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청춘/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 적이 있다면

7.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적이 있다면

모래마녀 2014. 12. 16. 23:46

만약 하치만과 유키노가 옛날에 만난 적이 있다면7
 
 
 
2. 히키가야 코마치는 의외로 브라콘이고, 히키가야 하치만은 현저하게 시스콘이다.
 
 
 
중간고사도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슬슬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량한 남고생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공부하는거다. 그것도 교육연구소의 날은 학교도 빨리 끝나서, 부활동도 없으니까 최고다.
 
계속 영단어를 쓰고 베끼기만 할 뿐인 간단한 작업. 쓰기만 하는 기계로 변하는거다.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 다닷다-! 외톨이니까 고독하니까, 다닷다-! 나는 외톨이 프로다!!
 
범위 만큼 다 쓰고 코코아라도 마시면서 빨간 시트로 가리고 체크할가, 라고 생각했을때.
 
"유키농, 사이제가 아니라서 미안. 밀라노풍 드리아는 다음에 사줄게. 아, 그리고 디아볼라풍 햄버그가 추천이었는데……"
 
"나는 딱히 어디라도 상관없어. 하는건 똑같은걸. 그나저나 햄버그는 이탈리아 요리였니……?"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앗"
 
"……어머"
 
"어라"
 
셋 다 얼굴을 마주치고 굳어버렸다. 입구로 들어온건 교복차림의 유키노시타랑 유이가하마. 전날, 나를 빼고 둘이서 공부모임을 한다고 했으니까, 혹시 그거인가?
 
왜 그런걸 알고 있냐고 하면, 유이가하마가 이거 보라는 듯이 내 앞에서 그렇게 선언했기 때문이다. 만약 권유받아도 거절할 생각이었지만, 여기는 나 애시당초 권유받지도 않았다.
 
"힛키, 여기서 뭐해?"
 
"공부"
 
"오오, 우연이네, 이야-, 나랑 유키농도 공부하러 좀 여기까지……그, 그럼, 같이 공부모임 할래?"
 
유이가하마는 나랑 유키노시타의 얼굴을 교대로 보면서 말했다.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하는건 똑같고"
 
"……그렇구나. 하는건 변함없고"
 
뭐, 유키노시타 씨는 유이가하마의 사각에서 진정되지 못한듯 조마거리고 있지만. 나를 힐끔 쳐다보고 있고.
 
음? 내가 생각하고 있으니, 중요한 일을 잊어먹은걸 눈치챘다.
 
나, 아직 유키노시타랑 주소교환 안 했잖아. 완전히 깜빡했다☆
 
유키노시타가 조마거리는건 그게 원인인가……? 아니, 그래도 만약 아니라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정신을 차리고보면 유이가하마가 내 자리까지 와서 추가 드링크바를 주문하고 있었다.
 
유키노시타도 뒤따르지만 어째선지 가만히 드링크바를 쳐다보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컵, 왼손에는 동전을 들고. 아, 아니이, 설마사카.
 
"……얘, 히키가야. 돈은 어디에 넣는거니?"
 
"그, 그렇게 나왔나"
 
무심코 목소리가 갈라져버렸다. 그 설마사카였다. 드링크바를 몰랐구나, 유키노시타. 뭐어…… 그 집은 말이지.
 
"아까 드링크바 비를 냈으니까 마음껏 마시면 돼. 뷔페 스타일? 의 음료수 판"
 
"……일본은 풍족한 나라구나"
 
어째선지 그늘진 표정으로 유키노시타가 중얼거린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유키노시타에게 보여주듯 드링크바를 조작했다. 내가 버튼을 누르자 컵에 콜라가 부어지는 모습을 유키노시타는 반짝반짝 눈동자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보다 가까워. 그냥 컵에 키스해버릴것 같은 기세.
 
"유키짱, 가까워――"
 
핫, 하며 무심코 입을 다물었다. 깜빡하고 옛날 별명으로 불러버렸다.
 
 
"………………하치군?"
 
 
유키노시타가 아연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뺨에는 희미하게 주홍색이 들고 있었다.
 
"읏. ……겸사다. 내가 할게. 뭐 마실래?"
 
나는 얼버무리듯 유키노시타의 컵을 빼앗고 뭘 마실건지 물었다.
 
"……. 히키가야에게……맡길게"
 
차분해진 유키노시타를 보고,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컵에 부어진 콜라에서 기포가 떠오르지만 빠진 탄산은……돌아오지 않는다.
 
 
 
 × × ×
 
 
셋 모두 자리에 앉고, 나를 제외한 둘은 공부도구를 꺼냈다. 공부모임의 시작이다.
 
"그럼 시작할까"
 
유이가하마의 신호와 함께 유키노시타는 헤드폰을 꺼내서 장착했다. 나도 이어폰을 끼운다.
 
그걸 보고 유이가하마가 경악의 표정을 지었다.
 
"하아!? 왜 음악 듣는거야!?"
 
보통 공부할때는 음악 듣지 않아? 잡음이 신경쓰이니까"
 
"그렇구나. 그 음악이 들리지 않게 되면 집중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가 되서 모티베이션이 높아지고"
 
"그게 아니야! 공부모임은 이런게 아냐!"
 
팡팡, 테이블을 치며 유이가하마가 항의한다.그러자 유키노시타는 턱에 손을 대며 생각하는 몸짓을 한다.
 
"……그럼 어떤게 공부모임이니?"
 
"그게, 출제범위를 확인하거나,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거나, ……뭐어, 휴식도 끼우고, 남은건 상담하거나, 그리고나서 정보교환하거나. 가끔은……잡담도 할까나?"
 
"거의 말하는것 뿐이잖아……"
 
공부모임이 아니라 잡담모임으로 변했다. 방해밖에 안 되잖아, 그런거.
 
"애시당초 공부라는것 자체가 혼자서 하도록 되어 있는데"
 
유키노시타의 의견에 수긍한다. 솔로플레이로 하는 편이 더 순조로운게 공부의 철칙이다.
 
처음에는 납득이 안가는 표정의 유이가하마였지만, 나와 유키노시타가 그저 말없이 공부하고 있는걸 보고 체념했는지 한숨을 쉬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기를 5분, 10분의 시간이 경과해간다.
 
문득 둘의 모습을 보니, 유이가하마는 어려운 표정인채로 완전히 손이 멈춰있었다. 한편 유키노시타는 묵묵히 수학문제를 풀고 있다. 집중하고 있는 유키노시타에게 말을 거는걸 망설였는지 유이가하마는 나에게 시선을 향했다.
 
"저, 저기 말야……이 문제 말인데……"
 
엄청 부끄러운듯이 물어왔다. 나에게 묻는건 그렇게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나.
 
"도플러 효과라아. 나 물리는 버렸으니까 몰라. 그거다, F1 레이스 같은데서 차가 지나갈때 『으으으우우우우우우우으응』하는 소리. 그거다"
 
"그런 소리로 말해도 모른다니까아!"
 
뭣하면 그래플러 바키였다면 얼마든지 말할 수 있는데. 틀렸나.
 
유이가하마는 체념했는지, 교과서랑 노트를 덮고 빨대로 아이스티를 마시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비어버린 유리잔을 들고 일어서려고 했을때, 아, 하며 무언가를 깨달은 소리를 냈다.
 
이끌려서 나도 그쪽을 쳐다보니, 거기에는 세일러복을 입은 소녀가 있었다.
 
"동생이다……"
 
내 동생인 코마치가, 즐거운듯 웃으면서 계산대 앞에 서 있었다. 옆에는 교복을 입은 남자가.
 
……남자가.
 
……………………남자가!!
 
"미안, 잠깐"
 
그렇게 말하고 나는 둘의 뒤를 쫓아가지만, 가게를 나가 잠시뒤, 완전히 놓쳐버렸다.
 
마지못해 가게로 돌아오니 유이가하마가 말을 걸었다.
 
"에, 저기, 지금 그거……동생?"
 
"아아. 어째선지 그 녀석이 남자랑 패밀리 레스토랑에……"
 
사건이다. 대사건이다. 너무 충격적이라서 더는 공부할때가 아니게 됐다. 내 동생이 모르는 남자랑 패밀리 레스토랑에 있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데이트 중이었을지도"
 
"그럴 수가……말도 안 돼……"
 
"그런가-. 코마치는 귀엽고, 남친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싫어-! 동생한테 남친이 생기는건 죽어도 싫어어-!!"
 
"기분 나쁜 소리를 큰소리로 말하지마. 헤드폰을 껴도 들려, 지금 목소리"
 
유키노시타가 헤드폰을 벗으며 민폐라는듯 나를 본다.
 
"아, 아니, 아니야. 내 동생이 지금, 정체불명의 남자랑……"
 
내가 설명하고 있으니 유키노시타가 불쑥 『코마짱이……?』라고 중얼거렸다. 아아, 그러고보니 코마치를 바다표범같은 별명으로 불렀지.
 
유이가하마가 한숨쉰 후에 말했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중학생이잖아. 코마치가 걱정되는건 알겠지만, 너무 파고들면 미움살껄? 요즘, 우리 아빠도 『남친 있는거냐』라고 물어서 짜증나는걸"
 
"우리 집도 동생에게 남친이 없다고 믿고 있으니까 묻지도 않았다.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나저나, 왜 네가 내 동생 이름을 아는거야?"
 
나, 코마치의 이름을 말한적이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코마치는 여자업계에선 유명한 이름인가? 나는 상시 무명이지만!
 
"엣!? 아-, 아, 아니, 그게……휴대폰? 에 쓰여있던것 같은데……"
 
유이가하마가 어째선지 시선을 피하면서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한번 이 녀석에게 휴대폰을 준적이 있었지. 메일 속에 있던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럼 됐어. 무의식중에 동생의 이름을 말하는 시스콘이 된줄 알았잖아"
 
"충분히 시스콘이라고 생각하는데……"
 
유이가하마가 깨면서 입을 연다.
 
"어쩔 수 없잖아. 다정하게 대해주는게 동생밖에 없으니까 필연적으로 그렇게 된다고"
 
"힛키……"
 
"히키가야……"
 
두 사람이 불쌍한걸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덧붙여서 말야, 코마치는 힛키한테 어떻게 다정하게 굴어줘?"
 
"그렇구만……"
 
나는 턱에 손을대고 코마치의 행동을 떠올린다.
 
"우선, 매일 아침 깨워줘"
 
"응"
 
"우리 부모님은 아침 일찍 출근하니까. 그러니까 코마치가 아침을 둘 먹을 몫을 만들어줘"
 
"흠흠"
 
"그리고 저녁 만들어주잖아. 목욕하고 나오면 마사지 해주고, 잘때 무릎배게――"
 
"스톱스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옵!!"
 
갑자기 유이가하마 황급히 제지를 걸었다. 왜, 여기부터가 좋은 장면인데.
 
"저녁밥까지는 알겠지만, 목욕하고 나오면 마사지 해준다니, 뭐야? 무릎배게도 해줘!?"
 
"아-, 뭐어 그래. ……어째선지 여친하고 헤어지고나서 갑자기 이런 느낌이 됐어"
 
"……"
 
내 말에 유키노시타가 눈을 가늘게 뜬다. 유이가하마는 팔짱을 끼고 신음소리를 낸다.
 
"우으……뜻밖의 장소에 강적이……유키농도 있는데……"
 
미약한 목소리여서 유이가하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말로 못 들었다.
 
 
"…………………………코마짱 좋겠다아……"
 
 
이쪽은 확실하게 들렸다. ……왠지 내가 부끄러워졌는데. 나는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긁고 둘에게 선언했다.
 
"아무튼. 나는 그 남자를 남자친구로 인정 못해. 결과는 어떻든간에"
 
"우와아……"
 
"시집보내는걸 인정못하는 아버지같은 소리를 큰 소리로 선언하지 말아줘……"
 
두 사람은 식겁하면서, 나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듯 공부로 돌아갔다. 나도 자리에 앉아 공부를 시작한다.
 
 
 
――하지만 전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아서, 컵을 들고 드링크 바로 향한다.
 
 
 
 
 × × ×
 
 
"……"
 
나는 방금전에 여기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유키짱을 상처입힌걸까.
 
콜라 버튼을 누르려고 했을때, 뒤에서 말을 건다.
 
"――히키가야"
 
투명한것 처럼 맑은 목소리의 주인은 유키노시타였다.
 
"유키짜……유키노시타……"
 
"뭐니? 히, 키, 가, 야"
 
음색이 바귀어서 뒤돌아보니, 이마에 혈관이 튀어나와 있었다. 엄청 화내고 있잖아.
 
"……읏"
 
엄청 목이 마르다. 무심코 막 부은 콜라를 다 들이켰다. 급하게 삼킨 탓에 목에서 식도를 타고 탄산이 타고 오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유키노시타를 돌아본다.
 
"……"
 
유키노시타가 혈관을 세우며 팔짱을 기고 있다. 눈은 맹금류처럼 날카롭게 나를 노려보고, 지금 당장이라도 숨통을 끊어버릴 기세다. ……나는 각오를 굳히고 입을 열었다.
 
"……아까전엔 미안. 딱히 감출 생각은 없었어"
 
"……"
 
"점점 기억이 떠올라. 그러니까, 전부 떠올릴때까지는……그게……"
 
"――잊고 있는 척을 하려고 했다고? 바보취급하지마"
 
유키노시타는 나에게 다가와서, 팔을 들어올렸다.
 
"윽!"
 
무심코 눈을 감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뺨에 통증은 오지 않는다.
 
"……바보"
 
대신에, 천천히 뺨에 따뜻한 감촉이. 눈을 떠보니 유키노시타가 내 뺨에 살며시 손을 대고 있었다.
 
"하치군"
 
유키노시타는 다정하게 미소를 짓고, 말을 잇는다.
 
"……조금만이라도, 나를 기억해준다면 기뻐. 또 만날 수 있다고는 생각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그 무렵처럼. 나를 불러줄래? 부탁해……하치군……"
 
"………유키, 짱"
 
"읏!"
 
유키짱이 숨을 삼킨다.
 
나는 한번 더, 유키장의 이름을 부른다.
 
"유키짱"
 
 
 
"――――――응"
 
 
 
 
유키짱이 눈동자에 눈물을 머금으면서도 미소지으며 끄덕였다.
 
 
 
 
 × × ×
 
 
공부모임 후, 유키짱하고 주소 교환을 하니, 그 날 밤에 바로 유키짱한테 메일이 왔다.
 
 
 
 ----------------------------------------------------
  FROM: 유키짱
 ----------------------------------------------------
  Sub: 
 ----------------------------------------------------
 
  깨어있니?
 
 ----------------------------------------------------

 
 
 ----------------------------------------------------
  FROM: 하치군
 ----------------------------------------------------
  Sub: Re
 ----------------------------------------------------
 
  깨어있어
 
 ----------------------------------------------------

 

 
 ----------------------------------------------------
  FROM: 유키짱
 ----------------------------------------------------
  Sub: Re2
 ----------------------------------------------------
 
  너, 수리과목 성적은 괜찮니?
 
 ----------------------------------------------------
 
 
 ----------------------------------------------------
  FROM: 하치군
 ----------------------------------------------------
  Sub: Re3
 ----------------------------------------------------
 
  괜찮지 않아. 수리과목은 버렸어
 
 ----------------------------------------------------


 
 ----------------------------------------------------
  FROM: 유키짱
 ----------------------------------------------------
  Sub: Re4
 ----------------------------------------------------
 
  괜찮지 않아, 라니, 문과과목도 수상쩍은데…….
  공부, 가르쳐주는 편이 좋으려나.
 
 ----------------------------------------------------
 
 
 ----------------------------------------------------
  FROM: 하치군
 ----------------------------------------------------
  Sub: Re5
 ----------------------------------------------------
 
  뭐, 괜찮겠지
 
 ----------------------------------------------------

 

 
 ----------------------------------------------------
  FROM: 유키짱
 ----------------------------------------------------
  Sub: Re6
 ----------------------------------------------------
 
  너를 후배로 갖고 싶진 않은데
 
 ----------------------------------------------------

 

 
 ----------------------------------------------------
  FROM: 하치군
 ----------------------------------------------------
  Sub: Re7
 ----------------------------------------------------
 
  그건 사수한다니깐
 
 ----------------------------------------------------
 
 
마지막으로 메일을 보낸 후, 전화착신이 울었다. 화면을 보니 상대는 유키짱.
 
통화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이번에는 같이 졸업하고 싶어. ……모르겠어? 하치군 바보바보』
 
"아……"
 
 
 
그런가, 유키짱, 도중에 해외유학이 결정되서――――――헤어지게 되버렸지.
 
 
 
왜 이렇게나 중요한걸 잊고 있던걸까.
 
"……그렇군. 미안, 그럼 공부 가르쳐줄래?"
 
『스파르타로 갈테니까 각오해둬. 그럼 잘자. 하치군』
 
"잘 자, 유키짱"
 
 
 
 
 
통화를 마치고, 다시 한번 메일 대화를 보고나서, 나는 잠에 들었다.