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청춘/자리바꾸기 혁명

자리바꾸기 혁명7

모래마녀 2014. 12. 31. 15:51

자리바꾸기 혁명7
 
 
 
 
 
"36.4℃인가……젠장, 떨어졌잖아"
 
 
 
온기와 다정함을 주는 이불을 빠져나와 체온을 재고 나는 그렇게 말한다. ……어제 취침전에는 아직 미열이 있었는데……결석을 위한 변명이 사라져버렸다.
 
 
어제는 카와사키가 돌아간 후, 코마치가 수험을 마치고 귀가할대까지 널널하게 보냈다. 귀가한 코마치가 하는 말이 "다녀왔어-! 오빠 괜찮아-?"였던건 기뻤다. ……시험 잘쳤나고 물으니 미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힘내라, 코마치.
 
 
오늘 등교하면 내일이랑 모레는 토일요일이라서 휴일이다.
 
 
"하아…………"
 
 
 
………………준비할까.
 
 
 
학교로 들어가 신발을 갈아신고 있으니, 갑자기 툭 어깨를 맞았다. 이런짓을 당하는건 익숙치 않아서 고이장히 놀라니까 그만했으면 좋겠다.
 
내심 움찔거리면서 어깨를 친 상대의 얼굴을 보려고 돌아본다.
 
 
"안녕- 히키타니. 오늘 괜찮은감? 얼마전에 쓰러졌담서? 나, 진짜 걱정했어~"
 
"……토베냐"
 
"언뜻 보기에 여유- 로운 느낌? 뭐, 몸조심하랄까나? 그런고로 먼저 갈게~"
 
"어, 어어……"
 
 
갑작스런 일이라서 제대로 반응도 못했지만, 토베는 그걸 신경쓰지 않고 교실로 갔다. ……응, 토베는 좋은 녀석이다. 시끄럽긴 하지만.
 
……토베가 여자였으면 어떤 느낌일까? 문득 떠오른건 무슨 일이 있으면 캬하캬하 큰소리로 웃고, 팡팡 양손을 치며 자칭 왁자지껄계 여자. ……아니, 좀 더 제대로 된 느낌일까? ……실은 사랑에 빠져서 순정이라는 요소를 추가하면? ……아니, 아니다. 가령 그렇다고 해도 웃는 방식 때문에 상쇄된다.
 
………무슨 생각하는거람, 나는.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멀리 보이는 토베의 뒤를 쫓듯 교실로 향했다.
 
 
 
 
느릿느릿 슬렁슬렁 교실 안으로 들어가 자기 자리에 앉는다. ……아무도 내 모습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과연 나. 닌자의 소질이 있구나, 응.
 
 
"아, 안녕……히키가야"
 
 
바쁘게 가방에서 교재를 꺼내고 있으니 이미 등교했던 사가미가 말을 건다. ……역시 옆자리 사람은 눈치채나.
 
 
"……어"
 
"몸……괜찮아?"
 
 
사가미는 걱정스러운듯 내 몸을 신경쓴다. ……뭐야 이거, 첫체험. 과거에 몸상태가 나빠져서 결석이나 조퇴한 다음날에 등교했을때 급우한테 몸상태를 걱정받은 적이 있었나? 아니, 없다. 설령 사교인사라고해도 배려받는다는건 나쁜 일은 아니군.
 
 
"아아, 어떻게든 됐어. 나도 감기는 조심해. 외톨이는 결석하면 다음 수업에 못 따라가게 되니까. 쉰 만큼 노트를 보지도 못하고"
 
"으, 응……명심해둘게"
 
 
사가미는 약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스마트폰을 꺼내서 내 얼굴을 올려다본다.
 
 
"저, 저기 말야 히키가야……메일 주소 가르쳐주지 않을래?"
 
"……후아?"
 
 
……………………후아?
 
 
"아니, 그게……어제, 괜찮아-? 라고 메일 보내려고 했는데, 히키가야의 메일 주소 몰라서 못 보냈으니까…… 안 돼? 려나?"
 
 
사가미는 눈꼬리를 내리며 간원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모습으로 부탁해온다. ……외톨이로 변한 사가미, 이렇게 되는건가. 남들과 인연에 굶주린건가.
 
이렇게 까지 될 줄이야……
 
 
"내건 적외선 기능을 쓸 줄 모르니까 사가미가 등록 조작해준다면……상관없는데"
 
"……정말?"
 
"아아"
 
"고, 고마워!"
 
 
그렇게 말하고 내 손에서 스마트폰을 받아든 사가미의 얼굴은 파앗, 함박 터지는듯한 미소로 굉장히 기뻐보인다. ……몇 번이나 생각하지만, 이 녀석 사가미지? 사가미의 가죽을 뒤집어쓴 다른 사람 아니지? ……최근들어 메일을 할 상대도 없었을 것이다. 정말로 이 모습,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좀 가엾다. 하지만 이전의 사가미보다 지금의 사가미가 내 입장으로선 굉장히 편하고 친근하다.
 
 
"……등록했어"
 
 
왠지 후끈후끈한 얼굴로 사가미는 나에게 스마트폰을 건내준다.
 
……메일 주소를 확인해보니 확실히 『사가미 미나미』라는 연락처가 추가되어 있었다.
 
 
"멋대로 봐서 미안하지만……히키가야는 말야, 카와사키랑 이로하의 메일 주소도 알고 있었네"
 
"아? 아아……어제 말야"
 
 
그렇게 대답하니, 사가미는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묻는다.
 
 
"어제? 어제 휴일이었지?"
 
"아아……조금 말야"
 
"…………흐-응"
 
"……뭔데"
 
"딱히이-"
 
 
뭘 생각한건지 사가미는 조금 볼을 부풀리며 뺨을 괴고 계속한다.
 
 
"왠지, 히키가야는 잘 모르겠다 싶어서"
 
"뭔데 갑자기"
 
"그치만 사이 좋지 않다고 해놓고 사이 좋게 대화하거나, 메일도 보내니까……"
 
"……사가미, 십인십색이라는 말 알아?"
 
"그 사자숙어로 표현하기엔 히키가야는 지나치게 아웃로드라고 생각하는데……"
 
"……핫, 외각 낮은 대환영. 세간의 이치에서 벗어난 나는 멋지다. 리얼충이라는 인종은 인하이 아슬아슬 한가득 웨이웨이 거리면 된다고"
 
"……거봐, 점점 대화가 벗어나고 말야……"
 
"하아……딱히 여럿이 알아주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건 아니지만 말야……"
 
 
그렇게 말하자 사가미는 중얼중얼 누구의 귀에도 들어가지 않을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알고 싶은것 뿐인데……』
 
 
 
점심시간이다.
 
오늘 수업은 한번도 졸지 않고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가장 큰 요인은 아침연습을 마친 토츠카가 내 몸을 걱정해서 말을 걸어준걸까. ……유이가하마랑 카와사키는 아직 알겠지만, 미우라랑 하야마가 말을 걸어온건 의외였다.
 
 
"선배? 왜 그래요, 멍때리고"
 
"아아……잇시키냐"
 
 
어느샌가 나타난 잇시키는 익숙한 동작으로 유이가하마의 자리 의자에 앉는다. ……아직 3일째지만 왠지 눈 앞에 잇시키가 있는 광경에 조금 익숙해진것 같다.
 
 
"정말로 왜 그래요?"
 
"아? 아니……너, 익숙하다 싶어서"
 
"그야 그거라구요. 학생회장이니까요"
 
 
잇시키는 그렇게 말하면서 생긋 미소짓는다. ……생긋 미소짓는 옆에서 왜 카와사키가 있는 방향을 힐끔 쳐다보는걸가. ……이상하게 생각해서 나도 카와사키의 모습을 쳐다본다.
 
 
"………………"
 
 
……? 평소의 카와사키 씨다. 묵묵히 도시락을 먹을 뿐이다.
 
……아니, 잠깐만. 때때로 잇시키의 방향으로 시선을 주고 있네……노려보고 있는건 아니지만, 잇시키의 태도를 관찰하는듯한……그런 눈이다.
 
……앗, 눈이 마주쳤다. ……라고 생각했더니 엄청난 기세로 눈을 피해버렸다.
 
뭐야? 뭐야? 이 둘에게 뭐가 있었어?
 
 
"선배, 먹을까요"
 
"아, 아아……"
 
 
잇시키의 밝은 목소리에 제지받은 느낌으로 앞을 돌아보니, 두 개의 도시락통이 내 책상 위에 올려져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네, 많이 드세요"
 
 
도시락통을 열자 안에는 달걀부침, 아스파라거스 베이컨말이, 고기감자, 스냅 엔드 등이 빈틈업이 채워져있었다. 하치만, 감탄.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 선배. 오늘은 따뜻한 된장국도 있어요"
 
"오오……잇시키, 주부라도 보통은 이렇게까지는 안 한다고 생각해"
 
"그런가요-?"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자신의 도시락을 여는 잇시키.
 
옆자리의 푸른빛이 감도는 포니테일이 『주부』라는 단어에 움찔 반응한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음……오늘도 맛있네"
 
 
진자로 맛있어. 고기감자 맛있어.
 
 
"감사합니다-"
 
 
단, 여기서 신경쓰이는 점이 하나.
 
 
"……요리 실력은 손색없다고 생각하는데……"
 
"왜, 왜 그래요 선배?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로……"
 
"……하야마 쪽은 요즘 어때?"
 
"………………후에?"
 
 
어이, 뭐야 그 간격은. 거기다 멍-하니, 마치 내 질문이 예상밖이었다는 얼굴을 하지마……하야마라고 하야마.
 
잇시키는 눈을 엄청 끔뻑거리고 겨우 입을 연다.
 
 
"……그렇네요………어떨까요?"
 
 
그렇게 말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잇시키. ……혹시 순조롭지 않은걸까.
 
 
"헤-, 이로하는 하야마를 노리고 있구나……그러고보니 마라톤 대회때 하야마가 이로하의 이름을 불렀지. ……앗, 이로하가 이전에 말했던 『농락하는 상대』는 하야마였구나……"
 
 
나와 잇시키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사가미가 말꼬리에 창끝을 끼어들어온다. ……라고할까, 이 녀석. 난데없이 말 잘하네. 창이라기보다 도끼를 휘두르는 느낌이다.
 
잇시키를 쳐다보니 마치 『그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듯한 미소로 사가미를 보고 있었다.
 
문득 깨닫는다. 잇시키는 만들어낸 미소를 사가미에게 향하는것 뿐이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이미지지만, 잇시키는 『그렇다구요-, 하먀아 선배의 경쟁률은 높아서 힘들거든요-』라고 하면서 상대를 견제하는거라고……
 
사가미도 생각하는게 있던건지 내 몸 근처로 몸을 기대어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요즘 여자가 접근해오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 건에 대해서.
 
 
"히키가야히키가야, 이로하의 얼굴, 왠지 되게 무서운데……"
 
"아, 아아……그렇군. 『하야마에게 손을 대면 용서 안할거다』라는 얼굴로 말하는걸지도 몰라"
 
"그, 그래……나, 찍혀버린걸까아……"
 
"음? 아0, 너도 하야마 노리고 있었어? ……힘들겠네, 잇시키도 그렇지만 미우라도 있다고"
 
"엣? 아니, 그런게 아니지만……"
 
"……아? 뭐라고?"
 
 
목소리가 작아지는 사가미에게 고개를 기울일까 생각한 순간이다.
 
 
"저기-? 선배들? 둘이서 뭘 하고 계신거에요?"
 
 
아까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뺨을 경직시킨 부자연스런 미소로 잇시키가 이쪽을 보고 있었따.
 
 
"아, 아니,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진짜로, 아무것도"
 
"응응응응"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부정하고, 사가미는 내 말에 긍정하듯 끄덕끄덕끄덕끄덕 고개를 위아래로 흔든다. 아니, 사가미는 너무 끄덕이고 있으니까……왠지 좌측에서도 차가운 시선이 꽂히는 느낌이 들지만, 그쪽은 돌아보지 않는다. 무서우니까.
 
 
"하아……딱히 괜찮긴 하지만요. ……선배는 제가 도시락을 만들어온다는걸 알고 있는거죠?
 
 
한숨섞인 목소리로 잇시키에게 게슴츠레한 눈으로 노려보아진다.
 
 
"……왠지 미안"
 
"알면 됐지만요"
 
 
왠지 하야마의 일을 얼렁뚱땅 넘겨진것 같지만……뭐, 됐나. ……된거야?
 
'부-우, 부-우'
 
휴대폰 진동같은 소리에 사고가 중단된다.
 
사가미가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서, 아무래도 사가미에게 무슨 착신이 있던 모양이다.
 
 
"뭐야……이거……"
 
 
그 목소리에 달걀부침으로 가려던 젓가락을 멈추고 사가미를 쳐다보니, 사가미의 경악스런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왜 그래?"
 
 
왠지 보통이 아닌 표정이라고 생각해서 말을 건다.
 
 
"어? 아니, 아무것도 아냐……하지만. ………얘, 히키가야"
 
"왜?"
 
"………상담인데, 괜찮을……까?"
 
 
왠지 복잡한 뜻을 내포하는듯한 사가미의 말에 나 뿐만 아니라 잇시키랑 카와사키까지도 사가미에게 시선을 향하고 있었다.
 
 
"……아아, 좋아. 얼마전에 그렇게 말했으니까"
 
"…………고마워"
 
 
사가미를 업고 간 보건실에서 확실히 나는 말했다. ……이렇게나 빨리 상담받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메일 말인데……"
 
 
그렇게 말하고 사가미가 건내준 화면에는……
 
 
『얏호, 미나미! 요즘은 어때? 잘 지내? 잘 지내지? 매일 쉬는시간마다 보러 가는데, 요즘은 특히 혈색이랑 피부도 좋아진것 같네? 내 고백 덕분일까? 랄까나! 그런데 요즘, 옆자리의 히키타니? 라는 놈이랑 사이 좋아보이는데, 어떻게 된거야? 들어봤는데 그 자식, 평판 좋지 않은 모양인데? 아까도 몸을 가까이 하고 있었는데, 걱정이야~. 히키타니는 위험한 놈 같으니까 정말로 걱정이야. 이렇게나 여자애를 걱정할 수 있는 나는 다정하지 않아? 진짜 너무 다정해서 수업중에도 F반을 보러가고 싶을 정도야.』
 
 
"…………………………"
 
 
벌려진 입이 닫혀지지 않는다는건 이걸 말하는걸까. 이런 문장을 처음 봤지만, 정말로 이런 짓을 하는 놈이 있구나……라고 생각해 고개를 들어보니 창백해진 표정으로 메일 화면을 엿보고 있는 잇시키와 카와사키가 눈 앞에 있었다. ……여자니까 공포를 더 잘 아는거겠지.
 
 
"저도 비슷한 메일을 받은 적은 있지만,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어요……"
 
"응……나는 없지만, 마음에 오는게 있어……"
 
 
아무래도 피해자가 아닌 잇시키랑 카와사키마저 거북한 모양이다.
 
그렇게되면 피해자인 사가미는 좀 더……
 
 
"야, 사가미. 이 문장에서 헤아리건데, 얼마전에 고백받았다고 했던 상대는 이 녀석이야?"
 
"……응. B반의 남자. 하지만 내 메일주소 몰랐을텐데……"
 
 
사가미는 정말로 공포를 느끼고 있는 모양이라, 그게 표정으로 여실없이 나타난다.
 
……그것도 그런가. 늘 보고 있다는듯한 문장이니까. 그냥 스토커잖아, 스토커. ……라고할까, 그 녀석, 사가미의 메일주소 몰랐던거냐. 고백을 할 정도니까 이미 알고 있을거라고만 생각했는데……리얼충의 세계는 잘 모르니까.
 
'부-우, 부-우'
 
사가미의 스마트폰을 돌려주려고 한 순간, 그 스마트폰이 진동한다. ……이건 혹시.
 
 
"야, 사가미……"
 
"……응"
 
 
도착한 메일을 열어서 그 자리의 넷 모두 들여다본다.
 
 
 
 
 
 
『다음주 월요일 방과후, 체육관 뒤에서 기다릴게. 미나미를 만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앗, 혼자서 와야한다?』
 
 
 
 
 
"있잖아-, 아야!"
 
"뭐, 뭐야? 우라베?"
 
"갑작스럽긴 한데, 미나미의 메일 주소 가르쳐주지 않을래?"
 
"…………어? 왜?"
 
"실은…………………"
 
"…………헤-……그거 좋네, 괜찮을지도"
 
"그런고로, 가르쳐줄래?"
 
"……응,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