! 나란히 선 가게를 보니, 옷가게랑 악세사리 샵, 신발 전문점이나 부엌잡화, 그리고 란제리 샵. 되게 있기 거북한 공간으로 변해있다.
"쯔라땅……"
일단 요즘 여고생같은 발언을 해보자, 유키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쯔라땅?"
"괴롭다(쯔라이)에 『땅』을 붙여서 귀엽게 해봤다, 라는 모양이지만, 발상을 잘 모르겠어"
내 설명에 유키짱이 더 고개를 갸웃거리며 턱에 손을 댄다. 올빼미 같은 각도다.
"……땅을 붙이면 귀여운거니?"
"유키땅"
"기분 나빠"
바로 일축당해서 어깨를 떨구지만, 확실히 내가 『땅』을 붙여서 말했다, 라는 사실은 상당히 기분 나빴다. 어라, 그건 내가 기분 나쁠 뿐이잖아!
"뭐어, 마음을 도로 잡고 가게로 들어……………………………………가?"
에, 이런 여자여자 오러 만개인 통로만으로도 죽을것 같은데? 가게에 들어가? 나 슬립 대미지로 죽어버리는데?
"왜 거기서 의문형이 되는거야…… 안 들어가면 고를 수 없잖아?"
유키짱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본다. 명백하게 기막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서 걸어간다.
"자, 가자 하치군"
"아, 알았으니까 잡아당기지마"
유키짱에게 끌려가면서 안으로 들어가니, 가게내 여성의 시선이 꽂혔다. 후에에……. 무심코 유키짱의 뒤에 숨었다.
그러자 기막힌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정말, 한심해. 단정하게 있으렴"
"……아니, 그치만 다들 나를 보고 있잖아. 절대로 거동수상자 취급이다, 이거"
그렇게 말하며 주위를 보니, 역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라고할까 여자끼리 소근소근 대화하고 있어! 엄청 느낌 나빠!
울사을 짓고 있으니, 유키짱이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린다.
"………………이건 거동수상자 취급이 아니라, 오히려……"
유키짱이 중얼중얼 말하기 시작한다. 진짜냐, 유키짱까지…….
"저기, 나 저기 벤치에서 쉬고 있어도 돼?"
내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벤치를 가리키자, 유키짱이 미소짓고 이렇게 말했다.
"각하"
하지만 결국 이 가게에서 나가게 됐다.
다른 옷가게로 가니, 또 여성에게 시선을 받았지만, 유키짱이 쏘아보는 듯한 눈을 보낸순간 시선을 피했다. 유키짱 안력 쩔어.
하지만 이걸로 부담없이 물품을 고를 수 있게 되서, 나는 유키짱이 고르는 모습을 때때로 참견하면서 쳐다본다.
"그게 유키짱, 봉제의 튼튼함으로 고르면 끝이 없어"
"하지만, 유이가하마에게는 제대로 된 옷을……"
"유이가하마라면 분명 선물 받은건 소중하게 써줄거야.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튼튼한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데……"
안 그러면 가장 튼튼해보일 군복이 될지도 모른다. 여고생에게 군복이라니, 그건 그거대로 수요는 있을것 같지만. 본인은 기뻐하지 않겠지.
"라고할까, 유이가하마의 센스를 모르는 우리가 옷을 선물해도 취향이 틀릴것 같은데"
"……그건 일리 있네"
어쩌면 엄마가 사온 『줄무늬○라』라는 옷, 정도로 『마음은 기쁘지만, 그게 아냐, 그게 아니야』가 될지도 모른다.
"……나, 유이가하마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게 취미인지……몰랐던거네"
유키짱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 눈동자는 슬프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유키짱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보드럽게 만져준다. 고양이처럼.
"하치군……?"
"모르면 앞으로 알아가면 돼. 하지만, 묻지 않아도 그 녀석은 숨기지 않고 여러모로 얘기해주잖아?"
"그렇, 구나. 그럼……"
내 말에 뭔가 번뜩였는지, 유키짱은 내 손을 잡고 다음 가게로 향한다.
옷가게의 맞은편에 있는 란제리 샵을 지나 그 옆에 있는 부엌 잡화로 도착한다.
"부엌 잡화라아……"
내 중얼거림에 유키짱이 쿡 웃으면서 돌아본다.
"이거라면 알고 있잖니? 싫을 만큼 말이야"
유이가하마의 요리 실력은 진짜다. 나쁜 의미로. 진짜로. 흑탄 연금술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2병처럼 말한다면 물질을 전부 탄소 집합체로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주다. 어라, 그래선 호문클루스측 아냐?
그나저나, 여기는 지금까지와 달리, 나라도 그런대로 즐길 수 있을 장소였다.
"유키짱, 이 냄비 뚜껑 대단해, 손잡이 부분으로 조미료를 넣을 수 있어……엇, 유키짱?"
기척이 안나서주위를 돌아보지, 유키짱이 사라져있었다. 진짜냐, 가게 안에서도 헤메는거냐, 그 애. 길잃은 고양이 오버런이야?
"하치군, 여기야"
그런 헤메는 고양이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가보니, 거기에 있던건 에이프런 차림의 유키짱. 검은 생지에 고양이 발자국이 찍혀있다. 유키짱은 움직이기 쉬운걸 확인하듯 빙글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떠니?"
"아, 아니……엄청 잘 어울리는데……"
그것밖에 할 말이 없고, 뭣하면 지금부터 저녁 만들어 와주라고 엎드려 빌기까지 하는데, 그거, 유키짱에게 어울리는거잖아?
그렇게 생각했더니, 유키짱은 입고 있던 모습을 보고 어깨 끈 등을 신경쓰고 있었다. 지금 유키짱이 어떤 표정인지는 모르지만 귀는 새빨개져 있었다.
"그, 그러니……. 하지만 이거 나한테가 아니라. 유이가하마한테 어떠냐는 의미였는데"
"유이가하마한테는 어울리지 않겠네, 그거. 좀더 푹신푹신하고 폭신폭신한 바보같은 편이 어울릴거라 생각해"
"굉장히 심한 소리지만 정확하네……"
유키짱은 그렇게 말하고 자기가 입고 있던 에이프런을 벗어서 정중히 개었다. 그걸 내가 빼앗아서 쇼핑 바구니에 넣었다.
"유이가하마한테 어울리는건 아니었잖니?"
"아니, 유이가하마한테는 이거 안 사줄건데"
유키짱이 수상쩍은 표정을 지어서,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한다.
"……집에 놔두면 써줄거야?"
처음에는 의미를 이해 못했는지 고개를 좌우로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이해를 했는지 증기가 나올법한 기세로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었다.
"~~~~~~~~~~읏!? 바보, 바보!"
유키짱이 내 어깨를 퍽퍽 때린다. 상당한 위력에 놀라면서 나는 어떤 에이프런을 가리켰다.
"저, 저거라면 유이가하마에게 어울릴것 같지 않아?"
내가 가리킨건 연분홍색을 기초로 한 장식이 적은 에이프런. 뭐, 저거라면 무난할거라고 생각했더니, 정신을 차린 유키짱도 수긍했다.
"뭐, 괜찮지 않겠니"
그렇게 말하고 내가 든 쇼핑 바구니를 빼앗아 핑크색 에이프런을 넣고, 그대로 계산대로 가져간다.
"에, 검은 에이프런은 내가 살건데?"
내 말에, 볼을 붉히면서 미간을 모은 유키짱이 돌아본다.
"안돼. 내가 살거야. 제대로 네 집에서 만들때는, 이걸 갖고 갈테니까 안심하렴. ………………………………안 그러면, 내 맨션으로 부를때는 입을 수 없으니까"
"어, 어어……?"
마지막 부근은 잘 안들렸지만, 일단 유키짱은 에이프런을 두 개 구입했다.
× × ×
다음은 펫샵으로 향했다. 나는 잽싸게 선물을 구입하고, 당연하듯 고양이를 만지고 있던 유키짱에게 간다.
주위에 사람이 많은건지, 나의 랭킹 1위인 그 말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고양이를 포근하게 만지면서 즐기고 있다. 그래도 뭐, 늘 단려한 이미지에서 한바퀴 돌아 귀여워지는건 변함없었다.
"유키짱"
내가 이름을 부르자 고양이가 귀를 움찔거리고, 유키짱은 어깨를 흠칫 거렸다. 싱크로해서 재미있다. 유키짱은 아쉬운듯 고양이에게 바이바이하고, 일어서서 나를 돌아본다.
"사려던 물건은 샀니?
"아아.그럼 슬슬 나갈까"
"그래"
유키짱이 수긍하자, 먼저 가려고 해서 손을 착 잡고 내가 앞선다. 나는 여기서 날짜가 바뀌는걸 보고 싶지는 않다.
출구로 가는 길에 가족이나 커플용 게임 코너를 발견했다.
요즘 시대는 드물지도 않은 게임 코너일텐데, 유키짱의 시선은 크레인 게임에 못이 박혀있었다.
"왜 그래, 유키짱……………앗, 아아"
쳐다보니 그 기계에는 낙칙은 인형이 들어가 있었다. 팬더 팡씨다.
아마, 유키짱의 머리속에서 고양이랑 맞먹을 만큼 그 총애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내가 유키짱과 만났을때부터 이미 엄청 좋아했다. 건담 오타쿠를 건오타라고 부른다면, 유키짱은 팡오타다.
"하, 하치군……부탁이 있는데"
유키짱이 애절한 얼굴로 나에게 묻는다. 얼마나 팡씨를 좋아하는거야. 나는 한숨을 쉬고, 엇갈리듯 유키짱의 머리를 퐁 하고 두드렸다.
"예이예이, 알았어"
나는 동전을 투입하고 크레인 게임을 시작했다. 크레인을 우측으로 가져가, 그 후에 안으로 밀어넣는다. 그 모습을 유키짱위 뒤에서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크레인이 인형을 집어 들고, 그대로 옮기려고 한다.
하지만 반정도 왔을때 팡씨가 떨어졌다.
"아앗"
유키짱이 분하다는 얼굴로 내 소매를 잡는다. 나보다 기합이 들어있네요, 아가씨.
"뭐어, 보고 있어"
한번 더 동전을 투입하고 다시 도전. 떨어뜨린 곳에 크레인을 이동해서 다시 크레인은 인형을 집었다. 그리고 들어올린 인형은 그대로 이동해간다.
"부탁이야……"
기도하는 포즈로 지켜보는 유키짱.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크레인 게임이다, 이거.
유키짱의 기도도 있어서일까, 인형은 빨려들어가듯 수취구가 기다리는 구멍으로 떨어졌다.
"아……"
"자, 뽑았어"
나는 유키짱에게 팡씨를 건내자, 유키짱은 만면의 미소를 짓고 팡씨를 껴안았다.
"고마워, 하치군"
유키짱이 얼굴을 팡씨에 묻으면서 기뻐한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은 마치 그 무렵으로 돌아간것 같다.
이걸 단추로 삼아, 나는 당시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 무렵은 자주 놀았지이. 나랑 유키짱, 그리고 코마치랑 다른 한 명―――――――.
"어라, 유키짱? 거기다……핫짱!?"
"그래그래, 핫짱이라고 불리고……………어, 하?"
난데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정면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터무니 없게 아름다운 미인이 서 있었다.
풍성한 흑발에, 비쳐보이는 듯한 하얀 피부. 그리고 단정한 얼굴.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리움을 느끼는 분위기.
"언니……"
유키짱이 중얼거리자 나는 그리움의 정체를 눈치챈다.
"하루짱……이야?"
내 물음에 눈 앞의 여성――유키노시타 하루노는 기쁘다는듯 끄덕였다.
그래, 이 사람은 유키짱의 언니고, 나의 세살 위. 만났을때는 이미 중학생이었지만, 나에게도 다정하게 굴해줬다. 화낼때는 엄청 무서웠지만.
"핫짱, 오랜만. ……그리고 유키노, 미안해?"
"하? 무슨 의미인―――――――"
유키짱이 의미를 물으려고 했을때, 어째선지 내 안면에 부드러운 감촉이 덮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핫짱의 감촉――――――――――――――!!!"
머리를 세게 홀드 당해, 꼬옥 안긴다. 엄청 부드럽고 좋은 냄새가 나서 나는 혼란해지고 만다.
"어, 언니, 하치군한테 떨어져!"
"에- 싫어-. 나도 핫짱을 만나는건 오랜만이라구? 조금 정도는 괜찮잖아"
"됐으니까 떨어져!"
"아야야야야야야야약!?"
유키짱이 억지로 하루짱의 가슴과 내 이마에 손을 넣어서 떼어내려고 해서, 이마랑 홀드된 후두부에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그대로, 나는 유키짱에게 안긴다. 또 안면에 부드럽―――뭐어, 감촉이 덮였다.
"지금 이상한 생각하지 않았니?"
"아니,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
정치가 같은 대답을 하면서 나는 유키짱의 심장소리를 듣고 있었다. 왠지 그립다.
"어라라-, 빼앗겨버렸다. 그러고보니 둘이서 같이 있는데, 벌써 사귀고 있어?"
"그, 그런건 아니야!"
유키짱에게 즉답으로 부정당했다. 뭐, 익숙하니까 됐지만.
그걸 들은 하루짱은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한다.
"흐-응. 그럼 괜찮지? 유키노"
"읏! 언니라고 해도, 이건 양보할 수 없어"
둘 사이에서 뭔가 개전될것 같지만, 나는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른다.
"무슨 일이야?"
"핫짱은 몰라도 돼.그럼, 오늘은 일이 있으니까 여기서 바이바이하겠지만, 다음에 만나면 나랑 데이트 해줘, 핫짱"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나를 껴안고,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귓속말을 한다.
"……그 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핫짱. 이건 그 속죄"
말을 끝내고 얼굴을 콱 잡고, 그대로 하루짱의 얼굴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입술에는 부드러운 감촉이. 곁눈으로 유키짱의 모습을 보니, 시간이 멈춘것처럼 정지하고 있었다.
잠시 그대로 있으니, 만족했는지 하루짱이 입술을 뗐다.
"푸핫, 잘 먹었습니다. 속죄로 퍼스트 키스 줬으니까, 소중하게 해줘♪"
그렇게 말을 마치고, 하루짱은 잽싸게 그 자리를 떠났다. 우리를 남기고.
"하루짱……"
나는 무심코 입술을 만지면서 이름을 중얼거리자, 옆에서 시선을 느꼈다. 이런, 돌아보고 싶지 않아.
마음을 먹고 돌아보니, 거기에는 미소짓는 유키짱이. 하지만 어째선지 분위기가 오싹오싹하다고-?
"히키가야, 할 얘기가 있는데. 지금부터 시간 있니?"
"………………………네"
그 후로, 나는 유키짱에게 5시간 설교를 받고 집에 돌아간건 심야였다.
문득, 히키가야 하치만은 입술에 손가락을 댄다.
"다녀왔어-……"
나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잡하게 신벌을 벗어버리고 거실로 향했다.
소파에 쓰러진다. 오늘은 일이 너무 많았다.
유키짱과 데이트, 인건진 모르겠지만 뭐, 그런거라면 안 그래도 가득 찼을텐데.
――마지막의 그건.
『푸핫, 잘 먹었습니다. 속죄로 퍼스트 키스 줬으니까, 소중하게 해줘♪』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뭘 대뜸 그런 소리를 해주는거야, 하루짱. 덕분에 방금전까지 유키짱에게 설교받았는데.
몇시간 전을 떠올린다.
나는 어째선지 유키짱의 맨션으로 끌려가서 혼자 정좌를 당했다. ……까놓고 말해 이런 형태로 유키짱의 방에 들어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히키가야는 빈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그런 치녀같은거에 낚이는거야』
『자기 친언니를 치녀라니』
『입다물어. 아, 아무튼간에. 다음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냥 안 둘거야』
유키짱은 허리에 손을 대고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한다.
『……그냥 안 둔다니, 뭐 할건데?』
내 의문에 볼을 부풀리면서 유키짱이 말한다.
『…………………………………………울지도』
『에』
내가 당혹하니 뿡뿡 화내면서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아, 알겠어, 하치군? 만약, 언니랑 한번 더 키스하면, 나 울어버릴거야. 저, 정말로 울어버릴거야』
이미 울상짓고 있는 유키짱이 필사적으로 말하는걸 보고 나도 동요한다.
『그, 그건 곤란할지도……』
『곤란하다면, 이젠 하지마. ……심장 멎을뻔했으니까』
『그것도 곤란한데에』
내 말이 장난치는것 처럼 생각했는지, 다시 유키짱이 미간을 모은다.
『……정말로 알고 있는거야? 애시당초 너는――――――』
그리고나서 유키짱의 꽃길 온스테이지다. 오히려 황금의 과실로 오늘을 다시하기까지 했다.
나는 누워서 입술을 만진다. 키스라.
"부드러웠지"
"뭐가?"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질문받았다고 생각하니, 코마치였다.
"윽. 코마치냐"
"늦었네. 이런 시간까지 뭐했어?"
코마치가 평소의 『고개 들어』라는 제스처를 해서 순순히 따른다. 그러자, 내 후두부에 코마치의다리 감촉이 전해진다. 코마치가 만족한듯 후우, 숨을 내쉬는걸 재고나서 대답한다.
"믿을 수 없는 일에 전혀 색기가 없는 결말이라서. ……설교받았어"
"하루 언냐가 습격했지?"
"……왜 아는거야?"
내 질문에 코마치가 내 앞머리를 빗으면서 댇바한다.
"그게, 하루 언냐하고는 코마치가 휴대폰 받고나서 계속 메일 친구였거든. 중학교때 오빠한테 여친 생긴것도 알고 있어, 하루 언냐"
"진짜냐……"
설마, 밀정 코마치가 진짜로 밀정이었을 줄은…….
"이야-, 가르쳐줬을때 하루 언냐, 엄청 울었어. 통화로 2시간 정도 달랬던게 그립네에"
왜 운거야……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거 알면서 모른척 하는건 무리가 있는데.
"……못 들은걸로 해도 돼?"
내가 말하자 코마치는 내 코끝에 손가락을 쿡 찌른다.
"안 돼. 코마치는 오빠를 그런 오빠로 기른 기억은 없어"
"길러진 기억은 없는데. 그나저나 하루짱이 말이지……"
"하루 언냐, 오빠를 옛날부터 정말 좋아했으니까아"
뭐어, 곧잘 껴안기기는 했지만. 그리고 유키짱이 그걸 보고 화낸다는게 항례적이었고.
"남동생처럼 생각해줬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내 감상에 코마치가 한숨을 쉰다.
"오빠……그 둔감은 일부러 그러는거야?"
코마치의 물음에 나는 몸을 뒤척인다.
"……노코멘트로"
나를 보고 다시 코마치가 한숨을 쉬고, 뭔가 생각났다는듯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그러고보니 하루 언냐한테 『정말로 그 무렵을 잊고 있는것 같네』라고 왔어. ……역시, 아직 기억 안나?"
"솔직히 대충은 떠오르지만, 중요한 부분이 아직……"
특히, 왜 지금까지 내가 잊고 있었는지. 그걸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하루짱의 말.
『…………그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핫짱』
그건 뭘 의미하고 있는걸까. 중요한 힌트인것 같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고 있으니, 코마치가 이마를 쓰다듬어준다.
"……오빠는 제대로 떠올리는 편이 좋아. 그게 어떤 내용이었다고 해도 말야"
"……그래"
내가 끄덕이니까 코마치는 니시시 웃고 이마를 콕콕 찌른다.
"그나저나, 앞으로 힘들겠네, 오빠야. 이걸로 유키 언냐에게 불이 붙었을지도"
"뭐야 그거……"
"라이벌이 있으면, 여자애는 다들 마음에 불이 붙어"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고, 코마치는 천천히 내 머리를 내려놓고 일어선다.
"그럼 코마치 잘게. ……같이 자줄까?"
"마음만 받아둘게. 혼자 잘래"
"응, 알았어. 그럼 잘 자, 오빠"
"잘자, 코마치"
코마치가 거실에서 나간다. 나도 소파에서 일어난다.
내일부터 또 일주일이 시작한다. 유이가하마의 생일, 축하해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거실 조명을 끄고 자기 방으로 갔다.
Prologue. 그리고나서 줄곧, 그녀는 생각한다.
그 녀석과 사귀었던건 중학교 3학년 여름. 고백한건 내가.
처음 봤을때는 되게 어두침침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반 친구랑 얘기하는 모습도 없고, 수업은 흥미없다는 듯 멍하니 듣고 있고.
그저, 어느 순간 꾸깃, 하며 얼굴을 찌푸린 적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몰랐지만, 점점 신경쓰였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나는 그 녀석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졌다.
그리고 잊지 못할 여름날, 나는 그 녀석을 아무도 없는 교실로 불러내서, 내 마음을 들이댔다.
대답을 들을거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뜻밖에도 그 녀석은 한 마디만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나로 괜찮다면』
미약하게 미소를 지은 그 녀석을 보고, 눈을 감으면 멋있구나, 라고 솔직하게 생각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연인이 됐다. 데이트할때, 터무니 없는 소리를 상당히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 녀석은 귀찮아하면서도 할 수 있는건 해줬다.
나는 그 때, 들떠있었다.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던걸지도 모른다. 그 녀석도, 그런 나에게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하지만 어느날, 나는 깨닫고 말았다.
그 녀석이, 내 모습을 통해, 줄곧 뒤에 있는 누군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지 모를 감정이 나를 좀먹어간다. 그 여자는 누구인가. 나를 봐줬으면 좋겠어. 나를 좋아하는거 아닌가. 나는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나는 그 녀석을 싫어하지 않을때, 이별을 고했다.
그 녀석은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2개월동안만 사귀고 일방적으로 차였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실제로 그대로였으니까 불평은 할 수 없다. ……결국 내가 속마음을 말한건 고백할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니까.
좀 더 솔직해졌다면, 결과는 변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그 녀석에게 받은 머리장식을 만진다.
7월도 끝을 고하고, 매미가 시끄러워질 무렵.
그 녀석을 차고나서 2번째 생일이 다가오려 하고 있다.
"또, 보낼까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외출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소부 고등학교에 갔다는건 알고 있지만, 그 녀석은 지금 어떤걸 좋아할까.
또 고민이 늘었다, 라고 자조하면서 나는 집을 나갔다.
①깨닫고 보면, 유키노시타 자매는 자리잡고 있다.
자다 괴로워 눈을 뜬다. 천천히 일어나서 잠옷 대신 입는 T셔츠를 만지니 땀으로 조금 젖어있었다.
시간이 흘러, 8월을 맞이해 즐겁고 즐거운 여름방학에 돌입했다. 나날로 늘어가는 더위 속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일을 하고 있다.
매미 우는 소리는 구애행위인 모양이니까,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면 『여친 갖고 싶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나 『쎾쓰하게 해줘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나 『나를 DJ버리게 해줘어어어어어어어어 남자가 되고 싶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가 되는 거다. 매미도 DJ을 버리는데 필사적인거다. 즉, 여자친구가 없는 남자들의 원한의 소리가, 여름을 색칠하고 있다고 하자.
……………뭐야 그거 진짜 싫다. 무엇보다 여자친구가 없는 남자들이 가장 빛나는건 발렌타인, 그리고 크리스마스라고 무대가 정해져 있잖아. 누군가가 덥석 날뛸때!! 제대로 마스크를 부르는 신호!! 강하게 살아라 인기없는 남자들!!
뭐, 그건 둘째치고. 이미 2달 가까이 전이 되버렸지만, 유이가하마의 생일 파티는 지장없이 행해졌다.
유이가하마는 유키짱의 선물에 눈에 눈물을 머금으면서 기뻐해줬다. 기쁜 나머지 껴안고 유리유리하고 있었다. 이 후가 유리가하마 유리이다.
나의 선물에 대해선 의외로 기뻐해줬다. 내가 선물한건 그녀의 애완견인 사브……사브……사브짱이면 됐나. 아무튼 사브짱용 목걸이를 선물했다. 원래 왕냥쇼에서 놓친건 목걸이가 끊어졌기 때문이라, 그럼 그걸로 사줄까, 생각했지만, 이야아 기뻐해줘서 다행이다. 처음에 유이가하마 녀석, 자기 목에 달길래 그런 취미가 있나 경악했지만, 아무래도 초커라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안심과 신뢰의 바보다.
그 후에는 토츠카와 자이모쿠자도 합류해서 마치 노래방 대회같은 양상을 보였다. 자이모쿠자가 비영의 캐릭터송을 불렀을때는 웃겨죽는줄 알았다. 휘파람이 들려-훠어-, 한동안은 꿈에도 나왔다. 그리고 토츠카는 노랫소리도 천사였다. 엔젤 보이스였다. 토츠카의 이름을 부르고 귀에 들리는 토츠카의 에코-. 뭐야 그거 행복해.
유이가하마는 역시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는게 익숙한지 안정감이 발군이라서 무심코 넋놓고 보고 있더니 유키짱에게 꼬집혔다.
그리고 유키짱은 부끄러워하면서도 가창력은 물론 발군이었다. 정말로 체력 말고는 진짜 만능이다. 척, 등장해서 척 해결할것 같은 수준.
뭐어, 꽤나 들떠오르는걸 보이면서 유이가하마의 생일파티는 끝을 맞이했다. 이다고 할까. 뭐, 기뻐해준 모양이라 정말로 다행이다.
그리고 현재로 도달하지만, 오늘은 내 생일. 가족 내에서 대충 취급받는 나라도, 역시 생일은 축하해주는 모양이라, 매년 부모님이 임시수입을 주거나, 코마치가 나를 축하해주고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생일을 보내고 있다.
올해는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잠옷을 벗고 상반신 알몸으로 방을 나왔다.
× × ×
"핫짱, 안녕. ……그렇게 피부를 드러내고 맞이하다니, 누나를 유혹하는거야?"
"오, 옷을 입으렴……………………하치군 야해"
거실로 가니 소파에서 쉬고 있는 유키노시타 자매와 마주쳤다.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같은, 번뜩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게 하루짱이고, 고개를 홱돌리면서도 부끄러운듯 힐끔 나를 쳐다보는게 유키짱. 자매가 이렇게나 반응이 다를 줄이야.
덧붙여 유키짱은 우리 카마쿠라를 무릎 위에 올려서 눕히고 있었다. 예상대로다.
"……왜 있는거야?"
무심코 말한 말에 생글생글 미소를 지은 하루짱이 대답했다.
"후후, 왜라고 생각해?"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지마……"
하루짱의 대답에 약간 짜증을 내면서 나는 유키짱의 옆에 앉는다.
"하, 하치군의 알몸……"
유키짱이 왠지 바둥대고 있지만, 신경쓰지 않고 나는 하루짱과 대화를 계속한다.
"그렇구나아……더위 병문안?"
"입추가 지났으니까 잔서 병문이 올바를거야……………………하치군, 가까워가까워, 가깝다구웃"
유키짱이 바로 태클을 넣어서 『그렇구나-』 라고 하면서 유키짱에게 다가가니, 다시 바둥대기 시작했다.
"더위문안도 잔서 병문도 땡이야. ……알면서 그러는거지?"
하루짱이 도끼눈으로 쳐다본다. 체념한 나는 한숨쉰 후에 입을 열었다.
"……알았어. 둘다 오늘은 내 생일 축하해주는……거지? 고마워"
내 말에 하루짱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아직 나에게 기대있는 유키짱도 뺨을 붉히며 수긍한다.
"좋아. 그럼 일단 유키노가 한계같으니까 옷 입고 오지?"
"어?"
"하으……………"
옆을 보니 유키짱이 어질어질하고 있었다. 아까 볼을 붉힌건 이게 원인인가.
"미, 미안 유키짱"
나는 소파에서 일어서서 급하게 방으로 돌아갔다.
× × ×
"어라?"
옷갈아입기가 끝나서 다시 거실로 가니 유키노시타 자매가 없어졌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작은 꾸러미가 놓여있다. 들어보니 수신인은 나로 되어 있었다.
"아……"
짐작이 있었던 나는 꾸러미를 개봉하자, 안에서 브레이슬렛이 나왔다.
"페리도트……브레이슬렛……"
라임 그린에 가까운 녹색이 빛난다. 페리도트는 분명, 밤의 에메랄드, 태양의 돌, 이라고 불렸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생일인 8월의 탄생석이다.
작년엔 페리도트를 곁들인 키홀더가 왔었다. 끊어져서 잃어버리는게 무서워서 공부 책상에 넣어뒀다.
송신인은 작년도 올해도 쓰여있지 않다. 메시지 카드도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필체에 조금 낯이 이어서 이번에도 고맙게 쓰기로 한다.
태그를 떼고 브레이슬렛을 팔에 장착하니, 이상하게도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이 탄생석의 의미, 알고 보내준건가"
빛을 대면 빛나는 페리도트를 쳐다보면서 중얼거린다. 페리도트의 돌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지만, 통틀어서 인연을 깊게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인연을 깊게한다라.
"어라, 핫짱. 그 브레이슬렛은 어쩐거야?"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와서 돌아보니, 거기에는 에이프런 차림의 하루짱이. 뒤에는 마찬가지로 에이프런 차림의 유키짱도 있다.
"아아, 선물이 와서. 모처럼이니까 껴봤어"
내 말에 유키짱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혹시 그거, 그 수신힌 불명의 꾸러미? 하지만 어째서 선물이라는걸 알은거니?"
"아아, 그게, 작년에도 비슷한게 보내졌거든"
내가 넘기듯 하자 추궁하듯 스슥, 하루짱이 다가온다.
"작년에도 비슷한거라는건, 그것도 송신인 불명이었다는거지? 수상하네에……거기다, 페리도트의 돌말이라고 하면………"
하루짱의 말을 미간을 모은 유키짱이 이었다.
"운명의 인연, 부부의 인연. 통틀어 두 사람의 인연을 암시하는것 뿐이야. 혹시……"
양 사이드로 노려보아지고, 나는 무심코 쩔쩔맸다.
"아, 아니. 아마 생일돌인것 뿐이지 그 이외의 의미는 없다고. 그보다, 유키짱. 그 에이프런 입고 와줬구나"
그렇게 말하자, 허를 찔렸는지 유키짱이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었다.
"마, 말했잖니. 네 집에서요리를 할때는 제대로 들고 온다고. ……그것뿐이야"
"그런가. 되게 잘 어울려, 유키짱"
"~~~~~~~~~~읏! 바보!"
생각한 감상을 말하니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응?"
문득 옆을 보니 하루짱이 방금보다도 기분나쁘다는듯 나를 보고 있었다.
"………………사이 좋아보이네"
"왜, 왜 화내?"
"딱히이? 그저 나한테는 어울린다고 말해주지 않았네에 라고 생각해서"
후반 부분은 조금 쓸쓸해하면서 하루짱이 말한다.
연상이지만, 하루짱은 이런 어린애같은 점을 우리에게는 보여준다. 그게 뭐어, 귀엽다고 할까 뭐랄까.
"……그런 점은 변하지 않았구나"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하루짱의 볼을 매만졌다. 옛날부터 하던 일이지만, 당시에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의 키 차이가 있어서 단순히 손이 닿지 않으니까 나는 필사적으로 하루짱의 볼로 손을 뻗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하이힐이 없으면 하루짱을 내려다보기까지 나는 성장해버렸다.
하지만, 이 볼의 감촉은 옛날과 변함이 없다. 보들보들하고 따뜻하다.
하루짱이. 옛날과 달리, 나를 올려다보면서 말을 한다.
"키 컸구나"
"그러고보니 옛날에는 하루짱의 키를 넘어주지, 라고 소리쳤던것 같아"
"잘 됐잖아. 어때? 동경하던 누나의 키를 추월한 감상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루짱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뭐라고 할까……이렇게나 가녀렸구나, 랄까"
옛날에는 그렇게나 크고, 믿음직스럽게 보였는데. 우리를 어떤때라도 지켜줄것 같았는데.
――작았던 우리들을 이렇게나 가녀린 몸으로 지켜줬구나.
"……누나의 위대함을 조금은 알았어?"
가슴을 펴며 자랑스러워하는 하루짱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러게. 하루짱, 장해-"
"얘, 얘도 참! 누나를 놀리지 마!"
볼을 붉히면서 화내는 하루짱을 보고, 만약 이 완전무결한 누나에게 도움이 필요할때가 온다면. 그 때는 우리가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뭐어, 끝내 그런 상황이 올지 아닌지는 전혀 모르지만. 우리들 말고 앞에선 강화외골격을 입고 있고, 당당하게 응격 준비! 라는 느낌으로, 무적인 하루짱이니까.
그러고보니 그런 무적인 하루짱도 울었었던가. 중학생 시절에 나한테 여친이 생겼을때.
"그러고보니 코마치한테 들었는데. 내가 중학생때 여친이 생겼다는거 알고, 하루짱 울었다며?"
"윽?!"
얼굴을 더욱 붉힌 하루짱이 나한테서 물러난다. ……뭐야, 지금 꼬리 밟힌 고양이같았어.
"……………………………………………………핫짱한테는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단단히 일렀는데……코마치 바보……"
뒤를 돌아보면서 중얼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잠시 뒤 차분해진 모습으로 나를 돌아본다. 강화외골격을 순식간에 입은 모양이다.
"히키가야, 그런 사실은 없단다?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이 자매는 평정을 꾸릴때, 갑자기 『히키가야』 라고 부르는 버릇을 어떻게 하는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은 이상하게도 닮았다니까, 이 둘.
하지만, 누나 쪽은 약간 대담한 곳이 있지. 전에도 공중의 앞에서……………………….
"아"
새삼 깨달아버려서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하루짱은 강화외골격을 두른채로 나에게 묻는다.
"왜 그래?"
"전에, 재회했을때 키스한거, 혹시 그걸 알았으니까――"
"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그런거 아니야! 그거 핫짱의 착각이야!"
채 말하기도 전에 입을 막혔다. 하루짱이 자랑하는 강화외골격은 이미 벗겨졌다.
"………………………딱히 분해서 그런게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었던것 뿐이야"
속죄라는것도 핑계였다는걸 폭로하면서, 하루짱이 삐친듯이 중얼거린다. 그보다, 그러는편이 가장 부끄러워.
문득, 하루짱이 올려다보기로 나를 올려보고 있다는걸 눈치챘다.
"그래서, 동경하는 누나랑 키스는 어땠어?"
"으……"
내가 무심코 물러서니, 놓치지 않겠다는듯 허리를 껴안았다.
"대답해"
"그게, 부, 부드러웠다, 는거 아닐까……?"
"……그것뿐?"
진지한 분위기로 물어서, 나는 체념하고 대답한다.
"………………엄청 두근거렸는데……"
그걸 듣고 하루짱이 본적이 없을만큼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흐-응, 헤에-. 그렇구나아……"
"뭐, 뭐야……우옷!?"
하루짱이 허리를 안는 힘을 세게 넣은 탓에, 밀착하는 형태가 됐다. 마침 명치 부분에 두 개의 부드러운 감촉이. 이게 트윈 라이브 시스템인가……!
"――그럼 말야. 한번 더, 두근거려볼래?"
"헤?"
촉촉한 눈동자로 하루짱이 나를 쳐다본다. 아, 이런. 이거 진심이다. 눈이 젖어서 메텔처럼 됐을때가 오케이 사인이라고 다큐 슈나이더도 말했어!
"핫짱……"
점점 하루짱의 얼굴이 다가온다. 이대로라면, 이전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뭘 하고 있는거야?"
절대 영도의 냉기를 두르고 구세주가 나타났다. 어, 어라? 정말로 구세주인가……?
"……정말, 방심도 빈틈도 없네"
유키짱이 내뱉듯이 말한다. 그리고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나를 쏘아본다.
덧붙여, 나는 정좌하고 있다. 하루짱이 훌쩍 몸을 떼어 부엌으로 도망갔다. 젠장, 걸어온건 그쪽이니까 도와줘어!
"히키가야, 알고 있는거니. 너에게 빈틈이 너무 많으니까, 저 치녀는 걸어오는거야"
"아니, 그러니까 친언니를 치녀라고"
"입다물어.아무튼, 요리가 다 될때까지 거기서 반성하고 있으렴"
그렇게 말하고 유키짱은 발꿈치를 돌리고 부엌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문득 멈춰섰다.
"…………………실력을 올렸으니까 기대하고 있어, 하치군"
"윽. ……아아, 기대할게"
내 말에 훗, 하고 웃는 소리가 났다고 생각하니, 바로 유키짱이 부엌으로 향해갔다.
……정말로 기대되네.
그렇게 생각하니 현관 초인종이 운다. 나가보니 거기에 있던건 유이가하마와, 아침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코마치였다.
"안녕, 힛키. 코마치랑 만나서 같이 왔어"
"오빠,일어나는거 늦어. 자, 여러모로 사왔으니까 옮기는거 도와줘"
쳐다보니 코마치는 양손에 대량의 짐을 안고 있었다. 유이가하마도 몇개 들고 있다.
"알았어. ……둘 다, 고마워"
나는 짐을 받아들면서 인사를 하자, 둘은 조금 얼굴을 붉히며 각자 아래를 쳐다보고 옆을 보고 있었다. 짬짬짬 하냐.
자아, 주빈이 으스대는것도 뭐하니까 나도 도울까.
――이렇게해서 다 같이 준비한 내 생일파티는, 점심부터 무사히 행해져서 성황인채로 종료했다.
어떤 선물을 받았는지는 다음에 또 얘기하기로 할까.
②그리고, 오리모토 카오리는 그와 재회한다.
내 생일이 지나고, 그 후에는 평소대로 여름방학 라이프가 시작한다.
집에서 가능한 나가지 않고 느긋하게 보낸다. 코마치가 부르면 역시 밖에 나가기는 하지만, 기본 집 안. 유키노시타 자매와 유이가하마한테 가끔 메일이 오면 답변하지만, 기본 집 안. 자택경비는 집에 있기 때문에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날은 평소와 달랐다. 달랐던건 메일의 송신인이 히라츠카 선생님이었다는것이다.
『여름방학 봉사부 활동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습니다. 시급히 연락을 부탁합니다』
……문장 짧지 않아! 쩔어, 평범하게 쿨한 누님으로 보여!
조금 감동한 나는 그 기세로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자 2번 콜 음이 울린 후에 통화상태가 됐다.
『나다』
"마피아 보스입니까, 당신은……"
착신상태가 표시되는 휴대전화니까, 받을때는 그걸로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신경쓰지마. 그래서 메일 말인데. 봉사부 부활동의 일환으로 치바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치바아?"
전혀 연관을 지을 수 없다. 치바와 봉사부가 어떻게 연관성을 가진거야. 뭐, 나는 치바에 자주 봉사를 하고 있지만.
나의 그런 수상쩍은 반응에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달래듯이 다정하게 말을 한다.
『뭐어, 그러지마라. 어쨌든간에 이미 결정된 사항이니까. 그리고 유이가하마를 경유하고, 네 동생에게 상세하게 전해뒀다. ――그럼, 기다리마』
"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무슨 소리야……뚜- 뚜- 통화 종료음을 들으면서 생각하고 있으니, 기세 좋게 문이 열렸다.
"오빠, 치바 가자!"
들어오자마자 문맥도 업이, 코마치가 그렇게 말했다.
"지금 막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전화로 들었어. 뭐 갖고갈거라도 있어?"
내 말에 코마치가 『그럼 얘기가 빠르네!』라고 손가락을 퉁기고, 생글거리면서 필요한걸 나에게 설명했다.
"……예이예이"
무거운 허리를 들고 나는 준비를 시작했다.
× × ×
역을 나와 버스 로타리로 향하니, 검은 원박스 카가 대기하고 있었다. 흠, 코마치에게 들은대로다. 만약 차아 하이에이스였으면 코마치가 하이에이스되버리니까 절대로 다가가지 않는다.
차 옆에 서 있는건 소매를 꼬옥 접은 검은 T셔츠에 데님 핫팬츠와 부츠와 비슷한 치마를 입은 히라츠카 선생님이었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군의 여교관 같은 차림이다. 이 사람, 굉장히 미인이고 스타일도 발군이니까 이런 옷이 무척이나 어울린다. 하지만 독신이다.
"선생님"
내가 말을 거니 선글라스를 벗고 나를 봤다. 그런 몸짓도 그림이 된다. 하지만 독신이다.
"온 모양이군. 이미 와 있는 녀석들이 편의점에 갔다. 조금 기다리거라"
히라츠카 선생님이 그렇게 말하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서 불을 붙인다. 보라연기가 하늘을 날았다.
"히야-, 선생님 멋있어……"
옆에서 코마치가 중얼거린다. 뭐, 멋진건 사실이지만.
"하지만 독신이다"
아, 이런 말해버렸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번뜩, 히라츠카 선생님이 노려본다.
"히키가야, 담배빵이라는거 알고 있냐?"
"죄송합니다, 진짜 용서해주세요, 더는 말 안할게요"
나참…… 하고 중얼거리며너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하마터면 내 몸 어딘가에 크레이터가 생길뻔했다.
그런 대화를 하고 있으니, 로타리 부근에서 낯익은 여자 3인조가 걸어오는게 보였다……라고할까, 유키노시타 자매와 유이가하마였다.
"오, 돌아온 모양이군"
히라츠카 선생님이 중얼거린다. 그리고나서 조금 지나니, 원박스 카 앞에 여자 3인조가 도착했다.
"힛키, 코마치, 얏하로-!"
기운차게 유이가하마가 인사한다. 밖에서 그 인사는 부끄러우니까 그만해줬으면 싶다. 하지만 코마치는 『유이 언니, 얏하로-!』라며 기운차게 대답했다.
"히키가야"
"여"
그런 코마치를 보고 있으니 유키짱이 나에게 말을 걸어와서 손을 들어 대답한다. 그러자.
"얏, 핫짱!"
"우옷!?"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옆에서 껴안겼다. 옆을 보니 아니나다를까 하루짱. 무엇보다, 팔에 닿는 감촉이, 그게. 그거합니다.
"하루짱, 왜 있는거야……아니, 나도 코마치를 데려왔으니까 뭐, 별로 관계없나?"
자기해결하고 있으니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유키짱이 입을 열었다.
"따라갈거라면서 말을 안 들었어. ……그리고, 언제까지 붙어있을거니?"
유키짱의 말에 하루짱이 심술궂은 미소를 짓고 대답한다.
"뭐어야, 유키노.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면 될걸. 아니면……비교 당하는게 무서워?"
"뭐야!?"
하루짱의 말에 유키짱이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성큼성큼 나에게 걸어오고, 남은 내 팔을 꼬옥 껴안았다.
"…………………이, 이 정도는. 할 수 있는걸"
고개 숙이면서 유키짱이 부끄러운듯 중얼거린다. 그걸 하루짱이 히쭉 미소지으면서 쳐다보고 있다.
두 사람이 매달린 이 상황에 무심코 한숨이 나왔다. 그러자 안에서 코마치와 유이가하마가 도끼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빠?"
"…………힛키?"
둘에게 발해지는 무서운 압력에 무심코 유키노시타 자매를 떼어낸다.
"앙"
"아……"
자매 둘 다 유감스러운듯 숨을 내쉬는걸 보고, 담배를 다 피운 히라츠카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자, 슬슬 출발이다. 차안에서 맞붙어선 안 되겠군. 히키가야는 조수석에 앉아라"
"엄청 고맙습니다"
마랗자마자 나는 원박스카의 조수석에 올라탄다. 다른 멤버는 마지못해 뒷좌석에 올라탄다.
운전석에 앉아 안전띠를 맨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한다.
"자아, 출발할까"
우리를 태운 원박스카가 목적지로 향해 달렸다 하지만.
어째선지 인터 체인지로 향하고 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는 고속도로 밖에 없고.
"어라, 치바 가는거 아닌가요?"
내 질문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안광을 빛내며 이렇게 말했다.
"……대체 언제부터 치바역에 간다고 착각한거지?"
"뭐……라고……?"
무심코 똑같이 맞드립을 쳐버렸지만, 정말로 어떻게 된 일이야?
그런 내 의문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우쭐댄 얼굴로 대답해줬다.
"치바역이라고 생각했어? 유감이다! 치바 마을이었습니다!"
"그걸 하고 싶었던거네요, 선생님……"
그 말을 하고 싶어서 두근거리고 있던걸테지, 조금 콧구멍을 벌리며 말을 한 히라츠카 선생님을 보고, 조금 더 이 사람 상대를 해줘도 될까나, 생각했다.
……그나저나, 치바마을은 낯이 있는데. 어디서 들었더라아.
× × ×
"오오, 산이잖아!"
시야에 산 능선이 보여서 나는 무심코 환성을 질렀다.
광대한 관동 평야 속에서 사는 치바인에게 있어, 산은 보기 드물다.
하지만 뒷좌석을 힐끔 보니, 유이가하마랑 코마치는 잠들어 있었다. 차 안에서 트럼프를 하다 피곤한걸까. 나였으면 분명히 취했을거다.
유키노시타 자매는 나란히 창가 풍경을 쳐다보며,나와 마찬가지로 산 경색을 즐기고 있었다. 이래저래 사이 좋구나, 이 둘.
뒷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옆에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시선을 바꾸지 않고 말을 한다.
"의외로 너는 본걸 받아들이는 감성을 갖추고 있구나"
히라츠카 선생님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하지만, 그걸 듣고 나는 아연해한다.
"뭐에요, 선생님은 무미건조한 남자라고 생각했던건가요"
"그리 화내지마. 나는 나이에 어울린다고 하고 싶었던거다"
웃으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변명하지만, 그 후에 조금 쓸쓸한 표정을 짓고 중얼거렸다.
"나이에 어울리게 고민하고, 상처입고, 다시 일어서기를 바란다. ……지금밖에 할 수 없는건, 많이 있으니까"
교사로서, 라기보다는 마치 누나같은 말이다.
"선생님……"
무심코 히라츠카 선생님의 옆 얼굴을 쳐다보고 있으니, 기분나쁘다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왠지 좋은 분위기…… 시즈카짱 치사해애……"
"히키가야는 정말로 절조가 없네"
뒤를 돌아보니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자매와 눈이 마주쳤다. 왜 그렇게 숨이 딱 맞는거야…….
"딱히 그런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그 하루노가 이렇게까지 파고들 줄이야. 히키가야, 무슨 마술이라도 부린거냐?"
쓴웃음을 지으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을 한다. 마지막 쪽이 눈이 번뜩했지만, 가령 마술을 습득했다고 해도, 절대로 히라츠카 선생님에게는 가르쳐줄 수 없다. 희생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그래서 화제를 바꾸기 위해, 문득 신경쓰인걸 말해본다.
"아아, 모처럼이니까 선생님한테는 하루짱의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하, 핫짱!?"
내 제안에 하루짱이 허둥대지만, 옆에 있는 유키짱이 번뜩거리며 수긍한다.
"그건 꼭 듣고 싶어. 선생님, 부탁해요"
유키짱의 말을 듣고 이러갸 원, 하며 한숨을 쉰 히라츠카 선생님은 천천히 얘기를 한다.
"라고는 해도, 너희가 아는 하루노하고는 그리 차이는 없어. 한 마디로 말하자면 우수했지만 우등생은 아니었다인가. 여러가지로 저질러줬지……정말로……"
왠지 말하는 사이에, 히라츠카 선생님의 주위에서 점점 어두컴컴한게 떠오르기 시작한 감각에 빠진다. 선생님, 하루짱 때문에 고생 많았구나…….
"정말로 변함없네, 하루짱도"
내 중얼거림에 하루짱이 머리에 툭, 하며 가볍게 주먹을 대면서 귀엽게 혀를 내밀었다. 이 타이밍에 그걸 하면 무지 짜증나. 유키짱도 한숨쉬고 있고.
히라츠카 선생님도 거울 너머로 그 모습을 봤는지, 밉살스럽게 도로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뭔가 떠오른것처럼 핫, 하며 표정을 지었다.
"……아아, 그러고보니 고등학교 3학년때였나. 무척이나 허둥댔다고 할까……이상했던 시기가 있었지이"
응? ……고등학교 3학년? 뭔가 걸린다고 생각할대, 갑자기 하루짱이 허둥댄다.
"좀, 시즈카짱, 그거 말하면 안 돼에!"
그 반응을 보고,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는걸 떠올린다.
"하루짱, 혹시……?"
"우으………………………"
하루짱의 모습을 보고, 유키짱이 나에게 묻는다.
"히키가야, 뭐 알고 있니?"
"아니, 그게……. 아마, 그 무렵은 마침 나한테 여자친구가……"
"아아, 그러고보니 그랬지. ……하하-앙, 사랑받고 있잖느냐, 히키가야?"
"네?"
내가 되물으니, 지금이라도 뿜을것처럼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수업중에는 아직 평범했지만 말이다. 쉬는시간이 되면 바로 가방에서 여성향 잡지를 꺼냈지. 열심히 어떤 페이지를 읽고 있었어"
"시-즈-카-짜-앙!"
하루짱이 필사적으로 제지하려고 소리를 지른다. 그 기세에 유이가하마와 코마치가 눈을 떴다.
하지만 히라츠카 선생님도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 페이지에는 『정말 좋아하는 그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방법』이 쓰여있던 모양이다. 크큭, 하루노는 소녀구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읏!! 진짜, 시즈카짱 바보오!!"
하루짱이 울상지으며 폭소하는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화낸다. 그런 광경을 일어나자마자 보게 된 유이가하마와 코마치는 아연해하고 있었다.
유키짱으로 말하자면, 볼을 부풀리며 내 좌석을 노려봤다.
"유키짱?"
"……………몰라!"
그렇게 말하고 유키짱은 고개를 홱 돌렸다. 그걸 보고 유이가하마가 쓴웃음을 짓는다.
"유키농도 요즘 숨기지 않게 됐네……"
"뭐어, 하루 언냐는 강적이니까요-. 유이 언니도 파이팅이에요!"
"코, 코마치! 그렇게 큰 소리로 안 말해도……"
……너희들, 전부 나한테 다 들린다는거 알면서 그러는거냐.
화조띤 뺨을 식히기 위해서 창문을 조금 연다. 시원한 바람이 찰딱찰딱 뺨을 쳤다.
그 상태를 봐서인지, 히라츠카 선생님이 웃었다.
"힘들겠구나, 히키가야도"
× × ×
차를 내리니, 코에 풀냄새가 한가득 퍼졌다. 숲에 둘러쌓인 탓일까, 왠지 모르게 공기가 맛있게 느껴진다.
"응-, 기분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유이가하마가 크게 기지개를 폈다.
"배꼽 보인다"
"읏!? 힛키 바보! 색골!"
말하자마자 유이가하마가 자락을 손으로 잡아내리면서 나를 노려봤다.
"오빠, 성희롱은 안 돼-"
미간을 모으며 코마치가 주의를 하지만, 그렇게 배꼽이 드러나기 쉬운 옷을 입은게 잘못이다!
"그나저나……그립네"
"어머, 온 적이 있었니?"
내 중얼거림에 유키짱이 질문을 해서 나는 끄덕였다.
"쭝학교 시절에 자연교실로 간 적이 있었어. 완전히 잊고 있었다"
치바마을은 군마현에 있는 치바시의 보양시설이다. 시민롯지라고 하는 숙박시설이나 캠프장, 그리고 스포츠 시설도 있어서 꽤나 충실하다.
"하지만 여기 좋은 곳이네에. 노후에는 이런데서 편하게 살고 싶어"
기지개를 하면서 하루짱이 그런 말을 했다. 성급하긴 하지만 마음은 안다. 기분 좋게 잎새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과 고원의 시원한 바람은 그런 생각을 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매력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를 히라츠카 선생님이 물리적으로 망치고 우리에게 지시를 해온다.
"여기부터는 걸어서 이동할거니까 짐을 내려둬라"
지시대로 차에서 짐을 내리고 있으니, 또 한대, 원박스카가 다가온다. 캠프장도 있으니까 일반객일지도 모른다, 라고 생각했더니. 차는 사람을 내리고 바로 물러가버렸다. 그렇슴까, 앗시입니까.
차에서 내린건 젊은 남녀 4인조. 무척이나 왁자지껄 꺅꺅 후후후 거릴법한 남녀 4인조다. 왠지 이미지상으로 무척이나 문드러진 느낌을 상상해버리는건 내가 젊기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니, 거기 있던 한 명의 여성이, 갖고 있던 가방을 툭 떨어뜨렸다.
신경쓰여서 주시하고 있으니,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 머리장식이………………………………아니.
"히, 히키가야…………"
"………………오리모토냐?"
그 여성은, 예전에 내가 중학교 시절에 사귀었던 예전 여자친구였다.
③허나 유키노시타 유키노에겐, 닿지 않는다.
눈 앞에 있는 예전 여자친구 오리모토 카오리에게 나는 혼란해하면서 말을 건다.
"어, 어째서 오리모토가 여기에……. 오늘은 바베큐하러 온거야?"
내 질문에 오리모토는 침착하지 못하게 머리를 만지면서 대답한다.
"아, 아니. 바베큐가 아닌데……"
글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으니 옆에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스윽 고개를 내민다.
"흠, 다 모인 모양이군. 내가 소부 고등학교 봉사부 고문인 히라츠카다"
자세를 고치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은 오리모토를 포함한 네 명에게 자기소개를 한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뒤쪽에는 유키짱과 유이가하마가 서 있었다.
"제가 봉사부 부장을 맡고 있는 유키노시타 유키노에요"
유키짱이 한 발짝 앞으로 나와 선생님을 따르는 형태로 자기소개를 한다. 그걸 만족스럽게 본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이야기는 들었을거라 생각하지만, 이번 지역 봉사활동의 일환으로서 소부 고등학교와 카이힌 종합 고등학교가 합동으로 초등학생의 임간학교 서포트 스태프로써 참가하게 됐다. ……라고 해도, 그리 대단한건 아니라 단순히 잡무에 가깝다"
되게 노골적인 소리를 들었다. 반대편을 보니 넷 모두 조금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라고할까, 녀석들은 카이힌 종합 고등학교의 학생으로 보면 되는건가. 라고할까, 오리모토는 카이힌 종합이었군…….
그런 생각을 하며 쳐다보고 있으니 오리모토와 눈이 마주쳤다. 오리모토는 잽싸게 눈을 피하려고 했지만, 내 왼손 부분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왼손에는 생일때 보내온 페리도트 브레이슬렛을 끼고 있었다. ……역시, 그런건가?
"……………"
그 모습을 유키짱이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 바로 가볼까. 본관에 짐을 두는대로 일이다"
하지만 확인할 틈도 없이 히라츠카 선생님이 앞을 가서 우리들도 뒤따라 걸어간다.
라고할까, 하루짱이랑 코마치는? 하고 생각하고 있으니 갑자기 팔을 꼬옥 잡혔다.
또 하루짱인가……라고 생각했더니 코마치였다. 코마치는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인다.
"오리모토 언니 있네"
"그러게"
코마치의 말에 나는 뒤에서 카이힌 종합 녀석들이랑 같이 걷는 오리모토에게 시선을 보내면서 대답한다. 오리모토는 힐끔힐끔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요즘 오빠의 여성관계가 활발하네에. 이건 또, 한차례 파란이 일것 같아"
니시시, 웃으면서 코마치가 말하는걸 나는 노려보면서 대답한다.
"남일이라고 생각하긴……"
"…………그럴리 없잖아. 오빠 일이니까"
코마치가, 정말로 툭 중얼거렸다. 미간을 모으며 나를 노려보면서.
"뭐. 일단 오빠는 먼저 하루 언냐를 어떻게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까부터 계속 옆에 있는데 말야"
그 말을 듣고 반대측을 보니 말없이 나를 쳐다보는 하루짱이 있었다. 대체 어느틈에…….
"……헤어지고 지금까지 연락조차 한 적이 없던 예전 여자친구랑 엉뚱한데서 딱 재회하고, 실은 매년 생일에 보내온 선물이 그 예전 여자친구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라면 절대로 불타오르겠지, 인연이 되살아나버리지, 우으……그런건 싫어어…………"
뭔가 수근거리며 울상지으며 중얼거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따는걸 눈치챘는지 수상쩍은 표정으로 나를 봤다.
"핫짱, 너무 휘적거리면 시청 갈거다?"
"아니, 무슨 의미야!?"
무서워. 그보다 무서워. 뭘 제출하는거야, 시청에서. 사망 신고서냐,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며 전율하고 있으니, 뒤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수가 있었구나………………"
"유키농, 거기 감탄할곳이 아니거드은!?"
뒤쪽을 돌아보니 턱에 손을 대며 감탄하고 있는 유키짱에게 유이가하마가 태클을 걸고 있었다.
줄의 선두에서도 『아아, 먼저 그렇게 해두면 되나……』라며 납득하는듯한 음색으로 뭔가가 들려왔지만, 나는 못 들은 일로 했다. 그쪽은 진짜로 농담이 아닌 것 같아서.
하지만, 당사자인 하라츠카 선생님은 한숨을 쉬고, 우리들을 향해 얘기했다.
"뭐가 어떻든 간에, 타교 학생과 같은 일을 하는거니까, 제대로 하거라. 설령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네요"
옛날에 어떠했든간에, 지금은 다른 고등학교에 있는거다. 나에게는 나의 커뮤니티가 있고, 저쪽은 저쪽의 커뮤니티가 있다. 모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가능한 구분없이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급우를 떠올린다. 그 녀석이라면 이럴때 잘 풀지도 모르지만, 나랑 그 녀석은 다르다. 나는 그 녀석은 될 수 없고, 그 녀석도 나는 될 수 없다.
뒤쪽으로 시선을향하니, 아직도 오리모토는 나를 신경쓰고 있었다.
× × ×
우리들은 본관에 지을 두고 『모임의 광장』이라 불리는 장소로 향했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건 100명에 가까운 초등학생 집단이었다.
이 만큼의 집단이 동시에 떠들고 있는 탓일까 소란스럽기 짝이 없다. 기운이 넘치는 초등학생이라면 그렇지만, 이쪽으로서는 그저 압도당할 뿐이었다.
옆을 보니 유이가하마가 식겁하고 있고, 코마치도 눈을 빙글빙글 돌릴것 같아졌다. 유키짱은 무표정을 꾸리고 있지만, 명백하게 얼굴이 창백해졌다. 유일하게 태연해보이는건 강화외골격을 두른 하루짱 뿐이었다. 그야 그렇지, 각오완료하고 있으니까. 정면으로 응격 준비 있음!
안쪽에 있는 카이인 종합 녀석들을 봐도 압도당하는 모양이다. 오리코토도 뺨을 경직시키고 있었지만 갑자기 나하고 눈이 마주친다. 그러자 차분하지 못한 태도로 머리장식을 만졌다. 그러고보니 그거, 아직 써주고 있구만.
……그나저나 상당히 시끄러운데. 교사는 뭐하는거야, 라고 생각했더니 학생들의 맨 앞에서 손목시계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몇 분이 경과하자 학생들이 이변을 눈치챘는지,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네, 여러분이 조용해질때까지 3분 걸렸습니다"
"윽!"
무심코 뿜을뻔해서 하루짱의 뒤에 숨는다. 이, 이런……설마 여기서 전설의 대사를 또 듣게 될 줄은 생각 못했다. 그보다, 어느 학교에서도 말하는구나, 이 대사.
"……적당히 하고 단정하게 있어"
등 뒤로 부들부들 떨고 있으니, 하루짱에게 혼나버렸다. 역시 이런 공중 장소에서는 하루짱은 엄격하다.
펴정을 되찾아 자세를 고치니 아니나다를까, 교사가 학생들에게 설교하고 있었다. 기나긴 설교 후에는 앞으로의 예정이 발표된다. 아무래도 첫날 행사는 오리엔테이링인 모양이다. 다들, 『임간학교의 안내서』를 펼치면서, 그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여러분을 도와주는 형들 누나를 소개합니다. 일단 인사를 하죠. 잘 부탁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길게 늘어진 음색으로 학생들의 합창이 이쪽으로 들려온다. 바야흐로 일제히 목소리다. 냥코 선생님은 이런걸 싫어할것 같다. 이러니까 애는 싫다, 라고 하면서.
"앞으로 3일간 여러분을 도와줄거에요.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우리에게 말해요. 이 임간학교에서 멋진 추억을 많이 만들도록 우리는 바라고 있을게요. ――잘 부탁해♪"
마지막에 귀엽게 윙크를 하자, 환성과 함께 박수가 몰아일어난다. 역시, 무적의 강화외골격, 빈틈없이 인사를 마쳤다.
오오, 사내놈들이 하루짱에게 빠져있구만. 교사측에도 뜨거운 시선을 보내는 녀석이 있고. 조금 뚱하게 있으니, 원래 위치로 돌아온 하루짱이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다.
"정말, 질투하지마. 나는 핫짱 외곩이다?"
그런 말을 듣고 뺨이 뜨거워지는걸 자각한 나는 고개를 홱 돌리자, 마침 도끼눈이던 유키짱과 눈이 마주쳤다. 자세히 보니 입의 움직임이 『하치군 바보』라고 하고 있다. 미안합니다.
"그럼, 오리엔테이링. 스타트!"
교사의 호령에 학생들이 5, 6명 그룹을 짠다. 사전에 정해뒀는지 부드럽게 반이 나뉜다. 뭐,초등학교 시절에는 별로 따지지 않고 그룹을 짰으니까. 학교 카스트니 영문 모를 개념이 침투한건 좀 더 앞의 얘기다.
할 일이 없어진 우리들은 한 곳에 모여 초등학생 집단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카이힌 종합의 남학생중 한 명이 말을 걸었다.
"이야아, 역시 초등학생은 프래쉬 하네. 그 프래쉬함을 우리에게도 트랜스퍼해줬으면 싶을 정도야"
"트, 트랜스퍼어……"
유이가하마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나도 하이스클DxD를 읽지 않았으면 의미를 이해못했을지도 모른다. 새끼고양이 할짝할짝.
그러자, 가로문자를 남용한 남학생이 이쪽을 향해 입을 연다.
"그러고보니 자기소개가 아직이었지. 내 이름은 타마나와. 잘 부탁해"
그의 말에 무심코 내가 "카레가루 타마나와……" 라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니 듣고 있었는지 유키노시타 자매가 나란히 고개를 기세 좋게 돌리고 부들부들 떨었다. 웃음보가 같은 점에서 역시 자매구만.
타마나와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다른 멤버를 소개해간다. 여학생은 오리모토와, 다른 한 명은 나카마치라는 모양이다. 남은 남학생의 이름은 안 들었다. 편의상 타카시라고 불러두자.
우리도 자기소개를 해간다. 사내놈들은 역시 유키노시타 자매와 유이가하마의 가슴에 눈을 빼앗겨있다. 다행이다, 여기서 코마치에게 수작을 걸었다면 순옥살을 먹이지 않으면 안될 참이었다.
"히키가야 하치만. 잘 부탁해"
내가 무뚝뚝하게 자기소개를 하자, 오리모토가 또 머리장식을 만져댔다. 버릇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나카마치가 오리모토의 귀에 손을 대면서 소근소근 뭐라고 말했다. 뭔가 굉장히 거북하다.
이러저러해서 한차례 자기소개를 마치니, 마침 히라츠카 선생님이 이리로 다가왔다.
"이 오리엔테이링의 일인데, 골 지점에서 점심 준비를 도와줬으면 싶다. 요컨대 배급이다. 나는 차를 타고 먼저 옮겨두마"
"초등학생은 100명은 있으니까……저희들은 탈 수 없군요"
"눈치가 좋군. 빨리빨리 걷는거다. 초등학생보다 빨리 도착하는게 필수조건이니까"
"그럼 스마트하고 스피디하게 행동해야겠네"
타마나와는 이럴때도 가로문자를 쓰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투게더 해볼까.
이번에 행해지는 오리엔테이링은 복수 그룹으로 산 속을 돌아다니며, 지도상에 그려진 체크 포인트의 퀴즈에 대답해서 정답수와 시간을 겨루는 것이다.
따라서 딱히 참가하는게 아닌 우리들은 곧장 골 지점을 향하게 된다. 도중에 몇몇 오리엔테이링 퀴즈이 머리를 썩히는 초등학생의 모습이 있었다. 즐기는것 같군.
타마나와가 초등학생을 볼때마다 성원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은 생글거리며 손을 흔든다, 하루짱의 @강화외골격에만 눈을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해서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기만 하면 예쁜 누나인데 말이야.
"이렇게 손을 흔들기만 하는데 기뻐해주다니, 별거 아니네"
언동은 전혀 예쁘지 않았다. 한숨쉬면서 유키짱이 말을 했다.
"언니, 그런건 말하지마"
"테헷☆"
또 머리를 툭, 대며 하루짱이 혀를 내민다. 그걸 타마나와랑 타카시(가명)이 넋이 나가있었다. 확실히 별거 아니다.
이렇게해서 골 지점까지 타마나와가 말을 걸고, 초등학생들은 손을 흔드는 하루짱에게 인사를 한다고 하는, 무슨 꽁트같은 전개를 계속해갔다.
그런 가운데, 한 명만 자신이 소속하는 그룹에서 몇 발짝 뒤에 걷는 소녀를 깨달았다.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있지만, 찍으려고 하지도 않고 거리를 좁히려고 하지도 않고 그룹을 따라간다. 그룹 멤버도 그녀를 신경쓰지 않는다.
――――지독하게도 기시감을 느꼈다. 그건 당사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라, 유키짱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유키짱……"
내가 이름을 중얼거리자 그녀가 옛날을 그리워하는 미소를 짓고 내 눈을 봤다. 그건, 나라고 하는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 라고 눈으로 호소하는 모양이다.
"……………………"
그 모습을 오리모토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것 처럼 느낀건, 기분 탓일까.
× × ×
나무 사이를 헤쳐나오니 뚫린 곳으로 나왔다.아무래도, 여기가 골 지점인 모야이다.
"기다리다 지쳤다. 바로 이걸 내리고 배급 준비를 하거라"
히라츠카 선생님이 원박스 카에서 내리면서 지시를 해온다. 뒤쪽 트렁크를 열자 도시락과 음료류가 가득 쌓여있었다. 타마나와랑 타카시(가명)와 협력해서 옮긴다.
"그리고, 디저트로 배를 식혀뒀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뒤쪽을 가리키자, 개울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배를 유수에 차갑게 하고 있다는건가.
"식칼류도 있으니까 껍질 벗기기와 자르기 부탁한다"
그렇게 말하고 식칼과 종이접시 등, 배를 담기 위한 도구가 담긴 상자를 우리들 앞에 두었다.
껍질벗기기랑 자르기, 라고 해도. 그 인수다. 혼자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여기는 작업분담하는 편이 좋아"
타마나와가 가로문자를 쓰지 않고 제안해서, 나는 그에 수긍한 후, 말을 이었다.
"유키노시타 자매랑 코마치, 오리모토는 배를. 그리고 유이가하마랑 나카마치는 배급을 도와줘"
껍질벗기기는 까놓고 말해 유키노시타 자매만 있으면 어떻게든 되서, 유이가하마의 참가를 저지하는것 만으로도 좋다, 라는건 비밀이다. 아마 유키짱에겐 들켰겠지만.
"헷, 나?"
그 지시에 오리모토가 놀란 모습으로 자신을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제대로 이유가 있었으니까 나는 설명을 시작한다.
"중학교 조리실습에서 몇번이나 맛있는걸 먹여줬잖아"
중학교 시절, 사귀기 전부터 오리모토는 나에게 조리실습에서 만든걸 먹여줬다. 가족 이외의 이성이 요리를 만들어주는데 굶주린 나는 기쁘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실제로 맛있었고.
"그, 그건 열심히 만든것 뿐이지……나 그렇게 잘 만드는건……"
오리모토가 난처한 태도로 쭈뼛거리고 있으니 날카로운 시선을 느꼈다.
"…………………"
"…………………"
돌아보니 도깨비가 두 마리 바쥬라 온하고 있었다. 혹은 격앙라잔 두마리 퀘. 둘다 무리게임 인건 공통하고 있다. 아, 하지만 오토모아이루을 넣으면 동생 쪽은 유연하게할 수 있던가, 아니 그건 됐어.
"……시간이 없으니까 작업을 시작해도 될까?"
"그,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니 둘은 배껍질을 무시무시한 기세로 벗겨간다.
"하, 하하. 코마치가 나올 차례는 없을것 같은 느낌……"
코마치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중얼거린다. 실제로 배는 둘 만으로도 이미 상당수를 처리 끝냈다. 아수라를 능가한 존재로 변한 자매에게 있어, 반대로 배급 쪽이 바쁘게 되어버렸다.
뒤에서 유이가하마에게 심하게 혼났다. 그치만 너에겐 안 시킬거다?
× × ×
캠프로 말하면 카레다. 뭐, 바베큐일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튼 오늘 저녁은 카레가 된 것이다. 우선 초등학생에게 견본으로 숯에 불을 붙이는 곳에서 시작한다.
처음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교사진의 탁자에 불을 붙이게 되어서, 선생님은 화려한 솜씨로 불을 일으켰다. ……도중에 사기쳐서 샐러드유를 뿌린다는 호쾌한 수단으로 나왔지만, 정말로 위험해서 착한애도 나쁜애도 따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보다, 초등학생한테 그런거 보여주지마.
"대충 이런 느낌이다"
일으킨 불을 사용해 담배를 피우면서 선생님이 말한다.
"상당히 익숙하네요"
"훗, 이래봬도 대학교 시절엔 서클에서 자주 바베큐를 했으니까. ……내가 불을 붙이는 동안 커플이 히히덕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후반부부터 히라츠카 선생님의 눈이 죽어간다. 내 얘기 할 처지가 아니잖습니까-.
"남자는 불 준비, 여자는 식재를 가질러 오거라"
그렇게 말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여성진을 데리고 가버린다. 남겨진건 나와 타마나와랑 타카시(가명).
"그럼 준비를 하자"
타마나와랑 내가 작업 장갑을 장비하고 숯을 배치하고 타카시(가명)이 착화제랑 신문, 부채를 준비한다.
잽싸게 배치를 마치고 신문에 불을 붙이고, 나중엔 숯에 불을 옮기기 위해 그저 부채로 바람을 피운다. 불 옆에서 부치는 관계상 땀이 줄줄 흐른다.
셋이서 그저 말없이 부채를 부친다. 뭐야 이거, 엄청 어색해.
그 어색함을 못 견뎠는지, 타마나와가 입을 열었다.
"너는 오리모토랑 아는 사이야?"
"어, 아아. 중학교때 같은 반이었는데……"
역시 옛 여친입니다, 라고는 말 못했다. 딱히 퍼뜨릴 일도 아니고.
"그렇구나. 중학교때 그녀는 어땠어?"
왜 그런걸 묻는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그렇군, 꽤나 허물없이 같은반 애들을 대했다고 할까"
내 말에 타마나와가 웃는다. 땀이 눈에 들어간 모양이라서 장갑으로 닦았다.
"뭐어, 뭐라고 할까, 남을 잘 보고 있다고 할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내가 잊어버린걸 챙겨준다거나. 뭔가 말하기 전에 그쪽에서 말을 걸어준다거나"
"에, 그건……"
타마나와가 놀란 듯 나를 본다. 나 뭔가 이상한 소리 했나.
"……뭐, 이미 옛날 일이고"
하아, 하면서 맞장구를 치면서 나는 그저 부채로 부치고 있으니 갑자기 볼에 차가운 감촉이 전해졌다.
"윽!?"
돌아보니 거기에는 오리모토가 있었다.
"――수고했어, 히키가야. 자, 너네도"
그렇게 말하면서 우리에게 음료를 건내러 와서 순순히 받았다. 받은 보리차를 꿀꺽꿀꺽 단번에 다 마신다.
"후우, 살았다. 미안하다 오리모토"
내가 오리모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자, 뭔가를 깨달은 오리모토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너, 장갑으로 얼굴 닦았지? ……자, 움직이지 마"
그렇게 말하면서 가방에서 세안 페이퍼를 꺼내서 내 얼굴을 막 닦아준다.
"좀, 부끄러우니까 그만해……"
하지만, 그만하도록 말해도 오리모토는 그만두지 않았다. 여성용 세안 페이퍼 특유의 달콤한 냄새가 비공을 간지른다.
"자, 이제 조금 남았어. ―――――영차. 응, 깨끗해졌어"
안면에서 세안 페이퍼가 떨어지자, 거기에는 미소를 지은 오리모토랑, 그 뒤에서 믿을 수 없는걸 보는 듯한 표정의 타마나와의 모습이 보였다.
"…………………땡큐"
일단 감사 인사를 하니, 오리모토는 『천만에』라고 하면서 가방에서 쓰레기 담을 편의점 봉투를 꺼내서 내 얼굴을 닦은 세안페이퍼를 휙 넣었다. 나중에 모아서 버릴 생각인거겠지.
가방 자크를 닫은 오리모토는 갑자기 내 뺨을 만진다.
"어이……?"
"너, 역시……………"
오리모토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을때, 시야에 그림자가 비쳤다.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그림자 방향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유키짱이 서 있었다.
"………………………"
그 눈동자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
"유키짱……"
내가 이름을 중얼거리니, 오리모토가 핫, 하며 표정을 지었다.
"역시, 저 사람이……"
오리모토의 중얼거림이 무슨 일인지 물으려고 했지만, 그보다도 먼저.
"――조금, 바람 쐬고 올게"
유키짱이 발꿈치를 돌려 그 자리를 떠난다. 어떤 표정인지, 뒤를 돌아봐서 모른다.
"유키짱"
"따라오지마……!"
"윽!?"
쫓아가는걸 거부당해, 내 다리가 멈춘다.
"……미안해"
그렇게 말하고 유키짱이 그 자리에서 떠나간다. 바람이 불어서, 그녀의 흑발을 흔들흔들 나부꼈다.
④혼자,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결국, 유키짱이 돌아온건 그리고나서 몇 십분 후였다. 돌아오고나서는 평소대로 행동하고 있지만, 완고하게 나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
현재, 취사장에서 식재를 자르고 있는 지금도. 나한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저 식재를 자르고 있다. 유키짱의 옆에는, 다가붙듯이 유이가하마가 있었다.
오리코토 쪽은 어색해졌는지 카이힌 종합 녀석들과 뭉쳐서 식재를 들고 있었다. ……저 녀석에게도 마음 상하게 해버렸군.
"어, 어라아-? 왜 잘 안되는걸까아……?"
유이가하마가 평소보다도 과장대게 소리를 낸다.
"그냥 껍질 벗기는걸로 왜 그렇게까지 살이 파이는거니……?"
유키짱이 기막혀한다. 베여진 식재의 무참한 모습은 거창하게 저지른게 아니라, 진지하게 해놓고 저 결과라고 생각한다. 무시무시하게도.
"아하하, 미안해 유키농"
유이가하마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유키짱에게 식칼 써는법부터 배우고 있다.
……남의 몇 배나 주위에 신경을 쓰는 유이가하마는 우리들에게 무언가가 있었다는걸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진다. 그 녀석을 위해서도, 얼른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나는 옆에 있는 하루짱에게 눈을 준다.
"왜 그래. 요리하는 예쁜 누나한테 눈을 빼앗긴거야?"
하루짱은 평소보다도 조금 익살을 떨어보였다. 나는 무심코 사과해버린다.
"……미안, 하루짱"
"――안 돼, 용서 못해"
"에?"
하루짱의 대답에 무심코 그녀의 눈을 보니,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뭐가 잘못한건지도 모르는듯한 『미안해』는, 누나는 인정못해"
"……그렇군. 고마워, 하루짱"
내 말에 생긋 미소를 지은 하루짱은 식재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나서 바로 경쾌한 식칼 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하루짱. 6월에 만났을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했잖아?"
내 질문에 순간 식칼이 멈췄다. 바로 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하고, 하루짱이 대답했다.
"……역시 신경쓰여?"
"그야, 뭐."
내가 왜 유키노시타 자매를 잊고 있는가. 그 열쇠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하루짱은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도 자세하게는 몰라. 그 자리에 있던건 아니니까. ……그러니까 용서할 순 없지만"
그렇게 말하고 하루짱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그런 표정을 보는건 처음이라서 당혹해버린다.
"……거기다, 아마. 유키노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해.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지만"
"유키짱도……?"
그렇다는건, 유키짱에게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었다는건가?
……무언가가 이어질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루짱, 늘 우리를 신경써줘서. ……정말로 고마워"
나는 오랜 기간의 감사를 담으면서 하루짱의 손을 잡는다. 그러자 하루짱은 살짝 볼을 붉혔다.
"따, 딱히. 나는 누나니까. ……………그, 그럼. 감사하고 있다면. ……다음에 데이트 해줄래?"
올려다보기로 듣고, 조금 어질해졌지만 어떻게든 버티고 입을 열었다.
"응, 알았어. 데이트하자"
내 대답에 하루짱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만큼 희색만면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약속이야, 잊으면 용서 안한다?"
식칼을 쥐면서 그런 말을 해와서, 반드시 약속을 지키자고 마음에 맹세했습니다.
× × ×
카레 조리를 끝내고 남은건 가만히 찌기만 할 뿐이었다. 할 수 있는거라면 가끔 냄비 상태를 보는 정도라서, 요컨대 한가해졌다.
"한가하다면 초등학생의 조리를 보고 오는건 어때?"
히라츠카 선생님이 자기는 안 간다, 라고 암묵적으로 말하면서 우리에게 제안해온다.
"괜찮네요,여기서 얻은 저희들의 기술을 스킬 트랜스퍼할 수 있고!"
타마나와가 또 가로문자를 쓰며 소리지른다. 기술을 스킬 트랜스퍼라니 엄청 의미 겹치고 있는데. 라고할까, 얼마나 트랜스퍼 좋아하는거야. 적룡제냐.
두통이 아파졌는지(타마나와풍), 유키짱이 관자놀이에 손을 대면서 눈을 감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대신에 선생님이 냄비 상태를 봐주세요"
히라츠카 선생님은 『물론이다』라고 대답하면서 휙휙 손을 흔든다.
"아, 나도 남을래. 내가 가면 그게 좀 그렇잖아?
하루짱이 곤란한 표정으로 나에게 호소해온다. 확실히 하루짱이 가면 타마나와의 투게더 방해를 해버릴테지, 주목을 너무 받아서.
"알았어, 하루짱도 냄비 지켜보는거 부탁할 수 있을까?"
내 말에 니시시 웃으면서 하루짱이 손가락을 척 올린다. ……아무래도 좋지만, 코마치의 웃는방식, 하루짱한테 옮은거구나.
그걸 신호삼아 우리는 순서대로 초등학생 반에 실례하기로 했다.
이런 이벤트를 좋아하는지 타마나와가 선진을 끊고 가장 가까운 그룹을 찾아갔다. 그러자 예상 이상으로 환영을 받았다. 자신의 카레를 마치 시골 아줌마처럼 먹고가, 먹고가 라며 재촉한다.
타마나와가 초등학생에게 둘러쌓이면서도 하기애애하게 해냈다. 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희롱당하기만 할 뿐이다. 초등학생이 가장 어른을 얕보고 있는거다. 아직 애들의 범주인 고등학생이라면 더 그렇다.
문득 쳐다보니 혼자만 집단에 섞이지 않고 따로 서 있는 소녀가 있었다. 초등학생 집단은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고, 신경에도 쓰지 않는다.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외부 사람이 보면, 심하게 위화감이 있는 광경으로 비친다.
"저 아이는……"
유키짱이 불쑥 중얼거린다. 듣고나서 깨달았지만, 그 아이는 오리엔테이링때에도 같은 상황이 되어 있던 애였다.
"자자, 그렇게――――"
타마나와는 아직 그 소녀를 깨닫지 못한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기 전에 나는 행동으로 넘어갔다.
소녀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저쪽으로. 가자"
소녀는 끄덕였다.
인목을 모으지 않을법한 장소에 나와 소녀, 그리고 따라온 유키짱이 모였다. ……라고는 해도 거리는 각자 떨어져 있다. 유키짱은 회화가 들릴지 의심스러울 수준의 거리가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지만, 소녀가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고맙다는 말은 안할거야"
"알고 있어. 나야말로 쓸데없는 짓을 해서 미안하다"
소녀가 놀란것 처럼 나를 본다. 아무래도 화내기 만들기 위해 했던 말인것 같다.
어쨌든간에 이 소녀는 스스로 내가 한 행동을 할 것이다. 그게 타마나와에게 들키기 전인지 후인지 차이 밖에 없다.
저쪽을 보니 타마나와가 초등학생과 카레의 숨은 맛에 대해서 뭐를 넣을지 의논하고 있었다. 저 녀석이니까 디스커션이나 블레인스트밍, 같은 가로문자를 남용할테지.
"……다들 바보 투성이야"
소녀가 중얼거린다. 에, 뭐야, 이 애는 전자 요정이야? 루리루리야?
"그렇군. 요즘 연구에 따르면 머리가 나빠지는 바이러스에 인류의 절반이 감염된 모양이다"
내가 말을 하자 소녀가 이상하다는듯 나를 본다. ……뭔가 감정당하는 듯해서 기분 나쁘다.
"……이름"
"내 이름은 하마 마이크, 본명이다"
하야시야 페나 하야시야 파코가 살인귀역으로 나왔을때 너무 웃어버려서 괴로워져버렸습니다.
"바보같애. 진짜 이름 가르쳐줘"
소녀가 미간을 모으며 내 헛소리를 일축해서, 나는 한숨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에게 이름을 물을때는 우선 자기부터 이름을 대는거잖아?"
내 말에 마지못해 소녀가 따랐다.
"츠루미 루미"
호오, 이건 별명은 루미루미 말고는 없겠군요. ……좀 뇌내의 말투가 학술자처럼 되어버렸다.
"과연, 루미라. ――내 이름은 히키가야 하치만. 이건 진짜로 본명이야"
그리고 나는 유키짱을 가리킨다.
"그리고, 저쪽의 언니가 유키노시타유키노다"
나의 조회에 루미는 유키짱을 본다. 보여지고 있다고 느낀건지 멀리서 유키짱이 거북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흐-응……하치만, 저 사람이랑 싸우기라도 했어?"
갑작스레 경칭생략 당하면서도, 어쩐지 위화감이 없어서 신경쓰지 않고 질문에 대답했다.
"싸움이라고 할까. 내가 저쪽을 화나게 만든 느낌이야. ……슬프게 만든걸지도 모르겠지만"
내 대답에 루미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건너편에 있는 초등학생 집단을 쳐다보면서 천천히 입을 연다.
"왠지 저 사람이랑 하치만은. 저쪽에 있는 사람들하고는 다른 느낌이 들어"
주어가 애매하지만, 요컨대 나랑 유키짱이 카이힌 종합의 녀석들하고 다르다는 말을 하고 싶은걸테지.
"나도 달라. 저쪽이랑"
"……그런가"
루미는 총명한걸테지. 주위보다 총명하기 때문에, 주위가 어리게 보이고 말았다.
나는 유키짱을 봤다. 유키짱은 총명하다는 차원을 넘어있었다. 그걸, 주위가 허용할 수 없었다.
닮은듯 하면서 본질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그 자리에 맺혀있는건 그런걸테지.
"네가 주위를 그렇게 보는건 알았어. 딱히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저 신경 쓰이는게 있어"
"……뭔데?"
"왜 저 녀석들은, 너를 돌아보지도 않지?
딱히, 자신이 남과 다르다라고 느끼는데에는 전혀 문제는 없는거다. 그런데, 왜 무시당하고 있는거지?
내 의문에 루미가 툭툭 말해줬다.
"누가 따돌려 지는 일이 몇번인가 있었어. 조만간 끝나면, 그러면 또 이야기가 돼. 유행같은거였어. 늘 누군가가 말을 꺼내면, 왠지 모르게 다들 그런 분위기가 돼"
"……그래서, 네 차례가 됐다는건가"
루미가 수긍한다. 일본인의 『분위기에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의무감』같은건 어떻게든 안 되나. 초등학생마저 물들고 있어. 이미 DNA에 새겨진 본능인걸지도 몰라.
엄청 성과없고 무의미한 행위인가. 하지만 그걸 타파할 방법을 그녀는 갖고 있지 않다. 가령 한때 잠깐이었다고 해도, 또 다른 녀석이 희생이 되는 것이다. 그 반복이다.
"만약 중학교에 올라가도, 또 이런 식으로 되어버리는걸까……"
루미의 쉬어버린 듯한 음색의 중얼거림이 나의 마음속에 파고들어온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지고 남색으로 시야가 물들어갔다.
하지만 별빛은 아직 약하다.
× × ×
"…………………후우"
저녁을 다 먹고 코마치가 타준 홍차를 마신다. 저녁 카레는 맛있었다. 역시 맛을 결정지을 마지막 수단은 유이가하마가 돕지 않았던 거다!
"뭐 이상한 생각 안 했어, 힛키?"
"그런 사실은 없어"
……쫄아버렸잖아. 왜 안거야, 가하마 씨.
손목시계를 보니, 이제 곧 초등학생들의 취침시간이다.
"지금쯤 이불 속에서 여러 얘기를 하고 있겠지"
타마나와가 옛날을 그리워하듯 말한다. 그 얘기에 참가못하는 녀석은 어떡할까. 그건, 젭싸게 모르는 척을 하고 먼저 자는 수 밖에 없는가. 그것이 얼마나 고통인가.
"…………………"
유키짱이 뺨에 손을 받치고 멍하니 하늘을 본다. 루미를 생각하고 있는걸까.
"괜찮으려나"
유이가하마가 걱정스러운듯 입을 연다. 직접 얘기를 들은건 나 뿐이지만, 다른 모두도 알고 있었다. 그 만큼, 옆에서 보면 이질적인 광경이었으니까.
"흠, 무슨 걱정이 있나?"
히라츠카 선생님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묻는다. 거기에 타마나와가 대답한다.
"고립하고 있는 학생이 있어요"
"아니야, 타마나와. 고립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고립되어버린게 문제잖아?"
타마나와의 말을 오리모토가 부정한다.
"오리모토……"
역시 오리모토는 잘 보고 있었군. 무심코 입가가 풀어진다.
"……과연. 그럼 너희들은 어떡하고 싶은거지?
그 대화를 보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담배연기를 뿜으면서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장 먼저 입을 열것 같은 타마나와도 마찬가지로 다물고 있다.
하지만, 이 일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은것 뿐이다, 결국. 알아버린 이상 넘겨버릴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할 수도 없다. 그러니 하다못해, 동정 하는것 정도는. 그런거다.
하지만 그걸로 끝낼 수는 없었다.
"――선생님, 이거 일단은 봉사부의 활동인거죠? 그럼 그 녀석의 일도 활동내용에 포함해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눈을 끔뻑였다. 내가 말한게 어지간히도 충격적이었던 모양이지만, 주위 반응은 조금 달랐다.
하루짱, 코마치, 유이가하마, 오리모토. 다들 어째선지 기쁜듯 나를 보고 있었다. 유키짱만큼은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던것 같지만.
히라츠카 선생님은 담배를 비벼서 끄고, 나를 향해 말을 한다.
"흠, 임간학교 서포트를 봉사부의 활동으로 했으니까 범주에 넣어도 좋겠지"
"……과연. 알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을하고, 유키짱을 올곧게 쳐다봤다.
"유키노시타, 의뢰다"
"어?"
유키짱이 올곧게 나를 쳐다본다. 그걸 보고, 나는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이 도움을 바라든 바라지 않든 관계없이, 모든 수단을 써서 해결을 한다. 의뢰자는, 그렇군……"
내가 말이 막혀 있으니,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럼 내가 의뢰하는걸로"
손을 든건 오리모토였다. 그걸 잇는 형식으로 나는 유키짱을 돌아본다.
"――라고 한다. 어떡할래, 부장?"
유키짱이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윽고 체념한듯 한숨을 쉬고 이렇게 말했다.
"………………수리할게요"
유키짱의 말을 들은 히라츠카 선생님은 일어서서,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좋다. 그럼 어떡하면 좋은지 너희끼리 생각해보거라. 나는 잔다"
하품을 눌러죽이며, 히라츠카 선생님은 그 자리를 떠나갔다.
× × ×
브레인스토밍이나 KJ법이니말을 하던 타마나와가 꺼낸 제안을 종합 못한 덕분에 의논에 실리는 없고, 쓸 예정이었던 비지타 하우스의 대욕탕은 관리인동의 안쪽 욕실로 랭크다운했다. 단, 입욕에 대해서는 어차피 타교 사내놈들이랑 같이 들어가도 어색했기 때문에 오히려 굿잡, 이라는 느낌이었다.다행히, 여성진은 대욕장에 들어갈 수 있었고.
안쪽 욕실에서 씻은 후, 오두막에서 쉬려고 했지만 타마나와가 또 의논을 꺼내서 견디지 못해 도망쳤다.
도망치는 김에 밤바람이나 쐬려고 생각한 나는 오두막에서 나와 조금 산책하기로 했다.
시계를 보니 아직 22시. 시간의 흐름이 느릿하게 느껴진다. 역시 노후는 이런 생활이 좋구나아.
고원의 밤은 정적에 감싸여 있다고 생각했더니 의외뢰 여러 소리가 들려온다. 올빼미 우는 소리나 나뭇잎이 울리는 소리가 정적 속에서 울린다.
즉, 까놓고 말해 혼자 있으면 무섭습니다. 진짜로. 주위를 주의깊게 돌아본다.
그러자, 남들 틈새로 긴 흑발의 여자애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달빛에 비추어져, 하얀 피부가 떠오르며 살랑바람이 긴 머리카락을 나부낀다.
그런 그녀가 달빛 아래,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환상적인 광경 속에서 울려퍼지는 노랫소리는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안해진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넋이 나갔다. 내가 한 발짝 발을 내딛으면, 이 세계가 무너져버릴법한, 그런 착각을 품을 정도로.
이대로 돌아갈까, 그렇게 생각해 발꿈치를 돌리니, 발이 잔가지를 밟아버렸다.
"읏! 누구……?"
부르는 목소리는 틀림없이 유키짱의 목소리였다. 고양이 흉내를 내면 대 고양이 모드로 맞이해줄것 같지만 들키면 큰일날것 같았다. 포기하고 앞으로 나왔다.
"……나야, 유키짱"
"……그런 사람 몰라"
유키짱은 고개를 홱 돌렸다. 하는 수 없어서 나는 유키짱에게 다가가 옆에 선다.
"……옆에 와도 좋다고 한 마디도 안 했어"
"오지 말라고도 안 했잖아?"
내 물음에 유키짱이 뚱해진 표정을 짓는다.
"……이렇게 말하면 저렇게 대답한다니까"
그렇게 말하며 유키짱이 내 소매를 잡았다.
잠시 둘이서 별을 쳐다보고 있으니 유키짱이 불쑥 중얼거렸다.
"……어째서 그렇게나 그 아이 일에 열심인거야?"
그 아이, 라는건 루미인가. 나는 천천히 대답한다.
"뭐, 처음에는 닮았구나아, 라고 생각했지만. 얘기를 들어보니 전혀 달랐고, 무엇보다 상황이 너무 틀려"
"……………"
유키짱은 묵묵히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야. 그래도, 보여주고 싶었어"
―――――――――언제든지, 구해줄게, 라고.
"…………………그렇, 구나"
"…………………그런거야"
그렇게 말하고 다시 침묵이 들었다. 유키짱은 잠시 별을 쳐다본 후, 갑자기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치군"
"어?"
내가 돌아보니, 볼에 부드러운 감촉이 닿았다.
"그거, 맞을거야"
한 마디만 말하고, 그 자리에서 가버렸다.
"……그럼, 더 열심히 해야겠구만"
나는 볼에 손을 대면서, 잠시 별하늘을 쳐다본 후,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막간.
언니는 오두막 현관에서 동생의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날도 바뀌려는 시각에 동생은 돌아왔다.
"유키노, 어서와. 핫짱이랑 밀회는 어땠어?"
언니의 말에 동생은 무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런건 없어"
그 말에는 마치 벌레씹은듯한 감정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언니가 한숨을 쉰다.
"핫짱이랑 만난건 부정하지 않구나. ……제대로 화해했어?"
"그건……"
동생의 대답을 들으니 기막힌 표정으로 눈을 감는다.
"……그래. 그럼 맘대로 해"
그 말투에 동생의 눈동자에 노기가 깃든다.
"뭐야, 그 말투는?"
언니는 도발하듯이 내려다보는 표정을 지으며, 똑바로 일러주듯이 말한다.
"말 그대로 의미야. 네가 어떻게 움직이든, 그 아이는 반드시 너를 구해낼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
동생은 아무 말도 않고 그저 언니의 눈동자를 날카롭게 노려볼 뿐이다.
하지만 언니는 그 마저도 신경쓰지 않는다. 오두막 지붕에 희미한 빛조차 가로막으면서, 반쯤 혼잣말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은 절대로 구하지 않을거야. 그럼, 대체 누가 그 아이를 구해주는걸까"
중얼거린 그 말은 어둠의 정적에 무척이나 크게 울렸다.
⑤이런 일도 있을까 해서, 히키가야 코마치는 오빠의 수영복도 갖고 왔다.
아침, 기상했을때는 이미 타마나와랑 타카시(가명)의 모습은 없었다. 박정한 자식들, 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제 도망친건 나였으니까 어쩔 수 없나, 나는 빨리 옷을 갈아입고 오두막을 나왔다.
관광객 하우스 식당으로 가니 초등학생의 모습은 없었다. 대신에 평소보던 사람들과 히라츠카 선생님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음, 잘 잤느냐"
히라츠카 선생님은 신문을 펼치면서 나에게 인사를 해줬다. 쇼와시대 아버지 같은데요, 개인적으로는 호감있습니다 선생님.
"안녕, 오리모토"
"응, 안녕"
오리모토의 옆자리가 비어있어서 앉으니 정면에는 유이가하마가 있다.
"힛키, 잘 잤어!"
"어라, 평소 하던 그거 아냐?"
내 질문에 『아침에는 잘 잤어, 라고 하는거야!』라고 대답했다. 잘 모르겠다. 잘 잤어에서 잘 자까지 얏하로가 아니었나.
유이가하마의 옆에는 유키짱, 그리고 그 옆에는 코마치가 있었다. 코마치는 잘 잤어-, 라고 인사를 하자마자 바쁘게 일어서서 어딘가로 가버렸다.
유키짱은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잘 잤니"
조금 어색해하면서도 유키짱은 나에게 인사를 해줬다.
……라고해도, 아직 어제 일로 완전히 화해한건 아니지만. 뭐라고 할까, 한시름 풀었다?
뭐, 지금은 됐나. 그렇게 생각한 나는 순순히 인사를 했다.
"어, 잘 잤어. ……그러고보니 하루짱은?"
내가 주위를 돌아보자 어느샌가 기어오는 하루짱이 없다. 기어와라, 하루코 누나. ……평범하게 이름이잖아!!
"아아, 언니라면――"
유키짱이 말을 하니, 시야에 뭉클한 가는팔이 들어와서 가로막았다.
"왜에, 누나가 없어서 외로웠어?"
올려다보니 접시를 손에 들면서 하루짱이 히쭉히쭉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네네, 외로워외로워"
"좀-"
하루짱이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손에 든 쟁반을 내 앞에 두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돌아와있던 코마치도 마찬가지로 쟁반을 들고 있다.
……라고할까, 방금전까지 내 주위에 있던 놈들이 없어졌다. 어떻게 된 거야?
"오빠가 올때까지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어. 포인트 높지?"
코마치가 생글 웃으면서 나에게 설명을 해준다. 그걸 듣고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진짜냐, 그럼 좀 더 빨리 일어날걸 그랬네……"
내가 중얼거리니 옆에 아침을 가지고 온 오리모토가 앉는다.
"그 바보를 상대해준 감사니까 신경쓰지마"
"아아……"
타마나와 말이지. 그 녀석, 아마 오리모토에게 마음이 있을텐데. 불쌍한 놈.
"뭐, 별로 신경쓰진 않지만 투게더는 하고 싶지 않아"
"그거, 무리라고 하는거랑 마찬가지잖아……"
"아하하……"
유키짱이 한숨을 쉬면서 아침을 가져온다. 잇따르는 형태로 유이가하마도 앉는다.
"다 모인것 같네. 그럼 먹자"
하루짱의 호령과 함께 『잘 먹겠습니다』구호가 겹쳐졌다.
아침은 호텔에서 자주 보는 오스독스한 것이었다. 먼저 맛김을 밥에 얹어 한입 가득 베어 무니, 순식간에 밥이 줄었다. ……낫토가 남아버려. 하지만 먹고 싶어.
"핫짱, 더 먹을래?"
"응"
밥그릇을 건내니 하루짱이 솥에서 밥을 퍼줬다. 밥그릇을 받고 낫토를 반찬으로 다시 밥을 가득 베어문다.
문득 옆을 바라보니 오리모토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걸 깨달았다.
"……히키가야, 너 하루노 언니랑 사귀어?"
"윽!?"
"엑!!"
"읏! 콜록콜록!?"
갑작스런 발언에 나는 무심코 사레들리고 만다. 앞을 보니 유키짱과 유이가하마가 놀란 목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좀-, 괜찮아?"
바로 하루짱이 내 등을 문지른다. 그걸 보고 오리모토가 수상쩍은 표정을 짓는다.
"봐, 묘하게 익숙한게 수상해"
"………………"
"………………"
오리모토의 말에 유이가하마와 유키짱이 눈을 가늘게 뜬다. 그에 반해 하루짱은 이겼다는듯한 미소를 둘에게 짓는다. 뭐야 이 구도, 괴수대결전이야?
하지만 오리모토는 그 흐름을 타지 않고 아연해한다.
"하지만 너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힐끔 유키짱에게 시선을 준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나에겐 알 수 없다.
"유키짱이 왜?"
내 질문에 오리모토는 잠시 나랑 쳐다본 후, 홱 하고 눈을 피했다.
"……아무것도 아냐. 자, 얼른 아침 먹자"
석연치 않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아침에 집중했다.
아침을 다 먹고 『잘 먹었습니다』로 끝내고 코마치가 타준 차를 마신다. 잠시 쉬고 있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이 신문을 접었다.
"자, 아침도 다 먹은 모양이니, 오늘 예정에 대해서 얘기해둘까"
히라츠카 선생님이 차를 한입 마셔서 목을 적시고나서 말을 이었다.
"초등학생은 하루 자유행동을 하고, 밤에 담력시험과 캠프 파이어를 할 예정이다. 너희들에겐 그 준비를 부탁하고 싶다"
"캠프 파이어라아……"
내 말에 코마치가 이었다.
"오카마 호모 믹서를 추는거죠!"
오카마랑 호모가 믹서……………뭐야 그 지옥구도. 왠지 구제할길 없어……. 절대로 춤추고 싶지 않아.
"오클라호마믹서야……"
유키짱이 힘빠진 표정을 지으면서 정정한다. 미안해, 우리 동생이.
"마임마임 같은것도 춤추지. 앞, 옆, 뒤로 쫑긋 추는거"
오리모토가 끼어든다. 확실히 했었지-. 그거 『마임마임마임마임』하면서 얼마만큼 불에 다가가는지 치킨 레이스로 했던 녀석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담력시험은 놀래키는 역할인가요?"
유키짱의 질문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당연하다는듯 수긍했다.
"귀신 의상도 준비해뒀다. 뭐, 직전에 차려입어주면 돼. 그럼 준비 설명을 할까"
히라츠카 선생님은 일어서서 식기를 다 치운 우리들을 이끌었다.
× × ×
큰 광장으로 데려나온 우리들은 캠프파이어 준비를 명령받았다. 회수해둔 타마나와네랑 함께 남자끼리 준비를 한다.
타카시(가명)가 장작을 쪼개면 그걸 옮기는 역. 타마나와가 장작을 쌓아올리고, 나는 목재를 우물 정자형으로 쌓아올린다.
여성진은 그 캠프파이어를 중심으로 커다란 원에 흰 선을 긋고 있었다. 포크 댄스용 같군.
땀을 흘리면서 작업을 마치니, 히라츠카 선생님이 캔 주스를 우리에게 건냈다. 고맙게 받는다.
"다른 녀석들의 작업도 끝났다. 남은건 저녁에 담력시험 준비를 할때까지는 자유롭게 있어도 좋아"
주위를 돌아보니, 이미 해산한건지 여성진의 모습이 없었다. 우리만 남겨진다.
"나는 방으로 돌아갈건데, 너는 어떡할래?"
타마나와가 나에게 묻지만, 투게더 하고 싶지 않은 나는 부드럽게 거절했다.
"조금 들를데가 있어"
타마나와는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그래. 그럼 나중에 봐』라고만 말하고 갔다.
말해버린 직후, 어디서 시간을 죽일까 고민하면서 걷고 있으니, 문득 개울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어제 배를 차갑게 만드는데 이용했다던가.
땀을 흘려서 기분 나쁘니, 여기서 얼굴을 씻는것도 방법인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길을 따라 걸으니, 작은 물이 졸졸 흐르는게 보였다. 여기를 따라가면 필시 조금 큰 흐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더욱 수류를 따라가니, 마침내 강변이 보였다.
"여기라면 얼굴 씻을 수 있을것 같네"
혼잣말이 나오지만, 신경쓰지 않고 강변으로 다가간다. 그러자.
"차가워-!"
"기분 좋네요-"
꺄아꺄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를 쳐다보니 수영복 차림의 유이가하마랑 코마치가 있었다. 왜…… 수영복을 갖고 온거야……. 뭐야, 이 소셜 게임이었으면 슈퍼 레어한 느낌.
"아, 오빠. 여기-, 이쪽이야 이쪽!"
"헷? 히, 힛키?"
코마치가 이리와 이리와 거리고 있다. 유이가하마로 말하자면 부끄러운듯 코마치의 뒤로 숨었다.
……하는 수 없구마안. 코마치가 부르면 어쩔 수 없지. 나는 둘에게 다가간다. 아, 아니 딱히 수영복이 신경쓰여서 발이 빨라진거 아니고.
"여어. 왜 수영복이야?"
"새로 산 수영복이야! 귀엽지?"
코마치가 보여주듯 포즈를 잡지만, 아직 발전도상국이라서 딱 결론 지을 수 없다.
하지만 프릴이 달린 연노랑색 비키니는 기운찬 코마치랑 잘 어울린다. 나는 솔직하게 감상을 말했다.
"귀엽지 않냐? 잘 어울려"
"아싸, 오빠한테 칭찬받았다아!"
코마치가 척, 하고 승리 포즈를 취한다. 그건 유키짱이랑 닮았군. 너, 유키노시타가 자식이냐. 그래선 요스가가 안 돼. 절대 안 할거지만.
"그럼! 유이 언니는!?"
"히얏! 코, 코마치!?"
코마치는 계속 자기 뒤에 숨어있던 유이가하마를 앞으로 내민다.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나올때 그 탱탱한 쌍봉우리가 크게 흔들렸다.
"히, 힛키. 어때……?"
유이가하마가 나에게 질문한다. 선명한 블루 비키니가 그녀의 탱탱한 피부에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수영복을 믿음직하지 못하게 보일만큼 풍만한 쌍봉우리가, 내 눈을 잡고 놓지 않는다. 무, 무서운 녀석이다……이것이 만뉴인력인건가……!
너무 응시하고 있었는지 유이가하마가 부끄러운듯 입을 연다.
"히, 힛키, 너무 쳐다봐아……"
"읏! 미안. ……하지만 어울려"
"그, 그런가……"
유이가하마가 우물쭈물거리며 손장난을 시작한다. 옆에서 코마치가 빼꼼 고개를 내민다.
"오빠, 거기 가방에 오빠 수영복도 넣어뒀으니까, 갈아입고 와!"
코마치가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니 확실히 가방이 놓여 있었다.
"어, 진짜로?"
내 반응에 코마치가 니시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런 일도 있을까 해서 챙겨왔어! 그치, 포인트 높지?"
"아아, 엄청 높다"
나는 코마치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방을 회수하면서 그늘에서 잽싸게 갈아입는다.
옷을 다 갈아입고 강변으로 돌아가니, 난데없이 누군가에게 등 뒤로 껴안겼다. 이런 행동을 하는것과 등 뒤의 감촉은――――.
"하루짱이야?"
"정다-압♪"
그렇게 말하고 떨어지며, 내 정면으로 돌아온건 역시 하루짱이었다. 순백의 수영복을 입어도, 그 가늘고 투명한 하얀 피부는 눈에 띈다.
그리고, 역시라고 할까. 어떤 부분이 내 눈을 잡고 놓지 않는다. 아아……만뉴인력에겐 이길 수 없었어…….
"얘, 핫짱. 감상은?"
하루짱이 내손을 잡으면서 묻는다. 양손으로 잡고 있는 탓에 가슴팍이 강조되어, 원래 풍만한 쌍봉우리가 더욱 풍만해진다.
"자, 잘 어울려, 하루짱"
조금 상기되면서 대답하니, 하루짱은 기쁜듯이 미소를 지었다.
"후후, 해냈다아♪"
기뻐보이는 하루짱을 보고 웃고 있으니, 갑자기 팔을 잡혔다. 돌아보니 거기에는 언짢아보이는 유키짱의 모습이.
"………………………역시 큰 편이 좋구나"
"……읏"
그렇게 말하면서 노려보지만, 나는 유키짱의 수영복 차림에 눈을 빼앗기고 있었다. 청초한 수영복이, 하루짱에게 이길지언정 지지 않는 가느다란 피부에 찰 달라붙어, 매혹적인 곡선을 그리고 있다.
"……히키가야?"
내 모습에 유키짱이 이상하다는듯 올려다본다.
"읏! 아, 아아-. 그게. 엄청 잘 어울려"
허둥거리면서 감상을 말하니, 유키짱은 순간 멍때리고 있었지만, 바로 미소를 지었다.
"하치군, 정말!?"
"아,아아. 귀, 귀여운거, 아니려나……"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돌리니, 볼멘스러운 하루짱과 대면했다.
"……나한테는 그렇게까지 말 안해줬어"
"아, 아니……그게……"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망설이고 있으니, 유키짱이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이겼다는 얼굴로 말했다.
"못 들었다고 따지는건 꼴불견이야, 언니"
"……뭐라고?"
하루짱의 음색에 노기가 섞인다. 이런, 이거 진짜로 화났을때 반응이야.
그걸 시작으로 자매싸움이 발발했다.
"애시당초 늘 언니는 내껄 냅다 가져가잖아.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잖아, 취향이 같으니까! 아-아-, 한번만 나보다 칭찬을 받았다고 너무 기어오르는거 아냐? 핫, 아직 애구나"
"어머, 그 한번의 패배를 인정못하는 쪽이 더 애가 아냐? 후후후, 그 쓸데업이 살찐 지방으로 유혹해도 못 이겼으니까, 어지간히도 분했구나?"
"아, 아-아-. 그런 소리 하는구나? 뭐어, 그 나이에 아직 그 사이즈라면, 이제 가망성은 없다는거지? 여기는 가여워 해줘야하나아. 핫짱은 큰 쪽을 좋아하니까, 나는 언제든지 어필할 수 있고오?"
"뭐얏!? 딱히 나이먹으면 꼴사납게 축 처버리니까, 이쪽에서 사양이야"
"앗핫핫핫! 나이 먹고 축 처지는게 볼살 뿐인 너한테 듣고 싶진 않아!"
점점 끓어오르는 자매 싸움에 나는 그저 쭈뼛거릴 뿐이었다.
"뭘 싸우는거냐…… 강물이 뜨뜻해지면 어쩌려고……"
그렇게 말하며 다가온건 비키니차림의 히라츠카 선생님이었다. 균형잡힌 스타일에 비키니를 입어, 그 아름다움을 돋우고 있었다.
"선생님, 하면 되잖아요! 이거라면 아라사라고 말해도 통하겠어요!"
"――나는 현재 진행형으로 아라사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크어어어어어어어억!?"
히라츠카 선생님의 주먹이 내 복부에 꽂혔다. 나는 뒤로 쓰러져버린다.
"하치군!?"
"핫짱!?
쓰러지자, 마침 둘의 사이에 끼어드는 형태가 됐다. 서서히 의식이 멀어져 가는 가운데, 나에게 말을 거는 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 × ×
"하치군, 괜찮아?"
"아아……"
현재, 나는 나무 그늘에서 유키짱의 무릎배게를 받고 있다.
그 후에 쓰러진 나를 모두가 여기까지 옮기고,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유키짱이 간호하게 된 모양이다.
……왜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쪽이지. 보통은 진쪽 아냐? 뭐, 됐어. 신경쓰지 말자.
"유키짱은 괜찮아? 안 놀아도"
내 질문에 유키짱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한다.
"말했잖니. 체력만큼은 자신이 없다고. ……마침 잘된것 뿐이야"
마지막 부근, 유키짱이 중얼거렸지만, 밀정 코마치에게 가위바위보에 이겼을때 본적이 없을만큼 기뻐했다, 라는 보고를 받아서 부끄럼 감추기인건 다 훤히 보였다.
"~♪"
콧노래를 부르고 있어,유키짱. 무척이나 기분 좋아보였다.좀 전까지 그렇게나 험악한 분위기였는데.
그러고보니, 유키짱에게 무릎배게를 받는건 처음이었지. 라고할까, 수영복 차림으로 무릎배게는 위험하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서(JK)……뭐, 유키짱인 현역 여자 고등학생(JK)이지만……뭐냐, 위험도가 늘어난 느낌이 들어…….
진정하질 못해서 몇 번이나 뒤척이니, 볼을 가볍게 꼬집혔다.
"얘. 가만히 있어, 하치군"
"……미안"
부끄러워져서 눈을 감으니, 주위 소리가 선명해졌다. 강변에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귀를 간질인다.
그런 자연의 BGM 속에서 유키짱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제는. 착란해서 미안해"
어제――. 낮에 유키짱이 사라졌을때 말인가.
"전혀 신경 안써. 나야말로 미안해"
내가 사과하자, 어째선지 코를 꼬옥 잡혔다.
"전혀 신경 안 써. 오리코토랑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는걸……"
쥐는 힘이 강해진다. 엄청 신경 쓰고 있잖습니까……!
갑자기, 손을 놓고, 내 앞머리를 빗으면서 유키짱이 말한다.
"조금전에 듣고나서 생각했어. 극복했다고는 생각했지만 말야"
눈을 뜬다. ……그건 하루짱이 말했던, 우리가 모르는 유키짱의 상처인건가?
"유키짱……그건――"
"――하치군"
내 질문을 가로막고, 유키짱은 계속 말한다. 마치, 그 화제를 건드리는건 금지하듯이.
"너는 늘 우리를 구해줬어. 우리도, 하치군의 힘이 되고 싶단다?"
"그건"
"그러니까. 정말로 힘들때. 혼자선 도저히 어찌할 수 없을때. 우리를 의지해줬으면 싶어. 부탁해, 하치군……"
유키짱이 나를 곧게 쳐다보면서 말을 이어간다.
그 진솔한 부탁은, 서로 맞닿고 있는 부분을 통해, 나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어가는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잠시 그늘에서 쉬고 있으니, 옆쪽 샛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덤불에서 나온건 루미였다. 무릎배게 받고 있는 상태로 눈이 마주쳤다.
"……왜 어제 오늘만에 그렇게 사이 좋아지는거야?"
수상쩍은 표정으로 질문받아서 나는 말이 막힌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하고는 유키짱이랑 미묘할때 만났지.
"뭐어, 그거다. 고등학생에겐 여러모로 있어"
"……흐-응"
적당하게 얼버무리려고 입을 열었지만, 루미의 의심은 걷히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너는 그거냐. 평소대로냐"
내 질문에 루미는 수긍했다.
"오늘 자유행동이라서 아침을 먹고 방에 돌아갔더니 아무도 없었어"
지독해라……. 뭐야 그 하트 블루 박스 스토리. 옆에 있는 유키짱도 미간을 모았다.
"……그럼 여기 좀 들렀다 가. 우리라도 얘기 상대 정도는 해줄테니까"
"그렇구나. 루미, 그거면 문제 없겠니?"
유키짱의 질문에 루미는 망설여하면서 끄덕였다.
여기 무릎배게 받는 상태로라면 폼이 나지 않아서 일어나서 유키짱의 옆에 앉는다. 그리고 그 옆에 루미가 앉았다. 나는 지금 외톨이계 여자에게 샌드위치 당하고 있다. 아무래도 좋았다.
셋이서 멍하니 강변을 쳐다보고 있으니, 루미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하치만은 초등학교때 친구 있―――――에엑!?"
나는 속공으로 옆을 가리켰다. 유키짱이 조금 볼을 붉히고 루미가 눈을 크게 뜨고 있다.
"……뭐어, 우리의 경우엔 그 이외의 교우관계가 극단적으로 적으니까. 별로 참고는 안 돼"
"그렇, 구나……"
루미가 어깨를 떨구는걸 보고, 나는 옆에 있는 소녀에게 과감하게 물어본다.
"루미. 이 상황에서 너는 뭐가 제일 싫다고 생각해?"
내 물음에 루미는 강변을 쳐다보면서 또렷한 말투로 대답한다.
"나는……비참한게 싫어. 하지만 버려졌으니까, 사이 좋아질 수도 없고.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될것 같으니까. ……이대로라도 괜찮을까 해"
비참한건 싫지만. ――――라며, 루미는 말을 끝냈다. 이 아이는 자신의 주위 뿐만 아니라, 자신도보고 있었다.
――자신에게 실망했구나.
『――――――――――――――――――――』
――무언가가. 열릴것 같다.
"……히키가야?"
"읏! 미안, 생각을 했어"
유키짱이 수상쩍게 쳐다봐서 나는 제정신을 차렸다.
……지금 그건. 하지만 그보다도 루미가 우선이다.
나는 일어서서 기지개를 하고, 루미에게 물었다.
"비참한건 싫지?"
"……응"
루미는 오열을 참듯 끄덕였다. 눈동자에는 어느샌가 눈물이 넘칠정도로 맺혀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그으면서 천천히 말했다.
"……그거, 소중히 여겨"
결심은 굳혔다. 남은건, 하는것 뿐이다.
⑥그래도, 츠루미 루미는 선택한다.
마침내 담력시험 준비에 들어가게 됐다. 우리는 담력시험 코스를 내려다보면서 밤의 예정을 세운다.
밤길에 헤메지 않도록, 그럴법한 포인트는 체크해둔다. 컬러 콘을 설치나 귀신 역할에 의한 감시같은걸로.
한차례 사전 조사를 마치고 대기장소로 돌아오니 유키짱이 입을 열었다.
"……어떡할거야?"
어떡할거야, 란 담력시험이 아니라, 츠루미 루미를 구하는데 어떡할거냐는 소리다. 다들, 모두 나를 주목하고 있다. 그만해, 부끄럽잖아.
진지한 얘기를 하자면, 이런 문제는 상당히 어렵다. 왜냐면 근본적으로 모두의 의식을 바꾸지 않으면 일회성으로 끝나버리기 떄문이다.
"이럴때일수록, 다같이 디스커션 하면――"
타마나와가 입을 열지만 나는 그걸 손으로 제지한다.
"그건 제일 해선 안 돼. 디스커션이 마녀재판이 된다고?"
"……그건, 루미가 모두에게 괴롭힘당한다는 의미지?"
유이가하마의 확인에 나는 수긍한다. 마녀재판의 의미를 몰라도, 이 녀석은 나랑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럼 한 명씩 얘기해본다는건"
"똑같아. 그 자리에서만 한번 하고 끝나지, 뒤에선 또 같은게 시작돼. 여자애는 네가 생각하는것 보다도 훨씬 무섭다?"
타마나와의 제안을 오리모토가 제지한다. 그 오싹한 말에 역시 놈도 입을 다문다.
"여자는 그런점. 있지……"
나카마치가 동의하듯 중얼거린다. 동성인 이상 부응도 없이 그런 일면을 보여주는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떡할거야 핫짱?"
하루짱이 나에게 물었다. ……역시, 하루아침에 어떻게 될 문제가 아닌 만큼 이 문제는 뿌리 깊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발판만큼은 만들고 싶다.
"모두의 본성을 폭로해주고 싶어"
"본성?"
하루짱의 물음에 내가 수긍한다.
"쓰고있는 가면을 벗겨내면 대체 뭐가 남을까, 라는거지. 바다가 될지 산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루미에게 있어선 타격은 없어"
"꽤나 잔혹하고 재미있는 생각을 하네에, 핫짱"
하루짱이 생긋 미소를 짓고 나에게 안겨붙는다. 그 옆에서 유키짱이 그걸 떼어내면서 말을 이었다.
"……현재 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한다면 그것 밖에 없을것 같아. 유감스럽게도"
주위를 돌아보니, 다들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다 라는 분위기였다. 나는 한번 호흡을 두고, 모두에게 말한다.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은 알겠어. 이걸로 문제는 해결하지 않아. 솔직히, 해소조차 안 되는게 아닐까 생각해"
"히키가야……"
유키짱이 나를 본다. 고고하고, 기가 세지만. 아주 조금 오기를 부리고 있던 여자애.
나는 우연히 그 아이를 도와줄 수 있었지만, 그 녀석은. 루미는……아직 아무도 옆에 없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그 녀석이 혼자서 뛰어넘지 않으면 안 될때를 위한 양식이 되어저야한다고 생각해. 고작 그것뿐이지만, 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
실내가 조용해진다. 다들 말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지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좋다고 생각해, 히키가야"
정적을 깬것은 오리모토였다. 옆에 있는 나카마치도, 응응 하며 끄덕이고 있다.
"응, 아무것도 안하는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
유이가하마가 생글거리며 나에게 동의해줬다. 다른 녀석들도 끄덕인다.
"……고마워. 그럼 준비하자"
내 호령에 다들 끄덕여주었다.
× × ×
"……그래서, 왜 이렇게 된거야?"
"몰라……"
나는 생각한걸 말하니, 하얀 소복 차림의 유키짱이 한숨쉬었다.
담력시험, 이란기에는 너무나도 국적없는 의상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임간학교의 의상은 학교 교사가 갖고온게 있는 모양이지만, 절대 이거.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여고생의 코스프레를 보고 싶었던것 뿐이잖아…….
"하지만, 이런것도 괜찮지 않아?
검은 소복을 입은 하루짱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자매가 블랙 & 화이트인가. 초대 프리큐어네요, 압니다.
"라고할까 이거, 할로윈이잖아……"
오리모토가 마법사 차림으로 중얼거린다. 정말이지 그 말대로다.
옆을 쳐다보니 나카마치가 무녀복을 입고 있었다. 뭐라고 할까, 신사 알바생같다.
"냥"
괴상한 울음소리와 함께 소매를 잡혀서 돌아보니 고양이귀를 낀 코마치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꼬리도 장착하고 있다.
"오빠다냥-"
"……냐아-"
코마치의 목소리에 유키짱이 뒤따르며, 나는 쓰러지듯이 무릎을 꿇었다.
"오빠가 쓰러졌다냥-, 유키 언냐는 어떻게 생각한다냥-?"
"……무척이나 걱정이다냥-"
……이제 그만해!! 내 라이프는 제로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전신 거울을 보면서 포즈를 잡는, 소악마스런 차림의 유이가하마가 있었다.
"우으-……"
불안하다는듯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지만 내가 보고 있다는걸 눈치채고 이쪽을 돌아본다.
"저, 저기 힛키. 이거 괜찮을까아?"
검은 타이트한 천으로 위아래를 가리고 있지만 무척이나 피부색이 많다. 타이트한 탓에 유이가하마의 바디라인이 강조되어, 무섭다고 할까 에로하다. 누구야, 이 의상 준비한 녀석.
"……벌레 물리기 대책은 만전이겠다"
"거기이!? 좀더 요런거, 뭐 없어!?"
뿡뿡 화내면서 나를 힐책해서 고개를 홱 돌리며 대답한다.
"뭐, 귀엽긴 하지만"
"읏!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바보바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화내는 유이가하마를 달래면서 시계를 보니, 담력시험 개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루짱, 마지막 확인이야"
"네넹-"
하루짱이 손을 들면서 나에게 다가온다.
이번 핵심은 틀림없는 하루짱이다. 하지만 하루짱은 왠일로 불안하다는듯 나를 쳐다본다.
"……왜 그래, 하루짱?"
내가 물으니 쭈뼛거리면서 올려다보며 물어온다.
저기, 핫짱? 있는 힘껏 할건데, 싫어하지는 않을거지?"
"새삼 싫어하지도 않아. 사랑해 사랑해"
내가 적당하게 대답하니 하루짱은 김이 나올듯한 기세로 얼굴을 새빨갛게 만들었다.
"……………………………하으"
"하루짱!?"
왠지 엄청 귀여운 소리를 내며 하루짱이 졸도했다.
× × ×
담력시험을 개시한지 이미 40분이 경과했다. 셀것 까지도 없이, 2, 3 그룹을 남기고 모두 나갔다.
"자, 다음은 이쪽 그룹!"
코마치가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그룹을 지명하자, 남겨진 두 그룹이 와아, 하며 소리를 질렀다.
미리 지정한대로 가는 순서를 정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지명하는 스타일을 취한 덕분에 긴장감이 가미되어, 잘 돌아가게 됐다.
"시작하면 숲 속에 있는 사당에서 부적을 갖고 와주세요-"
숲의 입구에서 마녀차림의 오리모토가 규칙 설명을 하고 있었다. 이 안정감이다. 전혀 문제는 없을 것이다.
루미네 그룹을 보니 다들 화기애애하고 있었다. ……루미를 빼고. 그 자리를 넘기듯 말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할까"
――나도 행동을 개시하기로 했다. 초등학생드에게 들키지 않도록 나무들 속에 숨으면서, 숲 속을 걸어간다.
가고 있는 곳은 산길의 분기점이다. 컬러 콘으로 한쪽 길을 맊아둔 장소.
사전에 밑준비를 해둔 덕분에 쉽게 나무들 사이를 지나간다. 초등학생하고 마주치지 않도록 서두르자 점점 목적지가 보여왔다.
숨이 차올라서 호흡을 진정시킨다. 그리고 적당한 나무 그늘에 몸을 숨기고나서 잠시 잠복했다.
마지막에서 2번째 집단이 지나간걸 재고, 나는 컬러 콘을 이동시킨다. 골로 가지 않고, 산으로 가는 길을 열은 것이다.
산으로 가는 길에는 하루짱이 혼자서 심심하다는듯 하늘을 쳐다보고 있어서, 나는 그녀에게 한 마디 말했다.
"슬슬 차례가 올거야. 부탁할게 하루짱"
"아이아이서-"
하루짱은 날렵하게 경례를 하고 가까이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기모노 미녀니까, 그런 모습도 무척이나 그림이 된다.
준비 신호를 보고, 나는 분기까지 돌아가 다시 잠복한다.
어둠에 섞이어 시계를 쳐다본다. 잠시 후 루미네 그룹이 오는걸 기다리고 있으니 여러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지만, 그 속에 루미의 목소리는 없다. 하지만 그녀들을 시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좁히니, 루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가 선택하든 택하지 않든, 나는 몰라. 하지만 이것이 무슨 계기가 되어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어.
그룹의 선두가 분기점에 접어들자 망설임없이 길난 곳――즉, 하루짱이 기다리는길로 나아갔다.
나는 충분한 거리를 두면서 기척을 죽여서 따라간다.
"히키가야, 상황은?"
그러자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불렸다.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유키짱과 유이가하마. 루미네 그룹이 마지막 그룹이다. 그러니까 귀신 역할인 그녀들은 이미 일을 마쳤다.
"지금 하루짱이 있는 곳으로 갔어. ……보러 갈건데, 같이 갈거지?"
내 질문에 둘 다 끄덕였다.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천천히 이동을 개시한다.
루미네 그룹은 공포를 뿌리치듯 큰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다. 잡담에 흥겨워하면서 걷고 있으니, 갑자기 누군가가 『아』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룹의 앞쪽에는 검은 기모노를 입은 여성의 모습.
"언니다!"
하루짱이라는걸 알고 초등학생들이 달려간다.
"기모노모습 예뻐-"
"그치만 내내 가만히 있어서 재미없어-!"
"의욕 내봐-!"
"이 담력시험 하나도 안 무서워-!"
아는 얼굴이라 긴장감이 풀렸는지, 분위기를 풀면서 초등학생은 하루짱에게 엉킨다.
하지만, 하루짱은 뻗어온 손을 후려쳤다.
"후, 후후후후, 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하루짱이 웃어댔다. 회중전등을 떨어뜨리고, 이마에 손을 대면서, 그저 웃는다. 웃기만 한다.
그 광경에 초등학생은 완전히 삼켜졌다. 어둠을 틈타, 미녀가 미친듯이 웃는 모습은 지금까지 들떠있던 초등학생을 공포의 밑바닥에 떨어뜨리는데 충분할 정도의 박력을 뿜고 있었다.
한차례 웃고나서 하루짱은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말을 했다.
"아아, 그러고보니 너네, 마지막 그룹이었지. 그럼 조금 게임을 해볼까"
하루짱이 원만한 동작으로 초등학생들에게 다가가자, 그녀들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한다.
그 모습을 보고, 하루짱이 그녀들에게 묻는다.
"규칙은 간단해. 한 명씩 순서대로 내 귓가에 이 그룹에서 싫어하는 사람 한 명만 가르쳐줘. 그리고, 한 번이라도 싫다는 소리를 안 들은 애만, 이 벌게임을 받을거야"
"어, 어째서 싫다고 안 들은 애가 벌게임을 받는거에요……?"
누군가가 말한 질문에 하루짱이 대답한다.
"안그래도 미움받는다고 생각할텐데, 벌게임까지 받으면 가엾잖아. ……누구에게도 밉다는 소리를 안 듣는 착한애는, 그냥 끝날거라고는 생각하지 마렴?
마지막으로 고해지는 말에 초등학생들이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 시작해볼까"
하루짱의 말에 초등학생들이 줄을 선다. 루미는 가장 뒷줄이다.
순서대로 하루짱에게 귓속말을 한다. 듣고 있는 하루짱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끄덕인다. 그것이 불안을 부추긴다.
말이 끝난 초등학생을 다른 녀석들이 수상쩍게 쳐다본다.
그렇게 점차 귓속말을 끝내고, 그걸 즐거운듯이 하루짱이 들어간다.
"헤에-. 다들, 그런 생각을 하는구나. ……정말로 너네 사이 좋은거니?"
의심쩍어하는 하루짱의 말에 초등학생들이 어깨를 떨며 서로에게 시선을 향한다.
"뭐라고 한거야……?"
"너야말로……"
서로에게 묻는 그 눈동자에는 상대에 대한 의심이 깃들어 있다.
"의심암귀네……"
유키짱이 중얼거린다. 그 옆에서 유이가하마가 걱정스러운듯 그 광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될까……"
유이가하마의 질문에 나는 눈 앞의 광경에 눈을 떼지 않은채로 천천히 대답한다.
"글쎄다. ……루미에게 달려있지 않을까"
눈 앞에는 제일 뒤쪽에 있던 루미가, 마침내 차례를 맞이한 참이었다. 루미에게 하루짱이 입을 연다.
"다음은 네 차례야. ……계속 말이 없는데, 너는 누구를 선택할거니?"
도발적인 하루짱의 질문에, 루미를 제외한 주위 녀석들이 웅성댄다.
하지만 루미 자신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루미는 천천히 하루짱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읏!?"
강렬한 섬광이 주위를 감쌌다. 동시에 연속으로 기계음이 울려퍼지며, 어둠을 칠하는 빛의 쇄류가 시야를 빼앗는다.
"뛸 수 있어? 이쪽으로 서둘러!"
빼앗긴 시야 속에서 루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후에 여러명이 달리는 발소리가 옆을 지나갔다.
"플래쉬인가"
완전히 기습이었던 탓인지 움직임이 멈춰버렸다. 스턴 그레네이드를 먹으면 이런 느낌이겠지, 라는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하루짱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엄청 잔상이 남아……아파랑"
"그에 비해선 일직선으로 나한테 오고 있잖아……"
멈출 기색이 없는 하루짱을 안아세우며 중얼거린다.
"피곤해애. 누나를 위로하렴"
응석부리듯 머리를 비벼와서 한숨을 쉬면서도 나는 하루짱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미안해, 이런 역할을 시켜서"
잠시 쓰다듬고 있으니, 하루짱은 기분이 풀린듯 미소를 지었다.
커흠, 하며 헛기침을 하면서 유키짱이 입을 연다.
"그나저나. 구했다, 는걸로 보면 될까"
"……실은 사이 좋았다거나?"
유이가하마의 말을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한다.
"누군가를 희생하지 않으면 사이 좋아지지 않는 관계가 진실된거일리가"
"그런가. 그렇구나……"
"하지만, 그래도 루미는 구하는걸 선택했어. 적어도 저 녀석은 선택은 진실된……게 아닐까"
"……응"
조용하게 유이가하마가 끄덕인다. 그걸 본 나는 셋에게 말한다.
"남은건 적당하게 해둘테니까 셋 다 돌아가도 돼. 옷 갈아입지 않으면 안 될테고"
"그래, 다 갈아입고나서 도울게"
"나도"
"누나는 쉴래……"
셋하고 헤어지고 나는 먼저 광장으로 향했다.
멀리서도 불타오르는 캠프파이어가 잘 보였다.
× × ×
거대한 불꽃을 빙글 감싸며 초등학생이 노래부른다. 나는 멀리서 멍하니 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니 마침내 포크 댄스가 시작한다. 불꽃의 기세도 있어서인지, 활기 좋게 들떠고 있었다.
하지만 루미의 그룹에 있던 애들은 다들 하나같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뭐, 그런 일도있으니 당연한가.
시선을 떼어, 불꽃을 쳐다보고 있으니 갑자기 그림자가 졌다. 올려다보니 거기에는 히라츠카 선생님이 있었다.
"유키노시타에게 일을 들었다. ……이번에는 꽤 힘들었던 모양이구나?"
"……솔직히 저흰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 아니,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요"
내 말에 히라츠카 선생님은 한숨을 쉬고 달래듯이 말을 한다.
"무얼, 담력시험 뿐만이 아니다. 임간학교라는 자리에서 다른 환경의 사람인 너희하고 만났기 때문에 얻어낸 대답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좋겠네요"
정말로, 그랬다면 좋겠네에.
히라츠카 선생님은 내 모습에 훗 웃고는 어딘가로 가버렸다.
"아, 히키가야. 이런데 있었구나"
교대하듯 오리모토가 이리로 다가왔다.
내 옆에 앉고 손에 든 캔주스를 나에게 건낸다.
"……땡큐"
"천만에"
마개를 따고 캔주스를 마신다. 탄산이 목을 타는게 기분 좋았다.
광장 중앙에 있는 캠프 파이어를 둘이서 말없이 쳐다본다. 포크 댄스를 끝내고 초등학생이 해산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바로 옆길을 학생들이 걸어간다. 시야에는 루미가 있었다. 나를 쳐다보고, 바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옆을 지나가는 순간,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잊지 않을거야"
그 말은 내 가슴에 슥 녹아들었다, 는 기분이 든다. 잊지 않을거야, 라…….
"잘 됐지 않아?"
오리모토가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나는 조금 쓴웃음을 지으면서 끄덕였다.
그 반응을 보고 만족한 오리모토였지만, 캔주스 마시는걸 쳐다보면서 조심조심 입을 열었다.
"저기 말야. 왜 내가 너를 찼는지 알아?"
"어?"
예상외의 질문이라서 무심코 되묻는다. 그런건 하나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나한테 정떨어져서 그런거 아냐?"
내 물음에 오리모토가 고개를 저었다.
"너 말야, 그 때.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어"
"다른 사람……?"
"그래, 네 여기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그 여자를 용서할 수 없어서. 너까지 싫어하게 될것 같아서 헤어졌어"
오리모토가 내 가슴팍을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말을 잇는다. 나는 오리모토에게 누군가를 겹쳤다고……?
"……뭐, 지금은 제대로 나를 나로서 봐주는것 같으니까, 만나서 안심했어"
"당연하지. 당연하지만………………미안하다"
중학교 시절엔 그 당연한것 조차 못했다면. 나는 오리모토에게 어떻게 속죄해야할지 모르겠다.
오리모토는 일어서서 크게 기지개를 하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본다.
"됐어. 하지만, 하나만 가르쳐줄게"
"……뭘?"
오리모토는 조금 볼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를 사귀기 전부터 보고 있었어"
나는 그걸 듣고, 갑자기 중학교 시절에 오리모토에게 고백받은걸 떠올렸다.
『히, 히키가야. 나, 나랑……사귀어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는 왼손 브레이슬렛을 문지르면서 대답을 한다.
"찬 후에도 보고 있던것 같은데 말이지?"
"그, 그거 지금 말하지마아!? 스토커 같잖아!"
황급히 태도를 바꾸는 오리모토를 보고 나는 웃는다.
"후, 하하하하핫!"
이끌려서 웃는 오리모토의 이마에, 내가 옛날에 선물한 머리장식이 흔들리고 있었다.
⑦그리고, 유키노시타 자매를 태운 차는 달려간다.
돌아가는 차 안에선 다들 조용해져있었다.
뒷좌석은 전멸이다. 출발하고나서 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전부 잠에 빠졌다. 엄청 자동차 여행답다.
"히키가야, 너도 자도 되는데?"
히라츠카 선생님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만, 나는 꾸벅거리면서도 대답한다.
"어차피 집에서 잘거니까요. 거기다, 선생님 쓸쓸하잖아요?"
"히, 히키가야……"
어째선지 선생님이 감동하고 있었다. 뭐, 차로 배웅해주는 사실에 변함은 없으니까. 정말 사소한 마음 뿐이다.
거기다, 치바 마을에서 카이힌 종합 사람들이랑 헤어질때도 있었다.
헤어질때, 오리모토가 이런 말을 한 것이다.
『히키가야. 문화제때 소부로 놀러갈게』
『그런가, 그럼 기다릴게』
내 말에 오리모토는 씩 웃고 갑자기 멱살을 잡고 나를 안았다.
『읏!?』
주위가 놀라는 가운데, 오리모토가 나에게 귓속말을 한다.
『페리도트의 돌말, 어차피 알고 있지? ……뭐, 그런거야』
팟, 하며 나를 놓고 오리모토는 유키짱을 빤히 쳐다봤다.
『………………안 질꺼다?』
『………………바라던 바야』
두 사람의 시선이 격돌한다. 나는 잘 몰라서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거 뭐였던걸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어째선지 노려보고. 뭐, 됐어.
"그보다, 어디에 내릴건가요?"
"학교로 하려고 생각한다. 역시 한명한명 집까지 보내주는건 고생할테니 말이다"
"그거면 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도 피곤할테고, 집에 돌아가서 맥주라도 마시고 주무세요.
"……그나저나, 이번에는 꽤나 볼게 있었구나. 설마 불안해하는 히키가야를 볼 수 있을줄은 생각 몰랐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의외라는듯 입을 열었다. 루미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만, 나 그렇게나 평소에 표표했던가아?
나는 뒷좌석에서 인형처럼 조용히 잠든 소녀를 거울너머로 쳐다보면서 대답한다.
"뭐어, 그런 일도 있어요. 인간인걸요"
"……그런가. 어쨌든간에 고생많았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한 손으로 핸들 조작을 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상당히 부끄럽다.
"선생님, 부끄러우니까 그만두세요"
"부끄럼마 부끄럼마"
"누나동생으로 보면 상당히 나이가 떨어지니까 누가 보기라도 하면"
"자라"
수도를 목에 얻어맞고 나는 의식이 날아갔다.
× × ×
"히키가야, 도착했다. 일어나거라"
"음……"
덜컹덜컹 거칠게 흔들어서 깨워지자,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시계를 보니 딱 점심때였다. 선생님의 선명한 수도로 인해 자다 일어난건 개운했다.
밖으로 나오니 뜨듯한 한여름의 열기가 피부를 감돈다. 도로를 쳐다보니 각각 기지개를 피거나, 하품을 하는등 여러 반응이었다. 원박스 카에서 짐을 내려 돌아갈 준비를 한다.
잊은 물건은 없는지 체크를 하고, 왠지 모르게 정렬을 했다. 히라츠카 선생님이 그걸 만족스럽게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다들 수고 많았다. 집에 돌아갈때까지가 합숙이다. 돌아갈때도 조심하도록. 그럼 해산"
우쭐댄 얼굴로 말하는 점에서, 계속 이걸 하고 싶었던 걸테지. 이상한데서 소년답다.
코마치와 돌아가는 법을 상담하고 있으니 유키노시타 자매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미안, 핫짱. 우리는 여기까지야"
여기까지, 라는건 무슨소리야 라고 생각하고 있더니, 칠흑의 승용차가 종요한 기동음으로 우리들의 눈 앞에 가로섰다.
"맞이인가……집에 돌아가는거야?"
――――――――――그 집에.
그런 나의 질문에 유키짱이 조용히 끄덕인다.
"……그래"
"응, 그러니까 미안해?"
하루짱이 양손을 모아 미안하다는 포즈를 하고, 둘은 승용차에 올라탄다.
"츠즈기, 출발해줘. ……또 봐, 핫짱! 코마치랑 가하마도!"
"……………하치군"
유키짱이 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창문이 닫혀 흐림방지 창에 그 모습이 감추어진다.
유키노시타 자매를 태운 차가 다시 조용한 기동음을 내며 그 자리를 떠난다.
"가버렷네"
"그렇군"
유이가하마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겨우 떠오른 기억을 되짚어본다.
―――――――――그 사람을 만나는거군.
주먹을 굳게 움켜쥔 탓에 등이 떨렸다.
그 여름방학, 나와 유키짱이 다시 만나는 일은 없었다.
①히키가야 하치만은 혼자, 비에 젖는다.
눈 앞에 묘령의 여성이 서 있다. 『나』는 그 여인을 그저 올려다보고 있다.
『―――네가――라도――――그――는――갈――수 있어――――』
여성이 나에게 말했다. 처음에는 의미를 몰랐다.
『―――너는――그 아이에게는―――필요――없어――――』
여인이 거듭 말했다. 거기서 나는 깨닫는다. 깨닫고 말았다.
나 자신이 그녀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것을.
그렇게나, 확인했었는데.
단 한 명의 친구조차 믿을 수 없는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이런 나 자신따윈, 어떻게든 되버리면 좋을텐데.
"윽!"
뛰쳐일어나듯 일어났다. 전신에서 땀이 분출한다. 이마에서 흘러떨어지는 땀방울을 손으로 닦는다.
"………………생각났다"
……………왜, 지금까지 떠올리지 못했던건지도, 전부.
오늘부터 또 학교가 시작된다.
임간학교가 끝나고 여름방학은 느긋하게 흘러갔지만. 쫄래쫄래 사소한 사건이 생긴 것이다.
……유이가하마하고 불꽃놀이 대회를 보러 갔다거나. 그랬더니 하루짱이랑 마주쳐서 큰일이 일어났다거나. 아, 생각해보니 위가 아파졌다……가스터10, 사용상 주의를 잘 읽고 용법용량을 지켜서 올바르게 복용해야지. 그 CM 엄청 인상적이지.
뭐, 됐다. 그런고로 오랜만에 자전거로 달리는 통학길은 여름방학전과 다를바 없이 복잡하고, 학교가 가까워질때마다 떠들썩한 소음이 늘어간다. 여름방학 개학에서 쌓인 이야기가 있는건지, 모두 다 느릿한 발걸음이었다.
나는 역시 1년 이상이나 이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아는 얼굴도 하나 둘은 아니다. 하지만 그쪽에서 나를 알고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뭐야 그 짝사랑같은 느낌. 여기부터는 일방통행이다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자전거를 밟고 있으니 카와사키를 발견한다. 카와사키는 여름방학에 뭘 하고 있었을까. 검은 레이스 말고 바리에이션이 늘었을까. 붉은 레이스였으면 하치만 어떻게 되버릴거다.
카와사키에게 어울리는 팬티를 진지하게 고찰하면서 복도를 걷는다. 고등학교 생활의 반을 낭비해서 마침내 익숙해진 광경.
하지만 조만간 이런 광경도 잊고말 것이다. 그런 그을린 시야 속에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모습을 발견했다
유리창이 달린 계단에 태양빛이 비쳐드는 열기가 오르는 가운데 늠름한 분위기를 뿜는 여자애.
――유키짱이었다.
계단을 오르고 있으니 내 기척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돌아본다.
"……오랜만"
"어"
내가 쫓아갈때까지 유키짱이 조금 멈춰서서 기다린다.
둘이서 나란히 계단을 오른다. 옆을 돌아보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언니랑 만난 모양이네. …………………………………………유이가하마랑 데이트 하고 있을때"
엄청난 미소로 질문을 받았지만 전혀 밝은 분위기가 아니다. 식은땀이 흐른다.
"아아, 우연히 말야"
"……유이가하마하고도?"
"……………………아아, 우연히 말야"
삐친듯한 말투의 질문에 나는 반복 대답을 한다. 그치만 정말로 우연히 만난거였는걸!
정신을 차리니 계단은 끝나고, 2학년 교실로 이어지는 복도로 나왔다.
"……그런걸로 해줄게"
아직 삐친 얼굴로 유키짱이 말한다. 아니, 정말로 우연히 알알이하게 만났니까? 오히려 리프 돌을 써서 낫시로 진화시키기 까지 한다.
"부활동, 오늘부터 시작할거야?"
내 질문에 마지못한 느낌으로 유키짱이 대답한다.
"그, 그래. 그럴 생각인데……"
"알았어, 나중에 봐, 유키짱"
――나는 이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던걸까.
유키짱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던게 인상적이었다.
× × ×
방과후, 부활동 시간이 됐다. 평소 멤버랑 대화를 하고 있던 유이가하마를 두고 교실을 나오자, 달리는듯한 발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좀! 왜 먼저 가는거야!"
머리 나빠보이는 목소리와 함꼐 유이가하마가 내 옆에 선다.
"그치만 너, 그 녀석들이랑 대화하고 있었잖아. 기다릴까보냐"
내 말에 유이가하마가 윽, 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하지만"
유이가하마가 조금 슬프다는듯 입을 연다. 나는 한숨을 쉬고 조금 빨리 걸으면서 말한다.
"뭐, 내키면 기다려주마"
"자, 잘났다는듯 말하지 말기!"
뿡뿡 화내면서 유이가하마가 나를 따라간다. 그나저나 그 머리 나빠보이는 어미는 어떻게 안 되는거냐. 말기니 없기니 기를 붙이고 있는데 말야.
부실에 도착해서 문을 여니, 거기에는 이미 유키짱이 독서를 시작하고 있었다.
"여어"
"얏하로-!"
유키짱은 우리에게 눈을 돌리고 살짝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래, 안녕"
우리는 평소 앉던 자리에 가서 평소대로 나는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그러자 시야 구석에 흔들리는것을 깨닫는다.
쳐다보니 커튼이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약간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불어들어오는 모양이다.
책을 꺼내어 독서를 하고 있으니, 역시 흔들거리는 커튼이 시야에 들어온다. 별로 신경쓰지 않아서 독서로 돌아갔다.
차분한 시간이 흘러간다. 문득 유키짱을 쳐다보니, 커튼 따위를 신경쓰지도 않고 독서에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창을 등지고 있어서 신경 안 쓰인걸지도 모른다.
어지간히도 쳐다보고 있었는지, 유키짱이 거북하다는듯 안절부절거리기 시작한다.
"……뭐니?"
"아, 아니. 딱히……"
라고는 해도, 오늘 아침에 꾼 꿈탓에 이상하게도 유키짱을 신경쓰고 마는건 사실이었다.
"………………"
……어떤 표정을 짓고 나는 이 애를 만나고 있는걸까. 어두컴컴한 감정이 마음을 물들이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갑자기 유키짱이 일어나서 나에게 다가왔다. 나를 내려다보면서 유키짱이 기분나쁘다는 얼굴로 입을 연다.
"――그 눈동자 뭐니. 뭐 하고 싶은 말이 있는거 아니야?"
"……딱히, 그런건"
"히키가야!"
고개를 돌리면서 대답하니,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유키짱에게 양 볼을 잡혔다.
"정말로 왜 그래? ……전에 말했던거 벌써 잊었어?"
유키짱이 슬프게 말을 잇는다. 나는 임간학교때 들은 말을 떠올렸다.
『너는 늘 우리를 지켜줘. 우리도, 하치군의 힘이 되고 싶단다?』
『그러니까. 정말로 힘들때. 혼자선 도저히 어찌할 수 없었을때. 우리를 의지해줬으면 좋겠어. 부탁이야, 하치군……』
하지만, 이건……얘기할 수 없잖아. 유키짱을 믿을 수 없었다, 라고. 본인에게 말을 할 수 있을리 없잖아.
나는 유키짱의 손을 쥐고 대답한다.
"……괜찮아. 미안해, 걱정 끼쳐서"
"…………………………하치군"
또 유키짱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걸까. 나 자신은 모른다.
부실 안이 조용해졌다. 어느샌가 유리창이 삐걱삐걱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고보니 뉴스에서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던가.
유이가하마를 보니 시선을 밖으로 주면서 대화의 물꼬리를 찾고 있는 모양이다.
"태, 태풍 다가오고 있다고 하구. 본격적으로 위험해지겠네. 케이요센 멈추면 유키농 못 돌아가지?"
유이가하마의 질문에 허를 찔린 유키짱은 무언가를 뿌리치듯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유이가하마를 돌아봤다.
"읏! 그, 그렇구나……하지만 괜찮아. 그 때는 걸어서 돌아갈테니까"
"그, 그런가. 못 걸을 거리는 아닌걸"
학교에서 유키짱이 사는 가장 가까운 역까지는 두 역. 못 걸을 거리가 아닌건 확실하다.
유이가하마가 나한테 말을 걸려고 했을 때, 갑자기 부실 문이 드르륵 열렸다.
"너네 아직 있었느냐"
또 노크도 하지 않고 고문인 히라츠카 선생님이 들어왔다.
"벌써 다른 부활동도 마쳤다. 심해지기 전에 돌아가거라"
그 말을 시작으로 유키짱이 자리로 돌아가 준비를 시작한다.
"――오늘은 이만 끝내자"
비구름도 다가오는 탓에 부실 안은 어둡다. 유키짱의 표정에도 그림자가 드리운것 처럼 보였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순간 유키짱을 봤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갔다. 우리도 돌아갈 준비를 시작한다.
준비를 마치고 다 같이 부실을 나왔지만, 앞에 있던 유키짱이 뒤돌아서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열쇠를 반납하고 갈게"
인기척이 없는 복도를 그저 조용히 걸어간다. 나와 유이가하마는 배웅하지 않고 승강구로 향해갔다.
가던 도중에 유이가하마가 나에게 물어온다.
"힛키, 무슨 일 있었어?"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준비한건 아니다.
"……나는 자전거니까 먼저 갈게"
"아, 힛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유이가하마를 두고 그 자리를 떠난다. 유이가하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바람이 습기를 머금어서 기분 나쁘다. 걷히면 좋을텐데, 라고 나는 생각했다.
× × ×
"다녀왔어-……"
"어서와, 오빠……앗, 흠뻑 젖었잖아!"
집의 현관문을 열고 맞이해준건 동생 코마치였다. 하지만 코마치는 내 상태에 놀라면서 일단 거실로 들어가 나에게 수건을 던져줬다.
"자, 얼른 닦아!"
"……땡큐"
그렇게 말하고 나는 머리를 닦기 시작한다. 라고는해도 이미 물에 빠진 생쥐꼴인 나는 수건도 별로 의미가 없다.
자전거로 귀가한 나였지만, 중간부터 비가 내리고, 게다가 강풍으로 꺼냈던 우산도 순살, 이라는 상태가 되어서 아무튼 급하게 돌아왔다.
초가을에 접어든 탓도 있어서 아무튼 추웠다.
"목욕을 받아뒀어?"
"응, 먼저 들어가"
내 물음에 빠르게 대답한 코마치의 얼굴을 쓰다듬고 나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정성껏 발을 닦고나서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
옷을 난잡하게 벗고 욕실로 들어가서 뜨거운 샤워물을 전신에 끼얹는다. 차가운 몸이 서서히 열을 띤다.
부실에서 본 유키짱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또 슬프게 만들었나.
그럼 어떻게 하면 좋았던걸까.
"………………교복, 말릴까"
내 중얼거림은 샤워소리로 지워졌다.
②시로메구리 메구리는 믿을 수 없는 제안을 한다.
태풍의 영향으로 학교 쉰다고 생각했더니, 전혀 그런 일은 없었다. 어젯밤에 지나가버렸어, 그 녀석. 그래선 자이모쿠자가 태풍 속에서 빛날 수 없잖아.
아침에는 평소대로라고 할까. 태풍이 비구름을 몰고간 탓에 굴므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 됐다. 저 바다- 어디까지라도-, 안 돼 안 돼. 아침부터 소리내어 울어버린다.
어제 일을 질질 끌던 탓에 크게 잠들지도 못해서 대신에, 라며 독서에 빠져서 그만 밤샘을 해버렸다. 있는대로 수면 부족이다. 이상야릇 ED냐.
하품을 하면서 황급히 집을 나온것도 있어선지, 어떻게든 학교에 늦지는 않았지만 수마가 끊임없이 나를 덮쳤다. 평소 쉬는 시간에는 자기 자리에서 엎드려 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졸렸다.
수업중에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수마와 싸우고 있던 것이다. 수마 따위에겐 절대로 지지 않아! 이렇게 말하면 멋있게 들리지만, 베스트한 포지션을 모색하는 부분에서 완전패배라고 해도 좋았다. 역시 수마에는 이길 수 없었어…….
라고는 해도 이런 얕은 수면으로는 졸음은 완전히 떨어지지 않아, 몸의 나른함은 절정에 달하고 있었다. 역시 누워서 자지 않으면 안 된다, 잔 느낌이 안 들어.
그렇게 되면 갈 곳은 정해져있다. 일어서서 휘청거리면서 교실 뒷문을 열고 나간다. 하지만 문을 연 순간 남과 부딪쳐버렸다.
"꺅!"
"읏, 미안"
가슴팍에 충격을 받고, 반사적으로 껴안았다. 이런이런, 수면부족으로 판단능력도 크게 감퇴한 모양이다. 지금이라면 수상쩍은 서류에 도장을 찍어버릴지도 모른다. 보따리 판매당한다거나. 그거 아버지야.
시선을 아래로 향해 부딪친 사람을 확인하니 나를 올려보고 있던건 카와사키였다.
"아, 히키가야……"
"미안, 멍때리고 있었어"
나는 카와사키를 풀어주고, 카와사키는 고개를 홱 돌리면서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따, 딱히 나도 잘 보지 않았니까 됐어. 라고할까, 벌써 다음 시간인데?"
"좀 갈데가 있어"
내 말에 카와사키가 수상쩍은 눈빛으로 나를 쏘아본다. 아, 그러고보니 이 녀석도 외톨이니까 행동패턴은 읽히는건가. 수업을 빼먹고 보건실에서 잔다, 라고 바로 생각이 들겠지.
"……다음 시간, 문화제 역할분담을 정하는 모양인데"
"그러고보니 그랬나"
전날 LHR에선 제재까지 밖에 정하지 못했던가. 부녀자- 인 에비나의 단독무대로 변했지만. 부녀자- 는 뭘 푸샥- 하는걸까. 에비나는 코피 푸샥- 했지. ……깊게 생각하는건 치우자.
"……뭐, 아무래도 좋아"
어차피 뭘 해도 변함 없을테니까.
"알았어"
카와사키는 내 한마디로 무슨 의도인지 눈치챈 모양이다. 과연 외톨이 동료. 요즘 나 외톨이를 자청하는게 수상쩍은데.
잘 부탁해, 라며 손을 흔들고 나는 교실을 나갔다.
× × ×
뭐……라고…….
쉬는시간 끝. 교실로 돌아오니, 문화제 실행위원이 되어 있었다. 칠판에는 '히키가야'라는 글자가. 어, 어째서…….
화, 확실히 나는 뭐든 좋다고 했다고? 딱히 뭘시키든 변함없이 담담히 작업을 해낼거라고?
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지 않다고 밀어붙이다니이, 아무리 그래도 예상외였어. 그치만 나, 그런거 밀어붙이는 역할인 미우라조차 언급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고.
주위를 돌아보자 카와사키와 눈이 마주쳤다. 잘도 속였겠다아아아아!! 속였겠다아아아아아아!! 라는 뜻을 담아서 쳐다보니, 카와사키는 어색하다는듯 고개를 홱 돌리면서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카와사키가 가리킨 방향을 보니 거기에는 낯이 익은 아라사가.
"설명이……필요하냐?"
내가 대답을 할것까지도 없이, 히라츠카 선생님이 멋대로 설명해줬다.
"벌써 다음 수업을 해야하는데, 아직 위원을 누가 할지 꾸물거리고 있어서 말이다. 그래서 히키가야로 해뒀다"
"제 의사는 어디 갔습니까……"
내 말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아니, 확인할까 생각했거든? 뭐든지 좋다고 한건 너잖아?"
끄으윽, 하며 한숨을 쉬고 카와사키에게 시선을 주니 눈이 마주친 순간 피해버렸다. 뭐, 말한건 나니까 자업자득이지만! 젠장, 다음에 옥상에서 만났을때 치마 속을 쳐다봐주마! 절대로, 절대로다!!
"됐으니까 자리 앉아라. 수업을 시작 못하잖느냐"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이마를 맞으면서 나는 마지못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 × ×
방과후, 나는 실행위원회에 참가하기 위해 회의실로 향했다.
가던 도중에 아까전 교실에서 하고 있던 홈룸을 생각한다. 여자 실행위원만 정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결국 옥신각신 끝에 사가미 미나미라는 여학생이 실행위원을 하게 됐다.
나의 인간관측에 따르면 그녀는 교실 내의 카스트에서는 넘버2 그룹에 속하고 있다. 라고할까 리더인 모양이다. 나와 접점은 물론 전혀 없다. 그저 여름방학때 유이가하마과 불꽃놀이 대회에 갔을때, 우리는 그녀와 마주쳤다. 별로 좋은 인상은 없는데 말이야. 평가 당했고.
회의실에 들어가보니 아직 반 정도밖에 모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가미도 그 중에 있어서, 셋 정도 뭉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라고할까, 윳코도 위원이라서다행이야-. 나, 왠지 위원으로 뽑혀버려서 어떻게 할까 생각했어-"
"나도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걸렸어-"
"나도야-. 아, 사가미, 미나미라고 불러도 돼?"
"괜찮아 괜찮아-. 나는 뭐라고 부르면 돼?"
"하루카면 돼-"
……커뮤력 쩌는데. 순식간에 커뮤니티가 완성됐어.
뭐, 아무래도 좋나. 라고 생각해 자리에 앉으니 점점 사람이 늘어간다. 다들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문으로 시선을 주고, 아니라는걸 알고 일제히 시선을 돌린다. 그런 공방이 잠시 이어졌다.
하지만 다음으로 들어온 인간에 대해선 전혀 반응이 달랐다. 문을 연 순간, 소란스러운 잡담도 순간 멎었다.
정적 속에서 그 소녀――유키짱은 발소리도 내지 않고 걷는다. 그녀는 내 모습을 보고 순간 발을 멈췄지만, 바로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가까운 공석에 앉는다.
……뭐어, 어제 오늘이니까. 나도 어색하던 차라 마침 잘 됐다. 시계를 보니 곧 개시시각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회의실 문이 또 열리고, 프린터물을 안은 연대감이 있는 몇 명의 학생들과 체육교사 아츠키 선생님, 히라츠카 선생님이 들어왔다.
음, 히라츠카 선생님……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히라츠카 선생님은 나를 향해 생긋 미소를 지었다. 과연, 나는 함정에 빠진건가…….
"그럼 문화제 실행 위원회를 시작합니다-"
귀여운 목소리가 울린다. 쳐다보니 앞머리를 머리핀으로 고정하고, 교칙대로 차려입고 있지만, 딱딱한 인상을 주지 않는 여학생이었다. 뭐라고 할까, 흔들폭신계열이라는 느낌인가?
"학생회장인 시로메구리에요. 여러분의 협력으로 올해도 무사히 문화제를 개최할 수 있는게 기쁩니다. ……그러니까. 다, 다같이 힘냅시다! 오-!"
메구리 선배가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 학생회 멤버가 바로 박수를 치고, 그에 잇따르듯 회의실 내에서 박수가 일어났다. 그걸 보고 메구리 선배가 응응 하며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실행위원장 선출을 해볼까요"
그 말에 주위가 웅성거렸다. 나도 조금 놀랬다. 순전히 학생회장이 실행위원장을 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년 문화제 실행위원장은 2학년이 하게 됐어. 나는 이제 3학년이니까"
과연. 듣고보니 3학년 가을초니까 이런걸 하고 있을 순 없지. 수험도 대비해야하니까.
"그럼 누구 입후보 할래요?"
그 말에 전혀 손이 오르지 않는다. 뭐, 무리도 아니지만.
그 후에 잠시 거수가 없는 상태가 이어져서, 기다리다 지쳤는지 아츠키가 입을 열었다.
"뭐냐 너희. 좀더 의욕을 내라. 패기가 부족하잖아, 패기가. 알겠느냐, 문화제는 너희들 자신의 이벤트다"
쓸데없이 답답한 소리를 하면서 아츠키가 주위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 배려하나 없는 시선이 유키짱에서 멈췄다.
"오. 너 유키노시타의 동생인가. 그 때처럼 문화제를 기대할 수 있겠네"
의외로 위원장을 추장하는것처럼 들리는 말에, 메구리 선배도 『아, 하루 선배의 동생이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짱이라아. 역시 교사나 선배들에게 선명한 인상을 준것 같다. 역시 강화외골격, 이쪽에도 응격 준비 있음인가.
"……실행위원으로서 선처하겠습니다"
유키짱도 의례적인 대답을 하지만, 살짝 눈썹이 움직이는 점을 보건데 기분나쁘다는건 보였다. 그 반응에 아츠키도 적당하게 대답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메구리 선배도 여기서 곤란해져버렸지만, 역시 유키짱이 해줬으면 싶은 모양이다. 빤히, 그 더러움이 없는 눈동자를 유키짱에게 향하고 있다.
유키짱은 거북한지 몸을 뒤척이고 이다. 아니, 그 귀여운 눈동자로 쳐다보면 힘들겠지. 나였으면 2초만에 함락될 자신이――.
"읏!"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유키짱이 째릿 노려봤다. 아니, 그러니까 왜 아는거야?
"너는……?"
유키짱의 시선을 깨달았는지 메구리 선배가 나에게 묻는다. 하는 수 없이 자기소개를 하기로 했다.
"……2학년 F반, 히키가야 하치만입니다"
"하치, 만…………………앗, 이 애는 하루 선배의……"
뭐야, 메구리 선배의 안에서 무언가가 이어진것 같은데? 왠지 엄청 불길한 흐름을 느낀다.
메구리 선배가 손을 탁 치면서 미소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히키가야. 안 될까나아……?"
"――――윽!"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귀엽게 묻는 모습에, 나는 거절할 방법을 몰랐다――――――.
× × ×
"지, 지쳤다……"
나는 부실에서 지쳐서 책상에 엎어졌다. 싫다-, 진짜 무리. 죽을것 같아.
"…………"
나의 중얼거림에 유키짱은 빤히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진짜 가땅치 않은 이야기지만. 나는 실행위원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개를 돌리며 어깨를 떨면서 웃는 히라츠카 선생님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유키짱조차 아연해하고 있었다.
정해진건 백보양보해서 좋다고 치자. 하지만, 원래 별로 남들 앞에서 서지 않는 나라서, 회의 진행을 바톤 터치 됐을때는 죽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진짜로.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는 대충 떠오르지만, 말이 나오지 않아, 보다 못한 메구리 선배가 구명줄을 보내줄때까지 지장처럼 되어 있었다. 후반은 겨우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게 됐지만, 미래가 걱정된다.
"그치만, 힛키가 실행위원장이라니, 아무도 예상 못했을거야. 우리반 애들도 다들 놀랄거야"
유이가하마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한다. 그런건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어.
문제는 산더미다. 유키짱도 있고……일단, 사무적으로 대하면 괜찮을거라고 생각하지만.
"할 수 있는건 해봐야지"
"……그러니"
내 말에 유키짱이 짧게 대답한다.
그 광경을 유이가하마가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막간.
히키가야가 부실에서 나간 후, 나는 유이가하마와 단 둘이 있게 됐다.
유이가하마는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잠시 그 상황이 이어졌지만, 마음을 먹었는지 유이가하마가 입을 열었다.
"유키농, 약속해줬으면 좋겠어"
"……뭐니"
내가 물어보니 유이가하마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렇게 말했다.
"힛키를 지켜줘"
유이가하마의 말에, 내 마음이 웅성거리는걸 자각했다.
어제 일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대체 왜 그런걸까. 임간학교 때, 확실히 우리는 서로 통했다고 생각했다. 내 부탁을 들어줬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마음을 모르겠다. 본심인건지,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건지.
――왜, 그렇게 모든걸 깨달은듯한, 체념한걸로 보이는 미소를. 나에게 지었는지.
"하지만, 히키가야가 그걸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잖아……"
나의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정말로 모르겠다.
"……읏"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뺨을 적시고 있었다. 이건 무슨 눈물인걸까. 스스로도 모르는 상태로, 눈동자에서 흘러넘치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유키농"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옷이 젖는걸 신경쓰지 않고, 다정하게 나를 껴안아줬다.
"괜찮아. 왜냐면――――――――"
유이가하마, 말을 들려주듯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③몇 번이라도 유키노시타 하루노는 강습한다.
문화제 실행 위원이 되어 유일하게 좋았다, 라고 생각한 일이 있었다.
그건 교실 상연물인 연극 『어린왕자』의 주역으로 하마터면 캐스팅될뻔한 점을, 문화제 실행위원을 구실로 피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감독, 연출, 각본 모두가 에비나 라는 포커로 말하자면 파이브 카드에 반칙 상태다. 그야 켄자키도 조커도 되버린다. 거기다 말하자면 에비나의 제작인 이상, 확실하게 『어린왕자』가 『어린왕자♂』가 되어버리니까. 캐스팅 된 녀석이 가엾다.
특히 토츠카라던가! 하지만 토츠카의 어린왕자 역할은 너무나 딱 맞아서 오히려 내가 『나』역할로 나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 안한것도 아니지만 이미 거절해버린 뒤라서 새삼 말하기 어려운데다 가령말을 한다 한들 당초의 예정대로 왕자역할이 하야마로 돌아가버릴 가능성도 없는게 아니라, 결국 현상유지가 제일 안전하다는 결론에 도달해버려서 나는 굉장히 난처하고 있는것이다. ……후우. 조금 착란해버렸다.
그런고로 나는, 위원회가 시작할때까지 조금 시간이 있어서 부실에 들르기로 했다.
……아직 유키짱과 만나기 힘들지만, 그걸 이유로 부실에 안 가게 되는건 단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어"
부실에 들어가자 평소처럼 유키짱이 독서에 빠져있었다. 그녀는 잠시 나를 보고, 다시 독서로 돌아간다. ……인사도 해주지 않나.
어쩔 수 없다, 라며 체념하면서 나는 늘 앉는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조용한 시간이 실내에 깃든다. 들려오는건 페이지를 넘기는 소리 뿐.
"……저기, 부활동 말인데"
정적을 깨듯 유키짱이 입을 열었다. 내가 책을 덮고 유키짱에게 고개를 돌리니 그녀는 말을 계속한다.
"한동안 문화제 실행위원 일도 있으니까 부활동을 쉬려고 생각해"
"그런가. 나도 문화제 실질회의가 있으니까 참가 못할것 같고. 유이가하마도 교실 상연물이 있으니까, 아마 무리일테지"
내 말에 『그래』라고만 대답하고, 유키짱이 책을 탁 덮고 준비를 시작했다.
"슬슬 시간이야. 가자"
시계를 보니 확실히 그런 시간이었다. 벌써 그런 시간인가……엄청 가고 싶지 않네. 가고 싶지 않지만, 갈 수 밖에 없네에……나도 책을 가방에 집어 넣고 준비를 한다.
뭐, 일이니까 해야지요. 하치냥 할짝할짝. ……어쩌지, 엄청 기분 나빠.
텐션이 떨어지면서 나는 회의실로 향했다.
× × ×
"유키노시타가 부위원장을 맡는다는건 어때?"
폭신폭신한 목소리로 난데없이 메구리 선배가 제안했다. 확실히 유키짱의 능력을 돌아보면, 무슨 역직에 오르는건 전혀 이상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지금 현재 나의 개인 사정을 제외하면 이 이상의 적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일을 하게 되면 사무적으로 접하는 일도 생길테고,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네요. 유키노시타가 부위원장이라면 든든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니, 유키짱의 볼이 살짝 빨개진 느낌이 들었다. 뿌리치듯 헛기침을 콜록, 한번 하고 유키짱이 메구리 선배에게 말했다.
"……저도 딱히 문제 없어요"
그걸 듣고 메구리 선배가 미소를 짓는다. 엄청 귀엽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유키짱이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그런가아. 그럼 유키노시타가 부위원장에 취임하는데 반대의견이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주세요-"
메구리 선배가 회의실의 모두에게 물어보지만, 아무도 거수를 하지 않는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없었다.
"결정이지?"
메구리 선배의 한 마디로 유키짱이 문화제 실행위원 부위원장에 취임하는게 정해졌다.
"그럼 이야기가 종합됐으니까. 진행합니다"
내 선언에 메구리 선배가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그 반응을 쳐다보고 나는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을 한다.
"이건……?"
"다시짠 스케줄표. 전기줄표 긋듯이 만들어둿어"
유키짱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나도 제대로 생각한다고.
그 스케줄표를 관계명소에 전달해간다. 다 전달하고, 나는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을 한다.
"저번에 짜낸 작업을 토대로, 스케줄표를 다시 썼습니다. 이 스케줄대로 진행하겠습니다. 단, 문화제 실질쪽에 도무지 참가할 수 없는 날은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각 부서의 대표자가 일정을 써서 위원장, 혹은 부위원장에게 제출해주세요"
내 발언에 모두 웅성대기 시작한다. 이런 조금 횡포였나? 그렇게 생각하니 옆에서 유키짱이 첨가했다.
"스케줄 말인데요, 작업해봐도 명백하게 시간이 부족할것 같은 경우에는 이쪽에 상담을 해주세요. 그리고 작업이 빨리 끝난 부서는 다른 부서를 도울 수 있도록 해주세요. 스케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의외로 빡빡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협력하는걸로 무리없이 끝낼 수 있어요"
유키짱의 말에 모두가 조용해진다. 거기에 내가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잘 부탁합니다"
나는 반쯤 간원같은 말로 끝내자 모두 마지못한 느낌으로 끄덕였다.
그리고나서 본격적으로 문화제 실질 활동을 개시했다.
나날히 보도대는 일보를 보면서, 지연 확인을 한다. 지금은 지연없이 나아가 척척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유키짱과 분담해서 처리를 해간다.
라고는 해도, 나는 스케줄링을 하는게 고작이라서, 대부분 처리는 유키짱에 의한 점이 크다. 제안내용이 구체적이어서 예를 들면 유지단체가 모이지 않아 곤란해하는 유지통제에 대해서 지역상을 창설, 상품을 거는것을 제안한 것은 곤란했다. 나는 멍하니 미끼로 낚을 수 없나, 정도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키짱에게 다 떠넘겨선 의미가 없다. 가능한 부담을 주지 않도록 나도 힘냈다.
그리고, 몇 번째로 시작하는 정례 미팅. 정각대로 오후 4시에 회의실에 문화제 실질 멤버가 모인다.
"그럼 정례 미팅을 시작합니다"
내가 호령을 하자 각각 대답을 하며 인사를 했다.
우선 각부서의 보고사항부터다.
"선전확보 부탁합니다"
담당부장이 일어서서 진보상호아을 보고한다. 게시예정의 7할을 소화, 포스터 제작은 반쯤 정도 끝났다고 보고했다.
일단 예정대로긴 하지만 뭔가가 걸린다. 아마, 이래선 조금 늦을 것이다.
"……스케줄대로 하고 있는데 미안하지만, 조금 더 빨리 할 수 없습니까?"
나의 물음에 담당부장이 의아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어째서냐고 물으면 좀 그런데. 감각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말을 주저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유키짱이 말을 이었다.
"……문화제는 3주후. 내객이 스케줄 조정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이 시점에서 이미 완료하지 않으면 안 될겁니다. 그리고 게시개소의 교섭, HP의 업로드는 이미 끝나있나요?"
유키짱의 질문에 담당부장은 아직이라고 대답했다. 나는 표정으로 나오지 않도록, 내심 납득한다. 위화감의 정체는 이건가.
……흐릿하게 떠올라서는 안 되겠군. 유키짱은 대단한데. 이런 상세한 점까지 생각을 할 수 있다.
갑자기, 기억 속에서 여성이 입을 연다.
『――――그 아이에게――너는――필요――――없어――――』
그만. 이럴때 나오지 마……!
"…………………읏!"
미간을 누르고 있으니 갑자기 유키짱이 나를 이상하다는듯 쳐다보고 있다는걸 눈치챘다.
"……히키가야?"
"읏, 미안. ……다음 유지통제, 부탁합니다"
나는 마음을 도로 먹고 말을 하니, 유지담당이 일이서서 상황을 보고했다.
보고를 들으니, 유지참가 단체는 10단체인 모양이지만, 비교대상이 없어서 많은건지 적은건지 모르겠다.
"그거, 교내 뿐인가요? 교내뿐이라면 지역 곳곳에……특히 작년에 참가했던 곳에 연락해주세요"
내 말에 유키짱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작년, 지역과 연관성이라는 자세를 거론하는 이상, 참가단체 감소는 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유키짱이 술술 언급해간다. 정확하고 냉철하게 지적해가는 모습에 다들 빨려들어갔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회의는 진행도니다. 보건위생, 회계감사와 보고, 그 때마다 내 의견의 두 발짝, 세 발짝 앞선 지적을 유키짱이 해간다.
"다음은 기록잡무, 부탁합니다"
정체 모를 무언가가 심해지지만, 그걸 억누르고나는 의사진행을 진행한다. 유키짱에게 들키지 않도록.
특별히 없다, 라고 하는 기록잡무의 보고를 듣고 나는 주위를 돌아보고 메구리 선배에게 묻는다.
"아, 내빈대응은 학생회에 맡겨도 됩니까?"
"응, 그거면 돼"
메구리 선배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인다. 그걸 확인하고 더 부탁을 하려고 했더니 유키짱이 끼어들었다.
"가능하면 작년부터 온 내객 리스트를 업데이트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일반객의 접수는 보위 일이네요……사전에 내객 리스트를 건내두세요"
"네, 알았어요"
메구리 선배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끄덕였다. 내가 말하려던 모습을 가까이서 본 탓이겠지. 유키짱의 발언의 전반부분은 나도 말하려고 생각했으니까! 아쉬운게 아니야!
나는 아직 말하지 않은게 있었나 생각하고 있더니, 하나만 있어서 말을 한다.
"아, 기록은 당일 타임 스케줄과 기재 신청을 해주세요"
거기서도 유키짱이 끼어들었다.
"동영상 수록의 경우, 기재의 한도가 있으니까 유지단체도 촬영할 생각이라면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고려에 넣고 기재를 건낼때까지 얘기를 해두세요"
3학년 선배가 말없이 대답을 했다. 그 모습을 메구리 선배가 말을 건다.
"이야아, 유키노시타 용서 없네에……아, 히키가야도 충분히 대단하다? 잘 보고 있다고 생각해"
"……아뇨, 딱히 저는"
나의 지원까지 해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대단한건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후 스케줄에 대해서 공유를 하니, 이미 그 날에 할 얘기는 없어졌다. 모두가 끝나는 분위기를 느끼고 있어서인지 분위기가 완화된다. 그걸 지켜보고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걸로 정기 미팅을 종료합니다. 내일부터도 잘 부탁합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내 호령과 함께 문화제 실질 멤버가 저마다 수고했어, 라며 위로하면서 자리를 이탈한다.
"…………수고했어"
그렇게 말하고 유키짱도 회의실을 나간다. 신호를 잰듯 주위 사람이 수근수근 얘기하기 시작했다.
모두 유키짱의 솜씨를 칭찬했다. 학생회 멤버에 이르러선 유키짱을 차기 회장 후보로 이름을 올리자는 사람도 나왔다.
반대로, 나에게는 한 발짝 모자르다, 라고 모두가 말했다. 그 중에는 누가 위원장인지 모르겠다, 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그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단순한 사실인 것이다. 딱히 질투하는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을 뿐이다.
『――――그 아이에게――너는―――――――』
또, 여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방해다. 나를 휘젓지마……!
"………………………윽"
회의실에서 나는 혼자, 머리에 울리는 목소리를 참고 있었다.
× × ×
다음날 방과후, 나는 교실 상연물 준비에 참가하지 않고 그대로 회의실로 직행했다. 정례 미팅이 없어도 일은 산더미만큼 있다. 슬프게도.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유키짱이 서류 선별을 하고 있었다. 기록잡무에게 건낼 몫이겠지.
"여어"
인사를 하니, 유키짱은 나를 흘낏 쳐다보고 바로 서류 선별로 돌아갔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자기자리에 놓여진 대량의 서류 선별을 개시한다.
잠시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니, 유키짱이 반쯤 혼잣말처럼 입을 연다.
"저기, 히키가야――――"
하지만, 유키짱이 말을 하려던 차에 회의실 문이 열린다. 안으로 들어온건 메구리 선배와, 설마했던 하루짱이었다.
"안녕-"
"어라, 핫……히키가야?"
하루짱이 강화외골격을 몸에 두르고 내 별명을 고쳤다. 유키짱이 수상쩍은 표정으로 언니를 봤다.
"언니, 뭐하러 왔어?
"뭐냐니, 유지단체 모집 공지를 받아서 왔는데? 관현악부 OG로서 말야"
OG라고 들으면 어째서 올드 걸, 즉 히라츠카 선생님이 떠오른다. 본인에게 말하면 틀림없이 얻어 터질테니까 말 않겠지만.
둘의 대화에 메구리 선배가 끼어든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서, 오랜만이라서 여러 얘기를 했더니, 유지단체가 부족해서 어떠려나- 해서"
이 사람의 대화방식은 왜 이렇게나 귀여운걸까. 엄청 치유된다……라고 생각하고 있더니 둘에게 노려보아졌다.
""……히키가야?""
왜 싱크로하는거야. 댁들 쌍둥이 아니잖아.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하루짱에게 종이를 건냈다.
"일단 나가고 싶은 얘기라면 전혀 문제없어. 가능하면 친구라도 불러서 단체 신청해줬으면 싶은데"
내 말에 하루짱이 의외라는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표정인 채로 나에게 묻는다.
"혹시, 히키가야가 위원장이야?"
"……유감스럽지만"
내 대답에 하루짱이 호에-, 라는 얼빠진 소리를 냈다. 뭐, 그 반응은 예측했지만.
"그런거 안 하는 애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바람이 분거야?"
하루짱의 질문에 메구리 선배가 대답한다.
"아아, 그게. 제가 부탁했어요"
"……헤에-"
메구리 선배의 말을 들은 순간, 슥, 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메구리의 폭신폭신함에 유혹된거야? 아니면, 연상이면 아무나 좋은거야?"
"일단 후자는 확실하게 노우야……앗"
연상이면 아무나, 라는걸 듣고 아라사가 떠오른 탓에, 유도심문에 걸려버렸다. 젠장, 다음 미팅 실패해라!!
"에헤헤헤, 수줍어지네, 그치?"
메구리 선배가 폭신폭신하면서도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분하지만 귀엽다, 라고 생각했더니 누군가에게 머리를 콱 잡혔다.
"후후후후후, 히키가야는 참 흥미가 많다니까♪ 찔려버려도 불평은 할 수 없지?"
"아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내 머리에, 하루짱의 헤드락이 완벽하게 먹혀든다. 머리에 달리는 격통과 함께, 나는 비명을 지르는 수 밖에 없었다.
만족했는지 하루짱은 손을 놓고, 쓰러지는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한다.
"뭐, 한동안은 여기에 들르게 될테니까, 너무 이상한 생각하지는 마, 히키가야?"
………………………더는 일으킬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기력을 짜내서 일어서서 나는 하루짱에게 입을 열었다.
"……올거면 제대로 도와줘, 하루짱"
"알았어♪"
내 말에 니시시, 미소를 지으면서 하루짱이 말했다.
④그러니까, 히키가야 하치만은 남은 한 발짝을 내딛는다.
하루짱이 유지단체에 참가한것이 계기가 되어서인지, 유지참가 신청이 가속도적으로 증가했다. 이전보다 업무량은 증가했지만 적극적으로 참가해오는 문화제 실질 멤버 덕분에 어떻게든 일은 돌아가는 상황이다.
그저 신경쓰이는건 멤버의 참가가 여자를 중심으로 줄어드는 점이다. 사가미를 중심으로 한 3인조는 여기 며칠간 전혀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이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가. 보통이라면 『내가 이렇게나 열심히 했는데, 못해 먹겠네!』라는 느낌으로 남자도 오지 않게 되는 패턴이 정석이라고 생각한다. 어떡해야할까……라고 머리를 골똘히고 있으니 손이 멈춰있었는지 유키짱이 말을 건다.
"히키가야, 손이 멈춰있어"
"아아, 미안"
내 모습에 다른 멤버가 한숨을 쉰다. 미안하다, 못써먹을 위원장이라서.
"……?"
유키짱이 수상쩍게 주위를 돌아보니, 떠다니고 있던 무언가는 무산했다.
……문화제 실질 멤버가 신뢰하고 있는건 내가 아니라 유키짱인 모양이라, 질문도 내가 아닌 유키짱에게 가져온다.
그러는건 물론 요즘엔 나를 멀리하고 싶어하는 무리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만이라면 익숙해져 있으니까 딱히 상관없었다.
그저 유키짱과 비교될때마다, 머리속에 울려퍼지는 여성의 목소리가 나를 괴롭힌다.
『―――――――――』
"……윽"
얼굴을 찌푸리면서 나는 작업을 계속한다. 주위에선 아마 유키짱에게 나무람을 받고 기분나빠진 남자,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호감도가 더 떨어지려나아.
그러므로 그저 작업에 임한다. 무심이다. 무심이 되는거다, 하치만. 심두멸각하면 불도 서늘하다. 즉 이 서류다발도 몇 장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리가 없지! 단순한 종이 산이다, 신기해!
잠시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니, 하루짱이 회의실로 들어온다. 그 순간 회의실 안이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햣하로-, 히키가야"
뭐야 그 오물을 소독할것 같은 인사. 나는 시선을 바꾸지도 않고 말만 대답했다.
"마침 좋을때 와줬어"
"뭐야, 부탁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하루짱의 말에 나는 유키짱의 자리에서 슬쩍 한 덩어리를 건냈다.
"우왓, 뭐야 이 양"
"아직 늘어날거야. 유지단체의 신청이니까. 정리해줬으면 좋겠는데"
내 제안에 주위가 웅성댄다. 메구리 선배가 끼어든다.
"히, 히키가야. 아무리 OG인 하루 선배라도, 지금은 부외자니까 그건……"
"하지만, 담당하고 있는 유키노시타와 기록잡무가 다른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적어진 이 상황이라면 이러쿵저러쿵 말할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메구리 선배가 입을 다문다. 아픈 곳을 찔린 걸테지.
하지만 유키짱은 불만스럽게 나를 노려봤다.
"……내가 못한다는거니?"
"아니야. 유키, 노시타랑 기록잡무 모두가 열심히 해줬으니까 이렇게까지 정리한거야. 하지만 처리양의 분모가 점점 늘어나는 이 상황이라면, 이제 이것 이상의 귀중한 자원을 할애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지"
하마터면 평소 호칭으로 부를뻔했지만 어떻게든 설명했다.
"그건, 그렇지만……"
유키짱은 어미가 약해지면서도 아직 불만스러웠다. 그걸 하루짱이 가로막았다.
"――좋아, 해줄게"
"언니"
하루짱은 자신의 동생을 손으로 제지하고 나에게 입을 열었다.
"누구씨가 너무 열심히 하는 탓에 여러모로 말썽이 생기잖아? 이번에는 서비스로 해줄게"
"읏!"
유키짱이 그걸 듣고 격노의 표정을 짓는다. 그에 대해 하루짱이 차가운 눈으로 쳐다본다.
"뭘 짊어지고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조금 더 주위를 생각해"
하루짱은 그것만 말하고 서류를 들고 우리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
유키짱은 잠시 그 광경을 아연하게 쳐다본 후, 말없이 작업에 돌아갔다.
나도 작업으로 돌아가지만,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
우라반, 기획서 신청 아직 안 했잖아. 그러고보니 이거 사가미가 내야했었지.
"미안, 잠깐 우리 교실 기획서 신청 내고 올게"
"그, 그래……"
유키짱이 당혹해하면서도 끄덕이는걸 확인하고 나는 일단 회의실을 나왔다.
× × ×
자신의 교실로 들어가니 모두 힘을 합쳐서 착실하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책상을 모아서 스테이지를 만든다거나, 의상을 만들고 연극 연습도 하고 있었다.
"정말, 남자 제대로 해-"
그런 목소리가 들려와서 돌아보니 남자 몇 명이 사가미에게 혼나고 있었다. 그보다 너 왜 여기 있는거야. 문화제 실질 어쨌어? 그런 의문이 툭툭 솟아오르지만, 이 녀석이 한 명이 늘어난들 소용이 없다. 좀 더 제대로 인원이 돌아오지 않으면 곤란하다.
뭐, 됐다. 나도 시간이 없다. 제대로 내용을 듣고 신청서를 써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교실 안에서 유이가하마의 모습을 찾는다. 바보는 없냐-!!
나마하게가 된 기분으로 주위를 돌아보니, 다들 오렌지를 기초로 한 교실 T셔츠를 입고 있다는걸 깨달았다. 어쩐지 시야가 꽃길 온스테이지라고 생각했어.
그런 와중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종이조각을 한 손에 들고 얘기하고 있는 경단머리를 발견했다. 나는 유이가하마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유이가하마"
"왓, 힛키, 어쩐 일이야? 문화제 실질은?
"아직 우리반, 기획서 신청 안했어. 그러니까 여러모로 가르쳐줘"
나는 유이가하마의 질문에 대답하자, 이 녀석은 갑자기 가슴을 폈다. T셔츠가 가슴에 융기되어 있는 광경이 무척이나 선정적인데요. 개인적으로 교실 T셔츠에 교복 치마 조합해도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 뿐입니까, 듀후후후.
"짜잔, 교실 T셔츠야. 제대로 힛키의 이름도 쓰여져 있어!"
"앙?"
유이가하마가 몸을 돌려 등을 향해서 쳐다보니, 확실히 카타카나로 쓰여진 학생의 일람에서, 제대로 내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힛키 표기구나…….
"이거, 네 짓이지?"
"……그치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 사람만 한자로 『히키가야』가 된다구?"
하마터면 엄청 띌뻔했다. 오히려 혼자만 되면 스페셜한 느낌이 안 드는것도 아니지만, 고작해야 교실 T셔츠니까.
"미안, 고맙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하자 유이가하마가 파앗, 미소를 짓고 끄덕였다.
"그치? 그럼 여기 소란스러우니까 회의실로 갈까"
"그래도 돼?"
"응. 모처럼이니까 유키농의 모습도 보고 싶구"
그런거라면, 하고 생각한 나는 유이가하마와 함께 회의실로 향했다.
× × ×
회의실로 돌아와 유이가하마한테 기획 설명을 받는다. 필요기재랑 인원수, 지급예산의 사용도 등 실무에 필요한 사항 외 기획의도랑 개요설명 등 꽤나 추상적인 부분도 쓰지 않으면 안 되서 의외로 성가셨다.
가장 성가셨던건 구조물의 도면을 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점.
"그러니까 아니야! 좀 더 이렇게, 빠방! 장식은 화려하게 만들거니까!"
"의성어로 말해도 몰라……"
왜 그렇게 감각적으로 말하는거야. 영문 모르겠네. 사이코뮤 같은 정신파의 흐름이 어쩌구저쩌구 한건가……?
"거기다, 거기 인원수 배분도 틀렸는데?"
"……유이가하마주제에 건방지다"
"시끄러. 자, 얼른 고쳐!"
꽤나 유이가하마는 스파르타였다. 하는 수 없이 들은대로 쓰고, 어떻게든 작업을 해간다.
그 광경에 주위 인간이 쑥덕쑥덕 얘기하고 있다. 무슨 의도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적어도 호의적은 아닐 것이다.
"………………"
유이가하마가 그 분위기를 빠르게 캐치했는지, 미간을 모으며 주위를 쳐다본다. 역시 분위기를 읽는데 능숙한 유이가하마는 이 분위기를 이해해버린 모양이다.
내가 꺼려지고 있다는 것에.
……점점 유키짱과 비교당해서 『못 써먹을 놈』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게 되면, 정신을 차리고보니 에스컬레이트해서 존재자체가 꺼려져 있었다, 그런 패턴이지만 새삼 어찌할 수 없으므로 나는 무시했던 것이다.
하지만, 밖에서 온 사람은 그 이변을 알아버린다. 임간학교에서의 츠루미 루미와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하루짱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유키짱은……어떨까. 아마 작업이 많아서 깨닫지 못한걸지도 모른다. 즉, 나에게 있어서 실해는 없는 것이다. 평소와 아무 다를바 없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유이가하마가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진지한 표정이라서 나는 무심코 시선을 피해버린다.
"……왜 그렇게 참는거야"
기막힌듯한, 화내는듯한 그런 목소리가 유이가하마한테 새어나왔다.
그리고 유이가하마는 어째선지 유키짱에게 시선을 향한다. 하지만 말도 걸지 않고 한숨을 쉬고, 나를 돌아봤다.
"――자, 힛키도 바쁘지? 얼른 써!"
"예이예이……"
재촉받은채로 나는 어떻게든 기획신청서를 다 썼다.
"땡큐, 유이가하마. 고마워"
"됐어. ……의지해줘서 기뻤고"
볼을 붉히면서 그런 말을 해서, 무심코 밉살스런 말이 나왔다.
"그렇군, 내 인생에서 최대의 굴……충격이었지"
"지금 굴욕이라고 말하려고 했지? 응, 그치!?"
유이가하마가 황급히 묻지만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그걸 본 유이가하마가 볼을 부풀리지만 이윽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됐어. 그럼 나 돌아갈게"
"아아, 붙들어매서 미안해"
내 말에 고개를 저은 유이가하마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렇게 말했다.
"힛키, 아플때는 아프다고,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읏! 너, 알고――"
"몰라. 말 안해줬잖아. 그치만, 뭔가를 참고 있다는건 안다구?"
"……미안"
"그건 유키농한테 말해주지 그래? 그럼 내일 봐"
유이가하마는 그 말만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난다.
여전히, 바보에다 다정한 녀석. ……………………………아까운 짓을 했구나아, 내가 생각해도.
자조하면서 나는 자기 자리로 돌아가니 여전히 유키짱은 묵묵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조금 피로가 얼굴에 나와있었다. 당연하지. 나와 마찬가지로 서류를 처리한데다, 문화제 실질 멤버의 불평요망도 받고 있으니까. 정말로 고개를 들 수 없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왔다.
"조금 쉬는게 어때? 남은건 내가 할테니까"
"안 돼. 그래선 히키가야의 일이 늘어잖아"
"그 정도는 괜찮으니까. 오늘은 이제 쉬어도 된다고?"
"……안 돼"
유키짱이 완고하게 거부한다. 마치 생떼를 부리는 아이처럼.
"아니, 하지만 피곤하잖아?"
"피곤하지 않아"
유키짱이 똑바로 말한다. ……왜 그렇게까지 거부하는거야.
『―――너는――그 아이에게는――――필요――없어――――』
또 여성의 목소리가 내 뇌리에 울려퍼진다. 심장을 움켜쥐듯, 내 중심으로부터 침식해간다.
확실히, 유키짱에게는 나는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딱히, 나는 특별히 우수한것도 아니고, 자리 중심에 있을만한 사교성도 없다. 안 맞는다는건 멀리서 봐도 아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유키짱은 체력이 없는 주제에 모두를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그 탓에, 괴로워 하고 있어. 지금이라도 쓰러질정도로.
――그런건,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럼. 딱히 내가 곁에 있어도 상관없는 얘기지?
『――――너는――그 아이에게는――――필요――없어――――』
나를 좀먹고 있던 목소리가 더욱 울린다. 하지만.
『힛키, 아플때는 아프다고,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이가하마의 목소리가 울린다. …………………아파. 아프다고.
하지만, 내딛을 수는, 있어. 용기는, 부족했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알았어. 그럼 처리가 필요한 서류 전부 가방에 집어넣어"
"어?"
내 말에 유키짱이 이상하다는 듯 되묻는다. 나는 유키짱에게 들려주듯, 똑바로 말을 한다.
"그러니까, 집에 돌아가서 서류 처리 할거야. 둘이서"
"에, 에에? 두, 둘이서……어디서……?"
"유키짱의 맨션"
"――――――――에에에에에!?"
회의실 내에서 유키짱의 얼빠진 목소리가 울린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들 돌아봤다.
"어, 안 돼?"
내 물음에 어째선지 주위에 있던 녀석들이 끼어들어왔다.
"아, 안 되는게 뻔하잖아!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유키노시타의 맨션에 가서 뭘 할 생각이냐, 이 자식!"
다들, 말로는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라는 분위기를 척척 전해온다.
알까보냐 그런가.
"……유키짱은 안 돼?"
내가 다시 한번 물으니, 유키짱은 얼굴을 양손으로 덮었다. 하지만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있다.
"저, 저기, 그게……………………안 되지, 않아"
부끄러운듯 말한 말을 들은 순간, 주위의 남자들이 죄다 쓰러진건 잊을 수 없었다.
⑤살며시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거리를 좁힌다.
아비규환이 된 회의실을 나온 우리들은 메구리 선배의 조언도 있어서 그대로 돌아가게 됐다.
주륜장에서 자전거를 갖고 나오니 출입구에서 유키짱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뺨을 붉히며 진정하지 못한듯 안절부절거리고 있다. 이윽고 쭈뼛쭈뼛 나에게 물었다.
"저, 저기 하치군. 오늘은 정말로……?"
유키짱 치고는 왠일로 확실치 않은 질문법이군, 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라서 나는 바로 대답을 했다.
"아아. 자전거가 있으니까 나 일단 집으로 갈건데, 유키짱의 집 갈아입을 옷 갖고 갈게"
"가, 갈아입을……읏"
어째선지 유키짱이 숨을 삼키고 있었다. 뭘까, 생각하고 있으니 그러고보니 잊고 있던 일이 있었구나, 라고 생각한다.
"아아, 말하는거 깜빡했다. 만약 작업이 길어지면 자고 가려고 생각했는데……괜찮아?"
내 말에 유키짱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응시했다. 얼굴은 이미 새빨갰다.
"…………………………자, 잘, 부탁, 합니다……"
유키짱에게 나온 말은 어째선지 경어였다.
× × ×
집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끝낸 나는 유키짱이 사는 맨션 앞까지 왔다.
유키짱이 사는 맨션은 부근에서도 고급으로 알려진 타워 맨션이다. 고급인 만큼 방범도 엄중하다.
홀에서 유키짱의 방에 호출을 부르려고 나는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들렸다.
『네, 넵』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스피커에 다가가서 말을 한다.
"유키짱? 나인데"
『시, 십분만 기다려주겠니?』
"……? 괜찮긴 한데"
유키짱에게 들은대로 10분동안 홀의 소파에 앉아서 대기한다. 홀에도 소파가 있다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휴대폰을 보니 코마치한테 메일이 한건 와 있었다. 내용을 보니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사랑하는 오빠한테, 하루 언냐는 내가 묶어둘게♪』
읽은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진짜 위험해. 완전 잊고 있었다. 어쩌지. 하지만 뭐, 코마치가 묶어준다고 했으니까 내 동생을 믿자.
그리고나서 10분을 조금 지난 타이밍에 벨을 눌렀다.
『네, 넵』
"10분 지났어"
『……들어와』
유키짱이 말을 하니 자동 문이 열렸다. 전에 한번 온 적이 있어서 헤메는 일 없이 쉽게 걸어간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5층을 누른다. 표시된 층수가 금방 변해가며, 순식간에 15층을 가리켰다.
내려서 조금 걸으니 표찰도 없는 방 앞에 섰다. 확실히 여기였지, 라며 약간 긴장하면서 인터폰을 누른다.
10초 정도 기다리니 문의 안측 잠금걸쇠를 해제하는 기척과 소리가 들리고,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틈새로 얼굴을 보인건 유키짱. 방을 잘못알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치군. 들어와"
집에 들어가니 미묘하게 비누 냄새가 떠돈다.
유키짱의 차림도 평소와 인상이 다르다. 눈을 가득 채운 하얀색 니트는 큰건지, 소매는 손도 폭 감추고, 옷깃은 쇄골까지 비추고 있다. 머리카락은 헤어슈슈로 묶이고 목 옷깃을 감추듯이 늘어뜨러져 있다. 아래는 마키시장의 롱 스커트로 가려져있다.
"읏!"
……솔직히 엄청 취향인 차림인데요. 뺨이 화조를 띄는걸 알고 나는 무심코 얼굴 반을 손으로 가렸다.
"……왜 그래?"
"아, 아니. 괜찮아괜찮아"
유키짱이 수상쩍게 물어와서 손으로 제지했다.
"하아. 따라와"
그녀는 내 모습을 더 신경썼지만, 이윽고 한숨을 쉬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 맨션은 3LDK. 혼자서 살기에는 되게 넓다.
하지만 유키짱은 여기에 혼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줘"
거실로 안내받고 눈에 들어온건 창문으로 비치는 바깥 경치였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야경으로 변화해가는 거겠지. 작은 유리 테이블에는 이미 오늘 처리해야했을 서류가 놓여있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도 일을 하고 있던걸가.
소파에 앉는것도 어떨까 싶어서 유리 테이블 앞에 앉았다. 가방에서 나도 서류를 꺼낸다.
그러고 있으니 유키짱이 트레이를 손에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트레이 위에는 티포트와 두 개의 컵, 그리고 차과자.
"변변치 않지만"
그렇게 말하고 일단 테이블에서 서류를 치우고나서 티 포트와 컵을 올린다. 중심에는 유키짱의 수제라고 생각되는 스콘이 놓여있다.
"거기에 앉아"
유키짱에게 들은대로 나는 소파에 앉고, 옆에 그녀가 살며시 앉는다.
식기 전에 먹을까.
"……잘 먹겠습니다"
컵에 입을 대니 홍차의 향이 퍼져간다. 뭐야 이거, 엄청 좋은 향이야. 한입 마시자 입 안에서도 향이 퍼졌다.
"맛있어"
"그래. ……스콘도 먹어줘"
무뚝뚝하게 말하지만 볼이 희미하게 물들고 있다. 부끄러워하는것 같다.
들은대로 스콘을 한입베어 무니, 소박한 단맛이 스며든다.
한 차례 만끽하고, 나는 컵을 두고 유키짱을 돌아봤다.
"저기, 말야. 일을 하기 전에 조금 들어줬으면 싶은게 있는데"
"들어줬으면, 싶은것?"
그녀의 질문에 나는 천천히 끄덕였다.
『힛키, 아플때는 아프다고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이가하마의 말을 떠올린다. 바보이면서 다정한 여자애의 말을.
그리고 나는 유키짱을 향해 입을 연다.
"아아. 유키짱이 사라지고나서 조금 후의 이야기야. ……들어줄래?
"――그래"
유키짱이 똑바로 끄덕였다. 그걸 시작으로 나는 얘기를 했다. 그 때의 일을―――.
× × ×
――그건 유키짱이 일본을 떠나 며칠 후의 일이었다. 하루짱도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고, 변해버린 일상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던 무렵이다.
내가 하교하고 있으니, 같은 시각에 한 명의 여성이 학교에서 나왔다. 상당히 예쁜 사람이라고 멍하니 생각했던걸 기억한다.
그 사람은 나를 눈치채고 가볍게 인사를 해왔다. 붙여쓴듯한, 완벽한 웃음이었다.
마치 외견으로는 하루짱, 같았다. 그 때 눈치챘으면 좋았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초등학교에 있던건 유키짱의 사무처리에 무언가가 남아있던거였겠지.
……나는 그 때, 유키노시타 자매의 어머니와 처음으로 만났다.
무슨 변덕인진 모르겠지만 그 때. 유키짱의 어머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너. 학년은?"
내가 쭈뼛쭈뼛 말을 하니 그 사람은 『어머』라며 조금도 놀라지 않은 주제에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내 딸이랑 같은 학년이네. 반이랑 이름 가르쳐주지 않을래?"
――히키가야 하치만. 그렇게 대답하니 처음으로 그 사람은 나에게 감정같은걸 잠깐 보여준것 같았다.
"……그래, 네가"
나에게 미소를 짓고, 그 사람이 말을 했다.
"지금까지 그 아이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그 아이는 너하고 사는 곳이 달라"
"그 아이는 아직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돼"
"너에게 있어서 그 아이는 소중한 친구겠지만, 그것 뿐이야"
"그 아이에게는 네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강함이 있어"
"너는, 그 아이에게는 필요 없어"
"――――――――――――――――――――――읏!!"
정신을 차렸을땐 그 사람은 가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약했나,라고.
고작 그 뿐인 말로 흔들리고 말았다. 고작 그것뿐인 말로, 소중한 친구를 믿을 수 없게 되버렸다.
나 자신을 용서하는건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되버리면 좋을텐데. 진심으로 그렇게 바랬다.
× × ×
"……그래서일까. 줄곧 유키짱을 잊고 있던건"
유키짱 뿐만 아니라, 하루짱에 관한 기억, 모든걸 무의식중에 봉하고 있었다. 떠올리지 않도록, 뚜껑을 덮었다.
당사자인 그녀는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을 끝내자 뺨에 손을 뻗고…….
"――읏!"
"아야!?"
내 뺨을 있는 힘껏 꼬집었다.
유키짱은 미간을 모아서 나를 노려본다. 진심으로 화난것 같다.
"뭐야, 쳐다볼 면목이 없으니까 그렇게 체념한 표정을 짓고 있던거야? ……웃기지마"
"미, 미안……"
내가 사과를 하니 또 뺨을 꼬집는다.
"……정말로 알고 있는거야? 이 몇주동안, 하치군이 멀리 떠나갈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어……"
"유키짱……"
도중에 울음소리로 변했다. 쳐다보니 깨끗한 눈물이 눈동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 하치군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해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정신을 차리고보니 위원회가 이상한 분위기가 되고 있고……어쩌면 좋을지, 몰라서……"
"……미안해, 유키짱"
나는 유키짱을 껴안았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서서히 그 힘이 약해진다.
"애시당초, 하치군이 그렇게 간단하게 흔들려버린게 문제야. 바보바보"
내 가슴팍에서 유키짱이 불만을 말했다.
"그건. 사과해도 끝날게 아니라고 할까……"
"헤어질때, 그렇게나 용기를 쥐어짰는데. 내가 바보같잖아"
"용기라니"
나는 유키짱을 배웅하러 간날을 떠올린다.
공항에서, 나는 유키짱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떨어져 있어도, 줄곧 함께 있을거야. ……하치군, 정말 좋아해!』
"용기 쥐어짜서……고백, 했는데"
유키짱이 코를 훌쩍이면서 말한다.
………………고백?
실내는 조금 추울 정도였는데 나는 어째선지 이마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위험하다, 라고 전신이 위험을 전하고 있었다.
"……설마, 지금 깨달았다, 라는 표정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얼어붙는 목소리로 반대로 이번에는 땀이 멎었다. 엄청 춥다. 끝났다, 라고 몸이 종료를 전하고 있었다. ――아니, 그거 안 돼! 좀 더 힘내라고!
유키짱은 일어서서 내 눈앞까지 와서 나를 내려다본다. 쏘아붙이는 안광으로 몸이 꿰뚫리는듯한 착각에 빠진다.
"내 마음, 이, 이제 이걸로 알았겠지?"
"아, 아아……그래"
봉사부의 들어가고나서 유키짱의 반응이, 모두 하나로 이어진다. 그렇게나 어택해왔는데, 나는 눈치 못챈거냐…….
그렇게 생각해서 침울해하고 있으니, 양 볼을 꽈악 잡혔다.
"대, 대답은 없는거니?"
"대답인가……"
보통이라면, 여기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나는――――――――.
"문화제가 전부 끝나면 부실에서 얘기할게. 약속이야"
나는 유키짱의 눈을 보고 말한다. 그러자 유키짱이 순간 괴로워보이는 얼굴을 한 후, 체념한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 약속, 어기면……이번에야말로 용서 안할거야"
유키짱은 그렇게 말하고 발을 돌려, 테이블 위에 놓인 티 세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거의 식어있었다.
"……하나, 부탁해도 될까?"
뒤돌아보지도 않은채로 유키짱이 나에게 묻는다.
"아아. 뭔데?"
내 대답에 유키짱은 일단 심호흡을 하고나서, 결의한듯 입을 열었다.
"오, 오늘밤은……같이 잘래?"
그 부탁에 나는 한 마디로만 대답을 했다.
⑥카와사키 사키는 불쑥 사과한다.
"음……"
부드러운 햇살이 눈꺼풀을 건드려, 나의 의식이 떠오른다.
몸을 뒤척이며 천장을 쳐다보니 모르는 천장이었다. ……………………어째서?
문득 옆을 쳐다보니 흑발의 미소녀가 조용히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라고할까, 유키짱인데.
뭐야 이거 아침짹? 아침짹이야? 아무리 봐도 아침짹이지? 엄청 아침 짹이지?
아,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생각해내. 생각해내라 나. 어제는 분명, 유키짱이 사는 맨션에서 문화제 실행위원회 작업을 정리하는 얘기를 하고, 조금 옛날 얘기를 했다.
그 후에 저녁 먹고나서 작업에 들어가고. 그랬더니 의외로 빨리 정리가 되서 목욕하고나서 잤다. 유키짱이랑.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목욕은 같이 안 들어갔다.
나는 침대에 누웠더니 엄청 편안해서 바로 잤다.
유키짱은 어땠을까, 그렇게 생각했더니 그녀의 눈이 끔뻑 뜨였다.
"잘 잤어, 유키짱"
아직 수면 중인지, 멍하니 몇초 동안 서로 쳐다보는 형태가 됐다. 하지만 서서히 각성했는지, 유키짱의 눈이 점점 뜨여진다.
"…………………에엣!? 하, 하치군!?"
유키짱이 뛰쳐일어나서 나와 거리를 둔다. 왠지 그 반응, 상처입는데…….
"어, 어째서 하치군이……?"
"어제 잤잖아?"
내 말에 유키짱이 사고를 돌린다. 그 명석함을 이용해 바로 그녀는 어제 일을 떠올린 모양이다. 납득한듯한 표정을 바꾼다.
"――앗, 그랬었지……………………그럼, 그것도……꿈이 아니구나"
유키짱이 중얼중얼거린다. 다 들리거든, 그거라는건 뭐야!
그런 나의 마음속 딴죽을 무시하고 유키짱이 침실에서 나간다. 무심코 나는 물었다.
"어디 가는거야?"
"아침 만들거야. 하치군도 먹을거지?"
물론, 이라고 대답하니 유키짱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 × ×
아침을 다 먹고 준비를 하고나서 우리는 함께 맨션을 나왔다. 갈아입을 옷이 들어있던 가방도 갖고 갈까 했지만 세탁해주는 모양이라서 오늘은 그대로 유키짱의 맨션에 두기로 했다.
학교까지 이동하는 동안 유키짱은 내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명백하게 표정에는 나오지 않지만, 조금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 있다.
"이렇게나 즐거운 통학은 처음일지도 몰라"
"……그런가"
그러면 나도 기쁘다고 솔직하게 생각했다.
학교에 도착하고 나는 신발장에서 유키짱과 헤어졌다. 신발을 바꿔 신으니,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힛키, 얏하로!"
"어"
뒤돌아보지 않아도 바보같은 인사로 누구인지 파악했다. 그보다 힛키라고 부르는건 한 명밖에 없으니까.
아니나다를까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유이가하마가 있었다. 잠부족인지 피어나는 다크서클을 감추듯이 화장을 짙게 하고 있다.
"……너무 무리하지마"
"힛키도. 그래서, 어땠어?"
대충 물어보지만 뭘 묻고 있는건지는 대충 알고 있다.
"뭐, 덕분에. 고마워, 유이가하마"
정말 너에게는 고개를 들 수 없어.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
내가 고맙다는 말을 하니 조금 볼을 붉히면서도 함박 미소를 짓고 유이가하마가 대답했다.
"에헤헤, 다행이다. ――그럼 나 먼저 갈게!"
그렇게 말하고 기운차게 유이가하마는 가버린다. 기운의 G는 시작의 G인가. G는 뭐지……혹시 가하마 씨의……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는 아니……겠지?
D의 레콩기스타인건지 E의 레콩기스타인건지, 그 대답을 알 수 있는 날은 올까. 어쩌면 모두가 F가 될지도 모른다.
바보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도 자기 교실로 향하기로 했다.
× × ×
하루하루 문화제가 가까워져갈때마다 소부고등학교 전체가 열을 띄어간다.
오늘은 하루 통째로 전일준비다. 여기까지 오는데 긴듯한 짧은듯한. 일단 당분간 일하고 싶지 않소이다.
교실 안에선 남자를 중심으로 무대 세팅이 착실하게 되어가고 있다. 그 옆에선 카와사키가 헤드폰을 끼면서 의상 수선을 하고, 미우라와 유이가하마가 붉은 조화를 달고 있다. 한가해보이는 여자는 모여서 조화를 양산하고 있다. 얇은 종이를 하리센처럼 접어서 한 가운데에 모아서 펼치는거군.
토츠카와 하야마는 둘이서 대사 음독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는 이렇게까지 계속 모두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던걸로 알거라 생각하지만 멍때리고 있다. 하지만 내가 위원장이 되어버린걸 알고 있는지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다. 아니, 단순히 나의 셀프 돌맹이 스위치가 정상 작동하고 있는것 같지만.
그러자 의장 수선을 일단락이 났는지 카와사키가 나한테 온다.
"……수고"
"아니, 너야말로"
난데없이 의장계에 발탁되었는데 이래저래 하고 있으니까 카와사키도 열심히 하고 계시다.
"……미안하네, 문화제 실행위원으로 뽑힌거 막지 못해서"
카와사키가 내 옆에 앉으면서 대답을 한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젓는다.
"지금 꽤 즐거워. 그러니까 신경쓰지마"
"…………………알았어"
카와사키가 고개를 홱 돌리면서 한 마디만 대답을 했다. 솔직하지 않은 녀석, 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일어선다.
"그럼 슬슬 갈게. 의상 맞추기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
"그쪽도 열심히 해라?"
나는 손을 휙휙 흔들면서 교실을 나갔다.
걷고 있으니 어느 교실도 활기로 넘쳐있는게 보였다.
지금까지 외톨이로서 있기 괴로운 며칠간을 보내왔지만 지금은 실행위원장이다. 인생은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익숙한 길을 따라 걷고 가니, 마찬가지로 활기 넘치는 교실이 보였다.
회의실이다. 바쁘게 사람이 드나들고 있고, 안에는 이미 유키짱이 척척 일을 나누고 있었다. 뒤에선 하루짱이 메구리 선배와 일정을 맞추고 있다.
……하루짱은 그 날 이래로 평범하게 나에게 대하고 있지만, 후일에 코마치에게 『더는 하루 언냐를 슬프게 해선 안 된다?』라고 혼났다. ……정말로 나는 폐를 끼치기만 하는구나.
"안녕하세요"
얼렁뚱땅 섞여 들어가려고 했더니 모두에게 『지금까지 뭐하고 있던거야 싸쟈아!』라는듯한 시선을 받는다. 진짜로 죄송합니다.
"중역출근이네"
유키짱이 나를 흘낏 노려본다. 하지만 그 정도로 화난건 아닌 모양이다.
"진짜 미안"
나는 일단 사과하고 위원장석 앞에 서서 서류를 손에 든다.
――거기부터 끊임없이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위원장, 홈페이지 테스트 업 완료했는데요"
"좋아, 이걸로 실제이행 부탁합니다"
하나 처리하면 또 하나가 내밀어진다.
"위원장, 유지 쪽 기재가 부족해요!"
"통제부는 유지대표자와 교섭. 관리측 판단으로 빌려둬. 이쪽에는 보고만 하면 돼"
"히키가야, 유지 리허설이 길어지고 있어"
"오프닝 리허설, 뒤로 미루는 수 밖에 없군"
한 차례 지시를 다 내리고 있으니 지금까지 열심히 하던 유키짱이 한숨을 쉬었다.
"수고했어 유키, 노시타"
"……………딱히 평소대로 부르면 될텐데"
하마터면 평소 호칭으로 부를뻔해서 말을 더듬으니 어째선지 불만스럽게 나를 노려봤다.
"히키가야, 유키노. 수고했어"
"우옷"
"꺄악"
그렇게 말하고 하루짱이 나와 유키짱을 동시에 안아온다.
"분하지만, 내가 실행위원장이었을때 보다도 실무는 잘하네에. 정말, 둘 다 잘했다고 생각해"
"응, 정말로 그래. 유키노시타 뿐만 아니라 히키가야도 참 열심히 해줬어"
메구리 선배가 하루짱의 말을 잇는 형태로 말한다.
유키짱의 집에서 자고온 이래, 그녀는 자신의 힘만이 아닌, 곤란할 때는 나에게 자주 상담하게 됐다.
나 자신도 아는 범위에서 대답해가자, 그 모습을 목격한 문화제 실행위원 멤버는 나에 대한 평가를 고쳐준 모양이다. 서서히 그 분위기는 개선되어가, 지금은 나에게 질문해오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덕분에 상당히 일이 편해졌다. 지금은 가슴을 펴고 내가 위원장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감사합니다, 메구리 선배. ……그리고. 고마워, 하루짱"
마지막은 하루짱의 귓가에서 말하자 그녀는 부끄러운듯이 끄덕인다.
"으, 응……에헤헤헤, 핫짱♪"
"……하치군?"
기뻐하는 하루짱의 옆에서 유키짱이 내 팔을 있는 힘껏 꼬집는다. 엄청 아프다.
그런 모습을 메구리 선배가 한숨을 쉬면서 쳐다본다.
"……정말, 그런 여자 홀리는 점만 없으면 히키가야는 완벽한데"
그 말에 주위가 동조하듯이 끄덕인다. 에, 뭡니까 이 분위기…….
――어쨌든간에 마침내 내일부터 문화제다. 마음을 다잡고 가야한다.
⑦지금 바로 소부 고등학교는 최고로 축제를 열고 있다.
암흑 속에서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울려퍼진다. 펼쳐진 암막은 틈새가 생기지 않도록 가리고 있다.
손목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9시 57분. 슬슬 시간이다.
『――개연 3분전. 개연 3분전』
귀에 끼운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기록잡무 멤버다. 그리고나서 몇 초 지나지 않아 이어폰에 노이즈가 끼인다.
『――유키노시타입니다. 각 인원에게 통달. 온타임으로 진행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즉시 보고를』
유키짱이 말을 끝내고 통화가 끊겼다.
그리고 나서 각 부서의 보고가 오른다. 그 보고를 받고 유키짱이 한번 더 보고한다.
『――알겠음. 그럼 신호까지 각자 대기』
무대 옆에 나는 위원장 인사가 있기 때문에 대기하고 있다. 작은 창으로 보자 수많은 학생들이 있지만, 암흑 속이라서 뭔가 거대한 생물이 꿈틀거리는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든다면 테츠오우. 쿠라다 테츠오가 아니다. 그쪽이라면 태양의 아들이니까 분명 눈부시다.
개연까지 1분 남았다. 체육관에 정적이 찾아온다. 다들 군침을 삼키고 지켜보고 있는걸까.
『――10초전』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귀를 기울이고 그 목소리를 듣는다.
『9, 8, 7, 6――――5초 전』
확실하게 그건 해준다.
『4――3――』
카운트 다운 소리가 사라졌다. 그래도 카운트는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무대 옆에서 올려다보니 2층 PA실의 바깥 창으로 유키짱이 스테이지를 내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음 가운데 내 시계가 10시를 가리켰다.
순간, 스테이지 위에 눈이 멀어버릴 정도의 빛이 폭발했다.
"너희들 문화제 하고 있나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갑자기 스테이지에 나타난 메구리 선배에게 관객이 들뜬다.
"치바의 명물 춤추기와―――――――――――――!?"
"축제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스, 슬로건이 침투해온다……!
"같은 바보라면, 춤추지 않으면―――――――――!?"
"손해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메구리 선배의 훌륭하고 수수께끼 콜 & 리스폰스로 인해 학생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바로 폭음으로 댄스 뮤직이 흐르기 시작한다.
오프닝 아웃이 시작한 것이다. 댄스 동호회와 치어리딩부 모두의 협력으로 인해 메구리 선배의 마이크 퍼포먼스의 열광이 식지 않은채 학생들이 흥분을 보였다.
……슬슬 나갈까. 이 가운데에 하는거냐, 난이도 엄청 높은데……하는 수 밖에 없군.
『히키가야 위원장. 스탠바이합니다』
유키짱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인컴을 온하고 입을 열었다.
"알겠어"
나는 각오를 굳힌다. 하루짱은 아니지만 각오완료, 정면에 응격 준비 완료다.
댄스팀이 아래측으로 내려가고 위측에 선 메구리 선배가 나를 불러낸다.
"――그럼 이어서 문화제 실행위원장의 인사가 있겠습니다"
나는 무대 중앙까지 걸어간다. 천명을 넘는 학생들의 시선을 한손에 받는다.
중앙 위치까지 도달하고 나는 발을 멈췄다. 그리고 무대위에서 학생들을 쳐다본다. 이런, 무릎이 떨릴것 같은데. 갓 태어난 새끼 사슴처럼 되버린다.
어떻게든 힘내서 무선 마이크를 손에 들고 나는 말을 했다.
"문화제 실행위원장 히키가야입니다. 아니, 까놓고 말해 메구리 선배가 너무 띄워서 저 엄청 하기 힘든데요?"
내 한마디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다행이다, 이걸로 먹히지 않았으면 재기못할뻔했어.
"여러분, 이 날을 위해 준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안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서 우리가 즐기지 않으면 손님도 즐길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있는 힘껏 숨을 들이킨다. 다음 말을 하기 위해.
"전력으로 문화 하자 짜식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문화한다는게 뭐야, 라며 자신에게 태클을 넣으면서 오랜만에 전력으로 소리를 질러서 기분 좋음을 느꼈다.
나의 인사가 끝나고 다음 진행으로 넘어간다. 무대옆으로 돌아갈때 이어폰에 노이즈가 들렸다.
『――하치군, 멋졌어』
목소리 주인은 틀림없는 유키짱. 2층으로 시선을 주니 그녀가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면서 나는 인컴을 온했다.
"――모두에게 다 들리고 있거든?"
내가 인컴을 끈 후, 유키짱이 얼굴을 양손으로 덮는걸 제대로 확인했다.
× × ×
오프닝 세레모니가 끝나고, 마침내 문화제도 본방송. 이틀 행해지는 가운데 일반공개는 2일째 뿐이다. 첫날인 오늘은 교내에서만 한다.
그래서 나로 말하자면. 문화제 실행위원이라서 순찰을 돌아야하지만 유키짱한테 『너는 사진이라도 찍으렴』하고 기록잡무의 일인 사진촬영을 떠넘겨졌다. 어째선데.
하지만 다른 멤버는 왜 내가 이렇게 됐는지 알고 있는 모양이라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키짱이 흘낏 노려보자 바로 사그라들었지만.
뭐, 순찰 도는 김에 찍으면 되나, 라고 생각하며 나는 떠맡기로 했다.
그런고로 우선 자기 교실로 가기로 했다. 그러자 이미 상연하고 있는 모양이라, 접수에 유이가하마가 혼자 턱 앉아있었다. 왠지 주인을 기다리는 개같아서 재미있는 광경이지만, 그래도 난데없이 사진을 찍는건 실례인가.
"여어"
나는 유이가하마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앗, 힛키! 앗, 뭘 찍는거야!?"
마치 주인을 발견한 개같은, 만면의 미소를 짓고 이쪽을 쳐다보는 유이가하마를 찰칵, 사진에 찍었다.
"아니, 굉장히 좋은 얼굴이라서. 이거 봐"
나는 디지털 카메라 화면을 보여준다. 유이가하마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얼굴을 붉혔다.
"이, 이거 지워줘! 왠지 되게 부끄럽잖아!"
"자자, 일단 유키짱에게 찍은 사진 확인해줘야 하니까, 곤란하면 삭제할거 아냐"
"……그럼 상관없지만"
내 말에 마지못한 느낌으로 끄덕인다. 그 밖에도 사진을 찍고 싶지만, 상연중이니까아. 토츠카랑 엄청 찍고 싶었는데. 토츠카랑.
"그럼 딴데도 돌고 올게"
"응, 또 봐"
그렇게 말하고 나는 자기 교실을 떠난다. 자, 팍팍 찍어갈까.
나는 반을 순서대로 돌면서 사진 허가를 받고서 찍어간다. 파인더 너머로 보는 학생들은 모두 즐거워보인다.
하지만 즐거운일만 있는건 아니다. 손님을 처리하지 못해 점점 행렬이 생기는 반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수습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했을때.
삐익- 하고 날카로운 휘슬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난 방향을 보니 메구리 선배가 있었다. 평소의 포근포근한 분위기가 아닌, 엄격한 인상을 받는다. 무심코 찰칵.
"다들, 잘 부탁해"
그녀의 호령과 함께 어디에선가 학생회 임원들이 나타나 순식간에 행렬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뭐야 이거, 소환수 같은거야? 무심코 찰칵.
"대표자는 없어?"
그 속에 낯익은 소녀가 보였다. 유키짱이다. 똑바른 말씨로 물어서, 위압감을 느낀걸테지, 반 대표가 경직해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니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갑자기 유키짱이 이쪽을 돌아본다. 그 때, 드물게 짓궂은 표정으로 『요놈』하며 중얼거리는게 보였다.
"읏!"
무심코 셔터를 눌렀다. 찍어낸 광경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만 보여주는 표정.
다른 녀석에겐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나는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⑧오리모토 카오리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문화제도 이틀째를 맞이했다. 오늘은 일반공개라서 근처나 타교의 친구들이나 수험지망자 등의 내객도 많이 왔다.
토요일이라는것도 있어 꽤 떠들썩함을 보였다. 그래서 문화제 실행위원도 풀 멤버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나, 위원장인데 또 사진촬영 맡아버렸어!
라는것도, 첫날 사진이 꽤나 고평가를 받아버린 탓이다. 특히 유이가마하랑 유키짱의 사진. 이 둘은 지우려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유키짱이 『모처럼이니까』라고 하며 인쇄를 했더니, 남자들에게 구워달라는 요망이 많이 몰려왔다. 그래서 싫었어! 지금 말해도 소용 없지만.
그런고로, 오늘도 찰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일반공개일이기에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됐다.
"문화제 실행위원인데요, 사진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좀……"
평범하게 거절당한다. 설마 나, 수상쩍인 인물 취급 받는거야? 눈 나았다고 말했던 녀석 누구야! 전혀 틀려먹었잖아!
여러군데 돌아보고 겨우 허가를 받아 사진을 몇 장 찍었을때, 갑자기 누군가에게 안겼다.
"오빠!"
"코마치야?"
뒤돌아보니 코마치가 『옛서』라며 약삭빠르게 대답을 했다. 뭐, 귀여우니까 괜찮지만.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간지러운듯이 몸을 틀었다.
"오늘은 오빠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러 왔어. 그리고 여기, 지망학교니까"
"과연, 그럼 오빠의 멋진 모습을 눈에 새겨둬!"
그렇게 말하며 셔터를 누른다. 그러자 놀란 표정의 사진을 찍었다. 무척 얼빠진 표정이다.
"앗, 그거 싫어어. 모처럼이니까……실례합니다-"
"야"
코마치는 나한테서 카메라를 뺏어들고 지나가던 일반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찍어주실래요?"
그렇게 묻고 쾌히 승낙을 해준 일반손님이 카메라를 이쪽으로 향한다. 우와, 확실히 사진을 찍히는 측이 되보니까 거절하는 이유를 알것 같다.
"네, 치-즈♪"
그 순간, 셔터가 눌러졌다. 일반 손님은 카메라를 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니 웃는 얼굴로 사라졌다.
남겨진 우리들은 카메라 사진을 보고 있으니, 거기에는 웃는 얼굴의 코마치와 기막혀하면서 미소를 짓는 내 모습이 찍혀 있었다. 엄청 부끄러워.
"그 사진, 나중에 받아갈게♪"
니시시, 웃으면서 코마치가 나에게 말해온다. ……부탁받으면 어쩔 수 없나.
"알았어"
"응, 긴장하지마. 그럼 코마치, 여러가지로 돌아보고 올게-"
말하자마자 코마치는 잽싸게 달려갔다. 복도를 뛰지 마세요.
나참, 저 녀석은. 친구가 많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단독행동을 좋아해서, 방심할 수가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으니 정면에 유키짱이 있다는걸 눈치챘다.
유키짱은 하나하나 교실을 다정한 눈빛으로,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서 쳐다보고 있다.
그야 그렇겠지. 이 문화제의 공로자는 틀림없는 유키짱이다. 그 자각과 자부도 있으니 성과가 나온다는걸 알면 다정한 눈도 된다.
유키짱의 시선이 다른 교실로 이동하려고 할때,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방금전과 또 다른 색의 눈빛을 나에게 향해온다.
"어때, 제대로 찍고 있니?"
"뭐, 역시 오늘은 거절하는 사람도 많지만. 여기저기 찍었어"
나는 유키짱에게 카메라 화면을 보여주니 그녀는 들여다보는 형태로 나에게 다가왔다.
순서대로 보여주니 흠, 하고 끄덕이고 나를 올려다본다.
"그럭저럭 괜찮은거 아니니? 하지만 이 사진은 되게 좋구나"
유키짱이 가리킨건 아까전에 찍은 투샷.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래? 평소대로라고 생각하는데……"
"그러니까야. 조금 부러워……"
그렇게 말하고 유키짱이 조금 안타까운 표정을 지고 있어서 나는 또 지나가던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
지나가던 여성은 『좋아요』라고 쾌히 승낙해줘서, 나는 유키짱의 어깨를 안았다.
"히얏, 하치군!?"
"부탁합니다"
여성이 『네, 치-즈』구호 소리로 셔터를 누른다. 돌려받은 카메라에 찍혀있던건 볼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유키짱과 그걸 보고 미소를 짓고 있는 내 모습.
"좋은 사진이지?"
"……………………바보"
유키짱은 그 자리를 떠나려고 했지만, 갑자기 멈춰서서 교실 하나에 시선을 향한다.
"왜 그래?"
"……저 교실, 신청서류와 하고 있는게 달라"
3학년 B반 벽에는 동굴같은 장식이 걸려있고, 『광차트럭』이라 쓰여진 간판이 놓여있었다. ……트럭?
"그 신청에는 천천히 움직인다, 라고 쓰여있지 않았던가?"
기획신청은 내가 전부 날인했고, 무엇보다 트럭을 사용하는 기획은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틀림없다.
하지만 안에서 들려오는 꺄-꺄- 거리는 비명과, 덜컹덜컹 거리는 격렬한 소리. 2학년 E반의 제트코스터를 배꼈잖아-!
유키짱이 수긍을 하고 대표자를 부르러 갔다.
"대표자는 계신가요. 신청내용과 다른 모양인데요"
들은 순간, 3학년 B반 여자들의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한건지 선배분은 유키짱의 양손을 척 잡고, 그대로 트럭에 밀어넣으려고 한다.
"자, 잠시만요"
"유키짱!"
내가 유키짱이 있는 곳에 뭐라 말하려고 했더니, 어째선지 나도 남자 선배에게 잡혀서 교실 안으로 끌려간다. 교실 안은 동굴풍 장식이 되어 있고, 꽤나 열심히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이 짐차를 개조해서 만든 트럭에 나는 콱 밀려버린다. ――라고할까, 붙잡았을때부터 내 엉덩이 만지던 사람 누구야! 무서워!
마지막에 쿵, 밀린 충격으로 나는 유키짱을 덮어쓰는 모양이 됐다.
"하, 하치군 가까워"
"미안"
……어째선지 예기치도 못하게 속히 말하는 『벽쿵』같은 그림이 되버렸다. 어라, 바닥에 손을 대고 있으니까 바닥쿵? 잘 모르겠네.
이 자세는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일어나니, 마찬가지로 일어난 유키짱이 내 소매를 꼬옥 잡았다.
"에――오늘은 광차트럭에 탑승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신비의 지하세계를 충분히 즐겨주세요"
그런 방송이 들어오고, 난데없이 트럭이 움직였다. 시커먼 의상을 입은 남학생들이 네명 달라붙어서 트럭을 움직이고 있다.
트럭은 상당한 속도로 코스를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달린다. 코스에는 업 다운이 설치되어 급강하하고 있는걸 몸으로 느낀다. 엄청 무섭다. 뭐가 무섭냐면, 이게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읏!"
정신을 차리니 유키짱이 나에게 꼬옥 안겨붙어 있어서, 허리를 안아주자 안심한듯이 몸을 기대온다.
트럭은 그 후에도 덜컹덜컹 격렬하게 흔들려, 들어올려지고 종횡무진하게 날뛰었다. 겨우 골인 지점에 도착하니, 트럭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어떠셨나요, 지저 여행은. 또 잘 부탁합니다-"
선배가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을 하자, 나는 제정신을 차렸다. 아직 방심하고 있는 유키짱의 손을 잡고 나는 교실 밖으로 나왔다.
"어때, 우리 어트랙션은!"
어느샌가 나타난 3학년 B반 대표자같은 인물이 자랑스럽게 말한다. 유키짱이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지만 내 소매를 잡고 있어서 박력은 없다.
"어때, 라고해도 신청 내용하고 다른건……"
"조금뿐이야! 유연성있는 현장판단이지!"
밝게 말하고 있지만, 이래선 고집을 부려서라도 넘기고 싶은것 같군. 뭐 여기서 따질 필요는 없나?
"뭐, 즐기는 사람도 많은것 같으니 괜찮지 않아? 안전면에 문제가 없으면"
"……그럼 추가로 신청서류를 내주세요. 그리고 이용자에게는 설명을 철저하게. 입구 게시, 어트랙션의 이용전 구두설명을 해주세요"
"음, 뭐 그 정도라면"
"잘 부탁합니다"
인사를 하고 유키짱은 그 자리를 뒤로했다.
둘이서 걷고 있으니 뒤쪽에서 『있잖아, 유키노시타랑 위원장하는 애, 사귀고 있는거야?』나 『저 애 좀 잘 생겼네-』라고 들려온다. 무슨 소리야. 특히 후자.
"~~~~~~~~읏!?"
"좀, 유키짱?"
갑자기 유키짱이 빨리 걷는다. 순식간에 거리가 벌어져간다. 무슨 속도야…….
"……다른데를 갈까"
남겨진 나는 유키짱과 반대방향으로 걸어 가기로 했다.
× × ×
여러 사진을 찍고 있으니, 의외로 타교의 학생이 많이 와 있다는걸 깨닫는다. 라고할까 왜 교복인걸까. 부활동 귀가치고는 빠르고. 역시 자기 고등학교의 어필인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난데없이 어깨를 두드려졌다.
누구야, 라고 생각해서 뒤돌아보니 거기에 있던건 의외의 인물이었다.
"――오리모토!?"
"오랜만, 히키가야"
그래, 거기에 있던건 오리모토였다. 마지막으로 만난건 분명, 여름방학에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났을때인가?
"오늘은 혼자야?"
"아니, 둘이서 왔어. 그게 임간학교때 왔던 나카마치라는 애"
"아아, 그래그래"
하지만 주위를 돌아봐도 나카마치다운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나의 의문에 대답하듯 오리모토가 입을 연다.
"지금 2학년 F반의 연극? 을 보는것 같아. 나는 별로 흥미 없어서 안 갔어"
썩둑 자기반 상영물을 부정당했지만 나도 아무래도 좋아서 패스했다.
아아, 모처럼이니까 사진을 찍을까. 포토여친이 아닌, 포토옛여친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오리모토에게 묻는다.
"있잖아 오리모토, 사진 찍어도 돼?"
"에, 딱히 괜찮긴 한데……그보다 너, 왜 카메라 들고 있는거야?"
수상쩍은 눈으로 본다. 뭐, 그렇겠지.
"실은 나, 문화제 실행위원이야. 그러니까 사진촬영하고 있어"
"흐-응……무슨 계원인데?"
"위원장"
오리모토의 눈이 점이 됐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번 더 나에게 물어온다.
"미안, 못 들었어. 무슨 계원이라고?"
"위원장"
"…………………거짓말이지, 그치만 너잖아?"
그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위원장입니다.
"정말로 위원장이라니깐"
내 말에 겨우 진짜라는걸 이해했는지 그녀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뜬다.
"……………말도 안 돼"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럼 사진 찍어도 돼?"
내 질문에 오리모토는 끄덕이지만 어떤 조건을 붙였다.
"좋아. 대신에 나중에 나도 네 사진 찍게 해줘"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뭐, 딱히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괜찮겠지. 나는 끄덕인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에는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래선 여러 사람이 찍혀버린다.
"조금 이동할까?"
"응, 좋아"
나의 제안에 오리모토가 받아줘서 조금 걷게 됐다. 복도를 걸어가니, 오리모토가 흥미깊은듯 반의 상영물을 쳐다본다.
"그러고보니 그쪽 문화제는 어땠어?"
"아아, 우리는 아직이야. 그보다, 겹치면 못 오잖아!"
웃긴다는듯 오리모토가 웃는다. 나도 이끌려서 입가가 풀어졌다.
"그야 그렇군. 그래선 나도 그쪽 문화제 보러 못 가니까 곤란하지"
"그치?"
그런 잡담을 나누면서 둘이서 걷는다. 사귀고 있던때는 어떤 얘기를 했었는지 지금은 이제 기억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보니 마침 사람이 적은 곳에 도착했다. 나는 멈춰서서 오리모토 쪽을 본다.
"이 쯤이면 되려나. 그럼 찍는다"
카메라를 들고 파인더 너머로 오리모토의 모습이 찍힌다.
"………………"
오리모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렌즈너머의 나를 꿰뚫어보듯이 올곧게 눈을 향하고 있었다.
핀트를 다시 맞춘다. 그러자 오리모토의 입이 열렸다.
두 문자. 오리모토의 입술이 그 말을 말했다.
말을 끝낸 타이밍에, 나는 셔터를 눌렀다. 거기에는 부드러운 표정의 오리모토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찍었어"
그걸 듣고 오리모토가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그래. 그럼 이번엔 내가 찍을게"
오리모토가 나한테 스마트폰을 겨눈다. 어떤 표정인건지, 얼굴이 큰 스마트폰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뭐라고 대답하면 되는지 정해뒀다.
"찍을게-"
나는 목소리로 나오지는 않더라도 말을 했다. 정말로 짧은그 말을.
"읏!"
오리모토의 스마트폰에서 얼빠진 셔터음이 들렸다. 오리모토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응, 하며 끄덕였다.
"응, 잘 찍혔어"
그렇게 말하고 오리모토는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무의식인건지, 그녀가 머리장식을 만진다. ……내가 선물한 머리장식을.
"고마워, 결착……난거 같으니까, 이거"
"……아아"
오리모토가 나를 올려다본다. 중학교때보다 키 차이가 벌어졌던걸지도 모른다.
"……힘내야한다?"
"아아"
"내가 보낸 선물, 무거우면……버려도 돼"
"아아"
버릴리 없잖아.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러면, 또 이 녀석을 묶어버릴 느낌이 드니까.
"그리고……그리 말야. 나도, 힘낼테니까. 그러니까――"
"――아아, 응원할게"
"응!"
이렇게해서 오리모토는 내 앞에서 사라졌다.
――나도 각오를 굳혀야지.
이제 곧, 유지단체의 콘서트가 시작할 시간이었다. 나는 체육관으로 향해 간다.
또 한 사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이 있으니까.
⑨그리고, 각자의 무대가 막을 연다.
체육관 스테이지 위에서, 아름다운 선율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한 명의 여성이 지휘한다.
그 여성은 유키노시타 하루노. 그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마치 춤추듯이 택트를 휘두르며 관객을 매료한다.
낯익은 프레이즈가 귀에 닿는다. 그녀가 손으로 신호를 주자, 타이밍 좋게 관객이 반주를 넣는다. 연주하는 측도 관객도 모두 그녀에게 삼켜졌다.
――처음 만난건 초등학교 시절. 하루짱은 중학생이라서 키도 그쪽이 컸었다. 처음에는 만날때마다 긴장했다는걸 기억한다. 늘 생글거리면서 우리 히키가야 남매를 다했다. 하지만 그 미소가 어째선지, 코마치가 젯날에 아버지가 사준 가면이랑 겹쳐보이게 됐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하루짱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하루짱, 좀 더 제대로 웃어봐! 그렇게 생글거리는 미소가 아니라, 나는 하루짱이 웃는 얼굴을 보고 싶어!』
건방진 소리를 했다, 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웃는 얼굴을 보고 싶다라. 그런 말을 하면 진짜로 웃어버린다?』
하지만 그리고나서, 하루짱은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꾸게 됐다. 그 가면을 집어쓴듯한 미소는 우리에게는 보여주지 않게 되고, 깔깔 즐겁게 웃어주게 됐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를 지켜줬다. 설령 곁에 없을때가 있었다고 해도.
"……읏"
숨을 삼킨다. 나는 지금부터 그 사람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른다.
마침 연주가 끝난다. 그녀가 관객의 박수와 환성에 감싸이는 와중에 나는, 한 통의 메일을 송신했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나는.
체육관에서 나오니, 석양이 학교를 비추기 시작했다.
× × ×
특별동의 위――옥상에서 나는 시계를 본다. 프로그램대로 한다면, 유지단체 마지막 스테이지――하야마네의 밴드 연주가 시작하고 있을 무렵이다.
그 후에는 엔딩 세레모니가 기다리고 있다. 너무 시간을 들일 수 없다.
메일을 봐줄까. 와줄까. 그런 불안을 주먹으로 으깬다. 와주는게 뻔하다.
눈을 감고 기다리고 있으니 녹슨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눈꺼풀을 여니 거기에는 옷을 갈아입었는지, 드레스 차림이 아닌 사복 차림의 하루짱이 있었다.
"――왜, 누나한테 할 얘기가 있는거야?"
슬픈 표정으로 그녀가 묻는다. 그건 마치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알고 있는듯하다. ……아니, 알고 있겠지.
왜냐면, 늘 우리를 봐주고 있었으니까.
"맞, 아. 하루짱한테……할 얘기가 있어"
내가 말을 하자, 그녀는 조용히 내 앞까지 다가왔다.
"그건 좋은 얘기야? 아니면 나쁜 얘기? 지금 내 연주가 끝나서 기분 좋으니까, 좋은 얘기 말고는 듣고 싶지 않은데에"
"……난처하네"
정말로 난처하다. 무심코 고개를 숙이니 뺨을 살살 만져진다.
"얘, 핫짱. 전에 네가 유키노의 방에서 잤을때, 나 엄청 울었어"
"그건……"
같이 있던 코마치는 자세하게는 말 안했다. 하지만, 그렇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루짱은 고개를 숙여, 내 가슴팍에 이마를 댔다. 그 탓에,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얼른 말해. …………안 그러면, 누나 견디지 못하니까"
"……알았어. 하루짱, 나는――――"
하루짱에게 나는 말했다.
마음을.
――누구를 좋아하는지를.
내 말을 들은 하루짱은 고개를 들었다. 울고 있었다.
하지만 웃고 있었다. 만들어낸 미소가 아닌, 하루짱의 진정한 미소.
내가 정말 좋아하는――하루짱의 미소.
"그런가. 나는 선택받지 못한거구나."
"……미안"
"요놈아, 사과하지마"
하루짱이 내 볼을 꼬집는다.
"절대로 용서 안해줄거야. 보복으로 평생 독신으로 천수를 다해줄거야"
"그건 참아줘……"
내 말에 하루짱이 심술궂게 웃는다.
"어머, 괜찮겠어? 나한테 연인이 생겨도. ……핫짱 말고 다른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어도"
"윽!"
그 말을 들은 순간, 어금니를 악 문다. 머리에 피가 치솟아, 관자놀이 부근이 뜨거워지는 감각이 들었다.
나의 반응을 보고, 하루짱이 슬픈듯한, 화난듯한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 기쁘지만 아쉽네. ……정말로 더러운 말을 해버릴것 같아"
하루짱이 나를 껴안았다. 나는 똑바로, 안아준다.
"얘, 망설였어? ――많이, 고민 했어?
그녀의 질문에 무심코 허리를 세게 안았다.
"그런건. ……당연하잖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뿌리쳐야하니까.
그녀의 눈동자에 깨끗한 눈물이 모여간다.
"정말로, 아쉽네에………………왜 나로선 안 되는걸까아……"
모인 눈동자는 휘어서 뺨을 타고 흐른다.
"――――――――――――――읏"
하루짱의 오열이 주위에 울려퍼졌다.
× × ×
하루짱이 울다 그쳤을 무렵, 갑자기 휴대폰이 울었다. 착신 상대를 보니 유이가하마였다.
나는 하루짱에게 시선을 향하니, 그녀는 손짓으로 『받아도 돼』라고 답했다.
통화버튼을 누르니 갑자기 노성이 들려왔다.
『――힛키, 지금 어디에 있어!?』
"윽――트, 특별동이야"
내 대답에 큰 목소리로 유이가하마가 말을 한다.
『엔딩 세레모니 시작한다구!? 지금 당장 와!』
시계를 보니 엔딩 세레모니 시간이 벌써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부터 가도 늦는다. 시간을 끌 수 밖에 없나.
"……미안, 5분간 어떻게든 할 수 없어?"
『오, 5분!? 에, 어떻게 하란 말야!?』
유이가하마가 혼란해하는 차에, 갑자기 전화너머로 소음이 들리더니 음색이 변했다.
『――전화 바꿨어. 하야마인데』
아무래도 보다못한 하야마가 전화를 바꿔준 모양이다. 하야마는 여전히 산뜻한 목소리로 말한다.
『밴드 연주, 한 곡 더 할수 있어. ……하지만 그 이상은 못 버틴다?』
한 곡이라는건, 즉 5분은 벌 수 있다는 소린가. 이 이상 없을 제안이다.
"충분해. 정말로 미안하다, 고마워"
『다음에 제대로 갚아라? 앗, 유미코――』
『――히키오, 나중에 기억해둬!!』
키익- 날카로운 노성이 내 귀를 아프게 한다. ……엄청 아파.
그리고 아직 누군가랑 바꾸는듯, 하야마가 안쪽에서 『자, 바꿔봐』라며 말하는게 들려왔다.
소음이 조금 이어지고, 커흠 하며 헛기침이 들려왓다.
잘못 들을리 없는 목소리가.
『―――히키가야. 얼른 와』
"알았어, 바로 갈게"
나는 그녀의 말에 굳세게 대답했다.
통화를 끊고 나는 하루짱을 돌아본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는 모양인지, 쓴웃음을 지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가렴. ……다들 기다리고 있을거야"
"아아, 다녀올게, 하루장"
"응, 다녀와"
하루짱에게 배웅을 받고 나는 옥상을 뒤로했다.
지금 다시, 무대에 서기 위해.
× × ×
"하악……하아……"
숨을 헐떡이면서 나는 무대 뒤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침 연주를 마친 하야마네와 마주치게 됐다. 다들 내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읏! 히키가야!"
"진짜 늦어! 말도 안 돼!"
"……미안, 늦었다……"
나는 안쪽까지 들어가니 유이가하마와 히라츠카 선생님, 그리고 유키짱이 대기하고 있었다.
"힛키-!"
유이가하마가 앞으로 나온다. 걱정 끼친것 같고, 사과해둘까 해서 나는 입을 열었다.
"미안, 걱정끼쳤어―――으억!?"
말하던 말은, 유이가하마의 주먹으로 썩둑 끊겼다. 좋은곳에 들어갔는지, 날카로운 통증이 나의 정수리를 찌른다.
"싸다귀를 때리면 뺨이 빨개지니까 이걸로 참아줄게, 바보야! ……자, 땀 닦아"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는지, 갑자기 다정하게 내 머리를 벅벅 수건으로 닦기 시작한다.
"……미안"
"사과할 상대가 잘못됐어. 힛키가 늦은거, 모두가 도와준거 알지?"
유이가하마의 말에 나는 끄덕였다. 그 말대로였으니까.
――여름방학, 고백해준 그녀를 찼는데 변함없이 대해주는 바보이면서 다정한 여자애.
"……늘 고마워, 유이가하마"
"응, 천만에"
나는 유이가하마의 어깨를 톡 두드리고 더욱 안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인컴을 한 손에 들고 지시하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소녀――유키짱은 나에게 순간 시선을 주고, 인컴을 끊고 나를 돌아봤다.
"……이제 시작될거야"
"……아아, 다녀올게"
짧은 한 마디, 우리는 말을 나눈다.
유키짱의 한 마디에 얼마만큼의 마음이 담겨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 말을 했을 때,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았다는것 만큼은 확실히 알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 문화제를 마치고 오기 위해 무대로 향했다.
Epilogue.
엔딩 세레모니도 어떻게든 끝내고, 귀가 홈룸을 마치고, 나는 부실로 향했다.
가던 도중에 역할을 마친 제작물이 석양에 비춰지고 있다. 철거작업은 대체휴일을 보낸 화요일에 한다. 그 때까지는 기념물로서 학생의 추억에 더해질 것이다.
부실에 도착하니 아니나다를까, 이미 문은 열려있었다.
"여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부실 문을 열자, 눈에 들어온 광경에 눈을 빼앗겼다.
석양이 비치는 교실에 조용히, 펜을 굴리고 있는 소녀. 마치 그림같은 광경.
하지만 그녀는 살아있다. 이렇게, 나에게 미소를 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머, 지각가야잖아"
"그거, 말하기 힘들지 않아?"
가방에서 잔서류를 꺼내고, 평소보다 가까운 곳에 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가까워"
"괜찮잖아. 가끔은"
조금 삐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훗, 웃고 그대로 서류 정리를 계속했다.
서로 말없이 작업을 한다. 펜을 굴리는 소리만이 실내에 울린다.
갑자기 툭, 소리가 났다. 고개를 드니 유키짱이 펜을 두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진지 그 자체여서, 나도 무심코 자세를 고쳤다.
"……하치군, 전에 같이 잤던 날에 뭐라고 말했는지 기억해?"
"그래, 기억하고 있어"
『문화제가 모두 끝나고나서 부실에서 대답할게. 약속이야』
나는 확실히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온거야. 이 부실에.
"……아직 전부 끝난건 아니지만. 약속, 지켜도 될까?"
내가 말을 하자, 유키짱은 뺨을 붉히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엄청 기다리게 했으니까……더 이상 애타게 하지마"
나는 유키짱의 곁에 다가가, 앉아있는 그녀의 뒤로, 감싸듯이 껴안았다.
"읏!"
그녀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전해온다. 사랑스러움을 느끼면서 나는 한 마디, 이렇게 말했다.
"――나와 사귀어주지 않을래?"
그녀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