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23
⑤살며시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거리를 좁힌다.
아비규환이 된 회의실을 나온 우리들은 메구리 선배의 조언도 있어서 그대로 돌아가게 됐다.
주륜장에서 자전거를 갖고 나오니 출입구에서 유키짱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뺨을 붉히며 진정하지 못한듯 안절부절거리고 있다. 이윽고 쭈뼛쭈뼛 나에게 물었다.
"저, 저기 하치군. 오늘은 정말로……?"
유키짱 치고는 왠일로 확실치 않은 질문법이군, 라고 생각하면서도 당연한 이야기라서 나는 바로 대답을 했다.
"아아. 자전거가 있으니까 나 일단 집으로 갈건데, 유키짱의 집 갈아입을 옷 갖고 갈게"
"가, 갈아입을……읏"
어째선지 유키짱이 숨을 삼키고 있었다. 뭘까, 생각하고 있으니 그러고보니 잊고 있던 일이 있었구나, 라고 생각한다.
"아아, 말하는거 깜빡했다. 만약 작업이 길어지면 자고 가려고 생각했는데……괜찮아?"
내 말에 유키짱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응시했다. 얼굴은 이미 새빨갰다.
"…………………………자, 잘, 부탁, 합니다……"
유키짱에게 나온 말은 어째선지 경어였다.
× × ×
집으로 돌아가서 준비를 끝낸 나는 유키짱이 사는 맨션 앞까지 왔다.
유키짱이 사는 맨션은 부근에서도 고급으로 알려진 타워 맨션이다. 고급인 만큼 방범도 엄중하다.
홀에서 유키짱의 방에 호출을 부르려고 나는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스피커에서 노이즈가 들렸다.
『네, 넵』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스피커에 다가가서 말을 한다.
"유키짱? 나인데"
『시, 십분만 기다려주겠니?』
"……? 괜찮긴 한데"
유키짱에게 들은대로 10분동안 홀의 소파에 앉아서 대기한다. 홀에도 소파가 있다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휴대폰을 보니 코마치한테 메일이 한건 와 있었다. 내용을 보니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사랑하는 오빠한테, 하루 언냐는 내가 묶어둘게♪』
읽은 순간 식은땀이 흘렀다. 이런, 진짜 위험해. 완전 잊고 있었다. 어쩌지. 하지만 뭐, 코마치가 묶어준다고 했으니까 내 동생을 믿자.
그리고나서 10분을 조금 지난 타이밍에 벨을 눌렀다.
『네, 넵』
"10분 지났어"
『……들어와』
유키짱이 말을 하니 자동 문이 열렸다. 전에 한번 온 적이 있어서 헤메는 일 없이 쉽게 걸어간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15층을 누른다. 표시된 층수가 금방 변해가며, 순식간에 15층을 가리켰다.
내려서 조금 걸으니 표찰도 없는 방 앞에 섰다. 확실히 여기였지, 라며 약간 긴장하면서 인터폰을 누른다.
10초 정도 기다리니 문의 안측 잠금걸쇠를 해제하는 기척과 소리가 들리고,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틈새로 얼굴을 보인건 유키짱. 방을 잘못알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치군. 들어와"
집에 들어가니 미묘하게 비누 냄새가 떠돈다.
유키짱의 차림도 평소와 인상이 다르다. 눈을 가득 채운 하얀색 니트는 큰건지, 소매는 손도 폭 감추고, 옷깃은 쇄골까지 비추고 있다. 머리카락은 헤어슈슈로 묶이고 목 옷깃을 감추듯이 늘어뜨러져 있다. 아래는 마키시장의 롱 스커트로 가려져있다.
"읏!"
……솔직히 엄청 취향인 차림인데요. 뺨이 화조를 띄는걸 알고 나는 무심코 얼굴 반을 손으로 가렸다.
"……왜 그래?"
"아, 아니. 괜찮아괜찮아"
유키짱이 수상쩍게 물어와서 손으로 제지했다.
"하아. 따라와"
그녀는 내 모습을 더 신경썼지만, 이윽고 한숨을 쉬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 맨션은 3LDK. 혼자서 살기에는 되게 넓다.
하지만 유키짱은 여기에 혼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줘"
거실로 안내받고 눈에 들어온건 창문으로 비치는 바깥 경치였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야경으로 변화해가는 거겠지. 작은 유리 테이블에는 이미 오늘 처리해야했을 서류가 놓여있다. 나를 기다리는 동안도 일을 하고 있던걸가.
소파에 앉는것도 어떨까 싶어서 유리 테이블 앞에 앉았다. 가방에서 나도 서류를 꺼낸다.
그러고 있으니 유키짱이 트레이를 손에 들고 거실로 들어왔다. 트레이 위에는 티포트와 두 개의 컵, 그리고 차과자.
"변변치 않지만"
그렇게 말하고 일단 테이블에서 서류를 치우고나서 티 포트와 컵을 올린다. 중심에는 유키짱의 수제라고 생각되는 스콘이 놓여있다.
"거기에 앉아"
유키짱에게 들은대로 나는 소파에 앉고, 옆에 그녀가 살며시 앉는다.
식기 전에 먹을까.
"……잘 먹겠습니다"
컵에 입을 대니 홍차의 향이 퍼져간다. 뭐야 이거, 엄청 좋은 향이야. 한입 마시자 입 안에서도 향이 퍼졌다.
"맛있어"
"그래. ……스콘도 먹어줘"
무뚝뚝하게 말하지만 볼이 희미하게 물들고 있다. 부끄러워하는것 같다.
들은대로 스콘을 한입베어 무니, 소박한 단맛이 스며든다.
한 차례 만끽하고, 나는 컵을 두고 유키짱을 돌아봤다.
"저기, 말야. 일을 하기 전에 조금 들어줬으면 싶은게 있는데"
"들어줬으면, 싶은것?"
그녀의 질문에 나는 천천히 끄덕였다.
『힛키, 아플때는 아프다고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이가하마의 말을 떠올린다. 바보이면서 다정한 여자애의 말을.
그리고 나는 유키짱을 향해 입을 연다.
"아아. 유키짱이 사라지고나서 조금 후의 이야기야. ……들어줄래?
"――그래"
유키짱이 똑바로 끄덕였다. 그걸 시작으로 나는 얘기를 했다. 그 때의 일을―――.
× × ×
――그건 유키짱이 일본을 떠나 며칠 후의 일이었다. 하루짱도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고, 변해버린 일상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끼던 무렵이다.
내가 하교하고 있으니, 같은 시각에 한 명의 여성이 학교에서 나왔다. 상당히 예쁜 사람이라고 멍하니 생각했던걸 기억한다.
그 사람은 나를 눈치채고 가볍게 인사를 해왔다. 붙여쓴듯한, 완벽한 웃음이었다.
마치 외견으로는 하루짱, 같았다. 그 때 눈치챘으면 좋았을텐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 초등학교에 있던건 유키짱의 사무처리에 무언가가 남아있던거였겠지.
……나는 그 때, 유키노시타 자매의 어머니와 처음으로 만났다.
무슨 변덕인진 모르겠지만 그 때. 유키짱의 어머니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너. 학년은?"
내가 쭈뼛쭈뼛 말을 하니 그 사람은 『어머』라며 조금도 놀라지 않은 주제에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내 딸이랑 같은 학년이네. 반이랑 이름 가르쳐주지 않을래?"
――히키가야 하치만. 그렇게 대답하니 처음으로 그 사람은 나에게 감정같은걸 잠깐 보여준것 같았다.
"……그래, 네가"
나에게 미소를 짓고, 그 사람이 말을 했다.
"지금까지 그 아이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하지만, 그 아이는 너하고 사는 곳이 달라"
"그 아이는 아직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안 돼"
"너에게 있어서 그 아이는 소중한 친구겠지만, 그것 뿐이야"
"그 아이에게는 네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강함이 있어"
"너는, 그 아이에게는 필요 없어"
"――――――――――――――――――――――읏!!"
정신을 차렸을땐 그 사람은 가버렸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약했나,라고.
고작 그 뿐인 말로 흔들리고 말았다. 고작 그것뿐인 말로, 소중한 친구를 믿을 수 없게 되버렸다.
나 자신을 용서하는건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어떻게 되버리면 좋을텐데. 진심으로 그렇게 바랬다.
× × ×
"……그래서일까. 줄곧 유키짱을 잊고 있던건"
유키짱 뿐만 아니라, 하루짱에 관한 기억, 모든걸 무의식중에 봉하고 있었다. 떠올리지 않도록, 뚜껑을 덮었다.
당사자인 그녀는 내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을 끝내자 뺨에 손을 뻗고…….
"――읏!"
"아야!?"
내 뺨을 있는 힘껏 꼬집었다.
유키짱은 미간을 모아서 나를 노려본다. 진심으로 화난것 같다.
"뭐야, 쳐다볼 면목이 없으니까 그렇게 체념한 표정을 짓고 있던거야? ……웃기지마"
"미, 미안……"
내가 사과를 하니 또 뺨을 꼬집는다.
"……정말로 알고 있는거야? 이 몇주동안, 하치군이 멀리 떠나갈것 같아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어……"
"유키짱……"
도중에 울음소리로 변했다. 쳐다보니 깨끗한 눈물이 눈동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 하치군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해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정신을 차리고보니 위원회가 이상한 분위기가 되고 있고……어쩌면 좋을지, 몰라서……"
"……미안해, 유키짱"
나는 유키짱을 껴안았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서서히 그 힘이 약해진다.
"애시당초, 하치군이 그렇게 간단하게 흔들려버린게 문제야. 바보바보"
내 가슴팍에서 유키짱이 불만을 말했다.
"그건. 사과해도 끝날게 아니라고 할까……"
"헤어질때, 그렇게나 용기를 쥐어짰는데. 내가 바보같잖아"
"용기라니"
나는 유키짱을 배웅하러 간날을 떠올린다.
공항에서, 나는 유키짱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떨어져 있어도, 줄곧 함께 있을거야. ……하치군, 정말 좋아해!』
"용기 쥐어짜서……고백, 했는데"
유키짱이 코를 훌쩍이면서 말한다.
………………고백?
실내는 조금 추울 정도였는데 나는 어째선지 이마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위험하다, 라고 전신이 위험을 전하고 있었다.
"……설마, 지금 깨달았다, 라는 표정을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
얼어붙는 목소리로 반대로 이번에는 땀이 멎었다. 엄청 춥다. 끝났다, 라고 몸이 종료를 전하고 있었다. ――아니, 그거 안 돼! 좀 더 힘내라고!
유키짱은 일어서서 내 눈앞까지 와서 나를 내려다본다. 쏘아붙이는 안광으로 몸이 꿰뚫리는듯한 착각에 빠진다.
"내 마음, 이, 이제 이걸로 알았겠지?"
"아, 아아……그래"
봉사부의 들어가고나서 유키짱의 반응이, 모두 하나로 이어진다. 그렇게나 어택해왔는데, 나는 눈치 못챈거냐…….
그렇게 생각해서 침울해하고 있으니, 양 볼을 꽈악 잡혔다.
"대, 대답은 없는거니?"
"대답인가……"
보통이라면, 여기서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나는――――――――.
"문화제가 전부 끝나면 부실에서 얘기할게. 약속이야"
나는 유키짱의 눈을 보고 말한다. 그러자 유키짱이 순간 괴로워보이는 얼굴을 한 후, 체념한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 약속, 어기면……이번에야말로 용서 안할거야"
유키짱은 그렇게 말하고 발을 돌려, 테이블 위에 놓인 티 세트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거의 식어있었다.
"……하나, 부탁해도 될까?"
뒤돌아보지도 않은채로 유키짱이 나에게 묻는다.
"아아. 뭔데?"
내 대답에 유키짱은 일단 심호흡을 하고나서, 결의한듯 입을 열었다.
"오, 오늘밤은……같이 잘래?"
그 부탁에 나는 한 마디로만 대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