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 원작1권 분량 1
"봉사부에 어서와. 환영할게"
환영하는 느낌이 미립자 수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에게서 보여지는건 그런 명확한 거절이었다.
……아니, 솔직히 짐작 가는건 있다. 있지만 말야. 이렇게까지 거절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 마음이 꺾일것 같은데.
"입학 첫날부터 사고 일으켜서 솔직히 미안했다. 그거냐? 다치기라도 한거냐? 책임은 못 지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거라면 뭐든지 할게"
강제되었다고는 해도, 앞으로 이 방에서 나는 활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구성하기 위해서도 얼른 사죄해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귀찮은 일이지만, 나는 눈 앞에 있는 소녀――유키노시타 유키노――와 조금 인연이 있다.
뭐, 인연이라고 해도 입학식 당일 아침에 멍청한 사육주로부터 도망친 개를 구하기 위해, 차 앞으로 내가 뛰어들어서 내가 치여서 입원했다는것 뿐이지만.
입원실에서 보험을 위해 찾아온 하야마 라는 이름의 변호사, 그에게 받은 명찰에는 유키노시타 건설고문 변호사라는 직책이 쓰여 있고, 그걸로 그녀가 동승하고 있었다는걸 알았다.
교통사고여서 서류상으로는 차가 잘못했다는게 되지만,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뛰어든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런고로 퇴원하여 복학한 이래, 그녀에게 사죄하려고 생각했지만……. 뭐랄지, 학년은 물론 학교 전체에서 봐도 높은 수준의 미소녀인 그녀와 접촉하는건 꺼려졌다.
그치만, 이상하게 접촉하면 귀찮아질것 같았고.
"너, 내가 그 사고 당사자라는거 알고 있었어? 그 이전에 왜 네가 사죄하는걸까"
"알고자시고, 모르는게 더 무리있지. 사고 실황 검사는 보험회사 직원이나 본인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게 많이 있고. 애시당초 나한테 유키노시타 건설 고문변호사가 왔어. 그럼 아는게 당연하지. 그리고 사죄였나? 그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잘못했다. 솔직히 미안하다"
"……알고 있는 이유는 알았어. 하지만 역시 네가 사죄할 이유는 모르겠어. 설마, 그 사고의 영향이 머리까지……. 저기, 히키가야. 한번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는편이 낫지 않니?"
어째선지 무척이나 걱정받았다.
의미 모르겠네. 왜 당연한 소리를 한것 뿐인데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거냐, 나는.
"도로 교통법을 준수해서 평범하게 달리던 차 앞으로 뛰어나간거다. 내가 뛰어나가지 않았으면 사고가 일어났을리 없잖아? 그러니 내가 잘못한거다. 이상, 증명 완료"
"왠지, 너와 얘기 나누고 있으면 머리가 아파질것 같아……"
유키노시타는 이마에 손을 대고 머리를 흔들었다.
"딱히 상관없잖아. 그보다, 동승한것밖에 없는데, 운전한것도 아닌 너하고는 애시당초 관계없는 이야기지"
"관계라면 있어"
유키노시타는 일단 말을 끊고서,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본다.
"줄곧, 사고를 이용하여 내게 접근하겠다고만 생각했었는걸"
"……그러겠냐"
너 말야, 픽션 세계에 너무 끌려다니는거 아니냐?
현실에서 그런일이 있을리 없잖아.
"어머, 그러니? 스스로 말하는것도 뭐하지만 보다시피 미소녀고, 치바에서는 이름 있는 기업인 유키노시타 건설의 영애. 관계를 가지려고 하는게 평범한 발상이 아닐까?"
"우와아……"
예이예이, 그렇군요.
미소녀야. 확실히 미소녀지만, 스스로 말하는건 좀?
까놓고 말해 깬다.
"……그래서, 어떠니?"
내가 식겁한걸 눈치챘는지 볼을 붉힌다.
수줍어할거면 말 안하면 될것을.
"미안하지만 나는 자택경비원 지망이거든. 영애한테 메릿트를 느끼지 않아. 거기다 미소녀라는건 인정하지만 이상하게 관여하면 주위가 귀찮아질것 같다"
"흐-응. 요컨대 너에게 있어 내가 가진 스테이터스는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거니?"
"예스냐 노냐 묻는다먄 그야 예스다"
흐-응, 하며 뭔가를 생각하듯이 그녀는 뒤를 돌아본다.
아니, 보통이라면 다소나마 끌릴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공교롭게도 나는 보통이 아니다.
눈부신 스테이터스를 갖고 있으면 갖고 있는 만큼, 가능하면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나는 그 정도로 이상한 남자다.
"뭐, 직접 사죄하지 못했던걸 신경쓰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그것도 내 자기만족이다. 사과했다고 해서 사고를 일으켰다는것 자체가 없어지는건 아니니까"
내 말에 그녀는 침묵으로 대답한다.
얼마나 시간이 경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묵직한 분위기를 참지 못한 내가 귀가의 뜻을 전하려고 한 그 때, 뒤돌아본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이렇게 말했다.
"히키가야. 너, 나랑 친구하렴"
"친구……라……. 정중하게 거절하는건"
"당연히 안 돼"
내 말에 유키노시타는 미소지으며 대답한다.
방금전까지 있던 거절이니 경계니 어디건거냐, 너.
"아니, 내가 아니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그거다, 유키노시타 수준의 미소녀라면 말을 좀 걸면 얼마든지 다가올거 아냐"
그건 콜라를 마시면 거품이 나올 만큼 확실하다.
"다가오는 인재와 원하는 인재는 이코르가 아니야, 히키가야. 아아, 다가갈 수 없는 네게는 이해하기 힘들었구나. 조금……나의 배려가 부족했어, 미안해"
"정말로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나를 dis하는건 그만둬라. 뭐, 딱히 상관은 없지만. 그래서, 다가오는 인재가 없다고?"
친구가 되라는 요구에, 경어로 말하며 부드럽게 거리감을 내보았다. 허나 유키노시타의 dis에 그런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똑바로 말해, 보다시피 미소녀니까 다가오는 이성은 모두 내게 호의를 품고 와"
"꽤 있잖아. 그 안에서 적당히 골라"
"있잖아, 히키가야. 갑자기 이야기를 바꾸겠는데. 친구가 끊이지 않는 여자에게 인기많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니?"
"몰라. 친구가 있던적도 없으니"
엣헴, 하며 효과음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못 자랑스럽게 단언한다. 으스대지 않는 점이 나 나름의 장점이다.
애시당초 난 사회성 결여를 갱생하기 위해 여기로 끌려온거 아니었나? 친구가 없으면 모르는걸 물어보는 의미를 모르겠네.
"괜찮아, 히키가야. 앞으로는 내가 친구니까"
자애로 가득찬 표정으로 끄덕인다.
마치 양손을 움켜쥘 것 같은 기세다.
얼라, 나 왜 이렇게나 동정받는걸까. 이상한데, 눈에서 소금물이…….
"만약에……도 부족하겠네. 그래, 같은 반애라도 좋아. 같은반에 그런 남자가 있으면 어떡할거니?"
……만약이라는 상황마저도 친구의 존재를 부정당하는군요.
"그렇군, 같은 반에 그런 녀석이 있어도 별 생각 없어. 실제로 이름은 모르지만 같은 반에 비슷한 리얼충은 있지만, 진심으로 아무래도 좋으니까"
"너 같은 사람만 있으면 나도 평온하게 보냈을 텐데……. 하지만 보통 사람은 아니야. 정답은 배제하려고 한다야. 그야말로 짐승처럼. 내가 있던 학교는 그런 사람 투성이었어. 그런 행위밖에 자신의 존재의의를 보이지 못하는 가엾은 사람들이었지만"
정말로, 가엾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유키노시타는 눈을 내리깐다.
솔직히, 태어나서 이렇다할 호의라는걸 받아본 적이 없는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가지지 못했을 자각을 이른 시기에 가진 내게는, 그녀의 주위에 있던 선망, 배제하려고 한 사람들의 마음도 모른다.
그저 후자는 그렇다치고 전자, 유키노시타의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해도 상상은 할 수 있다.
그것이 그녀가 혼자 여기에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그게 왜 나랑 친구가 된다는거랑 이어지는거지? 그게 이유라고 해도 이해하기 힘들다만"
항간 보였던 그녀의 과거.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 나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묻는다.
"간단하잖아. 너랑 친구가 되도, 아무도 나를 부러워 하지 않을거 아니니"
생긋, 그 발언이 없었다면 무심코 사랑에 빠져버렸을 정도의 미소로 유키노시타는 대답한다.
그건 아니야-. 오늘 보는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여기서 보여주는건 아니야-.
"그렇군. 나랑 친구가 되었다고 한들 부러워 하는 놈은 없겠지. 그저 유키노시타랑 친구가 되었다는걸로, 나를 부러워 하는 놈은 속출할거라 생각한다만.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냐?"
"나랑 친구가 되는거니까 그 정도는 달게 받아들이렴. 그리고 그 사실을 가슴에 평생 담고 살려무나"
어째서. 왜 이 아이는 이렇게나 자신감 넘치는거야? 이젠 싫다, 하치만 집 가고 싶어.
"정중하게 거절하겠"
"응, 그거 무리"
"에- 아직 마지막까지 말 안했는데-"
나 같은거랑 친구가 되는데 그렇게 단고한 결의를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데-.
부장이랑 부원 사이로 만족해둬.
유키노시타! 쓸데없는 배려라구요, 쓸데없는 배려!
"히키가야, 아까 뭐든지 한다고 했지? 얌전히 포기하렴"
그렇게 말하며 미소지은채로 내 얼굴로 다가온다.
가까워, 무서워, 왠지 좋은 냄새가 나. 하지만 역시 무서워.
미소라는건 원래 공격적이니까, 응.
힘없이 고개를 떨군 내게 만족했는지, 해냈다, 라며 작게 승리포즈를 취하면서 떨어져간다.
따, 딱히 그런 몸짓이 조금 귀엽다고는 전혀 생각 안했거든.
"그리고 히키가야, 나를 부를때는 유키노면 돼. 뭐라고 할까, 너한테 유키노시타라고 불리는건 닭살이 돋는다고 할까……솔직히 불쾌해"
전언철회. 역시 이 녀석, 귀엽지 않아.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2
"너는 그거냐, 조리실습에 무슨 트라우마라도 있는거냐"
조리실습을 수패에서 묘지에 버리고, 보충수업 레포트를 필드에 특수소환!
……교무실로 호출당했습니다.
"선생님은 현대국어 담당이었던게……"
"너도 알다시피 가정과는 츠루미 선생님의 담당이다. 생활지도 담당인 나한테 몽땅 떠넘겼다"
문득 교무실을 돌아보니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차를 마시는 츠루미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생활지도 담당에게 몽땅 내던지다니, 마치 제가 문제아 같잖습니까, 싫다-.
"그럼 조리실습을 땡땡이 친 이유를 들어볼까. 간결명료하게, 요점만 말해라"
"비협력적인 수업태도보다, 레포트 제출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로 제 정신 안녕적인 의미로"
"네 정신적 안녕은 아무래도 좋다. 수업으로서 하는 이상 참가하는건 의무일텐데"
"아니, 생각해보세요. 평소 전혀 연관성이 없는 저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모르는 반 급우들, 거기에 어떻게 지도하면 좋을지 모를 츠루미 선생님. 제가 실습을 땡땡이 친것으로 그 정신적 부담이 사라진다는건 일석이조는 물론이거니와 삼조가 됩니다. 그럼 언제 땡땡이 치겠습니까? 지금이잖아요!"
내가 말을 끝내는것과 동시에 두부에 충격이 흐른다.
"그런건 궤변이라고 하는거다. 정말이지, 너는……"
"아으윽. 폭력은 그만하세요, 선생님"
"폭력이 아니라 사랑의 채찍이다. 뭐, 네가 말하는 이유 되지도 않는 이유는 이제 됐다. 그래서, 네가 쓴 이 레포트 말인데"
"맛있는 파이네스 호호츠 아이스 듀플레 미트 블레이트 슈트르델 운트 아이아슈티히의 작성 리포트 말인가요?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읽을거라고 알고 있어서 다른 요리를 제재로 해봤는데요"
"히키가야. 너는 나한테 시비걸고 있는거냐? 시비걸고 있는거지?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
파이네스 호호츠 아이스 듀플레 미트 블레이트 슈트르델 운트 아이아슈티히랑 독일 결혼식에서 먹을 수 있는 수프의 이름이며, 솔직히 임팩트 만으로 제재로 골랐다. 크와트로벤티 엑스트라 커피 바닐라 캐러멜 헤즐넛 아몬드 엑스트라 호입아드치퓌즈 초콜렛 소스 위즈 캐러멜 소스 애플 크램블 플라페티노 둘 중에 어느걸 할까 망설였지만, 후자는 요리가 아니어서 그만뒀다.
"죄송합니다. 다시 제출할테니까 용서해주세요"
히라츠카 선생님이 읽는다면 가정에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팡체터 작성법이면 되나. 술 안주로도 좋을테니.
"히키가야, 너는 요리 할 줄 아는거냐?"
"네, 아무튼 못한다고는 입이 찢어져도 못할 정도로는 합니다"
"평소 의욕없는 생활태도로부터는 상상도 가지 않는군. 뭐냐, 자취라도 하고 싶은거냐?"
"자취를 하고 싶은게 아니라, 저 같은 사회부적합자는 필연적으로 혼자 살게 되잖습니까. 그렇게 되면 식생활을 포함한 몸 관리를 하지 않으면 고독사가 무섭다구요"
히라츠카 선생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진심으로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고독사를 걱정하는건 고등학생이 할 생각이 아니잖아. 그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명확한 장래 전망은 있는거지? 말해봐라"
허나 거절한다! 라고 지껄이 날에는 현대국어 교사로부터 (물리) 교사로 클래스 체인지를 하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아서 체념하고 솔직하게 말한다.
"우선 일류라고 하는 대학에 진학하잖습니까"
"뭐,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너는 일단 학년수석이니까. 뭐, 가능하겠지. 그래서?"
"졸업후에는 적당하게 페이퍼 컴패니를 일으켜서 서류상으로는 사장으로. 그걸로 부모님을 안심시킨 후에는 적당하게 알바라도 하면서 살겁니다"
실제로는 유키노시타 건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토대로 긁은 복권으로 1등 당첨한 돈이 있으므로 알바를 할 필요도 없지만, 여기서 가르쳐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말해준 상대도 없으므로 이걸 알고 있는건 나 말고는 없다.
"요컨대 그거냐. 네가 학년수석인건 그런 썩어빠진 장래설계로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 하나를 위해서 됐다는 소리냐"
"Exactly(그 말대로입니다)"
"부모님을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한다. 그것만 들었으면 좋았는데……"
"일류 대학을 나와서 기업을 해서 사장직에 있으면 그런대로 세간 면목은 서니까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미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힘낼겁니다"
그런 내 말에 또 깊은 한숨을 쉬는 히라츠카 선생님.
한숨을 쉬면 복이 달아나는 모양이에요. 달아날 수준의 복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그걸 들으니 봉사부에 입부시킨건 실수가 아니라고 확신이 든다. 너는 거기서 그 글러먹은 배려 방향을 고쳐야겠다"
그런 말과 함께 다정한 눈초리를 이쪽으로 보낸다.
에- 어쩐지 원만한 퇴부 길이 허들이 올라가버렸는데요-.
그걸로 이야기는 끝난 모양이라 퇴거의 뜻을 전하고 내가 강제입부된 수수께끼의 부활동, 봉사부로 향한다.
솔직히 가고 싶지는 않지만 안 가는 편이 디메릿트는 더 많아 보이고.
그러고보니 친구발언 임팩트가 너무 커서 부활동 내용을 듣지 않았다.
아직 미지인 부활동 내용이 내게 다정한거라면 좋겠는데.
부실에 도착하니 여느때처럼 유키노는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호칭에 관해서는 본인이 그렇게 불리기를 원하는 이상 저항하는건 그만뒀다. 뭐, 이 부실 이외에서 이 녀석과 얽힐 일은 없을테고, 여기서 호칭은 어떠한 호칭이든 문제 없을거라며 스스로에게 말한 결과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며 그녀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는다. 그리고 몇 권의 책을 가방에서 꺼내려고할때, 문득 깨닫는다.
결국, 여기는 뭐하는 부야? 라고.
입부할때 그녀의 설명으로는 고귀한 유키노시타양이 미천한 우민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부, 라는 정도로 밖에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부로서 정식으로 인정받아, 부실로서 빈 교실을 점거하고 있는 이상, 좀 더 제대로된 내용이 있을 것이다.
뭐, 부장님이 독서에 힘쓰고 있는 이상, 평부원인 내가 신경쓸일도 아니겠지만.
생각해봐도 해답이 없는건 생각하지 않는다. 쓸데없는건 극력으로 하지 않기에 실로 환경친화적인 나, 멋지다.
허나 그런 뒤로 미룬 대답은 갑작스럽게, 미약한 노크 소리와 함께 찾아왔다.
"들어오세요"
책에 책갈피를 끼우면서 유키노가 말한다.
"시, 실례합니다"
긴장했기 때문일까 약간 들뜬 목소리.
문이 열리고 살짝 빈틈이 열린다. 거기서 몸을 밀어넣듯 그녀는 들어왔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이는걸 꺼려하듯이.
뭐, 이러한 뭘 하고 있는지 모를, 수상쩍은 부의 부실로 당당하게 들어올 녀석은 없겠지.
차분하게 주위를 돌아보는 그녀의 시선이 입부하고나서 첫 내방자가 되는 인물을 쳐다보는 나의 시선과 부딪치고, 힉, 하며 작은 비명소리가 나온다.
노려보고 있는거 아닌데…….
"왜 힛키가 여기에 있어?"
"왜냐니, 부원이니까"
나와 눈이 마주친 이상, 힛키는 나를 가리키는 말이겠지. 그보다, 왜 나를 알고 있는거야?
솔직히 눈 앞의, 무척이나 청춘을 즐기고 있습니다, 라는 소녀는 낯이 없다.
허나 그늘음의 히키가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를 알고 있는 태도의 그녀에게 '죄송합니다, 누구십니까?' 라고는 물을 수 없다.
나도 그 정도의 배려는 할 줄 안다.
"괜찮으면 의자에 앉으세요"
생각하길 포기하고 아직 쭈뼛거리는 그녀에게 의자에 앉기를 권유한다.
"아, 고마워……"
권해진 채로 그녀는 의자에 앉았다.
긴장했기 때문일까 부들부들 떠는 모습은 실로 작은 동물 같다.
"유이가하마구나"
"아, 나를 알고 있구나"
유키노가 이름을 알고 있는게 기뻤는지, 여기와서 처음으로 미소를 짓는다.
"너 잘도 알고 있구나. 설마 학교 모든 학생의 이름 외우고 있냐?"
"그럴리 없잖니. 오히려 왜 너는 그녀를 모르는거니"
이쁜 눈을 반쯤 감아 도끼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유키노.
치워라. 그렇게 쳐다보지마. 부끄럽잖아.
"그야 내가 혼자 있으니까 당연하지. 오히려 내 안에서 이름과 얼굴이 일치하고 있는건 유키노 뿐이다. 그보다 자연스럽게 내가 모른다는거 까발리지 마"
그, 그러니. 라고서 기뻐해 하지마. 딱히 명예스럽고 자시고 아니잖아.
"나 모르는구나……"
"아니, 이건 그 뭐냐……"
내가 모른다는것을 슬퍼하고 있다는, 내 인생에 아직 전례없는 경험에 무심코 허둥댄다.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유키노가 도와준다.
"괜찮아 유이가하마. 이 남자는 혼자 있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남을 기억한다는 동물도 할 수 있는 행위를 상실해버린것 뿐이니까"
그러고서 고개를 숙인 유이가하마에게 다가가, 그 등에 손을 올린다.
"아니, 그게……왠지 미안"
"자, 그럼 똥개가야는 나중에 벌을 주기로 하고, 일단 나가주지 않겠니. 그렇구나……사죄 의미도 담아서 음료수라도 사오겠니"
매도당하며, 퇴장당한데다 벌까지 주는겁니까. 내 업계에선 포상이 아니라고, 그거.
하지만 뭐, 도와준것도 사실이다.
유키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얌전히 음료수를 사러 나가려고 하는 내게 유키노가 말한다.
"히키가야, 나는 야채생활이면 돼"
어, 사죄에 네 몫도 들어 있는거냐?
유키노가 희망한 야채생활이랑 유이가하마에게는 레몬티라는 비교적 무난한 것들을 사서 느릿하게 부실로 돌아온다.
그러고니 그녀는 결국 뭐하러 온걸까.
"이야기는 끝났냐?"
야채생활을 양손에 들고 쪽-쪽- 마시는 유키노에게 묻는다.
이 녀석, 입다물고 있으면 정말로 미소녀구만. 입을 열면 나에 대한 욕밖에 하지 않지만.
"그래, 네가 없는 덕분에 실로 부드럽게 끝났어"
"그거 다행이군. 그럼 사죄도 건냈으니 난 집에간다"
"기다리렴 히키가야. 그녀는 우리 봉사부에 의뢰하러 온 사람이란다? 부원으로서 상담을 듣지 않고 어쩔 심산이니"
"아니, 애시당초 나는 이 부가 뭘 목적으로 하는 부인지 모른다만"
"정말이지 기억력이 나쁘네. 봉사부란 의뢰자의 고민에 방법론을 주어 자립을 촉구하는거야"
스켓트단이군요. 압니다.
"오K, 파악. 요컨대 내가 집에 가기 위해서는 유이가하마의 고민을 해결하면 되는거지"
"알아줬으면 그거면 돼. 그저 너는 집에 가는거에서 좀 떨어지렴"
"왠지……즐거워보이는 부활동이네"
내가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걸 보고 그 감상은 아니잖냐.
뭐야, 이 아이 M이야? 따, 딱히 바꿔줘도 괜찮거든.
"그래, 즐거워. 친구와 대화하는게 이렇게나 즐거울 줄은 지금까지 몰랐는걸"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건 너 뿐이고, 나는 즐겁지 않지만 말이다"
매도당하기만 할 뿐이고. 난 M 아니고. 포상 아니거든.
"왠지, 극히 자연스러워서 좋겠다- 해서. 힛키도 반에 있을때하고는 완전 다르고. 제대로 말하는구나, 싶어서"
"그야 말할 상대가 없으니까. 아무리 나여도 공기 친구는 없다"
"에- 괜찮잖아. 반에서도 좀 더 말하자. ……나도 있고"
"아니, 애시당초 유이가하마가 어디 반인지 모르는데"
"히키가야, 유이가하마는 F반이야"
"어라……몇학년?"
"2학년인게 당연하잖니. 그 정도는 문맥으로 이해하렴. 아니면 그것마저도 모르는거니"
같은 반……이라고…….
우리 반에는 여자가 있고 남자가 있고……아, 글렀다. 전혀 기억에 없다.
"뭐, 뭐어 그거다. 상담내용은 뭐였지?"
"화제돌리는 방법이 너무 서툴러, 히키가야. 아까전과 병용해서 페널티 2개째야"
"늘리는거냐!"
"그녀는 수제작 쿠키를 먹어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야. 그저 자신이 없으니까 도와줬으면 싶다는게 그녀의 의뢰야"
"무시하냐! 그보다 왜 우리들이 그런걸……. 친구한테 부탁해. 이상 의뢰 완료"
"그건 그게……, 그다지 알려지고 싶진 않구……. 이런거 알려지면 바보취급 당하구……. 이런 성실한 분위기는 친구들이랑 안 어울리니까……"
무심코 한숨을 쉰다.
그보다 왜 내가 남의 연애길 같은 지극히 아무래도 좋은 일에 말려들어 있는거지.
"있잖냐, 유키노. 나는 몰랐지만 친구가 있으면 자신의 행동이 제한되는것 같다. 그러니까"
"괜찮아 히키가야. 나는 너를 배려해서 행동을 제한하지는 않으니까. 거기다 너도 가끔이라면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아"
"하하하, 유키노는 상냥한 녀석이구나-"
왜 이 아이는 이렇게나 완고한걸까.
뭐, 그건 그렇다치고.
"있잖냐, 유이가하마"
"역시, 이상하지. 나같은게 수제작 쿠키라니. 무슨 소녀스러운 짓을 하는거람. ……미안 유키노시타, 역시 됐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딱히 상관없지만……. 뭐, 그를 신경쓸 필요는 없어. 인권 따윈 없으니까 강제적으로 돕게 할거란다"
일본국민은 헌법 아래 기본적으로 인권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거 중요합니다.
"아냐 괜찮아. 왜냐면 나한테 안 어울리는걸. 수제작 쿠키같은거, 요즘 유행하지 않으니까……"
뭘까, 이 그런거 아니야, 라고해줬으면 싶은 분위기. 무진장 귀찮으니 집에 가고 싶다.
"어째서 거기서 포기하는거야!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해낸다, 해낼거야! 힘내라, 힘내! 목표가 거"
"히키가야, 시끄러워"
아, 네.
"방금 그건 솔직히 좀 우스갯소리였지만, 2차원이 아니니까. 성격에 맞으니까 하면 된다거나, 하면 안 된다고 딱히 생각할 필요도 없잖아. 유이가하마가 하고 싶으면 하면 돼. 그걸 응원하는게 봉사부니까. 아마도"
"아마도, 라니 힛키. 거기선 단언을 해. ……그치만 고마워. 역시 다정하구나. ……응, 나 힘내볼게. 유키노시타도 잘 부탁할게"
"그런데, 쿠키 만드는거 돕는다고 했지만 어디서 할 생각이냐?"
봉사부는 극히 일반적인 교실을 사용하고 있고, 당연히 조리기구 등이 있을리도 없다. 요컨대 교내에서 할 수 있다면 제대로된 준비가 있는 가정과실을 빌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 그런가……그야 그렇네. 미안, 나 전혀 생각 안했어"
뭐, 방금전까지 한다 안한다 망설이던 유이가하마니까 당연히 그런 계획성을 했을리도 없다. 봉사부의 활동은 갑자기 암초에 올라간 형태다.
역시 집에 가도 되지, 나.
"그렇구나……지금부터 가정과실의 사용허가를 구해서, 그리고나서 재료를 사러 가게되면 시간이 너무 걸리겠구나"
"그보다, 그거다. 가정과실에서 할거면 난 패스다. 조리실습 땡땡이 쳐놓고 쿠키 같은걸 만들면 츠루미 선생님한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니까"
그런 나의 지극히 정당한 의견에 어째선지 유키노가 겁모르게 웃는다.
"그런데 히키가야. 네 집에서 쿠키를 만들 만큼의 조리기재는 있니?"
"그야 있다만. 억, 설마 우리집에서 하겠다는거냐?"
"그래. 그치만 네 고집으로 가정과실을 쓸 수 없잖니? 그럼 장소를 제공하는게 당연하지"
"너네 둘이서 자기 집에서 하면 되지 않냐? 그러면 나 집에 갈테고"
"어머, 거부권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거니"
얘, 히키가야. 라며 짖궂은 미소를 짓는 유키노.
그러고보니 나 인권 없었지. 그야 거부권도 없는거겠네요.
자, 이러저러해서 우리 집에서 쿠키 제작을 하게 되었지만, 딱히 이건 미소가 무서워서 그렇게 된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집에서 한다는건 얼른 집에 가고 싶다고 하는 내 목적이랑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전술 수준으로는 패배일지도 모르지만, 전략수준으로는 승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패배를 알고 싶다.
"가르쳐주는건 귀찮으니까 내가 쿠키를 만들고 그걸 유이가하마가 만들었다고 하고 건내면 되지 않냐?"
"안 돼, 히키가야. 그건 봉사부의 이념에 위반돼. 우리들의 활동은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것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지, 결코 먹을 것을 주는게 아니야. 결과가 아닌 과정이 중요해. 그런 기회주의 적인 뇌에 잘 새겨두렴"
"그치만 여긴 우리집이고. 기재의 장소는 내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다, 설명도 귀찮고"
"힛키가 만들면 의미 없어. 거기다 힛키가 힘내라고 응원해줬으니까 끝까지 가르쳐줘-. 그보다, 왜 힛키는 쿠키를 만들 줄 알아?"
안 됐지만, 그건 응원한게 아니다. 의역하자면 우물쭈물 거리면 귀찮으니까 할건지 말건지 얼른 정해라, 였다. 아니 그보다도,
"얕보지 마. 쿠키 정도는 평범하게 만들 수 있어. 우리집은 맞벌이니까 어렸을때부터 내가 밥을 만들었어. 사랑하는 우리 동생을 위해서 보존료, 합성착색료 첨가된 과자를 맛보게 해주고 싶었으니까. 과자 실력도 상당하다고 자부하고 있다. 뭣하면 지금까지 만든 과자를 종합해서 보여줄까?"
동생의 미소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힘낸다. 그것이 오빠라는겁니다. 네.
"힛키는 시스콘이야? 좀 깬다"
"히키가야, 근친상간은 사회 통념상 허락되지 않는다는건 알고 있지? 통보당하고 싶니?"
"오빠로서 당연한 일을 한것 뿐이다. 그러니까 유키노, 휴대폰에서 손 떼라. 응?"
뭐야 이 애들, 지친다. 작업이 되질 않는데.
"있잖냐, 유이가하마. 그 쿠키를 건낼 상대가 좋아하는 기호 알고 있냐?"
얼른 집에 갔으면 싶으므로 억지로 화제를 원래대로 돌린다.
모처럼 만드는거니 상대의 취미기호에 맞추는 편이 기쁠 것이다.
"으응. 전혀 몰라. 그보다 지금까지 한번도 대화한 적이 없어……"
"그러냐. 그럼 지장없는 간단한 편이 좋겠지. 이거는 어떠냐?"
그리고 기동한 태블릿PC 화면에 쿠키 레시피를 불러서 유이가하마에게 보여준다.
그보다 이거, 유키노 필요없지 않냐? 아니, 단 둘이 있게되도 곤란하다만.
"어떠냐고 해도 잘 모르겠는데……. 응, 그치만 힘내볼게, 힛키!"
"그럼 이거로군. 그보다 유이가하마, 너 평소 요리는 하냐? 뭐, 부실에서 하던 말을 들어보면 기대는 못하겠지만 일단 물어두마"
"힛키, 실례야! 이래봬도 언제나 엄마가 밥 만드는거 보고 있어!"
그건 안한거나 마찬가집니다.
"응, 방향성이 보였다. 너는 그거다. 왜 레시피가 있냐, 왜 레시피대로 만들 필요가 있냐를 가르치는데 부터 시작해야겠군"
요리라는건 화학 실험과 마찬가지로 올바른 수순을 밟고 가면 그리 실패하지는 않는다. 그럼 왜 실패를 하는가?
뭐, 대답은 간단하게, 단순히 올바른 수순에서 벗어난것 뿐이다.
이렇게 하는 편이 맛있어지는게 아닐까, 등 이상하게 오리지널리티를 넣으려고 하면 대개 실패한다. 그야 완성형을 모르는데 도중에 손을 가하면 성공할리도 없다. 허나 평소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마저도 모르는 모양이다.
따라서 우선 유이가하마에게 레시피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 다 됐다"
"뭐, 조금 탄 흔적이 있긴 하지만 처음 만든거라면 이런거겠지. 잘 했다고 생각한다"
"고마워, 힛키. 그보다 아까부터 힛키는 뭘 만들고 있는거야? 왠지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나는데"
"아아, 동생 간식으로 캐러멜을 만들었어. ……좋아, 이거면 되겠지"
"캐러멜은 그거지? 그 뭐시기 목장에서 유명한거. 평범하게 만들 수 있구나-"
"재료를 재서 섞기만 하면 될 뿐이다. 의외로 간단하다고? 불 조절을 잘못하면 식감은 나빠지지만 맛은 변함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캐러멜을 화로에서 내린다.
냉장고에서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꺼내어 틀에다 넣고 갓 완성되어 아직 굳지않은 캐러멜을 붓는다.
"자, 쿠키를 잘 만든 보상이다. 동생의 간식을 먹을 권리를 주마"
"어머, 히키가야. 내 몫은 없는거니"
"너는 카마쿠라랑 놀던것 뿐이잖아! 아니 뭐,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가정 부엌에서는 세 명이서 작업할 수 있을리 없어서 지도역 나, 학생역 유이가하마가 되니, 유키노가 따돌려지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따돌려진 유키노로 말하자면 처음에는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우리집의 사랑스런 고양이 카마쿠라를 발견하고는 그저 놀고만 있었다.
……뭐하러 온거야.
"고양이는 좋네. 정말로 사랑스러워. 사랑하고 있으면 평소 입장이나 지위나 모두 잊어버려. 그런 느낌마저 들어"
"유키노, 네가 중도의 고양이 지상주의자라는건 잘 알았다. 알았으니까 먹을때는 카마쿠라한테 눈을 떼라. 입가가 더러워진다"
입에서 흐른 아이스크림을 휴지로 닦아준다.
……아니, 나 여태까지 이렇게나 남과 관여한 적이 없었으니까 동생을 대할때랑 같은 감각으로 한것 뿐이고. 그러니까 유키노, 그렇게 얼굴 붉히며 화내지 마.
"므-. 왠지 치사해. 힛키, 나도 닦아줘!"
아니, 치사하다니 의미 모르겠네. 애시당초 이젠 유키노 얼굴 더럽지 않잖냐.
"평생의 실수야……"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앞으로는 아이스크림 정도는 제대로 먹어라. 해준건 나지만 말려든 느낌이 엄청 드니까"
"어머, 실수이긴 실수이지만, 히키가야 따위가 내게 도움이 된거니까 영광스러운 일이잖니? 무릎꿇고 감사를 받고 싶을 정도야"
예이예이, 그렇네요.
"왠지 좋다-"
""어?""
"왠지 유키노시타도 힛키도 되게 자연스러워서. 서로 생각한걸 솔직하게 말하는, 신뢰관계? 라고 하면 될까. 왠지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
"유이가하마, 나는 이 남자에게 생각한걸 그대로 말하는것 뿐이지만. 그게 왜 그렇게 되는거니?"
"확실히 생각한걸 지나치게 그대로 말하고, 꽤 심한 소리를 해서 솔직히 좀 깨긴 해. 하지만 그건 분명 생각한걸 솔직히 말해도 괜찮다고 하는, 둘 사이의 관계가 있으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해. 나 말야, 둘 모두 학교에서 눈치챘을거라 생각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친구들의 시선같은걸 되게 신경쓰거든. 하고 싶은 말을 좀처럼 못해. 그러니까 둘의 관계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서, 조금 부러워"
뭘 착각하고 있는거냐, 이 벌레……실수.
이 녀석은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걸까.
뭐, 확실히 유키노가 자유로운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유키노가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건 신뢰라는걸 전제로 한것은 절대로 아니다. 단순히 나의 무시 스킬이 카운트 스톱하고 있을 뿐이다.
"뭐라고 할지, 친구가 있던 적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있으면 있는대로 귀찮으니까"
문득, 일방적이라고는 해도 나의 첫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유키노를 본다.
언젠간 나도 유이가하마처럼 그녀의 시선을 신경써서 고민하는 날이 오게 될까.
"괜찮아, 유이가하마. 나도 생겼으니까, 언젠간 분명 너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길 날이 올거야. 그렇구나……이 남자 빌려줄테니까, 우선 하고 싶은 말을 연습해보면 되지 않겠니"
언젠간 분명. 내 시체를 밟고 가라.
그보다, 언제부터 너는 내 소유권을 갖고 있던건데.
"으, 응. 고마워, 유키농. 나 힘내볼게"
아, 이상한 스윗치 들어가버렸구만, 이거.
잘 됐군, 유키노. 지금 발언으로 유이가하마의 너에 대한 호감도는 일정수치를 넘은 모양이다. 나를 빌려준다는 허가로 넘어가버린건 좀 불본의하지만.
"그래, 힘내렴. 그리고 유키농이라는건 나를 말하는거니. 솔직히 그 호칭은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안습, 유키농.
"저기 힛키"
허둥대는 유키농을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어느샌가 아까 구운 쿠키를 든 유이가하마가 다가온다.
뭐냐? 비닐 담아달라는거냐? 공교롭게도 지금 우리집에 있는건 동생 몫의 귀여운 비닐 밖에 없으니까, 남고생에게 건내기에는 뼈아플거라 생각한다.
"굉장히 늦어버렸지만, 사브레 구해준거 고마워"
"하? 너 무슨 소리 하는거냐? 쿠키를 건내고 싶은 상대가 나냐? 그보다 사브레는 뭐냐. 의미를 전혀 모르겠네"
지……지금 일어난 일을 말하겠어! '나는 쿠키 만드는걸 돕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샌가 건내받았다' 무……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무슨 짓을 당한건지 몰랐다.
갑작스런 유이가하마의 행동에 무심코 폴나레프와 겹친다. 그런 상황을 읽은건지 유키노가 보충설명을 해줬다.
"기막혀. 너, 정말로 둔하구나. 조금 생각하면 알거라 생각하는데. 왜 내가 유이가하마를 알고 있었는가. 왜 유이가하마가 사회부적합자인 너를 알고 있었는가. 나오는 길은 하나밖에 없잖니"
"요컨대 입학식때 내가 구한 개의 주인이 유이가하마였다. 그거냐?"
"어머, 겨우 깨달았구나. 너무 늦어 둔탱가야"
"그러고보니 나 개가 있어서 뛰어나간거였지. 솔직히 잊고 있었다"
"히키가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왜 잊어먹은거야, 힛키! 사브레 구해줘서 나 정말로 기뻤는데"
"에, 왜 내가 힐책당하는거야? 그보다 잊고있던 내가 말하는것도 뭐하지만, 새삼스럽지 않냐?"
뭐……유키노에게 한 사죄가 얼마전이었다는걸 생각하면 남 말은 결코 할 수 없는 내가 있다.
"그치만…… 힛키 언제나 혼자 있고. 어쩌면 사고로 학교를 쉬던 탓에 그렇게 된걸까 생각했어. 좀처럼 말걸기 힘들어서……"
"그런거 신경쓰고 있었냐. 그거다. 오히려 고립할 조건이 갖추어져서 그건 꼭 껴안고 뺨에다 키스를 해주고 싶을 정도로 나는 감사하고 있다고"
입학후 그룹이 생기는 과정에서 혼자가 되기보다, 그룹이 다 만들어지고나서 혼자가 되는 편이 훨씬 편하다. 내게 있어서도, 주위에 있어서도.
"왜 힛키가 감사하는거야! 반대야 반대! 내가 힛키에게 감사하는거야!"
에, 꼭 껴안고 뺨에다 키스해줄거야? 뭐야, 그 포상.
"감사 같은거 필요없어. 저건 몸이 멋대로 움직인것 뿐이다. 그렇군……굳이 이유를 달자면 나에게는 보험이 붙지만, 개에는 보험이 붙지않는다. 그 정도 일이지"
감사받고 싶어서 한것도 아니고, 까놓고 말해 아무래도 좋다.
"그보다, 스스로 만든 쿠키를 답례로서 받는건, 어떤 대응이 정답인거냐? 너무 참신하잖냐"
"이 정도 임팩트 있는걸 하지 않으면 광고쪼가리 뒷면 이하의 기억용량 밖에 갖지 못한 네 뇌로는 기억할 수 없잖니"
"아니, 평범하게 건내받아도 잊지 못하거든. 뭐, 어느정도 음모를 의심하겠지만"
"부실에서 힛키가 없는 동안에 유키농이 말야, 가르쳐줬어"
"그바도, 해결방법이 지나치게 엉뚱하잖냐……"
요컨대 쿠키 만들기 도와달라는건 더미였고, 진짜 의뢰는 인상적인 답례 전달방법이었다는 소리다.
머리 아파라…….
자, 날이 밝고서 다음날이다.
겨우 봉사부의 활동내용을 이해한 나는 여전히 부실에서 독서에 힘쓰고 있었다.
그리고 훌륭하게 나를 속여준 부장님으로 말하자면, 역시 그녀도 독서에 힘쓰고 있었다.
특별히 간섭해오는것도 아니라, 상대의 공간을 존중하듯이. 그런 분위기가 무척이나 편안하다.
그녀의 친구감이 어떠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거리감이 그녀의 생각에 의한것이라면, 그녀와 친구라는 관계도 의외로 나쁘진 않을지도 모른다.
"얏하로-"
그런 평온한 공간에 경박한 인사와 함께 유이가하마가 찾아온다.
"……뭐니?"
착실하게 책에 책갈피를 끼우면서 불쾌감을 감추려고 하지 않고 유키노가 묻는다.
……에, 니들 어제 무진장 사이 좋아 보였잖아. 왜 그렇게 싫어하는데? 지금 좋은 장면 아니었냐?
"에……왠지 환영받지 않네? 유키농, 나 오면 안 돼?"
"그런건 아니지만……. 그저 일단 부로서 하는 부활동이니까. 용건이 있으면 안 된다고는 하지 않아"
"용건 있어! 완전 있어! 있잖아, 어제 유키농 덕분에 제대로 힛키에게 답례할 수있었는데, 이번에는 유키농에게 답례하지 않았구나, 싶어서"
그렇게 말하고 유이가하마는 가방에서 귀여운 꾸러미를 꺼내어 유키노에게 건낸다.
"자, 쿠키. 어제 집에가고 나서 이번에는 혼자서 열심히 만들어봤어. 어제는 고마워, 유키농"
"고, 고마워"
몸을 던져 개를 구한 내게는 내가 감독한 쿠키고, 인상적인 답례 전달법을 연출한 유키노에게는 완전 수제 쿠키.
굉장히……차이가 있습니다…….
"왠지 말야-, 요리라는건 의외로 즐겁네. 다음에 도시락이라도 만들어볼까나-. 그래서 말야, 유키농 같이 점심 먹자"
"미안해. 나 평소에 히키가야랑 점심 먹고 있으니까. 유이가하마랑 점심을 같이 먹으면 그가 혼자가 되어버리잖니"
그 히키가야 뭐시기는 당신의 상상속의 인물 아닙니까?
그보다, 그런 소리를 하면,
"에-.힛키 언제나 점심때 없어진다고 생각했더니, 유키농이랑 같이 있었어? 치사해! 나도 같이해-"
거봐, 말려들었다.
"그리구 말야, 나 방과후에 완전 한가하니까, 부활동 도울게. 아니- 그 뭐냐? 이것도 답례? 답례니까 신경쓰지 마"
"저기……유이가하마?"
아무래도 유키노는 밀어붙이기에 굉장히 약한 모양이다.
순수한 호의를 향하는 유이가하마에게 완전히 페이스를 잃고 있다.
뭐, 분명 지금까지 유키노의 주위에는 없었던 타입일테고, 그것도 어쩔 수 없겠지만.
"앞으로 잘 부탁해! 힛키, 유키농"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3
4교시 끝을 알리는 종이 운다. 시각은 12시 점심시간.
평소라면 수제작 도시락을 들고서 혼자서 조용히 도시락을 먹는 베스트 스팟을 향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앞으로는 그러지 못한다. 오늘부터는 유키노들과 같이 부실에서 도시락을 먹게 됐기 때문이다.
뭐……날씨 기온 온난에 좌우받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게 된건 좋지만, 라며 억지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린다.
이 폴리안나나 나냐 하는 긍정적인 마인드, 싫지 않다.
자, 나의 휴식 시간을 뺏은 원흉인 유이가하마로 말하자면, 느긋하게 교실 뒷편에서 친구들과 잡담중이다.
불러놓고 잡담중이냐니 뭐야? 라던가, 나 배고픈데? 라고 하고 싶은 말은 엄청 있지만, 얼마전 이야기를 듣건데 그녀를 둘러싼 인간관계라는건 꽤나 복잡기괴한 모양이라서 꾹 삼켜둔다. 가능하면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 저 녀석, 같은 반이라고 했던거 사실이었군.
유이가하마는 내버려두고 약속 장소로 먼저 가도 상관없지만, 거기서 유이가하마 올때까지 유키노와 단 둘이 있게되는건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그치만, 그 녀석 나 보면 반드시 폭언을 내뱉으니까.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나이기에, 유키노의 폭언은 산들바람 정도 밖에 생각하지 않지만, 뭐, 피해서 나쁠 일은 없을 것이다.
덧붙여 내가 신경쓰는건 사랑하는 코마치의 평가 뿐이다.
그런 멈추지 않는 생각을 하면서 잡담중인 유이가하마에게 시선을 주니,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있잖아……, 나 점심에 가야할 곳이 있어서 좀……"
나의, 이쪽은 배고프다고! 40초내로 정리하고 나와! 라는 뜻을 섞은 시선을 눈치챘는지, 겨우 빠져나오려고 하는 의사를 보인다.
"아, 그래? 그럼 돌아올때 그거 사와. 레몬티. 나아 오늘 음료수 사오는거 깜빡했거든. 빵이라서 음료수 없으면 힘들잖아"
"그, 그게……말야, 나 돌아오는거 5교시 되기 전이라고 할까, 점심시간 통째로 빼먹을거니까 그건 좀 어떨까 싶은데"
"어? 진짜? 근데 유이 요즘 그러면서 방과후에 혼자 빠지지 않아? 요즘 우리랑 안 어울리는거 아냐?"
"아니, 그게 말야. 하지않으면 안될 사정이 있다고 할까…….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따로 있고 싶다고 할까……"
갑자기 이상한 일본어를 쓰면서 유이가하마가 변명한다.
유이가하마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금발의 친구가 노골적이게 기분 나쁘다는 듯이 손톱으로 책상을 두드린다.
그런 식으로 금발의 여자가 짜증을 보이고 있으니, 어째선지 갑자기 교실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게임을 하고 있던 녀석들은 음량을 낮추고, 담소 떠들고 있던 녀석들은 입을 다문다. 방금전까지 유이가하마들과 담소하고 있던 그룹의 녀석들마저 어색하다는 듯이 시선을 바닥으로 떨군 상태다.
뭐야? 저 금발이 반의 히에라르키(Hierarchie, 지배계층) 톱이야? 여왕이야? 금사자공주라고 부르자. 마음속으로.
"그런걸 몰라. 그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말해줄래? 우리들 친구잖아? 그런 비밀같은거 좋지 않지?"
과연 금사자공주. 역시 뇌까지 근육이군요. 그런 잡스런 감성, 싫지 않아.
"미안……"
"그러니까 미안이 아니라. 뭐 하고 싶은 말이 있을거 아냐?"
아니, 지금 너를 보고 대화가 성립한다고 생각하는 녀석 없거든. 우선 그 기분 나쁩니다! 라는 오러를 집어넣어라, 야.
금사자공주의 분노를 받고 겁에 질려 움츠러든 유이가하마.
유이가하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저건 그녀들의 문제이며, 그녀들 자신이 해결해야할 문제다. 오늘 처음으로 존재를 알게 된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완전하게 무관계하다고 하면, 귀찮기는 하지만 꼭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무척이나 불본의 스럽지만.
천천히 나는 책상아 뽀개져라! 라는 듯이 손을 치고 일어서서, 유이가하마와 금사자공주 사이에 끼어들어간다.
"나 때문에 싸우지 마!"
""하?""
"거기 금발! 너한테 한 마디 하겠다! ……배가 고픕니다"
"하? 갑자기 뭐? 의미 모르겠는데? 너하고는 관계없거든. 그보다 기분 나쁜데"
"그러냐……. 그럼 계속해라"
그것만 말하고 자리로 돌아와 가방을 들고 약속 장소로 향한다.
뭐, 내가 한건 대단한건 아니다. 단순히 기행으로 금사자공주의 분노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돌린것 뿐이다.
그렇게 머리에 오른 피를 내려주면, 유이가하마라도 뇌근육이랑 제대로 대화할 수 있을것이다.
배고프니까 얼른 끝마쳐라.
교실을 나가니 소매를 척 잡힌다. 뭔가 싶어 눈을 주니 귀여운 꾸러미를 들고 교실 측 벽에 기대있는 유키노가 있었다.
약속장소에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우리들을 마중나온걸테지.
"너……. 지금 그거 뭐니? 정말로 기분 나쁘네. 달리 방법은 없었던걸까"
아, 결과만 보면 유이가하마를 감쌌다는건 이해하고 있구만. 칭찬해도 좋은 장면이라고. 기분 나쁘다고 하지 말고.
"딱히 상관없잖냐. 그보다, 너까지 기분 나쁘다고 하지마"
"실제로 기분 나쁘니까 어쩔 수 없잖니? 그치만 괜찮겠어? 히키가야는 눈에 띄고 싶지 않았던거 아니니? 저런 짓을 하면 반에 있을 곳이 없어지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쿡쿡 웃는다.
"없어지고 자시고. 처음부터 내 자리는 없어. 없는걸 잃을 걱정따윈 무의미하지"
눈에 띈다거나 그런것 보다도, 얼른 밥을 먹고 싶다는 쪽이 우선 순위였다는것뿐이고.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의 옆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러네, 네가 있을 곳은 내 옆 뿐인걸. 알고 있니? 있을 곳이 있는것 만으로도 별이 되어 불타버릴만큼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게 되는 모양이야"
"『쏙독새의 별』이냐. 엄청 매니악하잖아. 그보다, 내가 있을 곳을 멋대로 설정하지마"
"어머, 너처럼 기분 나쁜 사람한테 있을 곳이 달리 있니?"
"딱히. 있을 곳이라는건 다른 누군가의 옆이 아니면 안 된다는게 아니잖아. 오히려 남과 관계로 밖에 자신을 확정할 수 없다는 쪽이 위화감을 느끼지. 알겠냐, 점은 하나만으로도 좌표가 있고, 존재를 나타낼 수 있어. 그걸 생각하면 혼자여도 충분하잖아"
자신이 있을 곳이 자신이 있을 곳. 내가 건담이다! 건담이 아닌 내가 있을 곳이다! 가 뭐가 나빠.
"그치만 히키가야. 점은 두 개가 있지 않으면 선이 되지 않아. 혼자로선 할 수 없는것도 이 세상에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혼자서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수업에서 2인조를 짜라는것 정도겠지"
"그런 말을 하고 싶은게 아닌데……"
드물게 말을 머뭇거리는 유키노.
미안하지만 나는 어렸을때부터 대개 일은 혼자서 해왔어. 그러니까 남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태는 상상도 할 수 없지. 뭐, 그러니까 나는 혼자지만.
유키노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니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교실 문이 열린다.
"에, 왜 힛키랑 유키농이 여기 있어?"
"늦잖아. 왜냐니, 너를 기다리는게 뻔하잖냐"
"맞아, 유이가하마. 스스로 불러놓고 약속장소에 늦는다는건 인간으로서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덕분에 그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어버렸잖니"
"으, 미안……. 그보다, 아까 그거……들었어?"
"아까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교실을 나간 이래는 듣지 않았다. 그보다, 굳이 교실 밖에서 훔쳐듣거나 하진 않아"
"그런가……안 들었구나. 다행이다. 저기, 아까전에 그건 나를 감싸준거지. 고마워, 힛키. 그치만 그건 좀 아니야. 무지 기분 나쁘고, 솔직히 깨더라"
"도와줄 생각 없으니까 딱히 상관없다만. 그보다 감사해놓고 기분 나쁘다니, 너는 뭐냐? 그런 녀석한테는 자가수제 건과실류 특제 파운드 케이크 안줄거다. 어제 만들었지만 내가 생각대로 개량에 성공했지만 유감이다. 모처럼 코마치가 둘에게 먹여주라고 해서 갖고 왔는데"
귀를 세우지 않아도 단순한 유이가하마는 얼굴을 보면 안다. 교실을 나왔을때 그녀의 어딘가 시원스레한 표정. 분명 그녀들과 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향했을 것이다. 솔직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히키가야, 유이가하마의 몫은 내가 받아갈게. 기다리게 했으니까 당연한 일이 아닐까"
"아아, 좋다. 그 대신에 홍차는 유키노가 타라. 왠지 홍차만큼은 유키노만큼 맛있게는 못 타니까"
"에- 너무해 힛키. 유키농도"
나한테 제대로 미안합니다라고 하면 내 몫을 주마.
금발과 네 관계가, 조금 좋아진 축하로 말이지.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4
혼자 있는 것을 사랑하며, 이미 극을 찍었다고 해도 좋을 내게도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일이 적잖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체육이며, 필중효과 달린 필살기 '그럼 둘이서 짝을 지어'이다.
앉아서 수업받는거라면 낫다. 그땐 자는 척을 하면 어떻게든 된다.
하지만 체육의 경우에는 그렇게 되지 않아, 교사에게 지적 받아버리면 거기까지다.
뭐, 회피불가라고 하면, 말안하면 될 뿐인 이야기지만.
"저기, 저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서, 벽치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폐가 될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뭐, 이런 느낌. 몸 상태가 나쁘지 않다, 폐 끼쳐버린다 더블 어필. 이렇게 말해서 잽싸게 벽치기를 시작해버리면 된다.
학년수석이니까 체육같은거 필요없다 처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평가는 딱히 아무래도 좋다.
자, 이렇게 교사로부터 날아오는 필살기를 화려하게 회피한 나였지만, 벽치기라는건 꽤 즐겁다.
왜냐면 혼자서 할 수 있다. 이것만 말해두면 그 매력이 십이분으로 전해질 것이다.
한결같이 벽을 치며, 돌아오는 공을 다시 친다. 점점 가속해가는 나와 벽의 랠리. 좀 더, 좀 더 신경을 갈고 닦아라. 한계까지 가속해라!
"우옷, 쩔어. 지금 쩔지 않아? 레알 쩐다"
그런 주위의 환성에 의식을 돌려서 손해봤다.
칫, 아직 집중이 부족하군. 이래선 레벨 10은 꿈의 영역이다.
"하야마 레알 쩔어. 지금 꺾었지? 꺾었지? 진짜 쩐다"
"아니, 우연히 꺾인것 뿐이야. 미안, 실수했다"
화풀이삼아 떠들고 있는 녀석들을 보니 어딘가 낯이 있었다.
……아아, 얼마전 금사자공주 사건때 같이 있던 녀석들인가. 분명 '올해는 진심으로 국립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라고 했던 녀석이군.
목표로 삼는다면 전국 축구부를 목표로 삼든 해라, 라고 생각했으니 왠지 모르게 기억하고 있다. 저 녀석도 테니스를 선택한건가.
즐겁게 랠리를 하는 녀석이랑 그 동료들에게, 너무 떠들지 마, 라는 닿을리 없는 마음을 실어 나는 벽치기를 재개한다.
도중에 어째선지 공이 2개가 됐지만 문제없이 벽치기를 계속쳤다. 가속은 굉장하다.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점심시간.
"힛키는 말야. 왜 유키농을 이름으로 부르는거야? 사귀고 있어?"
나는 바보, 요컨대 유이가하마랑 음료수를 사러 가고 있었다.
덧붙여 유키노는 지금 이 자리에 없다. 뭐냐고 하면 식후에 행해진 사소한 놀이의 벌게임이다.
벌게임 수행자 유이가하마, 그리고 유아가하마가 의뢰하러 왔을때 패널티 때문에 지갑 = 나 포진이다.
"안 사귀어. 유키노가 이름으로 부르라고 해서 얌전히 따르고 있는것 뿐이다. 그보다 왜 이름으로 부르는것 만으로 그렇게 되는건데. 너도 이름으로 불러줄까?"
"윽……. 저기, 그거 한번 시험삼아 한번만 불러봐, 시험삼아"
"그보다,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뭐, 상관없지만. 유이. 이거면 됐냐?"
"우으……. 왠지 부끄러워"
"부모님에게 받은 자기 이름이잖아? 딱히 부끄러워할 일도 없잖아"
"부끄럽거든! 히키도 말야, 이름으로 불리면 분명 부끄러울거거든! 분명 기분 나쁜 느낌으로 히쭉거린다니까!"
"아니거든. 오히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불러봐라"
"……하, 하치만. 아――역시 아냐. 힛키는 힛키야. 응, 절대로 그래"
"힛키보다는 하치만 쪽이 훨씬 나은데 말이다. 뭐, 네가 그걸로 좋다면 상관없지만"
"아, 그치만 나는 유이라고 불러주는 편이 기쁘겠는데-"
"뭐, 그렇다면 앞으로는 그렇게 하마"
"응응. 그래. 저기, 힛키. 한번 더 불러봐!"
내가 이름을 부를때마다 얼굴을 붉히면서 몸을 베베꼬는 유이가하마, 유이.
그보다 기분 나쁜건 너잖아.
"아, 사이다. 안녕 사이"
매점으로 가는 길에서 테이스 코트 옆을 지나갈때 연습하고 있는 사람에게 유이가 부른다.
사람은 유이를 눈치챘는지 토닥토닥 이쪽으로 향해 달려온다.
"얏호-. 연습?"
"응.우리 부, 굉장히 약하니까 자기 주도 연습하고 있어. 점심시간에도 쓸 수 있도록 전부터 부탁해서 최근 들어서 겨우 OK 나왔거든. 유이가하마랑 히키가야는 뭐 하고 있어?"
"심부름이야-"
"나는 지갑이다"
나의 지갑 발언이 마음에 드셨는지 사이가 미소를 보인다.
"사이, 수업도 테니스 선택인데 점심시간에도 연습하는구나. 대단하네-"
"으응, 좋아서 하는거니까. 괜찮아. 아, 그러고보니 히키가야, 테니스 잘하지. 공 2개로 벽치기 같은건 좀처럼 흉내낼 수 없어"
아니, 할 수 있거든. 치바를 사랑하는 마음을 한계까지 높이면.
그러고보니 자연스럽게 흘려들었지만 왜 이 아이, 나를 알고 있는거야? 그거야? 실은 이 아이가 그때 구해준 개야?
그런 나의 의문을 뒷전으로 유이와 사이의 대화는 계속된다.
"뭐야 그거……. 여전히 힛키 기분나빠"
"아니, 평범하게 굉장하다고 생각해. 뭐랄까 이렇게, 폼이 깨끗하니까"
"그러니까 유이는 기분 나쁘다고 하지마. 또 간식 뺀다"
기분 나쁘다고 말하는 유이에게 가전 보구, 간식 빼기를 시전한다. 효과는 바보에게 효과가 2배 대미지.
자작 과자를 부활동중에 먹으려고 갖고 다니므로 실로 효과가 있다.
"그보다……누구?"
간식 빼지 말아줘-. 미안해 힛키, 하면서 빌어오는 유이에게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니까 힛키, 반 친구 이름 정도는 외워둬……. 솔직히 사람으로서 좀 아니라고 생각해"
초대면부터 힛키니 멍청해보이는 별명으로 부르는 녀석하고는 달리, 올바르게 불러준 여자에게 보여준 배려를 노타임으로 박살을 내는 유이.
그리고 그런 유이에게 사람의 길을 설교당하는 나. ……죽고 싶다.
"너 말야……내 배려를 헛되게 하지 마. 그보다, 내 안에서 이름이랑 얼굴 일치하고 있는건 너랑 유키노 뿐이라는건 너도 알고 있잖아? 거기는 분위기 읽고 대수롭지 않게 가르쳐줘도 되지 않냐?"
말을 걸면 상대는 자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라는건 좀 부끄러운 일이 되버리잖아.
왠지 가볍게 울상짓고 있어서 솔직히 면목없다. ……조금은 반 친구의 이름을 외우는 편이 좋나? 아니, 나른하니까 그만두자.
"나, 반에서 얘기하는 녀석이 없으니까, 필연적으로 반 애들 이름은 몰라. 미안해"
"그런가……. 그럼 앞으로는 기억해주면 기쁘겠는데. 같은 반인 토츠카 사이카야"
"히키가야 하치만이다. 음, 나는 알고 있었구나. 토츠카 였지. 뭐, 그거다.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건 토츠카를 포함해 세 명이니까 바로 기억할거라 생각해. 아마"
"힛키 말야, 이제 2학년인데 3명밖에 이름 모른다니, 솔직히 위험해"
"시끄러. 나는 필요한것만 갖고 다니는 주의란 말이다. 그보다, 2학년이라고 했지만 생애 걸쳐 세 사람이다. 그러니 유이, 너는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우와아……. 힛키 그거 진짜로 위험해. 아니 정말로. 깬다 수준이 아니야. 왠지 병일지도, 머리쪽에. 병원 가봐, 병원"
시끄러, 라며 유이의 어깨를 팔꿈치로 찌른다.
딱히 기억하려고 하지 않았던게 아니라, 지금까지 기억할 수준까지 남이 다가온 적이 없었던것 뿐이다.
"유이가하마하고는 사이가 좋네……"
원망스럽다는 듯이 토츠카가 중얼거린다.
"친구의 친구일 뿐이지, 나랑 이 녀석은 딱히 사이 좋지 않아. 아마 내가 부활동 그만두면 바로 끊어질 정도의 인연이다"
"너무해 힛키. 그리구……바로 끊어질 인연이라니, 그런 쓸쓸한 소리 하지 마……"
전방향으로 뿌리고 있던 미소를 흐리며 슬프다는 얼굴로 내 팔에 달라붙는 유이가하마.
내가 잘못된 소리라도 했나?
"아니, 거. 나랑 네가 얘기하는건 부활동 뿐이잖아. 그렇다는건 부활동을 그만두면 얘기하지 않게 된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하지"
"그치만 힛키, 교실에서 맨날 혼자 있구, 말걸면 폐가 되려나 싶어서"
"혼자 있는건 좋아하지만, 딱히 나는 말을 걸었다고해서 싫은 표정을 짓는 녀석이 아냐. 그보다 너는 내가 그런 녀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냐"
무슨 악당이냐, 하며 유이의 머리를 툭 친다.
"괜찮……아……?"
"와라 와. 그 뭐냐 그거다. 솔직히 나랑 네 거리는 말하지 않고 알아챌 정도로 가깝지 않아. 그러니까 하고 싶은말,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제대로 말로 해줘. 그렇게 하면 나도 선처하지. 아마"
"알았어……. 고마워 힛키"
다시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감싸안는다.
바쁜 녀석이구만, 너. 그리고 메론 잘 먹었습니다.
"히, 히키가야! 나도 괜찮…을까?
상관없어, 라며 큭 끄덕인다.
"그나저나 토츠카, 잘도 내 이름 알고 있었구나?"
"에, 그치만 히키가야, 눈에 띄잖아"
"그런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그런 인간이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는건 힛키 뿐이야. 왠지 쿨하다고 할까, 차갑다고 할까, 거기만 뻥하니 구멍이 뚫려있는것 같아"
이 녀석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가장 좋은 해설 선생님을 부탁한다.
"화제를 바꾸겠는데. 히키가야는 테니스 잘하지. 경험자야?"
"아니, 게임에서만. 현실에서는 체육으로만 해"
거기서 점심시간 끝을 알리는 종이 울었다.
"돌아갈까"
미소지으며 유이가 말하고 토츠카가 끄덕이며 뒤를 따른다.
아니, 뭐. 딱히 돌아가는건 상관없지만,
"유이, 너 유키노의 음료수는?"
너 벌게임이잖아.
이튿날, 다시 벽치기 날이다.
공 2개로 하는 벽치기가 왠지 즐거워져서 오늘은 처음부터 두개로 도전해본다.
앞으로 서서히 수를 늘려가면, 혹은 레벨 10으로 가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슬슬 세 개로 도전해볼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누군가가 톡톡 어깨를 건드린다.
뒤돌아보니 녀석이 있었다. 뭐, 유명배우도 아닌 토츠카였지만.
그보다 지금 알았지만, 이 녀석지금 여기 있다는 소리는 성별은 남자구나.
완전히 여잔줄 알았네.
"왜 그래?"
"저기 말야, 오늘 평소 같은 조를 짜는 애가 쉬고 있거든. 그러니까……괜찮으면 말인데, 같이 하지 않을래?"
우홋, 좋은 남자애.
"상관없어"
공 세개로 벽치기는 다음시간까지 쉬어야겠군.
그리고 토츠카와 랠리 연습이 시작한다.
테니스부인 만큼 토츠카는 아마 잘한다. 아마라는건 내가 비교대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가.
"역시 히키가야 잘하네"
"뭐, 치바현민이니까, 치바를 엄청 사랑하고 있고, 테니스는 소양으로 갖춰놓지 않으면 안 되니까-"
뭐, 나는 고등학교에서 믹스 터블스가 없는건 알고 있지만.
"치바현 관계없잖아. 히키가야 재미있네-"
있어. 엄청 있어.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랠리는 계속된다.
"조금 쉴까"
붕 떠오른 공을 토츠카가 캐치하고 내게 말한다.
어, 라고 짧게 답한 내가 적당한 곳에 앉아있으니 토츠카는 옆에 앉는다.
"있잖아, 히키가야에게 좀 상담할게 있는데"
"상담? 상관없긴 하지만 솔직히 내게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는데. 어쨌든 상담을 받는건 동생 말고는 처음이니까"
유이의 쿠키 사건은 그건 상담이 아닌 의뢰다. 그보다 실제로는 쿠키는 관계없었고.
"괜찮아. 그게 말야, 우리 테니스부는 굉장히 약해. 거기다 사람 수도 적어서……이번 대회에서 3학년이 빠지면 더 약해질거라 생각해. 거기다 1학년은 고등학교 생활 시작하고나서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으니까……. 거기다 우리들이 약한탓에 그다지 동기도 오르지 않는것 같아"
뭐, 보통 중학교에서 테니스라고 하면 연식이며, 경식으로 하던 녀석들은 이른바 힘에 맡기고 한다. 그런 녀석들은 우리 고등학교에서 테니스를 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래서……히키가야만 괜찮으면 테니스부에 들어와주지 않을래?"
"……어?"
응, 그거 무리.
"히키가야는 잘하는데다, 분명 좀 더 잘해거라 생각해. 그러면 모두에게도 자극이 될테고, 나도 좀 더 힘낼 수 있을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미안. 그건 무리다"
유키노가 있고, 내가 있고, 가끔 유이가 있다. 그런 봉사부라는 커뮤니티만으로도 한계다.
그것도 나와 유키노가 어느쪽이냐고 하면 비슷한 사람이며, 어느 종류의 공감대가 존재하니까 겨우 성립하고 있는것 뿐이다. 봉사부가 지금 상태로 조금이라도 어긋났으면 나는 억지로라도 퇴부했을 것이다.
"그런가……"
토츠카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시선을 지면으로 떨구었다.
"뭐, 그거다. 입부는 하지 않겠지만 다른거라면 협력할게. 부원 모집 같은건 무리겠지만. 친구 없으니까"
"고마워. 히키가야에게 상담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어"
그렇게 말하며 토츠카는 웃는다.
아무래도 좋지만 이거, 상담이라기보다 권유지.
방과후, 불본의하지만 나도 봉사부의 일원이고, 이것도 어느 종류의 의뢰라고 생각한 나는 봉사부의 부장이신 유키노에게 토츠카와 나눈 대화를 몽땅 얘기해봤다.
"감탄했어, 히키가야. 너, 잘도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있구나"
결과, 생각외로 dis당했다.
그보다 대단해 대단해하면서 머리 쓰다듬지마. 그거 전혀 감탄하고 있는거 아니잖아.
"그보다, 그다지 남 험담하고 싶지는 않지만, 토츠카는 사람 보는 눈이 없는데. 같은 반이니까 나의 생활을 보면 무리라는건 알텐데 말이야"
"네 경우 험담하고 싶지 않은게 아니라, 험담이 보일만큼 가까운 사람이 없다, 가 아니니"
그건 사실이지만, 왜 너는 나를 dis할때 굉장히 즐거워하는데? S야? S농이냐?
뭐, 남의 즐거움을 뺏을만큼 마음 좁은 인간은 아니라서 용서해주겠지만. 이걸로 차갑게 말하면 단고히 저항하겠지만.
"항상 부활동에 참가시키려고 해도 집단에 어울리는게 아닌, 대회에만 임시방편 역할로 약한 부라는 이미지는 그렇다치고 동기부여는 떨어지겠지. 정말로 도움 안 되네"
"그렇게 도움 안되는 녀석은 여기에 있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므로 퇴부하겠습니다"
"괜찮아, 히키가야. 설령 정말로 도움이 안되더라도 나는 너를 내버리지는 않을테니까. 위에 서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의무인걸"
거기다 친구잖니, 라며 내 양손을 잡고 유키노는 진지한 눈초리로 나를 쳐다본다.
스스로 도움되지 않는다고 한 주제에 뭐야 그거? 완전히 매치 앤 펌프지?
"아, 그거다. 진.테니스처럼 나 한 사람만 새로운 부활동을 만들어서 라이벌같은 포지션으로 가는건 어때? 일치단결은 이게 최고일거 아니냐"
유키노의 희고 부드러운 손 감촉에 조금 두근거리며, 그런 자신을 눈치 채이지 않도록 손을 떼내며 양손을 크게 벌려 생각난 적당한 말을 해본다.
"네가 라이벌이라니……역자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뭐 그건 둘째치고, 만약 네 망언을 실행한다고하면, 확실히 테니스부는 단결하겠지. 하지만 그건 너라는 적을 배제하는, 그거 하나만을 위한 단결이지 그건 결코 자기실력을 높인다거나, 그런 방향으로 향해지는건 아니야. 그러니까 네 행동은 무의미하게 끝날거야. 출처는 나"
"그러냐……. 아니 출처는 너?"
"그래. 나, 중학교때 해외에서 이곳으로 돌아왔어. 당연히 전학이라는 형태가 됐는데, 내가 있던 반의 여자, 아니 학교 여자는 나를 배제하기 위해 활개 쳤어. 누구 한 명도 나라는 자각에 대해 자신을 드높이려고 노력하지 않았지. 그래. 히키가야 이하의 인간밖에 없었어"
어둠을 두르며 그렇게 말한 유키노.
나를 dis하는 말을 결코 잊지 않는 점에서 여유가 있는걸지도 모르지만.
"안습, 유키농. 솔직히 객관적으로 봐도 분명 유키노는 미소녀지만, 그렇다고해서 배제하려고 하는건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군"
"객관적으로 봐서, 라. 히키가야. 나는 누군지 모를 객관적인 의견이 아닌, 네 주관에 따른 의견을 알고 싶은데"
"……객관적으로 봐도, 내 주관적으로 봐도 어디에서 뭘 어떻게 봐도 너는 미소녀다"
말하게 하지마, 부끄럽다.
"좋아. 나는 말야, 어중이떠중이의 평가따윈 아무래도 좋아. 같은 반의 미소녀도, 유키노시타의 영애로서도 아닌, 단순한 유키노시타 유키노라는 한 명의 소녀로서 봐주는 사람의 평가를 받고 싶어.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사람은 없었어. 히키가야, 너 말고는. 자랑스러워 하렴. 특별히 허가할게"
"네네, 영광이옵니다, 유키노 님"
"그런데 그녀들은 정말――"
뭐라 투덜투덜 중학교 여자에게 원한소리를 토로하는 유키노를 뒷전으로 나는 아까전의 말을 떠올린다.
평소, 자연스럽게 나를 dis하는 유키노를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유키노는 평균 이상으로 나를 신뢰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다기보다, 한 명의 소녀로서 본다거나, 나한테는 당연한 일이라고? 기본적으로 내게 있어 평가 기준은 무슨일이든 자신이 본것. 들은것만 된다. 남과 관계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나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니까 당연하다. 남이 멋대로 붙인 꼬리표 따윈 알바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근거에 따른 확신은 과대평가 말고 지나지 않는다.
"――잠깐, 히키가야. 제대로 듣고 있니?"
멍하니 생각에 잠긴 내가 거슬렸는지 사랑스럽게 볼을 부풀린 유키노가 노려본다.
"듣고 있었다, 듣고 있었어. 그보다 화제 돌리겠는데, 토츠카를 위해서도 테니스부를 강하게 못하려나"
"드물네……. 너, 그런 식으로 남을 걱정하는 사람이었니?"
"그야, 드물어 보이는것도 당연하지. 애시당초 남과 관여하지 않으니까 남 얘기를 할 수 있을리 없지. 나도 상담받으면 해결책을 제대로 생각 정도는 해. 뭐, 코마치 말고는 처음이지만"
"나는 자주 연애상담을 받지만"
엣헴, 하며 가슴을 펴는 유키노.
뭐야 그거 자랑? 과연 유키노 님 인망 넓으시네요-, 라고 해줬으면 하냐?
"……라고는 해도 여자의 연애상담은 기본적으로 견제할때 쓰이지만"
요컨대, 미소녀이기 때문에 견제받았다. 그런거군요, 압니다.
"그거……의미 있는거냐? 견제했다고해서 좋아하는 녀석이 자신을 좋아하게 되는것도 아니잖아"
"의미라면 있어, 그녀들 안에서는 말이야. 그녀들이 좋아하는 사람을 내가 알았다는 사실만 있으면 돼. 그것만으로 그녀들에게 있어 나를 공격할 대의명분이 되는거니까. 그런 점 그런 시셈을 받을 걱정이 미립자 수준도 존재하지 않는 히키가야는 꽤 희유한 인물이구나"
여전히 좋은 미소네요.
"그런거 모르거든. 세상 속을 찾아보면 그런 기특한 인물이 존재할지도 모르고"
세상 속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점에서, 유키노하고는 달리 실로 겸허한 나. 기사라고 불릴 날도 가깝군.
"그렇구나……그런 사람이 나타나도 좋도록 목걸이를 달아둘 필요가 있으려나……. 그런데 히키가야, 네가 좋아하는 색은 뭐니? 아니, 특별히 관계는 없지만 갑자기 알고 싶어졌어"
"그런거 그만둬라. 무섭잖냐. 그보다 너, 내 소유권 주장 너무 해대거든. 뭐야? 나 좋아하냐?"
"그래, 좋아해"
실로 천연덕스럽게, 자못 당연하다는 듯이 유키노가 말한다.
"친구로서, 겠지. 알고 있어"
"어머, 가끔 예리할 때도 있구나. 당연히 친구로서야. ……지금은 말이야"
"평소 행동이 그렇지 않았으면 착각했을지도. 적어도 연애대상이라는 의미로 나를 좋아한다면 나한테 그렇게 폭언을 할리 없으니까"
"……싫었……어?"
그런 말을 하면서 나를 올려다보는 유키노.
"세간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싫어하겠지. 그저 아무래도 나는 그런 가치관하고는 어긋난 모양이다. 폭언을 할때 네 미소가 실로 즐거워보여서, 네가 즐거워보이면 상관없나, 라고 생각하기도 해"
"그, 그러니. 아니, 그런건 지금은 됐어. 지금은 테니스부 얘기지. 화제를 돌리지 말아주겠니"
도리어 발끈하는건 상관없지만, 귀 빨갛다. 부끄러워하면서 묻지마.
"뭐, 내 제안이 틀려먹은건 잘 알았다. 출처는 유키노. 그럼 너라면 어떻게 할건데?"
"그렇구나……전원 죽을때까지 달리게 하고 죽을때까지 휘두르고, 죽을때까지 연습이려나"
어디의 와타미 회장이냐, 너. 저주받은 가정교사도 아니면 그런거 불가능해.
"얏하로-"
유키노시타의 아래에서만큼은 일하고 싶지 않은데- 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얼빵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말할것도 없이 바보 유이다.
"시, 실례합니다"
그리고 무척이나 긴장한 태도의 토츠카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유이도 처음에는 저런 느낌이었지. 처음 뿐이었지만.
그런 감개에 잠기면서 토츠카를 바라보고 있으니 내 존재를 깨달았는지 얼굴을 화악 펴며 밝아진다.
"아, 히키가야. 여기서 뭐하는거야?"
토닥토닥 내게 다가오는 토츠카.
아니, 진짜로 이 녀석 달려있는거 맞지?
"뭐하냐니, 나 여기 부원이니까. 토츠카야말로 왜?"
이런 대화도 유이가 왔을때도 했었지-. 뭐야? 약속이야? 천장?
"그게, 유이가하마가……"
"오늘은 나, 유이가하마 유이가 의뢰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쓸데없이 큰 가슴을 펴며 유이가하마가 대답한다.
의뢰인이라니, 쓸데없는 짓 하지마. 주물러버린다.
"그게 말이야-. 나도 봉사부 일원이잖아. 역시 일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유키농이랑 힛키랑 떠드는 시간도 좋아하지만 부활동 같은 일도 가끔은 하고 싶구. 그래서 사이가 고민하는것 같아서 데려왔어요-"
칭찬해줘- 라는듯이 삼할 정도 밝아진 미소로 유키노의 팔에 달라붙는다.
"유이가하마"
"왜에-? 아니, 딱히 칭찬해달라고 생각은 안했어. 나도 부원의 일원으로서 당연한걸 했을 뿐이고. 그치만 칭찬 받는것도 인색하진 않는달까"
"아니, 칭찬하기 이전에 너는 딱히 부원이 아닌데……"
"에, 진짜루!?"
우와, 부끄러운 녀석.
"그래. 입부 신청서도 받지 않았고, 거기다 고문 선생님의 승낙도 얻지 않으면 부원이 아니야"
같이 있다고 해서 같은 팀인건 아니야. 왠지 가슴 아파지는 사실이구만, 어이.
"쓸게! 지금부터, 몇장이라도 쓸게. 따돌리지 말아줘-"
그리고서 가방에서 루즈를 꺼내서 무척이나 유이스러운 둥근 글자체로 입부 신청서를 쓰기 시작한다.
그보다, 입부 신청서는 교무실에 전용 서식이 있지 않냐? 쓴 적이 없으니까 모르지만.
"있잖냐, 유키노. 나도 입부 신청서는 쓴 기억이 없는데. 그렇다는건 부원이 아니니까 내일부터는 안 와도 되냐?"
"각하야. 그치만 그러고보니 분명 그렇구나. 요컨대 입부 조건은 히라츠카 선생님의 승낙뿐인걸까"
입부 조건을 내린 것으로 인해, 내가 부원이라는 것은 확정되면서 유이가 부원이라는건 배제했구나, 이 녀석.
"그래서 토츠카 사이카였지? 무슨 일이니?"
입부 조건이 내려진것을 깨닫지 못하고 입부 신청서를 쓰고 있는 유이를 무시하고 얘기를 진행하는 유키노.
"저, 저기……여기 오면 테니스를 강하게 해준다고 유이가하마가……"
"부외자인 유이가하마가 어떤 설명을 한건진 모르겠지만, 봉사부는 만물상이 아니야. 우리들이 하는건 너를 도와서 자립을 촉구하는것 뿐. 실제로 강해지는건 네가 하기 나름이야"
부외자라고 부르다니, 너무하구만. 나 자신은 유이를 귀찮은 일을 몰고온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는 말 안해.
그런가……, 라며 어깨를 떨구는 토츠카가 역시 가엾어진다.
"그보다 유이. 너 이거 어떡할거냐. 토츠카 침울해지고 말았잖아"
"에? 사이, 테니스 강해지고 싶지? 유키농이랑 힛키라면 가능하잖아"
자못 당연하다는 듯 유이가 답한다.
어디에서 그 자신감은 튀어나온거냐. 과대평가도 정도가 있지.
"너 말이다……. 그런거 간단하게 말하지 마"
"어? 왜? 할 수 있잖아. 할 수 있지?"
"유이가하마, 그건 내게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여도 되겠니"
유이가하마의 태평한 발언을 어째선지 도발로 받아들였는지, 의외로 지는걸 싫어하는 유키노의 소우주가 불타오른다.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이 녀석, 정신론을 정말 좋아하고, 열혈이구나-.
"좋아. 토츠카, 네 의뢰를 받아들일게. 테니스 기술 향상 도움을 주면 되지?"
"아, 응. 내, 내가 더 잘해지면 다들 열심히 해줄거라 생각해"
유키노의 박력을 견디지 못했는지 토츠카는 내 뒤에 숨으면서 대답한다.
유키노가 무서운건 알겠지만 말야, 솔직히 그 태도로 해볼 생각은 있냐?
"네가 부장이니까 받아들이는건 상관없지만, 돕는다니 뭘 할건데?"
"아까도 말했잖니. 기억 못해? 기억력에 자신이 없다면 메모를 하는걸 권장할게. 뭐, 히키가야니까 메모를 하는것도 기억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기억하거든. 너, 그거 진심으로 실행할 생각이냐? 신고당하면 질텐데?"
"나, 농담은 하지 않는 주의야"
"농담이길 바랬다……"
"그럼 토츠카. 방과후는 부활동이 있으니까 특훈은 점심시간에 하자. 코트에서 집합하면 되겠지?"
내 소원을 무시하고 점점 이후 예정을 정해간다.
"알았어-"
아직도 입부 신청서를 쓰고 있는 유이가 목소리만으로 대답한다.
아까부터 얌전하다고 생각했더니 아직도 쓰고 있었냐.
"어, 힘내라"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히키가야. 너도 참가하는거야. 말 안해도 알아채려무나"
아니, 알고 있었거든. 희망적인 관측으로서 말이다.
다음날 점심시간부터 지옥의 훈련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왜 나도 저 녀석들에게 어울려야하는걸까.
봉사부에 입부할때까지 나는 혼자였다.
남에게 흥미 따윈 없이, 그저 혼자서 보낸다.
그건 주위에서 소외된 까닭이 아닌, 단순히 내가 남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할 수 있으니까 남은 필요없다.
어린 시절부터 무슨 일이든 혼자서 할 수 있었던 내게 있어서 당연한 가치관.
그것이 주위의, 세간 일반사람들하고는 다르다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남은 남. 나는 나.
세간 일반사람들하고는 다르다고 해도, 나는 그거면 좋다고 생각했다.
나 혼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을텐데…….
거기까지 생각하고 뺨을 양손으로 치고서 사고를 끊는다.
이건 분명 생각해봐야 답이 없는 것이다.
연습에 어울리는 이유 따위, 내가 제지하지 않으면 유키노가 토츠카를 죽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러저러하여 시간이 되어 토츠카의 연습은 유키노 님이 가르친 '죽을때까지 달리고 죽을때까지 휘두르고 죽을때까지 연습'의 죽을때까지 달리기(기초훈련) 단계가 끝났다.
덧붙여 죽을때까지 달리는 단계에서 토츠카와 어째선지 다이어트를 위해 참가하고 있었던 유이가 실제로 근육통으로 죽을뻔했다는건 기입해두자.
죽을때까지 휘두르는 단계에 들어갔지만 아무런 일도 없다. 그저 벽치기다. 당연히 공은 하나. 뭐, 공 2개 이상으로 벽치기는 초보자에게는 권할 수 없으니까.
벽과 마주보고 진지하게 연습에 임하는 토츠카를 뒤로 우리 봉사부 일행은 참가하는 의미를 의심할 정도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키노는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고 때때로 생각났다는 듯이 토츠카에게 격구를 날린다.
유이는 유키노의 무릎을 배게삼아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고 있다.
실제로 연습하는건 토츠카니까 딱히 상관없지만, 이건 어때? 특히 유이.
그리고 아까전에 언급되지 않았던 마지막 부원인 나로 말하자면 연습중간, 연습후의 수분보급을 위한 드링크 레시피를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 지도는 의욕이 넘치는 유키노에게 맡기고, 나는 뒷편으로 돈다고 하는 좋은 위치라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이래선 코스트가 너무 들고, 하지만 수고를 생각하면 이거 쓰는 편이 좋겠는데- 등을 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어느틈에 일어났는지 유이가 공이 들어있는 박스를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무의미하다. 실은 바퀴 달린 운반대가 있다는걸 나는 알고 있다. 안 가르쳐줬지만.
다 옮기고서 코트에 들어간 토츠카를 향해 홱홱 공을 던지기 시작한다.
"유이가하마. 좀 더 구석 쪽을 노려주지 않을래? 안 그러면 연습이 되지 않아. 그리고 가능한 앞뒤로, 휘두르듯이 부탁해. 그리고 토츠카, 못 쳐냈을 경우 공 하나당 1분씩 추가야"
완전히 기합이잖습니까, 싫다-.
하지만 그런 유키노 군사의 기합에 대해 토츠카는 진지한 목소리로 응! 하고 대답을 한다.
그런 토츠카의 모습을 본 나는 레시피를 써둔 노트를 구석에 두고 공 줍기를 도우러 간다.
그거다, 의욕이 생겨서 하는게 아닌, 처음에 토츠카의 의욕을 의심했으니까 그 속죄라는거다.
아는 사람은 알거라 생각하지만 현재 유키노가 하고 있는 공치기로 인한 연습방법, 장소에 따라서는 공쫓기훈련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건 실로 상당히 힘들다.
그런 힘든 연습방법을 십구, 이십구째 계속하면 당연히 한계가 오는고로, 토츠카도 그 예외가 아니어 다리가 엉켜서 넘어지고 말았다.
"우와, 사이 괜찮아?"
공을 던지던 손을 멈추고 그물 너머 달려간다. 토츠카는 그런 유이에게 까진 다리를 문지르면서 괜찮다고 어필했다.
뭐, 오무니가 아니라 크레이지만. 오무니는 위험하다. 진짜로. 까진 정도가 아니라 깎인다. 출처는 안의 사람.
"괜찮으니까. 계속해줘"
그런 토츠카의 말을 듣고 유키노가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도 할 생각이니?"
"응……. 도움 받고 있는데다, 아직 열심히 하고 싶어. 힘낼 수 있어"
"그래……. 유이가하마, 뒷일 부탁해"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아무말 없이 교사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말없는 행동을 불안하게 생각했는지 토츠카가 중얼거렸다.
"내가 틀려먹어서…… 화난걸까……"
"그건 아냐. 저 녀석은 저렇게 보여도 근성같은거 되게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어차피 지금 토츠카의 말을 듣고 얼굴 풀어지는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평정을 꾸린것 뿐이겠지. 정신은 육체를 능가한다, 같은 정신론도 있지만 딱히 그건 연습에서 하지않으면 안 되는것도 아니니까. 아마 보건실에 가서 구급상자라도 빌려오는거겠지"
"그런가. 그런거라면 괜찮지만"
내 말에 안심했는지 안도한 미소를 짓는 토츠카. 하지만 그것과는 대조적으로 유이는 기분나쁘다는 듯이 볼을 부풀리고 있다.
"왜 그렇게나 유키농을 잘 알고 있는거야-! 평소엔 남에게 흥미없는것 같다는 표정짓는 주제에! 치사해 치사해!"
"치사하다니 뭐가. 아니, 너 자주 나보고 치사하다고 하는데, 진짜 의미 모르겠거든. 그보다, 유키노는 저걸로 알기 쉬운 녀석이라고 생각하거든. 저 녀석이 하는 말 제대로 들어보면 왠지 모르게 알잖냐"
"그럼 나는? 내가 하는 말은 잘 듣고 있어? 내가 생각하는거 알아?"
"얼굴 가깝거든. 그보다 네 말은 제대로 안 들어봐도 뻔하잖냐. 예를 들면 그거다. 유키농 정말 좋아, 라던가"
내게 다가와 멱살을 틀어잡는 유이를 도로 민다.
부실에서 세명이 아니라 두 명과 한 명이라는 상황을 생각하면 네가 유키노를 좋아한다는것 정도는 누구든 다 안다.
"역시 모르잖아! 힛키 둔감!"
"아니냐? 뭐, 그건 그거다. 이후 과제라는걸로 하고. 지금은 토츠카 연습이잖아?"
"므-. 지금은 하는 수 없지만, 방과후 부실에서 회의할거야, 회의! 절대루야"
이건 확신을 갖고 말하겠지만, 방과후 회의가 일어날 일은 없을 것이다. 유이가 방과후까지 기억하고 있을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
"그러니 아직 할 수 있지? 연습"
"응. 고마워 히키가야"
셋이서 일어서서 연습을 재개하려고 할때, 볼을 부풀린 유이가 순간 표정을 없애고 점차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아, 테니스 하고 있잖아. 테니스!"
어딘가 낯익은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유이의 친구 금사자공주와 그 주변인이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유이들이었구나……"
안경을 쓴 여자애가 그렇게 말한다.
금사자공주는 유이를 힐끔보고 가볍게 무시하고 토츠카에게 말한다.
"얘- 토츠카. 나아도 여기서 놀아도 돼?"
"미우라. 우리들은 딱히 놀고 있는게……"
"에? 뭐? 안 들리는데?"
"연습……이니까"
"흐-응. 그치만, 부외자도 있다는건 딱히 남자 테니스밖에 하는건 아니지? 그럼 우리가 있어도 괜찮지 않아?"
"아니, 그치만……"
그렇게 말하고 토츠카는 밀려서 입을 다물고, 매달리는 눈으로 나를 본다.
아까 연습할때 진지한 자세는 어디갔냐? 조금 감동했던 내 마음을 돌려줘.
하지만 뭐, 토츠카와 금사자공주로는 포식자와 사냥감으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 뭐 어쩔 수 없지.
"미안한데 금발. 이 코트는 3인용이거든"
"하? 부외자가 간섭하기 없기. 그보다 얼마전에도 그랬는데 금발이라니 뭐야?"
"내가 네 이름을 모르는 이상, 금발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사용하는것 말고는 개별 호칭할 방법을 갖고 있지 않으니까 어쩔 수 없잖냐? 그래서, 그러는김에 말하자면 현재 부외자는 너희들이다"
"이름 모른다니, 진짜 무례하네. 나아는 토츠카랑 얘기하고 있으니까 간섭하지 마"
"그러는 니들도 내 이름 모르잖아? 그러니까 똑같다. 그래서, 네가 멋대로 부외자 취급하고 있지만, 나도 관계자거든"
"알고있거든. 히키가야지? 같은반 애들 이름 정도는 보통 알거든. 그보다 의미 모를 소리 하지 마"
아, 알고 계셨슴까. 역시 같은반 녀석들 이름 정도는 외우는 편이 좋나. 나른하구만.
"자자. 너무 흥분하지 말고"
국립지향인이 중재하듯이 끼어든다.
"그게 다같이 하는 편이 즐겁잖아. 그런걸로 하면 되지 않아?"
"네가 그런거라면 그렇겠지. 네 안에서는 말이다"
주변인의 말에 번뜩, 내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그러니까 그렇게 싸우려 들지 말래도. 다같이 하는편이 즐거우니까"
다같이하면 즐겁다라…….
"아-, 이제 됐어. 얘기가 안 되는군. 귀찮다. 그거다. 시합해서 이긴 쪽의 말을 듣기로 하면 될거 아냐. 당연히 그쪽이 이기면 자유롭게 쓰면 돼. 다같이 즐겁게 말이다"
"테니스 승부? ……뭐야 그거 완전 재밌어보여"
몹시 뇌근육답게 알기쉬운 전개가 되어서 미소를 짓는 금사자공주. ……나중에 유이에게 이름 들어두자. 저쪽이 알고 있는 이상, 왠지 실례니.
"아니, 싱글로. 고등학교에서 믹스 더블스는 없으니까 해봐야 의미 없잖아. 나랑……거기 이름 모르겠지만 너랑 하자고"
그런 나의 말에 곤란한 듯이 어깨를 으쓱인다.
"하야마야, 히키타니. 잘 부탁해"
얼마전 유이 사건으로 미우라가 같은반의 히에라르키 정점에 서 있다는건 잘 알았다.
하지만 같은반의 여왕을 나는 얕보고 있었다. 같은 반의 여왕과 그 부속인들은 학교내에서도 상당히 상위의 존재였던 모양이다.
"HAYATO! HAYATO!"
점심시간, 우리들 이외에 아무도 없었던 코트 주위에 사람이 넘쳐나고 있다.
몸을 틀어 가볍게 워밍업을 하는 하야마에게 환성을 보내는것으로 보아, 어디에서 듣고왔는지 몰려온 구경꾼인 모양이다.
……참 한가한 녀석들이다.
"힛키 말야. 왠지 화났어?"
"그럴지도. 스스로도 의외스러운데 말이다. 그보다 너는 저쪽에 안 가도 되냐? 저 녀석이 말했던 모두에는 유이도 들어있을거라 생각하는데"
"지금은……갈 수 없어. 이런 힛키는 처음이구. 거기다 나도 봉사부고. 그러니까 이쪽이 있을 곳이야. 아마"
"그러냐……. 네가 괜찮다면 상관없지만. 나중에 불평하지 마라"
"안하거든! 그런 소리 하면 응원 안해줄거야! 힛키는 내가 응원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응원해주지 않는 주제에!"
아니, 있잖아. 토츠카라던가.
"미안하다. 그래, 고맙다"
뜻밖에 솔직하게 나온 감사의 말에 스스로도 놀란다.
"그럼 하자고. 내가 꺼낸 이야기니까 선택권은 줄게. 서브랑 리시브, 어느쪽을 할래?"
"그럼 서브를 받을게"
"알았어. 뭐, 아마 거기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일단 다이렉트에 1게임 매치다"
그렇게 말하고 라인선까지 이동한다.
"원 세트 매치, 플레이"
심판으로서 토츠카가 시합개시를 선언한다.
뭐, 시합이 아니라 공개처형이지만.
코트 중앙에서 내가 날린 플랫 서브가 섬광처럼 서비스 코트 센터 내측에 꽂힌다.
시속 180km 약간 미치지 않는 정도라고는 해도, 본격적으로 테니스를 한것도 아닌 하야마가 반응할 수 있을리도 없다.
현재 스코어는 게임 카운트로 0 - 5, 지금 서브 포인트로 득점은 40 - 0, 이제 한 차례만 넣으면 나의 승리다.
하야마가 날린 서브를 모두 라이징으로 되돌려쳐서 리턴 에이스를 뺏고, 서브로는 플랫 서브를 센터에서 센터로 퍽퍽 넣어서 서비스 에이스를 뺏는다.
내가 한건 그 정도라, 무엇 특별한 것은 하지 않았다. 모두 나의 깊은 치바사랑(ver. 무턱대고)으로 해낸 기술이다.
하야마의 안색은 흰색을 너머 흙빛이 되고, 주위는 완전히 밤길 무드. 유이까지 가볍게 식겁하고 있다.
나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왜 이 녀석들은 이렇게나 하야마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던걸까. 진짜 수수께끼네.
"어, 음……미안, 이름 잠깐 까먹었다. 뭐, 좋아. 저기말이다. 서로 열심히 했다고 치고. 그다지 진심도 아니니까. 무승부로 하지 않겠냐? 굉장히 좋은 연습이 됐고. 심판 말이다. 네 말대로 즐거웠어. 다같이. 그러니까, 다음에 나도 축구 도와줄게. 국립, 향하고 있었지? 나, 실은 테니스 고역이거든. 축구를 훨씬 잘하니까. 다같이, 즐겁게, 연습하는 편이 좋겠지, 너는. 그러니까 지금은 무승부로 하자고"
네트선으로 걸어가 하야마에게 끝을 꽂는다.
그것만 말하고, 대답은 듣지 않고 코트에서 나갔다.
하야마가 그 뒤에 어떻게 됐냐고? 내가 알까보냐.
자 그래서, 내가 그런 대활약을 한 방과후이다.
"그럼 히키가야. 왜 네가 지금 이렇게 됐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니?"
"아니……좀 모르겠습니다"
내가 부실로 들어가니 어째선지 먼저 와 있던 유키노와 유이에게 억지로 정좌당했다.
"내가 테니스코트로 구급상자를 갖고 돌아갔더니 아무도 없었어. 그래, 아무도, 말이야. 물어보니 내 허가도 없이 멋대로 일을 저질러준 모양이잖아. 히키가야,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죽을 죄를 졌습니다"
"안 들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정말이지, 너는 진짜……"
혼자 따돌려졌다는게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따가움이 2할을 늘려서 설교를 시작하는 유키노.
그바도 너를 혼자 있게한게 잘못한거면 유이도 같은 죄 아냐? 왜 나만 이런 꼴을 겪어야 하는건데?
정좌하는 내 앞에 의자를 두고 내려다보면서 설교를 하고 있지만, 뭔가 봐서는 안 되지만 보여졌으면 하는 부분이 보일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다.
"히키가야! 듣고 있어?"
"네. 죽을 죄를 졌습니다. 더는 안할테니까 용서해주세요"
"정말로 반성하는거야?"
"물론입니다"
아니, 진짜로 무서워 너. 거스르면 죽는다고 진짜 생각했다니까.
"그럼 됐어. 그래서, 완전히 철저하게 때려눕힌거지?"
"네가 생각하는 때려눕힌다는 수준까지는 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뭐 연습을 방해하러 올 일은 없을 정도로는 트라우마를 심어줬다고 생각한다"
"그래. 그럼 됐어"
유키노 님의 용서를 받고 일어서서 정위치에 앉는다.
아- 진짜 족하네-.
"그리구 좀 지나쳤어, 힛키. 유미코 책임 느끼고 울어버렸구. 왜 그렇게나 화냈던거야?"
"아니, 너는 왜 같이 있었는데도 모르냐? 그런 녀석한테는 안 가르쳐준다"
"에- 어째선데-. 그럼 유키농은 알아? 힛키가 왜 화났는지"
"그의 생각을 쫓아가는건 기분이 나쁘지만. 하지만 그렇네. 아마도겠지만. 하야마의 말로 토츠카의, 테니스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더렵혀진 느낌이 든거겠지. 그게 아니니?"
"……80점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 녀석이 전에 교실에서 국립지향한다고 뭐라 말했던걸 들은적이 있으니까. 자기도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게 있는 주제에, 남이 진지하게 임하는것에 흙발로, 놀이삼아 들어오는게 짜증났으니까. 뭐, 스스로도 뜻밖이었지만. 나 자신이 남을 위해 그렇게 감정적이게 될 줄은 생각 못했다"
"그래……그가 할법하네……"
"그런가 그런가-. 그래서구나-. 그치만 힛키. 힛키는 전부터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해. 왜냐면 전혀 관계없는 사브레도 구해줬고. 다정하다니까, 힛키는"
"그런거 아냐"
왠지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유이로부터 눈을 떼어 창밖으로 눈을 향한다.
나 자신은 지금까지 없던 감정이라 느끼고, 유이는 그걸 원래 갖고 있었다고 말한다.
문득 어딘가의 심리학자가 말했던걸 생각한다.
자신이 아는 자신과 남이 아는 자신을 맞대어서 자기라는 존재의 인식을 넓혀간다거나 뭐라나. 솔직히 흐릿하게 기억한거지만, 확실히 이런 느낌이었던것 처럼 생각한다.
전에 유키노가 말했던 혼자서는 할 수 없는것이라는건 이런 거였을까.
그것이 좋은것인지 나쁜것인지. 내게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5
고등학교 생활을 뒤돌아보고
2학년 F반 히키가야 하치만
리얼충이란 허구이다.
리얼충이란 리얼이 충실하다는것, 또는 리얼이 충실한 사람을 가리킨다.
본래라면 사람 각자 다른 가치관이 있듯이 한사람 한 사람 자신만의 충실한 현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리얼충이라 불리는 인종이란 청춘이라는 대의명분을 핑계삼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고, 실패도 좌절도 모두 추억이라는 아름다움으로 칠해버리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그들의 마음에서 올 청춘의 두 글자에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한다.
뛰어난다는건 수가 많다는것 밖에 없는데.
리얼충이라 불리는 인종처럼 남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무리지을 필요도 느끼지 않는 가치관은 항상 소수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어느쪽이 정말로 우수한지는 뻔하다.
하지만 사회란 다수가 소수를 몰아붙이며, 구축하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 사회가 나쁘다.
이상 이야기의 시작인 힛키의 레포트.
문자수가 압도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서두 부분에 들어갔습니다.
―――――――――――――――――――――――――――――――
청춘.
이 두 한자가 가진 의미를 나는 아직 모른다.
나의 지금까지 해온 고등학교 생활은 세간 일반사회에서 말하는 청춘하고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세간 일반적인 사람들의 가치관이며 내게 있어선 그렇지 않다.
혼자서 등교하며 혼자서 도시락을 먹고 혼자서 집에 간다. 뭣하면 거기에 혼자서 도서관에 가고 혼자서 물건을 사러 가고, 혼자서 게임센터에 간다 등을 포함해도 좋다.
허세고 뭐고 아닌, 나는 확실하게 혼자 있는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오히려 혼자 있는걸을 즐기지 못해, 무리짓는 사람들을 의문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모험가는 말했다 '쓸쓸함을 극복할 수 있는 힘만 있으면 딱히 쓸쓸하지 않습니다'라고.
혼자 있는것에 쓸쓸함을 느낀 적이 없는 나는 특별하며, 또한 이상한 것이다.
세간 일반사회에서 말하는 청춘이라는 것을 구가하는 사람들은 청춘이라는 두 글자를 면죄부로 삼아 자신의 생활을 꾸민다.
청춘이라는 이름의 필터를 통해, 패배도 좌절도 깨끗한 추억으로 바꾸어간다.
세간 일반사회하고는 상용할 수 없는, 이상한 가치관이라고는 해도 내게도 분명 청춘이라는 두 글자는 있다.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것 뿐이지 지금까지 생활도 청춘이라는 필터를 통해 본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나는 봉사부의, 남들과 관여하는 중에 깨달았다.
전혀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남들의 시선으로 말이다.
혼자서는 보지 못했던것이 둘이라면 보인다. 이해할 수 없었던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걸지도 모른다. 그런 기대를 품을 정도로는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것을 느낀다.
그래, 봉사부에서 활동을 통해 내가 배운것이 하나있다.
결론을 말하자――
라며, 거기까지 쓰고 펜을 둔다.
교실에 혼자 남아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다시 제출하는 레포트를 쓰고 있었지만 좀처럼 결론이 딱 나오지 않는다.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왠지 어두컴컴해졌다.
아아, 마지막 한 문장만 쓰면 되니, 나중에 써도 되나, 필통과 함께 레포트 용지를 가방에 집어넣고 습관처럼 부실로 향한다.
"늦었네. 한 마디도 없이 늦다니, 무슨 심산일까"
"교실에서 레포트를 쓰고 있었어"
입을 열자마자 그런 소리를 하는 유키노를 가볍게 받아흘리고 정위치에 앉아 레포트 용지를 꺼낸다.
"너……, 부활동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거니"
"주로 독서지. 아니냐?"
"그래, 뭐……그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네"
그런 말을 하면서 유키노는 어색하게 나로부터 시선을 피한다.
"좀 묻고 싶은게 있는데. 왜 너는 나 같은거랑 친구가 되려고 생각한거야? 사고때문에 알게 됐다고는 해도, 나 같은건 거의 몰랐을텐데 말이지"
"지금까지 내 주위에 있던 사람들하고는 달랐으니까, 로는 납득하지 않겠지. 좋아. 대답해줄게"
책에 책갈피를 끼우고 진지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역시 이 녀석……예쁜 얼굴이다.
"모르는데 친구가 되려고 한게 아니라, 너를 알고 싶어서 친구가 되려고 한거야. 그리고, 너에게 붙어 있는, 스스로는 뗄 수 없는 꼬리표를 흥미없다는 한 마디로 없애버리는 네가 나를 알아줬으면 했으니까. 이거면 되겠니?"
"알고 싶으니까라"
"반대로 너는 어때? 그 날, 너는 거부했었지만,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니?"
"그렇군……. 솔직히 나는 남의 존재 필요성 따위 이해하지 못하겠고, 그런 남과 인간관계를 시끄럽다고마저 생각하고 있었지. 하지만 그 뭐냐. 이 부실에 너랑 같이 있고, 둘이라기보다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이라는 느낌이지만, 그런 관계는 나쁘지 않다는 가능성은 결코 부정할 수 있는건 아니야"
"솔직하지 않네"
그렇게 말하며 쿡쿡 웃는 유키노.
지금 스쳐간 이 감정을 기술하려고 펜을 집고, 레포트 용지에 마지막 한 문장을 추가한다.
――이런 청춘도 나쁘지 않다, 고.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 원작 2권분량 6
원작 2권분량 6 - 1
직장 견학 희망조사표
2학년 F반 히키가야 하치만
1, 희망직종
사회의 톱니바퀴
2, 희망하는 직장
어디라도
3, 이유를 아래에 기술
고인 말하길, 사회의 톱니바퀴 따위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건 착각이다.
톱니바퀴가 빠진 기계가 정상적인 동작을 할리도 없는 것이다.
요컨대 사회의 톱니바퀴라는건 사회에 있어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그리고 사회의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필요한것은 자신의 의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에 묵묵히 따르며, 흘러가는것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이번 직장견학은 주위 의견에 흘러가는 연습으로서 남이 가고 싶은 장소를 희망한다.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2학년에 '직장견학'이라는 행사가 있다.
숭고한 의사를 갖고 순수 자택 경비원을 지향하는 내게 있어 전혀 필요없는 것이지만, 이것도 커리큘럼의 일환이다.
요컨대 땡땡이치면 단위가 위태롭다.
레포트를 다시 제출하여, 거기다 봉사부라는 의미불명한 부활동에 입부하는것을 강제된 사건. 그 경험으로 인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건 때로는 자신에게 불리해진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성장했다.
그런고로 바보 정직하게 희망직장 자택경비원, 희망장소 자택 등을 쓰지 않고 근로의욕으로 넘쳐나는 사회의 톱니바퀴라고 썼지만, 세상은 아직 나를 따라가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째선지 다시 제출을 강요받아, 그런데다 제출받은 조사표의 개표까지 돕게 됐다.
정말이지 의미불명하게도 말이다.
시험전인데 왜 내가…….
"이런 시기에 이런 짓을……"
"이런 시기니까 하는거다. 여름방학이 끝날때는 3학년 코스 선택이 있으니까. 이 시기에 문제제기하여 여름방학을 다 쓰고서 제대로 생각하라는 학교측의 상냥함이다"
내게 이 고행을 강요한 원흉인 히라츠카 선생님이 나의 투덜거림에 대답한다.
"그런겁니까"
히키가야 하치만에게는 꿈이 있다! 갱……이 아니라 어엿한 자택 경비원이 되는 것이다. 정년후에는 생활용으로 팔릴법한 물건을 팔고, 청경우독같은 생활을 보낸다.
그런 명확한 목표를 가진 나이기 때문에, 코스 선택을 생각할 필요가 없어서, 요컨대 직장 견학이란 필요없는 것이 된다. 라고하는 완벽한 로직. 반해버리겠네요, 진짜로.
"아아, 그런거다. 그런데 히키가야. 너는 문과, 이과, 어디로 할거지?"
"저 말입니까. 저는――"
"아-! 힛키 이런곳에 있었구나!"
내가 입을 열때 바보스런 목소리가 그걸 가로 막았다.
나를 힛키 따위로 부르는 녀석은 세상 어디를 뒤져봐도 한 명밖에 없다.
"유이가하마냐. 미안하지만 히키가야를 빌리고 있다"
"히라츠카 선생님, 곤란합니다. 히키가야는 봉사부의 비품이니까 제대로 허가를 받고 가지 않으면"
유이와 같이 있었는지 유키노가 대답한다.
그보다 허가라니 뭐가? 내 소유권은 언제부터 네것이 된거야?
"비품이냐……. 그보다 왜 그래? 무슨 일이냐?"
"힛키가 암만 지나도 부실에 안오길래 찾으러 왔어!"
내 지각이 불만이었는지 캬흥 하며 팔짱을 끼고 서 계신다.
그보다 지각 정도로 마중나오지 마. 기다릴 줄 모르나, 이 애?
"불만이라면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해. 나는 돕기를 강요당한것 뿐이다"
강제로 당하는거라고!
뭐, 히라츠카 선생님의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얼토당토않는 직장견학 표를 제시해서 그 벌로 돕게 하고 있는걸지도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선 진짜이며 진심이다. 오히려 진짜라고 쓰고 레알이라고 읽는다.
뭘까, 이 불합리한 노동은……. 대가도 없고, 그저 힘들고 불합리할뿐. 그런 고행. 게다가 그 탓에 어째선지 유이가 기분 나빠하고 있고. 진짜 못해먹겠네-.
"일부러 물어보러 돌아다녔으니까. 그랬더니 다들 '아아, 그……' 라고 말하구. 힛키 유명해졌네-"
"뭐, 어중이떠중이의 기대를 배신하고 국립을 공개처형해버렸으니까. 유명하다기보다 악평으로 눈에 띈것 뿐이겠지"
"아아, 그거 말이지……. 하지만 전에 같은반 애들이 '얼마전에 그 테니스 치던 사람, 유이 아는 사람?' 이라고 물었었어-"
공개처형 당한 인물이 친구이기 때문인가, 약간 얼굴이 어두워진다.
"미안. 폐를 끼쳤다. 아마 그때 미우라 쪽에 갔으면 됐을텐데. 그보다 너, 설마 가르쳐준건 아니겠지?"
"어? 안돼? 같은반 친구야- 라고 가르쳐줬는데"
"너 말이다……, 내가 암습이라도 당하면 어떡할거냐? 책임 져줄거냐?"
내 프라이버시는 네 안에서 어떻게 되 먹은거야? 그렇게나 사람을 모으는 국립이다. 열광적인 신자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럴 가능성이 있는데 내 신원을 밝힌거냐, 너…….
"그런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어, 뭐가?"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리구 메일 주소 교환하자, 메일주소. 매번 이렇게 찾는거 귀찮으니까. 응, 괜찮지?"
"뭐, 같은 봉사부니까. 연락망이 필요할테니 상관없어. 자"
그렇게 말하고 휴대전화를 꺼내들어서 내 메일주소를 표시하고 유이에게 건낸다.
화면을 보면서 귀엽게 꾸며진 휴대폰에 매끄러운 손가락놀림으로 내 메일 주소를 등록하고, 이번에는 마찬가지로 내 휴대폰에 자기 메일주소를 등록해간다.
"잘도 망설임없이 휴대전화를 거내네-. 보여져서 곤란한건 없어?"
"바보냐 너. 내 교우관계를 얕보지 마. 사적인 연락처는 유키노 밖에 없어"
덧붙여 메일주소 교환은 친구라는 관계를 강요받을때 행해졌다.
처음에는 특별히 용건도 없어서 메일하지 않았지만, 유키노가 우리 집에 온 이래 카마쿠라 사진을 찍으라고 강요받게 됐다.
덧붙여 기상시와 취침전에 유키노에게 메일 보내는게 요즘 나의 일과가 됐다. 한번 메일을 보내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대단히 긴 문장으로 나를 비난하는 메일이 왔다. 너 얼마나 카마쿠라 좋아하는거야.
"에, 유키농하고는 교환했었어?"
유이가 휴대전화로부터 고개를 들어 유키노를 보니, 유키노는 어색한듯 눈을 피했다.
안 가르쳐준거냐. 뭐, 그랬으니까 찾으러 다닌거겠지만.
"부장으로서 부원과 언제라도 연락을 취할 수 있도록 준비해두는건 당연하잖니? 거기다……그하고는 친구고……"
"그럼 유키농이 힛키한테 메일 써줬으면 안찾아도 됐잖아"
"그건…… 그게, 그는 학교에 있을때는 메일 체크를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까. 그렇지, 히키가야?"
"울지 않는 휴대폰을 신경써봐야 소용 없으니까. 학교에선 시계 대용으로 쓴적도 없다"
내 수신이력의 7할은 유키노이며, 이어서 2할이 코마치. 마지막으로 DM이 1할이다.
얼마나 유키노랑 메일하는거야.
"왠지 치사해-!"
불만스럽게 뿌-뿌- 볼을 부풀리는 유이.
하나하나 몸짓이 어린애스런 녀석이다. 과연 바보다.
뭐, 아마 그것도 그녀의 매력이겠지만, 말해줄 생각은 없다. 왜냐면……소문 퍼지기라도 하면 부끄러우니까.
그보다 저거 왠지 딴죽 걸고 싶어지는데-. 하면 화낼까나-.
"뭐, 이걸로 봉사부의 연락망이 완성된거니까 신경쓰지마. 응?"
"그런거 아니다 뭐. 흥이다. 힛키 바아보"
그런거는 또 뭐냐. 의미 모르겠군.
"히키가야, 뭔가 잊고 있지 않은거냐?"
거기서 담배를 피우면서 우리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히라츠카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어, 뭐가 말입니까?"
"봉사부의 연락망 말이지? 그럼 고문인 나를 무시하면 어쩌려고. 내놔라"
이미 입력을 끝냈는지, 여기요 하면서 유이가 휴대폰을 건낸다.
"딱히 상관없지만 멋대로 넘기지 마"
"에-, 괜찮잖아. 아, 히라츠카 선생님 나중에 저한테도 부탁드려요"
"아아, 좋고말고. 자, 끝났다 히키가야. 이걸로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게 됐군. 전교방송을 듣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는 학교에서도 신경쓰도록"
"아, 나도 메일 보낼게-"
"아니, 너는 같은 반이잖냐. 뭐, 신경쓰겠습니다"
"오늘은 되게 솔직한데? 왜 그래? 몸 상태라도 안좋냐?"
"저는 언제나 솔직하다고요. ……자신한테"
오히려 나만큼 솔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보다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으면 일부러 세간 일반에서 벗어나 있다는걸 알면서도 혼자 있으려고 하지 않는다. 뭐, 자신에게 너무 솔직해서, 이따끔 이렇게 호출을 받게 되지만.
하지만 하치만은 자신을 굽히지 않아!
"뭐, 그것도 그런가. 좋아, 히키가야 도와줘서 고맙다. 이제 됐다. 가거라"
담배를 비벼 끄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노동종료 허가를 내린다.
"예. 그럼 부활동 가겠습니다"
허가가 나온 이상, 여기에 있을 이유도 없어 가방을 쥐고 부실로 향한다.
그런 나의 등 뒤로 히라츠카 선생님이 부른다.
"그러고보니 히키가야. 깜빡했었지만 이번 직장견학. 3인 1조로 가게 됐다. 좋아하는 사람끼리 짜게 될거니까 알아둬라"
이 무슨 충격적인 사실.
"좋아하는 사람끼리라니……. 덧붙여 저도 묻는거 깜빡했는데요, 직장견학 땡땡이 치면 어떤 페널티가 붙습니까?"
"정말이지 너는……. 그런 짓을 하면 편하게 진급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렇겠죠-.
그런 히라츠카 선생님의 무자비한 철퇴에 한숨을 흘린다.
"뭐, 강제참가라는 조건은 모두 매 마찬가지니. 좋아하는 사람 끼리가 아닌, 저는 남은 녀석들과 짜겠습니다."
애시당초 같은반 안에서 이름을 알고 있는건 유이랑 토츠카, 그리고 미우라 정도니까. 좋아하는 녀석들끼리 짜는건 처음부터 무리게임이다.
"추하네"
"그러는 너는 어떡할건데?"
"어머, 나는 잡아줄곳 없는 폐품같은 히키가야하고는 달리, 권유받는 측인걸"
그러고 자랑스럽다는듯이 옅은 가슴을 펴는 유키노.
"네네, 그러십니까 유키노 님-"
"뭐……같은 반이었으면 구원의 손을 내밀어줘도 괜찮았겠지만. 유감이네"
"뭐, 마음만 받아두마"
같은 반이었으면 너랑 짜고 싶었다. 의외로 그렇게 말해주는 유키노에게 가슴속으로 감사한다.
평소 독설에 익숙해져버린 탓일까, 그러한 사소한 상냥함에도 조금 두근거려버리는 자신이 분하다.
아- 왠지 길러지는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봉사부 활동이라는 것은 극히 수동적인 것이다. 의뢰인의 방문이 있어야 활동한다는건, 반대로 말하자면 의뢰인만 안오면 활동할게 없다고도 할 수 있다.
요컨대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싶냐고 하면――
"힛키, 유키농, 심-심-해-에-"
그래, 한가한 것이다.
한가하다고는해도 학생인 이상 전혀 할 일이 없다는건 아니다. 특히 지금은 시험전이 해당하므로 할 일이 없으면 공부를 하면 되는것이다. 오히려 공부하는것 말고는 할게 없다.
하지만 내 눈 앞에서 책상에 엎드려 심심해 노래를 부르고 있는 유이에게 있어선 다른 모양이다.
그보다 너, 도저히 성적 좋아보이지는 않는데, 공부 안 해도 되는거냐?
"공부해라, 공부. 시험 전에 가르쳐줘- 라고 해도 난 모른다. 들은 적도 없지만"
"그런 말 안하거든. 그보다, 왜 힛키 공부하는거야. 이 배신자야! 힛키는 바보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자세를 바꾸지 않고 시선만 이쪽으로 향하며 유키노에게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나를 가볍게 dis하는 유이.
왜 이 부의 여자들은 그렇게나 나를 dis하는걸 좋아하는걸까. 토츠카였다면 울었을거다. 아마.
"바보는 너 뿐이다. 알겠냐, 나에게는 훌륭한 자택 경비원이 된다는 꿈이 있다. 목표를 갖고 공부하는건 당연하잖냐"
"의미 모르겠네. 자택 경비원은 요컨대 니트잖아? 왜 공부하는거랑 관계있는건데!"
"유명대학을 졸업해서 적당한 페이퍼 컴패니를 설립해서 사장이라는 직책을 얻을거다. 그러면 가족의 세간 면목도 설거 아냐? 나 혼자 생활하는데는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뒷일은 적당하게 살거다"
전에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했던것과 같은 설명을 해준다.
뭐, 나와 부모의 관계성을 생각하면 나의 진학처나 취직처 등에 전혀 신경쓰지 않겠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코마치가 못난 오빠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건 견딜 수 없다.
세간 면목이라기보다 코마치의 앞에서는 멋진 오빠로 있고 싶다고 바라는 나의 몇 없는 자존심이다.
"전혀 의미 모르겠네……. 그리구 유명대학이라는건 힛키, 혹시 머리 좋아?"
"그러냐, 필요없는 질투사는건 귀찮으니까 선생님에게 입막음 부탁했으니 네가 몰라도 이상하지 않나. 나는 이래봬도 학년수석이다"
기본적으로 사회는 민주주의, 요컨대 다수결로 성립하고 있다. 당연히 학교생활이라는것도 그 예에 들어, 나처럼 주위에 녹아들려고 하지 않는 이른바 외톨이라는 인간은 입장이 낮다.
그런 인간이 우수하면 귀찮은 일이 일어난다는건 상상하기 쉽다.
이 학교는 시립이라고는해도 현에서는 유수한 진학교이며, 학교 진학처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도 나같은 우수한 학생은 필요해진다.
나는 그런 학교측의 형편을 잘 이용하여 가볍게 정보조작을 의뢰한것이다. 뭐, 정보조작이라고해도 내가 수석이라고 밝히지 않는다는것 뿐이지만.
원래 시험결과의 순위등을 붙이는것도 아니고, 나 자신이 자랑하는것도, 물어봐주는 녀석이 있는것도 아니어서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던것이다.
"어? 진짜? 거짓말이지?"
"아니, 너.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보다 너한테 허세 피울 이유 없잖아? 요컨대 그런거다"
"있지, 있지 유키농. 힛키가 자기가 학년수석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내 말을 어지간히도 믿고싶지 않은지, 유이가 옆에서 문고본을 읽는 유키노에게 말건다.
마침 좋은 장면이었을까, 살짝 얼굴을 찌푸렸지만 책에 책갈피를 끼우고 유이를 다정하게 타이르듯이 말한다.
"유이가하마, 속으면 안 돼. 그와 같은 근성이 썩은 인간이 학년수석일리가 없잖니? 출처는 나. 왜냐면 내가 수석인걸"
"아니, 너는 과가 다르잖아. 애시당초 커리큘럼이 다르니까 당연하지"
"……그것도 그렇네. 그치만 히키가야, 거짓말은 안 된단다? 허위 신고는 법에 저촉될거야"
"너희들 왜 그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거냐? 아니, 너희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딱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것만 말하고 공부로 돌아간다.
누군가를 위해 공부하고 있는것도,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공부하고 있는것도 아니다. 뭣하면 수석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나는 그저 자택경비원이라는 목표를 위해 공부하는것 뿐이다.
"에, 뭐야? 힛키 삐졌어? 미안해 힛키"
"유이가하마, 그런걸로 삐져버리는 속좁은 남자 따윈내버려두렴. 하나하나 신경써봐야 손해만 볼거야"
삐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무슨 착각을 한건지 내게 다가와 내 팔을 잡고 붕붕 흔들어대는 유이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를 무시하는것처럼 독서로 되돌아가는 유키노.
아니 안 삐졌거든. 진심으로 아무래도 좋을 뿐이라고. 하지만 이대로 착각받기만 해선 유이는 언제까지고 내 팔을 흔들어놓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공부를 할 수 없으니까, 어쩌면 팔이 빠질지도 모른다.
"아니, 안 삐졌거든. 뭣하면 한가하다못해 심심한 유이를 위해 내가 감춰둔 웃긴 얘기를 해주마. 그거다, 나의 가족여행의 추억을 들어봐라"
"어, 뭐야? 들으면 돼? 힛키, 가족여행의 추억은?"
내 옆에 의자를 가져와 앉고 눈을 반짝거리며 순순히 물어보는 유이.
누구에게도 말한적은 없지만, 내 안에서는 포복절도했던 감춰둔 웃긴 얘기다.
"나의 가족여행 추억 말이지.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이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여행갔습니다, 라는 쪽지랑 천엔만 놓여 있었어. 배고프면 물을 마시고, 다른건 그저 잠만 자고 보냈으니까, 덕분에 7킬로는 빠졌다"
"어?"
"어때? 재미있지?"
"어? 뭐야? 힛키,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어? 재미 없었냐? 그럼 그거다. 추억의 여행처는 어때? 아버지랑 싸운 엄마가 나 데리고 동반자살하려고 절벽 위에 올라간거. 그거 진짜 추억으로 남아있어. 『하치만, 엄마랑 같이 죽을래?』라고 말한것 까지 기억하고 있다. 유치원때 있던 일인데"
점점 흐려져가는 유이의 표정에 초조해하며 화살처럼 내 입장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필사적으로 하는 나.
그렇게나 재미없냐? 아니, 진심으로 웃긴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남은건 우동 이야기 정도 밖에 모른다고.
"전혀! 재미없어!"
유이는 펑! 하며 양손으로 책상을 내치고는 내게 다가와 어깨를 붙잡고 뒤흔든다.
"저기 힛키, 왜? 왜 그런 얘기 한거야? 그런걸 듣고 웃을리가 없잖아!"
"아니, 진정해. 그보다 너 왜 우는거냐"
"우는게 당연하잖아! 그치만, 그렇게 무척이나 힘들고, 슬픈 이야긴데, 힛키 전혀 힘들어보이지 않는걸. 평범해 하는걸. 그런건……이상해"
"유이가하마, 괜찮아?"
"우엥. 유키노옹"
그런 우리들의 대화를 깨달았는지 유키노가 읽던 책에 책갈피도 끼우는것도 잊고 다가온다. 울면서 유키노를 껴안는 유이의 눈물을 손수건으로 살살 닦아주고 나를 째릿 노려본다.
"히키가야, 정좌"
"어?"
"정좌. 얼른 해. 안 들려?"
"아, 네"
테니스 코트에 혼자 따돌려졌을때 이상으로 노기를 뿜으며 명령해오는 그 목소리에 무심코 경어로 대답하면서 즉시 바닥에 정좌한다.
어? 내가 나쁜거야? 그보다 유키노, 당신도 진정해주세요. 분노때문에 죽겠습니다.
"잠깐 얼굴 씻고 진정하자. 이 남자를 위해 네가 눈물을 흘릴 필요따윈 없어. 히키가야, 잠시 이 방을 떠나겠지만 그 사이에 자세를 풀거나 도망치기라도 하면……어떻게 될지는 알고 있지?"
"넵. 얌전히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가자, 유이가하마"
그러고 유키노는 유이를 데리고 나가고, 나는 혼자 방에 남겨진다.
내가……잘못한거냐? 남들과는 동떨어져있다고는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었지만 웃음 감각까지 동 떨어져있을 줄은 생각 못했다……. 오히려 『뭐야 그거, 힛키네 집 이상하잖아-』같은 느낌이 될거라 예상했는데.
기본적으로 나의 대인능력, 소위 커뮤니케이션력이라는건 지금까지 몇 없는 남과 관계를 쌓는 도중에 길러지는 것이다.
무난한, 무미건조한 대답을 나는 끝없이 모색하고 있었다. 적도 아군도 만들지 않도록, 상대의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을 조율해서 때로는 타협해왔다.
요컨대 나의 커뮤니케이션력은 경험에 배신당한것. 이번처럼 내가 이렇게 생각하니까 상대도 그럴 것이다, 같은 예측이 어긋날때 대처하는 방법을 나는 갖고 있지않다.
어째서 이렇게 된걸까, 고민해봐야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가르쳐줄 사람이 없으니까.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우리 집은 코마치 도상주의였다.
소위부모의 애정이라는건 모두 코마치에게 부어져서, 나를 뒤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왜냐면 코마치는 세계에서 제일 귀엽고, 부모님이 그렇게 당연것도 당연한 일이다.
밥이 없어도 스스로 토스터로 빵을 굽는것 정도는 할 수 있고, 뭣하면 참치캔에 간장만 넣어서 그걸 반찬없이 밥을 먹는것도 가능하다.
옷 갈아입기도, 유치원에 가는일도 스스로 할 수 있다.
스스로 전부 할 수 있으니까 부모님의, 남의 손을 빌릴 필요가 없는것도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내게는 다른 녀석들이 모두, 다같이, 무언가를 한다는게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혼자서 할 수 있는걸 굳이 다 같이 하는건지 그 필요성을 이해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이나 만화 속의가족이라는것이 우리집하고는 다르다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혼자서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선 그것이 보통이며, 나처럼 혼자서 할 수 있는 인간에게 있어선 현재상황이 보통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극히 평범한 가족의 추억을 얘기한것 뿐이라고. 나한테 있어서는 진짜로 웃긴 얘기를 할 생각 뿐이었으니까, 울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의외로 나는 나쁘지 않다고 필사적으로 호소한다.
10분 정도 뒤에 돌아온 둘로 인해, 현재 나의 단죄 타임 나우.
twitter 같은데서는 나우 라던가 쓰는 일이 나우란 젊은층에 잘 먹히는 모양이다. 모르겠다만.
여전히 정좌중인 나를 유키노는 식은 눈으로 내려다보고, 유이는 내 이야기를 듣고 방금전 일을 생각한건지 새빨개진 눈을 또 적시고 있다.
"불쌍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여기까지라니"
"유키농. 힛키 불쌍해보여……"
남은 남. 나는 나. 모두 다 달라도 괜찮다. 그런거잖아?
우리집에 있어선 평범한 일이잖냐, 딱히.
"왜 동정받는거냐, 나는……. 진짜 의미 모르겠네"
"히키가야. 왜 동정받고 있는지도 모르는, 정말로 불쌍한 너도 알수 있도록 가르쳐줄게. 그건 네글렉트. 이른바 육아포기라고 하는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 할 수 있는 애는 혼자 내버려둬도 할 수 있으니 그걸 육아포기라고는 하지 않는거다. 거기다 나랑 코마치였으면 코마치를 귀여워하는것도 보통이다. 누구든 그렇게 할걸. 나라도 그렇게 한다"
"너……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니?"
"어. 물론이고"
웅크려앉아 평소와 달리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유키노에게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한다.
"……그래. 아무래도 진심인 모양이네. 저기 유이가하마. 그런 얼굴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고 싶지 않을테니 차를 부를테니까 오늘은 같이 집에 가자. 집까지 보내줄게. 히키가야는 먼저 돌아가겠네"
"고마워 유키농"
무언가 납득한듯이 끄덕이고 유키노는 일어서서 유이에게 말을 건다.
"알았다. 미안하다 유이. 울릴 생각은 정말로 없었다"
"이제 됐어, 힛키. 그치만 더는 그런 얘기하지마. 힛키한테는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을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나 분명 또 울어버릴거야"
"알았다. 정말로 미안하다"
그렇게만 말하고 둘에게 인사하고 부실을 뒤로했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는 휴식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에 따라선 친구와 이야기한다고 쓰거나, 혹은 잊어버린 과제를 필사적으로 끝마치려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내게 있어선 다음 수업준비를 하기 위한 시간이다.
애시당초 쉬는 시간이라는건 나처럼 사용하는것이 올바른 학생의 방법일텐데, 그렇다고해서 남들의 사용법을 구론하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은 남. 나는 나다.
소음으로 둘러쌓인 교실 속에서 혼자 묵묵히 준비를 하는 나였지만, 그런 내게 말을 거는 기특한 녀석이 있었다.
"히키가야, 안녕"
토츠카다.
그러고보니 이 녀석 같은 반이라고 했었지. 말 걸어도 괜찮다고는 했지만 그 후에 특별히 접촉은 없었기 때문에 가볍게 잊고 있었다.
"어, 안녕. 왜 그래 무슨 일 있냐?"
"있잖아. 히키가야는 직장견학 장소 정했어?"
"장소 이전에 반이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정할 수가 없지. 남은 녀석들이랑 짤거니까 반에서 정하는건 마지막일테지"
내가 반에서 교류라고 부를수 있는걸 갖고 있는건 유이 뿐이다. 그리고 그 유이는 언제나 같이 있는 미우라, 안경 여자애랑 같은 반이 될테니 지금은 관계없다.
따라서 마지막까지 반이 정해지지 않았을때 인수에 맞춰서 참가하게 될 터인 나는 반 안에서 조가 정해지지 않으면 장소를 확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있잖아. 괜찮으면 말인데……. 나랑 같이 조 짜지 않을래? 나 반에서 남자 친구는 없으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여자 친구는 있다고. 딱히 동성끼리 짜라고 정해진건 아니니까 여자랑 짜면 되지 않나? 라고 생각 안한것도 아니지만, 어떤 의미로 이건 구명줄이다. 특별히 거절할 이유도 없다.
"좋아. 하지만 남은 한 명은 어떡할건데. 부를만한 녀석 있어?"
내 질문에 토츠카는 약하게 고개를 흔든다.
"그럼 뭐, 기다리는건 변함없군. 정해지는게 늦어질것 같으니, 희망할 곳이 있으면 생각해줘. 나는 어디라도 좋으니까"
"알았어. 잘 부탁해, 히키가야"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는 토츠카.
해냈구나, 사이. 조가 정해졌어.
그렇게나 기쁜걸까-. 이 녀석이 생각하는건 잘 모르겠다.
내게 말 걸어오는 녀석도, 내가 말을 거는 상대도 있을리 없어, 조원이 정해지지 않은채로 그날 방과후가 됐다.
평소처럼 부실로 향하여, 평소처럼 찾아올지도 모를 의뢰인을 기다리면서 공부를 하고, 평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로 귀가 시간이 됐다.
최근 부활동 종료 신호는 유키노가 책을 덮는 소리가 되어있다.
그런가, 역시 여기는 문예부였군. 다음에 유키노에게 안경을 씌워보자. 나, 안경속성은 없지만.
그런 시시한 생각을 하면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으티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진짜냐……"
애시당초 귀찮은 부였는데, 여느때보다 더 귀가 모드로 변해있던 나로서는 지금 부활동은 하고 싶지 않다.
"들어오세요"
하지만 부장님은 그리 생각하진 않은 모양이다.
생각할 여지마저 보이지 않고 대답을 하는 그 모습은 어느 의미 칭찬마저 느낀다.
과연 고귀한 유키노 님이군요.
"실례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들어온 남자의 모습은, 일찍이 상담하러 찾아온 유이하고도, 토츠카하고도 달리 당당한 모습이었다.
아니……진짜로 이런 의미불명한 부에 입장하게 됐는데, 왜 이 녀석은 당당해할 수 있는거지. 칭찬하마. 당연히 나쁜 의미로.
"이런 시간에 미안해. 좀 부탁이 있어서 말이야"
정말로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날을 바꿨어야할 것이다. 따라서 이 녀석은 조금도 미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인사 정도로 귀찮은것은 없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아니, 부활동에서 좀처럼 빠지지 못해서. 시험전에는 부활동을 쉬게 되니까, 오늘 중에 메뉴대로 다 해두고 싶었던 모양이야. 미안해"
라며 물어보지도 않은 이유를 말하는걸로 보아 확신범인 모양이다.
미안하다고 생각하면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라.
"서두는 됐어"
나와 마찬가지로 생각했는지 유키노는 변명을 딱 자른다.
……그럼 애시당초 들이지 말라고 묻고 싶다. 따지고 싶다. 약 한시간 정도 묻고 싶다.
"무슨 용건이 있어서 여기 찾아온거지? 하야마 하야토"
"아아, 그랬지. 봉사부는 여기가 맞지?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고민 상담이라면 여기라고 들었는데……"
"그런건 됐으니까. 용건만 말해"
유키노의 차가운 말에도 기죽지 않고, 다시 줄줄 서두를 말하려는 남자의 말을 자른다.
"미안해. 그래서 용건 말인데. 이거 봐주겠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메일 화면을 열고서 그걸 내게 보여준다.
"나한테 보여줘서 어쩌라고. 보여줄거면 우선 유키노한테 보여줘야할거아냐"
"그런가, 미안"
괴롭힌거 아냐! 괴롭힌거 아니라고! 왠지 사과만 받고 있지만, 괴롭히지 않았어!
그치만 나 잘못된 소리 안 했으니까. 늦은 시간이니까 용건을 재촉하는 것도, 우선은 부장에게 확인시키는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유키노와 유이가 둘이서 휴대전화 화면을 보고서, 유이는 앗, 하고 작은 소리를 내며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어 딸깍딸깍 거리고는 유키노에게 보여준다.
"체인 메일이네"
체인 메일이라는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건 이것이 처음이다.
이번에 갖고온 의뢰자는 침팬지도 개미핥기도 아닌, 반의 특정 인물을 표적으로 비방중상한 것이었다.
그보다 이 녀석, 같은 반 애들을 모르는 내게 이런걸 보여줘서 어쩔 생각이었지? 보여줘도 누구? 아는 사람? 이 될 뿐이었을텐데.
"이게 돌고 있어서 그런지 반 분위기가 나빠서 말이야. 거기다 친구를 험담하는 글이 쓰여있으면 화가 나고"
"그래서, 이걸 어쩌라는거지? 범인찾기를 하면 되나?"
서두 길어.
체인 메일이 돌고 있다. 반의 분위기가 나쁘다. 여기에 대처할 방향성을 추가해도 세 문장이면 끝날 이야기잖아.
"아니, 범인찾기를 하고 싶은게 아니야. 원만하게 수습할 방법을 알고 싶어. 부탁할 수 있어?"
"다같이, 사이 좋게 말이냐?"
시선으로 물어본다.
"아니, 얼마전엔 미안했어 히키타니. 이야기는 유이에게 들었어. 전면적으로 내가 잘못했어"
"그래서 유키노. 봉사부로서 이 의뢰는 어떤 방향성으로 관여하는거지?"
가볍게 무시하고 부장님에게 수사방침을 묻는다.
그럼 봉사부대로 둥글게 수습할 방법이란 어떻게 할건가.
"요컨대 사태의 수습을 하면 되는거지?"
"응, 뭐 그렇게 되네"
"그럼 범인찾기를 하는 수 밖에 없네"
"음, 좋, 에!? 어라, 왜 그렇게 되냐"
경쾌한 순간 딴죽이다.
"체인 메일……. 저건 사람으로서 최저의 행위야. 자신은 결코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악의만 흘려보내고 있어. 그리고 그런 악의를 확산시키는 것이 악의밖에 없다는게 더욱 성질이 안 좋아. 때로는 선의, 혹은 때로는 호기심이 악의를 확산시킨단다. 그런 악의의 확산을 막는데는 근본을 근절시키는 수 밖에 효과는 없어. 출처는 나"
"경험담이냐……"
유키노의 방침은 헛소리가 아닌, 실체험에 의한 진심이었다.
그보다 너, 악의를 너무 뒤집어 쓴거 아냐? 얼마나 질투 받은건데.
"정말이지, 남을 비방하는 내용을 퍼뜨려서 뭐가 즐거운걸까. 그로 인해 시모다나 사가와에게 메릿트가 있을거라고는 생각들지 않는데"
"그 녀석들은 재미있어 한걸테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이론은 알고 있다"
"그래, 너는 그렇겠지. 왜냐면――"
"왜냐면, 질투의 감정을 가질만큼 남을 알지 못하니까, 잖아?"
"그, 그래. 그 말대로야"
"너랑 알게되고나서 시간은 짧지만, 그렇게 말할것 정도는 대충 알겠다"
읽혀버린게 분했는지 가볍게 얼굴을 붉히며 "으, 아아, 그래" 하며 가볍게 허둥대는 유키노.
"이야기로 돌아갈게. 우선 그런 최저의 행동을 저지른 인간은 연좌제를 적용해서라도 확실하게 멸해야해. 눈에는 눈을. 이에는 이를. 적의에는 적의로 되돌려주는게 나의 주의야"
"함무라이 법전에도 연좌제는 없다, 아마. 애시당초 그런 무시무시한 법도 아니고"
당하면 되갚아준다는 이미지는 있지만, 본래는 당한만큼 갚아주라는 것이다.
따라서 섬멸을 바라는 유키노의 해역은 딱봐도 과잉이다.
"그런건 됐어. 나는 범인을 찾을게. 그게 가장 간단한 방침이니까. 아마, 한 마디 말하면 딱 그칠거라 생각해. 그 뒷일은 네 재량에 맡길게. 그러면 되겠지?"
"아아, 그거면 돼"
온경한 해결방법을 바라는 의뢰인에게 섬멸이라는 방침이 나온 순간이었다.
유키농의 방침 진짜 과격!
"그래서……. 메일이 돌기 시작한건 언제 부터였니?"
"저번 주말부터야. 안그래 유이"
방침이 결정되고 수사가 시작됐다.
시작됐다고해도 나는 완전히 틀 바깥이다. 들은바로는 주로 메일을 받은 둘을 대상으로 행해졌고 서류상 같은 반이라는것 뿐인 내게 대답할 수 있는게 있을리 없다.
집에 가도 돼? 그래도 되지?
"히키가야, 듣고 있니?"
얘기하는 셋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위치에 앉아 멍때리고 있더니 혼났다.
"미안. 안 들었다. 그래서 왜?"
"조금은 의욕을 보여줬으면 싶은데. 히키가야, 저번 주에 무슨 특이한 일은 없었니?"
저번주라……. 유이를 울려버린것 말인가? 아니, 저건 절대 관계없겠지. 저번주…….
"직장견학 희망표가 있었지. 내가 개표를 거들었고, 니들이 찾으러 왔던 그거. 내가 기억하고 있는건 그 정도다"
그걸 듣고 유이가 핫, 하며 무언가를 눈치챘다.
"우와, 그거다……"
"아니지"
바보의 바보발언을 가볍게 흘린다.
"아냐 맞아! 이런 그룹 나누기는, 이후에 관계에 영향이 나오니까. 고지식한 애들도 있어!"
"그, 그러냐. 미안"
또 바보같은 소리 하네, 처럼 생각해 가볍게 흘려버렸지만, 명확한 근거를 보이니 어쩌면 그런걸지도 라고 생각해버린다.
그런 우리들의 대화를 구분짓듯이 유키노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하야마, 메일에 쓰여있는건 네 친구들이라고 했지? 네 그룹은?"
"아, 아아. 그러고보니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그 셋 중에서 같이 가게 될거라고 생각해. 아마"
"범인 알아버렸을지도……"
명탐정 유이가 어느 정도 침울한 목소리를 냈다.
"설명해주겠니?"
"응, 그게 말야, 평소 같이 있던 사이에서 한 명이 떨어지게 되는거잖아? 넷 중에 한 명만 따돌려지면 혼자가 된 사람은 힘들지 그거……"
"……그럼 그 셋중에 범인이 있다고 봐도 틀림없겠네"
유키노가 그렇게 결론짓는다.
"좋은 추리다, 에누리 없게도 말이지. ……하지만 무의미해"
거의 결정이라고 해도 좋을 분위기 속에서 나는 반론을한다.
"히키가야, 그건 무슨 의미니?"
"뭐, 직장견학 그룹 나누기가 연관되어 있는건 맞다고 생각해. 하지만 같은 그룸 내에서 따돌려지고 싶지 않다고 범인동기를 결론짓는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낸 결론에 물을 끼얹어진 유키노가 나를 노려본다.
"계속해봐"
"그러니까, 이 녀석한테 따돌려지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 넷 중에서 이 녀석 한 명을 따돌리고 싶으니까 그런짓을 한거 아냐? 넷 중에 세명에게 비방중상 메일이 오가는데 한 명만 그게 없다. 누명을 씌우는데 딱 좋은 상황이잖냐"
"힛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치만 하야토 반에서 인기 많은걸"
"안 됐지만 나는 이 녀석이 인기 많느니 몰라. 내가 아는 이 녀석은 남이 열심히 부활동에 힘쓰고 있을때 놀러들어오는 녀석이다. 그리고, 그건 얼마전의 사건이 있어서 그 셋도 알고 있을거 아냐? 그렇다는건 이후 관계를 생각해서 이 녀석과 거리를 두고 싶다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지"
애시당초, 그렇게까지 이 녀석이 중심이 된다는 전제가 이상한 것이다. 유이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올바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런 예비지식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이 녀석의 정보는, 국립지향한다, 미우라 주변인, 싫은 자식, 이 세 가지 뿐이다. 인기많다는 정보는 내게는 없다. 그렇기에 다른 가능성에 도달한 것이지만.
"……일리 있네"
"그, 그럴리가……"
의자에서 떨어져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의뢰인.
그런 의뢰인에게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라 쭈뼛거리는 유이.
"뭐, 뒷일은 따돌려질것 같은 분위기를 눈치챈 이 녀석이 여기로 의뢰를 갖고온 자작연출이라는 가능성도 있다. 지금 이 녀석의 반응을 보면 그건 아닌 모양이지만"
내가 가진 인상을 토대로한 추리에 모두 입을 다문다.
"그래서 어떡할거냐, 유키노? 내가 말한건 어디까지나 가정한 이야기다. 내가 올바른지, 유이가 올바른지,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어느쪽이든 수사 결과에 따라선 의뢰인이 알고 싶지도 않은 진실이 겉으로 나올 결과가 될것 같은데. 뭐 처음부터 조사따위 하지 않고 얼렁뚱땅 끝내는 방법도 없지는 않지만"
지금 이 녀석의 모습을 보건데,진실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이미 늦은 느낌이 들지만.
"그렇네……, 그가 히키가야의 제안을 듣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걸로 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때 또 생각하자. 그럼 들려주겠니?"
내가 생각한 얼렁뚱땅 끝내는 방법. 그것은――
봉사부에 오랜만에 의뢰자가 찾아온 다음날 점심시간, 나는 내가 생각한 제안을 실행하기 위해 교실에 있었다.
왜 내가 하지않으면 안 되는건데, 라는 마음이 가슴을 지배하지만, 이것도 봉사부로서 일의 일환이다.
일인 이상 사정을 개입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주의. 유키노의 주의와 달리 꽤 정상적이다. 그 녀석은 지나치게 과격하다.
좋아, 기합을 넣고 첫번째 목표에게 향한다.
불확정요소가 없는건 아니지만, 나는 9할쯤 성공을 확신하고 있다.
적당하게 얼버무려서 남은 1할을 채우자.
"미우라, 잠깐 괜찮냐?"
교실에서 에비나와 밥먹고 있는 반의 여왕님, 미우라에게 말을 건다.
"히키오잖아. 왜? 무슨 용건?"
"있잖냐, 얼마전에는 미안하다. 이름 모른다고 하고. 내 이름은 알고 있던것 같은데 실례였다. 미안"
그것만 말하고 고개를 숙인다.
갑작스런 내 사죄에 놀랬는지 미우라는 금색 드릴을 손가락으로 감는다.
"아니, 딱히 됐고. 유이한테 들었지만, 너 진짜로 반 애들 기억 못하잖아? 나아도 유이가 네 얘기를 해서 알게 된것 뿐이고"
"그래도. 정말로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고 한번 더 고개를 숙인다.
덧붙여 이 사죄는 제안의 첫 단계이지만, 미안하다고 생각하는건 사실이다. 그저 미우라에게 말을 거는 자연스런 이유가 그 밖에 없었으므로 제안에 끼워둔것 뿐이다.
"이제 사과하기 없기. 거기다 말야, 나아도 얼마전에는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라고 알고는 있지만, 나도 미안"
유이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미우라는 비교적 얼마전의 사건을 신경쓰고 있던 모양이라, 토츠카에게도 사과한 모양이다.
"히키타니, 아니 히키가야. 나도 미안"
"음, 에비나였나. 어라, 나 에비나한테 사과받을 짓을 했나?"
아마 없었다고 생각한다. 응, 미안.
"나 말야, 히키가야는 수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때 생각했어. 아, 귀축 공이구나……"
예상밖의 사죄 이유로 인해 이번에는 내가 한방 먹었다.
"아, 아니 에비나? 너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좀 모르겠다만"
"하야x하치가 아니라 하치x하야였구나. 정말로 미안해"
그런 일로 사과받아도 진심으로 곤란할 뿐인데…….
"아니, 그 곱셈은 좀……. 그거다, 지금은 하극상으로 하야마에 총수가 뜨겁다고 생각해. 추락한 같은반의 아이돌을 둘러싸고 능욕당한다거나"
근본적인 해결에는 무엇 하나 되지 않지만, 눈 앞에 새로운 먹이를 늘어뜰여서 화제를 돌린다.
"하극상! 그런것도 있었나. 좋네 히키가야, 잘 알고 있잖아! 아, 히키타니라고 불러도 돼? 지금 하치하야로 소설 쓰고 있지만, 히키가야라고 변환이 안되서 말이야. 언제나 히키타니로 변환하고 있으니까 그 쪽이 부르기 쉽지? 그래도 되지?"
망상하고 있을때는 말이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라고하는것이 구원받지 않으면 안 되는 구나. 혼자서 조용하고 풍부하게…….
"비교적 최악인 이유지만……, 뭐 거기만 눈을 감아주면 힛키보다는 낫나. 딱히 상관없다"
하야하치 소설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도망친게 아냐. 전략적 후퇴다.
"고마워. 이야- 다시 봤어!!!"
"에비나, 침 흘리고 있어"
그렇게 말하며 흥분하는 에비나의 머리를 찰싹 치는 미우라.
"미우라……, 너도 큰일이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히나가 흥분할 소리를 하지 마. 그래서, 할 얘기는 그것 뿐?"
"아니, 좀 상담할게 있거든. 실은 직장견학 반 짜는거 말인데, 아직 정해지지 않았거든. 나랑 토츠카의 공통으로 아는 사람인 유이를 데려가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냐?"
"우리들 셋이 갈거니까 그런 소리를 해도 곤란한데. 유이가 아니면 도저히 안 돼?"
"그건 알고 있지만. 그거다. 언제나 같이 있는 하야마네랑 있으면 너희도 7명 그룹이 되잖아? 유이를 빼고 그 만큼 남자가 한 명 들어가면 딱 될거라 생각하는데. 뭐, 토츠카를 도와준다 생각하고 부탁해"
"그건 그렇지만……. 뭐, 하야토에게 물어보고 괜찮다고 하면 좋아. 거기다 토츠카에게는 빚이 좀 있으니까"
마지못한 느낌이긴 하지만 어떻게든 승낙을 받았다. 당연히 그 녀석은 제대로 말해줄거므로 이 이야기가 흘러갈 일은 없다.
토츠카를 미끼로 쓴 느낌은 부정할 수 없지만, 둥글게 수습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희생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고맙다, 미우라"
"딱히 됐고. 이걸로 얼마전 일은 샘샘이야"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홱 돌리는 미우라.
그런 미우라를 보면서 나는 일이 잘 풀린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넷중에 세 명만 조를 짜서 귀찮아 지는거니까, 뭣하면 7명에서 6명으로 줄이면 돼. 마침 빠져도 문제 없고, 이후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인물도 있으니까"
"히키타니, 무슨 의미야?"
고개를 들어 진지한 눈으로 나를 보는 의뢰인.
"이번 체인 메일은 유이가 말한것 처럼, 네 조에서 따돌려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면, 네가 빠지면 될 뿐인 이야기라는거다. 하지만 너를 따돌리고 싶다는 가능성이 있는 이상, 네가 빠진걸 추궁하지 않는다면 가능성이 확신이 될 뿐이지 둥글게 수습되지는 않아. 그러니까 확실하게 주위를 따져주는 미우라와 네가 조를 짜면 돼. 딱히 여자와 남자가 같은 조를 짜선 안 된다고 정해진건 아니고, 언제나 같이 다니니까 충분히 자연스럽겠지"
"그치만 힛키, 그래선 이번엔 우리들 중에 한 명이 빠져야하는데?"
"간단한거다. 유이가 빠지면 돼. 형편 좋게도 미우라는 얼마전 사건으로 이 녀석이 저지른일을 신경쓰고 있잖아? 그리고 유이는 나와 토츠카의 공통 친구고, 우리들은 아직 조가 정해지지 않았다. 토츠카를 위해서라고 하면 아마 유이가 빠지는걸 승낙해주겠지"
내가 가진 미우라의 인상은 뇌 근육이다. 알기 쉽다, 그러면서 명확한 이유를 말하면 알아준다 정도다.
그리고 유이가 빠진다고해서 이후 인간관계에 영향이 나오는건 아니다. 미우라에게 있어 빚을 갚는다는 이유가 생기고 일시적이기 때문이다.
"토츠카를 위해 유이가 빠지고 거기에 이 녀석이 들어간다. 남은 셋은 따돌려지는 일은 없고, 이 녀석을 따돌리고 싶어도 미우라와 같은 조를 짜는 이상, 거기는 따지고 들 수 없을 것이다. 이것 이외에 모든 가능성을 부술 방법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면……유이는 나랑 조 짜는게 싫어?"
"싫지 않아! 싫진 않지만……, 하야토는 그거면 되겠어?
"유미코는 그걸로 납득할거라 생각해?"
"불안요소가 없는건 아니지만, 토츠카를 핑계삼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불안요소는 얼마전 사건을 방아쇠를 당긴 이 녀석을 미우라도 따돌리고 싶다고 생각할 가능성이다. 하지만 뭐, 이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방아쇠를 당긴건 확실히 이 녀석이지만, 동기자체를 만든건 미우라니까.
너무 침울해하는 이 녀석에게, 그래도 거기까지 말하는건 지독하니까 말은 하지 않지만.
"알았어. 미안하지만 그걸로 부탁해"
"맡겨라"
모든것이 둥글게 수습되어, 조 편성 결정의 날이 왔다.
내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어 잘 됐지만 나는 석연치 않다는걸 느끼고 있었다.
"미우라, 거기가는구나. 나도 거기 붙을래-"
"나도 거기로 할까-"
"미우라 같이가. 나도 같이 가"
평소대로, 다같이 사이 좋게 지내는 의뢰인을 본다.
원만하게 수습된건 표명상이며, 이후 저 녀석은 혼자 의심암귀에 사로잡힌채 저 그룹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나의 제안을 일축하고 원인을 규명하여 의심한 관계를 일신하는 선택지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남을 의심하고, 그리고 외톨이가 되는걸 우려하여 그걸 감추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낸다.
그건 내가 번거롭다고 느끼며 지금가지 구축하려고 하지 않았던 인간관계 그 자체다.
의심할거면, 믿을 수 없다면 혼자면 된다.
누군가에게 배신당한것도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왔다.
그러니까 내게 저 녀석이 어째서 저 그룹에 그렇게까지 고수하는지는 모른다.
메릿트와 디메릿트를 천칭에 걸어, 디메릿트 쪽이 크다면 잘라버리는것도 좋은 것이다.
가능성의 이야기지만, 저 녀석 자신이 그렇게 된것 처럼.
"있잖아 힛키, 사이. 어디 갈건지 정했어?"
"나는 둘이 가고 싶은 곳이면 돼"
그리고 내 앞에서 대화하는 둘에게 시선을 준다.
이 세 명의 조는 '짤 필요가 있었다' 그저 그것뿐인 관계다. 특히 유이는.
이해관계에 있어 마이너스로 기운다면 얼마든지 잘라버릴 수 있는것. 그런 관계.
당연히 저녀석처럼 기만에 빠져 필사적이 되어 지키고 싶다고 생각할법한, 그런 관계는 아니다.
나는 그런 관계에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니까 당연하다.
"그거다, 유키노에게 메일 보내서 어딜 갈건지 물어보자. 그래서, 그 녀석이 가는곳에 맞추면 되지 않겠냐?"
하지만 동시에 그런 관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모르는것 보다는 알고 있는 편이 낫다. 나 자신은 그런 관게를 필요로 하지 않겠지만, 남이 바래올때는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으니까.
그럼 지금은 일단 이 녀석들과 짜서, 그 날 유키노가 했던 말에 한방 먹여주자.
반은 달라도 같이 가는것 정도는 할 수 있다, 라고.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7
중간고사라는건 학생이라면 사람을 고르지 않고 누구에게도 찾아온다. 그건 고등학생이든 중학생이든 평등하다.
요컨대 내가 시험전이라고 하는건 마찬가지로 동생인 코마치도 시험전이라는 것이다.
코마치는 수준에 맞지 않게 진학교인 내가 다니는 학교를 목표로 삼는 모양이라, 오빠인 내가 임시 가정교사가 되어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귀여운 동생을 위해서니까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나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부모님도 귀여운 코마치를 위해서니까 가정교사 정도는 부탁하면 될텐데.
다음에 코마치를 통해 한번 떠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학 예제를 묵묵히 풀고 있으니 코마치가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걸 깨달았다.
"왜 그래? 뭐 모르는 문제라도 있냐?"
"응- 아니-, 오빠 성실하구나- 해서"
"바보냐. 나는 언제나 성실하다. 알았으면 존경해도 좋다"
"그건 싫은데. 그치만 세상에 여러 종류의 오빠랑 언니가 있는것 같아. 코마치가 다니는 학원 친구 이야긴데, 누나가 불량으로 변해버린 모양이라서 밤에도 집에 돌아오지 않는 모양이야"
호오, 코마치의 이야기를 가볍게 흘려들으며 노트로 눈을 돌린다.
코마치로 말하자면 교과서를 덮고 완전히 잡담 모드지만, 나는 굳이 그걸 무시한다.
"그리구 말이야, 누나는 소부 고등학교 다니고 있고 완전이 붙을 정도로 성실한 사람이래. 무슨 일이 있던걸까-"
"글쎄다-"
누가 불량으로 변하든 자기책임 아니냐? 굳이 진학교인 소부고에 들어가기까지 해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뭐, 그 애 집 사정이니까 뭐라 말 못하겠지만. 요즘 친해져서 상담 받았거든-. 아, 그 애 카와사키 타이시라고 해. 4월부터 학원에 들어왔는데"
"코마치. 그 카와사키 타이시라는 녀석하고 무슨 관계지? 사이 좋다는건 어떤 사이가 좋은거야?"
"갑자기 물고 늘어졌네. 왜? 코마치의 친구를 위해 한꺼풀 벗어줄 생각이 들었어? 그거 코마치 입장으로 포인트 높아"
"가족의 부끄러운 사정을 상담삼아 코마치에게 접근해오는 해충의 기척을 느낀것 뿐이다. 그 타이시라는 녀석한테 상세한 내용을 신속하게 묻고 연락해라. 그리고 가급적 재빠르게 해결하고 두번 다시 코마치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주지. 물리적으로"
"지나치게 시스콘 스러워서 포인트 낮아, 오빠야"
우헤- 그런 소리를 하는 코마치.
동생에게 해충이 붙지 않도록 신경쓰는건 오빠의 당연한 의무다.
"그치만…… 고마워, 오빠야"
자, 다음날 아침에 있던 일이다.
코마치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내 공부도 하고 있었지만 도무지 예정까지 끝나지 않아, 밤샘하며 늦게 자버린 나는 평범하게 늦잠잤다.
평소라면 나를 깨워줄 마이 스위트 시스터지만, 아무래도 그 녀석도 늦잠을 잔듯 거실로 가니 "미안 오빠. 늦잠자서 먼저 갈게" 라는 메모가 한장 놓여있었다.
뭐, 아무리 조급해해도 늦잠은 늦잠. 지각이 확정된 이상 서둘러봐야 소용없다. 메모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나는 아침식사를 만들기로 했다.
시간을 조정하고 1교시가 끝날 즈음에 학교에 도착했다.
굳이 수업중에 교실에는 들어갈 필요가 없어서 수업이 끝나고나서 교실로 들어가면 그리고나서는 지각따윈 없었던것 처럼 평소처럼 하루가 시작될 터였다.
"히키가야, 내 수업을 빼먹다니 간이 배밖으로 나왔구나. 일단 때리기 전에 변명을 들어주마"
그래, 1교시 담당이 히라츠카 선생님이 아니라면.
"때릴거라면 때려라. 허나 나는 사천왕중에서도 최약. 내 위에는 아직"
"질풍 정권 찌르기!"
정권 찌르기라고 하면서 모 복서급의 챔피언 주먹이 내 비장을 정확하게 노린다.
넉다운! 넉다운!
바닥에 쓰러지며 고통에 신음지르는 나.
"몸이 약하다. ……정말이지 이 반은 문제아가 많아서 별 수 없군. 그러는 사이에 한명 더"
나를 흘낏보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성큼성큼 문 뒤쪽으로 향해 걸어간다.
"카와사키 사키. 너도 지각이냐?"
그렇다, 가방을 늘어뜨리고 지금 등교했을 여자에게 말을 건다. 카와사키라고 불린 여자는 아무말도 없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내 옆을 지나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검은……색이라고……"
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건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얻어맞았기 때문이며, 또 그녀가 달리 지나갈 길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내 옆을 지나간 것이다.
요컨대 그녀의 매끈한 맨다리와 그 끝에 숨겨진 부분이 보여버렸다고해도 내게 책임은 없다.
"카와사키……인가……"
치바에서 검은 속옷이라는건 그녀는 야구부의 매니저로군. 내가 모 로리콘이었다면 즉각 가족에게 연락해서 가족회의를 일으켰을 것이다.
뭐 유감스럽지만 나는 야구부가 아니므로 그런 짓은 하지 않지만.
"히키가야. 치마 속을 엿본 여자의 이름을 감개깊게 부르는건 그만두거라"
히라츠카 선생님, 억울합니다! 억울해요!
엿본게 아니라 보여진겁니다. 그보다 원인 중 하나가 당신이다.
"이 일에 대해선 조금 이야기를 해두마. 방과후에 교무실로 와라"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실컷 쥐여짜인 후, 나는 복합상업시설 마린피아 서점으로 향했다.
내가 쓸 책이랑 어제 가르쳤던 느낌으로 코마치의 이해도가 얕아보이는 참고서를 사고 가게를 나왔다.
평소라면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공부를 하겠지만, 어째선지 어떤 카페의 복숭아차를 몹시 마시고 싶어져서 사갖고 가기 위해 가게로 향하니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유키노와 유이와 토츠카다.
"여"
딱히 말을 걸 필요도 없었지만 뒤에 줄을 선 이상 들키지 않는 편이 무리가 있다.
말 걸지 않고 있다가 "있으면 말 정도는 해"라고 하는것도 짜증나서 사회인사 정도로 말을 건다.
"아, 히키가야! 히키가야도 공부모임에 불렸구나!"
"아니, 안 불렸어. 참고서 사다 돌아가는 길이야. 우연히다. 우연히"
어째선지 흥분한 기색의 토츠카에게 적당하게 대답한다.
"셋이서 공부 모임이냐?"
"아니, 그게 힛키도 부르려고 했는데. 선생님한테 호출당했잖아? 그래서-, 응?"
"아니, 아무 말도 안했는데"
안 불려졌다고해서 삐질거라 생각했나, 이 녀석은?
그보다 공부모임이라는건 못 하는 녀석이 잘 하는 녀석에게 들러붙고 싶은것 뿐이지, 나처럼 잘하는 녀석에게는 민폐스러운 모임이다.
보통이니까 그렇게 멍때리지 마.
"어머, 히키가야. 너를 부를 생각은 없었는데"
"그렇군. 나도 불리지 않았다. 마실것만 사고 돌아갈거니까 안심해라"
"에, 힛키, 같이 안할거야? 괜찮잖아, 같이 하자-"
"나, 나도 히키가야가 같이 있어주는 편이 의욕이 생긴달까"
유키노의 평소 폭언에 즉시 대답을 하니 유이와 토츠카가 나를 붙들어맨다.
유이는 그거구만, 나한테 가르쳐달라고 할 생각 가득하다.
"그런 모양인데. 어떡할래 유키노?"
"그, 그러니. 그럼 어쩔 수 없네. 특별히 동석을 허가할게"
"고맙다"
얼마전에 울려버린 일도 있어서 어울리도록 할까.
아자, 하며 하이터치 하는 유이와 토츠카. 너희가, 너희야말로 바보멤버다! 토츠카의 성적은 모르지만.
그리고 이러저러하는 사이에 줄은 줄어들어 우리 차례가 됐다.
"힛키, 사줘-♪"
그렇게 말하며 유이가 내 팔에 안겨붙는다.
"아아, 딱히 상관없어. 뭐 마실래?"
말하지 않아도 사줄 생각이었고.
덧붙여 팔에 느끼는 부드러운 감촉에 사로잡힌건 결코 아니다.
이건 코마치의 조교 및 교육 결과로 인한 것이라, 이른바 "여자와 밥먹거나 그에 준할때 동석할때는 계산을 지불하게 하지 말것"이라는 모양이다.
그런 교훈을 살리게 될 날이 올줄은 도저히 생각 못했지만, 예상밖으로 표면으로 나왔다.
"코 밑이 늘어졌어"
"그럴리 있냐. 자, 유이. 얼른 골라. 점원에게도 폐가 되잖냐. 그래서 유키노는 뭐 마실거냐?"
"어머, 너에게 베품을 받을 생각은 없는데"
나의 신사적인 배려가 거슬렸는지 유키노가 눈썹을 찌푸린다.
"그런건 됐으니까 얼른 골라. 그거다, 여자에게 돈을 쓰게 하지 말라는, 우리 집의 가훈이다 가훈. 들키면 내가 코마치에게 매도당한다"
"그래, 여전히 시스콘이구나. 네 집의 가훈이라고 하면 사양않고 고맙게 받아들일게"
아니, 누군가가 사준다는 행위가 너에게 있어 혐오스러운거라는건 알겠다. 그런 행위를 유키노의 외면만 보고 접근해온 놈들이 해온 것이다.
하지만 뭐, 딱히 나는 네가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아니었다고 해도 제대로 사줬을거다.
여자 둘의 주문을 듣고 계산을 마치고 상품을 받는 동안 셋을 먼저 자리 잡게 보냈다.
갖고가는거면 나 혼자도 충분하고, 토츠카도 저래보여도 남자니까 미소녀 둘의 바람막이 정도는 되겠지.
상품을 받아들고 그 녀석들은 어디 앉았나- 가게 안을 돌아보니 거기에는 천사가 있었다.
"오빠야, 여기여기-!"
나를 향해 크게 손을 흔드는 천사, 그 이름도 코마치.
"어, 너도 있었냐"
유키노들 셋의 옆 테이블에 앉은 코마치에게 말을 걸며 나도 자리에 앉는다. 덧붙여 내 옆에 유키노, 정면에 유이고 그 옆에 토츠카라는 자리 위치다.
그보다 이런건 남녀로 나뉘는거 아니냐? 모르겠지만.
"그럼 코마치. 그 남자는 누구냐? 상황에 따라선 이 가게가 피바다에 잠길거다"
그렇게 말하며 코마치의 앞에 앉은 교복입은 소년을 노려본다.
"아니, 이 애는 그거야. 어제 말했던 누나가 불량으로 변했다는 애. 상담받고 있었어-"
"그러냐, 이 소년이냐. 좋아, 소년. 신속하게 사정을 설명해라. 당장 해결해줄테니까 두번 다시 코마치에게 말걸지 마"
유키노와 유이가 우와아……거리고 있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얘길 들어주시는겁니까? 감사합니다, 형님!"
"경칭 생략하던 너라고 부르든 상관없지만, 형님이라 부르지 마라. 죽여버린다"
형님이 처남이 되기라도 하면 수라로 변할 자신이 있다.
"잠깐만 힛키, 얘기가 보이질 않는데? 타이시, 무슨 고민이라도 있니?"
이 녀석들은 관계없다고 하면 관계없는 이야기지만, 분명 타이시의 누나 뭐시기는 소부고에 다니는 2학년일터다. 그렇다는건 나하고는 비교도 안 될만큼 교우관계를 가진 유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는 왕자님 취급받으며, 여러가지 의미로 귀여움받고 있는 토츠카를 둘러싸는건 문제의 조기해결을 노리는 필순일지도 모른다.
유키노? 그 녀석은 교우관계에 관해서는 나하고 같은 수준이니까 도움이 될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이 타이시 뭐시기라고 하는 녀석의 누나, 소부고 2학년인 모양인데, 그게 불량으로 변하고 있어서 곤란해하고 있대. 그래서, 그 상담을 코마치가 듣고 있다고. 그리고 내가 그 문제를 시원스레, 신속하게 해결하고 이 녀석과 코마치를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떼어놓고 싶다. OK?"
"시스콘"
나의 오빠로서 극히 평범한 의견을 유키노가 한마디로 잘라낸다.
아니, 보통이잖아. 보통이지? 보통이라고 해!
"시스콘이든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럼 타이시, 얼른 자백해라"
"그게, 저희 누나의 이름은 카와사키 사키라고 하는데요. 누나가 나빠졌다고 할까, 불량이 됐다고 할까……. 누나는 굉장히 성실했어요. 우리집은 남매가 많아서 생활이 빡센탓에 바쁜 부모님 대신에 줄곧 저희 남매를 돌봐줘서. 다정하고 믿음직한 누나였는데요……"
"그런 누나가 변해버렸다라"
"네. 집에 돌아오는것도 아침이고.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너하고는 관계없어』라고 싸워버리니……"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떨구는 타이시.
"가정 사정이라……. 어느 집에도 있구나"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음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유키노. 그 얼굴은 지금 당장이라도 울어버릴것 같았다.
"유키노……"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굳이 이유를 달자면 그런 유키노의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라는게 가장 가까운걸지도 모른다.
나는 유키노의, 테이블 아래에서 무언가를 참듯 떨리는 손에 살며시 자신의 손을 더했다.
그런 내 행동을 유키노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키노는 순간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는 내 손을 움켜쥔다.
유키노의 손은 더는 떨리지 않았다.
그런 우리들의 태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타이시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거기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이상한곳에서 누나를 찾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어요. 엔젤 뭐라고 하는……아마 가게겠지만, 점장이라는 사람한테서"
"틀어박힌곳 내지는 알바처인가. 뭐, 아마 후자겠지"
"어? 왜 힛키는 그렇게 생각해?"
"평범하게 생각해서, 틀어박혀 산다면 굳이 가게에서 전화는 하지 않겠지"
평범하게 생각하면 알거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유이, 너는 바보다.
"어디에서 일하고 있다면 그 장소의 특정이 필요해져. 이상한 곳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침까지 일하고 있다는건 곤란해. 알아내서 얼른 그만두게 해야지"
"그만두게 하는걸로 끝나면 간단하겠지만 말이다. 타이시의 누나가 왜 그런걸 하고 있는지 모르면 다른데서 일하게 될 뿐이겠지. 뭐, 왠지 모르게 이유는 알겠지만"
"힛키 굉장해! 어떻게 안거야?"
"나 만큼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말이다, 단편적인 정보를 짜내서 전체상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대화가 성립하지 않아"
필요한 정보는 거의 있다고 해도 좋다. 확정인지 아닌지는 누나하고 말해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말하는 모습은 멋진데, 이유가 꼴사나워 힛키"
"냅둬. 뭐, 확정한건 아니고, 또 타이시의 누나하고 조금이라도 얘기를 들어봐야지. 분명……카와사키 사키였나? 유이, 알고 있냐?"
내 질문에 유이는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벌써 포기하긴 했지만. 힛키, 반 애들 이름 정도는 외워"
반 애들? 카와사키 사키, 카와사키…….
"아아, 그 검은팬티 여자냐!"
내 외침에 반응한것 처럼 유키노의 내 손을 쥐는 힘이 세진다.
까놓고 말해, 아프다. 부서진다, 부서진다고.
"히키가야, 그 이야기 좀 자세하게 듣고 싶은데"
"우연이네, 유키농. 나도 조오금 알고 싶다고할까"
표정 근육은 분명 미소를 만들고 있을텐데, 결코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 얼굴로 나를 보는 유키노와 유이.
그리고 어째선지 볼을 부풀리며 화를 내는 토츠카.
"아니, 그, 이건 그거다. 뭐, 그 뭐냐. 일단 진정해라. 둘 다, 응?"
어? 나, 지뢰라도 밟았어?
"치바 시내에서 엔젤이 이름인 가게에서 심야경영하고 있는 가게는 둘, 호텔 로열 오클라바와 메이드 찻집. 이 둘 중 하나에서 카와사키가 일하고 있는건 틀림없는것 같네"
카파에서 타이시에게 상담을 받은 후, 유키노와 유이는 쿠키 사건 이래로 우리 집에 찾아왔다.
그녀들 말하길, '에로가야가 여성에게 범죄적인 시선을 향하지 않도록 교육을 할 필요가 있어서, 그건 남들 시선이 없는 곳에서하는게 바람직하다'라고 한다.
그럴 필요는 없다, 그건 사고다라고 해도 들어주지않아, 코마치에게 도와달라고해도 어째선지 편들어 주지 않았다. 오히려 추장당한 정도다.
그런 코마치는 학원에 갔기 때문에 우리들을 쳐다보며, 나는 어떤 의미로 처형장으로 변한 우리 집으로 둘을 초대하게 됐다.
덧붙여 남들 시선이 없는곳에는 토츠카도 포함되어 있는 모양이라, 공부모임에 불리지 않았는데 공부도 하지 않고 토츠카는 귀가하게 됐다. 헛걸음을 해버린 토츠카에게 행운이 있기를.
"뭐, 그 두가지라면 호텔 바겠지. 틀림없다"
정좌에서 해방되어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픈 다리를 문지르면서 대답한다.
젠장, 유이자식. 재빠르게 옛날에 썼던 지압용 울퉁불퉁 매트를 찾아내다니. 게다가 유키노는 웃는얼굴로 그 위에 정좌하는 내 다리에 사전 등 무거운 책을 올리고. 이거 고문이잖아.
"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힛키"
카페에서도 생각했지만, 유이는 왜 물어보기만 하는걸까. 조금은 스스로 생각해라.
"저런건 그 두가지로는 리스크가 너무 다르잖냐. 호텔 쪽은 나도 알 정도의 고급 호텔이다. 학교관계자에게 들킬 위험을 생각하면 메이드 찻집보다도 훨씬 낮지. 심야 알바같은 바보같은 짓을 카와사키여도 그 정도 위험 계산은 할 수 있겠지"
"그러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유키노가 내 의견에 동의한다.
왠지 이젠 귀찮으니 유이에게 의견을 구하는건 그만두자. 유키노랑 둘이서 이야기 진행하는 편이 훨씬 빠르다.
"그럼 코마치를 통해서 타이시한테 카와사키의 출근상황을 확인. 그 후에 가능한 재빨리 그곳으로 가자. 유이가하마도 그거면 되겠지?"
"알았어"
"아니, 잠깐만"
이야기가 빠르다고 할까, 지나치게 이르다.
"왜 자연스럽게 너희들도 오게 되는건데? 이건 봉사부의 의뢰도 아니고, 단순히 코마치 경유로 내게 온것 뿐이다. 딱히 너희들이 신경쓰지 않아도 되잖아"
"어머, 코마치의 고민이라면 나의 고민이기도 해. 그런거야, 히키가야"
"나는 역시 반 친구니까. 애길 들었으니까 마지막까지 제대로 해주고 싶다고 할까. 거기다 나도 봉사부고, 곤란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역시 내버려 둘 수 없구"
유키노의 이유는 의미불명이지만, 생각 이상으로 유이한테서 성실한 의견이 나와서 놀랬다. 평소 바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 미안.
"그만둬! 라고 해도 듣지 않겠지……"
"당연해"
"당연하잖아"
왜 이런 아무 도움도 안 되는일에 고개 내미는걸까, 너희들은. 나 말이냐? 나는 이득이 있지. 코마치로부터 타이시를 배제할 수 있다는 이득이. 오히려 그것 밖에 없다.
"알았어"
매주 이 날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정보를 타이시에게 입수하고 그리고 그 날이 왔다.
시각은 8시 20분, 약속시간까지 아직 10분 정도 있지만 이미 나는 약속 장소에 있었다.
역시 이것도 코마치의 '여자와 만날때는 10분 이상 먼저 가 있지 않으면 안 돼'라는 가르침에 의한것이다. 시간은 딱 맞추면 되잖냐, 라고 해도 경멸하는 눈으로 볼 뿐이었다. 오빠는 비교적 슬프다.
"유이, 여기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돌아보며, 나를 발견하지 못한 유이에게 말을 건다.
"아, 힛키 있었구나. 꽤 빨리 왔네. 힛키니까 시간에 딱 맞춰 올거라 생각했는데"
"코마치가 재촉했으니까, 그래서다. 그나저나 유이의 사복차림은 처음봤는데, 잘 어울리네 그 차림"
당연히 코마치의 가르침 파트2다.
사교인사는 싫어하지만 코마치의 가르침이라면 어쩔 수 없다. 거기다 실제로 유이에게 어울리니까 아무 문제도 없다.
"고, 고마워. 힛키도 왠지 평소랑 다르네. 말 걸때까지 전혀 몰랐어. 코마치의 선택?"
원래부터 귀여워서 칭찬받는데 익숙할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선지 수줍은듯 얼굴을 붉히는 유이.
"아냐. 지금부터 갈곳에 전화해서 어떤 차림으로 가면 되는지 묻고, 그리고 옷가게에 가서 점원보고 골라달라고 했어. 그보다 너 어울리긴 하지만 그 차림은 아마 눈에 띌거다"
남이 어떻게 보든 신경쓰지 않는 나이지만, 복장에는 어느 정도 신경쓰고 있다. 고집하는게 있다면 별개지만, 굳이 눈에 띄는 차림을 해서 모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무난하면 좋다, 무난한게.
"에. 진짜루?"
어쩌지, 하며 허둥대는 유이.
집에 가면 되지 않냐?
"미안해. 늦었니?"
그런 우리들에게 유키노도 다가온다.
"지금 온 참이다"
실은 상당히 전에 왔지만. 코마치의 가르침……아니 많구만, 어이.
"히키가야……, 바보에게도 복장이라는 말이 있지만, 새롭게 히키가야에게 복장이라는 단어를 사전에 올리는 편이 좋을것 같구나"
"칭찬으로 받아들이마"
"어머, 매도할 생각은 없었어. 이번에는"
요컨대, 평소에는 매도하고 있는거군요. 압니다.
자, 본래라면 여기서 코마치의 가르침 파트2를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유키노의 차림을 봐도 나는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유이에게는 부자연스럽지 않게 말했지만, 왠지 거…….
"와-, 유키농 굉장히 귀여워. 잘 어울려 예뻐!"
"그, 그러니? 고마워. 유이가하마도 잘 어울려. 그저……지금부터 갈 곳에는 좀"
"에-, 진짜루? 힛키라면 모를까 유키농한테도 그런가-. 어쩌지. 저기, 유키농, 어쩌면 좋을까?"
"입점을 거부받아 두번 수고하는건 싫으니, 내 옷을 빌려줄테니까 우리집에서 갈아입겠니"
"에? 유키농 집 갈 수 있어!? 아싸-! ……아, 그치만 이런 시간에 괜찮아?"
"나, 혼자 살고 있으니까 괜찮아. 가깝고 바로 돌아올 수 있을거라 생각하니, 히키가야는 여기서 기다려주겠니?"
특별히 반론할 이유도 없어서 잠자코 끄덕인다.
유이가 나처럼 밑준비를 제대로 해뒀으면 기다리지 않았을텐데-, 정도는 생각하지만.
"이 앞에 편의점이 있으니까, 먼저 가 주겠니?"
"알았어-. 먼저 갈게-"
그렇게 말하고 유이는 유키노가 가리킨 방향으로 걷는다.
"저기 히키가야"
무슨 용건이라도 있나? 라며 당혹하는 내게 유키노가 말을 건다.
"왜 그래, 유키노?"
"유이가하마는 칭찬해줬는데, 너는 아무말 없니?"
짖궂은 아이같은 미소로 그렇게 내게 묻는다.
"……잘 어울려"
"고마워"
부드럽게 미소짓고 유키노는 유이를 쫓아 걷는다.
대답이 뻔한 질문 하지마, 바보냐 바보.
아-, 왠지 오늘 덥구만.
무사히 합류한 우리들은 잠입 미션을 개시했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렸지만, 그건 크게 문제가 아니다. 정말로 문제인것은 어째선지 유키노도 옷을 갈아입고 온 것이다. 아니, 너 유이의 옷을 갈아입히러 간거 아니었냐? 왜 너도 옷을 갈아입은건데? 그보다 왜 또 어울리냐고 묻는거야. 바보아냐. 수치 플레이, 절대 안 돼!
우리들을 태운 엘레베이터는 최상층으로 부드럽게 상승한다.
문이 열리니 거기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적이 없는 세계였다.
사전준비로서 조사해온 벼락치기 지식으로 포멀한 드레스로 몸을 감싼, 평소 학교에서 보는거랑은 다른 둘을 에스코트하면서 목적지인 라운지바로 향한다.
"……너, 에스코트 제대로 할 줄 아는구나"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어떻게든 된다. 제대로 사전조사는 해왔어. 이런 장소에서 부끄러워지는건 남자의 책임이 되잖아?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지만, 같이 있는 너희들까지 부끄럽게 만드는건 본의 아니니까. 당연하지"
"그래……. 다시 봤어, 히키가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웨이 하니까 당연하지 않냐? 나, 홈은 아니지만. 오히려 전세계 어웨이.
그런 대화를 나누면서 바에 도착했다.
말없이 고개를 숙여, 먼저 유도받은대로 바 카운터로 지나간다.
거기에는 고급스런 바에는 약간 안 어울리는, 젊은 여성 바텐더가 유릿잔을 닦고 있었다.
"카와사키냐?"
"응, 아마 맞다고 생각해"
내가 제대로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리는 당연히 없어서 반 친구 대표 유이에게 묻는다.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왜 기억 못하는거야- 라고 하지 않는 점에서 그녀도 성장한 모양이다. 아니, 오히려 포기한건가.
그보다 상황좋게 카와사키가 있는 곳으로 안내받았군.
내가 이 가게에 전화해서 복장 등을 물었을때, '키가 큰건 알고 있지만, 데이트를 그쪽에서 하게 해줘. 그리고 가게에 폐가 되지 않도록 적절한 복장이 있으면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고급 호텔 바인만큼 내가 한 행동을 불평없이 친절하게 가르쳐줬으니까, 그 탓인겠지.
전화로, 무척이나 이러한 장소에 익숙해보이지 않은 소년이 여성과 함께 내점하여, 그 전화 주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긴장하지 않도록 연령대가 가까운 카와사키에게 안내를 한다는건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단순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확률이 높아보였다. 만약 그렇다면 고급 호텔의 바는 굉장하지.
카와사키는 우리들을 깨닫지 못하고 코스터와 당콩을 건내며 조용히 기다린다.
이런 장소에서 접객 방법은 잘 모르는 나이지만, 그것이 이 가게의 올바른 접객일 것이다.
그녀의 성실한 근무태도에 나는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고 확신을 굳힌다.
"카와사키"
내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거니, 그녀는 눈을 퍼뜩 뜬다.
"히키가야……"
너도 나를 알고 있었냐…….
지금까지 대화한 가운데 내 이름을 제대로 몰랐던건 그 녀석 뿐이군. 그보다 그 녀석 반이 바뀐 직후에는 자리 가까웠을텐데 왜 히키타니라고 외우고 있던거야. 나도 이름 몰랐으니까 샘샘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진짜로 이름 외워두지 않으면 안 되겠군. 나도 모르니까 저쪽도 모르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반 애들 이름 정도는 제대로 기억하는게 보통인 모양이다.
"히키가야. 헌팅할거면 상황과 장소를 골라서 해줬으면 하는데"
"그건 역시 아니지 않을까-, 유키농"
그러면서 한 가운데를 비우고 스툴에 앉는 유키노와 유이.
아니, 유키노. 목적을 생각하면 말을 거는게 보통이잖아.
"그 발상은 이상하다"
한 가운데가 비어있다는건 나보고 한 가운데에 앉으라는 소리다. 당연하군. 그런 식으로 에스코트 해왔으니까. 먼저 앉은 유키노는 그렇다치고 유이가 제대로 자리를 비우고 앉은건 아마 우연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리에 앉으니 유키노가 바로 입을 연다.
"카와사키 사키지. 잘 됐다, 있어줘서"
"유키노시타……"
유키노의 목소리에 카와사키는 노골적이게 기분 나쁘다는 얼굴을 한다.
유키노의 뭐가 불만인진 모르겠지만 일하는 도중이니까 사정을 끼우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유키노시타 건설 때문에 부모님이 실직했다면 모를까.
"안녕"
카와사키의 표정 변화를 깨닫지 못했는지, 아니면 굳이 무시하고 있는지 유키노는 시원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히키가야가 있고 유키노시타가 있다는건, 그쪽은 유이가하마지? 그런가……들켜버렸나"
숨기려고도, 입막음 하려고도 하는것이 아닌, 어딘가 포기한것 같은 분위기로 바뀐다.
우리들이 여기에 와서, 그녀에게 말을 건 시점에서 그녀에게 있어 이곳은 직장이 아니게 된 것이다.
"뭐 마실래?"
"나는 페리에를"
"아, 나도 같은거!"
"드라이쿨러를"
"에!?"
내가 평범하게 주문한게 의외였는지, 배신자! 라고 할법한 얼굴로 유이가 나를 본다.
……그러니까 제대로 사전조사 해왔대도.
카와사키가 진지한 얼굴로 '알겠습니다' 라고 하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유릿잔에 음료를 붓고, 코스터 위에 올린다.
말없이 글래스를 눈가까지 올리고 목례를 나누고 한입 마신다.
"어!? 건배하는거 아니었어?"
공적인 자리에서는 유릿잔을 맞대지 않는게 매너다……. 그보다 이 유릿잔 굉장히 얇은데, 얼마 정도 할까.
매너를 몰라 허둥대는 유이를 쓴웃음지어 보면서 카와사키가 입을 연다.
"그래서 뭐하러 왔어? 수라장이라면 다른곳에서 해줄래?"
"설마. 옆의 이것에 그런 주변머리가 있을리 없잖니, 농담치고는 취미가 나쁘네"
"아무래도 좋지만, 네 구론에 나를 걸고넘어지는건 그만두지 않겠냐?"
유키노는 평상운행으로서, 카와사키의 안의 내 인상은 어떻게 된거야? 왜 같은반 애한테 결계 마법라고 생각해야하는건데, 나.
둘을 대화시켜놓으면 이야기가 끝날것 같지 않고, 내가 무의식중에 상처입을것 같아서 억지로 화제를 돌린다.
"너, 요즘 집에 늦게 돌아간다며. 동생이 걱정하고 있다"
"그런 말을 하러 굳이 여기 온거야? 수고했어. 저기 말야, 단순히 같은 반일뿐인 너한테 그런 소리 들은 정도로 그만둘거라 생각해?"
"안 됐지만, 같은 반으로서 여기 온게 아니야. 오빠로서 동생 주위에 달라붙는 해충 제거를 하러 온것 뿐이다"
"그거, 무슨 의미?"
"너를 걱정한 동생이, 우리 동생한테 상담하러 왔어. 무지 민폐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달리 취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성실한 그녀는 전부 스스로 짊어지려고 한 것이다.
"그래, 타이시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말해둘테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좋아. ……그러니까 이제 타이시하고 관여하지 마"
나를 노려보는건 상관없지만, 타이시가 관여해온겁니다만, 그거…….
타이시가 코마치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나로서는 충분히 문제해결이며, 카와사키의 말은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다.
"그만두게 할 이유라면 있어――"
생각에 잠긴 나를 뒤로 유키노가 말을 한다.
그리고나서 유키노와 카와사키의 설전이 시작된다.
응, 너희들 장소를 골라라.
"진정해라 유키노, 카와사키도"
"너희가 뭘 아는데! 그렇게 깨끗하게는 돈을 벌 수 없어. 내 방해를 해서 너희는 그걸로 만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래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그렇게 선인인척 하면서 관여해올거면 말이야, 너희들 나를 위해서 돈을 준비해줘. 우리 부모님이 준비하지 못하는걸 너희가 떠맡아보라고"
카와사키의 외침에 내 예상이 확신으로 변한다.
좋고 자시고 이 녀석은 너무 성실하다. 너무 성실해서,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고 스스로 품고 말았다.
그러니까 카와사키, 너도 오늘 유이도 그렇지만. 우선 구글 선생님이라는 위대한 사람이 있으니까 그쪽에 물어봐.
"그만둬. 그 이상 소리 지를거면……"
"그래, 네 아버지. 현의회 의원이지? 그런 여유가 있는 녀석이, 나에 대해서 알리 없잖아……"
조용히, 어딘가 포기한듯이 속삭인다.
그 말을 카와사키가 꺼냈을때, 쨍강, 하고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유키노?"
옆을 쳐다보니 넘어진 유릿잔에서 페리에가 흘러 내리는걸 앞두고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카운터로 내리는 유키노가 있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표정. 분명 그 때도 가족 이야기였을 것이다.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된다. 그녀에게 있어 가족이란 접해서는 안 될 금기인 것이다.
……유이를 울려버렸을때도, 내가 당황해서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그녀를 이런 얼굴로 해버렸던걸까.
아니, 후회하는건 나중에도 할 수 있다. 그저 그녀를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게하고 싶지는 않다.
"유이, 유키노의 기분이 나빠보이니까 먼저 돌아가주지 않겠냐? 어차피 너도 옷 갈아입으러 유키노의 집으로 갈거지? 카와사키하고는 내가 얘기해둘테니까"
"알았어. 가자, 유키농"
나와 유키노를 교대로 보고 가볍게 끄덕인 유이는 유키노를 데리고 가게를 나갔다.
"나, 할 얘기 없는데……"
"안 됐지만, 내게는 있다. 뭐, 네게 있어 나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니까 안심해라"
"얘기할거면 얼른 해줘"
흘러내린 페리에를 닦으면서 카와사키가 대답한다.
"너, 아까 선인인척할거면 돈을 준비해라고 했었지?"
"말해는데 뭐? 네가 준비할 수 있다는거야?"
내 말이 거슬렸는지 카와사키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나를 노려본다.
"준비하려고하면 못할것도 없지. 하지만 그걸로 너는 내게 뭘 해줄건데? 내가 너에게 바라는건 타이시가 동생에게 관여하지 않도록 하는것 뿐이다. 그걸로는 도저히 사리에 맞지 않잖아?"
"그래서? 할 얘기는 그것 뿐?"
"아니,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그저, 지금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지. 일단 너는 일하는 도중이니까. 그러니까 내일 잠깐 시간 받을 수 있겠냐? 학교 끝난 뒤에라도 얘기하자고"
"……좋아. 들어줄게"
"그럼 내일 보자"
유릿잔에 담긴 드라이쿨러를 다 마시고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나간다.
그럼 우선 유키노와 유이에게 메일을 보내야지. 유키노 괜찮겠지.
다음날 방과후, 나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찻집에서 카와사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분한 분위기와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인지 다른 학생이 거의 오지 않는 점에서 봉사부에 들어오기 전에는 자주 이용하던 곳이다.
점주가 고수하는 향이 좋은 커피를 맛보면서 잠시 기다리니 카와사키가 나타난다.
"카와사키, 여기다"
나를 찾는 카와사키를 부른다. 나를 깨달은 카와사키는 평소대로 어딘가 기분나쁘다는 듯이 내가 있는 곳으로는 와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내 앞에 앉는다.
"그래서, 할 얘기는 뭔데?"
"뭐, 그리 서두르지 마. 그 밖에도 올 녀석이 있으니까. 일단 마실거라도 마시고 기다리자고"
내 말에 마지못해 끄덕인다.
"대체 누굴 부른거야? 유키노시타? 아니면 유이가하마?"
주문한 음료수가 오니, 카와사키는 입도대지 않게 내게 묻는다.
"둘다 아냐. 뭐, 숨길 필요도 없으니까 말하겠지만, 부른건 타이시다"
오늘 이 자리에 그 둘은 부르지 않았다. 얘기 내용을 생각하면 유키노는 부르고 싶지 않았고, 유키노를 부르지 않았는데 유이를 동석시키는건 꺼려졌기 때문이다.
……아마 화내겠지. 왠지 나한테 주는 벌이 점점 레벨업해가고 있으니 뭐라도 대책을 생각하지 않으면.
"너, 그 애는 관계없잖아"
"너 정말로 브라콘이구만. 그보다 나한테는 관계 있다고. 그 녀석의 고민을 해소시켜주지 않으면, 내 목적이 달성되지 않아"
"분명, 동생으로부터 타이시를 떼어놓고 싶다고 했던가? 그러는 너야말로 시스콘이잖아"
"걱정마라. 자각은 있다"
"너 말야, 유쾌한 벽장식이라도 되고 싶어?"
째릿,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며, 복선을 회수하고 카와사키가 대답한다.
뭐야, 이 녀석 꽤 좋은 녀석이잖아.
"오빠야!"
"누나……"
그런 잡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에 교복차림의 천사와, 그 주위를 날아다니는 해충이 나타났다. 그리고…….
"안녕, 히키가야"
"얏하로-"
어째선지 코마치의 뒤로 부르지도 않은 유키노와 유이가 있었다. 나를 보는 그녀들은 요즘에 자주 보는 눈만 웃고 있지 않는 미소다.
"코마치, 왜 이 둘도 있는거냐?"
"아니, 힛키가 갑자기 부활동 땡땡이 친다고 하니까. 유키농이랑 둘이서 공부모임 하면서 어떤 벌게임을 시킬까 얘기하려고 생각했는데"
"도중에 코마치를 만나서 얘기를 들었어. 그래서 히키가야, 뭐 변명은 있니?"
코마치에게 설명을 요구하니 어째선지 둘이 호흡을 딱 맞추며 그에 대답한다.
엄청 호흡이 딱 맞네. 연습이라도 했었냐…….
"……유키노, 괜찮은거냐?"
"그래, 그게 이유구나. 네 배려는 조금 불쾌하지만, 이번만큼은 넘어가줄게"
그 한 마디로, 내가 왜 부르지 않았는지 이해한건지 유키노는 평소 표정으로 돌아갔다.
"어? 뭐야? 어떻게 된거야?"
"됐어, 유이가하마. 일단 앉자"
전원이 자리에 앉고 주문하고 음료를 마신다.
자, 해결편으로 가볼까.
"예상밖으로 인원수가 늘어버렸지만, 어제에 이어서 해볼까. 우선 말이다, 카와사키. 네가 왜 돈을 원했는지, 왜 갑자기 알바를 시작했는지 맞춰줄까?"
"……진학 자금 때문이야"
미약하게 카와사키가 중얼거린다.
맞춰줄까? 라고 했는데 대답하지 마. 대화가 성립하지 않잖아. 나 왠지 부끄럽잖아.
"으, 응. 그렇겠지. 일단 네, 아니오로 대답해줘"
"딱히 상관없잖아. 어차피, 알면서 타이시를 불렀을테니까. 그 편이 얘기도 빠를테고"
"진학자금이라니, 누나 어떻게 된 거야?"
"네가 학원에 들어가는 돈과 거기다 자신이 예비교에 가고 싶다는걸 부모님에게 말 못했기 때문이지 않냐?"
"……맞아"
"누나……, 나 때문에"
"딱히, 네가 신경쓸 일이 아니야"
카와사키는 달래듯이 타이시의 머리를 탁 건드렸다.
왠지 아름답고 둥글게 수습된것 같지만, 이거 우리들이 개입하지 않아도 되지 않냐? 이걸로 끝내면 코마치도 나도 말려들어서 손해본거잖아.
"그러니까 나는 알바를 그만두지 않을거야. 분명히 히키가야, 돈 준비를 한다는걸로 나를 불렀지? 어차피 이 자리를 열기 위해 속인거잖아? 얼렁뚱땅 넘길 생각이었지? 할 수 있지도 않는걸 처음부터 하지마. 열받으니까"
지금까지보다도 3할은 늘어난 엄한 눈으로 카와사키는 나를 노려본다. 누구에게도 상담도 하지 않고, 혼자서 품어오기를 결심한 그녀에게 있어 돈 이야기는 그 만큼 무거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니, 아직 이야기 시작도 안했는데. 너희들이 멋대로 이야기를 끝내려고 한것 뿐이잖아"
"거짓말이야. 안 그러면 왜 단순히 같은 반인 네가 돈 준비를 할 수 있다고 하는건데"
"거짓말 아냐"
나와 카와사키의 끝없는 문답을 보다 못했는지 코마치가 처음으로 입을 연다.
"저기, 잠깐 괜찮나요. 저희 오빠는 이렇기는 하지만 할 수 없는걸 할 수 있다고 절대로 말하지는 않아요. 오빠가 할 수 있다고 하면, 그건 절대로 할 수 있는거에요. 옛날부터……그래왔으니까요"
"그런건 신용할 수 없어"
바보취급하듯 카와사키가 핫, 하며 웃는다.
그런 카와사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코마치의 목소리가 거칠어진다.
"오빠를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바보취급하지 마세요! 단순히 같은 반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같은 반이니까……거짓말을 하지 않는거라구요……. 코마치 때문에 그렇게되서……. 그런 오빠를……바보 취급하지마"
"……코마치"
감정이 격해졌는지 눈물을 띄우며 마지막에는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유키노, 유이. 미안하지만 코마치를 부탁할 수 있겠냐? 코마치, 조금 진정하고나서 와라. 응?"
일의 추이를 지켜보던 둘에게 코마치를 맡긴다.
코마치를 데리고 둘이 자리를 떠나고, 카와사키가 입을 연다.
"히키가야, 아까 동생이 말했던거, 무슨 의미야?"
"저 녀석들한테는 혼났으니까 그다지 하고 싶지는 않지만. 뭐 하는 수 없나. 여기서 비밀로 하려고 해도 무리가 있으니까. 그거다, 우리집 가정은 객관적으로 보면 비교적 이상한 모양이더라고. 간단히 말하자면 코마치를 너무 사랑한 부모님이 나를 내버려둔것 뿐이다. 내 추억 에피소드를 말했더니 육아포기라는 소리를 들었다. 뭐, 나는 진심으로 아무래도 좋지만, 코마치는 신경쓰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옛날에는 자주 울었으니까 그런 소리를 했던것 같다. 성장하는데 있어 내가 말하지 않게 됐으니까 내가 진심으로 신경쓰지 않는다고 알았을거라 생각했지만, 아직 신경쓰고 있었나…….
"그래서, 그게 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게 되는데?"
"글쎄다? 뭐, 아마 내가 남에게 흥미없다는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거 아냐? 왜 코마치가 거기랑 이어붙인건진 모르겠지만, 뭐 내가 남에게 흥미가 없고, 그런 흥미없는 남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건 사실이다"
"그래……"
그것만 말하고 카와사카는 생각에 잠기듯 입을 다문다.
"뭐, 사정같은건 아무래도 좋아. 일단 내가, 아무래도 좋을 단순히 같은 반인 너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것만 알아주면 될 이야기다"
"아무래도 좋지만 심하지 않아? 보통, 본인 눈 앞에서 그런 말을 해?"
"나한테 그런 상식은 통용하지 않아"
"그거, 비상식적이라는 의미가 아니거든"
살짝 미소지으면서 내게 딴죽거는 카와사키.
왠지 무거워진 분위기를 날려버리기 위한 단순한 농담이다, 말하게 하지마.
"뭐, 본래 이야기로 돌아간다. 돈을 준비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내가 너에게 네 여기있습니다 하고 건내주는게 아니야. 아니, 못할것도 없지만 그래선 의미가 없지"
내가 그렇게까지 카와사키의 사정에 개입해줄 이유도 없고, 거기다 말하자면 그건 봉사부의 이념에 위반한다.
"네가 돈을 필요로 하는 이유. 진학자금 말인데, 요컨대 예비교대와 대학 비용이라는거지?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누구에게도 상담하지 않고 혼자 품고 있던 너에게 한 마디 해두고 싶다. 너 바보지"
"하아?"
무섭게 노려보지만 굳이 무시한다. 네가 바보짓을 한 탓에 타이시가 코마치에게 상담을 가져온거니까 조금 정도는 말해줘야지.
"너 말이다, 아마 예비교대라면 조금 주위에 상담하면, 그렇군 예를 들면 진학지도 선생님이지. 그것만으로도 간단하게 해결했을거라 생각한다"
"왜 선생님에게 상담하면 해결이 된다는거야. 그런건 모르잖아?"
"너 말이다……. 우리 학교는 공립이지만 진학교잖냐? 사립처럼 유복한 놈들만 입학할 수 있는게 아니야. 그렇다는건 카와사키집처럼 사정을 안은 가정을 지원하기 위한 노하우, 장학금 등의 지식이 있어도 이상할거 없잖아. 그보다, 그걸 위한 진로지도잖아"
"그……런가……"
왜 이런걸 깨닫지 못한거냐, 이 녀석? 그보다, 학비를 걱정할거면 우선 국립지향하는게 보통 아냐? 알바해서 성적 떨궈서, 사립밖에 붙지 못했습니다- 가 되면 어쩌려고.
간단한 것을 겨우 깨닫고, 고개를 떨구는 카와사키에게 나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너무 성실한것도 생각해봐야겠군. 뭐, 자기 일은 스스로 한다는건 찬동하겠지만, 그래도 타이시에게 걱정끼치면 의미 없잖아"
"그렇군. 고마워, 히키가야. 도움이 됐다"
걱정이 떨어진듯 카와사키는 웃었다.
"아니, 너는 거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마. 아직 네가 바보라는 설명만 했을 뿐이지, 내가 돈 준비를 한다고 까지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생각이냐?"
"아, 아아 그런가. 미안"
"뭐, 상관없지만. 너 말이다, 카와사키. 우리 집에서 가정교사 알바 하지 않겠냐? 알다시피 우리집 코마치는 타이시랑 같은 나이에 올해 수험생인데, 지금은 학원 말고 내가 가르쳐주고 있지만 그래선 내가 공부할 시간이 없어지니까. 대신해서 가르쳐주면 고맙겠어"
"……그거 알바비 누가 대는데? 설마 네가 낸다고는 하지 않겠지?"
"그에 관해서는 생각이 있다. 내 예비교대를 카와사키의 알바비로주면 돼. 내가 스칼라십, 뭐 예비교의 장학금같은건데, 그걸로 쓰면 예비교비는 무료가 되니까. 그렇군, 너도 신청해보면 되지 않냐? 그래서 예비교가 없을때 코마치의 공부를 봐주면 그거면 되고"
나는 공부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카와사키는 돈을 손에 넣는다. 바야흐로 win-win.
"너 말야, 왜 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생각하는건데? 동정하는건 아닐텐데……. 남에게 흥미가 없고 아무래도 좋을 단순한 같은 반이라고 했잖아"
"확실히 동정할 만큼 네 집안 사정에 흥미는 없다. 뭐, 굳이 이유를 달자면 그거다. 전부 코마치를 위해서다. 처음부터 말했다시피 코마치로부터 타이시를 떼어내기 위해 움직인것 뿐이니까"
"시스콘"
"시끄러"
"그치만 고마워"
미소를 짓는 카와사키에 이끌려 나도 웃는다.
덧붙여 이번 사건의 해결책으로서 비교적 굉장한 방법도 생각했다. 뭐, 그런 생각을 한 스스로도 식겁해버릴 정도의 방법이라서 도로집어 삼켰지만, 만약 그 이야기를 카와사키에게 들려줬으면 확실하게 감사따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뭐……타이시를 확실하게 죽이기에는 그 편이 좋았겠지만.
그 뒷일을 조금만 애기하자.
그 후에 완전히 공기였던 유키노와 유이에게 말하는것도 꺼려질 고문을 받았다.
둘에게 비밀로 하고 카와사키랑 만났다고 하기는 했지만, 공기였던 몫의 화풀이도 절대로 담겨 있었다. 그치만 나, 눈 보지 않았고.
그리고 심야 알바를 그만두고 무사히 가정교사로 전직한 카와사키로 말하자면.
"오빠야, 어서와-"
"어서와, 하치만"
"어, 다녀왔어……가 아니라, 왜 내 방에서 공부하는거야? 그보다 왜 카와사키는"
"사키. 사키로 부르면 돼"
"……사키는 내 이름으로 부르고 있어? 라고 하고 싶은 말은 몹시 많지만. 우선 이것만큼은 하고 싶다. 타이시, 너 왜 여기에 있냐"
"어서오십시오, 형님"
"형님이라고 부르지마. 진짜 비틀어 졸라버린다. 네 소중한걸 말이다"
미소지으며 내게 인사하는 타이시에게 살의가 치솟는다.
처음에 생각했던 대안, 실행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진짜로.
"하치만, 진정해. 네 의문에 하나씩 대답해줄테니까. 우선 네 방에서 공부하고 있는건 코마치가 여기가 좋다고 하니까. 그래서 너를 이름으로 부르는건 코마치도 히키가야니까 헷갈리니까. 그리고 타이시는"
"코마치가 불렀어-.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있는 편이 더 잘되니까-"
카와사키의 설명에 웃는 얼굴로 코마치가 보충설명한다.
"코마치한테 타이시를 떼어내기 위해 힘냈는데, 이래선 의미 없잖아"
"하치만, 잠깐 괜찮겠어?"
고개숙인 나를 카와사키가 방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아냐. 너, 이건 진짜 아니다"
"미안하다고는 생각해. 그러니까,"
달콤한 향기와 뺨에 전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내 사고를 빼앗긴다.
"이건 사죄와 답례"
카와사키는 그것만 말하고 내게 얼굴을 보이지 않도록 하며 방으로 돌아간다.
"에, 잠, 어?"
카와사키씨, 답례치고 많습니다.
그보다 이거 뭐야?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8
중간고사가 끝나고 직장견학의 날이 왔다.
하루를 몽땅 써서 가면 될 것을, 어째선지 오전에는 수업이 있다고 하는 의미불명.
결국 이 행사의 의미따윈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했다시피 진학에 대한 의식을 높이는것 뿐이게지.
유이와 토츠카를 데리고 견학장소로 향한다.
우선 눈에 들어온것은 도너츠 형태처럼 같은 교복을 입은 녀석들과 그 중앙에 있는 여자 3인조.
뭐, 3인조 쪽은 말할것도 없이 유키노들이다.
저 녀석, 외모만 보면 좋으니까. 그것밖에 보지 않는 바보들이 말도 못 붙이고 멀리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왠지 열받는다.
"아, 힛키. 유키농 있어. 이봐- 유키노옹"
유이의 부름을 깨닫고 드물게 미소짓는 유키노.
아니, 진짜로 드물네. 언제나 무표정했기 때문일까 비교적 차가운 느낌이었는데 왠지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어머, 유이가하마. 거기에 히키가야랑 토츠카도. 늦었네"
"안 늦었어. 유키노네가 빨리온것 뿐이다. 그보다 너 큰일이구만"
주위 바보들에게 시선을 준다. 그 동작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했는지, 유키노가 쓴웃음을 짓는다.
"딱히. 언제나 있는 일이야. 이젠 익숙해졌어"
"익숙해질만큼 언제나 있는 일인가. 그것도 굉장하구만"
"나의 겉면만 보고 다가오는 날벌레들에게 흥미는 없고. 그 이전에 왜 그런 표면상의 이유로 남에게 호의를 품는건지 정말이지 이상해"
"그것 밖에 정보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않냐? 나는 모른다만"
"얼굴만 보고 멋대로 호의를 품는다. 정말이지 어리석은 사람들이네"
"오, 여전히 독설이구만. 아니, 내가 대상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좋지만"
"어머, 외로웠니? 원한다면 매도해줄까, M가야?"
쿡쿡 웃는 유키노.
"멋대로 남의 성벽을 붙이지 마. 그보다 그런 본성을 보여주면 더 안 오는거 아니냐?"
"쫓아내는 만큼 귀찮단다. 거기다…… 기뻐해버리면 곤란하고"
저희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 로군.
"그거 곤란하겠군"
"그치"
생각지 못해 둘 사이에 미소가 터진다.
"므-. 뭘 둘이서 즐거워하는거야-! 나도 같이 끼워줘-"
"히, 히키가야. 나도"
그런 둘 사이에 유이와 토츠카가 끼어들어온다.
"유키노시타, 슬슬"
"아아, 미안해. 그럼 가볼까"
말을 걸어온 유키노의 조원과 함께 걷는다.
우리들은 겨우 타기 시작했으니까. 이 길고 긴 직장견학처의 길을 말이다.
미완.
직장견학의 한때는 꽤 즐거웠다.
만약 내가 취직한다면 이런 일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는 얻는게 있었다. 뭐, 취직하진 않겠지만.
나와 유키노가 대화에 잠기고, 유키노의 급우는 어째선지 흐뭇하게 그걸 지켜보고, 그리고 어째선지 화난 유이랑 토츠카가 돌격해온다. 그러기를 반복했다만.
자, 그런 작장견학도 끝나 귀가길이다.
토츠카는 연습이 있다며 학교로 돌아가고 유키노의 급우는 역시 아까전까지와 같은 눈으로 우리들을 보고 돌아갔다. 따라서 지금 여기에 있는건 나와 유키노와 유이 셋 뿐이다.
"이제 곧 장마로군. 나, 우산 싫어하니까 우울하다"
"에-, 비도 괜찮잖아. 왠지 말야, 풍취 있다고 할까. 나, 장마철에 태어나서 그런지 옛날부터 비내리는거 좋아했어"
"장마철에 태어났다는건 유이가하마는 이제 곧 생일이구나. 언제니?"
"6월 18일이야-. 그래서 비내리는거 왠지 정말로 좋아――"
너무나도 자연스런 생일 어필에 무심코 전율한다. 뭐 그보다도 유이의 입에서 풍취라는 단어가 튀어나온게 더 놀랬지만.
비의 좋은점을 뜨겁게 말하는 유이와, 그에 맞장추를 치는 유키노를 곁눈으로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아, 그렇지! 지금부터 말야, 사이제 가자 사이제! 비의 좋은점을 좀 더 둘에게 말하고 싶구. 거기다 직장견학할때는 둘이서 즐겁게 대화했지만, 나 무슨 소린지 전혀 몰랐거든. 좀더 자세하게 들려줘. 응, 괜찮지 유키농, 힛키"
"나는 딱히 상관없다만. 유키노는 어때?"
"그래, 나도 상관없어"
"에헤헤, 앗싸"
유키노의 팔에 매달려 뿅뿅 기쁨을 전신으로 표현하는 유이.
너 말이다, 치마 짧으니까 그렇게 점프하면……후우.
"훌륭한 솜씨입니다"
"응? 힛키, 뭐라고 했어?"
"아니, 유이 씨.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왜 갑자기 경어를 쓰는데. 그리구 왠지 힛키한테 경어를 들으면 펑범하게 기분나빠"
평범하게 기분나쁘다니 뭐냐, 평범하게.
"유이가하마, 그런 생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는 내버려두자꾸나"
"그렇네. 갈까, 유키농"
정말로 나를 두고 둘은 걸어간다.
필요최저한 이외의 인간관계를 싫어하는 나를 두고 먼저가다니, 간이 배밖으로 튀어나왔다고 칭찬해주마. 하지만 그건, 집에 가도 된다, 라는 의미지?
……뭐, 그런 짓은 안 하지만. 뒷 일이 무서우니까.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 원작 3권분량 9
나의 아침은 한 잔의 커피로 시작한다. 뭐, 거짓말이다만.
식후 커피와 함께 조간 신문을 읽고 있던 내 눈으로 한 장의 광고지가 들어왔다.
――도쿄 왕냥 쇼――
도쿄라 선전해놓고 치바에서 행해지는 그건 말하자면 대규모의 개나 고양이 전시 즉매회이지만, 그 밖에도 다종다양한 동물도 전시되기 때문에 동물원이라고 말한다.
우리 사랑하는 코마치는 큰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개최될때마다 사이좋게 남매끼리 외출하는게 우리 집의 항례 행사가 되어 있다.
"코마치, 도쿄 왕냥 쇼 한다. 갈거냐?"
심심하다는듯 토스트를 무는 코마치에게 말한다.
"칫칫치. 정보가 낡아, 오빠야. 코마치는 일주일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의미인지 오빠도 알고 있지요-?"
텔레비전 CM이라도 본걸까. 대규모 여흥이기도 하니, 내가 몰랐던것 뿐이지 텔레비전에서 CM을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아니, 모른다만. 그게 왜?"
"실은 말야, 코마치는 벌써 사키 언니랑 타이시랑 내일 갈 약속을 잡았거든-. 그래서 오빠는 오늘 유키노 언니나 유이 언니를 데리고 코마치를 위해 사전조사를 해줘야겠어요. 외출 싫어하는 오빠를 위해 나갔다 올 기회를 만들어줄게. 아, 이거 코마치 입장으로 포인트 높아!"
"사키는 좋다치고. 요즘 너희들 사이 좋아보이니까. 하지만 타이시는 안 되지. 그보다 왜 사전조사? 의미 모르겠다"
딴죽 걸 곳이 너무 많아서 의미 모르겠다.
"까먹었어? 사키 언니, 고양이 알레르기 있잖아. 그러니까 카마쿠라가 접근하지 않는 오빠의 방에서 공부하잖아? 그런 여자의 중요한 사실을 잊어먹는점, 포인트 낮아"
코마치는 떽, 이라는 듯이 손가락을 척 든다.
"처음 들었다, 그거. 그보다, 타이시랑 그건 관계없잖아"
"하아. 이러니까 오레기는……. 고양이도 좋아하는 코마치가 혼자 따돌려지지 않도록 사키 언니가 배려해준거야. 왜 그런 다정함을 오빠야는 모르는걸까-"
한숨 섞으며 코마치가 말한다.
"그런 배려를 나한테 돌려주라고. 약 한시간 정도 말이다. 뭐, 그건그렇고. 왜 사전준비가 필요해? 그보다, 검색하면 될거 아니냐?"
굳이 직접 갈것 까지도 없다.
"아까도 말했지? 외출 싫어하는 오빠를 위해 동생 나름대로 챙긴 다정함이야 다.정.함! 됐으니까 얼른 권유 메일 보내! 허뤼허뤼!"
코마치의 다정함이나 코마치를 위해서라고 해버리면, 자타 모두 인정하는 시스콘인 내가 거부할 수 있을리도 없어서 마지못해하면서 둘에게 권유 메일을 보내게 됐다.
유이한테선 오늘 예정이 있다고 답변이 바로 돌아와서, 이거 잘 하면 안 가도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한 나였지만, 그 다음에 유키노에게 날아온 승낙을 알리는 메일로 인해, 그 기대는 쉽게 배신당했다.
젠장, 한가한놈.
약속장소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키노가 찾아온다.
"미안. 기다리게 한걸까"
"아니, 막 온 참이다. 그보다 갑자기 불러내게 되서 조금 정도는 늦어도 어쩔 수 없잖아"
"그렇네. 확실히 여성의 예정도 묻지않고 갑자기 불러대는 히키가야에게는 죄가 있어. 사죄 받을 수 있을까"
"네네, 죽을 죄를 졌습니다요 유키노 님"
"좋았어"
살짝이지만 정말로 즐거운 듯 유키노가 웃는다.
문득 그 모습이 직장견학 날에 봤던 그녀의 모습과 겹친다.
그 날도 유키노는 나와 이런 식으로 잡담을 나누면서도 정말로 즐거워보였다.
허나 만약 그 때 내가 없었다면.
분명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있지 않아, 그녀의 외모나 바라지도 않았는데 붙은 꼬리표만 보고 멀리서 서성거리는 녀석들이 있었을 뿐이었겠지.
그리고 그녀는 이런 미소를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아무래도 좋은 일이 그녀에게 있어 정말로 즐거운 것일까. 흥미는……없지만. 없을터다.
"히키가야, 왜 그러니?"
"미안, 아무것도 아니다"
평소하고는 다른, 양쪽으로 묶은 머리카락을 흔들면서 유키노가 나를 들여다본다.
"그래. 그럼 가볼까"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무턱대고 걷는다.
……회장하고는 반대방향으로.
"스토오오옵"
"힉!?"
"너 말야, 어딜 갈 생각이야? 벌써 집에 갈거야? 그보다, 잘도 그래놓고 약속장소에 왔구나"
기막혀하는 나를 더욱 이상하다는 듯 유키노는 본다.
"어디냐니……마쿠하리 헷세인데. 그보다 히키가야, 갑자기 큰 소리 내지 말아주겠어. 놀래버렸잖니"
"아니, 그쪽에 마쿠하리 헷세 없거든"
어쩌지. 이대로 내 주도로 회장에 간다고 해도 이 녀석은 절대로 혼자 길잃는다. 그리고 길잃는다고 해도 이 녀석은 절대로 내가 길잃었다고 주장하겠지. 우와아, 예상밖으로 귀찮다.
"있잖냐, 유키노. 코마치가 어릴때처럼 손을 잡아줄까? 그러면 아무리 그래도 길 잃지는 않을거 아냐"
"너, 나를 바보 취급하고 있는거니"
내 제안에 유키노는 아연실색하며 대답한다.
"나한테는 그것 밖에 방법이 생각 안난다. 손 잡는거 말고, 다른 아이디어 있으면 가르쳐줘"
손을 잡는다는건 어디까지나 일례다. 이 녀석이 미아가 되지 않으면 수단은 묻지 않는다.
"……분하지만 생각나지 않는구나"
"그럼 포기해라. 자"
분해하는 유키노에게 손을 내민다.
그보다 네가 방향치인게 나쁘거든. 전부 네 탓이잖아. 애 취급당하고 싶지 않으면 방향치를 고쳐라.
"……분해"
불만스러운듯 유키노는 내 손을 잡는다.
아직 회장에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나 지쳐야하는거야. 진짜 말도 안 되네.
"유키노, 어디 보고 싶은데 있냐? 특별히 없다면 고양이 부스로 바로 가고 싶은데"
배포된 팜플렛을 재주좋게 한 손으로 보면서 유키노에게 묻는다.
바로는 만능, 그러한 설도 이 세상에는 있다. 딴곳으로 들르지 않고 특정 장소로 향하면 그만큼 일찍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만능. 바로란 굉장해.
"그래, 상관없어"
고양이와 놀 수 있는게 그렇게나 기쁜건지, 회장에 도착하고나서 유키노는 평소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싱글벙글하다.
아이취급 당한다<고양이와 놀 수 있다 라는 부등호식이 성립한 순간이다.
"오, 그럼 갈까"
"그래"
순조롭게 새 구역, 작은 동물 구역을 지나, 개 구역으로 들어갈때 유키노에게 이변이 일어난다.
움켜쥐는 손에 힘을 담으며 꼬옥 쥐었다.
꼬옥 쥐었다!! 아아, 꼬옥 쥐었지!!
"무슨 일이야?"
"아, 아니 딱히…….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도 기분 탓일까 내 뒤로 숨듯이 걷는다.
"……개가 고역이냐? 말해두겠지만 여기, 강아지들 뿐이다?"
전시즉매회라는 성질상, 그 대부분이 강아지다. 뭐, 성견을 모아두는건 힘들테니까.
"어느쪽이냐고 하면 강아지 쪽이……. 이, 일단 말해두겠는데, 딱히 개를 싫어하는건 아니라고? 그치만, 그게……좀 대하기 힘들다고 할까"
강아지 사진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제로 보면 좀 그렇다는 쪽인가. 뭐, 사진은 짖지도 물지도 않으니까, 모르는것도 아니다.
"알았다. 뭐, 얼른 가볼까. 여기만 지나가면 고양이 구역이다"
"그래, 가자"
고양이라 듣고 마음을 도로 잡았는지, 아까보다도 조금 목소리에 힘이 돌아온다.
"히키가야. 저기 보이니? 조교실이라는것도 있는것 같아. 이후를 위해서도 조금 견학해보고 싶은데 괜찮겠니"
응, 마음 도로 잡은것 같아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나의 다정함을 돌려줘.
애시당초 들여다봐도 개만 들어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그건…….
"가겠냐. 그보다 너도 유이도 나를 지나치게 개 취급한다"
"히키가야. 여성과 단 둘이 있을때, 다른 여성의 이름을 꺼내는건 매너 위반이라고 코마치에게 배우지 않았니?"
도끼눈으로 유키노는 나를 노려본다.
하? 그런거 들은 기억은……있다. 있어.
"저기, 유키노 씨. 그건 코마치에게는 비밀로 해주지 않겠습니까"
"글쎄, 어떡하면 좋겠니. 그건 앞으로 히키가야 군의 마음가짐에 따르겠구나"
"큭, 내가 무슨 실수를……"
고개숙이는 나를 보고 유키노가 웃는다.
도깨비! 악마! 유키농!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죠교실 옆의 트리밍 코너에서 한 마리의 미니튜어 댁스훈트가 쫄래쫄래 걸어온다. 이거, 어쩌면 애견 미용사, 트리머의 목 자르는거 아니냐.
"자, 잠깐만 사브레! 앗, 목줄 다 뜯어졌어!"
아무래도 바보 개 주인이 놓쳐버린 모양이다. 트리머 씨,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바보 개 주인의 손에서 벗어나 필드에 풀어진 미니튜어 댁스훈트는 개 주인의 목소리에 순간 정지하지만, B버튼을 누른것 처럼 달려갔다. 어째선지 우리들을 향해.
"히, 히키가야. 개, 개가……"
나를 개취급 하니까다 꼴 좋다아아아아아아! 라고 해주고 싶은 마음은 몹시 많지만, 유키노법전에 따르면 악의에는 섬멸로 갚아주는 모양이다. 본능적으로 장수할 타입인 나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미안, 유키노. 잠깐만 손 놓는다"
겁에질린 유키노를 뒤로 달려오는 미니튜어 댁스훈트를 안아올린다.
안아올린 미니튜어 댁스훈트는 어째선지 내 냄새를 맡고 할짝할짝 내 얼굴을 핥았다.
"뭐지? 꽤나 잘 따르는데, 이 녀석"
손수건 갖고 왔던가, 라며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하면서 왠지 귀찮아서 좋을대로 하게 내버려둔다.
우리 집의 사랑스런 고양이 카마쿠라는 친근하게 안 따르는데, 왜 모르는 개가 친근하게 따르는걸까. 세상이란 참 신기한 일이 흘러넘친다.
"추, 축생의 주제에……"
유키노가 내 뒤에 숨으면서 몰래 개를 들여다본다.
응,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너는.
"죄, 죄송합니다. 사브레가 폐를"
개를 쫓아온 개 주인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인다.어라, 왠지 이 경단머리 낯이 익은데.
"어머, 유이가하마"
유키노가 말을 걸자 개 주인은 호헤?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들었다.
"어, 어라? 유키농? ……이랑 힛키?"
"여. 그거냐, 네가 말했던 용건이라는건 이거였냐"
"어, 응. 그렇긴 한데. 아니 근데 둘 다 왜 여기에 있어?"
"나는 히키가야가 권유해서 온것 뿐이야"
"유키노랑 유이한테 권유 메일을 보내고, 유이한테 거절받았으니까 유키노랑 왔다라는 느낌이군"
"아, 그렇구나. 그보다 힛키, 그건 아니야. 오늘 예정 있냐? 라는 한 마디만 메일을 보내면 여자를 권유하는 메일이 아니잖아"
"그 점에 관해서는 유키노한테 무척이나 긴 문장으로 설교메일이 날아왔으니까 참아주라. 그보다 애시당초 내가 여자에게 권유 메일을 보낸 적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냐? 아무리 나여도 해본적이 없는건 할 수 없다고"
장문 메일을 작성했기 때문일까, 유키노에게 답신이 오기전에 유이한테 예정 있다는 메일이 도착한 것이다. 따라서 둘을 권유한건 나와 코마치 밖에 모르므로, 아마 유이한테 보이지 않도록 유키노가 내 등에 손톱을 세우고있는건 그 탓이라고 추측된다.
"그 초청 메일, 빵점이야. 다음부터는 좀 더 제대로 불러줘! 그보다, 둘 다 아직 돌아보고 있어? 나 지금 막 사브레 트레밍 끝난 참이니까 합류해도 돼?"
다음 있는거냐-. 없을거라 생각한다만.
"너 말야, 목줄 망가졌잖아? 어떻게 그 개를 데리고 같이 돌아다닐건데"
"아, 그런가……. 여기서 새거 사려고해도 오늘은 별로 돈 안갖고 왔구. 유키농들이랑 같이 못 도는건 아쉽지만 나 먼저 돌아갈게. 그럼 유키농, 힛키"
"어, 또 보자"
"그래, 안녕. 유이가하마"
사브레를 안고 유이가 돌아간다.
"자, 그럼 가자"
"그 전에"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면서 고양이 구역으로 향하려는 나를 유키노가 요즘들어 무척이나 익숙해진 미소를 지으며 불러세운다.
"나, 유이가하마도 불렀다는건 몰랐는데. 뭐 변명이라도 있니?"
"너한테 답신이 오기 전에 유이한테 못 온다고 메일이 왔으니까. 안 오는 녀석을 가르쳐줄 필요도 없잖아"
"변명은 됐어"
뭐야 그 불합리.
"아까, 코마치에게 보고할지 말지는 히키가야의 마음 가짐에 달려있다고 했지? 기억하고 있니?"
"말한것 같기도, 안한것 같기도……"
"이 상황을 바라보고, 내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알겠니?"
"아니아니아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게 책임은 없잖아"
"아니, 있어. 적어도 내 입장에서 보면 히키가야에게 책임이 발생하고 있어"
"……이제 그거면 됐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재고해주실겁니까"
기분나빠해하는 유키노에게 나는 반론을 포기한다.
"……그렇구나. 사소한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겠니?"
"부탁이라. 뭐, 말해봐"
내가 부탁이라는걸 들을 자세에 들어가자, 유키노는 긴장이라도 한 듯 가슴팍에 대던 손을 꼬옥 움켜쥔다. 볼을 붉히며, 촉촉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고, 가는 목소리로 속삭인다.
"나, 나랑……사귀어 주겠니?"
일요일.
맑은 하늘, 하얀 구름. 실컷 내려붓는 햇빛이 나의 라이프를 야금야금 깎는다.
의외고 자시고 할것도 아니지만, 유키노가 말했던 사귀어주겠니, 라는 말은 사고 싶은게 있으니 귀한 시간을 내어주겠니라는 의미였다.
그대로 의미할리가 없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 치고는 말이 부족한거 아닌가?
"기다렸지"
우산을 손에 들고 유키노가 천천히 걸어온다.
그녀의 투명한 하얀 피부는 이러한 평소 노력으로 유지되는 거겠지.
"아니, 지금 막 온참이다"
"그래, 그럼 됐어. 자 가볼까"
유키노는 살며시 내게 손을 내민다.
자신이 방향치라는 결점을 이해하고, 대책을 강구한다.
그 장점은 예스구나.
"그럼 가볼까"
유키노의 손을 잡고 걷는다.
장마가 걷히어 불러온 맑은 하늘. 오늘도 덥다.
전차로 이동하여 미나미후나바시 역에서 걷길 몇 분. 오늘 목적지인 라라포트에 도착했다.
"뭘 살건지 정했냐?"
안내처에서 팜플랫을 받고 둘이서 들여다보면서 유키노에게 물어본다.
"히키가야. 남에게 물어볼때는 우선 자기부터 말하는거야"
그건 이름 아냐?
"음. 정하지 않았구만.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라. 이상한 곳에서 고집 부리는구만, 너"
"그치만, 여러가지로 보긴 했지만 나는 좀 몰라서……. 거기다 친구한테 선물 받은 적도 없고"
미약하게 유키노가 중얼거린다.
연애 관련된 이상한 질투로 친구들이 없었댔지. 남자한테 선물은 받은 적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친구에게 선물받았다기보다는 헌물이라는 쪽이 딱 오는 이상한 느낌.
"뭐, 나도 친구한테 선물 받은적은 없지만 말이다. 구글 선생님에 따르면 악세서리보다도 사소한 물품이 좋은 모양이다. 학생이라면 필기도구 같은것도 추천하는 모양이다"
구글 선생님은 만능. 완전 만능. 물어보면 뭐든지 답해준다. 바로랑 같은 수준으로 만능.
"과연……. 그래서 히키가야는 정했니?"
"도서카드 3천엔을 줄까 생각했지만, 코마치한테 진심으로 혼났다"
"히키가야, 그건 나여도 글러먹었다는걸 알 정도로 글러먹은 선택이야. 어째서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하는걸까. 어서 병원가서 진단 받는 편이……"
유키노는 관자놀이에 손을 대며 머리 아프다는 듯한 행동거지를 한다.
어? 그렇게나 글러먹었냐? 나라면 굉장히 기뻤을텐데.
"코마치 뿐만 아니라 너한테도 안돼 판정이냐. 일단, 구글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사소한 물품을 찾아보자. 이 생활잡화점은 어때?"
"옷 같은건 안 되겠니?"
"너, 유이의 사이즈 알고 있냐? 당연히 나는 모른다. 따라서 각하다"
"그것도 그렇네. 그럼 가자"
별로 걷지 않고 목적지인 생활잡화점에 도착했다.
"그러고보니 그 녀석 요즘 요리에 빠져있다고 하지 않았냐?"
봉사부 셋은 사이 좋게 부실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지만, 그러고보니 도시락 중에 일품이품을 스스로 만들었다고하며 맛보기 한 기억이 있다.
덧붙여 맛은 보통.
"확실히 그런 소리도 했었구나. 일단 그 방향으로 돌아볼까"
부엌용품 판매장으로 둘이서 향한다.
솔직히 부엌용품 판매장에서 선물받아 여자가 기뻐할 만한건 한정되어 있다. 아무리 유이라도 식칼이나 도마를 선물로 받아서 기뻐할리 없는 것이다. 뭐, 나는 천연 숫돌같은걸 받으면 무진장 기쁘겠지만.
"히키가야, 여기"
불러서 가보니 거기에 있던건 에이프론 차림의 유키노였다.
에이프론 유키농은 새댁 귀엽다.
……핫, 지금 왠지 이상한 전파를 수신했다.
"어떠니?"
"매일 아침, 나를 위해 된장국 만들어주지 않겠어?"
"엣?"
"아, 아니, 아무것도 아냐. 잠깐 착란했다"
뺨을 붉히는 유키노를 보고 제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말을 고친다.
뭐야 지금? 내가 말한거야? 외우주의 사신에게서 전파를 수신하다니 지금건 아니다.
"그거다. 굉장히 잘 어울려"
또 이상한 전파를 수신해선 곤란하므로 유키노 쪽은 보지 않기로 했다.
"나, 나한테 어울리는게 아니라, 유이가하마한테 어떠냐는 소리야"
"아, 그쪽이냐. 그럼 처음부터 말해. 뭐,확실히 에이프론이라면 세탁도 필요하니까 몇 벌을 갖고 있어도 곤란하지는 않겠지. 괜찮지 않겠냐"
유키노가 에이프론을 벗는걸 확인하고나서 돌아본다.
"그렇지. 하지만 유이가하마는 검은색이라는 이미지가 아니구나. 그럼……"
조금 득의양양한 얼굴을 하고 벗은 에이프론을 손에 든채로 유키노는 에이프론 고르기로 돌아갔다.
그 후에 유키노는 자택용과 선물용으로 두 벌의 에이프론을 구입하고 가게를 나왔다.
어째설까, 앞으로 저 에이프론을 입은 유키노가 부엌에 선다고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울렁거린다.
생각외로 좋은 물건을 손에 넣었기 때문일까, 만족스런 유키노와 함께 라라포트 안을 걷는다.
잽싸게 오늘 목적은 완수한것도 있어, 철수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나는 유키노가 사귀어달라는 말 대로 따른것 뿐이며, 유이에게 줄 선물 고르기가 끝날때까지라고 기한을 정해놓은게 아니다. 요컨대 유키노가 해산을 고할때까지는 나는 어울릴 의무가 있다는것이 된다. 합장.
인테리아 샵에서 둘이서 소파에 앉아보거나, 자신의 옷을 고르는 유키노에게 의견을 말하는 등 하며 걷고 있으니, 어떤 장소에서 유키노가 발을 딱 멈춘다.
시선끝은 게임 센터이며, 솔직히 평소의 유키노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왜 그래? 주변 여고생처럼 스티커 사진이라도 찍고 싶어진거냐?"
이 녀석, 스티커 사진 찍은적이 있나? 어떤 낙서를 해줄까, 약간 흥미가 솟았다.
"스티커 사진은 나중이야. 그보다도 저거……"
한 대의 크레인 게임 기게를 가리킨다. 그보다 뭔가 지금 흘려버릴 수 없는 소리를 하지 않았나? 나중에 라는건 찍을 예정이 있는겁니까, 유키노씨.
"판씨인가. 갖고 싶어?"
"갖고 싶냐 아니냐고 물으면 갖고 싶지만……"
유키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판씨를 쳐다본다.
"어느걸 갖고 싶어?"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들어 기계에 투입하면서 유키노에게 묻는다.
그나저나 우리집 코마치는 굉장하다. '여자애가 크레인 게임에서 경품을 갖고 싶어하면, 절대로 뽑아줄것!' 라니, 절대로 쓸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대상이 유키노라니, 상상도 못했다. 저 녀석, 예지능력이라도 갖고 있는게 아닐까. 다음에 로또라도 사보자.
"에, 저기……그, 그거"
조심스레 쭈뼛거리며 판씨 하나를 유키노는 가리킨다.
화염 커맨드는 물론 슈퍼 노자트리니티를 쓰는 날도 멀지 않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내게 있어 이 정도는 낙승이다.
"자"
조금씩 장소를 틀어서 몇 번째의 도전으로 무사시 기체라는 이름의 감옥에서 해방된 판씨를 건낸다.
"고, 고마워……가 아니라. 이건 네가 손에 넣은거잖니? 그럼 내가 받을 이유는 없어"
하지만 유키노는 나한테 인형을 도로 돌려줬다.
"네가 갖고 싶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은 네 손에 있는거야. 이유가 없지 않지? 자, 논파"
과정은 둘째치고 원인과 결과에 관해서는 이치가 성립한다.
"너한테 말로 지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굴욕이야"
"판씨한테 달래달라고 하면 되잖냐"
흥, 하며 판씨를 껴안으면서 유키노는 고개를 돌린다.
여전히 입은 험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그나저나 유키노가 인형을 좋아한다는건 솔직히 의외로군"
뭔가 이렇게, 예술적인 걸 좋아하는 이미지가 딱 온다.
"……다른 인형에 흥미는 없지만 이 팬더 판씨만큼은 좋아해"
유키노는 그 가슴에 안은 인형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옛날부터 인형이나 상품은 모았지만, 이런 상품은 스스로 얻을 수 밖에 없으니까 곤란했어. 옥션을 이용하는것도 생각했지만, 게제되어 있는 사진으로는 표정을 알기 힘들고……"
인형에도 표정이 있다. 인형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주 그렇게 말한다. 덧붙여 코마치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입을 꿰멘 형태나 눈 위치에 따라서 표정이 전혀 다른 모양이다. 인형을 사러가면 타협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표정을 찾기 때문에 굉장히 시간이 걸린다.
"정말로 판씨 좋아하는구나"
표정에 집착할 만큼 상급자라는걸 알고, 무심코 미소가 새어나온다. 좋거나 싫다거나, 그런 감정이 희박한 내게 있어 그렇게까지 고수하는 사람은 솔직히 감탄할 수 있다.
"……그래. 옛날에 생일에 받았어. 그 때문에 한층 애착이 있는걸지도 몰라"
"어쨌든간에 애착이 있다는건 좋은거다. 소중하게 여겨"
유키노를 따라 나도 판씨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기, 히키가야. 그게……뽑아줘서"
"어라-, 유키노?"
무슨 말을 하려고한 유키노의 말을 가로막듯이, 배려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역시 유키노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보니, 대단한 미인이 거기에 있었다.
목소리 주인은 주위에 있는 친구같은 집단에 말을 하고 잽싸게 이쪽으로 달려왔다.
"……언니"
방금전까지 미소를 잊어버린것처럼 무표정해지는 유키노. 어깨를 긴장시키며 인형을 꼬옥 안는다.
"언니?"
눈 앞의 여성과 유키노를 교대로 본다.
청초하고 또렷한 유키노하고는 대조적으로 기품을 잃지 않은 정도로 피부를 노출하고 있지만 확실히 닮았다.
"이야- 이런데서 만나다니 우연이네-! 앗, 남자애랑 있구! 데이트? 데이트지? 데이트라고 해! 요녀석요녀석!"
훌륭한 삼단활용에 감탄하는 수 밖에 없다.
유키노의 언니는 WRYYYYYYYY라며 팔꿈치로 유키노를 찌르면서 놀리고 있다. 하지만 유키노는 그런 언니를 차가운 눈으로 울적하다는 듯이 쳐다볼 뿐이다.
"저기 얘, 저거 유키노의 남친? 남친?"
"저거 취급은 너무한다고요. 히키가야입니다, 처음뵙겠습니다 유키노시타 씨"
쓴웃음과 함께 자기소개를 한다. 그리고 그런 나를 수상쩍은 눈으로 보는 유키노.
솔직히 나 자신은 이 유키노의 언니에게 어떻게 생각되든 관계없다. 하지만 유키노와 함께 있는 장면에 나타난 이상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면 나의 평가라는건 동생의 친구의 평가이며, 그대로 유키노의 평가가 되기 때문이다.
너를 위해 신경을 쓰고 있는데, 왜 그런 눈으로 보는거냐.
"히키가야……. 헤에……"
유키노시타의 언니는 순간 생각 하듯이 뜸을 두고, 나를 발끝부터 머리까지 흘려봤다.
이런. 왠지 나, 완전 평가당하고 있는데-. 같은 동생을 가진 사람으로서, 동생의 친구가 어떤 녀석인지 신경쓰이는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나여도 이렇게까지 알기 쉽게 평가하지는 않는다고? 지나치게 시스콘스럽네, 이 사람.
"유키노의 언니, 하루노에요. 잘 부탁해"
평가가 끝났는지 하루노 씨가 생긋 미소짓는다.
그나저나 자매가 이렇게나 성질이 달랐나. 어딘가 차가운 분위기인 유키노와는 달리, 무언가 따뜻하고 명랑함을 느낀다.
뭐, 아무래도 좋지만.
"그나저나 유키노도 남친이 있으면 가르쳐주면 좋았을걸. 아, 히키가야. 저거라고 불러서 미안해"
테헤페로☆
과연. 만화같은데서 밖에 본 적이 없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공부가 되겠네, 이 사람.
"아뇨,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남친 같은게 아니니까요. 안그래, 유키노?"
"그래, 남친은 아니야"
"또 그런다아-! 부끄러워 하지않아도 되는데! 그렇지, 유키노가 남친 생긴 기념으로 언니가 밥 사줄게-"
"아뇨, 정말로 아니니까요. 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오, 너도 딱 삐쳐가지곤-. 유키노를 울리기라도 하면 누나 용서 안할거야"
하루노 씨는 "떽!" 하며 나를 꾸짖듯이 검지손가락을 세우고는 그걸 내 뺨에 찔렀다.
거짓말을 하는건 싫지만, 이 텐션에 말릴 정도라면 남친이면 좋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건 그거대로 귀찮아질것 같지만.
"언니, 이제 됐으려나. 용건이 없으면 우리들은 이제 갈건데"
유키노가 그렇게 말해도 하루노 씨는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고, 내게 달라붙었다.
"자자, 얼른 말해-. 둘은 언제부터 사귀었던건가요-"
"잠깐만요, 가깝다니까요 유키노시타 씨"
집요하게 캐묻는 사이에 나와 하루노 씨의 거리는 거의 제로. 그리고 오늘은 햇살도 강해서 초여름의 볕양이라고 해도 좋은 기온이다. 요컨대 얇은 옷.
알고 있으면서 하고 있는거겠지만, 솔직히 짱난다.
"……언니, 슬슬 그만해"
낮게, 강한 어조로 하루노 씨에게 고하고 경멸의 시선을 보낸다.
"아……미안해, 유키노. 언니가 좀 들떠버린걸지도"
미안하다는 듯이 힘없게 웃는 하루노 씨.
그리고 하루노 씨는 내게 살짝 귓속말을 한다.
"미안해? 유키노, 섬세한 성격이니까. ……그러니까 히키가야가 제대로 신경써주렴"
아무래도 하루노 씨에게 동생을 맡길만한 인간이라고 인정받은 모양이다. 남의 평가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는 나이지만, 시스콘에게 있어 최상급의 신뢰의 증거인 이 단어를 솔직히 기쁘다.
뭐, 이 사람의 평가 기준은 전혀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하루노 씨의 신뢰를 배신하지 않도록 성실하게 대답한다.
"……히키가야, 지금 그거 뭐니? 언니한테 무슨 소리를 들은거려나?"
방금전까지 하루노 씨에게 향하고 있었을 차가운 시선을 어째선지 유키노는 내게 향하여 온다.
그런 유키노의 대응에 곤란해져 하루노 씨에게 시선을 주니 입에 손가락을 대며 '비밀'이라고 눈짓했다.
"아니, 그건 그게……. 나중에다 나중에"
"에-, 히키가야 공개할거야? 그러면 누나 울어버린다"
"죄송합니다, 유키노시타 씨. 솔직히 자신의 몸이 더 귀하거든요"
"뿌-뿌-. 아, 그래. 밥은 거절했지만 차라면 어때? 히키가야 군의 입막음료. 누나 분발할게! 그리고 누나로서 유키노의 남친에 어울리는지 알아볼 의무가 있다구요"
척 가슴을 펴며 가볍게 윙크를 했다.
아까 인정해줬잖습니까, 싫다-. 더 이상 시험당한다거나, 절대로 차 정도로는 사리에 맞지 않으니까 거절하겠습니다.
"……언니, 정말 끈질기네"
강하고, 그리고 명확한 거절.
나도 코마치와 관계를 다시 보자. 코마치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면 쥬카이로 갔다온다 정도가 아니니까.
"그치만 유키노가 다른 누구랑 외출하는거 처음 봤다 뭐. 그랬더니 기뻐져서"
쿡쿡, 하루노 씨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모처럼 청춘이니까 즐겨야지! 아, 그치만 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
하루노 씨는 농담하듯이 주의했다. 그대로 유키노에게 얼굴을 가져가고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혼자 자취하는것도 아직 엄마 화내고 있으니까"
'엄마'라는 단어가 나왔을때, 유키노의 몸이 긴장했다.
잠시 뜸을 두고 유키노는 인형에 얼굴을 묻어 꼬옥 껴안는다.
"……딱히. 언니하고는 관계없는 일이야"
정면을 보지 않고 지면을 바라보며 얘기하듯이 유키노는 말한다.
또다.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 언제나 유키노는 이런 얼굴을 했었다. 이런 유키노의 얼굴 보고 싶지는 않은데.
"아무튼 유키노시타 씨, 이 쯤에서. 남친은 아니지만 방금전의 말은 제대로 지킬테니까요"
그 이싱은 안 된다.
유키노의 손을 가볍게 놓고 하루노 씨와 유키노 사이에 몸을 끼워넣는다.
"그런가, 히키가야가 있었지. 쓸데없는 간섭이었을까. 미안미안"
헤헷 하며 얼버무리듯 미소를 짓고나서 하루노 씨는 나를 돌아본다.
"그치만 왠지 분한데. 유키노를 빼앗겨버린것 같아서. 히키가야. 남친이 되면 제대로 누나한테 보고하기다. 그러면 그때야말로 차 마시자. 그럼 또 봐!"
방긋 웃고 하루노 씨는 손을 흔들고 저벅저벅 걸어간다.
"그거다, 어디라도 좋으니까 들어가자. 지쳤으니까 일단 앉고 싶다"
하루노 씨를 배웅하고 아직 어두운 얼굴을 하는 유키노의 손을 잡고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걷는다.
내 손을 세게 움켜쥐고, 유키노는 말없이 따라온다.
근처에 있던 카페로 들어가 주문한 음료를 마셔서 겨우 진정이 됐다.
"……언니를 어떻게 생각해?"
하루노 씨와 헤어지고나서 줄곧, 아래를 바라보던 유키노가 미약하게 물어온다.
"어떻게 생각하냐고 해도 말이지. 네 누나는 의외로 별 생각이 안 든다"
오히려 그것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세간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미인이니 그런 평가를 내릴지도 모르지만, 내게 있어선 무의미하다.
"재색겸비, 문무양도, 성적우수, 다예다재, 용모단려, 그리고 온후독실, 어지간한 인간으로서 저만큼 완벽한 존재는 없다고 생각이 드는 언니를 보고, 그것 뿐이야?"
"잠깐만 너. 언니를 너무 좋아하는거 아냐? 그런 사자숙어를 구사해서 남을 칭찬하는 녀석은 처음봤다"
"그게 아니라"
자신이 전하려고 하는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것이 아쉬운지, 유키노는 말을 급하게 말한다.
"그보다, 네 언니가 얼마나 굉장한 사람인진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데 흥미가 없다는건 너도 알잖아?"
얼마나 아름다운 보석이라고 해도, 흥미가 없으면 단순한 돌맹이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얼마나 굉장한 사람이라고 해도 흥미가 없는 내게 있어선 주변인과 차이 없다.
오히려 왜 그렇게 신경을 쓰냐고 유키노가 생각을 하는지 신기해질 수준이다.
"누구나가 인정하고, 칭찬하는 언니인데 말이야"
"나도 칭찬해줄까? 네 언니의 시스콘은 굉장하다. 치바에서도 상당한 상위권의 시스콘 아니냐? 진짜 존경한다"
"시스……콘……?"
내 발언이 의외였는지 유키노는 벙찐 얼굴로 나를 본다.
"나도 코마치를 정말 좋아하니까 시스콘끼리 통하는게 있으니까 알아. 굳이 미움받으려고 하는것 같으니까 알기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마 너를 위해서겠지. 나에겐 흉내낼 수 없는 수준의 시스콘이다"
자신이 미움받아도 유키노라면 괜찮아. 그런 확신을 하루노 씨는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확신이 있어도 불안하니까 내게 서포트를 부탁한거라 생각한다.
"총괄하자면 그 사람은 유키노의 시스콘 언니. 내가 할 수 있는말은 그것 뿐이다"
내게 있어서 그 이상의 평가를 하루노 씨가 갖지는 않는다.
내 말을 듣고 유키노는 조금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생각하기를 포기한것 처럼 한숨을 쉬었다.
"어째설까, 네 말에는 이상한 설득력이 있어. 네가 그런다면 분명 내가 깨닫지 못한것 뿐이겠지"
"나한테 있어 코마치가 천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거랑 마찬가지로, 가족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것도 있는거겠지"
"있잖아, 히키가야"
어딘가 망설이듯이 말을 끊고, 유키노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좀 묻고 싶은게 있는데. 만약 내가 우수한 언니의 뒤를 쫓고 있었다고 하면 어떡하겠니?"
"쫓는 방향성에 따라 다르겠지. 따라하고 싶다고 하는거라면 바보 아니냐, 라고 할테고, 참고하고 싶다고 한다면 솔직하게 응원한다"
학습이란 모방에서 시작한다. 그건 모방한 것을 밑바탕으로 두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지, 모방한것 만으로 만족하는건 무의미하다.
"……그래. 고마워, 히키가야. 아직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네 말을 참고하도록 할게"
무언가 후련한것 처럼 유키노가 웃는다.
"천만에, 아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만"
"지금은 몰라도 좋아. 하지만……. 하지만 언젠가, 답이 나오면 그 때는 들어줄래?"
"오냐"
그대로 카페에서 점심을 먹고 그 후에 유키노의 요망대로 스티커 사진을 찍게 됐다.
둘이서 나란히 서서 몇 장이나 촬영되어, 유키노가 그 중에서 세 장을 고른다. 덧붙여 내게 고를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화면 지시에 따라 낙서 공간에 뭐라 쓰려던 차에 유키노에게 쫓겨났다.
"마실것 좀 사오겠니?"
완전히 심부름꾼입니다, 네.
얌전히 마실걸 사오고 돌아오니 당연하듯 프린트는 끝나 있어, 유키노는 가위가 설치된 테이블에 서 있었다.
"자"
"고마워. 자, 이건 히키가야의 몫이야"
음료수 대신 인쇄된 스티커 사진을 받는다.
거기에 찍혀있던건 미묘한 표정을 짓는 나와 그 옆에서 만면의 미소를 지는 유키노.
특별히 낙서된 모습은 없다.
"뭔가 이거, 적지 않냐?"
건내 받은 스티커 사진은 크기는 다르지만 두 종류 뿐. 내 기억이 분명하다면 화상은 세 장을 찍었던것 같은데.
"그거면 돼"
볼을 빨갛게 물들이며 이쪽으로부터 눈을 돌리면서 그런 말을 하는 유키노에게 추궁을 포기한다.
"뭐, 상관없지만"
"그럼 집에 갈까"
누가 먼저라고 할것 없이 손을 잡고 우리들은 귀가 길에 올랐다.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10
주말이 끝나고 월요일. 유이의 생일 당일이다.
유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지만 지금 부실에 있는건 나와 유키노 둘 뿐이며, 생일 님은 오지 않았다.
잘 생각해보니, 나도 유키노도 유이의 방과후 예정을 묻는다는걸 하지 않았다. 그걸 깨달은건 쇼핑에서 귀가후, 유키노한테 "케이크를 구으려고 생각하는데, 어떤게 좋겠니" 라는 메일이 왔을때다.
나나 유키노에게는 기본적으로 봉사부 이외의 예정이 있는건 그다지 없지만, 유이는 다르다. 미우라나 에비나라는 친구가 있고, 당연히 그들에게 축하받는것도 있는고로.
"그렇군. 그런 파티를 개최하려는것도, 참가할 기회도 없었으니까 전혀 상정하지 못했다"
"분하기는 하지만, 나도야"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이의 당일 방과후 예정은 미우라들과 노래방 파티가 될 것이다.
평소 하지도 않던 짓을 하는게 아니었다는걸 잘 알았다.
"반대로 생각하자고. 축하해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히키가야. 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유명한 대사지만 유키노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던 모양이라 도끼눈으로 노려보아졌다.
"이번일로 우리들은 이런 경험이 현저하게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떠오르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건 결코 되돌릴 수 없는게 아니야. 왜냐면 우리는 축하하려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유이에게 선약이 들어가 있었던것 뿐이니까. 그리고 그건 반드시 실점으로 이어진다고는 할 수 없지. 오히려 지금은 유예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야한다. 그렇지?"
'변명 ㅅㄱ' 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라고는 했지만, 정말로 유감스러운건 상정도 못한 우리들이었을 것이다.
"그렇구나. 할 수 없었던 과거만 분해해도 소용 없는걸. 지금은 앞으로 유이가하마에게 뭘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하자"
좋은 이야기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는데 실패한 둘의 대화가 아니라면.
"일단 유이의 토요일 일정은 비었다. 그래서 어떻게 축하할지 말인데"
"셋이서 어디 놀러간다는건 피하는 편이 좋겠구나. 재탕이 되버릴테고, 애시당초 어디 간다는게 올바른건지 판단할 수 없어"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기본으로 돌아가자. 내 안에서 생일 축하라고 하면 유치원의 생일파티다. 그러니까 케이크와 과자는 최저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색종이로 관을 만들어주면 완벽하겠지"
"와카자리 말이니? 그렇구나, 확실히 그게 없으면 축하 자리라는 느낌이 들지 않겠구나"
"장소에 관해서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건 요행이군. 우리 집에서 하면 부모님은 일때문에 없을테고, 코마치 쪽은 유키노와 유이랑 아는 사이니까 방해되는 일도 없다"
"딱히, 우리 집에서 해도 괜찮긴 하지만. 그저……"
"카마쿠라 보고 싶지? 알고 있어"
"따,딱히 그것만이라는건 아니지만"
어째선지 뾰로통해진 유키노에게 무심코 미소가 새어나온다.
"장식 자체는 전날 밤이라도 나랑 코마치가 하면 되겠지. 와카자리는 오늘 부활동을 자주휴업하고 나중에 만들자. 다행히 유이에게 들키지 않고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요리나 케이크 말인데"
"케이크는 전날 밤에 내가 구워서 당일날 갖고 갈게. 히키가야나 코마치에게만 맡겨버리면 미안한걸. 그 정도는 해야지. 요리에 관해서는 유이가하마랑 만나는 시간보다 먼저 히키가야네 집에 가서 둘이서 만들자"
"딱히 나만 해도 괜찮은데?"
유키노의 요리 실력을 신뢰하지 않는건 아니다. 낮에 도시락 반찬을 교환한 적도 있어서 그녀의 요리실력은 잘 알고 있다.
"아니, 둘이서 만들자. 그러는 편이……축하하는것 같잖니"
어째선지 유키노가 볼을 붉힌다.
아니, 네가 좋다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네가 그런다면 상관없지만. 그저 거기에는 문제가 하나 있다. 너 말야, 혼자서 우리집 올 수 있냐?"
"그런데 히키가야. 만약 내가 무리라고 하면 너는 어떤 대응을 해줄거니?"
"아니, 그야 집까지 마중나가"
"무리야. 무사히 도착할 자신은 없어"
단언받았다. 방향치를 그렇게까지 자신감 넘치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코마치의 가르침으로 인해 어제 귀가때 유키노를 집까지 배웅해줬기 때문에 다행히도 유키노의 집 위치는 파악하고 있다.
마중하러 갈 수 없었다고 하면, 길 잃은 유키노를 찾으러 간다는 두 배의 수고가 발생한다. 그걸 생각하면 집까지 마중나가는게 타당할 것이다.
"알았다. 그럼 전날에 몇 시에 가면 되는지 연락해줘"
"그래, 알았어"
"자, 대충 이런 느낌이면 되겠지. 뒷 일은 그 때 대응하면 되겠고. 그나저나 상당히 오래 얘기했는데 유이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군"
우리들이 유이 생일 계획을 부실에서 얘기하고 있던건, 노래방에 가기 전에 부실에 고개를 내민 유이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축하해야 할 유이를 불러내는것도 좀 아니라 생각했지만, 유키노가 다른 반이니까 어쩔 수 없다.
"그러네. 하지만 늦네"
유키노는 고개를 숙이고 그 가슴에 유이에게 줄 선물을 안는다.
아마, 친구에게 생일 선물을 건낸다는 처음 하는 행위에, 기뻐해줄지 불안한 것이다.
"괜찮아. 유이라면 분명 『고마워 유키노옹』 하면서 들뜰거다"
불안해하는 유키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렇겠네. 고마워, 히키가야"
내 말에 안심했는지 유키노가 미소짓는다.
그만 유키노를 눈으로 쫓아, 신경쓰고 만것은 어째서일까.
아마, 이 녀석도 동생이니까 그런거겠지. 그 밖에는 짐작도 안 간다.
남에게 흥미가 없는 내게 있어, 유일한 예외는 코마치다. 시스콘인 나의 입장에서 보면 코마치를 신경쓰는건 당연한 일이며, 그렇기에 같은 동생 캐릭터인 유키노도 코마치와 마찬가지로 신경쓰는걸테지. 틀림없다.
"뭐, 아무리 그래도 슬슬 오겠지. 나도 선물 꺼내놓을까. 그 녀석 예정 있으니까 얼른 건내주는 편이 좋겠지"
내가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려고 할때, "얏하로-"라는 소리와 함께 부실 문이 열린다.
오늘 주역의 등장이다.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 원작 4권분량 11
"오빠야 일어나-!"
기온 높은 날을 자며 보내고 기온이 떨어져 비교적 보내기 쉬운 밤에 공부한다. 그런 로하스한 신념에 따라 아침까지 공부하고 있던 나는 코마치에게 일으켜졌다.
"어, 안녕. 왜,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 아니야! 이제 사키 언니가 올 시간이라구-. 얼른 일어나지 않으면 코마치가 공부할 수 없잖아"
아아, 그러고보니 오늘은 사키가 오는 날인가.
분명 사키가 공부를 가르치는데는 카마쿠라가 접근하지 않는 내 방을 쓰는 수 밖에 없어서, 거기서 내가 자고 있으면 공부하기 힘들테지.
처음에는 부록도 같이 오니까 신경 썼었지만 타이시가 영원히 친구라는걸 알게 되고 나서는 아무래도 좋게 됐다.
코마치의 교우관계까지 뭐라할 생각은 없으니까.
"미안하게 됐네"
뿡뿡 볼을 부풀리는 코마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러고보니 제대로 공부하고 있었지. 사키한테 들었다. 장하다 코마치"
"아-, 그러면서 또 얼버무리려 하는거지. 오빠야 포인트 낮아!"
베에, 혀를 내밀며 방에서 나가는 코마치를 멍하니 쳐다본다.
얼버무릴 생각은 없었지만 어째선지 코마치는 그렇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사랑하는 동생이 스스로 정한 목표로 향해 나날히 공부에 힘쓴다. 그런 동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오빠의 마음은 전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앞으로 2년도 안 남았지만"
그렇게 혼자 중얼거린다.
코마치를 이렇게 신경쓰며 칭찬할 수 있는것도 졸업하여 이 집을 떠날때까지 짧은 시간 뿐이다. 그리고 그 날은 점차 다가오고 있다.
나의 꿈인 자택경비라는건 남들과 관계를 배제한 생활을 보낸다는 것이며, 당연히 코마치도 거기에 포함된다.
사랑하는 동생이라 행복해졌으면 싶다고 생각하지만 거기는 양보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남겨진 시간, 얼마든지 어리광부리게 해주자고 생각하고,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못할 코마치의 가르침에 얌전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너무 착한 오빠라서 눈물 나온다.
"쇼핑이라도 가서, 돌아오는 길에 선물이라도 사올까"
어차피 코마치가 방을 쓸테니까 집에도 못 들어올테고. 기분 전환하기에는 딱이겠지.
집을 나와 나는 몇발짝 못 걸어서 외출한것을 후회했다.
매미는 시끄럽고, 무엇보다 덥다. 바보의 가르침 하나처럼 핵융합만 하지말라고, 태양. 오히려 여름방학이니까 너도 쉬어라. 그렇군, 지금 이 순간부터 내가 집에 돌아갈때까지 쉬어도 좋다. 오히려 쉬어라.
태양에 살의를 품으면서 겨우 역 앞까지 도착한다.
안그래도 덥고 짜증나는데 인파가 넘치는걸 보니 더욱 짜증난다.
하지만 그런 인파를 보고 짜증을 내면서도 어째선지 동시에 안심하기도 한다.
아무리 덥든 사람 일이라는건 변함없이 거기에 있다.
히키가야 하치만이 관여하지 않더라도 오늘도 세계는 정상적으로 돌고 있다.
내가 남에게 흥미가 없듯, 세계는 나에게 흥미가 없다.
남과 관여하기를 꺼려하고 남들과 어긋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나를, 누구도 긍정해주지는 않았던 나를, 이 광경만큼은 긍정해준다.
내가 없어도 세계는 돌아간다. 코마치도, 유키노도, 유이도, 설령 지금 이 순간 내가 없어졌다고 해도 그 녀석들의 세계는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다. 내가 혼자 있어도 아무런 문제는 없다. 그 녀석들의 세계가 돌아가는데 내가 필요한 이유는 없으니까.
무언가에 굶주리고 있던걸까, 더위 가운데 역 앞의 광장 벤치에 앉아 그런 안심할 수 있는 광경을 멍하니 쳐다본다.
"아, 힛키"
안심할 수 있는거랑 관계없이, 우와 나 이거 단순한 열사병 아니냐, 라며 급격히 자신의 몸이 걱정스러워졌을때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
"오랜만. 그보다 이런데서 뭐하는거야? 누구 만나기라도 했어?"
"만날 상대가 나한테 있을리 없잖냐. 아무것도 하지 않는걸 하는것 뿐이다"
"뭐야 그거, 의미 모르겠네. 힛키, 머리 괜찮아?"
비교적 철학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뭐, 유이는 모르나.
"괜찮냐 안 괜찮냐 물으면 아마 안 괜찮다. 오히려 열사병일지도 모른다"
지금 눈치챘지만 이렇게 더운데 나 땀흘리고 있지 않잖아. 완전히 탈수증상이구만, 이거.
"에, 진짜루?"
"히키오, 너 바보 아냐? 이거 줄 테니까 머리 식혀"
같이 놀고 있던걸까, 유이의 뒤에서 미우라가 고개를 내민다. 손에 든 가방에서 핸드 타올과 아이싱 스프레이, 미네랄 워터를 꺼내들고 재빠르게 그걸로 차가운 물수건같은걸 만들어 내게 건낸다.
"고맙다, 미우라. 솔직히 살았다"
받아든 그걸 머리에 대니 기분 좋은 청량함이 퍼진다.
"미우라는 에비나한테만 그럴거라 생각했지만, 모든 방향으로 엄마구나"
내 상태를 보고나서 대처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짧다. 종종걸음으로 승룡 여유였다는 수준이 아니잖아.
"하야토의 시합 응원 가는것도 있어서 일단 준비해둔것 뿐이고. 설마 히키오에게 쓰게 될 줄은 생각 못했지만"
"유미코 굉장해"
미우라가 쓴웃음 짓고 친구의 엄마 속성 수준이 높은것에 감탄한건지 유이가 그런 미우라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조금 편해졌으니까 어디 시원한데 들어가서 마실거라도 먹을게. 그나저나 고맙다. 이거 학교 시작하면 씻어서 돌려주마"
"그거면 됐구. 그럼 우리들도 갈테니까. 안녕 히키오. 열사병 얕보지 마"
"그럼 갈게 힛키. 조심하지 않으면 안 돼-"
가볍게 손을 흔들고 가는 둘을 배웅한다.
아니- 진짜로 엄마 속성 미우라의 마음가짐에는 도움받았다. 다음에 유이한테 미우라가 좋아할만한걸 듣고 수건을 돌려줄때 답례로 과자라도 같이 주자.
근처 적당한 카페에서 조금 쉬며, 어느정도 괜찮아져서 행동을 재개한다.
오늘 목적은 빨간책 구입이다.
내 꿈인 자택경비원이 되기 위해, 일류대학에 들어간다는건 전에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먼 지방의 일류대학에 입학해서 고등학교까지 있던 인간관계를 끊는다. 졸업후 이사해서 대학에서 생긴 인간관계를 끊는다. 뒷일은 페이퍼 컴패니를 기업하여 서류상 사장이라는 세간에 좋은 직책을 손에 넣어 가족과 관계를 끊는다.
이것이 내가 혼자가 되기 위해 생각한 완벽한 계획이다.
모든 관계를 끊은 뒤에는 어디선가 몰래 그리고 느긋하게 사는것 뿐이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에게도 방해 끼치지 않고 그저 혼자 산다. 생각하는것 만으로도 가슴의 고동이 친다.
그저 일류대학을 졸업할때 학부가 이법이라니 무슨 관련성도 없는 곳이냐며 거기에 위화감이 생겨난다. 완벽한 계획을 보다 완벽하게 하기 위해선 경제학부에 진학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거기서 내가 눈을 둔 곳이 쿄다이 경제학부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졸업후 바로 기업한다는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뭐 세간 신분을 위해서 만드는거니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한고로 교다이 빨간 책을 사기 위해 서접으로 향한다.
"어머, 우연이네"
빨간책을 찾아 서점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유키노와 만났다. 오늘은 낯익은 얼굴을 자주 보는 날이다. 이것도 머피의 법칙인가?
"여. 너도 책 사러 온거냐?"
"그래. 참고서를 사려고. 그러는 히키가야는?"
참고서라고는 하면서 유키노의 손에 있는건 고양이 사진집 뿐. 너 말야, 매일 카마쿠라 사진 보내고 있잖냐. 그러고도 부족하냐. 그냥 고양이 길러라.
"나도 참고서를 사려고. 참고서라고 할까 빨간책이지만"
"그러니……. 얘, 히키가야. 우리들 친구지?"
"뭐, 아마 그렇겠지"
내가 봉사부에 있는 동안은, 이라는게 머리에 붙지만.
그보다 나는 언제까지 봉사부에 있어야 하는걸까. 애시당초 이 부활동에 은퇴가 있는거냐? 모르겠네.
"거기는 단정해서 말해야지, 히키가야. 뭐, 그건 나중에 벌을 주기로 하고. 세간 일반적으로 친구끼리는 같은 진학처를 지향하는것도 있다는 모양인데, 히키가야는 알고 있었니?"
"바보취급하고 있냐? 그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그게 어쨌는데?"
어딘가의 경음악부가 같은 여대에 입학하기도 했다던가.
"그럼 우리들도 같은 대학을 지향해야겠네. 왜냐면 친구인걸"
"그건 아니지. 애시당초 내 진로와 네 진로가 합치한다고는 한정할 수 없잖냐"
"덧붙여 히키가야는 어디 대학을 지망할 생각이니?"
"교다이 경제학부로군. 설마 유키노를 위해 바꾸라고 하진 않겠지?"
"그래. 급이 낮은데라면 그렇게 시켰을지도 모르겠지만, 교다이라면 그런 말은 하지 않아. 하지만, 나도 교다이를 지망하기로 할게. 역시 학부까지는 아직 정할 수 없겠지만"
그만둬라는게 솔직한 감상이지만, 내가 그걸 유키노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그녀의 가치관으로 그렇게 정한거라면, 내가 그걸 부정할 이유는 없다.
가치관의 격돌은 균열을 일으키고, 그리고 그건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다.
설사 같은 대학에 진학했다고 해도, 유키노와 보내는 시간이 4년 늘어나는것 뿐이지 졸업후 예정이 바뀌는건 아니다.
남은 남. 나는 나. 좋을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뭐, 네가 좋다면 상관없지"
"그렇게 하도록 할게"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생긋 미소짓는다.
"그리고 묻고 싶은게 있는데. 히키가야, 이 다음의 예정은 있니?"
"특별히 없는데"
"그건 좋은 소식이구나. 사고 싶은 책이 아직 있는데, 무거워져서 곤란하던 참이야. 당연히 코마치의 가르침을 받은 히키가야는 그런 여성을 내버리지는 않겠지?"
유키노는 방금전과는 다른 종류의 미소를 짓는다.
즐거워보여서 정말로 다행이군요.
"……너 말이다, 얼마전에도 생각했지만 어째서 그렇게나 코마치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거야?"
"코마치가 메일을 보내줬거든. 보여줄까?"
휴대폰을 꺼내들어 메일 화면을 열고 그걸 내게 보여줬다.
"진짜냐……"
화면에는 코마치의 가르침이라는 타이틀 메일이 표시되어 있었다. 안에는 내가 거스를 수 없는, 절대법칙인 코마치의 가르침.
오빠야는 슬픕니다.
"쇼핑이 끝나면 잠깐 차라도 마시고나서 집에 가자. 답례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그 정도는 사줄게"
유키노는 들떠하면서 책장에서 고양이 사진집을 꺼내고 그걸 내게 건낸다.
"……살려주라고"
차 마시는걸로는 부족하잖냐, 이거.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12
아침부터 매미소리가 시끄럽다.
드물게 낮부터 행동을 개시한 나는 자실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여름방학은 쉬는것, 그런 생각을 갖고 청춘을 구가하는 자들도 세상에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내게 있어 여름방학이란, 아니 여름방학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인생, 그리고 앞으로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모든 시간은 내가 나 혼자이기 위한 준비기간인 것이다.
따라서 공부한다. 한발짝 한발짝 확실하게, 확실한 미래로, 혼자만의 생활로 나아가기 위해.
접어둔 곳까지 참고서를 읽고, 보리차라도 마시려고 일어나니 책상위 휴대폰이 울었다.
이 소리는 메일이군. 화면을 열어보니 착신인은 히라츠카 선생님이었다. 내용은 여름방학중 봉사부의 활동에 대해서.
로리 쇼타와 함께 가는 2박 3일 여행 in 치바마을, 거기의 인솔 자원봉사를 해라는 소리다.
……아니, 이 사람 바보아니냐. 코마치 동반 OK라면 안다. 요령 좋은 동생이니까 초등학생 인솔 정도라면 요령 좋게 해낼테니. 하지만 출발이 오늘이라니 그게 뭐냐. 내게 예정이 있냐거나, 그런 발상을 갖지 않는건가, 이 사람은.
뭐 일단 지금은 차다. 차를 마시고 한숨 쉬고, 그리고나서 거절 메일을 보내자.
메일 어플을 일단 닫고, 이번에야말로 차를 마시러 간다.
"오빠야, 준비 다 됐어-?"
허나, 글러먹었다.
노크도 하지 않고 내 방으로 침입해온 코마치의 모습에 가볍게 절망을 느낀다.
"너, 그 차림……"
갈아입을 옷이라도 들어있는건지, 부푼 가방을 어깨로 내려들고 나갈 준비를 마친 코마치가 거기에 있었다.
"에, 치바 마을 갈거지? 아직 준비 안했어? 왠일로 아침부터 일어난것 같아서 완전히 준비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정말이지, 이러니까 오레기는……"
싫다, 이 코마치 불합리해.
"내가 알게된건 지금 막이다. 뭐, 준비하고 자시고 지금 거절 메일을 보내려던 참이다만"
"에-, 오빠 안 갈 생각이야?"
"오히려 왜 내가 간다고 생각했는지 묻고 싶다. 내가 자연교실때도 가고 싶지 않았는데, 뭐가 슬퍼서 굳이 자원봉사를 하러 가야하는건데"
단체활동을 강제하는건 학교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걸 굳이 원정까지 해서 하고 싶지는 않다. 수학여행이니 소풍이니, 정말로 뭐 때문에 있는걸까.
"자자, 어려운 생각하지 말구-! 코마치랑 외박하러 나간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아니면"
코마치는 일단 말을 끊고, 나를 올려다보기로 쳐다본다.
"오빠야. 코마치랑 외출하는거, 싫어?"
"더럽잖습니까, 닌자 더럽다"
나는 이걸로 닌자를 싫어하게 됐었지. 너무나도 비겁하잖아?
"그렇다는건-?"
"알았어. 가면 될거 아냐, 가면"
"아싸아-! 그럼 코마치 거실에서 기다릴게!"
그렇게 말하며 방을 나가는 코마치를 쳐다본다.
저걸로 코마치도 공부를 열심히 할테고, 나 시스콘이고, 봉사부 운운 관계없이 그저 코마치를 위해 참가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메일에 있던 필요한 물건을 적당한 가방에 넣고 나는 코마치가 기다리는 거실로 향했다.
코마치와 함께 집합 장소인 역 앞 로터리로 향한다.
로터리에 도착하니 원 박스카가 서 있었다.
운전석 문 앞에서 담배를 피는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말을 건다.
"왜 저는 당일이 되서 묻는겁니까. 코마치는 알고 있던것 같지만"
원망을 담아 도끼눈으로 쳐다본다. 하지만 그런 내게 히라치카 선생님은 선뜻 대답한다.
"예정이 없다는건 네 동생한테 확인 끝냈다. 거기다 먼저 전달해두면 너는 도망칠거잖아?"
"도망치지 않습니다.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당당하게 정면으로 거절할겁니다"
"그런 너니까 한거다"
미소를 짓고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라며 휴대용 재떨이로 담배를 끄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운전석으로 들어간다.
내가 바란건 아니었다고해도, 사회부적합자인 나를 갱생하려고 하는 히라츠카 선생님은 성실하고 좋은 선생님일 것이다. 왜 저래놓고 받아주는데가 없는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른 녀석들은 어디있나 주위를 돌아보니 빵빵해진 편의점 봉투를 손에 든 유이가 이쪽으로 향해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겁지. 들어주마"
다가가서 편의점 봉투를 들어준다.
"힛키, 늦어. 이런거 사오는건 남자애들 일인데"
손을 내밀면서 유이가 그런 말을 한다.
아니,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해도 말이다. 이래봬도 최속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빠르게 준비해온거라고. 불만이 있으면 준비를 할 시간을 주지 않은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해줘.
"안녕, 히키가야"
유이의 뒤에서 유키노가 고개를 내민다.
하얀 목닫이 셔츠와 유키노치고는 보기 드문 바지 차림. 어딘가의 노래공주를 방불케하는 차림이다.
"여. 유키노가 바지라니 드문걸"
"지금부터 치바 마을에 가니까, 움직이기 쉬운 복장을 입는건 당연하잖니"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미소짓는다.
무척이나 무거운 편의점 봉투를 한손에 들고 차까지 돌아온다.
걸어오는 우리들을 발견했는지 코마치가 기운발랄하게 인사한다.
"유이 언니! 얏하로-"
"코마치, 얏하로-"
에, 그 인사 유행하는거야? 유이 안에서만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유키노 언니도! 얏하로-"
"얏……안녕, 코마치"
말할뻔 했지만 부끄러워졌는지, 아니면 말이 헛나온것 뿐인지. 도중까지 할뻔했지만 유키노는 평범하게 인사를 한다.
얼굴도 새빨갛고, 하고 싶었던 거겠지. 아마.
"코마치도 불러줘서 기뻐요!"
"유키농 덕분이야-. 나도 유키농한테 연락 받았지만, 코마치를 부르자고 선생님한테 부탁해준것 같아서"
코마치와 유이는 서로 손을 잡고 꺄아꺄아 거린다.
하지만 왜 봉사부 활동인데 부외자인 코마치에게는 연락이 가고, 부원인 나는 당일에 연락이 온걸까. 저, 신경쓰입니다.
"유키노, 왜 나한테 가르쳐주지 않은거냐? 매일 메일도 보내고 있으니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거 아냐"
"무슨 소리를 하는거니?"
꺄아꺄아 거리는 둘을 뒤로 유키노에게 물어보지만, 유키노는 벙하니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오늘 일정을 들은건 오늘 아침이었다만"
"미안해. 완전히 코마치 경유로 전해졌다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어쨌든간에 예정 따위 없었잖니?"
"무슨 소릴. 예정 완전 있었다. 공부할 생각이었으니까"
"결국 집에 있기만 할 뿐이잖니? 그런건 예정이라고는 하지 않아"
이겼다는 듯이 유키노는 미소짓는다.
"가고 싶은 대학이 대학이니까. 여름방학을 공부에 매진해서 뭐가 나쁜데. 그보다 너는 공부하고 있냐?"
"당연하지. 그러고보니 나도 경제학부를 지망하기로 했으니까"
"뭐야, 의외로 쉽게 정했구만"
"그래, 생각한 데가 좀 있어서……"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에 차에 도착한다.
운전석에서 심심해보이는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말을 건다.
"전원다 모였으니, 이제 갑니까?"
"아니, 아직 한 명 안 왔다. 출발은 그리고 나서다"
봉사부원 3명과 특별 게스트 코마치. 거기다 인솔 히라츠카 선생님을 포함해도 전원 이 자리에 다 모였을 것이다. 달리 올 녀석은 없을거라 생각하는데.
"히키가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니 토츠카가 있었다.
"토츠카도 불렸나. 부활동은 쉬는거냐?"
"응, 고문 선생님이 바빠서 쉬게됐어"
토츠카가 생글생글 밝은 미소를 짓는다.
자원봉사라는건 귀찮다고만 생각하는데. 왜 모처럼 부활동도 쉬는데 참가해온걸까, 이 녀석.
"그럼 모두 모인것 같군. 타라"
운전석의 창 너머 히라츠카 선생님이 출발을 고한다.
타라고 해도 자리배치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유키노옹 뭐부터 먹을래-?"
"그건 도착하고 나서 먹는게 아니었니?"
유이는 이미 유키노의 옆에 앉을 생각인 모양이다. 그렇다는건.
"전 조수석에 앉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조수석에 앉는다.
누가 조수석에 앉지 않으면 히라츠카 선생님이 불쌍해보이고, 그 역할을 떠맡는건 히라츠카 선생님과 다소나마 교류가 있는 봉사부원일 것이다.
면식은 있어도 그다지 접점이 없는 코마치와 토츠카가 짝이 되는건 좀 생각했지만, 유이도 있으니 대화하는데는 곤란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조수석으로 올 줄이야. 완전히 동생 옆으로만 갈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토츠카가 불쌍하잖습니까. 우리들과 달리 그렇게까지 히라츠카 선생님과 접점은 없으니까. 거기다"
"거기다?"
"조수석이 가장 사망률이 높은 모양이니까요. 그렇게 됐을때 가장 피해가 적은 제가 앉는게 딱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독한 이유구나"
슬픈 표정을 짓고서 히라츠카 선생님은 차를 발진시킨다.
내가 죽어도 슬퍼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도록 보내고 있으니까.
차가 달리길 몇 시간, 산 속의 주차장에서 히라츠카 선생님은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니 농밀한 풀냄새. 평소 보내는 곳과 달리 이곳이 자연 속이라고 실감되었다.
"기분 좋아-!"
유이는 차를 내리고 크게 기지개를 했다.
"……남의 어깨를 배게삼아 그렇게 자면 아주 기분 좋겠구나"
"윽, 유키농 미안"
유키노에게 쓴소리를 듣고 유이는 움츠러들어서 사과한다.
기지개를 피니 움츠러드니 바쁘구만, 어이.
"와아, 산이구나-"
"코마치는 작년에 왔었지만요-"
유키노들에 이어서 차를 내린 코마치들 둘도 각자 기지개니 심호흡을 한다.
뭐, 그 마음은 다소나마 안다. 어쨌든간에 사람이 없다. 장래설계로서 가끔이라면 이런곳에 오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초보자는 이런 곳에 살면 혼자서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건 큰 착각이다.
이런 시골은 인구가 적은 만큼 남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오히려 독자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형성되어서 귀속하거나 배척되거나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정말로 혼자서 살고 싶다면 남에 대한 관심이 옅은 도시 속에 숨어들거나, 혹은 정년 후 생활을 시골에서 보내고 싶은 노년자이기 때문에, 그거 전용으로 만들어진 분양지에 살아야할것이다.
"음, 공기가 맛있구나"
우리들을 신경써준건지, 이동중에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히라츠카 선생님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여기서는 걸어서 이동한다. 짐을 내려두거라"
담배를 문 히라츠카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짐을 내리고 있으니 한 대의 원박스 카가 남녀 4인조를 내리고 가버렸다.
뭐, 여름방학이니까. 치바시의 보양시설에서 이용 요금도 쌀테고. 그런 녀석들도 있겠지, 하며 아무 생각없이 쳐다보고 있으니 그 중 한 명이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여, 히키타니"
"……너냐"
4인조중 한 명은 국립을 지향하는 녀석이었다. 자세히 보니 뒤에 미우라와 에비나도 있다. 남은 한 명의 이름은 모르겠지만 아마 어딘가 낯이 익으니 미우라 그룹중 한 명일 것이다.
"너 국립지향하는거 아니었냐? 부활동은?"
"그거, 이제 그만두지 않겠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쓴웃음과 함께 그런 말을 했다. 순수하게 의문으로 생각한건데.
"흠. 전원 모인 모양이군. 일단 이번에 너희들을 부른 이유는 알고 있지?"
히라츠카 선생님의 질문에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본다.
"숙박 자원봉사 활동이라고 들었는데요"
"응. 도와주기 였지"
유키노의 말에 토츠카가 끄덕인다. 그 옆에서 유이가 벙찐 표정을 짓는다.
"어? 합숙 아니었어?"
"코마치, 캠프한다고 들었는데요-?"
"자원봉사에 한 표"
왠지 어떻게된 전달게임이 행해졌는지 잘 알았다.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나와 유키노, 토츠카, 그리고 유키노에게서 유이를 경유해서 코마치겠지.
유키노가 전달한 숙박이라는 단어를 멋대로 합숙으로 해석하고, 그것이 코마치에게 전달됐을때는 캠프가 됐을 것이다. 물사는 정확하게 전달해라, 유이.
"봉사활동으로 내신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고 저는 들었는데요"
"어, 왠지 단순히 캠프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으엉? 아니, 그냥 오면 위험하잖슴까-"
"개방적인 토베하야라고 들어서 ㅎㅇㅎㅇ"
저쩍도 저쪽대로 전달게임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니, 에비나 만큼은 반대로 성립하는 모양이다만.
그런 우리들의 대답에 현기증이라도 느꼈는지, 히라츠카 선생님은 머리를 감쌌다.
"흠, 뭐, 대충 맞다고 치자. 이번에 너희들은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
"그 활동 내용은……"
"어째선지 내가 교장선생님한테 지역 봉사활동 감독을 떠밀려져서 말이다……. 그래서 너희들을 데리고 온거다. 너희들은 초등학생 임간학교 서포트 스태프로서 일한다. 내용은 치바마을 직원 및 교사진, 유아 서포트. 간단하게 말하자면 잡무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노예다"
어째서고자시고 봉사부 고문이라고 하는 봉사활동 감독을 넘기기 쉬운 입장에 있는게 나쁜거 아닙니까? 스스로 원해서 입부한 유키노나 유이는 그렇다치고 강제 입부된 나는 말려들어서 손해잖습니까, 싫다-.
"봉사부의 합숙도 겸하고 있고, 하야마의 말대로 내신점수 가산점도 발생할지도 모른다. 자유시간은 알아서 놀아도 좋다"
교장선생님의 떠넘기기라는건 어엿한 학교 공인 활동이라는 것이다. 내신점 가산점이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더라도 실적으로서 남는다. 뭐 면접 등으로 다소 유리해진다는데는 변함없을 것이다.
"그럼 얼른 가볼까. 본관에 짐을 두고나서 다음 일이다"
히라츠카 선생님의 선도에 따라 이동을 개시한다.
유키노와 코마치 말고는 같은 반이라고 해도, 평소 접점이 있는것도 아닌 이 집단이 규례따른 행동을 취할 수 있을리도 없어서 길게 늘어져서 이동한다.
히라츠카 선생님을 선두로 바로 뒤에 나와 유키노. 그 뒤에 코마치, 토츠카, 그리고 그 뒤에 유이와 미우라 그룹이다. 그보다 코마치와 토츠카는 꽤 사이가 좋아졌군. 토츠카의 외모도 상응하여 같은 나이대 여자애 친구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저어, ……왜 하야마들까지 있는건가요"
"응? ……아아, 나한테 물었나"
히라츠카 선생님이 뒤돌아본다.
"뭐, 그야 그렇겠죠"
왜 저녀석이 있는지는 내가 알리 없으니.
"하야마를 부른 이유 말이다, 인원수가 부족할것 같아서 게시판에 모집을 했었거든. 애시당초 그런 모집으로 응모해오는 인간이 있을줄은 생각 못했지만……"
"그런데 왜 모집을?"
"형식상 문제다. 일단 학교 공인 자원봉사 활동이니까 참가자가 봉사부 세 명만이라는건 체제가 좋지 않다. 그래서 체면적으로 그런 수단을 취한것 뿐이다. 참가자가 늘어나면 그 만큼 감독으로서 책임도 늘어난다. 나도 그렇게 되는걸 바라고 있던건 아니야"
"수고하시네요"
한숨을 쉬는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무심코 동정하고 만다.
어느정도 고삐를 쥐는 법을 알고 있는 봉사부 뿐이라면 감독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을텐데, 체제를 위해 쓸데없는 수고를 짊어지게 됐다.
뭐, 외문이든 세간 평판이든 그런건 사회에선 필순이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나도 대학진학을 지향하고 있는건 세간 평판 때문이다. 그런걸 생각하지 않으면 자주적으로 퇴학해서 증발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을테니까.
정말이지, 사회란 귀찮다.
"뭐, 이것도 좋은 기회일테지. 너희들은 다른 커뮤니티와 제대로 접하는 방법을 익혀두는 편이 좋다"
"필요가 있으면 합니다. 그저 지금까지 필요로 한 적이 없었을 뿐이니까요"
뭐하면 지금부터 미우라 그룹에 섞이는것도 가능하다. 필요가 없으니까 접촉하지 않는것 뿐이며, 필요가 있으면 얼마든지 연기한다.
"네 경우는 조금 다른가"
히라츠카 선생님은 쓴웃음을 짓고 나를 정면으로 쳐다본다.
"필요가 있나 없나. 그런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너는 불필요함을 즐기는걸 배우는 편이 좋다. 분명 그게 너를 위해서 될거다"
불필요함을 즐겨? 트리비아군요, 압니다.
나도 유키노도 들은대로 입을 다문다.
유키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내게 있어 히라츠카 선생님의 말은 받아들일것이 아니다.
그저 그녀의 가치관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거라면, 그걸 직접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침묵을 지킨다. 거부도 허락도 하지 않도록.
그런 우리들의 태도에 히라츠카 선생님은 또 쓴웃음을 짓는다.
"뭐, 지금 당장 할 필요는 없겠지. 마음에 담아둔다면 그거면 된다"
그것만 말하고 히라츠카 선생님을 앞을 돌아보고 말없이 걷는다. 나도 유키노도 말없이 따라간다.
필요한것만 남기고, 불필요한걸 쓸모없다고 제어버린다. 그것이 뭐가 나쁜걸까?
아마 그런건 누구나 다 하고 있을 것이다. 그저 내 경우 불필요한것이 극단적으로 많을 뿐이다.
쓸데없는걸 베어버려, 그리고 남는것은 자기 자신 혼자.
그저, 베어버린다는 것은 베어버려진다는것과 동의하여, 자기자신 이외에 모든것을 베어버리려 하는 나는 자기 자신 이외에 모든것에 베어버려질 것이다.
뭐, 어느쪽이든 상관없지만.
베어버리든, 베어버려지든. 내가 혼자라는 결과만 같다면 그거면 됐다.
킹 크림 존!
정신을 차리고보니 초등학생들은 오리엔테이션에 출발하여, 빈손인 우리들은 줄줄이 얘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지만 빈털털이랑 빈털복숭이랑 비슷하구만. 뭣하면 그걸로 SS 한권을 써보자.
눈이 썩은 소년과 그 소년이 소속하는 부의 부장인 소녀가 부활동 중에 그런 대화를 한다. 그래서 소년은 소녀에게 엄청 dis당한다. 소년이 집에 돌아가고 아침에 눈을 뜨니 얼굴 위에는 손바닥 사이즈의 소녀가. 그래서 여차저차 소년은 손바닥 소녀를 가슴 주머니에 넣고 등교한다. 수업중에는 얌전히 있던 손바닥 소녀였지만, 부활동이 시작하니 소년에게 소녀의 진심을 가르쳐준다. 그런 소리를 했지만 실은 아니야, 라는 느낌으로. 그래서 소년의 태도에 부자연스러움을 느낀 소녀를 따지던 차에 눈을 뜬다. 꿈 결말 만세. 〆는 부활동 중에 꿈과 같은 대화를 하는 소녀에게 꿈에서 손바닥소녀가 이런 말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묻고 소녀가 얼굴을 붉히는 장면에서 끝이다.
어라? 진짜로 괜찮네?
썩은 요소는 없지만 에비나에게 들려주면 써줄지도, 이거.
"오빠야, 듣고 있어?"
코마치의 목소리에 문득 제정신을 차린다.
아무래도 천사의 목소리를 못 듣고 있던 모양이다. 우울하다, 죽자.
"왠지 히쭉거리고 있어. 힛키, 기분 나빠……"
"어쩔 수 없어, 유이가하마. 왜냐면 히키가야인걸"
왠지 오랜만에 유키노에게 매도당한 느낌이 든다. 입부 당초에는 입을 열면 매도하는 느낌이었지만, 장마쯤부터는 그러지도 않게 됐으니까.
그나저나 내가 나라는걸 기분나쁘다는 이유가 되는건 무슨 소리냐.
"코마치, 지금까지 무척이나 힘들었지. 앞으로는 그가 아닌, 나를 언니로서 따라주면 된단다"
"유키노 언니. 아니, 언니야"
왠지 연극이 시작됐다.
유키노의 말에 감동이라도 한듯이 코마치가 유키노에게 안겨붙고, 유키노는 그런 코마치를 끌어안고 미소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잠깐,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내게 이해할 수 있었던건 유키노에게 코마치를 빼앗겼다는것 뿐이다.
"힛키! 유키농 뺏겼어-!"
"아마, 유키노한테 있어 너도 동생같은거겠지. 일단 언니야라고 부르고 안겨보면 되지 않겠냐?"
내 팔을 잡고 붕붕 흔들어대는 유이를 적당하게 달랜다.
애시당초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 진짜로 하네.
유이와 코마치 사이에 끼여, 곤혹해하는 유키노를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뒤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히키타니의 동생이었나. 어쩐지 토츠카의 동생치고는 안 닮았다고 생각했어"
유키노가 곤란해하는걸 깨닫고, 유키노에게 떨어진 코마치에게 다가간다. 덧붙여 유이는 유키노의 가슴에 매달린 상태다.
"히키타니의 같은 반인 하야마 하야토야. 잘 부탁해 코마치"
"코마치한테 오빠는 없어요. 언니라면 있지만"
코마치는 놀란듯이 한발짝 물러서고 유키노의 뒤에 숨어 내 존재를 부정한다.
"힛키, 불쌍해……. 아, 하야토. 코마치는 이런 말을 하지만 힛키 동생 맞아. 그치만 분명 유키농이랑 코마치는 닮았네-. 믿었어?"
"아니, 유키노시타한테 동생이 없는건 알고 있었으니까……"
"아, 그랭? 어 근데 왜 아는거야?"
"왜라니……"
곤란한 얼굴로 유키노에게 힐끔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유키노는 거기에 맞추지 않고, 코마치에게 시선을 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줄 뿐이다.
그러고보니 처음으로 이 녀석이 부실을 찾아왔을때 유키노는 저 녀석의 이름을 알고 있던것 같고. 아마 같은 중학교나 그런거겠지. 아니, 가족구성을 파악하고 있는걸 생각하면 소꿉친구라고 생각하는 편이 타당한가. 유키노가 저 녀석을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가시를 품은것도 그거면 설명이 된다. 뭐, 가시가 있는 이유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보니 뭘 하면 좋을지 물어보지 않았네. 나, 히라츠카 선생님 불러올게"
유키노의 태도를 견디지 못했는지 히라츠카 선생님을 부르러 간다.
행운이 있기를 쳐다보는 내게 코마치가 몰래 다가왔다.
"오빠야, 큰일이야 큰일!"
"뭐가?"
"유키노 언니, 언니야라고 불러버렸어. 이거, 조만간에 새언니라고 불러도 되는거지?"
"언니라고 불러라고 했으니까 당장이라도 언니라고 부르면 되는거 아니냐?"
지극히 정상적인 대답을 하는 내게 코마치는 이거 참, 이라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한숨 섞어 말한다.
"이러니까 오레기는……"
기막혀하는 코마치에게 무슨 일인가 망설이는 내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말을 건다.
"아니, 유키노시타를 새언니라고 부르는게 아니라, 하야토를 형부라고 불러야한다고 생각해. 히키타니의 귀축공격에 하야토는 바로 함락해버릴테니까……"
"에비나, 그건 저 녀석의 총수로 끝난 이야기 아니었냐?"
내 말에 에비나는 히쭉, 불길한 미소를 짓는다.
"그건그거, 이건이거. 아니면 히키타니는 새로운 소재를 갖고 있나아-?"
"토츠카의 쇼타 천연 공은 어때? 쇼타니까 괜찮다고 착각하며 공격한 수가 반대로 조교당해버리는 느낌으로 말이다"
즉시 새로운 소재를 투하해준다.
토츠카의 인권? 모르면 될 뿐인 이야기다.
"우홋, 좋은 발상. 즉시 그런 말을 해주다니, 꽤 센스가 있네. 다음에 차분하게 얘기 나누지 않을래?"
"……그건 좀 봐주라. 가끔 조금이라면 어울려줘도 상관은 없으니까"
라저! 라고 하면서 에비나는 미우라에게 돌아간다.
"오빠야. 코마치, 저 사람이 했던 말 대부분 모르겠어"
"그거면 돼. 그거면 돼, 코마치"
모른다면 모르는 편이 좋다. 그런것도 세상에는 있다.
그 보다, 저 녀석이 내 천사한테 무슨 소리를 들려준거야.
이러저러하는 사이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다가와서 이번 일의 내용을 설명해온다.
"이 오리엔테링에서 일 말이다만, 너희들은 골 지점에서 점심식사 준비를 해줘야겠다. 나는 차로 먼저 옮겨둘테니까 현지점에서 아동들의 도시락과 음료수 배급을 해라"
"누가 차에 타면 됩니까?"
"안됐지만 그런 공간은 없다. 걸어서 이동해라. 뭐, 아동들보다 빨리 도착하도록"
걸어가는건 귀찮지만, 짐의 적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좋은 점이다. 거기다 이 자연속을 걷는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먼저 출발했을 아동들보다도, 먼저 도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빼면 말이지만.
오리엔테이링은 필드 위에 있는 체크포인트를 지정받은 순서로 통과하여 골까지 소요시간을 겨루는 스포츠다.
원래는 군사훈련이었던 만큼, 제대로 하면 지도와 컴퍼스를 한손에 들고 오로지 전력질주를 하는 모양이다.
뭐, 우리들은 골 지점에서 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 오리엔테이링 자체에 참가하고 있는건 아니어서 관계없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우리들은 일단 인솔이라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의욕이 넘치는 미우라 그룹은 때때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힘내라-" 혹은 "골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등 말을 걸며, 제대로 자원봉사하는 형 언니다운 행동을 하고 있었다.
"얘, 얘 하야토. 나아, 의외로 애들 완전 좋아하지-. 애들 완전 귀엽지 않아?"
전혀 의외가 아닙니다, 네. 조금은 자신의 엄마 속성을 이해하는 편이 좋다. 외모는 화려한데 속은 완전히 엄마잖냐, 너.
그런 미우라의 엄마 속성을 아이들이 느꼈는지, 아동들은 미우라 그룹에 금방 친숙해졌다.
몇 명의 아동과 엇갈려, 때로는 행동을 함께하는 동안 어떤 여자 다섯명 그룹이었다.
깜찍한 그 그룹은 깜찍한 선배인 미우라 그룹에 적극적으로 말을 걸고, 어느샌가 함께 체크 포인트를 찾게 됐다.
"자, 여기만 도와줄게. 하지만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야"
부정, 절대로 안 돼. 라고는 하지 않았다. 소위 이런건 놀이 일환이다. 일부러 그런 무순한 짓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유키노가 작게 한숨을 내쉰것을 깨달았다.
시선 끝을 보니 아까부터 행동을 함께 하는 깜찍한 5인조. 아니, 5인조라는건 올바르지 않다. 4인조 플러스 한 명이라는 편이 올바를 것이다.
크게 보면 5인조지만, 한 명만 떨어져서 뒤늦게 따라온다.
"……유키노"
늦춰진 그 아이는 깨끗하게 차려 입어서, 있는대로 말해서 충분히 귀여워 보이는 아이다.
그리고 그 아이가 늦어지고 있는걸 탓하는게 아닌, 때때로 뒤돌아보고 쿡쿡 자기들만 통하는 모양인지 소리죽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왜 유키노가 한숨을 쉬었는가, 그 광경만으로 십이분 전해졌다.
아마, 일찍이 자신의 모습을 겹치고 있는 것이다. 규모는 다르더라도 배제되고 있는 그녀에게.
줄곧 혼자 있어온 나에게 있어 저 상황은 도리어 고맙다. 네 자리는 없거든! 하면 솔직히 감사의 말을 할 것이다.
그것이 평범한 감각하고는 어긋난다는건 나도 알고 있다. 모두와 있는 것이 보통이며, 모두의 틀에서 저해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나를 제외하고는.
내게 있어 저 아이는 자원봉사로 인솔하는 다수 아동중의 한 명이며, 당연히 손을 내밀어줄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
유키노를 동생처럼 신경쓰고 있다고 해서, 저 아이까지 신경쓸 이유는 되지 않는다. 설령 유키노가 자신의 모습을 겹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저 내가 손을 내밀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다.
"체크포인트 찾았어?"
"……아니요"
모두와 사이좋게를 신념으로 삼는 그 녀석이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가, 그럼 다같이 찾자. 이름은?"
"츠루미 루미"
"나는 하야마 하야토. 잘 부탁해. 아마 저쪽에 감춰져 있지 않을까"
말하면서 츠루미라고 이름댄 소녀의 등을 밀어 모두의 원 안으로 유도해간다.
모두의 틀에 들어갔다고 해서, 츠루미가 즐거워보이는건 아니다. 물리적인 위치가 원 안에 들어갔을 뿐이지, 심정적으로는 아까전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다른 애들과 시선을 마주치는것도 아닌, 그저 주위 자연으로 눈을 향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건 주위도 마찬가지로, 츠루미를 데려와다고해서 받아들여주는건 아니다. 자기들과 츠루미 사이에 얇은 막이 쳐저 말없이 전한다.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고.
"저건 아니지"
"그렇구나. 그다지 좋은 방식이라고는 할 수 없어"
유키노가 또 한숨을 쉰다.
남에게 흥미없는 나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겹치고 있을 유키노가 저 상황을 깨닫지 못할리가 없다.
유키노가 저 녀석을 대하는 태도에 가시를 품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유키노가 저 녀석과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면. 아마, 저 녀석은 일찍이 유키노에게 같은 짓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유키노는 바늘 방석으로 밀리고, 밀어붙인 장본인은 그걸 깨닫지 못한다.
깨닫지 못한다. 깨달을리가 없다. 깨닫고 있다면 같은 짓을 되풀이할리가 없으니까.
저런건 단순히 독단이며, 자기만족, 자위행위와 다를바 없다.
그야 가시 하나 둘 생기게 되겠지.
"옛날부터 저랬었냐?"
"그래, 별로 변하지 않았네"
언질, 잘 먹었습니다. 가볍게 덫을 놓은것 뿐이지만, 이걸로 유키노와 저 녀석이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는건 확정이군. 유키노의 이전 언동에서 헤아리건데, 최저한 같은 중학교였던건 확실할 것이다.
그 후에 나와 유키노는 말없이 골을 목표로 갔다. 유키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까전의 광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을 하는것이 최고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뭐, 일단 모두의 틀 안으로 집어넣는 짓 만큼은 하지않겠지. 애시당초 내가 들어가고 싶지 않고. 그보다 이번에는 유키노의 한숨으로 눈치챘지만, 그거 없었으면 깨달았냐고 하면 의문이니까. 깨달으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응을 생각하는것도 낭비니까. 관두자 관둬.
골 지점 광장에 도착하니 우리들을 눈치챈 히라츠카 선생님이 차에서 내렸다.
"늦었구나. 자 바로 이걸 내려서 배급 준비를 부탁할까"
차 트렁크를 열고 안의 짐을 가리킨다.
……당신, 지금까지 놀고있었지. 원활하게 준비를 하기 위해서도 내려놓는게 옳지 않습니까? 그보다 역시 한 명 차에 태워서 이동하는 편이 시간 낭비가 적었다고 생각하는데.
항의하고 싶은 참이지만, 노예인 우리들에게 그런 권리는 없다.
"그리고 디저트와 수박을 식혀뒀다. 식칼류도 있으니까 조심해라"
짐을 내리는 우리들에게 거듭 일을 지시한다.
자르는건 귀찮으니 수박깨기라도 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무진장 먹기 힘들것 같지만.
"수박 쪽은 세 명이 있으면 충분하겠지. 남은 사람은 먼저 도시락 배급을 하고, 끝나면 수박 옮기는걸 도와줘"
주어진 일을 효율 좋게 해치우면 그 만큼 자유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내 제안은 지극히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한 결과, 수박은 나와 유키노와 코마치가 담당하게 됐다.
준비된 수박을 반으로 잘라, 숟가락으로 안을 파낸다.
"코마치"
"응? 아, 아아. 아-앙"
수박의 가장 맛있는 부분인 그걸 코마치에게 먹여준다.
"유키노도"
"어? 어어?"
나아 코마치의 대응을 깨닫지 못했던걸까,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몰랐던 모양이지만, 이윽고 내 의도를 읽고 유키노는 수박을 입에 넣는다.
"응, 맛있어. ……가 아니라. 히키가야, 이건 아동 디저트지? 너, 대체 뭘 하고 있는거니"
횡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 행동이 거슬렸는지, 얼굴을 사과처럼 붉히고 유키노가 화낸다. 수박인데. 아, 수박도 안은 빨갛나.
"뭐냐니. 수박은 중심이 가장 맛있다는건 너도 알고 있잖냐? 요컨대 평범하게 잘라선 맛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 차이가 생기지. 그렇다면 중심을 파내서 공평하게 한것 뿐이다. 아동들은 공평해지고 우리들은 수박의 중심만 먹는다는 사치를 맛본다. 오히려 잘못된 점을 찾는게 어려울걸"
"……그건 궤변이라고 하는거야"
유키노는 나를 도끼눈으로 노려본다.
"그보다, 먹은 이상 너도 공범이다. 뭐, 다른 녀석들한테는 비밀이다"
목격자를 공범자로 만들어 입을 막는다. 완전범죄 성립이다.
덧붙여 비밀 공유라는것은 심리학적으로 인연을 깊게 하는 모양이다.
한정된 시간 속이라고는 해도, 동생인 코마치와 동생처럼 신경쓰고 마는 유키노. 뭐, 비밀을 공유하는 상대로서는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맛있는 카레 만드는 법은 여럿 있지만 맛없는 카레 만드는 법은 거의 없다.
아니, 아내의 밥이 맛없다 스레로 가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건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까지 알고 싶은건 아니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냐고하면, 시판 카레가루만 사용하면 실패하는건 거의 없는 카레를 초등학생 야외취사 메뉴로서 선택되는건 필연이라는 것이다.
"남자는 불 준비. 여자는 식재를 구하러 갔다와라"
"아니, 히라츠카 선생님. 불 준비하는데 네 명은 많지 않습니까? 야채라던가 무거운게 많이 있을테니까, 제가 가질러 가겠습니다"
그런 내 발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히라츠카 선생님이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유키노와 코마치가 응응 끄덕이는 점에서 보아, 저 녀석들은 내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모양이다.
뭐, 별거 아니다. 언제나 처럼 코마치의 가르침이다. 어무리 무거워도 10kg은 안 될테니 나 혼자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런가. 그럼 여자는 돌아올때까지 조금 쉬어라. 재료를 갖고오면 밑준비를 할테니 그런줄 알거라"
말하면서 재료를 가질러 가는 히라츠카 선생님의 뒤를 쫓는다.
"심심하면 순찰이라도 할까"
카레 준비도 끝나, 이제 완성을 기다리면 되지만 심심해하는 우리들에게 히라츠카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한다.
'나는 사양이다만'이라는 뉘앙스를 느끼게 하는 점에서 정말로 성의가 없다. 뭐, 히라츠카 선생님은 우리들의 감독이지 아동 인솔자가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뭐, 초등학생과 대화할 기회는 그리 없으니까요"
아마, 네가 초등학생일때는 매일 대화하고 있지 않을까.
"아니. 냄비에 불떼고 있으니까요"
"그렇군. 그러니까 근처 한 군데 정도군"
……뭐, 냄비 상태를 보는것 만이라면 혼자서도 충분하고, 가고 싶다면 가면 된다.
"내가 냄비를 보고 있으마"
누가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카레가루를 집어넣은 바보가 있으니까. 제대로 보지 않으면 확실하게 늘러붙는다. 그리고 그런 맛없는 카레는 나는 먹고 싶지 않다.
"신경쓰지마라, 히키가야. 내가 봐주마"
……어째서 당신은 저를 남과 연관짓고 싶은겁니까.
그저, 그 방식에 의미가 없다구요. 나는 필요를 느끼지 않으니까 관여하지 않는것 뿐이지, 필요하다면 관여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자원봉사로서 곤란해하는 아동을 돕는건 보통이며 필요한 일이다. 스스로 나서서 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역할을 연기하는 자체에 불만이 있는건 아니다.
말을 꺼낸 사람을 필두로 가장 가까운 그룹을 찾아가고, 이윽고 깨닫는다.
"카레 좋아해?"
주위에 혼자 있는게 당연하듯 방치된 츠루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내가 눈치챘으니까 당연히 유키노도 눈치채고 작게 한숨을 쉰다.
저 녀석, 역시 깨닫지 못했군.
낮에 봤던 광경의 연장 같은 상황. 오히려 악화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방금전에는 어디까지나 넷 안에 밀어넣은것 뿐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츠루미는 아동 전체 속에 집어넣어진 상태다. 싹싹하고 다정한, 인기많은 자원봉사 오빠. 거기다 개인적으로 말을 거는 츠루미에게 다수의 시선이 꽂힌다.
자칫하면 독점하고 있다고 받아들일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그건 아니다. 츠루미의 대답과 불문하고서 악감정이 향하는건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둬, 로리콘!"
"히, 히키타니. 갑자기 무슨 소리를"
어떻게 대답을 해도 악감정을 향하는건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답조차 없으면 된다.
"얌전히 두 손을 들고 천천히 뒤로 빠져라. 알겠냐, 천천히다"
"그러니까 무슨 소리를"
"닥쳐 로리콘. 초등학생 여자애한테 개인적으로 말을 거는 놈이 로리콘이 아니면 뭐라는거냐"
로-리-콘! 로-리-콘!
손을 치며 부추긴다. 서서히 나의 콜이 아동들에게 퍼져서 이제는 많은 아동이 로리콘 콜에 참가하고 있다.
시기를 보고 가장 먼저 내 콜에 반응한 여자애한테 살짝 귓속말을 한다.
그리고 등을 밀어 끝을 낸다.
"경찰아저씨! 이 사람이에요!"
아동들의 입장에서 봐도 좀 장난친것 뿐이다. 그런 소동이 끝나면 변명하는건 간단한 일이고, 그건 저 녀석 자신에 손에 맡긴다.
저 녀석이 없어도 카레 만들기는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까.
"잠깐 히키오! 방금 그거 뭐야!"
카레 만들기에는 문제 없었지만, 내게는 문제가 있었다. 파트너를 로리콘 취급당한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미우라가 내게 다진다.
"자자, 애들도 즐거워보였으니까 됐잖아. 아니면 미우라는 저녀석이 로리콘이면 곤란한거라도 있냐?"
내 말에 미우라는 대답이 막힌다. 그보다, 가까이에 썩은 사람도 있으니까 로리콘이 늘어난다 한들 새삼스럽다고 생각하지만.
분개하는 미우라를 에비나에게 맡기고 나는 그 자리를 뒤로했다. 미우라를 달래면서 내게 눈짓하는걸 보건데 에비나는 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한 모양이다.
소동에서 벗어나 사람 없는 곳으로 향했을텐데, 어째선지 거기에는 유키노가 있었다.
"정말이지 수단을 고르지 않는 사람이구나"
접근하는 나를 깨달았는지 유키노가 말을 걸었다.
"조금은 자원봉사답게, 애들을 띄워준것 뿐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나쁜 판단은 아니잖냐? 한 사람을 표적으로 집단에 일체감을 붙여준다. 사실무근하니까 변명해주는것도 쉬울테니 말이다"
실제로 시선을 향하니 미소짓는 아이들에게 둘러쌓여 있다. 오해는 벌써 풀었을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잖니?"
내 생각을 꿰뚫어보듯이 유키노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글쎄다"
그런 유키노의 시선에서 눈을 피한다.
무언. 이렇다할 대화도 없이 취사 연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런 우리들에게 소동에서 밀려나듯이 한 명의 소녀가 다가온다. 말할것도 없이 츠루미다.
"……바보 투성이"
일시적인 소동에 들어갈 수 있다면 애시당초 혼자가 아닐 것이다. 그런 소동을 보고 바보라고 단정 짓는 점에서 꽤나 소질을 느낀다. 주스를 사주자.
"뭐,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세상은 대개 다 그런거다. 빨리 눈치채서 다행이군"
바보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극히 자연스럽게 모두의 틀이라는 것을 형성헌다. 모두의 틀을 의문시해버린 것이 올바른건진 모르겠지만.
내가 그렇게 말을 하니 츠루미는 이상하다는 얼굴을 한다. 평가를 하는듯한 시선에 의도를 알아챌지 모른다.
"덧붙여, 그 일부 예외라는 것이 이 남자야"
"너도 비교적 그런 느낌이잖냐"
"그렇구나, 약간 불본의하지만. 너랑 똑같다고 하는 그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어"
우리들의 대화를 츠루미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조금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이름"
"히키가야 하치만이다. 잘 부탁해 츠루미"
"유키노시타 유키노야"
"그리고, 저게 유이가하마 유이다"
"응, 왜? 무슨 일?"
유키노를 찾았는지, 탓탓 달려온 유이를 가리킨다. 갑자기 화제가 와서 놀라지만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왠지 모르게 헤아린 모양이다.
"나 유이가하마 유이야. 츠루미 루미였지? 잘 부탁해"
하지만 츠루미는 유이의 말에 끄덕일뿐이지 그쪽을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발밑을 보면서 띄엄띄엄 입을 연다.
"왠지 그쪽의 둘은 다른 느낌이 들어. 저쪽 사람들이랑"
좀 알기 어렵지만, 아마 그쪽 둘이란 나하고 유키노. 저쪽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장난치는 저 녀석들일 것이다.
뭐, 확실히 다르군. 나에게는 저쪽 사람들 처럼 '모두 사이좋게' 하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나도 달라. 저쪽이랑"
자신에게 말을 들려주듯 츠루미는 중얼거린다. 그 말로 봉사부의 '모두 사이좋게' 대표인 유이가 물고 늘어진다.
"다르다니, 뭐가?"
"주위는 다들 애들 투성인걸. 나는 그 안에 잘 있다고 생각하지만. 뭔가 그런거 귀찮아서 그만뒀어. 딱히 혼자여도 괜찮아서"
뭐, 그렇게 자신에게 말하는것 뿐이겠지. 주위를 애들이라고 단정짓고, 정말로 내려다보고 있다면 아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 그치만. 초등학교때 친구들이랑 추억같은게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에"
"딱히 추억같은거 필요없어……. 중학교 들어가면 딴곳에서 온 사람이랑 친해지면 되니까"
그녀는 자신의 말에 모순을 깨닫고 있는걸까. 추억을 필요없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친구와 추억을 만들려고 하는 모순을.
"안 됐지만 그렇게는 안 돼"
그렇게 단언한것은 유키노다.
"네가 다니는 초등학교 학생도 같은 중학교로 진학하잖니? 그럼 같은 일이 일어날 뿐이야. 이번에는 '다른 곳에서 온 사람'도 같이 말이지"
유키노의 말에는 깊은 실체험이 동반하고 있었다. 그것도 당연하다. 그녀 자신의 체험담이니까.
그녀에게 들은것은 유학후, 귀국하고나서 학교생활 뿐이다. 하지만 유키노가 유키노인 이상, 유학 전에도 같은 상황이었을 거라는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환경이 변한 정도로 한번 형성된 인간관계는 변하지 않아. 출처는 나' 라고 말하는 서툰 녀석이다.
초등학생에게 일찍이 자신이 본 잔혹한 현실을 보여줘서, 거기다 자신이 원망받고 분발하는 재료가 되어준다면 좋다. 그런 의도가 감추어져 있다.
……하고 있는 짓이 하루노 씨랑 똑같잖냐.
"그 정도는 너도 알고 있지 않니?"
유키노는 더욱 몰아붙인다. 그 모습은 고통마저 느낀다.
마음을 안다면, 공감할 수없다면 달래주면 된다. 나도 그랬다며 다정하게 안아주고, 상처를 달래줘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탓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유키노는 그렇지 않는다.
――만약 내가 우수한 언니의 뒤를 쫓고 있다고 하면 어떡하겠니?
하루노 씨와 만난 그 날, 카페에서 유키노는 그렇게 말했다. 요컨대 유키노는 질투받으면서도 질투하고 있던 것이다.
우수한 능력, 미모. 그로 인해 남들에게 질투받고 그럼 자신은 더욱 우수하다며 자신이 멋대로 생각한 언니에게 질투한다.
그 상황에 있어 그녀는 질투를 원동력으로 자신을 소외하는 녀석들과는 다른 존재로 있으려고, 한결같이 자신을 드높히는걸 선택했다.
그런 선택을 한 그녀에게 있어, 상처를 달래주는건 발을 묶는 행위 말고는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강하고, 강하게. 기세게, 고고하게 있으려고 하는 유키노. 그런 그녀라면 나를…….
"중학교에서도, ……그런식으로 되버리는걸까"
오열 섞인 츠루미의 목소리에 제정신을 차린다.
아니, 듣고 있었어. 제대로 듣고 있었거든.
세 문장으로 줄이자면 집단심리, 당하면 당한단대로, 되갚아줘라. 뭐 이런거겠지.
그러고보니 중학교때 도서관에서 심리학 관계 책에 빠져 살았지-. 자신의 이상함의 근원을 알려고 한다거나, 중2병을 생각해서. 결국 학문으로서 이해는 깊어졌지만 그것이 자신을 살리는것이 아닌, 자신의 이상함이 떠오르게 된 것으로 끝났지만.
그보다 나를 모방해서 다들 같은 행동을 할 의미가 어디에 있는건데. 자신의 의사를 구성하는건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집단심리 따위에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뭐, 그러니까 나는 혼자인거겠지만.
부드러운 모닥불 빛을 등불삼아 홍차를 마신다.
……아니, 이럴때는 보통 커피 마시지 않냐? 나는 보통 안 마시지만.
야외 취사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초등학생들은 철수했다.
이제 곧 취침시간일 것이다.
초등학생이 잠들어버리면 우리들에게 일은 없어서, 요컨대 자유시간. 잠들어버려도 상관없지만, 히라츠카 선생님의 제안으로 모닥불을 둘러싸고 다같이 홍차를 마시게 됐다.
로리콘 의혹을 날조당한 남자가 종이컵을 두었다.
"지금쯤 수학여행처럼 얘기나누고 있을까"
보통 그렇지 않냐? 나는 보통이 아니니까 모르겠지만.
"괜찮으려나……"
유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물었다.
누구냐고 명확하게 말한건 아니지만, 아마 츠루미일 것이다. 그녀가 소외되어 혼자 있다는걸 알고 있는건 직접 대화한 나와 유키노, 유이 뿐만 아니다. 다들 눈치채고 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뿐만 아니다. 저런건 보기만 하면 바로 안다.
"흠, 뭐가 걱정이냐"
담배 연기를 뿜으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묻는다.
"아니 좀. 고립해있는 학생이 있어서……"
"그치-! 완전 불쌍해-!"
로리콘이 답하고, 미우라가 맞장구를 친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놈이군. 혼자 있는걸 문제삼아서 어쩌려고. 그런걸 당하면 나는 엄청난 문제아잖냐. 그러니까 문제삼아야할건 소외되었냐 아니냐다"
"원해서 혼자 있는것과, 주위에서 혼자로 만드는건 똑같이 혼자 있어도 달라. 그런거니?"
"그렇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이 녀석은 그런 짓을 한 것이다. 소외되어 혼자가 된 츠루미를 모두의 안으로 밀어넣으면 해결된다는 그런 편한 이야기가 아니다. 소외된 원인을 해소하지 않으면 결국은 똑같은 일의 되풀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오늘 두 번 정도 그걸 했다.
"그래서, 너희들은 어떻게 하고 싶은거냐?"
"그건……"
모두 일제히 입을 다문다.
가놓고 말하자면 딱히 아무렇지도 않다. 이 자원봉사로 왔을 뿐인 아동에게 손을 내밀어줄 이유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부탁받은것도, 청구받은것도 아닌데 손을 내미는건 남의 세계에 침입하는것과 같다.
그리고 나는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
"저는 가능하면 가능한 범위에서 어떻게든 해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그거냐.
"너로는 무리야. 그랬잖니"
그랬잖니. 요컨대 과거형. 역시 저녀석은 예전에 유키노에게 같은 짓을 한 거겠지.
"그랬었……지도. 하지만 지금은 달라"
"과연 그럴까"
다를텐데, 같은 짓을 한거잖습니까. 싫다-.
고인이 말하길, 마치 성장하지 않았다.
미국 공기라도 마셨나, 이 녀석은. 오늘부터 타니자와라고 부르자.
따끔이라기 보다는 푸욱 이라는 표현이 좋을만큼 가시를 찌른 유키노에게 시선을 준다. 나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유키노가 쓴웃음을 답한다.
유키노의 성격으로 생각하건데, 타니자와에게 못을 박은건 오늘 시작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번이나 그래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해받지 못한채 지금에 이른다.
역시 인간관계란 귀찮은것 뿐이다. 쓸데없는 간섭을 해오는 인간이 없는 외톨이 만세.
유키노들의 대화로 무거워진 공기. 그걸 자르듯이 히라츠카 선생님이 입을 연다.
"유키노시타. 너는?"
질문을 받고 유키노는 턱에 손을 댔다.
"하나 확인할게요"
"뭔데?"
"이 봉사활동은 봉사부의 합숙도 겸한다고 히라츠카 선생님은 말씀하셨는데요, 그녀의 안건에 대해서도 활동내용에 포함되나요?"
유키노의 질문에 히라츠카 선생님은 조금 생각하고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군. 임간학교를 자원봉사 활동으로 위치시킨데다, 그걸 부활동의 일환으로 한거지. 원리원칙으로 생각해서 그 범주에 들어가도 좋을 것이다"
"그런가요……"
거기서 말을 끊고 유키노는 눈을 감는다.
"저는……그녀가 도움을 바란다면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해결에 힘씁니다"
결연하게 유키노는 선언했다. 그 발언에선 명확한 의사를 느낀다.
서투르면서도 다정한 녀석이다.
유키노시타 유키노로서 손을 내밀지 못해도 봉사부 부원으로서라면 손을 내밀 수 있다.
따, 딱히 너를 위한게 아니라니까. 봉사부 활동일 뿐이니깐.
실제로 유키노의 선언을 츤데레로 변환한 말의 갭에 무심코 웃음이 새어나온다. 내가 웃은걸 눈치챈걸까, 유키노가 이쪽을 노려본다.
"그래서, 도움은 바라고 있나?"
"……모르겠어요"
봉사부의 홀동이라는 이유로한 이상,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의뢰라는 형식을 밟을 필요가 있다. 츠루미의 의사를 모르는 이상, 우리들은 아직 움직일 수 없다.
"유키농, 아까 그 애, 말을 하고 싶어도 못했어. 따돌리는게 꽤 있어서 자신도 그 거리감을 뒀다고 했구. 그러니까 자기만 도움을 받는건 허용하지 않는게 아닐까. 딱히 루미만 잘못한건 아닌데. 모두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환경도 있잖아. 그래도 죄악감은 남으니까……"
일단 말을 끊고 숨을 가다듬는다. 뭔가를 얼버무리듯이 타하하 웃으면서 말을 잇는다.
"싫다-, 조금은…….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아무도 말걸지 않는 사람한테 말을 거는거 굉장히 용기가 필요하거든"
말할 수 없는것 자체가 말을 걸 수 없는 이유가 되다니. 꽤 참고가 되는 이야기다.
"그치만, 그건 루미의 반이면 분위기를 못 읽는 행동이 되는거 아냐? 말을 걸면 나까지 따돌려지는거 아닐까- 생각하면, 조금 거리를 두고 싶다고 할까, 준비기간을 원한다거나.그래서 결국 시간이 걸려서 그대로……. 앗, 나 굉장히 성격 나쁜 소리 하지 않았어!? 괜찮아!?"
괜찮다, 문제 없어.
집단심리적으로 네 생각은 올바르다.
"괜찬다. 너는 실수하지 않았어. 그저 말이다……도중부터 그거 내 이야기지?"
용기가 필요하니까 봉사부에 의뢰한다. 준비기간을 원해서 1년 경과한다. 완전히 나랑 너잖냐. 루미 얘기 아니잖냐.
"아, 아니야! 힛키 얘기 따위 안 했거든!"
"전반은 그렇다치고 후반은 말이다……"
"저, 전혀 아니거든!"
바보바보 거리는 유이에게 방금전까지 어딘가 어두운 표정은 없어졌다.
"유키노시타의 결론에 반대하는 사람은 있나?"
조금 가벼워진 분위기 속에 히라츠카 선생님이 최종확인을 한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각자의 반응을 엿본다. 하지만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 뭐, 이것도 집단심리라는 거겠지.
"좋다. 그럼 남은건 너희들이 생각해보거라. 나는 잔다"
하품을 물면서 히라츠카 선생님이 간다.
그보다, 책임자 부재여도 괜찮슴까? 뭐, 평소 부활동도 그렇나.
히라츠카 선생님이 가고, 우리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의제는 '츠루미 루미는 어떻게하여 주위와 협조를 하면 좋을까'
누가 말한 의제인진 모르겠지만, 역시 논점이 조금 틀어졌다. 어차피 타니자와겠지. 틀림없다. 츠루미를 바꾸는 것이 아닌, 주위를 바꾸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을텐데.
그런 어긋난 논제를 처음으로 스타트를 끊은건 미우라였다.
"그니까, 그 애 꽤 귀여우니까, 다른 귀여운 애랑 묶으면 되지않아? 시험삼아 말 걸어보자. 그래서 사이 좋아지면 되잖아. 여유잖아?"
"그거야-! 유미코 날카로워-!"
"그치?"
"말은 나쁘지만 다리를 만든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유미코가 말하는건 올바를거야. 하지만 지금 상황하에선 애시당초 말을 건다는것이 허들이 높을지도 몰라"
최종적인 목적은 모두의 틀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모두의 대표인 이 녀석의 의견을 들어보아도 그다지 참고는 되지 않는다,.
"응! 분명 말야, 취미를 살리면 된다고 생각해. 취미로 묶어서, 행사에 가게 되면 교우가 넓어지잖아? 분명 진정한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내서, 학교만이 모든게 아니라는걸 깨달을거야. 그럼 여러가지로 즐거워질테고"
에비나한테 굉장히 정상적인 의견이 나왔다. 단순하게 썩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해서 미안하다.
"나는 BL로 친구가 생겼습니다! 호모 싫어하는 여자는 없어! 그러니까 유키노시타도 나랑"
전언철회. 역시 에비나는 에비나였다.
그래도 마이널리티 같은 가치관의 제공은 나쁜 선택지가 아닐 것이다. 커플링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그 뒤에 몇가지 안이 나왔지만, 현실적인건 없었다.
논의가 끊기고 조용해진 순간 타니자와가 한마디 말을 했다.
"……역시 다같이 사이 좋아지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나"
그 말에 무심코 기막혀진다.
그렇게나 유키노에게 못을 박혀놓고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이 녀석은 정말로 나와 같은 인간인지 의심스러워진다.
"다같이, 사이좋게라"
무심코 그렇게 말하니 타니자와가 흘끔 노려본다. 나를 노려본다기 보다는, 저녀석에게 있어선 자신이 올바르고 내가 틀렸다는 것이다.
"미안. 아무것도 아니다"
단순히 같은반인 저 녀석에게 굳이 친절하게 설명해줄 의리는 없다. 그러니까 내버려둔다. 실제로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런건 불가능해. 조금의 가능성도 있지 않아"
유키노의 늠름한 목소리가 울린다.
나와 달리 내버리는 짓을 하지 않는구나, 너.
타니자와는 짧게 한숨을 쉬고 지면으로 시선을 준다.
그걸 목격하고 미우라가 으르렁댄다.
"잠깐 유키노시타? 그 태도는 뭐야? 모처럼 다같이 사이 좋게 하려고 하는데, 왜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진정해 미우라. 미안하지만 나도 유키노에게 찬동한다. 나랑 유키노가 조금 생각할테니까, 그 사이에 그쪽만으로 생각해줘. 그리고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되고나서 다시 애기하면 될거 아냐? 이런 싸움 같은 짓을 해서 사이 좋아지는 방법이 나올리 없으니까. 안 그래?"
맞붙으려는 미우라와 유키노의 사이에 들어가 미우라를 달랜다.
마지못해 끄덕이고서 미우라는 원래자리로 돌아간다.
지금은 얼버무렸지만 여자만 남으면 괜찮을까, 이거.
분명 그 사이에 있게 될 유이가 약간 불쌍해진다.
모드가 잠든 조용한 시간, 나는 혼자서 방을 빠져나왔다.
고원의 밤. 혼잡 속에서 느끼는것과 또 다른 안심을 느낀다.
나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그저 혼자 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듯한, 그런 정숙함이다.
그리고 그런 정적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너는 혼자라고.
이 얼마나 멋진 환경일까. 매주 주말에 이런 곳에 오는걸 검토해봐도 좋을 수준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으니 수풀 사이에 한 명의 소녀가 서 있는게 보였다.
둥근 달빛에 비쳐져, 하얀 피부가 떠오르듯이 미미하게 빛난다. 산들바람에 날리는 기나긴 머리카락이 둥실 흔들린다. 작고, 굉장히 작은 목소리로, 달빛 아래 그녀는 노래부른다. 어쩌면 정령이 숲에 말을 거는 듯한, 그런 어딘가 현실에서 떨어진 환상적인 광경으로 보였다.
그녀 홀로 완성된 세게. 그런 광경에 약간이지만 질투하고 만다.
방해하는것도 미안하니 나도 딴데서 노래 불러볼까. 뭐, 저런 식으로는 안 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가려고 했지만, 나무가지를 밟고 뚜둑 소리가 났다.
"……누구?"
"야옹-"
"……빨리 나와"
무시당했다.
"말을 거는것도 아니고, 묵묵히 보고 있다니 꽤 좋은 취미를 갖고 있구나"
등장한 나를 유키노가 차가운 눈으로 본다.
"말을 걸지 않았던게 아니다. 못 걸었던거지. 너한테 넋이 나갔거든"
"그, 그러니. 그럼 어쩔 수 없네"
내 반론에 고개를 비스듬이 돌린다. 그 볼은 조금 붉다.
"별이라도 보고 있었냐?"
도시에서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별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조금 생각하고 있었어"
"……타니자와 말이냐?"
"타니자와……? 히키가야,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니?"
아아, 타니자와라고 하면 전해지지 않나.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머리에 물음표 마크를 띄운 유키노에게 변명한다.
"전혀 성장하지 않는 남자 말이다"
"너, 완고하게도 그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지 않는구나. 이유는……알것 같기도 하지만"
"……눈치챘냐"
"그래, 물론이야"
유키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남의 가치관을 존중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는 너여도, 그의 가치관은 받아들일 수 있는게 아니겠지. 모두와 있는걸 강제로 하는 그의 가치관은 네가 가진 홀로 있으려고 하는 가치관을 부정하는 것인걸"
"너, 굉장한데.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왜 거기까지 아는건데. 조금 무섭다"
"네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준것 처럼, 나도 너를 제대로 보고 있어. 그저 그것뿐인 이야기야"
"……왜 내가 너를 보고 있다는걸 안거냐"
"그렇구나. 예를 들어, 하야마에 대해서. 너는 깨닫지 못했을거라 생각한걸지도 모르겠지만, 제대로 눈치 채고 있었어. 나는 너에게 그에 대해서 말한 적은 없고, 분명 그가 말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아니, 진짜로 너 굉장한데"
뭐라고 할까, 유키노에게 이길수 있는 느낌이 안 든다.
"어디까지 추측하고 있는건진 모르겠지만, 좋은 기회니까 가르쳐줄게. 그하고는 초등학교가 같을 뿐이야. 그리고 부모끼리 아는 사이. 그의 아버지는 우리 회사에서 고문변호사를 하고 있어"
요컨대 그 사고 시담을 담당한건 그 녀석의 아버지라는 소린가.
"뭐라고할까, 힘들었겠구만"
"그래. 옛날부터 그는 변하지 않았으니까"
어딘가 씁쓸해보이는 웃음에 무심코 손이 나온다.
"뭐, 뭐하는 거니"
"나도 몰라. 그저, 네 얼굴을 봤더니 이렇게 해주고 싶어진것 뿐이다"
정신을 차리니 나는 유키노를 정면으로 껴안고 있었다.
유키노는 그걸 거절하지도 않고 받아들여, 이윽고 작은 목소리로 한숨을 쉬었다.
"좋아. 너니까, 값싼 동정은 아닐테고"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내 등으로 손을 감는다.
"그러니까, 조금만 이렇게 있어줘"
라는 꿈을 꾸었다.
"끄아아아아악!!"
이미 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러 갔는지,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끙끙댄다.
뭐냐. 뭐야, 그건. 꿈은 소망의 표현이라고 자주 말하지만, 나는 그런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뭐가 '그런 얼굴을 하는 너를 보고 싶지 않은것 뿐이다'냐. 바보냐.
한차례 끙끙대고서 조금 진정하고나서 팔을 본다.
꿈 속에서 느낀, 유키노의 가늘고 부드러운 몸의 감촉이 아직 남아있는 느낌이 든다.
그 감촉을 뿌리치려고 팔을 흔들고 나도 아침식사를 하러 향했다.
식당으로 향하니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이미 없고, 있던건 평소 멤버와 히라츠카 선생님 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음, 안녕"
히라츠카 선생님이 차를 한손에 들고 신문을 읽으면서 답한다. 그 모습은 마치 파도같았다.
"안녕"
"아, 힛키 안녕"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이미 아침식사를 먹고 있는 유이들에게 인사를 한다.
야아 + 하로- 인 만큼, 얏하로- 는 아침에는 쓰지 않는 모양이다.
"안녕, 히키가야"
"어, 어어"
그런 꿈을 꿔서일까, 유키노와 시선을 맞추기 힘들다. 그런 나를 보고 유키노는 쿡 웃는다.
"오빠야 안녕-! 지금 밥 갖고 올게-"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려고 하는 코마치를 유키노가 제지한다.
"코마치, 너는 아직 식사중이잖니. 나는 벌써 다 먹었으니까 내가 갈게"
유키노는 저벅저벅 발소리를 내며 아침식사를 가질러 간다.
"자, 여기"
"땡큐"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유키노에게 아침식사를 받는다. 잘 먹겠습니다, 손을 맞대고 먹기 시작한다.
"히키가야, 한 그릇 더 먹을래?"
"부탁한다"
비어버린 밥그릇을 깨달은걸까, 유키노가 말을 건다. 내가 밥그릇을 건내고, 콧노래를 부르며 밥통에서 밥을 펀다.
유키노에게 밥그릇을 받고 식사를 재개한다.
아침식사를 먹는 나를 생글거리며 유키노가 쳐다본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을 코마치와 유이도 생글거리며 쳐다본다. 뭐야 이 생글거리는 공간.
비어버린 밥그릇을 두고 차를 마신다.
"오빠, 이제 됐어?"
"이제……다 먹었다. 배……불러"
유키노가 너무 기쁘게 밥을 퍼줘서, 그만 과식해버린 정도다.
이제부터 일을 해야하는데, 움직일 수 있는지 불안해진다. ……육체노동이 아니기를 빈다.
"그럼 아침식사도 마친 모양이니, 오늘 예정에 대해서 얘기하지. 초등학생은 오늘은 하루 자유행동을 하고, 밤에는 캠프 파이어와 담력시험 예정이다. 너희들에겐 그 준비를 부탁하고 싶다"
"하아, 캠프 파이어입니까"
"아, 포크 댄스 하는 그거다!"
딱보아 육체노동계 일 내용에 무심코 얼굴을 찌푸린다.
"오오! 벤트라 벤트라 하고 춤추는거죠!"
"오클라호마 믹서라고 하고 싶은거니……. 마지막 장음밖에 맞지 않잖니……"
코마치……. 너는 작년에 UFO를 불렀는건지 오빠는 묻고싶다.
"UFO를 부르든 말든 둘째치고, 담력시험 쪽 준비도 부탁하마. 뭐, 코스도 정해졌고 귀신 복장도 이쪽에 세트가 있다. 직전에 팍팍 해주면 된다. 그럼 준비 설명을 하지. 갈까"
초등학생이 하루 자유행동으로 밤까지 예정이 없다라는건, 밤의 준비만 끝내면 우리들도 자유행동이라는 것이다.
캠프 파이어 준비라는, 힘든 육체노동을 마친 나는 혼자 물에 노는 모두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좋네-. 이거 진짜 좋네-. 오는걸 거절하려고 했던 어제의 나를, 도움닫기로 때려주고 싶어질 수준.
뭐가 좋냐고 하면, 혼자 있다는게 굉장하다. 모두, 사이좋게, 즐거워보이는걸 그저 방관자로서 보고 있을뿐. 거기다 말하자면 수영복을 갖고 오지 않았으니까 모두의 틀에 들어갈수도 없다. 고독 만세.
그렇게 혼자 있는게 당연한 상황을 즐기고 있으니, 옆길에서 바스락 발소리가 났다.
기척이 난 방향을 바라보니 츠루미가 있었다.
"여"
내가 말을 거니 츠루미는 응, 하고 끄덕였다.
그대로 내 옆에 앉는다.
서로 말없이 강에서 노는 모두의 모습을 보고 있었지만, 기다리다 지친듯 츠루미가 입을 연다.
"저기, 너 왜 혼자 있어?"
"혼자 있는걸 좋아하니까. 너는?"
"흐-응. ……나는, 오늘 자유행동이야. 아침밥 먹고 방에 돌아왔더니 아무도 없었어"
거 힘들겠군. 내게 있어선 바람직한 상황이지만. 권유를 거절할 필요도 없어서 실로 좋다.
"너 말야, 휴대폰 갖고 있어?"
"……그야, 갖고 있는데. 왜?"
"인생의 선구자로서 너한테 혼자의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싶은것 뿐이다. 자, 이거 내 휴대폰이다"
메일 주소를 표시하고 츠루미에게 건낸다. 츠루미는 받아들고, 휴대전화와 나를 교대로 본다.
"……로리콘?"
"아니야. 순수하게 너한테 혼자의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싶은것 뿐이다"
로리콘 아니야, 로리콘 아냐. 중요하므로 두번 말했습니다.
"하치만은, 혼자 있어서……즐거워?"
"즐겁다고 할까, 너무 행복해서 곤란하다"
"……이상해"
그렇게 말하고 츠루미는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뚝뚝 타자를 친다.
"혼자 즐거워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고는 했지만, 너에게 있어 나는 남이다. 따라서 너에게도, 네 주위에도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니야. 그러니까 뭐라도. 예를 들면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할 수 없는 말이라던가. 그런걸 보내주면 돼. 네 비밀을 알게 됐다 한들, 내게는 말할만한 친구는 없으니까"
"응. 메일 보낼게"
언젠가 유키노가 말했다. 갈 곳이 있을 뿐인 별이 되어서 불타버릴 법한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고 끝난다고.
친구였을 인간이, 다음 날에는 자신을 방해하는 측으로 돌아섰다. 누가 같은 편이고 누가 적인지 모른다. 츠루미는 그런 의심암귀에 사로잡혀있다.
그렇다면 명확하게 있을 곳을.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기준점을 주면 된다. 남인 나는 그녀를 배신하는 이유를 갖고 있지 않다. 그녀의 주위 집단의식하고는 격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있을 곳이 될 수 있다. 되어준다.
아무 위험도 없이 내가 할 수 있는건 이 정도일 것이다.
입력이 끝났는지 츠루미가 내민 휴대폰을 받는다.
"하치만은 말야……"
"힛키 헌팅하고 있어-! 유키농-! 힛키가 바람피워-!"
츠루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만, 유이의 망언이 그걸 가로막는다.
"안 했어. 그래서, 왜 그래 츠루미? 뭐 말하려고 했잖아?"
달려온 유이와 유키노에게 가볍게 답한다. 그보다, 바람 피운다니 무슨 소리냐.
"하치만은 말야, 초등학교때 친구 있어?"
"없지. 오히려 같은 반 애들 이름도 얼굴도 기억 못해. 어차피 졸업하면 안 만나니까. 기억하는 만큼 낭비다 낭비"
그래도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는 정도는 기억하지만.
"그, 그건 힛키 뿐이잖아!"
"나도 안 만났어"
유키노가 바로 대답하니 유이는 체념한것 처럼 한숨을 쉬었다.
"루미. 이 사람들은 특수한것 뿐이니까……"
"특수한게 뭐가 나쁘냐. 특수부대라던가, 멋지잖냐"
예외라고 한 쪽이 딴죽걸 곳도 없겠지.
"특수한 예는 냅두고. 예를 들면 유이. 너, 초등학교 동급생 중에서 지금까지 만나는 녀석 몇 명있냐?"
"음-. 빈도나 만나는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순수하게 노는 목적이라면 한 명이나 둘 정도일까"
"덧붙여 네 학년에는 몇 명 있었지?"
"30명 3반"
"90명인가. 이상으로 보아 졸업하면 5년후 친구로 있는 확율은 기껏해야 5%가 된다는 소리다. 반대로 말하자면 친구가 없어질 확률은 95%. 츠루미는 아직 배우지 않았겠지만 확률이라는건 편수가 있어. 90%가 편수가 되니까 대개 녀석들은 친구가 아니라는게 되지. 이상, 증명완료"
예를 든다면 소셜 게임에서 노멀 95%, 레어 5% 게임을 학년 인수만큼 뽑게되는 것이다. 뽑는 녀석은 몇 장이라도 뽑을 수 있고, 뽑지 못한 녀석은 몇 번을 해도 못 뽑을 것이다. 덧붙여 나는 애시당초 게임 기능이 실장되어 있지 않다.
"지금은 유이를 예로 들었으니까 5%로 확률이 섰지만, 샘플을 늘리면 또 다른 대답이 나올지도 몰라. 하지만 딱히 그런 통계학적으로 올바른 답을 구하고 있는게 아니야. 요컨대 생각 방식의 문제라는거다"
"힛키가 하는 말이 어려워서 잘 모르겠지만. 편수로 생각하면 조금은 편해지네. 다같이 사이 좋게 지내도 질릴때도 있구"
어딘가 실감이 담긴 유이의 목소리. 유이는 츠루미를 돌아보며 격려하듯이 미소짓는다.
"그러니까, 루미도 그렇게 생각하면……"
"응……, 그치만 엄마는 납득하지 않아. 언제나 친구랑 사이 좋게 지내는지 묻고 있고, 임간학교도 사진 많이 찍으라고해서, 디지털 카메라……"
과연. 츠루미가 지금 상황하에서 주위에 도움을 바랄 수 없는건 그게 있으니까 그런걸지도. 어제 유이가 말했던것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엄마에게 걱정을 기치고 싶지 않다는것도 클 것이다. 뭐, 확실하게 부모에게 걱정받지 않는 나에게는 나오지 않는 이유로군.
"그렇구나……. 좋은 엄마구나. 루미를 걱정하고 있구"
"과연 그럴까……. 지배하고 관리하에 두는 소유욕의 대상이 아니라?"
거미집으로 돌을 낚아 올리듯이, 불안을 긁는 말이 나온다.
그 말에 유이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어, 잠, 그, 그런거 아니야! 거기다, 그런 말은……"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거겠지. 네 안에선 말이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개인적으로 들어주마. 지금은 일반론이다.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도 말한다? 부모가 걱정할리 없다고"
어제 너와 얼마전에 있던 하루노 씨를 돌아보면, 그 근원인 어머니가 솔직하게 걱정을 하고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서툰 걱정에 그대로 사로잡혀있을 뿐인거 아니냐? 진짜로.
내가 말하니, 유키노는 엄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 힘없듯 한숨을 내쉰다.
"그렇구나. 언니 일도 있으니까. 나중에하자"
내게 미소짓고 유키노는 츠루미를 돌아보고 고개를 슥 숙인다.
"미안해. 내가 실수한것 같아. 무신경한 발언이었어"
"아, 전혀요……. 왠지 어려워서 몰랐으니까요"
갑작스런 유키노의 사죄에 츠루미가 허둥대면서 대답한다.
"그거다. 그럼 사진 찍어둘까? 저 녀석들과 사진. 저녀석들이라면 싫다고는 안하겠지"
"필요없어"
물에서 노는 미우라 그룹을 가리키며 언급해보니 즉시 거절당했다.
뭐, 어제 일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
"내 상황도 지금 싫어하는 느낌도 고등학교 정도가 되면 변할까……"
"적어도 지금처럼 있겠다면 절대로 변하지 않을거야"
출처는 나.
이제, 누가 유키링걸 갖고와줘, 진짜.
"나처럼 혼자 만세가 될 가능성도 있으니까. 무리하게 주위랑 어울릴 필요도 없겠지"
"그치만 루미는 지금 힘들어 하구, 그걸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힘들다고 할까. 좀 싫은데. 비참해보여. 동정받으면 자신이 제일 밑에 깔렸다고 느껴"
"그런가"
뭐, 동정당하고 M도 아닌데 기뻐하는건 나 정도겠지.
"싫긴 하지만. 그치만 이제 어찌할 수도 없어"
"어째서?"
유키노에게 질문받고 츠루미는 말을 하기 힘들어하면서도 제대로 말을 한다. ……두 눈에 흘러넘치려고 하는 눈물을 담고.
"나, ……내버려졌어. 더는 사이 좋게 지낼 수 없어. 사이 좋게 지내려고 해도, 또 언제 이렇게 될지 몰라. 반복될 뿐이라면, 이대로가 좋지 않을까해. 비참한건 싫지만……"
솔직하게 말해, 나는 그녀의 괴로움을 모른다. 내게 있어 남이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신당한다 한들 아무것도 느끼는것이 아니라, 그저 한 가지를 배우는 것 뿐이다. 사람은 배신하는것, 이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 하나 배웠다. 내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일이어도, 츠루미에게 있어선 다른 일이라고. 남에게 배신당하는건 힘들다고. 비참하다고.
남에게 흥미가 없는 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알 필요를 느끼지 않는것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배워버렸다. 그리고 그걸로 우는 소녀를 내버리는 인간은 아니다. 다행히, 손을 내밀어줄 이유라면 이미 있다.
앞으로 내가 하려고 하는 짓은, 단순한 자기만족일지도 모른다. 그녀를 구해준다는 자의식이 낳은, 불쌍한 자기도취자일지도 모른다.
자기만족이어도 좋다. 자기도취자라고 불려도 상관없다.
만약……. 만약 내가 바래서 그녀가 구해진다면. 만약 내가 손을 내밀어서 그녀의 눈물을 그칠 수 있다면.
나는 원한다. 얼마든지 손을 내민다.
불끈불끈, 몸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에 몸이 뜨겁다.
"비참한건 싫나"
웅크려 앉아서 츠루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묻는다.
"……응"
"……담력시험 재밌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지금 만큼은, 이 열정에 몸을 맡겨도 괜찮을 것이다.
담력시험이라고 해도 텔레비전에서 할법한 본격적인 것이아니다.
차를 마시는 듯한, 그런 애들 속이기 같은 것이다. 뭐, 실제로 하는건 애들이지만.
파파팟 준비를 마치고 대기장소로 돌아와 브리핑을 한다.
"그래서, 어떡할거니?"
불씨를 끊은건 역시 유키노였다.
어떡할거니? 란 당연히 츠루미다. 대안은 이미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 혼자 할 수 있는게 아니다.
거기다…… 미리 해두지 않으면 안 될것도 있다.
모두와 마찬가지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마치 성장하지 않는 남자가 성장을 느끼지 못하는 발언을 한다.
"역시…… 츠루미가 모두와 대화를 하는 수 밖에 없다, 일지도. 그런 자리를 만들자"
"너, 이제 말하지 마. 나중에 떡이라도 줄테니까. 응?"
역시 어딘가 어긋난 발언. 거기에 나는 쓴 소리로 답한다. 노려보지 마. 일부러다, 일부러.
"에비나가 코피를 뿜으려 하고 있고, 그다지 손짓발짓 가르쳐주는건 싫지만 말이다. 너 말이다. 뭐 착각하는거 아니냐? 그 녀석들 사이에 명확한 문제가 있고, 이야기를 해서 그걸 해결한다. 모두가 사이 좋아져서 잘 됐습니다, 잘 됐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거냐?"
"……히키타니는 그게 잘못 됐다고?"
핫, 하며 바보취급하듯 웃는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뒤엎고 있다. 그 녀석들 사이에 문제는 없어. 애시당초 누가 나쁘고 나가 나쁘지 않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그럼 무엇이 나쁜가. 왜 츠루미는 소외되고 있는가. 그건 말이다, 그렇게 당연히,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분위기가 츠루미의 주위에 있기 때문이다. 좀 더 말하자면 주위가 그런 집단심리에 흘러갔으니까 이렇게 된거지. 확실히, 네가 말하는건 잘못되지 않았어. 해결방법의 일례로 올릴 수 있겠지. 하지만 그건 선동하는 협력자가 필요하다. 츠루미가 모두와 이야기할때, 같이 이야기 넣어준다고 해줄 녀석이 필요하다고. 너, 그거 준비할 수 있냐? 거기까지 제대로 생각하고 말한거냐?"
"그, 그건……"
말이 막혀, 시선을 지면에 둔다. 그걸 확인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럼 찌그러져있어. 시간 낭비다"
뭐, 사전에 말해두는건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본론은 지금부터다.
"모두가 하니까 자기도 한다. 그런 집단심리탓에 츠루미가 소외되고 있다면, 그런걸 부숴버리면 된다. 모두와 같이 있어서 그런 집단심리가 발생한다면, 모두가 아니게 되면 된다. 집단심리라는 틀에 둘러쌓여서, 거기에서 벗어난 녀석을 비웃는다면, 틀을 부숴서 너도 똑같다고 보여두면 되지"
일단 말을 끊고, 입을 다물고 나를 쳐다보는 모두를 돌아본다.
그리고 천천히 말한다.
"내게 대책이 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내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발언력이 강한 녀석을 논파하고, 입다물게 하고나서 제안한 것이다. 그러면 반대도 하기 힘들 것이다.
일단 해산하여, 대기장소에서 떨어진 집단 속에서 모두와 이야기 하지 않고, 나의 대책에 핵심이 되는 인물을 찾는다.
그 녀석을 찾아내고, 혼자 떨어지게 된 것을 재고나서 말을 건다.
"잠깐 괜찮냐"
"뭐야, 히키타니"
핵심이 되는 인물이란, 방금전까지 충분히 부추겨놓은 그 녀석이다.
"아까는 미안했다. 필요했다고는 해도, 정말로 미안했다"
"히키타니, 그건 무슨 의미지?"
고개를 숙이는 나의 의도를 읽지 못했는지 수상한 얼굴을 지었다. 그렇게나 부추겨놓고 사죄당하면 그렇게 되나.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게 있다. 내 대책이 학교측에서 문제가 됐을때, 나를 내버려라. 잘라 버려라. 자기들은 관계없다고, 저 녀석이 멋대로 한거라고 했으면 싶다. 이건 그룹 안에서 발언력이 있는, 너말고는 부탁할 수 없는 일이다"
발언력이 있는 이 녀석이 나를 잘라버리면 아마 주위도 거기에 동조한다.
이 녀석이 나를 버리는건 당연.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그렇게까지 부추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식으로 부추기진 않는다. 내 주의에 위반하니까.
"히키타니의 생각은 잘 알았어. 하지만 약속은 할 수 없어"
그렇게만 말하고 가버렸다.
젠장, 미움받지 않았나. 저렇게나 말해버리면 아무리 '모두와 사이 좋게'교의 교주인 저 녀석이라도 즉시 나를 내버린다는 선택을 고를거라 생각했는데. 생각이 얕았나…….
하지만 지금부터 다른 녀석에게 해둘 시간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건 마지막에 저 녀석이 나를 버리는 선택을 해주기를 빌 뿐이다.
담력시험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남은건 츠루미들의 반 뿐이었다.
적당한 이유를 내어 출발순서를 조작하여, 그렇게 되도록 진행역인 코마치와 토츠카에게 부탁해뒀으니까 당연하지만.
자, 이런 지시만으로 제안자인 내가 뭘 할 수 있냐고 하면.
"기다리는거, 지치는데"
"지금 출발했다고 메일이 왔다. 그러니까 슬슬 올거다"
미우라와 둘이서 츠루미들이 유도되어올 길 복판에 서 있었다.
이번 나의 대책은 미우라 없이는 성립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우라라는, 아이를 사랑하지 마지않는 엄마 체질이 필요한 대책인 것이다.
나와 미우라가 마지막 신호를 마친 순간에 길 끝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새끼양들이 오고 있는거겠지.
"아, 언니다"
미우라의 모습을 깨달았는지, 초등학생들이 다가온다.
"완전 평범한 모습이야!"
"그렇네-!"
"좀 더 의욕 내줘-!"
"이 담력 시험 하나도 안 무서워-!"
"고등학생인데 머리 나빠-!"
그 말을 듣고 싶었다!
밤의 숲속이라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 속. 평소 차림을 하고 있는 미우라에게 마음이 풀어졌는지, 소녀들은 잽싸게 문제발언을 해줬다.
솔직히 문제발언을 이끌어내는데 조금 시간이 걸릴거라 생각했지만……. 미안, 미우라. 약속한거 의미 없었던 모양이다.
"니들 누가 반말하래?"
"어……"
미우라의 앞으로 나와 달려오던 애들을 멈춰 세운다.
친근한 언니에게 말을 걸려고 했더니,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나와서 혼낸다. 그런 상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의 다리가 멈춘다.
"그보다. 지금 누가 머리 나쁘다고 했어? 그거 말한거 누구야"
내 말에, 아이들은 시선을 내 뒤로 향한다. 아마, 미우라에게 도움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의미하다.
"잠깐만, 히키오. 그만둬. 상대 초등학생이야"
미우라가 내 팔을 잡고 달랜다.
"시끄러"
하지만 나는 그걸 난폭하게 쳐내고, 최대한 큰 소리를 지른다. 큰 목소리란 쫄게하는게 기본이니까.
"나, 나아는 몰라!"
아이들의 옆을 지나, 미우라가 사라진다. 세이프, 훌륭하다.
믿음직한 상대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입을 다문다.
여기부터는 나의 원맨쇼다.
"그래서, 누가 말했는지 물었는데. 못 들었냐?"
"죄, 죄송합니다……"
"누가 사과해라고 안 했거든. 누가, 말했냐고, 물었다. 아냐? 알면 말해. 누구야. 누구냐고!"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하다 마지막 한 마디만 크게지르는 것이 포인트. 이거 시험에 나옵니다.
입을 다문 아이들에게, 짜증을 보이듯 혀를 차며, 주위에 굴러다니는 소품을 발로 차서 소음을 낸다.
때로는 말없이, 때로는 큰소리를 지르며 한결같이 애들을 공갈한다.
아이들은 내게 겁에 질려, 서있는게 고작이라는 상태. 한자리에 모여 움츠러들어서 나를 젖은 눈으로 쳐다본다.
여기까지가 나의 대책 첫단계. 나라는 명확한 적에, 저녀석들은 집단심리를 극한까지 높아졌을 것이다. 애시당초 집단심리라는것은 외적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의 몸에 깃든 본능같은것이다. 누구나가 갖고 있고, 거기에 귀속해 있다. 그런 것이다.
아마, 저 녀석들은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잇을 것이다. 무거우니까 다같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내가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것도 모르고.
여기서 츠루미도 데리고 다같이 도망치는 선택을 해주는게 더 나은 선택이었지만.
도망친 곳에서 무서웠지, 뭐였던걸까. 안전한 장소에서 대화한다. 다같이 하나의 생각을 공유하며 공감한다. 거기에는 츠루미도 포함되어 있어서. 그것도 또한 모두의 틀 안에 넣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그럼 뒷일은 치고나갈 뿐이다. 주사위는 던져졌으니까.
한차례 말로 부추기고, 충분히 겁에 질렸을 무렵을 재고 최종단계에 들어간다.
"아- 이제 됐어. 니들 중에 반만 보내주마. 그리고 남은 반은 여기 남아라. 아-, 나는 누구라도 좋으니까. 니들이 정해도 좋다"
다같이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뿌리부터 뒤집는 제안. 여기부터는 '다같이'가 되지않는다. 그런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죄송합니다"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누군가가 말한다. 뭐, 의미없지만.
"하아. 그러니까 나는 골라라고 했다. 아까부터 니들 제대로 듣고 있는거냐. 그거냐, 니들 머리 옆에 달린건 장식이냐? 지금 그건 못 들은걸로 쳐줄테니까. 얼른 골라라"
내 차가운 말에 아이들은 입을 다문다. 하지만 아직 끝난게 아니다.
"진짜 누구라도 괜찮다고? 니들이 못 정하면 내가 정해줄까. 그럼……"
"츠루미……니가 남아"
"그래……"
여기까지는 예상대로. 오히려 츠루미가 선택될때까지 시간이 너무 걸렸다고 해도 좋다.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렸다는건 역시 근본부터 나쁜 녀석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남은 둘은 누가 남을거냐? 오냐, 빨리 해라"
"……유카가 아까 그 소리 안했으면 좋았을걸"
그리고,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누군가가 이름을 꺼내면 다른 누군가가 거기에 따른다. 그리고 이름을 불린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댄다. 그저 그것들의 반복.
거기에는 집단심리의, 모두의 같은 생각은 없다. 그저 이기적인, 개인의, 개인에 의한, 개인을 위한 말다툼밖에 없다.
그야 그렇다. 누구도 좋아서 산제물이 되고 싶을리는 없다. 누군가를 내버려서 자신이 살아남는다면, 그 누군가를 내버려도 되는 것이다.
딱히 그 생각이 추악하거나, 틀렸다고는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카르네아디스의 판. 긴급피난. 말하고는 달라도, 그 행위는 사회에 용인되는 것이다. 내버렸다고 해서, 아무도 탓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이렇게 되도록 유도했다고는 해도, 솔직히 보고 있어서 좋은 기분이 드는건 아니다.
"니들 아까부터 시끄럽네. 10초만 기다려주마. 그래놓고 못 고르겠다면 내가 골라주마"
말하고나서 10초가 너무 짧다고 깨닫는다. 하지만 말해버린 이상 번복할 수 없다.
"10, 9, 8, 7"
그보다 이거, 카운트 다운해서 어쩌자고? 저 녀석들이 골라내지 못했을 경우도 상정하지 않았는데.
"6…… 5…… 4…… 3……"
"저, 저기……"
느긋하게 숫자를 센다.
내가 이 후의 전개를 생각에 고심할때, 츠루미가 슬슬 손을 든다.
나이스 시간벌기! 구명승이라도 되듯 카운트를 멈추고 츠루미를 본다.
순간 내 눈 앞은 새하얗게 변했다. 물리적으로.
"뛸 수 있어? 이쪽으로. 서둘러"
음양탄을 먹은 나는 그대로 지면에 굴러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딱히 섬광을 눈에 맞고 못 설수 있게 된건 아니다. 그저 그렇게 하고 싶은 기분이 든 것이다.
츠루미는 마지막에 자신을 방해하던 그녀들을 도와준다는 선택을 했다. 그건 단순히 은혜를 팔려고 한것 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들도 자신과 똑같다고 깨달은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히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나는 츠루미가 아니라서 그 녀석들의 생각을 모두 꿰뚫어본게 아니니까.
하지만 이것만큼은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는 츠루미를 둘러싼 환경은 일변할 것이라고.
츠루미에게 구해진 그녀들은 앞으로 적극적으로 츠루미를 방해하기 힘들어진다. 오히려 비호하는 측으로 돌아설 것이다. 숫자로 보면 4명이지만, 반 안에서 생각하면 약 10%, 여자만이라면 약 20%다. 그 만큼의 인간이 츠루미측으로 돌아서면 집단심리의 방향을 바꾸기에는 충분한 것이다.
내가 생각한 대안을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츠루미가 좋은 의미로 배신하여, 상정한것 이상의 결과를 내게 되어 기쁘게 생각했다.
자, 그럼 마지막은 그걸로 끝내기로 할까.
"눈이-! 눈이-!!"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생각이니"
설령 아무도 보고 있지 않더라도, 남자에게는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지금 경우는 모 대좌의 흉내다. 그저 보여질 생각은 없었는데, 실은 누군가가 제대로 보고 있었다는걸 알면 꽤 부끄럽다.
"유키노냐"
아무일도 없었듯이 일어서서 말한다. 지적하지마. 절대로 지적하지마!
"나, 조금 화났는데"
"뭘 말이냐? 그보다 내가 혼날만한 짓을 한거냐?"
대좌의 흉내에 관해서는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용서해줬으면 싶다.
"미우라 말이야. 미우라가 사라지고, 너 혼자 남았어. 그런건 너 말하지 않았잖니. 너, 혼자서 죄를 뒤집어 쓸 생각이었어?"
"아아, 그거 말이군. 착각하지 않도록 말해두겠지만, 딱히 자기희생이니 고상한게 아니야. 내가 결심하고 내가 한 거니까, 책임은 전부 나에게 있다. 유키노는 내가 그런 녀석이라고 알고 있잖아?"
미우라가 가버린 것은 미우라와 사전 지시할때 얘기해뒀다. 그래서 그걸 알고 있던건 나와 미우라 뿐이다.
가능하면 나 한 사람의 손으로 모든걸 해내고 싶었지만, 그건 도무지 무리였다. 다른 누군가의 협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거기에 책임을 지는 부분까지는 포함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입학식날 사고. 보통이라면 차에 치인 측이 피해자고, 친 측이 가해자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좋게 여기지 않았다.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고는 해도 내가 한 거니까, 나의 책임. 혼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남에게 미룰 필요는 없는 것이다.
진지한 눈으로 유키노를 쳐다보니 유키노는 훗, 하며 힘없이 웃었다.
"그렇네. 너는 그런 사람이었지. 그저 조금 확인하고 싶어진것 뿐이야"
"확인할 수 있었냐?"
"그래. 너는 너대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 언제까지고 혼자 있으려고 하는, 그런 사람. 그리고……"
"그리고?"
"혼자 있으려고 하면서 누구보다도 남을 보려고 하는 사람. 고민도 괴로움도, 강함도 약함도. 전부 받아들여서 그 사람을 보려고 해. 그런 다정한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런 유키노로부터 눈을 피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지막은 나도 몰랐는데, 너한테는 그렇게 보인거냐?"
"그래. 나한테는 그렇게 보였어"
"네가 말한다면 그런걸지도. 뭐, 나는 모르겠지만"
"그거면 돼. 분명"
하늘을 올려다보는 내 옆으로 유키노가 살며시 다가온다. 둥실, 좋은 향기가 난다.
"히키가야. ……너, 실은 누구를 위해 해결하고 싶었어?"
"누구냐니, 그야 나를 위해서다"
유키노의 질문에 시선은 하늘을 향한채로 대답한다.
유키노가 일찍이 자신을 츠루미와 겹친것 처럼, 나도 츠루미에게 예전 유키노를 봤다. 츠루미에게 손을 내밀고, 그녀가 구원받았으니까 라고 해도 예전 유키노가 구원받은건 아니다. 그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었다. 예전 유키노도, 그걸 보고 어두운 표정을 짓는 유키노도. 그 둘 모두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전부 나 자신을 위해서일것이다. 유키노를 구하고 싶다. 과거도 미래도 전부. 그걸 위해 내가 멋대로 한것 뿐이니까.
"별, 아름답구나"
"……그, 그렇네"
내가 말하니, 조금, 조금이지만 유키노가 거리를 좁혀왔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특별히 대화도 없이 유키노와 둘이서 별을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큰일날 느낌이 들어서 어두운 밤길을 오두막까지 돌아온다.
목욕하고 방으로 돌아가니 이미 모두 잠들어 있었다.
유키노와 줄곧 별을 보고 있었으니까, 일의 진말은 모르지만, 나. 내일 아침부터 히라츠카 선생님에게 호출받으면 어쩌지. 그녀석은 제대로 나를 버려줬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비어있는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히키타니……"
"미안, 깨웠냐?"
"아니,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
일의 전말을 들려주기 위해서겠지만, 그 말만 들으니 엄청 밥맛이다. 그거, 에비나의 앞에선 절대로 말하지 마.
"……역시 문제가 됐나"
"아니, 거기는 괜찮아. 히키타니가 걱정할만한 그런 사태는 되지 않았어"
앗싸-! 책임은 내거지만, 없다면 없는대로 좋다.
저만큼 신경써서 예방선을 쳤던 나지만, 실제로 문제가 될 확률은 낮다고 보고 있었다.
적은 시간동안 어울린 우리들이 눈치챈 것이다. 교사들이 츠루미들의 관계 변화를 깨닫지 못할리가 없다. 대응의 준비단계였던걸까, 단순한 미루기 주의였던걸까. 거기까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를 방치하고 있었다는데는 변함없다. 그렇기에 내가 한 행동을 문제삼기 어려워진다.문제를 삼으면 츠루미가 따돌려지고 있었다는게 밝혀져서 '왜 교사로서 대응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던거지?' 가 될테니까.
"……그런가"
힘내서 냉정하게 대답한다.
"……있잖아. 만약 나랑 히키타니가 같은 초등학교였으면 어떻게 됐을까"
"집단에서 튕겨나갈 일 없이, 집단 밖에 내가 있겠지. 츠루미처럼 저런 괴롭히기 흉내는 일어나지 않았을거다. 나 말고는"
집단 밖에 있는 녀석을 공격한다면, 항상 집단 밖에 있는 나는 무척이나 공격하기 쉬울 것이다. 거기다 말하자면 집단 안에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와 선 위치가 변할 일도 없다.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난 존재라고 하면 왠지 멋지게 들린다.
"그럴까. 나는 여러가지로 다른 결말이 됐을거라고 생각해. 그저, 그래도……"
그건, 말을 고르는듯한 뜸이었다.
"히키가야하고는 사이 좋게 못 지냈겠지"
"하야마, 너 좋은 녀석이구나. 악수하자"
"어? 하?"
"농담이다. 잘 자라"
"어, 어어. 잘 자"
나의 즉답이 예상밖이었는지, 허둥대는 하야마를 무시하고 취침 인사를 나눈다.
결국, 하야마는 나와 똑같았을 것이다. 내가 하야마의 이름을 완고히 부르고 싶지 않았듯이, 하야마 또한 내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하야마의 모두 사이좋게라는 집단에 들어가는걸 당연하게 고집하는 가치관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것 뿐이지만.
하지만 달랐다. 하야마가 말하는 '모두' 에 나는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럼 나는 저 녀석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저 녀서의 가치관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보다, 하야마가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유는 대체 뭘까. 첫번째 후보는 유키노. 소꿉친구인 모양이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틀린 방법이었지만 줄곧 신경쓰고 있던것 같으니까. 그런 유키노의 옆에 있는 나를 인정할 수 없다. ……충분히 있을 법하군.
뭐, 아무래도 좋지만. 하야마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를 어떻게 부르든. 하야마 좋을대로 내버려두면 도는 것이다. 그것이 하야마가 선택한 것이니까.
잠에 들때, 문득 휴대폰에 메일이 와 있는걸 눈치챈다. 확인해보니 모르는 메일 주소로 온 메일이었다. 메일을 열어, 내용을 확인하고 답신도 하지 않고 배게맡에 휴대폰을 둔다.
본문은 한 마디. 고마워, 라고.
돌아가는 차 안, 나는 어째선지 갈때와 마찬가지로 조수석에 앉아 있었다.
딱히 상관없지만. 생각하고 싶은것도 있었고.
생각하고 싶은거란, 까놓고 말해 유키노다. 나중에 이야기 듣겠다고는 했지만, 결국 그 기회는 오지 않고 자원봉사는 종료했다.
나로서는 듣든 듣지 않든 아무래도 좋지만, 이야기를 들을 가능성이 있는 이상, 어느 정도 이야기를 정리해두는 편이 효율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일단 내가 갖고 있는 유키노의 정보는 이렇다.
・유키노는 언니의 뒤를 쫓고 있다.
・하루노 씨는 일부러 미움받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어머니의 간섭을 지배나 관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밖에도 있지만 중요해보이는건 이거다. 그리고 이걸 적당하게 접합시켜서 사이를 내가 가진 지식으로 메꾸면 하나의 가설이 떠오른다.
유키노시타가는 유키노가 언니의 뒤를 쫓으려 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다.
하루노 씨가 미움받으려고 하는건 유키노에게 자신과는 다른 길을 걷기를 바라니까.
어머니의 간섭을 지배라고 받아들이는건 유키노에게 있어 언니의 뒤를 쫓는것이 스스로 정한 길인데, 어머니는 그걸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다른 길을 걷도록 하니까.
이런 느낌으로 납득이 가는 설명이 붙는다.
하지만 아직 조각이 조금 부족하다. 이걸로는 '왜 유키노시타가가 그러는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예를 들면 하루노 씨가 유키노시타가에서 어떤 입장에 있는가, 라던가. 그런 정보가 있으면 답이 나올것 같은데…….
"왜 그러냐? 어려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무슨 생각하는거냐?"
"네. 뭐, 조금요"
생각에 잠긴 나보고 히라츠카 선생님이 말을 건다.
"……어제 일이냐? 이번에는……조금 위험한 다리를 건넜구나. 자칫 잘못했으면 문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스탠포드 감옥실험을 흉내내봤습니다. 같은건 안 될까요"
"……안 되는게 당연하잖느냐"
"그렇겠죠. ……히라츠카 선생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히라츠카 선생님은 우리들의 감독이라는 입장이다. 내가 아무리 힘써봐도 역시 그녀의 책임을 없게 할 수는 없다.
어른의 세계라는건 몰랐으니까, 로 끝나지 않으니까.
"딱히 탓하는게 아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됐던 거겠지. 오히려 시간이 없는 와중에 잘 했다고 생각한다"
"집단심리를 이용해서 조금 바람을 바꿔준것 뿐입니다"
"집단심리라. 히키가야. 너는 사람의 마음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보고 있지 않느냐?"
"자신이 지나치게 예외적이라, 기계적으로 보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뿐입니다"
모두의 틀 안에 있기를 싫어하는 나는 그것만으로도 남들과 다르다. 그렇기에 나는 많은 사람이 맞다고 하는 학문을 통해서 밖에 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너니까 다른 누구보다도 남을 보려고 하는걸지도. 기계적으로 보면서도 결코 틀리지 않듯이. 꽤나 귀중한 자질이다"
"……히라츠카 선생님도 그렇게 말하는군요"
히라츠카 선생님의 말은 기묘하게도 어제 유키노에게 들은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어쨌든 간에 수고했다"
운전석에서 한손을 뻗어, 히라츠카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보다, 위험하잖아. 학생의 목숨을 떠맡고 있으니까 한손으로 운전하는거 진짜 그만두세요. 거기다……애 취급 당하는것 같아서 왠지 부끄럽고.
"……잡니다"
말하고서 나는 눈을 감는다. 애 취급 해줬으니까 잠들어서 히라츠카 선생님을 혼자로 만들어도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들, 수고했다. 집에 돌아갈때까지가 합숙이다. 돌아가는길에 조심하도록. 그럼 해산"
히라츠카 선생님의 우쭐한 얼굴이 약간 짱난다. 그보다 합숙이 아니라 자원봉사였고. 집에 돌아갈때까지가 자원봉사라고 하면 어감이 안좋으니까 합숙으로 한건가. 즐거워보이니까 뭐라 하진 않겠지만…….
"오빠야, 어떻게 집에 갈래?"
"케이요 선에서 버스지. 집에 갈때 쇼핑하고 집에 가자"
"예잇썰-!"
코마치가 기운차게 대답을 한다. 자다 일어났는데 기운 넘친다.
"언니야도 같이 집에 갈래-?"
"그렇구나, 같이 집에 갈까"
코마치가 유키노에게 안겨붙고, 유키노는 그런 코마치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보다, 그 자매설정 아직도 이어지는거냐. 코마치를 뺏긴것 같아서 좀 외롭다.
각자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으니, 어딘가 낯익은 검은색 콜택시가 우리들의 눈 앞에 옆으로 정지했다.
앞인데 옆으로라니 위화감이 느끼는 신기함. 일본어로는 맞는 표현이긴 하지만.
운전석에서 노신사가 내리고 뒷좌석 문을 연다.
안에서 나온 것은 하루노 씨였다.
"하-이, 유키노"
"언니……"
"호아-, 닮았어……"
코마치가 중얼거리니 유이나 토츠카도 그에 동조한다.
"유키노가 여름방학에 집에 돌아온다고 했으면서 전혀 돌아오지 않았는걸. 언니가 걱정되서 마중 나왔어!"
그렇게 말하며 하루노 씨는 주위를 빙글 돌아본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고 생긋 웃고는 돌격해왔다.
"아, 히키가야다! 데이트? 데이트였어? 마침내 사귄거야? 보고해주지 않으면 누나 슬프다구! 요놈요놈!"
"또 그겁니까……. 그저 부의 합숙으로 같이 지냈던것 뿐입니다"
유키노를 부추기기 위해 일부러 하고 있는 거겠지만, 나에 대해서 지나치게 같은 패턴 아닙니까? 팔꿈치로 쿡쿡 찌르는거 전에도 했었던것 같은데.
"저, 저기. 힛키가 싫어하니까"
유이가 내 팔을 잡고 하루노 씨에게서 떼어냈다. 그러자 하루노 씨의 움직임이 멈추고 유이를 이상하다는 듯이 흘려본다. 그 시선에는 일순이지만 날카로움이 섞여 있었다.
"어- 음, 새로운 캐릭터네-. 너는……히키가야의 여친?"
"아니에요! 힛키는 유키농 꺼에요!"
야. 야. 언제 내 소유권이 유키노에게 양도된건데. 어디 정보? 그거, 어디 정보?
"아, 역시 히키가야는 유키농 꺼구나. 유키농을 방해하는 애라면 어쩌지 생각했어. 나는 유키노시타 하루노. 유키노의 언니에요"
"안녕하세요……. 유키농의 친구 유이가하마 유이에요"
"친구라아……"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목소리만이 무척이나 차가운것이었다.
"그런가. 유키농에게도 제대로 친구가 있구나. 다행이다. 안심했어"
말도 어조도 보통인데, 어딘가 가시를 느낀다. 그런 하루노 씨의 태도에 조금 웃어버릴것 같다.
그녀의 태도에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유이 개인에게 무슨 감정을 갖고 있는것이 아니다. 그저 그녀는 걱정하고 있는것 뿐이다. 오로지 유키노를.
유키노에게 있어 여자란 끊임없이 유키로를 배척하는 측이었다. 그러니까 유키노의 여자애 친구라는 유이를 판단하려고 한다. 그리고 잠시, 알게 모르게 미묘한 가시를 세워서 유키노들의 적으로서 인식시키려고 한다. 유키노에게 일부러 미움사고, 그 친구도 자신을 싫어하게 되면 둘의 의견은 일치할테니까. 내가 치바 마을에서 츠루미들에게 한것 처럼, 적을 만드는건 집단의 단결력을 높이는 간단한 방법이다.
덧붙여 나의 반응이 유이와 다른것은 내가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유키노에게 호의를 향하는 측이었을 테니까. 어라, 그렇게 생각하면 나 딱히 하루노 씨에게 인정받은거 아니잖아. 언니가 인정해준다는걸로 인식되던 것으로, 유키노를 대하는 대응을 비호하는 측으로 고정시키려고 한것 뿐이잖냐. 윽, 굉장히 부끄럽다.
"하루노, 그 쯤 해둬라"
"오랜만, 시즈카짱"
"그 호칭은 관둬라"
만화판으로는 시즈카짱이군요, 압니다.
"선생님, 유키노시타씨랑 아는사이입니까?"
"옛 제자다"
부끄러운 자신의 착각을 누르고, 늘어난 정보를 분석할 작업으로 사고를 향한다.
필요한 조각은 또 조금 늘어났다. 하지만 그래선 부족하다. 조금 더…….
"그럼 유키노. 슬슬 갈까. 엄마가 기다리고 있어"
엄마. 그 단어에 유키노가 흠칫 반응하고 표정을 지운다.
……또 그 얼굴인가. 어제의 나를 때려주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제대로 어제 유키노와 대화했으면,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코마치, 모처럼 불러줬는데 미안해. 너희들과 같이 갈 수 없겠어"
"하, 하아……. 집 사정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어딘가 형식적인 유키노의 태도에 코마치는 동요를 감추지 못한다. 방금전까지 자매놀이 했었으니, 갑자기 저렇게 대하면 대응할 수 없으니까.
"……안녕"
사라질법한 목소리로 유키노는 작별을 고한다.
"유키노!"
그대로 차에 오르려고 하는 유키노의 뒤로 부른다.
조각은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저 얼굴로 유키노를 보낼 수는 없다.
아마, 유키노는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학교로, 하루노 씨의 모교에 진학했다. 여기까지는 맞다고 생각한다.
내 가설이 올바르다면, 유키노의 진학처로서 이 학교는 상응하지 않을테니까 당연하다.
그럼 나는 어쩌면 좋은가. 어떻게 하면 유키노를 저런 표정을 짓지 않게 하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유키노는 스스로 그걸 선택했다.
"대학교에 대해서 어머니와 얘기해봐. 아마, 그것만이면 될거야"
뒤돌아본 유키노에게 그렇게 말한다.
유키노는 나를 보고 살짝 미소짓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
"히키가야. 지금 그 말 어떤 의미인지 누나 무지이 신경쓰이는데. 그럼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까 다음에 또 물어볼게. 바이바-이"
유키노와 하루노 씨를 태운 콜택시가 출발한다.
정보는 부족하다. 불확실한 소리를 해버렸다. 유키노가 저런 표정을 짓게 하고 싶지 않다. 그것만을 위해 기대를 갖게 해버리는 말을 해버렸다.
만약 내가 한 말이 잘못 되었다면. 유키노에게 희망을 갖게 해버려서, 그것이 잘못이었다면.
'자신이 한 일은 스스로 책임진다'가 나의 신조라고는 해도, 나는 어떻게 유키노에게 갚아주면 좋을까.
사라지는 콜택시를 보면서 나는 내가 해버린 말의 무게에 눌리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 원작 5권분량 13
유키노와 학교에서 헤어진 그날 밤, 유키노에게 메일이 왔다. 역시 원망하는 말인가 싶어 쭈뼛쭈뼛 메일을 열어보니 카마쿠라 사진을 독촉하는 메일이었다.
평소와 다를바 없는 그 내용에 나는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린다.
아마. 아마도지만, 나는 잘못하지 않았던 것이다.
원망하는 말도 없거니와 감사하는 말도 없다. 정말로 평소대로의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느꼈다.
유키노의 가족 관계가 어떤식으로 진전했는지 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좋은 방향으로 향했다는것 만큼은 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일처럼 기쁘다.
그 후로 나와 유키노가 나눈 메일에 조금이지만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하루에 두번, 카마쿠라의 사진을 보낼 뿐이었지만, 그 이외에 유키노로부터 잡담성 메일이 오는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지금 뭐하고 있냐거나, 이런 고양이 사진을 찾았다거나. 그런 내용이다. 거기에 나도 공부나 예비교의 짬을 보고 답신한다. 그런 대화를 조금이지만 즐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이다 유키노. 좋아하는 가죽을 물어보는건 그만두지 않겠냐? 까놓고 말해 무섭다. 전에 목걸이를 달아주겠다고 했는데, 그거 아니지? 아니지? 왜 그런걸 묻는거야? 라고는 도저히는 아니지만 무서워서 물을 수 없다.
이래저래 하여 시간은 흘러 치바시민 불꽃놀이 대회 날이 찾아왔다.
솔직히 나는 불꽃에 흥미는 없다. 까놓고 말해 저런건 단순한 염색반응이다. 불꽃놀이 보러 안갈래? 라고 물으면 "하? 집의 화로에서 소금이라도 태워라" 라고 답할 것이다. 그 정도로 흥미는 없다.
없지만……,
"아, 힛키. 오래 기다렸지-!"
어째선지 유이랑 둘이서 불꽃놀이를 보러가게 됐다.
일의 전말은 이렇다. 어느날, 유키노한테서 불꽃놀이 대회에 갈거냐고 물어서 나는 거기에 "코마치와 타이시가 가니까 감시 겸 보호자 겸 지갑으로 간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키도 같이 갈지도. 그 녀석 브라콘이니까" 라고 답신했다. 그 후에 여느때처럼 시간이 지나고나서 날아온 유키노의 메일에는, "유이랑 가. 코마치의 허가는 받아뒀어. 유이는 길을 잃지는 않을테니까 애취급 하지 말도록" 라며 의역하면 그런 느낌으로 쓰여 있었다. 어째서? 라고 물어도 됐으니까 라고만 돌아와서, 나는 추궁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니, 포기하긴 했지만 아직 납득은 하지 않았다.
코마치들의 인솔을 사키에게 맡기는건 좋다 치자. 브라콘인 사키니까 코마치와 타이시가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고. 실제로 저 둘은 단순한 친구니까. 타이시는 그렇다치고 코마치에게 그럴 마음이 없다는건 알고 있으므로 그 부근은 안심하고 있다.
그저 왜 나와 유이가 같이 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것 만큼은 모르겠다.
"힛키? 이-봐!"
멍하니 생각에 잠긴 나를 유이가 노려본다.
뭐, 생각해봐도 모른다면 어쩔 수 없다. 이미 이렇게 만난 이상 생각해봐야 소용 없으니까.
"어, 어어. 미안미안. 유이, 입고 왔구나. 잘 어울리는데"
"그치! 그치-!"
내가 칭찬하니 유이는 보여주듯이 양손을 벌린다.
"그럼 갈까"
"오-!"
회장에 도착하니 거기는 인파가 넘치고 있었다.
좋구만, 역시 좋다. 나에게 아무런 흥미도, 관심도 갖지 않는 사람무리를 보면 역시 마음이 진정된다.
"저, 저기? 뭐부터 먹을까!"
"이런데는 비싼 가격에 비해 맛없으니까 먹고 싶지는 않다만"
내가 그런 말을 하니 유이가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뭐냐? 틀린건 없잖냐. 절대로 스스로 만든 편이 싸고 맛있다. 다른건 감자랑 버터나 프랭크 후르츠 정도겠지. 저건 누가 만들어도 같은 맛이 될테니까.
"이런데 오면 그런걸 하는거야! 이러니까 힛키는……"
외인처럼 손을 벌리며, 이거 참, 이라는 듯 고개를 젓는다.
"뭐, 네가 먹고 싶다면 상관없지만. 그 대신에 남기지 마라"
"에- 힛키도 먹어-! 나눠 먹는 편이 여러가지로 먹을 수 있어서 이득이니까!"
"……알았다"
와-아- 거리며 뛰어가는 유이의 뒤를 쫓는다.
"아, 사가밍이다. 얏호-!"
"오, 유이"
아는 사이인지 유이가 한 명의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너, 두고 가지마"
"아, 히키가야도. 유이, 히키가야랑 같이 있었구나"
나는 이 녀석을 모르지만 저쪽은 나를 알고 있다. 왠지 그런 상황 많은데.
"맞아-! 집에서 안 나오는 힛키를 지켜달라고 부탁받아서. 이야- 믿음직스런 여자는 힘들구나-"
그 힛키는 더블미닝이냐? 전혀 안 어울리거든, 그거.
"나는 집에서 안 나오는게 아니다. 나갈 필요가 없는것 뿐이다"
찰딱, 하며 유이의 머리를 가볍게 친다.
유이는 불만스럽게 나를 본다.
"집에서 안나온다는건 변함없잖아-"
"공부하고 있다, 공부. 그러고보니 너 과제는 끝냈냐?"
"윽. 왜 그런 애길 꺼내는거야, 힛키는. 그런건 잊고 오늘은 불꽃놀이를 즐겨야한다구!"
"끝내지 않았구만……. 절대로, 보여주지도 가르쳐주지도 않을거다"
"에-! 마지막 일주일 정도는 힛키한테 가르쳐달라고 생각했는데. 괜찮잖아, 가르쳐줘-"
"단고히 거절한다"
내 팔을 잡고 흔들어대는 유이에게 NO를 관철한다. 과제는 자신의 힘으로 하지 않으면 의미 없잖냐.
그런 우리들의 대화를 사가밍이라 불렸던 여자가 약간 어두운 얼굴로 보고 있는걸 깨닫는다.
그 얼굴을 보고 있었는지 유이가 화제를 바꾼다.
"사가밍은 누구랑 왔어?"
"나? 나는 유이랑 달리 여자끼리 불꽃놀이 대회 온거야-. 유이는 좋겠다-. 나도 청춘하고 싶다-"
"에-!? 뭐야 그 수영대회같은 발언! 전혀 그런거 아니야-!"
여자투성이 불꽃놀이 대회에 오는건 청춘이 아닌 모양이다. 내가 알고 있는 청춘 속에는 친구랑 꺅꺅 불꽃놀이 대회를 즐기는것도 들어있었는데, 아닌가. 몰랐다.
그보다 왜 어두운 표정인채로 있는걸까, 이 녀석은. 내팽겨쳐진건가? 잘 모르겠군.
"아, 둘의 방해해서 미안해. 나 갈게. 유이, 히키가야 또 봐-"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사가밍을 쳐다본다.
옆을 보니 유이가 으음 신음거리고 있었다.
"우으-. 어쩌지……. 왠지 오해받아버렸어-. 유키농한테 혼나겠어……"
무슨 오해인건지, 왜 거기서 유키노가 나오는건지, 여러모로 신경쓰이지만 지금은 내버려두자.
그보다도,
"그래서 결국 뭐 먹을거냐?"
"에, 아, 응. 그게……타코야끼! 타코야끼 먹자-!"
생각전환을 한건지, 유이의 얼굴이 파악 꽃을 핀다.
타코야끼, 타코야끼- 거리며 앞을 걷는 유이를 따라가면서 문득 생각한다. 결국 그 녀석 누구야?
도쿄만에 해가 지고 불꽃놀이 쏘기까지 조금만 더 있으면 시작할 무렵. 나와 유이는 아직 회장을 헤메고 있었다.
"시트를 갖고 오긴 했지만. 이래선 서서보는 수 밖에 없잖냐"
"우, 우으. 미안. 내가 계속 쪽자를 해서 그렇지. 진짜 미안해"
침울해하는 유이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툭툭 두드리듯 쓰다듬어준다.
"바보냐. 그런건 오차 범위다 오차범위. 분명 앉아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포장마차를 돌고 있을때보다도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걸테니까. 딱히 네가 신경쓸 일은 아니야"
"……고마워"
"뭐, 조금만 더 찾아볼까. 나는 서서봐도 괜찮지만, 유이는 힘들거 아냐. 최악의 경우엔 유료석이라도 좋고. 내가 낼 테니까. 자, 가자"
에, 미안하잖아 라며 사양하는 유이의 팔을 끌고 유료석으로 걷는다.
유이가 들키지 않도록 하고 있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익숙치 않은 나막신으로 힘들어보였다. 장소를 찾아 돌아다니는것도 한계일테니,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게 최고다.
로프로 구분 지어진 유료 구역에 도착해서, 접수처 쯤을 돌아보고 있으니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어라-? 히키가야잖아"
뒤돌아보니 굉장한 미인이 거기에 있었다.
돌아본 곳에 있던 하루노 씨를 따라 유료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아버지 대리라서. 인사만 하느라 지루하던 참이야. 이야- 히키가야가 와줘서 다행이야-"
대리, 라. 하루노 씨의 그 말로 모든것이 이어진 느낌이 들었다.
대리로서 이 자리에 하루노 씨가 있다. 그건 하루노 씨가 현의회인 아버지 대리로서, 충분하게 주위에서 인정받는다는 거겠지. 그렇지 않는다면 아내인 어머니나 비서 등, 확실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을테니까.
이걸 딛고 생각해보면 유키노시타가는 현의에서 후계자인 하루노 씨의 뒤를 유키노가 쫓는것을 바라지 않는다. 라는 답이 나온다.
그야 그렇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키노는 현의같은 일에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다. 사교성이 없다는것도 그렇지만, 청탁 등을 합병할 필요도 있는 정치 세계에 있어 그 녀석의 강직한 성격, 정의감은 방해가 될 뿐이다. 그야 어머니도 걱정하니 진로 같은데 방해를 하겠지. 언니의 뒤를 쫓는데 노력하여, 설령 쫓아갔다고 해도 그 앞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보다 유키노가 정한 진로, 교다이 경제학부라는건 분명 어머니도 원했을 것이다. 하루노 씨가 현의의 뒤를 잇는다는건 회사 쪽은 유키노가 잇게 되는 걸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페이퍼 컴패니 설립에 맞춘 진로도 쓸모없지 않았군. 왜 유키노가 경제학부로 진학을 정한것 까지는 모르겠지만, 교다이를 지향한건 내가 이유인 모양이니까.
"자자 둘 다. 일단 자리에 앉아!"
"아, 감사합니다"
생글 웃는 하루노 씨의 말을 따라 둘이서 의자에 앉는다. 현의 때문에 준비된 자리인 만큼, 여기서라면 불꽃이 잘 보일것 같다.
"우와-, 굉장히 좋은 자리. 고급이야……"
내 옆에서 유이가 감탄의 목소리를 낸다. 그게 들렸는지 하루노 씨가 후훗 미소짓는다.
"뭐 그래. 알고 있지? 우리 아버지 일. 이런 자치체 계열의 이벤트에는 강하거든"
"현의는 시에도 세게 나갈 수 있으니까요"
"아, 과연 히키가야. 예리한데. 하지만 이건 어느쪽이냐고 하면 현의보다는 회사 쪽이야"
그치만 하루노 씨가 대리지요? 라고는 묻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유키노시타가의 문제――아니, 유키노가 고민하고 있었다고 하는 편이 올바르지만――는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꼬리를 잡고 답을 맞춰볼 필요는 없다. 하루노 씨도 그리고 어머니도 유키노를 엄하고 다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걸 깨닫지 못한 유키노는 더는 없으니까. 유키노는 가족의 상냥함을 깨달았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첫 번째 불꽃이 쏘아졌다.
색이 영롱한 큰 원이 음악에 맞춰 밤하늘에 피어난다.
어디, 분명 흰색이 알루미늄이고 금색은 티타늄이었던가-. 그런 풍정이고 나발이고 한 생각을 하는 내 옆에서 유이가 감동을 보인다.
"굉장히……이뻐……. 유키노도 올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이런 사교성 자리는 장녀인 내가 할 일이야. 말했지, 아버지 대리. 딱히 놀러온것 만이 아니니까. 그거 옛날부터 어머니의 방침이야"
"그치만 유키농이 와도 문제 없는게……"
"음-, 거기는 어머니의 의지니까 라고 밖에 말 못하겠네. ……거기다, 알기 쉬운 편이 좋잖니?"
"분명 둘 모두 닮았으니까, 한 명만 있으면 착각할 일은 없겠지만요……"
자, 지금 일련의 하루노씨의 발언을 유키링걸(유키는 유키노의 유키가 아닌, 유키노시타가의 유키)을 통해 물어보자.
유키노는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니까, 이런건 나의 일이야! 유키노가 와도 나와 비교당해서 괴롭기만 할 테니까 그 편이 나아!
뭐, 이런 거겠지. 유키노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조금 깬다.
실제로는 그거 이외에도 하루노 씨를 후계자로서 대외적으로 넓히기 위해서라던가, 그런 생각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현의로서 측면이다. 유키노는 그쪽 밖에 보지 않았던걸지도 모르지만.
아마 유키노는 가족을 가족으로서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현의라던가, 후계자라던가, 그런 필터를 통해서 밖에 가족의 추억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가족의, 유키노를 생각하는 서툰 다정함을 깨닫지 못했다. 분명 그런걸테지.
"있잖아, 우리 집은 어머니가 강해서 무섭거든-. 무슨 일이든 결정하고 따르게 하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이쪽이 타협하는 수 밖에 없어서 굉장히 힘들어-. 히키가야도 그렇게 생각하지?"
하루노 씨는 내가 그날 학교에서 유키노에게 했던 말을 알고 있다.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당연하다. 그리고 그 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고 있기에 더욱, 굳이 어머니의 인상을 내게 물어온다.
이건 확인인 것이다. 너는 제대로 보고 있니, 라고. 적당한 소리를 하며 파고 들어온것 아니니, 라고.
그럼 내가 해줄 답은 하나다.
"강하고, 그리고 다정한 어머니군요"
그보다, 제대로 얘기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건 나 뿐인가. 특히 어머니.
지배라던가, 소유욕같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건 알고 있을테니까.
유키노는 하루노 씨랑은 다른 사람이라서 남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비교하든 제대로 알고 있다고, 그러니까 무리하게 하루노 씨의 뒤를 좇을 필요 없다고. 그렇게 말해주면 될 것을.
"……그런가. 히키가야는……제대로 눈치챘구나"
"뭐, 확신을 갖게 된건 오늘이지만요"
고개를 숙이고, 미약한 목소리로 하루노 씨는 말한다.
"그래……. 굉장하네, 히키가야는. 우리들이 줄곧 못했었는데, 유키노에게 들켜버렸는걸. 유키노에게 미움받아도, 언젠간 알아줄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서 열심히 해왔는데. 전부……소용 없었던걸까……"
"아니, 소용 없던건 아니죠"
내 말에 하루노 씨는 고개를 팟 들어 나를 본다. 그 얼굴에는 평소 미소도, 때때로 보여주는 엄한 표정도 아닌, 지금까지 보아온 하루노 씨하고도 다른 표정이었다.
"그 녀석이, 유키노가 제 말로 깨달았으면, 그건 하루노 씨나 유키노의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노 씨들이 없었다면, 유키노가 선택한 길이 조금이라도 틀어졌다면, 저와 유키노는 만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럼 지금을 만들어놓은 하루노 씨들의 마음은 절대로 소용 없던게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루노 씨들의 서툴기 짝이 없는 다정함이 있기에 처음으로 지금의 유키노가 있다. 어쩌면 유키노는 소부고로 진학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봉사부 따위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많은 것을 만들어낸 것은 절대로 소용 없는 일이 아니다.
"하루노 씨들의 서툴기 짝이 없는 다정함이 있었으니까 저와 유키노는 만났습니다. 그것에 감사는 해도 소용 없었다고는 절대로 하지 않아요"
"그런가……. 고마워, 히키가야"
하루노 씨는 조금이지만 미소짓는다. 내 마음이 얼마나 전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다소나마 전해졌다고 믿고 싶다.
"그보다, 유키노도 그렇지만 하루노 씨도 솜씨 좋아 보이면서도 의외로 서툰 구석이 있다구요. 그런 점은 귀엽다고 생각합니다"
"뭐, 뭐야, 갑자기-! 그런걸로 귀엽다는 소리 들어도 전혀 기쁘지 않거든!"
볼을 부풀리며 하루노 씨가 반박한다. 다행이다, 평소의 그녀다.
그 후에도 하는 말마다 귀엽다 귀엽다며 하루노 씨를 놀렸다. 뭐, 하루노 씨의 생각을 내가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다고는 해도, 부끄럽게 해버린건 확실하다. 조금 정도는 되갚아줘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지나쳐버린 모양이라서, 최종적으로,
"진짜-! 누나 화났어! 그런 심술궂은 히키가야한테는 귀여운 유키노는 안 줄거야!"
라고 해버렸다.
그것에 대해,
"안 준다고 해도 갖고 싶으면 힘을 써서라도 뺏으러 갈겁니다. 유키노도 그걸 바란다면"
하고 폼잡고 말해봤다. 뭐, 갖고 싶어질 예정은 지금은 없다. 거기다 유키노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말하는것 만이라면 좋다.
자, 그런 불꽃놀이의 귀가 길이다.
덧붙여 그 후에 나와 하루노 씨 사이에 제대로 된 대화는 성립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하루노 씨는 "흐응-" 밖에 답하질 않아, 줄곧 나를 사이에 두고 유이와 즐겁게 떠들었다.
……당신, 유이를 경계하던거 잊고 있지 않아? 학교에서 만났을때, 유키노를 배신하지 말아주라고, 무척이나 경계했잖습니까-.
아니, 대화에 끼워줬으면 하는건 아니지만. 덕분에 차분하게 불꽃을 볼 수 있어서, 불꽃놀이가 좋다는것도 깨달았고. 저거 단순한 염색반응이잖냐. 장인의 혼을 느꼈다. 저 아름다운 동심원이라던가, 어느 정도의 시간을 소비하여 손에 넣은 기술인건지 굉장히 신경 쓰이고. 아, 결국 남들과 다른 불꽃놀이의 즐기는 방법을 알았다.
"이야-, 힛키 멋졌어-! 힘을 써서라도 뺏으러 갈거라던가, 유키농이 들었으면 기뻐할거라 생각해-!"
"아니, 어째선데. 기뻐할리 없잖냐"
유키노와 나의 관계는 친구이며, 그 이상은 아니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까놓고 말해 나는 친구가 있던 적이 없으니까. 유키노가 내게 대하는 태도가 친구의 그것인지, 그것과는 다른건지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에-. 기뻐할거라 생각하는데-. 왜냐면 유키농도 힛키랑 있으면 굉장히 즐거워 보인다 뭐. 그리구, 유키농이 즐거워보이면 나도 굉장히 즐거워"
"……즐거워보이는게 왜 기뻐하는거랑 이어지는지 전혀 모르겠구만"
"힛키는 말야, 유키농이랑 있으면 즐겁지 않아?"
"즐겁다고 하면 즐겁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 녀석이 신경 쓰인다. 어째설까. 그만 신경쓰인다고나 할까-"
"저기저기! 그거 러브? 러브야?"
유이는 눈을 반짝이며 빼꼼 내게 얼굴을 가져간다.
"아냐. 뭘까나. 코마치를 보고 있는거랑 가장 가까운걸지도. 적어도 러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야"
내가 말을 하니 유이가 조금 표정을 흐린다.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힛키는 말야, 코마치랑 있을때도 즐거워 보이지만, 유키농이랑 있을때는 완전 다른 얼굴 하고있어. 그러니까 절대로 아니야"
"그, 그런건가?"
응. 있잖아, 힛키. 유키농을 제대로 봐줘. 유키농이랑 코마치는 다르다고, 제대로 깨달아줘"
평소하고는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유이에게 나는 끄덕이는 수 밖에 없었다.
다르다라. 나는 남에게 향하는 감정을 코마치와 그 이외라는 두 종류 밖에 갖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유키노를 향한 감정을 코마치에게, 동생에게 향하는 감정으로서 분류했다.
하지만 그것이 다르다고 하면. 코마치와 유키노와 그 이외라는 세 종류가 됐을 때, 나는 유키노에게 향한 감정을 어떻게 분류하면 좋을지 모른다.
"알았다. 네가 그런다면 나도 제대로 생각할게. 생각할 시간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어쨌든 집에선 안 나가니까"
내가 유키노가 깨닫지 못한 점을 깨달은 듯이, 내가 깨닫지 못한걸 유이는 깨달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유이의, 내게도 그것과 가까워졌으면 하는 마음을, 나는 헛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응. 제대로 생각해줘. 빼먹으면 벌줄거야!"
"어, 어어"
자신을 보고, 자신이 깨닫지 못한 점을 깨달아주는 존재. 그런걸 친구라고 부른다면. 이 녀석은, 유이가하마는, 내가 깨닫지 못한 사이에 친구가 된걸지도 모른다.
코마치와 유키노와 그 이외. 그 세 종류에 친구라는 항목을 더해서 네 종류로 한다. 조금이지만 세계가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14
여름방학도 끝나고 2학기가 시작했다. 계절은 가을. 전국적으로 문화제의 계절이다.
태풍이 지나간 다음날, 나는 혼자 부실에서 눈을 떴다. 부실에서 유키노랑 유이랑 점심을 먹은 후에 아무래도 잠들어 버린 모양이다.
태풍의 영향으로 학교가 쉬게 된다, 혹은 지각해도 문제 없다고 예상해서 철야로 공부했었지만, 예상밖으로 속도를 빠르게 진행한 태풍은 내 생각따위 알바 아니라는 듯이 태평양으로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잠부족인 상태로 등교하게 된 것이다. 진짜 분위기 읽어라. 태풍이니까.
뭐, 어쨌든 5교시는 LHR이었을테고, 문화제 이래저래 준비할 뿐이니 땡땡이 쳐도 문제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 부실을 나와, 교실로 돌아온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목도하게 됐다.
문화제 실행위원 : 히키가야 하치만
경악의 사실에 무심코 동요해버린다. 나의 지루한 일상을 소실시킨것은 대체 누구의 음모인건가. 앞으로 찾아올 여러가지 성가신 일에 분개할 마음도 들지 않아, 우울한 한숨을 쉰다. 부추기고 부추겨서 폭주시켜, 반을 분열시켜서라도 지워버려야 할까.
"설명이 필요하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히라츠카 선생님의 음모였습니까"
"벌써 다음 수업인데도, 아직 누가 실행위원을 할건지 안 정해져서 말이다. 그러니까 히키가야로 해뒀다"
완전히 의미불명이다.
"……반을 이끌어가는 입장은 저하고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집단심리를 유도하면 된다. 네가 치바마을에서 한것 처럼 말이다"
실제 사례를 언급해버리면 해줄 말도 없다. 할 수 있으니까, 해라. 단적으로 말하면 그거다.
"……우울하다"
내가 어깨를 풀썩 떨구니, 그걸 긍정으로 받아들였는지 히라츠카 선생님이 미소를 짓는다.
"알았으면 됐다. 자, 뒷일은 방과후에 정해라. 수업을 시작 할 수 없잖냐"
방과후 교실은 난리였다.
여자 실행위원을 정하면 되겠지만, 전혀 정해질 기색이 없다. 뭐, 그것도 당연하겠지. 어쨌든 상대가 나다. 반에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녹아들지 않고, 애시당초 대화가 성립하는지 조차 수상쩍다. 그런 인간과 조를 짜려고 보통은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너 해봐-, 에- 그치만- 같은 대화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것만 아니라, 때때로 힐끔 이쪽으로 시선을향하는 모습도 보인다. 같은 반의 여자한테 주목받는다고 하는, 일찍이 없는 상황에 상당히 거북하다.
내가 실행위원이니까 정해지지 않는다. 정해지지 않으니까 집에갈 수 없다. 적당히 귀찮아진 나는 어떤 제안을 해보기로 했다.
"하야마. 너, 나랑 실행위원 바꿔라. 반에서 인기많은 네가 실행위원을 하면 입후보자도 나올거 아냐. 어차피 히라츠카 선생님이 떠넘긴것 뿐이니까, 나는 책임에서 도망칠 수 있고, 여자 실행위원도 정하기 쉬워지지. 그리고 너는 실행위원 실적으로 내신점이 올라간다. 좋은 일 투성이잖아"
"아니, 그건 좀 아니라 생각하는데 히키타니. 한번 정해진걸 번복하는건 좋지 않잖아?"
"괜찮아 괜찮아. 뿟뿌쿠푸-"
"안 돼, 히키타니!"
나와 하야마의 대화에 끼어든것은 에비나였다.
"하야토는 반의 상영물에서 중요한 역을 할거야! 아니면, 대신에 히키타"
"미안, 하야마. 지금 이야기는 없던걸로 해다오"
나의 하야마에게 몽땅 떠넘긴다는 작전은 순식간에 진압되었다.
반의 상영물이란 어린 왕자 연극이다. 그것만 보면 평범한, 극히 일반적인 고등학생 다울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감독이 에비나만 아니라면.
기획서 단계에서 이미 썩은 오러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거. 확실히 배역에서 하야마가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하야마를 필두로 한 인기 캐스트로 완전 무대화! 라고 쓰여 있었지. 그야 무리다.
"그럼 유이. 너 실행위원 해줘"
같은 반 안에서 나와 회화가 성립하는 여자는 네 명. 유이와 미우라와 에비나, 그리고 사키 뿐이다. 그 중에서 유이가 타당하군. 덧붙여 대화가 성립하는 인수라는건, 동시에 내가 이름을 파악하고 있는 여자의 숫자이기도 하다.
"에, 나? 응-, 괜찮긴 한데. 그치만 내가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유이가하마가 해주면 고맙다. 인망 있고, 반 애들을 제대로 모아줄거라 생각하고, 적임이라고 생각하는데"
내 제안을 지금까지 반을 모으려고 사방팔방 고생하던 반장이 보증한다.
"안 돼!"
이번에는 미우라가 스톱을 걸었다.
"유이는 나아랑 같이 호객역이니까 무리!"
거부의 말과 함께 반장을 째릿 노려본다. 그런 미우라의 시선에 지금까지 반을 제대로 모으지 못했던 반장이 견딜 수 있을리 없어서,
"그, 그렇구나. 호객도 중요하니까"
속공으로 패배했다.
"그래그래. 호객도 중요. 아니, 나 언제 호객역으로 정해졌어!?"
에비나가 감독인 이상, 엄마 미우라가 그 서포트에서 빠질리는 없으니까. 호객역이라면 당일까지 대단한 일은 하지 않을테고, 충분히 서포트로 돌 수있다. 그래서 미우라의 안에서는 유이도 같이 서포트 해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엣? 가, 같이 안하는거야? 뭐 잘못됐어? 나아의 지레짐작……?"
"아니, 내가 잊은것 뿐이다. 미안하다 미우라"
"그, 그치! 히키오, 잊지 마!"
예상밖으로 허둥대는 미우라에게 가볍게 말해준다. 뇌근육인 만큼 재기하는것도 빠르다.
"그보다 하야마. 이거 어쩌면 좋을거라 생각하냐?"
결국 나와 대화 가능한 여자가 실행위원을 할 수 없다는걸 알았을 뿐이다. 덧붙여 사키는 처음부터 수에 넣지 않았다. 타이시가 관계없는데 저 녀석이 수긍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렇게되면 실행위원이 된 여자한테는 하야마와 일일 데이트권을 진증하자고. 그러면 바로 결정될것 같고"
"……그러니까 왜 히키타니는 나를 말려들게 하려는걸까. 히키타니와 데이트권을 주면 될거 아냐"
그건 말이다, 너가 나하고는 사이 좋아질 수 없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지. 내가 하야마하고 어떤 관계를 가지려고 해도, 우리들 사이에 우정같은게 생겨날 일은 없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적당하게 휘감는다. 원망할거면 자신의 발언을 원망해라.
"각하다. 너라면 모를까 나랑 데이트해서 기뻐할 녀석이 없잖냐. 그보다 너도 대안내봐, 대안"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군,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을법한 사람에게 부탁하는건 되겠어?"
더 이상 말려드는건 싫다고 생각했는지는 모른다. 모르지만 하야마는 어떤 인물이 상응한지 반장에게 확인을 구한다.
"그럼 사가미가 좋지 않아?"
"그렇군. 사가미라면 제대로 해줄것 같고"
반 애들 시선이 일제히 사가미 뭐시기에게 향한다. 사가미를 모르는 나는 그런 시선의 이동에 뒤다른다.
"나, 나? 내가 할 수 있을까나-. 저얼대로 무리라니까!"
시선 끝에는 얼굴 앞에서 손을 흔드는 여자가 있었다. 약간 어딘가에서 본 적이 있는것 같다. 뭐, 같은 반이니 당연한가.
"사가미, 그걸 어떻게든 부탁할 수 있을까?"
"……뭐, 달리 하는 사람이 없다면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 내가 할게-"
하야마가 밑져야 본전으로 부탁해서, 사가미 뭐시기가 허락한다.
그냥 처음부터 하야마가 하면 좋았잖아.
자, 그 날 방과후 봉사부의 일상이다.
"에-, 유키농도 실행위원이야-? 나도 실행위원 했으면 좋았을걸-!"
우연히도 유키노도 문화제 실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요컨대 봉사부 중에서 유이만 따돌려졌다는 것이다.
잽싸게 오늘 문화제 실행위원회가 집행되었기 때문에, 불쌍하게도 유이는 혼자 부실을 지키게 되버렸다.
"뭐, 유이는 에비나의 서포트라는 중요한 역할이 있으니까 어쩔 수 없잖냐"
"그렇기는 하지만-. 그치만, 그래선 부활동이……"
오늘 혼자 부실을 지키게 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앞으로 문화제가 끝날때까지는 봉사부 활동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유키노를 정말 좋아하는 유이로서는 그것이 불만인 것이다.
"그거 말인데……. 유이가하마에게 부실을 맡기게 해버리는것도 미안하니까, 문화제가 끝날때까지는 부활동을 쉬려고 생각하는데"
"그렇군. 그 편이 좋을지도"
"에-! 싫어-!"
유키노가 말하기 어렵다는듯 휴식을 고하고, 나는 거기에 찬동한다. 하지만 유이가 거기에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너 말이다, 유키노도 좋아서 그런 소리를 하는건 아니라고? 얼굴 보면 그 정도는 알거 아냐.
내가 유이에게 충고를 해야할지 망설이던 그 찰나, 부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들어오세요"
팔에 매달리는 유이를 유키노가 다정하게 떼어내면서 대답을 한다.
"실례합니다-"
들어온건 내가 오늘 처음으로 그 존재를 인식한 여학생이었다.
사가미 뭐시기. 오늘 행해지는 문화제 실행위원회에 있어, 위원장으로서 입후보한 의욕이 넘치는 여자다. 같은 반에서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을텐데, 실제 위원회가 시작하니 위원장으로 입후보했다. 그 자세가 내게는 이해 되지 않아 인상적이었다.
"사가밍? 무슨 일이야?"
사가밍. 그 별명은 어디선가 들은적이 있는것 같은데…….
"사가밍은 그때 불꽃놀이 대회에서 만났던 여자냐?"
들리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유이에게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사가밍 즉 사가미에게는 똑바로 들려버렸던 모양이다.
"……히키가야. 나 몰랐구나"
"미, 미안. 어지간히도 강한 인상이 없으면 기억 못하거든"
국립이라던가, 검은 팬티라던가, 썩었다거나, 뇌근육이라던가.
"히키가야 군에게 할 제제는 나중에 우리쪽에서 하겠어. 그래서 사가미. 무슨 일이니"
"아……. 갑자기 와서 미안해"
제제라는 단어에 움찔했는지 사가미가 어미를 고친다.
"나, 실행 위원장을 하게 됐는데……. 이런거 자신이 없다고 할까, 그러니까 도와줬으면 해"
"관둬. 그보다 애시당초 봉사부원 세명중 두명이 문화제 실행 위원이다. 일부러 부탁하러 오지 않아도 도와주는게 뻔하잖냐"
사가미의 말에 유키노가 물고 늘어지기 전에 구명줄을 보내준다.
확실히 나는 의욕이 빠져 있지만, 적극적으로 관여하려고 할 생각이 없을 뿐이지 주어진 일은 제대로 할 생각이다. 유키노가 어떨지 까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도 노골적이게 땡땡이 치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사가미의 의뢰는 전혀 무의미하게 된다. 뭐, 유이에게도 협력받는다면 이야기는 별개지만.
"그렇기는 하지마안, 역시 모두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고 할까, 실패하고 싶지않은거 아냐?"
나의 다정함을 깨닫지 못하고 사가미는 더욱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그걸 놓칠 유키노가 아니다.
"요컨대 우리들이 네 보좌를 하면 된다는 소리니?"
"응, 그래 그거"
유키노의 허락하는 말에 사가미가 밝게 끄덕인다. ……그것이 자신의 사형선고인줄을 모르고.
내가 사가미의 입장이라면 절대로 봉사부에 의뢰를 하지 않는다. 왜냐면 유키노가 이럴때 어떤 대안을 내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토츠카의 의뢰를 생각해보면 알듯이, 유키노의 대안은 한결같이 치열하다. 아마 앞으로도 사가미의 마음 편안할 틈은 없을 것이다. 유키노가 말하는 보좌란, 사가미의 일의 보좌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결코 아니다. 사가미가 일을 해치울 수 있도록, 지옥의 특훈을 시켜주는 보좌인 것이다.
"그래……. 그럼 우리들은 전력으로 너를 보좌할게"
"정말로!? 고마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언제 사가미가 깨달을지는 모른다. 적어도 그때까지, 짧은 평온을 즐겨다오.
그럼 잘 부탁해-! 라며 가벼운 말로 작별인사를 고하고 사가미가 사라진다. 남겨진건 평소의 봉사부원 셋 뿐이다.
"그럼 히키가야, 유이가하마. 이야기는 들었지?"
그리고 사가미의 처형방법을 정하는 회의가 시작된다. 덧붙여 유키노는 더 이상 없을 만큼 미소짓고 있다. 어지간히도 부활동을 쉬지 않게 된것이 기쁜거겠지. 사가미에게는 불쌍하지만 유키노가 웃는얼굴로 있을 수 있다면 필요한 희생이라고 하자.
"에, 아, 응"
"나랑 유키노가 부위원장의 입장이 되는게 수습이 좋겠지. 그러면 유이도……"
"그렇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유키노와 함께 유이를 본다.
"에, 왜 그래? 내, 내가 왜?"
우리들이 보내는 시선의 의도를 읽지 못했는지 유이가 쭈뼛거린다. 간단한 답일텐데, 왜 나오지 않는걸까아, 넌.
"나와 사가미가 문화제 실행위원에 매달리게 되면, 반과 연락이 소원해질거야. 하지만 그건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사태다"
"그러니까, 유이가하마는 그들과 반의 다리역을 부탁할 수 있을까? 당연히 봉사부의 활동 일환으로서"
우리들의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는지 잠시 벙찐 표정을 짓는 유이. 하지만 서서히 소화하기 시작했는지 그 얼굴이 조금씩 미소로 변한다.
"응! 맡겨주시라-!"
나와 유키노가 문화제 실행위원 부위원장에 취임한 것은 날을 잡고 개최된 정례 미팅에서 발표됐다.
다른 문화 실행위원에게서는 이미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져, 오히려 하루노 씨를 아는 학생회장이나 교사진들은 기대하고 있었다고 해도 좋다. ……유키노는.
한편 나로 말하자면 "어? 왜 이 녀석이?" 라는 인상이 대부분이었다. 뭐, 아무래도 좋지만.
취임하고나서 우리들은 바로 일을 개시한다. 사가미가 바라고 있던 보좌로서가 아닌, 유키노류 보좌의 일을.
우선 과거 자료를 읽는데서 시작되어 각 부서의 역할이나 연관성, 문제점의 진상부터 그 대응책을 엄하게 지도. 최종적으로는 문화제까지 예정을 새로 짜내어 위원회에 주지철저, 각 부서에 진보상황을 일괄보고로서 제출하게 하여, 그걸 체크시키는데 까지 시켰다.
요컨데 우리들이 취임할때까지와 취임하고 나서는 위원회는 완전히 다른것이 됐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덧붙여 사가미는 울면서 하고 있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까 동정은 하지 않는다. 뭐, 동정은 하지 않지만 유키노에게 채찍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 떡을 줘도 좋을거라며 내가 손수 만든 간식을 먹여주기는 했다. ……더 울어댔지만.
덧붙여 사가미의 성장 일례를 거론하니, 선전광고가 포스터 게시장소가 없다고 보고를 하니, 지도상 동선과 교통량, 그리고 그 인근 상업시설의 진상을 지시하고 유지통제가 참가단체가 적다고 보고하면 회계감사와 연대하여 비용을 짜내고 지역상을 창설하여 상품을 낸다.
이 정도의 지시가 나올 정도로는 성장했다. 눈물 수 만큼 강해진다는건 사실이었구만.
그러한 가운데 몇 번째 시작한 정례 미팅이 사가미의 호령 아래 개최된다.
"그럼 선전광고부터 부탁합니다"
사가미의 진행으로 회의는 진행된다. 지시받은 선전광고 담당이 슥 일어서서 보고를 시작해, 나와 유키노는 사가미의 옆에 앉아 사가미를 지켜본다.
"게시는 예정된 7할을 소비하고 포스터 제작도 대충 반쯤 끝났습니다"
"……조금 늦네요"
광고 담당의 어눌한 보고에 사가미가 직설적으로 말한다.
"문화제는 3주 뒤죠? 내객이 이후 예정을 세울걸 생각하면 벌써 끝나지 않으면 안 되요. 게시장소에 교섭도 포함해서 시급히 빨리 끝내주세요. 그리고 홈페이지에 문화제 특설 페이지를 만드는 건은 어떻게 됐나요?"
"아직이에요……"
사가미의 지적이 예상외였는지 눈에 보이게 어두운 표정을 짓는 광고담당. 아니, 나랑 유키노가 지적해준거니까 이 정도는 보통이지만. 왜 저렇게 어설픈 보고로 허가될거라 생각했는지 의심하고 싶어질 수준이다.
"그럼 서둘러주세요. 사회인이라면 모를까 수험을 예정하는 중학생이나 그 보호자가 정기적으로 체크하고 있는건 매넌 앙케이트에서도 데이터가 나오니까요. 이후에는 일괄보고에 그 진보상황도 보고해주세요"
엄하게 지시를 내리고 사가미는 나와 유키노의 얼굴을 엿본다. 나와 유키노는 미소짓고 그에 끄덕여준다.
이번에 우리들은 사가미에게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 이건 사가미의 졸업시험인 것이다. 거기에 합격해야 우리들은 본래의 보좌 일에 들어가고 사가미는 유키노의 지도라는 지옥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후에도 사가미의 진행하에 회의는 진행된다. 유지통제, 보건위생, 회계감사로 순서대로 보고해가며, 그 모든것에 사가미는 상세한 확인과 엄한 지시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록잡무 부탁합니다"
"특별히 없습니다"
보고를 듣고 사가미는 우리들의 얼굴을 본다. 하지만 우리들은 거기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걸 역시 이 보고에 지시를 내릴 필요가 없다고 받아들였는지 사가미는 회의를 마치려고 한다.
"그럼 오늘은 이 쯤에서……"
"당일 타임 스케쥴과 기재신청을 제출하세요. 기재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특히, 유지쪽도 촬영할 생각이라면 유지통제와 연락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당일날이 되고서야 기재가 부족하면 촬영할 수 없습니다, 라는 상황은 피하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땡. 나의 낙제인이라는 무자비한 철퇴가 날아든다.
"그리고나서…… 내빈대응은 학생회가 하면 되겠나요?"
거기다 유키노가 반대를 한다. 사가미가 앗, 소리를 내지만 이미 늦었다.
"응. 그거면 괜찮아"
"그럼 그걸로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사전에 내객리스트를 접수처에 돌려주세요"
"응, 알았어"
학생회장은 쾌히 끄덕였다.
그리고 불쑥 감상을 말했다.
"역시 굉장하네……, 유키노시타는. 과연 하루 언니의 동생이야. 그리고 히키가야도"
"아뇨,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 정말이네. 이후 과제도 보였으니까. 거기다…… 아직 사가미에게 물렀던걸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들의 말에 학생회장은 쓴웃음을 짓는다. 뭐, 사가미는 울려고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무르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야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겠지.
덧붙여 유키노가 말하는 이후 과제란, 무른 보고를 해온 각부서 담당이다. 사가미의 지도가 종료되면 이번에는 그들이 사가미처럼 될 것이다. 아멘.
"위원장, 호령을"
"……이걸로 회의를 끝내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부터도 잘 부탁드려요"
내가 재촉하여 사가미가 호령을 마치자, 위원들은 뿔뿔이 흩어져간다. 회의실에 남겨진건 나와 유키노, 울상짓는 사가미 셋 뿐이다.
"자 그럼, 사가미"
유키노가 미소지으며 사가미의 어깨에 손을 올리니 사가미는 "넵!" 하고 자세를 고친다.
"잠깐…… 얘기를 해볼까"
말하면서 유키노는 사가미의 팔을 잡고 봉사부 부실이라는 이름의 설교 방으로 연행한다. 그 모습은 흡사 악마로부터 마왕으로 클레스 체인지를 이룬 모 전기 교도관 같았다.
"사가미!"
내가 말을 거니, 사가미는 매달리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본다.
"오늘은 마카론 있으니까"
"……어째서 마카론?"
예쁜 색이니까 안심해줘.
자, 사가미가 나의 마카론에 울음을 터트린 다음날 방과후다.
2학년 F반에선 초감독 에비나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아니얏-! 회사원의 넥타이 매는법은 좀 더 고심스럽게! 무엇을 위한 수트라고 생각하는거야!"
"그렇군. 단단히 동여맨다는건 풍격이 없지. 우선 일단 느슨하게 풀고나서 매야해"
"그치그치! 가연 히키타니, 잘 알고 있네! 차라리 히키타니가"
"나, 부위원장이거든"
오늘은 정례미팅이 없기 때문에 나는 반에 얼굴을 내밀어 에비나와 함께 연기지도를 하고 있었다. 유이에게만 반을 맡기는것도 미안하니까.
"잠깐 휴식! 히키타니, 잠깐 괜찮겠어? 아직 시간 있지?"
"아아, 아직 괜찮기는 한데, 왜 그래?"
"부녀자력이 부족해서 말이야. 히키타니한테 부녀자력을 나눠받을까나- 해서. 잠깐 얘기하자"
잠깐 얘기하자. 그 말은 어제 유키노가 사가미에게 했던 말과 똑같지만, 그 의미는 크게 다르다. 한 쪽은 설교, 한 쪽은 BL 담의. 어째서 차이가 나는건지……방심, 환경의 차이.
이전에 BL담의에 어울린다는 약속을 했던걸 떠올리고 에비나와 잠시 환담을 즐긴다. 그 결과, 그녀의 부력은 크게 증가하여 그 아사쿠라 요우에게도 필적할 수준이 됐다. 지금의 그녀라면 그레이트 스피릿마저 오버 소울할 수 이을 것이다.
"전부터 생각했는데, 히키타니는 나를 부정하지 않지. 왜?"
"썩은거 말이냐? 딱히 부정해선 안 될것도 없잖냐"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뜻밖의 질문을 한다.
BL은 판타지. 일본에서 제일 유명할지도 모를 부녀자는 그렇게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요컨대 그녀들에게 있어 BL이란 공상화랑 같은 것이다. 자신과는 일선을 그은 공상속의 세계. 그렇다면 BL로 망상하는건 애들이 술래잡기하는거랑 똑같을 것이다.
"보통은 말이야, 기분 나쁘다거나 깨거나 하거든"
"……보통이 아니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 선긋기로 구별당하는건 왠지 싫은데"
BL로 알아내는 일반도라던가, 무진장 울고 싶다.
내가 얼굴을 찌푸리니 그런 나를 보고 에비나가 쿡쿡 웃는다.
"칭찬하는거야. 그런 히키타니니까 같이 대화하면 굉장히 편해.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하고, 이해받으려고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런 식으로 대하니까 무심코 반해버릴 정도야"
"……그 정도로 BL을 좋아한다가 받아들이면 되겠지?"
BL이란 에비나에게 있어 그 만큼이나 커다란 것이다. 남에게 호의를 향하는 기준이 될 정도로.
그런 말을 하고 싶은거지? BL을 인정해주니까 좋아해라고 해도 반응하기 곤란하다?
"솔직히 나는 에비나가 부럽다. 지금까지 가슴 펴고 당당하게 이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던게 없었으니까"
자신의 바깥 세게에 좋아하는 것을, 소중한 것을 나는 가진적이 없다. 만약 그런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에 얽매이게 되고 말 것이다. 바깥 세계와, 혼자 있으려고 하는 자신을. 따라서 갖고 있지 않다. 가질 수 없다.
그러니까 내게는 설령 마이너리티한 취미라고는 해도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런 에비나의 모습이 눈부시게 보인다.
"그런가? 히키타니가 깨닫지 못한것 뿐이지, 벌써 소중한 것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를 들면…… 하야토라던가!"
"아니거든"
하야토를 말하며 얼굴을 가져오는 에비나를 찰싹 친다.
그보다 왜 하필이면 하야만데. 진짜 살려달라고.
그 후에 사키가 재봉스킬이라는 뜻밖의 재능 소유자라는걸 발각하거나, 위원회에 가고 싶지 않아 보이던 사가미에게 에비나의 부녀자력 향상을 맡기고 나는 교실을 뒤로 했다.
사키는 그렇다치고 사가미가 꽤나 부녀자력 소지자라는건 솔직히 의외였다. 반의 상영물을 위해 공부했다고는 했지만, "공의 반대는?" 라는 질문에 즉답으로 수 라고 대답했으니까 의미없다고 생각하지만.
반 중심에서는 사가미와 에비나가 그후후 웃고, 그걸 미우라가 반쯤 체념한 눈으로 쳐다본다. 뭐, 어제 일도 있으니까. 사가미에게는 숨돌리기는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그건 미우라들에게 몽땅 맡긴다. 미우라의 엄마체질은 초고교급이니까 사가미 한 사람을 돌보는것 정도는 여유로울 것이다.
사가미들의 모습을 뒤로 교실을 나오다 하야마와 딱 마주친다.
"지금부터 문화제 실행위원 가는거야?"
"어. 너는?"
"그럼 마침 잘 됐다. 유지단체 신청에 서류를 가질러 가려고 생각했거든"
"오, 참가해주는거냐. 네가 참가해주면 손님도 늘어날것 같다. 그러면 타임 스케줄이랑 스태프의 삭감도 재고해야하나……"
하야마의 참가와 그에 동반하는 일의 증가에 어느 정도 계산을 한다. 숨돌리는 중에 일이 늘어날 줄이야……사가미, 불쌍한 자식.
회의실에 도착하니 그 안의 광경은 혼돈이라는 한 마디로 충분했다.
미소지으며 유키노에게 안겨붙는 하루노 씨와 그걸 울적해보이는 듯이 보는 유키노. 그 뒤에는 벌벌 떠는 학생회장이 있었다.
다른 위원들은 그 상황에 대처하려고 하지만, 부위원장인 유키노에게 서류를 주려고 해도 접근할 수가 없어, 그저 주위를 서성이고 있을 뿐이었다.
"뭐여 이건……"
껴안고 있는거라면 안다. 유키노를 정말 좋아하는 하루노 씨의 입장에서 보아, 미움 받아질 필요가 없어진 귀여운 동생을 껴안고 싶어진걸테지. 거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왜 하루노 씨가 여기에 있는건진 모르겠다.
자,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머리를 굴리고 있으니 하루노 씨가 이쪽을 깨달았다.
"어라, 히키가야다. 햣하로-!"
햣하로-. 요컨대, 햣호- + 하로. 왜 이렇게 됐냐, 하루노 씨는 D - HERO덱의 사용자였나. 아니, 그건 이얏호오오오오오오우! 인가.
"하루노 누나……"
"아, 하야토"
하루노 씨가 손을 흔들고 하야마도 거기에 손을 든다.
"무슨 일이야?"
"유지로 관현악이라도 할까 생각해서. OB,OG가 모이면 재미있겠다 싶어서. 재미있어 보이지 않니?"
"또 그렇게 즉흥적으로 행동하네……"
무엇……이라…….
하루노 씨의 행동을 즉흥적이라고 부르는 옆의 하야마는 그렇다치고, 이건 꽤 재미있는 제안이다.
현의에서 뒤를 이을 하루노 씨로서도 모교인 이 학교의 연관성은 소중하게 해두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이 학교의 문화제는 예년 지역과 연관성을 중시하고 있다. 문화제를 통해 재학생과 보호자, 그리고 천성하는 지역에 얼굴을 보일 좋은 기회일 것이다. 그리고 졸업생이 참가한다는 실적을 만들어두면 이후에도 그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잠깐 생각나는것 만으로도 이렇게나 하루노 씨에게 메릿트가 있는 행동이 단순히 즉흥적일리가 없다. 뭐, 그것 말고도 무리하게 미움받을 필요가 없어져서 사랑하는 동생이랑 같이 있고 싶다는것도 있겠지. 오히려 그게 9할 쯤 가능성까지 있다.
"유키노, 어떻게 생각해?"
하루노 씨의 상대를 하야마에게 맡기고 유키노에게 제안을 묻는다.
"나는 좋다고 생각해. 언니도 즉흥적으로 그런 말을 한게 아닐테고"
"그렇겠지. 그저 업무량이 절망적으로 늘어날것 같으니 그게 걸린단 말이지……"
"그건 우리들이 생각해봐야 소용 없는 일이야. 책임자는 사가미고, 그녀의 판단에 맡기자. 그러고보니 사가미는 같이 오지 않았구나"
"아아, 그 녀석은……"
어제 유키노로 인한 설교 때문에 위원회에 가고 싶지 않아보였으니까 숨돌리기 중이라고는 말 못하고 말을 흐린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타이밍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그런 와중에 사가미가 들어왔다.
종종 걸음으로 위원장의 자리에 있는 유키노의 옆으로 달려온다.
"하루 언니, 이 아이가 위원장이에요"
학생회장에게 듣고 하루노 씨는 이젠 익숙해진 시선을 사가미에게 향했다.
……그거 동생의 관계자 전부에게 향할 생각입니까, 당신은.
"……아, 사가미 미나미입니다"
"문화제 실행 위원장이 지각? 헤에……"
"저, 저기……"
"당신, 아직 부외자잖습니까"
사가미를 위압하려하는 하루노 씨의 머리를 찰딱 때리고 그녀의 행동을 캔슬시킨다.
사가미가 왜 늦었냐면 내가 반 중심에 집어던지고 왔으니까 이 정도는 해준다. 뭐, 변명을 하면 그게 들킨다는걸 피할 가능성도 없지만서도.
문득 시선을 느끼고 주위를 돌아보니 하야마와 학생회장이 나를 뜻밖이라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루 언니를 부외자취급이라니……. 히키가야 굉장하네"
"히키타니, 하루노 누나한테 잘도 그런 소리를 하구나. 감탄했어"
칭찬하는건지 뭐하는건지 모르겠다.
"히키가야, 언제 언니랑 그렇게 사이가 좋아진거니? 역시 목줄이……"
유키노는 유키노대로 영문 모를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목줄이 뭔데, 목줄이.
"아야앗-! 누나한테 폭력이라니, 못됐잖아, 히키가야! 거기다 부외자라니, 뭐야 부외자라니!"
"뭐고 자시고. 아직 위원장이 허가를 내지 않은 이상, 참가자 희망만으로는 확실하게 관계자는 아니잖습니까. 거기다 그렇게 세게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원망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하루노 씨에게 태연하게 답한다.
"흥이다……. 음, 위원장한테 부탁인데, 나도 말야-, 유지단체로 나가고 싶거든. 그치만 유키노한테 부탁했더니 떨떠름해해서"
"그게……"
사가미가 나와 유키노에게 시선을 향한다.
"이 사람은 유키노의 언니로, 이 학교의 OG. 거기다 말하자면 전 학생회장이다"
"우리들로서는 위원장인 사가미의 판단에 맡길게"
완전히 떠넘긴다고도 할 수 있는 우리들의 말이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사가미라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신뢰하고 맡긴것 뿐이다.
그런 우리들의 생각을 알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사가미는 하루노 씨를 돌아보고 가볍게 숨을 들이킨다.
"음, 유키노시타 언니는 전 학생회장이라고 했는데요, 다른 졸업생에게도 말해주실 수 있나요?"
"응, 할게-! 팍팍 말해줄게!"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유지단체의 참가도 적었으니까 졸업생에게도 말해주신다면 지역과 연관성도 어필할 수 있겠죠. 부족한 점도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저희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오, 고마워 위원장!"
유키노와 둘이서 참가 허가를 낸 사가미에게 다가간다.
"아마 일 무진장 늘어날거다. 저 사람은 사가미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연관점이 많으니까"
"그렇구나. 발이 넓은 언니니까, 참가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말을 걸 곳은 죄다 말을 걸겠구나"
우리들의 말에 사가미는 녹초가 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하지만, 문화제 성공시키고 싶고……. 거기다 둘 모두 도와줄거지? 나 말야, 처음에는 전부 유키노시타에게 맡기고, 나는 편하게 있으려고 생각했어.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치만 그래서 좋았다고 생각해. 둘에게 엄청 혼나고, 울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고. 어라, 나 무슨 소리 하는거지. 잘 모르게 되버렸어……"
"……사가미"
"그러니까. 나 힘낼테니까. 둘 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그렇게 말하며 사가미는 고개를 숙였다.
솔직히 반쯤 사가미가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몰랐다. 그저 사가미가 문화제를 성공시키고 싶다고 생각하는것 만큼은 전해졌다.
"사가미, 우리들은 전력으로 너를 보좌하겠다고 했어"
"뭐, 원래는 문화제를 성공시키고 싶다는게 의뢰니까. 사가미가 정한거라면 마지막까지는 뒤를 봐주마"
사가미가 고개를 들어올리니 그 눈에는 눈물이 떠올랐다. 그저, 그 눈물은 어제까지 흘린것과는 다르다.
"둘 모두 고마워"
솔직히 나는 유키노시타 하루노를 현의의 뒤를 잇는 그녀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이젠 심술부리는거냐고 생각할 만큼 그녀는 지역이나 졸업생에게 말을 걸어서, 일은 갈수록 늘어갔다.
그렇게 되니 나와 유키노는 사가미의 지도만 할 수 없게 되어서, 유키노와 사가미가 전체의 큰 문제를 대처하고, 나는 각부서의 세세한 문제를 정리해가는 체제가 되어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이야- 오늘도 피곤한데-"
"그렇구나. 언니의 참가로 단번에 유지단체의 참가가 늘어났어. 예상했다고는 해도, 저렇게까지라고는 생각 못했어"
"둘 모두 수고했어. 거기다 하야마도. 도와줘서 고마워"
"왜 내가 도와야 하는건지……"
하루 일이 끝나고 귀가길이다. 나와 유키노와 사가미, 그리고 내가 억지로 돕게 만든 하야마와 하교길이었다. 원래 하야마는 유지단체의 참가신청 서류를 제출하러 온것 뿐이지만, 처리를 기다리는게 심심해보여서 말려들게 한 것이다. 말려들었다고는 해도 사람 좋은 얼짱인 하야마는 싫은 기색도 보이지 않고 일에 착수해줬다. 꽤 써먹기 좋은 녀석이다.
문득 거기서 어떤 생각이 나서 하야마를 부른다.
"하야마, 잠깐 괜찮냐?"
"요즘 히키타니가 부르면 제대로 된 일이 없지만……. 그런데 왜?"
"너 말이다, 나중에 예정 있냐?"
"아니…… 딱히 없긴한데 그게 왜?"
없나. 그거 다행이구만.
지갑에서 노구치 씨를 둘 꺼내서 하야마에게 쥐어준다.
"저기 말이다. 그거 써서 사마기한테 밥이라도 사주지 않겠냐? 요즘 일이 늘어서 푸념도 쌓였을 테니까. 응, 부탁한다"
"아니…… 히키타니가 스스로 물어보면 되잖아? 왜 그렇게 나한테 부탁하는걸까……"
"나나 유키노라면 저 녀석에게 말하기 그렇잖냐? 어쨌든 똑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같은 반에서 잘생기고 사람 좋은 너라면 푸념도 말하기 쉬울거 아냐. 아마. 모르겠지만"
"모르겠다니……. 아니 뭐, 그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부탁하지만 하야마는 좀처럼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다, 최종병기를 쓰도록 할까.
"그럼 어쩔 수 없나. 그런데 하야마. 이거 뭔지 아냐?"
가방에서 종이다발을 꺼내어 하야마에게 보여준다.
"아니, 모르겠는데"
"에비나한테 부탁받고 내가 쓴 왕자x나 원고다. 아무래도 연극을 보러 온 손님한테 배포하는 모양이다"
"오케이. 사가미를 불러서 그걸 건내주면 되는거지. 알았다, 부탁 들어주지. 하지만 이건 받을 수 없어"
하야마가 돈을 돌려주려고 하지만 나는 그걸 거부한다.
"한번 건낸걸 돌려주려고 하지마. 받을 수 없다면 그거다. 반에 헌금으로 써줘. 나도 사가미도 위원 쪽에 붙어있어서 얼굴을 못 내미니까. 귀찮으니까 사가미의 이름으로 부탁한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공적으로는 하지 않는구나. 뭐, 좋아. 알았다. 그렇게 할게"
내 제안에 뜻밖이라는 얼굴을 하면서도 바로 평소의 미소를 지으며 승낙한다.
"사가미, 잠깐 괜찮겠어?"
"왜? 하야마. 무슨 일 있어?"
하야마가 사가미를 부르는걸 뒤로 유키노를 데리고나간다.
"유키노, 둘이서 밥먹으러 가자"
"그, 그래. 그치만 사가미들은 괜찮니?"
"사가미는 하야마한테 부탁했다. 푸념도 쌓였을테고, 우리들한테는 하기 힘든 소리여도 하야마라면 말해줄테니까"
"그래. 그럼 갈까"
얘기가 정리된 듯한 사가미와 하야마에게 작별을 고하고 유키노와 둘이서 걷는다.
"그래서 어디로 데려갈 생각이니?"
"그렇군……얼마전에 갔던 파스타 가게는 어때?"
둘로부터 보이지 않게 되니, 유키노는 내 손을 잡아온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달 만이 쳐다보고 있었다.
다음날, 사가미에게 엄청난 기세로 감사받았다. 흥분하는 사가미의 말을 요약하자면 하야마와 먹은 밥이 맛있었다, 같은 반 중심이라 기쁘다, 같은 말을 했었다. 솔직히 나로서는 극히 일반적인 숨돌리기로서 생각한 것을, 주변 놈에게 내팽겨쳤을 뿐이라서 감사받아도 곤란하다. 뭐, 사가미가 그걸로 좋다면 이후로도 그걸로 숨돌리기로 쓰도록 하자. 에비나에게 있어선 같은 취미를 가진 친구일테고, 미우라도 엄마 기질을 생각하면 사가미의 상황을 말해두면 싫은 얼굴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덧붙여 하야마는 아무래도 좋다. 저 녀석을 협박할 재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싫다고는 말하게 하진 않는다.
나날로 일이 늘어가는 가운데, 유키노에게는 비밀로, 사가미에게는 잡다하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원조를 해주고 있었지만, 한 가지 잊고 있던것이 있었다. ……나 자신이다.
그녀들이 숨 돌릴 시간을 만들기 위해, 문제가 있으면 처리하고 문제가 없어도 문제가 되어 보이면 처리하며 학교 속을 분투하고 있었지만, 역시 무리를 해버린 모양이다.
아침, 눈을 뜨니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솔직히 발밑도 위태롭다. 하지만 어떤 몸상태여도 내가 쉴 수는 없다. 하루 정도라면 괜찮을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고작 하루가 아닌 것이다.
가던 길에 편의점에서 최근에 친구가 된 안안타파라도 살까, 등을 생각하면서 거실에 어떻게든 도착하니 코마치한테 엄청난 기세로 걱정받았다.
"오빠야 무슨 일이야? 얼굴 위험한데?"
"괜찮다. 문제 없어"
"그거 완전히 사망 플래그잖아! 평소라면 경쾌하게 코마치한테 딴죽걸텐데 그것도 업구……. 오빠야, 어제 몇시에 잤어?"
코마치의 질문을 받고 어제 자신의 취침시간을 떠올린다. 분명 어제는…….
"5시군. 마지막으로 시계를 본건 그 정도였던것 같다"
"……그 전에는?"
"아-, 비슷하지 않겠냐? 제대로 기억 안나는데"
"오빠야……"
대답을 하니 코마치는 고개를 숙였다. 뭐, 뭐야? 왜 그래?
"오늘은 학교쉬고 자지 않으면 안 돼! 코마치, 연락해줄테니까!"
"아니, 그렇게는 안 되잖냐. 문화제도 이제 곧이고. 일도 남아 있으니까"
"안 돼! 오빠는 문화제가 중요할지도 모르겠지만……코마치는 오빠가 훨씬 중요해……"
사랑하는 동생이 그렇게 울먹거리면서 호소하면 오빠로서는 반론을 할 수 없어서,
"……알았다. 오늘은 쉬마. 그거면 되겠지?"
"응! 그럼 오빠는 얼른 방으로 돌아가! 허뤼허뤼허뤼-!!"
떠밀려지듯이 거실에서 쫓겨나, 방으로 돌아가게 됐다. 뭐, 코마치가 학교갈때까지 조금 자고, 사라지고나서 일어나서 일을 처리하면 되나.
자다 괴로움을 느끼고 눈을 떴다. 이불 속에서 시게를 보니 오후 4시. 일단 알람은 맞춰뒀는데 조금 잘 생각이었는데 상당히 잠들고 만 모양이다.
그리고 자다 괴로움을 느낀 원흉은 배 인근을 보니 유키노가 내 배를 배게삼아 잠들어 있는것이 보였다. 카마쿠라가 올라가 있을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병문안 와준건가. 고맙다"
유키노도 지쳐있을텐데. 그런데 병문안을 와줬다는 사실이 가슴에 스몄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유키노의 머리를 슥 쓰다듬는다. 찰랑찰랑한 머리 감촉이 기분 좋다.
잠시 그렇게 유키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니 쓰다듬는 내 손이 간지러웠던걸까, 유키노는 고개를 들어 잠에 취한 눈으로 이쪽을 본다.
"히키…가……야?"
"미안, 깨웠어?"
말을 걸어보지만 잠에 취해있는지 대답도 하지 않고, 내 얼굴에 손을 댄다.
"히키가야다아……"
"어……, 하? 유키노?"
그리고 그대로 눈을 감고 얼굴을 가져온다. 30cm, 15cm, 서서히 그 거리를 가까워지고.
"어지간히도 피곤했구나. 고맙다, 유키노"
폭, 내 얼굴 옆에 유키노의 얼굴이 떨어진다. 볼에 뭔가 부드러운 것이 닿은 감촉은 있었지만 스쳤을 뿐이므로 노카운트다. 아마, 유키노의 볼일테고.
유키노를 깨우지 않도록 신중하게 몸을 틀어 이불에서나온다. 그리고 대신에 유키노를 눕혀준다. 도중에 흐뮤 거리며 몸을 뒤적이고 있었지만 이불에 넣어주니 그대로 조용하게 잠들었다.
"자, 일을 할까"
한번만 더 유키노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고 일에 착수한다. 푹 잠들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키노가 병문안을 와줘서 일까. 둘중 어느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머리가 산뜻해졌다. 일에 꽤 전념할 수 있을것 같다.
어제 갖고 온 서류를 대충 처리하고 위원하고는 다른 작업을 시작했을 무렵 유키노는 눈을 떴다.
"……불찰이야"
"오, 일어났냐"
작업하는 손을 멈추고 일어난 유키노에게 얼굴을 향한다.
"그래. 깨우지 않도록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설마 잠들어버리다니……"
"피곤했잖냐? 뭐, 그럴 수도 있는거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끝나면 배웅해줄테니까 조금 더 자도 좋다"
"……학교를 쉰 네가 일을 하고 있는 옆에서 태연하게 자고 있을 수 없잖니. 뭘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할게"
그렇게 말하며 유키노는 일어나려고 한다.
"아아, 지금은 에비나에게 부탁받은 BL소설 원고를 쓰고 있는것 뿐이다. 아무리 유키노여도 이건 대신할 수 없잖아? 그러니까 얌전히 자둬"
"히키가야. 설마 너, 그런걸 쓴다고 몸 상태가 안좋아졌다고는 하지 않겠지?"
내 말을 가로막고 유키노가 차가운 음색으로 묻는다.
"……유키노. 분명히 너한테는 그런걸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에비나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고, 나도 같은 반의 상연물 성공을 위해 필요하다고 느꼈으니까 받아들인거다"
"착각하게 만든건 사죄할게.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게 아니야. 나는 그건 네가 몸 상태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쓰지 않으면 안 되는거니,라고 묻고 있는거야. 비엘이라는건 잘 모르겠지만, 그것이 에비나에게 있어 소중하다고 하다는건 알겠어"
"……미안. 내 지레짐작이다. 하지만,"
"에비나도 그런걸 바라고 있지는 않을거야. 아니니?"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말을 흐리는 내게 유키노는 더욱 추궁한다.
"그럼 네가 지금 해야할건 몸을 쉬어야 하는거야. 필요하다면 내가 에비나를 사죄시킬게. 그러니까 지금은 쉬렴"
이불을 걷고 유키노는 자기 옆을 툭툭 친다.
"아니…… 그래도 그건 아니잖냐?"
"이건 네 이불이잖니? 뭔가 문제라도 있니?"
유키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정말로 이상하다는듯 나를 본다.
……그렇게까지 평범하게 대하면, 이쪽이 착각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이 신기함.
"……네가 거기에 있는건 충분히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네가 나한테도 쉬라고 했잖니? 그럼 아무 문제없잖니. 아니면……뭐, 문제가 될만한 짓이라도 할 생각이니?"
"안 해"
나는 신사니까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그보다 할거면 네가 자고 있을때 하겠지.
"의지박약……"
중얼, 유키노가 뭔가 말했던것 같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난청도 못 들은척도 아니다. 정말로 안들린것 뿐이다.
"아무 말도 안 했어. 됐으니까 얼른 오렴"
퐁퐁, 이라는 귀여운 소리가 점점 강해져서 설득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건 내가 옆으로 가지 않으면 유키노도 쉬지 않을테니까 어쩔 수 없는거라면 자신에게 필사적으로 변명한다. 어쩔 수 없으니까 유키노의 달콤한 향기에도, 유키노의 온기에도 두근거리지 않는다.
"잘 자렴, 히키가야"
내가 몸 상태를 무너뜨린 이래, 특별히 문제도 없이 문화제까지 시간은 지나, 역시 그대로 문제없이 문화제 전체일정은 종료했다. 나와 유키노와 사가미가 협력을 하고 경험 풍부한 하루노 씨의 도움도 있었으니까 당연하다.
예측못한 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문화제 실행 위원 주체인 이벤트 이외의 예정에서 나와 유키노를 빼뒀지만 의미는 없었다. 일단 둘이서 문화제 상영물 순회를 엄행하기는 하지만. 코마치에게 동행을 부탁받기도 했지만 나랑 유키노는 논다고 같이 있는게 아니라서 사키에게 몽땅 맡겨뒀다. 이쪽은 일 중이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모두가 힘내서…… 문화제를 성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가미가 울면서 위원회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와 유키노의 일은 두 가지 의미로 종료했다.
"히키가야! 유키노시타!"
이 후의 예정을 유키노와 대화하고 있으니 거기에 사가미가 다가온다.
"힘들었고, 많이 울었고, 솔직히 몇번이나 때려치려고했지만……. 그래도 마지막까지 힘낼 수 있었던건 둘이 응원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정말로 고마워"
그렇게 말하며 사가미는 깊게 고개를 숙인다.
"저, 저기 말이야. 히키가야도 유키노시타도 정말로 뒤풀이 안 올거야?"
이 후에 문화제 실행위원이 모여서 뒤풀이를 하는 모양이지만, 나와 유키노는 그걸 재빨리 거절했다.
"나, 예정 있으니까"
"미안해. 선약이 있거든"
"그런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내밀어주면 싶었는데에. 예정이 있다면 어쩔 수 없나. 그럼 나 슬슬 갈게!"
정말로 고마워-, 말하면서 사가미는 사라진다. 교대하듯이 상황을 엿본건지 이번에는 유이가 찾아온다.
"둘 다 수고했어! 그보다 힛키도 유키농도 뒤풀이 안 가?"
"아까도 말했지만 나한테는 이후에 예정이 있다"
"그래, 나도야"
우리들의 말에 유이가 점점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그보다, 네 일정은?"
"일단 반 애들 뒤풀이에 나갈 생각인데……"
"그런가……그럼 유이는 불참가가 되겠군"
"모처럼 유이가하마가 좋아할것 같은 가게를 예약했는데……"
"엣!? 둘 다, 무슨 소리야?"
숙이고 있던 고개를 갑자기 들어올려 우리들에게 묻는다.
"요컨대 우리들의 예정이라는건 봉사부의 뒤풀이라는 소리다"
"문화제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사가미의 의뢰를 무사히 해결했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에- 들은적 없어! 나만 따돌리고 둘이서 어디가려고 생각한거잖아-!"
"듣지 않았다고 할까, 애시당초 말하지 않았으니까"
덧붙여 미우라랑 에비나, 하야마랑 반의 주요인물은 이미 구슬려뒀다. 생일의 재탕이 될 수는 없으니까. 제대로 원천봉쇄 끝이다.
"자, 예약 시간도 있으니까 얼른 가자"
"그래. 가자, 유이가하마"
"에, 아, 응. 지금 갈게-! ……그치만 왠지 납득 안 돼"
비교적 둘이서 행동하는 일이 많았던 나와 유키노와 달리, 반 애들과 위원회의 중개역으로서 혼자서 힘쓴 유이에게 서프라이즈였지만.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뭐, 이런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 때에는 이번 반성점을 내딛고 계획을 세우면 될 뿐이다.
아직 불만스런 얼굴인 유이를 뒤로 나는 다음 기회의 성공을 기약했다.
내가 생각한 최강의 히키가야 하치만 15
하복 만세,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사가미가 크게 울고, 그리고 성장한 문화제를 마치고 나와 유키노의 거리는 조금 줄어들었다. ……물리적으로.
깨닫고보니 어째선지 바로 옆에 유키노가 있고, 조금 정신을 놓고 보니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다. 그 정도로 가깝다.
나도 건강한 남자 고등학생이라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와 신체적 접촉을 하는건 바라마지 않던 일이지만, 상대가 유키노라면 그렇지도 않다.
뭐라고 할까……긴장하고 마는 것이다. 남을 먼지만치도 신경쓰지 않았을텐데.
그렇기에 직접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가능성이 높은 하복은 내게 있어서 꺼려야할 것이 됐다. 동복만세다.
뭐, 동복이 되면 그거대로 "조금……춥네" 라고 하면서 더욱 거리를 줄어들겠지. ……어쩌라는거야.
솔직히 말해서 유키노는 내게 있어 특별한 존재다. 그건 인정한다. 그럼, 그건 언제부터. 대체 언제부터 내게 있어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일까.
문화제, 치바마을, 둘이서 간 쇼핑, 점점 유키노와 보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리고 깨달았다. 처음부터라고. 봉사부에서 처음으로 유키노와 만났을때. 저 녀석이 나에게 친구가 되라고 했을때. 아마, 그 때부터 줄곧 유키노는 내게 있어 특별한 존재였다고.
그 때 유키노가 나에게 친구가 되라고 했던건 내가 혼자이기 때문이다. 주위에 질투받아온 유키노에게 있어 혼자인 내가 친구로서 바람직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혼자 있기를 바란다. 웃어버리는 정도의 아집이고 오만한 소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는 기뻤다. 이상하게 좋다고, 혼자 있는걸 좋다고 인정해주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지금까지 누구도, 그야말로 코마치마저 내가 혼자 있는것을 인정해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 녀석은, 저 녀석 만큼은 나를 인정해줬다.
그런걸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을리 없잖나.
그렇다고해서 나와 유키노의 관계에 무슨 영향을 미친다고하면 그렇지도 않다. 어디까지나 나와 유키노의 관계는 대학졸업까지로 한정되는 것이다. 거기에 변경은 없다.
그저 유키노와 헤어지는 날이 찾아왔을때, 저 녀석이 그 괴로워보이는 얼굴을 보여준다면. 나는, 과연 유키노와 인연을 끊어버릴 수 있을가. 그것만이 약간 의문으로 남는 정도이다.
뭐, 가족하고 화해했을테고, 유이라는 훌륭한 친구도 있다. 그런 유키노가 언제까지고 나같은 이상한 생물을 곁에 둘 필요도 없을테고, 생각하지않아도 문제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대로여도 문제없다. 평상운전. 평상운전.
그리고 이것도…….
"흥흐-흥"
내 옆에서 어깨가 맞닿을 정도의 거리로 유키노는 잡지 모서리를 접고 있었다. 이것도 최근들어 그녀의 정위치여서 평상운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보고 있는 잡지는 교토 특집이며, 콧노래를 섞으며 기분 좋은 듯이 이제 곧 가게 될 수학여행에서 자유행동지를 체크하고 있다.
덧붙여 잡지 모서리를 접는걸 일반적으로 도그이어라고 부르는데, 그녀에게 말하게 하면 스코티쉬 폴드 이어라는 모양이다. 그냥 길러라, 고양이.
"저기저기, 힛키! 둘은 자유행동때 어디 보러 갈거야?"
어찌된 셈인지 나와 유키노는 자유행동을 같이 보내게 되어 있다. 경위는 모른다. 내가 정신 차렸을때는 벌써 그렇게 되어 있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저 일부 J반 여자의 암약이있었다는 모양이라고만 얼핏 들었다.
"유키노가 갈 곳을 정하는 모양이니까. 나는 아직 예정을 몰라"
"에-. 그건 아니야, 힛키. 제대로 에스코트 해줘야지-"
나도 유키노에게 맡겨두고 싶은게 아니다. 오히려 방향치인 유키노에게 맡기는건 불안밖에 없다. 하지만 유키노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고르겠다고 말한 이상, 내게 반론할 소리는 없다.
"그렇게 말해도 말이다……"
요컨대 원흉인 유키노를 본다. 그런 나의 시선을 깨달았는지, 보고 있던 잡지에 책갈피를 끼우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에스코트도 즐겁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좋아하는 곳을 가르쳐주고 싶어. 기호를 모르고 에스코트 받아도 폐가 될 뿐이잖니?"
이번에는, 라는건 다음에도 있다는 고로. 뭐, 나도 유키노도 교다이로 진학을 지향하고 있으니 무사히 합격하면 그런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고. 그래서 이번 일을 참고로 계획을 세우고 싶다는 것이다. 꽤나 느긋한 이야기다.
"가고 싶은곳만 알려주면 남은건 이쪽에서 가는 길이나 조사해두겠는데"
"어머, 그래선 기대할게 없잖니?"
……유키노. 너 방향치인거 자각하고 있는거 아니었냐? 둘이서 나갈때는 언제나 손을 잡고 있는건 뭘 위해서라고 생각하는거냐, 너.
그런 생각을 시선에 담아 유키노를 쳐다보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유키노는 유이와 교토 특집 잡지를 사이좋게 본다. 그러자. 부실 입구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잡지에 다시 책갈피를 끼우고 유키노가 대답한다. 그 음색은 얼어붙을만큼 차가웠다. 얼마나 방해받는걸 싫어하는거냐, 너.
"어, 유이, 하로하로-"
"얏하로-"
신종 발견 에비낫치. 얏하로-, 햣하로-, 하로하로-, 라며 하로 3단활용이 완성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보다 이렇게 되면 얏하로-와 하로하로- 사이에 끼인 미우라가 어떤 인사를 할지 약간 신경쓰인다. 역시 하로- 활용계일까, 아니면 굳이 안녕-녕- 같은 완전히 다른 종류인걸까. 수수께끼는 깊어질 뿐이다.
"히키타니랑 유키노시타도 하로하로-"
"여"
"오랜만이네. 자, 적당하게 앉으렴"
일찍이 코마치의 얏하로- 라고 인사받았을때 할뻔했던 유키노였지만, 하로하로- 는 금선에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키노의 웃음선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 하나 모르겠다.
유키노에게 권유된대로 에비나는 가까운 의자에 앉는다.
"좀 상담하고 싶은게 있어서 왔는데……"
의뢰가 있어서 왔나. 솔직히 귀찮은 일이 될 예감밖에 들지 않는다. 에비나는 평소 초고교급의 엄마인 미우라와 행동을 같이 하고 있다. 그 미우라에게 상담할 수 없는 내용, 혹은 미우라가 해결할 수 없는 내용의 의뢰를 우리들이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우리들이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부끄러운지 에비나는 볼을 빨갛게 붉힌다.
"저, 저기 말야……. 토벳치 일로 좀 상담이 있어서……"
"에, 진짜? 토벳치가 뭐 저질렀어?"
……토벳치는 누구냐?
모르는 녀석 얘기를 해도, 상담할 수 없으니 조금 몸을 뺀다.
에비나는 그런 내 모습에 뚱해졌는지 살짝 눈썹을 찌푸린다.
"잠깐만, 히키타니. 제대로 얘기 들어줘-"
"아니, 나 토벳치를 모르니까"
그러자 유이는 이거참, 이라는 듯이 고개를 젓는다.
"미안해, 히메나. 힛키, 기억력 나쁘니까……"
무례하다. 기억력이 나쁜게아니다. 기억할 마음이 없는것 뿐이다. 뭐, 어느쪽이냐고 하면 후자가 더 악질이라는 느낌도 없진 않지만.
"그렇게까지 말한다는건, 같은 반에 있는 녀석인거냐?"
"같은 반이라고 할까, 치바마을에서 같이 있었잖아!"
"아아, 그 금발 말이냐?"
치바 마을에서 자원봉사에 참가한 소부 학생 중에서 이름을 모르는건 한 명 뿐이다. 소거법으로 그 녀석이 토벳치라는것이 된다.
"정말이지, 힛키는 진짜로……"
"저, 저기……얘기 계속해도 될까?"
설교를 시작하려는 유이를 뒤로, 에비나는 얘기를 돌린다.
"아, 미안.그래서 상담은 뭔데?"
"그, 그게. 말하기 힘들지만……"
살짝 고개를 숙이며 치마자락을 손가락으로 만지면서 에비나는 말을 고른다.
부녀자를 공언하지 마지 않는 에비나가 이렇게 말을 흐린다는건 어지간한 일이 아닐까.
"토벳치, 요즘 하야토랑 같이 히키타니에게 뜨거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 말이야. 그래선 야마토랑 오오오카가 플러스트레이션! 아마, 하야토가 토벳치를 둘러싸고 히키타니에게 하극상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거 절대로 이상해! 하야토는 총수가 아니면 안 돼!"
……병원 가라. 에비나의 이것은 하야마의 주가를 점점 폭락시키고 있으니, 풍설의 유포가 적용되지 않을까.
현실을 직시못하는 나이지만, 그런 나를 깨닫지 못하고 히트업한 에비나는 더욱 멈추지 않는다.
방금전까지 머뭇거리던 에비나는 어디 간거냐…….
"그래서 하야토가 하극상으로 토벳치만 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야마토랑 오오오카의 거리가 좀 벌어진게 신경쓰여서"
그런건 하야마한테 직접 물어라……라고는 말 못한다.
내 입장에서 보면 에비나의 상담이란 위화감밖에 없다. 에비나의 커플링 취미는 비교적 잡식이다. 충간도 여체화도 홱홱 잡아먹는 저 에비나가 하극상이라는것 만으로 굳이 여기에 상담하러 찾아올리가 없다. 평소 에비나라면 "하극상……순조로워!"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이 상담에는 분명 뒤가 있다.
"하극상은 없냐?"
"없어, 없어! 히키타니. 하극상 따위 시키지 말고, 모처럼이니까 하렘 만들자, 하렘! 히키타니의 귀축 공으로 모두 몽땅 포로로 만들어줘!"
"거절합니다"
의뢰내용, 히키타니가 하렘을 만들어줬으면 어떡하지……. 뒷 내용 있는거지? 믿는다, 에비나!
"그렇……지……. 히키타니는 극상의 S인걸. S를 굴복시키는데 흥분해버리는 S인걸. 오히려 WANGCHANG☆WARA지"
……손님 속에 의사님은 계십니까?
친구인 유이도 약간 깨는 가운데 유키노만 어떻게든 참고 있었다.
유키노는 관자놀이에 손을 대면서 입을 연다.
"요컨대 무슨 소리니……. 설명해주면 고맙겠는데"
유키노는 지친 표정으로 그녀 나름대로 어떻게든 해석하려고 힘써본다. 힘쓰는건 좋지만, 그대로 엉뚱한 방향으로 눈 뜨지는 마라.
"으-음, 왠지 지금까지 있던 그룹이 왠지 좀 변해버린걸까 생각해서……"
에비나의 목소리가 우울함을 감춘 것으로 변했다.
그걸 풀어내려고 유이가 말한다.
"그침나 말야, 남자끼리도 이렇게 뭔가 복잡한게 있는걸지도 모르잖아. 인간관계라던가"
"남자끼리 복잡한 관계……. 싫다, 유이, 저질이야……"
"……나, 뭐 이상한 소리 했어?"
"미우라 부르자, 미우라. 우리들로는 처리 못한다"
그래도 미우라라면……, 미우라라면 어떻게든 해준다.
"뭐, 그 녀석들에겓 무슨 사정이 있는거 아니냐? 그게 하극상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하야마니까 그리 나쁜 일은 아니겠지.아마도"
다같이 사이좋게 교 교주인 하야마가 그룹에 변화를 가져올만한 짓을 한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그건 체인 메일 사건으로 명백해졌다.
"그건 그럴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와 다르다는건 확실해. 변해버린 상태로 있는건 좀 싫어서"
그렇게 말하며 에비나는 미소짓는다.
"지금까지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싶은걸"
그건 일부러 짓는것도 아닌, 지극히 자연스런 미소였다.
그런 에비나의 미소는 둘째치고, 에비나의 말을 정리해보자.
지금은 BL 발언은 무시한다. 위화감밖에 느끼지 못했고, 미스리드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덧붙여 에비나의 발언에서 BL요소를 빼면 이렇게 된다.
・토벳치 일로 상담이 있다.
・하야마와 토벳치가 나를 보고 있다.
・야마토와 오오오카가 거리가 벌어진것 처럼 보인다.
・결과 지금까지 그룹하고는 달라져버린것 같다.
・달라져버리는건 싫어서, 지금까지처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사이 좋아지고 싶다' 가 아닌 '사이 좋게 지내고 싶다' 라는 데에서 헤아릴 수 있듯, 에비나의 진짜 상담은 여자를 포함한 그룹 전체의 현재 상황 유지가 틀림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그룹의 평온을 흐트리는 원인이 되고 있는 하야마와 토벳치가 나를 보고 있는건, 그 녀석들이 봉사부에 뭔가 접촉을 가지려고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안 그러면 에비나가 여기에 올 이유는 없다.
정리하자면 토벳치가 봉사부로 가져올 의뢰로 보다 그룹의 평화가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고 에비나는 그걸 바라지 않는다, 라는 것이 된다.
뭐 지금은 적당하게 머리 구석에 박아두면 될 것이다. 실제로 토벳치가 의뢰를 가져오지 않으면 내게는 어찌할 수도 없으니까.
"오K, 파악. 일단 나는 하야마랑 토벳치의 하극상을 저지하면 되겠지"
에비나가 말하는 하극상이 실제로 어떤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내가 할수 있는 말은 이 정도일 것이다. 저 녀석들이 봉사부로 의뢰를 갖고올지도 모르니까.
"아, 그치만 히키타니가 남자그룹에 섞여서 하렘을 만드는건 대찬성이야. 여,여러가지로 순조로우니까!"
"싫다, 이 아이. 저질이야……"
눈을 반짝반짝거리며 얼굴을 가져오는 에비나의 이마를 찰딱 때린다.
에비나는 이마를 누르며 원망스럽듯 나를 본다.
"히키타니 완전 S……. 그런건 하야토들에게만 보여주면 좋을텐데……"
"내 성벽을 날조하지 마라"
에비나는 에헤헤 얼버무리듯 미소를 지으면서 일어선다.
"그럼 그런고로. 또 봐-"
그대로 부실을 나가는 에비나를 바라보고 우리들은 얼굴을 마주봤다.
"결국 히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걸까-?"
에비나의 말을 액면대로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떠오르는 의문을 유이는 말한다.
"현재 단계에서는 뭐라고 하기 어렵구나……. 하야마들이 무슨 어프로치를 한다면 알 수 있을것 같은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뭐, 보류해두면 되지 않겠냐?"
에비나가 선수를 친 형태니까, 우리들이 할 수 있는건 그 정도일 것이다.
그보다 지금까지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갖지 못한 나한테 현재 상태의 유지를 도우라니, 꽤 엉망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